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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킹콩’ 블록버스터에 갇힌 그의 우수

    ‘킹콩’ 블록버스터에 갇힌 그의 우수

    할리우드 SF블록버스터의 ‘갈라(Gala)쇼’ 버전.14일 전세계 동시개봉한 피터 잭슨 감독의 세계적 화제작 ‘킹콩’(King Kong)에는 이런 20자평이 제격이다. 장대한 스케일, 컴퓨터 그래픽과 특수효과가 압권인 기술력, 코미디의 여유까지 가미된 영화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쥬라기 공원’‘우주전쟁’‘죠스’‘ET’‘인디아나 존스’ 등 갖가지 기억나는 할리우드 대작들의 풍미를 두루두루 맛보게 하는 영화이다. ‘반지의 제왕’시리즈로 세계적 흥행감독군에서도 선두에 선 뉴질랜드 출신의 잭슨 감독은, 아홉살 때 1933년에 제작된 ‘킹콩’을 흑백 TV로 보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착수하기 전에 이미 시나리오를 써놨을 만큼 ‘킹콩’에 대한 애착은 대단했다. 엄청난 덩치의 영화는 예상밖으로 가벼운 몸놀림으로 초반부를 채운다. 무모할 만큼 열정이 넘치는 영화감독 덴햄(잭 블랙)이 여주인공 캐스팅이 여의치 않자 길거리 캐스팅에 나선다. 극적으로 미모의 희극배우 앤 대로우(나오미 왓츠)를 발탁해 지도에도 없는 해골섬을 찾아 촬영행군을 감행하기까지의 도입부는 미끄러지듯 산뜻한 느낌으로 속도감을 낸다. 사투를 벌일 모험극을 예감케 하면서도 유머로 능청을 부리는 여유가 이 블록버스터의 장기. 거대선박이 해골섬을 향하기 무섭게 화면을 ‘로맨틱 모드’로 전환하는 것도 블록버스터 특유의 중압감을 털어내게 하는 장치로 읽힌다. 덴햄의 술수로 얼떨결에 배에 갇힌 시나리오 작가 잭(애드리언 브로디)은 첫눈에 앤과 사랑의 감정을 확인한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무려 3시간. 블록버스터치고는 범상찮은 속도감을 자랑하던 영화는 그러나 재빠른 몸짓을 그다지 오래 유지하진 못한다. 수억만년전 고대 정글의 신비가 살아숨쉬는 미지의 해골섬에 도달하는 ‘본론’에 이르기까지 관객들은 꼬박 1시간을 고만고만한 에피소드들로 견뎌야 한다. 원주민들에게 붙잡혀 킹콩의 제물로 바쳐진 앤, 그녀에게 매혹된 킹콩의 감정을 확인하는 대목까지는 다시 30분여를 더 기다려야 한다. ‘블록버스터 종합선물세트’같은 영화에 설핏설핏 여러 장르의 묘미를 섞어넣는 기지도 발휘했다. 예컨대, 어둡게 가라앉은 화면으로 해골섬에 도착하는 지점에는 이전의 유머나 여유는 간곳없이 스릴러 영화로 감쪽같이 분위기 반전하기도 한다. 60년이 넘은 고전의 리메이크 버전에서 감독은 팬터지를 시각적으로 충족시키는 데 전력투구한 듯하다.2억 700만달러라는 천문학적 제작비가 필요했으리란 동의를 얻어낼 만큼 영화는 ‘테크닉’의 결정판이다. 공룡들끼리의 격투, 잭이 공룡떼의 질주하는 다리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달리는 장면 등은 기술의 승리 그 자체. 오락물의 완벽한 조건을 갖춘 듯하나, 감독의 욕심은 과했다 싶다. 세상이 다 아는 이야기를 3시간이나 끌어가는 감독의 장광설은 좀 부담스럽다. 보이지 않는 대상(CG 킹콩)을 상대로 구사하는 나오미 왓츠의 감정연기는 그녀의 전작들이 새삼 보고 싶을 만큼 탁월하다.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표정 영화 ‘킹콩’에서 킹콩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영화의 ‘모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잭슨 감독은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특수효과를 이 영화에 적용했다. 킹콩이 주로 활약하는 해골섬에 동원된 미니어처만 2500여개. 영화 시작 1시간30분만에 등장하는 킹콩의 사실적인 모습은 압권이다. 실제 고릴라를 본떠 조각가들이 입체감나게 피부를 입히는 등 킹콩의 미니어처를 만든 게 기초작업. 미니어처의 몸이나 얼굴에 근육조직을 입히고 털로 뒤덮는 특수효과 작업을 거친 다음, 사람의 실제 동선을 빌려와 그래픽 처리하는 ‘모션 캡처’기술을 입혔다. 이 작업의 수훈감은 배우 앤디 서키스.‘반지의 제왕’의 골룸 동작연기를 책임졌던 그가 야생 고릴라의 몸짓은 물론 울음소리까지 표현해냈다. 미녀 ‘앤’ 앞에 선 킹콩이 진짜 인간처럼 수줍은 표정이나 몸짓을 구사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치밀한 사전작업의 결실인 셈이다. 이렇게 해서 주인공으로 스크린을 장악한 킹콩은 키 7.6m에 몸무게 3.6t 킹콩의 실재감을 살려낸 화면들에선 어쩔 수 없이 할리우드의 위력을 인정하게 된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두근두근 두고두고봐이~두바이

    두근두근 두고두고봐이~두바이

    아랍에미리트의 제2도시인 두바이는 미래의 관광지다.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한’ 여행지로의 탈바꿈이 한창이다. 현재는 7성급 호텔인 버즈 알 아랍이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지만, 조만간 세계 최고 빌딩 부르즈 두바이(189층)와 세계 지도 모형의 인공섬 더 월드 등 4개의 인공섬이 만들어진다. 도시 전체가 공사 중인 두바이에 가면 사막에 쏟아붓는 어마어마한 ‘오일 달러’의 위력에 놀라게 된다. 그렇다고 현재 볼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4륜구동 자동차를 타고 사막 구릉을 넘는 짜릿한 사막 사파리 투어가 있고, 곳곳에 살아 숨쉬는 아랍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지난 3일에는 400m길이의 슬로프를 갖춘 세계 최대 실내 스키장이 개장됐다. 아직까지는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로 떠나는 ‘스톱오버’(중간기착) 관광객들이 잠시 스쳐가는 관광지이지만 미래에는 세계 관광의 중심을 꿈꾸고 있다. 글 사진 두바이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세계 최고 럭셔리 호텔 ‘버즈 알 아랍’ 새벽 4시 45분. 두바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7성급 호텔인 ‘버즈 알 아랍’으로 향했다. 하룻밤 숙박료가 최고 1만달러(약 1000만원)에 이른다는 세계 최고급 호텔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도착한 곳은 호텔이 가장 잘 보인다는 주메리아 비치. 비치는 아침 일찍부터 산책을 하거나 수영을 즐기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이 곳에서 바라본 돛단배 형상의 호텔은 볼수록 ‘럭셔리´함이 묻어난다.‘아랍의 타워’라는 의미의 호텔은 두바이의 랜드마크로 1997년 문을 열었으며, 자칭 혹은 타칭으로 ‘7성급’ 호텔로 불린다. 호텔은 복층으로 27층에 불과하지만 높이가 321m로 호텔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 호텔은 숙박객이나 음식점 예약자 외에는 출입이 통제돼 있어 들어가 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최근 결혼설이 나오고 있는 할리우드 톱스타 커플인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휴가를 즐기며 이 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두바이에서는 5성급 호텔들은 명함을 제대로 내밀지 못한다. 시내에 호텔만 290개, 호텔형 아파트도 100개에 이르는데 ‘6성급’이라는 명칭이 붙은 호텔들도 수두룩하다. 현재도 호텔이 계속 건립 중이며, 시내에 들어서면 곳곳이 각종 건물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가장 널찍한 공사장은 ‘버즈 두바이’라는 700여m에 이르는 189층의 세계 최고 주상복합 레저단지 공사장으로 삼성물산이 2009년 완공을 목표로 짓고 있다. 지난 3일에는 길이 400m짜리 슬로프를 갖춘,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스키장을 개장했다. 스키장은 높이 85m, 너비 80m로 총 5개의 슬로프를 갖추고 있으며,1년 내내 영하 1도의 온도가 유지된다. 앞으로는 30∼40도를 웃도는 열사의 땅에서 스키도 즐길 수 있다. 또 미국 디즈니랜드의 8배 규모의 테마파크인 ‘두바이랜드’를 건설 중에 있다. ●스릴넘치는 사막 사파리투어 현재 두바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투어는 ‘사막 사파리’. 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을 달려 70㎞ 떨어진 하타에 도착하자 수십여대의 4륜구동 자동차들이 뜨거운 사막를 질주한다. 사막에서 들어서기도 전에 아프리카 출신의 운전사 겸 가이드는 “(차가 심하게 흔들려) 멀미를 할지 모른다.”며 겁을 준다. 사막 사이로 길게 뻗은 도로에서 벗어나 사막지대에 들어섰다. 먼저 운전사가 차에서 내려 타이어에 바람을 뺀 뒤 “안전벨트를 매라.”며 급하게 액셀레이터를 밟자 모래바람을 일으켰다. 급경사를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에 타이어 바람을 빼야 안정감이 있다고 한다. 모래 능선을 따라 곡예운전이 시작됐다. 능선을 힘겹게 올랐다가 내리면 ‘롤러코스트’를 타는 듯 입에서는 저절로 비명이 쏟아진다. 자동차가 모래에 비탈길을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올 때면 차가 전복되는 듯한 공포에 휩싸인다. 차가 모래 속으로 곤두박질치는 듯한 느낌이다. 언덕 오르내리기를 수차례. 차가 사막 한가운데 들어서자 차가 잠시 멈췄다. 모래에 빠진 다른 차량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짬을 내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려 사막을 달리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우선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맨발로 사막을 달렸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같은 사막. 하염없이 먼 사막을 응시했다. 1시간 남짓 사막에서의 곡예 운전을 만끽할 쯤 저멀리 일몰이 시작됐다. 샛노란 모래 사막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어두워지면 길을 잃을지 모른다는 운전사의 말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사막 가운데 조성된 베두인 마을에 도착했다. 나무 울타리를 쳐놓은 이 곳은 베두인 일상을 체험할 수 있는 일종의 민속촌. 물담배와 함께 양고기 바비큐 등을 맛볼 수 있으며, 베두인 전통 벨리댄스를 볼 수 있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보석처럼 밝게 빛났다. 먼저 물담배를 즐기는 장소가 마련됐다. 물담배는 유리로 만든 호리병 모양의 기구 안에 물이 담겨 있으며, 연결 호스에 빨대를 끼우고 연기를 흡입하면 된다. 물담배 맛은 순하면서 박하향 같은 냄새가 좋았다. 아랍 전통요리인 ‘티카’(양고기 요리)와 시원한 맥주를 걸치자 무대에서 벨리댄스가 시작됐다. 풍만한 육체의 아리따운 무희가 아랍 음악에 맞춰 허리와 엉덩이를 육감적으로 흔들며 흥을 돋우었다. 까만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을 원없이 만끽한 사막의 밤은 이렇게 저물었다. ●아랍인의 생활속으로 현지인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고 싶어 시티 투어에 나섰다. 발길 닿는 대로 재래시장이나 시내에 있는 아랍 건축 양식 등을 둘러보았다. 두바이는 크릭강을 중심으로 데이라 지구와 두바이 지구로 나뉘는데 수상택시인 ‘아브라’를 타고 크릭강을 건너 보는 것도 좋다. 목적지 별로 여러명이 함께 배에 오르는데 요금은 1인당 1디아르. 저녁 무렵이면 강위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먼저 6성급 호텔인 알카사 호텔에 있는 ‘마리낫 숙´을 들렀다. 전통시장을 고급스럽게 재현해 놓은 곳으로 아랍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공예품을 비롯해 향료와 비누 등을 구입할 수 있다. 두바이 박물관에 들르면 두바이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곳에는 허허벌판이던 사막이 어떻게 지금의 두바이가 됐는지를 상세히 보여준다. 두바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금시장과 향신료 시장이다. 금시장은 브루나이에 이어 세계 2위의 시장으로 두바이엔 300여개의 금 판매상이 밀집해 있다. 다양한 금은 세공품을 취급하는데 돌아보는 것만으로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다. 특히 두바이는 면세지역으로 모든 제품을 면세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같은 물건이라도 저렴하다. ●세계 최고의 관광지로 탈바꿈 중 두바이 관광청을 찾았다. 수조원을 들여 변모해 가는 두바이의 미래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관광마케팅 담당자인 알리 빈 압둘 와합은 관광객 1억명 유치를 목표로 하는 원대한 ‘두바이 드림’ 계획(2018년 완료)을 설명했다. 그는 앞바다에 종려나무(대추야자) 모양을 본뜬 대형 인공 섬 ‘팜 아일랜드’와 세계지도 모양의 ‘더 월드’에 대해 설명했다. 두바이 해안에서 8㎞ 떨어진 바다 위에 조성되고 있는 ‘더 월드’는 가로 9㎞, 세로 6㎞의 넓이로 한국을 포함한 300여개의 섬으로 돼 있는데 각국을 닮은 섬들을 현재 분양하고 있다. 각 섬에는 고급 빌라, 주택, 호텔, 쇼핑몰 등이 들어서는데 한국의 섬 분양가는 200억원 정도라고 설명한다. 아파트나 건물 등을 구입하면 쉽게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미리 알고 떠나세요 인천에서 두바이까지는 에미리트항공(www.emirates.com/korea/kr·02-779-6999)이 매일 새벽 0시 30분 직항편을 운항한다. 시차는 한국보다 5시간 늦으며, 운항시간이 9∼10시간 정도 소요돼 새벽 5시분쯤 도착한다. 돌아오는 편은 오전 2시40분 두바이를 출발,8시간 30분 걸려 오후 3시 50분쯤 인천에 도착한다. 한국이 오전 9시면 두바이는 오전 4시다. 기온은 4∼9월은 40도를 오르내리지만 10∼3월은 15∼30도 정도로 여행하기 좋다. 두바이는 한달간 관광 목적의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며, 다른 중동국가와 달리 술 반입도 허용된다. 환율은 1000원에 3.6디람 정도이며, 전압은 220볼트,1인당 국민소득은 2만 5000달러다. 한국식당은 4곳이 있며,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도 30여곳에 이른다. 만나랜드(www.dubaiinform.com)의 경우 1박 3식에 60달러 정도로 전화를 하면 공항 픽업서비스도 해준다. 중동지역 전문 랜드사인 ‘디티티에스’(www.godubai.co.kr)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9)지배층의 편에 선 정치적 예언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9)지배층의 편에 선 정치적 예언

