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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강대국’ 청사진 완성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중국 공산당은 9∼11일 제15기 5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5중전회)를 개최한다.지난해 9월 4중전회 이후 1년여만에 열리는 이번 회의는 21세기의 ‘명실상부’한 강대국 도약을 위한 청사진을 마련하는 등 중국 공산당의 가장 중요한 의미를 띠는 정치적 행사다. 이번 회의에서는 우선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리펑(李鵬) 전인대 상무위원장 등 3세대 지도부 이후 4세대 중국 지도부의 인선 문제에 대해 본격 조율할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차세대 지도자들로 주목받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부주석과 정치국 후보위원인 쩡칭훙(曾慶紅) 당조직부장을 승진시킬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승진인사 결정이 내려지면 2002년말∼2003년초 최종 확정될 차세대중국 지도부의 윤곽이 어느정도 드러나게 된다. 2001년3월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4차회의에서 통과시킬‘국민경제 및 사회발전 10차 5개년(2001∼5년)계획의 대강(大綱)도심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공산당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서부대개발사업에 대한 각종정책과 지원방안이 주요 논의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장 주석이 최근 10차 5개년 계획과 서부대개발사업은 중국 대륙의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전략적 정책이라고역설하며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를 대비한 각종 경제개혁과 산업구조조정 등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는 사안으로 알려졌다. 국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는 중국내 부정부패 만연 문제 역시 주요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고위급 관리 개입설’이 끊임없이 나도는 1949년 건국 이후 최대의 밀수스캔들로,300명에 가까운 관리들이 연루된 800억위안(약 10조4,000억원) 규모의 푸젠(福建)성 샤먼(厦門)사건에 대한 전모 공개범위 등에 대해서도 토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파룬궁(法輪功)과 지하 기독교와 가톨릭,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등 변경지역의 분리주의자 등 공산당의 권력기반을 위협하는 세력에 대한 대응방안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khkim@
  • 국제사회 유고해법 ‘두갈래’

    미국 등 서방측이 밀로셰비치 신유고연방 대통령에 대한 사퇴압력을 강화하고 있는 반면 중국·러시아 등은 오히려 그를 편드는 듯한 입장을 취해 유고 해법을 둘러싸고 코소보 공습 당시의 국제사회 대립기류가 재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서방측은 총선을 ‘밀로셰비치의 패배’로 규정한 뒤 밀로셰비치의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1년이상 끌어온 그의 축출을 위해 정보력을 풀가동하고 있다.하지만 러시아와 중국이 최근 중재 명목하에 ‘유고문제의 자생적 해결’을 강조하면서 심지어 밀로셰비치 도피를 방조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러·중의 밀로셰비치 감싸기는 이들과 유고와의 독특한 역사·사회적 관계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러시아로서는 슬라브계 대형으로 세르비아에 행사해온 전통적 영향력이 미국에 의해 제한받는데 대한 반발이며 중국은 티베트,신장-위구르 등 자국내 소수민족분규에대한 경고차원에서 유고 집권부를 지원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1일자 영국의 선데이타임스는 밀로셰비치가 중국에 2억달러 비밀계좌를 조성해놓고중국으로 도피준비중이라고 보도했다.밀로셰비치에은신처를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중국은 자국 민족문제에 대한 서방측 개입을 경고하고 국내 소수민족들에도 본보기를 보일 수 있다. 이에 앞서 러시아도 지난달 30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유고 사태에 관해 언급하며 “러시아는 외부요소의 간섭없이 유고 국민들만이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피력,불편한 심기를 노출했다.러­중의 밀로셰비치 편들기가 노골화할 경우 이는 코소보전 당시와 마찬가지로 서방측 발칸 카드의 선택폭을 상당히 좁힐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손정숙기자 jssohn@
  • 中신장성 폭발사고… 369명 死傷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 수도인 우루무치(烏魯木齊) 교외에서 8일 밤 발생한 폭발 사건으로 60명이 사망하고 309명이 부상했다고 신화(新華)통신이 9일 보도했다. 통신은 이번 사건이 분리주의자들의 테러행위인지 여부에 대해서는언급하지 않았으며 폭발 원인에 대한 조사가 진행중이라고 전했다. 현지관리들에 따르면 폐기용 폭발물을 운반하던 차량 1대가 8일 오후 7시 30분(한국시간 오후 8시 30분) 우루무치 교외를 주행하던 중갑자기 폭발했다. 신장 위구르자치구 지역 소수민족들은 중국 당국의 끈질기고 강력한탄압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신자들과 연계하여 수시로 분리주의 시위와 테러행위를 벌이고 있다.
  • [21세기 중국의 변신] (4)서부대개발 사업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가자 서부로’.중국 정부가 지난해 11월부터 ‘21세기 중국의 명운(命運)’을 걸고 서부대개발 사업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낙후한 중국의 서부지역을 개발,개혁·개방으로 부유해진 동부연안과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한편 21세기 중국 경제성장을 위한 새로운견인차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19세기 서부 개척을 통해 발전되고 부유한 도시로 탈바꿈시킨 미국의뉴딜정책을 본뜬 셈이다. 그 대표적인 곳이 시닝(西寧).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고비사막 남단(南端) 칭하이(靑海)성에 위치한 황량한 도시 시닝이 사막지대에 휘황찬란하게 우뚝 솟은 ‘도박의 도시’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가장 낙후한 서부지역에 대해 도박을 합법화할 것으로전해지자 시닝은 해외통상국 직원들을 라스베이거스로 급파,시닝을‘21세기의 중국판 라스베이거스’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청사진을 내놓았다.카지노와 경마시설에 1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미국 기업이 나타나 시닝의 꿈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중국의 서부지역은 충칭(重慶)직할시를 비롯,스촨(四川)·윈난(雲南)·구이저우(貴州)·산시(陝西)·간쑤(甘肅)·칭하이(靑海)성,시창(西藏)티베트자치구·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닝샤(寧夏)회족자치구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면적이 전 국토의 57%를 차지하고 인구의 23%(약 2억9,000여명)가 살고 있다. 대부분 산과 사막으로 이뤄진 서부지역은 엄청난 석유와 천연가스등이 매장돼 있음에도 불구,국내총생산(GDP)이 중국 전체의 14%(약 1,342억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경제적으로는 뒤떨어진 상태다.중국 정부가 경제특구와 동부 연안지역 개발에 치중하는 바람에 경제와 국토와 자원의 균형있는 개발과 발전이 어려워진 탓이다. 이 때문에 동·서부지역간 빈부격차가 20여년간 지속적으로 심화되면서 이 지역의 한족과 소수민족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티베트족·위구르족 등 정부에 대한 저항이 센 소수민족들이 서부지역을 터전으로 삼고 있다.이에 위기감을 느낀 중국 지도자들이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서부대개발 사업 계획을 착수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서부지역 경제발전을 통해 국내외 경제환경 변화에 따른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 국면을 타개하려는 계산도 깔고 있다.서부지역의 인구급증에 따른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무분별한 산림개간으로 생태환경이 파괴돼 98년 양쯔(揚子)강 대홍수 등과 같은 자연재해의 발생을 막자는 것 등도 사업추진의 이유중 하나다. 따라서 신장 등 서부지역에 매장된 300억t의 천연가스를 동부 상하이로 끌어오는 총연장 4,200㎞의 천연가스관 건설 프로젝트를 확정,최우선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모두 1,550억위안(약 20조1,5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밖에 ▲티베트고원의 물을 황허(黃河)와 연결하는 야황(야루장푸강-황허) 대수로 프로젝트 ▲칭하이-티베트-윈난성을 철도로 연결하는 칭장(칭하이-티베트),뎬창(윈난-티베트)철도 건설 프로젝트 ▲신장과 칭하이를 석유화학공업단지로 조성하는 신(新)실크로드 유라시아 브리지 프로젝트 등도 추진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야심찬 서부개발 사업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있다.서부지역의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이 전무한 상태인데다 서부개발 계획이 50년 이상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프로젝트여서 외국기업들이 진출을 꺼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khkim@. *서부개발 총책 쩡페이옌.