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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50년을 열자] 朴대통령 관례 깨고 日보다 中 먼저 방문… 최악 갈등의 ‘서막’

    [새로운 50년을 열자] 朴대통령 관례 깨고 日보다 中 먼저 방문… 최악 갈등의 ‘서막’

    2013년 6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미국 다음으로 중국을 방문하자 일본 언론들은 “한국이 중국과 밀착해 일본을 소외시키는 것 아니냐”며 들끓었다. 일반적으로 우방인 미국 다음으로 일본을 먼저 방문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지난 50년간의 한·일 관계는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에 비유된다. 1945년 8월 광복 이후부터 국교 정상화가 이뤄진 1965년 6월 이전까지 일본은 적대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양국은 1965년 국교정상화 후 군사동맹을 맺지 않았지만 우호협력적 안보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그 과정에서도 왜곡된 역사 인식 등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됐다. 박정희 정부는 수출제일주의와 경제 실리 외교를 표방했고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겠다는 데 기대를 걸었다. 박 대통령은 1964년 1월 발표한 연두교서에서 한·일 관계 정상화가 “자유 진영 상호 간의 결속을 강화해 극동의 안전과 평화유지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6·3 사태로 불리는 대규모 대학생 시위 등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문제는 한국 내 부정적 대일 여론 못지않게 일본 내 한국에 대한 우월감도 심각했다. 국교정상화를 추진했던 시나 에쓰사부로 외무상도 1963년 “조선과 대만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는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일본 주요 정치가의 역사에 대한 성찰은 결여돼 있었다. 1970년대에는 일본 한복판에서 중앙정보부가 당시 야당 의원이던 김대중씨를 납치한 사건(1973년), 재일 교포 문세광이 영부인이던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사건(1974년) 등이 겹치며 한·일 관계는 단교 직전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1980년 출범한 전두환 정부는 일본에 대한 ‘안보 무임승차론’을 내세워 경제적 실익을 얻고자 했다. 1981년 당시 노신영 외무부 장관은 일본 정부에 “한국이 소련, 중국, 북한의 위협 속에서 대규모 군사력을 유지해 일본의 안보를 지켜 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일본은 한국에 안보 경제협력 자금으로 100억 달러를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본은 이 구상에 반발했지만 결국 1983년 1월 한국에 40억 달러의 경제협력 차관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당시 미국과 소련 간 신(新)냉전이 격화된 시기라 가능했던 일로 평가받는다. 한·일 양국은 1982년 일제의 침략을 ‘진출’로, 3·1 운동을 ‘폭동’으로 표현한 일본의 고교 역사교과서 문제로 외교적 마찰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방한해 사실상 처음으로 반성의 뜻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비교적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는 평이다.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는 1990년대 탈냉전을 맞아 북한이 핵개발을 본격화하자 한·일 간 경제뿐 아니라 외교안보 관계도 발전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노태우 정부 때는 일본의 군사력 확대와 군국주의 회귀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는 시기였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됐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 8월 일본 고노 요헤이 관방 장관이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하고 1995년 8월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 사죄하는 등(무라야마 담화) 한·일 관계가 순풍을 타는 듯했다. 하지만 1996년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지자 김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고 강력히 반발하며 양국 관계는 다시 극도로 악화됐다. 1998년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은 대북 화해협력 정책에 대한 국제적 협력을 얻기 위해서는 악화된 대일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1998년 8월 북한이 발사한 대포동 미사일이 일본 본토 상공을 지나 태평양으로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일본도 한국과의 안보 협력 필요성에 공감했다. 김 대통령은 1998년 10월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미래지향적인 한·일 파트너십을 선언하며 한·일 간 장관급, 실무 국장급 교류와 재해 구난을 위한 공동 훈련(SAREX)을 실시키로 합의했다. 하지만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집권하면서 역사교과서 왜곡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이 다시 갈등의 핵으로 떠올랐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에는 시마네현이 독도 영유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는 파동을 겪었다. 고이즈미 총리 본인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등 일본의 도발이 잇따랐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임기 초 노무현 정부에서 악화됐던 한·일 관계를 회복시키는 데 주력했다. 이는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과 2009년 9월부터 집권한 일본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총리가 역사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 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2011년 12월 교토에서 열린 일본 노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정면 충돌했다. 2012년 6월 양국 정부가 체결하려던 군사 정보보호협정은 국내 여론의 압박에 무산됐다. 같은 해 8월 이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적으로 방문하면서 일본 내 반한 감정에 불이 붙었다. 이후 일본 자민당의 총선 승리로 재집권한 아베 신조 총리는 고노 담화를 부정하기 위해 담화를 검증하겠다고 밝혀 한·일 관계는 다시 얼어붙게 됐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28일 “지난 50년간 한·일 관계가 냉탕과 온탕을 오갔지만 1990년대 이전까지는 냉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정부 차원에서 이를 쉽게 봉합할 수 있었다”면서 “21세기 들어서 여론이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를 의식한 정치 지도자들이 악화된 한·일 관계를 봉합하기 어려워진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새로운 50년을 열자] 되풀이되는 과거사 불화… 적극 외교로 日 우경화 저지 절실

