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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동화은 비자금수뢰 강경조치”/이원조의원 등 둘러싼 기류

    ◎“도덕성 문제”… 민자,제재방침 확고/“이 의원 강제귀국” 강경론도 대두/민주측은 “도피 묵인” 주장… 정치쟁점화 시도 동화은행장비자금수뢰혐의를 받고있던 민자당의 이원조의원이 18일 돌연 출국하자 정치권은 그 배경등에 관해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검찰의 본격수사가 미칠 파장에 무척 긴장하는 모습들이다. 민자당은 이의원이 당지도부와 일체 상의없이 출국한 점을 들어 출당등 강경조치방침을 천명하고 있다.반면 민주당은 정부의 비호내지 묵인에 의한 「의도적 도피」로 추정하고 대여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민자당◁ ○…슬롯머신사건과 관련,박철언의원의 금명소환과 엄삼탁병무청장의 구속방침을 시발점으로 확산가능성이 점쳐지고있는 가운데 이의원 출국에 의한 동화은행장사건수사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자 사태급진전을 예상하면서 그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측이 주장하는 이의원의 출국방조설은 터무니 없는 정치공세로 일축하고 있다. 한 의원은 『수사당국이 자신의 주변을 점점 좁혀온다는 위기의식을 강하게느꼈을 것』이라며 이의원의 출국을 도피행각으로 단언한다. 또 다른 의원은 한발 더나아가 『비자금의혹으로 내사를 했다면 검찰이 그렇게 소홀히 놔둘수 있느냐』며 검찰을 원망하면서 『이의원의 일반여권을 당장 취소,강제귀국조치를 취해야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지도부도 어떠한 사전상의없이 출국한 이의원을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며 크게 질책하는 분위기다. 황명수총장은 19일 『의원이 회기중 당과 상의없이 출국한 것은 해당도 보통 해당이 아니다』고 불쾌한 감정을 표출한뒤 이의원처리문제에 관해 『나름대로 복안이 있다』며 최소한 출당등 강경조치를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한 고위당직자도 『일반적으로 수사가 끝난뒤 상응한 조치를 취하는게 관례이지만 이의원이 회기중 보고도 않고 출국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금명처리를 기정사실화 했다. 이와함께 이의원출국이 검찰의 본격수사와 동의어로 받아들여지는 만큼 역시 수뢰혐의를 받고있는 김종인·금진호의원에 대한 처리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한 핵심의원은 『동화은행장사건수사는 마무리단계로 지금까지 거명된 의원외에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김의원의 혐의는 맞는 것같다』고 이들 두의원의 사법처리분위기를 전했다.그러나 김의원은 자신의 혐의사실을 강력히 부인하며 이날도 의원총회와 본회의표결에 참석하는등 평소와 다름 없는 의정활동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이와관련,당내에서는 이원조·금진호의원의 의원직사퇴와 김종인의원의 사법처리가 동화은행장사건의 「종착역」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어 주목된다.물론 금의원과 김의원은 여기에 관해 일단 부인하고 있어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 ○…이의원의 출국이 어떤 형태로든 정부의 비호 또는 묵인아래 이뤘을 것으로 추정하고 정치공세화할 움직임.그것은 이의원이 5,6공에 걸쳐 「정치자금」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로 현 정부와도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기택대표는 『이의원의 경우는 도망간 것이 아니라 내보낸 것』이라고 단정하고 정치쟁점화를 시사.김병오정책위의장도 『금융계의 황태자로 불리던 이의원이 정치자금 조달 루트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그런 사람이,그것도 수사도중 출국한 것은 정부의 방조없이는 이뤄질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 그러면서도 공식 논의는 자제하는등 무척 조심스런 행보.당초 이 문제를 논의할 당무회의에서도 공직자윤리법과 금융실명제에 관한 법등 주로 정책위문제만 다뤄 당차원의 즉각 대응은 자제. 다만 박지원대변인이 『이 나라의 공권력이 형평성을 잃고 선택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또 한번 확인 시켜준 것』이라고 짤막한 논평을 발표. 민주당의 이같은 행보는 일단 슬롯머신등 일련의 사건파장을 좀더 지켜본뒤 사안별·선택적인 쟁점화가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취해지고 있다는 게 당관계자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 청와대 국무회의 배경과 이모저모

    ◎“내각의 불안한 행보에 질책과 격려”/내각이 개혁 못따라… 분위기쇄신 필요/“국민지지 꼭 보답해야” 팀웍 거듭 강조 ○분발·노력 거듭 강조 ○…김영삼대통령은 17일 아침 황인성국무총리를 포함한 전국무위원을 청와대로 불러 아침을 함께 하며 최근 내각이 보여주고 있는 「불안한 행진」을 질책하면서 팀웍과 분발을 강조. 김대통령은 이자리에서 『이제 새정부 출범 80여일이 지났으니 업무가 파악됐을 것으로 본다』고 운을 떼고는 『일부에서 업무파악이 덜 된 것처럼 비치고 있는 것은 유감이며,완벽할 수 없지만 품위를 지키고 권위를 세워야 할 것』이라고 일침.김대통령은 이어 『국민 90%이상이 우리를 지지하고 있음을 고맙게 생각해야한다』면서 『국민지지를 온몸으로 느끼고 온몸으로 보답해야한다』고 강조. 김대통령은 『국무위원과 수석전원은 나의 최고 참모이자 각분야의 최고 책임자』라고 전제하고 『여러분 생각과 결단에 따라 나라운명이 좌우된다』고 참석자들의 분발과 노력을 거듭 강조. ○문제각료 주의환기 ○…이날 청와대의 국무위원 조찬간담회는 일부 문제가 노출된 국무위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나아가서는 이들에게 다시 한번 신임을 보냄으로써 내각의 분위기를 일신시키는데 목적이 있었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설명. 내각은 출범이후 청와대의 개혁의지를 앞질러 실천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되어왔다는게 민자당과 청와대의 분석.이에 따라 최근에는 부분개각의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해 청와대로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내각을 한번 추스릴 필요가 있었던 것. 그동안 황총리는 12·12국회답변을 둘러싸고,오병문 교육장관은 대입부정합격자 학부모명단 발표과정에서,또 황산성 환경처장관은 잦은 눈물과 장관스럽지 못한 언행으로 청와대를 불편하게 해왔다.여기다 몇몇 여성장관과 학자출신 장관들마저 부처의 관료조직을 장악하지 못해 청와대를 도와주기는 커녕 청와대가 내각의 뒷바라지에 바빴던 형편.모장관의 경우 매일매일 청와대측에 언론에 보도된 내용과 관련해 자신을 변호하는 팩시를 보내와 이자료의 처리를 둘러싸고 관계자들이 고심할 정도라는 후문이다.청와대 관계자들은 이같은 내각의 잦은 실수를 대략 3가지 이유로 파악하고 있다. 하나는 내각전체가 아직 김대통령의 개혁강도와 방향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또하나는 장관 개개인이 업무에 대해 지나치게 문외한이거나 부처장악능력이 없는 탓을 들고 있다.마지막으로는 개혁자체가 못마땅한 관료조직이 직간접으로 장관들에게 저항하고 있음도 한 이유로 파악되고 있다.이권부서에서 이런 관료들의 저항이 심한 것으로 청와대는 파악하고 있다. ○“이기주의 벗어나야” ○…이런사정을 감안한듯 이날 조찬간담회는 다소간 긴장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참석자들이 설명. 품위를 지킬 것을 당부받은 황장관은 『그동안 저와 언론사이에 문제가 약간 있었다』고 시인.황총리는 『여러가지 불민한 탓으로 내각이 심려를 끼쳐드린 것을 다시한번 사과드린다』고 말하고 『오늘 조찬의 뜻을 헤아려 우리스스로 늘 부족함을 느끼면서 배전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 김대통령은 이날 특히 팀웍을 강조했는데 경제계획은 이경식부총리를 중심으로,내각은 황총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달라고 당부.김대통령은 『각부처가 이기주의를 벗어나 신한국창조에 나서면 우리나라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하고 『각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국민에게 보답하는 것』이라고 강조. 김대통령은 이자리에서 광주특별담화와 관련,『우리는 오늘에 살고 있지만 10∼20년뒤의 미래를 생각해야하기 때문에 현재의 감정만으로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그러기에 잊지는 말되 용서하자고 했다』고 소개.김대통령은 또 『광주시민 84%가 우리의 변화와 개혁을 지지하고 있다』면서 『5·18 기념일을 전후해 자유로운 시위문화가 정착되도록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고 보호하도록 하라』고 내각에 당부.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날 행사가 대통령이 현내각에 대해 다시 분발하도록 촉구한 것과 함께 신임을 확인한 것이기 때문에 내각의 분위기가 한결 새로워 지지 않겠느냐고 기대.또한 내각에 대한 대통령의 재신임이 확인된 만큼 관료조직의 태도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
  • 「광주」 후속조치 빈틈없이 추진/김 대통령 지시