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중국 서부지역 개발의 마스트플랜을 짜는 실무 총책은 중국 거시경제의 총설계사 쩡페이옌 국가계획위원회 주임(62). 쩡 주임은 중국 최고의 부자도시로 성장한 상하이(上海)시 공업화의기초를 마련한 인물로 한국 경제에 대해서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는 한국 경제통이기도 하다.온화한 성품에 비교적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명석한 두뇌와 국제적인 감각을 갖췄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젊은 시절을 주로 상하이 전기과학연구소 등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면서 당시 상하이 시장이던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주룽지(朱鎔基)총리에게 경제이론의 토대를 제공하며 교분을 쌓아 장 주석과주 총리의 신임이 두텁다. 저장(浙江)성 샤오싱(紹興)에서 태어난 쩡 주임은 62년 중국 이공계최고의 명문대학인 칭화(淸華)대 무선전기학과를 졸업,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승승장구했다.상하이 전기과학연구소 팀장과 미국주재 중국대사관 상무관을 역임했으며,93년 국가계획위 부주임을 거쳐 98년 주임에 올랐다.국가계획위는 우리나라의 옛 경제기획원과 같은 역할을 하며,주임은 장관급인 부주임을 4명이나 거느리고 있는 경제 수석장관이다. 국가계획위 부주임을 맡으면서 국가경제의 전 분야에 대해 두루 경험을 쌓은 그는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중국의 9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이 덕분에 21세기의 10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는 총책임자라는 막중한 임무도 맡았다.최근 시장경제 체제의 전통산업에 대한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첨단기술 개발과서부지역 개발의 투명한 자금배분 등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21세기 중국의 변신](2)당·정’젊은 피 수혈’바람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젊고 창의적인 새로운 피를 수혈하라”.중국 공산당이 21세기 초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국제적인 흐름’에잘 적응하고 참신성과 청렴성을 겸비한 젊은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진취적이고 창의력과 청렴성을 겸비한 젊은 간부들을 중앙 및 지방의 당·정 고위직에 대거 발탁한다는 내용의 ‘680세대 충원’ 계획.공산당 조직부가 최근 국무원 및 각 성(省)정부이하의 고위간부 선발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베이징(北京) 동부의 하계 휴양도시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열리는 공산당 최고 지도부 회의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680세대’는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에서 공부한 세대를 가리키는 말.우리나라의 ‘386세대’에 해당하는 셈이다.‘680세대 충원’계획에 따르면 당조직부는 부장(장관급)과 성장(省長·장관급)은 40대 초반의 예비 간부를 최소한 1명,시장은 적어도 1명의 40세 이하 간부,현장(縣長·군수급)은 2명의 30세 전후 간부를 양성할 방침이다.특히 시장이나 현장은 58세나 55세,중앙부처 과장급 간부는 52세에 2선으로 물러나도록 하는 방안도 담겨 있어 고령 간부들의 퇴장과 신진세대의 등장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중국의 ‘녠징화’(年輕化·연소화) 바람은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지난 4월 아시아·유럽 순방 이후 70세 이상 중앙위원들을 대거퇴진시키고 40∼50대 간부들로 자리를 메꿀 것임을 강조하면서 본격화됐다.당조직부는 이에 따라 산둥(山東)성에서 전문가회의를 열어‘680세대 충원’계획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가졌다.쩡칭훙(曾慶紅) 당조직부장은 “젊은 간부 발탁에만 그치지 말고 이들에게 상임 부부장(차관급) 등의 직책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정치권에태풍이 일 것임을 내비쳤다. 공산당이 고위간부들의 ‘녠징화’에 골몰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신세대들이 기성세대보다 새로운 정치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높은데다,상대적으로 청렴해 부정부패 척결운동을 펴는데도 유리하기 때문이다.빌 클린턴 미 대통령(54)·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46)·천수이볜(陳水扁) 타이완 총통(49)·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49)등 세계의 지도자들이 40∼50대로 연소화됐다는 점도 감안됐다. 따라서 오는 2002년 가을에 열리는 16차 당대회에서 선출되는 당중앙위원들의 연령은 15차 대회 중앙위원들에 비해 5살 정도 젊어진 60세 안팎이고 정치국 상무위원도 70세를 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공산당은 고위직 관리에 대한 공개모집 제도의 활성화 등을 통해서도 연소화를 추진하고 있다.중국 최고 인민법원이 가장 앞서 실천하고 있다.최고 인민법원은 최근 반탐오회뢰국장(대법원 중앙수사부장)을 첫 공개모집한데 이어,7명의 심판정(재판장)·부정장(배석판사)도공개 모집하기로 했다. 지방 정부들도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헤이룽장(黑龍江)성은 대학 학력 이상의 지도층 인사들을 대상으로 부청장급 인사를 공개모집해 무려 3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45명을 선발했다.선발된 부청장급 인사의평균연령이 36세이며,최연소자는 29세였다.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에서도 지방 중소기업인 향진(鄕鎭)기업을 관리하는 국장과 인사청장등 고급간부를 공개모집,8명을 선발했다. khkim@. *40대기수 선봉 외교부 3인방.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40대의 연부역강(年富力强)한 인재의 산실중 하나는 중국 국무원 외교부이다.탕자쉬안(唐家璇) 외교부장은 이미환갑을 넘긴 62살의 나이지만,40대 후반의 젊은 인재들이 외교부의중추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부의 40대 핵심라인은 세계 외교 중심지인 유엔과 미국을 무대로 맹활약하고 있는 선궈팡(沈國放) 미 뉴욕의 유엔대표부 대사와 ‘13억 중국의 입’으로 불리는 주방자오(朱邦造) 대변인,왕이(王毅)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 등이다. 선 유엔대표부 대사(48)는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같은 장쑤(江蘇)성 출신으로 영어에 능통하고 세련된 국제감각을 지니고 있다는평가를 받고 있다.특히 외교부 대변인 시절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세계 특파원들을 잘 요리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장 주석과 첸치천(錢其琛) 부총리와 같은 계열로 강한 추진력을 갖추고 있으며 임기응변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외교부내 유럽통인 주 대변인(47)도 장쑤(江蘇)성 출신으로 베이징(北京)외국어대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다.스위스 제네바대와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에도 유학했다.영어와 프랑스에 능통하고 98년 대변인이 되기 전 9년동안 외교부 번역실에서 근무했고 외교부 유럽과장·벨기에대사관 공사 등을 거쳤다. 중국의 경우 국가원수나 공산당 정부의 대변인이 따로 없는 탓에,우리나라로 치면 청와대·집권당·정부 대변인 등 3가지의 역할을 합한 중책을 맡고 있는 셈이다. 왕 부장조리(47)는 일본 대리대사를 지낸 일본통.95년 아주사장(국장)에 올라 중국 외교부내 최연소 국장으로 발탁됐다.문화혁명 후 시험을 거쳐 대학에 진학한 첫 세대로 일처리에 합리적이라는 평가를받고 있다.97년 2월 황장엽(黃長燁) 망명사건 때 당시 탕 외교부 부부장과 함께 한국과 북한의 협상 파트너로 활약했다.
  • 피터 홉커크 ‘실크로드의 악마들’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벽화 60점을 비롯해 조각,공예품 등 1,700여점의중앙아시아 유물이 보관돼 있다.일본인 소장가 오타니 고즈이의 손에서 옮겨온 것이다.이 유물들은 중앙아시아 타림분지에 있는 고대 오아시스 도시들에서 수집된 것으로 미란,호탄,쿠차,투르판,돈황 등 주요 유적지의 유물들이망라돼 있다.혹자는 이만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그러나 문제는 컬렉션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에 대한 우리의 초라한 인식이다.아시아의 패자를 꿈꾼일본이 19세기 이래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연구해온 것과 퍽 대조적이다.다행히 최근들어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하지만 그 기반은 아직 허약하다. 마침 중앙아시아의 탐험의 역사를 생생하게 담은 책이 나와 관심을 모은다. 영국 ‘더 타임스’의 아시아 관련 전문기자 출신인 피터 홉커크가 쓴 다큐멘터리식 이야기 실크로드의 악마들(김영종 옮김·사계절 펴냄)이다. 실크로드는 중국의 장안과 로마의 콘스탄티노플을 이어주는 비단길.실크로드는 오늘날의 북경에서 시작해 난주,돈황을 거쳐 중앙아시아 5개국(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키르기스탄)과 카프가즈,이란 북부지역을 통과해 소아시아의 이스탄불과 유럽에 이른다.이 실크로드의 주변지역은 오리엔트와 스키타이,메소포타미아 등 인류의 문명이 발생한 곳이며 조로아스터교,마니교,불교,기독교,이슬람교 등 여러 종교가 태동한 지역으로 수많은 유적지가 남아 있다.불교문화 전성기인 8세기에 신라승 혜초는실크로드를 통해 인도를 다녀와 ‘왕오천축국전’을 썼고,당나라 현장도 이길로 서역을 다녀온 뒤 ‘대당서역기’를 남겼다.