    [새로운 50년을 열자] 되풀이되는 과거사 불화… 적극 외교로 日 우경화 저지 절실

    김외한, 김달선, 김연희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이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이달 들어 별세했다.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 중’이라고 표기한 일본 중학교 교과서는 2011년 4종에서 올해 4월 13종으로 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약탈해 간 우리 문화재는 일부만 반환됐을뿐더러 국내에서 문화재 반환 운동이 시작된 이후에는 전시대에서 사라졌다. 한·일 수교 반세기. 50주년이란 숫자를 딛고 미래를 기약하기에 양국의 과거사 화해 성적은 초라하다. 오히려 국내 사정에 밀려 양국 간 화해 노력이 무위로 끝나고 많은 일이 반복, 재연됐다. 일본 총리가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나서는 행보는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2000년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로 이어졌다. 아베 신조 내각에서 “위안부는 전시 중 합법”이라는 취지의 발언은 아베 총리뿐 아니라 내각 장관들의 입을 거치며 반복됐다. 미래를 향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양국이 한·일 수교 반세기를 계기로 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적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침략 전쟁을 금지한 일본 평화헌법 9조에 대해 한·일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을 추진하는 행보처럼 일본의 우경화를 저지할 여론 환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위안부 문제는 양국이 제자리걸음을 멈춰야 할 명분을 주는 상징적 이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28일 김연희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거론하며 “이제 위안부 생존자는 49명”이라고 전했다. 정대협이 전한 김연희 할머니의 삶은 해방, 한·일 국교 정상화, 한국의 경제 발전, 민주화와 같은 집단적 성취가 이미 망가져 버린 개인의 삶에 대리 만족을 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은유였다. 1932년생인 할머니는 국민학교 5학년이던 열두 살에 일본인 교장의 차출에 따라 일본으로 끌려갔고, 일본 도야마현의 비행기 부속 공장에서 9개월 동안 근무하다 아오모리현 위안소로 끌려가 7개월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다. 해방 뒤 귀향한 할머니는 결혼하지 않고 가정부로 일했으며, 정신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1965년 한·일 수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개인적으로 보상받을 길을 차단하는 제약으로 작용했다. 일본 정부는 시종일관 성노예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수교에 맞춰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종결됐다고 주장했고, 이 문제가 국제적 이슈가 된 최근에도 아베 총리 등이 “위안부 문제는 정치·외교 문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2013년 의회 답변)거나 “위안부는 인신매매 희생자”(올해 언론 인터뷰)라는 식으로 일본 정부 차원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단체는 최근 적극적인 대응 행보를 보여 주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가 7월까지 사과하지 않으면 미국 법원에 2000만 달러(약 220억원)의 집단 손해배상 청구를 낼 계획이다. 이미 2000년 미국 워싱턴 법정에서 패소한 전례가 있지만, 이후 르완다와 유고 내전 중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 국제 판례가 나왔기 때문에 승소 기대감이 생기고 있다. 최근 방한한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유엔의 위안부 문제 해결 의지를 밝히며 “위안부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그들의 고통을 인정하는 우리의 모습과 진정 어린 참회”라며 피해자인 개인을 향한 직접 사죄만이 고통을 치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진일보한 인식을 드러냈다. 할머니들의 죽음이 위안부 문제 해결의 시급함을 더했다면, 독도 영유권 문제에서는 일본의 속도가 한국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 독도 자체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멋대로 독도 주변에 영유권 선을 그어 국제분쟁화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단행될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다. 일본 내에서 체계적으로 진행돼 온 ‘한국의 독도 불법점거’ 주장은 이를 위한 사전 단계로 볼 수 있다. 2000년 이후 독도 문제는 양국 불화의 ‘뇌관’이 돼 왔다.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2월 22일을 ‘다케시마(일본이 독도를 부르는 말)의 날’로 제정하는 조례안을 가결하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날 침략을 정당화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하자 주한 일본대사가 본국으로 소환됐다. 한·일 네티즌끼리 독도 지명 표기를 놓고 여러 사이트에서 인터넷 청원 전쟁을 벌이는가 하면 독도 관련 공연을 한 한국 가수가 일본 입국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사법의 영역에서 한국은 독도 문제에 대해 ‘조용한 외교’로 일관하는 중이다.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뒤 일본이 1954년, 1962년에 이어 세 번째로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과 대비되는 전략이다.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독도는 영토 분쟁 지역이 아니어서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면 긁어 부스럼이란 게 ‘조용한 외교’의 근간이 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차분하게 대응하는 동안 일본은 자국의 독도 편입 논리를 강단 있게 전파해 왔다는 데 있다. ‘1905년 무주지인 독도를 일본이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는데, 한국 정부가 1952년 1월 독도를 포함하는 이승만 라인을 일방적으로 설정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일본의 주장이 굳어지면, 한국 외교는 조용하게 있다 힘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 독도연구소장을 지낸 김현수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적극적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독도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분쟁도서로 인식된다”며 “독도 문제 언급을 피할 게 아니라 분쟁의 해결을 위한 한·일 간 진지한 교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위안부, 독도, 교과서를 둘러싼 갈등 국면에서 적극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면 일제강점기 약탈 문화재 반환 이슈에서는 다소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문화재 반환이 성사되려면 현재 국면에서 받는 입장인 한국 못지않게 주는 쪽인 일본의 태도 변화가 중요한 변수가 되기 때문에 면밀한 대응이 요구된다. 한·일 수교 당시 박정희 정권이 반환을 요구한 문화재는 4479점으로 조선총독부가 일본으로 가져간 고분 출토품, 개인이 약탈한 문화재가 망라됐다. 수교 이듬해인 1966년 5월까지 한국으로 돌아온 약탈 문화재는 거북 모양 청자 주전자(보물 452호) 등 1432점에 불과했다. 개인 소유 문화재가 제외된 탓이다. 대표적으로 일본인 사업가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1910~50년대 한반도에서 수집한 1100여점의 문화재, 이른바 ‘오구라 컬렉션’이 돌아오지 못했다. 한·일 협정 당시 개인 소장품이었지만 1982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된 유물들이다. 국내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는 국제박물관협의회에 오구라 컬렉션 반환 청원서를 전달하고 도쿄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환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소송이 제기된 직후 도쿄국립박물관에 전시됐던 한국 문화재들이 수장고 안으로 자취를 감추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다. 일본 법원도 한·일 협정으로 타결된 문제인 만큼 일본에 반환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재 약탈이 이뤄지고 이들 문화재가 어떻게 불법 경로를 통해 유출돼 일본으로 흘러들어 갔는지를 일본 정부에 소상하게 밝힐 수 있는 입증 자료 구비 등 한국 측의 빈틈없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김연희 할머니 별세… ‘49’, 50분도 안 남은 위안부 생존자

