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녀 꽂고 노리개 달고 한복 웨딩마치
버선 발에 굽 높은 고무신 모양의 구두를 신고 사뿐사뿐 걸음을 뗀다. 비스듬하게 쪽진 머리, 그 위에 꽂힌 비녀 혹은 족두리. 순백색의 웨딩드레스에는 백제 금관 문양이 은박된 옷고름이 나풀거린다. 가슴팍에 걸린 노리개가 유난히 반짝거린다.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열린 퓨전 웨딩드레스 브랜드 ‘씨실(CISIL)’의 론칭 패션쇼에서 만난 신부들의 모습은 이렇듯 예사롭지 않았다.
‘씨실’은 한복 제작업체 ‘씨실과 날실’에서 “한국식 웨딩드레스의 새로운 정의를 내리겠다.”는 야심을 갖고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인 퓨전 웨딩드레스 브랜드.
발빠른(?) 여자 연예인들의 영향으로 요즘 결혼을 앞둔 신부라면 저 유명한 베라 왕 등 외국 디자이너들의 드레스에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신부가 없을 듯. 이런 판에 한복을 응용해 웨딩드레스로 만든다는 건 모험이 아닐까. 그러나 ‘씨실’에서 내놓은 작품들을 보니 그 가능성을 기대해 봄 직하다.
해외 수출까지 바라보고 있다는 이 업체는 드레스 패턴과 소재는 서구식을 그대로 따랐다.A라인, 머메이드라인,H라인 등의 디자인으로 유행에 뒤지지 않으면서 전통 복식의 화려한 기법들을 드레스에 접목시켜 단아하고 청초한 멋을 지닌 새로운 드레스들을 창조해 냈다.
4개의 주제로 꾸며진 이날 패션쇼에서 선보인 드레스는 20여벌. 한복의 전통미가 가미된 순백색의 드레스들은 은은하면서도 한층 격조 있는 멋을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전통 혼례복인 대례복의 패슬과 하피를 비롯해 조선시대 궁중의복인 당의, 고름, 깃 등을 조화롭게 잘 살려 냈으며 자수, 매듭, 금·은박 기법 등을 활용해 고급스러움까지 갖췄다. 수복, 단청, 국화, 연화, 목단 등 전통문양들은 화이트, 아이보리 배색의 드레스에 튀지 않고 부드럽게 녹아 들었다.
작게 축소된 앙증맞은 당의가 드레스 전체에 종처럼 붙은 스타일은 깜찍하고 발랄하게 보이고 싶은 신부라면 욕심낼 만하다. 어깨를 훤히 드러내고 드레스 자락을 허리춤까지 말아올린 어우동 스타일은 당당하고 도도한 매력을 뽐내기에 좋아 보인다. 자수로 새겨진 꽃문양 옷고름이 목선을 타고 몸 전체로 지그재그로 흐르는 드레스는 단아하고 청초한 멋을 내기에 그만이다. 활옷의 사각 소매를 응용해 소매 부분을 풍성하게 연출한 드레스는 화려하고 우아한 자태가 고급스럽다. 궁중당의에 서구의 패이즐리 문양을 은 자가드로 표현한 드레스는 은은한 멋이 일품이다.
바야흐로 결혼 시즌. 색다른 멋을 뽐내고 싶은 예비 신부들이라면 한복 웨딩드레스에 한번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지. 매장은 이달 10일 서울 강남 신사동에 오픈할 예정이다.(02)547-0261.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