    역사를 보면 기성세력이 예언의 힘을 빌린 경우도 적지 않았다. 민심이 흉흉할 때, 국가가 누란(累卵)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예언서를 끄집어내 “이렇게 하면 아무 문제도 없다.”는 식으로 나왔다.‘정감록’이 주로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들 편에서 이용돼 온 것과는 사뭇 다르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기성세력은 주로 국도(國都)에 관한 풍수설을 자주 꺼냈다. 이런 논의를 주도한 이들은 술관(術官)이었는데, 고려 인종 때 백수한과 묘청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자고 주장한 일은 너무도 유명하다. 이른바 묘청의 서경 천도설이다. 이것은 이미 다각도로 다룬 적이 있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밖에 어느 곳에 별궁(別宮)을 지으면 나라의 수명이 연장된다거나, 양경제(兩京制 수도를 둘로 함) 또는 삼경제(三京制)를 실시해야 나라가 무사태평하다는 견해도 있었다. 일단 이런 주장이 제기되면 술관들 사이에선 격렬한 갑론을박(甲論乙駁)이 되풀이되었고, 그 여파로 한동안 조정이 양분되기도 했다. 민심을 달래려는 정략적인 의도에서 임시방편적인 조치가 강구되기도 했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특히 조선 후기엔 예언서에 관한 논의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민심을 가라앉히는데 더욱 효과적이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이것은 기성세력이 예언서를 대하는 근본 태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징후로 봐야 한다. ●강화도 연기설과 술관 백승현 13세기, 고려사회는 몽골의 침입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고종(1213∼1259) 때는 사태가 심각했다. 몽골군의 침략을 피해 조정은 수도 개경을 버리고 강화로 피란을 가게 됐다. 국운이 다했다는 소문이 온 나라에 퍼졌고 신하들의 사기도 저하되었다. 왕은 무엇이 됐든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이 때 풍수를 업으로 삼은 백승현이란 술관이 고종의 뜻을 알아차리고 왕업을 연장시킬 방도를 제시했다.“혈구사(穴口寺)에 들러 ‘법화경’을 강론하시면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삼랑성 등에 궁궐을 짓는다면 영통한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백승현은 국교인 불법과 풍수설의 위력을 빌려 사태를 호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종은 내심 백승현의 주장에 찬동했다. 당시엔 심리적인 방법 외에 따로 마땅한 대책이 있을 리 없었다. 왕은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재상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 다음 최고급 술관들에게 백승현의 건의사항 특히, 임시궁궐을 짓는 문제에 대해 찬반토론을 하게 했다. 일대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백승현은 이 자리에서 ‘마타도록’, 불경, 음양서 및 각종 예언을 자유자재로 인용하여 왕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의 견해를 반대하던 경유 등은 말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결국 백승현의 건의대로 삼랑성과 신니동에 궁궐을 건설하게 되었다.(‘고려사’, 권 123) 그러나 궁궐공사는 시작만 하였을 뿐 제대로 추진되기 어려웠다. 많은 인력과 재물이 투입되는 큰 공사인 만큼 도리어 국력이 소진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뒤 고종은 승하했고 원종이 왕위에 올랐다. 몽골과의 전쟁은 아직 지속되고 있었다. 원종5년(1264년) 몽골은 고려의 왕더러 몸소 입조(入朝)하라고 요구하였다. 백승현은 당시의 실권자 김준(金俊)을 통하여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만약 마리산(摩利山·마니산이라고도 함)의 산성 주변에 못을 판 다음 왕께서 친히 제사 지내시고, 또 삼랑성과 신니동에 임시 궁궐을 만들고, 친히 대불정에서 오성도량(五星道場·해와 달을 비롯한 다섯 별들을 위한 기도)을 마련하신다면 금년 8월이 되기 전에 징험이 나타날 것입니다. 몸소 입조하라는 말은 아예 사라질 것입니다. 또한 삼한이란 이름을 바꿔 진단(震旦)이라 부르면 큰 나라가 조공을 바치러 올 것입니다.” 원종은 백승현의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그래서 내시대장군(內侍大將軍) 조문주를 비롯한 여러 신하들에게 명령해 임시 궁궐을 짓게 했다. 가뜩이나 조정의 세입이 부족한데 궁궐공사를 벌이고 대규모 불사(佛事)를 벌이고 한다는 것은 도리어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판단을 하는 관리가 있었다. 예부시랑 김궤였다. 그는 어느 재상에게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털어놓았다.“혈구산은 사실 흉산입니다. 그러나 요망한 백승현은 그곳에 대일왕(大日王 태양신)이 항상 머무른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는 일찍이 고종께 아뢰기를, 혈구사를 지어 고종의 옷과 혁대를 가져다 두면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한 지 얼마 안 되어 왕께서 승하하셨습니다. 지금 또 감히 요망한 말을 지어내서 임시 궁궐을 짓자 하고, 혈구사에 임금님이 몸소 대일왕을 위해 도량을 차려야 한다고 하니 말도 안 됩니다.” 김궤는 그 재상더러 국정의 실권자인 김준에게 고해, 백승현의 말을 물리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려사’, 권 123) 이 말을 전해 들은 김준은 김궤를 죽이려 했다. 까짓 돈이 얼마 드느냐가 큰 문제는 아니었다. 과연 백승현의 제안이 옳은가, 하는 문제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런 행사를 벌임으로써 고려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백승현의 예언이 들어맞았다고 볼 수 있을까. 그의 주장과는 달리 원종은 몽골에 항복했고, 몽골인 왕비를 맞아들이는 처지가 되었다. 김준도 비명에 횡사했고, 조정은 강화도를 떠나 개경으로 다시 돌아갔다. 고려라는 나라가 완전히 망하지는 않았지만 망한 거나 별반 차이는 없었다. 그렇다면 백승현 효과는 그야말로 일시적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은 아직 살아 있다. 강화도 혈구산에 대일왕, 즉 태양신이 머문다는 백승현의 견해는 현재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혈구산은 강화도의 주산(主山)인데, 그 남쪽에 마니산이 있다. 그 산 꼭대기에 유명한 참성단이 있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인데, 이를 통해 우리는 강화도가 하늘 또는 태양신과 밀접한 관계로 인식됨을 알 수 있다. 지금도 해마다 참성단에서 채화된 불을 가져다 전국체전에 봉화로 사용할 정도다. 또한 혈구산 등이 최고의 명산이란 백승현의 주장이 후대에 널리 전승되어 ‘정감록’에도 강화도는 전국의 길지(吉地) 가운데 하나로 이름이 올라 있다. ●조선 광해군 때의 교하 천도설 임진왜란으로 국토가 잿더미로 변했다. 그러자 그간 수백 년 동안 잠잠했던 천도설이 다시 조정에 등장했다. 광해 4년(1612) 술관 이의신이 상소를 올려 한양을 버리고 천하제일의 길지인 경기도 교하(交河)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얼마 전 왜란에 이어 몇 차례 반역사건이 발생한 이유, 조정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 까닭, 그리고 한양 주변의 산이 황폐해진 것도 한양의 지기(地氣)가 쇠약해진 때문이라고 했다. 광해군은 이 말에 솔깃했다. 허균을 비롯한 일부 관리들도 수도 이전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힘을 얻은 왕은 예조에 명령해 수도이전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해 보라 했다. 그러나 예조 판서 이정구(李廷龜)는 반론을 전개했다. 우선 풍수설이란 것이 유교경전과 무관해 믿을 만한 근거가 도무지 전혀 없다는 지적이었다. 이의신이 문제로 삼은 한양은 지세가 평탄해 편리하고, 전국각지와 교통망이 발달해 있으며 주변에 비옥한 토지가 많아 물산이 풍부하고 성곽도 잘 갖춰져 있어 흠잡을 데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수도로서의 조건이 완비돼 있어 조선을 다녀간 중국의 많은 사신들도 한양의 수려함을 칭찬했다고 주장한다. “왜란은 국제질서에 관계된 것이며, 역적이 일어난 것은 수도와 관계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도끼를 들고 산에 들어가지 않으면 수풀은 절로 무성해집니다. 국운을 생각한다면 백성을 사랑하고 풍속을 두터이 하며, 내정을 잘 닦고 외적을 물리치는 것뿐입니다. 이 도리에 어긋나면 해마다 도읍을 옮기더라도 위기와 난리만 불러들일 것입니다.” 이런 식의 반론이 고려 공민왕 때는 불가능했다. 고려 고종이나 원종 때도 물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예언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술관들이 검토해야 할 일종의 전문분야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엔 달랐다. 모든 중요한 문제는 성리학자들이 담당했다. 더 이상 풍수설과 도참설이 판단의 기준은 아니었다.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이 절대적인 척도였다. ●발상의 전환 이정구는 바로 그런 입장에서 일체의 예언을 근거 없는 미신으로 간주해 몽땅 부정해 버렸다. 그가 사물을 판단하는 기준은 공리성과 합리성이다. 이것은 역사상 일대 전환을 뜻한다. 고대의 왕과 대신들은 기꺼이 예언가 노릇을 차지했다. 고려 말까지도 왕과 대신들은 예언의 위력을 빌려 정권의 안정을 꾀했다. 남의 나라 일이라곤 하지만,20세기 후반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국가의 중요한 일을 점성술사와 상의했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어쨌거나 17세기 조선의 성리학자 이정구는 예언을 정치의 장에서 몰아냈다. 본심이야 어쨌든 광해군도 이정구의 견해에 반대의사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예언이 주렁주렁 매달린 뽕나무 밭이 변해, 이제 합리성의 푸른 바다가 된 셈인가. 세월이 가면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이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신돈·공민왕 ‘도선비기’ 이용 망국론 잠재워 요즘 MBC가 고려말 승려였던 신돈을 재조명하는 드라마 ‘신돈’을 방영하고 있다. 그는 과연 ‘희대의 요승’인가 아니면 ‘실패한 혁신가’인가. 고려 말, 공민왕은 몽골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왕은 승려 출신 신돈을 내세워 내정을 혁신하고, 정권을 농단해온 무장(武將) 세력을 숙청하는 등 여러 면에서 새로운 정치를 꾀했다. 그러나 귀족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고, 여러 차례 홍건적과 왜구의 침공이 잇따르는 등 애로가 많았다. 공민왕과 그를 최측근에서 보좌한 신돈은 정권의 안정을 위해 여러모로 예언을 이용하고자 했다. 신돈과 공민왕이 예언설에 집착하게 된 데는 사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외우내환이 겹쳤고 혁신정치를 추진하느라 불만세력이 발생한데다, 항간에 고려가 곧 망한다는 끔찍한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서 든 국면전환이 이뤄져야만 했다. 이에 신돈은 ‘도선비기’(道詵記)를 살폈다. 여기서 그는 송도의 운수가 쇠진된다는 설(松都氣衰之說)을 거꾸로 이용했다. 신돈은 왕에게 천도를 권하였다. 왕은 그에게 명령하여 평양으로 가서 지맥을 살펴보게 하였다. 그러나 신돈은 진심으로 도읍을 옮길 생각을 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시늉을 하며 잠시 민중의 마음을 떠 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과연 신돈은 심리전술의 대가였다. 자신이 승려출신이라 유교를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학자들을 널리 포용하기 위해 약간의 잔재주를 피우기도 했다. 공민왕이 성균관을 지으라고 명령하자 그는 여러 유신(儒臣)들과 함께 성균관의 옛 터를 둘러보았다. 신돈은 모자를 벗고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리며 공자에게 맹세했다.“온 마음을 다하여 성균관을 다시 짓겠습니다.” 공민왕 18년(1369), 신돈은 그동안 자신이 추진해온 개혁정치가 한계에 도달하자 또 다시 천도론을 펼쳤다. 이번에는 평양이 아니라 충주였다. 공민왕은 그에 반대했다. 신돈에 대한 의심을 노골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궁지에 몰린 신돈은 핑계를 찾아냈다. 개성은 바닷가에 가까운 관계로 왜구가 쳐들어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내륙지방이자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충주가 수도로 적격이란 것이었다. 공민왕은 여러 생각 끝에 교서(敎書)를 내려 수도 문제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정리했다.“옛날에 우리 태조는 매번 소해, 용해, 양해 그리고 개해마다 삼소(三蘇)를 돌아가며 머물렀다. 나도 장차 평양에 갔다 금강산을 거쳐 충주에 머물려고 한다.”서울은 개성으로 묶어 두되 평양, 금강산 및 충주를 이른바 세 군데 명당으로 삼아 돌아가며 머물겠다고 한 것이다. 왕의 원거리 순행은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는 큰일이었다. 여행경비가 만만치 않은 것은 물론이고, 일행이 머물 시설을 새로 짓는 문제, 도로를 닦는 작업이 뒤따랐다. 더욱이 왕은 자신이 머물 이궁(離宮)은 물론 죽은 왕비를 위해 공주혼전(公主魂殿)까지 짓게 하였다. 그 바람에 평양과 충주의 백성들은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국운을 연장해 보겠다고 벌인 공사 때문에 자칫하면 민심이 이반되어 도리어 국운이 위태해질 가능성마저 커졌다. 얼마 후 공민왕은 자신의 결정이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책동한 신돈을 더욱 의심하게 되었다. 이때를 기다린 술관 진영서가 왕에게 아뢰었다.“요즘은 한낮에도 태백성이 보입니다. 게다가 흉년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길하고 움직이면 흉합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어째서 이렇게 늦게 그런 사실을 아뢰느냐며 평양과 충주 순행계획을 모두 파기해 버렸다. 모든 공사가 중지된 것은 물론이다. 공민왕은 남달리 영리했지만 본래 의심이 많고 잔인한 성격이었다 한다. 제아무리 심복 대신이라도 권력이 커지기만 하면 꺼려해서 반드시 제거했다. 신돈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역모를 꾸몄다는 죄명으로 왕은 신돈을 없애 버린다. 그러던 왕 역시 어느 신하의 칼끝에 쓰러진다. 공민왕과 신돈은 한 때 개혁정치의 동반자로, 갖은 예언설까지 끌어다 국운을 연장하려 애썼지만, 실은 제 한 목숨도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다.
  • 아프간·인도 강진 잇따라