    김연희 할머니 별세… ‘49’, 50분도 안 남은 위안부 생존자

    김연희(83) 할머니는 12세 어린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7개월간 고초를 겪었고, 이후 한평생을 ‘성폭력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결혼조차 하지 않은 채 무너진 인생을 홀로 추스러 온 김 할머니는 지난 24일 경기 용인의 한 요양병원에서 한 많은 세상과 작별했다. 올 1월 황선순(89)·박위남(93) 할머니, 4월 이효순(90) 할머니, 이달 11일 김달선(90)·김외한(81) 할머니에 이어 올 들어 6번째의 위안부 피해자 별세다. ●수요집회서 “당시 놀러가는 줄 알았지” 25일 김 할머니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영등포구 신화병원 장례식장은 평생 혼자였던 고인의 삶처럼 어둡고 쓸쓸했다. 김 할머니의 유일한 피붙이로, 평생 의지했던 여동생만 휑한 빈소를 지키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김 할머니는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상경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다른 학생들과 함께 일본인 교장의 농간으로 일본에 보내졌다. 일본 도야마 현에 있는 항공기 부속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9개월을 일하다 아오모리 현의 군 위안소에 끌려갔다. 김 할머니는 과거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나와 “당시 우리는 놀러가는 줄로만 알았다”며 어린이까지 닥치는 대로 유린했던 일제의 만행을 고발했다. 김 할머니는 해방을 맞아 귀국했지만 어린 나이에 위안소에서 겪은 성폭력 후유증으로 평생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대외 활동을 꺼렸던 김 할머니는 서울에서 여동생 가족과 함께 생활하다 6~7년 전부터 요양병원을 전전했다. ●평생 정신과 치료… 결혼 않고 독신 생활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할머니들께서 임종을 앞두고 그런 말씀들을 하세요. ‘난 죽더라도 죽은 게 아니다. 일본은 더 독해질 테지만 나는 죽어서도 맞서 싸우겠다’는 말에 안타깝고 울분이 치솟습니다.” 이날 빈소를 찾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관계자는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이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49명으로 줄었다. 김 할머니의 장례식은 26일 오전 6시 30분에 치러진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위안부 문제 해결에 유엔이 노력할 것”

    “위안부 문제 해결에 유엔이 노력할 것”

    유엔의 인권분야 수장인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인권최고대표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만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유엔이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유엔 최고 인권수장이 피해 당사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위안부 문제를 부각하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한·일 양국의 국장급 협의에서도 정부의 입장에 힘이 더 실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엔북한인권사무소 개소식 참석을 위해 방한 중인 자이드 대표는 24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을 찾아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길원옥, 이용수 할머니들과 면담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운영하는 이곳을 한 시간가량 둘러본 자이드 최고대표는 비공개 면담에서 “할머니들의 요구를 담아 유엔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고 현장에 있던 관계자가 전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우리가 얘기하는 것보다 자이드 최고대표 같은 분이 한번 말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화답했다. 그러자 자이드 최고대표는 “생존자인 할머니들의 육성이 더 중요하고 더 강력하다”면서 “할머니들이 저의 자문위원”이라고 강조했다고 관계자는 덧붙였다. 그는 할머니들과 만난 뒤 “연약하고 연세가 꽤 드셨지만 자신이 경험한 고통과 세계 많은 곳에서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는데 열정적인 이들 세 분보다 더 중요한 분은 없는 것 같다”며 “할머니와 계속 접촉을 유지하며 가능한 자주 만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자이드 최고대표는 위안부 할머니 면담에 앞서 위안부 피해자인 고 정서운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 ‘소녀이야기’를 시청하고 추모관에 헌화했다. 또 박물관에 전시된 위안부 관련 그림 등 전시물을 세심하게 둘러봤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자이드 대표에게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금색 ‘희망 나비’ 배지를 직접 달아줬으며 위안부를 상징하는 작은 소녀상인 ‘평화비’를 선물 받고 기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유엔의 인권최고대표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이면서 한일 국장급 협의에서 일본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외교부 공동취재단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위안부 김연희 할머니 별세, 생존 할머니 49명만 남아..

    위안부 김연희 할머니 별세, 생존 할머니 49명만 남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부고] 故 김연희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을 게재했다. 해당 글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연희 할머니(83)는 지난 24일 밤 10시 별세했다.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난 故 김연희 할머니는 5살 때 서울로 이사를 가 서울의 한 국민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44년 일본인 교장에 의해 차출돼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 후 일본의 시모노세키를 거쳐 도야마겡의 한 비행기 부속 공장에서 약 9개월 동안 일하다, 아오모리겡 위안소에 끌려가 약 7개월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다. 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위안부 생존자 수는 49명으로 줄었다.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듣지 못한 채 6월에만 3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위안부 김연희 할머니 별세, 끝내 일본 사과 못받고… ‘6월에만 3명 별세’ 생존자 49명으로 줄어

