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월성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윤상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연애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방산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남해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820
  • 산재빈발 건설사 공사중지령/시행령개정후 처음

    ◎위험작업 하청… 6명 사망/노동부,4개업체 위험기계 사용정지 노동부는 28일 위험작업을 하청업자에 맡겨 잇따른 산업재해를 내게한 종합건설회사 흥화공업(대표 양승룡ㆍ최명환)에 대해 공사중지명령 및 공사입찰자격 제한조치를 내렸다. 노동부에 따르면 흥화공업은 대구시 월성주공아파트를 지으면서 비계설치공사를 팔인건설에 하도급을 줘 작업해오던중 지난18일 안전조치소홀로 비계가 무너지는 바람에 작업인부 3명이 추락,숨지게 하는 등 올들어 안전사고로 6명의 인부를 숨지게 했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이와함께 프레스 등 위험기계ㆍ기구를 안전장치를 하지않고 사용하다 3건이상 산재사고를 일으킨 포항제2철강공단 입주업체인 주식회사 공영(대표 정봉규) 등 4개업체의 위험기계ㆍ기구 61대에 대해 사용정지명령을 내렸다. 지난달 13일 산업안전보전법시행령이 개정돼 산재예방의무가 강화된 이래 하청업자의 산재발생책임을 물어 원청업자에 이같은 규제조치가 내려진 것은 처음이다.
  • 근로자 영구 임대아파트등 1만1천62가구 새달 분양

    주택공사는 25일 안산 군자지구 근로자아파트 7백20가구를 비롯 근로자임대,장기임대,영구임대아파트등 모두 1만1천62가구를 9월중에 분양하기로 했다. 9월중에 분양되는 주공아파트의 유형별ㆍ지역별 분양가구수는­ ◇근로자주택 분양 ▲안산 군자지구 7백20가구 ▲천안 성정지구 5백88가구 ▲이리 모현지구 5백가구 ▲대구 월성지구 7백80가구 ◇근로자주택 임대 ▲안산 군자지구 9백가구 ▲대구 월성지구 5백40가구 ◇장기임대 ▲속초 교동지구 2백90가구 ▲충주 연수지구 4백40가구 ▲울산 삼호지구 5백50가구 ◇영구임대 ▲광주 하남지구 7백8가구 ▲서울 중계지구 8백82가구 ▲대전 중리지구 1천4백88가구 ▲구미 황상지구 6백가구 ▲춘천 효자지구 6백10가구 ▲인천 만수지구 1천4백66가구
  • “태상황” 등소평의 생일/우홍제 홍콩특파원(오늘의 눈)

    12억 중국인구의 최고 실권자 등소평이 22일 86회 생일을 맞이했다. 지난 3월 국가군사위주석 사임을 끝으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뒤 그의 활동이 중국 TV에 비춰진 적은 거의 없었고 그 자신도 은퇴당시 『나는 이제 보통 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렇지만 등이 여전히 변함없는 중국의 실질적인 최고 통치권자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공식적으론 은퇴했지만 북경을 방문하는 외국 원수나 귀빈들은 여전히 그를 정중하게 예방하고 있으며 중국의 모든 중요한 정책은 그의 최종 승인을 거쳐야만 발효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2일 생일을 맞은 등은 북경 동부 휴양지 북대하에서 가족들과 지내고 있으며 요즘에도 하루 한시간씩 수영을 즐기는 등 노익장을 자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공직이 없어서 공식적인 축하잔치는 없지만 북경의 현 고위층은 등의 생일을 기리는 뜻에서 22일 아침 천안문광장에 모두 나와 아시안게임 성화점화식을 가졌다. 하오에는 등의 고향인 사천성에서 특별히 출장을 온 요리사들이 갖가지 사천음식을 만들고 고위인사들을 대접하기도 했다. 최고실권자의 의중을 미리 헤아려 만수무강을 비는 제스처인 것이다. 등은 지난 7월 사전예고없이 가족들과 함께 아시안게임 시설을 둘러보는 자리에서 만족한 표정으로 『모든 것이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만약 개방 개혁의 흐름이 잘못돼 1억이 잘살게 되고 11억이 굶주린다면 또다시 사회주의 혁명을 해야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개방 개혁은 하되 자본주의식은 않겠다는 그의 통치이념은 현재 강택민당총서기 등 그의 후계자들에게 충실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등이 가까운 장래에 사망할 경우 제2의 천안문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등이 오래 살아서 그들의 일천한 권력기반이 굳게 다져지고 천안문의 비극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희석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등은 지난 5월 헬무트 슈미트 전서독총리와 환담하면서 『오는 97년 홍콩에 대한 영국의 통치가 끝날 때 꼭 홍콩땅을 밟아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유유자적,수렴청정을 즐기는 현대판 태상황이 과연 그때까지 살아있게 될는지 궁금한 일이다.
  • 북한,「40년폐쇄」에 회의론 싹터/영 인디펜던트지 기자 현지르포

    ◎만난 외교부직원,“세계 화해추세 알고 있다”/“남한경제가 북측보다 더 우월” 솔직히 시인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는 8월 15,16,21일자 3회에 걸쳐 테리 매카디기자의 북한방문기를 게재했다. 매카디기자는 이 방문기에서 북한이 지극히 폐쇄적인 사회이기는 하지만 조심스럽게 개방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은 그의 방문기를 요약한 것이다. 평양은 정상적인 도시가 아니다. 거리에 버스와 행인이 다니고 현대식 건물도 눈에 띄기 때문에 얼핏 보면 여느 도시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축가에 의해 흠집 하나없이 그려진 완벽한 도시그림속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거리에는 먼지 한점 없고 노인이나 장애자는 찾아볼 수가 없으며 행인들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된 것처럼 총총히 걸을 뿐 간혹 있음직도 한 혼잡스러움이 전혀 없다. 그저 외국인에 대한 전시용도시로서 도로가 널찍하게 뚫려있고 가로수가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져 있으며 분수대가 하릴없이 물을 내뿜고 있을 뿐이다. 평양은 한마디로 말해시민들의 기쁨이라고는 없는 메마른 도시다. 40여년간의 스탈린주의가 인민들의 사는 재미를 앗아가 버린 듯 하다. 대동강변에는 연인들의 속삭임이 없다. 시내에 술집이나 나이트클럽도 없다. 이쯤되면 북한인민들은 이제 색깔없는 공산주의 숲속에 무기력하게 내던져있는 존재임이 명백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어제 밤에 음악회에 갔더니 막간을 이용해 오렌지색 가죽 미니 스커트와 무릎까지 오는 흰색 부츠차림의 6인조 여성중창단이 무대에 나왔다. 완전히 60년대 스타일이다. 안내인에게 이렇게 차려입은 이유를 물었더니 젊은 인민들에게 호소력을 갖기 위해서라는 대답이다. 그녀들이 부른 노래제목은 「오,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건설과 어버이 수령님」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도 이제 서서히 자체회의의 순간을 맞고 있다. 북한체제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노동자들의 낙원」을 창조하려다 자초한 40년간의 고립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조심스런 신호를 서방측에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소련과 중국이 한국과 교류를 추진하고 있고 민주화물결이 지난해 동구권국가들을 휩쓸었을때 오랜 고립으로 변화에 익숙하지 못한 북한은 자유화 바이러스가 침투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동구유학생들을 서둘러 귀국조치 시켰다. 그러나 지난주 호텔바에서 한 북한인과의 우연한 조우는 북한이 서방측에 유화조치를 취하려 준비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했다. 외교부 직원이라는 이 남자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세계추세가 화해라는 것을 우리도 안다』고 외부세계의 변화에 대해 한참동안 얘기했다. 남한이 인구와 돈이 더 많기 때문에 힘들기는 하겠지만 궁극적으로 남북통일은 가능하다고 그는 말했다. 한국은 아시아의 4마리 용중의 하나가 아니냐고 오히려 그는 반문했다. 1년전만 해도 감히 입밖에 내기를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얘기다. 남북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견해는 거의 없지만 올해 78세인 김일성은 남한에 대한 북한경제의 우월성을 거짓 선전하는데 너무 많이 투자해왔기 때문에 그의 생전에 북한에 큰 변화가 있으리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 페만사태의 파장 명암엇갈린 중국/북경대회적자걱정 고유가바람엔 희색

    ◎쿠웨이트 경비지원 무산… 부담액 늘어/석유수출 늘어 경제난의 돌파구 기대 페르시아만의 위기는 북경아시안게임 운영에 적잖은 차질을 초래,모처럼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대내외에 국가적 위상을 높이려던 중국당국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아시안게임 참가대상국 39개 가운데 중동지역이 10개국이나 되는 데다 특히 대회운영에 따른 재정지원을 다짐했던 쿠웨이트등 직접적인 전쟁관련국의 불참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에 적자운영을 면치 못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눈앞의 불이익을 제외하고는 페르시아만 사태로 중국이 받게 될 중·장기적인 영향은 매우 긍정적이며 정치·외교 및 경제면에서 폭넓게 플러스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서방국가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지난해 천안문사태와 관련된 중국의 민권문제에서 멀어질 뿐 아니라 유가인상으로 중국경제는 뜻하지 않던 새로운 성장추진력을 얻게 된 때문이다. 우선 북경아시안게임에 미칠 마이너스 영향을 살펴보면-. 중국당국은 이번 대회에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의 39개 회원국이 모두 참가,성황을 이루게 함으로써 천안문사태로 입은 이미지 손실을 회복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겨우 한달정도밖에 남지 않은 대회개최때까지 페르시아만 사태가 완전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많은 중동회원국의 불참이 불가피한 실정인 것이다. 게다가 아시안게임을 주관하는 OCA회장 세이크 파하드 알 아마드 사바가 이라크군의 쿠웨이트침공 첫날 사망함으로써 중국당국에 결정적인 충격을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알 아마드 사바회장은 중동 최고의 부국인 쿠웨이트의 자베르 알 사바국왕 동생이며 그는 가난한 비산유 중동국가들이 북경아시안게임에 참가할 수 있도록 경비를 대주고 중국측에도 최대한의 재정지원을 해주기로 약속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바회장이 죽음으로써 가난한 중동국가들이 참가하게 될 경우 중국측이 경비부담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이미 방글라데시·네팔·캄보디아·파키스탄 등 빈국들에게 대회참가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키로 했기때문에 사바회장의 사장이 겹침에 따라 부담이 더욱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번 대회의 소요비용은 모두 25억원(한화 3천6백억원)이며 중국측은 13억원을 중앙정부및 북경시 예산에서 지원하고 나머지는 TV광고료·중계료·개인적인 헌금 등으로 충당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적잖은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북경아시안게임의 운영에 큰 주름살이 가겠지만 다른 측면에선 갖가지 이득을 보게 될 전망이다. 중국은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입장에서 페르시아만 사태에 대해 미국등 서방국가들의 견해에 거의 전적으로 동조,이들 국가에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중국은 또 이라크에 무기판매를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국이 제3세계에 무기를 팔아 외화를 버는 사실은 잘 알려진 것이지만 이라크에 대한 판매중단이 대단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어쨌든 중국은 이번 페르시아만 사태로 서방국가들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게 돼 이들 국가에 의한 외교·경제제재조치가 풀리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은 또 이번 중동분쟁으로 유가가 급등,미국등 서방셰게의 경제가 후퇴하고 공산정권 붕괴후 서방측 지원을 기대하던 동구경제도 따라서 침체될 경우 이같은 현상을 대내적인 정치사회안정의 수단으로 활용하게 될 것 같다. 개방 개혁은 추진하되 서구식 정치민주화와 자본주의는 하지 않겠다는 중국당국의 입장에선 서방세계와 동구의 사정이 나빠지는 사실을 대내적으로 크게 선전,상대적으로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데 역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페르시아만 사태로 중국이 얻게 될 이익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유가인상에 의한 경제성장의 효과일 것 같다. 중동사태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많은 국가들이 수송상 안전문제 등을 고려,원유의 주요수입선을 중국으로 돌릴 가능성이 많은 데다 기름값이 오름으로써 그동안 외환사정이 나빠 제대로 경제개발사업을 추진하지 못했던 중국은 급성장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지난해 1억3천7백50만t의 원유를 생산,이 가운데 2천4백만t을 수출하는 데 그쳤다. 원유생산 증가율도 연간 0.4%밖에 안되고 있지만 이는 매장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원유의 국제시세가 너무 낮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최근에도 계속 곳곳에서 새로이 유전을 찾아내고 있고 과거와는 달리 정유기술도 많이 개선됐으므로 앞으로 고유가시대가 계속될 경우 충분한 개발재원을 바탕으로 경제발전을 이뤄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홍콩=우홍제특파원〉
  • 「신 데탕트」는 어디로 흘러가나/세계 석학 기고

