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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위키리크스/노주석 논설위원

    지난해 4월 5일 고발·폭로 전문 비영리 웹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가 공개한 미군 아파치 헬기의 민간인 무차별 공습 동영상은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했다. 실전 상황이 아니라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2007년 7월 12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자행된 이 공격으로 1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화면 속 로이터통신 기자 2명이 소지한 카메라를 무기로 오해하는 과정과 사살 뒤 ‘나이스’라고 자축하는 조종사의 멘트는 공분을 자아냈다. 이라크 전쟁, 나아가 모든 전쟁의 진실에 대한 상념에 잠기게 했다. 미군은 정보분석병 브래들리 매닝 일병을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체포했다. 엄청난 충격파를 던진 18분짜리 비디오 한 편으로 위키리크스는 ‘진정한 폭로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얻었다. 2007년 1월 첫선을 보인 위키리크스가 미국은 물론 구린 구석이 있는 각국 정부를 떨게 하고 있다.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와 유사한 위키 기반 사이트는 해킹과 정보 제공자의 신상 유출을 막는 보안 시스템을 자랑한다. 비밀파일 700만건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설립자이자 편집인인 줄리언 어샌지(39)를 비롯해 상근 직원은 5명이지만 세계 곳곳에 800명의 자원봉사자가 있고, 매년 20만 유로의 기부금이 모인다. 어샌지는 호주 국적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이다. 위키리크스는 지난 7월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영국의 가디언, 독일의 슈피겔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전쟁 군사기밀 9만여건을 동시 폭로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기밀유출에 미국 정부가 발칵 뒤집혔다. 베트남 전쟁에 관한 미국 국방부의 위선과 기만을 뉴욕타임스에 알린 대니얼 엘즈버그 박사는 “펜타곤 비밀문건 유출사건 이후 최대 규모의 허가받지 않은 폭로”라고 평가했다. 위키리크스가 그제 아프간에 이어 이라크 전쟁 관련 군사기밀 문서 39만여건을 공개해 미국 정부를 녹다운시켰다. 이라크전에서 민간인 6만 6000여명을 포함해 10만 9000여명이 숨졌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감옥의 학대와 고문 등 미군의 인권유린 개입 및 방치 사례도 담겨 있다. 위키리크스 소개 글에는 “오직 자유로운 언론만이 정부의 비리를 효과적으로 폭로할 수 있다.”, “원칙 있는 폭로는 역사의 물줄기를 좋은 쪽으로 바꿨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중국판 위키리크스가 내년쯤 생길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에도 위키리크스가 출현할 것인가.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국위선양 마음으로 더 열심히 봉사”

    “국위선양 마음으로 더 열심히 봉사”

    아이티의 수호천사로 이름을 알린 이선희(여군 35기) 소령이 중령으로 진급했다. 육군은 14일 발표한 소령에서 중령 진급 대상자 중 아이티에서 유엔안정화지원단(MINUSTAH) 군수장교로 활동하는 이 소령이 포함됐다고 17일 밝혔다. 올해 1월 아이티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이 소령은 유엔안정화지원단에 참여하고 있었던 유일한 한국 군인으로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해 적극적인 구호활동을 펼쳤다. 이 소령은 지난해 11월 아이티 현지에 파견돼 유엔 평화유지군에 소속된 경찰에게 유류와 식량, 식수 등을 제공하는 임무를 수행해 왔다. 특히 지진 발생 후 사흘 동안 쉬지 않고 봉사활동을 펼치며 아이티의 긴박한 상황을 국내에도 생생하게 전해 한국군의 파병 결정에 큰 기여를 했다. 지진 발생 초기 외부 통신수단이 모두 파괴된 상태에서 유엔본부와의 연락을 위해 설치돼 있던 평화유지군의 위성전화기를 이용해 아이티 상황을 재빨리 국내에 전달한 덕에 파병 의사결정이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했던 것.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당시 유엔기지 내 기자회견장에서 이 소령을 만나 “이 소령이 여기서 근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면서 “앞으로도 열심히 해 달라.”고 격려한 바 있다. 육군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한 이 소령의 군인정신을 높이 평가해 중령으로 선발했다.”면서 진급 대상자 선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소령은 올해 11월 말까지 아이티에서 근무한 뒤 귀국할 예정이다. 이 소령은 “아이티 파병 단비부대 장병들은 모두가 개인이 아닌 국가의 대표자로서 국위를 선양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저도) 남은 기간 더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전했다. 육군은 올해 3064명의 진급심사 대상 소령을 대상으로 군인적 자질, 도덕적 품성, 업무수행능력, 전문성 및 잠재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모두 521명을 중령 진급대상자로 선발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노벨문학상 수상 바르가스 요사 작품세계·삶

    노벨문학상 수상 바르가스 요사 작품세계·삶

    남미 문학 하면 주로 ‘마술적 리얼리즘’을 떠올리지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사실성과 유머, 에로틱함을 겸비한 다양한 작품 세계를 펼쳤다. 사실적인 표현 방식, 빠른 사건 전개, 치밀한 구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요사의 문학 세계는 날카로운 위트와 재치, 풍부한 상상력, 짙은 휴머니즘 정신에 의한 공감과 감동으로 세계성을 인정받았다. 요사는 1936년 페루의 아레키파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외교관인 할아버지를 따라 볼리비아로 갔다. 아홉 살에 귀국해 수도원 부설 학교에서 소년 시절을 보내고, 1950년 리마의 레온시도 프라도 군사학교에 진학했다. 군사학교에서의 경험은 1963년 27살에 내놓은 첫 장편소설 ‘도시와 개들’에 녹아 있다. 외부와 단절된 군사학교를 배경으로 시험지 유출 등 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위선과 도덕적 부패, 폭력으로 얼룩진 페루의 정치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한 이 작품으로 요사는 어린 나이에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1953년 리마의 산마르코스 대학교에 입학해 문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5년 결혼했다가 1964년에 이혼했으며, 이듬해 지금의 부인인 사촌 패트리샤와 재혼해 2남1녀를 두었다. 요사의 젊은 시절은 지난해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자전적 장편소설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에 잘 녹아 있다. 이 소설은 ‘열여덟 살이나 먹은 남자 마리오와 서른두 살밖에 안 된 여자 훌리아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마리오가 일하는 라디오 방송국 인기 연속극과의 교차 편집을 통해 현실과 허구의 벽을 허물고 동시다발적인 인간 삶의 다양한 형태를 유머로 풀어 냈다. 대선에 출마할 정도로 요사는 사회 현안에 대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는 사회비판에는 성역이 없어야 한다며 독재 정권을 비판했다. 하지만 1971년 쿠바의 한 젊은 시인이 시집에서 쿠바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투옥되고 공개적으로 자아비판을 받은 사건을 계기로 우파로 돌아선다. 이 사건은 많은 지식인이 쿠바 정부의 이념적 경직성에 회의를 품게 했고 요사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이후 자신의 정치적 입장 변화를 설명하는 글에서 밝혔다. 우석균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는 7일 “요사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엇갈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 교수는 “199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를 요사가 변절자 취급한 적 있는데 그 역시 현재 좌파로부터 변절자, 백인 중심주의자로 비난받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1990년 대선에서 낙마한 것도 지나친 신자유주의적 공약 탓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요사의 작품을 예정작까지 포함해 5종 출간한 출판사 문학동네 해외문학팀의 오영나 부장은 “적당히 야하고 풍자적이며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등장하는 요사의 작품은 이미 한국에서도 충실한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며 “현실에 기반을 둔 상상력이 환상적인 데다 아이러니한 삶의 모습이 녹아 있으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강하다.”고 말했다. 요사는 1982년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후 남미에서는 28년 만에 처음으로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요사는 ▲1936년 페루 아레키파 출생 ▲1952년 16살에 희곡 ‘잉카의 도주’로 문단 데뷔 ▲1953년 리마 산마르코스대학에서 문학과 법학 전공 ▲스페인 마드리드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 ▲1963년 ‘도시와 개들’ 발표 ▲1966년 ‘녹색의 집’ 발표. 페루국가상, 스페인 비평상 수상 ▲1994년 세르반테스 문학상 수상
  • 김신영, 밥걸국걸 변신...”미쓰에이 지아 완벽 패러디” 극찬

