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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세대교체의 신화/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열린세상] 세대교체의 신화/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우리나라의 압축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야기하면서 여러 요인 중의 하나로 한국사회의 역동성이 거론된다. 최근 경제가 부진한 것을 두고 한국사회의 장점인 역동성이 점차 둔화되고 있는 현상과 관련지어 설명하기도 한다. 한때 “빨리, 빨리”라는 구호는 졸속의 상징으로 비판의 대상이었으나 요즘 역동성의 표현으로 마치 경제성장을 견인한 동력이었던 것처럼 이를 재평가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이 역동성 제고에 큰 역할을 한 것이 빠른 세대교체로 인식되고 있다. 이미 1970년대 초에 당시 야당의 김영삼·김대중 후보는 40대 기수론을 제창하여 정계에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킨 바 있었다. 몇 십년 후 아이러니하게도 두 분 모두 고령에 출마하여 세대교체의 요구를 방어하는 입장에 서기도 했지만. 근대 이후 우리 문학, 특히 소설에서는 이른바 ‘아버지의 부재’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이것은 유교 가부장제의 쇠퇴를 암시하기도 하지만 빠른 세대교체 풍조와도 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중·노년층이 빠르게 퇴진하고 사회 주도층의 연령이 낮아진 것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45세 혹은 50세 이전의 조기 정년을 의미하는 ‘사오정’과 ‘오륙도’란 자조적인 말이 유행하지 않았던가? 물론 이러한 현상은 옛날에도 있었다. 조선 세조 때 여진족을 정벌한 남이(南怡)는 20대의 청년으로 오늘의 국방부장관 격인 병조판서를 지냈고,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한 구성군(龜城君) 이준(李浚) 역시 20대에 참모총장 격인 오위도총관에 임명되었다가 곧바로 국무총리 격인 영의정이 되었다. 두 사람의 급격한 부상은 세대교체라는 말조차 무색할 정도였다. 이들은 훈구(勳舊) 세력을 억제하려는 세조의 의도에 따라 종실 혹은 그 인척이어서 나이 불문하고 기용된 것이니 세대교체의 본뜻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할 것이나 후일 40대에 정승이 된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등은 ‘흑두재상’(黑頭宰相)으로 불렸으니 당시 젊은 기수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과거에는 평균수명이 워낙 짧았으니 40대라고 해서 젊은 것도 아니었다. “인생 70은 예로부터 드물었다(人生七十古來稀)”는 시구로 ‘고희’(古稀)라는 숙어를 남겼던 시인 두보(杜甫)는 40대 중반에 이미 “흰 머리 긁적일수록 짧아지고, 다 모아도 비녀 하나 꽂지 못하네(白首搔更短, 渾欲不勝簪)”라고 늙음을 한탄하였다. 또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문장가 한유(韓愈)는 ‘진학해’(進學解)라는 글에서 학생들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머리는 벗겨지고 이는 빠졌다(頭童齒豁)”고 묘사하고 있는데 그때 그의 나이 겨우 40대 초반이었다. 과거에는 평균수명이 짧았고 그만큼 조로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쇠라는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나라의 명장 마원(馬援)은 “늙어도 더욱 강건해야 한다(當益壯)”고 외치며 60대에 전장에 나가 싸워 이겨 오늘날 ‘노익장’(益壯)의 미담을 남겼다. 청나라의 대학자 유월(兪?)은 어떠한가? 60세 무렵까지 빈둥대며 별다른 업적이 없었던 그는 어느 날 “꽃은 졌지만 향기는 남아 있다”라는 시를 읊으며 분발한다. 즉, 몸은 늙었지만 정신은 살아다는 셈인데, 그는 이후 80대 중반까지 장수하며 부지런히 연구하여 ‘춘재당전서’(春在堂全書)라는 대작을 남겼다. 역동성이 반드시 세대교체로 인해 생기는 것만이 아님을 보여주는 실례들이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지금은 역동성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고는 하지만 과거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기에도 고령의 관료들이 국정을 운영했으며, 현재 세계 경제의 엔진이라 할 정도로 최고의 성장률과 역동성을 자랑하는 중국 정계의 파워 엘리트도 아직은 우리 식의 세대교체와는 거리가 먼 고령 그룹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박근혜 정부의 각료 구성을 보면 이전에 비해 연령층이 한층 높아진 것이 눈에 띈다. 이들이 기존의 세대교체 신화에 매몰되지 않고 얼마든지 역동성 있는 경제, 소생의 경제를 이룩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좋겠다. 다만 ‘노익장’의 이면에는 ‘노건불신’(健不信)이라는 복병이 있다는 것을 항시 유념하면서 말이다. ‘노건불신’, 곧 노인이 건강을 과신하면 언제 탈이 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 [‘내란 음모’ 이석기 구속] “의원직 내놔”… 새누리, 이석기 제명 추진

    새누리당이 5일 내란 음모·선동 혐의로 구속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을 제명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황우여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차원의 제명안 발의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재철 최고위원은 “제명하지 않으면 정부에 대한 각종 자료 요구권을 계속 갖게 되고 본인의 세비와 보좌진 월급 등으로 막대한 국고 낭비와 국민 혈세가 줄줄 새는 것을 눈뜨고 지켜봐야 한다”며 당론 추진을 주장했다. 의원 30명의 서명으로 발의되는 이 의원의 제명안은 지난 3월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공동으로 발의한 이 의원의 자격심사안과는 별도로 진행된다. 국회 윤리특위도 이 의원의 혐의가 짙어짐에 따라 오는 16일 계류 중인 자격심사안을 본격 논의하기로 하면서 국회 차원의 자격심사와 당 차원의 징계가 동시에 추진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이 의원의 제명은 ‘산 넘어 산’이다. 민주당은 이날 “사법부의 최종 판결이 나기 전 제명안을 다루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에 어긋난다”며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새누리당의 조기 제명 주장에 반대의 뜻을 표한 것이다. 제명안은 재적의원 3분의2 이상 즉, 200명 이상이 찬성 버튼을 눌러야 가결되기 때문에 153석의 새누리당만으로는 처리가 어렵다. 비례대표인 이 의원이 의원직을 잃게 되면 중앙선관위가 국회의장으로부터 결원 통보를 받은 후 10일 이내에 승계자를 결정한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이 의원을 제명해도 제2의 이석기 같은 사람이 나온다”며 제명에 반대했다. 승계자는 지난해 총선에서 진보당 비례대표 18번이었던 강종헌 한국문제연구소 대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자유북한방송·NK지식인연대·자유북한운동연합 등 탈북자 단체들은 이날 법무부에 진보당의 해산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구본영 칼럼] ‘갈등공화국’에 출구가 필요하다

