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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위문제 일단락에 朴총재 풀리고…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가 30일 ‘오픈하우스’를 했다.북아현동 자택에서 출입기자들에게 저녁을 냈다.총재 취임 후 처음이다.1년반만이다.달라진‘의욕’을 반영한다. 일정은 지난주에 잡혔다.‘고승덕(高承德)파문’이 일어나기 전이다.하마터면 사위인 고씨 때문에 취소될 수도 있었다.예정대로 진행했더라도 찜찜하게 맞을 뻔했다.그러나 고씨는 한나라당 후보를 사퇴했다.박총재로서는 다소느긋하게 됐다.스스로도 표현했듯이 ‘집안망신’을 털어버리게 됐다. 물론 완전히 마음을 놓게 된 것은 아니다.한나라당이 서울 송파갑 재선거를 앞두고 정치쟁점으로 키우고 있다.급랭정국이 박총재를 여전히 괴롭히고 있다.그렇지만 집안단속은 해결되니까 마음이 편한 눈치다.모처럼 웃음을 되찾은 것이 증거다. 박총재는 요즘들어 부쩍 힘을 내고 있다.친정체제 구축의지를 내보이고 있다.폭넓어진 식사자리도 그렇고,정책도 열심히 챙기는 중이다.이날 자택을개방한 것도 보폭의 확대를 의미한다.하지만 주류측 견제는 만만치 않다. 박총재 자택에는 철쭉이활짝 피어 있다.30년전부터 살아온 집이다.당시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이 준 80만원을 보태 샀다.
  • 세계청소년 무용축제…러·日등 9개팀 참가

    지구촌 청소년이 각 나라의 민속춤을 교류하며 평화를 기원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99 세계 청소년 무용축제’가 5월3일부터 나흘 동안 펼쳐진다. 한국현대무용진흥회와 국립중앙극장이 주최하는 이 잔치에는 러시아 ‘자바바무용단’,일본 ‘단다바하무용단’,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댄스시어터’,중국 ‘장쑤성(江蘇省)청소년무용단’,이탈리아 ‘센트로 스투디 단차 모비멘토무용단’ 등 해외5개팀과 예원학교 발레부·한국무용부,홍익초등학교 무용반,서울 송파구 청소년 발레단 등 국내 4개팀이 참가한다. 육완순 현대무용진흥회이사장은 “1,2회때보다 민속춤이 더 늘어난 게 특징”이라며 “청소년만이 아니라 가족단위로 즐길 수 있는 신선한 무대”라고밝힌다. 특히 5월5일엔 서울교육문화회관 우정의 광장에서 야외공연과 함께 ‘민속춤 배우기’코너를 곁들여 관객도 함께 참가할 수 있다. 청소년환자 위문공연,소년소녀가장,장애아,실직자자녀 초청 공연도 마련한다. 5월3∼5일 서울교육문화회관,6일 국립중앙극장 대극장.(02) 325-5702. 이종수기자
  • 정부, “남북한 交易路로 판문점 개방하자”

    정부는 오는 2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막되는 4자회담 5차본회담에서 판문점을 남북한의 ‘인도적 교역로’로 개방할 것을 북한에 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건우(朴健雨) 4자회담 한국측 수석대표는 19일 “지난해 3차본회담에서개최국인 스위스 정부는 시간과 경비를 절약할 수 있도록 판문점을 통해 인도적 물자를 북한으로 보내는 방안을 제시했다”며 “이번 회담에서 이런 사항을 중점적으로 토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대표는 또 “이번 회담에서도 남북한간 통신망 구축문제,군 인사교류 문제,군사훈련의 사전 통보및 관람문제 등 긴장완화 구축방안을 지속성있게 추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대표는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간에만 논의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이번 5차본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논의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朴대표는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와 별도로 지위문제를 논의하자고제의할 경우 정부의 기존 대응이 달라질수도있다”고 밝혀 보다 신축적인대응을 시사했다.
  • 美 무상사용 재산 반환해야-SOFA개정 조속매듭 촉구

    홍순영(洪淳瑛)외교통상장관은 14일 “우리는 미국이 사용중인 한국정부 소유재산의 반환과 한미주둔군 지위협정(SOFA)개정문제 등 한미간에 미결로 돼있는 문제들의 조속한 종결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장관은 이날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미협회(회장 鄭世永)’ 초청 강연에서 이같이 밝히고 “이러한 문제들이 21세기 한미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홍장관은 “민주적이고 개방된 국가들간의 성숙되고 책임있는 우정은 평등과 상호존중이 있어야만 지속적으로 함양될 수 있다”며 “그 우정의 생명력은 지속적인 점검과 갱신을 통해 좀더 잘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장관의 이날 발언은 주한미군 지위문제에 대한 협상이 지난 96년 9월이후 3년째 미국측의 무성의로 재개되지 못하는데다 미국이 무상으로 사용 중인9만여평의 반환문제가 20여년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앞으로 협상추이가 주목된다. 미국은 현재 용산 미군기지내 대사관 직원숙소 등 7곳의 한국 국유시설을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32)춘원 이광수

