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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업 희망을 쏜다] (11) 기계화·친환경 농법의 가족전업농

    [농업 희망을 쏜다] (11) 기계화·친환경 농법의 가족전업농

    김종기(57·경북 칠곡군 기산면 영리)씨는 경북 지역의 손꼽히는 ‘만석꾼’이다. 하지만 그의 농장에 가면 눈을 의심한다. 다른 농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근사한 집이 따로 없다.270평 크기의 육묘공장과 도정공장에 딸린 10여평짜리 조립식 건물이 살림집이다. 반면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창고에는 트랙터와 이앙기 등 최신형 농기계 25대가 가득하다. 농기계가 주인이고 김씨는 세입자인 셈이다. 김씨는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쌀을 자신의 이름을 따 ‘금종쌀’로 붙였다. 이 브랜드로 지난해에 매출 3억 5000만원, 순수익 2억원을 올렸다. 올해 매출 목표는 5억원이다. 최근 농림부로부터 ‘신지식농업인’으로 선정된 그는 “값싼 수입쌀이 밀려와도 기계화와 친환경 농법으로 고품질의 브랜드 쌀을 생산하면 걱정할 게 없다.”고 말했다. ●기계화로 가족 3명이 논 45만평을 책임지는 전업농 김씨는 당초 농사일에 관심이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후 10년 동안 대구에서 택시와 버스 운전기사로 일했다. 그러다 부친이 위독해지면서 귀향해 농사일에 뛰어들었다. 홀로 계신 어머니를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소규모 논농사와 참외 농사로 시작했다가 1999년 한국농촌공사로부터 농지를 빌려 전업농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 김씨가 경작하는 논은 자가 소유 50㏊에 위탁영농 면적까지 합친 150㏊(45만평)이다. 하지만 농사일에 나서는 사람은 김씨와 부인 장점희(51)씨, 후계농인 아들 창수(29)씨 등 3명뿐이다. 가족농으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이유는 기계화와 ‘분산재배’로 일손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수확시기가 다른 벼 분산재배로 소비자 선점 김씨는 먼저 못자리 대신 실내 모판에서 볍씨를 키운 ‘육묘장’을 만들어 비용을 절반으로 줄였다. 또한 트랙터와 이앙기, 콤바인 등으로 재배 전과정을 기계화했다. 특히 수확한 벼를 건조한 뒤 저장에서 도정까지 가능한 저온 저장창고와 도정시설 등 일괄생산시스템을 갖췄다. 김씨는 “소비자가 주문하면 곧바로 쌀을 도정해 판매하는 시스템으로 영농비용을 30% 이상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수확 시기가 다른 벼를 나눠 심는 분산재배로 한달 이상 모내기와 수확을 빨리하고 갓 수확한 쌀로 소비자를 선점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김씨는 “닭도 ‘영계’가 맛있듯이 쌀도 약간 덜 여문 것이 좋다.”면서 “신선한 쌀을 생산하기 위해 벼가 85∼90%만 익으면 수확을 한다.”고 귀띔했다. ●쌀겨와 우렁이 농법으로 일군 100% 주문판매 김씨의 논두렁은 일반 논과 달리 지나가기가 힘들 정도로 풀이 무성하다. 농약을 전혀 쓰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도정공장에서 나오는 쌀겨를 뿌려 잡초의 성장을 억제하고 있다. 일부 논에는 우렁이를 키워 제초제를 대신한다. 때문에 논에는 미꾸라지와 메뚜기가 가득해 백로 등의 새들이 날아든다.“농한기에 왕겨와 축산분뇨를 섞어 직접 만든 유기질 비료 등을 뿌려 병해충을 예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된 ‘금종쌀’은 80㎏짜리 한 가마니 당 25만원선에 팔린다. 일반쌀보다 20%가 비싸 5만원 이상을 더 받는다. 특이하게도 쌀 값이 요동을 쳐도 6년째 가격이 똑같다. 김씨는 “밥맛을 보고 만족한 단골들을 대상으로 100% 주문판매하기 때문에 시장 가격의 변화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맞춤형 기능성 쌀로 승부 김씨는 최근 ‘아롱다롱 오색쌀’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다. 검정·자색·녹색·흰색·투명 등 5가지 색깔을 지닌데다 칼슘 등이 함유돼 가마니당 가격이 100만원을 넘는다. 아울러 수입쌀에 맞서기 위해 다이어트에 좋은 ‘고아미 2호’와 당뇨병 환자의 혈당을 낮추는 데 도움을 주는 찹쌀종 ‘백진주’ 등을 생산하고 있다. 김씨는 요일별로 색깔을 달리해 밥을 지을 수 있는 ‘무지개쌀’도 내놓을 계획이다. 쌀을 소비하지 않는 현대 가정의 특성을 겨냥,‘쌀 배달’ 프로그램도 생각하고 있다. 김씨는 “우유나 신문을 배달하듯 매일 수백g씩 소량의 쌀을 가정에 넣어주는 것”이라면서 “소비량이 적으면서도 신선한 쌀을 원하는 신세대 부부 등을 위한 ‘맞춤형’ 마케팅”이라고 설명했다. 경북 칠곡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쌀산업의 현안 “마지막 10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관세화를 10년간 유예받은 우리 쌀 산업의 최대 화두이다. 전문가들은 그 해답을 ‘경쟁력 회복’과 ‘유통’에서 찾는다. 솔직히 국내 쌀 생산 원가는 외국 쌀의 3∼4배 수준이다. 따라서 당장 수입쌀이 5% 남짓의 관세만 물고 들어오면 국산쌀은 품질과 관계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10년간 빗장을 걸고 의무수입물량(TRQ) 만큼만 수입을 허용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동규 박사는 “쌀 농가에 대한 강제적인 구조조정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면서 “쌀 농가의 경영주 연령이 70살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자연스럽게 연착륙(소프트 랜딩)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10년간 국산쌀의 시장가격을 낮추는 정책이 필요하며 다소 재정에 부담이 되더라도 농가소득 지원은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림부 관계자는 “56년간 추곡수매제를 통해 유지해 오던 쌀값 지지정책을 철회한 것은 완전 개방에 대비, 쌀 농가의 생존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면서 “당장 영농의 규모화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없는 만큼 소득직불보전제와 생산조정제 등으로 쌀 시장의 수급과 가격을 조정해 나간다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관수 서울대 농경제학 교수는 “소득직불제는 우리 농정의 근간을 뒤바꾼 중요한 정책임에도 기대와 효과에 대한 사전 검토가 제대로 안됐다.”고 지적했다. 소득직불제는 경작자의 소득을 지원하는 정책이지만 지주들이 자기 몫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임차료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임차농가의 비중은 42%에 이른다. 김 교수는 또 1966∼2004년 통계자료를 분석, 농가직불소득 100원이 증가할 경우 지주에게 30원 정도 돌아가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대규모 농가일수록 임차 비중이 커 지주에게 소득의 귀속 효과가 높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국산쌀의 가격은 지속적으로 떨어져야 나중에 경쟁력이 생기는데 소득을 지원받는 농가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생산을 늘리려는 성향이 있어 구조조정에 역행된다고 밝혔다. 쌀 소비가 감소하는 데 생산이 늘 수 있다는 것. 농업문제를 연구하는 민간연구소 GS&J의 이정환 원장은 “국내에 대표 브랜드가 없다는 게 쌀 시장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국의 미곡종합처리장(RPC) 300여곳이 농민으로부터 쌀을 사들여 브랜드화하고 있지만 이같은 RPC 매출 방식은 단일 규모의 수탁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림부는 전국 군 단위로 ‘파워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RPC 300개를 100개 수준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RPC 100개끼리 경쟁하면 추가적인 통·폐합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식탁용 수입쌀 얼마나 팔렸나 밥쌀용 수입쌀이 당초 우려와는 달리 시장에서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심리적인 거부감에 따른 싸늘한 반응이 원인이지만, 무엇보다 ‘밥맛’ 등 품질이 국산 쌀보다 훨씬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초 미국산 칼로스 쌀을 필두로 지금까지 수입된 밥쌀용 수입쌀은 중국산 ‘칠하원(七河源)’, 태국산 안남미(安南米) 등 세 종류다. 호주산 ‘선라이스’는 현지 사정으로 인해 올해 가공용으로 바뀌어 수입될 예정이다. 세 종류의 수입쌀은 지난 14일까지 칼로스 쌀 5504t, 칠하원 1만 2767t, 태국쌀 3293t 등 2만 1564t이 국내로 반입됐다. 이는 모두 지난해 의무수입물량이다. 올해 수입물량으로 할당된 시판용 수입쌀 3만 4429t은 하반기에 수입된다. 아직 수입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 이렇듯 올해에 수입되는 물량은 많지만 지금까지 판매된 양은 안타까울 만큼 적다.17차례 공매를 실시하면서 응찰 자격을 2차례 완화하고 낙찰 예정가격도 낮췄지만 총 4221t밖에 팔리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 들어온 수입쌀의 19.5%에 해당된다. 그나마 5월부터 팔린 중국쌀과 태국쌀의 선전에 따른 것이다. 수입쌀의 대표격인 미 칼로스 쌀은 지금까지 543t만 팔려 낙찰률이 9.8%에 그치고 있다. 최근에서야 판매량이 조금씩 늘고 있다. 수입쌀이 맥을 못추는 이유는 품질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국산 쌀에 뒤쳐지기 때문이다. 칼로스 쌀에서 냄새가 나고 밥맛이 나쁘다는 ‘시장의 소문’도 한 몫하고 있다. 농림부 관계자는 “품종 개발과 함께 국내 농가에서 친환경·유기농법 등으로 질 좋은 쌀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라면서 “소비자들은 가격이 조금 비싸도 맛좋고 먹기에 안전한 쌀을 찾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맨해튼 한복판 ‘묻지마’ 칼부림

