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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 대통령-아베 “대북 원유공급 중단 위해 중·러 설득…더 강한 압박”

    문 대통령-아베 “대북 원유공급 중단 위해 중·러 설득…더 강한 압박”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7일 지금보다 더 강한 대북 제재안이 담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추진하는 데 공조하기로 했다.제3회 동방경제포럼 참석차 러시아를 방문 중인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서 정상회담을 한 자리에서 이같이 의견을 모으고, 원유공급 중단을 위해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에 동참하도록 최대한 설득해 나가기로 했다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양국 정상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압력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지금은 대화보다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을 더 강화해 나간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더 악화돼 통제불능 상황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며 “북한 도발로 한·일 양국 국민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양국이 국제사회와 협조하면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반드시 포기하도록 최대한 압박을 가하는 한편, 궁극적으로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한국과 일본은 북한이 추가 도발할 경우 더 강력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채택하기로 합의했었다”며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해나가자”고 강조했다. 이날 회담에서는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자 문제 등 역사문제가 거론됐으나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해 이를 관리해나가자는 뜻을 모았다고 윤 수석이 전했다. 윤 수석은 “한·일 양국 관계가 과거사 문제로 인해 발목 잡히지 않도록 보다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현안을 관리하고 또 안정적으로 이슈를 끌고 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은 이와 함께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위급 교류를 재개하고 인적 교류와 실질 협력을 가속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도래와 4차산업 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양국이 긴밀하게 경험을 공유하면서 협력을 가속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현재 자신이 추진 중인 한·중·일 정상회의가 도쿄에서 열릴 때 문 대통령이 참석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그 이전에라도 문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면 환영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리면 기꺼이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내년 평창동계올림픽 때 아베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것은 취임 이후 두번째로, 이날 회담은 오전 8시 30분쯤부터 50분간 진행됐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제정… ‘분단문학의 큰 별’ 빛낸다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제정… ‘분단문학의 큰 별’ 빛낸다

    남북 문제 천착한 수십 편 창작재일작가 김석범 초대 수상자에특별상엔 김숨… 17일 시상식 ‘분단문학의 큰 별’로 평가받는 이호철 작가를 기리는 문학상이 처음 제정됐다. 서울 은평구는 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1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제정’을 선포했다. 초대 수상 작가로는 소설 ‘화산도’의 김석범 작가를 선정했다.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은 분단 현실을 비롯해 민족, 사회 갈등에 관한 집필 활동을 하다 지난해 9월 타계한 이호철 작가의 정신을 되짚고 그 뜻을 기리고자 마련됐다.고인은 1932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1950년 한국전쟁에 인민군으로 동원돼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뒤 이듬해 1·4후퇴 때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다. 1955년 ‘문학예술’에 단편소설 ‘탈향’을 발표하며 등단한 이후 60여년간 장편소설 ‘소시민’, ‘서울은 만원이다’, ‘남풍북풍’ 등 수십 편의 작품을 통해 전쟁과 남북 분단 문제에 천착해 왔다. 남과 북의 분단을 잇는 통일의 길목 은평구에서 50년 이상 거주하며 마지막까지 펜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김우영 은평구청장은 이날 이 작가가 국립한국문학관의 은평구 유치를 위해 유치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던 일을 소개하며 “이 작가는 국립한국문학관에서 마지막 작품을 쓰고 싶다. 마지막엔 ‘귀향’을 쓰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고 밝혔다. 이어 “이 작가가 말한 귀향은 단순히 고향에 돌아가는 게 아니라 우리 현대사를 관통하는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치유하자는 문학정신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염무웅(문학평론가)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심사위원장은 “통일을, 분단 극복을 주제로 한 상이 아직 없었다는 게 의아스럽다. 그래서 이 상의 제정이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은평구는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기 위해 자문위원회 및 운영위원회, 추천선고위원회 및 심사위원회 등을 운영했다. 초대 수상 작가로 선정된 김 작가는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한 재일조선인으로 1957년 4·3사태를 다룬 최초의 소설 ‘까마귀의 죽음’을 발표해 전 세계에 제주 4·3사건의 진상을 알렸다. 1976년에는 제주 4·3사건을 주제로 한 대하소설 ‘화산도’를 일본 문예 춘추사 ‘문학계’에 연재했다.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특별상은 소설가 김숨 작가가 수상했다. 그는 1997년 ‘느림에 대하여’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투견’, ‘국수’ 등의 소설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와 연민, 사랑이라는 주제의식을 형상화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삶을 그린 장편 ‘한 명’을 펴내 반향을 일으켰다.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시상식은 통일의 염원을 담아 경기 파주 DMZ에서 오는 17일 열린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성동 일자리 증가율 4% 신화… 비법은 ‘사회적경제 육성’