    김신영, 밥걸국걸 변신...”미쓰에이 지아 완벽 패러디” 극찬

    개그우먼 김신영이 ‘밥걸국걸’로 변신, 패러디 여왕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김신영은 23일 방송된 MBC 추석특집 ‘스타댄스 대격돌’에서 걸그룹 미쓰에이(miss A)의 ‘배드걸 굿걸’(Bad Girl Good Girl)을 패러디한 ‘밥걸국걸’ 무대를 선사해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김신영은 미쓰에이 멤버 지아를 연상케 하는 핑크색 가발과 핫팬츠를 입고 등장, 완벽한 안무와 코믹한 가사로 패러디 여왕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특히 ‘배드걸 굿걸’ 노래의 하이라이트인 엎드려 춤추는 부분에서는 “누워서 먹는 모습을 볼 때는 복스럽다고 하고선 먹고 나니 산짐승으로 보는 위선이 난 너무 웃겨”라고 개사 모든 출연진을 폭소케 했다. 또 김신영은 “내 식비 감당할 수 있는 남자, 고기 굽고 불판 가는 남자를 찾아요”라는 가사로 웃음을 자아냈다. 방송 후 시청자들은 “역시 김신영, 패러디 여왕답다”, “방송내내 너무 웃겨서 혼났다”, “가사 하나하나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재치만점!”등 열렬한 반응이 이어졌다. 앞서 김신영은 빅뱅 지드래곤의 ‘하트 브레이커’, 비의 ‘레이니즘’, 서인영의 신데렐라를 패러디해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는 아이유가 손담비의 ‘퀸’을 선보인 가운데 그룹 비스트의 멤버 양요섭의 열렬한 환호가 네티즌들에게 포착돼 화제를 모았다. 사진 = MBC ‘스타 댄스 대격돌’ 화면캡처 서울신문NTN 이효정 기자 hyojung@seoulntn.com ▶ 동국대 성유리, 청순외모+뻣뻣댄스 화제 ▶ ‘여친구’ 신민아, 일주일 밤샘촬영 불구 ‘여신포스’▶ 김병만 ‘달인쇼’에 배꼽빠진 추석 안방극장▶ 1박2일 새멤버 제3후보는 지상렬 ▶ 씨스타 보라, 방송사고…"앗 하더니 무대에서 사라져"▶ 홍은희, 미쓰에이 둔갑…’배드걸 굿걸’ 완벽 소화
  • [연극리뷰] ‘VVIP’ 핵심은 비켜간 언론풍자 코미디

    [연극리뷰] ‘VVIP’ 핵심은 비켜간 언론풍자 코미디

    “4대강 사업이 시작된 이후 ‘병신 삽질한다.’는 말도 정치적인 말이 되어 버렸어. 이젠 웃을 거리가 없어요.” 뒤이어 저 높은 곳에 계신 ‘그 분’을 풍자하는 코미디를 들려준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걱정말아요. 이런 건 방송에서 안 하니까. 그랬다간 나도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사찰받을지 몰라. 요즘엔 입조심 몸조심이 최선이라고.” 연극 ‘VVIP’(박혜선 연출, 이다엔터테인먼트·극단 전망 제작) 도입부에서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 강한철(사진 가운데)이 늘어놓는 넋두리다. 영국 원작을 번안한 작품인데 ‘김제동·김미화 사태’ 등 최근 우리 상황을 녹여낸 솜씨가 제법이다. 집중력 강한 창작 희곡으로 올 상반기 화제를 모았던 ‘루시드 드림’의 차근호 작가가 번안 작업에 참여한 것이 눈에 띈다. 강한철은 어느날 프라이빗 뱅크에서 나온 직원 이항복, 오나래에게 불려간다. VVIP 고객으로 특별관리해줄테니 VVIP고객들을 위해 강연 한 번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이항복은 갖은 아양을 떨어대고, 오나래는 슬쩍슬쩍 노출해주면서 강한철의 환심을 사려한다. 서서히 경계심을 늦춰가던 강한철. 그러나 오나래와 술 마시다 마약에 손대고, 오나래를 겁탈하려 든다. 이항복, 오나래의 정체가 이 때 드러난다. 창간을 앞둔 옐로 언론의 편집장과 기자였던 것. 알코올 중독에 마약 중독에 성폭행 미수까지. 창간 특종에 걸맞은 반찬들이다. 강한철은 모든 일에서 쫓겨나고 만다. 블랙코미디인 만큼 진하게 배어 있는 풍자가 좋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원작의 포인트는 도덕성의 잣대로 대중스타의 위선을 쥐락펴락하면서 결국 제 잇속 챙기기에 여념없는 옐로 저널리즘 문제에 포인트를 맞추고 있다. 신정환, MC몽, 4억 명품녀 등 최근 연예계 이슈들을 언론이 어떻게 다루는가를 보면 비틀기를 시도할 대목도 많아 보인다. 4대강, 천안함, 인사청문회, 여당의원 사찰파문 같은 것들보다 연예인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는 왜 그리 유독 거창한 대접을 받아야 하느냐는 질문 말이다. 그런데 작품이 던지는 한국적 상황은 도입부의 코미디에만 그치고 만다. 정작 언론 문제를 건드리질 않으니 극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따로 논다는 느낌이 강하다. 극 막바지에는 부활을 노리는 강한철의 개인적 욕망만 남는다. 그에게도 언론 시스템에 ‘놀아난’ 희생자적 성격이 있음에도 말이다. 블랙 코미디의 좋은 소재가 눈앞에 있는 데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19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특채의혹 ‘몸통’은 누구

    외교통상부에서 유명환 장관 딸 특채 실무를 직접적으로 주도한 사람은 한충희 인사기획관이다. 한 기획관은 특채 심사위원 5명 중 내부 심사위원 2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관련 법을 위반하고 내부 절차를 무시했다.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면, 정부부처 인사 담당자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는데 한 기획관은 본인이 직접 내부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들어갔다. 또 외교부 규정상 내부 심사위원은 채용자가 배치될 부서에서 심사위원을 맡아야 하는데 이번 특채에선 해당 부서인 통상교섭본부 쪽과 별 관련이 없는 견제민 전 우즈베키스탄 대사를 심사위원으로 뽑았다. 한 기획관의 직속 상관인 임재홍 기획조정실장도 의혹의 중심에 있다. 그러나 임 실장은 6일 “밑에서 보고받고 알았을 뿐 지휘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묵인은 했을지언정 주도하지는 않았다는 얘기로 들린다. 외교부 직제상 임 실장의 윗선엔 신각수 1차관이 있다. 일각에서는 유 장관의 최측근인 신 차관이 사건을 총지휘했다는 관측도 있다. 신 차관이 임 실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한 기획관에게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신 차관은 유 장관의 지시를 받들어 일을 진행했다는 의혹도 있다. 특히 6일 행안부 감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특혜 작업은 유 장관 딸을 은연중에 잘 봐준 정도가 아니라 매우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진행됐다. 규정을 어겨가면서 심사위원을 선정하고, 채용 기준과 기간을 멋대로 바꾼 무리수를 실무선 독단으로 했다고 보긴 힘들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번 사건의 ‘몸통’이 외교부 최고위선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내가 총지휘 했다고? 왜 등뒤에 칼을 꽂나”

    “내가 총지휘 했다고? 왜 등뒤에 칼을 꽂나”