    ◎21세기 국제질서 다극체제로 대변환/미·소,자체문제로 골치… 「세계 경찰역」 포기/곳곳 국지분쟁… 유럽·아랍,「지중해 대립」 가능성/정치적 관심 시들… 종교가 이데올로기화(서울신문 광복 45주년 특집) 우리는 15일 마흔다섯번째 광복절을 맞는다. 해방과 분단의 45주년을 맞는 것이다. 소·동유럽의 개혁으로 세계가 대립과 갈등의 냉전질서를 청산하고 화해와 공존의 새 질서를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맞는 광복절이란 점에서 새롭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 광복절이라 할 수 있다. 소련의 민주화개혁과 시장경제 도입,동유럽의 탈소 독립 민주화 그리고 동서독의 통일과 유럽 통합노력의 가속화등으로 조성되고 있는 구질서 붕괴의 과도기적 유동상황속에 지금 태동하고 있는 새로운 세계질서 내지는 국제정치체제는 어떤 것이 될 것인가. 냉전의 이념적 대결이 사라진 가운데 터진 아랍 민족주의 갈등의 중동사태는 새 질서 형성의 방향을 시험하고 있는 느낌이다. 21세기를 지향하는 새 질서는 과연 세계의 평화와 안정과 번영을 보다 확고히하고 촉진하는것이 될 것인가. 그 연장선상의 동아시아 질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붕괴되고 있는 구질서의 산물인 한반도 분단의 상황도 이제는 끝날 것인가. 광복 45주년 특집으로 새 국제정치·경제질서의 향방과 한반도 주변 열강의 새 역학관계,그리고 한반도형 통일의 바람직하고 현실적인 모델등을 내외 학자·전문가들의 시각을 통해 종합진단하고 전망해본다.〈편집자주〉 1990년은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동서의 대립은 막을 내렸으며 핵의 위협은 사라졌다. 자유의 바람은 어디서나 느껴지고 있으며 전제정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이 보인다. 또 그동안 제3세계를 괴롭히던 기아문제는 적어도 남부아시아에선 해결됐다. 이같은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전망은 그러나 2000년에는 다소 불투명하다. 한 시대의 전환은 물론 어느 정도 평화리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2000년으로의 전환은 지난 45년이후 탄생한 국제질서가 보다 나은 새 세계질서로 새롭게 대체될 것이라는 기대를 약화시켰다. 국제질서의 붕괴,「북­남관계」의 점증되는불평 등에 대한 운명론,갈수록 심화되는 부국의 자기중심주의,게다가 이데올로기 대용으로서의 종교문제 대두 등이 이같은 사실을 말해준다. 국제질서는 기존 강대국들이 더이상 그 무엇이든 책임지려 하지 않음으로써 무너지고 있다. 러시아연방은 소련을 대체했다. 러시아연방은 민주화에 성공했으며 또한 이란·아프가니스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연방내 이슬람 영역은 기회만 제공되면 자치를 이룰 것이다. ○달러화,기축기능 상실 그루지야·아르메니아·백러시아·우크라이나 등은 폴란드의 야심에 맞서기 위해 혹은 이슬람 제국주의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와 연방을 맺고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결합체는 아직 정치적으로 취약하다. 연방 공화국들은 끊임없이 다투고 있으며 이로인해 모스크바 중앙정부는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지경이다. 군주제도의 복귀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나 그것은 앞으로 영원히 논의될 중요한 과제이다. 게다가 새 러시아는 이제 막 경제·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업에 착수했다. 이같은 일련의 상황들로 인해 러시아연방은 2000년에 자신들의 문제에 전념할 수밖에 없으며 여타문제에 관해선 신경을 쓸 수 없는 것이다. 한편 미국은 오랜기간 동안 세계 최대 강국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세기의 전환기를 맞아 미몽에서 서서히 깨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들 이웃 지역에서 발생한 일에 관해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있다. 2000년에 미국은 세계질서의 개편보다는 더 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경제성장의 침체는 냉혹하리 만큼 지속돼 미국인들의 삶의 수준은 일본이나 유럽인들의 수준에 못미칠 것이며 심할 경우 한국이나 대만 수준에도 이르지 못하게 된다. 더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의 엄청난 외채문제로 달러화가 국제시장에서 신용화폐로서의 기능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또한 국가 정체성의 위기를 안고 있다. 유럽에서 건너온 미국인들은 2000년에는 대다수 큰 도시에서는 물론 25개주에서 소수인종으로 전락하게 되며 흑인과 스페인계가 대다수 지역을 지배한다. 미국은 또 사회복지를 위해 군비를 삭감,해외주둔기지를 철수시키고 대외적으로 안보는 아무 위협이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뒤를 잇지 못한다. 일본인들은 미국인들이 했던 역할을 떠맡으려 하지 않고 있으며 또한 할 수도 없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일본의 그런 역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유럽과 북미는 일본을 불신하며 동시에 시기한다. 2000년에 있어 이들이 아시아를 대하는 공식 독트린은 보호주의다. 그러나 일본은 국제적으로 정치적 야심을 꾸미진 않으며 자신들의 가치관과 문화가 모든 국민에게 적합하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세기의 전환기를 맞아 일본 경제의 우월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위도상 북부에 위치한 산업화된 부국과 남부에 위치한 미개발 빈국 사이의 균열은 점점 상호 관련이 없어진다. 좁은 땅덩어리에 높은 임금 때문에 일본은 그들의 사업을 해외로 확장,한국 대만 등은 물론 중국·동유럽에서 라틴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해외기업을 소유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세계 각국은일본의 기술은 물론 노하우,심지어 경영철학까지도 손쉽게 얻을 수 있어 일본은 곧 추월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추세는 일반화되어 「남부」국가들 사이에서도 분열현상이 나타난다. 라틴아메리카는 연대감을 잃는다. 예를 들어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등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데 반해 안데스산맥 인근국가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마찬가지로 인도는 기아문제와 인구증가문제를 해결한 반면 아프리카는 구제불능의 상태에 빠진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름뿐인 민주정부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부패가 만연,발전을 못하고 있다. 이슬람지역은 회교 정통주의 정권이 지나치게 명령과 평등을 강조하고 있으며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진정한 발전이 저해당하고 있다. 2000년의 문턱에서 중동지역은 또한 내부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터키,이라크,시리아 등은 종교적 색채가 덜한 정권이 들어서서 현대화를 꾀하는 데 반해 여타 다른 국가들­특히 산유국들­은 세계의 에너지원인 기름을 무기로 지탱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부는 더이상 부가 아니며 그들은 삶의 수준을 어떻게 향상시키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가중되는 경제혼란을 이슬람 가치의 찬양을 통해 모면하고 있을 뿐이다. ○폴란드,권위주의 회귀 1990년대를 통해 선진국들은 제3세계의 정신적 가치를 받아들였다. 사회분석가들은 미국과 서유럽내의 가난과 부랑자들의 만연이 80년대의 실업위기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타대륙으로부터 이민의 유입과 냉혹한 경쟁으로 인해,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연금에 의존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군중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2000년대 선진국이 직면한 문제는 미개발된 타대륙을 원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따라서 통합유럽의 수도인 브뤼셀에서뿐만 아니라 워싱턴에서도 주요 정치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같은 사태 발전은 지중해지역에 새로운 분쟁을 야기했다. 유럽에서는 주요 국제현안이던 동서대립이 중단됐다. 2000년 유럽의 분쟁은지중해에서 일어나게 되며 이때 유럽은 기술적 이점을 활용하는 데 반해 아랍은 수적 우세와 과격성을 내세우게 된다. 또다른 분쟁지역은 팔레스타인 문제와 이스라엘­아랍분쟁이 계속되는 중동지역이다. 같은 지역의 이라크,시리아,회교정통국가들간의 충돌도 피할 수 없을 듯 보인다. 1990년 발발했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사건은 이러한 전망의 예행연습이었다. 만일 이같은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최신 무기로 무장한 나라가 승리할 것이며 그때 이란은 호메이니 때와는 달리 이슬람국가를 일방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는다. 중국도 90년대말쯤에는 주요 관심사항으로 부각된다. 공산체제가 와해된 이후 설립된 불안정한 민주정부는 진정한 통치력을 확보하지 못하며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또다시 옛날처럼 분열된다. 해안에 위치한 지역들­특히 상해와 홍콩­은 각광받은 도시로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겠지만 내륙도시는 발전이 부진하게 된다. 중국인에게 자유란 희망이 없는 곳을 떠나 새 삶을 이룰 수 있는 것을 의미하겠지만 그같은 희망이 어디서나 나타나지는 않는다. 90년대 10년간 유럽에는 균형이 존재했었다. EC 12개국으로 유럽연방이 이루어졌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도 동참했다. 그러나 유럽의 외교적 활동은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에 정지된다. 유럽은 이제 한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없게 됐다. 2000년에 브뤼셀의 정부는 아무 결정권이 없는 하나의 관료체제가 될 뿐이며 또 이러한 상황은 10년은 더 계속된다. 이 기간은 유럽이 내부적인 정치행태를 공고히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게다가 유럽동맹은 소련과 동유럽의 재건을 도와주느라 바쁠 뿐이다. 이 기간동안 유럽은 말뿐이지 진정 세계질서에 관심을 갖지는 못한다. 동독의 서독으로의 경제통합은 불과 4∼5년 만에 이루어졌다. 체코와 헝가리의 사회·경제적 회복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달성됐다. 농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 나라들은 공산주의가 남긴 대규모 농장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었고 사유화가 이루어지자 서유럽의 소규모 농장들과 경쟁해서 이겼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손실이었다. 유럽동맹의 농업문제는 전보다 나빠졌다.이제 2000년에는 적은 농업규모를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잉여농작물에 대해 계속 보조금이 지급되어야 하나 아니면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살던 곳에 머물라고 돈을 주어야 하나. 이러한 문제들은 동유럽국가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바웬사대통령의 반독재통치정부이후 폴란드는 민주주의를 회복하려 하지만 바웬사는 여전히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다원적 민주주의 발달 루마니아에선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해 계속 정권이 바뀐다. 불가리아의 상황은 그래도 좀 낫다. 그러나 90년대 정치적인 안정은 이루었으나 경제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유럽은 다시 두개로 나뉘어진다. 그 정도가 완화는 되었으나 여전히 격차가 있는 이 양자 사이에 이민이 계속된다. 폴란드와 루마니아에서는 권위주의체제로의 복귀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 또한 여전하다. 2000년의 새로운 세계에 있어선 또한 인간의 정신자세에 변화가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문제를 영원히 해결해준다는 어떠한 혁명적 이데올로기도 통용되지 못하며 대부분의 사회에 있어 다원주의적 민주주의가 비교적 덜 나쁜 정부로 인식된다. 또한 국민들은 정치에 점점 무관심해지고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며 동시에 정치적인 유토피아에 대한 회의론이 증대된다. 공산주의 독재정권의 붕괴는 마르크스 이데올로기의 붕괴에 뒤이은 필연적 결과일 뿐이며 2000년에 마르크스 이론은 고려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동시에 학자들과 일반인들은 공히 「혁명은 독재를 낳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또한 혁명은 역사를 후퇴시키며 또다른 문제를 낳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불평등은 선동연설이나 기적에 대한 확신 또는 속죄양을 내세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돼 2000년에 혁명을 부르짖는 게릴라그룹은 없어진다. 이데올로기가 내세운 유토피아가 거부되는 현상은 왜 다원적 민주주의가 인본주의 정치의 상징이 되는가 하는 것을 설명해준다. 많은 사람들은 진짜 민주주의를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때 시민이 아니라 놀란 노예였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성문화된 권리나 보장이 자유와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같은 발견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어진다. 2000년 시민들은 정치가를 믿지 않으며 그들의 목적은 단지 선거에 당선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선거에 기권하는 유권자는 늘어나고 이로인해 민주주의에 불만을 갖는 목소리는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다. ○내세·구원문제 눈돌려 그러나 민주주의의 이상적인 목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수많은 종교적 정서에 자신을 의지하게 된다. 예를 들어 회교도들에게 이슬람적인 신념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인간을 다스리는 것은 신에게 부여된 능력이지 인간에게 부여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신념은 세계의 서구화에 직면,이슬람 특유의 정치를 표현하게 된다. 게다가 그것은 이 세계에 침투해 있는 모든 악에 맞서 도덕적인 저항을 하게 된다. 2000년대 문턱에서 이같은 태도는 특이한 것은 아니다. 인도에서는 힌두교가 국가의 정치성을 표현했다. 산업화된 아시아국가에서는 불교가 다시 번성하고 그것은 1천년 일상생활의 사소한 문제에 맞서 정신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된다. 일본은 매우 종교적인 나라는 아니지만 전통적인 신도가 새롭게 번성하게 된다. 정치성에 관한 관심이 종교의 유일한 동기는 아니다. 이미 90년대 후반에 많은 사회에선 물질적 욕구에서 얻는 상대적 불만족이 다른 기대를 발생시켰다. 그래서 내세와 영원한 구제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기독교사회에 있어선 신비주의가 새로운 경향이 됐다. 종교지도자들은 사회정의나 제3세계를 위해서 보다는 개인의 구원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종교분파는 급속하게 증가하고 신과의 교감이 다시 깊은 관심사항이 된다. 2000년의 세계는 인간의 사고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그러한 시대인 것이다. □기에르메 ▲1934년 파리 출생 ▲파리대학 졸 ▲정치학박사(비교정치학) ▲파리정치대학교수(현재) ▷저서◁ 「비교정치론」 「반민주 민중론」 「민주실천의 사회학」 「민주주의의 역설」
  • 통일 “「하면된다」는 안되는가”/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재미동포 심재호씨는 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훈의 아들이다. 지난 87,88년 두차례 북한을 방문하고 「37년 걸린 길」이라는 기행문을 책으로 펴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에 비해 우수하다면 북한의 자존심은 남한과 다름없이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둘이 합치면 천생연분이 된다』『북한 사람들한테 「밖에 사람들에게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라고 전하겠다」고 했더니 무척 좋아했다』 ○통일에는 승패가 없다 어떻게 보면 남북한이 각기 대화에 의해 통일을 추구한다고 할때 제로섬게임,즉 영합의 논리로 승패를 가리자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민족적 동질성을 되찾으면서 다시 하나의 민족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대화이다. 이러한 남북대화에서 어느 한 편이 완전히 플러스가 되게 하거나 어느 한편이 마이너스가 되게 하는 대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은퇴한 한 노정객에게서 들은 얘기다. 지난 50년대 반공북진 통일정책이 서슬퍼랬을 때였다. 당시 거물정객 낭산 김준연이 어느 주석에서 고담준론끝에 『당장통일이 되는 길이 있는데… 』라며 좌중의 이목을 모았다. 궁금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걸작이었다. 『어느 한편이 항복을 하면 되지… 』였다. 우답인지 현답인지 모를 일이지만 평화통일의 「평화」라는 말만 나와도 쇠고랑을 찼을 때였다. 통일논의 자체가 아예 터부였던 시기에 그의 통일론은 만용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사했다. 그의 투철한 반공의식이나 그 풍부한 경륜과 식견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낭산의 이 재담은 대 북한정책에 관한 한 알게 모르게 당시를 지배했던 패배주의에 대한 일침이기도 했다. 이제 남북한의 정치ㆍ군사문제까지 다룰 양쪽 총리회담이 실현되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결국 한반도의 통일논의는 다음 세가지중 하나일 것이다. 첫째 우리의 국력,혹은 저쪽의 그것이 상대보다 몇곱으로 되어 물이 높은데서 낮은데로 흐르듯이 될때까지 통일논의는 지지부진한 입씨름에 불과할 것이라는 견해다. 둘째 한반도가 통일이 되어도 좋다,혹은 그렇게 돼야한다고 주변의 열강 특히 한반도 유관국들이 인정을 하도록 우리힘을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셋째 그들은 결국 남이다. 우리의 일이 우리의 뜻대로 되자면 남에게 맡겨둘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은 그 세가지 견해 모두 통일이 우리민족 지상과제라고 한다면 잠시인들 그 노력이 중단되어서는 안된다는 결의의 표명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금에 걸친 동서독의 급속한 통일과정을 지켜보는 우리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은 유럽의 동서독과 한반도의 남북한이 「분단」에 관한 한 다를 것이 없다고들 한다. 두 경우 다 분단 40여년을 기록했다. 오늘날 통독의 기틀이 된 동방정책은 71년에 시작됐다. 한반도의 남북한이 7ㆍ4공동성명을 낸 것은 72년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경제ㆍ사회통합과 국경개방,전독총선,나토 가입이다 해서 통일의 장애요인을 모두 제거했다. 사실상 통일을 이뤘다고 해도 좋다. 왜 이렇게 달라지는가. 저 사람들은 말보다 행동을 앞세웠지만 우리는 말을 앞세우되 행동이 그것을 따르지 못했다. 통일문제에 관한 한 우리들은 입만 열면 통일 통일 하면서도 막상 통일을 위해준비해 놓은 것은 없다. 독일 사람들은 그러나 일관된 행동으로,선전대신 실적으로,감정보다 이성으로 그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동서독을 막론하고 전 게르만민족의 가슴마다에 통일이 이심전심으로 어느 하루인들 메아리 치지 않은날이 없었을 것이다. 양독간 기본조약이 있고 편지 전화가 오가고 경제ㆍ문화적인 동일권이 깨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런 단계의 초입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벌써 18년전 일이다. 남북공동성명이 나오고 남북간에 무언가 될듯이 세상이 떠들썩 했을 때 막상 북한출신 인사들 가운데 불안하고 달갑잖은 표정을 보인 경우가 있다. 통일염원이 뼈에 사무쳤을 그들이 왜 그랬을까. 북쪽을 「믿을 수 없다」는 심정에서 였을 것이다. 워낙 앞뒤가 다른 그들이라 또 언제 어느때 태도가 달라져 「일조유사시」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였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북한측의 남한출신 한 대표는 서울 한복판에서 사뭇 전투적인 목소리로 「김일성주석」을 들먹이고 사회주의 우월성을 선전했다. 실향사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던것이다. 동서독과 남북한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패전은 했지만 그 패전은 동족간의 전쟁이 아니었다.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과거가 없고 한맺힌 증오도 없다. 동족간의 적개심을 갖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상호 비방이나 선동도 없었다. 거기에 자본주의 서독이 사회주의 동독의 경제력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서로가 적개심을 갖지 않은데다 서독이 동독의 경제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통합에 반대할 동독인은 한사람도 없는 것이다. ○독일의 19년을 배우자 그 독일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남들 앞에서 싸우지말고 말보다 행동을 먼저하고 무엇보다 서로가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이제 더이상 지난 잘못의 원인을 캐며 서로 잘했다고 나설 것이 아니다. 그 토대위에서 통일 할 수 있다는 각오라면 그 통일작업은 하면 되는 것이다.
  • 한중,한전공사 독점/토건ㆍ원자로 설치공사는 제외

