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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납토성서 캐낸 고대사의 진실

    ‘백제는 한강 유역에 위치한 마한의 한 소국으로 출발했다. 고구려 주몽의 아들 온조가 남하하여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정하고 백제를 세웠다(B.C. 18).…3세기 중엽 고이왕 때에이르러,백제는 확대된 영토와 통치 조직을 갖춤으로써 중앙집권 국가로서의 기틀을 잡아갔다.’이는 교육부가 발행한 고교 국사 교과서 상권 45∼46쪽에 실린 초기 백제에 관한 설명이다.이 서술은 그러나 근본적인모순을 안고 있다.한국 고대사를 해석하는 상반된 두 흐름가운데 하나를 택하지 않고 양쪽을 뒤섞었기 때문이다. 한국 고대사는 ‘삼국사기’초기 기록을 인정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그 체계가 전혀 달라진다.삼국사기는 백제 건국 시기를 서기전 18년으로 못박고,시조인 온조 당대에 한반도 중부를 장악한 강력한 국가를 건설했다고 기록했다.반면 사학자·고고학자들의 대부분은 이 기록을 부정하고 일제이래 일본 황국사가들이 만든 틀,곧 백제·신라는 서기 3∼4세기 가서야 비로소 국가다운 국가로 성립된다는 학설에 묶여 있다. 하지만 이제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부정할 수 없게 됐다. 풍납토성이 그 실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이 토성은 성벽만해도 폭 40m,높이 최대 15m,둘레 3.5㎞나 되는 아시아 최대규모임이 밝혀졌다.게다가 탄소연대측정 결과 성은 빠르면기원 전후,늦어도 서기 200년쯤 축조가 끝났음이 확인됐다. 삼국사기가 기록한 시기에 서울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국가가 존재했음을 풍납토성은 웅변한 것이다. ‘풍납토성,500년 백제를 깨우다’(김영사 펴냄)는 이처럼중요한 의미를 지닌 풍납토성에 관한 나무랄 데 없는 ‘보고서’다.저자는 연합뉴스의 문화재·학술 담당기자인 김태식씨.그는 발굴현장을 발로 뛰고 관련문헌을 샅샅이 뒤져 논문처럼 정교하고 소설처럼 재미있는 책을 엮어냈다.이 책을 읽고 나면 풍납토성이 왜 ‘한국의 트로이’고 꼭 보존해야 할유산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용원기자 ywyi@
  • 하남 이성산성 발굴 의미

    한양대박물관의 이성산성 발굴조사 결과는 ▲삼국각축기의 역사를 재정립하고 ▲고구려의 지방통치사 및 생활사 연구에 전기를 맞을 수 있는 중요자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이성산성은 한강의 남쪽유역에 위치하면서 주변의 다른 성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군사적 요충이었다는 점에서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백제는 기원전 18년 하남위례성에 도읍한 뒤 475년 고구려에 점령될 때까지이 지역을 차지했다.백제는 551년 신라의 지원으로 탈환하나,553년 신라의진흥왕이 백제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이 지역을 점유했다.이 시기 신라가 이성산성을 처음 쌓았다는 설이 그동안에는 지배적이었다. 이에 앞서 정약용(鄭若鏞)이나 이병도(李丙燾)·천관우(千寬宇)는 이 지역일대를 백제의 하남위례성으로,조선 말의 홍경모(洪敬謨)는 백제 온조의 고성으로 각각 추정했으며,최몽룡(崔夢龍)서울대교수와 권오영(權五榮)한신대교수는 백제 근초고왕이 천도한 한산(韓山)이라는 학설을 펴기도 했다.이번발굴 조사 결과는 상당한 학설의 수정을 불가피하게할 것이다. 이 곳에서 발굴된 고구려 자(尺)는 그 존재 여부가 논란이 되어왔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일본의 아라이 시로이는 ‘환상의 고대사-고구려자(高麗尺)는 없다’는 책에서 그 존재를 부정했었다.이번 조사 결과로 이런 논란은 종지부를 찍을 수밖에 없게 됐다.발굴된 고구려자는 일부가 파손되어 35㎝ 정도가 남아있다.고구려자는 길이가 35.6㎝로 알려져있다. 요고(腰鼓)는 길이가 42㎝,양측면의 지름이 16㎝이고,가운데 잘록한 부분은7㎝이다.장고와 비슷한 모양이나 요즘 것보다는 크기가 작다.나무로 만든 염주알은 삼국시대 불교의구(儀俱)를 연구하는데도 좋은 자료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삼풍사고’ 오늘 5주년 생존자 3人

    “다시는 되새기기 싫은 악몽이지만 얻은 교훈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 95년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때 극적으로 구조된 사람들 중박승현(朴勝賢·24·여)씨와 최명석(崔明錫·25)씨는 참사 5주년을 하루 앞둔 28일 당시의 끔찍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사고 당시 지하1층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매몰돼 307시간만에 구출됐던 박씨는 “지난해 19명의 어린 생명을 앗아간 씨랜드 화재참사 등 대형사고가 끊이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근로복지공단 서울지역본부 복지과에서 산재근로자 자녀의 장학사업 관련 일을 하는 박씨는 96년 ‘산재근로자를위한 열린 음악회’에 출연했다가 박홍섭 당시 이사장을 만나 특채됐다. 최씨는 지난 1월 해병대에서 제대한 뒤 LG건설에 입사,경기도 용인시 수지빌리지 건설현장에서 설비를 담당하고 있다.97년 삼풍참사 희생자를 기리는노래 ‘너 없는 시간’을 작사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그는 “현장에서 숙식을 하며 근무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누구보다 큰 보람을 느낀다”면서 “붕괴사고의피해자인 만큼 그같은 인재로 인한 사고가 없도록 완벽시공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생존자 유지환(柳智丸·23·여)씨는 96년 10월 모교인 위례상고 재단의 지원으로 호주 시드니대학 언어연수과정을 마친뒤 지난해 9월부터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근로자 중개회사인 맨파워코리아에서 인력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송한수기자 on
  • 풍납토성 안쪽 문화지구 지정할듯