    [자치단체장 25시] 성동 일자리 증가율 4% 신화… 비법은 ‘사회적경제 육성’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경제가 화두다. 연일 청년 실업, 경력단절 여성·노인 일자리 문제가 회자되며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사회적경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급부상하고 있다. 기계화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건 사회적경제밖에 없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면서다.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곳이 있다. 서울 성동구다. 성동구는 고용노동부 주최 ‘전국 지방자치단체 일자리 대상’에서 2015~2017년 3년 연속 수상했다. 지역 내엔 마리몬드, 두손컴퍼니, 소녀방앗간 등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활성화돼 지역 경제를 이끌고 있다. 비결이 궁금했다. 5일 정원오(49) 성동구청장을 구청에서 만나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정 구청장의 답변은 막힘이 없었다.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열변을 토해 냈다. 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하면서 관련 정책 추진을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다.→요즘 성동구 지역 경제가 활성화됐다는 여론이 높다. 2014년 7월 구청장 취임 이후 작심하고 일자리를 창출한 것 같은데. -구청장 선거 당시 1번 공약이 일자리 2만개 창출이었다. 일자리 창출과 기업 유치를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세수 환원을 통해 주민 복지를 증진하는 선순환을 구축하고 싶었다. 취임 이후 3년 만에 목표 달성을 넘어 2만 2000개를 만들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일자리 증가 비율이 4%를 넘었다. 서울시 자치구 중에선 압도적으로 1위를 했고, 전국에서도 2위를 했다. 서울에서 일자리 창출 수로 전국 2위를 한다는 건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서울은 공단 같은 걸 들여올 수 없어 창업도 많이 해야 하고 기업도 많이 생겨야 일자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4%가 대단한 건가. -근로자 수가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보여 주는 통계인데, 4%는 엄청난 수치다. 국가 전체 평균이 고작 1%다. 나머지 그룹들과 차이가 많이 난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곳도 많다. 내년 임기 말까지 양질의 일자리 3만개를 만들려 한다. →어떤 식으로 일자리를 새로 만들었나. -지역경제혁신센터, 사회적경제센터 등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각 컨트롤타워에서 분야별로 계획성 있게 체계적으로 일자리를 늘려 왔다. 전통산업 분야에선 수제화를 집중 육성해 고사 직전의 수제화를 살려 놨다. 봉제 쪽도 한양여대와 협력, 경력단절 여성들을 교육해 취직하거나 창업할 수 있게 했다. 정보기술(IT) 분야는 고학력 여성들을 코딩 전문가로 양성, 창업으로 이어지게 했다. 내년 초등학교에서 코딩 교육이 의무화되면 이들은 학교 현장에도 진출하게 된다. 소셜벤쳐도 언더스탠드애비뉴에 공간을 마련, 청년들이 만든 제품을 전시·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중견기업들도 성수동으로 이전하고 있다. 기업 유치는 쉽지 않았을 텐데. -용적률 인센티브와 재산세나 취등록세 50% 감면 같은 세제 혜택을 파격적으로 제안했다. 기업이 이전하려면 행정적으로도 복잡한데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서비스 질도 높였다. 성동구에서 굉장히 많은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 기업들이 많이 이전해 오고 있다. →어르신 일자리를 매년 100개씩 만들겠다고 했다. -일본에서 조사했는데 10년 전 60세와 지금의 75세 체력이 똑같다고 한다. 70세까진 예전 55세처럼 건강한데, 이분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복지 대상으로 볼 것인지, 생산 주체로 볼 것인지 굉장히 중요하다. 복지 대상이 아닌 생산 주체로 보고, 이분들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는 ‘미래일자리주식회사’를 2년 연구 끝에 설립했다. 현재 커피숍과 식품판매 업종에 50명이 일하고 있는데, 올해 안에 100명까지 채용할 계획이다. 해마다 100명씩 더 늘려 나가려 하고, 건물 시설이나 보도·이면도로 관리까지 확대하려 한다. 미래일자리주식회사가 성공하면 모범 사례가 돼 전국으로 확대돼 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60대에 대한 평가도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일자리 창출의 핵심은 뭔가. -일자리는 어느 한 분야만 잘해선 늘어날 수 없다. 청년, 여성, 어르신 중에서도 고졸, 대졸 등 연령별·세대별·대상별 맞춤형으로 접근해야 전 분야에서 고르게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앞으론 어떤 분야에서 일자리를 더 만들려 하나. -4차 산업혁명 시대 맞춤형 일자리 창출을 선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코딩이 핵심이다. 프랑스는 코딩만 가르치는 대학을 만들었다. 우리 구도 성수동 부영장기 안심상가 건물 2개 층에 청년창업코딩캠퍼스를 만들려 한다. 국·시비를 지원받기 위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의 말처럼 안정적인 일자리는 사회적경제밖에 없다. 미국·일본 퇴직자들이 대거 재취업하는 NPO나 제3섹터도 다 같은 개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 기계화·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무리 기계화가 진전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기반을 둔 사회적경제는 침범할 수 없다. 사회적경제만이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다. →성동구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 ‘마리몬드’, 노숙인들을 채용해 물류 대행을 하는 ‘두손컴퍼니’, 시골 농민들을 돕는 ‘소녀방앗간’ 등 사회적경제 기업이 많다. 어떤 철학으로 사회적경제 기업을 활성화했나. -사회적경제는 사회적 가치 실현과 이윤 추구를 동시에 한다. 사회적경제 기업은 이윤을 회사 경영에 필요한 부분을 제하고 모두 재투자나 사회에 환원한다. 문제는 사회적 가치 실현에만 매달려 힘들게 산다는 이미지로 비춰지면 안 된다는 점이다. 사회적 가치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향상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도 확보돼야 한다. 트럭 덮개 천 같은 산업 폐기물을 가방으로 탈바꿈시킨 스위스의 ‘프라이타크’ 같은 성공하는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나와야 한다. 사회적경제 기업을 하면 자신의 꿈도 실현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는 걸 보여 줘야 한다. →사회적경제 기업이 많으면 좋은 점은. -사회적 약자를 도와 이들이 평균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한다면 정부의 복지비용이 줄어든다. 사회적 가치는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사람과 사람 간 신뢰가 핵심이다. 신뢰가 형성되면 경제 효과도 크고 믿을 수 있는 사회·공동체도 이룰 수 있다. →사회적경제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뭔가. -‘사회적가치기본법’이 제정돼야 한다. 공공기관 발주 사업에 참가하는 기업은 노동·환경·복지·윤리적 생산 등 사회적 가치를 얼마나 실현하는지를 중요하게 평가하겠다는 내용의 법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4년 국회의원 시절 발의했지만 임기 내 처리하지 못했다. 이번엔 문 대통령이 정부 입법으로 도입한다고 한다. 이 법이 제정되면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날 거다. 사회 공헌을 하는 기업들이 늘고, 사회적경제 기업도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정부나 사회에 할 말은 없나. -미국이나 중국, 유럽은 세 번 정도 실패를 용인한다. 실패를 귀한 자산으로 여기고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 번 실패하면 끝이다.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히면 아무것도 못한다. 한 번 실패한 기록 때문에 중소기업 지원 자금도 못 받는다. 정부에서 ‘삼세번 프로젝트’를 논의하고 있다는데, 이게 빨리 도입돼야 한다. 실패 세 번까진 나라에서 사회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청년들이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다. 모럴 해저드를 걱정하는데,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가서야 되겠나. 벤처 붐 때도 모럴 해저드 있었지만 당시 붐 덕에 우리나라 벤처가 세계 톱 반열에 올랐다. 그런 붐이 필요하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위안부 아픔 알리러 왔어요” 시구·시타 나선 할머니들

    “위안부 아픔 알리러 왔어요” 시구·시타 나선 할머니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오른쪽 두 번째) 할머니가 3일 경기 수원시 kt위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kt와 SK의 경기에 앞서 시구를 하고 있다. 시타에는 같은 위안부 피해자인 박옥선 할머니가 함께했다. 경기장 전광판에는 돌아가신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내용의 짧은 동영상이 상영됐으며, 경기 전 애국가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주연배우 박지희씨가 불렀다. kt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위로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서울포토] 시구·시타하는 이옥선·박옥선 할머니

    [서울포토] 시구·시타하는 이옥선·박옥선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가 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kt위즈파크에서 열리는 2017 프로야구 kt 위즈와 SK 와이번스의 경기에 앞서 시구를 하고 있다. 시타는 박옥선 할머니.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병사 월급 모아 나눔의 집에 기부한 아름다운 청년 ...경일대 1학년 권준영 씨, 전역 당일 100만원 전달