    [구본영 칼럼] ‘갈등공화국’에 출구가 필요하다

    “석기시대가 돌이 모자라서 끝난 게 아니다.”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전 석유상의 오래된 경고다. 얼마 전 미국의 권위지인 워싱턴포스트가 인터넷쇼핑몰인 아마존에 넘어갔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의 말이 새삼 와 닿았다. 종이는 남아 도는데 신문산업은 벌써 사양길이라는 ‘자괴감’과 함께. 물론 첨단 업종인들 언제까지나 부침을 겪지 않을 순 없을 게다. 1990년대 전자제품에서 세계를 석권했던 일본의 소니나 2000년대 중반까지 휴대전화 최강이었던 핀란드 노키아의 몰락을 보라. 스티브 잡스 사후 애플의 위기도 남의 일이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심지어 국가마저 영원히 융성할 수 없음을 동서 제국의 흥망사가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하긴 반만년 우리 역사에서 언제 위기가 아닌 적이 있으랴. 그러나 내부적 갈등에 매몰돼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고 손 놓고 있다가는 머잖아 사회공동체는 진짜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게다. 며칠 전 읽은 책 ‘2030 대담한 미래’(최윤식 저)에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된 한국사회의 불길한 전조를 봤다. “‘한계에 도달한 중진국가 시스템을 (5년 내에)고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G20에서 탈락한다”는 예측이었다. 최근 한 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국 중 한국의 사회갈등지수가 2위란다. 종교 및 인종 갈등을 빚고 있는 터키 다음으로 높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연간 경제적 손실만 2010년 기준으로 최대 246조원이라고 한다. 얼마나 정확한 추정인지 모르나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송전탑 하나 세우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선진국 문턱에서 십수년째 맴도는 ‘갈등공화국’의 시민일 뿐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갈등은 있기 마련이다. 다만 갈등이 수렴이 안 되고 확산만 될 때 문제가 심각해진다.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은 검찰 수사가 끝나면 사법부의 심판에 맡기고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여야의 평행선 대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국정조사 청문회는 “국기를 흔든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 “전·현직 직원을 동원한 야권의 제2 김대업 공작”이라는 식의 입씨름으로 마감했다. 그러고도 ”특검 하자”, “대선불복 아닌가”라는 등 하릴없이 장외 설전만 이어가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임을 말할 나위도 없다. 외국인 투자촉진법이 표류하고 있는 게 단적인 사례다. 법 통과를 전제로 GS칼텍스와 SK종합화학 등이 일본기업과의 합작투자로 각기 1조원과 1조 3000억원의 외국인 투자유치에 성공했다는데도 말이다. 여수·울산 상공회의소는 지난달 여야 정책위 의장단을 만나 이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했다고 한다. 직접고용효과만 해도 1100명이라는데 기업 측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형국이다. 민주주의 제도에서 컨센서스를 만드는 데는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금의 여야의 행태는 발밑이 꺼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뻘밭에서 드잡이를 하는 꼴이다. 국정원 댓글 국정조사도 의견의 평행선이 막말공방을 거치면서 감정의 평행선으로 치달았다. 그 결과 국정원 개혁이라는 본질은 실종되고 상호 고소·고발전이란 후유증만 남지 않았는가. 결국 정치가 문제다. 정치가 사회 각 부문의 갈등을 봉합하기는커녕 외려 진원지가 되고 있지 않은가.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최근 한국식 정당정치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를 제시했다. 새누리당 의원 대상의 특강에서였다. 숙의가 “서로 경청하면서 공동체를 위한 최선의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대의민주주의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셈이다. 이석기 체포동의안 처리를 계기로 여야가 “내 생각이 늘 옳을 순 없다”는 열린 자세로 차원 높은 타협을 추구하는 새 정치를 폈으면 좋겠다. kby7@seoul.co.kr
  • 사법처리 가능성 시사…‘자진납부’ 압박, 비자금 유입 밝혀 재산압류도 병행할 듯

    사법처리 가능성 시사…‘자진납부’ 압박, 비자금 유입 밝혀 재산압류도 병행할 듯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49)씨를 3일 소환하면서 미납 추징금 환수 작업이 전 전 대통령 자녀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로 확대되고 있다. 검찰은 재용씨에 이어 장남 재국(54)씨, 삼남 재만(42)씨도 조만간 소환할 방침이다. 검찰의 중점 목표가 미납 추징금 1672억원 전액 환수인 만큼 자녀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자진납부’를 강하게 압박하는 모양새다. 재용씨는 외삼촌인 이창석(62·구속)씨와 경기 오산 땅 등 빈번한 거래를 통해 비자금을 불법 증여받고 조세탈루에 연루된 공범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2003년 미국 애틀랜타, 2005년 로스앤젤레스에 부인인 탤런트 박상아씨의 이름으로 사들인 고급 주택 매입 자금으로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지난달 25일 장모 윤씨와 처제 박모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데 이어 지난달 31일에는 부인 박씨를 소환해 15시간가량 조사하는 등 주변 인물을 연달아 소환하면서 재용씨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검찰은 재용씨가 장모와 처제의 명의를 빌려 해외 투자를 가장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해외로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재용씨의 해외 부동산 구입 대금에 비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확인되면 외국환관리법 위반이나 재산 국외도피 혐의 등이 적용된다. 검찰은 이날 재용씨에 대한 조사 내용을 검토한 뒤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하고, 해외 부동산 등에 대한 추징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재국·재만씨에 대한 소환 조사도 준비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2일 재만씨의 장인인 이희상 회장이 운영하는 동아원 본사를 압수 수색하는 등 재만씨에 대한 압박 수위도 높이고 있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을 토대로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동아원 그룹이 보유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 지역 소재 와이너리인 ‘다나 에스테이트’의 설립·운영 자금으로 쓰였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다나 에스테이트는 동아원 이름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이 회장과 재만씨가 공동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재만씨가 결혼 직후 이 회장으로부터 축하금 명목으로 받은 160억원 상당의 채권과 재만씨가 보유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신원플라자에도 비자금이 흘러들어 갔다는 의혹도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재국씨에 대해서도 경기 연천의 허브빌리지 땅을 압류하는 한편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비자금을 빼돌렸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 자녀의 범죄 혐의가 포착되는 대로 소환하는 한편 압수 수색 등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비자금 유입 여부를 밝혀 재산 압류를 병행하는 방법으로 추징금 납부를 계속해서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전 전 대통령 일가의 미납 추징금 자진 납부설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아직 전 전 대통령 측은 검찰에 직접 자진 납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학교 교육공무원 “비정규직과 혜택 같다면 공채시험은 왜 있나”