    풍납토성의 문화재보호구역 지정은 어떤 범위에서 이루어질까. 문화재청은 금명간 열릴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경당연립터에 한정된다고 밝힌다.일단 풍납토성 안쪽 전체의 보존 여부를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박지원(朴智元) 문화관광부장관은 그러나 한걸음 나아간다.박장관은 보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많은 돈이 들더라도 보존해야 한다는 뜻을 갖고 있고,실제로 이런 생각은 정부 안에서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토성 안쪽의 ‘문화지구’ 지정을 유도한다는 문화재청의 방침도 이런 시각과 일맥상통한다.문화지구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사적(史蹟)’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각종 규제를 가함으로써 개발을 억제할 수 있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이미 풍납토성 내부지역 전체를 어떤 ‘강도’로든 보존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음을 문화부나 문화재청 관계자 모두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 상황에서 이를 공표하지 않는 것은 문화재보호구역 지정행위가 문화재보호법상 문화재위원회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인 것 같다.정부 스스로 법이 규정한 행정적 절차를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번 발표가 문화재보호론자쪽에서 보면 다소 소극적으로 비칠 수도 있었던데도 이런 배경이 있었다. 문제는 정부가 ‘토성 바깥쪽’에는 아직 신경을 쓰지 못하는 데 있다.“풍납토성에도 당연히 해자(垓字·방어용 물길)가 있었다”는 학계의 지적은 새로운 검토를 필요로 한다.풍납토성을 ‘완전보존’하려면 해자가 있던 성 밖일정구역까지 보호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이런 주장의 선두에는 ‘풍납토성은 하남위례성’이라고 끊임없이 주장하여,거의 입증하는 단계에 이른 이형구(李亨求) 선문대교수가 서 있다. 결국 풍납토성을 완벽하게 보존하려면 현재 생각하는 것보다도 많은 주민불편과 더 많은 비용부담이 따를 수도 있다는 점을 국민과 정부 모두 염두에두어야 할 것 같다. 서동철기자 dcsuh@. *풍납토성 보존위한 주민보상 얼마나 드나. 풍납토성을 보존하기 위한 주민 보상에는 모두 얼마가 필요할까.3조원설(說)에서 5조원,10조원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견해가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구체적 언급을 피하고 있다. 보상액수 추정치가 이토록 큰 편차가 나는 것은 이 곳이 규모가 제각각인다세대 및 다가구주택 밀집지역이기 때문이다.아파트나 단독주택이라면 보상액수 추정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한 집에 여러 세대가 몰려 사는 지역이라면계산은 그 만큼 복잡해진다. 경당연립터의 발굴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재건축 붐이 일고 있었다는점은 추산을 더욱 어렵게 한다.한 공인중개사에 따르면 토성 안쪽의 땅값은지난 1∼2월까지만 해도 평당 500만∼550만원 선이었다.3∼4월 들어 재건축분위기가 확산되면서 650만∼700만원 선으로 뛰었다는 것이다.5월들어 토성보존설이 본격화된 뒤에는 거래가 끊기고,가격도 약보합세를 보이고 있다는설명이다.보상기준 시점을 언제로 잡느냐에 따라 보상액에 최고 40%의 편차가 생긴다는 얘기다. 재건축에 따른 시세차익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한다.보통 조합원의 대지지분에는 프리미엄이 붙는다.시세가평당 600만원이라도 800만∼900만원,많게는 1,000만원까지 계산해준다는 것이다.조합원 지분에 평당 900만원을 적용하는 데 16평의 대지지분을 갖고 있다면,1억4,400만원을 출자한 셈이 된다.아파트의 평형에 따라 분양가와의 차액만 부담하거나 혹은 돌려받으면 되므로,재건축에 임박하여 ‘딱지’를 산 사람이 아니라면 상당한 시세차익을 바라볼 수 있다. 경당연립처럼 이미 재건축에 들어갔거나,외환은행이나 미래마을조합처럼 상당수준 진척된 지역에 대지지분만큼의 땅값만 보상할 것인지,대지지분의 프리미엄까지 보상할 것인지,시세차익까지 모두 보상할 것인지는 미지수다.이런 상황에서 보상비용 언급은 구체적인 보상수준을 암시할 수 있기 때문에정부의 입은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동철기자
  • [외언내언] 풍납토성 파괴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백제 초기 왕성으로 추정되는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안쪽의 유적 발굴 현장 일부가 13일 아파트 재건축조합 관계자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파괴됐다는 것은 참으로 충격적이다.굴삭기를 동원한 이런 ‘문화테러’가 자행될 수 있는 우리 현실이 부끄럽고 안타깝다. 풍납토성은 한성백제(BC 18∼AD 475년)의 왕성이었던 하남 위례성 자리로역사학계가 추정하는 곳이다.백제가 고구려에 밀려 도읍지를 웅진(공주)으로옮기기까지 약 500년간 백제의 도읍지였던 하남 위례성의 위치는 지금까지확인되지 않았으나 지난 97년 이후 여러차례의 풍납토성 발굴결과 이곳이 하남 위례성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따라서 역사·고고학계 원로 중진 학자들은 “지난 100년 동안 이루어진 발굴 중 풍납토성 발굴이 가장 의미있다”(이종욱 서강대 교수)면서 “폼페이 유적보다 우리에게 더 가치있는 유적”(김영상 서울문화사학회 명예회장)을 잘 보존해 후손에 넘기지 못하고 파괴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 것이다”(김삼용전원광대 총장)고 지난 8일 서울백제수도유적보존회 주최로 열린 ‘풍납토성 보존을 위한 학술회의’에서 입을 모았다.이 세미나가 열린 지 닷새 만에 무참히 파괴된 풍납토성 안쪽 경당연립 재건축 부지는 바로 ‘대부(大夫)’및 ‘정(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초기백제 토기등이 출토된 곳이다. 풍납토성의 중요성을 잘 모른 채 재건축 아파트 공사지연과 늘어나는 발굴비용 부담 그리고 재산권 침해에 분개한 주민들의 사정 역시 딱하긴 하다.그러나 사유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중요한 문화유적을 함부로 파괴할 수는 없는 일이다.이번 사건이 “예고된 참사”였다는 지적은 우리 문화재 보호정책의 허점을 보여준다.1963년 토성 자체만 사적으로 지정한 단견이나 문화유적보호에 대한 인식이 낮은 국민의식도 문제지만 문화재 당국과 서울시가 좀더 성의있게 대처했더라면 불행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물론 50만평에 이르는 풍납토성 내부를 모두 보존지역으로 지정하자면 주민들에 대한 대토(代土)와 보상금 지급 등에 10조원의 예산이 필요해 정부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당장 이같은 결단이 어렵다면 사유재산권을 보호하면서 고층건물 제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또 이번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유적 발굴비용을 사업시행자가 부담하도록 한 문화재 보호법에 단서조항을 붙여 필요할 경우 당국이 개입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시민의 자발적 모금과 기부를 통해 문화유산을 매입해 영구 보존하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이 절실히 요구되는 곳이 바로 풍납토성 지역이 아닌가 싶다. 任英淑논설위원 ysi@
  • 백제 위례성 터 추측 하남 교산동 1차발굴

    한성백제의 도읍인 하남위례성 터일 가능성이 제기됐던 경기도 하남시 교산동 일대에 대한 1차 발굴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일단 통일신라말∼고려초에서 조선후기에 걸쳐 사용된 대형건물 유구와 부속시설들이 확인됐다. 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재연구원(원장 장경호)은 12일 지난해 8월부터실시한 교산동 건물지 1차 발굴조사에 대한 지도위원회를 열고 그동안의 발굴성과를 발표했다. 이번에 조사된 ㄷ자모양의 대형건물터는 남북 50m,동서 65m 규모로 2∼4회에걸쳐 중복 축조됐다. 출토유물은 기와·토기·자기·철제품 등 다양하며,특히 연꽃무늬나 귀면(鬼面) 무늬 등을 새긴 막새기와와 잡상(雜像) 등 특수기와도 발견됐다. 발굴단은 교산동 건물지의 최상층은 광주관아 또는 객사와 관련된 시설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고,그러나 이번 조사는 지상에 노출된 유구에 한정된 만큼 백제유적의 존재 여부는 최하층의 건물유적을 추가 발굴조사해야 규명할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동철기자
  • 현대여고 2년연속 정상‘골인’…여왕기 축구

