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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SEN이슈]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신정환에겐 예외다

    [SSEN이슈]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신정환에겐 예외다

    매주 목요일은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 녹화 날이다. 녹화를 하루 앞둔 오늘(22일) 제작진은 어떤 마음일까. 전날인 21일 JTBC 측은 ‘아는 형님’ 룰라 특집을 예고, 이상민과 함께 채리나, 김지현 그리고 신정환이 이번 녹화에 참여한다고 전했다. 제작진은 “고정 출연자인 이상민이 거의 매회 룰라 얘기를 했을 정도로 애정이 깊다”며 “아예 룰라 특집을 준비해 한꺼번에 멤버들이 뭉쳐보자 싶어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해당 소식이 전해진 지 24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중은 성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불법 도박도 모자라 대중을 기만한 그를 다시는 방송에서 보고 싶지 않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 ‘아는 형님’은 꼭 신정환을 섭외했어야만 속이 시원했나 이런 대중의 마음은 지난해 방영한 신정환 예능 복귀작 Mnet ‘프로젝트S: 악마의 재능기부’ 시청률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한때 예능 천재라 불리기도 했던 신정환이 7년 만에 예능으로 돌아왔지만, 10부작으로 방송된 이 예능의 최고 시청률은 0.4%(닐슨코리아 제공)에 그쳤다. 거의 애국가 시청률 수준이다. 이는 대중은 아직 그를 달갑게 맞이할 준비가 안 됐다는 방증이자, 어쩌면 그에게 주는 벌이기도 하다. 물론 해당 프로그램 이후 더이상 방송 출연은 없었다. 이 점이 ‘아는 형님’ 제작진의 이번 섭외에 의문이 드는 한 가지 이유다. 말하자면 복귀에 실패한 신정환을 다시 약 1년 만에 대중 앞에 세우겠다는 의도가 전혀 가늠이 안 된다. ‘룰라’로 데뷔하긴 했지만 신정환은 ‘컨츄리 꼬꼬’로 활동하며 더 큰 인기를 얻었다. 사실 ‘룰라 특집’에 빠져서는 안 될 인물까진 아니다. 또 ‘재기’를 노리기에 ‘아는 형님’은 그다지 적절한 포맷의 예능도 아니다. 신정환이 ‘아는 형님’에 나와서 무슨 이야기로 시청자에 웃음을 줄 수 있을지도 상상이 안 간다. 신정환이 교복을 입고 나와서 춤을 춘다면? 노래 첫 소절만 듣고 제목을 알아맞힌다면? 웃음을 줄 수 있을까. 신정환이 ‘나를 맞혀봐’ 코너에서 “내가 해외 불법 도박을 했다가 걸렸을 때 거짓말을 했는데...정답은 세글자야!” 정도는 말해줘야, 멤버들이 너도 나도 “정답! 뎅기열!” 정도는 해줘야 그나마 ‘피식’ 정도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제아무리 섭외가 제작진의 몫이라고 하더라도 대중의 목소리를 무시한다면 그 책임과 결과 역시 제작진의 몫일 수밖에 없다. ■ 000는 되고 신정환은 안 되는 이유로 말할 것 같으면 일부 네티즌은 “수많은 연예인이 잘못하고도 다시 방송에 복귀하는데 왜 신정환한테만 박하게 구는 거냐” 묻기도 한다. 물론 여러 연예인이 음주운전, 도박, 심지어 마약에 손을 대며 물의를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과 신정환이 다른 이유는 분명 있다. 방송에 복귀해 다시 대중의 사랑을 되찾은 이들은 빠르게 잘못을 인정했고, 자숙의 시간 동안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 2013년 유세윤은 음주 운전 사고를 냈다며 경찰서에 자수했다. 음주 운전 자체는 잘못된 일이지만 그가 제 발로 경찰서를 찾아가 잘못을 인정했다는 점이 빠른 복귀에 도움이 됐다. 김구라 역시 막말 논란으로 수차례 구설에 올랐지만, 본인 잘못을 인정하고 매번 사과했다. 수년 전 인터넷 방송에서 일본군 위안부 발언을 했던 것이 뒤늦게 문제가 돼 모든 방송에서 하차한 적도 있지만, 김구라는 방송을 떠난 동안 매주 위안부 복지 시설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며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신정환은 달랐다. 죄를 짓고도 거짓말로 포장하기 바빴다. 신정환은 2005년 서울 압구정 카지노 바에서 불법 바카라 게임을 하다 적발됐을 때도 “아는 선배를 만나러 갔다가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친 것”이라며 도박에 가담한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하루가 지나서야 결국 혐의를 시인했다. 이후 2010년 9월, 신정환은 돌연 출연 중이던 MBC ‘라디오 스타’, KBS2 ‘스타골든벨’, MBC ‘청춘 버라이어티 꽃다발’ 녹화에 사전 통보 없이 줄줄이 불참했다. 당시 소속사 측은 과로로 인해 스케줄에 불참하게 됐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그가 필리핀에서 도박한 뒤, 빚 때문에 억류돼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다시 한번 대중은 실망했다. 신정환은 “도박장에 간 것은 맞지만 지인들과 관광 목적으로 방문한 것”이라며 “여행 중 뎅기열에 걸려 병원에서 지냈다”고 해명했다. 병원에 입원한 사진까지 함께 공개하면서 말이다.하지만 이 사진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고, 신정환은 뎅기열 때문이 아니라 도박 빚 때문에 체류 된 상태임이 들통났다. 신정환은 결국 외국환관리법 위반과 상습도박 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후 신정환은 수차례 귀국을 미뤄오다 2011년 1월이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1억 2000만 원을 빌려 도박을 했다던 신정환은 이날 공항에 고가의 옷을 입고 장난스러운 모자를 쓰고 등장해 또 한 번 질타를 받았다. 2011년 6월 재판에서 징역 8개월 실형 선고를 받은 그는 “사회에 봉사하며 살겠다”면서 선처를 호소, 항소했다. 그해 12월 성탄절 사면으로 가석방 출소했다.그리고 7년이 지난 2017년 9월. 그가 다시 TV에 등장했다. 신정환은 “기회가 주어진 것이 믿기지 않는다. 곧 태어날 아기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어 방송 복귀를 결심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복귀 1년이 지난 지금, 신정환은 부끄럽지 않은 아빠일까. 그에게 기회는 누가 주었을까. 대중은 여전히 명품 옷으로 휘감고 복면같은 모자를 쓰고 나타나 공항에서 고개를 숙이던 그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김혜민 기자 khm@seoul.co.kr
  • [글로벌 In&Out] 일본이 역사에 예민해지는 까닭은/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