    시인이자 영문학자였던 송욱(宋稶) 전 서울대 교수(80년 작고)는 생전에 ‘사상계’에 기고한 ‘한국 지식인의 역사적 현실’이란 글에서 춘원 이광수의 편린 하나를 남긴 바 있다.문학소년이던 중학생 시절 그는 친구와 함께당대의 대문호이자 우상이었던 춘원 이광수를 만나볼 요량으로 춘원의 부인(허영숙)이 경영하던 산부인과병원으로 찾아갔다.간호사의 안내로 병원의 긴복도를 지나 온돌방에 다다르자 춘원이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은황송해하며 춘원에게 큰 절을 올리고 일어설 무렵 라디오에서 일본어 방송이 흘러나왔다.그러자 춘원이 “이 방송은 이세대신궁(伊勢大神宮)에서 올리는 ○○제(祭)의 실황 중계방송이죠”라며 자못 경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춘원은 일본군국주의 종교의식에 방송을 통해서 참가하고 있는 것이었다.의외의 장면을 목도하고 춘원에 대해 실망을 느낀 두 사람은 이내 그와 작별하였다.두 사람의 등 뒤에 대고 춘원은 “이제부터는 작품을 일어로도 쓸 수 있고 우리말로도 쓸 수 있어야죠”라고 권했다.이후로 그는 춘원의 글을 많이읽지 않았다고 적었다.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1892∼1950,창씨명 香山光郞).역사속에서 우리는 그를 어찌 볼 것인가?그의 당대에서부터 사후 반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려 왔다.문학적 업적을 강조한 ‘대문호’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민족반역자 ‘친일파’라는 평가도 있다. 지난 92년 그의 탄생 100주기를 맞아 유족·추종자들이 기념행사를 하면서작성한 한 자료에 의하면,그를 연구한 석·박사 학위논문이 40여편이나 됐다.그런데 그 논문의 주제는 전부 문학분야였다.그의 일제하 친일행적을 연구한 논문은 단 한 편도 없었다.이래놓고 그의 진면목을 탐구했다고 할 수는없다. 이처럼 그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는 생애 전반을 아우르기 보다는 문학분야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없지 않다.그에 대한 평가가 균형을 잃은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춘원처럼 ‘시대의 인물’로 활동한 자는 그가 활동할 당시의 시대상황과 당시 민중들이 그를 어떤 인물로 인식했느냐 하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춘원이 문인인것은 분명하다.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선민중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2·8독립선언’의 작성자이자 샹하이 시절 임정 기관지 ‘독립신문’을 만든 ‘민족지사’로서의 면모가 더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춘원의 변절에 대해 민중들이 안타까와 하고 분노해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춘원을 문인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마치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을 군인,만해 한용운(韓龍雲)선생을 스님으로만 평가하는 것과 다름 없다.춘원에대한 평가는 이래서 시각교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민족지사’의 거울에 비춰본 춘원은 어떤 모습인가.한마디로 형체를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일그러진 모습이다.그의 일생을 통해 정신사를 관통하고 있는 ‘친일’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춘원은 1892년 평안남도 정주에서 과거에 실패한 후 술로 세월을 보내던 이종원(李種元)의 장남으로 태어났다.아명은 보경(寶鏡).5세 때 한글과 천자문을 깨우치고 8세 때 동양고전을 두루 섭렵할 정도로 총명한 그였지만 10세때 콜레라에 걸린 양친이 사망, 천애 고아가 되었다. 그러던중 14세 때 천도교 유학생으로 일본 메이지(明治)학원에 입학하면서처음 신세계를 접하게 됐다.아직 인격적으로 미성숙한데다 별다른 학문적 기초나 바탕이 없는 상황에서 그는 제국주의라는 물결이 넘실대는 일본이라는거대한 ‘바다’에 내던져지게 됐다.그의 비극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주체의식을 키우지 못한데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도일 초기부터 문학에 심취한 그는 메이지학원 동창회보 ‘백금학보’(1909.12.15,제19호)에 일본어로 된 단편소설 ‘사랑인가’(원제 ‘愛か’)를 발표하였다.조선인 소년이 일본인 소년을 신격화하여 연모하는,일종의 동성애를 내용으로 하는 이 소설은 내용보다는 발표시점이 문제다.그가 이 소설을 탈고한 날짜(1909.11.18)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伊藤博文)를 처단한지 23일째 되는 날이었다.동양천지를 뒤흔드는 의거가 조선인 손에서 일어난 그 무렵 그는 하숙방에서 일본어로 소설을 쓰고 있었다. 1917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무정(無情)’을 발표한 후 ‘전조선여성의 연인’ 소리를 듣던 그는 본처와 이혼한 후 허영숙(許英肅)과 애정의 도피행각을 벌였으며 1919년 2월 도쿄 유학중 ‘2·8독립선언’을 작성,일약 민족지사의 반열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러나 그가 작성한 ‘선언’을 자세히 뜯어보면 “…합병 이래 일본의 조선통치정책을 보건대 합병시의 선언에 반(反)하여 오족(吾族)의 행복과 이익을 무시하고…오족에게 참정권,집회·결사의 자유,언론·출판의 자유를 불허하며…”라며 일제가 ‘합병’당시에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문제삼고있는데 이는 강도가 한 약속을 믿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해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로 건너가 2년 남짓 활동하다가 애인 허영숙의권유로 ‘독립신문’ 편집을 그만두고 사랑을 찾아 조선으로 돌아왔다.월탄박종화(朴鍾和)는 그의 ‘일기’에서 춘원의 귀순(歸順)은 총독부의 신변보장을 조건으로 허영숙이 설득한 결과이며 이 일로 허영숙의 첫 애인 진학문(秦學文)은 홧김(?)에 일본여자와 결혼해버렸다고 쓴 바 있다. 귀국(1921.3)도중 춘원은 선양(瀋陽)에서 체포돼서울로 호송됐으나 별다른 조사나 재판 없이 곧 석방되었고 두달 뒤 5월에는 허영숙과 결혼하였다.다시 9월에는 사이토(齋藤實)총독을 면담하는 등 그는 그때부터 이미 당국의비호를 받고 있었다.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듬해 5월 그는 잡지 ‘개벽’에 일제의 반독립 논리를 민족논리로 위장한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였다. 그의 동아일보 입사는 그 이듬해 23년이었는데 여기서 그는 월 300엔이라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보수를 받았다.24년 그는 동아일보에 다시 ‘민족적 경륜’이라는 대일 타협노선의 논설을 발표,어용적 민족개량·자치노선으로 기울기 시작했다.위의 두 글에서 그는 조선이 쇠퇴한 이유는 민족성이 타락했기 때문이라며 민족성 개조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기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약소국의 침략·지배를 정당화한 것을 배낀 것이었다. 중일전쟁 발발 1개월전인 37년 6월 그는 소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이내 병보석으로 풀려났다.이 단체 역시 발족 당시부터 총독부와 사전협의하에 조직된 단체이고 보면 독립운동단체라고 할 것도 없다.경기도 경찰부장 지바(千葉)는 “민족본능인지하수(독립사상)가 지표(地表)로 분출했을 때는 극격히 막지말고,버려두지도 말고,자연의 유력(流力)을 이용해서 바다로 흘러가도록 ‘도랑을 설치’하라”고 하였다.친일파연구가 고 임종국(林鍾國)은 “이 ‘도랑’이 바로‘민족개조론’이요,수양동우회요,‘민족적 경륜’이었다”고 분석했다. 한편 중일전쟁 이후 춘원은 전시협력을 위주로 보다 행동적인 친일대열에가담하게 된다.39년 중국에 출정한 일본군 위문단(북지황군위문작가단)결성식의 사회를 맡은 것이 그 신호탄이었다.이해 10월 결성된 조선문인협회 결성식에서 그는 회장에 추대되었다. 이듬해 2월 11일 ‘창씨개명령’이 선포되자 그는 그 다음날로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라는 모범적인(?) 창씨개명을 내놓으면서 일반인들의 동참을 호소하였다.그리고는 외쳤다.“…나는 지금에 와서 이런 신념을 가진다.즉 조선인은 전연 조선인인 것을 잊어야 한다고.아주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버려야 한다고.이 속에 진정으로 조선인의 영생의 길이 있다고…”.(‘매일신보’,1940.9.4) 심지어는 “조선놈의 이마빡을 바늘로 찔러서 일본인 피가 나올만큼 조선인은 일본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이런 그를 두고 단국대 김원모(金源模)교수는 “민족을 보전하기 위해 표면적으로 친일을 했을 뿐,그의 심저(心底)에는 독립정신이 살아 있었다”고 변호하고 있는데 공감하기 힘들다. 해방직후 춘원은 향리에 칩거하며 ‘나의 고백’ ‘돌베개’ 등을 쓴 바 있다.그는 인조(仁祖)가 병자호란 때 끌려갔다가 돌아온 조선여인들을 홍제원(弘濟院)에서 목욕시킨 후 정조문제를 거론치 못하도록 한 예를 들어 친일파문제도 이처럼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반민특위에 체포돼 마포형무소에수감돼 있던 그는 재산보전을 위해 허영숙과 위장이혼하는 교활함까지 드러냈다.일관된 친일과 타협으로 일제강점기를 산 춘원.그는 공사를 막론하고역사와 민족 앞에 단 한번도 진실한 적이 없다.
  • 이달 개최 4者회담 5차본회의‘주한미군’ 본격 논의될까

    남북한과 미국,중국 등 4국은 5일 한반도 4자회담 5차 본회의를 이달 안에스위스 제네바에서 열기로 의견을 모았다.5차 회의를 앞두고 ‘주한미군 문제’가 새삼 조명을 받고 있다.핵심은 주한미군의 지위문제를 회담 의제로삼느냐는 것이다. 당초 오는 12일 열릴 예정이었던 5차 회의는 북한의 일정조정 요청에 따라4국 실무접촉을 통해 ‘4월 개최 원칙’에 합의했다.다만 세부 일정과 의제선정은 추후로 미룬 상태다.5차 본회담부터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실질적 토의에 들어간다. 북한이 주장하는 주한미군 철수는 대외 선전용에 불과하며 현재 북한과 적대적 관계로 설정된 주한미군의 지위를 ‘중립적 관계’로 전환시키는 것이북한의 최대 관심사라는 주장이다.북한이 미군주둔을 인정,동북아의 ‘안정자’역할을 기대한다는 적극적 해석까지 나온다.지난 3차 회담에서 북한이주한미군 ‘철수’ 대신 ‘지위변경’이라는 용어를 사용,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적어도 5차 회담의 의제로 삼지 않겠다는방침이다.외교부 權鍾洛북미국장은 “평화체제 구축에 상당한 진전이 있을때 주한미군 문제를 포함해 한반도의 모든 군대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할수 있다”고 못박았다. 최근 洪淳瑛외교부장관도 “주한미군은 포괄적 대북 접근 구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남북 평화공존 체제가 정착되기 이전에 주한미군의 지위변경이나 철수 문제에 대해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배수진이다.한·미 양국을교란시키려는 북한의 고도의 협상전술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입장이다.
  • 국제사회 움직임