    현대여고가 2년 연속 정상에 올랐다. 현대여고는 30일 울산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스포츠서울 주최 제7회 여왕기전국여자종별축구선수권대회 마지막날 고등부 결승전에서 이찬호(2골)정정숙(1골)이 3골을 합작하는 수훈으로 전통의 강호 위례정산고를 4-1로 따돌려대회 2연패를 이뤘다.현대여고는 이로써 96년 4회 대회를 포함,통산 세번째여왕기를 품에 안았다. 2골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빈 현대여고의 이찬호는 MVP의 영예도 함께 누렸다. 여왕기를 3차례나 제패한 위례정산고(전 위례상고)는 준결승전에서 장호원상고를 4-0으로 대파한 여세를 몰아 2년만의 패권 탈환을 노렸으나 현대여고 공격 투톱인 이찬호와 정정숙을 막지 못해 준우승에 그쳤다. 현대여고는 전반 23분 이찬호가 선제골을 올려 기선을 잡은 뒤 후반에 정정숙 이찬호 이현정이 차례로 한골씩을 터뜨려 대세를 결정지었다.위례정산고는 후반 유희연이 한골을 만회,영패를 면했다. 앞서 열린 중등부 결승에서는 설봉중이 가정여중을 2-0으로 따돌리고 5회대회를 포함,두번째 여왕기의 주인이 됐다.슈팅수 19대2로 압도하며 공격의주도권을 잡은 설봉중은 후반 5분 이효정이 문전혼전중 선취골을 뽑고 13분대회 MVP에 오른 이장미가 추가골을 올려 완승을 거두었다.
  • ‘백화점식 원스톱 자원봉사’ 큰 호응

    ‘자원봉사로 가꾸는 풍요로운 복지사회’ 강동구(구청장 金忠環)가 관내 사회단체 및 주민들과 손잡고 불우노인들을위한 전방위 자원봉사활동을 전개,인정이 넘치는 지역사회를 일궈가고 있다. 자원봉사 전담부서까지 두고 있는 강동구는 이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지난 95년 11월 일명 ‘백화점식 원스톱 자원봉사’제를 도입했다.매월 셋째주 화요일을 ‘정기 자원봉사의 날’로 정해 구민회관에서 진료와 치료,투약,이·미용,식사,가훈 증정,교통편의 제공 등 패키지형 자원봉사를 펴고 있는 것.그동안 연인원 4만1,000여명의 노인들이 이 혜택을 입었다. 13일은 40회째 맞는 정기 자원봉사의 날.양방 및 한방병원 각1곳을 비롯해약사회,서예인단체,주부단체,택시기사모임 등 12개 단체에서 100여 자원봉사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구민회관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10개 분야에 걸쳐 자원봉사가 펼쳐진다. 우신향한방병원과 강동성심병원의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 20명이 침 뜸물리치료 등 한방과 내과 피부과 각종 노인질환 등 양방을 무료로 진료한다. 강동구약사회는 진료상담과 함께 무료로 약을 제조해준다.주부들의 모임인단비봉사단은 노인들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위례서예인협회는 가훈이나 명언을 써서 선물할 계획이다.아울러 참사랑교회와 구 바르게살기협의회 회원들이 한방차를 대접하고 청소년들은 안마로 봉사대열에 합류한다. 이어 천호회관에서 점심대접을 받은 노인들은 개인택시 기사들과 강동소방서 직원들의 봉사를 받아 택시와 119구급차로 집에까지 편하게 돌아간다. 김용수기자
  • ‘백제 초기도읍지는 천안’설 주목

    ◎서울대 고고학 조사단,유물 다수 발굴/숯 연대측정… 2010년전으로 밝혀져/토성흔적·대형 돌무지무덤도 발견 백제가 처음 나라를 세운 초기 도읍지는 어디인가.이 문제는 아직 명쾌하게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다만 시조 온조가 기원전(BC) 18년 하남위례성에서 건국했다는 기록만은 전해내려 온다.그러나 하남위례성 자리는 꼬집어 밝혀내지는 못했다.학자에 따라 서울 강동구와 경기도 광주 일대,또는 충남 천안시 직산 일대를 백제 초기 도읍지로 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천안지역에서 진행한 유적발굴에서 백제 초기의 유물이 속속 나오고 있다.특히 서울대 고고학발굴조사단이 천안시 북면 운용리 위례산성(해발 825m)에서 유물과 함께 거둔 시료(숯)의 연대측정가는 백제 건국시기에 접근했다.서울대가 일본 교토산업대에 맡겨 실시한 시료의 과학적 연대측정에서 오차는 약간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2010년전 숯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서울대팀이 발굴한 위례산성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하남위례성’의 ‘위례성’과 일치한다.그래서 일찍‘삼국유사’에 등장했거니와 이 사서는 도읍지 위례성은 사천인데 지금의 직산이라고 했다.이밖에 ‘고려사’ 지리지,‘세종실록’ 직산조,‘대록지’,‘동사강목’,‘둥국여지승람’에도 같은 내용을 적어 놓았다,또 여러 고지도 역시 천안(직산)땅에 위례성을 그려넣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아주 최근에는 백승명씨를 주축으로 한 천안지역 향토사학자들이 서울대 규장각에서 위례성을 뚜렷이 표시한 고지도를 찾아냈다.1735년에 간행한 ‘해동지도’인데,당시 직산현 일대를 상세히 그렸다.또 이들 향토사학자들은 위례산성에서 직선으로 3㎞쯤 떨어진 천안시 입장면 도림리 뒷산에서 대형 돌무지무덤 2기를 발견했다.3단으로 축조한 이들 돌무지무덤은 하단의 장축이 9m나 되었다.이와 더불어 위례산성 기슭에서 가로 1m,세로 80㎝의 갈돌 6점을 확인했다. 이들 향토사학자들이 새로 찾은 돌무지무덤은 규모가 비교적 큰 것으로 미루어 백제초기 한 세력집단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특히 천안시 직산읍 안국리 한 과수원에서 발견한 토성 흔적은 주목을 끌었다.왜냐하면 평지성이라는 점에서 백제초기 도읍지의 거성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이 직산읍 안국리 토성이 거성일 경우 북면 용운리 위례산성은 비상시 사용한 배후성이라는 결론이 나온다.서울대는 지난해 이 산성에서 백제 특유의 삼발이토기의 철제무기류,토마와 철마 따위의 유골을 수습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으로 보아 직산 일대를 하남위례성으로 지목한 향토사학자들은 서울 강동구 일대를 하남 위례성으로 본 종래의 학설을 비판하고 나섰다.이는 ‘삼국사기’를 그릇 해석한데서 비롯한 오류라는 것이다.북으로 한수가 띠를 둘렀다는 ‘북대한수’의 ‘한수’는 한강이 아니고 오늘의 안성천이라는 주장이다.그 근거는 일본인들이 안성천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이전 안성천 본래의 이름이 ‘한내’ 또는 ‘한천’이었다는 사실에서 찾았다. 그래서 경기도 평택시 오산출장소 뒷산인 부악산을 ‘삼국사기’의 부아산으로 보면 지세가 꼭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동쪽에 높은 산이 자리 잡았다는 ‘동거고악’으로 안성의 칠현산,천안의 성거산과위례산 등 12개 산을 꼽았다.남쪽으로 넓은 들이 보인다는 ‘남망옥택’은 평택평야를 말하는 것이고,서쪽은 바다로 막혔다는 ‘서조대해’는 바로 아산만이라는 주장이다. 어떻든 이들의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지녔다.고고학 발굴과 일련의 유적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하지만 고대사학계가 얼마만큼 받아들일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 “마한·진한·변한 문화재 한자리에”/「삼한박물관」 전남에 세운다