    김영삼대통령은 17일 황인성총리와 전국무위원을 청와대로 불러 아침을 함께하면서 『황총리를 중심으로 내각이 똘똘 뭉쳐 신한국창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광주특별담화와 관련,『총리를 중심으로 전내각이 총력을 기울여 후속조치에 만전을 기하라』고 말하고 『5·18기념일을 전후해 새로운 시위문화가 정착되도록 시위대에게 최대한의 편의제공과 함께 이들을 보호하라』고 지시했다.
  • 오 공보처장관 일문일답

    ◎“사이비기자 척결 범정부차원서 추진/언론사도 기업,유무형의 특혜 없어질것” 오공보처장관과의 일문일답은 다음과 같다. ­사이비언론척결의 추진방향과 성과는. ▲현재 사이비기자 단속에 대한 전국적인 여론은 좋다.사이비기자의 척결은 범정부적으로 추진할 것이며 이로인한 언론자유의 침해는 없을 것이다.부실언론사에 대한 법적,행정적 제재가 불가피할 경우 언론계와 충분한 협의를 통해 언론탄압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 ­언론이 개혁을 뒤따르지 못한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개혁에 따르지 못한다고 한 것은 언론만 지칭한 것은 아니다.다른분야도 개혁을 따르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부처 중에도 헤매는 부서가 있다.이는 새정부가 출범한지 80여일 밖에 안돼 있을수 있는 일이며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소될 것이다. ­언론기관에 대한 세무조사가 실시되고 있다는데 재산공개문제와 함께 언론에 대한 통제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은 없는가. ▲우리언론의 특징 하나는 모든 것을 「음모」의 시각으로 보는 관행이다.언론사에대한 세무조사와 금융특혜문제는 대통령자신이 상당한 연구를 하고있다.앞으로 언론사에 대한 정부의 유·무형의 특혜와 편의는 없어질 것이며 언론도 기업인 만큼 다른 기업이 누릴 수 없는 특혜를 받을수는 없을 것이다. ­언론의 발상전환이후 바람직한 모습과 위상은. ▲발상의 전환은 정말로 힘든 일이다.언론계 발상전환은 꼭 찍어서 얘기하기 외람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언론계가 누리고 있는 자유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객관성있는 정확한 보도로 오보를 막고 언론에 대한 독자의 권한을 인식함으로써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한다.2∼3년밖에 안된 젊은 기자가 우리의 정치와 사회를 난도질해서는 안되며 신중하게 해야할 것이다. ­향후 언론계가 나아가야할 방향과 방송광고공사에 대한 견해는. ▲대통령은 자기절제를 하는데 비해 언론은 무한정 자기낭비에 들어간 것같다.「공」은 언론계로 넘어갔으며 정부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다.광고방송공사는 전체적으로 볼 때 순기능의 역할을 하고있다고 본다. ­방송위원회문제는. ▲방송위문제는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방송계인사들이 걱정하듯이 방송위에 정치적 입김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방송위의 정치색을 완전히 탈색시키고 방송전반에 기여할 수 있는 사계의 인사를 모셔 권위있고 공정한 방송위를 만들겠다. ­신문 증면문제와 언론사에 대한 성격규정에 대한 생각은. ▲신문증면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낭비적 요소를 극소화하면서 양질의 신문을 만드는 문제는 언론은 물론 정부의 고민이다.언론사의 성격은 공익성과 함께사기업성을 무시할 수 없는 두가지 얼굴을 갖고있다.다만 언론사도 제반 제도와 관행에 대해 공정하게 오픈돼 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 “경찰간부들에 거액 상납”/정덕진씨 진술/지목인사 예금계좌 추적

    ◎형 덕중씨,경찰에 2억 기부 「빠찡꼬계의 대부」 정덕진(53)씨를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은 8일 정씨로부터 경찰간부등 유력인사 수명에게 여러차례에 걸쳐 거액을 주었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정씨의 비호세력 규명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정씨는 그동안 검찰조사에서 비호세력에 대해 완강히 부인해오다 이날 새벽 처음으로 이같은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에따라 정씨 진술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이들 유력인사들의 예금계좌 추적에 나서는 한편 혐의가 포착될 경우 모두 소환 조사키로 했다. 검찰은 이들이 뇌물외에도 슬롯머신업소의 지분등을 상납받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이날 서울시내 슬롯머신업소 지분 소유자 10여명을 추가로 소환,지분소유경위등에 대한 철야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또 정씨의 동생 덕일씨(44·뉴스타호텔대표)가 정·관계및 수사기관의 고위간부들에게 뇌물을 주며 로비한 사실을 확인하고 잠적한 덕일씨의 신변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3년간 “위문금” 명목 「빠찡꼬업계의 대부」 정덕진씨(53·구속)의형 덕중씨(55)가 지난 88∼89년 한국슬롯머신중앙협의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3년간 서울시경 등 전국 경찰관서에 전·의경 위문금 등의 명목으로 2억원 이상의 금품을 기부한 것으로 8일 밝혀졌다. 경찰청에 따르면 슬롯머신중앙협의회가 제공한 금품은 전·의경 위문금 1억5천만원,불우청소년 성금 5천만원,시가 5백만원 상당의 전·의경 운동기구 일체,형사기동대 단체복 2백50벌 등 모두 2억2천만원 상당이다.
  • 빠찡꼬 정씨 3형제