    학교 교육공무원 “비정규직과 혜택 같다면 공채시험은 왜 있나”

    학교 비정규직 노조가 정규직 전환을 위한 바람몰이에 들어간 가운데 교사들을 비롯한 정규직 공무원들이 이들의 행보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비정규직 직원들과 공채 시험을 통해 들어온 정규직 공무원을 같은 조건으로 대우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한 집 살림’을 하면서 이들의 처우 개선을 마냥 외면할 수도 없는 처지다. 지난해 11월 유기홍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교육공무직원 채용 및 처우에 관한 법률안’은 교육 분야에서 ‘학교 회계직원’으로 불리는 학교 비정규직 직원들을 ‘교육공무직원’으로 채용하고 보수 체계와 근무 상한 연령 등을 법률로 보장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3월 공청회 이후 여야가 접점을 찾지 못하자 학교 비정규직 노조는 법안 통과를 위한 서명 운동에 들어갔다. 학교 비정규직 노조 측은 “15만명에 이르는 학교 비정규직 직원이 없으면 업무가 불가피한데도 그동안 처우 개선 등의 노력이 없었다”면서 “호봉제 도입과 명절휴가비, 유급병가제도 등을 정규직과 동일하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교사나 행정 공무원들은 비정규직 노조의 요구에 곤혹스러워하면서도 대놓고 반대 의사를 밝히지는 않고 있다. 부산에 있는 중학교 교사인 김모(26·여)씨는 2일 “비정규 직원들이 교육공무직 전환에 동의해 달라며 서명을 부탁하는데 아는 사이여서 거절도 못하고 결국 사인했다”면서 “하지만 일부 교사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나온다”고 토로했다. 그는 “학교나 학생들에게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은 우리가 진다”며 “비정규직은 어디까지나 업무 보조원일 따름”이라고 주장했다. 수도권 고등학교에서 행정직원으로 일하는 정모(31)씨는 “학교 회계 직원들은 인맥을 통해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삼수, 사수까지 해서 어렵게 공무원이 된 사람과 똑같은 대우를 해준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초등학교 교사 심모(25·여)씨는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지만 비정규직을 교육공무직으로 전환하는 문제는 현재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도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타협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은 교육공무직법안을 최우선 처리 법안으로 꼽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발의한 법안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직업 안정과 처우 개선안 마련에는 어느 정도 합의가 됐지만 이를 준공무원의 형태로 수용하는 것은 재정 등을 고려했을 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예정된 국회 상임위 법안소위도 파행으로 끝난 가운데 학교 비정규직 노조는 “3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농성하며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내란 음모’ 수사] 여야 움직임

    민주당과 새누리당은 29일 이석기 의원을 포함한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에 대한 국정원의 내란 음모 혐의에 대한 수사가 계속되자 사태의 파장을 예의 주시하며 말을 아꼈다. 민주당은 색깔 덧칠을 우려해, 새누리당은 정부 편들기 시비를 경계해 각각 입장 표명을 조심하는 기류였다. 민주당은 촛불집회 참여 때부터 종북 색깔 덧칠을 경계했다. 수사 이후엔 통진당이 참여하거나 주최하는 촛불집회에 참여하면 색깔 논란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판단해 선 긋기를 더욱 명확히 하며 경계 수위도 높였다. 10월 재·보선 때 야권 연대에 미칠 부정적 영향 등도 저울질했다. 민주당은 당분간은 통진당과 거리를 둘 예정이다. 당장 30일 부산에서 통진당도 참여하는 시민단체 주도 촛불집회에는 당 차원의 불참은 물론 의원들에게 참여 자제를 권고하기로 했다. 김한길 대표 등 지도부와 의원들은 이날 국정원 개혁 촉구 전남도당 결의대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발언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국정원과 검찰의 수사 상황을 지켜보자는 분위기였다. 수사 향배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섣불리 나설 경우 편들기 논란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서다. 국정원을 개혁하라는 야권의 압박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국정원이 반격에 나선 것으로 비쳐지는 것은 부담스러워했다. 수사가 민주당 원내외 병행투쟁 강도에 영향을 줘 정기국회가 표류할 가능성도 우려했다. 당직자들은 “정확한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신중하고 냉정한 자세로 지켜봐야 할 것”이라면서도 “국정원·검찰은 국민께 주는 충격과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철저하고 면밀하게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기업 차명계좌·분식회계 신고자 보호 못 받아… 공익신고자 보호대상 법률 넓혀야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시행된 지 2년째지만 공익신고자 보호 조치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고 공익신고 보호 범위도 여전히 한정돼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보호법 제17조에 따르면 공익신고자는 공익신고 등을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 조치를 받은 경우 국민권익위원회에 원상회복 등의 보호조치를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보호조치를 신청한 사건은 많지 않다. 28일 국회입법조사처와 권익위 등에 따르면 공익신고자 보호법 시행일인 2011년 9월 30일부터 지난해 말까지 권익위를 비롯한 172개 공공기관에 접수된 공익신고 4만 5000여건 중 보호사건으로 처리된 신고는 단 16건이다. 공익신고 보호 범위가 좁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입법조사처의 ‘2013 국정감사 정책 자료’에 따르면 공익신고 보호 대상 법률 180개 중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상법 등이 제외돼 기업의 불법비리 행위를 알린 공익신고는 보호받지 못한다. 조규범 입법조사관은 “차명계좌, 분식회계 등 전반적인 기업 부패행위에 대한 공익신고는 현재로서는 보호대상이 되지 못한다”면서 “공익신고 대상 법률 수를 권익위가 처음 입법예고한 당시의 456개로 넓히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저 언덕위엔 가을이 기다릴까

