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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재스민 혁명의 교훈/서재진 통일연구원장

    [열린세상] 재스민 혁명의 교훈/서재진 통일연구원장

    작년 12월 17일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의 불길이 이웃 나라 이집트를 거쳐 리비아로 옮겨붙었다. 리비아의 42년 독재자 카다피가 용병까지 고용하여 민주화 시위대에 군사력으로 강경 대응하자 재스민 혁명의 불길이 주춤하는가 했더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의한 연합군의 군사 개입 이후 재스민 혁명의 불꽃은 북아프리카를 넘어 중동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시리아, 쿠웨이트, 예멘, 바레인, 요르단과 중앙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까지 불꽃이 튀었다. 가장 오랜 기간 정권을 잡은 카다피는 끈질기게 정권을 지키기 위하여 대포, 비행기, 미사일까지 동원하여 자국민을 살상하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방치할 수 없어 유엔이 군사개입을 하기에 이르렀다. 유엔 헌장은 기본적으로 내정불간섭이다. 그런데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 및 르완다 내전 시 대규모 집단학살에도 국제사회가 이를 막아 내지 못한 데 대한 반성이 제기되자, 유엔이 군사적 내정개입의 가능성을 열었다. 2005년 유엔 총회 결의 형식으로 채택된 세계정상회의 결과에 의하면 집단학살, 전쟁범죄, 인도에 반한 죄 등으로부터 국가가 자신의 거주민들을 보호할 책임을 방기하거나 실패한 경우 유엔은 헌장 제7장에 근거하여 시의적절하고 단호하게 집단적 강제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보호책임 (responsibility to protect, R2P)을 규정하였다. 리비아에 대한 연합군의 군사개입은 이러한 유엔의 보호책임 규정에 의한 것이다. 유엔은 2월 26일 유엔 안보리 결의 1970을 통해 해외자산동결, 무기금수조치, 카다피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 그럼에도 카다피가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자, 3월 17일 유엔 헌장 7장에 근거하여 비행금지구역 설정 및 회원국 무력사용 허가의 내용을 담은 안보리 결의 1973을 채택하여 군사적 개입을 결의하였다. 이 결의에 따라 프랑스, 영국,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등 10여개국이 즉시 카다피 군대에 대한 공습을 시작하였다. 보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카다피 정부군의 군사력은 거의 궤멸되었고, 리비아 사태도 이제 끝내기 수순에 들어간 듯하다. 카다피 독재권력의 최측근이었던 무사 쿠사 외무부장관 등 수명이 영국과 국외로 망명하였고, 카다피 아들의 최측근은 영국을 방문하여 출구전략을 둘러싸고 한창 협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의 국제관계연구원장이 서울에서 한 말이다. 동아시아에서 재스민 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어디인지는 분명하다고. 재스민 혁명이 우리에게 주는 몇 가지 교훈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만하다. 우선, 북한 주민에게 주는 파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 주민들은 불만은 팽배해 있지만 정치·사회적 의식으로 각성되지는 않고 있다. 귀를 막고 눈을 막고 입을 막는 우민화정책을 펼치고 있는 데다 체제저항에 대한 처벌이 더 없이 엄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의 재스민 혁명의 파고가 워낙 세계사적이고 장기적이기 때문에 북한에 미칠 영향이 없을 수 없다. 외부 소식이 전달되고 인식의 각성이 일어나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재스민 혁명이 가장 필요한 곳은 북한이라는 인식이 높아질 것이며, 특히 리비아 사태는 북한주민에게는 혼자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함께 있다는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재스민 혁명의 영향은 한국에도 강하게 미치고 있다. 우리 국민이 북한을 보는 시각을 바꾸고 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독재정권들이 국민의 저항에 스러지는 것을 보면서 재스민혁명이 가장 필요한 곳이 북한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북한 주민이 재스민 혁명을 주도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북아프리카의 재스민 혁명만큼 우리의 대북정책의 방향을 명백하게 시사해 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지금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우왕좌왕하면서 분열되어 있는 상황이다. 재스민 혁명의 교훈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 쿠웨이트 내각 총사퇴

    쿠웨이트 내각 각료들이 31일 전원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국영 통신사 KUNA가 보도했다. 내각은 의회가 부정수뢰 및 업무 수행 부진 등을 이유로 경제부총리, 정보·석유장관, 외무장관 등 왕족 출신의 장관급 인사 3명에 대해 의회 신문을 추진하자 이를 무산시키기 위해 총사퇴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쿠웨이트에서는 장관에 대한 의회 심문이 국왕에 대한 도전이라는 인식 때문에 매우 드물다. 특히 의회가 바레인 시위사태 당시 쿠웨이트의 미온적 대응을 문제삼아 외무장관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예상되자 행정부는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쿠웨이트 수니파 의원들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바레인 시아파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군과 경찰 병력을 파견하며 적극 지원한 것과 대조적으로 쿠웨이트가 미온적으로 대처한 것에 대해 불만을 표출해 왔다. 쿠웨이트 정부는 외무장관이 의회에서 바레인 시위사태를 주제로 추궁당할 경우 자국 내 시아파와 수니파 간 종파 갈등이 격화될 수 있다고 판단, 결국 내각 총사퇴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홍명보號, 요르단과 2차예선 격돌

    홍명보(42)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의 2차 예선 상대가 요르단으로 정해졌다. 한국은 3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아시아축구연맹(AFC) 하우스에서 열린 2012년 런던올림픽 아시아지역 2차 예선 조 추첨에서 요르단과 함께 8조에 편성됐다. 한국은 오는 6월 19일과 23일 요르단과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경기를 치러 3차 예선 진출팀을 가린다. 한국 올림픽 대표팀의 요르단 상대전적은 1전 1승.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구자철(2골), 김보경, 조영철의 릴레이 골로 4-0 완승을 거뒀다. 한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성적을 기준으로 1번 시드를 배정받았고, 호주·중국·일본 등 모두 13개 팀이 2차 예선에 직행했다. 2차 예선을 통과한 12개 팀은 네팀씩 3개 조로 나뉘어 다시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경기를 벌여 각 조 1위 세팀이 런던올림픽 본선에 오른다. 2차 예선에서 일본은 쿠웨이트, 호주는 예멘, 중국은 오만, 북한은 아랍에미리트연합과 각각 맞붙는다. 또 19세 이하(U-19), U-16 대표팀은 내년 AFC 선수권대회에서 모두 일본과 맞대결을 펼친다. U-19팀은 일본, 태국, 홍콩, 괌, 타이완과 함께 E조에, U-16팀은 일본, 베트남, 타이완, 라오스, 캄보디아와 같은 F조에 편성됐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지자체, 중소기업 중동 수출 어쩌나

    지자체, 중소기업 중동 수출 어쩌나

    최근 중동 지역의 잇단 유혈 사태 불똥이 전국 지자체의 무역 사절단 행보에도 튀고 있다. 29일 울산시 등 지자체에 따르면 울주군과 경북도, 경남도, 광주시, 부산시 등이 지역 중소기업의 수출 활로를 찾기 위해 중동 지역에 무역 사절단을 보내 현지 상담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중동사태가 크게 악화되면서 파견을 축소하거나 아예 취소했다. 중동의 유혈 사태는 리비아에 이어 시리아, 요르단, 예멘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울주군은 지난 26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이집트와 시리아, 터키 등 중동 3개국에 무역 사절단을 파견하려던 계획을 이날 전격 취소했다. 울주군은 지난해 3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와 리비아 트리폴리 등 2곳에 해외 무역 사절단(7개 업체)을 파견, 278건에 500만 달러의 수출상담 성과를 올렸다. 올해도 이집트 등 3개국에 10개 기업체 무역 사절단 파견을 추진했으나 중동 정세 악화가 가로막았다. 울주군 관계자는 “중동 무역 사절단을 보내기 위해 중소기업진흥공단, 코트라(KOTRA)와 협의했으나 코트라 해외무역관에서 사절단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는 분위기를 전달해 와 취소했다.”면서 “중동의 정세가 안정되면 다시 검토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울산시는 다음 달 3일~11일 오만과 UAE, 인도 등 3개국에 조선·해양·플랜트 분야 9개 기업체로 구성된 해외 무역 사절단을 계획대로 파견할 예정이지만, 안전 때문에 고민이 깊다. 지난해 5월 이란과 UAE 등 중동 3개국에서 5600만 달러 수출상담(11개 업체) 성과를 올린 대구·경북도 올해 참가업체 규모를 6개 사로 줄여 다음 달 이란·시리아·쿠웨이트에서 수출상담을 벌일 예정이다. 경남도 역시 오는 11월 이집트 카이로와 터키 이스탄불에 자동차부품·조선 기자재 관련 무역 사절단을 파견할 계획만 세워 놓았고 구체적인 규모와 세부 일정은 잡지 못하고 있다. 이 밖에 광주시와 강원도 등은 올해 중동 지역에 무역 사절단을 파견하지 않는 대신 북중미와 유럽, 동남아시아 등에서 수출상담을 벌일 예정이다. 강명지 코트라 지역협력팀 과장은 “지자체들이 중소기업의 새로운 수출지역으로 중동을 선호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현재 리비아와 시리아 등 일부 국가의 올 상반기 현지 수출상담은 모두 취소됐다.”고 말했다. 기업체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우수한 기술력에 반해 독자적인 수출상담은 버거운게 현실”이라면서 “중동사태가 조속히 해결돼 수출길이 다시 열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모래폭풍 쓰나미 쿠웨이트 강타, 암흑세계 ‘공포’

