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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안내상 “망가져도 인정받는 시트콤에서 놀고 싶다”

    배우 안내상 “망가져도 인정받는 시트콤에서 놀고 싶다”

    까까머리 중학생 때부터 신부(神父)를 꿈꿨다. 하지만 시대의 공기는 신학도(연세대 신학과 84학번)를 놓아두지 않았다. “신앙의 또 다른 표현방식”이란 생각으로 운동권에 투신했다. 졸업 뒤 부산의 한 철강공장에 위장취업했다. 그런데 막상 겪게 된 노동 현장은 머릿속의 그림과는 달랐다. 위장취업은 3개월로 끝났다. 술에 절어 방황하는 날이 길어졌다. 어느 순간 웃으면서 살고 싶었다. 선배가 연극을 권했다. 그러다 ‘공연예술아카데미’(문예진흥원이 운영했던 공연·예술 인력 양성과정)를 찾았다. 난생 처음 독백이란 걸 했다. “가슴속 응어리를 내뱉는 쾌감”을 느꼈다. 뒤늦게 인생의 돌파구를 찾았다. ●설렘과 실망이 교차한 첫 주연 영화 거의 20년이 흘렀다. 지난 1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안내상(47)을 만났다. 1997년 장선우 감독의 ‘나쁜영화’에 행려 역할로 장편영화에 데뷔한 뒤 14년 만에 첫 주연작 ‘회초리’(19일 개봉)의 개봉을 앞둔 그는 “연기 외적으로 (인터뷰 등으로) 바빠 본 건 처음이라 어색하고 쑥스럽다.”며 멋쩍게 웃었다. 영화 ‘회초리’는 사고뭉치들을 재교육하는 예절학당의 꼬마 훈장 송이(진지희)가 친아버지 두열(안내상)을 교육생으로 만나면서 시작된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서 막장 인생을 살아온 두열이 뒤늦게 딸의 존재를 알고 개과천선한다는 이야기다. 뻔하지만 감동을 줄 수도 있는 소재다. 그런데 영화는 관객의 눈물샘이 촉촉해질 틈을 주지 않는다. 빨리 울라고 보챈다. 완성된 영화에 만족하는지 물었다. 잠시 말을 삼켰다. 안내상은 “솔직히 조금 실망했다.”면서 “송이와 내가 친해지는 과정이 편집에서 사라지니까 관객 입장에선 ‘웬 급침해짐?’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싶다.”고 털어놓았다. “영화란 게 철저한 계산이 없으면 상처받을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면서 “편집이란 게 참…”이라며 아쉬워했다. ●연기파 배우의 산실, 한양레퍼토리로 서른을 코앞에 두고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연기를 시작한 늦깎이는 한번 맛본 연기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무작정 공연예술아카데미 은사인 최형인(62) 한양대 교수를 찾아갔다. 최 교수가 1992년 만든 한양레퍼토리는 권해효(46), 유오성(45), 이문식(44) 등 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이 주축이었다. 한양대 출신이 아니면 발붙이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최 교수는 그를 선뜻 받아들였다. 안내상은 “연기란 끊임없이 ‘이 뭐꼬’란 화두를 찾아가는 과정이란 걸 이때 알게 됐다.”면서 “내 속의 부질없는 것들을 하나씩 벗어던지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틈틈이 영화도 찍었다. 연세대 출신 영화 지망생이 모여 만든 ‘노란문 연구소’에서 곧잘 어울렸던 대학 후배 봉준호 감독의 단편 데뷔작 ‘백색인’(1994)에도 출연했다. 안내상은 “모 검색 사이트에 ‘백색인’이 내 데뷔작으로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손가락 잘린 범인으로 몇 초 나온 게 전부”라면서 웃었다. 봉 감독과는 특별한 인연인데 장편 영화에서 작업할 기회는 없었는지 궁금했다. 그는 “보고는 싶은데 너무 잘돼서 감히 연락을 못 하는 엄청난 후배가 됐다.”면서 “배우로 인정받는 상황에서 작업하는 건 몰라도 인맥이나 학연으로 엮이는 건 싫다.”고 말했다. 10여년 동안 연극판(‘춘풍의처’ ‘지하철 1호선’ ‘라이어’)과 영화현장(‘말아톤’ ‘음란서생’)에서 연기력은 인정받았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와는 무관했다. 그가 처음 존재감을 드러낸 건 40대 중반에 찍은 KBS 8부작 사극 ‘한성별곡’(2007)에서 다층적인 정조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면서다. 그때 처음 팬이 생겼단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된 건 SBS ‘조강지처클럽’(2007)이다. 철없고, 무능력한 데다 때로는 ‘진상’에 가까운 오버 연기로 시청자의 뇌리에 이름 석자를 각인시켰다. 안내상은 “족보에 없는 연기를 한다고 방송국 윗선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배역 안에서 노는 게 가장 편하고 재밌다는 걸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에 이어 영화 ‘회초리’까지, 비슷한 이미지가 복제되는 부담은 없을까. “‘조강지처클럽’ 이후 찌질이 역할이 엄청나게 들어왔는데 다양한 이미지의 배우가 되기 위해 거절했다.”면서 “하지만 요즘은 아예 더 놀아 보자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왕 망가져서가 아니라 망가질 때 편하고 즐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돼서다. 시트콤처럼 망가짐이 공인된 장르에서 나를 쏟아붓고 싶다.” ●“언젠간 대학로 연극판으로 돌아간다” TV와 영화, 연극을 부지런히 오간 그에게 가장 편한 무대는 어떤 곳일까. 그는 “리허설의 살아 있는 냄새 때문에 연기가 좋지만, 빨리 찍기에 급급한 TV는 인간적인 기쁨을 느끼기 어려워 추구하고 싶은 공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감독, 배우, 스태프와 현장에서 뒹굴면서 깨달음(혹은 좌절)을 맛보는 게 살아가는 이유란 점에서 영화를 가장 사랑한다.”면서 “연극도 좋은데 극단 소속으로 할 때와 기획작품(안내상은 2009년 ‘민들레 바람 되어’로 8년 만에 무대에 섰다)에 참여하는 건 좀 달랐다.”고 말했다. 늦깎이 배우의 꿈은 뭘까. 그는 “궁극적으로는 대학로에 소극장을 하나 짓고 좋아하는 선후배와 신나게 공연을 올리며 살고 싶다.”면서 “필요한 경비만 마련되면 빨리 탈출하고 싶다.”며 웃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데스크 시각] 반면교사 삼아야 할 풍도/손원천 문화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반면교사 삼아야 할 풍도/손원천 문화부 부장급