    ◎도부의장 “방패역”/형 덕중씨/4호텔 맡아 돈 관리/동생 덕일씨 검찰이 슬롯머신업계를 둘러싼 정·관계 비호세력의 정체파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구속된 정덕진씨의 동생 덕일씨(44)와 형 덕중(55)의 소환을 서두르고 있어 이들의 역할을 놓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덕중씨는 현재 강원도의회 부의장으로서 일찍이 뛰어난 사교술로 여권내 실력자들과 두터운 교분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덕중씨는 아우 정씨가 70년대말부터 터를 닦아놓은 슬롯머신업계가 사행업종으로 분류돼 당국의 규제·단속대상이 되기 직전인 90년까지 슬롯머신협회장직을 맡아 고아원방문·군부대위문품전달등 사회봉사활동으로 슬롯머신업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를 관리하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당국이 슬롯머신업소들의 각종 불법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91년3월 사행행위단속법을 개정하자 덕중씨는 미련없이 회장직을 내놓고 정씨의 카지노사업으로 연고를 맺은 강원도 도의회부의장에 출마,당선된뒤 표면상 슬롯머신업계 활동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이에앞서덕중씨는 87년 대선당시 노태우후보의 사조직인 「태림회」영등포지부장을 맡아 활동하면서 2백억원의 정치헌금을 했다는 소문도 있어 정치자금법위반 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기도했다. 덕중씨는 이 과정에서 박철언의원등 노후보의 사조직을 이끌던 여권내 실세들로부터 상당한 신임을 얻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이밖에도 덕중씨는 유기장업법위반 혐의등으로 5차례나 입건됐음에도 불구하고 벌금형이외에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특히 89년 10월21일 제44회 경찰의날에는 당시 김태호내무부장관의 감사패를 수상하는등 뛰어난 수완으로 슬롯머신업계의 바람막이 역할을 해온 것으로 검찰은 보고있다. 검찰이 덕중씨보다 정씨의 슬롯머신사업에 깊숙이 간여해온 것으로 보고 있는 인물은 동생 덕일씨(44). 그는 정씨가 인수한 7개의 관광호텔 가운데 인천과 서울 석촌동·화곡동·상봉동등에 4개의 뉴스타관광호텔을 경영하면서 정씨의 자금관리를 맡아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덕일씨는 89년 동양상호신용기금으로부터 7개 사업체 운영자금으로 20억원을 대출받으면서 사업자등록증등 관계서류를 위조한 혐의등으로 정씨 소환에 앞서 검찰의 수사대상에 올랐으나 뚜렷한 혐의가 발견되지 않아 출국금지만 된채 소환이 미루어져왔다. 덕일씨는 나아가 2백70여개로 추정되는 정씨의 가명·실명계좌 가운데 1백여개를 관리하면서 정씨가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씨등 조직폭력배들과 업소확장을 둘러싸고 생기는 마찰에 대한 조정역할을 맡아온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 불타 자비광명 온누리에…/봉축행사 “다채”/5월 한달

    ◎대법회·제등행렬·평화의 탑 제등식 펼쳐/민족 대화합·통일의식 고취 오는 28일은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인류의 등불로 내리비춘 불기25 37년 「부처님오신날」.한국불교종단협의회(위원장 서의현조계종총무원장)는 소속 28개 종단이 참여하는 봉축위원회를 결성,5월 한달 동안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한다. 최근 일련의 훼불사건등 타종교와의 갈등이 노출되고 있는 가운데 치러지는 이번 기념행사는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부처님오신날」을 범국민적 명절로 승화시키고 민족대화합과 민족통일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2일 어린이찬불가대회(연꽃노래잔치),연합합창제(붓다의 노래),불교아동미술잔치등으로 시작되는 이번 행사는 28일 마지막 행사로 거행되는 법요식까지 각종 경축행사와 위문행사등이 전국 각사찰에서 다양하게 전개된다. 이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22일의 여의도 봉축대법회에 이어 펼쳐지는 제등행렬.이날 하오5시 「민족화합남북통일기원대법회」가 끝난후 6시부터 여의도광장에서 안국동 조계사까지 8㎞구간에서 펼쳐지는 이퍼레이드에는 약10만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이에앞서 16일에는 고승법회,18일에는 호국광명등탑 점화대법회를 갖고 19일 하오5시30분에는 시청앞광장에서 평화의탑 점등식을 갖는등 통일·화합·결속·정진을 통해 모든 이의 소망을 승화시키는 의식을 갖는다. 서의현위원장은 이번 기념행사에 대해『민족의 대화합과 평화로운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2천만 불자들의 의지를 모아 시대개혁의 선구자적 역할을 책임지는 공동체의식 고조에 의의가 있다』고 설명하고 『특히 이날을 불교도만의 축제일이 아닌 민족의 축제로 승화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군­민일치 운동」 적극 전개

    【내외】 북한은 최근 군창건 61주(4월25일)를 앞두고 각지서 「군­민일치운동」을 적극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한방송 보도를 종합한 바에 의하면 북한은 4월들어 각지 군단위로 당조직 주관아래 노동당의 「군­민일치사상」과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추대의의를 주민들에게 널리 해설·선전하고 군부대 지원활동의 일환인 「우리초소­우리공장(농장,학교)운동」과 「군­민일치 모범군 쟁취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양강도 대홍단군에서는 지난 1년간 3백20여회의 군부대 방문,20여개의 축기 및 60여종의 족자공급 등 활발한 군위문활동을 벌여온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군인들과의 좌담회 27회,상봉모임 18회,퇴역군인들의 전투경험담 소개모임 22회,예술선전동 35회 등을 실시했다고 중앙방송이 21일 보도했다. 또한 강원도 세포군의 경우 지난해 4월 군­민일치운동이 시작된 이래 「군­민일치 모범군 영예등록장」제도를 활성화,1년동안 위문편지 연 5만8천9백80여통,군부대 위문 1천8백30여회,상봉모임 1천87회,예술소품공연 1천2백30회 등을 진행해 왔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 「병원화재」 유족 위로/민자 위문단

    민자당은 19일 충남 논산 서울신경정신과 병원에서 발생한 화재사건과 관련,이긍긍의원(단장)과 김한규 김광수 이승무 박주천의원으로 구성된 방문단을 현지에 보내 위로금을 전달하고 피해자와 유족들을 위로했다.
  • 오늘 김일성 81세 생일… 평양의 표정

    ◎핵금탈퇴 비난 외면… 우상화 잔치 절정/축하포스터 나붙고 전국서 영화상영/위대성 선전속에 권력이양 특히 강조 북한은 핵무기 개발의혹에 대한 세계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 최고의 경축행사 가운데 하나인 김일성생일 축하준비에 한창이다. 15일로 81세가 되는 김일성의 생일행사에는 그의 오랜 친구이며 평양에 저택을 갖고 있는 캄보디아의 노로돔 시하누크도 참석한다. 그러나 이 「위대한 지도자」가 축하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권력은 점점 51세된 그의 장남 김정일 손에 이양되고 있는 느낌이다. 16개월전 아버지 대신 인민군총사령관에 취임했던 김정일은 지난주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장에 추대됨으로써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으며 한국군과 긴장속에 대치하고 있는 북한군의 통수권을 실질적으로 모두 장악했다. 어떤 자질의 소유자인지 외부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김정일은 파산직전에 놓여있는 북한의 경제난에도 그 자신 상당한 책임을 져야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평양의 선전기관들은 평상시처럼김일성의 위대성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이번주에 들어서는 권력이양을 특히 강조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0일 『경애하는 김일성수령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영원히 조선민족의 위대한 태양이며 새벽별이실 것』이라고 칭송하는 동시에 혁명세대의 충성을 이어받은 김정일을 위대하고 영원한 향도로 존경하는 일이야말로 조선인민의 불굴의 결의라고 덧붙였다. 극히 최근까지도 미국 주도의 핵전쟁준비에 대처하자며 긴장감을 부추기던 중앙통신은 온 나라가 축제무드에 휩싸여 있다고 주장했다. 도쿄에서 수신된 이 관영통신은 김일성 수령의 생일을 축하하는 포스터·그림과 장식물들이 평양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거리에 나붙어 축제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평양에서는 도서와 사진 전시회등이 열리고 2천3백만 국민이 김일성 찬양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전국에서 영화상영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망명자들에 의하면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생일이 고기가 배급되는 몇안되는 날중 하나이기 때문에도 이날을 축하한다고한다. 심장질환을 앓고 있다고 전해지지만 나이에 비해 정정해 보이는 김일성은 아직 국가주석과 당총비서직을 갖고 있는데 많은 전문가들은 김일성이 이들 두 직책을 죽을 때까지 보유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는 농장과 공장들에서 현장 지도를 하기 위해 때때로 전국을 여행하지만 그의 아들은 외국인을 만난다거나 공중앞에 나서는 일이 드물어 여전히 많은 면에서 베일에 가려 있다. 도쿄 국립방위문제연구소의 다케사다 히데시교수는 『김정일이 아버지만큼 카리스마적인 요소는 갖고 있지 못하지만 혈통이 중시되는 전근대적인 사회에서 폭넓은 지지를 향유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어떤 분석가들은 김정일이 외부세계의 강제사찰을 수락하느니 핵확산금지조약의 족쇄로로부터 이탈한다는 지난 3월12일의 NPT탈퇴 결정도 주도한 것으로 믿고 있다. 퇴역장성인 평화안전연구소의 쓰카모토 가쓰치국장은NPT탈퇴 결정은 김정일의 권위를 과시하려는 목적에서 취해진 것으로 분석한다.
  • 군장성 4명 비위문책 방침/국방부 합조단 적발