    맨해튼 한복판 ‘묻지마’ 칼부림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이유없이 불특정 다수를 공격한 ‘묻지마 칼부림’이 잇따라 발생했다. 특히, 피습 사건이 관광 명소인 맨해튼의 타임스퀘어 등 주요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발생, 관광객의 주의가 요구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14일(현지시간) 맨해튼 한복판에서 불과 13시간동안 관광객 등 4명이 잇따라 피습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피해자 가운데 2명은 위독하다. 첫번째 사건은 현지 시간으로 13일 오후 3시41분쯤 맨해튼 센트럴파크 C노선의 지하철역에서 발생했다. 괴한은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온 남성 관광객 1명의 가슴을 마구 찌른 뒤 달아났다. 두번째 사건은 다음날 새벽 3시에 일어났다. 타임스퀘어 인근의 록펠러센터 지하철역에서 30대 남성이 흉기에 찔렸다.30분쯤 후 인근 시장에서 맥주병을 집어던지며 칼을 휘두른 난동 사건이 발생했고 피습 사건의 연관 여부를 위해 경찰이 추적에 나섰다. 마지막 사건은 새벽 4시 타임스퀘어 지하철역과 접한 브로드웨이 47번가의 에디슨 호텔 인근에서 발생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관광을 온 여성 2명이 길을 걷다 등 뒤에서 예고없이 공격을 당했다. 뉴욕 경찰은 당시 호텔 주변에서 노숙자 케니 알렉시스(20)를 용의자로 체포한 후 세 사건과의 범행 연관성을 조사하고 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알 자르카위 사망 이라크 안정 찾을까

    알 자르카위 사망 이라크 안정 찾을까

    이라크 저항 테러의 ‘사령탑’으로 자살폭탄 공격과 외국인 납치, 인질 참수 등을 주도한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39)가 절명함에 따라 개전 후 3년이 지나도록 유혈이 거듭되고 있는 이라크가 안정을 되찾게 될지 주목된다. 지난 2004년 종전 선언 뒤에도 여전히 유혈이 계속 빚어지는 데다 동맹국과의 균열로 사상 최악의 지지율 하락과 철군 압력에 허덕이는 조지 W 부시 정부에도 다시 없는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알카에다 조직의 결속력 약화를 불러와 이라크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기대도 있지만 비관론도 만만찮다. ●미·이라크·요르단 2주전부터 치밀한 합동작전 미군은 이라크 보안군이 주민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지난해 11월 67명의 사망자를 낸 암만 호텔 테러 이후 그의 검거에 전력을 기울여온 요르단군과의 합동 작전을 편 끝에 그를 살해할 수 있었다.2주 전부터 치밀한 공습 계획을 짠 미군은 바그다드 북동쪽 50㎞ 떨어진 바쿠바의 한 가옥에서 회의를 주재하던 알 자르카위에게 불의의 일격을 가했고 그는 10분 만에 절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오디오 성명만을 발표하던 알 자르카위는 지난 4월25일 처음으로 비디오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때부터 미군은 그의 행적을 면밀히 추적해 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사실 그는 미군의 체포 직전 수차례나 포위망을 빠져나가 ‘망령’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2004년 팔루자의 저항세력 은거지에 숨어 있다 이라크 보안군에 의해 체포됐으나 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틈을 타 달아났다. 지난해 5월에는 그의 조직이 웹사이트를 통해 그가 미국인과의 전투 도중 다쳤으며 해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며칠 뒤 그가 무사히 이라크에 돌아왔다는 성명이 발표됐다. 지난해 2월20일에는 미군이 바그다드 서부 유프라테스강 근처에서 그가 탄 차량을 정지시켰으나 운전사와 동료들이 체포되는 사이 그는 달아났고 컴퓨터만 압수됐다. 미군은 두 차례 팔루자에 대한 대규모 수색 작전을 폈지만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알카에다 타격 얼마나” 관측 엇갈려 알 자르카위가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충성을 서약한 것은 2004년의 일이다. 그 뒤 이라크 저항세력은 시리아 등을 통해 유입되는 알카에다 지원을 받아 더욱 극렬한 공격에 나섰고 종파 분쟁을 부채질했다. 따라서 그의 사망으로 당분간 이라크 저항세력의 알카에다 연결 고리는 위축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잘마이 칼릴자드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도 “큰 승리”라고 표현하며 저항세력 패퇴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이라크 새 정부가 서둘러 정파간 대립으로 비워뒀던 국방장관과 내무장관 후보를 서둘러 지명한 것도 그의 공백을 틈타 치안을 강화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라크의 종파 분쟁은 알 자르카위와 무관하게 존재해 왔다는 분석도 만만찮아 이라크 안정을 속단하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도 “이라크인들은 미국에 대해 좀더 인내해줄 것”을 요구했고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그의 죽음으로 유혈이 멈춰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낙관론을 경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지난해 말 그가 미군 공격으로 부상해 위독하다는 소문이 나돈 이후 후계구도를 미리 짜뒀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 BBC는 “이라크 알카에다는 원맨 밴드가 아니다.”라는 말로 함축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獨월드컵 방문 新나치 경계령

    월드컵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 독일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극우 신나치주의자 경계령이 내려졌다. 독일 내 아프리카인을 대변하는 아프리카협의회는 6월 월드컵을 앞두고 독일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공격이 예상되는 몇몇 우범지역에는 머물지 말라고 사전 경고하는 ‘방문 금지 구역’ 지도를 만들었다고 텔레그래프 인터넷판이 30일 보도했다. 아프리카협의회는 이 지도를 웹사이트에 올리는 한편 소책자로 만들어 독일을 찾는 아시아와 아프리카계 방문객 수천명에게 배포할 계획이다. 이 지도는 수도 베를린을 비롯해 브란덴부르크, 작센, 작센안할트 같은 옛 동독지역을 위험 지역으로 표시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 16일 에티오피아계 독일인이 포츠담의 한 버스정거장에서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맞아 혼수상태에 빠진 사건이 터진 후 소수민족 사회에 일고 있는 불안감을 반영하는 것이다.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기술자인 에르미아스 물루게타(36)는 두개골 골절에 두뇌 외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진 채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이 사건 후 독일 내 인종차별문제가 부각됐고, 정치인들의 대책을 요구하는 전국적인 시위가 잇따랐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116) 結草報恩(결초보은)