    모래폭풍 쓰나미 쿠웨이트 강타, 암흑세계 ‘공포’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검은 먼지를 한껏 머금은 모래폭풍이 순식간에 쿠웨이트 도심을 덮치는 무서운 모습이 시민들의 카메라에 잡혔다. 중동의 사막에서 시작된 모래폭풍은 지난 25일 오후 5시 30분(현지시간)께 최고시속 80km/h로 쿠웨이트, 바레인 등 일부 국가의 도심을 강타했다. 쿠웨이트 시민들이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에는 건물 뒤편에서 다가오던 거대한 모래폭풍이 덮치자, 단 몇 분만에 사방이 한밤처럼 깜깜해지는 장면이 담겼다. 놀란 시민들이 집으로 달려가는 모습도 담겨 당시의 긴박했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 폭풍으로 쿠웨이트 일부지역 시야가 50m미만으로 감소하면서 국제공항 운항이 잠시 중단됐다. 또 강한 바람으로 전신주가 부러졌으며, 해양에서 선박사고가 잇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쿠웨이트 내무부에 따르면 쿠웨이트인과 이집트 인 등 2명이 사망했으며, 1명이 실종됐다. 이 모래폭풍은 샤말(열기와 먼지를 동반한 북서풍)에 따라 아랍에미리트 방향으로 이동했다. 일대에 비가 내릴 가능성이 낮아서 모래와 먼지가 가라앉는 데 이틀정도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트위터(http://twitter.com/newsluv)
  • [WHO&WHAT] 독재자의 만찬