    ◎연병장 매토 싸고 돈받아 국방부 합동조사단(단장 김영덕준장)은 13일 수도권지역의 일부 군부대에서 지난 89년부터 건설현장에서 나온 흙을 군연병장에 매립시켜 주는 대가로 억대의 금품을 받아 임의로 쓴 사실을 적발,관련 지휘관에 대한 적절한 지휘조치를 강구중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에 연루된 부대는 경기도 안양시의 6950부대(부대장 박광영중장)와 경기도 광명시의 7273부대(부대장 양인목소장)로 국방부는 박중장·양소장을 포함,전임 6950부대장 장석린국방대학원장(중장)과 전임 7273부대장 양승권2군단부군단장등 4명에게 지휘책임을 물을 방침이다.정인균전임 6950부대장은 이미 예편했다. 지난달 22일부터 시작된 수사결과 6950부대는 89년부터 지금까지 15t트럭 5만9천대분의 건설현장 흙을 부대에 반입,연병장에 깔게해주고 현금 1억1천만원,시설보수등 모두 3억4천만원어치의 대가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또 7273부대는 90년부터 2만7백대분의 흙을 받고 현금1억5천7백만원등 1억7천8백만원의 대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합조단은 『민간건설업자로부터 받은 현금 가운데 일부는 관련 부대의 시설보완에 사용됐으며 나머지는 전액 예치돼 있다』고 말하고 『예치금액은 6950부대가 3천6백만원,7273부대가 7천1백만원이며 개인착복은 없었다』고 밝혔다.
  • 무용가 이매방씨(이세기의 인물탐구:22)