    儒林(564)에는 ‘結草報恩’(맺을 결/풀 초/갚을 보/은혜 은)이 나오는데,‘죽은 뒤에라도 恩惠(은혜)를 잊지 않고 갚음을 이르는 말’이다. ‘結’자는 意符(의부) ‘’(가는 실 멱)에 ‘吉’(길할 길)이 音符(음부)로 결합되어 ‘맺다’의 뜻을 나타냈다.用例(용례)로 ‘結社(결사: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단체를 조직함),結束(결속:한 덩어리가 되게 묶음) 등이 있다. ‘草’자는 풀이 자라는 모습을 그린 ‘艸’(초)로 쓰다가 音符인 ‘早’(새벽 조)를 덧붙였다. 본 뜻은 ‘풀’이고,‘거칠다’‘처음’의 뜻이 생겼다.‘三顧草廬(삼고초려: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참을성 있게 노력함),草野(초야:풀이 난 들이라는 뜻으로, 궁벽한 시골을 이르는 말)등에 쓰인다. ‘報’자는 죄인의 손이나 발에 채우던 形具(형구)를 뜻하는 ‘幸’(다행 행)과 꿇어앉은 죄인의 목을 손으로 누르는 형상으로 이루어졌다. 본 뜻은 ‘죄를 판정하다’이며,‘갚다’‘알리다’는 뜻이 생겨났다.‘朗報’(낭보:기쁜 기별이나 소식),‘報本反始’(조상의 은혜에 보답함) 등에 쓰인다. ‘恩’자는 ‘베풀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意符인 ‘心’(마음 심)과 音符의 ‘因’(인할 인)을 결합하였다.用例로는 ‘恩功(은공:은혜와 공로를 아울러 이르는 말),恩師(은사: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恩寵(은총:높은 사람에게서 받는 특별한 은혜와 사랑)’을 들 수 있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는 다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晋(진)의 위무자(魏武子)는 병이 들자, 아들 위과(魏顆)에게 妾室(첩실)을 改嫁(개가)시켜 殉死(순사)를 면케 해달라고 하였다. 위독한 지경에 이르러서는 여인을 殉死시켜 자신의 옆에 묻어달라고 하였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과는 ‘병이 위중하면 정신히 혼미하여 판단력이 흐려진다.’고 여겨 妾室을 改嫁시켰다. 훗날 진환공(秦桓公)이 晉을 침략하여 보씨(輔氏)의 領地(영지)에 駐屯(주둔)하였다. 위과(魏顆)는 晉의 장수로서 秦(진)과 일전을 벌여야 했다. 전략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에 한 노인이 나타나 풀을 잡아매어 놓았다. 두회가 탄 말은 거침없이 달려오다 여기에 걸려 곤두박질을 하였고, 이내 捕虜(포로)가 되었다. 그날 밤 꿈을 꾸고서야 그 노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改嫁를 허락하여 목숨을 살려주었던 여인의 아버지 亡魂(망혼)이었던 것이다. 최자(崔滋)의 補閑集(보한집)에는 주인의 은혜에 보답한 義狗(의구) 說話(설화)가 전한다. 김개인(金蓋仁)은 거령현(居寧縣) 사람으로, 개 한 마리를 길렀는데, 무척 귀여워하였다. 하루는 外出(외출)을 하자 개도 따라 나섰다. 주인이 술이 취해 길모퉁이에서 잠이 들었는데 火災(화재)가 발생하여 주인이 잠든 곳까지 번지자 개는 냇물에서 몸을 적셔 주인 곁을 연신 오가며 불길의 接近(접근)을 막았다. 불길이 멎어갈 무렵 개는 탈진하여 죽고 말았다. 김개인은 술에서 깨어 그간의 행적을 알고 몹시 안타까운 心情(심정)을 노래로 표현하였다. 그곳에 개의 무덤을 만들고 막대기를 꽂아두었더니 큰 나무로 자랐다. 이런 연유로 그곳의 地名(지명)을 오수(獒樹)라 하였다고 한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잠자던 세자매 괴한에 참변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주택에서 세 자매가 신원 미상 괴한의 습격을 받아 큰딸이 숨지고 2명이 중태에 빠졌다. 27일 오전 5시쯤 서울 관악구 봉천8동 김모(55)씨의 단독주택 2층 작은방에서 잠자던 김씨의 세 딸이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신음하고 있는 것을 아버지 김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큰딸(24)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고, 둘째(20)와 셋째딸(16)은 의식불명으로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아버지 김씨는 “작은 방에 불이 나서 열쇠를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세 딸 모두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고 이불에 불이 붙어 있었다.”고 말했다. 숨진 큰딸은 대학 졸업 뒤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둘째딸은 청각장애인이며 셋째딸은 중학생이다. 넷째딸과 막내아들은 다른 방에서 잠을 자, 참변을 면했다. 경찰은 곧바로 봉천동 치안센터에 수사본부를 꾸리고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도난당한 물건이 없고 자매들이 성폭행당한 흔적도 없는 것으로 미뤄 원한에 의한 범행 가능성 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토요영화]

    [토요영화]

    ●롤러볼(EBS 오후 11시30분) 절대 권력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는 SF 영화의 배경으로 많이 차용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 브러더가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해서 나타나기도 한다. 평화가 보장된 미래이나 그 대가로 인간은 자유 의지를 잃게 된다는 디스토피아적 비전이 많아 분위기는 당연히 암울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 나오는 신종 스포츠도 대중의 관심을 정치나 사회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일종의 우민화 도구이다. ‘밤의 열기 속으로’(1967),‘지붕 위의 바이올린’(1971),‘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73) 등으로 거장 반열에 오른 캐나다 출신 노만 주이슨 감독은 올해 여든 살로 신작 ‘빵과 튤립’을 준비하고 있다.‘롤러볼’은 2002년 존 맥티어넌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됐다. 두 영화를 비교해서 보는 것도 괜찮을 듯. 무려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놓여져 있으나 원작이 리메이크작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8년, 가까운 미래는 거대 기업의 지배로 전쟁과 가난이 사라진 사회다. 그 대가로 인간의 자유가 없어졌다. 이 사회에 새로운 스포츠 롤러볼이 등장한다. 롤러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나 모터사이클을 탄 선수들이 은색 공을 가지고 골을 넣는 경기이다. 잔인함과 폭력성이 내재된 운동으로 많은 인기를 얻는다. 소속팀을 연승으로 이끌던 롤러볼 스타 조너선(제임스 칸)은 기업으로부터 은퇴하라는 권유를 받지만 이를 거부하고 계속 경기에 출전한다. 롤러볼은 나날이 거칠어지고, 승리를 좇던 선수들은 하나둘씩 숨지게 된다. 스스로도 많은 경쟁선수를 죽이게 된 조너선은 삭막한 세상을 조종하는 중앙컴퓨터를 찾아 나서는데….1975년.125분. ●빅피쉬(캐치온 오후 1시40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탐을 냈던 프로젝트였다. 다니엘 월레스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가족애와 판타지, 감동이 춤을 추고 있는 작품이다. 팀 버튼 감독이 ‘혹성탈출’(2001)의 실패를 딛고 호평을 이끌어냈다.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앨버트 피니)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윌(빌리 크루덥)은 급하게 고향으로 돌아온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허풍쟁이로 유명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험담을 꺼내기 시작한다. 젊은 에드워드(이완 맥그리거)는 성장병으로 남보다 빨리 컸고, 만능 스포츠맨에 발명왕이자 해결사로 마을에서 유명인사였다. 큰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 에드워드는 거인, 늑대인간 서커스 단장, 샴 쌍둥이 자매, 괴짜 시인 등과 사귀며 모험과 로맨스를 겪었다고 주장하는데….2003년.125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알 자지라, 빈 라덴 육성 테이프 공개

    오사마 빈 라덴이 돌아왔다.2004년 12월 이후 종적을 감춰 사망설, 위독설이 나돌았지만 이를 비웃듯 1년 만에 건재를 드러냈다. 알 자지라 방송은 19일(현지시간) 알 카에다의 최고지도자 빈 라덴이 지난달 녹음한 오디오 테이프라면서 그의 육성을 전격 공개했다. 테이프 속 주인공은 “미 본토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9·11 이후 보안이 강화돼 공격 못한 것은 아니며 준비기간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재건을 위해 휴전하자고 제의했다. 이라크 철군 외 다른 휴전 조건은 제시하지 않은 채 “무슬림의 땅에서 싸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만 설명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미국이 아닌 ‘그들’의 땅에서 싸우는 게 낫다.”고 한 발언을 언급하면서 “수십억달러를 부시 정부와 연계된 ‘전쟁업자’에 쏟아붓는 것은 낭비기 때문에 (휴전은)부끄럽지 않다.”고 강조했다. ●CIA “빈 라덴 음성 맞다” 미국은 일단 테이프 속 목소리가 “빈 라덴 것이 맞다.”고 확인했다. 중앙정보국(CIA) 관계자는 분석경위는 밝히지 않은 채 “예전 것과 비교해 일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격 위협에 대해선 평가절하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대테러 관리들은 “공격이 임박했다는 어떤 특별하고 믿을 만한 정보는 없다.”면서 “공격 직전에 나타나는 테러리스트 간의 교신 급증도 없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보안등급도 상향 조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등 일부 도시는 공항과 항구, 에너지 시설 등에 폭발물 탐지활동을 강화했다. 미국은 휴전 제의도 일축했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알 카에다와 테러리스트들은 분명 도망치고 있다.”면서 “그 점이 테러와의 전쟁을 멈출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딕 체니 부통령도 폭스뉴스에 나와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지 않는다.”며 이라크 철군 요구를 거부했다. ●“건재 과시해 추종자 동요 막기” 빈 라덴의 목소리가 지쳐 보이는데다 실내에서 녹음된 흔적인 ‘울림(echo)’은 과거 야외에서 정열적으로 외쳤던 것과 대조된다. 그러나 “메시지를 녹음하고 방송할 수 있다는 점은 그의 승리를 의미한다.”고 뉴욕타임스는 아랍계 전문가의 분석을 전했다. 며칠 전 파키스탄에서 2인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의 조카 등 알 카에다 지도자 4명이 미군 폭격으로 숨진 뒤여서 추종자들에게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면서 동요를 막으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씨줄날줄] 샤론 총리/이목희 논설위원