    국제사회가 코소보 난민처리에 초비상이 걸렸다. 알바니아계 난민이 연일 인접국가로 몰려들면서 이 지역내 물자부족은 물론지역불안마저 야기돼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나 유고연방은 나토의 공습저지와 발칸지역내 분열유발을 위해 알바니아계에 대한 강제추방을 조직적으로 자행하며 ‘인종청소’의 고삐를 늦추지않고 있다. 나토는 2일 유고공습 이전 180만명에 달했던 코소보내 알바니아계 주민중약 3분의1인 63만4,000명이 거주지를 떠났다고 발표했다.공습이 시작된 후에만 22만명이 떠났다.이는 보스니아 내전이후(90년대초) 유럽서 발생한 최악의 난민발생 상황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열흘간 동쪽의 알바니아에는 12만명,남쪽의 마케도니아에는 7만명의난민이 몰려들었으며 몬테네그로와 보스니아엔 각각 3만명과 7,500명이,터키는 4,000여명,불가리아엔 모두 2,300명의 난민이 밀려들었다. 더욱이 이들 인접국들은 대부분 유럽의 최빈국들로 끊없이 밀려드는 난민사태로 당사국들의 국내불안마저 초래돼 발칸지역 전체의 정치적 불안을 초래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현재 식량과 의약품,의복 등 생활필수품에 대한 부족사태를 겪으며 국제사회에 긴급원조를 요청해놓고 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등 국제구호기관들은 “난민사태가 거의 ‘인간재앙’을 우려할 수준”이라며 알바니아 북부를 ‘주요 인도적 비상사태’지역으로 선포했다. 한편 미국은 난민원조금으로 이미 5,000만달러를 제공한데 이어 2일에는 스트로브 탤보트 미 국무부 차관이 코소보 난민 수용을 요청하기 위해 발칸 주변국 순방에 나서는 등 코소보 난민돕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유엔세계식량계획(WFP)과 프랑스 등도 이날부터 구호품 공수를 시작하고 각국이 성금 및 위문품 모집에 들어가는 등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갈수록 적극성을 띠고 있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친일의 군상(31)문명기

    ◆경북 영덕 최고부자 文明琦 잊을만 하면 한번씩 기자를 찾아와 친일파·현대사 인물 등에 관한 자료(정보)를 제공해주는 분이 한 분 계신다.겨우 이름 정도를 알고 있을 뿐 그 분의 신상에 대해선 자세히 알 길이 없다.다만 그 분이 건넨 자료 가운데는 대단히 우수한 것들이 많음에 번번이 놀랄 뿐이다.자료와 함께 동봉한 메모를통해 그 분의 방대한 독서량과 해박한 지식에 대해서도 혀를 내두를 뿐이다. 특히 누구는 누구의 부친이고,누구는 누구와 사돈간이고… 등등의 ‘사람이야기’는 더욱 그렇다. 이런 이야기는 공간(公刊)된 자료나 문헌에서는 찾기 어려운 것으로 때로는 문헌자료 이상의 귀중한 가치를 가진다.지난 겨울에 찾아와 건넨 그 분의메모 속에는 일제때 상하이(上海)에서 일본군에 군납(軍納)을 하면서 떼돈을 번 손창식(孫昌植)을 비롯해 여러 명의 친일파가 등장한다.그런데 그중 한명은 한 때 자신이 그의 ‘괴짜인생’을 교훈으로 삼을 뻔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70년대 초반 어느 신문에서 그 사람의 출세비화를 다룬 적이 있는데그때는 그의 친일행적을 전연 몰랐다는 것이다.이야기는 대충 이런 내용이다. 일제때 경북 영덕 읍내 영덕경찰서장집 마당에 아침마다 팔뚝만한 삼치 한마리가 떨어져 있곤 했다.이를 이상히 여긴 그 집 식모가 어느날 아침 이를서장에게 고하자 서장은 주인공을 찾아보라고 하였다.며칠 만에 식모가 삼치를 떨어뜨리는 주인공을 잡고 보니 그는 지게에 생선을 지고 다니며 파는 생선장수였다.마침내 서장이 나와 무슨 연유로 매일 아침 마당에 생선을 놓고가느냐고 묻자 그 생선장수는 “서장님께서 치안을 잘 유지시켜 주시니 덕택에 저 같은 사람도 생업에 종사할 수 있습니다.달리 보답할 길은 없고 해서제가 파는 생선이나마 드려서 아침 밥상에 올리고 싶었습니다” 그의 말에 탄복한 서장이 “내가 뭐 도울 것은 없소?”하고 묻자 그는 “특별한 부탁은 없습니다만…밑천이 달려 물건을 많이 받아올 수가 없어서 겨우 지게꾼 행상을 하는 것이…”하고는 말끝을 흐렸다.그러자 서장이 “그럼내가 생선도매점에 소개장을 하나 써주겠소” 하고 약속을 하였다. 당시만 해도 거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던 경찰서장의 소개장 덕에 그는 이 일대에서 생선장사로 큰 돈을 벌게 되었다.생선을 미끼로 출세길을 튼 이사람은 일제 당시 경북 영덕 일대 최대의 부자 문명기(文明琦·창씨명 文明琦一郞)였다.일제로부터는 ‘애국옹(愛國翁)’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민족사에서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평가받고 있는 그의 삶의 궤적을 추적해보자. 문명기는 1878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문승환(文承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문씨 부자가 언제,어떤 경로로 경북 영덕에 뿌리를 내리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조선총독부가 시정 25주년 기념으로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朝鮮功勞者銘鑑)’(1935년 간행)에 따르면 그는 29세 때인 명치 40년(1907년)쯤 제지업을 시작한 것으로 나와있다. 생선장사로 돈을 모은 그가 제지업에 눈을 돌린 것은 이 일대가 종이원료가 풍부한 것이 계기가 된 듯하다.그는 자기 공장에서 종이를 생산하면서 다른 공장의 종이를 사서 이를 만주로 내다팔기도 하였다.사업이 번창해지자 그는 제지업계의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목하에 광제회(廣濟會)라는 재단법인을만들어 종이 생산·판매에서 주도권을 확보하였다.아울러 그는 이같은 이권단체를 통해 일제 관헌과 조직적으로 유착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산업과 제지업에서 자본을 축적한 그는 당시 유행하던 금광사업에투자하였다.일제 당시 대부분의 기간산업은 일본인들이 독차지하고 있어서조선인들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운(運)을 담보로 한 금광사업 정도였다. 따라서 이 분야는 조선인 사업가들이 일제로부터 별 간섭 없이 진출할 수 있던 분야이자 조선인 토착자본의 집중 투기대상이기도 했다.1932년 영덕군 지품면 도계에 있던 금은광산을 인수,자신의 이름을 따 ‘문명광산’으로 명명하였는데 그는 이 광산에서 ‘노다지’를 캐 향후 사업에 하나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한편 경북지방의 모퉁이인 영덕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그가 중앙무대에 얼굴을 내민 것은 1935년 그가 육·해군기 각 1대씩 비용으로 10만원을 헌납하면서부터다.그는 자신이 경영하고 있던 금광을 일제 당국의 주선으로 일본유수의 미쓰코시(三越)측에 12만원을 받고 매각하고는 그 대금 가운데 10만원을 비행기 헌납금으로 내놓은 것이다.어림잡아도 현재의 10억원 규모의 거액을 비행기 헌납금으로 내놓은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일제는 그를 ‘애국옹(愛國翁)’이라고 치켜세우며 대대적으로 선전에 활용하면서 그가 헌납한 돈으로 구입한 비행기를 ‘문명기호(文明琦號)’로 명명하였다.경성비행장에서 열린 명명식에는 일본의 해군대신 대리가 참석하였고 행사 후 해군기 6대가 축하비행을 하는 등 요란을 떨었다(매일신보 1935.4. 7). 이후 그는 곧바로 영덕 국방의회 회장에 취임하였고 다시 재향군인회 특별회원,일본적십자사 특별회원 등에 선임되었다.일약 이 지역의 명사로 등장한 그는 뒤 이어 경북도회 의원,중추원 참의에 피선돼 전국적인 인물로 부각되었다.명성과 함께 그의 친일 행위는 더욱 노골화되어 갔다. 그는 조선 전역에서 ‘1군(郡) 1대(臺) 헌납운동’을 펴자고 주창하고는 조선국방비행헌납회를 만들어 여기에 1만원을 기부하면서 대대적인 헌납운동을전개했다.이후 전국에서 군 단위나 단체별로 헌납 주체의 이름을 딴 ‘애국기헌납운동’이 꼬리를 물고 뒤따랐다.밀양 지역의 ‘밀양호 (密陽號)헌납운동’의 경우 총모금액은 10만원,모금대상은 전 밀양주민인 것으로 나와 있다. 한편 당시 ‘헌납병 환자’ 또는 그의 이름을 빗댄 ‘야만기(野蠻琦)’ 등으로 불린 그는 두 차례의 헌납에 이어 다시 육군과 해군에 각각 2만원,4만원을 헌납하였다.또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3년에는 비행기로는부족하다고 생각했던지 이번에는 ‘헌함(獻艦)운동’을 제창하고는 솔선하여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동광(銅鑛) 3개를 기부하였다(매일신보 1943.1.24). 대부분의 친일파들이 일제의 강요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수동적·소극적 친일을 한 반면 그의 친일은 다분히 의도적·적극적이라는 데 분명한 차이가있다.중일전쟁이 발발(1939.7.7)하자 그는 황군(皇軍·일본군) 위문차 북지(北支·북중국)로 가는 도중 평양에서 강연회를 개최,전쟁 미화를 골자로 한친일연설을 하였으며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경부선 주변 각도시를 순회하며위문결과 보고대회를 가졌다. 이듬해에는 의남(義男)단원을 강제로 모집,수많은 조선청년을 북지의 전쟁터로 내몰았으며 임전보국단 경북지부 상임이사,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일어판 친일지 ‘조선신문’사장,중추원 참의 등을 지내면서 일제의 침략전쟁협조에 광분하였다. 그의 대표적 친일행각 중 하나는 그가 전시하 황도(皇道)선양을 목적으로조선 내 각 가정에 ‘가미다나(神棚)비치운동’을 전개한 사실이다.‘가미다나’란 일본의 개국신(開國神)인 아마데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의 영부(靈符)를 안치한 것으로,이를 집안 높은 곳에 비치해 조상신으로 모시고는 아침저녁으로 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전국으로 보급하기 위해 광제회라는 보급단체를 조직,자신이 이사장에 취임하였으며 경성부윤(현 서울시장)을 명예회장에 추대,남산 조선신궁에서 가미다나 분포식을 거행하고는 1차로 서울시내 각 정회 총대(町會 總代,동장) 130여명에게 가미다나를 나눠주었다.이후로 조선 내 각 가정에서는 신사참배와 함께 일본황실의 조상을 강제로 받들어야만 했다. 평소 일본 신도(神道)의 철저한 맹신자였던 그는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한것으로도 유명하다.집안 치장이나 의복·언어는 물론 생활방식까지도 전부일본식으로 개조하여 철저한 일본인이 되고자 하였다.1943년 7월 그는 황도선양회를 만들어 자신이 회장에 취임하였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1949.1.29)돼 심판대에 올랐던 그는,호적에 따르면 이후 행방불명돼 생사확인이 곤란하다.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17)