    지난 10월8일 강진이 발생했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대에 13일 새벽 리히터 규모 6.7의 강진이 또 덮쳤으나 아직 정확한 피해 규모는 집계되지 않고 있다. 이번 지진의 진앙은 두 나라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힌두쿠시 산악지대로 이날 새벽 2시51분(한국시간 오전 6시51분)쯤 지진이 발생,20초간 진동이 계속되자 파키스탄의 일부 주민들이 집밖으로 뛰쳐나오는 소동이 빚어졌다. 또 인도령 카슈미르에서도 이날 새벽 3시17분(한국시간 오전 7시17분)쯤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했다.역시 인명 피해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수도 뉴델리에서도 진동이 감지될 정도로 위력적이었던 이번 지진이 앞서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지진의 여진인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인도 기상청은 이란과 아프간의 국경지대가 진앙이라고 발표했다.이슬라마바드·로스앤젤레스 DPA 연합뉴스
  • “참나무 수십만그루 이미 피해입어”

    “참나무 수십만그루 이미 피해입어”

    ‘참나무마저 위기에 몰리나….’ 요즘 산림당국은 전국으로 급속 확산 중인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최근엔 재선충병이 방제의 ‘마지노선’으로 불리던 백두대간까지 침입한 사실이 밝혀져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이런 와중에 우리나라 활엽수의 대표격인 참나무마저 심각한 병충해에 걸렸다. 국내 산림생태계가 설상가상의 형국에 빠진 것이다. 참나무와 소나무는 우리나라 나무의 ‘얼굴’이나 다름없다. 전체 산림 가운데 각각 30%,26%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 ‘참나무시들음병’ 피해실태와 대책 올해로 발병 이태 째인 참나무시들음병은 고강도 파괴력을 지닌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충북산림환경연구소 이귀용 자원보호부 팀장은 11일 “고사율(한번 감염되면 말라죽는 비율)을 현 단계에서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70∼80%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사율 100%의 재선충병보다는 덜하지만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나타난 각종 병충해 가운데 버금가는 수준의 위력을 지녔다.7∼8년전 소나무에 광범위한 피해를 입혔던 솔잎혹파리의 경우도 고사율이 30% 남짓 정도였다. 이 때문에 소나무·참나무가 동시 위기에 빠진 현 상황을 두고 산림전문가들은 “수십년간에 걸쳐 진행된 산림병해의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 산림생태계에)지금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특히 참나무의 경우 “그동안 병충해가 전혀 없었던 데다, 국내 수종에서 차지하는 참나무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참나무시들음병은 가히 충격적인 사건”(국립산림과학원 이승규 박사)으로까지 일컬어지고 있다. ●‘토착병´일 가능성 높아 참나무시들음병이 어떻게 발병하는지에 대해선 아직 전모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국내 자생종인 ‘광릉긴나무좀’이 병을 옮기는 매개충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광릉긴나무좀의 생활사 정도만 규명됐을 정도다. 병원균에 대해서는 현재 국립산림과학원을 중심으로 심층 연구가 진행 중인데, 대부분 외래 유입종에 의한 여태까지의 산림 병충해와는 달리 ‘토착병’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발병 원인과 관련해서는 한반도의 기온 상승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산림당국 관계자는 “그동안 환경 속에서 억눌려 지내오던 광릉긴나무좀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온도상승 등 여파로 밀도가 급증하면서 참나무에 피해를 끼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참나무시들음병의 발생·분포 특성이 근거로 제시되는데, 특정 지역에서 시작해 점차 주변으로 넓혀나가는 재선충병과는 달리 전국 각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는 등 광범위하고 산발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심각한 피해 예상… 대책마련 시급 현재 참나무시들음병으로 고사된 나무가 확인된 곳은 모두 21개 지자체다. 지난해 18곳에서 올해 강원도 고성군과 충북 제천·영동 등 3곳이 추가됐다. 이귀용 팀장은 “충북 지역의 경우 월악산 국립공원에서 20여그루 및 영동∼전북 무주 사이의 구간에서 고사목이 확인됐다.”면서 “실제 감염목은 이보다 훨씬 더 넓게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인력부족으로 정확한 실태조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성남시 이배재에서 참나무시들음병이 첫 발병한 것으로 확인된 경기도의 경우 올 한해 동안 다른 지자체보다 심도있는 조사가 이뤄졌다.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의 자체 조사 결과 15개 시·군의 135개 지점에서 모두 1220그루의 참나무가 고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 김용훈 조사원은 “수락산·검단산·불암산 일대는 이미 광범위한 피해가 현실화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역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서울신문이 성남시에 확인한 결과 지난해 313그루에 이어 올해엔 무려 2900그루의 참나무가 베어졌다.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의 전체 고사목 집계(1220그루)보다 훨씬 더 많은 수치다. 게다가 현재 참나무시들음병 발병 여부에 대한 조사 자체를 시작하지 못한 지자체가 대부분이어서 실제 피해상황은 이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 관계자는 “(연구소의 이번 조사는)‘표본조사’ 결과일 뿐 실제 고사목 수를 반영한 것은 아니다.”면서 “고사목 주변에 감염목과 고사 우려목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향후 심각한 피해가 예상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산림당국 관계자도 “전국적으로 수십만 그루의 피해가 이미 발생한 것으로 보여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참나무시들음병은국내 자생종인 광릉긴나무좀이 병원균을 퍼뜨리는 매개충 역할을 한다. 다 자란 성충이더라도 길이 4㎜ 안팎일 정도로 작은데, 암컷 긴나무좀은 등에 5∼11개의 균낭을 갖고 있다. 참나무는 이 병원균의 집단 공격을 받아 수분 이동이 막히면서 말라죽고, 광릉긴나무좀은 참나무를 갉아먹지 않는 대신 교배와 병원균을 먹는 장소로 활용한다. 참나무 중 주로 신갈나무가 공격 대상이며, 갈참나무도 일부 피해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참나무시들음병도 소나무 재선충병만큼이나 방제가 어렵다는 게 골칫거리다. 지난 1년간 방제연구를 해 온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의 실험 결과, 감염된 나무에 살충제를 주사하더라도 살충률은 70% 안팎에 머물러 실질적인 효과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용훈 조사원은 “나무를 완전히 잘라내 훈증 처리하지 않으면 시들음병 확산방제는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증시구조 ‘업그레이드’

