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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 서울시 온라인 전기버스 2011년 도입

    서울시가 도로 바닥의 전기 공급장치를 이용해 배터리 충전이나 배출가스 없이 달리는 ‘온라인 전기버스’를 2011년부터 운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에 앞서 오는 11월부터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의 코끼리열차 운행구간(2.2㎞)에서 시범 운행을 시작한다고 11일 밝혔다. 서울시는 이날 시청 서소문청사에서 카이스트(KAIST)와 ‘온라인 전기자동차 도입을 위한 협약’을 교환, 온라인 전기자동차 시범사업과 관련해 기술 지원과 시설 구축·운영 등에서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0월까지 카이스트가 개발한 온라인 전기버스(OLEV)를 제작하고, 코끼리열차 운행구간에 충전 인프라를 구축해 시범운행할 예정이다. 서울대공원에서 시범운행하는 전기버스는 대당 5억원가량이며, 최대 114명을 태우고 시속 30~40㎞로 운행할 수 있다. 서울시는 이어 내년에 상암동 월드컵공원 등지에서 추가로 시범운행한 뒤, 운행 결과를 평가해 사업 타당성이 있으면 2011년 버스전용차로가 비교적 잘 갖춰진 공항로와 신촌∼양화 등 2개 구간에서 이 버스를 도입한다. 전기버스는 전력 공급을 위한 레일이나 지상의 전력선 없이 도로에 매설된 급전 시설을 통해 전력을 공급받아 운행하는 차량으로, 일반차량과 도로를 함께 사용할 수 있다고 시는 설명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뉴스다큐 시선] 설 자리 잃어가는 가판대 ☞면허정지 6만명 15일부터 ‘핸들’ 잡는다 ☞600년 성곽이 117년 교회 눌렀다 ☞“웬 날벼락” 제주 으뜸저축은행 6개월 영업정지 ☞교과서값 오른다 ☞토성의 고리들이 하루 동안 사라진다 ☞해운대 1000만 누가 먼저 찍을까
  • “시민 쉼터로 이용을” 80억 땅 기증

    “시민 쉼터로 이용을” 80억 땅 기증

    “누님의 뜻에 따라 이 땅을 서울 강서구에 기증합니다.” 최근 유명을 달리한 부산 시민이 서울 시민을 위한 휴식처로 써달라며 80억원 상당의 토지를 기부해 가슴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미담의 주인공은 지난 1월 노환으로 숨진 고(故) 정차점(81)씨. 11일 서울 강서구에 따르면 정씨의 남동생인 점갑(58)씨와 여동생 덕선(63)씨는 지난달 27일 ‘고인의 뜻’이라며 강서구 개화산 임야 4만 49㎡를 기부했다. 이 땅은 평생 부산에서 살아온 정씨가 1974년 11월 매입한 것으로, 공시지가로 28억여원이지만 일반 공원부지 보상액으로 환산하면 80억원의 가치가 있다고 구는 설명했다. 점갑씨는 “평소 누님은 개화산 땅이 주민들의 휴식처로 사용되도록 강서구에 기증하고 싶다는 뜻을 여러번 밝혔다.”면서 “아무쪼록 누님의 뜻처럼 개화산이 지역 주민들의 편안한 쉼터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서구는 지난 6일 정씨의 아름다운 뜻을 기리고자 이곳을 ‘나눔의 숲’으로 이름 짓고 ‘공원으로 조성해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이 새겨진 기념비와 육각정자를 설치했다. 하해동 공원녹지과장은 “정씨가 기부한 토지는 많은 주민이 개화산을 찾기 위해 지나는 곳으로 운동기구와 휴게시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설치해 개화산의 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뉴스다큐 시선] 설 자리 잃어가는 가판대 ☞면허정지 6만명 15일부터 ‘핸들’ 잡는다 ☞600년 성곽이 117년 교회 눌렀다 ☞“웬 날벼락” 제주 으뜸저축은행 6개월 영업정지 ☞교과서값 오른다 ☞토성의 고리들이 하루 동안 사라진다 ☞해운대 1000만 누가 먼저 찍을까
  • 현회장 방북 13일까지 연장

    북한을 방문 중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일정을 하루 연장하기로 했다. 11일 통일부와 현대아산 등에 따르면 지난 10일 평양에 도착한 현 회장은 12일 귀환할 예정이었으나 13일 귀환하는 것으로 일정을 조정했다. 일정 연장과 관련,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면담 일정을 조정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북측에 135일째 억류 중인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의 석방과 관련한 협상에 다소 진통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날 “현대아산 측이 밤 10시쯤 현 회장의 방북 일정 연장 의사를 밝혀 왔다.”고 밝혔다. 유씨는 이날 한때 석방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됐다. 이날 오전 경기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 관계자들이 유씨 귀환에 대비해 기자회견을 위한 앰프를 설치하는 등 준비작업을 하면서 유씨 석방이 임박했다는 설이 나돌았다. 하지만 현대아산과 북측이 억류사건 발생 재발을 위한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있어 유씨의 석방이 다소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회장은 12일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회장은 김 위원장과의 면담이 성사될 경우 유모씨 석방 문제를 중점적으로 거론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현 회장은 금강산 관광 등 현대아산의 대북사업 재개를 위한 협조도 요청할 것으로 전해졌다. 현 회장은 그동안 방북 때마다 김 위원장을 만나 성과물을 도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현 회장이 유씨와 함께 13일 귀환하는, 이른바 ‘클린턴식’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현 회장의 평양행에 대해 ‘사업자 차원의 방북’이라고 규정했다. 정부는 현 회장이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지만 현 회장이 사실상 특사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뉴스다큐 시선] 설 자리 잃어가는 가판대 ☞면허정지 6만명 15일부터 ‘핸들’ 잡는다 ☞600년 성곽이 117년 교회 눌렀다 ☞“웬 날벼락” 제주 으뜸저축은행 6개월 영업정지 ☞교과서값 오른다 ☞토성의 고리들이 하루 동안 사라진다 ☞해운대 1000만 누가 먼저 찍을까
  • 청첩장부터 돌린 결혼사기꾼