    위안부 김연희 할머니 별세, 끝내 일본 사과 못받고… ‘6월에만 3명 별세’ 생존자 49명으로 줄어

    위안부 김연희 할머니 별세, 끝내 일본 사과 못 받고… ‘남은 생존자 49분’ ‘위안부 김연희 할머니 별세’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부고] 故 김연희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을 게재했다. 해당 글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연희 할머니(83)는 지난 24일 밤 10시 별세했다.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난 故 김연희 할머니는 5살 때 서울로 이사를 가 서울의 한 국민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44년 일본인 교장에 의해 차출돼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 후 일본의 시모노세키를 거쳐 도야마겡의 한 비행기 부속 공장에서 약 9개월 동안 일하다, 아오모리겡 위안소에 끌려가 약 7개월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다. 해방이 되면서 배를 타고 겨우 서울로 돌아왔지만,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후 가정부로 일하는 등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다 세상을 떠났다. 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위안부 생존자 수는 49명으로 줄었다.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듣지 못한 채 6월에만 3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하루빨리 할머니들이 고통을 덜어놓고 여생을 편히 사실 수 있도록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더욱 큰 관심과 연대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김 할머니의 빈소는 서울 영등포 신화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5000만원 기부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5000만원 기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9) 할머니가 광복·종전 70주년을 맞아 그동안 모은 모든 재산 5000만원을 기부했다. 이 돈은 분쟁지역 피해 아동과 평화활동가 양성에 쓰인다. 김 할머니는 24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184차 수요집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5000만원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전달했다.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열네 살에 위안부로 끌려가 중국 광둥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등에서 고초를 겪었다. 그동안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세계를 다니며 일본의 만행을 증언해 왔다. “나이 어려서 끌려가 공부를 못했던 것을 항상 마음에 묻고 살았어요. 그런데 각국에 나가보니 피해자 자녀들이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고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더군요. 매월 조금씩 나오는 생활비 하나도 안 쓰고 푼푼이 아껴서 모은 돈인데,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이 할매는 그거 모으는데 진짜 힘들었어요.” 김 할머니는 자신처럼 전쟁 중 성폭력을 당한 여성을 돕겠다는 취지로 2012년 나비기금을 만들었다. 시민들의 기부로 나비기금이 조성됐고, 베트남전 성폭력 피해자와 내전 피해를 입은 콩고 여성들을 돕고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UN인권 최고대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면담, “노란 나비 꿈 이뤄지게”

    UN인권 최고대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면담, “노란 나비 꿈 이뤄지게”

    자이드 알 후세인 UN인권최고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로부터 노란 나비 배지를 선물받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아베 “양국 관계 개선 정상회담으로 연결하고 싶다”

    아베 “양국 관계 개선 정상회담으로 연결하고 싶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3일 “(한·일) 관계 개선의 움직임을 살려 일·한 정상회담으로 연결해 양국의 관계를 발전시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태평양전쟁 오키나와 전투 전몰자 추도식이 열린 오키나와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은 전날 한·일 정상이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식에 교차 참석한 사실과 한·일 현안 등을 주요 기사로 보도하면서 양국 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와 관심을 나타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한·일 정상회담이 필요하지만 이 문제가 정상회담의 걸림돌이라고 전했다. 도쿄신문은 “화해는 연출했지만 역사의 골은 여전하다”고 보도했다. 또 수교 50주년 시리즈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겨 놓은 숙제(위안부 문제)를 짊어지고 있다”면서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한국 비정부기구(NGO)의 역할 등을 설명했다. 아사히신문도 “위안부 문제 등 양국 주장에 차이가 큰 현안이 많다”고 전하며 사설에서 “아베 총리가 전후 70년 총리 담화에서 새로운 갈등을 야기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며 “한국 측도 위안부 문제 등을 둘러싼 국내 설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관계 개선에 대한 양국 정부의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면서 한·일 정상회담의 조기 실현을 촉구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사설에서 “대화를 거듭하는 동안 다양한 과제를 진전시키는 지혜를 서로 내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라며 정상회담을 주문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7월까지 아베 사죄 없으면 2000만弗 국제소송”

    “7월까지 아베 사죄 없으면 2000만弗 국제소송”

    한·일 정상의 수교 50주년 행사 교차 참석으로 양국이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등 시민단체들은 실망과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 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23일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다음달 초 미쓰비시중공업 등 미국에 진출한 일본 전범기업과 일왕, 아베 신조 총리,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라고 비하한 산케이신문 등을 상대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 2000만 달러(약 22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송을 대리 진행하는 김형진 변호사는 “할머니들의 슬픔과 고통은 70여년 전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인데 일본 정부 등은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며 피해 할머니들을 깎아내리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소송 이유를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소송 준비는 두 달 전 마쳤지만 지금까지 제소하지 않은 것은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며 기한을 7월로 잡았다”고 밝혔다. 그는 “2000만 달러라는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중요하지 않으며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죄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40여개 시민단체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 양국 간 과거사 해결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복동(90)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변명하지 않고 사과할 때까지 우리 정부는 얼버무리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인 강종호(74)씨는 “과거를 다 저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열자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과거사를 끝까지 사죄하지 않는 일본의 안하무인적 태도를 그대로 보여 준다”며 “힘의 논리에 끌려다니면서 운명을 맡겨 버리는 우리 정부의 모습은 과거와 다를 게 없다”고 성토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10월쯤 다자회의서 정상회담 가능성… 위안부가 최대 변수”