    병사 월급 모아 나눔의 집에 기부한 아름다운 청년 ...경일대 1학년 권준영 씨, 전역 당일 100만원 전달

    “입대 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는데 전역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 뵙고 아픈 역사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곳에 찾아와 기부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군 복무 중 받은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기부한 아름다운 청년 이야기가 감동을 주고 있다.주인공은 경북 경산시 경일대 화학공학과를 휴학중인 권준영(사진·22) 씨다. 경북 울진의 한 군부대에서 21개월간 복무한 권 씨는 지난달 31일 전역 당일 대구 집으로 가는 대신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을 찾아와 할머니들을 위해 써 달라며 군 복무 중 모은 100만원을 전달했다. 전역하면 복학 비용과 자기계발을 위해 쓰려고 지난해 5월부터 월급 중 일부를 모아 마련한 150만원 가운데 일부다. 권 씨는 “제대 당일 동료들이 같이 놀자는 유혹을 뿌리치고 고속버스와 시내버스·택시 등을 여러 번 갈아타고 울진에서 나눔의 집까지 오면서 솔직히힘들고 피곤했지만 내가 결심한 일이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며 “앞으로 위안부 문제를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알려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이제 집에 가야지 언니”…‘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귀향아리랑

    “이제 집에 가야지 언니”…‘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귀향아리랑

    다큐멘터리 영화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귀향아리랑 예고편이 공개됐다.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2016년 개봉한 영화 ‘귀향’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나눔의 집’에서 제공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 영상을 더해 만든 작품이다. 공개된 귀향아리랑 예고편은 ‘씻김굿’을 하던 ‘은경’이가 “일어나요. 이제 집에 가야지 언니”라는 말로 ‘정민’을 위로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어 익숙한 아리랑 선율과 함께 ‘순이’ 역을 맡은 배우 박지희가 직접 부른 ‘귀향아리랑’이 흐른다. 들판을 쏘다니며 천진한 모습과 엄마의 무릎을 베고 해맑게 웃는 ‘정민’의 모습은 ‘귀향아리랑’과 어우러져 서글픔을 자아낸다. 특히 말없이 애틋하게 눈인사를 보내는 ‘분숙’과 ‘옥분’ 등 시대에 의해 일본군 ‘위안부’가 되어야만 했던 안타까운 소녀들의 모습이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나비 한 마리가 너른 강과 산을 넘어 수백 마리로 이어지는 장면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넋을 달래고자 한 제작진의 소망을 전한다. 또 피해 생존자 할머니들 모습과 ‘정민’이 환생하는 듯한 장면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문제 해결을 간절히 바라는 제작진의 염원을 느낄 수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오는 9월 14일 개봉된다. 15세 관람가. 96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위안부 피해 두 옥선 할머니 3일 kt 홈서 시구·시타 행사

    위안부 피해 두 옥선 할머니 3일 kt 홈서 시구·시타 행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왼쪽·90)·박옥선(오른쪽·93) 할머니가 프로야구 경기에서 시구와 시타를 맡는다.kt 구단은 오는 3일 경기 수원시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리는 SK와의 KBO리그 홈 경기에서 이런 행사를 갖는다고 31일 밝혔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위로하고 사회적 관심과 지원을 바라면서 준비한 이번 행사는 원래 지난 10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비 때문에 경기와 함께 취소됐다. 당시 이옥선 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 박옥선 할머니가 대신 시구하려 했으나 이 할머니의 몸 상태가 많이 좋아져 함께 그라운드에 서게 됐다. 행사 전 두 할머니는 kt 선수와 야구팬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도 전달한다. kt 구단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지원 단체인 경기 광주 퇴촌면 원당리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관계자, 봉사단체 등 80여명을 이날 야구장으로 초청한다. 할머니들은 경기장 스카이박스에서 야구 관람과 저녁 식사를 한다. 경기 전 애국가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귀향’에 출연한 배우 박지희가 함께 부른다. 나눔의 집에서 제작한 팔찌, 에코백 등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부스도 야구장 옆 위즈가든에 설치해 팬들이 동참하는 기회도 제공한다. kt 선수들은 ‘기억’이라는 글자를 새긴 나눔의 집 특별 제작 목걸이를 착용하고 경기를 치른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또 별세…전국에 35명만 남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또 별세…전국에 35명만 남아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일본군성노예제(위안부) 피해 할머니 한 분이 94세를 일기로 30일 운명했다고 밝혔다.1924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이모 할머니는 고모 댁에 양녀로 입양돼 경북 경주시 안강읍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마을 빨래터에 있다가 일본군에 끌려가 대만 위안소에서 고초를 겪었다. 정확한 시기는 본인도 모른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해방 후 경주로 돌아왔다. 식당 일, 농사일 등을 거들며 생계를 이어오다가 2001년 7월 정부에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로 등록했다. 시민모임은 유족 뜻에 따라 할머니 신상을 공개하지 않고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전국 일본군성노예제 생존자는 35명으로 줄었다. 대구·경북에는 4명이 남아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제 36명 남았다…위안부 피해 하상숙 할머니 별세

    이제 36명 남았다…위안부 피해 하상숙 할머니 별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가 28일 오전 9시 10분쯤 별세했다. 89세. 하 할머니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36명으로 줄었다.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이날 “하 할머니가 노환으로 병원 생활을 하던 중 패혈증으로 유명을 달리했다”고 밝혔다. 하 할머니는 192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1944년 16살 때 공장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일본군 위안부 모집책의 말에 속아 경성(서울), 평양 등을 거쳐 중국 우한 지역으로 끌려갔다. 위안소에서 8개월 가까이 수용생활을 했고, 그 후유증으로 자궁을 들어냈다. 해방 후 일본군에게 수치를 당한 몸으로 고향 사람들을 볼 낯이 없다며 중국에 남았다. 27살 때인 1955년 세 딸을 가진 중국인과 결혼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하 할머니는 남편의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길렀고, 1994년 남편과 사별한 뒤에도 막내딸과 함께 지냈다. 하 할머니는 광복 이후 중국에서 조선 국적으로 남았지만 남북 분단 과정에서 중국 내 조선 국적은 모두 북한 국적으로 분류된 탓에 북한 국적으로 바뀌었다. 1999년 민간단체 도움으로 한국 정부의 국적회복 판정을 받은 뒤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2003년 중국에 머문 지 59년 만에 귀국했다. 하 할머니는 이후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와 일본 규탄 집회 등 위안부 문제 해결 활동에 참여했다.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 증인으로 참석해 위안부 피해를 증언하기도 했다. 2013년 서울에서 열린 ‘제1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기념 국제심포지엄’에서는 “일본인은 ‘그런 일을 한 적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잘못했다는 사과의 말이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잘못했다는 말을 듣기 전에는 못 죽는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고국 땅을 밟은 지 2년여 뒤 하 할머니는 딸들의 권유로 가족이 있는 중국 우한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2월 중국인 이웃과 말다툼을 벌이다 2층 계단에서 밀려 넘어지면서 건강이 악화됐다. 갈비뼈와 골반 등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한국으로 돌아와 병원 생활을 했다. 빈소는 서울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2호실에 차려졌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대학에 ‘평화의 소녀상’ 세워 역사 의식 높일 것”