    청첩장부터 돌린 결혼사기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신랑 1명이 신부 2명과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이렇게 청첩장을 찍어 결혼 비용을 우려먹은 사기꾼이 철창에 갇혔다. 이 기발한 사기극의 전말은-. 전세방엔 처자가 버젓이 월남한 홀몸이라며 능청 주인공은 6일 노량진 경찰서에 혼인빙자 간음 및 사기혐의로 구속된 손(孫)모씨(38), 피해자인 상대역은 미장원 주인인 정(鄭)모양(27)과 여염집 처녀인 李(이)모양(27). 손씨가 두 여자들을 사귄 경위부터가 우선 색다르다. 지난 7월6일 정양이 경영하고 있는 영등포구 화곡동 S미장원에 웬 남자손님이 들어와 의자에 걸터앉으며 머리「고데」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 1년 남짓 이곳에서 영업을 해 왔지만 남자 손님은 처음인지라 정양은 어리둥절할밖에. 『아이참, 별 농담을 다 하시네』 『농담이라뇨, 이 뻣뻣한 머리를 좀 보시오』 이렇게 대답하는 남자가 미남은 아니지만 밉살스럽지만도 않았다는 게 정양의 고백. 남자도 손님은 손님인지라 정양은 제멋대로인 사내의 머리에「고데」를 해줬다. 그동안 그들 사이에는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사내는 이북에서 단신 월남했다고 했다. 남쪽에 연고자가 없어 고생 고생하다가 이젠 겨우 자리를 잡아 「택시」2대를 굴리고 있으나 아직 장가를 못 들어 독신이라고 했다. 결혼하자 조른 15일만에 청첩장 내밀고 “돈좀 빌자” 처녀나이 27살이면 결코 적다고는 할 수 없다. 고향인 경기도 시흥군에서 여고를 나와 경찰관인 오빠의 도움으로 미장원을 차린 정양은 엉뚱하게 만난 이 사내에게 호감이 갔다. 사흘만에 이들은 「데이트」를 했다. 손은 첫인상이 마음에 들었다고 정양에게 속삭였다. 둘의 「데이트」는 잦아졌고 그때마다 손은 결혼하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정양은 우선 부모님과 오빠의 승낙을 받아 결혼하자고 은근히 승낙했다. 그럴 때마다 손은『결혼은 두 사람이 하는데 부모승낙은 받아 뭣하느냐』고 우기며 정양의 부모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귄지 채 보름도 안 된 7월 20일 미장원에 찾아온 손은 엉뚱하게 결혼 청첩장을 내어 놓았다. 신랑 손XX, 신부 정XX, 주례 오(吳)XX, 청첩인 정XX, 이XX 날짜는 8월 24일 하오 2시로 찍혀 있었다. 손은 제멋대로 찍은 이 청첩장을 1백장 손양에게 주며 돌리라고 말했다. 손양은 어이가 없었으나 평소 손씨가 결혼을 졸라왔고 또 한 번 결심하면 서슴없이 일을 밀고 나가는 그의 성격을 짐작했던지라 이 결혼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편 이로부터 이틀 후인 7월 22일 손은 영등포구 염창동 유(劉)모여인(44)의 무당집을 찾아가 결혼할 처녀를 소개해 달라고 하여 이양을 소개받아 역시 채 이야기가 아물기도 전에 얼렁뚱땅 결혼 청첩장을 찍었다. 내용은 정양의 경우와 똑같고 단지 신부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이양은 고향인 경기도 강화도에서 상경, 오빠 집에 얹혀살며 집안일을 돌봐온 순박한 처녀. 『왜 하필이면 같은 시간에 같은 식장에서 같은 주례로 청첩장을 찍었느냐』는 경찰 신문에 손은 머리만 쓰다듬으며 묵묵부답. 이왕 결혼식은 안할 테니까 편의상 그렇게 한 듯. 경찰조사 결과 손은 인천에서 국민학교를 졸업, 노동판에서 막일을 하다 5년 전 군에서 제대한 뒤 군복무 때 배운 운전기술을 밑천으로「스페어」운전사 노릇을 하다 그만 사고를 내 못하고 동료운전사들에게 빌붙어 사는 처지였다. 번갈아 데이트하며 우려낸 돈 58만원 영등포구 봉천동 박(朴)모씨집에 3만원에 전세 든 그의 골방에는 아내와 1남1녀가 살고 있다. 어쨌든 손씨가 억지로 만든 청첩장을 전해 받은 두 신부 후보자들은 부모형제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시골에서 급히 달려온 부모들은 처음에는 노발대발했으나 그렇다고 어떻게 하랴, 곧 화를 풀고 손씨에 대해 잘 알아보지도 않은 채 기정사실로 인정했다. 청첩장은 자랑스럽게 친척·친구들에게 돌려졌다. 손씨는 그동안 두 처녀와 번갈아「데이트」를 하면서 차츰 마수를 뻗치기 시작했다. 『요즘 불경기로 돈이 달린다. 곧 갚을 테니 X만원만 꾸어 달라』『신혼살림 장만에 돈이 모자라니 X만원만 우선 꾸어 달라』손씨는 이렇게 하여 신부후보생들을 통해 친구들의 돈까지 뜯어냈다. 이렇게 뜯어낸 돈의 액수는 정양에게서 38만5천원. 이양에게서 20여만원. 정양은 시골어머니를 통해 이웃에서 10만원을 빌어다 준 일도 있다. 돈을 갚겠다는 날짜가 지나도 갚지 않자 참다못해『내 입장과 어머니 입장을 생각해 주셔야죠. 그 돈이 어떤 돈인데…』정양은 독촉도 해 봤으나『며칠만 기다려. 자동차보험을 탈 일이 있는데 돈이 곧 나올테니!』라는 손씨의 대답인데 어찌 하겠는가. 그러나 결혼식을 이틀 앞두고 여태껏 매일 미장원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손씨의 발길이 뚝 끊겼을 때 정양의 가슴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식을 올리기 하루 전인 다음날도 소식이 없었다. 이날(23일) 하오 안절부절못하던 정양은 손씨가 다닌다는 운수회사를 찾아갔다. 『그런 사람 없습니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대답이었다. 이양도 이와 비슷한 경위로 손씨의 정체를 알아냈다. 결국 경찰관인 정양 오빠의 끈덕진 추격 끝에 손씨는 덜미를 잡히고 말았지만 두 처녀는 경찰에서『그까짓 돈이야 어떻게 됐든 망신당한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울부짖었다. <안태석(安泰錫) 기자> [선데이서울 72년 10월 15일호 제5권 42호 통권 제 210호]
  • 바람 피우던 남성을 부인과 여친들이 합심해…

    바람 피우던 남성을 부인과 여친들이 합심해…

    남편이 하도 바람을 피워대자 아내는 혼내주겠다고 단단히 별렀다.남편이 동시에 만나던 여자친구만 최소 두 명이었다.  웬디 스웰(43),테레사 지만(48) 등 두 여성이 자신들과 바람을 피운 한 남자의 부인과 함께 위스콘신주 법원에 최근 기소됐다고 4일(이하 현지시간) NBC시카고 닷컴이 전했다.지만의 친동생인 미셸 벨리뷰(43)도 망을 봤다가 덩달아 실형을 살 위기에 몰렸다.  온라인 안내광고 사이트인 ‘크레이그리스트’에서 이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는 지만은 지난달 30일 경관 좋기로 유명한 위네바고 호숫가의 레이크뷰 모텔로 그를 불러냈다.  지만은 두달 동안 밀회를 즐기면서 모텔 투숙료를 자신이 모두 냈고 3000달러도 기꺼이 빌려줬다.그러나 전날 부인으로부터 깜짝 놀랄 얘기를 들었다.그에게 가정이 있음을 뒤늦게 안 지만은 잔뜩 열받았다.  지만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좋아라 모텔에 나타난 그에게 은밀하게 권유해 그의 손을 묶고 눈을 가렸다.그런 뒤 있는 힘을 다해 그 남자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가위로 그의 속옷도 찢어버렸다.그리고 부인과 스웰,벨리뷰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이 모텔로 오라고 했다.  기소장에는 이 남자가 총으로 위협당했다는 내용도 나오지만 지만은 말로는 위협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총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다.지만은 검사에게 “내가 얼마나 그를 쏴죽이고 싶었는지 아세요?”라고 물었다.  그리고 여자들이 모두 도착하자 지만은 마침내 마지막 응징을 가했다.그 내용은 아래에 뒤집어 적는다.미성년자는 보지 않았으면 한다.  이들은 또 남자의 지갑과 자동차 키,휴대전화를 빼앗았다.  남자는 결국 자신의 손을 묶었던 테이프를 씹어 뜯은 뒤 침대에서 빠져나와 모텔 주인의 손전화를 빌려 경찰에 신고했다.  이제 여성들은 불법감금과 사기,4급 성적 공격 혐의로 최고 6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위기에 몰렸다.200달러 보석금을 내고 현재는 자유롭게 재판을 받고 있다.  웃기는 것은 이 남자를 혼내주던 그 순간에도 스웰이 “우리 중의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었다는 것.알고 보니 지만 역시 멀쩡히 남편이 있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깨몽이가 최고야/신기옥