    “내가 무슨 일을 진두지휘했나. 나는 단지 담당자로부터 보고를 받고 알았을 뿐이다. 왜 등 뒤에서 칼을 꽂나.” 외교통상부 임재홍 기획조정실장이 6일 오전 실·국장회의에서 이렇게 발끈하면서 회의 석상이 발칵 뒤집혔다. 유명환 장관의 낙마(落馬)로 신각수 1차관이 대신 주재하던 회의였다. 유 장관 딸 특채 사건이 책임론을 둘러싼 조직 내분으로 비화하는 형국이다. 당시 회의 참석자는 “외교부 역사상 이런 일로 얼굴을 붉히며 공식 회의 석상에서 언성을 높인 적은 없는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회의에서 임 실장은 일부 언론에 자신이 특채 사건을 총지휘한 것처럼 보도된 데 불만을 표시하면서 “나는 지휘체계상 인사기획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것밖에 없는데 누군가 의도적으로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내 책임으로 몰아가고 있다.”면서 “이럴 때일수록 조직이 단합하고 차분히 감사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데 이렇게 없는 얘기를 지어내면 되느냐.”고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임 실장은 서울신문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는 유 장관 딸이 응시원서를 낸 뒤에야 실무선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알았다.”면서 “내가 특채를 진두지휘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임 실장은 이날 오후 기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정식으로 설명하겠다고 했다가 예정된 시각 직전에 돌연 취소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외교부 고위층에서 임 실장의 행동을 만류하고 나섰을 것이라는 추측이 돌았다. 오전 실·국장 회의에서 임 실장은 불만의 표적으로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았지만 외교부 안팎에서는 신각수 1차관을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소식통은 “지휘체계상 임 실장이 이번 사건을 주도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한편에서는 이번 사건을 유 장관의 최측근인 신 차관이 총지휘하고 한충희 인사기획관이 전면에서 실무를 맡았다는 얘기가 엇갈린다.”고 전했다. 신 차관은 유 장관의 서울고-서울법대 직속 후배로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다른 소식통은 “이번 ‘특혜 작업’은 측근 중에서도 극소수만 알았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다.”고 말했다. 만약 신 차관이 이번 사건을 총지휘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책임론의 칼끝은 외교부 최고위선으로 향하면서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외교부 고위직이 줄줄이 철퇴를 맞으면서 조직 전체가 일대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나아가 유 장관이 사건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는 증거가 드러난다면 외교부의 도덕적 추락은 회복 불능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또 진실 규명 과정에서 사건에 개입한 간부들끼리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사태가 노골화된다면 조직원들의 사기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신 차관은 회의에서 임 실장의 ‘공격’에 직접적 대응 없이 “국민들이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직원들이 단결해서 업무에 매진하고 단합된 모습을 보이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단합’을 강조했다. 이어 “외교부가 위기 상황인 만큼 이를 극복함으로써 거듭나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진력하자.”고 당부했다. 외교부는 산만해진 조직 분위기를 추스르고 부내의 소통을 강화하자는 차원에서 직원 연찬회를 갖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날 외교부는 하루종일 무겁고 음산한 분위기가 팽배했다. 특히 유 장관의 사퇴에 이어 행정안전부 인사감사 결과 특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자 긴장된 표정으로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감사결과를 토대로 외교부 관련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후속 인사조치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또 행안부가 다른 특별채용에 대한 인사감사도 진행하는 상황이어서 감사 결과에 따라 내부 조직이 더 큰 타격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그러나 외교부 관계자 중에 행안부의 감사 결과에 반발하거나 억울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만나기 힘들었다. 대부분 이번 사건이 잘못된 일이라는 데 공감하면서 바짝 몸을 낮추는 모습이었다. 김영선 외교부 대변인도 정례 브리핑에서 행안부 인사감사 결과에 대해 “직원 특별채용 과정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국민들에게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외교부는 이번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이며 외교부의 인사운영에 있어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 외교부는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부로 거듭날 수 있도록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데스크 시각] 윤리 불감증 시대/박현갑 사회2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윤리 불감증 시대/박현갑 사회2부 부장급

    “우리 사회의 윤리 불감증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 중심에는 위정자를 비롯한 지도층의 표리부동한 위선이 자리를 잡고 있다.” 2006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재완 의원이 노무현 정부가 위장 전입문제 등에도 장관 임명을 강행한 것을 비판하며 한 발언이다. 그는 이번에 고용노동부장관 후보로 내정된 상태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위장전입 의혹을 받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국회 인사청문회 시즌이다. 위장전입, 불법 재산 형성 등 온갖 의혹이 불거지고 당사자 측은 해명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여당 대변인은 위장전입 문제를 두고 ‘사회적 합의’ 운운했다 구설수에 올랐다. 더 문제되는 것은 “매번 이 문제로 인한 소모적 논란을 피할 수 있는 가이드 라인을 만들어 보자.”는 대목이다. 이는 소모적 논란이 아니다. 지도층 인사의 자질을 높이려는 것은 국가품격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학생들이 보면 뭐라 할까? “사회가 원래 다 그런 거 아니냐.”는 체념조 반응이 의외로 많다. 국제투명성기구 한국본부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남녀 중고생 1200여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반부패인식정도를 조사했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정직을 중요하게 여기는 청소년은 절반(51%)에 그쳤다. 한 사교육업체의 조사결과도 비슷하다. 중학생 2800여명을 상대로 ‘돈, 명예, 인기, 자아실현 등 직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상 중 가장 선호하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2.6%가 돈을 최고로 꼽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기성 세대의 잘못된 행태가 고쳐지지 않고 누적된 결과라 본다. 고도 압축성장의 풍토에서 ‘빨리빨리 주의’는 학창 시절엔 ‘성적 지상주의’로, 사회에서는 실적주의와 출세 지상주의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권력이든 재력이든 한정된 ‘파이’를 차지하기 위해 적지 않은 위법, 편법이 동원된다. 그리고 성공이라는 파이를 잡은 쟁취자에겐 ‘칼자루’가 주어진다. 하지만 그 과정의 합법성, 투명성, 그리고 공정성 여부에 대한 검증의 칼날은 솜방망이나 다름없다. 문제삼을 경우, 못 가진 자의 불만토로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실정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마저도 그런 통과의례 자리로 전락하는 양상이다. 이런 불편한 상황에서 잘못을 꼬집고 바로 잡으려면 불편한 세력과의 갈등이나 마찰이 불가피하다. 이를 이겨내는 내성을 길러야 하는데 쉽지 않다. 체념에 이어 여기에 적응하려는 속물근성이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밑바탕을 이루는 교육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학교와 가정에서 학업 못지않게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중학생 5명이 선생님 지도 아래 교실 복도 유리창 청소를 함께한다. 그런데 선생님이 자리를 뜨자 4명이 슬쩍 사라진다. 나중에 이를 교사가 알게 된다. 교사는 남아 있는 친구는 격려하지만 4명에 대한 훈육은 따로 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윤리점수는 외워서 높게 받을지 모르나 윤리의 가치는 점수에 있지 않다. 실천할 때 윤리의 진정한 의미를 체득할 수 있는데 그 소중한 기회를 잊었다. 한번 더 기회를 주겠다.” 왜 이렇게 일갈하는 교사는 신문지상에 나오지 않는지 모르겠다. 자녀가 영어학원에 가야 하니 방과후 청소에서 빼달라는 학부모가 있다는 실정이니 학교로서도 도리가 없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진정한 교육자라면 자기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 점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양심,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무성, 협동심이 더 소중한 일임을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인식이 학교는 물론 각 가정에서부터 확산되어야 한다. 그래야 인사청문회에서 정책 검증이 아닌 위장전입이나 재산 형성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갑론을박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eagleduo@seoul.co.kr
  • “한 남자 사랑한 게 이렇게 큰 대가를… 지나간 그 사랑 처음이자 마지막일 듯”

    “한 남자 사랑한 게 이렇게 큰 대가를… 지나간 그 사랑 처음이자 마지막일 듯”

    “한 남자를 사랑한 게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는) 세상의 모든 위선과 제약을 넘어서서 서로 교감하고 사랑하는 관계였다. 나에게는 지나간 그 사랑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다.” 학력위조 파문으로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씨가 3년여만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월간조선(9월호)과 인터뷰를 갖고 석방 후 근황과 ‘부적절한 관계’로 알려진 변 전 실장과의 관계, 학력 위조에 대한 해명 등 고통스러운 시간에 대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신씨는 변 전 실장과의 관계에 대해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하는데 누가 ‘꽃뱀’이고 누가 ‘제비’냐를 논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면서 “사건 당시 직책을 놓고 보면 그런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그 분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평범한 공무원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신정아라는 이름 앞에 항상 ‘학력 위조’라는 수식어가 붙고 ‘꽃뱀’으로 불리게 된 점과 온갖 추측과 억측으로 파렴치하고 더러운 인간으로 치부되는 점이 개인적으로 아픈 부분이라고 씁쓸해 했다. 신씨는 학력위조 혐의로 1년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고 2009년 4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동안 겪었던 일을 담아 책으로 출간할 계획인 신씨는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한 남자의 아내로 평범한 가정생활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른바 ‘신정아-변양균 스캔들’은 2007년 7월 신씨의 학력 위조 논란에서 시작됐다. 신씨가 미국 예일대 박사학위를 위조해 동국대 조교수에 임명됐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논란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이던 변씨와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나는 전설이다’ 김정은-김승수, 날선 카리스마 대결