그러나 그 발자취는 오아시스 도시들이 모래바다 속에 묻힌 이래 긴 세월동안 신비에 싸여 있었다. 지금의 중국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 속하는 고대 오아시스의 폐허 속에서 문명사에 획을 그을 유물들이 발견된 것은 20세기 초반에 이르러서다.20세기초반부터 1930년 중국이 유물반출에 대한 금지령을 내릴 때까지 약 30년동안 스웨덴,영국,독일,프랑스,미국,러시아 등 서양 열강과 일본의 탐험가들은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따라 오아시스 도시에 묻혀 있는 수많은 유물들을빼내갔다.저자가 책 제목으로 사용한 ‘악마들’이란 말은 바로 이 ‘고고학적인 도적질’과 무관하지 않다.이 책은 그 경로와 숨겨진 이야기들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 밝혀낸다.특히 스웨덴의 스벤 헤딘,영국의 오렐 스타인,독일의 알베르트 폰 르콕,프랑스의 폴 펠리오,미국의 랭던 워너,그리고 일본의오타니 고즈이 등 유물발굴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여섯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유물들을 ‘톤 단위로’ 빼내간 탐험가들의 행위가 정당한 것인가 짐짓 진지하게 묻는다.그들의 행위는 ‘약탈’임이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유물을 그대로 뒀다면 원주민들과 이교도들에 의해 더 많이 훼손됐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저자는 서양 열강의 유물 약탈행위에 대해 판단을 유보함으로써 사실상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중국 정부가 30년 가까이 외국인들의 유물 밀반출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도 의문점이다.서구의 근대가 자랑하는 이른바 ‘공정성에 기반을둔 합리성’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되묻게 하는 대목이다. 김종면기자 jmkim@
  • 中과 新밀월 구축… 美패권 견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7일 밤 수도 베이징(北京)에 도착,첫 중국방문에 들어갔다. 푸틴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아시아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강화,미국에 밀리지 않겠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중국과의 공조를 통해 러시아의 입지를 강화,‘강력한 러시아’를 대내외에 과시하겠다는 의도다.미국이 주도하는 ‘단극화’ 세계질서에 맞서려면 러시아와 ‘공동대응’하는 것이 중국에도 유리할 것이란 계산을 깔고 있다.미국을 한 축으로 한 반대편에 러시아와 중국이 힘을 합쳐 새로운 축으로 자리잡겠다는 것이다. 푸틴은 이를 위해 우선 18일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계획이 동북아의 전략적 안정을 파괴시키고궁극적으로 이 지역의 군비경쟁을 강화한다는 점을 부각시켜 반대 의사를 재천명할 방침이다.21세기 전략적 동반자관계 강화 방안도 구체적으로 논의 할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은 미국의 NMD 계획에 대한 반대 외에도 여러가지 공통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특히 남북 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에서 발언권을 확보하기 위해 두 나라는 협력과 경쟁이 불가피하다.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이후 변화한동북아 정세를 이용 중국-러시아에 북한까지 끌어들여 미국의 영향력 확대에맞선다는 푸틴의 전략을 감안하면 한반도 정세에 대한 논의는 이번 중국 방문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탄도탄 요격미사일(ABM) 조약의 준수,중국의 키에프급 항모 등 러시아제 무기 구입과 군사기술 이전 문제,양국간 경제협력 문제 등도 주요 현안으로 논의될 것이다. 푸틴은 특히 러시아가 체첸사태로 서방의 공격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이를‘내부문제’로 규정하고 있는 중국과 ‘인권 문제’에 공동전략을 취하려들 것으로도 추측된다.중국도 티벳 및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의 독립 문제라는 ‘아킬레스건’을 갖고 있는 만큼 ‘인권’ 문제에 있어서도 서방에 공동입장을 취한다는 것이다.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외교부장은 “푸틴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앞두고 주요 현안들에 대해 철저히 준비해온 만큼 중·러 협력의 새로운 모델을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고르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세계의 전략적 균형 유지와 ABM의 조약 준수 등을 촉구하는 내용이 공동성명에담길 것”이라며 “핵무기를 갖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입장은 그 어떤 나라(미국)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중·러 관계 주요일지. ■89년 5월 고르바초프 서기장 방중.60년대 국경분쟁 이래 계속된 대립관계종지부■90년 4월 리펑 중국총리 소련방문.동부국경협정 타결■92년 12월 옐친대통령 방중.군사협력등 21개항 공동선언 발표■94년 5월 체르노미르딘 러총리 방중.이중과세·탈세방지협정등 서명■98년 11월 장쩌민 주석 방러.서부지역국경문제 해결■99년 2월 주롱지총리 방러.가스관 건설등 경제협력 합의■2000년 5월 푸틴대통령 취임■2000년 7월 러·중 정상 중앙아5개국 회담 참석.NMD공동대응등 다극화 지지[베이징 김규환특파원]
  • 中, 대륙간 탄도탄 시험발사 임박

    중국이 유럽 전역과 미국 서해안 일대를 사정거리안에 두는 대륙간 탄도탄미사일을 시험발사할 계획이어서 미국,일본 등 주변국들이 긴장, 중국에 대한 감시활동을 강화했다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모닝 포스트가 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 방위청 관계자의 말을 인용, 미국이 지난 5월 ‘중국이 곧사거리 8,000㎞의 둥펑(東風)31형(型) 대륙간 탄도탄 미사일을 시험발사할계획’이라는 첩보를 입수했으며 이에 따라 일본 오키나와의 가데나기지,아오모리현의 미자와기지 등에 미사일 발사 탐지가 가능한 정찰기(RC135S)와함정 등을 배치,24시간 감시활동을 펴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시험발사에 성공한 바 있는 둥펑31형 미사일은 산시성(山西省)우자이(五寨)의 미사일 기지에서 발사돼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의 사막지역에 떨어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이곳은 중국이 밝힌 발사 및 탄착지점이다. 둥펑31형 미사일은 중국 남부 광둥성(廣東省) 광저우(廣州)에서 발사되면유럽 전역을,또 발사지를 동북부 헤이룽장성(黑龍江省)으로 옮기면 미 서부시애틀을 목표물로 삼을 수 있어 미국에 대한 실력 과시와 함께 타이완도 위협하는 일석이조 효과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성도(星島)일보는 타이완 군사 관계자 말을 인용,중국은 둥펑 31형 미사일을 해군용 함대지 미사일로 개량한 쥐랑(巨浪)2형 미사일도 개발해 핵잠수함에서 발사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쥐랑 2형은 잠수정에서 발사되기 때문에 미국 전역을 사정권에둘 수 있어 더욱 위협적이라고 덧붙였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khkim@
  • [시베리아 대탐방](9)고르노알타이共의 사슴목장

    ◆고르노알타이스크(러시아 고르노알타이 공화국) 김규환 특파원. 고르노알타이스크 시내 중심가를 조금 벗어나 자동차로 울퉁불퉁한 산골짜기의 좁은 길을 따라 1시간쯤 올라가면,100여마리의 사슴떼가 군데군데 모여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고르노알타이 공화국이 운영하는 가장 대표적인 카른 사슴목장이다.목장 입구에 거대한 사육사(舍)들이 쭉 늘어선 이 목장은 2m 정도 높이의 철조망으로 산골짜기 전체를 둘러막아,사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고 풀을 뜯어먹을 수있도록 돼있다. 방목장의 둘레는 무려 46㎞. 아나톨리 이바노프 카른 목장 사장(42)은 “이 목장에서는 1,600여 마리의사슴을 사육하고 있다”며 “녹용을 생산하는 수사슴이 700마리쯤 되고 암놈600여마리, 나머지는 새끼들”이라고 소개한다.그는 “생후 3년이 되면 첫번째 녹용을 생산하지만,질이 그다지 좋지 않아 판매할 수 없고,4년째가 되는해부터 생산되는 녹용을 팔고 있다”고 덧붙인다. 녹용은 5∼7년생짜리가 가장 질이 좋은 것으로 치며,11년생이 되면 녹용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질도 크게 떨어져 쓸모가 없어진다.사슴에 따라다르지만 그 뒤에는 녹용 생산이 거의 중단되고 고기로만 팔리는 신세가 된다. 녹용의 생산은 6월 한달동안 이뤄진다.이때 카른 사슴목장에는 뿔을 자르기위해 설치해 놓은 1m×1.5m 크기의 10여개 칸막이가 바쁘게 돌아간다.6월 초순부터 녹용을 생산할 만한 사슴들을 한마리씩,한마리씩 칸막이로 보내 정성스럽게 자르는 탓이다. 사슴 뿔은 자르는 날짜가 각각 따로 정해져 있어,사슴목장에서는 녹용 생산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사슴을 출생월일에 따라 서로 다른 칸에 넣어 기른다.이바노프 사장은 “사슴의 뿔이 하트 모양으로 예쁘면 양질의 녹용이 생산되기 때문에 뿔의 모양을 보고 판단한다”며 “이 시기를 놓치면 질이 좋은 녹용을 생산할 수 없어 녹용 생산시기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고 말한다. 현재 유통되는 녹용은 시베리아산으로 통칭되는 고르노알타이산과 중국산,뉴질랜드산,일본산 등이 있다.이 가운데 고르노알타이산 녹용이 가장 질이좋다고 한의사들은 입을 모은다.녹용은 사슴 뿔의 꼭대기 부분인 납편(蠟片)바로 밑에 있는 것으로,상대(上帶)·중대(中帶)·하대(下帶) 3개 부분으로나뉜다.상대가 가장 좋은 녹용으로 꼽히고 있다. 6월의 녹용 성수기를 맞으면 고르노알타이의 사슴목장들은 세계 곳곳에서몰려든 관광객들로 붐빈다.녹용 엑기스(진액)로 목욕을 할 수 있어서다.사슴뿔을 자르자마자 뜨거운 물에 푹 담갔다가 끄집어내는데,여기서 나오는 진액으로 목욕을 하는 것이다.