    저 언덕위엔 가을이 기다릴까

    전국을 후끈 달궜던 무더위도 어느덧 뒷걸음질 치기에 바쁘다. 27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에 가을을 상징하는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가을 문턱에서 방문객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이언탁 기자 utl@seoul.co.kr
  • [씨줄날줄] 쌍용차의 눈물/안미현 논설위원

    한때 우리나라의 ‘사장님 차’는 쌍용차의 체어맨이었다. 덕분에 회사 규모나 전체 판매량에서는 현대·기아차에 견줄 바가 못 됐지만 최고급차 순위에서만큼은 쌍용차의 위치가 독보적이었다. 묵직하게 밀려 나가는 느낌은 뒷좌석의 사장님이나 운전대를 잡은 운전기사 모두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일찌감치 엔진 파워나 네 바퀴 굴림 방식에 힘을 쏟은 덕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서의 권위도 압도적이었다. 그랬던 쌍용차가 걷잡을 수 없이 쇠락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중국 상하이차에 팔리면서다. 투자는 안 하고 쌍용차의 기술만 빼돌릴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지만 채권단은 매각을 밀어붙였다. 결국 상하이차는 이렇다 할 투자 한번 해보지 않은 채 4년 만에 쌍용차를 포기했고 덜컥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2646명이 무더기로 해고되었다. 노조의 옥쇄파업과 정부의 강제진압 등이 이어졌다. 24명의 해고자가 목숨을 잃었다. 서울 대한문 앞 광장에서는 날마다 ‘작은’ 미사가 열린다. 신부님이 마이크를 잡고 미사포를 쓴 신자들이 길바닥에 앉아 나지막이 찬송을 따라한다. 지난 4월부터 오후 6시 30분이면 어김없이 마주치게 되는 풍경이다. 이들이 염원하는 것은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이다. 엊그제는 사제와 수도자 5038명이 선언문까지 발표했다. 신부님들은 “24명의 목숨에도, 2000일을 넘는 통곡에도, 종탑과 철탑 위의 가혹한 인내에도, 세상은 보란 듯이 평화롭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평범한 일상의 애환을 진심으로 봐달라”고 간청했다. 상하이차가 쌍용차에서 손 털고 나가기 위해 일부러 부도냈다는 ‘고의부도’ 의혹 등이 확산되자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당선되면 즉각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을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그 무엇보다 약속과 신뢰를 중시하는 박 대통령이지만, 새 정부에는 ‘고용만 있고 노동은 없다’는 잇단 고언에도, 웬일인지 쌍용차 사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쌍용차는 2011년 새 주인을 맞았다. 인도 마힌드라 그룹이다. 법정관리에서 벗어난 노사는 한마음이 돼 달렸고, 올 2분기에 62억원의 순익을 냈다. 6년 만의 흑자 전환이다. 한때 3만여대로 쪼그라들었던 판매량도 12만대를 훌쩍 넘어섰다. 뉴코란도C 등 ‘코란도 3형제’가 부활의 주역이다. 쌍용차 평택공장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무결점 코란도로 대박 내어 회생하자.’ 여기에는 아직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해고자들과 망자(亡者)의 눈물이 서려 있다. 아직은 쌍용차의 부활을 얘기할 수 없는 까닭이다. 안미현 논설위원 hyun@seoul.co.kr
  • 정년도 수의계약도 제멋대로… 원칙 없는 출연기관

    전북도 출연기관인 ‘한국소리문화의 전당’과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회’가 절차와 기준을 무시하고 업무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26일 전북도에 따르면 이들 기관을 종합감사한 결과 용역계약, 인사관리, 예산집행 등에서 많은 문제점이 적발됐다. 예원예술대가 위탁 경영하는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은 소속 직원의 정년을 57세로 규정했음에도 무대 팀 2명의 정년을 마음대로 2년 연장, 59세에 퇴직하게 했다. 또 촉탁직 임용세칙을 마련, 퇴직자들을 재임용하는 등 인사규정을 멋대로 운영했다. 공사 관련 계약은 일반경쟁입찰이 원칙이지만 지난해 18건 33억여원 상당의 계약을 결정권한이 없는 법인이사회에서 수의계약토록 했다. 업무추진비도 법인카드를 사용하고도 영수증을 제출하지 않는 등 부적절하게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도 각종 계약을 원칙대로 처리하지 않거나 절차를 생략하는 등 지나치게 수의계약에 의존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직위는 2010~2012년 개막기획공연에 따른 무대제작 등 3건 1억 1600만원 상당의 사업에 대해 예정가격을 작성하지 않고 업체의 견적가격으로 수의계약을 맺었다. 또 수의계약을 체결한 경우 계약체결일, 예정가격, 계약금액, 수의계약 사유 등을 홈페이지에 공개토록 했으나 96건의 수의계약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소리축제 홍보디자인과 인쇄물 제작도 사전에 입찰가격을 평가한 뒤 기술능력 제안서 평가 시 입찰가격을 평가위원들에게 공개하는 등 계약업무에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코레일사장 재공모 결정

    사장 후보 선정 과정에서 상급기관(국토교통부)의 외압 논란이 불거진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사장 공모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된다. 기획재정부와 코레일에 따르면 21일 열린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는 코레일 사장 재공모를 결정했다. 앞서 코레일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는 사장 후보로 정일영 교통안전공단 이사장과 이재붕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장, 팽정광 코레일 부사장을 후보로 추천했다. 이날 공운위에서 최종 후보자를 선정할 것으로 예측되기도 했지만 위원들은 ‘사회적 물의’를 들어 재공모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일 면접 대상자(6명) 선정을 위한 코레일 임추위를 앞두고 국토부 간부가 심사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정 이사장을 추천한 사실이 드러나 절차의 불공정 논란이 야기됐다. 철도노조와 시민단체, 정치권까지 나서 ‘재공모’를 주장하면서 공운위도 부담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공운위원들은 선임 과정에서 물의가 빚어져 기관장이 임명되더라도 조직을 이끌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면서 “후보자에 대한 자질 및 전문성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기에 재공모에는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레일 사장 임명이 지연됨에 따라 당장 오는 9월로 예정된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이 불투명해지는 등 국토부의 ‘철도산업 발전전략’ 추진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아직은 낯선 듯… 가을 낯은 불그스레