    한·일 양국 정상이 국교정상화 50주년 행사에 교차 참석한 것을 계기로 양국 간 해빙 무드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이르면 10월 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구체적인 이슈에서 결론을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은 만큼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라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두 정상을 포함한 양국 정부의 관계 개선 의지를 확인했다는 점에 전문가들은 점수를 줬다. 따라서 10월이나 11월쯤 다자회의 등을 계기로 약식 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도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도 23일 “그동안 밝혀 온 바와 같이 정상회담 개최에 열린 입장”이라며 “그런 만큼 성공적인 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도록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일 정상의 교차 참석은 양국 관계 개선의 반전 재료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이 같은 상황은 미국과 일본이 지난 4월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구조적인 국제 정세 변화도 배경이 됐다”고 진단했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역시 “양국 정상의 행사 참석을 계기로 대립에서 대화로 방향 전환을 이뤘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평가했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오는 8월 아베 담화가 나오기 전까지 양국이 위기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은 “이달부터 다음달까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전체적인 로드맵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지켜봐야 한다는 조심스러운 입장도 있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구체적 이슈에서 새로운 합의, 협력을 이끌어 나갈지는 아직 진단하기 어렵고 여전히 앙금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상의 교차 참석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안보협력 등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박 교수는 “아베 총리가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한 것을 봤을 때 이 문제가 우선적으로 거론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 근대시설의 유네스코 유산 등재를 둘러싸고 양국이 타협점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조 교수는 “자존심 싸움을 하다 보니 크게 문제가 확대됐고 이번 계기를 통해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은 것 같다”며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협의를 하는 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관련, 한·일 양국은 이날 도쿄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문제를 놓고 추가 협의를 했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 역시 시간이 문제라는 평가였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산 수산물 문제의 타협점을 찾을 수 있지만 방사능 문제라는 민감한 국내 정치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음달로 예정된 방위백서나 8월 아베 담화에서 우리 입장에 맞는 것이 나오지 않을 경우 양국 관계의 해빙 무드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새로운 50년을 열자- 수교 협상 주역에게 듣는다] “일제 36년, 우호 50년… 양국관계 하루 아침에 개선될 수 있어”

    [새로운 50년을 열자- 수교 협상 주역에게 듣는다] “일제 36년, 우호 50년… 양국관계 하루 아침에 개선될 수 있어”

    오재희(83) 전 주일대사는 23일 “한·일 관계가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하지만 양국 관계는 하루아침에 개선되거나 국면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면서 “양국 관계는 대화를 통해 조정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당시인 1965년 4월까지 외무부 조약과장을 지낸 뒤 제7차 수교협상에도 참여한 오 전 대사는 지난 1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중국침략이나 태평양전쟁 당사자인 중국, 미국보다 우리가 더 흥분해 일본을 감정적으로 비판하는 데 앞장설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분으로 소회는. -당시 나는 33살이었다. 1965년 교섭하면서 몇 살까지 살까 생각은 안 했지만 협정이 50주년을 맞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흔한 얘기로 감개무량하다. 일제 식민통치 기간이 36년인데 길다면 긴 세월인데 한·일 양국의 국교정상화는 일제 36년보다 더 좋은 관계로 50년간 유지했다. 어찌 보면 그것도 하나의 역사 아니겠나. →협상 당시 가장 힘들었던 것은. -7차 수교협상만 놓고 보면 역시 대한제국과 일본 간의 모든 조약이 당초부터 무효라는 내용을 담은 한·일관계 기본조약 2조와 3조에 대한 협상이 가장 어려웠다. 정부는 식민지 통치뿐만 아니라 대한제국이 체결한 조약도 모두 무효라는 입장을 보인 반면 일본은 식민통치에 대해 국제적으로 승인도 받고 인정을 받았다며 유효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국과 일본이 식민지 통치에 대한 역사인식의 괴리를 좁히는 것이 몹시 힘들었다. →한·일 수교를 이끌어낸 사람 중 한 명으로 최근 한·일 관계를 바라보면. -언론에서는 역대 최악이다, 비정상이라는 말을 쓰는 데 조금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사실은 한·일 관계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외교현안을 다루는 양국 정부의 교섭 스타일로 인해 마치 관계가 굉장히 나쁜 것처럼 인상을 주는 것 같다. 양국 관계는 하루아침에 개선되거나 국면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한·일 양국을 둘러싸고 주변 정세가 변하는 것은 사실이고 이에 적응하거나 대응하는 방법이 조금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근본적 문제가 아니고 대화를 통해 조정해 나가면 되는 문제다. →일부에서는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위안부 문제 등을 간과해 불완전한 조약이라고 지적한다. -보기에 따라 그렇게 주장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옳지 않다. 원폭피해자, 사할린, 위안부 문제 등은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 당시 논의되지 않았다. 문제 자체가 그 당시에 없었던 것은 아닌데 논의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원폭피해자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처음 불거진 것은 1968년이었다. 일본 국내에서조차 원호대책이 전혀 없었다. 위안부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신대 여성 중에 일부가 일본군의 성 노예로 고통받았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실태를 알 수 없었다. 그러니 회담교섭과정에서도 제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침 최근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이 국장급 협의를 진행하는데. -이 문제가 쉬운 문제라면 벌써 해결됐겠지. 위안부 문제는 1991년부터 표면화됐다. 양국 간 외교현안이 된 것은 1992년 1월부터다. 이후 고노담화가 나오게 됐다. 최근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다시 거론하게 된 것과 관련해 그동안에는 왜 이 문제를 국민에게 거론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 없이 애매하게 넘어갔다. 일본 정부와 국민에게도 적어도 왜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게 됐는지 알기 쉽게 얘기해서 우리 정부 조치의 정당성을 양국 국민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고 본다. 일본으로부터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왜 새삼스럽게 다시 재론하는지, 뭐가 문제인지에 대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일본은 자꾸 한국이 국교정상화와는 달리 다른 기준을 들이댄다고 불만이다. -입장이 바뀌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 이 문제는 양국 정부의 공동 책임이라고 본다. 고노담화 이후 위안부 할머니들 대다수가 아시아여성기금 수령을 거부하는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양국 정부는 이를 가볍게 여기고 그냥 간과했다. 방치한 것은 잘못이다. 정대협이 이 문제를 국제문제화했는데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이 문제를 거론해서 주의를 환기하고 일본 역시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일본으로서는 불만이겠지만 일본도 사태가 진전되도록 관심을 갖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한·일 국교정상화로 그럼 과거사 문제를 깨끗이 정리한 것인가. -과거사를 식민 통치로 봤을 때 한·일 기본관계 조약 2조에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의 체결한 조약이 무효라는 점을 언급한 것은 결과적으로 일본 정부나 국민에게 과거 식민 통치의 불법성 문제가 상당히 한국 국민에게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간 나오토 담화 등은 우리 정부가 요청한 것이 아니고 일본 스스로 판단해서 한 것이다. 일본의 과거사 정리에 대해 100% 만족하진 않지만 역사인식에 있어서 일본 역시 많은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평가해야 한다. →아베 신조 총리 집권 후 일본의 과거사 부정 움직임이 있는데. -일본 정부의 행동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거기에 맞는 우리의 반응, 대응을 하는 게 좋겠다고 본다. 그냥 아베 총리가 과거사를 번복한다 이런 식으로 말할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를 들어 우리와 관계없는 과거사가 있다. 중국 침략이나 태평양전쟁의 당사자는 중국과 미국이다. 일본이 난징 대학살을 부인하는 것에 대해 중국이 반발하는 것은 이해하는데 우리가 중국보다 강도나 빈도를 높여서 일본을 비판하는 챔피언이 될 필요는 없지 않나. 도쿄 전범 재판을 리뷰한다고 하는데 당사자인 미국보다 더 비판할 필요가 없다. 정부를 포함해 과거사 문제만 나오면 감정이 폭발해서 다른 문제까지 영향을 줘서 교류가 올스톱 되는 것은 옳은 반응이 아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이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눈물을 멈추게 하라”