    [엄마와 읽는 동화] 깨몽이가 최고야/신기옥

    강아지 보모 구함 기간 : 7월1일 ~ 8월31일 보육비 : 400,000원 4동 1804호 “안 돼! 강아지는 무슨!” 전단지를 들여다보던 엄마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어요. “딱 두 달이잖아요. 강아지가 있으면 외할머니가 덜 심심하실 거예요.” 난 두 달이란 말에 힘주어 말했어요. “그야 그렇지만.” 엄마가 생각에 잠겼어요. 분명 개에게 물렸던 끔직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거예요. 우리 외할머니가 말을 잃어버린 지는 두 달째예요. 시골에서 함께 살던 막내 외삼촌의 죽음이 외할머니 말문을 닫아버렸어요. 휠체어를 타고 살았던 외삼촌이어서 가슴이 더 아프셨나 봐요. 우리 집으로 오신 외할머니는 하루 종일 낯선 사람처럼 밖을 내다보기만 했어요. 아주 가끔씩 밖에 나가기도 했지만 그건 순 엄마 등쌀 때문이었어요. 한 번은 어떤 할머니가 우리 외할머니를 벙어리냐고 물었어요. 귀밑이 후끈 달아올랐어요. 멀쩡한 우리 외할머니가 벙어리로 보인다는 게 화가 났어요. 그때부터 난 고민에 빠졌어요. 우리 외할머니가 어떻게 하면 말을 다시 하게 될까 하고 말이에요. “좋아. 좋아. 굿 아이디어야!” 웬일인지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결정을 내렸어요. 개 이야기라면 말도 못 꺼내게 하던 엄마가 강아질 기르겠다니! 7월1일, 강아지 주인이 찾아왔어요. 구레나룻을 멋지게 기른 아저씨였어요. 호주에 다녀올 일이 있어 강아지를 맡기는 거래요. 아저씨는 깨몽이가 들어있는 가방을 거실에 내려놓았어요. 깨몽이를 돌보는 방법이 적힌 종이와 사료·장난감도 가지고 왔어요. “정말 예쁜 강아지네요! 잘 돌볼 테니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엄마는 마음에도 없는 인사말을 했어요. 강아지는 정말 귀여웠어요. 축 처진 커다란 귀와 왕방울 눈이 겁보처럼 보이는 흰색 강아지였어요. “외할머니, 얘 이름이 뭔 줄 아세요? 깨몽이래요, 깨몽이.” 나는 외할머니 품에 깨몽이를 덥석 안겨주었어요. 놀란 깨몽이가 외할머니 품에서 쏙 빠져나와 엄마에게로 쪼르르 달려갔어요. “어머머. 저리 가!” 엄마가 깨몽이를 발로 훅 밀쳐냈어요. 깨몽이는 놀랐는지 눈치를 살피다 외할머니 무릎에 슬쩍 턱을 괴었어요. “그래. 넌 앞으로 할머니랑만 놀아야 돼. 형안 공부해야 하고, 난 개 종류는 다 싫어하거든.” 엄마는 깨몽이 돌보는 방법을 외할머니에게 자세히 일러주었어요. 그리곤 외할머니에게 다짐을 하듯 말했지요. 깨몽인 외할머니가 꼭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고요. 깨몽이가 온 뒤로 집안 분위기가 산만해졌어요. 없던 개구쟁이 동생 하나가 생긴 것만 같았어요. 잠깐 사이 양말 한 짝이 없어지고, 잠깐 사이 신문지가 갈가리 찢겨졌어요. 외할머니는 깨몽이를 따라다니며 걸레질도 하고, 엉뚱한 일을 저지르지 않나 늘 감시해야 했어요. 아기를 돌보듯 한눈 팔 수가 없었죠. 한 달은 금세 지나갔어요. 그동안 외할머니와 깨몽이는 많이 친해졌어요. 깨몽이는 언제나 외할머니 뒤를 졸졸 따라다녔고, 아무 곳에서나 오줌을 누던 버릇도, 눈치를 보던 버릇도 없어졌어요. 외할머니는 생각보다 깨몽일 잘 돌보았어요. 목욕시키는 일도, 밥 주는 일도 빠짐없이 잘 했어요. 평생 외삼촌을 돌보며 살았던 외할머니여서 그런가 봐요. “외할머니, 깨몽이 짖는 거 못 봤죠?” 하루는 문득 깨몽이가 짖질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할머니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어?” 깜짝 놀랐어요. 외할머니가 달라지긴 했지만 누군가에게 눈길을 주긴 처음이었으니까요. 난 일부러 태연한 척했어요. “외할머니, 빨리 가요. 엄마가 병원에서 기다린댔어요.” 내 재촉에 외할머니는 바쁘게 나갈 채비를 끝냈어요. 외할머니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어요. “괜찮아요. 친구네는 만날 강아지가 혼자서 집 보는데요, 뭘.” 외할머니는 따라나서는 깨몽이에게 뭔가 말을 하듯 입을 우물거렸어요. “걱정마세요. 깨몽인 혼자서도 잘 있을 거예요. 그렇지? 깨몽아.” 깨몽이가 꼬리를 흔들었어요. 나는 깨몽이가 나오지 못하게 얼른 현관문을 닫아버렸어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에게 외할머니 이야기부터 했어요. 엄마는 “그래?”하며 놀란 표정을 짓더니 “내 그럴 줄 알았어. 이제 어머니가 말씀만 하면 되는데….” 라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어요. 난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지만 엄마 대답을 듣진 못 했어요. 간호사 누나가 곧바로 할머니 이름을 불렀거던요. 병원에 있는 동안, 외할머니 마음은 온통 집에 가 있는 듯했어요. 의사 선생님 질문에도 건성건성 고개만 끄덕이고, 검사 차례를 기다리면서도 내내 창밖만 보았어요. 예상보다 늦게 진료가 끝났어요. 우리는 서둘러 집으로 왔어요. 현관문을 열자 깨몽이가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왔어요. 몇 달이나 떨어져 있다 만난 것처럼 할머니 뺨을 핥고 응석을 부렸어요. “어머! 이게 다 뭐야?” 집안으로 들어서던 엄마가 비명을 지르며 한 발짝 물러섰어요. 그야말로 집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어요. 온 집안이 쓰레기장이었어요. 쓰레기통들은 거실에 나뒹굴고, 휴지는 집안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어요. 그뿐만이 아니었어요. 여기저기 오줌을 지리고 식탁 아래엔 똥도 싸 놓았어요. 엄마는 거의 울상이 되었어요. “깨몽이 너, 이리 와!” 엄마는 달아나는 깨몽일 쫓아가 사정없이 몇 대 쥐어박았어요. “그만 해라.” 외할머니였어요! 외할머니는 휴지를 주워 똥오줌을 치우기 시작했어요. 엄마와 나는 너무 놀라 멀뚱히 외할머니를 보고만 있었고요. 엄마 눈에 눈물이 그렁 맺혔어요. 몇 달 동안 말 한 마디 하지 않던 외할머니가 말문을 연 거예요. 엄마는 외할머니를 등 뒤에서 꽉 부둥켜안고 훌쩍이며 말했어요. “어머니, 정말 말문 여신 거 맞죠? 다시 뭐라고 한 말씀만 해 보세요.” 외할머니도 언뜻 눈시울을 붉혔어요. “그래. 그동안 내 딸 애 많이 썼다. 우리 손자도, 깨몽이도.” 할머니는 돌아앉아 손등으로 엄마 눈물을 닦아 주었어요. 엄마가 물끄러미 깨몽일 보다 손을 내밀었어요. “이리 와.“ 깨몽이가 겁먹은 얼굴로 나를 보았어요. “어서 가 봐.” 깨몽이 등을 떠밀었어요. 안 가겠다고 뒷발로 뻗대던 깨몽이가 할 수 없이 엄마에게 다가갔어요. “고마워, 깨몽아. 너가 최고야.” 엄마가 깨몽이 머리를 쓸어주었어요. 영문을 모르는 깨몽이는 눈을 끔벅이며 엄마 무릎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어요. 아저씨가 깨몽일 찾으러 온 것은 약속한 날보다 열흘이 지난 뒤였어요. 아저씨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미안해했어요. “아저씨, 깨몽이 보러 가도 돼요?” “그럼. 와도 되지. 그런데 어쩌나? 다음달에 우리 가족이 이민을 가서….” 난 나도 모르게 깨몽일 꼭 끌어안았어요. 외할머니도 놀라셨는지 슬그머니 돌아앉았어요. “이 돈 도로 가져 가슈.” 외할머니가 돈 봉투를 불쑥 내밀었어요. 깨몽이 보육료로 아저씨가 준 돈이에요. 아저씨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어요. “이 돈 보태서 깨몽이 목 수술이나 도로 해 주구랴.” “네? 아!” 아저씨가 갑자기 큰소리로 웃었어요. 아저씨 말에 따르면 깨몽이는 개 중에서도 잘 짖지 않는 개라나요. 성대 수술은 시킨 적도 없고, 아저씨도 깨몽이 짖는 소리는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대요. 깨몽이가 없는 집은 텅 빈 집 같았어요. 외할머니도 심심한지 하릴없이 집안을 왔다 갔다 했어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원.” 할머니는 깨몽이가 많이 보고 싶은 모양이었어요. 그러던 어느날이었어요. 뜻밖에도 아저씨가 깨몽일 안고 우리 집엘 찾아왔어요. 깨몽이가 질병검사에는 통과가 되었지만 데려갈 수는 없게 되었다고요. 깨몽이는 한 달 동안 한국에서 더 지내야 하는데 출국 날짜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아저씨는 우리가 깨몽일 맡아주길 원했어요. 그렇게만 해 주면 너무 고맙겠다고요. 순간 외할머니 얼굴이 접시꽃처럼 환해졌어요. 물론 나도, 엄마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어요.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어요. “한국에 나오면 깨몽이 보러 와도 되겠지요?”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대답했어요. “그럼요.” “당근이죠!” “캉캉!” ●작가의 말 살아가면서, 누구나 마음의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간다. 난 그런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주변에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태풍이 지나간 후, 늘 함께 하던 바람과 햇볕만이 쓰러진 꽃대의 꽃을 다시 피어나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약력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동화 등단.‘염소배내기’ 외 몇 권의 동화책 발간. 아이들과 뒹굴며 책읽기, 글쓰기를 하다 현재는 양수리에서 텃밭농사 짓는 재미에 빠져 있다.
  • 태안 청포대 해수욕장 ‘맨발 마라톤대회’를 아시나요