    “대학에 ‘평화의 소녀상’ 세워 역사 의식 높일 것”

    학생 95% 찬성… 학교 측은 꺼려 5000만원 모금·내년 완공 목표 “취업 탓이죠. 얘기를 해보면 학점에 신경 쓰는 친구들이 많고 역사의식이 떨어져요. 그래서 소녀상을 세우는 겁니다.”국립대 중 처음으로 캠퍼스 안에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추진 중인 충남대 총학생회장 이현상(26·기계설계공학과 4년)씨는 28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고교와 초등학교까지 소녀상을 세우는데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은 정작 건립한 곳이 없다”며 이같이 배경을 설명했다. 이씨는 “사립대인 인제대와 동아대의 경우 동아리 차원에서 소녀상 건립을 추진하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총학생회가 나선 것은 우리 대학이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총학생회 회의를 통해 소녀상 건립을 결정하고 설문조사부터 했다. 지난 1일부터 20일간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1168명 중 95.6%인 1117명이 압도적으로 찬성했다. 이씨는 “전교생이 1만 8000명인데 방학 때라 참여자가 적었지만 주류 의견을 짐작하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찬성 학생들은 대부분 “학내에 소녀상이 있으면 더 많은 학생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답변했다. 반면 반대하는 학생은 일본과의 외교 문제를 우려했다. 이씨는 “당장 우리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규슈대, 오사카대 등 30여개 일본 대학들과 관계가 틀어질까 봐 걱정하는 것 같다”며 “학교 측도 이 부분 때문에 꺼린다. 게다가 국립대 안에 세운다는 걸 부담스러워한다”고 귀띔했다. 반대 학생들은 또 관리 문제를 꼽았다. 이씨는 “소녀상 관리는 교직원 노조에서 도와주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총학생회는 내년 3월 소녀상을 건립할 계획이다. 이씨는 “미래를 지향하며 밝은 표정으로 서 있는 충남대만의 소녀상을 제작하겠다”고 했다. 이미 학내 조소과 교수에게 제작을 의뢰해 디자인 중이다. 이씨는 “동상 제작비 5000만원은 학생, 교수, 교직원, 동문 등 전 구성원을 상대로 모금한다”고 밝혔다. 교직원 노조는 벌써 지원을 약속했다고 한다. 시민 모금에도 나선다. 이씨는 “오는 10월 시내에서 학생들이 플래시몹 등을 벌여 시민들의 관심과 동참을 끌어내겠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 28일 별세…국내 생존자 36명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 28일 별세…국내 생존자 36명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가 28일 별세했다.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하 할머니가 이날 오전 9시 10분쯤 패혈증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정대협에 따르면 하 할머니는 192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공장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1944년 16세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갔다. 해방 이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에 살다가 60년 가까이 지난 2003년에야 처음 귀국했다. 종전 이후 중국에서 ‘조선’ 국적으로 남았으나 분단 과정에서 중국 내 조선 국적이 모두 북한 국적으로 분류되는 바람에 1999년 한국 정부의 국적회복 판정을 받기 전까지 북한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하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 등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 증인으로 참석해 위안부 피해를 증언하기도 했다. 하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국내 생존자는 36명으로 줄었다. 빈소는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역사 왜곡, 개방된 역사관으로 대응해야/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열린세상] 역사 왜곡, 개방된 역사관으로 대응해야/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올해 광복절에도 일제의 만행과 피해의 서러운 역사가 되새겨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역사 문제를 매듭지을 때 한·일 간의 신뢰가 더 깊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뿐 아니라 중국의 역사 왜곡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우리 역사에 대한 왜곡을 하루빨리 바로잡아야겠지만, 피해 의식에 맺힌 민족주의 역사관으로는 어렵다. 일본이 19세기 말 유럽의 근대역사학을 선점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왜곡해 침략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일본이 지금도 여전히 왜곡된 역사관을 고집해 역사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1920년대부터 바로 그 일본 우월적 역사관을 모방한 중화민족사관으로 일본의 만주 역사 왜곡에 대항했다. 그것이 오늘날 중국 영토 내의 역사와 문화는 모두 중국의 것이라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의 기초가 되고, 동북공정의 뿌리가 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는 일본에 의해 왜곡되고 중국에 의해 부정됐다. 한국에서 피해 의식에 기초한 민족주의 역사관이 뿌리내린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일본과 중국은 최근 신민족주의적 행태로 역사 왜곡 논쟁을 악화시키고 있는데, 이는 동북아의 안보협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필자는 얼마 전 동북아역사재단을 방문한 폴란드 역사학자의 “폴란드는 피해자 역사 인식이 없다. 왜냐하면 폴란드인들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도 차르나 스탈린 폭정시대의 똑같은 희생자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듣고 한·일 간 역사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우리가 일본에 역사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일본이 침략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일본에 대해 군대 위안부 문제나 군함도 탄광의 강제노동과 징용자에 대한 반성과 배상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일본인 위안부나 일본인 탄광 노동자에 대한 인권유린, 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겨우 소액을 보상받은 시베리아 억류자나 국채를 상환받지 못한 일본인들의 비슷한 고통도 함께 배려하고 연구한다면 일본 국민도 피해자로서 같은 역사 인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피해 의식에 갇힌 배타적인 민족주의 역사관으로는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 왜곡을 이기지 못한다. “역사는 같은 지역에서 공존해 온 여러 민족 공동의 유산”이라는 생각이 서구 역사학계의 주류다. 2000여년 전의 단군이 ‘우리만의 할아버지’는 아니라는 개방된 역사 인식이 오히려 우리 역사의 무대를 확대하는 길이 아닐까. 광개토대왕의 광대한 영토만이 오늘날 한민족의 위대성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영국, 프랑스, 독일의 조상은 모두 야만족이었지만 지금은 선진국이다. “낙랑이 평양에 있었다면 고조선의 영토가 작았다는 것이 된다”고 낙랑의 위치 문제로 식민사관 논쟁을 하는 것도 실은 일본의 침략사관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반면 역사의 해석을 독점하려는 학문 권력은 과거 조선시대의 사문난적(斯文亂賊)론과 다름없다. 많은 사람의 공통된 기억은 가까운 과거의 사실을 입증한다. 기록은 더 오랜 과거의 사실을 전달해 준다. 과거 사실에 대한 기억과 기록이 융합돼 역사로 계승된다. 그러나 어떤 사실이나 역사 해석에 대한 반론이 허용되지 않거나 믿도록 강요된다면 그것은 신성불가침의 역사 신화로 굳어진다. 그런 신화는 북한, 일본과 중국, 한국에도 있고, 한·일 역사 논쟁에도 존재한다. 역사 신화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역사학도 개방적이고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 개방된 역사관은 역사 사료뿐 아니라 언어학, 인류학, 사회학, 문학 등 인문학을 아우르는 폭넓은 학제 간 연구를 요구한다. 그래야만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라는 말을 들어도 흥분하지 않고 자신 있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역사학은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사회에서 역사가 어떤 의미가 될지에 대해서도 대답해야 한다. 나아가 역사학은 대중에게 좀더 친밀해지고 어린 학생들의 호기심과 꿈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역사학은 인문학의 핵심이고, 역사학자들은 더 넓은 학문적 섭렵이 필요한 것이다. 역사 갈등 문제는 대통령이나 외교관에게 미룰 일이 아니다.
  • ‘기억의 터’ 1주년… 위안부 할머니의 열창