    한국판 ‘주홍글씨’라 평가받는 ‘순애보(殉愛譜)’의 작가 박계주는 기독교적 휴머니즘과 민족주체성의 추구자세를 바탕삼아 대중소설을 계몽의 도구로 활용했다.만주의 간도 용정 출생답게 그는 독립운동과 광복 이후 분단현실을 어느 대중소설가보다 더 많이 다뤘으며,6.25 때는 박영준,김용호,김수영 등과 같은 문인처럼 납북 도중 탈출한 경력이 있다. 장편 ‘여수’는 1961년 6월 11일부터 같은 해 11월 28일 게재 중단 당할때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정치 이데올로기가 문제되어 신문 연재소설이 중단되기는 아마 이 작품이 처음일 것이다.시기적으로는 5·16군사쿠데타 직후의 다소 어수선한 상황이었지만 이 소설이 정면으로 주장했던 남북한 교류와 반공정책의 허울 아래 빚어진 독재권력의 부패상,여기에다 치명적인 쟁점이 된 8·15직후의 모스크바 삼상회담 결정안(세칭 신탁통치안)에 대한 비판은 당시 정치·역사학계에서도 미처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민감한 이데올로기적인 금지구역이었다.문제의 신탁통치에 대한 언급은 11월 28일자에대학교수이자 작가로 자유당 독재를 비판하는 소설을 써서 반정부 작가로알려진 이춘우가 유럽 여행 중 오스트리아에 들렸을 때의 착잡한 사념들을서술한데서 발단되었다.오스트리아는 제2차대전 후 미·영·불·소 4강국의분할통치라는 비운을 맞았으나,한국과는 달리 이를 수용하여 1955년 7월 분단이 아닌 통일 독립국가로,11월엔 영세중립국이 된 나라이다.이런 나라를여행하면서 작가 이춘우는 분단 조국을 떠올리며 아래와 같은 상념에 빠져든다. “춘우는 문득 고하 송진우(古下 宋鎭禹)를 생각했다.그는 신탁통치를 찬성했기 때문에 암살당했던 것이다.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당시 송진우의 의견대로 오년간의 국제신탁통치를 받았던들 오년 뒤엔 국제기구인 유엔에 의해 오스트리아처럼 통일되었을 것이다.국제신탁통치를 하게되면 북한남한으로 양단되지 않은채 몇 개 통치국가들이 남북을 공동감시하며 공동통치하게 되기 때문에 양립된 불가침의 군정은 없었을 것이다.그러한 견지에서 본다면 신탁통치를 반대한 이승만 김구 이시영 등의 인사들은독립투쟁을한 애국자이기는 하지만 앞을 내다보거나 앞을 저울질할 줄 아는 정치가가못되는 반면 송진우는 독립투쟁은 하지 못하였을망정 앞을 내다보는 구안(具眼)의 정치가라 할 수 있다.대체 해방직후 아무런 경제적 지반도 없고 경찰력도 군대력도 없고 행정적 정치적 훈련도 없고 산업도 마비상태였는데 ‘돈립국가’라는 문패만 붙잡고 어쩌자는 것이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아닐수 없다” 마지막 부분의 ‘돈립국가’란 ‘독립’의 오자인지 ‘돈으로 나라를 세우려 한다’는 풍자인지는 모르겠으나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대목이었다.물론 이 서술이 역사적인 진실과 일치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나 그 당시구전되어오던 금기사항을 이렇게 문자화 해 버리자 반격은 의외로 빨랐다.‘동아일보’ 29일자 1쪽에는 아래와 같은 2단 상자 사고(社告)가 실렸다. “ 사고.그간 본지 조간 4면에 연재해 오던 박계주씨 집필인 소설 ‘여수’는 비록 소설이라할지라도 지난 27일자 조간 게재 내용이 본사의 견해와 현저히 상이하므로 본사는 해 소설을금후 게재 중지하기로 결정하였음을 독자 제현에게 알리오며 아울러 사전에 발견하여 시정치 못하였음을 송구히 여깁니다.이 점 독자제현의 양찰을 바라마지않습니다.동아일보사” 이 소설은 비판적인 작가 이춘우의 유럽일대(프랑스·영국·독일·오스트리아 등) 여행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북한에서 모스크바까지 다녀와 최승희 무용단에서 활약 중 6·25 때 서울로 위문공연차 왔다가 도주한 김미전은 고모네 마루 밑에서 몇 달 동안 피신할 때 만났던 이춘우를 사모하게 된다.그녀는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 갔으나 간첩으로 몰리는 등 갖은 수모와 고생을 하면서도 무용가로 활동 중 춘우의 도움으로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김미전을 비롯한 주변 여인들과 남편의 관계를 의심하던 춘우의 아내 의숙은 홧김에 춤바람으로 놀아나면서 남편의 불륜을 기사화시켜 교수직에서 쫓겨나도록 만드나 후회코 자살을 기도하다 실패하고 정신병원에 수감된다.국내 망명자 신세가 된 춘우는 먼저 프랑스에 들러 미전을 만나야 하지만 미적대다가 6·25때 백마고지에서 전사한 아버지를 둔 파리의 창녀 이본느를 만나게 된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공무원의 공직시스템 자아비판