    태안 청포대 해수욕장 ‘맨발 마라톤대회’를 아시나요

    어휴, 아침부터 정수리에 태양이 내리 꽂히네요. 힘드시죠? 장맛비는 장맛비대로 힘들고, 뙤약볕은 뙤약볕대로 힘든 여름이네요. 이곳은 충청남도 하고도 태안군입니다. 네? 뭐라고요? 예, 맞습니다. 2007년 11월 기름을 흠뻑 뒤집어썼던 곳입니다. 참 그때 생각하면 아찔해요. 그래도 아빠, 엄마랑 함께 찾아온 아이들의 고사리 손들이 큼지막한 장갑을 끼고 검은 기름 돌멩이를 닦아 냈어요. 강원도 어느 곳 부녀회 아주머니들이 단체로 찾아왔고, 전국의 월급쟁이 아저씨들도 주말 시간을 쪼개 이곳을 찾으셨죠. 이제 1년8개월이나 흘렀잖아요. 아주 말끔해졌답니다. 설마 아직도 기름 묻은 조개와 물고기들이 ‘오일볼’(유화제로 바다에 가라앉은 기름들)을 머금고 갯벌과 바닷속에서 뻐끔거리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분은 안 계시겠죠? 그래도 간혹 께름칙하게 여기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더라고요. ●참가자 3만여명 뛰고 걷고… 환경을 통한 치유 ‘에코 힐링’ 올해 피서, 안심하고 태안으로 오세요. 바다 생명의 보물창고인 갯벌이 그대로 살아 있답니다. 그뿐인가요. 서해 바다와 서쪽 하늘이 함께 붉은색으로 합쳐지는 낙조는 또 어떻고요. 이제 갓 뒤뚱뒤뚱 걸음마 뗀 아기랑 함께 와도 안심하고 즐길 수 있도록 물도 야트막하고 따뜻합니다. 특히 청포대 해수욕장을 권하고 싶네요. 발이 빠지지 않는 백사장의 단단한 모래가 일품입니다. 서해 바다는 당연히 북적거릴 것이라는 편견도 단박에 깨질 정도로 한적하고 여유로운 느낌 받으실 것이고요. 게다가 25일부터 사흘 동안 청포대 해수욕장이 있는 별주부마을에서 전통 어로 방식인 독살, 통발, 죽살, 뭍게살 등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서해어살문화축제’도 열린 답니다. 눈치 채셨죠? 저, 서해안 모래사장의 명품, 엽낭게예요. 조그만 구멍 옆에 환약처럼 동글동글 말려 있는 모래흙은 제가 먹이를 먹은 흔적이죠. 아마 채 한 걸음 내딛기 겁날 정도로 곳곳에 널려 있는 저를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일껏 청포대까지 왔는데 먼 발치에서부터 제가 갯벌 구멍 속으로 쏙 도망친다고 너무 서운해하지는 마시고요. 마음으로는 늘 환영이니까요. 저는 그곳 갯벌에서 아장아장 게걸음 걸으며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청포대, 해변마라톤의 고향으로 거듭나 청포대 해수욕장에서는 이제 마라톤 대회도 연다. 지난해 처음으로 열렸다. 모래사장에서 웬 마라톤인가 싶겠지만, 한때 비행기 활주로로 썼을 정도로 단단한 모래사장을 갖고 있는 데다 조수 간만의 차이가 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뜀박질 행사를 하기에 제격이다. 지난 4일에도 2회 ‘에코힐링 (eco healing) 태안 샌드비스타 맨발 마라톤대회’가 열렸다. 이날 마라톤 참가자만 무려 3만여명. 청포대 백사장은 좀 유난하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가 아니다. 발바닥에 무리를 주지 않는 부드러움에 뛰기 적당한 단단함까지 갖췄다. 3만여명이 딛고 밟고 뛰어도 아스팔트처럼 까딱없다. 몽산포 앞까지 왕복 8㎞를 다녀오는 코스인데 출발선에 선 사람 3만여명의 절반 가까이는 출발 총성에 맞춰 힘껏 달리는가 싶더니 이내 옆 바다 쪽으로 하나둘씩 빠진다. 발가락으로 갯벌 헤집으며 조개 캐는 사람들, 뛰는 둥 마는 둥 속닥거리며 귀엣말 나누는 청춘의 연인들, 갈매기 한 번 쳐다보고, 수평선 한 번 쳐다보며 달리기 대회는 일찌감치 잊어버린 가족들, 앙증맞은 게걸음에 정신팔린 꼬마들….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있는 참가자들 투성이다. 어떻게 있는들 어떠랴. 이처럼 아둥바둥 뛰지 않아도 되는 마라톤대회는 서해 청포대에서만 가능하다. 뛰고 싶으면 뛰고, 퍼질러 앉아 갯벌 장난에 몰두해도 그만이고, 바닷물에 뛰어들어 물장구쳐도 좋다. 대회 취지인 ‘에코 힐링, 환경을 통한 치유’가 절로 이뤄진다. ●살아있는 갯벌 생태계 특히 청포대 해수욕장은 주변의 만리포나 몽산포처럼 그다지 소문이 나지 않았다. 이 덕분에 어지간한 서해바다가 ‘물 반, 사람 반’인 것과 달리 한가롭게 해변과 바다, 울울한 해송림을 즐길 수 있다. 또한 태안 앞바다의 진짜 주인인 아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엽낭게가 곳곳에서 한가롭게 기어다닌다. 한 시간 남짓의 ‘노동’이면 큼지막 한 맛조개와 비단조개들로 소쿠리를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지천이다. 진짜 웰빙 체험이다. 조수 간만의 차가 커 물이 빠졌을 때 1㎞ 남짓 되는 폭의 해변이 만들어진다. 수온이 높고 수심은 낮아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에 더없이 적합하다. 길고 넓은 해변에서 노닐다가 저녁 7시 남짓 되면 슬슬 지친다. 이때 서해안 바다 놀이의 하이라이트 서해의 낙조가 시작된다. 편안한 돗자리 하나 깔고 아이들과 함께 바다쪽을 향해 앉아서 조단조단 얘기 나누며 지는 해를 즐겨 보라. 단 하늘과 바다의 한가운데 금을 그어놓은 수평선 아래 위로 번져가는 붉은 노을은 괜한 감상(感傷)에 젖게 할 수 있으니 혼자서는 감상(鑑賞) 금물! 이러한 자잘한 생명들의 향연을 들여다보며 얻는 마음의 평화로움과 즐거움은 몸의 안락함을 기꺼이 놓은 데 대한 보답이다. 안타깝게도 청포대 해수욕장은 다른 곳에 비해 숙박시설, 공동 화장실, 샤워시설 등이 열악하다. 주변에 펜션 3~4동이 있으니 이곳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객실이 많지 않으니 예약은 필수다. 텐트를 치며 캠핑하면 1박에 1만원이다. 전기까지 끌어쓰면 5000원을 더 내야 한다. 이 정도의 불편함이라면 강원도 어느 산간을 가야 겪을 수 있을까. 불과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몽산포 캠핑장에서 얻을 수 없는 야생의 느낌이 드니 이 또한 반갑다. 갯벌 생명들과 질펀하게 노니는 즐거움도, 뚝뚝 흘러내리는 것만 같은 아름다운 낙조도 지겨워질 수 있다. 차로 1시간 거리 이내에 서산 마애삼존불상, 개심사, 해미읍성 등이 있으니 훌쩍 둘러볼 수 있다. 글 사진 태안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홍성나들목에서 원청삼거리 지나 태안, 안면도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몽산포해수욕장이 있고, 그 바로 곁에 청포대 해수욕장이 있다. 서울에서는 2시간 정도 걸린다. 최근까지 경상도 등지에서 태안 쪽을 찾으려면 경부고속도로를 탄 뒤 대전에서 국도로 갈아타며 2시간 이상 먼 길을 돌아야 했지만 지난 5월 말 대전~당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1시간 이내로 가까워졌다. 고속버스는 남부터미널, 동서울터미널(하루 4회)에서 태안행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먹을거리 조개구이며 대하, 회 등 바다내음 풍기는 먹을거리가 많다. 대신 몽산포 쪽으로 조금 걸어나와야 한다. 여름 성수기를 준비하며 포장마차들이 길가에 주욱 늘어서 있다.
  • [브리티시오픈] 60세 왓슨 위대한 도전