    ‘기억의 터’ 1주년… 위안부 할머니의 열창

    아흔 살의 나이에 늦깎이 가수로 데뷔한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89·가운데) 할머니가 26일 서울 중구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에서 열린 조성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정현백(왼쪽) 여성가족부 장관, 배우 한지민(왼쪽 두 번째) 홍보대사와 함께 ‘고향의 봄’을 부르고 있다. 어릴 적 가수가 꿈이었던 길 할머니는 지난 14일 세계 위안부 피해자의 날 서울 청계광장 무대에 올라 가수로 데뷔했다. 연합뉴스
  • [단독] “여성 경력단절 예방·재교육 종합 지원”

    [단독] “여성 경력단절 예방·재교육 종합 지원”

    “여성 일자리가 4차 산업혁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에 집중되다 보니 대학 전공 선택부터 경력단절에 대한 예방과 이후 재교육까지 종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특히 여성 창업에 대해서는 마땅한 지원 방안이 없어 사회적기업, 대학과 연계하는 등 급변하는 기술의 발전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2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성 일자리와 경력단절여성에 대한 예방대책을 수차례 언급했다. 정 장관은 “육아나 자녀교육 등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이 여전히 많다”며 “여성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지만 경력단절을 막는 예방이 더 절실한 이유”라고 말했다. 여가부의 ‘2016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혼여성 중 경력단절을 경험한 비율은 48.6%다. 특히 앞으로 일자리 증가가 기대되는 전문·과학 기술서비스에 종사하는 여성은 36만 7000명으로 남성의 절반 수준이다. 정 장관은 기술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여성 새로 일하기센터’(새일센터)의 역할 확대를 강조했다. 여가부는 현재 150곳인 새일센터를 올해 말까지 155곳, 내년까지 160곳으로 늘릴 방침이다. 정 장관은 “정보기술(IT), 디자인, 빅데이터 등 고부가가치 직종의 직업훈련 비중을 높이고 창업 매니저 30명을 통한 교육도 새로 진행할 방침”이라면서 “40~50대 여성이 많은 소도시, 20~30대 전문직 여성이 많은 서울 종로구 등 지역별 특성을 감안해 교육 내용을 달리하는 등 질적으로도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여가부는 군·경찰 등 유독 여성 진출이 어려운 공공부문에 대해 여성 비율을 늘리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앞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현재 7% 수준인 여성 장교, 5% 수준인 부사관의 비율을 높이고 경찰대 입학정원의 12%로 제한된 여학생 비율 규정을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앞으로 국방부, 행정안전부 등과 긴밀하게 논의해 다음달쯤이면 추진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돌보미 사업의 강화, 공동육아 나눔터 확산도 강조했다. 맞벌이 부모의 자녀를 집에서 돌봐주는 아이돌봄 서비스는 2012년 4만 3947가구에서 지난해 6만 1221가구로 이용 가구가 급증했다. 그는 “올해 추경예산(11억 3000만원)이 확보돼 저소득층 가정을 대상으로 시간제 돌봄의 정부 지원 시간을 연간 480시간에서 600시간으로 늘렸다”며 “수요가 많아지는 만큼 내년에도 예산을 확보해 저소득층의 본인부담금을 줄이고, 돌보미 급여를 올리는 등 서비스 개선을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가부는 부모들이 함께 아이를 돌보고 육아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공동육아 나눔터 확산과 관련해 다음달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기도시공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그는 “공동육아 나눔터 형태는 단지 내 사람들이 육아에 필요한 노동력을 함께 부담하기 때문에 공간 제공 외에 큰 예산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복수 동영상(리벤지 포르노), 데이트폭력, 스토킹 등 신종 젠더폭력과 관련해서는 “근본적 예방을 위해서는 성평등 의식 확산이 필요하다”며 “성평등 의식 확산 태스크포스(TF), 성평등에 대한 남성의 목소리를 내는 ‘성평등 보이스’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젠더폭력을 시도하는 남성 가운데 일부는 실업 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낙오된 사람들”이라며 “그들에게 말 걸기를 시도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취임 직후 경기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나눔의 집을 방문하는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제대로 챙기겠다는 정 장관의 입장은 확고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는 더이상 한·일 양국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인 문제”라면서 “지금 당장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조사 연구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에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여가부는 내년도 예산을 확보해 위안부 박물관의 구성 및 운영 방안에 대한 연구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는 “무엇보다 흩어진 자료를 모으고, 필요한 자료는 전산화해 청소년을 비롯한 후대까지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료를 어느 정도 모은 이후에는 역사교육에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실제 박물관 외에 온라인상에서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는 사이버 박물관 개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관련한 민간단체 지원 등의 방안도 언급했다.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는 우리나라와 일본을 포함한 9개국 15개 민간단체가 공동으로 신청이 완료된 상황이다. 이어 현재 진행 중인 화해·치유재단의 설립 및 운영 과정에 대한 점검에 대해서는 “다음달쯤 점검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7일 전북 새만금이 제25회 세계잼버리대회 개최지로 선정된 것에 대해 “전북에는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청소년 정책을 담당하는 여가부 입장에서도 이번 대회 유치는 큰 경사”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대표단 자격으로 총회에 참석해 참가국 대표들에게 일일이 유치 홍보책자 등을 나눠 주는 등 다양한 유치 활동을 했다. 장관이 대표단 자격으로 총회 유치 활동을 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대담 전경하 정책뉴스부장 lark3@seoul.co.kr 정리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단독] [한·중 수교 25주년] “25년 전 교섭하자는 말에 심장 쿵쾅…사드 극복 위해 軍 채널과 소통 필요“