    새삼스러운 얘기 하나 하자. 자연을 아끼자는 것이다. 요즘 얼마나 많은 이들이 환경보호를 위해 애쓰는데 웬 뜬금없는 소리냐고 힐난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서해에 풍도(豊島)라는 작은 섬이 있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안산시에 속한다. 승봉도와 대난지도 등 서해의 명승지와 인접한 섬으로, 주변에 수산자원이 풍부해 ‘풍(豊)도’라 불린다. 풍도가 뭍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데는 무엇보다 이른 봄 피어나는 야생화의 공이 크다. 복수초, 노루귀, 변산바람꽃, 홀아비바람꽃 등이 양지바른 언덕에 많이 자란다. 이 섬에서만 볼 수 있는 특산식물도 두 종이나 길러냈다. 풍도바람꽃과 풍도대극이다. 풍도가 ‘야생화의 천국’이라 불려 온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하지만 그 탓에 섬이 몸살을 앓는 역설도 생겼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양탄자처럼 숲을 뒤덮었던 몇해 전과 달리, 최근엔 야생화 개체수가 확연히 줄었다. 사람의 발길이 뜸했던 숲 사이로 ‘번듯한’ 오솔길도 생겼다. 한 사람이 걸어 간 흔적을 따라 뒷사람이 걷고, 그러다 보니 길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야생화를 뿌리째 캐 가기도 하고 꽃을 보호하는 낙엽도 흩어 버린다며 아우성이다. 급기야 안산시 측에서 섬을 야생화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꽃과 사람들 사이에 인위적인 장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너나없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가까운 거리에서 자연과 함께할 수 있었을 것을, 이젠 먼 발치에서 바라봐야 할 지경에 이르고 만 셈이다. 올해 초 방문한 충남 태안의 가의도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 섬 역시 야생화 많기로 은근히 입소문이 났다. 취재 중 만난 몇몇 섬 주민들은 신문에 홍보를 잘 해 많은 사람이 찾게 해달라고 하면서도, 섬에 야생화가 많으냐고 물으면 어김없이 “많긴 많은데….”라며 말수를 줄였다.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건 좋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발길에 섬 야생화들이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일들을 꼽자면 부지기수다. 특히 해마다 열리는 꽃축제장에서는 어김없이 볼썽사나운 일들이 빚어진다. 지난해 가을 전북 정읍시 산내면 매죽리의 옥정호 구절초 축제장에서 겪었던 일이다.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야트막한 동산에 소나무 군락지가 있고, 그 안에 구절초 꽃밭이 조성돼 있었다. 듣던 대로 휨새 좋은 소나무들과 어우러진 구절초 꽃밭의 자태는 장관이었다. 워낙 입소문을 탄 곳이어서 이른 아침부터 사진작가들이며 관광객들이 적지 않게 찾아 들었다. 그런데 인적 드문 축제장 한편에서 아주머니 몇분이 난간을 넘어 슬며시 꽃밭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철퍼덕 주저앉아 꽃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여리디여린 구절초로서야 그네들이 디딘 만큼 상처를 입을 수밖에. 이번엔 일단의 사진작가들이 꽃밭을 찾았다. 그들 역시 아무렇지 않게 난간을 넘어 성큼성큼 꽃밭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좀 더 자신이 원하는 구도를 잡기 위해서였을 터다. 도무지 거리낌 없는 행태에 부아가 치밀어 그렇게 마구 꽃밭에 들어가도 되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들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던지고는 사진 찍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정말 꽃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던 걸까. 늘 그렇듯 말썽을 빚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다. 하지만 이런 일부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 때문에 자연은 상처받고 신음한다. 한 블로거는 자신의 블로그에 ‘풍도 야생화의 비극’이란 글을 올려 “풍도 야생화 단지에 가면 늘 후회하고 꽃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고백했다. 풍도에 인위적인 장벽이 쳐진다고 상상해 보자. 흠집 내지 않고 꽃의 아름다움을 완상할 자신이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상식이 의심받는 것 같아 몹시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요즘 자연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높다. 하지만 여전히 상식이 미치지 않는 곳도 있다. 상처 입은 풍도를 보며 다시 한번 자연을 아끼는 마음을 다져야 할 때다. angler@seoul.co.kr
  • [씨줄날줄] 드레스 코드/최광숙 논설위원

    “뭐야, 옷이!” “국회를 뭘로 보는 거야.” 지난 2003년 4월 국회에서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다.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유시민 의원이 국회의원 선서를 하는 국회 본의장에 ‘백바지’에 면티, 청색 캐주얼 재킷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국회법에 국회의원의 드레스 코드(복장 규정)가 정해진 것은 없다. 셔츠에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이라는 관습이 있을 뿐이다. 유 의원은 그 선을 넘었기에 “튀려고 한다. 정치를 희화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 이전에도 파격적인 패션으로 주목받은 이들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6대 국회 등원 때 흰 구두와 양복을 입은 패셔니스트다. 당시나 지금이나 ‘백구두’는 영화배우나 신는 최첨단 패션 아이템이다. 카이저수염으로 유명한 김동길 전 의원은 14대 국회 때 나비 넥타이를 처음으로 국회에 선보였다. 옷은 개인의 생각·취향·삶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개인뿐 아니라 시대와 국가·민족에 따라 드레스 코드는 달리 나타난다. 드레스 코드로 그 나라의 역사적·문화적·정치적인 배경까지 읽을 수 있다. 얼굴을 스카프로 가리고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 여인들을 보면 이슬람 국가 출신으로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모임·장소에 따라 거기에 맞는 옷차림새를 요구하는 ‘드레스 룰’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우아하게 품위를 갖춰야 할 클래식 공연장, 격식 있는 레스토랑, 명문 골프장 등에서 드레스 코드를 요구한다. 청바지에 샌들 차림은 입장 불가다. 파티 같은 모임에는 아예 초청장에 ‘검은색 정장’ 등과 같이 옷색깔까지 콕 찍어준다. 최근 유명 한복 디자이너 이혜순씨가 호텔신라의 한 레스토랑을 갔다가 쫓겨났다. 호텔 측은 “드레스 코드가 있는데 한복과 트레이닝복은 안 된다.” “한복은 위험한 옷이다.”라고 했다. 이부진 사장이 직접 이씨를 찾아가 사과했다지만 파장이 만만찮은 모양이다. 한 네티즌은 이 사장의 모친 홍라희 여사가 한복차림으로 신라호텔에 간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아니, 자기들은 되고. 정작 돈 주고 밥먹겠다는 손님한테는 웬 까탈인지….”라며 쓴소리를 할 정도로 여론이 냉랭하다. 시인 박목월은 ‘한복’이라는 시에서 “품이 낭낭해서 좋다. 바지저고리에 두루막을 걸치면 그 푸근한 입성/옷 안에 내가 푹 싸이는 그 안도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라며 한복을 예찬했다. 한복은 우리 조상의 지혜가 담긴 문화 유산이다. 내 문화를 홀대하는 나라가 어찌 국격을 운운할 수 있겠는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中선전 “치안 위험인물 8만명 나가”

    중국 남부 광둥성 선전시 공안 당국이 오는 8월에 열리는 하계 유니버시아드 사전 안전조치의 일환으로 이른바 ‘치안 고위험 인물’ 8만여명을 골라내 추방했다. 쫓겨난 이들은 유니버시아드가 끝날 때까지 선전 땅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선전시의 우범자 추방 작업은 ‘치안 고위험 인물 조사, 정리 100일 행동’으로 명명돼 지난 1월 1일부터 지난 10일까지 진행됐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선전시 공안 당국의 ‘월권 행위’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선전시 공안 당국이 정한 분류 기준은 ▲전과자로서 장기간 선전에 머물며 뚜렷한 직업이 없는 자 ▲일해야 할 나이임에도 직업 없이 밤에만 돌아다녀 시민들이 위험하다고 신고한 자 ▲타인에게 위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는 정신병자 ▲현실적으로나 잠재적으로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자 등이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인터넷 사이트인 인민망에는 12일 “개혁·개방의 일번지이자 개방형 이민 도시의 표본인 선전에서 강제퇴출이 웬말이냐.”는 등의 기고 글이 쏟아졌다. 분류 기준이 애매하고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인터넷 매체인 ‘국제온라인’은 “만약 일시적 실업 상태에서 겨우 임시 일자리나마 구해 밤에만 출근하는 사람을 주민들이 수상하게 여겨 신고하면 그 역시 ‘고위험 인물’로 분류돼 쫓겨나야 하느냐.”며 “선전시 공안 당국의 조치는 무죄추정의 원칙에서도 크게 벗어나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중동 민주화 바람을 타고 중국에서 전개된 이른바 ‘재스민 시위’ 참가자가 형사 처벌을 받은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미술학도 출신인 웨이창(21)은 지난 2월 20일 베이징 중심가 왕푸징에서 불법 집회·시위에 참가했다는 죄목으로 노동재교육 2년을 선고받고 산시성 옌안에 있는 노동교화시설로 이송됐다고 친구 2명이 로이터에 전했다. 중국 정부는 재스민 시위 참가자 수십명을 구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사라 바렐리스 “에너지·사랑 넘치는 무대 기대하세요”