    [글로벌 In&Out] 일본이 역사에 예민해지는 까닭은/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

    한국과 일본에 8월은 ‘역사의 계절’이다. 일본의 ‘종전’ 기념일, 한국의 광복절인 8월 15일 양국 지도자가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지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기 때문이다.최근 10년 일본은 한국 대통령의 한·일 관계 언급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역사 문제로 한·일 사이의 틈새가 깊어졌음을 뜻한다.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어땠는가. 아베 신조 총리를 ‘동북아 평화번영의 동반자’라 하고 북·일 국교 정상화에 기대감도 내비쳤다.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평화번영의 실현에 일본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문재인 정부의 뜻이 반영돼 있다고 본다. 돌아보면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의 자세가 많이 변했다. 과거에는 한국이 역사에 집착하고 일본은 역사에 구애되지 않고 미래로 가겠다는 자세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역사와 현재진행형의 한·일 관계는 별개라고 한국이 강조하는 반면 오히려 역사 문제에 일본 쪽이 과민반응하고 있다. 몇 년 전 유학생 관련 학내 회의에서 “한국은 반일의 나라이기 때문”이라던 일본인 동료의 발언에 놀란 적이 있다. 한국 유학생에게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의도이긴 했지만. 일본에서는 “일본이 무엇을 한들 한국의 반일은 바뀌지 않는다. 한·일 관계에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생각이 스며들고 있다. 일본을 찾는 한국인이 올해 75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한국 젊은이가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오는 현상도 보인다. 이런 현실에서 많은 한국인에게 “한국은 반일”이라는 일본 시각은 놀라울 것이다. 한국인을 보는 일본의 시각과 실제 한국인 사이에는 괴리가 있음을 일본은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왜 일본에서는 “한국은 반일”이라는 주장이 급속히 퍼졌는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이후 한·일 관계 20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공동선언으로 한·일이 새 단계에 들어갔다고 기대했던 일본인은 지금 “한국의 반일은 변하지 않는다. 한국에 기대하지 말자”고 포기하기 시작했다. 영토 문제를 놓고 “외교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한 노무현 정부, 독도를 전격 방문(일본에선 ‘다케시마 상륙’으로 표현)한 이명박 정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전제 조건으로 한·일 정상회담에 응하지 않았던 박근혜 정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커졌다. 그 책임을 한국에만 물어서는 안 된다. 일본 측 배려가 부족한 측면도 있다. 걱정스러운 것은 일본 사회의 변화에 한국이 둔감하다는 점이다. 역사에서 피해자·가해자라는 한·일 관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중국에 추월당한 일본이 한국에도 따라잡히고 있는 동아시아의 판도 변화 속에서 역사 문제로 일본이 압박받고 있다는 ‘피해자 의식’을 갖게 된 건 아닌가. 반대로 한국에서는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것을, 일본에 대한 경제적 의존에서 벗어난 지금이야말로 ‘정의’에 근거해 당당히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본이 과거의 역사에 대해 더 진지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나 자신,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혼자 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20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 국회 연설에서 전후 일본이 걸어온 평화·번영의 길을 칭찬한, 한국의 어느 대통령도 하지 못했던 일을 왜 했는지는 중요한 시사를 던진다. 많은 일본인에게 감동을 줌으로써 일본을 움직이고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방북과 북·일 평양선언으로 대북 화해 협력 정책에 대한 한·일 협력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주도하는 한국의 역할이 점차 재평가되고 있다. 일본 사회에 한국의 긍정적 이미지를 침투시킨다는 점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대일 정책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매우 기대된다.
  • 위안부 협상 위해 日징용 손배소 무력화… 박근혜 靑, 장관·대법관 불러 TF 꾸렸다