    “교육이 시작되니 안으로 들어갑시다” “그럼,부족했던 잠이나 자야지” 공무원 교육기관 관계자와 교육받는 사람 사이의 동상이몽이다.교육이 업무 수행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니 흥미와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다.어렵게 시간을 내어 교육을 받았지만 기껏 인사기록카드에 기록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결국 공무원 교육은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인적·물적 자원의낭비만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행정자치부가 16일 펴낸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에 실린 글의 일부다.‘늦었지만…’은 金正吉 청와대 정무수석이 지난해 행자부 장관 시절 펴낸 ‘공무원은 상전이 아니다’의 속편이라고 할 만하다.‘공무원은…’이 장관이지만 국외자의 시각에서 쓴 공무원 비판서였다면 ‘늦었지만…’은 공무원들의 자아비판서다.그러나 ‘공무원은…’이 공무원의 행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면 ‘늦었지만…’은 공무원의 행태를 그렇게 만든 공직사회의 경직된 시스템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은 지난해 행자부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공직사회의 병폐와 치유대책’을 조사한 것이 바탕이 됐다.무기명으로 이루어진 조사에서 직원들은 공직사회의 그릇된 시스템을 일일이 거론했고,그 주요내용이 정리되어 이 책에실렸다. ‘보신합시다’라는 글에서는 금기에 속하는 감사를 정면 비판했다.공무원을 무사안일의 표본이요 보신주의자들로 만드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감사라는 것이다.오로지 법과 규정이라는 잣대만으로 과정이나 당시의 형편,지역적인 여건을 무시하고 기준에서 1㎜만 벗어나도 결과만 가지고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우리 감사의 행태라는 것이다.그러다 보니 사회의 모든 시스템들이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음에도 감사분야만 뒤처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직도 밀실인가’에서는 공무원 정책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구조조정으로 동료들이 떠나는가 하면,그나마 받던 박봉도 삭감을 감수할 수밖에 없지만 정작 참기 힘든 것은 이같은 결정이 밀실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연말 불우이웃 돕기나 군 장병 위문 때도 언제 한번 물어나 보고봉급에서 떼어냈느냐는 내용도 있다.‘국민은 정부를 모른다’에서는 민원인들을 위해 각 부처가 하는 일과 담당자,전화번호를 담은 정부업무안내서를만들고,수익자 부담이라도 안내전화쯤은 필요하다고 ‘충고’하고 있다.
  • [국민의 정부 국난극복 1년] (3) 對北정책 입체화 전략

    金大中대통령 취임 2년째인 올해 대북 포용정책은 지난해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펼쳐질 전망이다. 康仁德통일부장관이 23일 밝힌 99년 업무계획에서 그 밑그림의 일부가 드러났다.金대통령의 한반도 문제 해법을 뒷받침하는 내용들이다. 기본방향의 하나가 대북 포용정책의 일관성 유지다.지난해 정경분리에 의한 남북경협 사업의 활성화,특히 금강산관광사업 성공으로 인한 자신감을 바탕에 깔고 있다. 더 주목되는 것은 국제적 차원에서 ‘포괄적 대북 접근’을 추진한다는 기본방향이다.금창리 지하시설로 다시 촉발된 북한핵의혹 문제와 북한과 미·일 관계개선 등 모든 현안을 일괄타결지으려는 구상이다. 林東源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이를 위해 최근 지구를 반바퀴 돌았다.지난달 26일부터 이달 중순까지 미국·일본·중국 등 주변 4강 중 세 나라를 순방했다.탈냉전 차원에서 대북 포용정책의 당위성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대북 포용정책의 확대는 북한체제의 조기붕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인식을대전제로 한다.지난 정부는 북한을 ‘고장난 비행기’로간주했다.북한에 대해 연착륙을 유도하는 온건 대응과 함께 흡수통일에도 대비하는 이중적 잣대를 적용했다. 통일부의 올해 업무추진계획은 북한체제의 조기붕괴 가능성이 엷어졌다는현실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연다는 당면 목표와 더불어 중장기 ‘공존정책’에도 비중을 두고 있다.대북 농업개발지원 및 지원창구 다원화 방침,중소기업 유상대출 검토 등 대북 투자 활성화 기반조성 방침 등이 그런 차원에서 마련됐다. 민족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하려는 것도 그 일환이다.남북한 공동발전 및 경제격차 해소에 중점을 둔 장기 프로젝트인 까닭이다. 한반도문제의 본질은 남북문제인 동시에 국제문제라는 점이다.이른바 ‘상황의 이중성’이다.따라서 대북 포용정책의 성공을 위해선 주변 4강과의 공조체제 유지가 어느 때보다 긴요하다는 지적이다.具本永 kby7@*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 국민의 정부 출범 1년.많은 것이 변했다.그러나 아직도 상당수 국민은 “과거에 비해 뭐가 달라졌느냐”고 반문한다.큰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변화의 ‘속도’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사회적으로 볼 때 국민의 정부 출범후 가장 큰 변화는 시민단체와 여성의입김이 세졌다는 것이다.시민단체 등 비정부기구(NGO)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민주화의 척도로 평가되며 세계적 추세에도 맞다. 시민단체 활동과 관련,정치개혁시민연대는 지난해 상시 국회출입증을 처음으로 발급받아 법안과 예산안 심의,청문회 등 의정활동을 감시했다.지난해 8월에는 파행국회가 장기화하자 경실련과 YMCA 등이 나서 의원세비 반납받기운동을 벌여 결국 국회를 정상화시키기도 했다. 시민단체들의 ‘소액주주운동’은 주요 기업 및 은행의 주총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의정부법조비리 사건은 시민단체 고발로 시작,사법개혁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는 출범 초부터 대통령 직속 여성특위,각 부처 여성담당관 설치 등 여성의 지위향상에 관심이 많았다.성희롱방지법과 여성차별금지법도 국회에서 입법됐다.공무원 여성채용 할당제,선출직 선거에 있어 여성 30% 할당제등 각종 제도적 장치들이 검토되고 있다. 실제 재경부·산자부·금감위 등에 외신대변인을 중심으로 고위직 여성관리들이 등장했다.여성 장관도 3명이나 발탁됐다.국회에서는 국민회의 秋美愛,한나라당 李美卿의원 등 맹렬 여성의원들의 활동이 돋보였다. 지난해는 또한 ‘건전한 시위문화’와 ‘새로운 토론문화’가 정착된 해이기도 했다.‘최루탄과 쇠파이프’로 인식되던 ‘폭력시위’가 거의 자취를감췄다.여권 관계자들은 ‘건전한 시위문화 정착’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두드러진 변화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97년 172회였던 쇠파이프·화염병 시위가 3회로 줄고,최루탄 사용량은 13만발에서 3,400발로 감소했다. 최루탄 제조 비용만 해도 연 12억5,000만원을 절약한 것으로 집계됐다.새로운 토론문화는 각종 정책입안 공청회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그린벨트 관련공청회에서의 불상사,국민연금 관련 여론수렴 미흡 사례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토론문화는 활기를 더해가고 있다.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도 같은맥락이다. 규제개혁도 빼놓을수 없다.지난 정권 5년 동안 3,000여건에 그쳤던 규제개혁은 새 정부 출범 1년동안 국회 통과 건수만으로 4,465건이나 됐다.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고 일황의 방한이 추진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사건’이다. ‘총풍사건’을 ‘인권신장’과 연관시켜 보는 시각도 있다.사건이 여야간정쟁으로 번지면서 ‘판문점 총격요청’이라는 본질이 야당측의 일방적 주장인 ‘고문조작 의혹’과 섞여버렸다.인권에 관한한 조그마한 의혹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탓이다.어떤 이는 ‘검찰 항명 파동’을 보고 “세상이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고 말한다.권위주의 정권 아래서는 상상할수 없었던 일이다姜東亨 崔光淑 yunbin@
  • 군산시, 실직여성-이웃 돕기‘뜨개질’ 공공근로사업