이바노프 사장은 “예전에는 녹용 진액을 그대로버렸으나, 옛소련이 붕괴되고 개혁·개방 바람이 불면서 녹용 진액으로 목욕하면 몸에 좋다고 알려져 녹용 진액 목욕과 관광을 겸해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며 “녹용 진액 목욕이 사슴목장의 또다른 외화벌이 수단이 되고 있다”고 귀띔한다. 카른 사슴목장의 40% 정도는 새끼를 낳는 암놈이다.암놈은 한해 한마리의사슴을 낳는 게 정상이지만,그렇다고 해마다 새끼를 낳는 것은 아니다.사슴의 세계에서는 수사슴중 힘센 놈이 보통 10∼15마리의 암놈을 데리고 다닌다.힘없는 수놈들은 암놈을 차지하지 못하는 철저한 적자생존의 원리가 여기서도 적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사슴목장에서 대량 생산된 녹용은 고르노알타이 공화국 대외무역부 관할의 녹용 보관창고로 옮겨져 보관된다.이 보관창고 입구에는 AK소총으로 무장한 경비원들이 삼엄한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2중,3중으로 자물쇠로 잠겨진문을 열고 들어가면 300평 남짓한 창고 안에는 녹용들이 가득 차 있다. 고르노알타이산 녹용은 최상품이어서 가격이 비교적 비싼 편이다.녹용의 수출 단가는 1㎏당 1,000달러선이다.세르게이 부카차코 고르노알타이 공화국대외무역부 수출시장 담당 사장(38)은 “녹용 수출액은 1급 비밀”이라며 “녹용 판매가 국가재정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한다. 고르노알타이 공화국의 사슴 사육목장은 모두 100여개.이들 목장에서 생산되는 녹용은 연간 20∼25t에 이른다.해마다 2,000만∼2,500만달러(약 240억∼300억원)를 벌어들이는 셈이다.생산되는 녹용의 85%가 홍콩 등 제 3국을통해 한국으로 수입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사슴 목장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영목장과 개인이 운영하는 사영(私營)목장으로 나뉜다.고르노알타이 공화국 그레고리 차쿠라셰프 경제부장관은 “사슴목장중 규모가 큰 것은 30여개이며 한 곳에서는 1,000마리 이상의 사슴이있다”며 “30∼200마리 정도를 사육하는 중소 규모의 목장은 70여개가 있고,개인이 주로 운영하는 10마리의 이하의 초소형 목장도 많이 있다”고 밝혔다. khkim@. ** 체쿠라셰프 경제부장관 인터뷰. ◆고르노알타이스크 김규환 특파원. “고르노알타이 공화국은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녹용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고르노알타이산 녹용을 많이 이용해 주십시요” 국가 최대의 산업이자 외화벌이 수단인 녹용 수출의 홍보맨으로 자임하고나선 고르노알타이 공화국의 그레고리 체쿠라셰프 경제부장관(48).한국·중국 등에서 고르노알타이산의 녹용이 질 낮은 뉴질랜드산과 혼동되는 게 무엇보다 안타깝다는 그는 고르노알타이산 녹용에 대한 선전부터 늘어놓았다. 남한과 비슷한 크기(9만2,000㎢)에다 인구가 20만명에 불과한고르노알타이공화국은 주민들의 75%가 목축업 등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농업은 국영과 개인 등으로 나뉘어져 있는데,농업도 국영이 기본이며,개인 영농은 이제 걸음마 단계이다. 고르노알타이 공화국은 농업 중에서도 사슴·소·양·염소 등 주로 목축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체쿠라셰프 경제부장관은 녹용과 사향 등을 팔아 국가재정의 30%를 메우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고르노알타이 공화국은 기본적으로 사슴 사육 등 목축업에 중점을두고 있으며,무진장하게 매장된 광물자원을 개발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볼 때최대의 목표라고 덧붙인다. “고르노알타이 공화국의 산업구조가 농업에 편중된 결과 공산품과 농산품의 가격차가 심화되면서 매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이 때문에 부족한외화를 주로 러시아 연방정부에 의존하다보니 자체적인 경제발전을 기대하기에는 사실상 힘든 상황입니다” 체쿠라셰프 경제부장관은 그러나 고로노알타이 공화국이 해발 4,000m의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는데다 철도망이 개설돼 있지 않는 등 사회간접자본시설(SOC)이 기본적으로 뒤떨어져 있어 이곳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 금·철광 등자원을 개발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삼림자원은 매우 풍부하지만 벌목하는데 필요한 임도(林道)가 제대로닦여있지 않은데다,벌목 장비 또한 부족한 탓에 아직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어 구체적인 삼림개발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전한다. “부족한 외화를 벌기 위해 우선 우주의 기를 받는 곳으로 널리 알려진 벨루하 관광과 식물관광,스키관광,사냥관광,계곡물 타기(카누) 등의 관광상품과 전통문화 및 문화유산을 개발,미국·일본·한국·캐나다 등의 관광객을집중적으로 끌어들일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러시아 연방의 외국인 투자법을 적절히 개정,외국 자본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그는 강조한다. 체쿠라셰프 경제부장관은 외국인들의 자본유치를 위해 특별 조치를 취할 계획은 있지만,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단계가 아니라며 한국과는 녹용 교류에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중국의 신장(新彊)위구르 자치구와 삼림 공동개발을 할 계획입니다. 이번에 고르노알타이의 삼림자원 개발에 한국이 참여하길 바라며,고르노알타이의 자원개발에 한국의 자본을 유치했으면 합니다”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2000-9595)
  • ‘서울 드럼페스티벌‘ 24∼28일 광화문일대서

    전세계 북소리의 향연이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펼쳐진다.오는 24∼28일 광화문일대에서 열리는 ‘서울드럼페스티벌,세계의 북소리99’는 각 대륙을 대표하는 해외 8팀과 국내 최고의 타악그룹,그리고 예선을 거친 국내외 157 사물놀이 팀이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 타악인의 큰 잔치. 서울시와 서울드럼페스티벌조직위원회가 서울시민의 날(28일)을 맞아 올해처음 마련한 행사로 축제 부문인 ‘서울드럼페스티벌’과 경연 부문인 ‘세계사물놀이 겨루기 한마당’으로 나눠 진행된다. 먼저 ‘서울드럼페스티벌’에는 해외 6개국 8개팀과 국내 13개 팀이 참가한다.브라질 리듬을 기본으로 타악기에 색소폰 키보드 베이스 등을 곁들여 연주하는 독일의 테라 브라질리스를 비롯해 마라톤과 연주를 병행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일본의 온데고자 등 쟁쟁한 연주그룹들이다.중국의 경주고악단,위구르북춤단,호주의 토레스전통무용단,터키의 무라트 구롤,네덜란드의 전통 타악연주단도 색다른 북소리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에선 김덕수가 이끄는 사물놀이패 한울림을 비롯해 김대환,강태환과 박재천,박병천,창작타악그룹 푸리,최소리,설장고 탭 댄스팀,타악기앙상블 4플러스,서울풍물단 등 정상급 연주자와 연주단체가 대거 참가한다.이들은 24일 광화문 네거리와 세종로 일대에서 열리는 개막 길놀이를 시작으로 축제기간 내내 덕수궁길과 정동삼거리,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타악연주의 진수를선보인다. 지난해까지 개별적으로 열리다 올해부터 서울드럼페스티벌의 일부로 개최되는 ‘제8회 세계사물놀이 겨루기 한마당’에는 해외 7개팀,국내 150개팀이참가한다.이들은 사물부문과 풍물부문,창작부문,외국인 및 해외동포부문 등4개 부문으로 나눠 열띤 경연을 벌이게 되며,대상인 대통령상과 최우수상인국무총리상 등 우수 단체들을 선정해 시상한다.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개막 길놀이와 폐막공연.24일 오후2시 광화문과세종로일대에서는 2,000여명의 전세계 북잡이들이 북을 치는 장관이 펼쳐지고,28일 오후7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의 폐막공연에서는 페스티벌에 참가한 해외 8개팀과 국내 4개팀이 동서양의 전통과현대 타악의 절묘한 어우러짐을 보여준다. 행사기간중에는 우리장단 및 전래동요 배우기와 사물장단 배우기,상모돌리기 및 북소리 크게 내기 경연대회,야외 카페 등 부대행사도 마련해 축제분위기를 한껏 돋울 예정.모든 공연은 무료이며,폐막공연 초대권은 서울드럼페스티발조직위원회 홈페이지(www.drumfestival.com)나 사무국(02-766-0548)에서선착순으로 나눠준다. 이순녀기자 coral@
  • 중국기행/폴 써로우 지음(화제의 책)

    11시가 지나자 승객들이 복도로 몰려 나왔다. 기차가 중국의 남과 북을 가르는 양쯔강을 횡단하기 때문이었다. 중국 북쪽 사람들은 오만하고 싸우기 좋아하며 냉담하고 정치적이다. 반면 남쪽 사람들은 말이 많고 친절하며 자기만족적이고 상업주의적이고 단정하지 못하다고들 한다. 중국을 기차로 돌아 다니려면 1년 남짓 걸린다. 미국의 세계적 기행작가인 폴 써로우가 기차를 타고 중국 곳곳을 다니며 누비벼 쓴 중국 기행문이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뿐 아니라 티벳,신쟝의 위구르 자치구,랑시앙의 원시림 등 신변의 위험이 도사리는 오지에서도 며칠씩 머무르며 중국을 관찰했다. 서계순 옮김/푸른솔 1만8,000원
  • 최승희 춤 재현 백향주 춤판

    한때 조선예술사의 잘려나간 반쪽에 속해 있었던 최승희.그 최승희의 춤을 재현한다는 북한 국적 무용수 하나가 29∼30일 하오 7시30분 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주인공은 재일교포 4세 백향주. 최씨는 한국무용사가 세계에 내세울 만한 무희.30년대 ‘신무용’ 선구자로 중국,일본에서까지 각광 받으며 315개나 되는 안무를 만들었지만,46년 월북하며 남에서 묻히고 60년대 숙청돼 북에서도 사라졌다.해빙무드를 타고 80년대 말에나 재조명이 시작됐다. 방년 23세의 백씨도 중국·일본에서 먼저 인정받은 실력파.무용가였던 아버지 손에 이끌려 3세때부터 춤을 춘 백씨는 15세때 북경 중앙민족대학 무용학부에 유학,최우등으로 졸업한다.최승희 춤을 배우게 된건 최씨 양자로 알려진 북한무용가 김해춘 문하에 들면서.이때 사사한 레퍼토리로 일본공연에서 ‘최승희의 재래’라는 격찬도 받았다.그런가하면 한국에서도 전통무용가 정민을 사사했고 몽골,위구르,타이,티벳 등 아시아 춤도 두루 익혀 무용세계를 넓혀온 학구파. 공연은 ‘우조춤’,‘초립동’,‘무당춤’,‘칼춤’,‘고구려무희’,‘관음보살무·비천무’ 등 말로만 듣던 최승희 춤의 정수를 눈으로 만날 기회.598­8277.