    한·일 위안부 협상 여론 악화되자 전원 합의 회부 등 재판 스케줄 조정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청와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무력화를 위해 사법부와 함께 사실상 정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재판에 지속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당시 진행되던 한·일 위안부 협상에 대한 국내 여론을 살피며 재판을 전원합의체로 넘기는 시기도 고무줄처럼 조정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는 2013년 12월 1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강제징용 재판 거래를 위한 회동이 열린 데 이어 2014년 10월 재판 진행 상황 등을 점검하는 회의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 중이다. 이 회의에는 김 전 실장과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조윤선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 정종섭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 등 관계 부처 장관들이 참석해 사실상 정부 합동 TF를 구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2차 회동에선 2014년 3월부터 본격화된 위안부 문제에 따른 국내 여론을 반영해 강제징용 재판 처리 스케줄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청와대와 법원행정처는 2015년에 강제징용 재판을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올리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가, 졸속적인 위안부 협상으로 여론이 악화될 것을 예견하고 시기를 조정하려 한 것이다. 2014년 6월까지 여성가족부 장관을 맡았던 조 전 수석과 경찰 등으로부터 여론 동향 보고를 받는 정 전 장관이 회의에 참석한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구속 수감 중인 조 전 수석과 당시 회동에 참석한 이들을 불러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방침이다. 앞서 2013년 12월 1차 회동에선 김 전 실장이 차한성 당시 법원행정처장(2011년 10월~2014년 2월)과 황 장관, 윤 장관 등이 참석해 재판 일정을 미루고,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겨 결과를 뒤집는 방안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차 전 처장은 이 자리에서 강제징용 재판 관련 소송 서류의 국외 송달을 핑계로 재판을 자연스럽게 늦춰 심리불속행 기각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 전 실장이 소집한 두 차례 회동과 별개로 법원행정처와 청와대, 외교부, 전범기업 측 소송 대리인이 수차례 접촉해 재판에 개입한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대법원 재판부가 소송 관련 정부 의견서 제출을 외교부에 요청하고 2016년 11월 외교부가 의견서를 내는 과정에도 법원행정처가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새 헌법재판관 후보, 이석태…세월호와 인연 깊은 ‘평생 인권변호사’

    새 헌법재판관 후보, 이석태…세월호와 인연 깊은 ‘평생 인권변호사’

    저명한 인권변호사이자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이석태 변호사가 새 헌법재판관으로 내정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일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의 후임 재판관으로 이석태 변호사를 지명 내정했다. 김창종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은애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를 지명했다. 이석태 변호사가 임명되면 법원이나 검찰 출신이 아닌 순수 재야 변호사 출신의 헌법재판관이 사상 처음으로 탄생하게 된다. 1982년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이석태 변호사는 검찰이나 법원에 몸 담지 않고 현재까지 약 33년간 재야의 변호사로 활동해왔다. 이석태 변호사는 변호사의 길을 걷는 동안 내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대변해왔다. 경찰의 고문 등으로 사망한 고 박종철씨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사건을 맡아 국가 배상 책임을 이끌어내면서 시민에 대한 국가 폭력의 부당함을 알리고 경각심을 일깨웠다. 매향리 미군 공군 사격장 인근 주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음 피해 손해배상 사건도 맡아 피해 주민들의 권리를 되찾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강기훈씨 유서 대필 사건 재심 사건을 맡아 진실을 밝히고 강기훈씨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줬다. 헌법 재판 사건도 다수 맡아 국민의 기본권 신장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민법상의 동성동본 금혼 규정과 호주제에 대한 위헌 소송을 대리해 헌법상의 평등권과 혼인에 대한 기본권 확장에도 힘을 보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부작위 위헌’ 확인 사건도 맡았다. 긴급조치 위헌 소송 사건을 맡아 과거 긴급조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사람들이 재심을 통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기도 했다. 2000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 2004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 2011년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내는 등 다양한 경로로 우리 사회 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2015년에는 세월호특조위 위원장을 맡아 진상 규명을 지휘했다. ▲충남 서산 ▲경복고 ▲서울대 법대 ▲법무법인 덕수 대표변호사 ▲한겨레신문 사외이사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 ▲대통령 공직기강비서관 ▲민변 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 ▲참여연대 공동대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길원옥 할머니와 소녀상 지킴이가 부르는 ‘아리랑’, ‘한 많은 대동강’

    길원옥 할머니와 소녀상 지킴이가 부르는 ‘아리랑’, ‘한 많은 대동강’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90) 할머니와 소녀상 지킴이 김샘(26)씨가 ‘아리랑’과 ‘한 많은 대동강’을 함께 부르는 모습이 공개됐다. 지난 14일 딩고뮤직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다. 영상에는 소녀상과 나란히 앉은 길원옥 할머니가 ‘아리랑’과 ‘한 많은 대동강’을 차례로 부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소녀상 지킴이 김샘씨는 수화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피아노 반주 위에 나지막이 흐르는 할머니의 한 서린 목소리는 듣는 이들을 숙연케 한다. 노래를 마친 뒤 제작진이 “할머니, 소원 있어요?”라고 물었다. 이에 길원옥 할머니는 “소원은 남북통일”이라며 “내 고향이 평양이거든. 그러니까 내 고향이 가고 싶기도 하고…”라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김샘씨는 “하루빨리 일본 정부가 할머니들께 사과했으면 좋겠다”며 “제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다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많은 시민이 도와주셔서 재판을 잘 받고 잘 해결했다. 이 문제(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샘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 모임인 평화나비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15년 12월 31일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며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건물에 무단으로 들어가 기습 점거시위를 벌인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은 지난 4월 24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공동주거침입)·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바 있다. 김씨와 함께 기소된 대학생 등 2명도 각각 벌금 50만원과 30만원이 확정됐다. 한편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239명으로 이중 생존자는 현재 27명이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그릇된 역사인식 어떻게 자라났나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그릇된 역사인식 어떻게 자라났나