    증시구조 ‘업그레이드’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주가지수 1300-700선 시대’를 맞으며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시적인 상승세가 아니라 구조적 변화에 따른 증시의 대형화, 지수의 장기상승 등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년 증시 전망도 장밋빛 기대감이 넘치고 있으나, 일반투자자들이 증권사들의 지나친 낙관론에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보통 증권사들은 증시를 좋게 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 경기, 펀드 3박자의 힘 2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4.14포인트(0.32%) 오른 1310.12를 기록, 이틀째 1300선을 유지했다. 코스닥지수도 6.44포인트(0.89%) 상승한 733.87로 3일째 상승하며 730선마저 돌파했다. 올 들어 코스피지수는 893.71(1월3일)에서 출발,5월에만 평균치가 잠시 주춤했을 뿐 매월 꾸준히 오르면서 400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코스닥지수도 390.40에서 시작해 5월에만 멈칫했을 뿐 두배 가까이 올랐다. 코스닥지수는 지난달 21일 연속 상승이라는 깨지기 힘든 기록도 세웠다. 증시의 규모를 나타내는 시가총액도 유가증권시장은 연초 411조 3690억원에서 1일 기준 612조 8160억원으로 49.0% 증가했다. 코스닥시장은 31조 9300억원에서 71조 4080억원으로 123.6%나 커졌다. 올해 주가상승의 힘은 ▲기업실적의 호조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 ▲적립식펀드를 중심으로 한 자금력 등 3대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실적의 호조가 외환위기 이후 강도높은 구조조정 효과와 기업체질 강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간접투자의 위력은 지난 5월 이후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외국인을 제치고 증시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부상시켰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손동식 부사장은 “현재의 주가 상황은 버블(거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내년 증시 화두는 성장 증권사 직원들과 투자자들은 올 봄과 여름의 주가 상승기에만 해도 ‘대세 상승’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수가 1200선,1300선을 잇따라 뛰어넘자 두툼해진 성과급 등을 통해 실감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지난달 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분기별 성과급을 지급했다. 상반기에 3000억원대의 수익을 올린 현대증권도 최근 전 직원에게 급여의 60%를 경영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는 과거처럼 흥청거리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거리에 빈 택시가 줄었고 고급 식당이 북적이며, 골프채를 바꾸는 모습들도 눈에 띄게 늘고있다. 전문가들은 내년 증시의 화두를 ‘성장’으로 꼽았다. 상장기업의 실적호조가 계속되고, 미국과 중국의 경제상황도 안정적 성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우증권은 56개 주요 코스닥기업의 내년 실적을 추산한 결과, 매출은 올해보다 17.2% 늘고, 영업이익은 48.4%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내년에 코스피지수는 1600선, 코스닥지수는 800선의 돌파도 무난히 해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코스닥시장의 성장주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올해에는 탄탄한 내재 가치를 지닌 가치주가 각광을 받았다면, 내년에는 안정성은 비록 떨어져도 이익증가폭이 큰 성장 종목을 추천한다. 벤처기업 중심의 정보산업(IT)과 자동차관련 종목 등을 유망업종으로 꼽았다. 대한투자증권 정윤식 팀장은 “국내 내수 회복과 수출력 지속, 글로벌 경제상황 등이 모두 긍정적인 흐름을 보여 성장주 위주의 증시가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우리투자증권 이윤학 연구위원은 “올해 조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일부 종목이 급상승한 측면도 있기 때문에 일부 테마주에 대해선 내년 상반기 조정 시점에서 하락폭이 예상보다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7) 정치적 예언의 집대성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7) 정치적 예언의 집대성 ‘정감록’