  • 新疆·위구르 독립단체/對중국 폭력투쟁 강화

    【홍콩 연합】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의 분리독립주의자들은 북아일랜드가 오랜 폭력투쟁 끝에 영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한데 고무돼 독립을 위해 폭력투쟁 노선을 강화키로 했다고 홍콩의 빈과일보가 14일 보도했다.신문은 해외에 있는 위구르족 독립운동단체들의 말을 인용,1천만 위구르인들중 특히 젊은 세대들이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하고 있다고 말하고 중국측이 협상을 요구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동서문화의 북방 통로(중앙아시아를 가다:15)

    ◎고구려,만리장성 북로 이용 서역과 교류/외교사절·통신 등 비밀 유지 위해/비단기 요충지 중원 피해 왕래/서역선 만리장성 남로 따라 고구려로 청동기 이전부터 유라시아 대륙에는 민족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그이동 통로는 한대 이후에는 비단길이라고 부른 고대 상업유통로였다.교역 상품들은 멀리 한국에서 영국까지 유통되었다.그러나 몽골제국 시대를 제외하고는 이 교역품들은 한번에 비단길의 끝에서 끝까지 간 것이 아니었다.여러 번 되팔리면서 여러 차례의 단거리 운송 끝에 유라시아 대륙의 끝까지 전해졌던 것이다.그 주 통로가 두말 할 필요없이 중앙아시아였다. 그리고 무역은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었다.이때문에 중앙아시아의 고대 및 중세 도시는 타지역과 비교할 수 없는 굉장한 부를 누릴 수 있었다.지역적부를 차지하기 위하여 중앙아시아에 세계사적 대정복전쟁들이 일어났던 것도 그 지역의 부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알렉산더 대왕,한나라,이란의 사산 왕조,당나라,티베트 왕조,위구르 왕조,몽골제국,또 청나라가 각각 중앙아시아의 비단길을 장악하려는 전쟁을 일으켰다.그러나 역사적으로 제국의 관심을 샀던 비단길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열강국 ‘비단길 장악’ 전쟁 청나라가 동투르크스탄 곧 신강성을 점령할 즈음,유럽의 열강이 해양을 통해 직접 중국으로 들어왔다.따라서 비단길은 급격하게 고립되고 그 기능이 상실되었다.이어 19세기에는 러시아가 서투르크스탄을 정복하면서 동서교류의 통로인 비단길은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일정구간의 물품유통은 당연히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나 오아시스를 거쳐서 이동되었을 것이다.그러니까 서역에서 온 상품들은 신강성에서 하서주장을 따라 난주를 지나 서안에 이르러 집하되었다.이 상품들 가운데 얼마가 고구려까지 전달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남북조시대는 많은 소국들이 중원에 난립한 때다.그 상품들이 중원을 지나자면 여러 번 통관세를 내는 번거로움을 치르고 나서야 고구려의 영토인 만주와 한반도에 전달되었을 것이다.이익을 위한 순수 상품의 유통일 경우에는 그런 과정을 밟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이익을 위한순수상품이 아닌 경우에도 반드시 중원을 거쳐서 고구려에 왔을까 하는 의문이 간다.예컨대 고구려와 돌궐 칸 사이의 외교사절이나 중요한 통신같은 경우는 오히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중원을 피해서 서역에 갈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고구려에서 전교할 것을 이미 결정하고 전교행을 떠난 서역의 스님들 역시 그렇다.도중에 중원을 관광하기를 원하지 않는 한,중원을 우회할 수 있는 통로를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어떤 이유에서든지 서안에서 낙양과 북경을 거쳐 요동에 이르는 통로,곧 만리장성 남로를 피하여 고구려에 오는 길을 택한 동서교류가 있었던 것이다. 이를 가장 잘 웅변해 주는 사건이 양무제때의 삼론종의 조사 승랑이었다.승랑은 원래 도사였기 때문에 저술을 남기지 않아 결국 송나라때의 ‘송고승전’에 빠졌다.그러나 그의 손자벌 제자인 가상 대사 길장이 그가 지은 ‘대승현론’과 ‘삼론현의’에서 다음과 같이 거듭거듭 강조한다.승랑은 요동에서 온 고구려 승려로서,양나라 무제때에 화남의 섭산으로 내려왔다.그가 가르친 공사상의 핵심이 진속합명중도인데,이는 대승불교의 공사상을 가장 온전하게 전하는 논리로서 길장 자신은 물론이고 삼론종의 사상적 근거를 이룬다.이러한 주장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공사상은 대승불교의 사상적 근거이기 때문에 삼론종은 중국에 대승불교를 건설하는 이론적 초석의 역할을 했다.다시 말해서 삼론종은 당나라의 대승불교를 유도한 안내자였다.이처럼 중요한 삼론종의 조사가 승랑이었다는 사실을 길장이 주장하는 것이다.그런데 승랑은 이미 요동에서 명성을 쌓고,화남으로 내려왔던 것이다.그리하여 양무제가 그를 모시려 해도,이를 뿌리치고 승랑은 산간에서 공사상의 진정한 뜻을 제자들에게 전하여 삼론종의 논학을 일으켰다.그리하여 공사상은 극동의 불교문화를 변화시키는 효시의 역사적 역할을 감당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승랑만큼 큰 역사적 역할을 했던 한국 사상가가 또 있었던가.우리는 어째서 그를 잊고 있는 것인가.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중원의 불교문화를 전환시킬 만큼 큰 힘을지닌 승랑과 같은 사상가는 결코 본인 당대에 나타날 수 없다.그만한 인물이 나타나기 위해서는,그를 성장시킬 수 있었던 불교 사찰이나 문화센터가 있어야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다.그런데 요동의 불교문화센터는 중원의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랑은 요동에서 성장했다.이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이미 투르크의 오르혼비문과 사마르칸트의 고구려 사신도를 거론하면서 고구려는 한문이나 한문문헌지식과 관계없이 멀리는 로마의 사절들과도 교섭했다는 사실을 앞에서 이야기했다.이런 맥락에서 승랑이 성장했던 요동의 불교문화센터는 중원을 거치지 않고 직접 요동으로 들어온 서역의 승려들에 의하여 용수의 중관론이 전해졌을 것이라는 상정이 가능하다.고구려에서 중원을거치지 않고 투르크의 세계,곧 서역으로 직접 이어지는 통로는 두 길이 가능하다. ○고구려 벽화에 서역인 등장 하나는 신강성까지 와서 고비사막을 직접 건너는 이른바 만리장성 북로이다.다른 하나는 신강성도 거치지 않고 천산북쪽 현재의 카자흐스탄의 대초원을 가로질러 알타이산맥과 바이칼호수 사이의 계곡을 타고 몽골로 들어와 만주로 닿는 대스텝 통로이다.아마도 신강성의 동투르크스탄과는 장성북로가 더욱 편리했을 것이고,서투르크스탄의 서쪽 중앙아시아까지 가는 데는 스텝통로가 더 유리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북방방통로를 통해서 고구려인들은 서역인들과 직접 교섭을 했기 때문에 고구려 벽화에는 코가 큰 서역인들과 씨름도 하고 격기도 하는 풍습을 그릴 수 있었다.그 뿐 아니라 신라인들은 위구르조각과 같은 서역과의 문화교류의 흔적들을 남겼다.이제는 서역과의 교섭사를 개방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 중국군 민간인 학살/신강·위구르 180여명

    【알마티 AP 연합】 중국 인민해방군이 지난 2개월동안 신강·위구르자치구에서 2천100명 이상을 체포했으며 분리·독립운동주의자를 포함해 186명을 살해하는 등 ‘인종학살’을 자행하고 있다고 한 분리주의 운동단체가 26일 주장했다. 카자흐스탄공화국 수도 알마티에 본부를 둔 신강·위구르 독립운동단체인 국민혁명전선연합의 무히크딘 무흘리시 대변인은 “이는 명백한 인종학살”이라며 인민해방군의 잔혹행위를 규탄했다. 무흘리시 대변인은 지난달 1일 ‘몰아내고 파괴하자’라는 구호 아래 인민해방군의 대대적인 탄압작전이 시작됐으며 이달 중순에는 11만명의 병력이 추가로 신강지역에 증파됐다고 말했다.