    [WHO&WHAT] 독재자의 만찬

     ‘민주’(民主)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오늘날, ‘독재’(獨裁)란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유쾌하지 않은 단어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멋대로 좌우하고 과장된 논리나 종교와 다를 바 없는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독재에 대한 거부감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한국인에게도 ‘독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군사정권에 맞서 밑으로부터의 민주화를 일궈냈다는 자부심,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최장수 독재체제(북한)와 마주하고 있는 현실 등 우리는 독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몰아닥친 ‘재스민 혁명’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수십년간 그래온 것처럼 아랍권의 민주화 운동이 ‘찻잔 속 태풍’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빗나갔다.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과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의 싸움은 점점 격해지고 있고, 이젠 국제사회의 개입도 본격화됐다.  가상 인터뷰 ‘WHO&WHAT’의 이번 주인공은 역사 속 인물들이다. 이름 자체가 공포가 되고, 금기어가 됐던 이들. 현대 정치사를 피로 물들이며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악몽’ 그 자체였던 네 명의 독재자들을 만찬장에 초대해 그들이 생각하는 재스민 혁명과 ‘독재’ 그리고 ‘민주화’에 대해 들어봤다. 사회:독재돼지 나폴레옹(소설 ‘동물농장’의 주인공)  식당으로 들어서는 네 사람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살아생전 서로 배신의 총부리를 겨눴던 사이도 있었고, 서로 ‘사상적 동지’로 돈독한 관계를 자랑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반세기의 시간도 서먹한 분위기를 가시게 하지는 못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사전에서 바로 튀어 나온 듯한 이들은 같은 자리에 마주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뜩치 않아 보였다.  콧수염을 기른 사람이 셋, 군복을 입은 사람이 셋이었다. 앞에 이름표를 놓을 필요조차 없이 얼굴만으로도 누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마오쩌뚱, 사담 후세인. 인류 또는 자기의 민족을 위해 떨쳐 일어났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웠지만 결국엔 자기자신의 안위와 비뚤어진 욕망으로 가득찬 이미지만 역사에 남긴 공통점을 가진 이들. 한 사람만 있어도 공포를 느끼게 할 만한 20세기 정치가 네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만찬 자리는 현재 국제정세를 감안하면 상당히 늦은 감이 있었다.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각자의 전성기 시절 국내외 정치에 대해서라면 남부럽지 않을 역량을 과시했던 이들에게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강타하고 있는 ‘쟈스민 혁명’에 대해 묻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한테 물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만찬의 주제가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독재’인데 말이다.  네 사람의 만남에 적합한 사회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민주화 전문가나 학자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이들을 통제하기엔 늘 역부족이기 마련. 결국 메이너 농장의 절대권력자 나폴레옹(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독재자 돼지)에게 어려운 역할을 부탁했다. 1945년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농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나폴레옹의 능력이라면 참석자들도 특별한 불만이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오웰이 묘사한 것처럼 나폴레옹은 ‘사람이 돼지인지, 돼지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능수능란하게 만찬장의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본인들의 얘기와 현재 상황을 비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오늘의 메뉴●  애피타이저 - 당신은 떳떳한가  메인 디시1 -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버렸을까  메인 디시2 - 당신은 부패했나  디저트 - 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애피타이저> 당신은 떳떳한가.   →나폴레옹 인간 세상 최고의 독재자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돼 기쁘다. 나야 동물 100여마리 거느리는 수준이지만, 당신들은 수백만명에서 수억명에 이르는 사람의 목숨을 한 손에 좌우했던 사람들이지 않은가. 실제로 죽이기도 많이 죽였고…. 당신들보다 훨씬 잔혹하거나 무자비한 사람도 없진 않지만, 20세기 이후 독재자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선정됐다는 점을 밝혀둔다. 우선 당신들이 지금 이 테이블에서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있을 수 있는 자신감의 근원부터 묻고 싶다.   히틀러 정당성을 묻는거냐. 어디까지나 국민들이 원해서 적합한 위치를 맡았을 뿐이다. 내가 총통이 됐을 때 4500만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그중 3800만명이 찬성했다.(히틀러는 1934년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죽은 직후 1시간 만에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통합하고 최고사령관 직까지 합쳐 그 자리에 오른 다음 투표를 실시했다.) 국민들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에 자발적으로 동참해서 내가 그 위치에 올랐다는 증거다. 정당성의 측면에서 과거의 왕들과는 평가부터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왕 중에서도 네로나 헤롯 같은 사람이 있었고, 나름 성군(聖君)으로 존경받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들은 왕으로 태어나 왕으로 살면서 그 권력을 조금 더 쓰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스탈린 난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했고 성공시킨 레닌이 직접 지목한 정당한 후계자다.(실제로는 레닌이 그의 위험성을 경고한 편지를 공개하려고 했지만,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막았다. 뿐만아니라 스탈린은 레닌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여러 장의 사진과 역사기록을 조작했다.) 그루지아 출신이라는, 심지어 러시아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범 러시아 지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데 대해 지금까지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독재고 뭐고 간에 아예 정권을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소한 총과 칼로만 쿠데타를 일으켜서 최소 몇 년 이상 유지한 사례가 얼마나 될지 지난 100년 간을 꼽아봐라. 처음엔 그렇게 잡더라도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유지가 안되는 게 정치다.   →나폴레옹 그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역사에 악인으로 이름을 남긴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듣다보니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요새 연설을 통해 계속 반복하고 있는 논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 얘기는 나중에 이어가기로 하고, 최근 전 세계 최고 관심사인 ‘쟈스민 혁명’에 대해 들어봤나.   마오 내용이야 어떻든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기분이다. 지난해 12월 한 청년이 분신을 하면서 벌어진 일이 불과 석달 만에 이렇게까지 커지다니. 벌써 두 나라(튀니지·이집트)의 정권이 뒤집혔고 리비아, 시리아, 바레인도 내전이 한창이지 않은가. 난 ‘공산당’을 알리고 ‘혁명 동지’를 모으기 위해 10만여명을 이끌고 1934년 370일 동안 1만 5000㎞를 걸어야했다.(마오는 12개의 지방을 지나고 18개 산맥과 24개 강을 건넜다. 마오의 짐은 두 장의 담요와 홑이불, 외투 한 벌, 책 몇 권 뿐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고도 15년 이상 지나서야 중국을 세울 수 있었다. 고작 석달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지금 같은 세상이라면 보다 완벽한 혁명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히틀러 거기엔 100% 동감한다. 요즘처럼 다양한 수단이 있었으면 내가 연설을 일부러 석양무렵에 하면서 다양한 무대장치를 동원하는 수고는 덜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이런 아이디어는 히틀러의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능력이라는 얘기가 정설이다.) 아! 물론 난 연설 대신 다른 방법으로 국민들을 설득해야 했겠지만 말이다.   후세인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딱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내 입장에서 쟈스민인지 뭔지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다. 아랍에는 ‘하마’라는 게 있다. 1980년대 초반에 시리아의 하마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민란이 일어났는데, 정부는 마을 전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다시피 했다.(2만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시리아 정부는 그 숫자를 본보기 삼아 일부러 널리 공포했다.) 그 이후 ‘하마’는 절대권력에 대항하는 반항에 대한 응징을 뜻했다. 아랍권에서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던 반 체제 인사들은 힘을 잃었고, 일반인들은 조용해졌다. 그게 지금까지 아랍권을 지탱해온 버팀목이었다. 왕정이든 사회주의 체제든 광범위하게 사용돼 왔다. 물론 무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영TV와 신문을 장악하고,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세뇌시켰다. 나름 치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질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했다.   →나폴레옹 후세인 당신과 카다피가 유난히 비슷한 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후세인 카다피와 나는 소위 말하는 ‘역경의 자식들’이다. 전통적인 아랍사회가 혈통과 명문을 높이 떠받드는 점이 가장 큰 타도의 목표가 됐다는 점에서 일면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아랍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이 중요시되지만 혹시 내 아버지나 카다피의 아버지 이름을 아는가? 뭐 사실 이 만찬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우리는 기존 사회의 합의나 계급은 무시하고, 아랍의 전통적인 가치들이 권력에 장애가 된다면 과감히 지워버렸다.  <메인디시1>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외면했나.   →나폴레옹 슬슬 본격적인 식사로 들어가보자. 여러분은 다들 수십년에 걸쳐 자기 나라는 물론 주변국가, 나아가 전 세계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앞서 스탈린이 말한 것처럼 독재는 총칼 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많은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는 게 선행돼서 가능했다. 그런데 끝까지 초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인지 통치스타일이 변하면서 서서히 독재자가 돼 가는 공통점이 나타났다. 말은 자꾸 바뀌고, 점점 잔혹해지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안듣게 되었는데.   스탈린 국민들에게 제시했던 내 목표는 무조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었다. 어떤 수단을 써서든 달성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내 뜻에 복종해야 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은 틈만 나면 배신하려 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심지어 공장 노동자들도 내 목표량에 미달했다. 충분히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5개년 경제계획을 세워 모든 농민들이 국가 소유의 조합에 가입하게 했다. 그러나 대부분 농민들은 재산을 내주는 대신 땅을 불태우고 가축을 죽였다.) 결국 나는 그들을 피로 다스릴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가까운 사람들조차 나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처럼 생각됐다.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기쁨은 적을 정하고,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철저하게 복수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히틀러 난 독일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대부분 다 지켰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정책에는 본인의 증오 이외에 ‘독일 국민들에게 잘 통할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고, 실제로 주효했다.) 솔직히 내가 세운 모든 계획 중에 딱 하나 틀린 게 있었는데, 바로 전쟁에 졌다는 것이다. 난 거창하게 세계정복 같은 공약을 내세우지 않고, 우리가 받을 수 있을 걸 받자고 얘기했을 뿐이다. (히틀러의 전쟁은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라기보다는 영국과 프랑스 양강으로 구분돼 있던 유럽 내에서 독일의 정당한 위치를 인정해 달라는 권리찾기에 가까웠다.