    ◎날듯한 보법·절묘한 선… “타고난 춤꾼”/안으론 한·밖으론 허공 다스려 관객심혼 울려/「살풀이 춤」은 “미학의 극치·최고무작” 평가받아/옳지않은 일 못참고 욕설잘하는 자유분방한 성품 천명이고 만명이고 관중들의 오장을 속속들이 뒤흔들어놔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매방,타고난 춤꾼 신들린 춤꾼인 그의 괴팍한 성격은 무용계에서는 알아주는 막무가나다.비위가 틀리면 어른이고 제자고 눈에 보이는것이 없다.주춤거리거나 남의 눈치를 본적도 없다.한번 입을 떼기 시작하면 몇시간이건 쉬지않고 속사포처럼 쏘아댄다.세상의 욕이란 욕은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은것이 없을 것이다.그야말로 제멋대로 살아온 자유분방한 인생이다. 그러나 그가 춤추기 시작하면 온몸으로 삼라만상을 보여주고 산천초목을 움직인다.미끌어질듯 날듯말듯 비스듬히 포개고 떼는 보법이며 무겁게 들어올렸다가 날카롭게 뿌리치는 광대한 능선,긴 날개처럼 펼쳐지는 장삼자락에는 냉혹한 귀기마저 감돌아 관객은 어느순간 전률에 몸을 떤다.아름답고 눈부신 보석같은 춤만으로도 그래서 그의 허물들은 눈녹듯이 용서된다. 마치 무당이 굿을 하지않으면 신병에 걸리듯 천수북을 앞에놓고 변죽을 울리면서 연풍대로 몸을 젖혀 엎어치고 휘돌아야만 살맛이 나는 모양이다.그중에서도 그의 보념승무는 염불장단과 굿거리 사이사이에 현란하게 두들겨대는 북춤이 일품이다.인간의 고통스러운 열정과 비애를 북가락에 실어 남도특유의 흥과 멋을 종횡무진으로 엇가른다. 얼마전까지만해도 그는 아현동에있는 그의 연구소에서 한쪽 귀퉁이에 휘장을 치고 연탄불에다 냄비밥을 끓여먹었다. 결백증이 심해 돈이 오가는 풍조를 체질적으로 경멸하는데다가 재능이 없어보이면 처음부터 제자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이곳저곳 떠도는 방랑벽,훌쩍 떠나고 소리없이 머물면서 긴 정착을 꺼리는 성격탓에 마뜩한 거처하나 마련하지 못했었다.그의 부대끼는 삶의 모습을 지켜보던 둘째누이가 2년전 타계하면서 유산으로 남겨준 연구소옆 허름한 아파트가 60평생에 처음가져보는 제집일 것이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현관에 들어서면 마루한가운데 왜정시대때나 볼수있었던 낡은 싱거미싱한대가 놓여있다. ○무용복 손수지어 입어 그는 옛날부터 꼼꼼한 바느질솜씨로도 유명하다.무용발표회가 있을 때마다 그의 춤이 훼손될것을 걱정하여 복색일체를 손수 지어입는다.화장과 도련 소매부리를 재단하고 재봉틀에 누비는 귀신같은 솜씨는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룰 정도다. 정종 3병의 술실력,4,5년전까지 만해도 주정·주사가 극심하여 눈에 거슬리는 일을 보면 욕설을 퍼붇거나 남의 멱살을 잡기가 일쑤였다. 60년대중반 발레하는 이인범씨와 국도극장 악극단 쇼에 나간것이 말썽이 되어 무용협회가 이들을 제명처분하려던 사건은 무용계의 잊지못할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징계사실을 사전에 안 그는 술을 잔뜩 퍼마시고 지금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예총으로 쳐들어가 기물을 부수는 등 광란의 주란을 부린 적이 있다. 「먹고 살자는 일인데 너희들이 내게 돈을 줬느냐 쌀을 줬느냐」 게다가 누군가가 그의 춤을 ‘기방춤’으로 격하시키려하자 「궁중무를 빼고 기방춤이 아닌것이 뭐가 있느냐? 너희춤은 양춤이냐발레춤이냐? 뿌리도없는 형식춤을 어디다대고 비교하느냐」고 길길이 날뛰었다. 막상 그의 신랄한 반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오히려 한말이래 변질되지않고 원형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그의 춤』을 정명호씨(중대교수)등 여러사람이 감싸주었다. 77년 서울 YMCA강당에서 열린 그의 춤을 보고 원로언론인인 홍종인씨는 이례적으로 「속절없는 슬픔과 기쁨을 아로새겨 나가는가 하면 기쁨도 슬픔도 초월한 파탈의 경지로 솟구쳐오른 황홀」이라는 찬양의 글을 써서 세인의 관심을 모았었다. 또 여성적 미학의 극치로 칭해지는 그의 「살풀이춤」은 극도의 긴장과 절제,어둠과 밝음,괴로움과 갈등을 교차하면서 정속에 폭발을 감춘 최고의 무작으로 평가되었다. 안으로는 한을 다스리고 밖으로는 하공을 다스리는 춤.자신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어 슬피 끝난 일들을 차곡차곡 망각하려는 애절함을 눈물의 춤으로 승화시키자 객석에서는 조용한 흐느낌마저 파동쳤다. 「덩닥궁 덩다꿍,어깨들고 착착쿵…」 그가 제자들을 가르칠때 보면 숨쉴틈도두지 않는다.지시하고 지적한대로 선을 만들지 못하면 냅다 달려나가 욕설을 퍼붓고 북가락을 내던진다. 변덕스럽고 삐치기도 잘해서 사근사근 사람을 홀딱 반하게 하다가도 못마땅한 구석을 발견하면 살차게 뿌리치고 미련없이 돌아 앉는다.끝없는 줄담배,쪽쪽 뻗은 검지와 장지에 꼬나문 담배하며 낮으막하나 재빠른 말씨,아래로 착 내려깐 날카로운 눈매와 여성적인 걸음걸이 등등 그의 이야기는 글로 써서는 충분치 못하다.진한 사투리의 육두문자와 구성진 입타령 일본춤 스페인춤 흉내,바느질과 다림질 솜씨,무엇보다 사람의 애간장을 뒤흔들어 놓는 살풀이춤을 보고나서야만 그가 누구인지 비로소 알게된다. 지난해 어느 사석에선가 명창 김소희씨가 매방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자기예술에 혼신바쳐 『이매방동생은 남못하는 예술을 가진 사람으로써 젊어서는 정말 「개판」이었지요.누구라도 한번 걸렸다하면 밤샘 술을 마셔야하고 휘젓고 돌아다니고 욕설 잘하고,그러나 그 춤만은 현재로선 제가 아는한 전무후무한 명무라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그 춤만은 가히 당대의 명인이지요』 이른바 재주가 승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오만방자와 안하무인의 기색이 역력하지만 자신의 예술을 알리기 위해선 한자리에서도 몇십번씩 무태를 보이는 성의를 잊지 않는다. 한때는 그가 후계자를 키우지 않아 「그의 춤을 저승으로 가져가려나 보다」고 무용계가 빈정거린 적도 있으나 그는 몇몇제자를 모아 세밀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엄하게 그의 춤을 보존하고 전장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매방은 전라도 목포에서 태어났다.아버지 이경율씨는 목포 양동에서 싸전과 장작장사를 하는 집안으로 그는 3남2녀중 막내,부모와 형제들의 귀여움을 두루 받았으면서 어릴 때부터 여성취향이 짙어 경대앞에 앉아 춤을 추거나 화장하는 흉내를 즐겼다.『나 자신이 무엇이 될 것인가를 세살때나 또는 일곱살때,어쨌든 그 이전에 운명적으로 예감하고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집에 세들어 있던 목포 권번 기생에게 춤을 배우고 권번에서 춤을 가르치던 집안의 할아버지벌인 이대조선생,화순의 박영구선생에게 본격적으로 승무검무 법고를 배웠다. ○매란방처럼 살고자 국민학교 2학년때부터 4년간은 큰형이 사업을 벌이고 있던 만주 대연과 북경에서 살면서 중국 경극의 대가인 매란방을 만났고 평생 매란방처럼 살고 싶어 본명인 「규태」를 버리고 그때부터 매방이란 예명을 스스로 지어가졌다. 군산에서 무용연구소를 개설,간간히 서울에 올라와 무대에 서기도 했지만 역마살이 뻗친듯 광주 대구 강릉 속초 부산 동래를 전전,형제들의 간곡한 권유로 69년,42세때 부산에서 무용활동을 하는 김명자씨와 뒤늦게 결혼하여 딸(현주·20)하나를 두고 대학 무용과에 다니는 있다. 부산에 머물고 있을때 그의 춤을 귀히 여기던 무용평론가 정병호씨와 거문고 인간문화재 한갑득씨의 권유로 77년부터 서울정착을 결심하게 되었다. 말도 탈도 많았던 들끓는 듯한 지난날,한번 움직일 때마다 수천 관중을 사로잡는 그의 춤에 매료되어 54년,서울 첫 정착때는 신익희선생의 따님인 정균씨가 동대문밖 창신동에 무용연구소를 차려준 적이 있었고 삼성의 이병철회장은 특히 그의 「살풀이춤」을 사랑하여 자주 별장에 불러 춤을 추게 했다고 한다. 그는 요즘도 매일 하오4시부터 4시간씩 연습,이렇게 연습을 해두기 때문에 공연을 앞둔 총 리허설은 해본적이 없다. 해마다 명무전 명인전 전통무용의 밤과 수많은 해외고연에 참가하고 프랑스 렌느 페스티벌에 다녀와서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럽공연은 「질색」이라고 거절한다.평생을 통해 그가 하고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마지못해 체면상 해본 일은 없을 것이다.그가 무엇을 어떻게 하던,욕쟁이로 소문이 나고 성질이 괴팍하던 말던,방약무인하고 오만불손하다 하더라도 김소희씨의 말대로 「당대의 전무후무한 명인」,절묘한 선으로 이어지는 천의무봉한 춤솜씨 하나만으로 그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이매방일 수밖에 없을 것같다. □연보 ▲1927년 5월5일 전남 목포출생(본명(이규태) ▲1935∼39년 만주 대연에 거주.전남 무안출신 이대조선생 「승무」「북춤」사사,전남 화순출신 박영구선생 「승무」「법고」사사,전남 목포출신 이창조선생 「검무」사사 ▲1943년 목포 공립공업학교 졸업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예능보유자(87년 지정),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예능보유자(90년 지정) ▲1948년 명창 임방울선생 명인명창대회 「승무」(3고)첫 출연 ▲1953년 전북 군산 국악원주최 명인명창대회 「승무」(9고) ▲1953년 이매방 개인무용발표회(광주) ▲1954년 삼성여성국극단 창극출연 「승무」(7고) ▲1955년 개인무용발표회(문하생 발표 포함·광주) ▲1956년 개인무용발표회(부산) ▲1957년 개인무용발표회 「살풀이춤」(부산) ▲1959년 서울 을지로 원각사에서 개인무용발표회 ▲1962년 광복절 경축예술제 「살풀이춤」(국립극장)(도쿄∼오사카) ▲1968년 일본 대민단본부주최 광복절기념공연 ▲1970년 부산·시모노세키 자매결연기념공연(시모노세키·부산) ▲1975년 부산예총주최 「무용합동공연」(부산) ▲1977년 이매방 「보념승무」발표회(서울YWCA강당) ▲1979년 대한항공 민항 10주년기념공연(미 6개도시 교포위문) ▲1981년부터 제1회 대한민국 전통무용예술제참가(해마다) ▲1982년부터 국악대제전 한국 명무전 출연 ▲1984년 무용인생 50년 특별기념공연 「북소리Ⅰ」(세종문화회관) ▲1986년 미 한미문화센터주최 워싱턴 공연 「살풀이춤」 ▲1986년 아시안게임 축전공연 출연 ▲1987년 개인무용발표회 「북소리Ⅱ」(문예극장 대극장) ▲1987년부터 해마다 중요무형문화재공연 출연 ▲1990년 개인무용발표회 「북소리Ⅲ」(호암아트홀) ▲1988년 88서울올림픽문화예술축전 참가 ▲1989년 조선일보주최 국악대공연 출연 ▲1990년 중국·북경·연변 교민 순회공연 ▲1991년 한국·일본 무형문화재 합동공연(도쿄) ▲1992년 국악대제전 명무전 출연 예술문화대상·눌원 향토예술대상·목관문화훈장서훈 (승무) 송수남·김진홍·임이조·채향순·국수호·채상묵 (살풀이) 정명숙·유숙희·김정녀·이진주
  • “유족·부상자 돕자”… 동포애 밀물/부산 열차참사 이모저모