    ‘백전노장’ 톰 왓슨(미국)의 도전은 3라운드까지 그 자체로 ‘전설’이었다. 환갑을 꼭 47일 남겨놓고 브리티시오픈 3라운드에서 1타차 단독선두에 오른 왓슨이 19일 마지막 18홀에서 우승 여부와 상관없이 ‘마술 같은 일(magical round)’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많은 사람의 눈과 귀를 깜짝 놀라게 한 이 늙은이가 과연 우승할지, 못할지를 지켜보라.”면서 “오늘 내 게임 플랜(plan)에 대한 느낌은 매우 좋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오는 9월4일 그는 환갑을 맞는다. 브리티시오픈 사흘 동안 그는 기적을 엮어나갔다. 그는 이미 브리티시오픈과 메이저를 넘어 남자골프 역사에 길이 남게 됐다. 지금까지 ‘전설’로 통하던 잭 니클로스(미국)는 “TV로 경기를 보며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면서 “왓슨이 오늘 우승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이미 그는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고 32년 전 우승 경쟁자를 치켜세웠다. 1977년 같은 장소인 턴베리링크스의 에일사코스에서 둘은 ‘백주의 결투(Duel in the Sun)’로 불리는 명승부를 펼친 끝에 왓슨이 1타차 승리를 거두고 첫 ‘턴베리의 황제’ 대관식을 치렀다. 32년이 지난 뒤 속편에서 그는 또 주연을 맡은 셈이다. 조연만 니클로스에서 매튜 고긴(호주), 로스 피셔(잉글랜드)로 바뀌었을 뿐. 왓슨은 “아마 첫날 사람들은 ‘웬 노인이 반짝하는군.’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이틀째도 ‘그런가 보다.’ 했겠지만, 사흘째에는 ‘이 노인네가 우승할 수도 있겠는데.’라고 생각하지 않았겠느냐.”면서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왓슨은 그동안 잠자고 있던 진기록들을 모조리 갈아엎을 태세였다. 대회 역대 최고령 우승 기록인 1867년 톰 모리스(스코틀랜드)의 46세 99일을 142년 만에 갈아치우게 되고, 4대 메이저대회를 통틀어 최고령 우승인 1968년 US오픈 줄리어스 보로스(미국)의 48세 기록 뜯어고치기에도 나섰다. 또 메이저 대회가 아닌 정규 투어에서 1965년 52세로 우승한 샘 스니드(미국·그레이터 그린스보로오픈)의 최고령 우승 기록마저 새로 쓸 무서운 기세였다. 1950년 이후 이 대회 각 라운드 리더보드에서 두 손가락 안에 들었던 선수 32명의 선수 가운데 12명이 정상을 밟았다. 첫날 공동 2위에 이어 2라운드 공동 선두, 3라운드에선 단독 선두에 오른 왓슨의 우승 가능성을 점친 기록이다. 그러나 밤 11시30분 4번홀까지 마친 챔피언조에서는 피셔가 1타를 줄여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간 가운데 왓슨은 2타를 잃어 공동 2위로 처졌다. 크리스 우드(잉글랜드)가 12번홀까지 4타를 줄여 공동 2위 그룹에 합류했으며 어니 엘스(남아공)도 16번홀까지 2타를 줄여 공동 8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원더걸스, 전美 방송 인기토크쇼 러브콜

    원더걸스, 전美 방송 인기토크쇼 러브콜

    미국에 진출한 원더걸스가 현지 전역에 생방송 되는 토크쇼에 전격 출연한다. 조나스 브라더스의 북미 투어 콘서트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고 있는 원더걸스는 현지 팬들의 뜨거운 관심에 힘입어 지상파 프로그램인 웬디 윌리엄스 쇼(The Wendy Williams Show)로 부터 출연 제의 받았다. 원더걸스의 이번 출연은 원더걸스 팬을 자처하는 토크쇼 MC 웬디 윌리암스의 러브콜에 의한 것. 웬디 윌리엄스는 지난 6월 JYP USA를 통해 원더걸스에게 출연을 요청하였으며 원더걸스 역시 미국 전지역에 방송되는 인기 프로그램에 자신들을 알릴 수 있다는 기회라며 흔쾌히 이를 수락했다고. JYP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원더걸스가 미국 전역에 생방송되는 웬디 윌리엄스 쇼에 초청을 받아 무대를 가지게 되다니 꿈만 같은 일이다.”며 “멤버들도 기쁜 마음과 긴장된 마음속에 무대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많이 고생하고 노력하는 원더걸스가 미국 내에서 점차 인지도와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모습이 무척 대견스럽다. 많은 분들의 격려와 응원을 부탁 드린다.”고 당부했다. 원더걸스의 출연 수락에 프로그램의 프로듀서는 노바디 뮤직비디오와 비슷한 무대를 제작하는 성의를 보이는가 하면 MC 웬디 윌리암스는 프로그램 홈페이지(www.wendyshow.com) 예고편에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띄우며 원더걸스를 ‘한국의 슈퍼스타(Korean Super star)’로 소개하고 있다. 한편 원더걸스의 웬디 윌리엄스쇼 방송은 뉴욕 현지 시각으로 7월 20일 오전 10시에 방송될 예정이다. 사진 제공 = JYP 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퍼거슨과 잉글랜드가 기대하는 ‘오웬 효과’

    퍼거슨과 잉글랜드가 기대하는 ‘오웬 효과’

    ‘원더보이’ 마이클 오웬이 뉴캐슬을 떠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로 이적했다. 지난 4일(한국시간) 맨유는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오웬은 세계적인 선수다. 그는 이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될 것”이라며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당초 오웬의 행선지로는 스토크 시티 혹은 헐 시티가 될 것이 유력했다. 그러나 카림 벤제마 영입에 실패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차선책으로 오웬을 선택하면서 뜻밖의 영입 작업이 이뤄졌다. 오웬의 계약 기간은 2년이며, 이적료는 발생하지 않았다. 연봉은 구단 평균 수준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오웬 영입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리고 있다. 어느덧 30줄에 접어든 그의 나이와 뉴캐슬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부상에 시달려 온 탓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이는가 하면, 리그 적응 기간이 필요 없으며 과거 웨인 루니와의 환상적인 호흡이 부활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차 있기도 하다. ▲ 유로2004 최고 투톱의 부활? 가장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은 역시 오웬과 루니 조합의 성공 여부다. 과거 두 선수는 유로2004에서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한 바 있다. 키가 크지 않아 제공권에 약점을 보였으나, 빠른 발과 저돌적인 돌파로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최전방을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두 선수의 조합이 매번 좋았던 것은 아니다. 기록상 잉글랜드는 두 선수가 함께 출전한 경기에서 평균 1.86골을 성공시킨 반면, 두 선수가 출전하지 않은 경기에서는 2.15골을 기록했다. 잠재력은 있었으나 실용적인 측면에서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5년 전 자료다. 그 사이 루니는 맨유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정상급 공격수로 성장했고, 오웬 역시 과거와 비교해 기량은 떨어졌을지 몰라도 리버풀-레알 마드리드-뉴캐슬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 제2의 셰링엄을 꿈꾸는 오웬 1999년 트레블 당시 맨유에는 33살의 노장 테디 셰링엄이 있었다. 1997년 31살의 늦은 나이에 토트넘을 떠나 맨유에 입단한 그는 등번호 10번을 달고 앤디 콜, 드와이트 요크, 올레 군나르 솔샤르와 함께 절정의 골 감각을 과시했다. 그러나 입단 당시 셰링엄을 향한 시선은 곱지 못했다. 그가 맨유의 ‘킹’ 에릭 칸토나의 대체자였기 때문이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뿜어낸 칸토나의 진한 아우라 탓에 셰링엄은 물론 그를 선택한 퍼거슨 감독 역시 안팎의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비록 칸토나 만큼의 파괴력을 선보이진 못했으나 셰링엄은 맨유에서 104경기를 뛰는 동안 31골을 성공시키며 백업 멤버로서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특히 1999년 바이에른 뮌헨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터트린 극적인 동점골은 맨유가 트레블을 달성하는데 단초가 되기도 했다. 오웬 역시 당시의 셰링엄과 비슷한 상황이다. 물론 맨유 이적 당시 상승세를 달리던 셰링엄과 달리 오웬의 경우 오랜 부상과 체력 저하로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한다면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와 루니에 이은 3번째 혹은 4번째 공격수로서 충분한 활약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카펠로호’의 고민은 해결될 수 있을까? 지난 5일 파비오 카펠로 잉글랜드 감독이 오웬의 맨유 입단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영국 일간지 ‘데일리 미러’와의 인터뷰에서 “오웬이 맨유와 같은 빅클럽에서 뛰는 것은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가 부활한다면 대표팀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처럼 오웬의 맨유 입단은 잉글랜드 대표팀에게도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그동안 A매치 89경기에 출전한 오웬은 잉글랜드에서 7번째로 많은 경기 출전수와 역대 득점 4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뉴캐슬에서의 부진과 잦은 부상으로 인해 점차 대표팀에서 멀어졌고, 이후 카펠로 감독은 루니의 파트너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때문에 오웬의 부활은 맨유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대표팀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가 보유한 3차례 월드컵 경험은 잉글랜드에게 큰 힘이 될 것이며, 기존의 공격수들과는 다른 스타일의 움직임은 공격진에 다양함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카펠로 감독은 “오웬은 예전의 기량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퍼거슨 감독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라며 대표팀 복귀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놓기도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유럽축구통신원 안경남 pitchactio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참 소중한 우리의 똥