    전북 군산시(시장 金吉俊)가 실직여성과 불우이웃을 함께 돕기 위해 실시하는 ‘사랑의 뜨개질’이 화제다. 군산시는 올해 초부터 여성들을 위한 공공근로사업의 하나로 ‘뜨개질’을선택했다.뜨개질을 통해 만들어지는 조끼 등은 양로원 등 복지시설에 위문품으로 전달하기로 방침도 세웠다. 이에 따라 실직 여성 72명은 지난달 13일부터 군산시 영화동 여성복지회관에 모여 털조끼를 뜨기 시작했다.일당 1만9,000원씩을 받는다. 이들이 최근 3주동안 완성한 조끼는 210점.털조끼 한 점을 뜨는 데 들어가는 실은 약 네 타레로 재료비만 평균 2만원 가량 된다.재료비 등 800만원은공공근로사업 예산으로 충당했다.이 조끼는 지난 설날에 시내 양로원 3곳과고아원 4곳에 설빔으로 전달됐다. 이 사업에 참여한 실직여성 金모씨(33·여·군산시 소룡동)는 “직장을 잃어 마음이 심란하긴 하지만 내가 뜬 조끼를 불우이웃들이 입고 겨울을 따뜻하게 보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하다”고 말했다. 시는 다음달에는 소년·소녀 가장과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도 조끼를줄 계획이다. 군산여성복지관 金惠春부녀상담소장은 “겨울철 여성들에게 마땅한 공공근로사업이 없어 이같은 아이디어를 냈다”면서 “돈도 벌고 불우이웃도 도울수 있다는 점에서 호응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redtrain@
  • 노랫가락 사이에 안전운전 캠페인

    음악을 들으며 교통사고도 줄이자는 생각에서 안전운전캠페인을 삽입한 카세트 테이프를 현직 경찰관이 자비로 제작해 주위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동료경찰과 이웃 주민들의 호응이 크다. 성남시 분당경찰서 정보2계 소속 李康煥경사(52·성남시 분당구 수내동)는지난해 2월초 ‘Police Lee’라는 예명으로 전통가요 20곡이 수록된 테이프를 만들었다.무분별한 음주운전과 한순간의 부주의로 졸지에 곤경에 처하는가족들을 지켜보며 테이프 제작을 결심했다.“운전자 여러분 중앙선을 넘지말고 과속하지 말며 항상 안전운전하세요”,“가족을 위해 음주운전을 하지맙시다” 등의 말을 노래가락 중간에 수시로 집어넣었다. 李경사는 지금까지 1,500여개의 카세트를 동료경찰관과 주민들에게 무료로나눠 주었다.최근 도경찰청과 과천경찰서 등에서도 무료주문이 쇄도해 물량이 달릴 정도다.카세트 제작에 600여만원이 들었다.그래도 들어주며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람이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분당에 거주하는 한 사업가가 개당 3,000원씩 500개를 사가첫 수익을 올렸다.그러나 당초 돈이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에 얼마전 수익금 전액을 교통사고로 불행을 당한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전달했다. 젊은 시절 공군예술대에서 군생활을 하며 각종 위문공연 사회를 독자치했던 李경사는 지금도 틈만 나면 인근 양로원 등을 찾아 즐거운 노래마당을 펼친다.이달말에는 장애자와 독거노인,소년소녀가장들의 보금자리인 분당구 목련마을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위안잔치를 준비중이다. 李경사는 “제작한 음반이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지금은 팬도 생겼다”면서 “노래를 통해 주민들에게 좀 더 친근한 경찰로 다가서도록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국무회의(02일)

    金大中대통령은 2일 과천 국무회의에서 법조비리 척결과 경제개혁,설 문화정착을 강조했다.사회적 관심이 ‘검찰의 항명사건’에 쏠려있는 만큼 金대통령의 당부는 주로 이 문제에 무게중심이 실려있었다.“정치인 가운데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경제개혁에 시비를 거는 것은 정말 한심한 일”이라며 경제재건을 위한 4대 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하기도 했다.金대통령은 “이번 대전 법조비리사건은 과거 관행이라고 적당히 넘어가던것을 처음으로 문제삼아 척결하는 데 의의가 있다”면서 “국민이 바라는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그러면서 “과거 관행으로 ‘과연 이 일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아픔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문제는 관행이 아니라 적당히 넘어가던 것을척결하려는 태도”라고 힘주어 말했다.金대통령은 이를 “언젠가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이번에 한 것”이라고표현한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검찰과 사법부의 50년 관행과 부조리를 씻는 것으로 검찰 지도부는 결코흔들려선 안된다”고 힘을 보탰다.그는 누구보다 개혁이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일대 개혁을 해야한다”고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을 위로했다. 대통령령안▒회계보고등에 관한 예산회계법시행특례규정개정안 ▒새마을금고법시행령개정안▒인장업법시행령폐지안 ▒민·군겸용기술사업촉진법시행령안 ▒원자력에 관한 연구보조금 및 위탁연구비교부규정폐지안 ▒전통건조물보존법시행령폐지안 ▒직업안정법시행령개정안 ▒측량법시행령개정안 ▒교통안전법시행령개정안 일반 안건▒증권거래법개정안 ▒상호신용금고법개정안 ▒증권투자신탁업법개정안 ▒여신전문금융업법개정안 ▒선물거래법개정안 ▒신용협동조합법개정안 보고 안건▒설명절 어려운 이웃 위문 및 이웃돕기성금 모금협조 ▒설연휴 정부합동특별수송대책 ▒국민의 정부 1년 경제정책의 성과와 과제梁承賢 yangbak@
  • 검찰 발표 李변호사 수임비리 유형

    검찰이 1일 발표한 李宗基변호사 수임비리 유형에는 사건을 알선해주고 소개료를 챙기는 것 외에도 검사가 직무와 관련된 사건을 소개해주거나 친·인척 등의 요청에 따라 사건을 맡기는 등 법조계의 모든 비리가 망라돼 있었다.또 사건 소개와는 무관하게 전별금,떡값,술접대 등 금품이나 향응 제공도관행처럼 자리잡은 것으로 드러났다. 항명사건을 일으킨 沈在淪 대구고검장은 94년 9월∼95년 9월 대전지검장으로 재직하면서 李변호사로부터 10여차례에 걸쳐 1,000만원 어치의 술접대를받았다.또 李변호사가 전별금 명목으로 건네준 100만원을 받기도 했다. 諸葛隆佑 춘천지검장은 대전지검 차장으로 재직하던 93년 3월∼9월 李변호사로부터 휴가비와 전별금 명목으로 모두 200만원을 받았다.諸葛지검장은 특히 대전지검에서 수사하는 교통사고 사망사건을 李변호사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崔炳國 전주지검장은 93년 9월부터 1년여 동안 대전고검 차장으로 재직하면서 떡값,전별금 명목으로 4차례에 걸쳐 모두 500만원을 수수했다.尹東旻 법무부 보호국장도 대전고검차장검사로 재직한 95년 9월∼97년 8월 떡값 및선물대금으로 600만원을 받았다. 단순 떡값이나 전별금 외에도 병원 위문금이나 해외연수 여비조로 돈이 건네지기도 했다.柳모 차장검사는 대전지검 차장으로 근무하던 지난해 2월 李변호사로부터 병원 위문금조로 200만원을 건네받는 한편 친·인척의 사건을李변호사에게 알선하기도 했다.金모 검사는 96년 8월 대전지검 검사로 있으면서 해외연수 여비조로 100만원을 받았다. 崔모 고검 검사 등 검사 19명도 수차례에 걸쳐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떡값,회식비,전별금 등을 챙겼다.이밖에 梁모 고법 부장판사 등 판사 5명도 李변호사로부터 전별금 명목으로 100만원 이상을 받는등 변호사가 판·검사에게 돈을 ‘상납’하는 관행은 당연시됐던 것으로 밝혀졌다.姜忠植 chungsik@
  • 수사발표문 요지