    ◎전국서 헌혈 행렬… 위문금 답지/중기기사들,1백명구조 화제 우리나라 철도사상 최대의 참극을 빚은 부산열차전복사고는 희생자와 그 주변사람들에게는 이루 형언할수 없는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뜨거운 시민정신이 발휘되고 각계에서 온정이 답지하고 있다. ○포클레인동원 철야 ○…사고현장 인근의 북구 구포동 대산중기 중장비 기사 정명석씨(31·부산 남구 문현2동 721)등 직원 4명은 사고가 나자 현장에 맨 먼저 달려가 1백여명을 구조해 뜨거운 시민정신을 발휘. 정씨등은 사고현장에서 70여m 떨어진 철길옆 사무실에 있다가 「꽝」하는 소리가 나자 급히 뛰어나와 객차안과 철길옆에 쓰러져 있는 사상자를 지나가는 차량에 실어 병원으로 후송. 이들은 또 경찰,소방서 구조대등과 함께 회사 포클레인까지 동원,서로 번갈아 가며 밤새 뒤엉킨 객차등을 분해하는등 구조작업에 크게 기여. ○…부산시 북구 덕포2동 광주고속현장사무실 2층에 마련된 대책본부에서는 열차사고피해자와 유족돕기성금창구가 개설돼 눈길을 끌었다. ○광주·전남서도 동참 ○…사고가 나자 각 시·도에서 피해자와 가족들을 돕기 위한 온정이 답지. 김병량경기도부지사를 비롯,경기도청 간부및 직원 1백50명은 29일 구포 열차사고로 부상한 승객들을 돕기 위한 헌혈에 나서 1인당 4백㏄씩 모두 6만㏄의 피를 위문금 7천만원과 함께 부산시에 전달. 전남도와 광주시도 이날 이균범지사 나무석부시장및 도내 시장·군수 일반직원들이 참가한 부상자돕기 헌혈운동을 벌이고 위문금 1천5백만원씩과 함께 부산시에 보냈다. 경북도와 대구시도 위문단을 현지로 보내 1차로 3천만원의 위로금을 전달. ○…사망7명 중경상7명 등 모두 14명의 사상자를 낸 김해 공병학교 관계자들은 비보를 접하고 아연실색. 이들은 ROTC31기 동기생들로서 지난4일 공병학교 초등군사반에 입교,주말외박을 나갔다가 귀대하면서 사고를 당한 것. ○두가족 참변도 ○…이번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 중에는 휴일을 맞아 나들이를 하거나 친척집 방문길에 나섰다가 일가족이 한꺼번에 참변을 당한 경우도 있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밀양에 사는 친척집을 방문한 뒤 사고가 난 열차 6호객실에 탄 이상윤씨(26·회사원)가족은 4명 가운데 이씨는 가벼운 상처만 입었으나 부인 신성자씨(33)아들 동혁(18)동훈군(5)등 3명이 숨져 이씨가 한때 실신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또 김기옥씨(37·여)와 아들 이규상군(11)딸 정숙양(10)등 3명도 모두 숨졌는데 김씨 일가족은 3개 병원에 나뉘어져 안치됐다가 유족들의 요구로 29일 대동병원에 함께 안치됐다. ○…사고수습대책본부는 29일 하오11시 그동안 신원이 확인되지 않던 사망자들에 대한 신원파악을 모두 끝내고 이번 열차사고로 이시간 현재 숨진 사람은 모두 78명으로 확인됐다고 공식 발표. 대책본부는 사망자들이 후송된 각 병원마다 영안실이 부족해 다른 병원으로 옮기거나 가족단위로 사망한 사람들의 유가족들이 같은 병원으로 옮겨줄 것을 요구하면서 사망자수를 집계하는데 혼선이 빚어져 한때 79명으로 발표하기도. ○…이날 예정시간보다 2시간 늦은 하오9시30분쯤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 정종우부산지검형사1부장은 한전측이 사고지점의 지반이 약한 점을 고려하지않고 사전정밀계측없이 폭파에 의한 공법을 사용함으로써 지반이 침몰되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관계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법처리의 윤곽과 폭에 대해서는 『더욱 세밀한 수사가 필요하다』며 언급을 회피. 일부 수사관들은 이에대해 『철도청과 한전측이 서로 책임공방을 벌이고 있고 워낙 대형사고라 합동수사반이 사법처리의 범위와 책임소재에 대해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당초 중간수사발표예정시간보다 2시간 남짓 발표를 늦춘 것도 수사반이 발표의 수위조절에 고심한 것을 반영한게 아니겠느냐』고 한마디.
  • 정치인의 진퇴(사설)

    여당 국회의원들의 재산이 공개되면서 재산의 내역과 신고된 재산의 축소·진위문제 등을 놓고 파문이 일고있는 가운데 26일 유학성·김문기의원등이 의원직을 사퇴했다.유의원은 이미 국회 국방위원장직 사퇴의사를 밝힌바도 있지만 그들은 이번 파동속에서 의원직 사퇴의 경우가 된 셈이다.유의원은 특히 신한국 건설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아래 사퇴한다면서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사회발전에 보탬이 되겠다고 말했다.그들의 뒤를 몇사람이나 더 이을 것인지 국민들은 주시하고 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잘 사퇴했다고 생각한다.비단 유의원뿐 아니라 지금 물의를 빚고 있는 여타 의원들도 우물쭈물 눈치를 보면서 미적거리지 말고 용퇴할 것을 촉구한다.그렇게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만이 그래도 자신을 위하는 길이면서 나라와 겨레앞에 사죄하는 길로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마지막까지 멈칫대다가 마지 못해서 물러나게 된다고 할 때 그것은 2중 3중의 오욕으로 된다는 점을 깊이 헤아려야 할것이다.공인의 처신이 그러한 것이다. 그동안의 우리사회는 태풍이 불어 닥칠때 웅크리고 있다가 지나가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이 용납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그래서 버텨볼대로 버텨보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그러나 새정부의 결연한 개혁의지 앞에서까지 그러한 구태가 통하는 것은 아니다.그 대목을 바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또 선양으로서 국사를 논의할 만한 처지의 사람이었다면 퇴진의 미학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어떻게 따낸 김배지인데 하고 미련을 가질수록 추해지기만 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물러날때 곱게 물러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공직에만 몸담아 왔던 처지로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치부를 한 사실에 대해서만 놀라고 분노하고 하는 것이 아니다.엄청난 재산을 감추어둔 채 신고하지 않은 그 불도덕성과 되지도 않은 변명으로써 자기합리화를 꾀하는 태도에 더큰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기망의 연속을 보는 불쾌감때문이다.물러나야 할 처지이면서도 물러나지 않고 버텨보는 태도에서 또한 그걸 느낀다.관련되어 있는 의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그나마 마지막 남은 「명예제대」에의 길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 누구도 바랐던 파동은 아니다.그러나 이 진통을 겪지 않고서는 「신한국」호의 항로가 불완전할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특히 이 파동속에서 김영삼대통령의 읍참마속의 아픔은 남다르다고 할 것이다.이 진통을 이겨낸 다음 우리는 합심하여 우리 길을 매진해 나가야 한다.부강하고 행복한 조국을 열어나가야 한다.
  • 74돌 기념일에 찾아본 박태현옹