    일부 역사학자들은 유대인과 아랍인의 조상이 같다고 말한다.BC 20세기경 메소포타미아의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나 지금의 이스라엘땅 가나안으로 이주한 아브라함은 나이가 들어 후손을 보았다.86세에 여종 하갈을 취해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이고,100세에 본처 사라를 통해 이삭을 얻었다. 본처 소생이 태어나자 이스마엘은 집을 떠나 아랍인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삭은 유대인 계보를 이어갔다. 아브라함 이래 4000여년에 걸쳐 가나안땅을 차지하기 위해 이삭의 자손과 이스마엘의 자손은 피튀기는 싸움을 벌였다. 모세·여호수아에서 다윗·솔로몬을 거치면서 기원전 시대에는 유대인의 우위였다. 로마가 유대왕국을 멸망시킨 뒤에는 아랍계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2000년 동안 그 땅의 주인이었다.2차대전 후 미국·영국은 유대인에 의한 이스라엘 건국을 지원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으로 쫓겨갔다. 지난 60년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대치 지역은 지구촌의 화약고였다. 대표적인 것이 1967년 6일 전쟁. 이스라엘이 기습공격으로 아랍권을 초토화시켰다. 이스라엘의 전쟁영웅은 애꾸눈 국방장관 모세 다얀과 시나이반도 진격을 진두지휘한 기갑사단장 아리엘 샤론. 샤론은 1981년 국방장관을 맡아 레바논내 팔레스타인 난민촌 학살사건을 주도, 강경파로 악명을 날렸다. 2001년 총리 취임 직후까지 샤론의 모토는 ‘유대인의 영토 극대화’. 그러나 최고지도자 반열에서 바라본 국제질서는 냉엄했다.‘지역안보와 평화정착’이라는 실용노선을 택하면서 그는 미래 지도자로서 면모를 가꿔나갔다. 국내의 강력한 반발을 누르고 가자지구에서 유대인 정착촌을 강제철거했다. 샤론 총리가 뇌출혈로 위독한 상태에 빠지자 중동평화에 다시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이스라엘 총선에서 협상파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팔레스타인쪽도 덩달아 온건파의 몰락이 우려된다. 하지만 역사의 큰 방향은 순리대로 흘러갈 것으로 기대한다. 강경파 샤론이 ‘더불어 살자’는 실리노선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변하지 않고 있다. 평화공존을 위해 4000년을 기다려왔는데, 시일이 좀더 걸린다고 낙담할 일은 아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현명한 선택이 있도록 세계가 도와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샤론 혼수상태… 산소호흡기에 달린 중동평화

    샤론 혼수상태… 산소호흡기에 달린 중동평화

    유대인 정착촌 철수, 집권당 탈당 등 정치 생명을 건 ‘뚝심’을 발휘하던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4일 밤(현지시간) 뇌출혈로 쓰러졌다. 총리실은 “에후드 올메르트 부총리가 총리권한을 대행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올메르트 부총리는 5일 오전 비상 각료회의를 주재하면서 이후 정국변화에 대비했다. 세계의 눈은 ‘샤론없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향해 집중되고 있다. 그의 퇴장은 이스라엘 정계뿐 아니라 현재의 중동 정세에 불가피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샤론 총리는 4일 오후 11시쯤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에 있는 자신의 목장에서 대뇌에 다량의 출혈이 발생, 예루살렘 하다사 병원으로 이송됐다.7시간의 대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생명에 지장이 없더라도 정치적 생명은 사실상 끝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하사다 병원의 숄로모 모르 요세프 박사는 “총리는 위독하긴 하지만 안정된 상태”라며 향후 24시간은 ‘깊은 혼수상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뇌출혈은 신당 카디마당의 총선작업을 지휘하다 축적된 과로 탓으로 알려졌다. 강경파의 상징이던 샤론은 지난해 9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해체를 조건으로 독립을 제안한다.”는 승부수를 던지며 실용주의 노선으로 선회했다.11월엔 이·팔 평화 정착을 목표로 리쿠드당을 탈당, 카디마당을 창당했고 여기에 노동당의 온건파인 시몬 페레스 전 총리가 가세했다.3월 총선에서 극우 강경파인 리쿠드당을 누르고 평화 노선을 강력히 추진한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구심점을 잃은 카디마당은 존립조차 불확실해졌다. 샤론의 부재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평화 로드맵’은 긴 동면(冬眠)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설령 그가 복귀해도 협상을 강력히 밀고나갈 리더십의 균열은 메우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중동 ‘강경파’득세 우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강경파 출현의 가능성이 높아져 중동의 긴장도 커지고 있다. 강력한 경쟁자가 사라진 네타냐후 전 총리의 재집권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팔레스타인도 최근 지방의회 선거에서 과격 무장단체 하마스가 자치정부 수반인 마무드 아바스의 파타당을 눌렀다. 오는 25일로 예정된 팔레스타인 총선도 불투명해졌다. 최대 선거 쟁점으로 떠오른 동예루살렘 거주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투표 문제가 미처 해결되지 않은 탓이다. 영국의 BBC는 “불투명한 이스라엘의 미래와 정치적 혼란을 틈탄 이슬람 무장단체의 부상이 중동 전체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팔 급진파 “샤론 중태 신의 축복” 샤론 총리의 위중한 건강상태가 알려지자 각국의 움직임도 급박하게 돌아갔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샤론 총리를 “용기와 평화의 남자”라고 치켜세운 뒤 빠른 회복을 기원했다.7일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방문, 양국 정상과 회담을 가질 계획이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중동방문 계획을 전격 철회했다. 하지만 급진적인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위기에 처한 샤론의 건강 상태는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비아냥댔다. 팔레스타인 해방대중전선 지도자인 아흐메드 지브릴은 “신은 위대하며 학살자에게 정확히 복수를 하신다. 새해 선물을 주신 신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밝혔다. 안동환 윤창수기자 sunstory@seoul.co.kr
  • 美 매몰광부 11명 사망

    3일(현지시간) 한때 매몰된 광부 12명의 생존 소식이 전해졌던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톨먼스빌 탄광에서 이들 광원 12명 중 1명만 구조되고 11명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그러나 구조된 1명 역시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지난 1일 폭발 사고로 광부들이 매몰된 지 41시간만인 이날 오후 한 구조팀 관계자가 광부 12명이 모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전했지만, 이는 구조본부와 교신 과정에서 빚어진 오해로 뒤늦게 확인됐다. 사망 원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 CNN 등은 생존 소식이 전해져 잠시 환호했던 유족들이 3시간만에 사랑하는 가족의 생사가 뒤바뀌자 탄광회사들을 “위선자” “거짓말쟁이”라고 규탄했다고 전했다.워싱턴 DPA 연합뉴스
  • 儒林(498)-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0)