    “이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눈물을 멈추게 하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23일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피해자 국제소송 및 한·일 수교 50년에 대한 피해자 입장’을 발표했다. 할머니들은 이날 오전 11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이제는 말 보다 행동이 필요한 때이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는 현재와 미래의 문제”라며 일왕(日王)의 사죄와 일본의 배상을 촉구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朴 “한·일 과거사 짐 내려놓고 새 시대로” 아베 “다음 반세기 향해 관계 개선하자”

    朴 “한·일 과거사 짐 내려놓고 새 시대로” 아베 “다음 반세기 향해 관계 개선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인 올해를 한·일 양국이 새로운 협력과 번영의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전환점으로 만들어야 하며, 이는 후세에 대한 우리의 책무”라면서 “이를 위해선 가장 큰 장애요소인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화해와 상생의 마음으로 내려놓을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주한 일본대사관 주최로 서울에서 개최된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 이같이 밝히고 “국교 정상화 50주년인 올해는 두 나라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역사적 기회로, 양국이 그런 실천을 할 때 올해는 한·일 양국이 새로운 길을 함께 열어나가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도쿄에서 주일 한국대사관 주최로 열린 기념 리셉션에서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역시 주일 한국대사관 주최로 열린 리셉션에 참석해 “양국이 지역과 국제 공헌을 해 나가는 게 양국의 새로운 미래를 구축하는 길로 이어진다고 확신한다. 지난 50년간의 우호의 역사를 보고 앞으로 50년을 내다보며 양국 간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자”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도쿄 지요다구의 총리관저에서 예방차 방문한 윤 장관에게 이날이 한·일 수교를 위한 기본조약 체결 50주년인 사실을 언급하며 “반 세기 전 오늘 일·한 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양국 사이에 여러 과제와 문제가 있을수록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한·일) 양국 국민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박 대통령과 함께 다음 반 세기를 향해 관계를 개선, 발전시키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박 대통령은 앞서 이날 오후 아베 총리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을 접견하고 “이번 8·15에 양국이 화해와 협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아베 총리가 1965년 이후 일본 역대 내각이 견지해 온 인식을 확실히 계승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누카가 회장은 “아베 총리가 ‘역사 문제와 관련,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도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 아프다’는 생각을 표명하고 있다”고 전하고 “현재 진행 중인 양국 간 국장급 협의를 통해 진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치권 차원에서도 노력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서울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한일 수교 50년] 여야 “과거사 사과 전제 한·일 긴밀한 협력해야”

    여야는 22일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일본 측의 진정한 사과를 전제로 한 긴밀한 협력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특히 오는 8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차대전 종전 70주년 담화 발표 자리에서 과거사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與 “한·일관계 새 돌파구 찾는 계기”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교차 참석하는 일이)경색됐던 한·일 관계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양국이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동반자로서 경제·안보·문화·과학 등의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을 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인 나경원 의원도 YTN 라디오에 출연해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리더 국가의 역할을 하려고 하는데, 독일처럼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하는 것이 맞지 않나”라고 밝혔다. 외통위원인 정병국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 “위안부 할머니들의 억울함과 여러 가지 피해에 대한 일본 측의 진정한 사과가 가장 중요하다”며 오는 8월 예정된 ‘아베 담화’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 의원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금전적 보상보다는 일본이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野 “위안부 문제 등 확실히 매듭 지어야”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담화문에 단순히 ‘반성’만 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아베 총리에게 경고한다”면서 “한·일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과거사 문제와 역사왜곡,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분명한 매듭을 짓고 그 토대 위에서 양국 관계가 진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통위원인 최재천 의원은 이날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 토론회를 열고 “한·일 국교 정상화가 된 지 50년이 흘러 한·일 양국 관계가 이제는 ‘경쟁과 협력’의 관계로 변화했지만, 역사적 질곡이 깊었던 만큼 여전히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며 “지난 50년간 한·일 관계를 되돌아보고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 봐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아베, 위안부 책임 적극 부인” 알렉시스 더든 美교수 비판