    ▒수사경위▩사건발단 99년 1월7일 언론이 이종기변호사의 전사무장 김현으로부터 입수한 사건 수임장부 632장을 공개해 검찰·법원 직원,경찰관,교도관과 판·검사 등 200여명이 사건수임을 알선하고 소개비로 건당 20만∼300만원씩 받았다고 보도함.검찰총장 지시로 대전지검은 전담수사반을 편성,1월8일 언론사로부터 장부 복사본을 받아 본격 수사.대검은 1월10일 대검 차장검사가 수사를 총지휘토록 하고 소개인으로 나타난 전·현직 검사 및 5급이상 일반직 간부는 대검이 직접 조사토록 방침을 정함.▩수사기본방침 법조개혁이라는 국민의 열망을 반영해 수사대상을 언론에 보도된 사건수임 비리에국한하지 않고 금품수수나 향응제공 등 이종기변호사와 관련된 법조비리 전반으로 확대함.▩중점수사사항┥사건수임비리=이변호사,김현 전사무장,기타사무원 등 사건수임 대가로 금품을 제공한 혐의자들의 비리와 수임장부에 소개인으로 적힌 판·검사 등의 소개경위와 소개비 수수여부,직무관련성 등 사건을 소개,알선한 혐의자들의 비리.┥판·검사 기타 법원·검찰직원의 금품·향응수수=이변호사를 상대로 금품·향응을 제공한 사실조사를 하는 한편수표추적으로 판·검사의 금품·향응수수 사실을 확인함.특히 이변호사 수임사건의 검찰 처리과정에서 위법·부당한 결정이 있었는지 여부를 수사함.▒수임장부 내용분석▩장부 성격이 변호사가 업무처리 편의를 위해 작성한수임사건에 대한 일일 미제표임.▩장부내용 분석결과┥장부는 소개인·소개비 등이 적힌 사건수임료 내역표 100장,소개인은 있으나 소개비가 적히지 않은 미제사건 현황표와 민사사건 목록 653장,필사 메모지 1장 등 4가지로 구성됨.┥소개인 인원은 총 379명,소개사건은 1,137건이며 그중 소개비가 기재된 소개인은 122명,사건수로는 279건,소개비 누계액수는 총 1억6,630만원으로 한건당 평균소개비는 60만원.▒수임비리사건 수사결과▩사건처리내용(판·검사 제외)┥이종기 변호사와전·현직 사무장=이변호사와 김현 전사무장 구속기소,김정일 현사무장 불구속기소,정무광 전사무장 불구속 수사중.┥전·현직 검찰직원=형사입건된 총11명(현직 7명,전직 4명) 가운데 6명을 구속기소,4명 불구속기소,1명을 약식기소하는 한편 직원 5명을 징계에 회부.징계시효가 끝난 34명을 경고.소개비를 받지 않고 단순소개한 직원 25명 불문처리.┥법원직원,경찰관,교도관 등=법원직원 11명,경찰관 21명,교도관 4명을 각각 소속기관에 비위사실을 통보하고 소개비를 받은 일부 법원직원과 일반인 등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중.▩전·현직 구속 검찰직원 범죄사실┥배수만 대전지검 공안과장=12회 사건소개로 1,100만원 수수.┥박상정 대전지검 검찰주사보=13회 사건소개로 600만원수수,수사중 사건 2건 소개후 뇌물 80만원 수수.┥박경화 대전지검 운전원=6회 사건소개로 460만원 수수.┥문화 대전지검 경리계 기능직=6회 사건소개로 300만원 수수.┥김현복 전대전고·지검 검찰주사=12회 사건소개로 850만원수수.┥김길호 전대전고검 운전원=6회 사건소개로 280만원 수수.▒판·검사의 사건소개 부분 수사결과▩수사결과 판·검사가 변호사에게 사건을 소개한 경우는 대부분 친인척,친지,동향 사람 등의 요청에 따라 변호사를 추천하거나 소개해 준 것으로,소개비 수수사실은 없는 것으로 확인됨.▩전직 검찰간부 3명의 소개유형┥김○○ 전법무장관=의뢰인이 일방적으로 거론.┥주○○ 전서울고검장=서해훼리호 침몰사건 유가족의 국가상대 소송을수행하면서 이종기변호사에게 성실 수행을 부탁한 것으로 사건소개로 볼 수없음.┥김○○ 전서울지검 총무부장=변호사법 위반과 사기사건은 김 당시 부장이 소개한적이 없지만 의뢰인이 김부장을 거론했으며,석유사업법위반 사건 등 3건은 김부장과 이종기변호사 모두 소개사실을 부인하거나 기억에 없다고 진술함.▒판·검사 금품수수사건 수사결과▩수사결과 및 처리기준 이종기변호사가개업한 92년 8월 이후 지금까지 대전지역에 근무했던 검사 25명이 명절 떡값,휴가비,회식비,전별금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받고 판사 5명도 같은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남.▩검사별 처리내용┥대구고검장 심재륜(94년9월∼95년9월 대전지검장)=재직중 전별금으로 100만원을 받고 10여차례에걸쳐 각 100만원씩 모두 1,000만원 상당의 술대접을 받음.대검조사와 사표제출을 거부해 1월28일 근무지 무단이탈 및 품위손상 등으로 징계청구,직무집행정지명령 발령.┥전주지검장 최병국(93년9월∼94년9월 대전고검차장)=명절 떡값과 전별금 등 4회에 걸쳐 500만원을 받음.본인이 비리 여부를 떠나 도덕적 책임감을 느끼고 용퇴한다는 입장에서 자진 사표제출.┥춘천지검장 제갈융우(93년3월∼93년9월 대전지검차장)=휴가비,전별금으로 200만원을 받고대전지검이 수사하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사건을 소개.징계시효경과로경고후 인사조치 예정.┥법무부 보호국장 윤동민(95년9월∼97년8월 대전고검차장)=명절 떡값 등으로 5회에 걸쳐 600만원을 받음.비리 여부를 떠나 책임감을 느끼고 자진 사표제출.┥류○○ 차장검사(97년8월∼98년3월 대전지검차장)=98년 2월 본인이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문병온 임관동기 이변호사로부터 위문금 200만원을 받아 징계청구 예정.┥이○○ 차장검사(98년3월∼현재 대전지검차장)=휴가비,떡값 등으로 2회에 걸쳐 200만원을 받아 사표 제출했음.비록 의정부 법조비리사건 이후 받았지만 이변호사와 연수원 동기이기 때문에 순수한 정으로 받은 점이 인정됨.┥최○○ 고검검사(93년9월∼95년9월 대전지검 특수·형사1부장)=회식비,떡값 등으로 5회에 걸쳐 500만원을 받아 사표제출.┥정○○ 부장검사(93년9월∼94년9월 대전고검 검사)=회식비 등으로3회에 걸쳐 150만원을 받아 경고후 인사조치 예정.┥김○○ 부장검사(96년3월∼97년2월 대전지검 공안부장)=떡값 등으로 2회에 걸쳐 150만원을 받아 경고후 인사조치 예정.┥이○○ 부장검사(92년3월∼94년9월 대전지·고검 검사)=명절 떡값 등으로 6회에 걸쳐 400만원을 받아 사표제출.┥정○○ 고검검사(94년3월∼96년7월 대전지검 검사)=명절 떡값,회식비 등으로 5회에 걸쳐 450만원을 받아 사표제출.┥이○○ 검사(95년9월∼97년8월 대전지검 검사)=명절 떡값,전별금 등으로 4회에 걸쳐 180만원을 받아 경고후 인사조치 예정.┥김○○ 검사(96년3월∼98년3월 대전지검 검사)=해외 장기연수 여비조로 100만원을 받아 경고후 인사조치 예정.┥수표추적 결과 소액 확인된 검사 12명=92∼96년 사이에 명절때 10만∼50만원의 떡값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각각 경고조치.
  • 설날 위문품 공개입찰 특혜 의혹