    [단독] [한·중 수교 25주년] “25년 전 교섭하자는 말에 심장 쿵쾅…사드 극복 위해 軍 채널과 소통 필요“

    1992년 4월 13일.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이사회(ESCAP) 총회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이상옥 외무부 장관은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첸치천 외교부장을 만났다. ESCAP 총회 전년도 의장국과 그해 의장국 장관 간 자연스러운 협의 자리였다.공식 회담이 끝나자 첸 부장은 느닷없이 예정에 없던 ‘단독 회담’을 하자며 이 장관을 회담장 한쪽으로 이끌고 갔다. 그러고는 꺼낸 말이 “지금부터 본격적인 수교 교섭을 시작하자. 이건 우리 최고지도자(덩샤오핑)와 나 외에 몇 사람밖에 모르는 극비 사항이다”였다. “그 말을 곁에서 듣자마자 심장이 쿵쾅쿵쾅 하고 뛰었습니다. 이건 역사적인 임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25년 전 당시 외교부 아주국장(현 동북아국장)으로 이 장관을 수행했던 김석우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김 원장은 “그때는 이미 동유럽 국가, 소련과도 관계를 수립하고 1991년에는 남북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을 때”라면서 “중국도 이 같은 국제적 흐름을 거역하기는 어렵겠지만 얼마나 빨리 수교 교섭에 응할지는 정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김 원장은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끝나자마자 손으로 직접 전문을 썼다고 한다. 비밀 유지를 위해 대사관 전문 시스템을 쓸 수도 없었다. 출국 전 미리 약속해 뒀던 ‘음어’로 작성된 메시지는 인편을 통해 서울에 있던 노창희 당시 외무부 차관에게 전했고 곧장 청와대로 전달됐다. 그리고 며칠 뒤 당시 미얀마 대사 임무를 마치고 귀국해 대기 중이던 권병현 전 주중 대사가 극비리에 교섭 대표로 임명됐다. 또 동북아2과장이던 신정승 전 주중 대사는 ‘위장 병가’를 내고 바로 서울 동빙고동 안가로 출근했다. 작전명 ‘동해’. 한·중 수교 교섭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김 원장은 “마침 그때는 김학순 여사가 처음으로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공개한 직후라 한·일 관계에 국내의 모든 시선이 쏠려 있었다”면서 “낮에는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를 챙기고 밤에는 안가에 가서 한·중 수교 교섭을 협의하는 생활을 4개월가량 했지만 가족도 이 사실을 몰랐다”고 회상했다. 김 원장은 25년 전 한·중 수교를 “극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국제적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수교 이후 양국 관계의 발전 속도는 당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다”면서 “그 결과 대한민국도 튼튼한 경제 대국이자 아시아의 주요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자리잡았고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군사 대국이 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수교 당시 생각했던 양국 관계 수준은 이미 수교 10년차쯤에 모두 이룬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 원장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던 양국 관계가 최근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갈등을 겪고 있는 데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현재 한·중 갈등의 본질은 ‘전략적 환경 변화에서 나오는 구조적 갈등’이라고 진단했다. 김 원장은 “중국이 사드 때문에 우리나라를 계속 압박하고 있는데 과거 중국의 경제력, 군사력이 크지 않았을 때는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면서 “중국은 언젠가 미국에 대해 주도적 지위를 가지겠다는 생각으로 주변국이 중국의 국익을 해하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당과 정부, 군 중에 특히 군에서 강경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이 문제에 대해 조언하는 것 같다”면서 군 채널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원장은 향후 10년간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위상이 더욱 높아질 개연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25년 뒤까지 계속 안정적 성장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중국은 지금껏 급격히 성장을 하면서 부정부패, 부의 편중, 내부 소요사태, 고령화 문제 등 각종 문제에 직면했다”면서 “옛날식의 일당 체제로 국가를 운영하는 강압적 거버넌스를 통해서 이 같은 ‘중진국 트랩’을 벗어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은 경제력, 군사력 같은 하드 파워와 별개로 인권, 환경, 법치 같은 소프트 파워를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중국이 소프트 파워 강화로 주변국의 존경을 받지 못하면 국제질서를 바꾸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한·중 관계의 미래는 어떨까. 김 원장은 “양국 관계가 상당기간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드 갈등 이후 중국 정부가 아무리 한류제한령 등으로 양국 교류를 억제하더라도 이미 터진 교류의 물꼬를 계속 막아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 원장은 한·중 관계가 한·미 관계를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중국의 힘이 압도적으로 커진다면 미·중 갈등도 커지고 우리도 그 사이에서 더 힘들어지겠지만 중국이 중진국 트랩을 벗어나지 못하면 시간은 꽤 걸릴 것”이라면서 “힘의 문제를 넘어 우리는 통일이 될 때까지는 미국 주도적 질서를 따라가야 한다. 양자택일은 성급한 얘기”라고 지적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오빠들 밀리언셀러 만들자”… 가요계 주무르는 500만 팬덤