    “아베, 위안부 책임 적극 부인” 알렉시스 더든 美교수 비판

    22일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동북아역사재단에서 ‘한일협정 50년의 성찰과 평화공동체의 모색’을 주제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독일,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등 여러 나라의 정치학자, 사학자, 국제법학자들은 일제의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 문제를 제기하며 한일협정 체결은 마무리가 아니라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었음을 지적했다. 특히 위안부 문제 및 재일한인(조선인) 문제가 갖고 있는 현재적 의미 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역사 인식을 비판하는 세계 역사학자들의 공동성명을 주도한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네티컷대 교수는 “아베 총리는 1기 집권 기간에 ‘좁은 의미’에서 강제 동원은 없었다는 악명 높은 주장을 했고, 2기인 현재에는 ‘인신매매’라는 주장을 했다”며 “누가 인신매매를 저질렀느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음으로써 일본의 국가책임을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역사적 이슈는 지금까지 글로벌 차원에서 문제가 돼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고 갈등을 빚는 역사 관계와 이것의 화해 문제 역시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히구치 나오토 일본 도쿠시마대 교수는 최근 일본 내에서 활발해지는 ‘배외주의’에 대해 “재일한인을 집중적으로 표적으로 삼는 이유는 일본의 식민지 역사를 부정하려는 욕망이 드러난 탓”이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베르너 페니히 독일 베를린자유대 명예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의 전후 배상 및 책임에 대한 차이를 비교했다. 국가지도자가 자살한 독일과 지위를 유지한 일본의 비교에서 시작해 영토권 주장 여부, 물의를 일으키는 지도자의 행위 여부, 과거 기장 및 상징 사용 여부에서 엇갈림을 보여 줬다. 그는 “독일이 유럽에서 그러했듯 한·일의 갈등 역시 동북아시아 지역의 상호 긍정적 의존성을 확대하며 평화공동체를 지향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한일 수교 50년] 과거사 치유로 미래 가자는 朴… 한·미·일 안보 외친 아베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2일 서울과 도쿄에서 진행된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리셉션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공통의 인식을 보였다. 그렇지만 미세한 차이도 있었다. 박 대통령이 과거사 치유를 통해 미래로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반면 아베 총리는 한·미·일 3국 협력을 강조해 한·일 관계 개선을 둘러싼 인식의 간극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축사에서 “국교정상화 이후 50년간 두 나라는 정치, 안보, 경제, 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를 통해 관계를 증진했다”고 평가했다. 아베 총리 역시 “일본에 있어서 한국이, 한국에 있어서 일본이 가장 중요한 이웃 국가로 양국은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양 정상은 강조점에서는 약간의 차이를 드러냈다. 박 대통령이 과거사 문제의 해결을 은연중 강조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올해가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는 역사적 기회”라고 강조하면서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평소 고령으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강조한 점을 감안하면 올해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라는 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즉 한·일 관계가 악화된 원인이 과거사를 둘러싼 문제인 만큼 일본이 좀더 책임 있는 자세로 이를 풀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또 신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자성어 ‘무신불립’(無信不立)을 언급해 양국 관계가 더이상 임기 초 개선→임기 말 악화와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반면 아베 총리는 중국의 부상에 따른 한·미·일 공조에 방점을 찍었다. 아베 총리는 행사장에 참석한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를 소개하며 “일·한 관계의 발전은 숱한 장애를 극복해 가면서 구축된 것으로 한·일 양국이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특히 “일·한 양국의 협력 강화와 일·미·한 3국의 협력 강화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더없이 소중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한·일 관계가 비록 좋지 않지만 중국의 부상에 맞서 한·미·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맞서 안보 협력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더이상 과거사를 빌미로 안보 협력을 미뤄서는 곤란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시론] 전후세대 일본인의 국가 인식과 한·일관계/김용덕 서울대 명예교수·동북아역사재단 초대 이사장