    한국중공업이 앞으로 한전이 발주하는 발전소용 주기기인 원자로ㆍ터빈시설은 물론 보조기계 및 전기관련설비등 기전시설 설치공사를 도맡게 됐다. 이로써 한중은 발전소건설사업에서 토건공사 및 원자로 설치공사를 제외한 모든 공정을 독점하게 됐다. 그러나 울진원전 3ㆍ4호기의 기전시설 설치공사와 인천 일도복합화력의 보일러계통을 제외한 주기기제작,안양ㆍ분당ㆍ일산 열병합발전소의 주기기제작 및 기전시설설치공사,월성 원전 2호기 1차계통의 주기기 제작사업은 한중의 수주능력을 벗어나기 때문에 다른 업체의 참여를 허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19일 하오 이승윤 부총리주재로 산업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한중의 경영정상화 및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한 이같은 내용의 「발전설비제조업의 산업합리화 기준변경안」을 의결했다. 이밖에 발전소 보조기기의 경우도 한중이 공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한중이 생산하지 않거나 국산화능력이 없는 중전기등 일부 보조기기는 예외로 인정,한전이 국내업체나 외국업체로부터 조달할 수 있게 했다.
  • 예술원상 수상자 확정

    ◎문학 고박양균씨/미술 고남관씨/음악 정회갑씨/연극 김수용씨 예술원은 18일 제35회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수상자는 문학부문 고 박양균씨(90년작고ㆍ시인),미술부문 고 남관(90년작고ㆍ서양화가),음악부문 정회갑(67ㆍ작곡가),연극부문 김수용씨(61ㆍ영화감독) 등 4명이다. 고 박시인은 시를 통해 일상성을 초월한 정신의 탁월성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했고 고 남화백은 인간의 희로애락과 생명의 영원성을 세련된 색채로 표현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또 정씨는 40여년동안 작곡과 후진양성을 통해 음악발전에 기여했으며 김씨는 아동영화와 문화영화를 통해 영화의 사회성과 교육성을 높인 공적이다. 시상식은 오는 10월중에 있을 예정이며 상금은 각 1천만원씩이다.
  • 「사천왕사 왔소」 새달 일 공연… 연출가 허규씨(안녕하십니까)