    한국에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정치적 예언이 있었다. 그것은 주제에 따라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풍수설에 입각해 새 왕조가 일어난다는 내용이 있었는가 하면, 미륵불이 지상에 내려와 이상세계가 열린다는 예언도 있었다.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 서로 교대할 거라는 주장도 있었다. 다종다양한 예언이 역사상 한꺼번에 존재한 적은 오히려 드물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씩 나타나기도 하였고, 서로 다른 종류의 예언이 혼합되기도 했다. 역사상 존재한 한국의 정치적 예언서는 실개천들에 비유된다.‘정감록’은 그 냇물들이 한데 모여들어 이뤄낸 호수라고 볼 수 있다.18세기 전반, 조선 영조 때 역사의 무대 위로 처음으로 등장한 ‘정감록’은 지난 200∼300년 동안 더욱 내용이 풍부해졌다. 이제 ‘정감록’은 민간에 유행하는 예언서를 모두 일컫는 일반명사가 되어 있다. ‘정감록’의 핵심은 정감과 이심 및 이연 등 3인의 대화다. 이를 ‘감결’이라고도 하는데 이본이 많다. 길이가 가장 짧은 한글 본은 약 2430자, 가장 긴 한문본은 6030여자나 된다.‘정감록’에는 ‘감결’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예언서가 속해 있다.‘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화악노정기(華岳路程記)’,‘구궁변수법(九宮變數法)’,‘동국역대본궁음양결(東國歷代本宮陰陽訣)’,‘무학비결(無學秘訣)’,‘도선비결(道詵秘訣)’,‘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징비기(徵秘記)’,‘토정가장비결(土亭家藏秘訣)’,‘경주이선생가장결(慶州李先生家藏訣)’,‘삼도봉시(三道峰詩)’,‘옥룡자기(玉龍子記)’ 등이 그것이다. ‘정감록’이 예언서의 집성이 되는 이유는 말 그대로 한국 역사상 등장했던 모든 예언서가 그 이름 아래 묶였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진짜 이유는 여러 예언서에서 탐지되는 중요한 특징이 모두 ‘정감록’에 살아있어서다. ●삼국통일 무렵 예언이 문자로 처음 기록돼 삼국시대 초기에는 예언서라고 일컬을 만한 것이 아직 하나도 없었다. 문자로 기록된 예언서가 출현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쳤다. 처음에는 성스러운 왕의 탄생을 알리는 신기한 전설이 있었을 따름이다.‘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탄생설화를 비롯해 신라의 탈해왕과 김알지, 가야의 김수로왕의 등극을 알리는 설화가 나온다. 이처럼 위인의 탄생을 예감하게 하는 자연현상이나 태몽 등은 고대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에는 물론이고, 서양 고대의 문헌에도 보인다. 이웃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대 한국인들은 이상한 동물의 출현과 예외적인 천문현상 및 자연계의 이변을 정치적 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삼국사기’ 등에는 이에 관한 기록이 수백 군데나 있다. 고대 한국에는 국가의 위기를 미리 알려주는 자명고 같은 물건이 있었다고도 한다. 신라에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란 신기한 피리도 있어, 불기만 하면 적군이 저절로 물러나고 질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정치적 예언이 문자로 처음 기록된 것은 삼국시대 말인 7세기 후반이다.“백제는 달 바퀴와(月輪)와 같고 신라는 초승달(月新)과 같다.” 백제는 망하고 신라는 흥하리란 정치적 예언인데, 이런 내용이 거북 등에 적힌 채 백제의 왕궁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 짤막한 문장은 한국 최초의 정치적 예언서였다. 이것이 발견되고 얼마 안 돼서 이번엔 고구려의 멸망을 예고하는 ‘고려비기’가 발견되었다. 요컨대 신라의 삼국통일을 전후해 정치적 예언이 문자로 정착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구두로만 전해오던 예언이 글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것은 외래문자인 한자가 통치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최초의 예언서는 길이가 극히 짧고 시적이었으며 비유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신라말 최치원이 썼다고 하는 예언서 역시 그랬다. 그는 “계림은 누런 이파리요 곡령(송악)은 푸른 소나무”라는 시구를 고려 태조에게 보냈다고 하는데, 비유법이 눈길을 끈다. 이와 같은 특징이 10세기 초 철원에서 나온 ‘고경참’에서도 재차 확인된다. 140여자로 구성된 ‘고경참’은 왕건이 궁예를 꺾고 개성에 새 나라를 세우게 된다고 했다. 고려는 12대 360년간 유지된다고 예언되었다. 이 예언서는 단군신화나 주몽설화를 연상시키는 대목도 없지 않다. 그러나 왕건 같은 ‘성인’이 결국 최종적인 승자가 되리라고 예언한 점에서 ‘정감록’의 원형이다. 고려의 국운을 처음부터 끝까지 개관한 점에서도 ‘정감록’의 선구가 된다. ●풍수지리설 고려시대에 접어들어 풍수지리설이 유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장래를 예언한 글이 많이 등장했다. 풍수설은 ‘정감록’의 경우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다. 미래의 수도를 계룡산, 가야산, 전주 및 개성으로 예언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풍수설에 기초한 것이다. 아울러 십승지설을 비롯해 전국의 길지를 따져본 것도 풍수설의 영향이다. 풍수설을 대표하는 고려의 예언서로는 도선(道詵·827∼898)의 저술로 알려진 몇 가지가 있다. 아울러 ‘신지비사(神誌秘詞)’라고 하는 것이 또 있다.‘신지비사’는 고조선의 예언가 신지가 저술했다고 하는데, 후대에 조작된 것이 틀림없다. 도선의 저술이라고 알려진 예언서들도 위작일 가능성이 결코 적지 않다. 두말할 나위 없이 도선은 풍수설의 대가였다. 다만 고려태조와 가까운 사이였음을 직접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태조와 긴밀했던 것은 그의 제자 경보(慶甫·868∼948)였고, 그로 인해 역사책에는 도선과 고려 왕실의 관계가 과장되었다. 11세기 중엽, 고려 문종 때부터 이른바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이 널리 유행했다. 땅 기운은 일정하지 않아 때로 약해지나 적절한 방법을 쓰면 다시 회복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을 토대로 수도 이전 논의가 활발했다. 처음에는 평양이 길지로 각광을 받았지만,13세기 고종 때부터 한양이 길지로 떠올랐다.14세기에는 한양천도가 기정사실로 취급될 정도였다. 결국 고려를 멸망시킨 이성계는 한양을 새 수도로 삼았다. 한양 천도론은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그 당시 천도론을 이끈 예언서는 도선의 저술이라 하는 ‘도선비기(道詵秘記)’,‘송악명당기(松岳明堂記)’,‘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 등이었다. 앞서 말한 ‘신지비사’는 논쟁에서 보조기능을 담당하였다. 아직 예언서 형태로 자리매김된 것은 아니나 7세기 후반 고구려에서도 풍수설이 위력을 발휘한 적이 있다. 당나라가 파견한 도사(道士)들이 풍수설을 이용해 고구려의 국운을 연장시키겠다며 소란을 피웠다. 도사들은 평양에 새로 성을 쌓거나 바위를 부숨으로써 고구려의 국운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고구려에 수입된 풍수설은 점차 부동의 위치를 확립했고, 도선과 그 제자들의 손을 거쳐 고려 이후 줄곧 예언서의 중심 사상이 되었다.‘정감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천 후천설 고려 때는 점성술에 입각한 예언서도 유행했다. 고려 인종이 즐겨 인용한 ‘고현유훈(古賢遺訓)’을 이같은 예로 들 수 있다. 거기에는 머지않아 역사의 새 출발이 가능하다고 했다.‘정감록’에 암시된 선천과 후천의 교대설은 그 싹이 바로 ‘고현유훈’에 있었다.‘고현’이란 옛날의 현인 즉, 과거의 뛰어난 예언가다. 여기서 말하는 ‘고현’은 특히 천문과 역법에 밝았던 사람이다. 책에는 이렇게 주장돼 있다 한다.“천지가 생긴 지 수만 년이 지나면 동지(冬至)가 갑자일이 되는 때를 만나리라. 그때가 되면 해와 달 그리고 (수 화 목 금 토) 다섯별이 모두 정북(正北)에 모여들 것이다. 이를 상원(上元)으로 삼고, 이 날로 달력의 기원을 삼아야 된다. 이때 천지가 열리고 성인(聖人)의 도가 행해질 것이다.” 당시 인종은 묘청과 백수한 등 예언전문가들에게 정치를 전적으로 의지하다시피 했다. 왕은 묘청의 권유로 ‘고현유훈’을 읽어 보았음 직한데 특정한 날이 되면 역사의 무대가 새로 펼쳐져 이상정치가 가능하리란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물론 터무니없는 망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천체의 운행을 인간사회의 변화에 직결시킨 점에서 동양 고대의 우주관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런 관념은 19세기말까지도 민간에 널리 통했다. ‘고현유훈’의 기초가 되는 점성술은 운수설과 결합되기도 한다. 그 결과, 한국역사에는 아홉 번에 걸쳐 새 왕조가 등장한다는 취지가 담긴 예언서도 나왔다. 조선 초기 식자층이 읽은 ‘구변진단지도(九變震檀之圖)’가 그런 식의 책이다.‘정감록’에도 역대 왕조의 운수가 밝혀져 있고, 계룡산시대 이후의 도읍지가 예언돼 있다. 그와 동시에, 머지않아 선천이 끝나고 후천 이상세계가 펼쳐지리라는 꿈이 깃들어 있다. ●미륵하생설 선천 후천설을 불교적인 입장에서 편 것이 미륵하생설(彌勒下生說)이다. 미륵이 이 세상에 내려와 이상세계를 연다는 믿음이 한국에는 널리 유행했다. 스스로를 미륵의 화신으로 간주한 사람도 여럿이었다. 이미 죽은 지 천년도 더 된 궁예를 일부 지방에서는 여전히 미륵불로 믿는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 포천시 구읍리 반월성터에 있는 궁예 미륵상이나 경기도 안성시의 국사봉에도 궁예 미륵은 민간의 신앙 대상이다. 고려 말에 경상도 고성 출신 이금은 스스로 미륵이라 주장했다. 그는 다가올 미륵 세상의 모습을,“내가 조화를 부리면 풀에서 파란 꽃이 피며 나무에 곡식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씨앗을 뿌려서 두 번 거두게 되리라.”고 묘사하였다. 수고를 들이지 않고서도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고 예언한 점에서 그의 설명은 ‘미륵하생경’의 내용과 일치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금을 따랐다 한다. 이금을 추종하는 신앙 집단은 우선 규모가 컸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부 고위관리들까지 신도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국가의 탄압을 받아 이금 일파가 송두리째 제거되었다. 그 뒤에도 자칭 미륵불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고려 우왕 때 개성에서 미륵불을 일컫는 승려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진짜 미륵불로 믿고 쌀과 베를 앞다퉈 바쳤다. 사노(私奴) 무적도 미륵불의 화신이라 주장하다 관헌에 체포되어 목숨을 잃었다. 14세기 후반 고려는 거듭된 왜구의 침입과 정치 불안정으로 인해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 때문에 말세 의식이 만연해, 어서 미륵불이 내려와 이상세계를 펼치기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자칭 미륵이 속속 등장했다.17세기 후반 조선 숙종 때 승려 여환은 미륵을 자처하며 무리를 모아 조선왕조를 전복시키려 했다. 사전준비가 미흡했던 탓에 그의 무모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여환은 추종자 11명과 함께 사형을 당했다. 여환이 사라진 뒤에도 미륵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영조39년(1763) 10월2일자 ‘실록’을 보더라도,“지난번 황해도에서 미륵불이라고 일컫는 자가 있었기에 어사(御史)를 보내 법으로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다.19세기 말 증산교를 창립한 강일순(姜一淳·1871∼1909)은 자신을 천자 미륵이라고 일컬었다. 임종 때 그는 말하기를,“나는 미륵이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미륵불을 보라.”고까지 했다. 자칭 미륵불들은 다들 그 나름으로 예언을 일삼았는데, 강일순은 다가올 미륵세상을 이렇게 설명하였다.“세상 사람이 하늘에 올라가고 밤과 낮이 막힘없이 환하게 통하고 100가지 곡식을 오래도록 거두어들이고 만 가지 과일이 굵고 크며 풍성한 음식이 저절로 생기고 아름다운 옷이 스스로 이른다.” 이러한 견해는 ‘미륵하생경’과 대체로 일치한다. 미륵이 세상에 내려오기를 바라고 믿는 미륵하생신앙은 고대 중국과 티베트를 비롯해 동양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한국인들은 금강산을 법기도량(法起道場)으로 믿어, 내세불인 미륵불이 반드시 한국에 출현하리라는 기대가 컸다. 예부터 예언서나 도참(圖讖) 또는 노래를 빌려 이 점이 늘 강조됐다. 자연히 ‘정감록’에도 미륵신앙이 깊이 스며들어 불법이 다시 부흥하리라는 예언을 낳았다. ●정성진인 또는 해도진인설 조선후기 예언서에서 미륵은 진인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때로 진인은 미륵세상을 맞이할 세속군주 전륜성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승려 여환 사건 때도 이미 ‘정성인(鄭聖人)’이 등장한다.18세기부터는 각종 반란이나 대규모 민란 때마다 ‘진인(眞人)’이 거의 늘 등장했다. 이지서의 괘서 사건에서도 그랬고,19세기 초 서북인의 차별에 항거해 들고 일어선 홍경래의 난 때도 진인이 언급됐다. 진인은 ‘정감록’에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새 세상을 열 미래의 왕이 다름 아닌 ‘정성진인(鄭姓眞人)’이거나 ‘해도진인(海島眞人)’이었다. 그 성씨가 정이고, 그가 세상에 나오기 전 섬에 숨어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정감록’을 가탁한 민중운동은 갈수록 증가했다. 심지어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여러 민란이나 그때 창궐했던 화적들은 “이재궁궁(利在弓弓·이로움이 궁궁에 있다)”을 구호삼아 외치는 형편이었다. 도적의 우두머리도 진인을 자처하였다. 진인의 시대가 열리고 보니, 그의 사주(四柱)까지 조작되었다. 진인은 기사년 무진월 기사일 무진시에 태어난다. 그의 사주는 뱀이 변하여 용(龍)이 되는 것이라 크게 길하다 했다. ●‘정감록’의 질적 변화 조선후기부터 ‘정감록’에 약속된 새 날의 도래를 믿고 많은 사람들은 고향을 등졌다. 그들은 곧 진인이 섬에서 나와 계룡산에 천도할 줄로 철석같이 믿고 가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정감록’ 신앙의 영향 아래 여러 신종교가 출범했다. 동학, 증산교 및 원불교가 그 대표적인 것이지만 개중에는 민중의 금전과 노동력을 갈취하려는 사교 집단도 비일비재했다. 사교 집단은 ‘정감록’을 빙자해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일부 신종교에서는 ‘정감록’ 해석에 차원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정성진인이 오기만 기다리며 계룡산에 들어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지내는 ‘정감록’ 신앙을 혹독하게 비판했다.“계룡산에 정씨 왕이 난다는 것은 닭이 울면 날이 새고 바른 법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원불교의 개조(開祖) 소태산 대종사의 말이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정성진인은 실상 정법(正法)일 뿐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소태산은 앞서 도적들이 되뇌던 ‘정감록’의 한 구절 “이재궁궁”에 대해서도 색다른 의견을 내놓는다.“세상에는 구구한 해석이 많이 있으나 글자 그대로 궁궁은 무극(無極) 곧 일원(一圓)이 되고 을을은 태극이 되나니 도덕의 본원을 밝힘이라. 이러한 원만한 도덕을 실천하여 남과 다투지 않고 살면 이로운 것이 많다는 뜻이다.” 한국 역사상 숱하게 많았던 예언서들이 ‘정감록’ 호수에 이르기까지 그 길은 거칠고 아득했다.‘정감록’이 도달한 종점엔 천만다행으로 살벌한 투쟁이 아닌 상생(相生)이 웃으며 우리를 기다린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0.6초에 소비자 잡기’ 디자인에 올인