    ‘나는 전설이다’ 김정은-김승수, 날선 카리스마 대결

    ’나는 전설이다’ 김정은과 김승수가 날선 카리스마 대격돌을 펼친다. 오는 9일 방송 될 SBS 월화드라마 ‘나는 전설이다’ 3회분에서 그동안 자신을 냉대하고 무시해오던 시댁과 남편에게 통쾌한 이혼선언을 한 전설희(김정은 분)와 남편 차지욱(김승수 분)이 이혼 조정 법정에서 뜨거운 신경전을 벌이기 때문. 극중 상류층 법조 가문인 시댁과 최대 로펌의 대표 변호사인 남편 차지욱을 상대로 세기의 이혼 소송을 준비 중인 전설희는 협의 이혼을 거부하는 차지욱과 결국 이혼 조정 법정에 서게 된다. 이혼 조정 법정에 선 차지욱은 철저히 가식과 위선으로 위장한 모습을 보여 전설희를 기막히게 하고 전설희로 하여금 독한 결심을 하게 만든다. 촬영 당시 김정은과 김승수는 실제 이혼 법정에 선 듯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감정 연기를 실감나게 표현해 스태프들로부터 “역시 연기파 배우들답다”는 극찬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특히 법정에 서기 전 독설과 독기로 아내를 공격하는 차지욱의 모습을 표현했던 김승수는 법정 안에 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아내만을 사랑해온 남자로 180도 돌변하는 차지욱의 모습으로 선보여 스태프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김정은 또한 가식적인 남편의 모습에 대응하는 불꽃 튀는 카리스마 연기로 현장을 숨죽이게 했다. 그 외 3회에서는 전설희와 차지욱의 법정 대결 외에 표독스러운 시어머니로 변신한 홍여사(차화연 분)와 전설희의 신경전, 장태현(이준혁 분)과 전설희의 ‘까칠한 만남’을 비롯해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게 되는 ‘컴백 마돈나’ 밴드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질 예정이다. 사진제공 = 에이스토리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84rornfl@seoulntn.com 서울신문NTN 오늘의 주요뉴스 ▶ 김현중"출연작마다 첫 신은 키스신…이젠 그러려니" ▶ 무한도전 아이돌 트레이닝 돌입…안무는 가희, 보컬은 정엽 ▶ 박명수 연예기획사 거성엔터테인먼트 설립…후배개그맨 키운다 ▶ 린즈링, 경호원 신체접촉 논란…지나친 경호 VS 의상문제 ▶ 옥주현 제자 이민용, ‘슈퍼스타K 2’ 3차예선 탈락…네티즌 "왜?" ▶ ‘롤코’ 이정아, 중졸 후 검정고시 통해 대학 1년빨리 진학’ ▶ 김가연, 임요환 부모와 경기장 찾아 응원…예비신부 입증?
  • [문화마당]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하여/김기봉 경기대 역사학 교수

    [문화마당]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하여/김기봉 경기대 역사학 교수

    인간은 말하지 않고 살 수 없는 존재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은 말이다. 인간은 말을 통해서 타자와 생각과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문명을 건설하는 존재가 됐다. 하지만 말은 인간에게 축복인 동시에 저주임을 얼마 전 우리 사회 자기 분야에서 출세한 한 남녀의 발언을 통해 깨닫는다. 이 둘이 던진 몇 마디 말은 몇 십년 동안 공들여 쌓아 올린 탑을 일순간에 무너뜨리는 폭탄이 됐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말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하지만 말실수가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의 말이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그들을 비난하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것으로 우리의 자화상이 지워질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자화상을 거울로 병든 우리를 반성하고 치유하는 일이다. 남성 국회의원의 말이 여성을 한 인간이 아닌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 대다수 남성의 무의식을 드러낸 것이라면, 여교사가 던진 농담은 군대에 대해 갖는 한국 사회 많은 여성의 정서를 대변한 발언이다. 따라서 이 두 말이 일으킨 소동과 파장은 개인이 아닌 사회 일반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남성 국회의원 발언이 언제부턴가 TV에 나오는 여성 아나운서가 방송 분야 전문인이 아닌 연예인으로 인식되는 경향과 관련이 있다면, 그에게만 돌을 던질 문제가 아니다. 한편으로는 성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말과 행동을 해서 인기를 얻고자 노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성적 대상으로 취급받는 것에 분개하는 위선을 당사자들은 물론 우리 사회 대다수 사람들이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여교사 발언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군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성찰해 봐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는 남자로 성장하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로 여겨져 왔다. 대한민국 모든 성인 남자는 빈부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동등하게 군대에 가야 할 의무를 가진다. 이는 모든 인간은 죽어야 할 운명을 가진다는 신의 평등만큼 대한민국 국민의 평등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국방의 의무는 대한민국 국가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시민종교의 기능을 한다. 한국남자는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원죄로 군대에 가야 한다. 그런데 주위에 군 복무 면제를 받은 ‘신의 아들’이 있다. 누군가가 그에게 면죄부를 판 것 같다는 의심이 들 때, 대한민국 시민종교에 대한 믿음은 깨진다. 지금 대한민국은 중세 말 루터가 면죄부 판매에 반대해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 같은 근본적인 개혁이 요청된다. 독재정권 시절 ‘반공’이 시민종교의 도그마였다면, 민주화 이후에는 개정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이 표현하듯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공화주의가 우리의 시민종교가 돼야 한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 때 죽은 군인들과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행태를 보면, 대한민국이 과연 평등한 시민들의 정치공동체인지 의심스럽다. 60년 이상 동안 남북한은 자유와 평등 가운데 무엇을 중심으로 정치공동체의 시민종교를 형성하느냐로 체제 경쟁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자유가 평등에 승리했다. 하지만 오늘날 남한사회는 평등을 희생시키는 자유란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에 심각한 갈등에 직면해 있다. 2010년 여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사회철학 책이 이례적으로 오랫동안 인문학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정의에 목말라 있는지를 웅변한다. 사회적 정의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성장이 유발하는 상대적 박탈감은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를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북한 김정일 정권보다 남한 이명박 정부가 더 정의로운 통치행위를 할 때, 그리고 북한사회보다 남한사회에 사는 한국인들이 더 정의로운 삶을 영위할 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시민종교의 교리가 될 수 있다.
  • [모닝 브리핑] 中 “한·미훈련 한반도 새 위기 초래할 것”

    중국 군사과학학회 부비서장인 뤄위안(羅援) 소장은 18일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웹사이트 런민왕(人民網)에서 네티즌과 대화를 갖고 한국과 미국을 겨냥, “양국의 합동군사훈련이 주변국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면서 “그 같은 군사훈련은 천안함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한반도에 새로운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최근 미국의 전략핵잠수함 3척이 아시아 지역에 동시에 출현한 사실을 언급한 뒤 “미국이 중국을 둘러싸는 ‘보름달형 방위선’을 이미 형성했다.”며 대응책 마련을 촉구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씨줄날줄] 송덕비/이춘규 논설위원