    ◎올해도 부르는 “기미년 3월1일 정오…/「3·1절 노래」의 작곡자를 아십니까/이완용암살기도 형의 의거 악상으로/독립정신 표현… 48년 작곡공모에 당선/선열의 항일정신 퇴색이 쓸쓸한 86세 노년 혹독한 민족수난사의 하나로 기록된 일제치하에서 우리 민족의 정기를 유감없이 보여준 3·1운동이 1일로 74주년을 맞았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우리는 3·1운동 주역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식을 거행하고 3·1절 노래를 부르며 다시금 그들의 민족정기를 되새기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매년 갖는 3·1절기념식에서 불려지는 3·1절노래를 작곡한 사람이 박태현옹(86)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이날이 되면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박옹은 단지 우리 음악사에서 동요작곡가로 한두어줄로만 소개돼 있을 따름이다. 누가 일부러 그를 홀대하려고 한 것은 아닐지라도 민족의 수난과 굳굳한 정신을 애잔하면서도 강하게 표현한 이 노래를 만든 박옹은 우리 기억속에 흐려진 채 성남의 한 아파트에서 쓸쓸히 다시 맞은 3·1절에 독립운동을 하다 숨진 형태은씨를 생각하며 회한에 잠긴다. 그가 노후에 거처하고 있는 곳은 성남시 하대원동의 13평짜리 주공아파트 7동 202호. 그는 최근 서울아카데미 앙상블의 총감독으로 일하고 있지만 고령으로 자주 나가지는 않으며 주말 교회에 참석하는 것이 고작이다. 부인과는 6·25때 헤어지고 2남5녀의 자식들은 모두 성장해 외국에서 살고 있어 혼자 쓸쓸히 지내는 그를 찾은 기자에게 그는 덥썩 두손을 잡으며 지나간 세월을 떠올린다. 그가 3·1절노래를 작곡하게된 계기는 48년 정부수립직후 이범석초대국무총리가 3·1정신을 기리기위해 당시 국학대학원장이었던 위당 정인보선생이 쓴 노래말에 붙일 곡을 공모하자 이에 응모,당선된 것. 그는 『훌륭한 작곡가들이 많아 응모할 생각은 없이 3·1운동의 의미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대로 작곡해 놓았다가 우연히 내놓은 것이 당선됐다』며 『이 노래가 살아 숨쉬는 독립정신을 표현할지는 자신 없었다』고 술회한다. 평양의 한 미곡상의 2남5녀 중 6째로 태어난 그는 숭실중학교를 거쳐 숭실전문에 진학,영문학을 공부하다 중학교선배이며 절친한 이웃 형인 안익태선생의 첼로연주를 듣고 감명을 받아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다. 1936년 일본 도쿄음악학원에서 4년동안 첼로를 공부하고 귀국한 그는 한때 OK레코드음반회사에서 자신이 작곡한 「누가 누가 잠자나」「산바람 강바람」등 우리 귀에 익은 동요레코드도 출반했다. 이어 38년 이후 서울의 광신상고·경성고보등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지휘자로 일하던 그는 해방과 함께 서울중앙방송국에 입사,음악계장·편성계장으로 6·25때까지 근무하면서 「나팔꽃」을 비롯한 창작동요보급에 앞장섰다. 민족비극의 6·25와중에서는 애국심을 일깨우기 위해 「태극기」등 전시동요도 작곡하며 이은상·윤이상씨등과 군위문공연으로 전선을 누비기도 했다.그는 55년 김동진·이흥렬·나운영 등과 함께 한국작곡가협회를 설립,전후의 메마른 우리사회에 노래로 희망을 불어넣는등 활발한 활동을 폈지만 후세사가들로부터 이렇다할 평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가 일제에 의해 「좋지않은 노래」로 분류됐던 동요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재명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던 형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재명사건은 1909년 12월22일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나오던 민족반역자 이완용을 암살하려다 붙잡힌 사건으로 그의 형도 이때문에 7년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했다가 얼마후 후유증으로 병사했다. 그는 『요즘은 선열들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혹독한 일제에 맞서 싸우던 정신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며 형님의 마지막 유품이라 할 사진 한장을 들고 다시 회한에 잠긴다.
  • 교통부 여직원 모임 「서정회」(이런모임)

    ◎꽃향기속 여성미·교양 함양/꽃꽃이외 각종봉사활동도 활발 교통부 청사의 봄은 꽃을 다듬는 여직원들의 손길에서부터 온다. 교통부에서 근무하는 여직원들의 모임인 서정회(서정회·회장 박련옥)회원들은 매주 화요일 상오 청사 7층 회의실에서 꽃꽂이교실을 열고 1주일동안 장·차관실,각 국·실장방과 회의실,민원봉사실·대기실에 비치할 꽃을 준비한다. 장미·튤립·프리지아·수선화·백합·진달래·개나리등 싱싱한 꽃에서 풍기는 향기가 7층복도에 가득하고 서로 싱싱한 꽃을 고르려는 손길이 분주하다. 지난 79년 50여명의 여직원들이 모여 친목도모와 여성예절과 교양을 쌓기위해 창설된 서정회는 14년의 세월이 흐르는동안 정부부처의 어느 모임보다도 활발한 활동을 펴고있다. 『정부 청사중 교통부 청사의 근무여건이 가장 나쁘다고 합니다.서울역과 인접해있어 밤 낮 없이 열차의 경적소리와 버스·택시의 클랙션소리에 시달리는데다 녹지나 공원은 한 군데도 없어 삭막하고 소란합니다.이런 사무실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더 맑고 쾌적하게 만들기위해 꽃꽂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기획관리실 행정자료담당인 회장 박련옥주사는 서정회 활동의 중심이기도 하다. 지난 77년 공무원생활을 시작한 박씨는 청사내 자판기를 운영하면서 그 수익금으로 꽃과 교양도서를 구입해서 환경미화에 앞장서고있다. 그동안 모은 교양도서가 3백여권이 넘는다. 지난해 연말에는 회의실에서 불우이웃돕기 하루찻집을 운영 노건일장관과 장상현차관등 간부들의 참여로 1백20여만원을 모아 양로원과 고아원,소년·소녀 가장및 청사안의 청소아주머니,미화원아저씨들에게 위문품과 성금을 전달했다. 서대문구 홍제동의 고아원 송주원을 방문했을때는 한창 부모님에게 응석을 부리며 사랑을 받을 3∼4살의 어린이들의 표정잃은 모습을 보고 회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준비했던 선물이외에 용돈을 모아 성금을 주고 오기도 했다.
  • 이항복/옳은일이면 불이익 불구,실행(역사속의 청백리)