    사라 바렐리스 “에너지·사랑 넘치는 무대 기대하세요”

    “우주에서 가장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노래한다.”(마룬 5의 보컬 애덤 리바인) 웬만해서 듣기 어려운 찬사를 받은 주인공은 미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사라 바렐리스(32). 그가 분신처럼 아끼는 피아노를 처음 만난 건 여섯살 때였다. 그는 “언니의 ‘따라쟁이’였다. 언니가 레슨을 받는 게 부러워 따라했는데 1년도 안 돼 피아노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했다. 고교 때 록 뮤지컬을, UCLA에서는 아카펠라 그룹으로 활동했지만, 가수의 꿈을 이루기란 쉽지 않았다. 2002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맥주 바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노래를 불렀다. 3년의 세월이 흐르고서야 에픽레코드와 계약했다. 마룬 5, 미카 등의 전미투어 오프닝 가수이긴 했지만, 비로소 공연장에서 노래를 할 수 있었다. 2007년 1주일간의 무료 다운로드 이벤트로 입소문을 탄 첫 싱글 ‘러브송’이 300만건이 넘는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했다. 지난해 발표한 ‘컬라이더스코프 하트’(Kaleidoscope heart) 앨범은 슈퍼스타 에미넴을 제치고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차지했다. 새달 14일 서울 서교동 홍대 브이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 바렐리스(32)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한국인 사촌이 있어 한국공연이 더욱 특별하다.”는 그는 “소문만 들었던 환상적인 한국 음식과 아름다운 건축물, 나이트라이프가 기대된다.”며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데뷔 초부터 캐럴 킹이나 조니 미첼, 수전 베가, 세라 맥라클란, 노라 존스 같은 여성 싱어송라이터 계보를 이을 유망주로 떠올랐다. 3년여 동안 바 등에서 ‘실전’을 치르며 라이브와 작곡 실력을 다진 데다, 솔 느낌이 충만한 목소리까지 지녔기 때문이다. 바렐리스는 “어린 시절 엘튼 존의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며 처음 작곡이란 걸 하게 됐다.”면서 “밥 말리와 비틀스에게도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명 아티스트의 오프닝 공연을 한 것도 큰 자산이 됐다.”며 “다른 스타들을 보러 온 팬들 앞에서 공감을 끌어내는 법을 배웠다.”고 덧붙였다. 그는 “보통 공연 때 (내 노래 외에도) 비욘세나 시 로 그린 등 팬들에게 익숙한 가수들의 노래를 많이 부르는 편”이라면서 “에너지와 사랑이 넘치는 공연을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가장 충격적인 교통사고 순간 포착 ‘아찔’

    가장 충격적인 교통사고 순간 포착 ‘아찔’

    ’가장 충격적인 차사고 순간 포착’이란 동영상이 MSNBC 투데이 뉴스에 보도됐다. 문제의 동영상은 4월1일 만우절에 동영상 공유사이트에서 화제가 됐고 만우절 조작이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문제의 동영상은 실제로 벌어진 사건. 이 동영상은 웬디 코브라는 미국여성이 노스캘리포니아 고속도로에서 직접 경험한 것이다. 이 여성은 앞서가는 두 트럭이 경주를 하듯 위험운전을 하자 그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트럭 회사로 보낼 생각이었다. 촬영 중 갑자기 도로에 놓여있던 나무토막이 앞에 가던 차 바퀴에 튕겨지면서 이 여성의 자동차로 날아왔고 앞 유리를 관통했다. 웬디 코브는 “그저 충격 그 자체였다. 응급구조대원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가 촬영한 동영상을 본 경찰은 “자신의 사망순간을 촬영할 뻔 했다.”며 놀라워 했고 “목숨을 잃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밝혔다. 그녀가 촬영한 동영상은 ‘역대 촬영된 가장 충격적인 차사고 순간’ 이란 이름으로 동영상 사이트와 미국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 사진=MSNBC 투데이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 [깔깔깔]

    ●엉터리 영어 발음 맹구가 영어 웅변대회에 반 대표로 나가게 되었다. 혀에 버터를 잔뜩 묻히고 한창 발음 연습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거듭 주의를 주었다. “맹구야, 이럴 때 G 발음은 기역 소리가 나니까 조심해야 해.” “예스, 서!” 드디어 단상 앞에 선 맹구. “에, 레이디스 앤드 겐틀맨!” ‘엥. 웬 겐틀맨?’ 사람들이 웅성대자 선생님이 단상 밑에서 속삭였다. “그럴 때 G 발음은 지읒으로 나잖아.” 그제야 실수를 알아챈 맹구. 히죽 웃으며, “오 마이 잣!” ●썰렁개그 2 -또치가 또 치면 둘리가 가만 둘 리 없어. -이나영은 이 빠지면 다시 이 나영? -강혜정은 모든 걸 먹어도 강해정. -구혜선은 구해선 안 되고 구하라는 구하라.
  • 남미 축구장 관중석에 ‘시신 누운 관’ 황당 사건

    남미에서 축구장에 관이 몰래 들어갔다. 관에는 실제로 시신이 누워 있었다. 축구장 경비에 구멍이 뻥 뚫린 것으로 드러나면서 경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황당한 관 반입사건은 남미 콜롬비아에서 27일(현지시간) 벌어졌다. 콜롬비아 프로축구 1부 경기가 열린 축구장 관중석에 갑자기 관이 보였다. 관중들의 손을 타고 관은 관중석을 미끄러져 내려왔다. TV 등이 이 모습을 잡아내면서 경찰은 발칵 뒤집혔다. “관중석에 관이 웬 말이냐.” 허겁지겁 사태를 수습하고 관을 확보한 경찰은 뚜껑을 열고 또 한번 놀랐다. 관에는 실제로 시신이 누워있었다. 경찰조사 결과 관에 누운 사람은 전날 밤 사망한 16세 소년이었다. 도시 빈민촌에 살고 있는 이 소년은 공원에서 축구를 하다 청부살인업자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 그의 친구들은 치안에 허점이 많다는 걸 보여주겠다며 소년의 빈소를 찾아가 가족의 동의를 얻고 관을 넘겨받았다. 그리곤 신통하게 관을 축구장 안으로 들여갔다. 경찰 관계자는 “관을 들여간 이들이 모두 과격행위 전력을 갖고 있어 축구장 입장이 금지된 상태였다.”면서 “그런 사람들이 관까지 버젓이 축구장에 들어갔으니 축구에 비유하면 경찰로선 두 골을 한번에 허용한 꼴이 됐다.”고 얼굴을 붉혔다. 소년은 축구장 주변에서 난동을 일으키곤 하는 과격 축구 팬이었다. 살인을 사주한 건 소년의 조직과 대립하고 있는 또 다른 과격 팬 조직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깔깔깔]