    ◎“전통축제 「해외마당」에 큰 보람”/“전래문화의 뿌리,일 재현에 가슴 뿌듯/춘향제등 향토축전의 활성화 힘써야”/재일동포들에 민족문화의 우월성 심어줄 터 【대담:장석영문화부장】 오직 무대를 통해 말한다는 연극연출가 허규씨(57). 그가 최근 연출가에서 문화이벤트기획가로 변신,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특히 지난 4월 진해 군항제를 시작으로 남원 춘향제,강릉 단오제에서 지역문화와 관련된 인물의 행차행렬을 꾸며 지역축제를 활성화시킨 데 이어 오는 8월 일본 오사카에서 펼쳐질 「사천왕사 왔소」라는 행사를 맡아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일에 몰두해 있다. 허씨는 이번 「사천왕사 왔소」라는 행사를 통해 한국의 전통축제 문화를 일본인들에게 선보여 한일문화의 고리를 복원시켜 보겠다고 벼른다. 그는 또 이번 행사가 자신의 연출무대를 제한된 실내 공간에서 실외마당으로 옮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국내마당에서 해외마당으로 넓혀나가는 길이라면서 이번 기회에 재일동포들에게 민족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데온 정열을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예술가에서 민족예술가로 도약해 보겠다는 그의 오늘과 내일의 목표는 무엇일까. -먼저 「사천왕사 왔소」라는 행사를 맡게 된 동기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이 행사가 태동된 것은 지난 88년 서울올림픽이 치러진 이후였습니다. 올림픽 문화예술축전에서 거리축제인 「상감마마 행차요」를 기획·연출했는데 아마 그것이 인연이 되어 저에게 이번 행사를 맡긴 것 같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기획에 들어가 이미 지난달 12일 서울 임진각에서부터 본행사가 시작됐습니다. -행사의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원래 이 행사는 신한은행의 모체인 대판흥은의 이승재전무가 「빛나거라 21세기의 어린이여」를 기업이미지의 주제로 내세우다가 교포 3세이하의 세대를 위한 전통문화축제를 착안,재일실업가들로 후원회를 결성해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이 후원회는 후쿠다 전일본수상등 한일 주요인사 18명으로 「사천왕사 왔소」 실행위원회를 구성하고 두 나라를 연결하는 첫 행사를 이번에 갖는 것입니다. 지난달 12일 임진각에서 5백여명의 교포가 성토제등을 올려 조국순례행사의 막이 올려졌고 이달 31일 부산을 출발,다음달 19일 오사카에서 약 3천여명의 교포가 참석하는 고대의상 퍼레이드와 일본 사천왕사에서의 전통예술공연등으로 행사는 이어집니다. ○올림픽뒤 축제에 전념 -왜 행사의 이름을 「사천왕사 왔소」라고 했습니까. ▲교포들의 사상최대 뿌리찾기 운동인 이 축제의 명칭이 어째서 「사천왕사 왔소」인가 하면 일본의 사천왕사가 부여의 정림사지를 모방한 사찰로 고대 한일문화 교류의 창구역할을 맡았고,일본의 전통축제에서 「왔쇼이」(□□□)라고 외치는 말의 어원이 한국어 「왔소」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이번 축제의 의의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고대로부터 많은 문물이 한반도로부터 일본에 넘어갔다는 인식은 일본 사회에 깔려 있으나 그것을 기리는 축제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축제는 그 명칭에서 나타나 있듯이 한반도에서 받은 영향을 기리자는 최초의 축제로 오사카교포들이 중심이 되어 벌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고대 사기에도 나타나듯이 일본인 모두가 좋아하는 성덕태자의 스승이 고구려인이며 그런 분들이 이 시대에 오사카에 다시 나타났음을 표현해 보일 계획입니다. 또 우리 조상들이 일본에 전해준 문물들을 재현하려 합니다. 이 행사를 8월에 갖는 이유는 우리의 광복일이 8월에 들어있기 때문등입니다. -연출가에서 기획가로 변신한 셈인 데 보람을 느끼십니까. ▲물론입니다. 저의 활동을 변신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10년 주기로 변한 것 같습니다. 60년대에는 주로 서구식 연극에 주력해 왔고 70년대에 넘어오면서 우리 연극 찾기에 눈을 돌렸죠. 그러다 80년대에 와서는 창극쪽으로 관심을 모았고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치른 뒤부터 축제에 전념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축제다운 축제가 없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축제를 기획·제작·연출하는 단체를 만들어 보자는 데 착안했던 것입니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단체가 축제문화진흥회죠. ▲81년부터 89년초까지는 국립극장장으로 공직에 몸을 담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종합기획 「마루」라는 이름으로축제행사를 맡아 추진해왔는데 지난해 3월 주식회사로 등록하면서 「축제문화진흥회」란 간판을 달게 되었습니다. 거리축제는 가만히 서 있는 무대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오고 가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전에 구간별로 업무를 분담해 조립형태로 이뤄집니다. 따라서 상당히 많은 인력과 장비 그리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각 지방에 따라 고유의 축제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경시되어 온 경향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활성화가 되리라고 보십니까. ▲각 지역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유의 축제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이들 축제들이 주로 관청에서 주관해 왔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인 행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남원의 춘향제만 해도 제가 거의 30여년간 굿판등을 쫓아다니며 보아왔지만 전혀 발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어디든 백일장,노래자랑 등이 있고 난장에 서서 먹고 마시고 떠들썩한 것만 있었지 정작 삶의 질을 높여주는 축제다운 축제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신문에서 올해부터 전국 10개 지역에서 펼치는 향토문화축제는 그런 면에서 매우 바람직스럽고 반드시 지역문화 발전에 큰 몫을 하리라고 기대됩니다. ○마당극 현대에 잘 맞아 -현재 우리의 공연계에 대해 하실 말씀은. ▲제 자신이 공연계에 몸을 담고 있기 때문에 뭐라고 꼬집어 얘기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공연예술은 지금까지 보다는 앞으로 훨씬 독창력을 발휘해 나가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더욱 활성화도 이루어지리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우리는 전파와 전자의 뉴미디어시대에 살게 되는데 그때가 되면 인간적인 모습의 예술공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고 또 그리워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그리워지고 자연이 그리워지고 하면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공연장을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지금은 어찌보면 우리 공연계도 혼돈적 상황이라고 해야겠지요. 각종 개방화에 편승,외국의 공연단체들이 밀려 들어오고 있습니다. 정말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외국과 문화의 뿌리를 달리하는 우리나라에서 현재의 예술적 환경과 시대상황을 가장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극형식은 어떤 것일까요. ▲저보고 마당극의 기수라는 말을 하는 분들이 많은 줄 알고 있습니다만 마당극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맞는 전통의 현대적 수용의 지름길이 된다고 봅니다. 지난 75년 미국과 유럽을 40여일간 여행을 하면서 그곳의 공연만 38편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때 각 나라의 연극이 자기네 민족문화를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통일성은 언어입니다. 음식문화도 중요하지요. 역사와 국가를 떠나 인간중심의 시각에서 언어나 음식이 같으면 그 기질도 같아지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우리의 기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민족의 신명,신바람도 그런 것중의 하나죠. 일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또 놀기 좋아하는 특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단순히 놀기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예능적 재질이 뛰어난 민족이기 때문에 좋은 작품들을 무수히 만들어 낼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같은 언어,같은 음식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양한 성격을 가진 민족입니다. 우리 민족은 음악적으로나 기타 다른 형식에서도 나름대로 획일적이 아닙니다. 신바람 잘 내는 민족이기 때문에 싸움도 잘하고 분파도 잘 일으킵니다만 이를 긍정적으로 보면 자존심과 자신감이 강한 민족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연극부 활동 -맨 처음 연극을 하시게 된 동기는. ▲원래 대학의 전공은 임학이었습니다. 서울에서 공부를 할 때인데 연극에 열을 올리던 아저씨 집에서 기거를 했어요. 그때 연극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서울농대 3학년때 연극부에 들어가면서 연극인의 길을 걸었죠. 그동안 연극연출 횟수는 1백10여편정도였고 방송드라마는 약 5백여회를 제작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역시 77년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물도리동」과 68년에 제작했던 드라마 「탑」입니다. -가족이 분야는 달라도 모두 한길을 걷고 있다고 들었는데. ▲시인인 아내(박현영)와 시립국악단에 있는 딸,그리고 대학원에서 예술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 아들이 가족인데 모두 한 길을 걷고 있는 셈이지요. -앞으로의 계획은. ▲전통예술의 뿌리에서 우리 예술을 꽃피우는 작업을 꾸준히 해 나갈 작정입니다.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우리 문화예술의 우월성과 자긍심을 심어주는 데 노력해 나갈 계획입니다.
  • 오늘도 찾지못한 그날의 전우이름 소위「김○○의묘」6ㆍ25를 말한다

    ◎예비역 준장 황규만씨의 「안타까운 40년」/안강지구 배속뒤 첫 전투서 산화/묘비에 이름 못새겨 한으로 남아/현충일ㆍ추석날엔 동작동 찾아 「무언의 대화」 25일은 민족상잔의 비극을 불렀던 6ㆍ25동란 40주년이 되는 날. 이날을 하루 앞둔 24일상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는 색다른 행사 하나가 있었다. 동쪽 제2묘역에 있던 한 무명용사의 비석을 들어내고 새 비석을 세운 일이었다. 그 비석에는 「육군소위 김 의묘」라고 새겨있었다. 묘비번호 1659호인 이 묘비는 동작동 국립묘지에 있는 5만여 순국영령들의 묘비 가운데 이제 단하나뿐인 이름없는 묘비이다. 『국립묘지관리소측에서 묘비의 좌대를 모두 교체한다기에 양해를 얻어 김소위 묘의 비석과 좌대를 바꾸고 상석도 새로 놓게 됐습니다. 하지만 끝내 고인의 완전한 이름을 새겨넣지 못해 죄스러울 따름입니다』 6ㆍ25때 눈앞에서 숨져간 이름모를 전우의 시신을 거두었다가 이곳에 안장시켜 지금껏 지켜온 예비역육군준장 황규만씨(60ㆍ범양상선부회장)는 「김」자뒤에 남은 빈칸을 못내 아쉬워했다. 황씨와 이 묘비의 주인 「김소위」와의 생사를 뛰어넘은 전우애가 시작된 것은 6ㆍ25가 터진지 석달째인 50년 8월 경북 안강지구전투의 한 격전장에서였다. 10기생으로 육사에 입학했다가 1년만에 전쟁을 만난 황씨는 수도사단 제26연대 2중대 1소대장으로 적에게 빼앗긴 경북 월성군 도음산 385고지의 탈환 임무를 띠고 고지 남쪽 능선밑에 참호를 파고 진을 펴고 있었다. 연일 공방전이 벌어졌고 8월27일 새벽무렵 적의 대공세가 시작됐다. 상오7시쯤 1연대 소속의 1개 소대가 지원을 왔다. 20살 안팎의 신입소대장은 황소위에게 평안도사투리로 『시흥보병학교 갑종간부 1기생이 김소위』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두 소대장이 인사를 나눈지 5분남짓 지났을까…. 김소위는 『지형정찰을 하겠다』면서 참호밖으로 나갔다. 순간 1백여m 거리에서 대치하고 있던 적들은 사정없이 기관총을 쏘아댔고 김소위는 머리에 총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그에게는 손거울 하나와 몇가지 소지품밖에 신원을 알수있는 아무런 유품이 없었다. 황소위는 급한대로 소총대검으로 이웃 소나무등걸밑을 파고 김소위의 시신을 묻은 뒤 돌하나를 얹어놓고는 퇴각해야만 했다. 황씨가 김소위를 다시 찾은것은 14년의 세월이 지난 64년5월. 종전후 줄곧 전방부대근무로 눈코 뜰새없이 바빴던 황씨는 그해 대령으로 승진하면서 어느정도 여유가 생기자 그동안 한시도 잊지 못했던 「그날의 전우」를 찾아 나섰다. 위생병 3명과 함께 지도를 펴들고 온종일 어슴프레한 기억을 더듬은 끝에 황씨는 마침내 경북 월성군 강동면 단구리 기계북쪽 340고지의 한 능선에서 그 소나무와 그 돌을 찾아냈다. 황씨는 곧 육군참모총장에게 청원을 했고 같은달 27일 「김소위」를 국립묘지(당시 국군묘지)에 안장할수 있었다. 김소위의 나머지 이름 두자를 알아내기 위해 「6ㆍ25전사자 명부」를 일일이 찾아보는 등 할수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당시 안강지구전투에서 전사한 제1연대소속 「김소위」는 찾을 수가 없었다. 황씨는 그때부터 「김소위」의 유일한 유족이자 친구가 돼 「김소위의 묘」를 돌보기 시작했다. 황씨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설날과 현충일ㆍ추석날에 어김없이 「김소위」를 찾아 참배했으며 마음이 울적할때면 이곳에 와 이름없는 옛 전우와 「영혼의 대화」를 나누며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했다. 『죽은 뒤에도 김소위와 나란히 누워 인연을 이어 나가는게 소원』이라는 황씨는 자신의 직접 만든 전우의 새 묘비를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혔다.
  • 한민족 재결합의 돌파구 어디에(정담)