    ◎건립추진위,내년 착공… 2천년 개관/몽촌토성∼익산∼목표 유적지 확인 답사/새달 연구논문집 발간함께 모금운동 계획 오는 2000년 전남도내에 마한 진한 변한 등 삼한시대 관련 문화재를 모은 삼한박물관이 건립될 것으로 보인다. 삼한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회장 이현재 학술원회장)에 따르면 현재 전남도 지역에 삼한박물관 부지매입을 추진중이며 내년부터 공사에 들어가 빠르면 오는 2000년 삼한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이 삼한박물관은 고구려 신라 백제 등 고대국가 이전 3천년간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시대가 엄연히 존재했는데도 그 역사 자체가 무시되거나 발굴되지 않는 현실에서 학계,재계,관계와 전남도 관계자들이 삼한역사 재조명 차원에서 건립을 추진해왔던 것.박물관 건립과 관련해 지금까지 총 15차례에 걸친 학술토론회가 열린 것을 비롯해 4차례의 일본내 삼한시대 관련 역사문화 탐방이 이루어졌다.박물관 건립추진위와 마한역사문화연구회 주최로 지난 9일부터 3일간 마련된 삼한역사문화탐방은 내년 박물관 시공을 앞두고 삼한 특히마한 관계지역을 사전답사한 행사.서울 몽촌토성에서부터 전북 익산,전남 광주,영산강유역의 고분군과 목포를 잇는 일정으로 짜여져 학계·재계·언론계·전남도 관계자 100여명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백제 하남 위례성 자리로 거론되고 있는 서울 강동구 몽촌토성을 시작으로 익산 백제 무왕의 출생지와 무덤이 있는 익산 금마,광주를 거쳐 나주시 고분,강진 다산 초당,목포 해양박물관,광주박물관,나주시 다시면 발굴현장 등을 찾아가 마한 관련 유적지와 고분군이 어떤 상황으로 남겨져 있는지를 확인하는 탐방이었다.이현재 학술원회장과 김삼용 전 원광대총장,최봉열 마한역사문화연구회장,황명숙(한양대)신형식(이화여대) 김병모(한양대) 임효재(서울대) 김광언(인하대)권영필(고려대) 임영진(전남대) 교수 등 학계 인사와 변호사 이재후씨,오재희 전 주일대사,유양수 전 건설부장관,이종현 조흥증권회장,김여심 한국종교연합회 이사장,정재호 금정그룹부회장,김형문 한국유권자운동연합회 공동대표,오와가치 일본대사관 정치담당 참사관,황용남대한교육보험 고문,김종규 삼성박물관회장,권오성 한국국악회장 등 각계 인사가 고루 참석해 이번 탐방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건립추진위는 이번 답사와 지금까지의 학술토론회에서 발표된 연구논문 40여편을 묶은 논문집 「삼한의 역사와 문화」를 5월말 발간하고 이와 동시에 본격적인 모금운동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이번 탐방에 참가한 김병모 교수(한양대)는 『박물관 숫자가 미국 1만개,일본·영국이 각 3천개인데 비해 우리의 경우 80여개 밖에 안되는 미개국 수준』이라며 『민족문화상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선조들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할 자료를 수집 전시할 박물관 필요성에서 특히 마한 54국,진한 12국,변한 12국 등 모두 78개의 나라이름이 역사서에 나타나고 있는만큼 삼한 전문박물관 건립은 때늦은 감이 없지않다』고 역설했다.
  • 고대 「제사유물」무더기 출토/서울대 발굴단,충남 천안 위례산성서

    ◎토마­철마 16점·세발토기 등 다량 “햇빛”/제단 구조물 석축 확인… 백제 유물 추정 충남 천안시 북면 운용리 산81 해발825m 위례산성에서 토마와 철마를 비롯한 고대유물이 무더기로 출토되었다.이 산성은 백제 건국기의 하남위례성이라는 주장도 제기되는 유적.그래서 출토유물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소 고고학발굴조사단(단장 임효재 교수)이 지난 9월1일 착수한 제2차 발굴에서 11일 현재 거두어들인 토마와 철마는 모두 16점.진흙으로 만들어 구워낸 토마 10점,쇠로 만든 철마 6점 등으로 되어있다.모두 같은 발굴지점에서 나온 이들 말모양 유물의 평균 길이는 8㎝.지난해 실시한 1차 발굴에서도 2점의 토마가 위례산성에서 나왔다. 이들 말모양의 유물이 나온 지점은 위례산성 정상 북쪽 낭떠러지 근처.유물과 함께 제단구조물로 보이는 석축 일부가 확인되어 말모양의 유물들은 제사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말은 고대인들이 신성시한 동물.특히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말은 큰 힘이 되었기 때문에 고대인들은 정복지에서 마제를 지냈다는 것이다. 토마와 철마는 백제계 산성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다.지난 1986년 경기도 광주군 서부면 춘궁리 이성산성에서 토마와 철마 머릿부분을 포함한 말모양의 유물 4점이 나왔다.그리고 제사유적이 분명한 여러 흔적도 이성산성에서 찾아냈다.백제 건국집단의 뿌리인 부여족 신화에도 말이 영물로 등장한다.이같은 「삼국유사」 기록은 백제인들 심성에 깔린 말의 비중을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위례산성 발굴에서는 말모양의 유물 말고도 백제 고유의 유물인 세발토기(삼족토기·삼족토기) 등 고대유물이 대량 출토되었다.이가운데는 원자가 들어있는 기왓장,멍석무늬토기,청색 대롱옥(관옥),당의 화폐 개원통보가 들어있다. 개원통보는 당에서 3차례에 걸쳐 주조되었는데,이번 출토유물은 크기와 무게(지름 2.5㎝·무게 2g)등으로 미루어 7세기쯤에 통용한 초기의 화폐로 보았다.따라서 위례산성은 백제 초기에 축성되어 삼국시대 말기까지 백제가 방어기지로 사용한 산성이었다는 것이 발굴단의잠정적 견해다. 발굴현장을 답사한 건국대 최무장 교수(전 부여문화재연구소장)는 『이 산성은 백제산성의 전통축조방식인 퇴뫼식과 포곡식을 절충했다는 점이 중요시 된다』고 말했다.그리고 『출토유물을 근거로 문헌사학이 풀지 못한 하남위례성 위치를 규명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천안=황규호 기자〉
  • “우리사회는 아직도 안전불감증”/삼풍참사1돌…생환 3명 한자리에

    ◎최명석군­올초 전문대학 복학… 아직도 유명세 치러/유지환양­다니던 회사 계속 근무… 8월 호주유학/박승현양­근로복지공단 근무… 당시 생각 “눈시울” 『불과 1년전 일인데 사람들이 삼풍사고의 끔직함을 모두 잊은 것같아 답답합니다』 지난해 6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당시 기적적으로 생환,온 국민의 심금을 울린 최명석군(20)과 박승현(18)·유지환양(19)이 20일 상오 「악몽」의 사고현장에서 다시 만났다.삼풍참사 1주기 추모준비위원회(위원장 심영규)의 초청으로 만들어진 자리였다. 「6.29 그날 하오­삼풍시계는 멎었는가」라는 삼풍유족들이 쓴 수기를 들고 나타난 최군은 올해초 수원전문대 건축설비학과에 복학했다.말쑥한 차림의 최군은 아직도 한달에 서너통씩 여학생들로부터 펜레터를 받는 등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하지만 내년 가을에 졸업하면 군입대나 4년제 대학 편입을 생각하는 평범한 삶을 준비하고 있다. 두번째 생존자인 유양은 사고전부터 다니던 삼광유리에 계속 다니고 있다.모교인 위례상고이사장의 주선으로 오는 8월에는 호주로 유학을 간다.어학연수를 마치면 패션공부를 할 생각이다. 유양은 『우리를 기억해달라는 것은 아니지만 엄청난 사고를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등 우리사회가 안전불감증에 빠진 것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맨 마지막으로 구출된 박양은 지난 해 태백시에서 열린 산재근로자를 위한 사랑의 음악회에 초청받은 인연으로 지난 2월부터 근로자복지공단에 다니고 있다. 박양은 『사고이후 한동안 불을 끄고는 잠을 못잤는데 이제 많이 나아졌다』며 『같이 근무하다 숨진 언니들이 보고싶어 서너차례 삼풍백화점자리를 들러봤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한편 추모위원회와 참여연대 등 2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오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1주년을 맞아 영령들을 달래고 안전사회를 기원하는 대규모행사와 추모식을 갖는다. 삼풍백화점에서는 생명존중사회를 염원하는 뜻에서 시민들이 1㎞길이의 「생명의 띠」를 건물에 감는 인간띠 잇기행사를 갖는다.〈김성수 기자〉
  • 「나」보다는 「우리」가 좋은 사회여야(박갑천 칼럼)