    웬 똥 이야기? 밥상머리에서 똥 이야기가 나올라치면, 식사하는데 더럽게 똥 이야기를 한다고 구박받기 십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똥이 천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초식문화권에서 살던 우리 조상들은 똥을 귀하고 소중하게 다뤘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데 꼭 필요한 거름의 재료로 쓰였기 때문이다. 똥은 밥을 먹고 나온 배설물이지만, 다시 밥을 만드는 거름이 되니 밥은 곧 똥이요, 똥은 곧 밥이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밥은 나가서 먹어도 똥은 집에 가서 싼다는 말이 있었을까. 전국귀농운동본부 홍보출판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철환은 ‘시골똥 서울똥-순환의 농사, 순환하는 삶’(들녘 펴냄)에서 똥의 소중함을 거듭 강조한다. 그는 귀농자를 돕는 한편,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을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요즘은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0세기 초 미국 농무부의 한 공무원은 서양에서는 100년만 농사를 지어도 땅이 황폐화되거나 사막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에 견줘, 동양은 4000년이 넘게 농사를 지었어도 흙이 사막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경이롭게 여겼다. 그래서 한국, 중국, 일본의 농촌을 답사했다. 1년 가까이 연구를 거듭한 끝에 결론을 내린다. 비밀은 세 가지였다. 똥, 치수 정책, 혼작·간작·윤작 등의 농사법이었다. 이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똥의 재활용이었다. 이 공무원은 1909년 자신의 답사기를 ‘4000년의 농부’라는 책으로 묶어내며 이에 대해 찬사를 보낸다. 서양의 똥과 우리의 똥은 달랐다.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서양은 배설시간이 오래 걸린다. 섬유질은 부족하고 가스가 많아 배설을 도와주는 유산균이 적다. 악취도 난다. 그래서 순식간에 물로 씻어버려 눈앞에서 사라지게 해야 했다. 물 낭비의 대명사인 서양의 수세식 변기는 이렇게 탄생한다. 똥은 땅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대부분 바다로 흘러들어가 바다를 오염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반면 채식으로 인해 섬유질과 유산균이 많았던 우리의 똥은 깨끗했다. 다만 그대로 사용하면 땅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다른 재료를 섞어가며 발효시켜 거름을 만들어 땅으로 돌려보냈다. 이는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곡식의 성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먹은 만큼 땅으로 돌려보내는 순환구조였다. 우리 조상들에게 뒷간은 퇴비간의 연장이었다. 안채와 멀리 떨어진, 넓고 통풍이 잘 되는 건조한 곳에 자리 잡았다. 그러던 것이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달라졌다. 달동네처럼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뒷간은 좁고 음침하며 습하고 통풍도 좋지 않은 곳으로 팽개쳐졌다. 결국 도시의 뒷간은 오염의 온상이자 대표적으로 비위생적인 장소가 됐다. 서양의 물결이 흘러들어오며 우리의 식습관과 뒷간이 서양화되었고 똥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게 됐다. 저자는 오늘날 심각한 문제인 환경 오염이 밥과 똥의 순환이 끊긴 데서부터 비롯된다고 말한다. 자연문명이 철기문명과 석유에너지로 대체되면서 더 뛰어난 문명을 형성할 수 있는 순환의 고리가 끊겼다는 점도 덧붙인다. 문명의 핵심은 발전이 아니라 순환이며 획일화가 아니라 다양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고 생명의 순환 고리를 유지하며 자연과 상생해야 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그동안 순환의 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똥의 고마움을 잊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똥이 우리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이 일갈하지 않을까. “똑바로 해, 이것들아!” 9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열린세상] 남편으로 살아가기/박준철 한성대 인문과학연구원장

    [열린세상] 남편으로 살아가기/박준철 한성대 인문과학연구원장

    가끔 아내와 노래방에 가면 부르는 노래가 있다. 요절한 천재가수 김광석이 남긴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라는 노래다. 삶을 마감한 아내를 그리며 함께 살아온 인생의 편린들을 회상하는 주옥같은 노랫말이 서정적 선율을 타고 잔잔히 흐른다. 웬 청승이냐며 시비를 거는 아내도 슬며시 따라 부르니, 세월은 정녕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나이가 들수록 배우자밖에 없다는 말을 선배들로부터 자주 듣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아이들마저 머리가 커지면 무릇 딴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온갖 뒷바라지를 하고 모든 것을 다 퍼주었건만, 제 갈 길 바쁜 자식들은 부모들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과 ‘흘리던 눈물방울’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열 효자 악처 하나만 못하다.’ 소리가 절로 나오고, ‘사위 밥은 서서 먹고, 아들 밥은 앉아 먹고, 영감 밥은 누워 먹는다.’는 말에 무릎을 치게 된다는 것이다. 부부간 애정과 결속이 더욱 요구되는 세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이혼율은 이미 세계 최고수준에 도달했고, 더욱이 ‘황혼이혼’이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 번 맺은 부부의 인연을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이라 생각하며 살았던 시대는 어느덧 아득한 과거가 되어버렸다. 무엇보다도 아내들은 더 이상 온당치 못한 현실에 순응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작년 서울에서 청구된 이혼 소송을 분석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소송 3건 가운데 2건은 여성이 제기하였다. 여성의 학력과 경제력 그리고 의식수준이 신장되면서 이제 부당한 대우나 불평등한 부부관계는 용인될 수 없다는 메시지가 울려 퍼지고 있는 셈이다. 남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통계수치도 제시되었다. 결혼생활 10년이 넘은 이혼소송의 경우 여성의 절반이 재산의 50%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으니 외도나 폭력 앞에서도 ‘웬만하면 참고 살겠지’를 기대한다면 큰코다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아내들의 반란’은 가부장주의라는 유구한 문화적 전통에 대한 저항이다. 가부장주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의식과 심성 속에 깊이 내면화되고 가정문화 속에 공고히 안착된 이념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부간의 애정과 협력은 가정의 초석으로 인정되어 왔지만 그것은 줄곧 남편의 권위와 아내의 순종을 전제로 하는 애정과 협력이었다. 여성은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만족해야 하고, 가사와 양육을 전담해야 하며, 군림하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젠더의 이데올로기는 유서 깊은 사회적 당위로 존속해 왔던 것이다. 불세출의 혁명가 마르틴 루터의 사례를 보자. 절대자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는 교리로 세상을 온통 뒤집어 놓았던 그였건만, 정작 그의 가정에서 평등은 한낱 공허한 이념에 불과하였다. 그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 배필로 맞은 전직수녀 카타리나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는 카타리나를 프랑스나 베네치아와 바꾸지 않겠다.’며 지극한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혁명가 루터는 ‘여성은 벽에 박힌 못처럼 집에 있어야 한다.’면서 수구적 여성관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아내들의 반란’은 이미 오래전 잉태된 것이다. 여건이 달라진 현대사회에서 좋은 남편으로 살아가기는 결코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부단히 학습되지만 내심 탓할 바 없다고 생각하는 가부장주의에 미련을 떨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공교롭게도 ‘가장이 그것도 못 하느냐.’라는 질책을 받을 때는 가부장적 문화가 차라리 야속하다. 무엇보다도 아내들의 높아진 기대치는 유능함과 자상함을 동시에 요구한다. 안타깝게도 이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량이 턱없이 부족함을 수시로 절감하게 된다. 남성위주로 전개되어 온 역사의 채무자라도 된 듯하다. 남편으로 살아가기, 이 시대 남성들이 거듭 숙고해야 할 화두임이 틀림없다. 박준철 한성대 인문과학연구원장
  • [마이클 잭슨 전설속으로] 팬들 “재기 모습 보고 싶었는데…”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26일 전 세계가 추모열기로 뜨거운 가운데 우리나라 음악팬들도 충격속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오전 전해진 그의 사망 소식에 사람들은 대부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온·오프라인에서는 마이클 잭슨의 죽음을 애석해하는 글이 넘쳐났다. 특히 그의 음악을 들으며 자란 30,40대들의 추모 열기는 남달랐다. 직장인 임모(34)씨는 “출근길에 소식을 전해듣고 귀를 믿을 수 없었다.”면서 “1991년 그룹 ‘퀸’의 리더 프레디 머큐리가 죽었을 때 이후로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 ‘힐 더 월드(Heal the World)’를 즐겨 들었다는 직장인 이모(31)씨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가수가 떠나서 안타깝다.”면서 “최근 10년간 안 좋은 모습만 보였던 그이기에 더욱 비통하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도 ‘마이클 잭슨 사망’이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등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네티즌들의 발길이 하루종일 이어졌다. ‘문워커’라는 이름의 잭슨의 팬카페에는 2만 5000명이 넘는 네티즌이 방문해 추모의 글을 올렸다. 대화명 ‘로봇광’인 한 네티즌은 “아침부터 웬 날벼락인지… 다시 재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다.”는 글을 올렸다. 가수 겸 프로듀서인 박진영씨도 자신의 블로그에 “내가 처음으로 산 앨범이 마이클 잭슨의 ‘오프 더 월’이었다. 그 음반이 내게 음악의 정의이자 내 음악의 절반 이상이었다.”며 각별한 존경을 표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 스크린서 세상사는 법 배우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어린 아들들을 데리고 저수지로 낚시를 자주 나가시곤 했다. 그 취미를 이어받은 내 동생은 프로 배스낚시 선수 겸 낚시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그렇게 따지면 영화에 대한 나의 애호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셈이다. 어머니는 단발머리 학창시절에 극장을 자주 찾던 영화팬이셨다. 전쟁 직후 암담한 현실 속에서 자랐던 이 땅의 소년·소녀들은 그렇게 먼 나라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바라보며 꿈을 잃지 않는 법을 연습했었나 보다. 십 수년 전까지만 해도, TV 앞에 함께 앉아 아카데미 시상식이라도 볼라치면 어머니는 배우들의 이름과 출연작들을 줄줄 꿰고 계셨다. 웬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보셨냐고 물으면 딱 잘라 하시는 말씀. “그땐 다 그랬다.” 언제부턴가, 영화제 시상식을 방청하며 중계방송처럼 떠드는 역할을 어머니 대신 내가 하고 있었다. 배우들이 늙어가는 걸 보고 마치 당신의 꿈이 시드는 것처럼 안타까워 하시던 어머니의 한숨을, 이젠 내가 이해하는 나이가 되기도 했다. 영화 전문가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라, 감히 누구에게 자랑하자고 영화를 애호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영화라는 매체에 애정을 느낀 지 20여년 되고 보니 그 서툰 애정은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나 원 참. 사랑은 많은 걸 가능케 한다더니….”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그냥 화면을 지켜보는 사람 이상의 누군가가 된다. 다른 누군가가 되어보는 경험, 그것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구태어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수고를 무릅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은막은 흡사 거울처럼, 영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기도 한다. 스크린에 언뜻 비치는 나의 모습은 낯익은 것이기도 하고, 때론 낯선 것이기도 하다. 사실 극장 밖 일상 속에서도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보는 것은 중요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세상 모든 도덕의 황금률이니까. 상대방의 입장에 자신을 놓고 어떤 일을 다시 한 번 바라보는 것은 도덕적 감성만 가지고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실은 그것은 영화적 상상력도 필요로 한다. 영화는 내가 미처 모르던 바깥 세상을 바라보는 투명한 유리창이기도 하다. 왕왕 “거짓말 하지마”란 뜻으로 “소설 쓰지마”라고 말하기도 하고, 현실성이 없다는 뜻으로 “영화 같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이 거짓말이 아니듯, 영화를 비현실의 대명사처럼 부르는 것도 부당하다. 영화 속에는 과거에 현실이었거나, 다른 누군가의 현실이거나, 현실일 뻔했거나, 현실이지 말란 법도 없거나, 현실일 수도 있을 법한 현실의 수많은 가능태(dynamis)가 담겨 있다. 그래서 영화감상은 여러 종류의 인생을 살아볼 수 있는 역동적인(dynamic) 체험이 되는 것이다. 화면의 의미와 작가의 의도를 샅샅이 분해하는 전문가들에 도전할 무모한 용기는 내게 없다. 그저 나는 이 책에 영화라는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과, 영화라는 창을 통해 바라본 세상의 모습을 담았다. 그것이 내가 나의 벗들에게 권하는 영화감상 요령이기도 하다. 박용민 외교통상부 과장
  • ‘청담동 호루라기’ 이진성 “날라리? 편견일 뿐”