    ◎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6ㆍ25아픔」극복해야 「통일의 문」열린다/극우ㆍ극좌의 극단적 논리 지양할때/상호 실체 인정,「시각」의 재조정 시급/체제화합의 「예멘식 통일안」이 적절/경제교류ㆍ사회단체 접촉 확대가 선결돼야 해방과 함께 조국이 두동강 난지 45년. 6ㆍ25전쟁이란 동족상잔이 발발한지도 40년. 강산이 네번 바뀌고 일제가 이땅을 침탈했었던 36년 보다도 더 긴 세월. 이 세월동안 우리민족은 남북으로 갈라져 전혀 다른 체제와 이데올로기 속에서 살아오면서 숱한 시련을 겪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분단의 비극도 전쟁의 상흔도 치유하지 못한채 가슴아픈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동서냉전의 틀이 깨지면서 동서독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고 남북예멘이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는 놀라운 변혁을 지켜보고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6ㆍ25전쟁이 우리민족에게 던져준 진정한 교훈은 무엇이며 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딛고 통일을 앞당길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6ㆍ25전쟁 40돌을 맞아 사회전반에 걸쳐 폭넓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고영복교수(서울대)와 북한의 사회변화를 예의 주시해온 도흥렬교수(충북대)그리고 분단의 현실에 고뇌하면서 그 현실을 다각적인 시각에서 작품화하고 있는 작가 김원일씨의 좌담을 통해 통일로 가는 바르고 곧은 길이 어디에 있으며 이길을 어떻게 걸어야 할 것인가를 알아본다. □참석자 고영복(서울대교수) 도흥렬(충북대교수) 김원일(작가) ▲김원일=6ㆍ25전쟁이 우리민족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가를 짚어보기 위해서는 해방후부터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남과 북이 외세에 의해 갈라지기는 했으나 이질화는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김구선생은 북의 김두봉정도의 인물을 만나 대화하면 38선도 허물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며 남과 북사이 사람들의 왕래도,편지의 교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6ㆍ25전쟁으로 남북의 분단은 고착화됐고 극우와 극좌라는 이데올로기 사이에도 넘을 수 없는 장벽이 가로 놓이게 됐습니다. ▲고영복=해방후 6ㆍ25까지 만해도 민족적 동질성은 유지돼 왔고 남과 북 각각의 영역에는획일화 되지 않은 여러 정치세력들이 다양한 주장을 전개할 수 있었으며 통일의 가능성도 높았습니다. 그러나 6ㆍ25전쟁은 지리적 이동과 이데올로기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계기가 됐고 이 결과 기존의 민족적 동질성을 파괴하는 형태의 극한적 체제대립을 낳고 말았습니다. ▲도흥렬=보다 중요한 것은 6ㆍ25전쟁으로 인해 남과 북한간의 평화공존의 길이 더 멀어지고 어렵게 됐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6ㆍ25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그 실체는 뒷전으로 밀어둔채 추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의 논쟁만이 판을 친 느낌이 없지 않았고 남북 모두가 이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해 왔습니다. 가령 북한은 김일성체제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를 이용해 왔으며 이에 따라 반제ㆍ반미ㆍ증오ㆍ우상화 문화가 형성됐습니다. 또한 한국사회에서는 반공문화가 생겨났으며 반공이데올로기가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작용한 것도 사실입니다. 더욱이 북한은 「전쟁은 수단을 달리하는 정치의 연장」이라는 레닌의 전쟁론에 입각,6ㆍ25전쟁은 해방 후 남한정권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던 친일파숙청,토지개혁 등의 과제를 해소해 남한을 해방시키기 위한 정의의 전쟁,통일전쟁이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원일=최근 6ㆍ25전쟁의 의미와 성격에 대해 많은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이는 6ㆍ25전쟁이 기존의 반공논리나 북한의 주장등과 같은 단순한 의미로써 해석할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의 전쟁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고영복=6ㆍ25전쟁이 일어난지 40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동안 세대교체도 이루어졌으나 아직도 결론없는 논쟁만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는 남과 북이 아직도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최근 해외동포들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과 같은 제3자적 시각이 민족적 입장에서 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행히도 최근 우리사회의 경우 국력의 축적으로 정치적인 자율성이 확보되면서 기존의 획일화된 반공논리를 비판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고 재소동포들사이에서도 북한지배세력의 논리를 반박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멀지않아 6ㆍ25의 실체에 접근하는 민족적 입장의 해석이 확립되리라 기대합니다. 이럴 때만이 6ㆍ25의 상처를 극복하고 민족의 통일을 이룩하는 길도 열릴 것입니다. ▲도흥렬=최근 우리 대학생들의 이념동향을 조사한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6ㆍ25전쟁은 분단극복의 의지가 표출된 전쟁」으로 보는 수가 점점 적어지는 반면 「반공이데올로기를 분단이념」으로 보는 비율도 높아지는등 최근 우리사회에는 이념의 다원화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젊은세대들의 통일후 체제에 대한 시각도 매우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개방된 논의를 통해 어느 일방의 주장이 아닌 민족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한 통일상의 정립이 시급하다고 생각됩니다. ▲김원일=그러면 6ㆍ25전쟁이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도흥렬=북한은 통일의 수단으로 전쟁을 선택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전쟁은 오히려 통일을 어렵게 했으며 분단을 더욱 심화시키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단호히 거부되어야 합니다. 남과 북의 문제는 대화와 교류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서 해결되어야 하며 6ㆍ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더 이상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도,또 재발해서도 안됩니다. ▲고영복=서로에게 전쟁의 책임을 전가하는 단계는 지났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가 누구이고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하는 문제는 역사적 자료로서 규명해야 할 가치는 있으나 이 문제에만 매달리는 것은 통일을 방해할 뿐입니다. 6ㆍ25를 일으켰고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해 왔던 책임있는 세대는 서서히 사라지는 과정에 있으며 다음세대가 어떻게 앞날을 여는가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경우 피해의식과 전쟁에 대한 공포심이 적지 않았으나 최근 국제정세의 변화와 내적인 성숙으로 전쟁의 재발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가고 있습니다. 역사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6ㆍ25전쟁의 비극을 통일의 초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김원일=우리는 오늘 이 시점까지 극우와 극좌라는 이데올로기에 억눌려 살아왔으나 이제는 이와 같은 극단적 논리는 지양돼야 합니다. 전쟁이나 테러와 같은 수단으로 자신의 주장을 상대에게 강요하려하고 또 강요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의 해악에서 벗어날 때가 됐습니다. 남과 북은 50∼60년대의 냉전시대를 거쳐 72년 7ㆍ4공동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우리의 경우 광주민주화운동,6월 항쟁을 겪으면서 통일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도흥렬=7ㆍ4공동성명은 통일과 남북관계 개선에 역사적인 의미가 컸던 사건이었습니다. 북한은 「자주ㆍ평화ㆍ민족대단결」이라는 이 성명의 3대원칙에 바탕한 통일방안을 내놓으며 이를 일관되게 활용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통일방안에 있어서 뚜렷한 지침은 있었으나 일관성있게 논리를 구축하는 작업을 해오지 않았다고 봅니다. ▲고영복=7ㆍ4공동성명은 6ㆍ25전쟁으로 빚어진 남북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해 보려한 시도로서 비록 형식적이고 잠정적인 합의 도출에 그쳤으나 그 의의가 크다고 봅니다. 남과 북이 7ㆍ4공동성명에 합의했다는 것은 서로의 실체를 인정,대화와 평화의 방법으로 통일을 하겠다는 선언의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80년대 들어서 우리 정부가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에 대응,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마련해 접합점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 합니다. ▲김원일=국민적 합의와 같은 기반조성이 없었다는 점에서 7ㆍ4공동성명은 선언적 의미를 넘지 못했는데 이점이 아쉽습니다. 이 성명 발표 이후 북에서는 김일성우상화 작업이 더욱 가속화됐고 남에서는 유신체제가 들어서는등 체제를 보다 강화하는 길로 나아가지 않았습니까. 문단에서의 경우 70년대까지만 해도 분단문학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드물었으나 80년대 들어 활발한 작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또한 통일논의가 젊은 세대들 사이에 확산되고 다시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자 정부에서도 새로운 통일방안을 내놓은등 남북간의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이시점에서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고영복=동서독의 통일이 가시화되면서 최근 서독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합병식 통일방안이 한반도 통일의 한본보기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북한의 통일에 있어서는 독일식 방안이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2차 대전 후 강대국에 의해 강제분할된 서독과 동독은 그동안 이데올로기의 장벽은 있었으나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전통적 민족의식과 동질성 확보를 위한 민족적 공감대를 계속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통적 동질성이 40년의 분단기간을 통해 극도로 파괴됐으며 극심한 체제경쟁으로 이데올로기가 민족적 동질성 보다 우위를 점하게 됐습니다. 때문에 동질성 회복이 힘든 이 시점에 있어서는 예멘식 통일방안과 같은 것이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남북이 대등한 위치에서 점진적으로 접근,하나의 체제로 화합하는 것이 우리 현실에 맞는 통일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도흥렬=6ㆍ25전쟁은 통일로 가는 길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6ㆍ25란 비극적 체험을 통해 남북에는 상호불신의 골이 깊어졌고 경쟁체제를 강화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통일방안은 이러한 현실적 여건을 고려한 독자적인 방안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독자적통일방안의 전제 조건으로는 다음의 3가지 선결과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남북간에 사실에 기초하고 현실에 바탕을 둔 시각의 재조정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념과 체제유지를 위한 고식적인 틀에서 탈피,있는 그대로의 상호 체제를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 6ㆍ25로 인한 이질화 극복을 위해 남과 북은 각기 통일지향적 사회체제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특히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즉 한민족 한겨레라는 의식을 통해 민족공감대를 확보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통일은 긴 여정속에서 이뤄지는 것인 만큼 남북은 상호접근을 위한 제안ㆍ조치 등을 일관성 있게 계속 추진해야 합니다. 비공식 민간교류의 확대는 통일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원일=민족동질성의 회복이란 말은 쉽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독일은 강제분할을 겪으면서도 상호방문을 허용하고 이데올로기보다는 동질성확보를 우선으로 삼아 통일분위기를 조성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황이 다릅니다. 남에는 6ㆍ25의 원한세대가 적지 않으며북에는 김일성의 세대가 아직도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고영복=남과 북은 서로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기를 바라고 있는데 이같은 정치적인 대립으로는 통일이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현 체제상황에서는 비정치적인 경제ㆍ사회단체의 상호접촉을 이룩하는 것이 선결과제입니다. 또한 각각의 통일방안을 고집하는 것보다 서로의 방안을 폭넓게 수용하는 보다 유연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김원일=민간교류를 수행함에 있어서도 섣불리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금물입니다. ▲고영복=김정일의 권력세습이후 북한내부에 나타날 변화가 우리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으나 이같은 변화가 통일여건을 성숙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속단입니다. 따라서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남북공동의 장을 단계적으로 마련해 나가야 합니다. ▲도흥렬=역사의 흐름은 분명히 있으며 동구변혁의 물결이 한반도에도 미쳐 북한에도 변화가 오리라고 낙관하고 있습니다. 단지 언제 그리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가 관심사 입니다. 북한이 언제 또 어떻게 변화하건 우리부터 성숙한 민주사회를 이룩해 긍정적인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통일은 어려운 목표이지만 서로가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굳건한 신념이 필요합니다.
  • 「내각제 공방」 치열할듯/내일부터 대정부질문… 여야의 전략

    ◎지자제ㆍ보안법 등도 만만찮은 쟁점/“탈냉전 시대” 정치 질서ㆍ가치관 재정립 강조 여/“총체적 난국은 여권의 무능때문” 집중 성토 야 6월 임시국회의 대정부 질문이 25일부터 시작됨에 따라 그동안 소강상태를 보였던 정치권이 활성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13대 후반기 국회의 첫 장을 여는 이번 임시국회에서의 여야 공방은 주요 현안및 쟁점에 대한 여야간의 시각노출 차원을 넘어 향후 정국운용과 대권구도를 보다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여권은 본격적인 「건축작업」에 앞서 3당통합 당시 그렸던 정치설계도의 일부를 정치권과 국민에게 제시,그 파장을 가늠하는 장으로서 이번 국회를 활용하려하고 있다. 반면 야권은 3당통합이래 파상적으로 취해온 공세의 고삐를 바싹 당겨 지자제선거법ㆍ국군조직법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내각제개헌반대 공격과 한데 묶어 처리함으로써 여권에 타격을 가한다는 입장이다. 우선 정치분야에서 여야의 난타전이 예상되는 쟁점은 내각제 개헌과 지자제선거법ㆍ국가보안법 등개혁입법과 광주보상법,이상옥의원및 이문옥감사관의 구속문제,공직자비리 등을 꼽을 수 있다. 여권은 이중 야권의 전면적인 도발이 예상되는 내각제 개헌문제에 대해 국민의 다양한 욕구를 수렴하고 지역ㆍ계층ㆍ세대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한편 남북통일에 대비한 미래 정치체제로써 내각제의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개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야권이 주장하고 있는 이원집정부제나 장기집권음모가 허구에 찬 정치공세란 점도 여론에 호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권의 이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야권은 내각제 개헌문제와 관련,여권내 계파간의 이견과 내각제개헌이 아직 여당의 당론으로 확정되지 않아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설 수 없는 약점등을 비집고 들어가 「3당통합→내각제개헌→장기집권음모」라는 직선적인 도식외에 국군조직법개정,지자제실시연기 등 나머지 주요 현안도 모두 내각제개헌에 연결시켜 초반부터 물고 늘어지자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특히 여권내부에서 한때 논란이 됐던 이원집정부제를 장기집권 음모로 몰아세워 「국민의 의사에 반한」 3당통합이 여권의 주장과는 달리 불순한 저의를 숨기고 있었다고 매도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재의 총체적 난국이 여권의 무능과 지도력부재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진단,야권의 상대적 우월성을 유도하는 한편 이상옥의원 구속사건을 우회적으로 이문옥감사관구속사건과 연계시켜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쪽으로 여론을 몰고갈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은 그러나 한소 정상회담이후 냉전구조의 와해등 국제정세변화에 따른 국내질서및 가치관의 재정립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같은 역사적인 변혁속에서도 구습을 답습하고 있는 야권의 정치행태에 비난의 초점을 맞출 것으로 관측된다. 경제분야의 경우 여야는 현상을 진단하는 시각과 처방은 다를지라도 일단 부동산투기ㆍ물가ㆍ국제수지 적자 등 주요 현안에 대해 강도높게 정부측을 성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은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이 근원적으로 4당체제때의 정치불안에서 기인된 것으로 분석,3당통합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최근의 경기및 국제수지 회복세를 보다 가시화ㆍ가속화할 수 있는 정부의 대응책 강구에 질문의 비중을 두는 반면 야권은 재벌의 과다 비업무용 부동산 소유를 비롯,정부가 추진중인 경제정책의 허구성을 폭로하는데 치중할 것이다. 야권은 특히 물가ㆍ부동산투기,전월세값폭등,농수산물 수입개방등을 집중적으로 성토하고 김상조 전경북지사의 구속사건등 고위공직자의 비리사건을 추궁,여론의 흐름이 여권에 불리하도록 유도해 나갈 것으로 보여진다. 통일ㆍ외교ㆍ안보분야에서는 한소 정상회담등 최근의 북방정책의 가시적인 성과에 초점을 맞춰 여권은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책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반해 야권은 민족문제와 관련된 주요 외교정책의 초당적인 협력이라는 원칙론의 개진과 함께 정부가 추진중인 국군조직법 개정안이 군사력의 집중을 통한 장기집권 시나리오의 일환이라고 비난을 퍼부을 것으로 관측된다. 사회문화분야에서는 여권이 산업평화정착을 위한 공권력의 엄정한 집행과 공직사회의 기강확립을 비롯,민연방송추진을 주요내용으로 한 방송제도개편의 필요성을 정부측에 촉구,정부의 논리를 국민에게 직접 전파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야권은 3당통합이래 정부의 공권력 과잉집행 사례를 적시하는 한편 방송제도 개편을 통해 공영방송체제를 와해시킴으로써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려는 「음모」라고 몰아붙일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이번 임시국회에서의 대정부 질문에서도 국내외 상황의 변화에 상관없이 여야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안에 대한 현격한 시각차를 노출하고 당리당략에 따른 목청만 높일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그럼에도 이번 임시국회는 각종 현안의 정치권 수렴이라는 일반론 외에 지금까지 수면아래에서 단발성으로 공방을 거급하던 내각제 개헌문제가 국회차원에서 공개적으로 논란이 됨에 따라 차기의 정국구도가 보다 가시화 된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하겠다.
  • 자유총연맹ㆍ학술진흥재단 지원금 전경련,회원사서 40억 걷기로