    ●바보와 머저리 어느 면접관이 점심식사 후 한 면접시험에서 얼굴이 말처럼 긴 응시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여보게, 자네는 지금 마치 넋 나간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얼굴이 무척 길구먼. 혹시 머저리와 바보가 어떻게 다른지 아나?” 그는 청년이 얼굴을 붉히고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러나 청년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결례되는 질문을 하는 쪽이 머저리이고 그런 말에 대답을 하는 쪽이 바보입니다.” 이 기막힌 대답을 한 청년은 합격했다. ●파리들의 식사 어느 날 아기 파리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왜 우리는 똥만 먹어?” 그러자 엄마 파리 왈. “이 녀석이! 밥 먹는데 웬 똥 얘기야!”
  • [길섶에서] 폐지 줍는 할머니/박홍기 논설위원

    폐지를 줍는 한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깔끔한 차림의 할머니는 서울 종로구의 주택가에서 조그만 손수레를 끌고 있었다. 종이상자를 겹겹이 싣고서. 일흔은 족히 됐을 법했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분리수거가 워낙 잘 지켜지는 터라 종이상자나 폐지가 없지만 주택가엔 아직 일거리가 적잖다. 인심도 남아 있는 까닭에 종이상자 등을 차곡차곡 정리해 대문 밖에 내놓는다. 잘 가지고 가라는 듯이. 동네 분인 듯한 다른 할머니가 “뭘 그리 어렵게 해. 쉬기나 하지.”라며 인사를 건네자 웃으면서 하시는 말씀, “어때, 집에 있으면 뭐하누. 돌아다니면 운동도 되고, 돈도 벌고, 한참 움직이면 밥맛도 좋고, 운 좋은 날엔 쏠쏠해.” 웬만한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서울의 한쪽에서는 폐지를 모으는 할머니들끼리 다투다 크게 다치는 사건이 일어날 만큼 삭막해진 세상에서. 그 할머니는 “좋아서 하는 일이야. 행복이 따로 있는감.”이라며 종이상자를 집어들었다. 정말이지, “행복이 뭐 별건감.”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지름 25㎝·600 g ‘위대한 버거’

    지름 25㎝·600 g ‘위대한 버거’

    롯데의 ’통 큰 치킨‘과 신세계의 ’이마트 피자‘의 뒤를 이어 또 하나의 저가 패스트푸드 상품이 등장해 관심을 끈다. GS리테일은 지난 18일부터 전국 200여개 GS슈퍼마켓의 조리 식품 코너에서 초대형 햄버거인 ‘위대한 버거’를 팔고 있다고 20일 밝혔다. 이 상품은 이름에 걸맞게 지름 25㎝, 무게 600g으로 맥도날드 불고기버거(152g)의 네 배에 달하는 ‘대짜’ 햄버거다. 웬만한 피자 한 판 크기여서 보통 햄버거처럼 포장지에 싸지 않고 두꺼운 골판지 종이 상자에 넣어 판다. 혼자 먹는 일반 햄버거와 달리 여섯 조각으로 나눠 4~5명이 족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출시 기념으로 24일까지 개당 5000원에 판다. 햄버거 전문점의 단품 값보다도 싸다. 그럼에도 닭고기 패티와 피클, 토마토, 오이, 상추 등 보통 햄버거에 들어가는 재료는 빼놓지 않고 구색을 갖췄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GS슈퍼마켓은 행사가 끝나도 원래 책정된 가격인 1만 2000원에서 연중 상시 할인을 적용해 7990원에 팔 계획이다. 크기와 내용물을 고려하면 그리 비싸다는 느낌은 없을 것이라는 게 GS 측의 생각이다. 행사 첫날부터 입소문을 타 대부분 매장에서는 저녁 전에 일찌감치 준비한 물품이 다 팔려나갔다. 그러나 앞선 두 상품이 영세 자영업자들의 원망을 사며 뒷말을 낳은 것과는 달리 ’위대한 버거‘는 대부분 대형업체의 직영매장이 다루는 햄버거라는 품목이고, 그것도 쉽게 보기 어려운 ’초대형‘이란 점에서 틈새시장을 절묘하게 파고들 수 있을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서양에서 먼저 알아본 사진작가 민병헌…은은한 맛이 동양화 보는 듯

    서양에서 먼저 알아본 사진작가 민병헌…은은한 맛이 동양화 보는 듯

    “예전에 어떤 신문기자분이 그러시대요. 기사를 쓰고 싶어도 제 작품 사진을 쓸 수가 없어서 난감하다고. 미술 하면 뭔가 화려한 게 있어야 하는데 제 작품은 희끄무레하다 보니 신문에 크게 실어 놓으면 딱 제작 사고처럼 보인다나요.” 희끄무레한 사진이 나오는 이유를 설명해 보자면 이렇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는 당대에 등장한 카메라의 렌즈가 대상을 찍어내는 방식에서 점묘법을 착안했다. 사람의 손으로 그리되 카메라의 눈으로 바라본 것. 민병헌(56) 작가가 내놓은 ‘폭포’(Waterfall) 시리즈는 정반대다. 대상은 카메라의 손으로 거머쥐는데 바라보는 것은 사람의 눈이다. 쇠라가 사진 같은 그림을 그렸다면, 민병헌은 그림 같은 사진을 찍는다. ●‘동양화 같은 사진’ 美·佛서 주문 밀려 작업방식에서도 드러난다. 화창하지 않은 날, 그러니까 비나 바람이나 안개가 적당히 있는 날에 촬영한다. 여기다 흑백 필름만 고집하고 인화작업도 직접한다. 인화 때도 톤을 최대한 낮춰 뽑아낸다. 흑백만 해도 색채감이 뚝 떨어지는데 톤까지 낮춰버리니 몇몇 작품은 뭔가를 찍었다기보다 뉘앙스를 풍기는 정도에 그친다. 바로 이 뉘앙스를 봐달라는 게 민 작가의 말이다. “저도 처음엔 콘트라스트(명암 대비)가 명확한 사진을 찍었어요. 흑백 사진의 묘미가 거기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명확한 콘트라스트는 그냥 검고 흰 것만 남기고 디테일들을 다 죽여요. 그래서 콘트라스트를 최대한 억제해 보니 모든 디테일들이 다 살아나더라고요. 흰색, 검은색 속에 모든 게 녹아드는 게 아니라 다양한 높낮이의 회색톤들이 나오는 거죠.” ●“명암 억제하니 디테일이 살아나” 이런 작품이다 보니 에피소드도 있다. “1990년대에 ‘잡초’ 시리즈를 내놨어요. 큰 회사 사모님이 마음에 드셨나봐요. 양수리 작업실까지 오셔서 사가셨죠. 그런데 다음날 사진을 바꾸재요. 왜 그러시냐 했더니 남편 분이 집안에 웬 잡초를 들이냐고 야단쳤다는 거예요. 그래서 바꿔 간 게 하늘을 찍은 ‘스카이’ 연작이에요. 이 연작은 구름 하나 없는 하늘을 찍은 거라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하늘이라면 괜찮다고 하셨대요. 더 웃긴 건 나중에 한 갤러리에서 제 작품을 고객에게 선전하면서 ‘들풀’ 연작이라고 하더라고요. 순간 아하, 잡초가 아니라 들풀이라고 했으면 더 잘 팔렸을 텐데 싶더라고요.” 처음부터 환영받은 작업은 아니었다. 1980년대 유행은 ‘마사지’한 사진들이었다. 때문에 있는 그대로 우직하니 찍어 승부를 내는 그에게 주어지는 공간은 별로 없었다. 작가 스스로도 1980년대를 일러 “그때를 생각하면 소외감, 열등감 같은 단어만 떠오른다.”고 할 정도다. ●“필름 인화하는 내내 조바심… 불안함이 좋아” 그의 작품을 먼저 알아본 곳은 해외. 1990년대부터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주문이 밀려들면서 시쳇말로 ‘떴다’. 작품에서 풍겨져 나오는 은은한 맛이 마치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전부 수작업이다 보니 작품은 커 봤자 가로·세로 130㎝를 못 넘긴다. 더욱이 디지털카메라의 유행으로 인화지를 구하는 일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재고를 써 보기도 했지만 질이 떨어져 작품을 망친 뒤로는 쓰지 않는다. 그래도 옛 방식의 수작업이 좋단다. “불안함이 참 좋아요. 디지털 사진기는 찍고 바로 확인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흑백필름은 그게 안 되니까 찍고 나면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고 불안하고. 인화하는 내내 괜찮게 나올까 조바심도 나고. 그러다 보면 풍경이나 대상을 사진기가 아니라 내 마음에 품어 올 수 있어요. 그게 제일 좋아요.” 그래도 색에 대한 갈망은 없었을까. “한때 컬러를 해 볼까도 했어요. 완전 수작업이라 비용과 돈이 많이 들어서 안 되겠더라고요. 그러나 깔끔하게 포기했습니다. 대신 옷에는 관심이 많아요. 패션 같은 데서 대리만족하고 사나 봐요.” 그러잖아도 작품을 보고 작가를 보면 언뜻 조화가 잘 안 된다. 믹 재거 같다는 얘기에 크하하 웃는다. “작품만 보신 분들은 생활한복 입고 수염 기른, 어디 인사동 같은 데 앉아 있는 사람이 떠오른대요. 그러다 저를 직접 보면 다들 놀라요. 이런 날라리가 없거든요.” 하반기에는 작품집도 나온다. 프랑스 전시도 준비 중이다. 이번엔 누드 시리즈다. 일반인 모델을 썼는데 톤은 기존 시리즈와 비슷하단다. “일반인들은 희미하게 찍히면 싫어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은은한 톤 때문에 오히려 더 좋아한다.”고 한다. 오는 5월 10일까지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 ‘안개’(Deep Fog), ‘나무’(Tree), ‘스노랜드’(Snowland) 시리즈 등 전작(前作)도 만날 수 있다. 3000~4000원. (02)418-1315.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읽기] (1) 글쓰기 ‘프리랜서’ 연암 박지원