    한중일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 오누마 야스아키·에가와 쇼코 지음/조진구·박홍규 옮김/섬앤섬/272쪽/1만 6000원일본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는 1993년 8월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지난 전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는 “침략 전쟁이었다.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인식한다”고 답한다. 이어 1995년 8월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아시아 국가에 사죄하는 내용을 담은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한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새로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2001~2006년 매년 전쟁 전범이 묻힌 신사참배를 반복한다. 2012년 취임한 아베 신조 총리는 “침략의 정의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주변국의 시선이 또다시 싸늘해졌다. 왜, 어째서 일본은 이런 태도를 보일까. 일본의 그릇된 역사인식은 어떻게 생겨나고 자라난 것일까.●국제법 연구자 오누마 교수 신간 국제법 연구자이자 1970년대부터 한·일 관계를 연구한 오누마 야스아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신간 ‘한중일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그 해답을 알려 준다. 일본인의 그릇된 역사인식이 생겨난 지점을 짚고, 한·중·일의 역사인식 차이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설명한다.우선 제2차 세계대전 후 1946~1948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군사재판부터 보자. 미국, 영국, 중국, 소련, 인도 등에서 온 11명의 재판관이 일본 전범자 도조 히데키 등을 재판했다. 28명이 기소돼 재판 도중 사망한 2명과 정신장애로 면소된 1명을 제외한 25명 전원이 유죄 판결을 받는다. 저자는 도쿄재판에 관해 ‘평화에 대한 죄’로 피고인을 단죄했다는 점에서 사후법에 따른 처벌이며 근대법의 기본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치른 전쟁이 국제법상 위법한 침략 전쟁이 분명하고, 그 과정에서 일본이 수많은 전쟁법 위반 행위를 저질렀음은 전 세계가 공유하는 인식이라 설명한다. ‘승자에 의한 일방적인 단죄’라며 이를 부정하는 ‘도쿄재판사관’에 관해서는 “주장하면 주장할수록 일본이 고립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위안부 문제, 희생자 입장서 고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공개한 게 계기가 됐다. 일본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자리잡았다. 게다가 2011년 한국 헌법재판소가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충분히 교섭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 결정한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차례로 짚어 가며 “종군 위안부 문제를 오로지 한·일 관계의 틀 속에서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위안부 피해자는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대만, 네덜란드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 문제의 핵심이 ‘한국을 만족시키는 정도의 사죄와 보상’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 자체와 희생자의 입장을 고려한 보상이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1995년 일본의 민과 관을 연결해 ‘아시아 여성 기금’을 만드는 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일본 진보 신문과 한국 언론이 일본군 위안부를 자극적으로 다루며 오히려 이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총리의 사죄 편지를 비롯해 기금 마련 등 일본의 노력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점도 문제로 든다. 예컨대 2차 세계대전 주범국이지만 전쟁 책임에 관해서는 일본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독일의 경우, 지도자가 알기 쉬운 형태로 자기 반성과 사죄를 한다.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했을 때 유대인 격리 시설인 게토의 영웅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묵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日, 잘못된 것도 역사로 받아들여야” 저자는 전후 일본의 역사인식 형성 과정을 설명하며, 될 수 있으면 일본에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상대의 처지에서 일본이 어떻게 보이는가 냉정하게 생각하고 자신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라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역사를 인식하는 일”이라 거듭 강조하는 부분에서 그의 고민이 엿보인다. 그러나 식민지 시절을 겪은 우리로선 저자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기 어렵다. 다만 한·중·일 삼국이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와 해석을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근거와 원인을 알아야 해결 방법도 찾을 수 있다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일본이 자신의 시각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듯, 단순한 반일 감정으로도 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사유리 태극기 셀카, 광복절에 공개→삭제 ‘남다른 역사의식’

    사유리 태극기 셀카, 광복절에 공개→삭제 ‘남다른 역사의식’

    일본 출신 방송인 사유리(38)가 광복절에 태극기 셀카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일본 네티즌을 의식한 듯 이내 게시물을 삭제했다. 사유리는 광복절인 15일 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잘자요. sweet dreams”라며 여러 장의 셀카를 게재했다. 카메라 어플리케이션의 애니메이션 합성 효과를 이용한 셀카에는 다양한 표정을 한 사유리의 매력이 돋보였다. 여러 장의 사진들 중에는 태극기와 태극문양의 스티커가 등장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국의 광복절을 기념하는 의도가 엿보였다. 그러나 일본 자국민의 반응을 의식한 듯 사유리는 게시물을 현재 삭제한 상태다. 사유리는 201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3000만원을 기부했다. 2008년도 100만원 기부에 이어 두번째다. 뿐만 아니라 사유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함께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사유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일본에 있을 때 위안부 할머니들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가슴이 많이 아팠다”면서 “나는 일본을 사랑하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우리가 최고다’라고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창피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애국자”라고 밝힌 바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광복절 수요집회

    광복절 수요집회

    제73주년 광복절인 15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6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맞이 세계연대집회 겸 1348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참석자들이 수백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사진을 들고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공식 사죄 등을 촉구하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팬덤문화의 정석, 스타를 향한 박지훈 팬들의 특별한 응원법