    ◎공휴일수 감축도 정부에 건의 방침 전경련은 20일 이사회를 열고 현행 공휴일수를 줄여주도록 정부에 건의키로 했다. 이사회는 이날 채택한 건의문에서 『우리나라의 공휴일이 외국에 비해 많은 편』이라고 주장하고 공휴일수의 증가가 오히려 생산성을 낮추고 기업의욕을 저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재 기념일로 지정된 식목일 어린이날 현충일 국군의날 한글날등 5일은 법률에 의해 휴일로 지정할 것이 아니라 기념일의 취지를 살려 자율적으로 휴무토록 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이와 함께 한국자유총연맹과 문교부산하 한국학술진흥재단에 각20억원씩 모두 40억원의 경비를 지원키로 하고 이를 회원사를 통해 모금키로 의결했다. 전경련이 지원키로 한 사업경비는 자유총연맹의 경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제도의 우월성에 대한 계몽 ▲국민적 구심점 구축을 위한 사업 ▲관련 학술세미나 개최등이다. 또 학술진흥재단에 대해서는 중국 등 공산권 지역의 재학생 해외연수사업이다. 전경련은 지난해에도 자유총연맹에 30억원,학술진흥재단에 18억7천만원 등을 기부한 바 있는데 체제유지비 성격의 기금을 걷는다고 해서 재계의 반발이 심했었다.
  • “북의 재침위험성 높다” 76%/6ㆍ25 40주년… 국민여론 조사

    ◎조기통일 가능성엔 59%가 부정적/“2∼3년새 대북관념 좋아졌다” 47%/“우리 체제 우월… 북과 논쟁에 자신” 71% 우리 국민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지난 2∼3년전에 비해 좋아지고 있으며 남한체제의 우월성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보처가 6ㆍ25 40주년을 계기로 대륙연구소(이사장 장덕진)에 의뢰,지난달 18일부터 28일까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만 20세 이상 남녀 2천3백명을 대상으로 한 개별 면접형식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47.3%가 지난 2∼3년동안 북한에 대한 느낌이 좋아졌다고 응답한 반면 나빠졌다는 사람은 3.2%에 불과했다. 북한이 우리의 적이 아니라고 한 의견도 44.6%나 돼 주목을 끌고 있다. 북한사람을 만나 남한체제의 우월성을 자신있게 논쟁할 수 있다는 응답자는 71.5%로 나타났으며 28.2%는 자신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를 응답자 배경별로 보면 전쟁 비경험세대(58.8%)에 비해 경험세대(76.9%)에서,그리고 경영ㆍ관리ㆍ전문직(84.1%)에서 자신있다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반면 20대 연령층과 학생층에서 자신이 없다는 응답이 많았다(만 20∼24세 38.1%,만 25∼29세 36%,대학생 39.7%). 또 남북한 통일가능성과 관련,응답자의 59.9%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통일의 가장 큰 장애로는 남북한간의 사상대립(34%),북한의 적화야욕(31.1%),남북한의 이질화(19.7%),국제적 이해대립(12.2%)등을 들었다. 통일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사회적 안정(34.3%)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정치적 민주화(29%)와 경제적 발전(21.9%)도 필수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때 우리 자체의 현재 방위능력에 대해 41.6%가 믿을 수 없다고 응답한 반면 33.3%가 믿을 수 있다고 응답했다. 주한미군의 철수 시기에 대해서는 ▲빠른 시일내의 철수 15.9% ▲우리의 자주국방능력이 완전해질 때까지 계속 주둔 63.6% ▲통일될 때가지 주둔 20.3%의 반응을 보였다. ▷통일◁ 남북한의 통일 후 체제에 대해서는 자본주의(59%),혼합절충 사회(32%),사회주의(8.3%) 순으로 희망했는데 전쟁경험세대와 나이가 많을수록 자본주의를 선호하고 있으며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혼합절충사회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가능성에 대해서는 높다가 22%,낮다가 59.9%,모르겠다가 18%로 나타나 남북통일의 가능성은 높지않게 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통일이 가능하다는 사람일 경우 그 시기에 대해서는 10년이내로 보는 사람이 42.2%로 가장 많았고 20년이내가 23.1%,알 수 없다가 15.8%,20년이후가 10.1%를 차지했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주변 강대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는가에는 필요하다가 62%로 나타났으며 도움이 필요할 경우 바람직한 중재자로는 미국(38.8%),유엔(38%),소련(14.8%)등을 꼽았다. ▷안보◁ 팀스피리트 훈련은 남북대화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중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33.1%가 찬성한 반면 66%는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또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데에는 찬성과 반대가 각각 62.8%와 36.7%를 차지했다. 이와함께 북한의 남침가능성에 대해서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쪽이 23.4%,그렇지 않다는 쪽이 76.2%로 나타나 북한의 남침가능성을 우려하는 응답자가 훨씬 많았다. 특히 분단상황보다는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더라도 통일이 되는 것이 낫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찬성 17.3%,반대 81.7%를 보여 통일지상주의에 대한 경계의 시각이 우세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남북관계◁ 남북관계개선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는 이산가족찾기ㆍ서신왕래 45.7%,남북지도자의 대화 18.7%,문화예술ㆍ스포츠교류 16.2%,경제교류 13.3%를 보였으나 군축ㆍ군사활동 상호감시는 5.8%에 지나지 않았다.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에 대해서는 찬성 87.4%,반대 12%였으며 북한이 동시가입을 방해할 경우 남한만이라도 단독가입해야 한다는 의견은 87.9%였다. 또 남북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 책임에 대해서는 52.6%가 북한단독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남북한 모두에게 있다는 주장도 44.3%나 됐다. 북한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날 것으로 보는 견해는 응답자의 51.7%였다. ▷6ㆍ25 인식◁ 6ㆍ25로 인한 분단에 가장 책임이 있는 나라로 북한이 가장 많이 지적됐으며 (44.2%) 소련(26.6%) 미국(17.6%)남한(4.7%) 순으로 나타났다. 한편 대륙연구소측은 이번 조사결과는 95% 신뢰수준이며 추정치의 최대표본오차 허용한계는 ±2.04%라고 밝혔다.
  • 도덕성과 폭력화의 함수관계/이수성 서울대 법대교수(세평)

    ◎권위ㆍ물질주의가 독버섯 키운다 폭력사건의 증인으로 법원에서 증언을 마치고 나오던 시민이 증언내용에 앙심을 품은 조직폭력배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소식은 세인의 가슴을 전율케 한다. 경찰과 검찰은 이를 공권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현장 가담자와 배후조직의 체포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사건이 주는 충격은 비단 국가의 사법활동의 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했다는 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백주에 법원 앞길에서 공공연히 폭력이 행사될 정도로 조직폭력의 활동영역이 넓어지고 활동수법이 대담ㆍ흉포해졌다는 점이다. 이들 조직이 단순한 범죄조직이 아니라 회사까지 차려 활동을 수행해온 기업형 폭력조직이라는 점에서 놀라움을 더해주고 있다. 거기다 이들이 주로 청부폭력과 이권개입에 관련한 폭력을 널리 자행해 왔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귀중한 인명의 가치를 금전적 이익을 위해 언제든지 희생시킬 자세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향락업소가 폭력 온상 그런데 이번 사건을 저지른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폭력조직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에도 범죄형 조직이 활개를 쳐왔지만 80년대 이후의 폭력조직은 이전과 질량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과거의 폭력조직이 일부 유흥가를 중심으로 한 범죄에 국한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오늘날은 관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을 정도로 그 활동영역이 확장되었다. 특히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80년대에 본격화된 향략산업의 팽창은 조직폭력이 서식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 준 셈이 되었다. 향략산업의 번창은 조직폭력의 물적 토대를 제공했으며 성범죄ㆍ마약범죄와 같은 향락성 범죄를 조장해 온 요인이기도 한 것이다. 조직폭력의 질적ㆍ양적 팽창과 함께 주목할 것은 청소년들이 폭력의 하부성원으로 대거 유입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밀려난 청소년들은 일종의 반발심리로서 폭력집단에 편입되어 적극적인 역할을 추구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청소년들은 도덕적으로 무방비한 상태에서,이들 폭력조직의 가치와 역할을 이상적 모델로 수용하게 되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청소년이 우리 사회의 거울이자 미래의 주역이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다. ○지도층부터 반성해야 현금에 있어서 조직폭력의 범람은 우리사회의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 따른 병리현상의 일환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동안 산업화의 결과로 먹고 살만큼은 되었지만,그 대가로 우리 사회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물량 위주의 성장을 추구하는 가운데 도덕적ㆍ정신적 가치는 급격히 황폐화되었고,상호부조와 양보의 미덕 대신 오로지 경쟁과 승리의 추구만이 전부가 되어 버렸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전 사회적으로 만연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폭력과 물신숭배가 이 사회의 으뜸가는 지배가치로 자리잡았다. 돈이면 무엇이든 살 수 있고,폭력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하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너무나 쉽사리 유린되어 진다. 이 점에서 특히 이제까지의 권위주의적 국가활동에 대한 반성이 요청되어 진다. 역대의 권위주의 정권들은 폭력과 금권의유용성과 우월성을 온 국민앞에 과시해 왔다. 이들은 양심에 입각하여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자의 생활철학을 비웃고,국민의 양식과 인격을 부패시킨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도층의 언행이 어떤 도덕적 힘을 가질 수 없음은 오히려 당연하다. 경제적 지도층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들의 재산은 창조적ㆍ적극적 생산활동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보여지기 보다는,권력과의 유착과 토지투기와 같은 불건전한 수단에 기인된 것으로 인식되어지고있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재산은 건전한 노동의 산물로 자연스럽게 비쳐지지 않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은 결과로 보여지는 경향이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은 있는 자에게는 끝없는 탐욕과 낭비를,없는 자에게는 한과 분노를 유발시켜 오고 있는 것이다. 나쁜 짓을 해서 교도소에 들어간 범죄자의 마음 속에 유전무죄,무전유죄라는 잘못된 법 관념이 일견 타당한 것으로 인식되는 풍토하에서 온전한 법질서는 이미 기대될 수 없다. 폭력과 물신숭배의 사고방식이 팽배한 사회풍토에서,부와 권력의 합리적인 취득절차가 종종 무시되어 온 사회풍토에서 조직폭력은 기세를 더할 수 밖에 없다. 거기다 유흥과 향락적 분위기의 범람,청소년의 인격과 정서를 함양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미비,이러한 요인들은 조직폭력을 위한 여건을 제공하기에 부족한 점이 없다. 물론 이번 사건이 주는 교훈으로 범죄피해자와 증인보호를 위한 제도적 대책 마련도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증인살해사건이 기업형 조직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폭력집단의 범죄양상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면 조직폭력집단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절실한 과제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법질서 강화와 소송절차상의 개선조치로 갈수록 대담ㆍ흉포해져가는 조직폭력을 근절시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더이상 가질 수 없다. 엄형주의의 실험은 그동안의 법집행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 각종 특별형법과 사회보호법상의 가중규정도 모자라 더욱 가중처벌을 기도하는 것은 중세 국가로의 회귀를 주창하는 바와 다를 바 없다. ○사회환경의 정화 시급 위대한형벌학자인 베카리아의 표현대로,국가의 형벌이 잔혹해질 수록 범죄자의 잔혹성은 그에 비례하여 더욱 증폭된 형태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조직폭력과 같은 반사회적ㆍ반인도적 범죄가 서식하기 용이한 사회환경자체를 개선하는 일일 것이다. 여기에는 조직성원들의 철저한 검거와 단속,자금원과 무기의 통제도 포함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지도력의 회복을 위한 자기쇄신의 노력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전반에 만연해 있는 폭력과 물신숭배의 문화풍토를 보다 인간중심적이고 합리적 절차가 존중되는 사회로 가꾸어 가는 공동의 노력일 것이다.
  • 제1부주석직 신설,김정일 입지강화