    [시론] 전후세대 일본인의 국가 인식과 한·일관계/김용덕 서울대 명예교수·동북아역사재단 초대 이사장

    1995년 일본 도쿄에서 ‘해방 50년, 패전 50년: 화해와 미래를 위하여’를 주제로 일본과 한국의 지식인들이 학술회의를 하던 때 일이다. 회의장 밖에서는 극우파들의 시위가 있었지만 회의장 안의 분위기는 한·일 관계의 앞날에 대해 희망적이고 건설적이었다. 당시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자기는 1945년 이후 출생자라고 하며 다음과 같이 물었다. “왜 한국은 일본에 대해 끊임없이 사죄를 요구하는가? 전후(戰後) 세대에게 전전(戰前)세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아닌가?” 나는 답했다. “사죄란 말로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사죄에 따른 합당한 행동이 따라야 진정한 사죄다. 과연 일본은 한국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들을 사죄 후에 하고 있다고 보는가. 그리고 전후 출생한 일본인은 일본국(日本國)이라는 역사적 실체의 연속선상에 있는 일본 국민이 아닌가.” 2013년 말 통계로만 봐도 전후 태어난 일본 국민은 전체 인구의 80.5%인 1억명을 넘는다. 이들 중 상당한 숫자가 질문자처럼 생각한다면 과거사에 대한 건전한 인식과 앞으로의 진정한 한·일 관계 수립은 힘들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리기 어렵다. 단순하고 피상적인 형식 논리나 증거로는 역사의 진실과 깊은 의미를 인식할 수 없다. 한 국가는 시대가 변한다고 그 역사적 연속성이 단절될 수는 없다. 역사적 실체로서의 국가는 그 국가가 안고 있는 모든 역사의 집합체다. 특정한 시점에 태어난 존재라고 해도 연속적인 역사적 실체의 한 부분인 만큼 자기가 속한 국가의 역사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독일은 1945년을 경계로 정부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 나치의 만행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고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독일이라는 역사적 실체로서의 국가에 대한 책임 때문이 아니겠는가. 나치의 전시 체제에서도 ‘성노동자’로 끌려온 여성들의 집단수용소가 있었다. 독일 정부는 라벤스브뤼크에 있는 수용소 등 여러 곳을 공개하고 학생들에게는 평화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기억 책임 미래(EVZ) 재단을 만들어 각국의 나치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 보상, 피해자를 위한 기념사업 등을 대규모로 벌이고 있다. 독일인의 올바른 국가 인식이 어두운 과거를 들춰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라 하겠다. 설령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이라도 이전 정권이 했던 국제적 약속을 지키기로 선언해야만 국제적으로 그 정권의 정당성이 인정받는 법이다. 현재 일본은 고노, 무라야마 담화의 후속 조처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부분적으로 그 담화의 내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미도 보인다. 이보다도 “이웃 아시아 국가와의 사이에서 발생한 근현대의 역사 사상(事象)을 다룰 때에는 국제 이해와 국제 협조라는 견지에서 필요한 배려를 해야 한다”고 스스로 명시한 1982년 이른바 근린제국조항(近隣諸國條項)은 어떠한가. 일본은 이 약속의 엄중함을 알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무시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국제적 약속을 지키는 정권이라야 국가의 신뢰를 불러올 수 있지 않겠는가. 불행한 과거를 딛고 건전한 미래를 구축하는 길은 진실의 규명과 확인 그리고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용서와 화해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뢰와 행동을 담보로 한 굳은 의지를 서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일본의 정권과 국민의 국가 인식이 보편적 역사 의식을 바탕으로 할 때 가능할 것이다. 단순히 현재의 이해관계에 빠져 덮고 갈 일이 아니다. 물론 현실에서 닥친 문제는 그 나름대로 대처하고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한 과거사’를 ‘특수한 두 나라 간’의 문제로 보는 것은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감성적 대응이나 정치공학적 접근을 넘어 세계사적 보편성의 차원에서 제국주의 침략과 군 위안부 문제를 다뤄야 한다. 보편성의 논리를 세울 때 일본 국민뿐 아니라 국제적인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될 수 있다. 우리가 양국 간 역사 문제를 특수한 한·일 관계로 한정해 감성적으로 압박하려 할 때 일본인에게는 한국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 갈 수 있고, 건전한 국가 인식의 길을 넓히지 못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한일 수교 50년] 주일 한국대사관에선… 日 전직 총리 3명 등 정·관계 인사 총출동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22일 주일 한국대사관 주최로 도쿄 셰러턴미야코호텔에서 열린 기념식에는 일본의 정·관계 요인들이 총출동해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일본 측의 큰 기대를 표시했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해 모리 요시로, 후쿠다 야스오, 하토야마 유키오 등 3명의 전직 총리가 모여 수교를 축하하는 드문 모습도 연출됐다.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나카타니 겐 방위상, 오타 아키히로 국토교통상 등 주요 각료들도 거의 나왔다. 이부키 분메이 중의원 의장과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발표한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 등 전·현직 국회의장과 아베 총리의 ‘외교책사’인 야치 쇼타로 국가안보국장도 자리하는 등 활기 넘치는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 제1야당인 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 대표, 시이 가즈오 공산당 대표, 요시다 다다토모 사민당 당수 등 여야 대표와 마스조에 요이치 도쿄 도지사 등 지자체장들도 참석했다. 외교 사절 중에서는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가 참석해 한·일 화해에 대한 미국 측의 관심을 보여 줬다. 중의원 결산위 도중에 참석한 아베 총리는 “야당의 양해를 얻어 참석했다”며 “일·한 관계의 중요성에 관해 여당도 야당도 같은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총리는 케네디 주일 미대사의 참석을 거론하면서 한·미·일 세 나라의 협력 강화가 아·태지역 평화와 안정에 더없이 소중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건배사에서 모리 전 총리는 “맥주가 참 맛있어 보인다”며 “이 술 한잔으로 여러분의 노고를 한번에 날렸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분위기를 돋우기도 했다. 모리 전 총리는 양국 정상의 기념식 교차 참석을 거론하면서 “여기 있는 모두의 바람이었을 것이고 그것이 실현된 것도 여러분의 힘”이라며 ‘행복한 날’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우익 인사들이 차량에 확성기를 싣고 와서 행사장 주변에서 “‘다케시마’(독도) 반환 없는 일·한 관계 없다”는 구호를 외치는 등 우익세력이 득세하는 변화된 일본 국내 분위기를 보여 주기도 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대만, 연내 위안부 박물관 첫 개장

    2차대전 때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갔던 여성들을 기리는 ‘위안부 박물관’이 대만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다. 21일(현지시간) 미국 내 아시아 전문가인 데니스 핼핀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방문연구원과 대만 언론 등에 따르면 대만 여성인권단체들의 노력으로 수도 타이베이에서 오는 12월 10일 위안부 박물관이 개장한다. 박물관 개설을 주도한 여성인권단체 ‘타이베이여성구조재단’ 관계자는 “박물관의 주제는 평화와 여성의 권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재단 측은 위안부 박물관의 공식 개장에 앞서 8월 14일 박물관 명판을 공개하는 기념식을 개최한다. 이날은 한국과 중국, 인도네시아, 대만, 필리핀 등의 시민단체들이 ‘위안부의 날’로 지정한 기념일이다. 재단 측은 또 위안부의 치유와 극복 과정을 담은 76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도 지역별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360㎡ 규모의 박물관은 대만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자료를 비롯해 지난 20여년간 재단 측과 위안부들이 주고받은 연대기 등을 전시할 예정이다. 재단 측은 그동안 위안부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치유를 도왔다. 재단 측은 또 박물관에서 위안부 관련 전시와 함께 인권 교육, 성적 학대 등의 주제에 대한 워크숍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재단 측에 따르면 2000명이 넘는 대만 여성이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으며 중국과 한국 등으로부터 끌려간 전체 위안부 규모는 20만~30만명 규모인 것으로 파악됐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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