    [고전 인물로 다시읽기] (1) 글쓰기 ‘프리랜서’ 연암 박지원

    ●두 개의 미스터리 하나 1792년 10월 19일 정조는 동지정사 박종악과 대사성 김방행을 궁으로 불러들인다. 청나라에서 들어오던 명청소품 및 패관잡서에 대해 강경하게 수입을 금지하는 조처를 내리기 위해서다. 동시에 과거를 포함하여 사대부 계층의 글쓰기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검문이 실시된다. 타락한 문풍을 바로잡고 고문(古文)을 부흥시킨다는 명분 하에 정조와 노론계 문인들이 첨예하게 대립한 이 사건이 바로 ‘문체반정’이다. 사건이 한창 무르익을 즈음, 정조는 느닷없이 이렇게 말한다. “근자에 문풍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박지원의 죄다. ‘열하일기’를 내 이미 익히 보았거늘 어찌 속이거나 감출 수 있겠느냐?” 열하일기가 세상에 나온 지 이미 10여년이 지났고, 당시 연암은 개성 근처 연암협에서 조용히 노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근데, 열하일기가 사건의 배후라고? 웬 뒷북? 아니면 국면전환용 포즈? 둘 “예로부터 훌륭한 글은 얻어보기 어려운 법/ 연암 시를 본 이 몇이나 될까?/ 우담바라 꽃이 피고 포청천이 웃을 때/ 그때가 바로 선생께서 시를 쓸 때라네”-연암 그룹의 일원인 박제가의 시다. 3000년에 한번 핀다는 꽃 우담바라. 살아서는 서릿발 같은 재판으로 유명하고 죽어선 염라대왕이 되었다는 포청천. 그가 웃는다고? 차라리 황하가 맑아지기를 바라는 게 나을 터. 그렇다! 연암은 시 짓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한시가 사대부 교양의 척도였던, 하여 저 이름 없는 향촌의 선비들까지 수백, 수천 수를 남기던 그 시대에 연암은 고작 평생 50수 정도를 남겼을 뿐이다. 대체 왜? ●청년기 - 우울증과 탈주 연암 박지원. 1737년(영조 13년) 2월 5일 새벽. 서울 서소문 밖 야동에서 태어났다. 노론 일당독재 시절에 노론 벌열가문에서 태어났고, ‘붓으로 오악을 누르리라.’는 꿈의 예시까지 받았으니 일단 출생은 고귀했던 셈이다. 초상화로 보건대 거구에다 카리스마 또한 장난이 아니다. 명문가의 천재에게 주어진 코스란 과거를 통한 입신양명뿐. 하지만 연암의 생애는 그 입구에서부터 꼬여버린다. 십대 후반 한창 과거공부에 매진할 즈음,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청년 연암은 저잣거리로 나선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분뇨장수, 건달, 이야기꾼 등 수많은 ‘마이너 그룹’과 접속한다. 이들에 대한 ‘톡톡 튀는’ 기록이 처녀작 ‘방경각외전’이다. 우울증과 ‘마이너리그’, 그리고 글쓰기. 이 일련의 체험 속에서 연암은 돌연 과거를 포기한다. 평생 권력의 외부에 남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 또한 미스터리다. 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런 탈주를 감행케 한 것일까? 흔히들 정쟁의 격화 때문이라 여기지만 과연 그럴지는 미지수다. 만약 그 때문이라면 이 청년의 기질상 오히려 현실참여 의지가 솟구쳐야 더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그보다는 기본적으로 그는 격식과 관습에 매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타고난 천재가 까다로운 격률이 싫다며 한시를 그토록 멀리했으니, 이보다 더 명확한 증거가 어디 있으랴. 말하자면 그는 ‘본 투 비 프리랜서’였던 것. 우울증은 이런 ‘원초적 본능’을 일깨워주기 위해 ‘신이 보낸 선물’이 아니었을지. ●‘백탑청연’ - 18세기 소셜 네트워크 사대부 문인이 과거를 포기하면 남는 건 시간이다. 연암은 그 시간들을 사유와 글쓰기로 충만하게 채웠다. 더 중요한 건 그 모든 것을 ‘벗’들과 함께했다는 것. ‘친구에 살고 친구에 죽는’ 그의 평생의 철학 또한 타고난 기질에 속한다. 문중별, 당파별 강학이 일반적이었던 시절, 연암은 당파와 신분을 가뿐히 뛰어넘는 ‘우정의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근거지는 다름 아닌 백탑(탑골 공원). 이덕무, 박제가, 정철조 등 다양한 벗들과 더불어 백탑 근처에 모여 살면서 밤마다 맑고 드높은 지성의 향연을 누렸다. 이름하여 백탑청연! 그들이 주고받은 지식의 스펙트럼은 실로 드넓다. ‘시서예화’는 기본이고, 천문지리에서 기술문명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인생과 우주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포함되었다. 그런 점에서 백탑청연은 18세기 지성사의 ‘소셜 네트워크’였던 셈. ‘청 문명으로부터 배우자!’는 북학의 이념이 탄생된 것도 거기였고, 소품문과 척독(편지글)을 통해 고문의 기반을 뒤흔드는 문체적 실험이 일어났던 것도 그 장에서였다. 그리고 그 실험의 결정판이 바로 열하일기다. ●“살았노라, 그리고 열하일기를 썼노라!” 1780년, 연암의 나이 44세, 마침내 그토록 열망하던 중국여행의 기회가 다가왔다. 삼종형 박명원을 따라 청나라 건륭황제의 만수절 축하사절단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애초 목적지는 연경이었다. 압록강에서 연경까지는 무려 2300리. 때는 바야흐로 폭우에 무더위가 교차하는 한여름이다. 천신만고 끝에 연경에 도착했건만 황제는 연경에 있지 않았다. 동북부 변방의 피서지, 열하에 가 있었던 것. 그리고 한밤중 당장 열하로 들어오라는 황제의 명령이 도착한다. 이리하여 연암과 그의 일행은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고북구 장성을 넘는다. 그것도 ‘무박나흘’의 살인적 여정으로. 이 지독한 고난이 그의 글쓰기 본능을 촉발했던 것일까. 이 여정에서 불후의 문장들이 쏟아져 나온다. 5000년래 최고의 문장이라는 ‘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 생사의 문턱을 넘으면서 마침내 도를 깨달았다는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코끼리를 통해 우주의 이치를 터득하는 ‘상기’(象記) 등등. 열하일기가 일으킨 파급력은 실로 뜨거웠다. 당장 태워버려야 한다는 극단적 ‘안티’에서 천고의 기이한 문장이라는 열렬한 찬사까지. 그래서인가. 열하일기는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공적으로 간행되지 못했다. 오직 필사본으로 떠돌면서 수많은 버전들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호학군주였던 정조는 충분히 감지했으리라. 고문에서 소품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의 글쓰기가 성리학적 지반에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그런 점에서 문체반정 때 열하일기를 배후로 지목한 것은 ‘뒷북’도, ‘쇼’도 아니었다. 열하일기 없이 18세기 지성사를 논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졌음을 왕의 입으로 직접 증언해준 것일 뿐이다. 연암은 묘비명의 대가였다. 특히 그 중에서도 누이와 홍대용, 정철조에 대한 묘비명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퀴엠’에 해당한다. 하지만 웬일인지 정작 연암 자신에 대한 묘비명은 없다. 이 또한 미스터리다. 안 쓴 것인지 못 쓴 것인지. 아무튼 지금이라도 누군가 그에 대한 묘비명을 쓴다면, 아마도 이 한 줄이면 족하리라. “살았노라, 그리고 열하일기를 썼노라!” ●연암 vs 다산 - 그들은 만나지 않았다! 18세기는 별들의 시대였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선도한 정조의 시대이자 연암의 시대였고, 또한 다산의 시대였다. 이 화려한 ‘스타워스’에는 아주 놀라운 수수께끼가 하나 숨어 있다. 연암과 다산, 조선 후기 실학사에서 한쌍의 커플처럼 따라다니는 이 두 거성이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 둘 다 서울 사대문 안에 거주했을뿐더러 정조를 중심으로 늘 양편으로 분립했던 두 파벌(연암그룹/ 다산학파)의 대표주자였으며, 더 구체적으로는 연암의 절친들이 다산과도 깊은 교유를 했었는데도 말이다. 더 놀랍게도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둘은 전혀 상이한 궤적을 밟았다. 연암이 일찌감치 권력의 궤도로부터 이탈해갔다면, 다산은 정반대로 권력의 중심을 향해 달려갔다. 재야 남인 출신임에도 그는 정계에 입문한 이후 정조의 신임을 한몸에 받은 ‘왕의 남자’였다. 그 엇갈림이 극단적으로 연출되었던 사건이 바로 문체반정이다. 보다시피 연암은 배후조종자로 찍힌 반면, 다산은 정조의 입장을 옹호하는 격렬한 상소를 올린다. “국내에 유행되는 것은 모두 모아 불사르고 북경에서 사들여 오는 자를 중벌로 다스리라.”는. 요컨대, 그 둘은 평행선이었다. 평행선은 만나지 않는다. 하지만 둘은 헤어지지도 않는다! 만나지도, 헤어지지도 않는 이 운명적 조우 속에서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배경이 된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했던가. 어디 친구만 그런가. 적을 봐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연암은 실로 인복을 타고난 인물이다. 평생을 벗들과의 교유 속에서 살았고, 사후엔 이토록 강력한 라이벌을 짝으로 삼을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 모든 지복은 그가 평생을 권력의 외부에서 글쓰기의 향연을 누렸기에 가능했던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고미숙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데스크 시각] 출입처가 없어지니… /임병선 영상콘텐츠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출입처가 없어지니… /임병선 영상콘텐츠부 부장급