    전국의 도시·마을 입구에서 송덕비(頌德碑)를 쉽게 볼 수 있다. 조선시대 현감의 공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불망비(不忘碑)가 다수다. 임진왜란 때 지원했던 명나라 장수 송덕비도 있다. 유서 깊은 도시에는 수십개씩 송덕비가 늘어선 이른바 ‘비석거리’가 많다. 지방관들의 선정을 칭송하는 글을 새겨 선정비(善政碑)라고도 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는 아들 장수왕이 세운 송덕비였다. 마음대로 송덕비를 세울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공적 내용을 엄격히 심사했지만 엉터리도 많았다. 고부군수 조병갑은 아버지의 송덕비를 세운다는 핑계로 돈을 거두어들이기도 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한 배경이다. 주민들에게 비석 건립을 강요한 관리들의 위선과 악정에 대한 분풀이로 ‘비사치기(비석차기)’ 놀이가 있을 정도다. 반대로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송덕비를 세우려 해도 끝내 사양한 청백리도 적지 않았다. 순절비(殉節碑)·충렬비(忠烈碑)·대첩비(大捷碑) 등도 있다.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변 높이 5.7m의 거대한 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항쟁하다 삼전도로 나와 항복한 뒤 세운 청 태종 공덕비이다. 굴욕의 상징이라며 고종과 주민들에 의해 두 번이나 땅 속에 묻혔다가 홍수로 드러났고, 이전을 거듭하다 371년이 지난 올 봄에야 원래 위치에 옮겨졌다. 비문의 글씨를 쓴 오준은 치욕을 참지 못해 오른손을 돌로 짓이겨 못쓰게 됐고, 벼슬도 버리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부끄러운 송덕비가 많았다. 해방 뒤 상당히 사라졌다. 을사5적 박제순 등의 송덕비는 철거 논란이 뜨거웠다. 현대에도 송덕비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정치인이나 관료, 경제인, 예술인 등의 송덕비가 많지만 때로는 논란을 유발하기도 했다. 물론 송덕비가 많은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수백년이 지나면 풍화작용으로 내용의 해독이 어렵다. 오래 전의 한자들은 읽기 어려운 것이 많다. 이처럼 송덕비는 무상할 뿐이다. 12년간 재직하고 퇴임한 전직 동작구청장의 송덕비가 화제다. 서울 동작문화원이 지난달 30일 퇴임한 김우중(68) 전 구청장의 업적을 새긴 너비 1m, 높이 1.5m의 표지석을 최근 문화원 앞에 세웠다. 표지석에는 그의 약력과 학력, 수상 내역, 부모와 배우자의 이름 등이 쓰여 있다. 큰 덕을 기리기 위해 비를 세운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자발적 모금으로 세워졌다지만 뒷말이 무성하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조선의 性’ 밝고 개방적이었다

    ‘조선의 性’ 밝고 개방적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정말 성(性)이 억압당했을까. 성리학적 세계관을 생각하면 답은 “그렇다.”이다. 그러나 위선적인 도덕률 밑에는 언제나 욕망의 탈주가 깔려 있는 법. 반론은 딱 한마디면 된다. “하지 말란다고 진짜 안 했겠나.” 영화감독 김대우는 이 부분을 파고들었다. 전작 ‘음란서생’에서는 밤마다 저잣거리 세책점(오늘날의 도서대여점)에 하녀들을 내돌려 ‘흑곡비사’ 따위의 야한 소설을 구해다 읽는 주인 마님들의 독후감 장면을 담았다. 개봉작 ‘방자전’은 춘향 모독 논란이 있다지만, 정색하고 화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춘향전은 다양한 판본이 전해지는데 후대의 것일수록 춘향의 신분이 기생에서, 기생의 딸로, 다시 주막집 딸로 업그레이드됐다는 연구도 있다. 하룻밤 놀잇감에 불과한 천한 기생 따위가 지체 높은 양반과 진짜 사랑을 한다는 것은 조선에서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 세월이 흐르면서 질펀한 육욕과 신분적 차이가 희석됐을 것이란 추론이다. 서구에서도 그림 형제가 정리한 동화의 판본별 변화를 추적, 분석한 연구가 많다. 연구들에 따르면 원래 민담 수준에서는 남녀의 성기와 야합을 직접 거론하는 등 더 적나라했으나 정리 과정에서 빠지거나 부드러워졌다는 것이다. 가령 백설공주는 어려서부터 뽀얀 피부로 친아버지를 매혹시킨 근친상간의 팜므 파탈이었고, 개구리 왕자 도입부에 공주가 공(ball)을 가지고 노는 장면은 나른한 궁 생활에 지친 공주의 자유분방한 성생활 탐구를 뜻한다는 등의 분석이다. 오늘날 그림 형제의 동화가 말 그대로 얼마나 동화스러운가를 보면, 금욕을 내건 성리학의 조선에서, 더구나 비인간적인 예학을 강요하다시피 한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얼마나 많은 성에 대한 기록들이 사라져 갔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논의에 관심있다면, 1일 오후 4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소에서 열리는 강연을 챙겨볼 만하다. 소메야 도모유키 일본 이바라키 그리스도교대학 교수가 ‘조선시대의 음담, 밝은 성의 세계-한·일 자연관의 차이에 근거하여’라는 제목으로 강연한다. 소메야 교수는 2008년 후쿠오카의 한 고서점에서 ‘기이재상담(紀伊齋常談)’이란 책을 발굴했다. 상담(常談)은 민가의 얘기라는 뜻이고 ‘기이재’의 뜻은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조선 땅에 떠돌던 음담패설 모음집 같은 것인데, 19세기 말~20세기 초쯤 조선말을 배우려는 일본인들이 교재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포르노 덕분(?)에 일본어 지식이 늘어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책에는 학질을 치료한다는 핑계로 비역질(동성애)을 즐기거나, 관리가 민가의 아낙네를 당당하게 겁탈하기도 하고 부인이 남편을 두 명씩 두기도 했다는 등의 얘기가 우스갯소리처럼 실려 있다. 책은 최근 ‘조선의 음담패설’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소메야 교수는 강연에 앞서 내놓은 초록에서 “조선 때는 밝고 개방적이고 해학적인 성 문화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예로부터 한국에는 발달한 성 문화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소메야 교수는 “서민을 중심으로 (성 문화가) 문예화되거나 향수(享受)되어 온 게 아닌가 싶다.”면서 “(이런 연구가 축적되면) 유교적 이념적 문화가 중심이 되는 한국의 기본적 이미지에 큰 변혁을 재촉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으리들의 고결한 금욕주의는 책에나 있었다는 얘기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슈렉, 이젠 안녕~