    ‘청담동 호루라기’ 이진성 “날라리? 편견일 뿐”

    “아마 한국에 있었으면 청담동 클럽 사건도, 대마초 사건도 내가 먼저 오해 받았을 거다.” ‘청담동호루라기’ 혹은 줄여서 ‘청호’ 이진성은 과거 가장 빠른 시간에 대중의 관심 끌기에 성공했던 대표적인 연예인이다. 또 그만큼 수많은 오해와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래서 미국으로 떠나 2년간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그리고 그곳에 지난날의 앙금과 까칠함을 버리고 여유를 가지고 돌아왔다. ◆ 날라리? 뜬소문이 편견으로. 그는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에 가수 싸이의 선배로 깜짝 출연해 호루라기를 불며 추는 엽기춤을 선보인 후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고정출연의 행운을 거머쥐었다. 그때 얻은 애칭이 ‘청담동 호루라기’다. 그 후 이진성은 리포터에 가수에 연기까지 브라운관을 종횡무진 누볐다. 그런데 정작 그는 ‘청담동 호루라기’라는 애칭이 싫단다. 그건 ‘노는애’라는 편견으로 굳어져버린 자신의 이미지의 시작이 ‘청담동 호루라기’이기 때문이다. “한번 놀면 백가지 소문이 난다.”고 말하는 그는 놀 땐 정말 화끈하게 놀고 일을 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하다. 그러다 우연히 출연하게 된 방송을 통해 여과 없이 보여준 그의 솔직한 모습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샀다.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였던 이진성은 “기숙사 생활을 해서 토요일만 외출이 가능했는데 친구들이 항상 내 스케줄에 맞춰줬어요. 그런 친구들이 고마워서 보답하는 마음에 더 재미있게 놀았죠.”라며 “처음에야 방송이 뭔지도 몰랐고 친구들하고 놀 때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드렸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 청담동 호루라기? 이젠 ‘배우’ 이진성으로 이진성은 다음달 17일 첫 방송되는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압구정 다이어리’에 고은아, 전혜빈, 에이미, 황승언 네 여자의 고민해결사로 캐스팅 돼 지난 21일 첫 촬영에 들어갔다. 뜬금없이 웬 연기냐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연극무대 연출도 하고 직접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리고 비록 비중이 크진 않았지만 영화 ‘역전에 산다’, ‘색즉시공2’, SBS 미니시리즈 ‘루루공주’ 등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의 꿈을 이어왔다. 또 그는 한 달 만에 9kg을 뺐다. 하루 3~4시간의 운동과 연기수업 등 바쁜 나날을 보내며 연기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 “생각이 바뀌니까 바빠도 여유를 찾을 수 있더라구요. 마음만큼 몸도 가벼워지고 싶었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제 스스로 하겠다는 생각이에요. 자신과의 싸움이죠.” 귀국한지 한 달도 안된 그가 캐스팅될 만큼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까지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편견을 당장 바꾸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아직까지 날 보고 싶어 하고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죠. 오래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제 본 모습을 알게 될 거에요.”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 / 사진=김동식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10분 만에 고추장 담그는 법

    10분 만에 고추장 담그는 법

    서울 사는, 바쁘게 일하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었을 때는 일요일 점심에야 식구 모두 밥을 먹는다더니, 대학생들이 되니 명절이 되어야 그런 자리가 마련된단다. 그러다 보니 살림에서 절로 멀어져 집에서 커피 타 먹는 정도가 부엌일이라는 친구다. 친구 사이의 통화가 그렇듯 서로 안부부터 한참 주고받고 나서야 전화한 용건이 나왔다. 뜻밖에도 “고추장과 된장을 사달라”는 것이었다. 밥을 거의 안 해 먹는다더니 웬 된장 고추장? 친구 동생이 얼마 전에 암 수술을 했단다. 암이 흔한 세상이지만, 막상 식구 가운데 암 환자가 생기면 얼마나 황망한가. 나 역시 지난해 언니를 저세상으로 보내서 그 마음을 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다가 진정이 되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왜 이런 병을 얻게 되었을까? 여기서 빠져나가려면 어찌해야 할까? 친구는 먹는 게 새삼 중요하다는 걸 느꼈나 보다. 그래서 제대로 담근 된장 고추장을 찾는다. 장이 맛있으면 밥을 해 먹기 쉽다. 된장 한 숟갈 떠서 보글보글 끓여놓고 쌈장 만들어 쌈 싸 먹어도 좋고, 고추장에 밥 비벼 먹어도 얼마나 맛있는가. 그래서 살림꾼은 양념만은 손수 만들어 먹는다. 그렇다고 도시 아파트에서 콩을 삶아 메주를 띄우고, 찹쌀로 조청을 고을 수는 없는 일. 친구처럼 제대로 된 장을 먹고 싶은 분을 위해 즉석 고추장 만드는 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고추장은 가장 사랑받는 양념 중 하나이지만 이 고추장에 뭐가 들어가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고추장은 조청의 달콤한 맛에 메줏가루의 구수한 맛 그리고 고춧가루의 매콤한 맛에 소금 간이 어우러져 빚어진 발효음식이다. 들어가는 재료가 많아 손수 농사지어 고추장을 담그려면 3년이 걸린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때인가. 인터넷에 들어가니 즉석에서 고추장 만드는 법들이 나와 있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레시피의 도움을 받아 즉석 고추장을 담가보았다. 고추장을 담그는 데 있어 가장 큰 일은 찹쌀을 엿기름에 삭혀 조청을 고는 일이다. 하지만 잘 고아진 조청만 있다면 샐러드드레싱 만들 듯 금방 해낼 수 있다. 메줏가루 대신 구하기 쉽고 맛도 좋은 청국장 가루를 쓰기로 했다. 여기에 어느 집에나 있는 고춧가루와 굵은 소금. 이걸 한자리에 모아놓고 잘 섞어주기만 하면 고추장 담그기 끝! 5월의 자연 밥상_ 즉석 고추장 재료 : 쌀 조청(투명한 물엿이 아닌 검붉은 쌀엿으로) 1컵 반, 청주 2컵 반, 청국장가루 1컵에서 1컵 반, 고운 고춧가루 3컵(고운 고춧가루가 없으면 고운체에 쳐서 고운 가루만 모아도 됨), 굵은 소금 두어 줌, 매실효소 원액 1컵 1. 물기 없는 냄비에 청주를 따른 뒤, 미지근할 정도까지만 데운다. 여기에 쌀 조청을 넣고 저어가며 푼다. 2. 1에 청국장 가루를 고운체에 쳐가며 넣어서 젓는다. 3. 2에 고춧가루 역시 고운체에 쳐가며 넣어준다. 4. 잘 저어주며, 소금 한 줌씩 넣어가며 간을 본다. 오래 저장할 게 아니니 조금 싱겁게 해도 좋다. 다만 굵은 소금이 쉽게 녹지 않으니 잘 저은 뒤 간을 본다. 여기까지 하면 고추장 담그기는 끝. 시간을 재어보니 10분 걸렸다. TIP. 병에 담기 전에 위의 상태로 반나절 가만히 놓아둔다. 그러면 가루들이 불고 소금이 녹는다. 다시 잘 저으며 농도와 간을 맞추는 게 좋다. 이때 되직하다 싶으면 매실효소 원액을 넣는다. 고추장과 어울리는 발효식품인 매실효소는 곰삭은 맛을 내는 데 도움을 준다. 5. 물기 없는 유리병에 담아 아가리에 천을 씌운 뒤, 서늘하고 공기가 통하는 곳에 일주일 두어 바람을 쏘인다. 뚜껑을 닫고 냉장고에서 한 달간 숙성시킨 뒤 먹는다. 장영란_ 1996년 ‘이민 가는 기분’으로 귀농을 결심, 뜻 맞는 사람들과 산청에서 간디공동체 생활을 시작했고 지금은 무주에 뿌리를 내리고 자급자족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연이다> <자연 그대로 먹어라> 등의 책을 썼습니다. 그는 “제철에 먹으면 내 몸이 싱싱해지고, 단순하게 먹으면 집중하는 힘이 생기며, 통째로 먹으면 마음까지 편안해진다”고 말합니다.
  • [속삭임]깜장 고무신 신은 까마귀발