    얼마전 「한국대학생의 가치성향과 상담효과」라는 책이 나왔다.전국의 대학생 1천2백여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대학교수들이 쓴 것이다. 거기에 오늘의 젊은이들 의식구조가 밝히 나타난다.『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61.5%),『길에서 연인과 포옹이나 키스를 할수 있다』(64.3%),『내이웃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싶지 않다』(80.1%),『버스나 지하철에서 내가 피곤하고 지쳤을 때는 노인이 앞에 섰더라도 자리를 양보않는다』(67.4%)는 반응들이다.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지만 「나」를 위하는 마음들이 널리 자리잡으면서 상대적으로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은 엷어져가고 있음을 드러낸다. 「나」라는 뜻을 갖는 한자는 「사」다.그 옛글자는 「사」인데 자신을 둘러쌈(포환)을 뜻하는 지사문자였다.후세로 내려오면서 「화」(벼화)가 붙어 물질적·이기적 성격을 띠게 된다.그에 비해 「공」은 「팔」과 「사」로써 이루어진 지사문자.「팔」은 「여덟」의 뜻이 아니라 「사」를 등져 멀리한다(배거)는 뜻이다.이 글자들의 생겨남을 두고 「한비자」(오두편)는 『공사가 서로 배치되는 것임을 창힐(창힐:한자를 만들었다는 전설적 인물)은 알고 있었다』고 써놓고 있다.「나」와 「우리」는 그렇게 부딪쳐야 하게 돼있는 관계라는 말인가. 여기서 우리말 「우리」도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그 「우리」는 모든 「나」가 하나로 있게 하는 「큰나」였다.따라서 「우리」는 한우리(한울타리)속에 있다.한우리 속에서 이해를 함께 해야하는 존재가 우리들이었다.그러니까 백제초기의 서울 위례성(창례성)도 토박이말로는 「울ㅅ기」(안재홍 「조선상고사감」).이 「울­우리」는 「□」에서 출발되는 말로서 알(난)·얼(영)과는 4촌간이다.그런 운명공동체로서의 「우리」가 「나」앞에서 굽잡혀야 할 것인가. 한무제때 사람 동방삭(동방삭)은 나 좋을대로 했던 기인으로 알려져온다.임금과 함께 식사하다 남은 것을 호주머니에 담고갈 정도로.이건 남을 언걸먹이는건 아니니 그래도 낫다치자.하지만 감기노이로제에 걸린 앙드레 지드같이 극장안 객석에서 바지를 벗고 샤쓰를 껴입는 것은나 좋으려면서 저지르는 염의없는 짓이다.나만이 아닌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극기복례)』(「논어」 안연편)은 예나 이제나 지켜져야할 덕목 아닐까 한다. 「나만 좋으면 고만」이 아니다.오히려 나는 좋지 않아도 우리가 좋을수 있게 살아가는 사회가 바람직스럽다 할 것이다.
  • 강화지역/출어·수산물 반입 금지/환경·복지부

    ◎콜레라 24시간 비상방역 체제로/44개교 단체급식·운동회 중단/간이상수도 2만곳 긴급 소독/천안시 북면 교통통제·임시휴교 해제 콜레라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보건복지부 등 방역당국은 물론 환경부와 교육부,각 지방자치단체 등이 유기적인 협조 아래 총력 비상 방역 체제에 들어갔다. 특히 콜레라 방역 상황실이 설치된 복지부 방역과와 24시간 비상 신고체제를 갖춘 전국 보건소에서는 관련 직원들이 추석 연휴를 포기하고 집에서 싸온 송편과 음식으로 식사를 때우면서 24시간 비상 근무하는 등 콜레라 확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환경부는 10일 복지부의 요청에 따라 전국 시·도에 수질 관리가 취약한 간이 상수도 2만6천3백63곳과 우물물에 대해 염소 소독을 하고 관리를 철저히 하는 등 콜레라 방역 대책을 시달했다. 환경부는 이날 인천과 강화,충남 천안,경북 포항 등 콜레라 발생 지역에 신현국 음용수관리과장을 반장으로 하는 「먹는 물 수질 관리 대책반」을 보내 수질 오염 여부 등을 확인하도록 했다. 교육부도 이날 전국 초·중·고교에 학생들을 상대로 물과 음식물은 반드시 끓이거나 익혀먹고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는 손·발을 깨끗이 씻는 등 개인 위생에 주의를 기울이는 등 예방교육을 실시하라고 시달했다. 복지부는 또 강화 등 서해안 일대 지방자치단체에 어류 반출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콜레라 균이 활동할 수 없는 10월 중순까지 선원 등에 대해 콜레라 검진을 강화하고 어패류 생식을 금지해 주도록 요청했다. 【인천·대전=김학준·이천열 기자】 콜레라 환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충남·대전·인천시 등은 11일에도 콜레라 환자가 늘어나자 방역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인천시는 이날 3명의 콜레라 환자가 더생긴 강화지역의 어선 5백2척의 출어금지와 함께 수산물의 육지 반입을 중단시켰다.44개 초·중·고교의 단체급식과 각급 학교의 운동회 등 주민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도 모두 중지하도록 했다. 옹진 등 22개의 항·포구에는 임시 검역소를 운용,선원과 어부들을 대상으로 항생제인 테트라사이클론을 투여하고,인천항으로 입항하는 선원들의 가검물을 채취하고 있다. 아직 환자가 생기지 않은 전북도는 바다를 통한 콜레라 전염을 미리 막기 위해 군산시의 어·패류 위판장과 항·포구 일대에서 대규모 방역활동을 폈다. 충남도는 이날 천안시 북면의 교통 및 주민이동 통제령을 해제했다.은석 및 위례국교와 은석국교의 천북분교 등 3개교의 임시 휴교도 해제했다.환자가 더이상 생기지 않는데다 귀성 가족조차 만나지 못하는 주민들의 불편을 덜어주려는 것이다. 충남도는 지난 7일 북면에서 집단으로 환자가 발생하자 추석 연휴를 앞두고 차량 및 주민 통제령을 내렸었다.
  • 콜레라 전국 확산/천안·인천·포항서 모두 12명 감염