    광주시가 설날 위문품을 구입하기 위한 공개입찰에서 특정회사 제품을 명기해 물의를 빚고 있다. 시는 이번 설날 어려운 이웃의 위문을 위해 모두 8종 1억7,000만원 규모의물품을 구입키로하고 양말·종합선물·참치세트 등 3,000만원 이상 3개 품목에 대해 최근 입찰공고문을 냈으나 규격난에 특정사 제품을 명기해 특혜의혹을 사고 있다. 신문 배달원에게 지급할 양말은 4,900만원 어치를 입찰공고하면서 ‘무등’으로 특정상표를 기입했으며 미화요원 등에게 줄 종합선물세트(3,500만원 어치)는 ‘LG화학 종합4호’로,참치세트(4,400만원 어치)는 ‘동원 4종’으로 각각 표기했다. 이처럼 공고문에 특정 업체명이 명기된 채 발표되자 같은 종류의 제품을 만드는 업체가 항의하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다.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제품명 명기는 품질과 규격을 예시하기 위해 표현된 문구이고 최저가 입찰이기때문에 타사제품도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 ‘99문화를 여는 사람-아트선재센터 부관장 김선정

    미술가들이 그 총량(總量)의 바다에다 한 방울이라도 보태기 위해 애쓰는미(美)는 물론 미술과 별 상관이 없는 일반 사람들 것이다.그래서 미술품의저수지라 할 미술관들은 일반의 미의식으로 곧장 흘러가는 관개수로를 열어야 한다. 지난해 여름 서울 소격동에 문을 연 아트선재센터는 물샐 틈 없는 저수지벽을 연상시키는 외관과는 반대로 일반에 잘 ‘열려’ 있다.관람료를 2,000원이나 받고 있지만 경영이나 전시기획 책임자의 미와 미술에 대한 의식이자기 미술관 안에 갇혀 있지 않고 ‘대아’적으로 열려 있다는 뜻이다.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친딸로서 선재센터 부관장 겸 선임 큐레이터인 김선정(34)씨는 미,미술,그리고 한국 미술계와 미술 정책에 대해 뚜렷한 의견을 가지고 있으며 비판적인 톤이 돋보이곤 한다.그러면서도 아주 낙관적인 전망을드러낸다. “현재 틀로는 우리 미술이 문화의 세기라는 21세기를 맞아 해외로 진출하는 데나 일반과 소통하는 데 문제가 많아요.기성의 작가 위주로만 틀이 꽉짜여 있을 뿐 대국적 견지에서 작가들에 대한 지원체계가 미비합니다.새로나오는 작가와 일반 사람에게 손해가 돌아갑니다” 국내 소개도 문제지만 해외 진출 면에서는 거의 준비가 없다고 꼬집는다.정부나 미술계 모두 일본이나 독일에 한참을 뒤졌는데도 21세기니 말만 요란할 뿐 바깥에 우리를 알리는 데 “톡,톡,톡,아무렇게나”하는 즉흥성을 못 버린다는 것이다.그러나 우리 미술,특히 ‘어려운’ 현대미술이 바깥에 알릴것이 대체 있기나 하다는 것인가. “있고 말고요.”라고 그는 즉답한다.이어서 외국으로부터 한국 작가를 소개해달라는 주문이 많지만 마땅한 해외용 자료가 없어 올해 이에 알맞는 작가 파일 작업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에게서 보다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창의성’에 대한 높은 존중심과 이를 가리는 예리한 칼날이다.괜찮은 작가가 많다고 하면서도 그의날카로운 시각에 ‘베이지’ 않는 예술인이나 문화 현상은 드물어 보인다.그에게 창의성이란 국내외 대학에서 6여년 동안 달려 들었던 서양화를 포기토록 한 아름다운 심연같은 것이다. 그는 주류 문화에 다소라도 오불관언할 수 있는 하위문화의 부재 현상을 안타까워 한다.우리 교육 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더 나아가 우리 심성에고집이나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하고 진단한다.‘빈 말’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미술에 대한 사랑,아트센터에 대한 애정은 이런 흠을 한치라도 바로잡는 데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선정씨는]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나와 미국 미시건주 크랜브룩대에서 계속 회화 공부.92년 뉴욕시 휘트니 박물관에서 큐레이터 인턴십.93년 귀국,국립 현대미술관거쳐 경주 선재미술관,서울 아트선재센터 큐레이터.
  • 日 자민-자유 聯政 출범 보수세력 다시 뭉쳤다

    │도쿄 黃性淇 특파원│일본 자민당과 자유당의 연립정권이 14일 발족했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는 이날 자유당 노다 다케시(野田毅)간사장을자치상에 기용하는 소폭의 개각을 단행,연립정권을 출범시켰다. 집권 자민당은 97년 9월 사민당,신당 사키가케와의 연립해체 이후 16개월만에 연립정권에 복귀했다. 양당은 이에앞서 13일 자위대의 유엔 다국적군 참가,유엔평화유지군(PKF)법 개정을 통한 후방지원 활동,중의원 정수 50명 삭감,부(副)대신제 신설 등에 합의했었다. 개각에선 20명인 각료수를 18명으로 줄이기로 한 양당 합의에 따라 운수상이 홋카이도(北海道)개발청장관,문부상이 과기처장관,건설상이 국토청장관,관방장관이 오키나와개발청장관을 각각 겸무토록 했다. 이번 연립정권의 가장 큰 특징은 보수세력의 재집결.93년 자민당을 탈당했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당수를 비롯,보수 본류(本流)로 자처하는 인사들이 상당수 포진하고 있는 자유당과의 연립으로 집권 자민당은 보수의 ‘화학적 결합’을 이뤄낸 셈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8월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초강경 자세로 선회한 대북(對北)정책도 보다 강경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이달초 방한한 노로타 호세이(野呂田芳成)방위청장관의 “북한이 미사일 실험발사를재실시하면 일본의 경수로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언급도 이같은 흐름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방위문제도 마찬가지.양당이 유엔 다국적군 참가나 유엔평화유지군(PKF)법개정 등에 합의,자위대의 해외 활동의 폭이 크게 넓어지게 된데다 군비증강논의도 보다 활발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다만 ‘자위에 필요한 최소한의 실력행사만 가능하다’는 헌법 9조의 기존 해석을 자민당이 끝까지 고수,자유당의 헌법해석 변경이나 헌법수정 주장을 잠재웠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marry01@
  • 金 대통령 한해 마무리 ‘강행군’/신년담화 구상·현안 챙기기

    ◎미뤘던 AG선수단과 오찬도 金大中 대통령이 28일부터 정상집무를 재개한다.관저에서 쉬면서도 지난 주말부터는 金重權 비서실장과 각 수석실의 보고서를 집중적으로 읽고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이 귀띔했다.일요일인 27일에도 신년 대국민 담화를 구상했다고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朴대변인은 이날 “金대통령은 감기 몸살로 연기했던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참가선수단 오찬간담회를 시작으로 공식업무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지난 21일 국무회의 말미에 자리를 뜬 뒤 꼭 1주일 만에 본관 집무실로 복귀하는 셈이다. 金대통령의 업무스타일로 볼 때 감기 몸살로 휴식을 취한 기간을 ‘보충’하려 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이번 주는 반도체 빅딜 등 한 해를 마감하는 주여서 업무 강도가 훨씬 강해질 것으로 관측된다.28일 오전 金重權 비서실장으로부터 지난주 국정현안에 대한 보고를 받고,자민련 朴泰俊 총재와 올 마지막 주례회동을 갖는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李鍾贊 안기부장으로부터도 정례보고를 받는다. 그러나 군부대 위문과 5부 요인및 3당대표 부부초청 송년모임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마무리해야 할 국정현안이 많아 신년 초로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문이다. 金대통령은 크리스마스때와 마찬가지로 신정 휴일에도 관저에서 조촐하게 가족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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