    손톱 밑의 검은 때가 모든 것을 말해줬다. 지난해 12월의 어느 날, 서울 종로의 커피점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노숙인 생활을 그만둔 지 반년쯤 된 그에게 빵 한 조각과 커피를 대접했다.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였다. 그가 아침 일찍 거리에 나와 종종걸음치는 직장인들에게 노숙인 자활 잡지를 사달라고 1시간 30분이나 외친 뒤였다. 기자보다 열살은 많아 보이는 외모. 그런데 조심스레 물어 보니 아홉살 아래란다. 삶의 굴곡이 얼굴에 잔뜩 생채기를 남긴 듯했다. 삿된 기운이 가시지 않은 눈초리에 언뜻 천진난만함이 깃들던 순간들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달이 바뀔 때면 새로 나온 잡지를 들고 거리에서 목멘 외침을 늘어놓을 그를 그리워하게 됐다. 기자는 서울신문 편집국 소속이지만 방송 일을 하고 있다.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금요일 오후 7시 30분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이란 보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21년 전 입사했을 때 꿈도 꾸지 않았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첫 방송을 시작한 지 9개월이 됐고 4일 저녁 40회분이 방영된다. 여전히 촬영 현장에 나가면 “서울신문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웬 동영상 카메라?”라면서 당황하는 취재원들을 본다. 조금만 설명하면 취재원들도 금세 고개를 끄덕인다. 신문 동네가 영 신통치 않으니 곁방살이에 힘겹겠구나 하는 동정도 읽힌다. 기자 또래보다 방송과 영상 전달 방식에 훨씬 친숙할 후배들마저 지면 일과 방송 제작을 병행하느라 벅차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 기자들을 괴롭혀 가며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다. 주 1회, 한 주가 끝날 무렵에 방송을 내보내다 보니 피할 것도 많고 조심스러운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정된 인력과 자원으로 꾸리다 보니 지상파나 기존 보도전문 채널에서 제공하는 뉴스보다 여러 모로 손방이다. 그런 속에서 조그만 위안과 보람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장삼이사(張三李四)와의 만남이다. 출입처에 매인 처지였다면 결코 만나기 쉽지 않았을 이들에게서 진한 사람 냄새를 맡고 있다.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의 쪽방촌에도 들어갔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정말 1980년대 달동네로 시간이동한 것 같았다. 두 손자를 건사하며 힘든 나날을 잇고 있는 할머니를 인터뷰했고, 그 동네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평화의 집’을 찾았다. 25년째 그곳에서 자원봉사하는 안정자씨는 병을 얻어 “이대로는 죽겠다싶어” 구로구 개봉동으로 이사했다고 했다. 말이 이사지 실은 피신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내 어르신들이 전화로 찾아대는 통에 왕복 3시간의 버스 출퇴근을 3년째 이어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묻어 있던 행복감을 쉬 잊지 못한다. 이 시설을 세우고도 그 흔한 사진 한장 걸어놓지 않고 한달에 한번 신용카드를 건네며 “어르신들께 맛난 것 만들어드리게 마음껏 장을 봐라.”고 당부한다는 임춘식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잊기 어렵다. 임 교수는 이따금 이곳을 찾을 뿐 언론에 좀처럼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겸손함으로도 커다란 존경을 얻고 있다. 노숙인들의 ‘큰형님’ 이명식 중랑구청 주무관이 동상 자국이 덕지덕지 남아 있는 노숙인 발을 어루만지는 모습은 또 어떤가. 후배 PD가 촬영한 영상으로 본 것이지만 출입처 칸막이 안이라면 과연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그렇게 평범한 이웃의 고단한 일상을 함께하다 보니 과거 출입처에서 만났던 취재원들이 참 재미없었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펜이나 컴퓨터 자판 대신 마이크를 잡다 보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게 됐다. 일전에 편집국 제작회의에서 많이 부족한 우리 프로그램 이름을 들먹이며 “많은 시청 바랍니다.”라고 말해 실소를 산 일도 있다. 감히 독자 여러분께 같은 말씀을 여쭌다. bsnim@seoul.co.kr
  • 거제 시장실 바닥 ‘비밀 銅板’ 깐 까닭은