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히틀러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 독일 사람들은 1933년부터 2차대전이 본격화되기 이전, 내가 제3제국을 이끌던 시기를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지지만 않았다면 난 절대로 여기 다른 ‘실패한 독재자’들과 함께 앉아있지 않을거다.   마오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공통된 적이 필요했다. 사회를 뒤집어 엎으려면 당연히 원동력이 필요하고, 그 힘은 밑에서부터 나온다. 히틀러는 그것을 외부(유대인)에서 찾았고, 나와 스탈린은 노동자·농민을 앞세워 인민의 적을 만들어내는 수법을 썼다. 그런데 정권을 잡고 공공의 적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당연히 사회적 결집력과 추진력이 떨어지지 않겠나. 난 1950년대 중반에 무조건 억누르기만 했던 스탈린과는 다른 길을 가려고 했다. 지식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금방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 (마오는 헝가리에서 검열 완화 이후 폭동이 일어난 것을 보고 ‘모든 의견’을 허용하는 대신 ‘공산당의 입지를 굳히는 의견’만을 허용했다.) 고작 6주간 ‘백화제방·백가쟁명’(쌍백) 정책을 펼쳤는데 불온성을 이유로 잡아들인 사람이 100만명이 넘었다.   →나폴레옹 뭐 결국엔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주장했고, 국민들이 그에 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압적인 독재자들로 될 수 밖에 없었다는 논리인 것들 같은데. 국민들이 언제 돌아서는 것을 느꼈나.   스탈린 독재에 대한 대중의 영합은 독재권력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주기 힘들어지면 힘을 잃기 시작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일반 국민들에게 정치적인 이데올로기가 가장 중요했던 적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정권이 제시하는 조건이나 삶의 질에 만족하면 그 권력을 지지하지만 그게 안 되면 외면하는 게 국민들의 속성이다. 내 영향력이 다소간 줄어든 것도 ‘산업화’라는 당면과제가 생각만큼 잘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영향력이 떨어지면 그걸 보완하기 위해 총과 칼이나 숙청, 강제노동 등을 동원하면 충분히 되돌릴 수 있다. (스탈린은 꾸준한 생산력 증대를 원했고, 만족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무력을 사용했다.) 이런 것이 독재자와 왕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독재자에게 불리한 점이다. 독재자는 국민들이 실망하면 이를 되돌리기가 군주보다 훨씬 힘들다. 엘리자베스1세 말기에 영국 국민의 생활수준은 역사상 최저였지만, 아무도 그런 사실은 기억하지 않는다.   히틀러 이번 아랍혁명이 ‘빵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들었다. 식량값 폭등 같은 단편적인 시각에서 볼 수는 없는 문제다. 원래 독재자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미래상을 제시하고 조금이라고 가까이 가고 있다고 믿게 해야 한다. 정권을 지지하는 국민들 입장에서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오늘’은 별 의미가 없다. 독재자가 “5년 후에 우리가 이 정도 수준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제시하면 반드시 거기에 가 있어야 한다. (히틀러가 뚜렷하게 정책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표방하는 제3제국이 명확한 수치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위기가 찾아오는 거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독재정권들이 망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금씩 나아지는 건 왕정 아래서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정권을 잡으려는 독재자들은 국민들에게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다.”고 소리친다. 결국 삶에 찌들어 있는 대중의 지지를 받아 순식간에 정권을 장악할 수 있지만, 결코 그들이 약속한 삶은 만들어낼 수 없다.   후세인 아랍권의 문제가 심각한 건 사실이지만, 구조적으로 ‘복지독재’라는 희한한 형태가 있어 국민들이 모두 돌아서는 시기를 간단히 전망할 수는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같은 왕권독재 국가에서는 독재의 정도가 다른 나라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 않은데, 국민들의 삶은 다른 나라보다 풍요롭다. 일자리도 주고 의식주 걱정도 없다. 대학도 보내준다. (아랍의 왕조 체제에서는 가진 자의 수가 극히 제한돼 있고, 이들은 인자한 독재자의 모습을 띤다. 이들은 국부를 독점하는 만큼 그것을 나눠주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그럼 이 상황을 뒤집어서 민주화가 되고 완전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 가진 자의 수가 늘어나면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절대 빈곤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민주화라는 것은 결국 허상이다.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민주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난 가진 자의 입장에 설 기회가 생긴다.”는 생각만 한다. 결국 ‘기회’라는 게 어느 순간 현재 생활에 대한 불만을 뛰어넘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메인디시2>당신은 부패했나.   →나폴레옹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영국의 역사학자 로드 액튼 경이 말했다. 독재와 관련된 경구 중 가장 유명한 말이 아닐까 싶다. 흔히들 독재자는 부패하기 때문에 망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부패가 독재의 종착점인가.   히틀러 진정한 목표가 있는 독재자는 부패할 시간이 없다. 난 채식주의자에 담배조차 피우지 않는다. 가끔 맥주를 마시기는 하지만, 내 뒤를 아무리 캐봐라. 내가 부정적인 일에 연루됐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할 거다. 심지어 난 평생 두 여자(의붓여동생의 딸인 겔리 라우발, 최후를 같이 했던 에바 브라운)만을 사랑했고, 한명이 죽은 후에야 다른 사람을 만났다. 만약에 지금 세상처럼 청문회가 있다면 난 무조건 100% 무사 통과다. 오로지 위대한 제3제국을 세우겠다는 목표 이외에 개인적인 욕심 따위는 없었다. 제3제국이 부패해서 망했다고 말할 수 있나. 난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스탈린 나 역시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사람들이 나를 ‘금욕주의자’라고 부를 정도로 난 개인적으로 즐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딸 스베틀라나가 나중에 쓴 책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내 가족들조차도 화려한 옷이나 식사는 꿈도 꾸지 못했다. (스탈린은 부인을 잃은 후 스베틀라나를 사실상 ‘어린 퍼스트레이디’로 대접했고, 자식 중 유일하게 애정을 쏟았다.) 오로지 대업을 완수하는 것만이 내가 평생을 생각했던 유일한 관심사였다. (얄타 회담에서 스탈린을 만난 윈스턴 처칠의 부관들은 스탈린에 대해 “지금까지 만나본 중 가장 철두철미하고 명석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나폴레옹 최근 아랍권의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은 물론이고 부인이나 아들, 측근들이 부패한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후세인 당신도 자식 간수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   후세인 독재자는 외로운 존재다. 누군가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았으면, 언젠가 자신도 똑같은 일을 당하지 말란 보장이 없다. 결국에 믿을 사람은 가족 밖에 없다. 그런데 가족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각자 욕심을 부리게 마련이고, 절대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용서 받는다. (후세인의 큰아들 우다이는 공식 행사에서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거나 싸움을 벌이는 등 난폭했다. 정신박약아라는 설도 있다.) 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 카다피 모두 가족이 문제였고 자식한테 권좌를 물려주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 결국 ‘부패’의 진정한 원인은 독재자의 개인적인 성향보다는 독재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1인 중심적인 체제에서 찾아야 한다.   마오 아무리 독재라도 권력은 최소한의 시스템이라도 갖추고, 그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개인적으로 대놓고 이용하기 시작하면 그게 부패한 거다. 난 솔직히 주지육림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방탕한 생활을 즐기기도 했지만, 최소한의 기구를 갖고 있었고 그걸 이용해서 모든 것을 움직였다. (그의 문화혁명을 앞장서서 주도했던 홍위병은 결국 스스로 부패하고 갈라져 사라져갔다.) 간단히 말해서 사회를 바꾸기 위한 목표를 갖고 조직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지 개인이 가진 것을 오로지 지키려는 목적으로 조직을 운영한다면 그건 독재자 중에서도 가장 저질이라고 생각한다. 카다피나 북한의 김일성, 저기 앉아있는 후세인이 대표적인 인간들이다.  <디저트>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나폴레옹 곧 무너질 것 같았던 카다피가 계속 버티고 있다. 심지어 쟈스민 혁명이 곧 사그라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쟈스민 혁명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히틀러 국민을 장악하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연설을 통해 국민을 사로잡았다면 카다피한테는 TV로 보여지는 강력한 모습과 반미 감정몰이가 결정적인 힘을 줬다. 그런데 최근 유행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그걸 뛰어넘을 수 있다. 결국엔 모든 것이 정보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왜 저렇게 폐쇄정책을 고집하겠나. 밖에서 국민들이 정보를 얻기 시작하면 바깥세상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 지금까지 주장해 온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된다. 결국 정보가 공개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럴듯한 꼬임이나 세뇌만으로 할 수 있던 독재의 시대가 끝났다. 결국 총과 칼을 통한 억압만이 가능하다는 얘기인데, 이번에 혁명이 실패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나중에 또다시 내란이 일어나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한번 떨쳐 일어났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가는 법이다.   마오 그래도 중국은 꽤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리비아가 여러 개의 부족이라서 마지막 한 고비를 넘을 원동력이 부족한 것처럼 중국 역시 민족이 다양하고 워낙 지역도 넓기 때문에 하나로 모으는 추진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국은 아직 폭발적인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국민들이 뭔가를 추가적으로 기대할 여지가 남았다는 얘기다. 특히 연안지역만 개방해서 충분히 통제가 가능하도록 하고 조금씩 열어가면서 개방과 통제라는 두가지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반면 북한 같은 경우에는 특정지역만 열고 통제하는 게 불가능하다. 결국에 경제적 몰락을 극복하기 위해 체제붕괴를 피하기 힘들다.   후세인 내가 보기엔 미국이 얼마나 나서느냐가 관건이다. 군사적, 외교적으로 영향력이 절대적이니 말이다. 여기 있는 네 사람 모두 미국과는 좋은 감정이 아니겠지만, 내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솔직히 대량 살상무기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달아서 억지로 쫓아낸 것 아니냐. 이번에도 이집트에는 개입 안하고, 리비아에만 개입하려고 꼼수를 쓰는 모습이라니…. 결국 다른 나라의 민주화를 자기 입맛대로 골라서 이용하겠다는 것 밖에는 안된다. 민주화니 어쩌니 떠들지만 실제로 국제사회를 독재하고 있는 건 미국이다.   →나폴레옹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다. 철저하게 자기자신의 논리로 무장한 당신들에게 물어보나 마나겠지만, 당신들은 정말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스탈린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던 평양 시민들을 기억하나. 그 원조가 바로 나다. 내 시신을 보겠다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수백명이 깔려 죽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방부처리된 시신을 보기 위해 몰려든 조문객의 일부가 바리케이드에 부딪히거나 밟혀서 목숨을 잃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마오 내가 죽은 후 숱한 변화 속에서도 난 중국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존재다. 톈안먼 광장에 걸려있는 내 초상화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마오가 죽은 1976년 그의 문화혁명으로 쌓인 불만이 폭발한 톈안먼 사건이 일어났다. 1981년 그의 후계자 덩샤오핑은 마오의 문화혁명을 ‘내란’으로 규정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도움말 주신 분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김한지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책임연구원 최 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류한수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장대익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 [김문이 만난사람] 영화계 장학사업 선도 원로배우 신영균