    儒林(498)-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0)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20) 성혼이 살고 있었던 곳은 파주의 우계(牛溪). 따라서 성혼의 호는 우계였고, 사람들은 그를 ‘우계선생’이라고 불렀다. 아버지가 병으로 위독하자 자기 다리의 살을 베어 약에 넣어 드시게 하는 등 극진한 효성을 보였으며, 어릴 때부터 여러 경사(經史)에 널리 통하였고, 행의(行義)로도 이름이 났다.10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남다른 노력으로 학문의 성취가 뛰어났으며, 한때 조광조의 문인이었던 백인걸(白仁傑)로부터 상서(尙書)를 배우기도 했던 성혼. 율곡은 사람과의 사귐이 괜찮은 편이었으면서도 너그럽지 못하고, 남의 단점을 잘 밝히고, 이를 쉽게 용납하지 못하는 까다로운 성격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율곡은 원만한 교우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는데, 유독 성혼과는 평생 동안 우정을 쌓고 지켜나갔다. 이러한 모습은 43세 되던 해 겨울, 율곡이 문득 총죽지우(蔥竹之友)였던 성혼이 보고 싶어 온 강산에 눈이 잔뜩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소를 타고 성혼을 찾아간 장면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율곡은 평소에 성혼을 높게 평가하여 ‘의리상 분명한 것은 내가 훌륭하지만 실천에 있어서는 감히 미치지 못한다.’고 성혼을 칭송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율곡이 총명하여 학문적 재능에서는 성혼보다 뛰어나지만 조심스럽고 행동이 돈독하여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기는 믿음에 있어서는 성혼이 한수 위임을 인정하고 마음속 깊이 존경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짚방석을 깔고 앉아 너울거리는 등잔불 아래서 긴긴 겨울밤을 함께 담소하면서 지새웠다고 전해질만큼 우정이 돈독하였던 것이다. 이때 지은 율곡의 시 한수가 오늘날까지 남아 전하고 있다. 시제는 ‘눈 속을 소를 타고 호원(浩原)을 만났다 이별하며(雪中騎牛訪浩原敍別)’. 시제에 나오는 ‘호원’은 성혼의 자로 성혼을 가리키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올해도 다 저물어서 눈이 산에 가득한데, 들길은 가늘게 고목나무 사이로 뚫렸구나. 소를 타고 어깨가 으쓱하여 어디로 가느냐,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러 우계로 찾아가네. 저물게 사립문을 두드리고 들어서서 청초히 여윈 얼굴을 바라보며 읍(揖)을 하니, 작은 방 무명옷에 짚방석을 깔았구나. 고요하고 긴긴 밤에 잠 안 자고 앉았으니, 벽에 걸린 등잔불이 깜박거리네. 반평생에 이별의 슬픔이 많았으니, 다시금 세상길이 험한 것을 생각하게 되는구료. 이런 말 저런 말(談餘輾轉)에 새벽 닭이 울었는데, 창 앞에 달빛이 환하게 들었구나.” 두 사람 다 건강이 좋지 않은 편이었으나 그래도 비교적 율곡이 더 나았는데, 그래서 율곡은 평소 성혼의 건강을 걱정해 주었고, 자기보다 성혼이 먼저 세상을 떠날까 걱정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은 오히려 율곡. 성혼은 율곡보다 14년이나 더 살면서 임진왜란까지 겪는다. 죽을 때까지 율곡을 잊지 못해 성혼은 해마다 그의 기일이 되면 흰 소복을 입고 율곡의 인품과 우정을 생각하며 슬픔에 젖곤 했다고 한다.
  • [깔깔깔]

    ●백수생활-3*영화 초급:백수라는 사실을 잊은 채,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할 때 주위에서 자금을 조달해서 보러 간다. 중급:극장은 부르주아들을 위한 곳이라 치부하고 비디오로 영화들을 탐독한다. 비디오가게 아저씨가 이젠 반액 세일해 준단다. 고급:각종 영화사이트와 영화 동호회 등을 뒤적여서 무료 시사회로 영화를 본다.*용돈 초급:어쩌다가 가끔 부모님께서 용돈을 주신다. 중급:부모님이 용돈은 절대 안주시니까 각종 거짓말로 뜯어내기 시작한다. 연기력이 매우 향상된다. 그리고 친구들이 하나둘씩 위독해지기 시작한다. 가끔 심부름시키면 그대로 튀어버린다. 고급:실직자 재취업교육에 가서 교통비를 받아 사용한다. 교육받을 땐 잠만 퍼 잔다.
  • 지율, 스러지나

    지율, 스러지나

    지난 5년간 ‘천성산 지킴이’ 역할을 해온 지율 스님이 거듭된 단식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불교환경연대 정성운 사무처장은 9일 “지율 스님이 80여일째 단식 중”이라면서 “이번까지 총 5차례에 걸친 단식으로 건강이 매우 위독하다.”고 밝혔다. 그는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현재 콩팥이 거의 기능을 멈춘 상태”라면서 “이렇게 되면 다른 장기에도 연쇄적으로 나쁜 영향이 미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지율 스님은 최근 6일간 경기도 여주 신륵사에 머물며 건강진단을 받았으며 8일 여동생이 사는 충북 충주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지율 스님은 경부고속철도 경남 양산 천성산터널 공사 중지를 요구하며 지난해 10월부터 올 2월까지 100일 단식을 비롯,2003년부터 이미 4차례의 단식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단식을 벌였던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은거에 들어간 채 곡기(穀氣)를 끊고 있는 상태다. 지율 스님은 천성산터널 공사 과정에서 업무방해 혐의로 시공사로부터 고소돼 울산지법으로부터 구금영장을 발부받은 상태이며, 천성산터널 발파공사는 지난 8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진행된 ‘민간합동 환경영향조사’가 끝나면서 재개됐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교보생명-故신용호 창립자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교보생명-故신용호 창립자家