    ◎의사환자 25명… 백여명 설사증세/수산시장 한산… 약수터 발길 끊겨/천안 3개국교 무기휴교 콜레라 환자가 늘어나면서 어패류 시장의 손님이 줄어드는 등 콜레라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10일 지난 8일 이후 콜레라 및 의사 콜레라 환자가 각각 6명과 12명이 더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콜레라 환자는 충남 천안 2명,인천 4명,강화 4명,포항 2명 등 모두 12명,의사 콜레라 환자는 천안 19명,강화군 3명,인천 1명,대전 2명 등 25명 발생했다. 이처럼 콜레라 환자가 늘어나자 인천 연안 부두는 물론 노량진 수산시장 등 어패류 취급 시장에는 손님이 크게 줄어들었다. 또 물은 끓여 먹어야 하기 때문에 평소 장사진을 이루던 약수터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줄었다. 복지부는 10일 현재 경북 5명,대구 4명,경기 40명,인천 13명,충남 44명,대전 2명,서울 15명 등 1백23명이 설사 증세를 신고해 가정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대부분 단순 설사 환자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포항 지역 2명을 제외한 인천 강화 천안 지역의 콜레라 환자 10명은 북한 지역의 바닷물을 타고 강화 인근까지 유입한 콜레라 균에 의해 감염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한편 복지부는 이날 충남과 인천에 콜레라 예방 및 치료 약품인 테트라사이클린을 20만정과 10만정씩 보냈다. 【천안=이천렬 기자】 충남도교육청은 10일 콜레라환자 2명이 발생한 천안시 북면내 위례국교 등 3개 국민학교에 대해 무기한 휴교령을 내리고 이 지역 중·고생의 등교를 금지했다. 콜레라로 인한 휴교조치는 지난 91년 서천지역의 콜레라 발병 뒤 처음이다. 도교육청은 이 날 충남도와 협의,11일부터 북면내 위례국교를 비롯,은석국교와 은석국교 천북분교 등 3개 국교에 대해 휴교령을 내렸다.이들 학교 재학생은 위례국교 79명,은석국교 1백36명,천북분교 45명 등 모두 2백60명이다. 또 이 마을에서 천안시내 병천면과 목천면 등 타 지역으로 통학하는 중·고교생 2백22명에 대해서도 등교를 금지시켰다. ◎방역활동 만전 지시/이총리 이홍구 국무총리는 10일 하오 과천 정부 제2종합청사의 보건복지부 중앙방역대책본부를 방문,콜레라 발생현황을 점검하고 철저한 원인규명과 방역활동에 만전을 기하라고 특별지시했다.
  • 위례산성/백제 유물 대량 출토/서울대 조사단

    ◎세발토기·토우·철기 등 발굴/첫 도읍지 「직산 위례성설」입증 충남 천안시 북면 운용리 산81일대 위례산성에서 백제시대 토기와 철기등 많은 분량의 유물이 쏟아져나와 문헌연구를 통해 주장해온 백제 초기 도읍지 직산 위례성설을 어느정도 뒷받침할 수 있게 됐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소 고고학발굴조사단(단장 임효재)이 충남 천안시 예산지원을 받아 지난 5월4일∼7월12일 실시한 발굴조사결과 이 산성일대에서 백제특유의 세발토기(삼족토기)와 말모양 토우(토우) 각각 2점,철제 낫(철겸)과 창고다리(철준) 각 1점,각종 토기및 기와조각 7백여점을 수습했다. 이번에 나온 토기 가운데 3개의 다리에 잔모양을 한 세발토기는 삼국중 백제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적인 토기다.그리고 고구려와 깊은 연관을 갖는 백제의 유물인 말모양 토우는 의례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이밖에 백제토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멍석무늬(승석문)가 찍힌 토기도 포함되어 위례산성이 백제시대 산성임을 입증했다. 위례산성은 천안·직산·입장·안성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차령산맥의 준봉 위례산 정상(해발 529.5m)에 위치했다.퇴뫼식(산정식)과 포곡식(포곡식)으로 이루어진 이 산성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토석혼축성과 돌로 쌓은 석성이 서로 연결되었다.산성 안에서는 우물 1곳과 성문자리(성지)를 확인했는데,이번에 발굴한 유물은 거의가 우물과 문자리 주변에서 나왔다. 백제의 초도 하남위례성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는 뚜렷한 정설이 없는 가운데 ▲서울 몽촌토성일대 ▲경기도 광주군 춘궁리일대 ▲천안의 직산 위례성설이 제기되어왔다.그러한 점을 고려하면 이번 위례산성 발굴결과는 천안의 직산 위례산성설에 접근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발굴단장 임효재(고고학)교수는 『백제의 특징을 지닌 출토유물로 미루어 이 산성은 백제시대에 축조되었다는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밝히고 『연차적인 정밀발굴을 통해 보다 중요한 자료를 더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 유양에 성금·선물… 특채 제의 “밀물”

    ◎「기적의 생환」 이틀째 이모저모/방문객 줄이어 면회 30분으로 제한/커피회사 자사제품 기증경쟁 “눈총”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이 14일째 계속되는 동안 지난 9일과 11일 각각 구출된 최명석군,유지환양이 입원중인 강남 성모병원에는 각계의 온정이 쏟아졌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3일만에 극적으로 구조돼 서울 강남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첫밤을 지낸 유양은 12일 상오 6시쯤 잠에서 깨어나 『아직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탓인지 잠을 푹 자지 못했다』면서 『가슴이 갑갑하고 온몸이 욱신거리지만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푹신푹신한 침대에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고 감격. ○…병원측은 유양이 이날 상오 8시30분쯤 미음 한 그릇을 모두 먹는 등 왕성한 식욕과 함께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고 설명. 병원측은 사고 직후 유양이 콩팥과 심장의 기능저하,눈 염증 등의 현상을 보였으나 하루 사이 거의 정상상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3일쯤 지나면 일반병동으로 옮겨질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 한편 병원측은유양과 최군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줄을 잇자 이들의 회복에 방해가 될 것을 우려,면회시간을 상오 8시부터 8시30분과 낮 12시부터 12시30분으로 엄격히 제한하기로 결정. ○…「사지」에서 살아남은 유양에게도 특채하겠다는 제의와 성금이 답지. 유양이 재직중인 삼광유리공업 김종훈(57)사장은 이날 5천만원의 위로금을 전달하고 대졸사원으로 대우해줄 것을 약속. 수협중앙회 박종식(46)회장도 유양을 연봉 1천6백만원의 대졸사원으로 채용하고 취업을 희망하는 가족들도 같은 조건으로 입사시키겠다는 뜻을 전달. 유양의 모교인 위례상고 유준웅(57)이사장도 호주 퍼시픽대에서의 연수 비용 또는 이 대학 2년 과정의 학비와 함께 생활비를 지원하겠다는 유학증서를 전달해 주위를 흐뭇하게 하기도. 삼광유리의 모회사인 동양화학은 또 유양 구조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사고대책본부에 성금 1억원을 기탁. 서울 강남구 역삼동 리츠칼튼 호텔 총지배인 존 콘웨이씨(37)도 병원을 찾아와 『유양이 우리 회사에 취직을 원하면 언제든지 받아들이겠다』고 제의.○…유양이 구조된 직후 『냉커피가 먹고 싶다』고 말한 사실이 전해지자 커피제조·판매회사들도 앞다퉈 자사제품을 기증해 와 눈길. 이날 동서식품,한국네슬레 등 유명업체가 캔커피를 보내온 데 이어 강남구 논현동 이화물산(대표 홍승업·40)은 『귀여운 유양의 생환을 축하합니다.냉커피 실컷 드세요』라고 쓴 카드와 함께 커피원료,커피잔세트,원두커피추출기 등을 기증. ○…전남 화순군 동면국민학교 학생들도 이날 조순 서울시장에게 삼풍백화점 사고현장에서 수고하는 구조대원들에게 전해달라며 꼬깃꼬깃한 천원짜리와 동전을 포함한 성금 18만1천20원과 편지를 보내오기도. 이 꼬마들은 『비록 작은 성의지만 구조대원 아저씨들에게 힘이 될수 있도록 편지와 성금을 대신 전달해 달라』고 주문.
  • “삶의 기쁨 실감했어요”