    [김문이 만난사람] 영화계 장학사업 선도 원로배우 신영균

    노래 하나 감상해본다.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구름따라 흐른다 나도 흐른다/아가씨야 내 마음 믿지 말아라 번개처럼 지나갈 청춘이란다.’ 한운사 작사, 황문평 작곡의 ‘빨간 마후라’다. 얼핏 짧고 단순한 노래 같지만 대한민국 공군 출신들에게는 영원히 가슴 속에 남아 추억의 되새김질을 하게 하는 노래다. 또한 40~50대 이상의 남성들에게는 영화를 통해 익숙하게 다가오는 노래이기도 하다. 1964년 신상옥 감독이 제작한 영화 ‘빨간 마후라’는 공군 전투기가 하늘을 나는 장면과 시원한 활주로, 빨간 머플러가 컬러 필름으로 표현돼 관객을 압도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서울 충무로 명보극장에서만 25만 관객을 기록했다. 특히 이 영화는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됐으며 주연으로 나온 신영균(83)씨는 당시 제11회 아시아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한류 스타가 누구냐고 했을 때 영화계에선 신씨를 거론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런 추억을 담은 ‘빨간 마후라’는 대구 달성군 유가면 양리에 위치한 고 유치곤 장군의 호국기념관에 노래비로 세워져 이곳을 찾는 많은 관람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보아트홀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원로 영화배우 신씨가 2010년 10월 출연한 재산으로 출범한 재단법인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사장 안성기)이 현판식과 함께 영화인 자녀 19명에게 2011년도 상반기 장학증서와 장학금을 전달했다. ●영화인 자녀 19명에게 첫 장학금 전달 영화인 총연합회 회원단체와 영화인회의 등 8개 영화 관련 단체로부터 추천받은 영화인 자녀 이동규(서원대 유아교육학과 1학년), 임원룡(서울대 경영학부 4학년)군 등 대학생 10명과 홍민호(경복고 3학년), 정원(동두천외국어고 1학년)군 등 고교생 9명에게 총 4000여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이들 장학생 중에는 영화배우 허기호(허장강씨의 장남)씨의 아들 허진우(안양대학교 공연예술학과 1학년)군도 포함됐다. 이 자리에서 신씨는 명보시네마테크 운영, 신영균연기예술상 제정과 함께 영화 인재 발굴 사업으로 청소년 영화제 ‘필름 게이트’와 방학 시즌 어린이 영화 체험 교실인 ‘꿈나무 필름 아트 캠프’ 등을 추진할 계획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올 연말에는 제1회 신영균영화연기대상 수상자가 처음으로 나올 예정이다. 이처럼 ‘빨간 마후라’와 ‘5인의 해병’ 등으로 일찍부터 원조 한류스타의 명성을 얻은 신씨는 팔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500억원을 사회에 헌납하는 등 국내 영화 발전을 위해 새로운 열정과 의욕을 보이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명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신씨를 만났다. 때마침 김두호 전 스포츠서울 편집국장(현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도 함께 있어 자연스럽게 차를 마시며 인터뷰가 진행됐다. 검은색 양복에다 빨간 넥타이 차림이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40대로 보인다.”고 인사를 하자 “에구 뭘, 마음이 젊어서 그런가.”라며 파안대소했다. 그래서 건강 얘기부터 먼저 나왔다. “운동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가끔 골프 라운딩도 하고 헬스클럽에는 일주일에 두어번 정도 나가지요. 나이 먹어서는 근육 운동을 자주 해야 돼요. 골격이 튼튼해지니까.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도 합니다.” ●294편 영화 거의 다 기억… 팔순의 나이 무색 신씨는 웃음이 호탕하다. 생각을 젊게 하고 행동 또한 그러하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기억력 또한 남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1960년 조긍하 감독의 ‘과부’로 데뷔한 이후 1978년 ‘화조’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출연한 294편의 영화를 거의 줄줄 꿰고 있었다. ‘빨간 마후라’에 출연한 동료 배우 최무룡씨를 비롯해 ‘5인의 해병’에 등장하는 황해·곽규석·박노식씨 등에 대한 추억도 또렷하게 떠올린다. 이들 중 유일하게 혼자 살아남아 우리나라 영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회가 특별하다. 신씨는 알다시피 지난해 10월 자신의 사재 대부분을 털어 장학사업에 쓰겠다고 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 후 후회는 한번도 없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장학사업)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인들의 작업 환경이 아직도 열악합니다. 특히 그들 중에는 재능 있는 자녀가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격려와 보탬이 된다면 그것처럼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대를 잇는 훌륭한 연기자들을 잠시 떠올린다. 1955년 ‘피아골’로 데뷔한 고 이예춘씨의 아들 이덕화와 손녀 이지현, 고 김승호씨의 아들 김희라와 손자 김기주, 오발탄의 명배우 고 김진규씨의 아들 김성준, 고 황해씨의 아들 전영록, 고 독고성씨의 아들 독고영재와 손자 독고준, 고 박노식씨의 아들 박준규 등. ●치과의사 하면서도 연기에 대한 꿈 간직 신씨 자신도 가난과 배고픔을 몸소 겪었기에 연기에 자질이 있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청춘극단’에서 2년 동안 연기를 하다가 생활의 비참함을 벗어나고자 좀 더 안정적인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서울대 치과대학에 진학했다. 해군 대위로 군복무를 마친 그는 1958년 서울 회현동에 ‘동남치과’를 개업했으나 도저히 끼를 못 버려 2년 뒤 황순원 원작 ‘과부’로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처음에 연극을 했는데 생활이 영 말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직업적으로 전망이 좋다는 치과의사가 되고자 했지요. 하지만 연기에 대한 꿈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데뷔작 ‘과부’에서 처음 주연으로 발탁될 당시를 회고한 그는 “배역도 좋고 작품도 좋았는데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며 “많이 고민했지만 순전히 연기에 대한 욕심 하나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이후 신씨는 다양한 스타일의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스타의 길로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다. ‘빨간 마후라’ ‘5인의 해병’ 같은 군사물은 물론이고 ‘연산군’에서는 폭군,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는 멜로물의 주인공, ‘저 높은 곳을 향하여’에서는 종교인으로 등장하며 타고난 끼를 유감 없이 발휘했다. 18년 동안 294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니 그의 열정과 끼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렇다면 한참 인기 가도를 달릴 때 왜 배우를 그만두게 됐을까. “당시 군사정권이었죠. 검열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권총을 쏘는 장면도 ‘왜 이 각도에서 총을 쏴야 하느냐’ 등의 이유로 가위질을 많이 당했지요. 그러다 보니 영화에 대한 매력도 없어지고 편수도 줄고, 관객 또한 마찬가지로 흥미를 잃게 됩니다.” ●군사정권시절 검열 심해 배우 생활 그만둬 배우를 그만둔 이후에는 제주도에서 영화박물관 건립에 열정을 쏟는다. 그가 제주도와 인연이 된 것은 영화 ‘마적’(신상옥 감독)이었다. 이 영화는 1967년 제주도에서 촬영됐는데 당시 신씨는 드넓은 초원에서 영화박물관을 생각하게 됐다. 결국 오랜 노력 끝에 1999년 제주 남원읍에 ‘신영영화박물관’을 건립했다. 이때부터 신씨가 부자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 부를 일궜을까. “제 인생의 특징을 말한다면 실패를 안 했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려고 무리하게 욕심을 내지도 않았고 또 무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요. 인격적으로는 겸손하자고 늘 생각했어요.” 신씨는 배우 시절 영화배우라는 직업을 늘 불안하게 여겼다. 그래서 1960년대 친구와 함께 서울 금호동에 동시 상영을 하는 ‘금호극장’을 지었다. 영화는 많으나 극장이 턱없이 모자라는 현실에서 발동이 걸렸던 것. 이후 명보극장 바로 옆에 있는 명보제과를 인수했다. 이때 부인 김선희 여사가 팔을 걷어붙여 직접 빵을 굽고 장사도 하면서 사업을 키워 나갔다. 당시 명보제과는 뉴욕제과와 태극당, 풍년제과 등과 함께 4대 제과로 꼽힐 정도였다. 그러던 1977년 8월 명보극장을 인수하게 된다. 이후 ‘지옥의 묵시록’과 ‘빠삐용’ 등의 외국 영화와 ‘내가 버린 여자’(이문웅 감독), ‘속 별들의 고향’(하길종 감독), ‘미워도 다시 한번’(변장호 감독) 등의 한국 영화가 잇달아 대박을 터뜨렸다. 그가 지난해 기부 대상을 ‘명보극장’으로 정한 것도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극장 소유는 영화인들의 꿈이었고 이제는 그 꿈을 후배들에게 돌려주려는 생각에서였다. 무엇이든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면 언젠가 꿈이 이뤄진다는 철학도 포함됐다. 신씨는 지금도 꿈을 꾼다. 헤밍웨이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노인과 바다’ 같은 영화에 출연해 멋진 연기로 영화배우로서 마무리를 잘하고 싶단다. 이를 위한 구상이 현재 기획 단계에 있다고 귀띔했다. 그의 취미는 나무 심기다. 신영영화박물관 옆에 많은 나무들을 심었단다. 서른두살에 영화 나무를 처음 심은 이후 지금도 꾸준히 나무를 심고 있다고 했다. 팔순 나이에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에서 또 한번 영원히 자라는 나무를 심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신영균은 치과의사 → 배우 → 국회의원… ‘빨간 마후라’로 아시아 영화제 남우주연상 1928년 황해도 평산의 산 속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교육열에 의해 일찍 서울로 월남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우연히 교회 연극을 통해 연기를 접한 뒤 줄곧 배우를 꿈꿨다. 한성고를 졸업하자마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청춘극단’에 들어갔다. 하지만 극단 배우로 생계 유지가 힘들자 다시 공부를 시작해 서울대 치의학과에 합격했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총학생회 연극부를 창립해 활동했고 졸업 후 치과의사로 일하다 1960년 32살의 나이에 영화 ‘과부’로 데뷔했다. 이어 1961년 ‘마부’로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하고, 1962년에는 ‘연산군’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차지하며 데뷔 2년 만에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출연작 중 단연 압권은 ‘빨간 마후라’(1964)이다. 이 영화로 아시아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원조 한류스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던 1970년대, 유신정권 아래 영화에 대한 사전 검열이 심해지면서 영화계가 침체됐고 1978년 ‘화조’를 끝으로 배우 활동을 접었다. 이후 명보극장을 중심으로 영화사업에 뛰어들었고 15, 1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99년 제주도에 영화박물관을 지었으며 지난해에는 사재 500억원을 선뜻 내놓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 18일에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 현판식을 가지면서 장학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주요 대표작으로는 열녀문(1963), 쌀(1963), 달기(1964), 시장(1966), 천하장사 임꺽정(1968), 대원군(1968), 미워도 다시 한번(1968) 등이 있으며 18년 동안 모두 29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 다국적軍 4차 공습… 美 “방공망 와해”

    다국적軍 4차 공습… 美 “방공망 와해”

    미국·영국·프랑스 등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이 22일(현지시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등지에 4차 공습을 가했다. 리비아 정부군은 대공포를 쏘며 격렬하게 맞섰다.터키를 포함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23일부터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리비아에 대한 해상 봉쇄에 들어갔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트리폴리에서 밤 8시쯤 두 차례 폭발음이 난 뒤 10여분간 대공포탄이 밤하늘을 가득 채웠다.  카다피군은 동부 반군 거점인 벵가지로 가는 관문인 아즈다비야에 진지를 구축하고 반군을 막아내는 한편 서부 미스라타 장악에 힘을 쏟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미스라타를 수주째 포위 중인 카다피군은 탱크와 저격수 등을 시내에 배치한 채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리비아 대공방어망을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면서 “군사작전은 앞으로 며칠이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2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카다피를 내쫓기 위해 우리가 쓸 수 있는 수단이 군사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야야 한다.”면서 “이미 강력한 국제적 제재를 가했으며 카다피의 자산을 동결했고, 앞으로도 카다피를 압박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군을 지원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가 리비아 상공을 제압한 상황에서 반군도 그들의 전열을 재조직하고 리비아 국민의 열망을 어떻게 표현하며, 합법적인 정부를 창출하느냐를 협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다국적군은 21일 트리폴리 외곽 해군기지와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고향인 시르테 등을 폭격했으며 이 과정에서 미 공군 소속 F15 스트라이크 이글 전투기 1대가 리비아 북동부 상공에서 추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군이 조종사 2명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현지 주민들에게 발포해 부상자가 다수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영국 채널4 방송에 따르면 반정부군을 지지하는 지역 주민들은 전투기 추락을 목격하고 현장에 달려가 조종사를 찾아내 마실 것과 음식을 주며 보살펴 줬지만 정작 이들을 적으로 오인한 미군 오스프리 헬기가 공격했다는 것이다.  한편 반군의 구심체인 국가위원회가 23일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개혁주의자인 마흐무드 지브릴을 총리로 선임했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전했다.  나토는 이날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리비아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를 이행하기 위해 해상 봉쇄에 들어갔다. 리비아에 대한 나토의 공습작전에 부정적인 터키는 함정 5척과 잠수함 1척을 파견하기로 합의, 해상 봉쇄에는 참여했다. 또 쿠웨이트와 요르단이 병참 지원을 약속, 리비아에 대한 군사작전에 참여하는 아랍권 국가는 카타르 등 세 나라로 늘어났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사우디·쿠웨이트 시아파 반대시위 ‘불똥’