    ‘0.6초에 소비자 잡기’ 디자인에 올인

    “상품을 팔려면 0.6초 내에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한다.”(미국의 경영학자 톰 피터스) 제품의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아도 디자인이 나쁘면 외면받는다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이처럼 디자인은 모든 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좌우하는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도 90년대 이후 대기업을 중심으로 제품 성능 못지 않게 디자인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디자인 개발예산 및 전문인력 부족, 영세업체 난립 등으로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디자인 강국에는 못 미치는 ‘변방 국가’에 머물러 있다. ●기업, 디자인에 죽고 살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실감케 한 대표적인 제품은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애니콜’이다. 경쟁 제품에 비해 가격이 20∼30% 정도 비싼 데도 불구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고객들의 지갑을 열었다. 애니콜 모델인 ‘이건희폰’(2002년),‘벤츠폰’(2003년),‘블루블랙폰’(2004년) 등은 전세계적으로 각각 1000만대 이상씩 팔렸다. 이는 삼성이 지난 1996년을 ‘디자인 혁명의 해’로 선언한 이후 디자인 경쟁력 강화에 힘써 온 결과다. 벤처기업인 레인콤도 디자인을 무기로 국내 MP3플레이어 시장을 석권했다.“디자인에 비해 부품이 크면 부품은 구겨서라도 넣어야 한다.”는 레인콤 양덕준 사장의 말은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표현으로 유명하다. 90년대 누적된 적자로 파산 위기에 몰렸던 미국 애플컴퓨터가 1998년 속이 들여다 보이도록 만든 ‘누드 컴퓨터’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은 디자인의 위력을 증명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그동안 국내 업체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모토롤라도 과거 투박한 제품 이미지에서 탈피, 디자인을 개선한 ‘레이저’를 앞세워 올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디자인진흥원 박희면 본부장은 “21세기 지식기반 시대에서 디자인은 글로벌 경쟁력의 원천”이라면서 “하지만 국내 기업의 매출액 대비 디자인 투자 규모는 0.3% 수준으로 선진국의 3%에 턱없이 부족하고, 전문인력 및 업체도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디자인 강국, 무엇이 문제인가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디자인 전문회사는 지난 97년 80개에서 올해 1127개로 15배 가까이 늘어 양적으로는 팽창을 거듭했다. 그러나 업체당 평균 매출이 2억 4000만원, 종업원 수는 4.3명에 불과할 정도로 영세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업체의 72.7%가 수도권에 몰려 있어 과당경쟁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디자인 신규 전문인력이 매년 3만 6000명씩 배출돼 미국(3만 8000명)에 이어 두번째로 많지만,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기업들의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박 본부장은 “실무가 아닌 이론 위주의 교육으로 산업의 수요에 부합하지 못하는 측면이 많다.”면서 “산업계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나라는 정부 차원의 디자인 정책을 실시하는 유일한 국가이지만 지원규모가 미흡한 것은 흠이다. 올해 정부의 디자인 연구개발(R&D) 예산은 193억원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한해 디자인 투자비용(1000억원)의 4분의1, 전체 국가 R&D 예산(7조 7996억원)의 0.25%에 그치고 있다. 산자부는 이같은 문제를 보완한 ‘디자인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마련,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7회 산업디자인진흥대회’에서 발표한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등의 환경개선사업에 디자인 요소를 가미하는 국가환경디자인개선사업, 각 지역의 디자인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지역디자인혁신사업 등이 추진된다. 김호원 산자부 산업기술국장은 “디자인개발은 기술개발에 비해 투자 효율성이 2배 이상 높지만, 실제 투자금액은 4분의1 수준”이라면서 “국가·지역통합형 디자인 혁신체제를 마련, 선진국 대비 80% 수준인 디자인 역량을 오는 2008년까지 90%로 높이고, 디자인 부가가치도 현재 7조원에서 20조원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선진국·개도국 ‘CO 설전’

    선진국·개도국 ‘CO 설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규정한 교토의정서가 지난 2월 발효된 이후 처음으로 가입 당사국들이 28일(현지시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규정한 교토의정서가 지난 2월 발효된 이후 처음으로 가입 당사국들이 28일(현지시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다음달 9일까지 계속되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제11차 당사국 총회 및 제1차 교토의정서 당사국 회의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배출량 감축 의무 이행을 점검하고 앞으로의 이행 방안을 논의한다. 특히 이번 회의는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지지부진해 허리케인, 지진해일과 같은 재앙을 불러왔다는 게 확인된 시점에서 열리게 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로버트 메이 영국 학술원장은 이날 개막 연설을 통해 “해수면 상승, 물 부족, 홍수ㆍ가뭄 등 재앙의 빈발은 대량살상무기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위력으로 커졌다.”고 강조했다. 156개국이 비준한 교토의정서는 선진국 및 동구권 39개국에 2008∼2012년에 1990년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평균 5.2%를 감축하도록 하고 개도국에는 이에 대한 준비를 하도록 했다. 2단계 격인 2013∼2020년의 감축 규모에 관한 논의는 이번 몬트리올 회의를 시작으로 본격화할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주목된다. 개도국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더 유연한 감축 목표가 부여되길 희망하면서 선진국의 더 많은 책임 부담을 바라고 있지만 이를 밀어붙일 경우 역풍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BBC는 장기적 관점에서 모든 국가들에 같은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02년 11월 교토의정서를 비준했지만 감축 의무는 부여받지 않았던 한국이 중국과 인도, 브라질 등과 함께 새롭게 의무를 부여받게 될 지 주목된다. 또 최다 이산화탄소 배출국인 미국은 선진국들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장국 캐나다의 주장에 냉소를 보내면서 더 광범위하며 국제법 효력을 갖고 있는 유엔 기후변화협약에 관한 기본합의(UNFCCC)를 새 협상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스포츠중계 보편적 접근권 입법 논란] “지상파방송 독과점적 위력 여전”

    #장면 1. 지난 1월 신생 스포츠마케팅사 IB스포츠는 4년간 4800만달러에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따냈다.IB스포츠는 재판매를 원했지만, 지상파가 등을 돌리자 Xports를 급조했다. 한국 선수의 맹활약으로 뉴스 가치는 솟았으나 지상파는 뉴스용 화면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토막 소식’으로 홀대했다. #장면 2. IB스포츠는 2006년부터 7년 동안 아시아축구연맹(AFC) 주관 올림픽 및 월드컵 아시아예선 전 경기 독점권을 2500만달러(추정액)에 사들였다. 지상파는 “그동안 외화 낭비를 막기 위해 3사가 구성한 풀단을 깨기 위해 AFC가 IB스포츠에 판 것”이라며 성토했다. #장면 3. 프로농구 개막을 앞두고 “2003년 수준(40억원)으로 환원”을 원한 한국농구연맹(KBL)과 “34억원 동결”을 내세운 지상파의 협상은 평행선을 그었다. 결국 중계권은 50억원을 베팅한 IB스포츠에 넘어갔다. 방송 3사는 이번에도 “재구입 불가”를 천명한 동시에 계열 케이블(KBSSKY,MBC ESPN,SBSSPORTS) 중계마저 막아버렸다. 지상파가 철옹성을 구축했던 국내 스포츠중계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IB스포츠와 올해 들어 세 차례나 대립각을 세우며 힘겨루기가 시작된 것. 외국에선 스포츠에이전시가 중계권을 구매한 뒤 방송사에 재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국내 현실은 이와 동떨어져 있었다. 주요 스포츠 중계권 시장은 ‘생산자’인 연맹보단 ‘구매자’인 지상파가 우월적 지위를 누리는 기형 구조였다. 프로팀들이 매해 수십억원의 적자를 감수하며 구단을 운영하는 것은 홍보 효과 때문. 방송을 얼마나 많이 탈 수 있느냐는 ‘존재의 이유’와 직결된다. 따라서 ‘콘텐츠’란 무기를 가지고도 지상파에 휘둘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스포츠마케팅사가 등장하며 지상파의 ‘독과점적 지위’가 위협받기 시작했다. 각 연맹들은 프로농구 중계권 파동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현 상황을 내심 흐뭇해하며 관망하고 있다. 본의 아니게 ‘총대’를 멘 KBL은 괴로움을 겪고 있다.05∼06시즌 중계권을 IB스포츠에 넘기며 지난해보다 16억원이 늘어난 50억원을 챙겼다. 하지만 파장은 일파만파. 더 이상 밀리면 걷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지상파는 ‘공조 체제’를 형성, 재판매 경로 및 중계차를 비롯한 생중계 설비 임대까지 틀어막았다. 고수웅 KBL 홍보이사는 “IB스포츠에선 지난해보다 싼 값에 재판매를 하겠다고 했는데 공중파가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면서 “현재 공중파의 행태는 사실상 ‘담합’이자 ‘불공정행위’다.”고 호소했다. 아직 지상파의 견제를 의식해 협상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IB스포츠는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의 하나인 프로야구 중계권 협상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90억원에서 올해 80억원으로 ‘된서리’를 맞았던 한국야구위원회(KBO)도 마다할 리 없다. 이상일 KBO 사무차장은 “IB스포츠와 지상파 모두에게 동등한 조건으로 협상의 문호를 개방할 것”이라면서 “돈은 둘째 문제이며, 다만 IB스포츠가 중계권을 따내려고 한다면, 많은 채널을 확보해 전 경기를 중계할 역량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한길 가는 김수간·김민정 잉꼬부부

    한길 가는 김수간·김민정 잉꼬부부

    부부가 한 직장에서 일하면 좋은 점이 많을까, 나쁜 점이 많을까. 개인의 성격과 처한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르겠지만 여기 한 쌍의 지하철 기관사 부부만큼은 좋은 점이 많은 듯 하다.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사장 음성직)의 김수간(34)·김민정(30)씨는 유명한 부부 기관사다. 먼저 유명세를 탄 것은 아내. 동기 기관사 120여명 가운데 유일한 여성 기관사인 그는 귀여운 외모의 소유자여서 ‘미녀 기관사’로 통한다. 남편 김수간씨는 올해 처음 도전한 도시철도공사 최우수 기관사 시험에서 월등한 성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아내에 대한 주변의 높은 관심 때문에 분발한 탓도 있다. 다음에는 아내가 최고에 도전한다. 김민정씨는 남편의 경험을 바탕으로 2년쯤 뒤에 최우수 기관사에 도전하려고 마음을 굳혔다. 학교 선후배이자 직장 동료·동기이고 인생을 함께 하는 부부이기도 한 김수간·김민정씨.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차’를 모는 자신들을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사진은 김수간씨 부부가 일을 마친뒤 7호선 온수역에서 다정스럽게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지하 세계’에서 사는 부부가 있다. 남편과 아내 모두 하루 종일 어두컴컴한 땅아래로만 달리고 있으니 ‘지하 세계에 산다.’는 표현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이 둘은 도시철도공사(지하철 5~8호선) 지하철 기관사 부부이다. 남편 김수간(34)씨는 8호선을, 아내 김민정(30)씨는 7호선을 운전한다. ●부부간 대화도 지하철 이야기 김수간씨는 도시철도공사가 지난달 실시한 ‘2005 최우수 기관사 선발대회’에서 2위 그룹과 20점 차이를 보이는 우수한 성적(총점 428점)으로 1위를 차지하며 최우수 기관사의 영예를 안았다.. 최우수 기관사 평가는 이론·기능·응급사항 대응능력 등 지하철 운행에 관한 전 분야에 걸쳐 치러졌다. 특히 올해는 자신이 운전하지 않는 다른 호선의 전동차 고장 조치와 같은 새로운 분야가 시험 과목에 포함되기도 했다. 도시철도공사의 지하철 5∼8호선은 지하철 재원과 특징이 각 호선마다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운행하지 않는 열차에 대해 숙지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김수간씨는 이를 평가하는 필기 시험에서 2위와 10점 이상 차이를 내며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는 이같은 공(功)을 모두 아내에게 돌렸다. “아내가 지하철 기관사이다 보니 집에서 서로 나누는 대화도 지하철에 관한 내용이 많아요. 부부간의 대화가 곧 공부가 되는 셈이죠.” ‘아내의 힘’이 위력을 발휘한 것은 비단 이번 최우수 기관사 선발대회에서만은 아니다. 김수간씨가 기관사가 되기까지는 아내이기 이전 연인이었던 김민정씨의 힘이 많이 작용했다. 둘은 입사이전부터 사귀고 있던 안양과학대학 캠퍼스 커플이다. ●도시철도공사 입사 전엔 캠퍼스 커플 대학시절 연인인 김수간씨를 기관사의 길로 이끈 것은 김민정씨였다. 김수간씨는 도시철도공사에서 기관사 채용 공고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먼저 기관사 시험을 보기로 결심한 김민정씨가 꼼꼼히 챙겨준 것이다. 김민정씨는 “처음 기관사 시험을 보도록 한 것은 저였지만 함께 공부하면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웠다.”면서 “남편이 있었기 때문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함께 공부를 시작한 둘은 첫 시험에서 보란듯이 합격했다. 특히 김민정씨는 120여명의 동기생 기관사 가운데 유일한 여성으로 합격했다.‘홍일점’이자 미모를 겸비한 김민정씨에 대한 사내(社內)의 관심은 남달랐다. 덩달아 연인인 김수간씨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둘은 단번에 도시철도공사의 유명 인사가 됐다. 도시철도공사에 기관사 부부는 의외로 많다. 전체 여(女)기관사 17명가운데 5명이 부부기관사이다. 도시철도공사 박창규 홍보실장은 “근무시간도 불안정하고 거의 지하에서만 살다 보니 연애할 시간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기관사들끼리 맺어지는 것은 근무 형태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대학시절보다 더욱 가까워진 김수간·김민정씨 부부는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시험은 같이 봤지만 남편보다 1년쯤 늦게 임용된 김민정씨는 남편의 생생한 경험을 전수받아 실수 없이 기관사 생활을 해 오고 있다. 남편이 먼저 거쳐간 기관사 연수원과 5호선 7호선 근무를 그대로 이어서 따라가고 있다. “남편은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설명해 줘요.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그런 설명들이 저한테는 큰 도움이 되죠.” 김수간씨 역시 “아내에게 직장에서의 전문적인 일들을 편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행복하다.”면서 “아마 2년쯤 후에는 아내가 최우수 기관사가 돼 있을 것”이라고 웃었다. 지금까지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구 서울지하철공사)와 5∼8호선을 운영하는 도시철도공사에서 여성 최우수 기관사는 단 1명도 배출되지 않았다. 글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2005 프로축구] 마차도 “박주영 운명 내 발끝에”