    ◎「13일 악몽」서 깨어난 유지환양의 새아침/“병상 아버님께 웃음 선사하고파”/“커피전문점 사장 되겠다” 당찬 포부/축하 꽃받고 “다른 사람도 받았으면” 『병석에 누워 제 걱정을 하고 있을 아버지를 하루빨리 만나고 싶어요』 삼풍백화점 폐허더미에서 2백85시간40분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기적의 소녀」 유지환(18)양은 12일 서울 강남성모병원 3층 중환자실에서 첫 아침을 맞아 생의 환희를 느끼면서도 조간신문에 나온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양은 『아침에 눈을 뜰 때 차갑고 딱딱한 콘크리트바닥 대신 병원 침대의 푹신함이 등에 느껴지면서 생의 환희를 실감했다』고 「13일간의 악몽」에서 깨어난 첫 소감을 밝혔다. 유양은 그러나 『병든 아버지가 안스러워 병원 침대에서 아버지를 꼭 껴안고 재워드린 기억이 새롭다』면서 『퇴원하면 바로 아버지가 있는 대한병원으로 달려가 그동안 하지 못한 재롱으로 아버지 얼굴에 웃음을 되찾게 해드리겠다』며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했다. 또 『당뇨병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니에게도어리광만 부리던 딸이 만든 음식을 해드리고 싶다』며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더욱이 효녀로 이름난 유양은 지난 5월 D생명보험회사의 「큰 효도보험」에 가입,월 6만8천원씩 2회분을 불입한 것으로 밝혀졌다.「큰 효도보험」은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사망했을 때 사망보험금 및 유족연금으로 일시금 6천만원을 지급하고 해마다 5백만원씩 부양연금을 주는 상품.D생명은 이날 유양의 효심을 높이 사 미완납 보험료 58회분 3백90여만원을 대신 납부해 주고 완납증서를 전달했다. 병상의 유양은 왼쪽 눈이 충혈되어 있고 이마와 오른손 등에 반창고가 붙어있는 등 사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핼쓱한 모습이었지만 목소리만큼은 또렷했다. 이날 점심으로 병원에서 제공한 미음과 계란부침개·요플레·주스 등을 모두 먹어치워 건강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토록 엄청난 재난도 10대소녀의 감성을 억누를 수는 없었던 것일까. 아침에 문병온 오빠 세열(20)군의 친구 이민상(20·홍익대 2년 휴학)군에게 『가족들을 도와 나를 찾느라 고생해 줘 고맙다』면서 『생일이 6개월이 지났는데 주겠다던 생일선물은 언제 줄거냐』며 농담을 건네 발랄한 소녀의 마음을 그대로 표출했다. 백화점 일을 다시 하겠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유양은 『그러나 집안형편이 어려운 만큼 직장일은 계속하고 싶다』며 『돈을 모아 커피전문점을 차려 사장소리를 듣고 싶다』고 당차게 포부를 밝혔다. 한편 하오에는 유양의 모교 위례상고에서 김은영(17·3년)양등 후배 2명이 유양의 나이와 같은 수로 18송이의 붉은 장미꽃을 들고 병실을 찾아와 선배의 생환을 축하했다. 유양은 화사한 안개꽃에 둘러싸인 장미꽃을 받아들고 천진한 웃음을 지어보이면서 『나처럼 연약한 애도 살아나왔는데 지금도 그곳에는 생존자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장미꽃을 받을 또다른 주인공이 나오기를 고대했다.
  • 생환 류지환양이 말하는 「2백85시간」

    ◎“배고파 미칠 지경일땐 소리 질렀다”/희망 버리지 말라는 어머님 말씀이 큰힘/그간 물한방울 못마셔… 이젠 집에 가고파 11일 하오 극적으로 생환한 유지환(유지환·18)양은 강남성모병원으로 후송된 뒤 2백85시간 40분동안 사투를 벌인 사람답지 않게 비교적 생기있는 모습으로 사고 상황에서부터 구출 순간까지를 더듬거리며 털어놨다. 압사의 두려움에서 벗어난 지환양은 열사흘동안이나 물을 한방울도 마시지 않아 탈수증세를 보이고 있으나 의료전문가들은 열흘 뒤쯤이면 일반병실로 옮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지환양과의 일문일답 ­지금 심정은 ▲너무 편하고 좋다. ­얼마나 지난 것 같은가. ▲한 일주일쯤 지난 것 같다. ­잠은 충분히 잤나 ▲자다깨다 해서 정확히 기억 나지 않는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집에 가고 싶다. ­안에 갇힌 동안 무슨 생각을 했나. ▲평소에 부모님께 잘해 드리지 못한게 후회됐다.어려운 입장에 처하니 어머니와 특히 병든 아버지 생각이 간절했다. ­사고당시 상황을 말해달라. ▲하오 6시에서 6시30분까지가 간식시간이었는데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지하3층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지하1층 가정용품매장에 도착했다.에어콘이 가동안돼 안이 무척 더웠다.갑자기 조장언니의 「뛰어 뛰어」하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우왕좌왕하다가 유리파편과 건물더미가 날라가고 몸이 붕 뜨는 것을 느끼면서 정신을 잃었다. ­고립된후 어떻게 지냈나. ▲안에는 먹을게 전혀 없었고 녹 물이 계속 떨어졌지만 구조될 때까지 물은 한방울도 안마셨다.떨어지는 물에 입술을 적시는 정도였다.(그러나 지금까지 11일을 넘게 물을 전혀 먹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료진의 말에 비추어 이 대목은 다소 혼란이 있는 듯) ­배가 고프지 않았나. ▲배가 고파 미칠 것 같을 때는 소리를 질러댔다. ­안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나. ▲아무것도 없는 암흑천지였다.비오는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가끔 소방대원들끼리 「여기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구조될 것으로 확신했었나. ▲처음에는 무섭고 두려웠다.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어머니 말씀이 떠올라 끝까지 버티면 살아나갈수 있다고 믿었다. ­구조당시 상황은. ▲멀리서 「탕 탕」하고 내리 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이전에도 몇번 들어서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이 보였다.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 ▲포크레인이 내리 찍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무너진 콘크리트 천장더미와 머리사이에 처음에는 30㎝의 거리가 있었는데 구조될 때는 코앞에까지 닿아 있어 천장이 무너져 내릴까봐 제일 두려웠다. ­고립된 지역은 어땠나. ▲양팔을 벌리면 닿을 1m30㎝ 정도의 공간으로 다리를 구부리고 있었다.유독가스와 열기는 못느꼈다. ­다른 생존자는 없었나. ▲첫날 주위에서 신음소리를 들었다.그러나 그뒤로는 아무소리도 듣지 못했다. ­아픈 곳은 없나. ▲특별히 아픈 곳은 없고 등이 조금 아프다. ­지금 무엇이 제일 먹고 싶나 ▲원래 면음식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냉커피가 제일 먹고 싶다. ◎류지환양은 누구인가/낙천적 성격의 어척스런 「효녀가장」/아르바이트로 상고졸업… 병상부친대소변 “수발” 11일 하오 3시28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발생 13일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유지환(18·여·강북구 수유4동 569의 82)양은 집안에서는 가장이자 효녀였고 회사에서는 활달하면서도 성실한 직장인이었다. 1백62㎝의 아담한 키에 갸름한 얼굴의 미인형인 지환양은 아버지 유근창(52)씨와 어머니 정광임(46)씨 사이에 오빠 세열(서울 서일전문대 2년 휴학)군과 함께 2남매 중 막내딸. 서울 인수중학교를 나와 91년 위례상고에 입학,지난해 졸업했다.1학년때 가정형편때문에 가사장학금을 받았고 장학금이 1학기밖에 주어지지 않자 그 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닌 「억척이」였다. 성적이 비교적 우수했던 지환양은 졸업전인 94년 11월30일 면접시험을 통해 중소기업체인 삼광유리공업에 입사,곧바로 사고를 당한 삼풍백화점 A동 지하1층 크리스털 도자기 판매점에배치돼 9개월째 근무해왔다. 지환양은 고교 3년동안과 삼광유리에 입사한 뒤에도 단 한번도 결근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인기를 모았다.한직장 동료는 『회사에서 저녁모임이라도 있으며 스스로 나가 노래를 부를만큼 성격이 밝고 괄괄했다』고 전했다. 고교 2학년때 담임인 김유경(36·여)교사도 『지환이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항상 농담을 잘해 친구들을 잘 웃기던 밝은 아이였다』면서 『구출됐다니 너무 기쁘다』고 울먹였다. 3학년때 상업을 가르쳤던 안환(48)교사는 『지환이는 성격이 활발하고 명랑한 편으로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특별히 운동을 잘하는 것은 없지만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도 강단있는 건강체질인 것으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지환양은 4년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 유씨에게 퇴근 때마다 들러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효녀이기도 했다.삼광유리에 입사한 뒤로는 기본급 65만원에 보너스 4백%의 수입으로 실질적인 가장의 구실을 해왔다.유씨는 현재 고혈압으로 서울 수유리 대한병원 320호에 입원해 있으며 가족들은 지환양의 실종소식을 처음부터 숨긴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 정씨는 『처음 서울교대 실종자대책본부에서 방송을 통해 생존자 신원이 「19살유지선」이라고 들어 긴가민가 했는데 다시 확인해 보니 우리 지환이가 맞았다』며 흐느꼈다. 정씨는 『지환이가 사고나기 전에 「지금까지 모은 저금이 곧 5백만원이 넘는다」며 좋아했었다』고 말했다. 다음달 군에 입대할 예정인 지환양의 오빠 세열군은 이날 집에 가있다가 동생의 구조소식을 듣고 강남성모병원으로 급하게 달려왔다. 어머니 정씨와 지환양의 이모는 그동안 서울교대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고통을 함께 하거나 대한적십자사의 자원봉사활동을 지원하면서 지환양의 생환을 애타게 기다려왔다. 또 세열군은 사고직후 구조대원들의 저지로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학친구들과 함께 병원 등을 돌아다니며 지환양의 소식을 수소문해왔다.
  • “생존자3명 더있다”헛소문에 한때 술렁/유양 회사·실종자가족 표정