    팬덤문화의 정석, 스타를 향한 박지훈 팬들의 특별한 응원법

    그룹 워너원 멤버 박지훈 팬들이 어르신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전달했다. 박지훈 팬들은 지난 7일 워너원 데뷔 1주년 축하를 위해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를 통해 3000만원 상당의 건강 팔찌 529개를 어르신들에게 기부했다. 박지훈 팬들은 “박지훈의 데뷔 1주년을 축하하는 마음과 선행에 동참하는 뜻으로 건강팔찌를 준비했다”며 “무더운 여름 어르신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그 뜻을 전했다. 박지훈 팬들은 선행을 통해 박지훈을 향한 애정을 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5월 29일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머무는 경기도 광주의 복지시설 ‘나눔의 집’에 529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허니아트를 통해 장애인 미술창작활동 지원에 나서는 등 다양한 기부활동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를 향해 따뜻한 행보를 이어가는 박지훈 팬들은 스타를 향한 아름다운 팬덤문화의 정착과 확산에 한몫하고 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장성역 앞 ‘평화의 소녀상’ 제막

    장성역 앞 ‘평화의 소녀상’ 제막

    “비록 자그마한 동상이지만 역사의 아픔을 언제까지나 되새기는 교육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남 장성군 ‘평화의 소녀상 건립 추진위원장’을 맡은 반상한(42) 전 장성청년회의소 회장은 “일본 탓에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자라나는 세대의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자극제로 기대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장성군 17개 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추진위가 광복절 하루 전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14일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가졌다. 지역 중심가인 장성역 앞에 들어선 동상은 청동 재질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과 같은 형태다. 가로 2m, 세로 1.6m 좌대에 앉은키 130㎝ 크기다. 거칠게 잘린 단발은 부모와 고향으로부터의 단절을, 뒤꿈치를 들고 있는 맨발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에도 정착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아픔을 상징한다. 지난 4월 말 출범한 추진위는 군민을 상대로 소녀상 건립에 따른 자발적 모금 운동을 벌여 왔다. 채 4개월에 못 미치는 짧은 기간에 1700여명이 참여해 6700여만원을 모았다. 글 사진 장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뉴스 분석] 위안부 문제 ‘외교협상 불가’ 못박았다

    [뉴스 분석] 위안부 문제 ‘외교협상 불가’ 못박았다

    “日, 깊이 반성하고 각성해야 해결될 것” 외교 아닌 보편적 정의 차원 해법 강조 北과 안중근 의사 유해 공동 발굴 추진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일) 양국 간 외교적 해법으로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 자신과 일본을 포함, 전 세계가 성폭력과 여성의 인권 문제를 깊이 반성하고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각성과 교훈으로 삼을 때 해결될 문제”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충남 천안 국립망향의동산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이 문제가 한·일 간 외교분쟁으로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위안부 문제를 외교적으로 쟁점화하는 대신 보편적 정의의 원칙에 입각한 해결을 지향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1월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졸속으로 이뤄진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지 않되, 그대로 수용하거나 이행하지는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 1월의 정부 방침에 대한 논리적 완결로 볼 수 있다. 즉 위안부 문제를 단순한 외교적 협상의 차원이 아니라 보편적 여성 인권의 차원으로 규정한 것이다. 주고받는 외교적 협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가 반성해야 할 문제로 규정하면 한·일 위안부 합의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지고 일본의 진정한 반성을 촉구할 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문 대통령의 발언을 외교적 전략 차원에서 보면, 일본과의 외교적 관계는 원활히 유지하면서도 위안부 문제의 중대성은 강화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위안부 문제를 외교 차원보다 훨씬 높은 차원으로 격상시키는 데 지향점이 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문 대통령이 8·15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행사에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참석한 것 자체가 일본을 향한 강력한 메시지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애국지사 13명과 국내외 독립유공자 후손 220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며 “북한과 공동사업으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 발굴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일본 정부, 문 대통령 연설에 “위안부 합의 이행 중요”

    일본 정부, 문 대통령 연설에 “위안부 합의 이행 중요”

    일본 정부는 14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2015년 한일 합의의 착실한 이행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오후 충남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정부 기념식에 참석해 “(한일) 양국 간 외교적 해법으로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연설한 내용에 대해 일본 정부가 이러한 입장을 전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외무성 동북아시아 1과의 과장 보좌가 주일한국대사관 서기관에게, 서울의 일본대사관 참사관이 한국 외교부 과장에게 각각 자국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고 알렸다. 특히 문 대통령이 “이 문제가 한일 간의 외교분쟁으로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고 말한 것에 대해 일본 외무성이 진의를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포토] ‘대통령 얼굴 어루만지는’ 김경애 할머니

    [포토] ‘대통령 얼굴 어루만지는’ 김경애 할머니

    14일 오후 충남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 안 모란묘역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첫 정부 기념식서 김경애 할머니가 문재인 대통령의 볼을 만지고 있다. 2018. 8. 14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설리 일본 악플, SNS에 ‘기림의 날’ 포스터 올렸다가 “평생 일본 오지 마라”

    설리 일본 악플, SNS에 ‘기림의 날’ 포스터 올렸다가 “평생 일본 오지 마라”