    “오빠들 밀리언셀러 만들자”… 가요계 주무르는 500만 팬덤

    경제력 갖춘 3040까지 팬덤 확대… 아이돌 기념일 열차에 ‘래핑’ 광고 1위 달성 위해 ‘음원 재생법’ 안내 이달 초 데뷔한 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앨범은 음원이 공개된 지 1시간 만에 대표곡 ‘에너제틱’과 ‘활활’이 멜론 등 7개 음원차트에서 1, 2위를 점령했다. 교보문고 핫트랙스에서만 하루 동안 2000장이 넘게 팔렸다. 앨범의 초동 판매 실적(최초 1주일간 판매량)은 41만장으로, 아이돌 그룹 ‘엑소’ 정규 4집(60만장)과 3집(52만장)에 이어 세 번째다. 워너원 앨범 한 장의 정가(1만 8500원)로 계산하면 일주일 만에 76억원을 벌어들인 셈이다.아이돌 팬덤의 결집력이 대중음악 시장을 좌지우지한 지는 오래다. 팬덤 문화를 얘기하지 않고 대중문화를 말하기 어려워졌다. 이들은 좋아하는 가수가 순식간에 음원차트를 석권하도록 하고 때때로 기획사에 대항해 보이콧(불매운동) 엄포를 놓는 등 힘을 과시하기도 한다. 침체된 음악시장에 숨통을 터 주는 큰손으로 대접받기도 하지만 일각에서는 음악산업을 왜곡하는 주범으로 눈총을 받기도 한다.아이돌 팬덤의 ‘화력’(영향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음원차트와 음반 판매량에서다. 디지털 음원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음원이 아닌 음반의 판매 실적은 팬덤의 규모나 영향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요즘 대중음악 시장에서 음원차트 상위권에 오르더라도 음반 판매량에서 수십만 장을 기록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앨범 발매 후 1주일간의 실적이 각종 대중가요 시상에서 중요한 요소로 취급되기 때문에 유독 팬들이 공을 들이는 부분이다. 기획사는 이런 팬심을 적극 이용한다. 중국팬까지 합세하면서 앨범을 중국판, 한국판 두 버전으로 내기도 하고 각 멤버의 다양한 사진을 앨범에 넣어 팬들의 수집 욕구를 자극해 매출 극대화를 노린다. ‘좋아하는 오빠들’의 사진을 모두 확보해 ‘전집’을 만들고자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은 예사다. 엑소팬이라는 임모(15)양은 “멤버 10명의 사진을 모으려고 앨범을 10장 다 샀다”며 “한국어와 중국어 버전에 따라 사진이 다르기도 해 국적별로 전집을 사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10~20대에 국한됐던 팬덤 현상은 어느덧 30~40대까지 연령대가 확대되고 있다. 워너원을 만들었던 TV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101 시즌2’의 연령별 시청자를 보면 30대(24%)와 40대(23%)가 절반을 차지했다. 이들은 1990년대 10대를 보내며 H.O.T, 젝스키스, G.O.D 등의 아이돌 그룹에 빠져 산, 아이돌 팬덤 1세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들이 팬덤에 가세했다는 것은 아이돌 음악산업의 규모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10대와 달리 짱짱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구매력 있는 소비층으로 꼽혀서다. 학창 시절 H.O.T 팬클럽으로 활동했던 직장인 강모(35·여)씨는 “어릴 때는 주로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작은 선물을 사 주거나 사인회에 쫓아다니는 게 전부였다면 지금은 해외 콘서트에 따라가는 것은 기본”이라며 “앨범을 수천 장 사서 지인들에게 홍보용으로 뿌리는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팬들이 십시일반 모아 연예인에게 선물하는, 이른바 ‘조공’도 진화 중이다. 제작발표회나 콘서트 때마다 화환과 함께 쌀을 보내 불우 이웃 돕기를 하거나 위안부 할머니를 돕기 위해 소녀상 팔찌를 공동 구매하는 등 기부 형태를 띠기도 한다. 로엔 크리에이티브센터 관계자는 “단순히 팬이 가수에게 선물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수와 팬덤이 함께 사회에 기부한다는 의미로 기업의 사회공헌처럼 한층 업그레이드된 팬덤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스케일도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엑소 멤버 백현의 생일 때 팬들은 열차 전체를 축하 메시지와 사진으로 감싸는 ‘래핑’ 광고를 했다. 이 광고를 하는 데 든 비용은 4400만원. 중국 팬클럽(원윈드)은 같은 그룹 멤버 세훈의 이름으로 스코틀랜드에 있는 땅을 사기도 했다. 1제곱피트(약 0.0281평)밖에 안 되는 작은 땅에 고작 30파운드(약 4만 4000원)를 들였지만 이들이 땅을 산 이유가 재밌다. 현지 환경보호 단체에 땅을 사서 기부하면 명예시민 격으로 귀족 작위 가운데 하나인 ‘로드’가 부여된다. 좋아하는 가수를 귀족으로까지 높이고 싶은 팬심이 만든 이벤트다. 침체된 음반시장에 어느 정도 활력을 준다는 측면에서 팬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나 우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뮤직랭킹 플랫폼 한터차트에 따르면 국내 팬덤 규모는 500만명. 국내 아이돌 그룹을 향한 중국 팬덤의 규모는 무려 1억명가량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좌우하는 음원차트에서 음악 경향이나 흐름을 짚어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중적이지 못한 가수나 밴드들은 설 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음악시장이 아이돌 편향이 되면서 다양성을 추구해야 하는 음악 생태계는 훼손되고 있다. 특히 이기적인 집단 스트리밍(재생) 경쟁은 시장을 왜곡하는 주범이다. 기존 재생목록을 모두 삭제한 뒤 음원 사이트에서 특정 앨범 수록곡을 모두 재생목록에 담고 반복적으로 재생하는 것이다. 팬클럽은 이에 대한 매뉴얼을 공유하면서 음악적 성취와 상관없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를 무조건 1위에 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박은석 음악평론가는 “만약 이곳이 주식시장이라고 한다면 심각한 불공정 행위에 해당하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한 가지 목적으로 모여 대중문화의 새로운 권력으로 군림하고 철저히 상업화된 미디어가 이에 동조하면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정작 음악으로 평가받기 더욱 힘든 구조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이영미의 노래하기 좋은 계절] 8월 한복판에서 - ‘아리랑’, ‘사이판에 가면’

    [이영미의 노래하기 좋은 계절] 8월 한복판에서 - ‘아리랑’, ‘사이판에 가면’