    아직은 낯선 듯… 가을 낯은 불그스레

    무더위도 이제 꼬리를 내리는 듯하다. 한층 높아진 하늘 아래에서 20일 경기 파주 주민들이 고추를 말리느라 바쁜 손길을 놀리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이통사 스마트폰 보조금 정책 공정위도 불공정성 연구 착수

    공정거래위원회가 방송통신위원회에 이어 이동통신사들의 스마트폰 보조금 정책에 숨어 있는 불공정 거래를 잡아낼 계획이다. 공정위는 18일 최근 통신사 등이 대리점에 주는 판매장려금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고 밝혔다. 판매장려금이란 판매 촉진이나 시장 개척을 위해 거래 수량 및 금액에 따라 대리점 등 거래 상대방에게 지급하는 인센티브의 일종이다. 휴대전화 구매자가 받는 기기 보조금도 포함된다. 공정위는 대리점이 판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판매장려금을 덜 받게 되기 때문에 제품을 무리하게 팔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판매 목표 달성에 따라 스마트폰 1대당 통신사로부터 받는 판매보조금이 달라지므로 사실상 판매량에 대해 압박을 받는 실정이다. 하지만 통신사들이 판매장려금을 이용해 대리점에 판매목표를 사실상 강제 할당해도 판매장려금이 인센티브 형식이라 공정거래법을 위반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공정위는 이번 연구용역을 통해 판매장려금 유형을 분석하고, 불공정 거래행위 등 위법성이 드러날 경우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최근 판매장려금에 문제가 많다는 대리점주들의 신고가 접수된 만큼 제도적으로 판매장려금이 불공정 거래에 해당하는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열린세상] 융합행정과 내실행정이 필요하다/박양우 중앙대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교수

    [열린세상] 융합행정과 내실행정이 필요하다/박양우 중앙대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교수

    며칠 전 가족과 함께 제천을 다녀왔다. 8월 14일부터 19일까지 열리는 제9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는 김에 영화도 보고 주변 관광도 할 수 있어서 매우 행복했다. 개막영화를 비롯해 제천시내 극장과 의림지 무대, 그리고 청풍호반 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는 영화와 음악 공연들은 한여름 무더위를 날릴 만큼 재미있고 설레는 시간들을 만들어 주었다. 청풍호를 비롯해 제천의 아름다운 풍광은 익히 알려진 다른 명승지에 비해 나으면 나았지 조금도 밀리지 않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정말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져 뿜어내는 행복을 맛 볼 수 있어서 기분 좋은 여행이었다. 그러나 옥에 티라고나 할까, 영화제 행사장 주변 관광지를 방문하면서 체험한 당혹감으로 인해 여행을 마치고 돌아 와서도 마음 한구석은 영 개운치 않다. 우리 가족은 여행계획을 세우기 위해 사전에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고 또 호텔에서 구한 관광안내지도를 열심히 탐독하였다. 그리하여 영화 관람과 옥순봉 등의 명승 관광, 승마 체험과 천연염색 체험여행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딸들은 특히 체험여행에 기대가 컸다. 먼저 생전 처음으로 승마 체험을 해보고 싶다고 하여 제천시 홈페이지와 관광안내지도에 소개된 수산면 율지리 소재 씨엔씨 홀스팜을 찾았다. 들어가는 길이 너무 협소한 외길이어서 나오는 차를 만날까 걱정을 하며 찾아간 그곳은 이미 폐쇄되었는지 사람도 말도 없이 그저 황량할 뿐이었다. 관광 안내지도에 나온 전화번호로 다섯 차례 이상 전화를 걸었으나 아무 응답이 없었다. 첫 체험관광 시도는 그렇게 여지없이 무산되고 말았다. 가족들의 실망이 매우 컸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다음은 두 번째 관광목적지인 수산면 하천리의 산야초마을과 약초생활건강 체험학습장을 찾았다. 약초에 관해 배우고 천연염색 등도 직접 체험할 수 있다고 해서 역시 큰 기대를 안고 방문했다. 그러나 이곳 또한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유리창 밖으로 내부를 흘끔거리다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곳에서 산야초 점심을 하려는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다. 그곳을 찾은 몇몇 관광객들의 허탈한 모습 뒤로 지식경제부와 제천시 후원이라 적힌 체험학습장 안내판만이 큼지막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지방행정은 종합행정이다. 국제영화제 같은 큰 문화행사는 외지에서 오는 영화제 참가자와 관람객들로 인해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고, 지역 이미지를 높이는 계기가 되며, 자연스럽게 지역을 홍보하는 등 일석 사오조의 효자 노릇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같은 효과를 배가시키려면 시청 내의 문화 담당 부서만이 아니라 각 부서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부서별로 관광객 방문을 대비한 준비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서 간 칸막이를 뛰어넘는 융합행정이 필수요건이다. 이번에 부서별로 국제음악영화제 연관 분야 목록을 작성하여 이를 사전에 꼼꼼히 점검하고, 이 결과를 정보담당 부서와 관광담당 부서에 통보해서 홈페이지와 관광안내지도만 수정했더라도 우리 가족이 겪은 어처구니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관광 이야기와는 좀 동떨어졌지만 헛걸음한 산야초마을 약초생활건강 체험학습장의 경우처럼 중앙정부 후원을 받아 시행하는 사업들이 처음 의도와는 달리 유명무실해진 것은 없는지 지속적인 점검도 필요하다. 아울러 애초에 행정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배제한 채 전시행정으로 기획된 사업들은 없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들에 대해 중앙부처가 관련이 있다면 이를 지방자치단체에만 맡기지 말고 기획 단계에서부터 보다 더 철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무늬만 그럴듯한 사업이 아니라 내실 있는 사업을 위한 행정이 필요하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도 부처 간 경계를 넘어 협업을 강화하라고 독려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는 공급자, 곧 부처 입장이 아니라 소비자, 곧 주민의 입장에서 그리고 시장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행정이란 점에서 매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국가나 지방정부의 재정이 들어가는 사업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후 운영단계에 이르기까지 알차게 진행되어야 한다. 중앙부처는 물론이고, 특히 지방자치단체에서 융합행정과 내실행정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 원스톱 센터 성폭력 상담은 학사·석사만 가능해?