    바레인 시위 사태가 중동국가 간의 종교전으로 비화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오전 바레인 수도 마나마 진주광장에서 수백명의 진압경찰이 헬리콥터와 탱크를 앞세우고 산탄총과 최루가스로 시위대 강제 해산에 나섰다. 시위대는 2시간 만에 진압됐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3명과 경찰 2명 등 모두 5명이 숨졌다. 지난달 시위 개시 이후 사망자는 16명에 이른다고 AFP가 보도했다. 해산 작전은 정부의 계엄령 선포 하루 만에 이뤄진 것으로, 정부는 이날 오후 4시부터 17일 오전 4시까지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시위를 전면 금지한다고 밝혔다. ●바레인 강경진압에 16명 사망 바레인이 같은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으로부터 대규모 병력을 수혈받은 지 이틀만에 시위대를 강력 탄압하자 이란, 이라크 등 인근 시아파 인구가 다수인 국가들이 비난의 목소리를 내면서 바레인 정국이 중동의 이슬람 종파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바레인 국민에 대한 군사적 개입은 매우 추악한 방식이며 결국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면서 “자국민에게 총을 겨누는 이들이 어떻게 국가를 통치할 수 있겠느냐.”고 맹비난했다.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도 성명을 통해 “외국군의 개입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더 복잡하게 만들 것이며 종파 간 분쟁을 심화시킬 우려도 있다.”고 질타했다. 자국 내 시아파들에게 시위의 불똥이 번질까 우려하던 사우디 정부의 걱정은 현실화됐다. 이날 동부 알카티프, 아와미야 등에서 정부의 바레인 군 투입에 반발한 시아파들이 반대 시위에 나섰다. 사우디 시아파 지도자 세이크 하산 알사파르는 “바레인 당국이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고 신의 거룩함을 손상시켜 가며 국민을 협박한 것에 대해 실망을 금할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와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도 수천명의 시아파 무슬림들의 바레인, 사우디 정부 규탄 시위가 전개됐다. 쿠웨이트 쿠웨이트시티 주재 바레인 대사관에서도 항의 시위가 벌어졌으며, 쿠웨이트 의회의 시아파 의원들은 정부가 바레인에 병력을 지원할 경우 총리를 의회로 소환, 집중 추궁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란·이라크 유혈진압 맹비난 미국은 여전히 행동 대신 언사로만 자제를 요구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바레인과 사우디 국왕에게 전화를 걸어 폭력진압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고 백악관이 이날 밝혔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정치적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해 걸프국 군대를 배치한 것은 ‘잘못된 대응’이라고 거들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KLPGA ‘10대루키’ 이민영·김세영·양제윤

    KLPGA ‘10대루키’ 이민영·김세영·양제윤

    소녀들은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시즌이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슈퍼 루키’ 이민영, 양제윤(이상 19·LIG), 김세영(18·미래에셋)을 17일 만났다. KLPGA 투어에서 유력한 신인왕 후보들이다. 벌써부터 이들의 신인왕 경쟁은 후끈 달아올랐다. 셋 다 다음 달 8일 시작하는 시즌 개막전 하이마트 여자오픈(총상금 5억원)을 앞두고 담금질에 여념이 없다. 지난해 2부 투어 상금왕인 이민영은 “웨이트 트레이닝, 필라테스 등을 포함해 하루에 8시간 정도 연습한다.”면서 “퍼팅을 집중적으로 한다.”고 했다. ‘연습벌레’로 소문난 이민영은 “필라테스가 잔근육을 발달시켜 골프에 좋은 것 같다.”며 수줍게 웃는다. 한국여자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 기록(2006년)을 세운 김세영은 컨디션 조절에 중점을 둔다. 지난해 겪은 드라이버 입스(샷 실패 두려움에 정상 스윙을 못하는 상태)의 악몽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스윙도 안 되잖나. 무조건 연습하기보다는 마인드컨트롤까지 체계적으로 하려고 노력한다.”고 김세영은 말했다. 2009년 국가대표였다 최근 미국에서 전지훈련을 마친 양제윤은 “학교 공부(고려대 사회체육학과)와 연습을 병행하느라 바쁘다.”고 엄살을 부린다. “연습은 5시간가량 하는데 퍼팅에 비중을 둔다.”고 했다. 이들에게 쏠리는 관심은 비상하다. 신인답게 귀엽고 발랄한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셋 다 국가대표 주니어 상비군, 국가대표 등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어릴 때부터 이름을 날려서다. 오랫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를 지켜본 만큼 각자의 장단점도 훤히 꿰뚫고 있다. 이민영은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과 집중력이 강점이다. 김세영은 “민영이는 자존심이 강하고 주관이 뚜렷해서인지 경기에서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점이 부럽다.”고 했다. 양제윤도 “민영이의 포커페이스와 뚝심은 배울 만하다.”고 칭찬한다. 이민영은 올해 투어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 진학도 한 해 미뤘다. 김세영은 경기운영능력에서 후한 점수를 받는다. 드라이버샷과 쇼트게임을 고루 잘한다. 김세영에게서 배우고 싶은 점으로 이민영은 자신감을, 양제윤은 집중력을 든다. 양제윤은 170㎝의 큰 키에서 나오는 평균 270야드의 호쾌한 장타가 일품이다. “장타보다는 안전하게 가야 할 때 비거리를 포기할 줄 아는 코스 매니지먼트가 제 장점인 것 같다.”고 양제윤은 덧붙인다. 이번 전지훈련에서는 쇼트게임 보완에 집중했단다. 이민영은 “제윤이가 그렇게 안 보여도 엄청 독하다. 악바리 근성이 본받을 점”이라고 말했다. 겉으로만 봐서는 수줍음 많고 웃음 많은 전형적인 10대지만 각자의 가슴 속에 품은 꿈은 대단하다. 양제윤은 “목표를 크게 가져야 성공하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신인왕보다 다승왕을 노리겠다.”고 했다. 이민영도 “신인왕과 상금랭킹 톱 5라는 두 마리 토끼를 노리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세영은 “신인왕도 노리지만 올해 내 능력을 100% 발휘하는 게 목표”라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진출이다. 그 큰 꿈에 발판이 되어줄 신인왕을 누가 거머쥘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재외공관장 24명 인사 단행

    정부는 14일 주벨기에·유럽연합(EU) 대사에 안호영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을, 주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에 이윤 전 외교부 정책기획국장을 각각 임명하는 등 공관장 24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정부는 또 주미얀마 대사에 김해용 전 자유무역협정교섭국장, 주스랑카 대사에 최종문 전 남아시아태평양 국장, 주아프가니스탄 대사에 안성두 전 남아태국 심의관, 주파푸아뉴기니 대사에 이휘진 전 조약국 심의관, 주피지 대사에 정해욱 전 아태경제협력대사를 임명했다. 주도미니카 대사에 박동실 전 주이탈리아 공사, 주베네수엘라 대사에 김주택 전 주파라과이 대사, 주에콰도르 대사에 정인균 전 지역통상국 심의관, 주콜롬비아 대사에 추종연 전 중남미 국장, 주페루 대사에 박희권 전 주유엔 차석대사를 임명했다. 또 주루마니아 대사에 임한택 전 주제네바 차석대사, 주벨라루스 대사에 강원식 관동대 교수, 주스웨덴 대사에 엄석정 전 주헝가리 대사, 주스페인 대사에 오대성 전 주엘살바도르 대사, 주우크라이나 대사에 김은중 전 유럽국장, 주투르크메니스탄 대사에 안명수 전 주인도네시아 공사를 임명했다. 정부는 또 주쿠웨이트 대사에 김경식 전 지식경제부 무역투자실장, 주짐바브웨 대사에 류광철 전 주아제르바이잔 대사를 임명했다. 이와 함께 주선양 총영사에 조백상 전 국방부 국제정책관, 주청두 총영사에 정만영 전 동북아역사재단 전략기획실장, 주프랑크푸르트 총영사에 한원중 주파푸아뉴기니 대사, 주제다 총영사에 신용기 전 주사우디 공사가 임명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인사 쇄신 차원에서 연공서열·기수 파괴, 내·외부 발탁인사 등 새로운 시도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공세 전환’ 중동 정부… 민주화 바람 꺾이나

    반정부 시위 여파로 벼랑 끝에 몰렸던 아랍 각국의 정부가 수세에서 공세로 태도를 바꾸면서 중동지역에 불던 민주화 바람이 위기를 맞게 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군 병력이 시위진압을 돕기 위해 바레인에 진입했고 예멘 경찰도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등 피의 진압이 시작됐다. 사우디 병력 1000여명은 바레인 정부의 요청으로 13일 바레인에 도착했다고 AFP통신이 사우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또 현지 일간지 걸프 데일리뉴스는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 쿠웨이트, 카타르, 오만, 바레인 등 6개국으로 구성된 걸프협력협의회(GCC)의 연합보안군이 바레인의 주요 전략시설들을 보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바레인 정부는 이와 관련, 즉각적인 사실 확인을 해주지 않았다. 외국군의 개입 사실이 알려지면서 바레인 야권은 “전쟁 선포나 다름없는 일”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시아파 정당인 이슬람국가협의회(INAA)를 포함한 바레인 야권은 이날 성명을 통해 “바레인에 대한 걸프 아랍국가의 개입은 바레인에 전쟁을 선포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야당의원인 알리 알 아스와드는 “다른 나라 군이 바레인에 진입한다면 바레인 국민은 그들을 점령군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며 “우리는 외국의 어떤 개입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바레인 정부가 외국군에 ‘SOS 요청’까지 하게 된 것은 이곳 정세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레인에서는 지난 13일 시위대와 경찰 간에 최악의 유혈 충돌이 발생, 200여 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대 수천명은 수도 마나마의 금융중심지인 파이낸셜 하버센터로 통하는 도로들을 점거하며 시위를 벌였고 경찰은 최루가스와 고무탄 등을 동원해 진압에 나섰으나 끝내 강제해산에는 실패했다. 33년간 장기집권 중인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가 불붙은 예멘에서도 경찰이 12일과 13일 시위대를 강경 진압해 모두 7명이 숨졌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배우 전혜빈 다이어트 식단은