    ‘시장님 방바닥에 웬 동판이?’ 28일 경남 거제시에 따르면 최근 인부들이 시청 2층 시장실의 낡은 카펫을 새로 바꾸는 공사를 하다가 카펫 아래에 동(銅)으로 된 얇은 판이 깔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동판은 두께 0.01㎜, 가로 10.8m와 세로 8.8m의 큰 크기로 집무실 넓이 118㎡ 중에 책상 등 집기가 놓인 94㎡에 깔려 있었다. 직원들이 수소문해 본 결과 2003년 보궐선거에 당선됐던 김모 전 시장이 한 역술인의 조언에 따라 설치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당시 김 전 시장은 “거제시청뒤쪽의 해발 568m 계룡산에서 흐르는 수맥이 나쁜 기운을 품고 있어서 이를 막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구설을 염려해 작업은 되도록 몰래 해치웠다. 앞선 2명의 전직 시장이 금품수수 등의 혐의로 잇따라 구속된 상황이어서 역술인의 말을 그냥 흘려듣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계룡산 수맥의 나쁜 기운’은 단단한 동판으로도 끝내 막지 못했다. 5·6대 시장을 연임한 김 전 시장은 재임시절 업체로부터 사업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로 구속되고 말았다. 퇴임 후인 지난해 11월의 일이다. 거제시는 민선 초대시장부터 김 전 시장에 이르기까지 3명의 시장이 모두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 한편 권민호 현 시장은 이런 사실을 보고받은 뒤 동판을 말끔하게 걷어내도록 지시했다. 거제시는 동판을 고물상에 팔고 받은 36만원을 시의 세외수입으로 처리했다. 거제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새음반]

    ●러브 레터 R&B(리듬 앤드 블루스)의 제왕 알 켈리의 10번째 정규앨범. 1950~60년대 마빈 게이나 샘 쿡 등 선배 솔 가수에게 바치는 존경심이 묻어난다. ‘웬 어 우먼 러브스’(When A Woman Loves) 등 수록곡 대부분이 따뜻한 사랑 노래로 채워져 있다. 그가 작곡해 마이클 잭슨에게 줬던 ‘유 아 낫 얼론’(You Are Not Alone)을 리메이크한 곡이 히든트랙에 담겨 있다. 소니뮤직. ●두 왑스 앤 훌리건스 워싱턴포스트가 “마이클 잭슨부터 제이슨 므라즈까지 다 해치운다.”고 극찬한 ‘꿀성대’ 브루노 마스의 데뷔앨범. 보컬은 물론, 작곡과 프로듀서로 다재다능함을 뽐내는 마스는 제53회 그래미어워즈 7개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수록곡 중 ‘저스트 더 웨이 유 아’(Just the Way You Are)와 ‘그레네이드’(Grenade)는 미국 빌보드와 영국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워너뮤직. ●우리가 사랑하는 바로크 피아니스트 김대진·손열음과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소프라노 조수미 등 25인의 음악가가 팬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100곡의 바로크 명곡을 골라 7장의 CD에 담았다. 바흐가 100곡 가운데 무려 28곡이나 선정돼 2장의 CD를 독차지했고, 헨델과 비발디도 각각 1장의 CD를 가득 채웠다. 25인의 선정위원이 직접 쓴 추천사를 읽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유니버설 뮤직.
  • MTV 예능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MTV 예능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글로벌 뮤직 엔터테인먼트 채널 MTV가 새달부터 ‘예능 종합선물세트’를 선보인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원조 격인 ‘패리스 힐튼의 BFF’(BFF=Best Friends Forever·절친)를 방송하는 등 이 분야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져 온 MTV가 주특기를 살려보겠다는 얘기다. 전 세계 MTV에서 방송 중인 ‘웬 아이 워즈 세븐틴’(When I Was 17)과 ‘플레인 제인’(Plain Jane), ‘무빙 인’(Moving in)이 히든 카드로 나선다. 새달 6일 낮 12시에 대중문화 명사들을 소재로 한 ‘웬 아이 워즈 세븐틴’이 첫 테이프를 끊는다. 솔과 리듬앤드블루스(R&B) 음악계의 슈퍼스타인 어셔와 니요, 2007년 내한공연을 펼치기도 했던 여성 팝스타 시애라 등 미국 할리우드 톱스타들의 평범하고 풋풋했던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낱낱이 공개할 예정이다. 다음 날 밤 10시에는 ‘플레인 제인’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영국의 유명한 방송진행자이자 모델, 패셔니스타인 루이스 로가 멘토가 되어 암울하고 칙칙한 솔로들의 외모와 성격, 패션 센스까지 완벽하게 뜯어고친다. 플레인 제인은 ‘평범한 여자’라는 뜻.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보통사람 메리, 수전이 퀸카 안젤리나, 스칼렛으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날 밤 11시에는 신개념 동거 리얼리티쇼인 ‘무빙 인’이 첫 방영된다. 얽히고설킨 삼각관계를 정리하는 지름길은 다 함께 모여 살아 보는 것이라는 독특한 발상에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한 여자를 얻기 위한 두 남자의 동거를 다룬다. 여자친구의 애인이나 부모와의 기이한 동거 이야기가 색다른 즐거움을 전해 준다. MTV 브랜드 총괄 황재상 상무는 “새해 다양한 포맷의 신개념 리얼리티들을 대거 선보일 계획”이라면서 “이번에 편성되는 세 개 프로그램 외에도 리얼 라이프스토리를 담은 프로그램들을 곧 방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여성보건국장 자리에 웬 남자”