    원스톱 센터 성폭력 상담은 학사·석사만 가능해?

    올해부터 성폭력과 학교폭력 피해자를 돕는 ‘원스톱 지원센터’의 전문상담사 지원 자격을 심리학·아동학 등 관련 전공의 학사학위 이상 소지자로 제한한 것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새 정부 들어 학력 제한 철폐가 대세로 자리를 잡고 있는 가운데 여성가족부가 이를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 상담사들은 “수십 년의 연륜보다 대학 졸업장이 더 중요하냐”며 반발하고 있다. 원스톱 지원센터는 여성가족부와 경찰청이 전국의 17개 국공립병원 등에 설치해 운영하는 것으로, 피해를 당한 여성과 아동의 인권 보호, 신속한 피해 회복을 위해 의사와 전문상담사가 상주해 지원하는 곳이다. 16일 여성가족부와 원스톱 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사회복지사, 성폭력·가정폭력 상담사 자격증 소지자 등 일정한 자격을 갖추면 지원할 수 있었던 전문상담사 응시 자격에 올해부터 학력 조건이 추가됐다. 바뀐 지원 자격을 보면 ▲대학에서 사회복지학, 심리학, 여성학, 아동학 등을 전공한 자로 석사 학위 취득 후 1년 이상(학사 학위 취득 후 2년 이상) 성폭력·가정폭력 상담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 ▲관련 분야 석사 학위 취득 후 2년 이상, 학사 학위 취득 후 3년 이상 상담 기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 등이다. 반면 지난해는 ▲성폭력·가정폭력 상담원 경력 3년 이상인 자 ▲사회복지사 2급 이상의 자격 소지자로 성폭력·가정폭력 상담원 교육 과정을 수료한 자로 학력 제한은 없었다. 최종 학력과 상관없이 관련 자격증을 보유하면 지원할 수 있었던 조건이 대학 졸업장을 요구하면서 진입 장벽이 높아진 것이다. 지방의 원스톱 지원센터 상담사로 근무했던 최명희(39·여·가명)씨는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관련 공부를 꾸준히 해 자격증을 따고 피해자의 눈높이에 맞춰 상담을 해 온 상담사들이 많다”면서 “학력으로 지원자를 가르는 것은 학력주의를 조장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아동심리 전문 상담사로 활동하는 이모(44·여)씨는 “10년 이상 현장에서 상담해 온 사람보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동안 상담 경력을 쌓은 사람의 실력이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여가부 측은 “그동안 상담원 교육과 양성을 위해 일정 기간 유예했던 상담원 자격 기준을 강화했다”는 입장이다.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법 시행령에 ‘고등교육법에 따른 대학, 이와 동등한 학력으로 인정되는 학교를 졸업한 자’가 상담사의 자격 기준으로 명시된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시행령에는 심리학·여성학 등 전공 기준이 명시되지 않았고,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했거나 사회복지단체·시설 등에서 성폭력 방지 업무에 3년 이상 근무한 경력도 상담사 자격으로 인정하고 있다. 여가부가 추가한 학력 조건이 지나치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여가부 관계자는 “지난해 각 센터로부터 학력 조건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고 이의가 없었다”면서 “학점은행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취득한 학사 학위도 모두 인정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단위조합 등 중소 금융사 전산 보안 규제 일부 완화

    농협과 신협 단위조합 등 중소 금융사의 원활한 경영 활동을 위해 전산 보안 규제가 일부 완화된다. 금융위원회는 이런 내용의 전자금융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해 오는 11월 23일부터 시행한다고 15일 밝혔다. 종업원 수가 20명 이하인 농협과 신협의 단위조합 등 중소 금융사는 최고 정보보안 책임자(CISO)의 자격 요건을 완화할 수 있다. 일부 중소 금융사가 내부인력 가운데 CISO 자격요건을 충족하는 직원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외부 위탁한 정보기술에 대한 취약점 분석 평가도 일정 규모 이하의 중소형 금융사는 ‘간이 취약점 분석 평가’를 할 수 있다. 9월 시행될 전자금융사기 예방 서비스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해킹사고에 대한 고객의 책임 범위도 넓어진다. 지금은 이용자가 접근 매체를 대여·위임·제공하거나 누설·노출·방치한 경우에만 이용자의 고의나 중과실로 인정했다. 개정안은 보안 강화를 위해 금융사가 요구하는 본인확인절차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는 것도 고의 또는 중과실 범위에 넣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글로벌 인재 키우는 신세계

    신세계백화점 D&D팀의 정혜정(36) 과장은 아이 둘을 둔 ‘워킹맘’이다. 정 과장은 지난 5~7월 아이들을 남편과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미국 뉴욕의 식품전문점 ‘딘앤델루카’에서 업무 경험을 쌓았다. 회사는 정 과장의 체류와 교육을 위해 두 달 동안 2000만원을 지원했다. 정 과장은 “하루 4~5시간밖에 못 잤지만 꿈 같은 시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신세계그룹이 불황에도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13일 정 과장처럼 유능한 인재를 대상으로 해외 유명 기업에서 연수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해외 사업을 하는 계열사가 아닌 그룹 차원에서 해외 연수 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직급·연령·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글로벌 인력 육성이 목표로, 외국어 능력 향상은 물론 글로벌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차원이다. 지금까지 선발된 인원은 6명. 딘앤델루카를 비롯해 독일 메트로그룹의 상품 소싱 회사인 MGB, 일본 이세탄 백화점 등에 파견돼 교육을 받았거나 받고 있다. 사원들의 글로벌 교육을 위해 배정한 예산은 15억원가량. 그룹 관계자는 “경기 전망이 불확실한 가운데 적지 않은 돈이 들지만 회사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에는 미국의 대표 쇼핑몰 개발 운영 업체인 터브먼을 포함한 2∼3곳에 3∼4명을 보낼 계획이다. 파견업무 범위도 인사,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등으로 다각화할 예정이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김한길, 광복절 앞두고 독도行… “日 우경화는 우려스러운 도발”