    배우 전혜빈 다이어트 식단은

    배우 전혜빈의 다이어트 식단이 화제다. 전혜빈은 지난 9일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아침, 점심, 저녁. 닭가슴살과 연어 구운 것, 고구마 하나, 블루베리, 과일, 어린잎 샐러드”라는 글과 함께 다이어트 식단을 공개했다. 앞서 전혜빈은 트위터를 통해 최근 다이어트 중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전혜빈은 당시 “4일째다. 다음 달 촬영을 위해 매일 2~3 시간씩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간이 안 된 닭가슴살 고구마 현미밥 황다랑어 채소만 먹는다. 처음엔 배가 고파 잠도 안 왔지만 사흘쯤 되니까 적응이 된다.”고 밝혔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경제플러스]

    GS건설 쿠웨이트서 공사수주 GS건설은 쿠웨이트에 LPG 저장탱크 건설 프로젝트(6200억원 규모)를 수주했다고 9일 밝혔다.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KNPC)가 발주했으며, 쿠웨이트시티에서 남쪽으로 35㎞ 떨어진 미나 알아흐마디 정유단지 내 LPG저장탱크 10기와 부대시설 등을 짓는 공사다. 설계·구매·시공 일괄 도급방식으로 진행되며, 이달 중 계약식과 함께 착공할 계획이다. 한진해운, 日~印尼 노선 신설 한진해운이 일본과 인도네시아를 잇는 신규 노선을 개설한다. 한진해운은 오는 22일부터 일본과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잇는 노선을 고려해운(KMTC), 타이완 소재의 CNC와 공동으로 운항한다고 9일 밝혔다. 노선은 일본 오사카에서 출항해 고베, 도쿄, 요코하마를 거쳐 홍콩, 필리핀 마닐라,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와 자카르타 순으로 기항한다.
  • ‘스마트폰 앱’으로 48kg 감량한 여성

    영국의 한 여성이 스마트폰에 받은 체중감량 ‘앱’(응용 프로그램)을 활용해 50kg에 가까운 몸무게를 감량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 선에 따르면 하트퍼드셔 세인트 올번스에 사는 실리 헨더슨(22)은 최고 몸무게였던 114kg에서 열 달 만에 66kg까지 감량했다. 헨더슨은 10개월 전 자신의 스마트폰에 1.99파운드(한화 약 3600원)짜리 칼로리 계산 프로그램을 내려받았다. 그녀는 그 앱을 활용해 매일 자신이 먹는 음식의 종류와 양을 입력해 섭취한 열량을 계산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앱에 나타난 칼로리 정보를 활용해 자신의 식사량을 조절하기 시작했고 체중이 조금씩 빠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그녀는 정기적인 운동까지 겸해 점점 몸무게를 줄여나갔다. 헨더슨은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기에 음식에 대한 유혹이 끊이질 않는다.”며 체중감량 앱을 활용하게 된 사연을 밝혔다. 그녀는 이번 다이어트로 화제를 모아 레스토랑에서는 매니저로 진급했고 자신을 알아본 많은 사람에게 다이어트 성공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있다고 전해졌다. 헨더슨은 “16살 때부터 체중이 불기 시작했다.”면서 “다이어트로 새로운 자신감을 얻게 돼 올여름에는 새로 산 비키니를 꼭 입겠다.”고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글로벌 시대] 동구혁명 관점에서 본 중동혁명/고토 노부유키 홍익대 교양외국어학부 교수

    [글로벌 시대] 동구혁명 관점에서 본 중동혁명/고토 노부유키 홍익대 교양외국어학부 교수

    나는 리비아의 청년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1989년 1월이었으니까, 벌써 20여년이 지난 옛일이다. 유럽 여행을 갔을 때 브뤼셀의 유스호스텔에서 그 청년과 같은 방에 묵게 되었다. 그때 리비아의 지도자인 카다피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던 그의 모습을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에게 카다피라고 하는 인물은 영웅이었다. 카다피는 구미에 대해 겁내지 않고, 정론을 피력할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그렇구나. 대단해. 당신 나라의 지도자는 훌륭하다.”고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후 22년이라고 하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현재 중동에서 날마다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또다시 시대가 크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다. 나는 1989년 1월부터 2개월간 서유럽 여러 나라와 동베를린, 폴란드를 여행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같은 해 가을 무렵부터 동유럽의 공산권이 동독 사람들의 헝가리행 하이킹을 시발점으로 해서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후 나는 일본인 친구와 둘이서 1990년 1월부터 2개월간 동유럽을 여행했다. 20세기의 공산주의 국가가 어떤 사회인지를 눈여겨봐 두고 싶었고, 또 그 체제가 붕괴되는 모습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의 동독은 어쩐지 현재의 북한을 연상시킨다. 1989년 당시 동베를린 사람들은 길을 물어봐도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고 도망쳐 갔다.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된 일이지만, 서방세계의 정보원에게 정보를 제공했다는 혐의를 추궁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외국인과는 말을 주고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990년의 라이프치히에서는 관광객들이 괴테가 즐겨 찾았다는 찻집에 들어가려는데, 찻집 입구에 지켜 서 있는 종업원은 우리를 일렬로 줄을 세워서 들어가게 했다. 종업원은 몸집이 크고, 삼엄한 얼굴을 하고서 미소짓는 얼굴 표정은 한군데도 보이지 않은 중년의 아줌마였다. 열이 흐트러지면 아줌마에게서 곧바로 줄을 서도록 주의를 받았다. 찻집이나 레스토랑에서 동독 사람들은 우리 쪽을 훔쳐 보면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당시 유고슬라비아는 아직 분리되지 않았으며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자유롭고 우호적이며 평화로웠다. 동구 혁명은 공산권의 위성국가로부터 시작되어 종국적으로는 소련마저 붕괴되었다. 이번 중동 국가들의 체제 붕괴도 독재 정권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라고 하는 점에서 그것과 일치한다. 이러한 움직임이 이대로 진행되면, 예멘·바레인·카타르·쿠웨이트 등을 거쳐 마지막에는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하는 것은 아닐까? 중동의 체제 변화는 세계의 에너지를 보급하고 있는 석유 이권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정치와 경제의 양면에서 세계적인 격동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 체제 붕괴의 움직임이 중동 전역으로 퍼져나갈 경우, 이란과 시아파 정권이 된 이라크, 이집트의 무슬림 연대 그리고 레바논의 헤즈볼라나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처럼 아랍 민중에게서 지지를 받은 조직들의 연계 속에서 중동 지역의 새로운 질서가 잡혀 갈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석유나 천연가스의 이권을 둘러싸고 민족들 사이의 이권 갈등 및 세계 여러 나라 사이에 쟁탈전이 전개될지도 모른다. 이슬람교 내의 종파 간, 민족 간 혹은 부족 간 대립을 부추기는 공작이 외부에서 끼어들지도 모른다. 우리는 동구 혁명 후, 옛 유고슬라비아 지역이나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그루지야·우크라이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익히 보아서 잘 알고 있다. 또 옐친 대통령 집권 시에 러시아의 지하자원 이권을 노리고 쇄도한 금융 마피아에 의해 러시아 경제가 어떤 상태에 놓였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 리비아 청년은 이제는 건장한 어른이 되었겠지만,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을까? 아무튼 중동 지역의 민의를 반영한, 건전한 질서에 의한 체제가 실현되기를 기원할 뿐이다.
  • ‘배구계의 이대호’ 대한항공 라이트 에반 페이텍