  • 동서문화 장벽 ‘천산’(중앙아시아를 가다:7)

    ◎당,751년 ‘천산전투’ 이슬람에 패배/중의 중앙아 포기,이슬람화 가속 천산을 넘었다.우루무치를 떠나 알마아타로 오는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설산은 장관이었다.사막을 풍요로 가꾸어주는 만년설을 인 설산 준봉들이 끝없이 늘어섰다.그 천산은 알마아타공항에 내렸을때도 마치 군림하는 자세로 여전히 우뚝했다.카자흐말로는 티엔산이다.옛 소련연방시절에도 그랬지만,자연풍광이 수려한 천산을 넘으면 늘 푸근한 감회가 안겨왔다. 그것은 천산너머 첫 도시 알마아타에 사는 사람들 때문인지도 모른다.그들 카자흐인들은 우리민족과 아주 가까운 친연관계의 문화를 지녔다.그래서 문화에서는 친근감이 우러나고 사람들은 정겨웠다.처음 알마아타를 찾았을때 당혹스러웠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전화교환원과 영어로 대화를 하면서 그들은 ‘차이나(중국)’가 무슨 뜻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위구르족도 불교서 개종 그들은 중국을 러시아말로 ‘기타이’라 했다.이말은 알고보면 우리말에 뿌리를 두었다.우리말의 거란을 중국식으로 발음한 ‘기단’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다.그러니까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에서는 중국인을 요나라 사람들인 거란족으로 알고 있었다.우리 역사속에서 비중있게 조우한 중국 동북지방의 그 거란족이다.중국인들이 회홀 또는 회골이라 부르던 위구르족들의 종교라는 뜻에서 이슬람을 회회교라 했다는 것은 지난번에 밝혀 두었다.그러나 위구르족이 불교에서 실제 이슬람으로 완전 개종한 시기는 14세기의 일이다. 이들 두가지 사례는 참으로 놀라운데가 있다.중국은 한대이후 22세기 동안의 역사 가운데 절반 이상을 유목기마민족의 침략을 받았다.그렇다면 중국은 기마민족의 주무대인 서역의 정보를 언어체계 안에제대로 반영했을 법도 하다.하지만 중국의 언어문화체계는 이러한 상식적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기마민족들 역시 22세기동안 교역과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던 중국역사의 실체에 무지했다.얼마나 몰랐으면 중국인을 거란족으로 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은 문화의 장벽은 천산에서 비롯되었다.그래서 천산을 넘으면 중국은 없었다.751년 고구려의 고선지 장군이 이끈 당나라 군대와 지아드 이븐 살리히 휘하의 이슬람군이 천산 서북쪽 탈라스강에서 맞붙었다.닷새간 벌어진 치열한 싸움에서 당군이 패배했다.이는 중국세력이 천산너머의 중앙아시아 대초원을 포기하는 계기가 되었다.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이슬람화를 부추겼다. 그렇듯 탈라스전투는 세계사의 한획을 그었고 또 천산의 문화장벽을 한층더 높였다.중앙아시아에 가면 한문은 실제 신화에 나오는 문자에 불과했다.중국문화가 배어들어 온 흔적이 없는 것이다.다만 한무제가 서역정벌에서 남긴 차를 마시는 습관만이 있을뿐이다.그 천산너머의 사람들은 건조한 기후조건을 이겨내기 위해 발효한 검은차를 마셨다.검은차를 마시면서 사는 사람들은 그 옛날 몽골이나 알타이,또 중국과의 국경지대가 아니면 중국과 직접 교역하던 민족의 후예다.그들 문화가 얼핏 이슬람 일색인듯 하면서도 문화전통과 인종학적 혈통이 다른 까닭도 여기 있다. ○한문은 신화속의 문자로 중앙아시아의 민족과 문화는 참으로 혼돈스럽다.그 혼돈의 문제를 중앙아시아 종교사로 이해하려는 의도에서 나름대로 가닥을 잡아보았다.인종과 문화가 복잡하게 얽힌 가장 두드러진 까닭은 기마민족 탄생에 있다.청동기시대에 나타난 기마민족은 기마술을 이용한 민족의 대이동을 재촉했다.기원전인 BC 13세기쯤 인도유럽족의 한 갈래인 힉소스족의 기마병이 이집트를 쳤을때 이집트인들은 기마병을 처음 목격했다.그래서 말을 괴물로 여겼다. ○기마술로 민족의 대이동 인도유럽족이 기마술을 선도했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대목이 아닌가 한다.그리고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이보다 앞서 BC15세기말에 말을 처음 보고 산에서 자란 큰 당나귀로 여겼다는 것이다. 어떻든 BC2000년쯤 알타이와 남부 시베리아에 와서 아파나시에보 청동기문화를 이룩한 인도유럽족은 일찍 기마술을 터득했다.이는 정착농경이나 반농경생활로 삶을 꾸려오던 스텝지역 주민들에게 충격으로 작용했다.농경 대신에 가축으로 부를 가늠하는 유목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이 때문에 활동무대도 차츰 넓어졌다.그리하여 그리스어로 스키타이,이란어로 사카라는 왕조들이 BC8세기부터 기원후인 AD4세기까지 스텝지방과 북인도를 지배했다.그무렵 동서인종의 혼혈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몽골지역에서는 BC4세기부터 흉노가 일어나 서쪽으로 나갔다.AD5세기 중엽에는 아틸라왕이 중부유럽 전역을 완전히 휩쓸어 동서로마제국을 기진맥진한 상태로 몰아넣었다.흉노의 서진은 결국 게르만의 대이동을 가져왔다.이어 6세기 이후에는 돌궐 또는 투르크제국이 등장하고,오스만터키는 세계1차대전까지 유럽을 위협하는 대제국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흉노의 후예가 돌궐이다.이들은 여러 종족이 혼합한 정치세력이어서 인종적으로 매우 복잡하다.그러나 언어만큼은 동양어족의 말인 투르크어를 썼다.그러니까 인종으로 보아서는 복합적이었지만,문화적으로는 동질성을 지녔던 것이다.투르크족이 8세기쯤부터 이슬람화하면서 얼핏 투르크민족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특히 중국과 유럽 양쪽 눈에 비친 투르크는 더욱 더 그러했다. 그러나 청동기시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어로,때로는 인종적 혈연을 매개로민족의 정체성을 끈끈하게 이어오고 있다.그들 투루크족들에게는 아직도 같은 기마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 3천여년전의 여인(중앙아시아를 가다:6)

    ◎얼굴·옷·장신구까지 위구르족과 비슷/죽음의 사막 신강성 타클라마칸/해뜨면 45도가 넘는 건조한 기후/이곳 묻힌 주검은 완벽한 미라로 중앙아시아를 몇차례 여행한 경험에 비추어 타클라마칸사막을 찾는 일이마나 어려운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사막에 또 발을 들여놓은 것은 그만한 어려움쯤은 이미 각오를 해둔 터였기 때문이다. 막상 사막에 도착했을때는 그 결연한 의지가 흔들리기 시작했으나,다시 이를 악물었다.사막에서 죽으면 안된다는 생각은 투루판의 아시타나 고분군과 코알라박물관을 보고 나서 더욱 절실했다. 코알라박물관 진열장에는 3천년 세월을 뒤로한 미라가 잠을 자듯이 누워있다.해가 뜨면 45도를 웃도는 건조한 사막에 묻힌 주검은 곧바로 탈수되어 완벽한 미라로 변한다. 만약 나 자신이 사막에 묻힌다면 미라가 될 것이다.그리고 수천년 후에 세인의 구경거리가 될지도 모른다.사막에서 죽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된 연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우루무치박물관에서도 또 다른 미라를 보았다.이른바 ‘누란미인’라는 미라다.누란미인은 약 3천800년전에 죽었다. 그 여자는 인도 유럽족 곧 서양인이다.지금도 금발에 높은 코를 했고 깊은 눈의 속눈썹이 완연했다.서양여인이 분명한 여인은 고대 누란고성에서 발굴되었다.고고학자들은 이 미라를 누란미인이라는 뜻으로 ‘키쿠란 쿠잘리’라 명명했다. 누란미인이 처음 세상에 공개되었을때 위구르족의 반응은 대단한 것이었다.첫 대면의 순간 위구르족들은 ‘우리 민족의 어머니’라고 찬탄했다.그리고 ‘키루란 쿠잘라’는 바로 대중음악으로 작곡되어 위구르족들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지금도 시중에서 카세트를 쉽게 살 수 있다.누란미인과 함께 박물관에서 깊은 잠을 자는 미라들은 3천년전,다시 말하면 기원전인 BC1000년쯤의 사람들이다. 박물관의 미라들은 가죽세무옷을 입고 아직도 신발을 신고 있다.장신구는 물론이고 몸에 새긴 문신까지 생생했다.입고 걸친 옷과 쇼올,사슴가죽 부츠는 오늘날 위구르족 차림새 그대로다.얼굴 생김새 역시 위구르족인 미라 그들은 누구인가.BC1000∼2000년 아직 위구르족이라는 민족명칭이 생기기 이전사람들이 아닌가 한다.기원후인 AD 3세기 중국 기록은 몽골지방에서 내려온 여러 갈래의 유목민족 가운데 하나가 위구르족이라고 썼다.또 오르혼비문에는 717년 돌궐제국의 빌카칸이 셀렝가강변의 돌궐을 평정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투루크에 대한 최초의 자료인 것이다. 어느 쪽이든 위구르는 돌궐의 세력을 이어받은 투루크계의 왕조였다.그들은 돌궐의 본향이었던 알타이산맥과 내몽골 어딘가에서부터 오늘날 신강성지역으로 들어왔을 것이다.그리고 9세기 이르러 왕조의 영광을 누린 위구르는 소그드문자를 근거로 한 위구르문자를 사용했다. 그들은 14세기 회교로 개종하고 나서 아랍문자를 사용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위구르문자를 썼다. ○‘키쿠란 쿠잘리’로 명명 흉노와 위구르족의 고향인 알타이지역에는 우코크라는 데가 있다.