    ◎내일 최고인민회의… 무엇이 달라질까/경제활성화 겨냥,중국식개혁 추진 확률 높아/고향방문단 교환등 대남평화공세 전개할 듯 북한의 최고주권기관인 최고인민회의의 제9기 제1차 대의원회의가 내일(24일)개막된다. 이번 제1차회의는 향후 4년간의 국가정책의 기본노선을 결정,대내외에 공표한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는 1개월전에 있었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4월22일)를 앞두고 촉발됐던 「김정일의 국가주석직 승계」 여부가 판가름날 뿐아니라 소련 및 동구의 대변혁,한국의 북방정책에 맞서는 북한의 정책적 대안이 제시될 것으로 보여 첫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지도기관선거 결과 및 다음날의 김일성시정연설 내용이 주목된다. 국가권력구조의 개편과 관련,북한문제전문가들은 김정일의 국가주석직승계설은 이미 설득력을 잃었고 이에 따라 김일성의 국가주석 재추대에 이은 제9기 정무원구성이 이뤄질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면서 서철(83ㆍ당검열위원장)과 허정숙(82ㆍ당비서)의 대의원탈락,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인 손성필의 주소대사부임,부주석 임춘추의 사망(88년)등의 요인으로 인해 권력서열의 조정 및 핵심권력층의 보직교체등은 있을 수 있으나 체제적 측면에서의 새로운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석렬교수(외교안보연구원)는 『지난해 11월 김일성의 비밀 중국방문시 북한은 김정일의 후계계승 문제를 중국측에 통보,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고 이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6개월여 앞당기는 등 김정일의 주석직 승계의 가능성이 높았으나 중국공산당총서기 강택민의 북한방문에서 강택민이 시기가 적절치 않다며 이의 유보를 주장했고 북한측도 이를 받아들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교수는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제1부주석직을 신설하거나 임춘추의 사망으로 비어 있는 부주석직을 김정일이 맡도록 함으로써 유사시 국가주석직을 승계토록 대비할 가능성은 높다고 말했다. 전인영교수(서울대)도 『김정일이 당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고 실제 거의 모든 국정을 전횡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주석 자리를 맡느냐 하는 문제는 별 의미가 없지만 형식상이나마 그 직을 차지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은 이번 대회를 계기로 경제활성화를 주도할 수있는 테크노크라트출신 관료의 기용폭을 넓히는 동시에 올해들어 강조해온 관료주의의 폐단을 없애고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일부 권력층의 자리바꿈 정도는 시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김일성의 시정연설을 통해 발표될 북한의 기본정책과 관련,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이 최근 사회주의체제의 우월성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주체노선의 고수를 거듭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외견상 큰 변화는 없겠지만 대외정책에서 보다 유연한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인영교수는 『노령과 병고로 인해 자연도태된 서철과 허정숙을 제외하고 북한의 중심권력층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은 기존정책 역시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전제하면서 북한의 현재 1차적 관심은 대미ㆍ대일관계개선이나 대남교류가 아닌 한­소수교의 지연에 있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획기적인 대외정책이나 대남정책 등이 발표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신정현교수(경희대)는 『북한이 현재 제3차 7개년경제계획(87∼93년)을 오는 92년까지 마무리한다는 방침과 경제활성화라는 당면과제를 위해서라도 중국식 모델의 경제개혁이나 대외개방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회의에서 비록 헌법상ㆍ문구상 그 내용을 명문화하지 않는다 해도 경제특구의 설치방안이나 대외합작의 활성화 방안,부분적인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도입등의 정책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소련ㆍ중국 등 주변 강대국들이 남북간의 직접대화를 강조하고 있는 국제정세로 인해 최근의 경직화된 대남정책에서 벗어나 평화공세를 적극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유석렬교수는 『전병호ㆍ홍성남ㆍ강성산 등 경제관료들의 부상은 실리를 앞세운 대외경제교류의 추진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현재의 대남강경방침도 오래 지속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오는 8월15일 광복 45주년을 계기로 한 예술단이나 고향방문단교환 등 평화공세적 측면의 제의들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산업현장/새 관광명소 등장 연2천만명 견학

    ◎「한강의 기적」 확인… 신청방법ㆍ인기코스 가이드/방문 3일전 서면으로,원전은 7일전에/“선진의 견인차”… 제철ㆍ전자공장 많이 찾아/북방정책 여파… 공산국교포ㆍ동구권바이어도 잦은 발길 산업현장이 생산공장으로서의 기능만을 하고 있지는 않다. 경제성장과 비례해 경제에 대한 인식도가 높아지면서 산업현장이 일반국민들에게 경제를 배우는 현장으로서,또는 어느 관광지 못지않은 훌륭한 흥미를 줌으로써 인기는 모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같은 현장경험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 경제의 발전상과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게 됐을 것이다. 지금까지 산업현장을 돌아본 사람들은 얼추 전국민의 절반인 2천만명을 넘어섰다. 이중 외국인도 2%가량을 차지,신장된 국력을 실감케 한다. 쇳물을 녹이는 용광로와 거대한 선박에서 우리 경제의 용틀임을 확인하고 반도체칩 등 첨단기술에서 밝은 미래를 떠올리며 선조 때부터 사용해온 농기구와 소떼들의 울음소리에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산업시찰의 객체가 되는 기업들은 경제발전의 견인차임을 자부하며 전담부서와 인원을 두고 산업시찰을 통해 대국민 이미지를 높이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최근 경제위기론이 무성하고 근로의욕이 눈에 띄게 떨어지는 가운데 기간산업 등에 대한 산업시찰이 새삼 국내 경제의 현주소를 확인해주는 교육장으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기간산업◁ 국내중추산업으로 원자력발전ㆍ철강ㆍ조선ㆍ석탄ㆍ자동차ㆍ전자 등 다양하다. 업체별로는 현대중공업에 9백만명 이상이 다녀가 최고로 인기있는 시찰현장으로 꼽히고 있다. 이밖에도 연 10만명 안팎의 시찰단이 방문,꿈틀거리는 경제의 숨결을 느끼게하는 업체도 10여개가 넘는다. 방문객은 50만명안팎의 단체관람이 주를 이루는데 늦어도 3일전에 방문신청을 하면 회사측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회사측은 국내경제 및 회사현황과 특성을 소개하는 비디오를 보여주며 방문객들에게 간단한 기념품을 선물하거나 점심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포철,70년에 첫 개방 산업시찰코스로 가장 먼저 개방된 업체는 지난 70년 포항제철. 당시 경제성장의 실상을 국민에게 알릴 필요성이 높아진데다 포철이 자동차ㆍ선박 등 전업종에 걸쳐 연관효과가 크기 때문이었다. 지난 20년동안 포철에는 연평균 33만명에 해당하는 7백70여만명(9만4천여건)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이중 전체의 2%가량인 15만명이 외국인으로 세계 제철업계에서 성공사례로 회자되는 포철의 신화를 실감케 해준다. 포철의 방문객수는 지난 70년 2천명에 그쳤으나 지난해는 3백배가 늘어난 61만명에 달했다. 또 81년 2백70명이 다녀간 광양제철소에는 지난해 7백배 이상이 증가한 20만명이 방문,시찰했다. 방문객중에는 학생이 전체의 68%로 자라는 세대들이 산업시찰을 통해 우리 경제 수준과 발전상을 보고 배우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 직장ㆍ단체 등의 일반인이 22%를 차지하고 있으며 「제철왕국」을 찾는 외국인의 발걸음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방문건당 평균 82명씩인 단체방문객들은 먼저 포항ㆍ광양제철소의 2백70만,4백50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에 압도당한다. 방문객들은 철광석을 녹여 선철상태의 쇳물을 생산하는 제선설비공장과 쇳물을 강철로 정련하는 제강설비공장,강철에 열을가해 눌러서 최종제품을 만드는 압연설비공장으로 안내된다. 시찰단이 가장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압연공장에서 중간소재를 1천3백°C로 가열해 압연하는 장면. 이때 관람객들은 대부분 탄성과 함께 「포철이 우리나라의 기업」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 회사관계자의 설명이다. 공장견학은 제한없이 누구에게나 개방되고 있으며 각사 홍보부나 총무부에 10일전 신청하면 된다. 울산 현대중공업은 지난 73년 개방된 이후 지금까지 가장 많은 9백21만명이 다녀갔다. 세계에서 조선 2위국으로 꼽히는 것처럼 외국인의 발걸음도 20만명을 넘어섰다. 회사측은 방문객에 대해 영어ㆍ일어ㆍ소련어ㆍ중국어 등 9개 언어로 사업내용과 그룹현황을 소개하는 영화를 보여주고 모형전시관을 상시운영,홍보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3일전에 서면을 통해 의전실로 방문신청을 하면 된다. 견학코스는 플랜트공장→해양공장→의장안벽→선체건조도크→엔진공장의 순이다. 또 최근 계속된 이 회사의 노사분규에 대해 알고 있는 방문객들은 시찰중 직접 근로자들을 찾아가 『산업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노사간의 양보가 필요하다』며 즉석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현대중공업과 이웃한 현대자동차는 최근 중공업과 연계시찰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현대중 9백만 시찰 지난해 6만2천명이 다녀갔다. 방문객들은 자동화율 80%를 자랑하는 차체공장에서 로봇이 각부품을 용접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테크노피아시대의 꿈을 확인한다. 자동차공장은 작업에 지장을 주지않기 위해 유치원생ㆍ사설학원 등의 단체와 2백명이상의 단체객에 대해서는 방문을 사절한다. 「제3의 불」을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소는 대체에너지개발과 관련해 단골시찰코스로 꼽힌다. 다만 발전소가 국가보안시설인 만큼 신원확인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한달전에 한국전력인사처연수부에 신청을 해야한다. 고리ㆍ영광ㆍ울진ㆍ월성에서 가동중인 9기의 발전설비시찰에 지난 84년이후 6만2천명이 다녀갔다. 이밖에 정보화사회를 이끌어갈 컴퓨터ㆍ반도체 등 첨단기술개발에 한창인 가전사의 전자공장도 인기가 높다. 삼성 금성 현대 대우 등 대재벌은 가전제품이 소비자생활과 밀접,사세확장에 관건이 되고 있다고 판단해 저마다 사운을 걸고 산업시찰유치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특히 최근 북방정책과 해외동포,바이어들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이곳이 국내산업수준을 가늠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중요한 척도로 등장하면서 각사의 홍보전이 불을 뿜고 있다. 삼성 금성사에는 연평균 10만여명씩이 찾고 있다. 삼성의 경우 주요 고객인 주부층을 겨냥,여름철에는 자사버스를 이용해 직접 서울에서 수원까지 교통편을 제공하고 있으며 견학뒤에는 공장인근의 수영장을 무료 이용토록하는 서비스를 베풀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 ▷식품산업◁ 소비자들의 다양한 기호에 부응,판매전략 차원에서 각사가 전력투구중. 삼양식품의 대관령목장은 관광과 함께 라면ㆍ우유ㆍ치즈 등의 기초원료 생산과정과 완제품 생산에 이르는 전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어 갈수록 인기. 해발 8백50∼1천4백m에 위치한 대관령목장은 여의도의 7.5배(6백만평)에 달하는 광활한 부지에 젖소들이 뛰노는 목가적 풍경이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삼양측은 소비자상담실에서 수시로 소비자들의 접수를 받아 순서에 따라 매년 6월부터 10월까지 5개월동안 1박2일간의 견학을 실시,연 2만명이 다녀간다. 여기에는 1인당 2만원 가량의 경비가 소요되나 회사측이 전적으로 부담하고 있다. ○연 10만 넘는 곳 10곳 젖소 1천5백두,비육우 5백두,닭 7천수를 사육하는 이 목장에서는 연간 소 1천두,닭 24만수,우유 5천t,계란 2백만개,목초 22만t이 생산된다. 방문객들은 주로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의 모습과 우유짜는 방법,사일로에 목초를 저장하는 과정 등에서 원시성을 느끼고 있다. 특히 30,40대의 주부들은 너나 가릴 것 없이 푸른 초지에 뒹굴며 동심으로 되돌아 가기도 한다. 이들은 또 『이곳에서 살고 싶다』『다시 오고 싶다』고 조르는 경우가 많아 관계자들이 애를 먹기도 한다. 또한 회사측이 베푸는 야간 레크리에이션과 산 정상으로 떠오르는 해돋이에 「별유천지」의 신비감을 맛보기도 한다. 소비자의 기호가 다양해 지면서 음료수ㆍ술공장을 찾는 발걸음도 늘고 있다. ▷기타◁ 농촌진흥청의 농업과학관은 최신 농업기술습득을 위해 농민ㆍ학생 외국의 농업기술연수자 등이 단골로 찾는 전문 교육장. 지난 83년 1백53명 규모로 문을 연 이곳에는 농업기상과 토양을 비롯,유전공학을 이용한 신품종 등 9개분야의 실물표본ㆍ사진 등 6백여점이 전시돼 있다. 연3만명이 다녀간다. 트랙터ㆍ콤바인 등 국산 농기구와 디딜방아ㆍ가래 등 전통 농기구 3백여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방문객중 젊은 농축가들은 쌀생산이 적정수요를 넘어섬에 따라 소득이 높은 원예특용작물과 축산기술에 높은 관심을 나타낸다. 최근에는 유전공학을 이용해 만든 씨알감자,소의 수정란 이식기술,마늘의 무병종자생산기술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늘어 겸업농화 해가는 농촌의 일면을 반영해주고 있다. 지난 87년11월 개장한 농협중앙회의 농업박물관도 학생들이 단골로 찾는 명소이다. 연건평 1천평 규모의 3층 건물에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의 유뮬 1천6백여점이 전시돼 있다. 농가월령가실에는 매달의 농사일정에 따라 필요한 농기구ㆍ가축ㆍ곡물을 재현해 놓았으며 원시무문토기ㆍ신라의 쇠스랑ㆍ고구려의 화덕이 선조들의 슬기를 되새기게 한다. 성인들은 고대농업실에 전시된 농사기술과 농기구 등에 높은 관심을 갖는 반면 학생들은 현대농업실을 찾는 발걸음이 많아 좋은 대조를 이룬다. 한편 주식투자인구가 8백만명을 넘어서면서 한국증권거래소 방문객도 점차 증가추세. 주식시세에 따라 방문객수도 차이를 보여 호황이던 87ㆍ88년에는 3만명이 다녀갔으나 불황에 빠진 지난해부터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방문객들은 주식투자 요령에 대한 설명에 귀를 귀울이면서도 『수익이 보장되는 확실한 투자방법을 가르쳐달라』고 떼를 써 관계자가 진땀을 흘리기도 한다.
  • 북한,남북적대화ㆍ금강산개발 거부 안팎