    김한길, 광복절 앞두고 독도行… “日 우경화는 우려스러운 도발”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독도를 방문했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을 비롯한 당 지도부 등 소속 의원 20여명과 함께 헬기를 이용, 독도를 방문해 독도경비대로부터 현황을 보고받고 시설물을 둘러보며 강력한 국토 수호 의지를 천명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국정조사 등으로 여야가 대치하고 있지만, 영토 문제나 국익에는 여야가 없음을 행동으로 보여 준 것으로 평가된다. 민주당 지도부는 올해 방위백서에서도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명시하는 등 영유권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일본을 규탄했다. 김 대표는 현지에서 “일본은 우경화와 함께 군국주의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단히 우려스러운 도발이다. 우리는 결코 좌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에서도 당 여성위원장인 김을동 의원이 당직자 30여명과 함께 14일 울릉도를 거쳐 15일 독도를 방문한다. 주요 정치인의 독도 방문은 지난해 8월 10일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1년여 만이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1시간 10분간 독도에 머물며 현지 경비대를 둘러보고 독도 전사자 추모비를 찾은 뒤 ‘한국령’ 팻말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했었다. 일본 언론들은 김 대표 및 민주당 최고위원들의 독도 방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날자 신문에 주요뉴스로 보도했다. 보수지로 분류되는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인터넷판에 김 대표의 독도 방문 사실을 한국 언론을 인용해 보도하면서 “다케시마(독도)에서는 ‘영유권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일본을 규탄’한다고 말한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어 새누리당 김을동 의원의 독도 방문 예정소식도 전하며 “한국에서는 15일이 일본 식민지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광복절’에 해당한다. 여야 의원의 상륙은 이날에 맞춘 움직임으로, 다케시마의 영유권을 강경하게 주장하는 목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김 대표 등 민주당 의원들이 독도를 방문한 데 대해 김원진 주일 한국대사관 공사를 불러 항의했다. 시모카와 마키타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참사관은 이날 김 공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독도 상륙은 일본의 영유권에 비춰 받아들일 수 없다. 매우 유감”이라며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서울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소리 잘하는 배고령입니다.” “배고령? 바른말 잘한다는 그 배고령?” “어허, 세상일 알고도 모르겄네. 이 육실할 년이 하필이면 낼모레가 환갑인 배고령에게 가랑이를 벌려주다니… 아이고 내 팔자야… 10년 과수로 독수공방하다가 고자 대감을 만난다더니… 이년이 숱한 남정네 놔두고 하필이면 몇 해 못 가서 환갑이 될 노닥다리 등짐장수와 배꼽을 맞추었네그래. 배고령이 언변만 번지르르한 줄 알았더니, 똥구멍으로 호박씨 까는 재간까지 있는 줄 어느 누가 알았겠나. 돌림병에 까마귀 울음이라더니 이런 봉패가 있나….” “봉패라니요? 구월이가 본데없는 산중 처자라고 모두 손가락질하는지 몰라도 사람 보는 눈이 있습디다. 배고령이 구월이와 견주어 연세가 약간 지긋하다 하나 아직 허리도 튼튼해서 소금 짐을 지고 치받이길을 치고 오르는 데 아무런 구애가 없고, 양도가 절륜하답니다. 뿐만 아니라, 심성도 진국이어서 내자를 위하는 마음 한 가지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을 것이오. 언변도 얼음에 박 밀듯 매끄럽고 언문에도 통달하여 장거리에 나가서 흥정을 해도 막힘이 없는 사람이오. 경위 밝고 보비위도 잘하여 장모님도 범절 차려서 깍듯이 모실 것입니다. 통도 크고 능갈치는 재간도 출중하여 조선팔도 어느 장거리에 내놓아도 남의 견모가 된 적이 없습니다.” “보비위 잘하는 놈치고 쓸개 안 빠진 놈이 없지…?” “배고령이 그처럼 데데한 사람이 아니랍디다.” “누가 그런 말을 하였소?” “이번에 접장이 된 정한조 도감이 그럽디다.” “도감 어른이 접장이 되었소?” “되다마다요. 사실은 혼례 치를 겸사해서, 접장이 된 축연도 해야 하오.” 월천댁은 다시 한번 까무라칠 뻔했지만, 정한조가 접장이 되었다는 소식에 순간적으로나마 시름을 잊게 되었다. 사실 정한조가 접장이 된다는 소문은 파다했으나 아직 임소에서 통기는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평소 마음속으로부터 정한조에게 한없는 신뢰를 보내는 월천댁의 심사를 달래주는 데는 효험이 있는 말이었다. 월천댁으로 하여금 마음을 돌려 혼례를 치를 수 있도록 주선하고 숨어버린 구월이까지 찾아내어 모녀 사이에 손찌검이 오가지 않도록 달래주느라 사흘간 동분서주하는 동안, 말래 접소에는 그동안 빈자리로 있던 내성 임소의 접장에 정한조가 발탁이 되었다는 소식이 당도하였다. 정한조가 감당했던 도감 자리에는 도공원이었던 곽개천이 천거되었다. 도감이 접장으로 발탁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떠들썩했던 그날, 해가 나절가웃이 될 무렵 말래 접소에는 생긴 것도 반반하고 입성도 단정한 한 상노아이가 찾아와 정한조에게 언문으로 쓰인 짧은 편지 한 장을 은밀히 전달하고 돌아갔다. 사위가 칠흑같이 어두워 두 발짝 앞에 있는 사람의 형용도 분별하기 어려운 한저녁, 베잠방이 차림의 정한조는 동배간들이 눈치채지 못한 틈을 타서 몰래 접소를 나섰다. “분복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여 형단영척(形單影隻) 의지할 곳이 없어 공규를 지키며 외롭기 그지없기는 접장 어른과 쇤네 역시 다를 바 없어 전전불매(輾轉不寐)입니다. 오늘밤 소찬을 마련하여 접장 어른 모시려 하니 허물하여 내치지 마시고 쇤네의 와실(蝸室)을 찾아 주십시오.” 작은 쪽지였지만 여인으로부터 난생처음 받아본 언문 편지였다. 그러나 썩 내키지 않았다. 연서라는 것이 애당초 그에겐 낯선 것이기도 했지만, 접소의 동배간들 몰래 울진 관내에선 명자(名子)가 떠르르하다는 기녀의 집을 찾아간다는 것도 분복에 겨운 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행담(行擔) 짜는 놈은 죽을 때도 버들잎 입에 물고 죽는다 하지 않았던가. 분수에 넘치는 일을 대중없이 넘보다 보면 필경 화근이 되어 환난을 겪기 마련 아닌가. 그러나 나절가웃에 걸려 있던 해가 먼산주름 뒤편으로 껄떡 넘어가고 산허리에 저녁 이내가 어렴풋이 걸릴 제, 매미 소리 또한 숲속에서 지악스럽게 울어대면서 마음이 어느새 동하여 정한조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접소를 나서고 말았다. 향임의 집은 접소에서 흥부장으로 향하는 한길로 가다가 왼편으로 꺾어든 언덕 아래 마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발새 익은 길은 아니었지만, 간절한 마음 때문인지 집은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단간 초옥에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데, 울바자 밖으로 정한조가 모습을 드러내자, 문틈으로 내다보고 있었던 것처럼 향임이가 몸소 뛰어나와 맞이하였다. 