그런데 우코크에서는 1993년 ‘파지리크 여사제’라고 명명한 미라가 발견되었다.지난 1995년 서울 경복궁으로 나들이를 나왔던 이른바 ‘얼음공주’가 그 미라다. 파지리크는 BC6~2세기 산지 알타이지역의 철기문화다.그런데 얼음으로 얼린 ‘파지리크 여사제’는 피부가 흰 백인이었음을 기억한다.고고학 자료들은 이미 청동기 시대에 백인종들이 시베리아 바이칼호반과 몽골,신강성일대에 들어왔다는 여러 정황을 밝혀낸 바 있다. 우리 청동기문화도 인종과 문화의 동서교류에 의한 파장의 하나로 일어났다.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동양인이 아닌 서양인 모습의 오늘날 위구르족에게서 우리는 더욱 많은 역사적 비밀과 인류의 역동성을 읽을수 있다.그러니까 고대로부터 서양인은 저 멀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였다. ○몸에 새긴 문신까지 생생 지금까지 위구르족 기원을 선명하게 정리하는 작업을 모두가 꺼렸다.그러나 이번 중앙아시아 현장답사와 역사적 지식을 근거로 감히 이런 결론을 내려보았다.적어도 BC2000년쯤 인도 유럽 어족인 이른바 아리안 또는 이란족이 카스피안지역에서 동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그들은 우선 바티칼호와 알타이지역까지 진출하여 자신들의 청동기문화를 아시아대륙 깊숙이 퍼뜨렸다.물론 아시아에도 청동기문화가 없지는 않았으나,아리안의 영향은 아시아 선사문화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다.그리고 인종도 섞여들었다. 위구르족은 결국 아리안편에 동양이 끼어들어 형성한 민족이다. 그렇듯 아리안의 피가 주류를 이룬 위구르족은 역사진행 과정에서 급기야 동양의 터키계 언어를 받아들였다.그들이 마치 위구르문자를 버리고 아라비아문자를 쓰는 것처럼 언어와 문자를 피보다 먼저 바꾸어 나갔던 것이다. ○알타이 지역까지 진출 우루무치로 가는 만원버스에서 마이라(마의랍)라는 위구르족 여인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그녀는 우루무치석유화학공단 병원에 근무하는 30대의 여의사였는데 미모가 뛰어났다.그녀의 집으로 초대되어 가서 만난 고등학교교장 출신의 그녀의 아버지 역시 잘 생긴 노신사였다.그 집에서 저녁을 먹는 동안 마치 러시아 가정에 초대 받은 착각을 여러 차례 느낄 정도로 가족모두가 서양인 인상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부러 추어준 것인지는 모르나 한국사람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예절이 바르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자신들이 늘상 만나는 중국사람들과는 다른 동양인을발견했다는 말이 분명했다.그와는 반대로 중국인들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개방적 인상을 그녀로부터 받았다. 그러니까 중국인들 사고속의변방인 위구르인과 한국인은 제각기 중국적인 가치를 매개로 상대방을 보았던 것이다. 중국 중심의 고정된 안목으로 마이라씨와 그 가정,곧 위구르족의 정체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들 위구르족은 우리를 중국 중심의 폐쇄적 사고 바깥으로 떠밀어 내기에 충분했다.
  • 위구르족의 땅 신강성(중앙아시아를 가다:5)

    ◎중국면적의 17%… 사막과 산맥으로/예부터 세갈래 무역통로의 교차로·요충지/상술 뛰어나 친구사이도 흥정하는 장사꾼 중국 신강성 타크라마칸 사막을 흔히 ‘죽음의 사막’이라 했다.그 죽음의 사막에 이르면 대자연에 압도되어 인간은 왜소해질 뿐이다.타크라마칸사막이 있는 신강성은 북으로 천산산맥,남으로는 곤륜산맥이 에워쌌다.그리고 서쪽은 카라콜룸산맥으로 막혀있다.이들 높은 산자락을 빼고나면 온통 사막인 신강성의 크기는 중국 전체면적의 6분의 1이나 되었다. 그 넓은 땅에는 위그루족과 카자흐족,기르키스탄족과 몽골족이 퍼져 산다.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위그루족이 신강성의 주인이다.투루판에서 신강성 수도 우루무치까지 두번씩 갈아탄 고장난 버스에서 만난 사람들도 거의가 위그루족이었다.차내 온도가 40도를 웃도는 만원 버스에서 그들과 꼬박 6시간을 함께 지냈다.그들은 불평 한마디가 없다.털털거리는 버스안에서 놀랍도록 인내심을 발휘하는 그들은 외국인에게 더 없이 너그러웠다. ○산자락 빼면 온통 사막 그 버스에는 일곱살 짜리 꼬마 승객이 탔다.로신이라는 사내아이였는데,차안이 덥고 지루한 탓인지 멋대로 딩굴었다.몸을 엄마한테 맡긴 로신이의 몸부림은 대단한 것이었으나 후덕한 엄마는 그 떼를 다 받아주었다.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보였던 그 사내아이의 조상은 본래 투루크의 한 갈래로 몽골지역에서 들어온 위그루라는 설이 있다.투루크,또는 돌궐은 흉노의 후예들로 모두 몽골 알타이산맥이 기원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위그루족은 몽골족과 다르다는 사실이 외모에서 드러난다.흉로와 투루크는 제 나름대로 각각 대제국을 세웠던 강력한 세력의 민족이다.그토록 큰 힘을 지녔던 민족이 몽골에서 왔다면,지금 몽골에 상당수의 투루크족이 살아야 할 것이다.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로신이의 선조가 아직은 불분명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비단길 한 목을 맡은 것은 분명하다.중국 서안에서 비단을 싣고 비잔틴에서 짐을 내리자면 반드시 타크라마칸사막을 거쳐야 했다.또 비잔틴과 로마의 공산품과 호탄의 옥을 서안으로 실어가는 길도 타크라마칸사막이었다.그렇듯 대상들이 동서를 오가는 목 좋은 길가에 살았던 위그루족의 상술은 뛰어났다.그것은 가히 체질적이었다. 위그루족을 장사속으로 만나지 않으면 무척 관대하다.그러나 일단 상업적인 거래라면 무자비할 만큼 안면을 바꾼다.친구 사이에서도 이익을 챙긴 흥정을 자랑으로 여길 정도라는 것이다.이슬람이 지닌 공통점이기도 한 위그루족의 상술은 물론 비단길에서 비롯되었다.농업생산에 삶을 의족한 전통적인 경사회 사람들 정서로는 헤아릴 수 없는 대목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타크라마칸은 중요한 전략요충지였다.서역의 유목민들로부터 중원을 보호한다는 것과 중국산 비단의 대외무역 주통로를 지킨다는 두가지 목적이 함축되었다.그래서 한대에 이미 신강성 장악을 서둘렀다.천산북로에는 중앙아시아로 넘어가는 길이,천산남로에는 오늘의 중동으로 가는 페르샤통로가 존재했기 때문에 타크라마칸을 중시했다.남쪽 사막을 따라 인도로 가는 길을 합하면 신강성은 세 갈래 무역통로를 거느린 물물의 교차로였던 것이다. ○동서문화매개자 역할 세계에 위용을 떨친 징기스칸의 몽골제국 뒤에도 위그루족이 숨어 있었다.그렇듯 위그루족은 동서문화의 매개자 역할을 했다.그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동양인들은 위그루족이 이슬람을 대표하는 민족인 것으로 생각했다.중국과 더불어 우리는 옛날에 위그루족을 한문으로 회홀 또는 회골이라 썼다.그리고 이슬람을 지칭하는 회회교라는 말은 위그루족이 믿는 종교를 뜻하는 것이다. 이들이 사육한 말은 중국에서 첫 손가락을 꼽는 명마였다.한대나 당대에 마(천마)라고 한 명마는 위그루말을 의미했다.그 품종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으나 비단길을 거쳐 들어온 아랍종 혈통의 말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가능하다.오늘날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말은 아랍종 피를 받지않은 말이 없다고 할 정도이고 보면 고대 중국인들 역시 위그루말을 선호했을 것이다. 중앙아시아 일대가 이슬람으로 편입한 중세 이후 이 지역은 투르크스탄이라는 통합적 개념으로 호칭되었다.그리고 신강성의 위그루는 동투르크스탄이라 불렀다. 볼세비키혁명 이후 스탈린은 범투르크주의운동을 아주 싫어했다.그래서 위그루의 땅 신강성은 급기야 소련과 중국 공산정권 사이의 주도권다툼에 휘말렸다.신강성의 석유와 광물이 두 공산세력의 각출을 유도했던 것이다. ○55년 자치지역으로 선포 그것은 20세기에 재현한 비단길 분쟁이었는지 모른다.1949년 모택동의 대장정은 신강성까지 이어졌다.1955년에는 신강위그루족자치지역으로 선포되었다.어떻든 공산정권의 중국은 1959~60년 사이에 이른바 ‘신강성 해방’을과감히 단행하고 소련과의 국경분쟁을 마무리지었다.오늘도 위그루족의 땅신강성을 가면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민족분열을 절대 반대한다’는 붉은글씨 구호가 곳곳에 널렸다.위그루족의 독립운동을 반대하는 내용이다. 그 표어는 이방인에게 혼돈을 안겨주었다.단일민족으로 살아온 우리에게는 조국과 민족이 얼핏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떼를 내놓았던 위그루족 꼬마 로신이가 어느 틈에 잠이 들었는지 조용하다.로신이가 자라 중국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알게 되는 순간 지금처럼 행복할 것인가.유구한문화와 선천적 상술을 지니고 태어났을 위그루족 장래가 자못 궁금했다.