    조선 선조때의 대신 백사 이항복(1556∼1618)은 오성대감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 관료사회에 만연했던 당쟁에 휩쓸리지 않고 끝까지 초연했을 뿐만 아니라 재정·회계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나라의 어려운 살림을 잘 꾸려 나갔다.또 역사상 민족의 최대 수난기였던 임진왜란때 병권을 쥔 병조판서가 돼 난리를 무난히 평정했다. 그가 호조참의에 임용됐을 때 그때까지 방만하게 운용되던 재정지출을 대폭 줄이고 불필요한 예산항목을 과감하게 삭감,불과 한달만에 재정적자를 흑자로 되돌려 놓았다고 한다.이에 호조판서인 윤두수는 「문인으로서 전곡에까지 밝으니 과연 도재」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항복은 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비록 신분상의 불이익이 오더라도 개의치 않고 실행에 옮겼다.사화가 격렬해지면서 정철이 누명을 쓰고 한강가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평소 정철과 절친했던 친우들이 모두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을 우려,감히 위로의 말을 건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으나 이항복만은 주위의 권고를 뿌리치고정철에게 위문을 갔다.이 때문에 그도 모함을 받아 귀양가는 신세가 됐으나 그의 선비정신을 높이 산 이원익의 도움으로 관직에 복귀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총명과 재기를 발휘,주위를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나라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각오를 하고 관청에서 돌아오자 마자 형님과 누이들에게 하직인사를 하면서 「더이상 나에게 가사를 말하지 말라」고 한뒤 임금을 모시고 떠났다.속된 사람은 난리가 나면 자신의 피붙이부터 먼저 챙기지만 그는 나라와 임금의 안위부터 걱정했던 것이다.
  • 청와대사칭 괴문서 금융기관들에 접수/“전산망자료 요청”

    대통령직 인수위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실을 사칭,팩시밀리를 이용해 금융기관및 전산정보관련 회사에 전산망 관련자료 제출을 요청하는 허위문서가 전달돼 관계기관이 수사에 나섰다. 청와대는 9일 『이 허위문서가 8일 상오 조흥은행등 금융기관과 한국데이콤등 전산정보회사등 16곳에 한국데이콤의 「천리안」 팩스서비스를 통해 발송돼 이가운데 13곳에 접수됐다』면서『범죄조직이 금융전산망 접근을 시도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 최일선서 대민봉사… 6명에 「참일꾼상」

    ◎전직각료 친목모임 「육중회」서 상패·상금 수여 전직 각료들의 친목모임인 육중회(회장 강영훈전총리)는 근무여건이 열악한 벽지등 최일선에서 성실하게 대민봉사를 해온 등대장·교사등 6명의 공무원을 제3회 「참일꾼상」수상자도 선정표창했다.군산 말도등대장 김영길씨(56)등 6명의 참일꾼상수상자에게는 상패와 50만원씩의 상금이 수여됐다.영예의 수상자들은 다음과 같다. ◎환경정화부문 최정일씨/고지대 쓰레기 매일 마대로 수거 동작구청 청소과에 근무하는 최정일씨는 1973년 10월6일 환경미화원으로 임용된뒤 고지대·가로청소 등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해오면서 동료간 협동과 인화단결에 앞장서오고 있는 모범공무원이다.특히 최근에는 수거에 가장 큰 어려움이 있는 사당동 고지대의 쓰레기 3.8t일을 매일 마음대로 수거하면서 주민들의 불편과 민원을 일체 발생시키지 않고 있으며 차량출입이 안되는 지역임을 감안하여 본인이 손수 소형리어카를 제작하여 매일 1∼2회씩 관할지역을 순회하고 있다. ◎사도부문 이훈교씨/과학교육 발전에 선도적 역할 서울 매봉국민학교에 근무하는 이훈교씨는 40여년간 초등교육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해온 모범교사이다.73년부터 80년까지 서부과학 주임회 회장직 재임시에는 과학회보 발간,자연과 탐구학습 노트모형 개발,과학주임 연수회 실시,모범적인 과학실 설치모형 개발·보급등 과학교육 발전을 위한 선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박봉에도 불구하고 장학회를 설립하여 불우한 우수 어린이 연 1백20여명에게 장학금을 마련하여 배움의 길을 열어주는 등 사도 실천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횃불부문 김영길씨/27년동안 무인도에서 등대 밝혀 군산지방해운항만청에 근무하는 김영 길씨는 66년 1월 등대직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래 만 27년동안 오로지 격렬비도·말도·옹도 등 근무여건이 열악한 무인도에서 선박의 안전항해를 위하여 차질없이 등대를 관리함으로써 한 건의 사고도 없이 해상교통안전에 이바지한 투철한 국가관과 사명감을 지닌 공무원이다. 80년 7월 격렬비도 인근에 간첩선이 나타나자 즉시 인근 해양경찰서 군부대 등에 신속히 비상여락을 취하여 간첩선을 격침시키도록 했다. ◎친절봉사부문 연동언씨/동사무소 민원인에 늘 친절봉사 성동구 중곡제1동에 근무하는 지방행정주사보 연동언씨(38·여)는 지난 1973년 공무원에 임용된 이후 주로 구청의 시민봉사실과 동사무소등 일선 민원실에 근무하면서 민원인들에게 항상 친절하게 봉사함으로써 주민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연씨는 매일아침 민원인들이 쾌적한 분위기 속에서 일을 볼 수 있도록 민원실의 필기대·의자·화분 등 집기정리와 청소등 깨끗이 하고 업무의 내용이나 절차를 잘 모르는 민원인에게는 소파에 안내하여 자세하게 설명함으로써 충분히 이해하도록 하고 있다. ◎민중의 지팡이 윤덕종씨/양로원 위문 등 사회봉사에 앞장 제주경찰서 경무과에 근무하는 윤덕종경장은 1980년 5월15일 경찰에 투신한 미래 주민과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경찰상을 확립하기 위하여 장애자복지시설·양로원 등에 수시로 위문하고 있다.특히 지난해 9월에는 화재사고로 입원하여 수술비가 없어서 수술을 못하고 있던 한동현(당10세·제주시 삼양1동)어린이에게 수술비 일부를 지원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경장은 민생치안확립을 위한 경찰수사력 강화를 위하여 무선통신망체제를 완비함으로써 제주지역을 난청없는 지역으로 만들었다. ◎우편봉사부문 손일식씨/우편용 문패 9백개 직접 달아 부산우체국에 근무하는 손일식씨는 62년부터 체신부에 발을 들여놓은 뒤 31년간 집배원으로 근무하면서 우편물을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히 배달했다. 1986년도에는 고지대 다세대 밀집지역의 문패없는 집에 우편물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배달하기 위하여 플라스틱문패 9백여개를 달아주는 등 집배환경 개선에 솔선 기여하였으며 69명의 동료집배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수많은 경조사에 적극 참여하고 직장내에 친목회를 조직하는 등 돈독한 동료애의 함양과 화목한 직장분위기 조성에 기여했다.
  • 「그대안의 블루」 감독 이현승씨(인터뷰)

    ◎“영상통해 여성문제 사회확산 기대” 『남성위주의 우리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대중매체인 영화를 이용하면 쉽게 사회문제로 확산시킬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여성의 사랑과 진정한 삶을 제시한 영화 「그대안의 블루」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신예감독 이현승(32)씨.홍익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드물게 여성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연구해온 페미니스트감독.YMCA 사회개발부에서 활동하던 대학시절 남성의 시각에 의한 것만이 아닌 다른 세계,즉 여성의 삶에 관심을 갖게됐다는 그는 박광수감독의 조감독으로 일하던 지난 88년 「한국여성의 전화」 의뢰로 아내구타문제를 다룬 문화영화 「굴레를 벗고서」(16㎜ 40분)를 만들기도 했다.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한 삶을 누리지 않는한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이 누리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이감독은 『여러 요소가 복합돼서 야기되는 여성문제를 남성의 입장에서 다루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면서 『앞으로 보다 심도있는 연구와 함께 성폭력이나 조직사회내에서의 여성의 지위문제등을 다루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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