    슈렉, 이젠 안녕~

    ‘슈렉, 이제 안녕’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시리즈 ‘슈렉’이 끝났다. 새달 1일 개봉하는 ‘슈렉 포에버’를 마지막으로 이제 더 이상의 슈렉 시리즈는 나오지 않는다. 숱한 화제를 뿌렸던 슈렉의 성공은 흥행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 궤적을 한바닥 정리해 주는 게 대작에 대한 예의일 터. 슈렉의 10년사(史)를 되짚어본다. 슈렉 1편(2001):새로운 어젠다 슈렉의 혁신성에 대해 무슨 찬양이 더 필요할까. 처음 이 시리즈가 나왔을 때 영화계가 받았던 충격은 컸다. 너무나 신선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이면서 할리우드를 조롱거리로 삼는 풍자, 특히 애니메이션을 지배했던 영화 제작사 월트 디즈니식 동화에 대한 과감한 전복은 기립박수를 받았다. 슈렉은 꾸짖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백마탄 왕자의 첫 키스를 받아야 존재감이 부여된다는 식의 수동적 여성상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가를. 여자 주인공이 자기보다 나은 ‘스펙’의 꽃미남과 결혼한다는, 기존 동화의 진부한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수술대 위에 올려 낱낱이 해부했다. 피오나 공주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이면서도 한편으론 날렵한 무술을 자랑하는 ‘엽기녀’이기도 하다. 슈렉을 위기에서 구해낼 줄도 안다. 마지막엔 슈렉과 사랑에 빠지면서 슈렉처럼 괴물이 되길 원하고 궁이 아닌 늪에서 살아가길 선택한다. 이는 자연히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며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교훈을 남긴다. 사람들은 외쳤다. “슈렉의 혁명은 이제 시작됐다.” 슈렉 2편(2004):어젠다의 심화 전편이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해 관객을 놀라게 했다면, 두 번째 시리즈는 그 어젠다를 심화하고 확장한다. 1편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 자칫 재탕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를 말끔히 불식시켰다. 흥행만 봐도 시리즈 역대 최강이다. 전세계적으로 9억 1980만달러(1조 1194억원)를 끌어모으며 역대 할리우드 영화 흥행 순위 13위에 올랐다. 2편은 전편이 강조했던 할리우드에 대한 조소,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부정을 기본 골격으로 유지하지만 이를 조롱하는 수위는 훨씬 농염해졌다. 특히 슈렉과 피오나 공주를 제외한 조연급 ‘기쁨조’들은 패러디의 진수를 선보이며 현실을 노골적으로 풍자한다. 슈렉의 외모와 대척점에 있는 프린스 차밍은 비단 같은 머릿결을 흔들며 자기 과시와 겉멋에 취한 할리우드 스타를 비웃는다. 순수함의 상징 피노키오는 여자 속옷이나 탐내는 변태로, 살인청부업자인 장화 신은 고양이에게는 ‘순수한 눈망울’을 부여해 겉만 보고 판단하는 우리의 위선을 야유한다. 특히 신데렐라 게이 언니의 출현은 대단한 도전이었다. 전체 관람가 애니메이션에서 금기나 다른 없었던 성(性)문제를 포용한 선례는 없었다. 그만큼 슈렉2는 공격적이었다. 슈렉 3편(2007):어젠다의 퇴보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전편에 쏟아냈기 때문일까. 슈렉3은 그만 퇴보하고 만다. 1편과 2편의 비판정신은 온데간데없고 풍자의 날도 무뎌져 버린다. 슈렉은 왕이 되길 거부하고 아빠가 되는 걸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유가 없다. 전편의 맥락상 권력에 회의적이었던 슈렉과 피오나의 성향을 전제한 때문이었겠지만, 아무래도 궁색했다. 슈렉 마니아들의 실망스러운 목소리도 커졌다. 이들은 슈렉3이 “뭘 비꼬는지도 불명확했다.”고 입을 모았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를 패러디했지만 왜 패러디했는지 풍자적 시선이 없었다. 그냥 복제로 끝났다. 상투적인 연설로 악당을 교화시키고, 다시 숲의 구석으로 돌아가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조차 지양하는 진부한 이야기 방식이었다. 슈렉답지 않은 식상한 교훈만이 날카로운 풍자가 머물다 간 자리를 꿰차버렸다. 대중적인 재미도, 어젠다의 진보도 없다 보니 “슈렉에 힘이 빠졌다.”는 비아냥도 들렸다. 그래서일까. 드림웍스는 대미를 장식할 슈렉의 마지막 시리즈를 만들고 슈렉 신화를 접기로 결정한다. 슈렉 4편(2010):어젠다의 재확인 전편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힘이 빠진 슈렉을 다시금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비장의 카드는 무엇일까. 슈렉 포에버는 반복되는 일상에 따분함을 느끼던 슈렉이 ‘겁나 먼 왕국’을 차지하려는 악당 럼펠의 마법에 속아 자신의 존재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떨어지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다뤘다. 전편과 연결되는 이야기라기보다 “과연 슈렉이 (1편에서) 피오나를 구하지 않았다면?”이란 전제에서 출발한다. 일단 슈렉 포에버에서 대중적 재미를 회복한 것은 큰 성과다. ‘마법에서 벗어나는 길=사랑하는 사람과의 키스’라는 디즈니식 기본 골격은 유지되지만 캐릭터의 변화를 통해 다시금 자신들이 했던 ‘전통의 전복’을 꾀한다. 왕자를 기다리다 지쳐 성을 탈출한 피오나는 현상금이 걸려 있는 괴물 해방 운동의 지도자가 돼 있다. 역시 피오나는 마이너리티를 고민(?)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새롭게 등장한 럼펠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붉은 여왕처럼 엽기적이면서도 정이 가는 캐릭터로 분했다. 마냥 밉상이 아닌 악역이란 점에서 할리우드식 권선징악과는 선을 긋는다. 결론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피오나와의 진실한 사랑과, 누추하지만 평범한 숲속의 삶에 대한 긍정이다. 슈렉 시리즈의 공통된 주제를 최종적으로 재확인시켜 주는 셈이다. 3차원(3D) 영화라 생동감도 배가됐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슈렉의 한계는 뚜렷해졌다. 디즈니의 반(反) 여성주의와 식상한 스토리를 비꼬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가진 것 하나 없는 서민 가족 공동체의 일상을 미화하는, 이른바 할리우드식 가족주의를 벗어나진 못했다. 이는 1편부터 4편까지 모든 슈렉 시리즈가 지닌 한계였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라.”는 미국적 보수주의의 한 단면일 수도 있겠다. 그렇기에 슈렉 시리즈는 ‘미완의 혁명’으로 명명하는 게 딱 적당할 듯싶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개도국에 행정비법 전수 국위선양

    정부대전청사 기관들이 해외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 제도나 각종 행정 노하우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국제기구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특허청은 개도국에 대한 지식나눔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기업 및 지역 발전을 위한 ‘APEC 1촌 1 브랜드’ 사업을 제안해 회원국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이를 계기로 지난 23~25일 서울에서 ‘APEC 1촌 1 브랜드 국제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에는 회원국 정부 대표와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 대표, 개도국 생산자 및 개발전문가 등이 참석해 브랜드 활용과 지재권 보호전략 등을 논의했다. 특허청은 동티모르산 커피에 ‘공정무역상표’를 개발, 지원했고 아프리카 차드의 ‘망고’ 브랜드 개발을 위해 생산자 대표 등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내년부터 WIPO에서 18억원을 지원받아 3년간 6개 특산품에 대한 브랜드 개발에 나선다. 향후 APEC 사업으로도 추진이 기대되고 있다. ‘현물’ 지원이 아닌 현지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을 제공해 저개발 국가의 자립을 지원하는 새로운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아프리카·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물·식량·에너지 등 삶에 필수적인 기본 기술을 보급할 계획이다. 이수원 특허청장은 “지식나눔사업은 공적 원조 방식의 다양성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이번 세미나를 계기로 아·태지역의 상표 개발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관세청도 선진화된 관세행정의 개도국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윤영선 청장은 지난 24일 벨기에에서 개막한 세계관세기구(WCO) 총회에서 역내 무역 활성화를 위해 개도국 세관 지원 연수 및 능력배양 프로그램 확대, 전문가 파견 등의 지원 계획을 밝혔다. 종합우수인증업체(AEO)제도 전파를 통해 국제물류 안전관리 수준도 높인다는 방침이다. 회의에 앞서 전 회원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관세청과 WCO는 국경관리연수원의 아·태지역훈련센터 지정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또 6월 말 지역의장 임기 종료를 앞두고 WCO 정책을 다루는 핵심운영그룹인 정책위원국에 선출돼 높아진 위상을 반영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연극·뮤지컬