    ◎“혹시나” 하던 실종자가족들 또한번 울려/유양 소속회사 축제 분위기에 “업무 마비” ▷추가 생존자 소동◁ 유지환(18)양이 극적으로 살아돌아온 11일,다른 실종자의 가족들은 추가 생존자가 있다는 헛소문에 또 한번 울었다. 이날 하오 유양의 생존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고현장과 서울교대에 마련된 실종자신고센터에는 「유양 말고도 같은 자리에 생존자가 3명 더 있다」는 밑도 끝도 없는 소문이 나돌았다. 소문은 유양이 구출되기 직전 구조대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생존자 3명의 이름을 직접 말한 것으로까지 확대돼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졌다. 그러나 이같은 소동은 구조대원들의 흥분된 분위기와 생존자가 더 있기를 바라는 실종자 가족과 보도진들의 간절한 바람 등이 상승 작용을 한 때문이었다. 여기에 유양의 생존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방송을 시작한 일부 TV방송사에서 생존자가 1명 또는 3명 더있다고 보도해 소문을 부채질했다. 이 때문에 실종자가족들은 「혹시나」하는 기대 속에 급히 현장으로 달려왔다가 사실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구조본부에 격렬히 항의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생존자가 3명 더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최종 확인되자 실종자 가족들은 한때 가졌던 희망만큼이나 무거운 절망감에 다시금 빠져들었다. ▷회사표정◁ 유양이 판매사원으로 근무 중인 서초동 삼광유리공업은 유양의 생존소식이 전해진 뒤부터 축제분위기 속에 업무가 마비된 상태. 직원들은 유양의 구조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TV 앞에 몰려들어 손에 땀을 쥐고 구조과정을 지켜봤으며 구조가 끝난 뒤에는 삼삼오오 모여 기적같은 생환에 대해 얘기꽃을 피우는 모습. 위례상고 재학 중인 지난해 10월5일 학교 추천으로 이 회사에 입사,줄곧 삼풍백화점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해온 유양은 평소 쾌활하고 자신감 있는 성격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일에도 열심이어서 상사와 동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들의 공통된 평. 회사측은 사고 직후 직원 2∼3명을 서울교대에 마련된 실종자 대책협의회에 파견,날마다 유양의 소식을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는 등 침통한 분위기였으나 이날유양이 구조됨에 따라 직원들도 생기를 되찾으며 환호. 회사의 한 관계자는 『온국민에게 기쁨을 안겨준 유양은 이제 회사의 자랑거리가 됐다』며 『직원으로서의 긍지를 드높인 유양에게 회사 차원의 특별한 배려가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언. ◎유양 첫 발견 구조원 정상원씨/이름 물으니 “유진환…” 또박또박 대답/“내가 이안에 며칠이나 있었죠” 질문도 『지난 9일 최명석(20)군이 극적으로 구조된 뒤 생존자가 더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한순간도 버리지 않았는데 그 기대가 헛되지 않아 너무 기쁩니다』 최군이 「사지」에서 생환한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 또다시 2백85시간여만에 유지환(18)양이 구출됐다.다음은 유양의 생존을 처음으로 발견한 영등포소방서 119 구조대원 정상원(30)씨와의 일문일답. ­발견 당시 상황은. ▲이날 하오 1시47분쯤 매몰된 A동 지하1층에서 포클레인으로 콘크리트 상판을 걷어내는 작업을 하다 최군이 발견된 지점에서 남쪽으로 4m,지하1m 정도 내려간 곳에서 40∼50㎝ 정도의 구멍을 발견했다.작업을 중단하고 가까이 다가가보니 깨끗한 사람의 발가락이 보였다.인기척이 들리지 않아 구멍 안쪽을 향해 발가락을 움직여보라고 하니 발가락이 조금 움직였으며 1시50분쯤 신음소리와 함께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렸다. ­발견 당시 유양의 상태는. ▲콘크리트 더미나 철근에 눌려있지는 않으나 한사람이 누워있기 빠듯할 정도의 공간에 있다고 말했다.물을 달라고 해 생수를 준 뒤 조금씩 마시라고 했으며 물에 적신 담요와 물수건을 계속 안으로 넣어줬다. ­구조되기까지 나눈 대화는. ▲처음에 이름과 나이,주소 등을 물었더니 『이름은 유지환이고 18살이며 수유리에 산다』고 또박또박 대답했으며 곁에 다른 생존자는 없다고 했다.이름을 잘못 알아들어 다른 대원에게 틀리게 얘기했더니 『왜 남의 이름을 바꾸느냐』고 농담까지 했다.또 희미하게 웃으면서 『내가 이 안에서 며칠이나 있었죠』라고 물어볼 정도로 정신이 맑아 1시간40여분 동안 구조작업을 펼치면서도 비교적 안심했다. ­구조작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콘크리트 상판이꽤 두꺼워 이를 제거하는데 어려움이 컸다.생존자가 호흡할 수있는 통로를 확보하면서 콘크리트 제거 장비가 생존자를 건드리지 않도록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느라 구조시간이 많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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