    ‘축구 천재’가 거세게 몰아치는 ‘마차도 돌풍’에 휘청거리고 있다. 프로축구 K-리그가 끝난 직후만 해도 박주영(20·FC서울)이 신인왕, 득점왕을 발판으로 최우수선수(MVP)까지 휩쓰는 ‘트리플 크라운’이 유력하게 점쳐졌다.12골을 기록한 박주영은 득점 부문 2위 그룹과 2골 차이로 벌어져서 가능성이 컸다. 실제 박주영은 올시즌 ‘K리그 흥행돌풍’의 일등 공신이었다. 박주영의 메가톤급 위력은 금세 확인됐다. 그가 등장하는 경기장은 전국 가리지 않고 역대 최다관중 신기록을 경신했고, 누적관중 통계에서 277만 7441명으로 신기록(99년 275만 2953명)을 세웠다. 이러한 흥행몰이 공헌으로 신인왕은 예약해 놓았고, 득점왕까지 차지한다면 자연스럽게 MVP도 접수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브라질 용병 마차도(29·울산)가 복병이었다. 김정남 울산 감독이 직접 브라질까지 날아가 삼고초려하며 골라온 마차도는 7월13일 뒤늦게 K-리그에 데뷔했지만, 지난 9일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2골을 몰아치며 득점 공동 2위로 급부상하더니 20일 성남과 가진 플레이오프에서도 1골을 추가,1골 차이로 거세게 추격했다. 경기당 득점률 0.73으로 15경기에서 무려 11골을 뽑아냈다. 마차도는 개인 기록 외에도 소속팀을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시키는 등 브라질 국가대표(97∼98년)에 스페인리그(발렌시아)에서도 뛰었던 대어급 용병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줬다. 오는 27일과 다음달 4일 챔피언 결정전 2경기에서 마차도가 남은 1골만 추가하면 경기당 득점에서 19경기를 치른 박주영(경기당 득점 0.63)을 앞서게 돼 득점왕을 차지한다. 박주영은 득점왕을 놓치면 MVP의 꿈 역시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게다가 포스트시즌 성적까지 합산해 개인기록을 매기는 불합리한 제도 탓에 박주영으로서는 발이 묶인 채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봐야 한다. 박주영의 운명을 마차도가 쥐게 된 셈이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탐사보도만이 살길이다/김동률 KDI 연구위원

    More than just news. 뉴스 이상의 뉴스, 뉴욕타임스의 편집지침이다. 우리 신문처럼 거창한 사시가 없는 미국 신문은 편집지침이 곧 해당 신문이 지향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신문이 뉴스 이상의 그 무엇을 추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탐사보도다. 탐사보도는 신문이 다른 매체에 비해 자랑스러운 이유를 설명해 주는 보도기법이다. 오늘날 세계 유력신문들은 탐사보도를 통해 자신의 건재를 알리면서 영상, 인터넷매체로 눈 돌리는 젊은 독자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1971년 여름, 뉴욕타임스는 미 국방부의 베트남 관련 비밀문서를 폭로하는 데 무려 6페이지라는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지면을 할애했다. 이른바 펜타곤페이퍼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베트남정책은 방향을 틀어야 했다.2년 뒤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사건도 탐사보도의 위력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이를 계기로 워싱턴DC에서만 영향력을 가졌던 지방신문 포스트는 세계 유명 신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탐사보도는 취재기간을 길게 잡고 코넌 도일의 소설에 나오는 탐정 셜록 홈스처럼 끈질기게 분석해 가는 취재기법을 말한다. 상당한 공을 들인 탐사보도는 경우에 따라 엄청난 파괴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오랜 시간을 두고 접근해야 할 의혹조차도 한두 달, 길게는 서너 달 정도를 투자해 기사화하는 경향이 있다. 단기 승부에 매달리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접근은 본질규명에 종종 실패하고 만다. 중앙 일간지 중 본격적인 탐사보도팀을 운영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몇몇 신문에서 ‘기획취재팀’등을 한때 조직했거나 운영하고 있지만 물먹은 자리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다. 서울신문은 지난 16일부터 연재한 ‘파산자의 희망찾기’를 통해 파산자들의 곤고한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재기에 몸부림치는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했으며 특히 파산담당 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인터뷰를 통해 ‘파산의 급증은 카드정책 실패의 탓’이라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 시리즈는 파산자의 모든 것을 입체적으로 보여준, 전형적인 탐사보도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독자들에게는 그저 고통스러웠을 것 정도로만 이해되던 파산자의 삶과 원인을 낱낱이 소개하는 귀한 기회를 제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초보적 수준의 탐사보도에 그친 느낌이다. 비록 실증조사의 한 기법인 서베이기법과 천정배 장관과의 심층인터뷰 등을 동원하긴 했지만 비전문가적인 접근이 곳곳에 눈에 띄고, 또 그동안 떠돌던 소문을 확인시켜 주는데 그친 감도 있다. 탐사보도는 보다 깊이 있고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은 그 무엇을 확실하게 던져줘야 한다. 실제로 미국의 큰 신문사 기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몸값을 올리기 위해 탐사보도로 승부를 건다. 퓰리처상 수상작 가운데 상당수가 탐사보도에서 나왔다. 대형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한, 자질구레한 기사는 인터넷이나 통신을 활용하고 그 시간에 탐사보도에 공을 들인다. 우리 언론의 경우, 특히 신문사들은 지나치게 적은 취재인력으로 지면을 만들다 보니 기획성 탐사보도를 사치로 생각하는 경향마저 없지 않다. 태평양처럼 넓은 지면을 메우기에도 죽어나는 판에 무슨 호들갑이냐고 반박하면 할말이 없게 된다. 그나마 잦은 인사로 드문드문 등장하는 탐사보도의 경험이나 사례마저 축적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신문은 모든 사건을 나열하는 방식의 보도로는 생존자체가 불투명한 시대에 와있다. 방송·뉴미디어와 속보경쟁을 벌이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결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굵직굵직한 탐사보도를 통해 존재의 이유를 인정받아야 한다. 물론 사생활까지 뒷조사하고 흥미 위주로 폭로하는, 거름더미(muck)를 갈고리로 뒤적이는(raking) 먹래이킹 저널리즘 (muckraking journalism)이 되어서는 곤란하겠지만. 김동률 KDI 연구위원
  • [정치플러스] 盧 “日은 상대국 입장 존중해야”

    노무현 대통령은 10일 “일본의 최근 헌법 개정, 방위력 증강 동향 등에 주변국 국민들이 갖게 되는 의구심과 우려에 대해 일본, 특히 정치지도자들이 역지사지의 자세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모리 요시로 전 총리 등 일·한 의원연맹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고 “최근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정치인들의 집단 참배 문제들을 보게 되면 이러한 문제들이 별개의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고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한·일관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역사 인식 문제 등은 매우 민감하고 중요하므로 그만큼 어렵지만 그럼에도 제기해야 할 문제는 제기하여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러한 과정에서 양 국민들간 감정 대립으로 증폭되지 않도록 정치 지도자들이 절제된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면서 “또한 한·중·일 동북아 3국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해서는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상대국의 입장을 존중하는 신중한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 70%가 “한나라 재선거 승리는 與실정 덕분”

    70%가 “한나라 재선거 승리는 與실정 덕분”

    지난 10·26 재선거를 치른 유권자들은 정부·여당의 실정과 박근혜 대표의 방문, 이른바 ‘박풍(朴風)’을 한나라당 압승의 주요 이유로 꼽은 것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 ‘더피플’(www.thepeople.co.kr)은 대구 동을, 울산 북구, 경기 광주, 부천 원미갑의 20세 이상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한 ARS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평가보고서’를 9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한나라당 후보자 당선 요인으로 ‘정부·여당의 잘못’으로 응답한 이들은 각각 72.1%(부천원미갑),69.7%(대구 동을),69.3%(경기 광주) 59.7%(울산 북구)로 나타났다. 반면 ‘한나라당이 잘해서’라고 응답한 이들은 8.7%(부천원미갑),10.2%(대구 동을),12.1%(경기 광주),12.2%(울산 북구)였다.‘박풍’의 효과에 대해서는 대구와 울산에서 각각 57.6% 54.8%로 나타나 영남에서의 ‘박풍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KCC 프로농구] 김주성-왓킨스 ‘철옹성’ 동부 지키는 ‘두 탑’