    “이 사통팔달, 한국 제일의 목에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줍시다.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이곳에 와서 책을 서서 보려면 서서 보고, 기대서 보려면 기대서 보고, 앉아서 보려면 앉아서 보고, 베껴 가려면 베껴 가고, 반나절 보고 가려면 반나절 보고, 하루종일 보고 싶으면 하루종일 보고, 그리고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고 사지 않아도 되고, 사고 싶으면 사 들고 가도 좋습니다.”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는 ‘대산(大山) 신용호’라는 평전에서 당시 세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금싸라기 땅인 종로 1가 1번지 교보빌딩 지하에 교보문고를 세운 일에 대해 이같은 논리로 동의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한국의 미래를 모토로 만든 교육보험에도 청소년들의 지적 수준과 나라의 성장은 비례한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 창업 이념도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이다. ●독립운동 집안에서 태어난 다섯째 아들 신 창립자는 1917년 8월 전남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솔안 마을에서 부친 신예범 선생과 모친 유매순 여사의 6남 중 5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며 잦은 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가장 노릇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곱살 때는 폐병에 걸려 죽는다는 선고도 받았다. 열살 즈음 병이 나았지만 학교를 가진 못했다. 형편이 어려운 데다 형들이 각종 애국 운동으로 집안을 돌보지 않아 어린 마음에도 그가 살림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낮에는 밭에서 일하는 대신 ‘책속에 길이 있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밤에는 책을 읽었다. 동생의 책은 물론 주변에 보이는 책은 닥치는 대로 가져다 보았다. 겨울엔 잠과 싸우기 위해 방에 불도 때지 않고 책을 읽다 동상에 걸리기 일쑤였다. 당시 ‘천일독서’를 목표로 각종 위인전, 철학서, 고전, 사서를 섭렵했다. 비록 학교 문턱에는 가지 못했지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독서철학으로 스스로 내실을 다졌다. 함께 교보생명 창업을 도운 막내 동생 신용희(83) 전 회장을 제외하고 다른 형제들은 대부분 애국운동에 몸담았다. 큰형인 고 신용국옹은 일제시대에 항일운동을, 광복 후에는 청년 노동운동을 했다. 그 큰아들인 신동재씨가 2000년까지 교보의 부동산관리 전문 자회사인 교보리얼코의 회장을 지냈다. 둘째 형 고 신용율씨도 항일운동에 몸담았으며, 그의 둘째 아들 신평재(67)씨가 현재 교보생명 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일은행 상무로 재직하다 1991년 제의를 받고 교보생명 사장 등을 역임했다. 셋째 형 신용원옹은 도쿄 음악학교를 졸업한 뒤 항일음악가로 활동하다 납북했다. 넷째 형 고 신용복옹은 일제 당시 조선생명지사장을 지냈다. 막내 동생 신용희 전 회장은 목포상고를 나와 산업은행에서 일하다 한국전쟁 이후 줄곧 신 창립자를 도와 함께 일했다.1967년 교보생명 창립 이후에는 30년간 교보에 몸담으며 부사장, 회장 등을 지냈다. 그의 아들인 신인재(39) 보드웰 인베스트먼트 사장(8%)과 함께 교보생명 지분을 13.25% 갖고 있다. 신 사장은 고 신 창립자로부터 경영권을 승계받은 큰아들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신 사장은 최근 이동통신사에 솔루션을 공급하는 코스닥 상장업체 무선인터넷솔루션 회사인 필링크의 대표이사 직함도 얻게 됐다. ●교육열을 사업으로 연결한 기지…교육보험의 탄생 문학가를 꿈꿨지만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사업에 뜻을 세웠다. 약관이 되던 해에 서울로 갔고 이어 1936년 중국에서 양곡 수송 사업을 벌였지만 광복과 함께 10년간 닦은 기반을 버리고 빈손으로 귀국했다.1946년. 귀국후 첫 사업으로 전북 군산에 ‘민주문화사’란 출판사를 냈으나 외상 책값이 회수되지 않아 간판을 내렸다. 그렇게 몇 차례 사업에 실패한 뒤 문득 중국에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논 한 뙈기 없어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강한 교육열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무형원자재인 것이다.‘생·로·병·사’중 유일하게 보험이 빠져 있는 ‘생’ 부문에 교육보험을 끼워넣어 상품화하기로 했다. 당시 보험에 대한 인식은 형편 없었다. 일제시대 보험은 수탈 방식이자 보신(保身) 방편이었다. 더욱이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도 미치지 못해 보험에 들 여유가 없었다.1954년 정부가 보험업을 재개시켰으나 기존 생명보험 회사들이 대부분 휴면상태에 있을 만큼 보험업은 쑥대밭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험난해서인지 국민의 80%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그의 재기가 번뜩였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찾아가 “담배를 끊고 그 돈으로 보험을 들면 아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설득한 것이다. 창업 당시에는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넣지 못했다.1958년 종로1가 60번지 2층짜리 건물에서 직원 46명과 함께 먼저 ‘태양생명보험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교육보험이란 업종상 생명보험으로 분류돼 상호에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넣을 수 없었다. 교육열을 자원으로 만든 상품이었고 당시 생명보험에 대한 인식도 열악해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포기하지 않았다.1958년 1월 창업한 뒤 관계 공무원을 끊임없이 설득, 같은 해 7월 상호변경 승인을 얻어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을 출범시켰다. ●슬하 2남2녀의 혼맥 1943년. 중국에서 한창 양곡수송 사업을 크게 벌이던 신 창립자는 당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급히 귀국했다. 도착해 보니 아버지는 건강한 모습으로 그를 맞아주셨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일 모레가 네 장가가는 날이다.”는 아버지의 한마디. 결혼을 시키려고 거짓 소식을 보낸 것이다. 당시 남자 26세는 혼기를 놓친 나이였지만 그는 벌인 사업 때문에 아직 결혼할 때가 아니라고 여겼다. 도망칠 마음까지 먹었다고 고백하며 배려를 바랐으나 아버지가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눕는 바람에 결혼식을 치렀다. 부인 유순이(81)씨는 당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2년제 전수학교까지 마친 명문가 출신 규수. 사업에 전력을 쏟느라 가정에 소홀했던 남편을 탓하지 않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 묵묵히 2남2녀를 길러냈다. 자녀들의 혼사도 그와 비슷하다. 막내 아들을 제외하고 모두 중매 결혼이다. 명문 대가와의 정략 결혼은 눈에 띄지 않는다. 큰딸 신영애(56)씨는 전 서울대학교 의과대 의학과 마취과학교실 교수 함병문(58)씨와의 사이에 현진(32), 지훈(31), 세훈(25) 등 2남 1녀를 두었다. 신영애씨는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지분 평가로 지난 2004년부터 단번에 350억원대 자산을 보유, 연말마다 언론에서 선정하는 여성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둘째 딸 신경애(54)씨는 법조인에게 시집가 1남1녀를 낳았다. 남편 박용상(61)씨는 서울대 법대에서 박사까지 마친 뒤 사법시험에 합격,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 활약한 뒤 방송위원회 위원,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국회 공직자윤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변호사박용상법률사무소를 운영중이다. 박용상씨의 큰형 용설씨는 내외빌딩관리㈜ 대표, 동생 용삼씨는 내외엔지니어링 대표다. 고 신 창립자의 자리를 이어받은 큰 아들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은 부인 정혜원(48) 봄빛여성재단 이사장과의 사이에 중하(24)·중현(22)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인 신 회장은 불혹이던 지난 1993년 교보에 발을 들여놓은 뒤 현재 직계 중 유일하게 교보에서 일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왔다. 막내 신문재(44)씨는 이정숙(44)씨와의 사이에 딸 혜진(18)을 두고 있다. 형제들 중 유일한 연애 결혼이다. 미국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1991년부터 2005년 8월까지 광화문 교보문고내 문구 액세서리 음반 팬시용품 등을 판매하는 400여평 매장의 문보장을 비롯해 전국 6개 교보문보장을 운영해 왔다. 교보문고가 직접 문보장을 운영하기 위해 신씨로부터 지난 8월 문보장 사업권을 회수했다. 현재 새 사업을 구상중이다. ●지독한 완벽주의와 파격 인사 고 신용호 창립자는 지독하다 싶을 만큼 완벽하고 집요하다는 평을 받는다. 땅을 고를 때도 좋은 날, 궂은 날, 비온 다음날 등 두루 살피는 완벽주의자다.77년 명예회장,85년 창립자 등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1990년대 후반까지 신입사원 면접에 직접 들어왔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나도 실적이 저조해 본사 부장, 실장, 중역까지 나서 손을 들라고 권하자 그들을 나가게 한 뒤 ‘급료는 후불로 주겠다.’는 광고를 통해 간부 사원을 다시 구한 일화는 아직도 회자된다. 창업 10년 만인 1967년 회장으로 물러난 뒤 2000년 아들 신창재씨가 교보생명 회장에 취임하기까지 33년간 무려 사장이 19번이나 바뀌었다. 평균 수명이 1.7년이었다. 경영 안정을 위해 최고경영진을 쉽게 바꾸지 않는 업계의 관행과는 다른 것이다. 교보의 임원 인사는 상식을 뛰어넘어 기발하고 파격적이란 평이 나오는 이유다. 신창재 회장의 인사 스타일도 재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02년 5월 취임한 장형덕 대표이사 사장의 경우 사장직을 폐지하는 형식으로 취임 10개월 만에 퇴임시켰다. 단일 지도체제가 더 효과적이라며 사장을 없애고 대신 부사장 3명을 임명해 집단경영체제로 개편했던 것. 그때부터 ‘대표이사 회장’ 밑에 ‘대표이사 사장’ 없이 ‘대표이사 부사장’ 체제로 가고 있다. 이어 지난 2004년 2월 박성규 부사장을 선임,‘집단경영체제’는 다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맨손으로 생나무를 뚫어라’ 고 신용호 창립자는 ‘죽고 나면 손해’란 보험에 대한 당시 인식을 바꾸는데 초점을 맞춰 교육보험 1호인 ‘진학보험’을 세계 처음 내놓았다. 죽어야 혜택을 주는 게 아니라 부모가 돈을 적립해 자녀가 초·중·고등학교를 진학할 때마다 학자금을 주는 상품이다. 먼저 단체들을 공략했다. 군인 단체 저축성 보험인 일명 ‘화랑계약’을 고안했다. 잦은 군의 이동에 탈락계약이 늘어 성과는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군 이동에도 추적·관리되는 시스템을 도입,1967년 육군과 170억원의 단체 계약을 맺었다. 파죽지세로 해군·한전 등 대형 단체들과 꾸준히 계약하는 개가를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판매 창구도 강화했다. 종로기독청년회관(YMCA)에서 대학생을 모아 보험강좌를 실시한 것을 계기로 대학지부를 설치, 대학생도 판매 채널로 끌어들였다. 지방유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기관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상품에도 그의 기지가 엿보인다. 암 상품은 그가 처음 개발했다.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성인병도 하나씩 보험상품으로 만들었다. 보험업계 전산화 발상을 추진한 최초의 인물도 바로 그였다.1974년 학자금 선지급 업무를 처음 전산화했고 “컴퓨터를 모르면 간부가 될 수 없다.”며 전 사원을 상대로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인증제’도 실시했다. 그가 인생을 이야기할 때 전반은 ‘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는 과정’이고 후반은 ‘생나무 뚫는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인 과정’이라 비유했다. 인생은 장애의 연속이지만 강한 정신력만 있다면 아무리 높고 힘든 목표라도 달성할 수 있다는 게 그만의 철학이다. 이같은 열성과 집념으로 1958년 당시 6대 생보사 중 막둥이로 태어난 교보생명은 창립 5년 만에 보유계약 56억원으로 업계 3위,1964년엔 보유계약 100억원 돌파로 업계 2위에 오른 뒤 1967년 설립 9년 만에 업계 정상에 섰다.‘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은’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인생의 다른 한 축…교보문고 교육 보험은 대세가 아니었다.80년 들어 경제성장과 함께 늘어나는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시절이 오면서 보험만으로 교육비를 해결할 수 없게 됐다. 변하는 고객 욕구에 따라 양로보험, 종합보장생활보험 등 일반 생명보험 상품의 비중이 커졌다. 교육보험만으로 경쟁력이 떨어지자 1995년 ‘교보생명’으로 사명을 바꾸었다. 삼성생명의 약진으로 교보는 1974년부터 업계 1위에서 2위로 밀려났다. 자산이 늘어나면서 관련 계열사도 속속 설립했으나 모두 보험으로 맡긴 고객의 돈을 운용하기 위한 금융 계열사였다. 부동산관리 전문회사인 교보리얼코(1979), 교보증권(1994) 등 총 9개 자회사를 세우면서 교보를 오늘날 35조원 규모의 금융 자본으로 성장시켰다. 그 중 금융과 동떨어진 업종이 하나 있다. 바로 교보문고(1980)다. 교육을 통한 민족부흥을 창업 이념으로 삼고 있는 만큼 따지고 보면 업종의 본질은 같다는 설명이다. 1980년 종로 1가 1번지에 사옥 교보빌딩이 세워지자 그는 지하에 서점 설립을 제안했다. 온갖 연줄을 동원하며 지하아케이드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던 때였다. 간부들은 채산성이 약하다며 서점이 들어서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냈고, 손해가 나면 보험회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당시 허가관청인 재무부도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 회사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다면 이 자리에는 당연히 으리으리한 고급상가를 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값진 땅에 책방을 크게 열어 청소년과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토록 한다면 그 효과가 어느 정도나 될지 상상해 보시오.” 손해가 나더라도 청소년의 정신역량을 키우는 일인 만큼 자신이 떠맡겠다고 설득했다.1985년에는 일반 독자뿐 아니라 학자들을 위해 80만종의 세계 논문도 공급했다. 지방사옥이 세워질 때마다 학생과 시민들이 교보문고 지점 설치를 요구했을 정도다. 대전, 성남, 대구, 부산, 부천, 강남 등에 속속 지점을 열었다.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를 찾는 고객 수는 일평균 4만 5000여명, 연간 1500만명에 달한다. 삶의 두 축이 교보생명과 교보문고라고 지적했을 정도로 애착도 컸다. 그러나 말년을 맞아 또다시 병마가 찾아 왔다.77세가 되던 1993년. 회사 정기건강 검진에서 간 기능에 석연치 않은 증후가 발견됐다. 담도암이었다. 의사들은 그에게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기운 있을 때 여행을 다녀오라는 처방을 내렸다. 사형 선고였던 셈이다. 그는 암과 싸우며 여생을 보내느니 살든 죽든 결판을 내겠다고 마음먹고 불가능하다는 담도암 수술을 감행했다. 수술후 그는 중환자실에서 목에 구멍을 뚫고 2개월이나 암흑 속에서 지내야 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뒤 재활물리치료 반년 만에 골프장에 다시 나갈 수 있었다. 근력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90년대 후반까지 업무를 보고받는 등 경영에 관여했다. 그러나 8년 뒤 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몸이 약해졌다. 결국 2003년 9월 19일 오후 6시1분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86세였다. jhj@seoul.co.kr ■ 신창재회장과 정혜원 여사 “내조만 하며 살아온 탓에 사회공헌 사업은 꿈도 꿔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제의로 사회공헌 사업을 시작하게 됐지요. 내조와 아이들 뒷바라지에도 벅차지만 소명으로 여기며 열심히 하고 있어요.”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의 부인 정혜원(48)씨는 요즘 사회활동에 바쁘다. 그는 남편과 두 아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해온 전업 주부였다. 남편 신 회장으로부터 사회공헌 사업을 해보라는 제의를 받고 2004년 4월 성매매 피해여성 보호단체를 지원하는 봄빛여성재단을 창립,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순전히 남편 신 회장의 사재로 시작한 사회공헌 사업이다. 서울 종로구 적선동 사무실로 매일 출근하면서도 아이들이 완전히 홀로서기할 때까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며 걱정이 많다. 그는 한사코 취재를 거부했다. 사회 활동은 하고 있지만 언론 대응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인 그는 소탈하면서도 적극적인 성격으로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을 받는다. 중매를 통해 남편을 만났다고 밝혔다. 평범한 집안에서 데려온 며느리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고 신용호 창립자의 수수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남편 신 회장이 양복도 맞추러 갈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다고 했다. 실제로 신 회장은 아버지의 유업인 교보문고와 교보생명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아버지만큼 골프를 좋아하지만 교보로 옮긴 이후 거의 필드에 나가지 못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교보생명은 지난 2000년 5월 신 회장 취임과 함께 ‘질´경쟁을 선언하면서 업계 2위에서 3위로 밀려난 뒤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교보문고는 교보생명이 증자해 전자책 등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지식문화 전문회사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포부다. 출판업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하다 보니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교보문고는 현재 부채비율이 416%로 은행으로부터 신규 여신이 어려운 처지다. 교보생명은 기존 주주가 여력이 없어 제3자 배정 방식으로 5000억원을 증자할 계획이다. 다른 생보사보다 상대적으로 지급여력비율(160%)이 낮다. 자기자본 확대가 이유다. 그러나 2대 주주인 자산관리공사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문제다. 자산관리공사 소유·관리지분(41.26%)의 가치가 희석되지 않는 상태에서 잘 팔릴 수 있도록 협조해야 증자에 동의한다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업계는 신 회장이 과연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교보생명의 한 임원은 신 회장에 대해 “아버지를 닮은 완벽주의자”라고 말했다. 경기고, 서울대 의대를 나와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로 살아오다 불혹이던 지난 1993년 아버지 고 신용호 창립자의 뜻에 따라 그간 배운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으로 교보생명에 발을 들여놓았다.1996년 11월 교보생명 부회장,2000년 5월 교보생명 회장으로 취임한 뒤 변화와 혁신을 기치로 삼고 전력 질주 중이다. 박성규 교보생명 부사장은 “과연 의사 출신이 기업을 어떻게 경영할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를 보면 답이 나온다.”고 전했다. 의사 출신답게 깊은 통찰력과 분석력을 갖춘 데다 책을 많이 읽는 덕분에 멀리, 넓게 보는 안목이 있다고 평가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儒林(488)-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0)