    ◎“개방바람 문단속”… 체제유지 고육책/인적ㆍ물적교류 상당기간 단절될 듯/남북직접대화 기피,대미접촉은 계속 전망 북한이 16일 현대그룹측과의 금강산공동개발계획을 무효화한 데 이어 17일 우리측이 제의한 제11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의 재개마저 거부함으로써 앞으로 상당기간 남북대화는 물론 남북간 인적ㆍ물적 교류협상이 깊은 동안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같은 움직임은 지난 7일 안병수 조평통서기국장이 콘크리트장벽 철거와 남북정치협상회의개최 등을 요구하면서 홍성철통일원장관 앞으로 보낸 대남전화통지문에서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또 지난 14일에는 남북고위급예비회담 북한측단장인 백남준이 역시 전통문을 통해 우리측이 오는 22일 재개하자고 제의한 제7차예비회담과 관련,『가급적 빨리 결정해 날짜를 통보하겠다』는 명분은 내세웠지만 대화재개 거부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특히 최근 북측이 보낸 서한이나 전통문은 대부분 우리측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등 남북간의 실질적인 관계진전을 바라는우리측 요구에 냉담한 반응을 보여왔다. 당초 팀스피리트훈련이 끝나고 나서 얼마되지 않아 대화를 재개하던 과거의 관행으로 볼 때 북측의 이같은 태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 남북관계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만큼 북측은 우리측이 예상치 못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또 지난달 22일 제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대대적으로 치른 북한이 『우리식대로 살아가자』는 입장을 더욱 확고히 하면서 내부체제를 일단 공고히 다지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한마디로 북한은 초보적인 경제교류와 인도적인 이산가족 상호방문사업마저도 남쪽의 「개방바람」이 몰고올 체제위기를 깊이 인식,당분간 접촉과 교류를 중단하면서 집안단속을 철저히 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금강산공동개발은 관광자원개발로 북한의 바닥난 달러수요를 충족시키는 데다 개발지역이 금강산 일대로 제한돼 주민들과의 접촉을 피할 수 있어 북측으로서도 간절히 원하던 사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은 이같은 경제적 실익보다는 체제안정이 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아래 금강산개발계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 북측은 이날 전통문에서 적십자 본회담재개에 대해서도 「선고향방문단교환 후본회담재개」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으나 고향방문단 논의를 위한 실무접촉도 이른바 혁명가극인 「꽃파는 처녀」「피바다」등의 남한내 공연을 수용할 때만 응하겠다는 더욱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이는 남북간에 실무접촉을 갖고 여기서 혁명가극공연등 제반문제를 논의하자는 종전 입장에서 크게 후퇴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적십자본회담개최의 전제조건으로 우리측의 거부가 분명한 혁명가극 공연을 천명한 셈이다. 통일원의 한 당국자는 이에대해 『우리측이 꽃파는 처녀 등의 공연을 허용할 수 없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는만큼 이같은 사정을 익히 알고 있는 북한이 계속 이를 고집한다면 남북대화는 상당기간 경색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더욱이 북한은 『남북한 사이에는 자유왕래와 전면개방을 실현하는 데는 많은 난제가 있다』고 거듭 밝힘으로써 설령 우리측이 혁명가극 공연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들이 주장하는 콘크리트장벽철거와 국가보안법철폐 등을 들고나와 남북대화의 또 다른 장벽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에 이같이 경색된 자세를 보이고 있는 북한이 유독 대미유화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앞으로 남북간의 직접대화는 기피하면서 휴전 당사자인 미국과의 접촉은 계속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남북고위급예비회담ㆍ적십자본회담ㆍ국회회담 준비접촉 등 기존 남북대화의 재개는 북측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상당히 늦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갑작스런 평양의 경직화 전문가들의 진단/공개ㆍ공식교류땐 체제 허구성 노출 우려/한국정세 오판,반정부세력 선동 목적도 북한이 지난 16일 현대그룹과 체결했던 금강산공동개발 합작계약의무효화를 선언한 것은 당분간 대남관계를 진전시킬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폴이된다. 특히 이번 조치는 한필성씨에 대한 입북거부와 북한조국평화통일위원회 안병수 서기국장의 남북대화중단선언 등 일련의 움직임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국제적인 개혁ㆍ개방화의 추세 앞에 체제유지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북한이 남북교류의 물꼬가 터질 경우 초래될 수 있는 「부작용」을 신중하게 고려,남북관계 개선의 속도와 그 형태를 북한의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조절하겠다는 의사표시로 분석된다. 또 북한은 외국 언론에까지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공개적인 남북경제교류가 결과적으로 개방물결의 유입을 가져올 뿐 아니라 이제까지 선전해 온 북한체제 우월성의 허구를 만천하에 입증할 것이라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합작계약의 무효화 선언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북한문제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북한문제전문가들은 특히 한국의 최근 정세와 관련,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남조선혁명」의 분위기가 성숙해 가고 있다는 섣부른 판단을 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번 조치는 한국의 국내정치적 불안에 호응,한국사회내의 반체제세력을 선동해 한국사회의 붕괴를 꾀하려는 대남전략의 하나로해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흥렬교수(충북대)는 『북한은 한국이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을 경우 대화에 응하다가도 정세가 조금만 불안해지면 어느때건 중단시켜 왔음을 상기할 때 이 시점에서 한국내의 반체제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 같다』며 북한은 앞으로도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경제교류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창순씨(북한문제연구소이사장)는 북한이 남북간의 긴장완화를 요구하는 국제적인 압력에 밀려 금강산의 공동개발을 약속했으나 최근 한국 정세가 극도로 불안정하다는 그들 나름대로의 분석에 따라 경제교류 등 모든 남북교류를 중단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현대의 대북접촉이 한국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식적인 북방정책의 하나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따라서 한국의 북방정책에 맞장구 칠 수 없다는 것도 북한이 이번 조치를 취하게 된 사정이라고 설명했다. 유석렬교수(외교안보연구원)는 『최근 한국내에서 표적이 되고 있는 재벌그룹,특히잦은 노사분규를 겪고 있는 현대그룹과의 합작이나 대내외에 공개된 건설장비의 무상공여 등은 북한이 내외적인 명분상 수용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북한은 남북간의 긴장고조를 통해 한국내에 불안을 조성하고 동시에 급진전되고 있는 한소관계 개선에 불만을 표시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정용석교수(단국대)는 『북한이 지난 4월 있었던 최고인민회의 선거를 계기로 외부의 개혁ㆍ개방압력에 대응해 미국등 서방과의 관계를 표면적으로 개선하는 듯한 조치를 취하면서도 한국과의 관계는 강경노선으로 선회한다는 방침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이번 조치 역시 김일성 유일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적화통일전선이라는 기존의 대남전략을 고수한다는 입장을 국내외에 재확인해 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주체적 사회주의 노선 고수”재천명/김일성,대인민 공한의 함축

    ◎섣부른 권력이양 “체제붕괴”인식/동구변화대응,유일체제 고삐죌듯 북한의 중앙방송이 19일 인용보도한 「김일성의 대인민공개서한」은 한마디로 최고인민회의 제9기 대의원선거 (22일)를 앞두고 김일성이 후계자 김정일에게 국가주석직을 당분간 승계하지 않겠다는 것과 그가 이제까지 고수해온 주체적 사회주의노선을 고수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직접 밝혔다는점에서 향후 북한의 정책노선을 가늠해 볼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은 이 서한에서 「앞으로도」 사회주의 위업달성을 위해 헌신함으로써 인민들의 기대에 보답할 것이라고 선언,이번 대의원선거이후 5월중 소집될것으로 보이는 제9기최고인민회의 대의원대회에서 국가주석직을 김정일에게 승계하지 않을 뿐아니라 오는 92년으로 예상되는 제7차 노동당전당대회에서도 당총비서직을 김정일에게 물려주지 않을 것임을 강력히 시사,김일성이 죽을때까지는 북한의 권력체제가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했다. 북한문제전문가들은 『김일성의 이같은 공개적인 입장표명은 소련과 동구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개방압력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하는 문제에 대한 확고한 입장이 내부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권력이양이나 섣부른 개혁및 대외개방조치가 오히려 북한체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김정일이 이번 9기대의원선거를 계기로 국가주석직을 승계,보다 적극적인 개방ㆍ개혁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는 일부의 희망적인 예측은 북한의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서 온 것임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전인영교수(서울대ㆍ북한학)는 『일부에서 이번 대의원선거를 앞두고 김일성의 주석직승계설을 주장해왔으나 현재 소련의 경우 대통령직을 신설,고르바초프가 서기장에서 대통령으로 옮겨가면서 그 권한을 보다 강화했음을 상기할 때 지금과 같은 중요한 시기에 김일성이 국가주석직을 김정일에게 넘겨 주리라고 본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번 대의원선거가 6개월 앞당겨 실시되는 것은 김일성이 소련과 동구권국가들의 급격한 변화에대응,유일 지배체제를 보다 강화해 독자적인 사회주의노선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했던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양및 대김일성충성심 강화의 수단이었음을 입증했다. 또 『이번 대의원선거가 주체사상을 구현하고 있는 우리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힘있게 과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김일성의 발언은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의 개혁조치가 「사상의 빈곤」 「제국주의자들의 선동」등에 기인한다고 보는 기존의 인식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폐쇄적 자립주의의 노선이야말로 그들이 현재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며 이를 끝까지 고수해 나가겠다는 뜻을 재확인한 것으로 볼수 있다. 따라서 이제까지 예상되던 대의원선거후의 형식적인 다당제채택이나 권력구조의 개편등 부분적인 헌법개정 등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