    ‘배구계의 이대호’ 대한항공 라이트 에반 페이텍

    프로배구 대한항공의 라이트 에반 페이텍(27·미국)은 공격이 성공하면 색다른 세리모니를 한다. 코끼리처럼 두 발로 코트를 쿵쿵 울리고 돌아다니는 것. 이런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까닭은 그가 올 시즌 V-리그 선수 중 최중량(공식 기록 113㎏)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상식적으로 배구선수는 점프를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몸무게가 많이 나가면 안 된다. 무릎과 발목에 무리가 간다. 그런데 ‘코끼리’ 에반은 올 시즌 펄펄 날아다니며 정규시즌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대한항공은 6일 LIG손보전에서 이기면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 짓고 챔피언결정전으로 직행한다. ●문제는 몸무게 아니라 밸런스 4일 경기 용인의 대한항공 체육관에서 에반을 만나 물어봤다. 그는 “중요한 건 몸무게가 아니라 밸런스”라고 딱 잘라 말했다. 무겁다고 무조건 나쁜 게 아니라 최대한의 파워를 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체중을 유지하는 게 자신만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가장 무거울 때가 127㎏, 가벼울 때가 109㎏였는데 너무 무거우면 점프가 제대로 안 됐고 가벼우면 파워가 약해져 고생했다.”면서 “112㎏인 지금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에반은 말했다. 207㎝·99㎏인 가빈 슈미트(삼성화재), 198㎝·83㎏인 헥터 소토(현대캐피탈) 등 다른 팀의 외국인 선수와 비교하면 에반은 배구계의 이대호(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다. 하지만 몸무게의 대부분은 근육이다. 체지방률은 7% 남짓이다. 사실 에반의 몸무게는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그의 체형은 배구선수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에반은 “미국에서 한 코치가 넌 미식축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배구선수에게 필요한 유연성과 스피드가 내겐 없다.”고 했다. 머리도 서양인치고 다소 크다. 머리가 크면 체공력이 크게 저하된다. 체격도 안 좋고 기교도 못 부리니 에반에게 남은 선택지는 ‘파워’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웨이트 트레이닝에 목숨을 건다. 특히 복근 운동을 많이 한다. 복근이 있어야 공중에 떠 있을 때 몸통이 힘을 받아 체공력이 좋아진다. 에반의 복근은 아이돌의 ‘식스팩’과 달리 통짜다. 그만큼 두껍단 얘기다. 한때 팬들은 그의 복근을 ‘똥배’로 오해하고 에반에게 ‘곰돌이 푸’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에반의 파워는 한국 리그에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낸다. 한 팀에 외국인 선수를 한 명밖에 둘 수 없는 규정상 ‘한 방’을 때려줘야 한다. 그러면서도 범실이 적어야 한다. 이걸 갖춘 게 에반이다. 같은 팀의 리베로 최부식은 “서브로 1득점했어도 범실을 세 번했다면 전력에는 마이너스다. 에반은 서브가 좋으면서도 범실이 적어 팀 전력에 톡톡히 공헌한다.”고 했다. 가빈이나 소토처럼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지 않지만 제 할 일은 다 해준다는 것이다. ●유연성·스피드 단점을 파워로 극복 에반의 장점이 가장 크게 구현되는 분야가 서브다. 에반은 세트당 .517개의 서브득점을 넣어 서브부문 1위다. 역대 최고 기록인 2006~07시즌 보비(대한항공)의 .407개를 훌쩍 넘었다. 에반만의 특이한 서브 폼도 한몫한다. 에반은 서브할 때 팔을 뻗어 공을 머리 높이로 올리고 3초가량 멈춘 뒤 공에 스핀을 먹이지 않고 간결한 스윙으로 공을 툭 친다. 그게 의외로 받기 어렵다. 스핀은 없는데 무게를 실어 때리니 상대방 네트를 넘자마자 낙차가 뚝 떨어지면서 흔들린다. 신영철 대한항공 감독은 이를 ‘도끼’에 비유한다. “소토나 문성민(현대캐피탈)의 서브가 착 감아치는 채찍이라면, 에반의 서브는 둔탁하게 퍽 찍는 도끼 같다.”면서 “그 힘으로 위에서 서브를 찍어누르니 당할 사람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대한항공은 우승을 위해 팀이 똘똘 뭉쳐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는 에반. “신영철 감독을 필두로 선수들이 나를 믿고 내 스타일의 배구를 받아들여 줘서 매우 좋다.”면서 다음 시즌에도 한국에서 뛰고 싶다는 바람을 슬쩍 밝힌다. 동료들은 그의 파워만큼이나 성실하고 착한 품성에 점수를 높게 준다. 용인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리비아 내전] 엄습하는 ‘오일쇼크’

    [리비아 내전] 엄습하는 ‘오일쇼크’

    중동발 민주화 바람을 탄 국제유가 오름세가 거침이 없다. 상승 속도만 놓고 보면 배럴당 150달러를 넘보며 최고가를 기록했던 2008년보다 더 빠르다. 특히 중동 정세가 혼란을 거듭하고 있어 최악의 경우 2008년 당시의 배럴당 150달러를 넘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자칫 ‘제3차 오일쇼크’가 닥칠 수 있다는 뜻이다. 28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오름세를 보인 두바이유 국제 현물 가격은 지난해 12월 21일 배럴당 90달러(90.62달러)를 넘긴 뒤 두달여 만인 지난 24일 110.77달러까지 치솟았다. 2008년의 경우 2월 15일(90.44달러) 90달러를 넘은 두바이유 가격은 2개월 보름 정도 뒤인 5월 6일 113.25달러로 110달러를 돌파했다. 두바이유가 20달러 오르는 시점이 2008년에 비해 올해가 2주 정도 앞당겨진 셈이다. 2008년에는 두바이유 현물 가격이 상승세를 계속, 7월 4일 배럴당 140.70달러로 최고가를 기록했다. 구자권 한국석유공사 해외석유동향팀장은 “리비아에서 저렇게 빨리 민주화 운동이 확산될 것이라고 누가 알았겠느냐.”면서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이 유가를 끌어올리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두바이유 가격이 지금까지의 사상 최고 수준인 배럴당 140달러를 넘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 핵심 산유국들로 민주화 바람이 번지면 공급 측면에서까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사우디의 하루 평균 원유 여유공급 능력은 지난해 12월 350만 배럴 정도. 하지만 사우디도 정쟁에 휘말린다면 국제 유가의 추가 상승을 막고 있던 가장 큰 버팀목이 무너지게 된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정책본부장은 “최근 미국의 경기부양 정책에 따라 2008년 초고유가 상황을 불러온 전 세계적인 유동성 거품(버블)이 다시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여기에 사우디 등에서 공급 차질까지 빚어지면 두바이유 가격이 2008년 수준은 물론 어디까지 오를지 쉽사리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현재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리비아 사태가 진정되고 민주화 바람이 북아프리카 지역에만 그치는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지정학적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당분간 두바이유 가격이 100달러 밑으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광기의 카다피 선택은? “자살로 최후 맞을 듯”

    광기의 카다피 선택은? “자살로 최후 맞을 듯”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광란극이 정점을 향해 치달으면서 그의 명운이 어떻게 흘러갈지 주목된다. ‘독불장군’에다 극도로 자존심이 강한 성격을 감안하면 카다피는 도망치기보다는 자결이나 피살로 최후를 맞을 가능성이 크며, 그것도 며칠 안에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카다피의 광기는 25일(현지시간) 수도 트리폴리의 그린광장에서 가진 연설 때 극에 달했다. 광장을 내려볼 수 있는 요새 ‘레드캐슬’ 위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수백명의 지지자들을 향해 “카다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 살아남을 자격이 없다.”며 독설을 쏟아냈다. 또 그는 “우리는 어떤 침략도 물리칠 수 있다.”면서 “적절한 시점에 무기고를 열어 모든 리비아인과 부족들이 무장해 리비아가 총격으로 붉게 물들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다피는 이날 발언을 통해 반정부 시위대를 또 한번 ‘적’으로 규정하며 유혈진압의 의지를 다졌다. 전문가들은 카다피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택했던 길로 접어들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후세인이 1988년 이라크 내 쿠르드족을 화학가스로 공격, 5000명을 살해했던 것처럼 카다피도 화학무기에 손을 댈 가능성이 있다고 BBC는 내다봤다. 또 1991년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에서 후퇴하면서 750개 유정에 불을 질렀던 후세인처럼 카다피도 석유를 무기화하려 한다는 증언이 곳곳에서 나온다. 결국 스스로를 사지에 몰아넣은 카다피가 재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또 망명 등으로 목숨을 부지하기보다는 자살하거나 처형당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6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카다피의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국제법정에서 심판 받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다만, 리비아군의 핵심인 혁명위원회 소속 군부가 아직 동요하지 않아 카다피가 무바라크처럼 군부에 의해 축출될 가능성은 적다고 BBC는 분석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3차 오일쇼크 우려… 주요 산유국 상황은

    3차 오일쇼크 우려… 주요 산유국 상황은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민주화 바람이 유가 급등으로 이어지면서 ‘3차 오일 쇼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중동 최대 원유 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대규모 반정부 시위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이 지역 정정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석유수출국기구(OPEC) 일부 회원국이 자발적인 증산 용의를 밝혀 추이가 주목된다. 현재 시위대와 정부가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는 곳은 리비아다. 사망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강경 진압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25일 대규모 시위가 예정돼 있어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문제는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2%가량을 차지하는 리비아발 유가 상승보다 더 많은 시선이 집중된 사우디다. 시위 자체가 허용되지 않은 체제임에도 최근 소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한 듯 “우리는 아랍 경질유나 정제를 통해 (리비아 생산 원유와) 같은 품질의 원유를 공급할 의지가 있으며 능력도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그는 “OPEC은 모든 종류의 필요한 원유를 공급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추가로 오를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다른 소식통은 블룸버그에 OPEC의 나이지리아와 앙골라도 증산할 용의가 있다고 전했다. 사우디 다음으로 일일 석유 생산량이 많은 이란은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2009년 대선으로 촉발됐던 반정부 시위 수준 정도로 확산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끊임없는 야권 탄압에도 시위대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언제든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이라크에서는 25일 대규모 ‘상경 시위’가 예정돼 있다. 전쟁 이후 열악한 경제 상황 속에 정부 관료들의 부패가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의 인내심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23일부터 보안 요원을 수도 바그다드 전역에 배치하는 등 시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알제리는 일찍이 튀니지 반정부 시위의 영향을 받은 나라다. 지난 22일 정부는 시위대의 요구 사항 중 하나인 비상사태를 19년 만에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비상사태 해제로는 충분치 않다는 입장이다. 쿠웨이트의 경우 수백명 단위의 소규모 시위가 간헐적으로 벌어지고는 있으나 큰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다. 경찰 고문 사건에 항의하면서 시위를 벌였던 단체는 당초 지난 8일 대규모 시위를 계획했다가 정부가 내무부 장관을 경질하자 시위를 한달 뒤인 다음달 8일 이후로 미뤘다. OPEC 회원국 가운데 5위 산유국인 쿠웨이트는 국회의원 선출 과정이 투명하고 정부에 대한 야당의 견제가 보장돼 있는 등 다른 중동 산유국에 비해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야권은 내각 총사퇴를 요구사항으로 내걸고 있어 불씨는 남아 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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