  • ‘사막의 오아시스’ 고도 투루판(중앙아시아를 가다:4)

    ◎지하수로 5천㎞… 중 3대토목 대역사/관정 1천여개… 포도밭 등 드넓은 농경지가 중국인들은 이런 말을 한다.“신강성을 가보지 않고 중국이 얼마나 넓은지 말하지 말라”고….이 말을 “투루판을 가보지 않고 신강성을 말하지 말라”고 바꾸고 싶다.한자로 토로번이라 표기하는 중국 신강성 투루판은 그렇듯 경이로운 지역이었다. 투루판까지는 돈황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정거장 유원에서 열차를 타고 밤을 새워 꼬박 11시간을 달렸다.투루판에 내렸을때 대지는 온통 불덩어리였다.사방으로 눈을 돌려도 사막만이 펼쳐지기는 했으나 그 사막 가운데로 풍성한 농경지가 들어앉았다.섭씨 45도의 고온에 이글거리는 사막과는 달리 싱그럽다. ○인근엔 75도 화염산이 투루판은 도시가 이국적이거니와 사람들도 그랬다.투루판사람들,다시 말하면 위구르족은 동양인 골상과 사뭇 다르다.그들이 입은 옷과 살아가는 건물에서 발산하는 강렬한 색깔로 해서 동화의 나라에 온 착각이 든다.어린아이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면,마치 꼬마모델이나 되는 것처럼 척척 포즈를 취했다.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그런 투루판 아이들처럼 마음을 활짝 열고 나오는 태도를 본 적이 없다. 근교에는 손오공의 이야기에 나오는 화염산이 있다.해가 뜨면 75도라니 과연 화염산이다.극한적 자연조건속에 풍취 어린 문화가 숨쉬는 투루판은 타클라마칸사막에서 보면 동쪽이다.그리고 고비사막의 서쪽이니까 오아시스 도시이기도 한 투루판은 비단길의 주통로였다.천산북로의 주요 거점으로,동서문화교류의 징검다리 구실을 해온 역사도시인 것이다.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 사람들이 다 그렇지만,투루판 사람들도 눈 녹은 물을 마시고 산다.천산의 만년설이 녹아내려 생긴 물이다.그 천산의 물은 지하로 스며들기 때문에 이른바 감아정이라는 수직 물구멍을 30m간격으로 파고나서 이를 지하수로와 연결시켜 끌어왔다.물구멍만 1천개가 넘고 지하수로의 길이는 5천㎞에 이른다고 한다.실로 놀라운 대역사의 고대 토목공사 현장이 투루판에 있다.이 엄청난 지하수로 건설공사는 한무제가 서역을 경영하면서 시작되었다.만리장성 및 대운하와 더불어 중국 3대 토목공사의 하나가 투루판 지하수로다.한해 강수량은 고작 16㎜인데 비해 증발량은 300㎜나 되는 건조한 열사에서 물 한방울은 바로 생명수였다.그 생명의 젖줄 지하수로는 지금까지 2천년동안 사막속의 경작지에 습기를 불어넣고 사람들 목을 축여주었다. ○실크로드의 주루트 역할 예부터 투루판은 포도의 도시다.포도는 본래 메소포타미아가 원산지였으나 차츰 이웃으로 번져 먼저 그리스로 들어갔다.그리고 동으로 인도와 타클라마칸을 거쳐 투루판으로 확대되었다.중국의 포도는 물론 투루판에서 전파된 것이다.투루판의 포도주는 일찍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당나라 시인 왕한(678∼726년)은 야광채 백옥잔에 부어 마시는 서역 포도주를 이렇게 노래했다.‘야광배에 가득한 맛있는 포도주/마시려하니 마상의 비파소리 흥취를 더하네/취하여 사막에 두어버려도 그대 비웃지 마오/고래로 전쟁에서 돌아온 이 몇 사람이오’서역정벌에 나섰다가 포도주에 흠뻑 취한 중국인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오늘도 여기저기 널린 포도구가 투루판 여행객을 유혹한다.양고기 꼬치구이 샤슬릭과 위구르족의 빵인 낭을 굽는 드넓은 포도밭 유원지를 찾으면 투루판 포도주가 반드시 식탁에 올랐다.그리고 천산의 찬물,뜨거운 햇볕에 달게 익은 수박과 하미,참외가 따라 나왔다.거기에 동화속 요정처럼 아름다운 무희의 춤과 전통음악을 곁들이면 오아시스에는 늘 낭만이 넘친다. 고대로부터 비단길 국제무역으로 상술을 다진 탓일까.투루판 사람들은 관광객을 놓칠 리가 없다.포도구에서 전통기념품을 파는 것은 상식이고 별의별 것을 다 내놓았다.그리고 씨가 없다는 백포도에서부터 100가지가 넘는 포도가 좌판에 즐비했다.‘투루판의 포도가 익었네/아나이칸의 마음도 벌써 취했다네…’그 노래가 들릴 듯한 포도구의 풍경은 한껏 풍요롭다. 그 유명한 고창고성은 투루판에서 50㎞ 떨어진 사막에 있다.2백만㎡에 이른다는 폐허의 고성은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인 채 고창왕조의 영화를 잃어버린지 오래다.한 도시이자 성채인 고창성은 9세기 중엽 투루판 위구르국 고창왕조가 세운 도읍지였다.그 무렵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망하고 송나라가 일어났다.천하를 수습하러 나선 북송은 신흥 티베트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위구르국을 재빨리 끌어안았다.이를테면 북송으로부터 왕권을 승인받은 고창왕조는 정치세력을 급속히 확대했다. 이 왕조는 정치역량뿐 아니라 문화적 주체기반도 차근차근 다져 나갔다.비단길 교역의 매개자로 마니케이즘과 네스토리우스 기독교파가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하는데도 도움을 주면서 이슬람을 받아들였다.이와 함께 불교를 수용하여 토착문화와 융화시켰다. ○포도주 명산지로 유명 그렇듯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에 언어는 터어로 통일했다.이는 다양한 주민을 터키화하는데 성공한 요인이 되었다.고창왕조는 결국 위구르족문화의 주체성을 확립했던 것이다. 투루판 위구르족은 13세기 징기스칸 정복하에서도 오히려 몽골제국 건설에 힘을 실어주었다.그들은 ‘박시’라는 서사계급과 문자체계를 몽골제국에 제공했다.그래서 몽골제국은 급기야 행정체계를 세우고 몽골문자를 만들었다.그럼에도 위구르족은 15세기부터 이슬람화하면서 자신들의 문자와 불교를 잃어버렸다.이유는 문화주체의식이 위구르족 마음속을 떠난데 있다.지금은 스스로를 위구르인이 아닌 투루판 사람이라고 부른다.그들은 역사의 온갖 애환을 포도밭에 묻어두었는지 모른다.
  • 중 비상경계령 발동/홍콩반환 대비 치안강화

    【홍콩 연합】 중국 지도부는 2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홍콩의 주권반환식에 대비,사회치안을 유지하고 소요행위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15일 전국의 공안조직과 인민무장경찰에 비상경계령을 발동했다고 홍콩의 성도일보가 16일 보도했다. 북경당국은 특히 강택민 국가주석겸 당총서기가 18명의 대표단을 인솔하고 주권반환식에 참석할 동안 소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도인 북경을 비롯해 심등 광동성 남부의 홍콩과 인접한 지역,대만과 마주보고 있는 복건성 지역,그리고 폭동이 빈번한 신강·위구르 자치구에 각각 2급 경계령을 내렸다고 신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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