    달력을 넘기다 보면 4~5월과 6~8월의 기념일이 꽤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4~5월에는 4·19로 시작해 메이데이를 거쳐 5·18로 이어져, 주로 대중적인 봉기와 관련된 기념일들이 몰려 있다. 그에 비해 6~8월은 현충일에서 시작해 6·25를 거쳐 제헌절, 광복절로 이어져 국가·정부가 중심이 되는 기념일들이 몰려 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시위·집회는 아무래도 날이 따뜻해지는 4~5월에 제일 활발할 테고 해방·정부수립이 모두 8월 15일이며 김일성이 8·15 5주년에 부산 접수를 목표로 남침했다니 이 시기에 이런 기념일들이 몰려 있게 되었을 게다.이제 열흘 정도 남은 8월의 달력을 보면 일 년 중 큰 흐름 하나가 바뀐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저 바람의 온도가 낮아졌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8월을 보내며 두 노래를 기억하는 것이 조금은 의미 있을 듯싶다. 하나는 ‘아리랑’이다. 전국에 수많은 ‘아리랑’들이 있지만 그냥 ‘아리랑’이라 지칭되는 노래는 이 한 곡뿐이다. 세계 어느 곳이든 한민족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남아 있다는 노래, 심지어 우리말을 잊은 사람도 이 노래만은 기억하고 있다는 노래가 이 곡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아리랑’(1926, 작사·작곡 미상)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반은 이 노래가 당연히 몇백 년 전부터 전래된 민요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노래는 1926년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였다. 즉 대중가요이다. 물론 이전에도 서울지방에 ‘아리랑’이 있긴 했다. 하지만 곡조가 꽤 다르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이 두 노래를 ‘본조(本調) 아리랑’(혹은 ‘서울아리랑’)과 ‘구조(舊調) 아리랑’으로 구별하여 지칭한다. 추정컨대 영화를 만들면서 ‘구조 아리랑’을 참고로 하여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냈다고 보인다. 영화의 폭발적 인기를 타고 이 노래는 놀랍도록 빠르게 퍼져 나가며 수많은 민요적 변이현상이 생겨났다. ‘아리랑’, ‘아라리’라 불리는 수많은 노래가 민요로 존재한 터에 대중문화의 힘이 보태진 결과였다. 영화 ‘아리랑’도 일인극인 ‘독(獨) 아리랑’까지 만들어져 쇼 레퍼토리로 자리잡을 정도였으니, 연극·영화보다 더 쉽게 확산되는 노래는 어떠했을지 짐작할 만하다. 결국 이런 과정을 통해 대중가요 ‘아리랑’은 민요화되었다. 이 ‘아리랑’이 거론되는 노래 한 곡을 더 소개하고 싶다. 민병일의 시를 노래화한 이지상의 ‘사이판에 가면’이다. 수평선 해거름 지는 사이판에 가면 / 자살 절벽 있다지 봉숭아 물든 조선 처녀들 / 꽃잎처럼 몸 던진 자살 절벽 있다지 / 눈부신 햇살 번지는 사이판에 가면 / 신혼부부 있다지 밀월여행을 즐기는 아담과 이브 / 밤이 오면 무르익는 사랑노래 있다지 / 잡초 크게 웃자란 절벽에선 지금도 / 처녀들 신음소리 바람에 실려 오고 / 한국인 위령탑엔 갈 곳 없는 고혼들 / 떠돌고 있다지 맴돌고 있다지 / 낭만의 섬 낙원의 섬 사이판에 가면 / 전설 같은 정신대 조선 처녀들 남긴 아리랑 / 아라리오 부르는 원주민들 있다지 / 아라리오 기억하는 원주민들 있다지/ 이지상 ‘사이판에 가면’(1998, 민병일 작시, 이지상 작곡) 해외여행 붐을 타고 단골 신혼여행지로 부상한 사이판의 달콤한 분위기와,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잔존 일본군과 함께 물속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강제징용 노동자와 위안부의 대비가 강렬하다. 이 아이러니한 풍경 속에 배치된, 원주민들이 부르는 노래 ‘아리랑’은 더욱 절묘하다. 그런데 사이판만이 아니다. 오키나와에 끌려간 위안부들도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2008년에 건립된 위안부위령비의 명칭도 ‘아리랑비’이다. 그저 노래 한 자락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고통스러운 마음이 새삼스레 이 8월에 다가온다.
  • 600일간 소녀상 지킨 소녀들 “할머니 열 분이나 떠나셨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600일간 소녀상 지킨 소녀들 “할머니 열 분이나 떠나셨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소녀상 찾는 발걸음은 줄어 관심 줄어드는 것 같아 불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동의하지 않는 한·일 위안부 합의는 600일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일본 정부는 어떠한 사죄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부끄럽고 화가 납니다.”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만난 최혜련(23·배화여대 2학년)씨의 목소리는 결기에 차 있었다. ‘성노예제 사죄배상과 매국적 한·일 합의 폐기를 위한 대학생 공동행동’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대학생 10여명과 함께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이들은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이틀 뒤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수요집회)에서 무기한 노숙 농성에 뜻을 함께했고, 농성은 20일로 600일을 맞았다. 최 대표는 “소녀상 철거를 막아야 한다는 뜻에서 농성을 시작했다”면서 “농성이 길어지면서 학업이나 취업 문제로 이탈하는 사람도 생겼지만,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농성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난해 12월 28일 공동행동을 결성했고 제가 대표를 맡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때 이후 피해자 할머니 10명이 세상을 떠나셨는데도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는 말에는 안타까움이 짙게 묻어났다. 현재 공동행동과 희망나비 소속 대학생들은 오전 9시를 기준으로 24시간씩 교대하며 소녀상을 지키고 있다. 농성 초반에는 ‘소녀상 지킴이’가 수십명에 달하기도 했지만 최근엔 동력이 떨어져 한 사람이 3~4일을 지키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지난해 4월에는 한 달 내내 지킨 적이 있어요. 그게 제게는 가장 긴 시간이었습니다.” 식사는 농성을 응원하는 시민들이 낸 돈을 이용해 주로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먹는다고 했다. 자체적으로 한 끼 예산을 최대 5000원으로 잡았다. 가끔 시민들이 사다 주는 빵이나 간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한다. 지난 600일 동안 위험한 사건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5월 한 중년 남성이 찾아와 “해치겠다”며 난동을 부렸다. 농성 천막도 없었던 때고, 농성자 5명 가운데 4명이 여학생이었다. “그 아저씨에게 ‘그냥 가시라’고 했더니 ‘앞에 경찰만 없었으면 너를 칼로 찔러 죽였다’며 협박하더라고요.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많이 없어졌지만 전 정부 때에는 위협받는 일들이 많아 주로 남학생이 당번을 서기도 했어요.” 아찔한 순간을 자못 덤덤하게 떠올렸다. 최 대표는 “갈수록 찾아오는 사람이 줄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동행동 소속 채은샘(25)씨는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8월 14일)에 평화의 소녀상을 찾아오시는 분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면서 “이러다간 위안부 문제 해결이 더 늦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국민의 힘으로 퇴진시켰듯이, 소녀상을 600일 동안 지킬 수 있었던 것도 99%가 국민의 힘입니다. 국민의 뜨거운 관심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는 호소에 이어 “위안부 합의가 폐기되고 피해자 할머니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사과와 보상이 이뤄질 때까지 농성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日의원단 “강제징용·위안부 해결된 것 아니냐” 文대통령 “피해자 동의과정 없어… 수용 못해”

    美의원단엔 ‘군사적 옵션’ 우려 “입장 이해하지만 남북 충돌 야기”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정부 때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한국인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고, 특히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충분히 협의해 동의를 받았어야 했는데 그런 과정이 없었다”며 “한국 국민은 정서적으로 그 합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21일 청와대에서 한·일의원연맹의 일본 측 대표단을 접견하고 과거사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거듭 밝혔다. 접견에는 누카가 후쿠시로 한·일의원연맹 일본 측 회장, 가와무라 다케오 일본 측 간사장 등 12명이 참석했으며 이들은 방한 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고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측 대표단은 “지난 17일 문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견해를 밝혔는데, 이 문제에 대해 일본에서 걱정이 많다”고 전했다. 또 “위안부 합의는 이미 이뤄진 게 아니냐”라며 재협상 불가론을 주장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일본 대표단이 말한 전체적인 흐름 속에 아베 총리의 뜻이 녹아 있는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한·일 양국이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 ‘김대중·오구치 공동선언’의 취지를 이어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과거 일본은 고노 담화를 통해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고, 무라야마 담화와 ‘김대중·오구치 공동선언’으로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을 공식적으로 사죄했다. 문 대통령의 입장 표명에 대해 일본 측은 추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이날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태 소위 대표단과도 만나 미국 정부의 대북 ‘군사적 옵션’에 대해 강한 우려를 전달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게 하고자 (군사적 옵션을 포함한)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군사적 옵션이 실제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면 한국인뿐만 아니라 한국 내 많은 외국인과 주한미군의 생명까지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강경한 어조로 “전쟁을 딛고 성장한 대한민국을 폐허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접견에는 미국 측에선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태 소위 대표단 단장인 에드워드 마키 민주당 간사를 비롯해 제프 머클리, 크리스 벤 홀러 상원의원과 캐럴라인 맬로니, 앤 와그너 하원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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