    지난달 21일 05∼06프로농구 개막전에서 강력한 우승후보 동부는 오리온스에 힘 한번 못 써보고 무너졌다. 이틀 뒤 약체로 여겨졌던 모비스에 다시 패전의 망신을 샀다.KTF로 떠난 신기성의 공백을 감안하고도 동부를 ‘4강 전력’으로 내다봤던 전문가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무엇보다 승패를 떠나 경기내용이 워낙 안 좋았다.2경기에서 무려 26개의 턴오버를 범하며 우왕좌왕했고, 공수 밸런스가 흐트러지면서 평균 65득점,83실점의 졸전을 펼친 것. 그러나 꼭 2주 만에 동부는 ‘디펜딩챔프’의 위용을 회복했다.SK 삼성 KTF 등 까다로운 팀들을 상대로 시즌 최다인 5연승을 질주, 공동선두에 올랐다. 확실한 포인트가드 부재속에서 동부가 ‘파죽지세’로 돌아선 것은 최강의 더블포스트 김주성(사진 왼쪽·26·205㎝)-자밀 왓킨스(오른쪽·28·204.3㎝)가 있었기 때문이다.‘대들보’ 김주성은 개막전에서 목부상을 당해 앰뷸런스에 실려갔다. 하지만 에이스가 누워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김주성은 1경기를 건너뛴 뒤 코트에 복귀했고 평균 13.7점에 4.8리바운드로 골밑을 사수, 연승행진에 불씨를 댕겼다. 전매특허인 블록슛도 경기당 1.7개(6위)로 토종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동부(전신인 TG포함)에서 두번째 시즌을 맞은 왓킨스도 지난해 못지않은 위력을 뽐냈다. 개막전 8점으로 부진했지만 언제 그랬느냐는 듯 평균 15.6점에 10.7리바운드(6위),1.6블록슛(7위)으로 김주성과 골밑 철옹성을 구축했다.‘두개의 탑’이 제 위치를 찾자 동부 특유의 ‘질식 디펜스’도 되살아났다. 평균 76.9실점으로 최고의 짠물수비를 펼쳤다. 김주성은 “왓킨스와는 눈빛만 마주쳐도 척척 호흡이 맞는다.”면서 “5연승도 왓킨스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저승사자처럼 무표정한 왓킨스는 “용병들 실력이 좋아져 체력훈련을 많이 해야겠다.”고 너스레를 떤 뒤 “우리 팀은 팀워크가 생명인 만큼, 김주성과 동료들을 믿는다.”고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안티 힐러리’ 위력… 에드워즈 선두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의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는 잠재후보 가운데 공화당에서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주)이, 민주당에서는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노스캐롤라이나주)이 유권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퓨 리서치가 지난달 말 공화·민주당원 및 무소속 유권자들을 상대로 조사한 데 따르면 매케인 의원은 무소속과 민주당원들로부터 각각 78%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또 공화당 유권자들부터도 74%의 지지를 얻었다.매케인 후보의 지지율이 공화당에서 오히려 낮은 것은 지난 대선에서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그를 부통령 후보로 거론했고, 한동안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등 ‘정체성’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공화당 후보 가운데는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매케인 의원을 바짝 쫓고 있다. 줄리아니 전 시장은 무소속의 78%, 민주당원의 69%로부터 지지를 받았으며, 특히 공화당 유권자로부터는 92%의 높은 지지율을 획득했다. 공화당원들이 줄리아니 전 시장에게 후한 점수를 준 것은 뉴욕시장 재임시절 발생한 9·11 테러 참사를 훌륭하게 수습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줄리아니 전 시장은 낙태와 동성애자 결혼 등 사회적 이슈에는 ‘덜 보수적’이어서 정책 논쟁이 벌어질 경우 공화당원의 지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민주당에서는 지난해 대선 당시 케리 후보의 러닝메이트였던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이 가장 잠재력있는 차기 후보로 꼽혔다. 그는 무소속 유권자들에게서 68%의 지지를 받은 것을 비롯해 공화당원으로부터 48%, 민주당원으로부터 85%의 지지를 각각 얻어 당내 선두주자로 인식돼온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뉴욕주)을 앞질렀다. 이와 관련, 에드워즈 진영은 이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 대선때 부시 대통령에게 재선의 발판을 마련해준 무소속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민주당 후보”라는 점을 집중 부각시킬 공산이 크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이번 조사에서 힐러리가 에드워즈 전 의원에게 선두 자리를 넘겨준 것은 공화당원들의 ‘반 힐러리’ 성향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힐러리는 민주당원들로부터는 에드워즈보다 많은 86%의 지지를 받았지만, 무소속으로부터는 58%, 공화당원으로부터는 23%의 저조한 지지를 받는 데 그쳤다.dawn@seoul.co.kr
  • [KCC프로농구] 모비스 ‘돌풍의 핵’

    05∼06시즌 프로농구 초반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시즌 전 전자랜드·KTF와 함께 ‘3약(弱)’으로 분리됐던 모비스가 파죽의 4연승을 달리며 순위표 맨 윗자리를 점령한 것. 모비스는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적은 팀연봉(10억 5300만원)과 샐러리캡 소진율(70.2%)이 말해 주듯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는 팀. 그동안 자유계약선수(FA)에 대한 과감한 베팅이나 대형 트레이드를 통한 전력보강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액연봉 스타도, 화려한 경력의 외국선수도 없는 모비스가 돌풍을 일으키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통산 178승(3위)을 일군 ‘명장’ 유재학 감독의 용병술이야 이미 예상된 바지만, 포인트가드 양동근(사진 왼쪽·24)과 파워포워드 크리스 윌리엄스(오른쪽·25)가 ‘따로 또같이’ 펼치는 바스켓쇼가 팬들의 기대를 120%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 시즌 평균 11.5점에 6.1어시스트를 올리며 신인왕을 거머쥔 양동근은 평균 14점에 6.2어시스트(8위)를 기록,‘2년차 징크스’란 말을 무색케 하고 있다. 아직 세기는 부족하지만 과감한 골밑돌파와 3점포, 대담한 송곳패스는 한층 위력을 더하고 있다. 특히 탄력 넘치는 윌리엄스에게 찔러주는 앨리웁패스와 둘이 함께 펼치는 대담한 컷인플레이는 상대의 허를 찌르기에 충분하다. 윌리엄스는 말그대로 ‘복덩이’.193㎝,98㎏로 용병치고는 왜소한 체격 탓에 터프하기로 소문한 국내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많았지만, 득점과 수비는 물론 패스 능력까지 갖춘 만능선수로 판명됐다. 평균 25.4점(6위)에 3.2스틸(1위), 6.8어시스트(4위),10리바운드(공동 8위)의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쳐 모비스의 ‘신형엔진’으로 자리잡았다.27일 KT&G전에선 단테 존스를 꽁꽁 묶어 연승행진을 점화하더니 30일 전자랜드전에선 시즌 첫 트리플더블로 4연승을 자축했다. 전신인 기아 시절 프로출범 이후 3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지만, 최근 두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문턱에서 고배를 마신 모비스가 ‘쌍두마차’ 양동근-윌리엄스의 힘으로 ‘명가 재건’에 성공할지 궁금하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박지성 뛴 맨U, 충격의 참패

    ‘신형엔진’ 박지성(24·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초롱이’ 이영표(28·토트넘 홋스퍼)가 나란히 선발 출격했으나 맨체스터는 충격패를 당했고, 토트넘은 비겼다. 박지성은 30일 새벽 리버사이드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와의 원정경기에 왼쪽 공격수로 선발 출전해 두 차례 슈팅을 때렸으나, 골사냥에 실패하며 팀의 1-4 완패를 지켜봐야 했다. 이로써 맨체스터는 5승3무2패(승점 18)로 이날 블랙번에 4-2 승리를 거둔 선두 첼시(승점 31)에 승점 13점차로 벌어져 우승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전반 시작과 함께 폭발적인 드리블을 선보인 박지성은 전반 12분 벌칙구역 왼쪽에서 슛을 때렸지만 수비수를 맞혔고 33분에 아크 뒤에서 시도한 땅볼 중거리슛은 위력이 없었다. 맨체스터는 전반 2분 가이즈카 멘디에타에게 중거리포를 허용한 뒤 25분에는 하셀바잉크에게 추가골을 내줬다. 또 전반 인저리타임에 페널티킥으로 한 점을 더 잃었고 후반 33분에는 멘디에타가 다시 쐐기골을 넣었다. 박지성과 후반 14분 교체한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가 종료 직전 팀 통산 1000호골을 넣었지만 빛이 바랬다. 이영표는 29일 밤 런던 화이트하트레인 홈에서 열린 아스널과의 북런던 더비매치에 풀타임으로 뛰었지만 팀은 1-1로 비겼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영표는 이날 단짝 에드가 다비즈의 결장으로 공격 가담을 줄인 채 수비에만 주력했다. 한편 ‘스나이퍼’ 설기현(26·울버햄프턴)은 29일 밤 잉글랜드 2부 챔피언십리그 퍼드와의 경기에 후반 33분 교체 투입돼 종료 직전 시즌 2호골을 터뜨리며 팀의 완봉패를 막았다. 지난 8월10일 크리스털 팰리스전 이후 81일만에 골맛을 봤지만 팀은 1-3으로 졌다.‘총알’ 서정원(35·SV리트)도 30일 새벽 노르데아 아드미라와의 홈경기에서 전반 16분 시즌 5호 선제 결승골을 뽑아내며 팀의 4-0 대승을 이끌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대통령이 神이냐…정치문제에 관여말라”

    “대통령이 神이냐…정치문제에 관여말라”

    “대통령이 신(神)이냐.” “대통령은 더이상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 열린우리당의 10·26 재선거 완패는 그간 청와대와 당 지도부에 누적된 불만들을 촉발시켰다. 단 4석짜리 재선거로 당 지도부 전원 사퇴를 야기할 만큼 그 위력은 컸다.28일 중앙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 여기저기서 튀어나온, 예상을 뛰어 넘는 ‘쓰나미급’의 초강경 발언은 향후 파장을 가늠키 어렵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측은 “대통령의 지지도(20%대)가 당 지지도(10%대)보다 높지 않으냐.”고 불만을 터뜨려 당·청간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내각 총사퇴론’,‘코드 인사 근절’ 등 청와대를 향한 직격탄은 이날 회의가 야당 의원총회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였다. 회의 초반 한때 ‘대안 부재론’과 함께 지도부 사퇴 반대 의견이 제시됐으나,“지금 불에 타죽게 생겼는데 ‘집 나가면 어디 가서 자냐.’‘무슨 물건을 챙겨 나가야 하냐.’를 걱정하나. 당장 창문을 깨고 탈출해야 할 마당에 무슨 대안부재냐.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반론에 파묻혔다는 전언이다. 최성 의원은 “표현하기 힘들, 말로 옮기기 어려울 정도의 거칠고 심각한 발언들이 많았다.”는 말로 비공개 회의의 분위기를 전했다.“전날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당은 동요하지 말라.’는 말은, 그럼 대통령이 다음에 정치 얘기할 때까지 당은 기다리고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냐.”는 발언도 나왔다고 한 참석자는 밝혔다. 회의에서의 포문은 이미 청와대를 향해 있었고 발언 정도는 위험 수위를 넘어 있었다. 누군가는 “모두 놀랐다. 모두가 예상했던 패배지만 그 파장이 이 정도인지는 아무도 몰랐던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문학진 의원은 “대통령을 모셨던 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하기 쉽지 않지만, 대통령은 오류가 없는 사람이냐, 대통령이 신(神)이냐, 왜 열린우리당이 자기색깔을 내지 못하고 청와대만 따라가느냐. 이해할 수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어 “국정운영 상황을 보면 한나라당 성향의 정부 관료들도 장악을 못하고 있다.”면서 “국민들은 받아들이기만 하는 ‘예스맨’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당 내에 이해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기호1번으로 나가면 다 떨어지는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안영근 의원은 “당이 대통령 간섭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이 상황에서) 29일 당·정·청 모이는 것 자체가 얼마나 오만하냐.(지도부가) 당에서 여론을 먼저 들어야지 (대통령이) 지도부를 부르는 게 뭐냐. 대통령이 당을 부속물로 생각한다. 사실상 (대통령이 당 지도부의) 재신임을 강요하려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유승희 의원은 청와대의 인적 쇄신을 요구했고, 우원식 의원은 한발 더 나가 당·정·청 혁신을 주장했다. 심지어는 “재보선 패배는 예견된 일로, 작금의 사태가 ‘고소하다.’”는 등의 남의 집 일 보듯하는 듯한 냉소적인 발언도 나왔다. 정장선 의원은 “개헌·선거구제·정당간 연합문제는 대통령이 아니라 당이 결정할 문제이며 대통령은 더 이상 정치문제에 관여하지 말라.”며 “대통령 지지도가 20%라는 것은 정부에 대한 불신임이기 때문에 정기국회가 끝나면 내각이 총사퇴하고 국정운영을 쇄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지운 박지연기자 j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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