    가수 겸 배우 설리가 SNS에 ‘기림의 날’을 소개하자, 일부 일본 네티즌이 악성 댓글을 다는 등 그를 비난하고 나섰다. 14일 설리는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기림의 날’ 공식 포스터를 올렸다. ‘기림의 날’은 故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 위안부 피해 문제를 세상에 처음 알린 날(1991년 8월 14일)로 지난해 법률로 제정돼 올해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설리가 공개한 ‘기림의 날’ 포스터에는 “올해 처음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에서 정부 공식행사가 열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라는 내용의 문구가 담겨있다.설리는 이 포스터를 올리며 네티즌 관심을 촉구했다. 하지만 일부 일본 네티즌이 설리 SNS를 찾아 악성 댓글을 달며 그의 행동을 비난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자신이 일본인 팬이라고 밝히며 “여러 나라 팬이 보는 SNS에 정치적 내용을 올릴 필요가 있냐”며 그에게 쓴소리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평생 일본에 오지 말라”, “진짜 싫다”, “설리 그렇게 안 봤는데 100% 한국인이네”라며 댓글을 달았다. 상황이 이렇자 일부 한국 네티즌은 일본 네티즌 태도를 지적하며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사진=설리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36년 동안 꺼내지 못한 태극기’

    ‘36년 동안 꺼내지 못한 태극기’

    ‘36년 동안 꺼내지 못한 태극기였습니다.’ 서울시가 광복 73주년을 맞아 13일 서울광장 꿈새김판에 이런 문구를 담은 대형 현수막을 걸었다. 일제강점기(36년) 동안 꺼내지 못했던 태극기를 광복 직후 남산에 게양하던 감격의 순간을 통해 광복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함이다. 시 관계자는 “광복 이후 73년이 지난 현 시대에도 우리가 직면한 여러 갈등에 대해 그 시절 꺼내지 못했던 태극기처럼 말하지 못하고 마음속에만 묻어두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고, 이제는 소통으로 사회갈등을 해결하고 더 나아가 시민 모두가 화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현수막은 이날부터 이달 말까지 게시된다. 유연식 시민소통기획관은 “서울광장 대형 현수막과 광복절 행사를 통해 단순히 그날의 기쁨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 될 불행한 역사와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애국선열과 위안부 할머니 등 광복의 이면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어려운 삶 인내한 할머니들 그림 보며 삶의 희망 찾기를”

    “어려운 삶 인내한 할머니들 그림 보며 삶의 희망 찾기를”

    1993년 ‘나눔의 집’ 찾아 그리기 제안 무지개로 과거 표현한 이용수 할머니 ‘일본군 기억’ 첫 그린 강덕경 할머니 “용기 얻는 모습 지켜볼 수 있어 행복”“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그림에서 한 개인의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발견하셨으면 좋겠어요. 수십년간 누구에게도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를 품고 어려운 삶을 인내하신 분들이잖아요. 그런 분들이 자기 이야기를 그리며 살아갈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크죠.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가꿀 줄 알았던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보시면서 누구든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화가 이경신(50) 씨는 1993년부터 5년간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미술 수업을 진행했다. 할머니들의 ‘첫 미술 선생님’이었던 그는 할머니들이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과 의미를 책 ‘못다 핀 꽃’(휴머니스트)에 기록했다. 최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이씨는 20여년 전 이야기를 지금에서야 꺼내게 된 이유에 대해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를 맺을 때 언론을 통해 할머니들이 분노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화를 참을 수 없었다”면서 “할머니들께서 그린 그림은 많이 알려져있지만 그림을 그릴 당시 할머니들이 어떤 기분과 감정을 느끼셨는지 저만 알고 있었던 부분을 정리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이씨는 1993년 2월 할머니들을 처음 만났다. 당시 막 미대를 졸업했던 그는 우연히 라디오에서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칠 선생님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나눔의 집’을 찾았다. 꼭 한글 수업이 아니더라도 할머니들의 말동무라도 되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다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할머니들에게 그림 그리기를 제안했지만 처음엔 다들 낯설고 부담스러워했다. “자신의 현재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심상 표현’ 수업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그리신 그림을 계기로 분위기가 확 바뀌었어요. 할머니가 여성의 성(性)을 상징하는 붉고 커다란 입술과 함께 순수한 과거를 뜻하는 무지개를 그리셨는데, 할머니의 마음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죠. 이 할머니가 당신 자신을 거침없이 표현하시는 모습을 보고 다른 할머니들도 자극을 받으셨어요. 그러다 평소 말씀이 적었던 강덕경 할머니가 ‘빼앗긴 순정’을 그리시는 걸 보고 충격 받았죠. 당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걸 꺼리시던 강 할머니가 처음으로 일본군에게 성폭행당했던 기억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그림이었거든요.” 무책임한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강 할머니의 또 다른 그림 ‘책임자를 처벌하라’, 어린 시절 일본군에 끌려간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징이 된 김순덕 할머니의 ‘못다 핀 꽃’ 등도 이씨와의 수업에서 탄생했다.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은 한국과 일본 등에서 전시되면서 세계적으로도 큰 조명을 받았다. 이런 결과를 얻기까지 이씨의 역할이 누구보다 컸지만, 정작 그는 할머니들과의 그림 수업을 통해 자신이 얻은 것이 오히려 더 많다고 했다. “1997년 강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그림을 그린 일이 내 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다’는 말씀을 남기셨는데, 평생 마음속에 남을 선물이죠.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침에 일어나서 온종일 그림만 그리시던 강 할머니의 모습이 제게도 큰 힘이 됐어요. 힘겨운 인생을 사시던 분들이 자기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고, 꿈을 꾸게 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본 것 그 자체로도 정말 행복했습니다.” 글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사진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들의 용기 기억할게요… 끝까지 포기 마세요”