    전북도가 복지여성보건국장 자리에 남성을 임명하자 지역의 여성계가 집단으로 반발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전북도는 지난 17일 단행한 국장급 인사에서 ‘여성 공무원의 몫’으로 인식돼 온 복지여성보건국장에 유모 부이사관을 임명했다. 도는 국장급으로 승진이 가능한 서기관급(4급) 여성 공무원 5명 가운데 승진 연한(5년)에 걸리지 않는 2명 중 1명은 오는 6월 공로연수에 들어가고 나머지 1명은 관련 부서 행정경력이 짧다는 이유로 승진인사에서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도는 1988년 첫 여성 국장이 배출된 뒤 23년 만에 국장급 여성 공무원이 없는 상황을 맞았다. 전북도의회 여성 의원들과 여성단체가 인사 철회와 함께 여성 국장 임명을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오은미·정진숙·이계숙·이현주 등 4명의 여성 의원들은 17일부터 지사 집무실에서 3일째 철야 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사의 인사권은 존중하지만 복지여성보건국장은 여성계와의 소통 및 사회복지분야 특수성을 고려해 여성 고유의 몫으로 인식돼 왔다.”며 “명분과 원칙을 스스로 저버린 전북도의 인사 철회를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정부의 행정자치 5개년 계획에 따라 5급 이상 여성 공무원 비율을 2011년까지 9.6%로 확대하기로 했지만 전북은 고작 5.7%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전주 YWCA, 원불교 여성회 등 여성단체들도 “이번 인사는 여성복지국의 업무와 기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며 “지역 여성을 무시한, 지극히 행정편의적인 인사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여성계는 또 “여성 공무원은 계속 늘고 있는 데 반해 자치단체들이 중간급 관리자 양성에는 소홀했던 것이 이번 사태를 야기한 것”이라면서 “고위 공직자와 관리자급의 남녀 간 불균형도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북도의 4급 이하 직원 중 여성의 비율은 ▲4급 8.2%(6명) ▲5급 6.5%(16명) ▲6급 14.7%(61명) 등에 그쳤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학생기자단 ‘숨은 기부자 찾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학생기자단 ‘숨은 기부자 찾기’

    지난 18일 오후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 개찰구 앞. ‘사랑의 열매 모금함’이 설치된 이곳에서 대학생들이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카메라와 녹취용 마이크를 든 이들은 한 곳을 뚫어져라 살피고 있었다. 이들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모금회) 서울지부 소속 대학생 기자단. 벌써 10시간째 ‘지하철 모금함, 숨은 기부자를 찾아라’는 행사를 위해 익명의 기부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 없는 천사들이 참된 기부자” ‘~숨은 기부자를 찾아라’는 모금함에 성금을 기부하는 사람들을 찾아 인터뷰해 모금회 회보에 싣고 사용자 제작 콘텐츠(UCC)로 제작해 알리는 행사. ‘과연 어떤 사람들이 기부를 할까.’ 하는 궁금증 때문에 이 행사를 기획했다. “세상이 이렇게 각박한 걸까.” 7명의 기자단은 하나, 둘씩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오후 4시가 넘어가건만 아직까지 기부자가 보이지 않았다. 예년 같으면 모금함이 가득 찼을 법도 한데, 올해는 사정이 정반대다. 지난해 모금한 자금 관리에 문제가 생기면서 기부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이 몰라보게 차가워졌다. 오후 4시 30분.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려는 순간 첫 기부자가 나타났다. 정장 차림의 50대 남성이 주인공. 대학생 기자단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허둥지둥 카메라와 마이크를 기부자에게 내밀었다. 어리둥절해하던 기부자는 이내 ‘일상적인 일에 웬 호들갑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홍콩에 거주하다 잠시 귀국했다는 그는 어떻게 기부를 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모금함이 보여서 돈을 넣었다. 기부하는 게 뭐가 대수냐.”라면서 “홍콩에서는 번화가에 있는 모금함에 돈을 넣으면 봉사자가 다가와 옷에 배지를 달아주는 등 기부가 일상적인 문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대학생 기자단에게 희망의 불씨를 남기고 다시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다시 긴 기다림이 시작됐다. 삼각김밥과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자리를 지키기를 네 시간여. 오후 8시 40분쯤 두 번째 기부자가 나타났다. 평소 모금함을 볼 때마다 기부를 한다는 강혜경(50·여)씨는 “돈이 많지 않아 크게는 못 하지만 적은 돈으로 자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기자단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종일 2명… “그래도 세상은 따뜻” 이날 밤 11시까지 자리를 지켰지만, 기부자는 단 두명. 하지만 기자단은 실망하지 않았다. 기자단장 진유리(22·성신여대 4학년)씨는 “기부자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까지 생각했는데 그래도 두명이나 나타나 힘이 났다.”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 사회가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모금회 기획홍보팀 김효진 대리는 “모금함에 돈을 넣고 사라지는 사람들이야말로 참된 기부자”라면서 “더 많은 시민들이 기부라는 사랑의 열매를 같이 나눴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김동현·김소라기자 moses@seoul.co.kr
  • 구제역 첫 과로사 공무원 故원영수씨 눈물의 영결식

    구제역 첫 과로사 공무원 故원영수씨 눈물의 영결식

    “10년, 아니 20년이 지나도 잊지 않겠습니다.” 밤새도록 구제역 방역에 동원됐다가 과로로 순직한 경기 의정부시 공무원 원영수(49)씨의 영결식이 18일 오전 9시 의정부시청 주차장에서 ‘시청장’으로 엄수됐다. 동료들은 추모사에서 고인의 뜻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의정부의 아침 기온은 영하 15도, 혹한의 추위는 원씨를 보내는 유가족과 동료들이 흘리는 눈물마저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원씨는 지난 13일에 이어 14일에도 밤샘 근무에 나섰다가 이튿날 아침에 출근한 뒤 가슴의 통증을 호소했다. 원씨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72세의 홀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던 효자였고 중학교 1, 2학년생인 두 아들의 아버지였다. 아내 김모(45)씨에게는 든든한 남편이었다. 모두가 원씨만을 의지하며 살아온 것이다. 영결식은 18년 동안 사회복지분야 공무원(별정직 5급 추서)으로 자신보다는 가난한 사람, 고단한 삶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던 원씨의 무거운 책임을 내려놓는 자리이기도 했다. ●혹한 속 이별… 눈물마저 ‘꽁꽁’ 장의위원장을 맡은 안병용 의정부시장은 “고인은 사회복지 공무원으로서 나보다 소외받는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걱정을 했다.”면서 “대학 선배가 시장이 됐으니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게 웬 날벼락이냐.”고 흐느껴 울었다. 그때까지 눈물을 꾹 참아내던 원씨의 아내가 소리내어 흐느끼기 시작했다. 장례를 치르는 5일 동안 두눈이 퉁퉁 부어오르도록 흘리고도 남았던 눈물이다. 아내의 눈물에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도 배어 있다. 원씨의 사인을 정확히 밝히기 위해 부검까지 해야 하기에, 남편의 마지막길마저 편히 보내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숨어 있다. 더구나 순직 결정을 받으려면 부검 결과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화장을 하고도 한달 동안 남편을 하늘로 보낼 수 없는 서러운 눈물이다. 영하의 날씨 때문인지, 겉옷도 걸치지 못한 채 얇게 차려입은 상복 때문인지 가볍게 떨리는 아내 김씨의 어깨는 지켜보는 이들을 더욱 애처롭게 했다. 원씨를 기억하는 동료들은 한결같이 “겸손하고 성실한 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동료들은 “1998년 8월 갑작스러운 폭우로 의정부 시내에 물난리가 났던 때에도 원씨는 한달여간 사무실에서 생활하며 씻지도 못한 채 수해 복구와 이재민 구호를 위해 일했다.”고 말했다. 영결식이 끝나고 운구차가 시청을 빠져나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가족과 500여명의 동료들이 마지막 배웅을 했다.… ●고령군 女공무원도 과로로 숨져 한편 구제역 방역활동 중 첫 과로사한 원씨에 이어 지난 16일 경북 고령군에서도 보건소 공무원 곽석순(46·여·7급)씨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가 끝내 숨을 거뒀다. 곽씨 역시 계속되는 야근과 새벽 근무로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글 사진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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