    ●음악극 ‘그 놈이 그놈’ 7월25일까지 서울 대학로 알과 핵 소극장. 신체와 음악을 활용한 연극으로 유명한 극단 사다리움직임연구소가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에서 모티프를 따온 세태 풍자극. 전석 2만 5000원. (02)764-7462. ●연극 ‘스페이스 치킨 오페라’ 7월4일까지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 100년 뒤 우주를 날아다니는 치킨집의 인기메뉴 ‘까망 치킨’에 담긴 음모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위선을 풍자했다. 1만 5000~2만원. 1544-1555 ●연극 ‘빨간 구두’ 7월12일부터 25일까지 서울 대학로 미마지아트센터 눈빛극장. 실험적 신체극을 많이 선보이는 극단 몸꼴의 작품. 구두가 이끄는 대로 떠나는 정혜의 여행을 통해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1만 5000~3만원. (02)2636-4861.
  • [열린세상]북한·소련·중국 남침협의 진상과 의미/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열린세상]북한·소련·중국 남침협의 진상과 의미/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1949년 3월 김일성이 소련을 방문한 주목적은 스탈린으로부터 남침승인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스탈린은 김일성의 제안을 거부한다. 북한군대가 남한군대를 압도할 정도로 우세하지 않다. 남한엔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미국과 합의한 38도선 파기를 소련이 주도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해 6월 주한미군이 완전히 물러가고,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선포된다. 김일성은 소련의 군사지원으로 전력을 강화하면서 중국 공산군에 편입된 이른바 한인 3개사단을 1950년 1월까지 중국으로부터 돌려받는다고 보장받는다. 김일성은 무력에 의한 한반도 통일 가능성을 북한 주재 소련대사에게 제기한다. “남한에서 미군 철수는 38선을 지킬 명분과 능력을 미국 스스로 없애고 있다.” “왜 우리가 38선에 얽매여야 하는가.” 1950년 1월12일 미 국무장관 딘 애치슨의 한반도와 타이완을 제외한 극동방위선 발언은 김일성과 스탈린에게는 미국 불개입에 대한 믿음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1950년 1월 말 스탈린은 북한대사 슈티코프에게 비밀전문을 보내 “김일성 동지의 불쾌감을 이해하고 있으며”, 대남행동에 대해 “언제고 만나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알렸다. 이 전문이 스탈린이 북한의 남침을 간접적으로 승인한 최초의 문건이다. 김일성은 1950년 3월30일부터 4월25일까지 모스크바에 체류하면서 남침조건, 전쟁지원을 논의했다. 스탈린은 네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미군개입의 철저한 평가, 중국의 남침승인, 소련의 직접 참전에 대한 기대 포기 및 철저한 전쟁준비이다. 5월 중순 김일성은 마오쩌둥을 만나 스탈린의 남침승인을 알리면서 마오의 승인을 얻는다. 미군 개입시 중국은 군대를 보내고 소련은 무기를 보내 북한을 돕는다는 데 합의한다. 놀랍게도 마오쩌둥은 북한과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동맹조약을 체결하고 북한이 한반도 통일을 완수할 시 조약을 발효시킬 것에 대해 스탈린의 동의를 얻는다. 스탈린은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싸우게 되면 중국은 소련에 더욱 의존할 것이며 미국은 국력의 손실로 세계적 세력균형이 소련에 유리하게 이동할 것이라는 계산을 했다. 1950년 1월과 7월사이 유엔 안보리에 소련의 불참은 계획된 것이었다. 미국이 “행동의 자유”를 가지고 “보다 많은 잘못”을 저지르게 하기 위한 스탈린의 의도는 1950년 8월 체코 대통령 고트아트에 보낸 비밀전문에 보인다. 스탈린은 한국전쟁에 참여하는 부대 명칭을 중국인민 “지원군”으로 제시하고 중국인민지원군에 대한 항공지원도 한·만 국경지역에 한정하는 등 중·소동맹조약의 의무가 발동돼 미군과 군사분쟁에 들 수있는 상황을 최대한 회피했다. 김일성은 소련 군사고문단이 만든 “선제타격작전계획”에 따르지만 개전시기를 소련 군사고문단이 주장한 7월서 6월로 앞당긴다. 개전계획도 옹진반도의 진격에 의한 단계적 확전에서 비밀누설 위험 때문에 전 전선 공세계획으로 바꾼다. 중국은 10월2일 한국군이 38선을 돌파한 직후 스탈린과 김일성의 간곡한 파병요청을 받으면서 참전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대다수 정치국원의 반대와 소련 공군력 지원이 불분명해지자 그 결정을 스탈린에 알리지 않고 저우언라이를 협상사절로 모스크바에 파견한다.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중국이 파병을 재차 거부함을 알리면서 동북지역으로 조속히 퇴각할 것을 지시한다. 10월8일 미군이 북진하고 유엔이 한국통일부흥위원단 설립을 결정하자 마오쩌둥은 서둘러 파병명령을 내리지만 10월19일 평양이 유엔군에 장악될 때 중국인민지원군은 한·만 국경을 넘는다. 그리고 중국군은 사실상 한국과 유엔의 한반도 통일노력을 저지시켰다. 6·25전쟁은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다. 공산블록의 세력확장 기도에 적절한 억제책을 적용했다면 예방할 수 있었다. 6·25는 억제의 실패가 아니라 억제의 부재 때문에 발발했다. 휴전이후 한·미동맹과 주한 미군의 역할, 남북한 군사력 균형 및 중국, 소련과의 관계를 계속 점검해야 하는 이유가 억제의 취약점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또 억제를 넘어 한반도에 안정된 평화체제를 만드는 일, 평화통일은 한국전쟁이 남긴 중요한 교훈임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 [實錄, 한국전쟁] 이승만 휴전반대·북진통일 주장… 美 친위쿠데타 검토