    “위안부 할머니들의 용기 기억할게요… 끝까지 포기 마세요”

    1991년 8월 14일. 위안부 피해자인 고 김학순 할머니는 일본군의 만행을 처음으로 세상에 꺼내 놨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증명할 수 없는 ‘설’(說) 정도로 치부하던 태도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결정적 증언이었다. 그로부터 27년이 흘렀다. 김 할머니 이후 수많은 피해자가 “나도 당했다”며 자신의 상처를 드러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다. 한국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39명 가운데 국내 생존자는 이제 27명뿐이다.2012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는 김 할머니의 첫 폭로일인 8월 14일을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로 정했다. 올해부터는 국가 기념일로 지정됐다. 할머니들의 용기 있는 행동을 기억하고 그들의 인권과 명예 회복을 위해 전 국민이 마음을 모은다는 의미가 담겼다. 서울신문은 기림일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세계 1호 ‘평화의 소녀상’을 찾은 시민들을 12, 13일 이틀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세종시에 사는 권모(43)씨는 “일본이 할머니들이 돌아가실 때를 기다려 문제가 잊히게 하려는 건 큰 오판”이라면서 “시간이 흘러 생을 마감하는 건 자연현상이라 막을 수 없지만, 할머니들의 정신은 오래 남아 역사가 바른 쪽으로 흘러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 무원중 김민영(15)·정원희(14)·최다연(15)양은 학교 역사 수행평가 과제를 하러 소녀상을 찾았다. 김양은 “우리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힘이 돼 드릴 테니 할머니들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양은 “일본 정부는 불완전한 합의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고 진짜 사과를 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북에서 온 퇴직 교사 조영채(65)·김순희(60·여) 부부는 한참 동안 소녀상을 응시하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조씨는 “아내에게 의미 있는 기억을 남겨 주고 싶어 이곳을 찾았다”면서 “할머니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녀상 옆에 마련된 농성장에는 ‘소녀상 지킴이’ 대학생들이 있었다. 이들은 2015년 한·일 합의 이튿날부터 매일 2~3명씩 나와 24시간 동안 교대로 소녀상을 지키고 있다. 이소영(24·여)씨는 “피해 할머니들만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이라면서 “해결이 계속 늦춰져 혹시 할머니들이 더이상 증언하지 못하는 날이 오더라도 우리가 동력이 돼 그분들의 기억으로 굳게 서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개정된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올해부터 기림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했다. 여성가족부는 14일 오후 충남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에서 첫 정부기념식을 개최한다. 이 동산에는 세상을 뜬 위안부 피해자 49명이 안치돼 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100초 인터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위해 미국 자전거 횡단 나선 청년들

    [100초 인터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위해 미국 자전거 횡단 나선 청년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세상 밖으로 나오셨던 용기가 지금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든 것 같아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미대륙 자전거 횡단에 나선 청년들이 있다. ‘3A(트리플 에이) 프로젝트’ 4기 멤버 백현재(25·백석대), 이호준(22·인천대)씨가 그 주인공이다. 80일 동안 미대륙 6600km를 달리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는 두 사람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는 지난 8일 질문지를 보내고, 현지에서 두 사람이 직접 영상을 찍어 보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트리플 에이 프로젝트는 2015년 독도경비대 출신의 한 청년을 시작으로 올해로 4년째 이어지고 있다. 트리플 에이는 ‘Admit’(2차 대전 당시 식민지 여성들에게 성노예 역할을 강요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Apologize’(일본 정부는 심각한 인권 유린 범죄에 대해 진정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 ‘Accompany’(위안부 할머니들의 혼과 마음을 안고 동행한다)라는 세 영어 단어의 머릿자를 딴 프로젝트다.백씨와 이씨가 도전에 나선 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고통과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다. 백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는 ‘소녀상 지킴이’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활동가들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역사를 기억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필요성을 느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6월 23일 LA 산타모니카에서 출정식을 한 두 사람은 앨버커키, 오클라호마시티, 캔자스시티, 세인트루이스, 시카고를 지나 현재 피츠버그와 워싱턴DC를 향하고 있다. 최종목적지인 뉴욕을 향해 쉼 없이 페달을 밟고 있는 그들은 벌써 목표 여정의 절반 이상을 달렸다. 그 사이 많은 사람을 만났고, 위안부 피해 문제에 대해 폭넓은 이야기를 나눴다. 두 번의 수요집회도 열었다. 현지인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좀 더 깊은 관심을 갖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이씨는 “지금까지 LA와 시카고에서 수요집회를 마쳤다. 많은 분이 도와주셔서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워싱턴DC, 필라델피아, 뉴욕에서의 수요집회가 더 계획돼 있다. 잘 마무리하고, 웃으며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이 뜻 깊은 과정에서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섭씨 40도를 웃도는 폭염이 그들의 육체를 지치게 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씨는 “한번은 애리조나를 지나면서 고속도로 경찰에게 연락해 도움을 받았다. 더위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놀러 온 것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러 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버텨 냈다. 그 마음이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달려올 수 있게 한 것 같다”고 전했다. 미대륙 횡단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두 사람은 위안부 문제가 한일 간의 단순한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씨는 “위안부 문제가 여성인권 문제로 다뤄질 때, 더욱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여성인권 문제를 진정성 있게 알릴 수 있는 제삼국인 미국을 택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이 과정에 두 사람은 특별한 동지를 만났다. 시카고에서 만난 현지인 한 명이 이들과 뜻을 함께해 뉴욕까지 동행하기로 한 것이다. 안토니오 나바로(Antonio Navarro)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우연히 한 자전거 커뮤니티에서 두 사람의 사연을 접했고, 곧 합류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안토니오는 “뉴욕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고, 사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여성인권 문제라는 점과 이들과 함께라면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동참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1991년 8월 14일은 당시 67세였던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이다. 국내 피해자의 첫 증언이었다. 그리고 27년 세월이 흘렀다. 이에 백씨는 “현재 국내 생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스물일곱 분이다. 그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도록 ‘세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많이 기억하면 좋겠다. 남은 기간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각오를 전했다. 이들은 현재 시카고를 지나 피츠버그, 워싱턴DC, 필라델피아, 뉴욕으로 향하는 여정 한가운데에 있다. 이 길을 자동차나 오토바이로 횡단할 수도 있지만, 이들은 자전거를 선택했다. 자전거를 탈 때 느끼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단다. 이렇게 대한민국 청년 백현재씨와 이호준씨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위무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힘차게 페달을 밟고 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강제징용 재판거래 의혹’ 법관 압수수색 또 무더기 기각…법관에게만 높은 ‘문턱’?