    儒林(488)-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0)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10) 이해 봄 율곡의 가족은 수진방에서 삼천동 새집으로 이사하였는데, 바로 이 집에서 신사임당은 병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병이 든 지 2,3일이 되어도 차도가 없자 신사임당은 집을 지키는 아들 번( )과 우(瑀)를 불러 ‘나는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이다.’라면서 유언을 남긴다. 임종 하루 전인 5월16일 밤에는 병세가 갑자기 호전되는 듯하여 주위사람 모두가 안심하였는데, 이튿날 새벽에 갑자기 신사임당은 눈을 감았던 것이다. 이때 율곡의 일행은 서강 나루터를 향해 오고 있었으니, 며칠만 일찍 율곡이 돌아왔더라도 어머니와의 상면은 이루어졌을 것이고, 임종도 지킬 수가 있었을 것이다. 이미 5살 때 어머니가 병으로 위독하자 남몰래 외할아버지 신명화의 사당에 들어가 효성껏 기도하여 낫게 하였던 율곡이 아니었던가. 율곡의 인격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고 학문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어머니 신사임당에 대해서 율곡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행장’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어머니의 이름은 모(某)로 진사 신공(신명화를 가리킴)의 둘째딸이다. 어렸을 때부터 경전에 통하였고, 그림도 잘 지었으며, 글씨도 잘 썼다. 또한 바느질도 잘하고 수놓기까지 정교하지 않음이 없었다. 게다가 천성이 온화하고 얌전하였으며, 지조가 정결하였고 행동이 조용하였으며, 일을 처리하는데 편안하고 자상하였다. 말이 적고 행실을 삼가고 또 겸손하였으므로 신공이 사랑하고 아꼈다.” 율곡의 행장은 사실이었다. 아버지 신공은 유독 둘째딸인 신사임당을 사랑하여 출가시킨 후에도 자신의 곁에서 떠나보내지 않으려 했을 정도였다. 심지어 신명화는 자신의 사위였던 이원수에게 ‘다른 딸들은 시집을 가 집을 떠나더라도 특별히 연연해하지 않겠으나 자네 처만은 내 곁에서 떠나보낼 수가 없다.’고 하여 강릉 오죽헌에서 처가살이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율곡이 6살 때까지 오죽헌에서 생장하였던 것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며, 마침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신사임당은 서울의 시가에 와서도 친정어머니인 이씨를 잊지 못하여 ‘밤이면 밤마다 달을 향해 기도하옵나니, 원컨대 생전에 어머님을 만나 뵈옵기를’이라는 시를 읊조리며 밤마다 눈물로 베개를 적시기 일쑤였던 것이다. 이러한 어머니에 대해 율곡은 다음과 같이 행장을 이어가고 있다. “17일 새벽 갑자기 작고하시니, 향년 48세였다.…어머니는 평소에 묵화를 그리는 재주가 뛰어났는데 7세 때에 벌써 안견(安堅)의 그림을 모방하여 산수도를 그린 것이 아주 절묘하다.” 율곡의 표현처럼 신사임당이 7세에 벌써 안견의 그림을 모방하여 산수화를 그릴 정도로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다면 율곡의 뛰어난 천재성은 바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요소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 신사임당이 죽자 뜻하지 않았던 비극이 시작되었다. 신사임당은 생전에 남편에게 자신이 죽더라도 재혼을 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는데, 이것이 신사임당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율곡의 아버지는 상처를 한 뒤에도 정실의 후취부인을 맞이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율곡에게는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 이스라엘 또 폭탄테러