다가오는 궐녀에게서 지분 냄새가 설핏하였다. 외짝 지게문이 달린 휑뎅그렁한 방안에는 조선팔도 어느 고을 기방 풍속이 그러하듯 차려둔 가재도구는 전혀 보이지 않고 다만 빗자루 하나가 벽에 걸려 있을 뿐이었다. 멍석 위에 등메가 덧깔린 방 가운데는 개다리소반에 주안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러나 산해진미가 차려진 것은 아니었다. 울진 흥부장 저잣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주찬들이었다. 그처럼 조촐한 주안상이 정한조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딱 벌어진 다담상에 주과가 즐비하였다면 아마도 좌정하기가 거북했을 것이었다. 향임의 도량이 그만치 깊다는 것을 차려진 주안상에서 익히 엿볼 수 있었다. 향임이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그 무릎 위에 두 손을 포개 얹고 다소곳이 인사를 건네었다. “오늘밤 오시지 않으셨다면, 짧은 여름밤이었다 하나 이렇게 앉아 뜬눈으로 새웠겠지요.” 그 말에 정한조도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튀어나왔다. “나 역시 편히 잠들지 못하고 조리를 치거나 등걸잠으로 밤을 새웠겠지요.” 향임이가 임기응변으로 둘러대는 정한조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거들었다. “성가시게 여기지 않으시고 편역을 들어주시니 고맙습니다.”
  • [열린세상] 창조경제는 규제완화부터/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창조경제는 규제완화부터/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해마다 상당수의 한국 학생들이 미국 유명 대학의 박사과정에 진학한다. 그런데 매해 정성껏 학생들을 교육시켜 미국의 박사과정에 보내는 내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었다. 대개 한국의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학생들이 미국의 대학원에 진학하면 모든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고 대부분 큰 문제없이 박사학위를 받곤 한다. 반면 미국의 학부를 나온 학생들은 한국 학생들에 비해 시험에 떨어져서 결국 박사학위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시험을 잘 보는 우수한 한국 학부 출신 학생들 대신에 시험을 잘 보지도 못하는 미국 학부 출신들을 많이 뽑는 것이 너무 의아해 미국 교수에게 그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그 답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미국의 유명 대학 입장에서 보면 그럭저럭 공부해서 평범하게 박사학위를 받는 학생이나 애초에 시험에 떨어져서 학위도 못 받는 학생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이 오로지 원하는 학생은 몇 년에 한번 나오는 기가 막히게 우수한, 거의 노벨상 후보라고 할 수 있는 졸업생들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학년 박사과정의 신입생은 20명 중에서 20명 모두 그럭저럭 박사학위를 받고 어디선가 생활하는 수준이라고 할 때, 이는 미국 대학의 입장에서는 실패라고 본다는 것이다. 차라리 신입생 20명 중에서 19명이 탈락하고 1명이 졸업했는데, 그 1명이 노벨상을 받으면 그 학년은 성공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박사과정에 오는 학생들은 모두 성실하고 기초도 잘 다져져 있으니 시험 통과도 잘하고 학위도 무사히 받을 확률이 높지만, 미국 대학이 자랑할 큰 학자가 될 확률은 없어 보인다는 뜻이다. 미국 대학 입장에서는 무난하지만 큰 학자가 나오지 못하는 한국 학부 출신보다는 어쩌다가 한 명씩 우수한 학자가 배출되는 미국 학부 출신을 선호한다는 뜻이었다. 사실 한국 또는 아시아 국가들의 교육은 무난하고 성실한 상위권의 지식인을 배출하는 데에는 최상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천재를 배출하기에는 부적합하다. 모든 것이 획일적 과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교육 시스템에서는 창의적인 인재가 배출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국 대학들의 자세는 현재 우리 정부의 가장 중대한 정책 과제인 창조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는 앞서 나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정답지를 받아서 이를 성실하게 따라잡은 모범생의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풀이 방법을 만들기보다는 다른 선진국들이 이미 풀어놓은 해법을 열심히 외우고 익혀서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풀어놓은 해법이 없고 스스로 풀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경제 성장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창조와 창의에 기반하여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시기적절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창조경제의 문제를 풀어감에 있어 그 주체는 정부가 아닌 기업과 개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깊이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창조와 관련된 작업은 미국 대학에서도 알고 있듯이 9명이 실패한 가운데 1명이 성공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창조적인 작업에 가장 부적합한 사람을 뽑으라고 한다면 10가지 중에서 9가지를 성공하더라도 1가지만 실패하면 문책을 받는 공무원들이 아닐까? 공무원이나 정책 관련자들은 수십년간 창조와는 정반대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런 정부와 공무원이 주도하는 창조경제란 정말로 큰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다. 결론은 민간 기업과 개인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규제를 풀어서 새로운 시도들을 인정해 줄 뿐 아니라 엉뚱한 행동으로 큰 실패를 보더라도 이를 용인해 주는 관용을 보이는 것이 창조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이다. 우리 정부가 시험이 다가오는데 교과서 더 읽고 문제집 풀어보라고 자녀를 몰아세우며 웃어른 공경하고 집안일도 잘 도우라고 꾸짖는 극성 학부모처럼 행동한다면, 우리의 기업과 개인들은 결코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다. 엉뚱한 자녀의 행동을 오히려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는 부모처럼 기업과 개인들에게 자유를 주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자세가 창조경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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