    ‘강제징용 재판거래 의혹’ 법관 압수수색 또 무더기 기각…법관에게만 높은 ‘문턱’?

    검찰이 강제징용·위안부 소송 재판거래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법원행정처 전·현직 심의관과 대법원 재판연구관, 대법관 등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무더기로 기각돼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는 전날 강제징용·위안부 민사소송 재판거래 의혹과 법관들에 대한 인사불이익 의혹과 관련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 10여건을 청구했지만, 이날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모두 기각했다. 검찰은 강제징용·위안부 소송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고 외교부 직원들을 접촉한 법원행정처 전·현직 심의관들과 강제징용 재판에 관여한 전·현직 주심 대법관 및 전·현직 재판연구관들이 보관한 자료들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박 부장판사는 전·현직 심의관들에 대해선 “상관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따른 것일 뿐”이라는 이유로, 당시 재판연구관들의 경우엔 “사건을 검토한 것일 뿐”이라는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지 않았다. 또 대법관들에 대해서는 압수수색 영장은 “재판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할 수 있다”며 내주지 않았다. 박 부장판사는 그러면서 “법원행정처 자료들은 이미 충분히 제출됐고, 제출되지 않은 자료에 대해서는 법원행정처가 임의제출 요구를 거부했다는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사법행정과 관련해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취지의 일부 법관들의 진술을 확보하고 법원행정처 인사자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함께 청구했으나 역시 기각됐다. 박 부장판사는 “대상 법관이 직접 본인이 통상적인 인사 패턴에 어긋나는 불이익을 받았다고 진술하는 정도의 소명이 필요하다”면서 “이미 본인이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고 진술한 법관들에 대해 확인해 볼 필요는 있지만, 법원행정처에 요구하면 해당 법관들의 동의를 얻어 관련 자료를 제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영장청구를 기각했다. 검찰은 이처럼 법원에서 잇달아 무더기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된 것에 대해 유독 전·현직 법관들에게만 다른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강제징용 재판과 관련해선 외교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발부된 반면 법관들에 대해서만 영장이 기각됐다는 데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전·현직 법관들에게만 ‘관대한’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일관되게 반박하고 있다. 오히려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만으로는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된 개별 사건에 대한 관련자들의 혐의 소명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지난 2일 “영장심사에 있어서 청구서에 특정된 피의사실과 범죄 구성요건이 충족하는지, 피의사실에 대한 소명이 됐는지 등 외에 다른 어떠한 고려사항도 있을 수 없다”면서 “법원 구성원에 대한 영장이라고 해서 예외적으로 취급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과거 영장심사 경험이 있는 부장판사는 “통상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는 것은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고 보기 부족한 경우”라면서 “특히 어떤 조직의 ‘윗선’ 수사하기 위해서는 지시를 받은 하급자나 관련자들의 구체적인 진술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소’ 출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록물을 발굴하고 관련 연구활동을 지원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소’가 10일 출범한다. 연구소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내에 설치된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그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된 주요 연구자료들은 여러 민간기관과 박물관 등에 흩어져 있었다. 연구소는 앞으로 이 기록물들을 체계적으로 발굴해 추가로 연구한 뒤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 계획이다. 일본, 중국, 동남아권 사료에 대해서도 보존 방안을 강구한다. 아울러 미래 세대의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해 북한을 포함한 국내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초기 활동가 60여명의 구술 기록집을 외국어로 번역·발간해 국제 사회에 전하고, 국·영문 학술지와 학술 심포지엄 등을 통해 국제 공조 사업도 추진한다. 보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기록물은 ‘국가기록물’로 지정해 관리받을 수 있도록 하고, 역사적 의미가 깊은 자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www.hermuseu.go.kr)에서 누구나 손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정현백 여가부 장관은 “연구소가 세계에 산재해 있는 군 위안부 관련 사료들을 집대성해 앞으로 세계 전시(戰時)하의 여성 인권 연구의 중심축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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