    이스라엘 중부 해안도시 하데라의 노천시장에서 26일 팔레스타인인에 의한 소행으로 추정되는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 최소 4명이 숨지고 30여명이 크게 다쳤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경찰은 중상자 가운데 5명은 생명이 위독한 상태라고 전해 희생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목격자들은 팔레스타인인으로 짐작되는 한 남성이 하데라의 유대인 거주지역 시장의 식품 판매대 옆에 서있다가 폭탄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당시 현장 주변에는 시장 가게로 들어가기 위해 많은 인파들이 비좁은 통로에 몰려 있었다고 이스라엘 라디오는 전했다. 사건 직후 가자지구의 이슬라믹 지하드 조직이 이번 사건은 자신들이 저지른 것이며 팔레스타인 전사를 무참히 살해한 데 대한 보복이라고 전화 인터뷰에서 주장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지난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철수하자 양측의 평화 분위기가 고조돼왔다. 실제로 이번 폭탄테러는 지난 8월 중순 이후 거의 두달만에 일어난 것이다. 이날 폭탄테러는 특히 같은 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시온주의자 없는 세계’란 제목의 회의에서 4000여명의 대학생들에게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은 지도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전례없이 강한 톤으로 규탄한 것과 연관있지 않느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시온주의 정권 수립은 세계의 압제자들에 의한 반(反) 이슬람 조치였다.”며 “팔레스타인들이 결국 이스라엘을 망가뜨릴 것”이라고 강조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이회창 前총재 모친상… 각계 조문 줄이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모친 김사순 여사가 24일 새벽 0시15분 95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정계, 법조계, 종교계 등 각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오전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빈소에 조화를 보낸 데 이어 오후 이병완 비서실장을 통해 이 전 총재와 유족들을 위로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10·26 재선거 지원유세를 위해 울산으로 내려가기에 앞서 오전 11시50분쯤 한나라당 대권 예비주자 중 가장 먼저 조문했다. 박 대표는 이 전 총재와 악수한 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말했고, 이 전 총재는 “바쁘실 텐데 와 주셔서 감사하다.”며 사의를 표했다. 손학규 경기지사도 오후 1시30분께 빈소를 방문해 이 전 총재에게 조의를 표했다. 최근 시사주간지 인터뷰에서의 발언으로 이 전 총재측의 반발을 샀다가 공개 사과한 이명박 서울시장은 이날 저녁 빈소를 찾았다. 또 유력한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고건 전 총리도 모습을 보였다. 여권에선 이해찬 국무총리와 천정배 법무장관이 국회 대정부 질문을 마치고 밤 늦게 빈소를 찾았다. 김원기 국회의장과 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조화도 눈에 띄었다. 고(故) 김사순 여사는 노환을 앓아오다 지난 21일 위독해져 치료를 받아오다가 이날 새벽 이 전 총재 등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유족으로는 차남인 이 전 총재를 비롯해 회정(뉴욕 마운트사이나이 의대 교수), 회윤(주부), 회성(계명대 교수), 회경(KAIST 테크노경영대 교수)씨 등 4남1녀가 있다. 발인은 26일 오전.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2호. 장지는 충남 예산군 신양면 선영.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납북 동진호 선원 딸 최우영씨 ‘부친송환’ 호소 광고

    “납북자 문제를 일본처럼만 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건강이 위독하시다고 하니 더 이상은 건강이 나빠지지 않도록 치료와 관심을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1987년 북한 경비정에 납치된 동진호 어로장 최종석(60)씨의 딸 우영(35)씨가 19일 한 일간지 광고를 통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아버지의 송환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26일 아버지의 환갑을 맞아 월급을 쪼개 마련한 신문 지면에 안타까운 납북자 가족의 심정을 조심스럽게 써 내려갔다. 최씨는 편지에서 “납북자 문제 해결은 위원장의 결심에 달려있다고 본다.”면서 “진정한 통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며, 제 아버지와 같은 분들이 당당하게 38선을 건너 돌아오시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씨는 이어 현 정부에 대해 섭섭한 점도 내비쳤다. 남한에 있는 비전향 장기수와 비교해 그의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 최씨는 “비전향 장기수 송환을 위한 북한의 끈질긴 노력, 남한내 인권단체와 연대, 자국민 보호를 남북협상에서 최우선 과제로 둔 김 위원장을 지켜보면서 제가 북한 사람이었으면 지금쯤 아버지를 모셔왔을 것이라는 부러움을 숨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전향 장기수가 송환되면 납북자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아무 것도 바뀐 것은 없다.”면서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평소 좋아하시던 매운탕을 끓여 좋은 술로 대접하고 싶다.”고 전했다. 공기업 직원인 최씨는 2000년 6월부터 납북자 가족협의회 회장을 맡아 납북자 송환운동을 벌이고 있다. 햇볕정책의 수혜자이고 싶다는 탄원서를 김대중 당시 대통령에게 보냈으며 국내외 인권단체에 국제적인 지지를 호소한 바 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05일 TV 하이라이트]

    ●코리아 코리아(EBS 오후 8시5분) 혜진, 이번에는 운전면허에 도전장을 냈다. 선뜻 1종 수동 면허를 신청한 혜진은 북쪽에서 자동차를 운전해 본 적도 없고 용어마저 대부분이 영어와 한자어라 단어의 뜻조차 이해가 안 가는 답답한 상황이다. 혜진은 과연 이 어려운 난관을 헤치고 운전면허를 따낼 수 있을지 지켜본다.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SBS 오후 9시55분) 정표는 화려하게 꾸미고 나온 봉심과 맞선을 본다. 봉심은 정표 앞에서 내숭을 떨다가 음식이 나오자 게걸스럽게 먹고 트림까지 한다. 얼굴이 일그러진 정표는 진짜 대영건설 셋째 딸 맞느냐며 시비를 걸고 봉심도 재벌이 음식값도 없냐며 사기치고 다니지 말라고 빈정거린다.   ●시사 업 클로스(YTN 오후 3시5분) 수출의 22%,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23%. 삼성은 이제 한국경제를 떠받치는 가장 영향력이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편으로는 견제 받지 않는 최대의 권력으로 부상해 ‘삼성공화국’이란 신조어도 나왔다. 하지만 시민단체에서는 삼성의 지배구조와 후계구도, 로비문제 등을 비판하고 있다.   ●가을 소나기(MBC 오후 9시55분) 중요한 프리젠테이션을 하던 윤재는 규은이 위독하다는 간병인의 전화를 받는다. 안절부절 못하던 윤재는 결국 일을 중간에 포기한 채 병원으로 달려간다. 규은의 사고 후 윤재의 생활은 점점 엉망이 되어간다. 규은이 문제로 심하게 다툰 연서와 윤재는 화해차 규은과 함께 소풍을 가기로 한다.   ●환경 스페셜(KBS1 오후 10시) 수도 서울을 관통하는 청계천 복원 공사가 2년여 간의 공사를 마치고 온 국민의 관심 속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2005년 10월1일 통수식에 맞춰 청계천 복원 후를 긴급 점검해 보았다.청계천 복원의 의의를 새롭게 조명해 보고 어떤 모습으로 복원이 완성되었는지를 알아본다.   ●장밋빛 인생(KBS2 오후 9시55분) 호텔에서 잠이 깬 영이는 아무 것도 생각이 안나고, 순이는 수술 받으러 들어가기 전에 하나 하나 준비를 한다. 영이는 기다려달라는 정도를 냉정하게 외면한다. 한편, 마지막 인사를 할 겸 성문을 만난 순이는 자기도 좋은 남자 만나서 재혼할거라며 아이들을 부탁하고 이혼서류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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