    [속삭임]깜장 고무신 신은 까마귀발

    어린이날이라고, 오일장에 가셨던 어머니가 고무신을 사오셨다. 깜장 고무신. 깜장 고무신은 온 동네를 종일 쏘다니는 개구쟁이였다, 개울에서 맨손으로 잡은 송사리나 피라미를 가두어 두고, 다른 깜장 고무신들과 눈깔사탕 하나를 걸고 멀리 벗어던지기를 하고. 그러다 보면 작고 뽀얀 발이 신고 다니던 그걸 어느 때엔 웬 까마귀가 뺏어 신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책과 도시락이 든 책보를 둘러메고 학교로 가다가 진흙탕에 발이 빠져 벗겨지기도 했다. 그러면 휙, 돌아서서 냉큼 주워 한 번 탁, 턴 뒤에 양손에 나눠 들고 맨발로 뛰었다. 우산이 없어 비료포대를 뒤집어 쓴 덕분에 바지는 교실 밖에서 입은 채로 물을 짜냈다. 하교 길은 한결 여유로워 물이 불어난 논길 옆 도랑을 기웃거리며 나무 작대기로 물풀을 휘저어 개구리를 찾고, 그러다 집이 가까워지면 신은 채로 도랑물에 번갈아가며 휘휘 헹구어 발을 씻었다. 추억의 깜장 고무신. 그 속에 담긴 유년은 생각하면 늘 만수위(滿水位)로 흘러넘친다. 참 많기도 한 추억을 신고 다녔다. 삶에 바쁜 와중에 문득문득 깜장 고무신이 떠오를 때마다 신발 신고 있는 발끝을 내려다본다. 같은 깜장이지만 코끝이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가죽구두! 어떤 생명이 일생 입고 살았던 그 일부, 그 죽음의 대가를 몇 푼으로 대신하고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발에 꿰고 다닌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바뀐 건 세상만이 아니다. 커질 대로 커져서 더 이상 크지 않는 발, 그리고 신발. 생각하니, 어머니에게 고무신을 사드린 기억이 없다. 내가 고무신이었을 그때엔 어머니도 고무신이었다. 깜장과 하양. 내 건 앞이 민짜였고, 어머니 건 범선 이물처럼 볼록하게 솟았다. 그 고무신을 신고 이웃 잔치 집에 어머니 손을 잡고 함께 가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어머니도 고무신은 신지 않으신다. 고무신 한 번 안 신어 보고도 씩씩하게 잘 자라는 요즘 아이들. 고무신에 대한 추억이 있을 리 없을 아이들. 그래. 이 모든 게 현실이니까, 나도 잊을 건 잊어야지. 하지만 잊히지 않는 것마저 잊지는 말아야지…. 달빛에 외로운 깜장 고무신이 자꾸 나를 유년의 기억 속으로 밀어 넣는다. 글·사진 문근식 시인
  • “北핵실험을 英서?”…BBC 황당 방송사고

    평화롭던 영국에서 핵 실험이 웬 말? BBC 라디오 앵커의 ‘사소한’ 방송사고가 영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뉴스방송 ‘라디오 파이브 라이브’ 앵커가 지난 25일 북한의 제 2차 핵실험과 관련된 보도 중 ‘노스 코리아’(북한·North Korea)를 ‘노스요크셔’(North Yorkshire)로 잘못 발음하는 실수를 범한 것. 영국 북동부의 노스요크셔는 인구 60만 명의 도시로, 광활한 황무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무어스국립공원 등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다. 당시 앵커는 다소 우울한 목소리로 “지하 핵실험을 실시한 ‘노스요크셔’에 비난의 목소리가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반기문 UN총장도 깊은 우려를 표했다.”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반기문 총장의 이름까지 거론된 영국 핵실험 보도는 누가 들어도 ‘진짜’ 같았다. 이 방송이 전파를 타자마자 방송국에는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청취자들은 “노스요크셔에는 지하실험을 할 만한 곳이 없다.”, “영국에서 핵실험을 했다니 믿을 수 없다.”며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파이브 라이브’ 담당자는 “앵커가 혀를 너무 굴려 발음한 탓에 청취자들이 ‘노스코리아’와 ‘노스요크셔’를 혼동한 것 같다.”면서 “노스요크셔에는 어떠한 위험도 없다. 단지 실수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노스요크셔 주의원 존 블랙키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곳에 핵 벙커가 있는지 몰랐다.”며 농담을 건넨 뒤 “영국 어디에서도 핵실험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놀란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석호필’ 게임 ‘바이오쇼크’ 영화화 참여?

    ‘석호필’ 게임 ‘바이오쇼크’ 영화화 참여?

    미국 TV시리즈 ‘프리즌 브레이크’로 유명한 ‘석호필’ 웬트워스 밀러가 유명 비디오게임 ‘바이오쇼크’의 영화화에 참여한다는 소문이 나와 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미국 영화 사이트 ‘슬래시필름’에 따르면 웬트워스 밀러의 캐스팅 소문은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 ‘트위터’에서 나온 것. 웬트워스 밀러는 자신의 트위터 블로그에 “프리즌 브레이크는 끝났지만 나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일을 짐작할 수 있는 힌트를 드리겠다.”면서 ‘Bioshock’(바이오쇼크)라는 단어를 남겼다. 슬래시필름은 이 내용을 옮긴 뒤 “현재 그가 바이오쇼크 게임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면서도 “그러나 바이오쇼크 영화화와 관련돼 있다는 것이 더 그럴듯한 추리일 것”이라고 소문에 힘을 실었다. 바이오쇼크 영화는 고어 버빈스키 감독을 비롯한 ‘캐리비언 해적’ 제작진의 참여로 계약 발표 당시부터 주목받아 왔다. 각본은 ‘스위니토드 :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를 썼던 존 로건이 맡는다. 2007년 첫 편이 발매된 게임 바이오쇼크는 이용자가 비행기 추락사고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이 되어 디스토피아 수중 도시를 탐험하는 1인칭 슈팅게임이다. 출시 당시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철학적인 배경으로 게이머들 뿐 아니라 주류언론에게도 찬사를 받았다. 사진=slashfilm.com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소변 보며 나눈 농담 시비가 살인으로 번져

    오줌을 누다 농담 끝에 살인한 사건이 지난 22일 밤 10시쯤 명동에서 일어났어. 중부경찰서에 상해치사혐의로 구속된 전씨(26)는 이날밤 우연히 명동1가 신한「빌딩」앞길을 지나다 친구 김씨(23)를 만나 함께「빌딩」지하실에 있는 K다방 변소에서 나란히 오줌을 누다 김씨가 농담을 걸었다는 거야. 『××에 웬 땀이 그렇게 많이 나』전씨가 묵살하자 김씨가 한번 더 같은 농을 되풀이 하더라는 거야. 이번엔『쓸데 없는 소리 말라』고 면박을 줬으나『사실은 사실인데 뭘 그래』라며 더욱 약을 올리는 통에 자신도 모르게 박치기를 해 버렸더니 김씨가 뒤로 넘어져 뇌진탕으로 죽고 말았다는 거였어. <서울신문 사회부> [선데이서울 72년 8월 6일 200호 제5권 32호 통권 제 2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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