    [實錄, 한국전쟁] 이승만 휴전반대·북진통일 주장… 美 친위쿠데타 검토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개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남한정부는 어떤 역할을 했으며, 어떻게 평가받을까. 북진통일을 외친 이승만은 한국전쟁 발발을 논하는 장에서 반짝 등장하지만, 한국전쟁 과정에서는 언급이 미미하다. 존재감이 없다. 러시아나 중국, 심지어 미국 자료들도 한국전쟁의 주역으로 이승만을 취급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반도의 남쪽을 지배하고 있던 남한 정부와 이승만은 단지 전쟁을 획책한 북한 김일성과의 비교 대상으로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휴전협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이승만의 극렬한 휴전반대가 주요 변수로 급부상했다. 이 시기 평양과 모스크바, 베이징 그리고 서울과 워싱턴 사이에 오간 각종 자료를 분석해 보면 ‘이승만’이라는 이름 석 자의 등장 빈도가 갑자기 높아졌다. 특히 1953년 6월18일 반공포로 2만 7000명의 전격적인 석방이 준 충격파는 컸다. 휴전협정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은 물론 평양이 발칵 뒤집혔다. 영국의 처칠 총리는 아침에 면도하다 이 소식을 보고받고 얼굴을 벨 정도였다. ●‘미국의 남자’ 이승만 美와 애증 미국은 진퇴양난이었다. 미국 국내의 들끓는 휴전여론과 달리 중국과의 휴전협상은 평행선을 긋고 있었다. 한국정부와의 관계는 이승만의 휴전반대로 말미암아 담벼락 위를 걷는 아찔한 상태였다.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간행한 ‘한국전쟁’에 따르면 “예측할 수 없고, 변덕스러운 이승만 정부의 자세와 행동이 특별히 어려웠다. 이러한 것들은 회담에 역기능적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협상을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떤 점에서 이 대통령의 조치는 유엔군사령부의 군사적 입장을 위태롭게 하기도 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승만은 어떤 종류의 휴전협정도 반대했다. 협상 자체를 거부했다. 오로지 남한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원했다. 그는 ‘중국군의 완전한 철수, 북한 공산당 해체, 인민군 무장해제’ 등을 협상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승만은 1951년 7월 “유엔군이 한국의 분할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보장해 달라.”라는 서한을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다. 트루먼은 이 대통령을 비난하면서도 협조를 요청하는 답신을 보냈다.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 합참보고서는 1952년 초 뉴욕 출신의 저명한 천주교 인사인 스펠만이 한국을 방문, 무초 미 대사와 벤플리트 8군 사령관이 함께한 자리에서 이승만이 “미국의 모든 천주교인이 한국에 휴전이 없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정보를 싣기도 했다. 미국입장에서는 수용 불가능한 무리한 요구였다. 미국이 한국의 지도자로 선택한 ‘가장 미국적인 한국인’인 이승만은 그를 키워준 미국을 거역하고 있었다. 소련이 김일성을 북한지도자로 지목한 것처럼 이승만도 미국에 의해 선택되고 키워졌다. 이 시기 이승만을 묘사한 미국 측 자료는 온통 노회, 변덕, 아집, 독선 같은 단어로 도배돼 있었다. 전쟁발발 이전 이승만을 접촉한 한국주둔군 사령관 하지는 “솔직하지 않고, 정서적으로 불안하며, 야비하고, 부패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악평했다. 이승만을 바라보는 미국의 우려가 오래됐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승만은 ‘미국의 남자’였다. 1905년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선발돼 백악관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을 방문해 인연을 맺었다. 미국이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중단할 수 있게 도와주길 바랐지만, 그때 이미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맺으려고 작업 중이었다. 서로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재량권을 인정하는 조약이었다. 이승만은 하버드대학에서 수학하고 나서 프린스턴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훗날 대통령이 된 윌슨의 제자가 됐다. 윌슨은 이승만을 ‘미래 한국의 독립을 위한 구세주’라고 부추겼다. 이승만은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하려 했으나 미 국무부로부터 여권을 발급받지 못했다. 이승만과 미국은 애증의 관계였다. 미국 지도부는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기독교인인 이승만이 미국식 종교와 정치 기조를 따를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마음속에는 미국에 대한 배신과 위선, 불신의 불씨가 자라고 있었다. ●이승만 ‘북진통일’ 정치적 구호 이승만의 또 다른 트레이드 마크인 ‘북진통일’은 남한주민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와 호응을 받았지만 득보다 실이 컸다. 김일성의 남한공격 본능을 자극하는 구실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스탈린으로부터 원조받은 무기와 군수물자로 완전무장한 북한 인민군과 비교하면 남한의 군사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전쟁발발 당시 한국군은 자신을 지키기에도 역부족인 상태였다. 전쟁 열흘 전인 1950년 6월15일 미 국방부에 보고된 군사고문단 보고서에는 ‘한국군은 가까스로 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장비와 무기 대부분은 쓸모가 없었고, 방어능력도 기껏 보름 정도’라고 기술돼 있다. 실제 인민군이 보유한 소련제 T34전차의 위력 앞에 한국군은 맥없이 무너졌다. 구형 바주카포는 무용지물이었다. 치밀하게 계산하고 준비한 김일성의 남침에 비해 이승만의 북진통일은 정치적 구호에 불과했다. 한국전쟁은 이승만의 의도와는 달리 종결을 향해 달려갔다. 미국 공화당이 1952년 7월 아이젠하워를 대통령후보자로 지명하면서 대세는 군사적 종결이 아닌 정치적 종결, 즉 휴전 쪽으로 기울었다. 대통령 후보자 아이젠하워는 같은 해 10월 디트로이트 연설에서 “명성을 걸고 한국전쟁을 조기에 명예롭게 종결짓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새로운 행정부의 정책은 한국전쟁을 끝내는 일에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젠하워가 당선됐다. 그는 12월2일 극비 한국방문길에 올랐다. 미 행정부 수뇌부는 남한의 정치적 위기는 전적으로 이승만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다고 여겼다. 이 같은 위기가 휴전협상뿐만 아니라 38도 상에 진행되고 있는 군사작전마저도 위협한다고 보았다. 실제 이승만은 1952년 국회 간선을 통한 재선이 어렵게 보이자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이른바 ‘발췌개헌’을 꾀했다. 임시수도인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대파를 제거했다. 한국군 전투부대를 철수시켜 계엄군으로 사용하려 했다.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이 나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개인의 군대로 사용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이승만은 막무가내였다. 전쟁을 끝내고 싶은 미국에 이승만은 골칫거리였다. 1953년 미국과 중국의 협상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지만, 미국과 이승만 정부와의 사이는 또 다른 고비를 향해 뒤틀려 갔다. 이승만은 4월5일 “판문점에서 무엇이 일어나든 관계없이 우리의 목표는 똑같다. 우리의 변함없는 목표는 한국을 남으로부터 압록강까지 통일시키는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에게 “유엔군사령부가 중국군이 압록강 이남에 잔류하는 것을 허용하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는 한국군을 유엔군사령부에서 철수시킬 것이며 단독으로 싸울 것”이라는 내용의 최후 통첩장을 보냈다. ●아이젠하워 한때 李 제거 계획 워싱턴은 이승만을 휴전협상의 훼방꾼이자 위협세력으로 간주했다. 특유의 허세라고 판단하면서도 극단적인 조치로까지 몰고 갈 것으로 예측했다. 달래기에 나섰지만 이승만은 클라크 사령관과의 회담에서 “당신들은 모든 유엔군, 모든 경제원조를 철수시킬 수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우리를 도울 것이라고 의존한 것이 우리의 실수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협력하겠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면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승만은 6월6일 ‘선(先) 한미방어조약 체결, 후(後) 유엔군과 공산군의 상호철군’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반쪽 휴전이나 평화보다는 싸움을 택한다.”라는 예의 벼랑 끝 외교전을 펼쳤다. 클라크 사령관은 “이 대통령은 송환 불원 한국인 포로를 경고 없이 석방할 수 있다.”는 예언에 가까운 메시지를 워싱턴에 보냈다. 포로경비부대 대부분이 한국군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유엔군은 이를 막을 수단이 없었다. 클라크 사령관의 예언대로 이승만이 반공포로를 석방하자 아이젠하워는 이승만 제거를 검토했다. 미국 수뇌부는 당시 한국에 임시군사정부를 수립하는 극비의 군사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공포로 석방 다음날인 6월19일 자 미국 국가안보회의 비망록에 따르면 아이젠하워는 “위험을 없애는 가장 빠르고 유일한 길은 쿠데타”라면서 “이는 확실히 고려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군사자문 기구인 합참은 1952년부터 쿠데타 계획을 세워 놓았다. 합참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은 6월27일 벤플리트 장군에게 이 계획을 통보했다. 한국육군과 참모총장은 유엔군사령부에 충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밀해제된 미국 합참보고서에 따르면 “이 대통령을 어떤 구실을 붙여 서울로 초대한다. 유엔군사령부가 부산으로 이동하여 주요 지지자들을 체포하고, 주요시설을 방호하며 한국육참총장을 통하여 기존 계엄령을 장악한다. 이 대통령에게 계엄령을 종결토록 요구한다. 만일 거부하면 외부와의 통신을 차단한 채 연금하고, 요망되는 포고령은 협조적인 것으로 예상하는 국무총리가 발표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李 재선 이후 美와 화해모드 다행히 워싱턴의 친위 쿠데타계획은 불발됐다. 현실론을 내세운 참모들의 설득으로 강력한 경고수준에서 그쳤다. 한국 국회도 대통령 직선제 헌법개정을 승인했다. 계엄령은 해제됐고 이승만은 제2대 대통령으로 재선에 성공하면서 화해모드로 전환됐다. 미국은 손을 들었다. 미국은 휴전동의를 얻고, 이승만은 그 대가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보호우산을 제공받는 선에서 양국의 갈등은 마무리됐다. 아이젠하워는 “한국의 통일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계속 추구한다. 휴전협정 수락 직후에 상호방위조약을 협상한다. 전후 경제원조를 계속한다.”라는 세 가지 조치를 약속했다. 이승만은 극단적인 휴전반대와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초강수를 통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이끌어냈다. 허물도 컸지만, 오늘의 한국이 있게 한 주춧돌을 놓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한국전쟁의 산물인 한·미동맹은 단순한 양자동맹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지역동맹”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를 저지하고, 중국을 봉쇄하면서, 일본을 견제하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동맹이라는 것이다. 노주석 논설위원·윤샘이나기자 joo@seoul.co.kr
  • [씨줄날줄] 욕망의 괴물/김성호 논설위원

    인간의 원천적 본성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대의 고금과 양의 동서를 관통해 발전해온 철학, 인문학의 요체도 인간본성의 천착이다. 고대 중국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은 본성을 선과 악으로 명쾌히 구분한 대척의 사상. 당대엔 정치·사상과 연결돼 치열한 논리싸움이 있었을 터. 하지만 본성의 선하고 악함을 떠나 수양을 통해 도덕적 완성을 이루라는 공동의 논지는 탁월한 울림으로 전한다. 성악설과 닮아 보이는 기독교의 원죄설도 운명적인 숙죄의 해제를 강조하는 신학설. 출생과 더불어 짊어진 죄를 털기 위한 사함과 구제노력은 신학의 교리를 떠나 인류공동의 목표로 자리잡아왔다. 성선·성악설이건 원죄설이건 바탕엔 욕망이란 공통의 단초가 자리한다. 누구나 태어나 죽을 때까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몸을 실어 부대끼는게 삶이다. 욕망을 제어할 근기를 타고 난다는 성선설이나, 감성적 악에 치우치기 마련이라는 성악설도 모두 욕망에 대한 경계일 것이다. 타력구제의 신학설인 원죄설도 욕망의 경계와 응징에선 다르지 않을 터. ‘삼계(三界)가 모두 불타는 집(火宅)’이라는 불교경전에서도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 중 가장 경계할 으뜸의 해악은 욕망(貪)이다.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을 어찌 선과 악의 간결한 이분 잣대로만 구분할 수 있을까. 우리 주변엔 양의 탈을 쓴 이리도 많고, 먹이를 먹을 때 눈물을 흘린다는 모순의 악어도 숱하다. 로마신화 속 전쟁과 평화를 상징하는 두 얼굴의 신 야누스며, 선인과 악한을 오가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도 역시 헷갈리는 인간 본성의 고발과 다름없을 것이다. ‘내 속에 욕망의 괴물이 있다.’ 최근 초등학생을 납치, 성폭행한 피의자 김수철이 현장검증서 남겼다는 말. 끔찍한 범행 이후 사죄와 회한치곤 철학적이다. 욕망의 끝에 뱉어낸 말의 진의가 알쏭달쏭하기만 한 것이다. ‘내 속에 살아온 욕망의 괴물’은 남의 것일까, 자신일까. 불교계의 환경운동을 이끌다 최근 잠적한 수경 스님.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더라.’며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일갈이 회자된다.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의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다.’는 말의 속내를 알기엔 시간이 꽤 걸릴 것만 같은데. 욕망에 휘둘리는 세상을 향한 고언인지, 세상에 속고 나 자신을 배신했다는 뒤늦은 발견인지. 두 사람이 세상을 향해 던진 욕망의 화두가 어렵기만 하다. 내 안에 살고 있는 욕망의 괴물은 어떤 것일지.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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