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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시각] 노 대통령의 흑묘백묘론/한종태 정치부장

    그제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노동당 의원단의 청와대 만찬에서 노 대통령은 몇가지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우선 성장이냐,분배냐의 논쟁에 관해서다.노 대통령은 시장친화적 방법 등을 거론하면서 분배에 앞서 경제활성화에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더이상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적 구도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이른바 ‘실용주의’로 해석이 가능하다. 최근의 경제상황은 ‘난국’인 것만은 분명하다.일각에서는 “경제가 위기는 아니더라도 경기는 위기다.”라고 할 정도다.그런 만큼 집권자의 경제 현실인식이 어느 때보다 중요했던 터다. 또 다른 쟁점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한발 더 나아간 느낌이다.“노동운동이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하고 있느냐.”는 발언에서는 노동계와 일정부분 선을 긋겠다는 의지마저 느껴졌다.덧붙여 비정규직과 민주노총은 상관이 없다고도 했다.만찬장에서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의 단병호 의원이 상당히 불편해 했을 법하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문제에 이르러서는 보다 분명한 모습을 드러낸 것 같다.“원가공개가 왜 개혁적인 것인가.원가공개는 개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10배 남는 장사도 있고,10배 밑지는 장사도 있고…시장을 인정한다면 원가공개는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내수 진작에 상당한 체중을 싣고 있는 마당에 분양원가를 공개하게 되면 그나마 근근이 이어오고 있는 경기가 아예 회복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오락가락 혼선 끝에 원가공개 당론을 정한 열린우리당을 직접적으로 겨냥해 질타한 것도 눈길을 끈다.국회 과반의석을 가진 여당이면 거기에 걸맞게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 개발에 몰두해야지 이념적 대결에만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로 보인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실용주의’로 분명하게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얘기하면 최근 일련의 행보는 그런 쪽에 가깝다.현실진단과 인식이 그전과는 다른 뉘앙스여서다. 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열린우리당 당선자 전원에게 ‘노동의 미래’란 책을 선물로 나눠준 것도 단초를 제공한다.이 책의 저자 앤서니 기든스는 좌우 이념대결의 시대는 끝났으니 실용주의 정책의 시대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노 대통령이 여당 의원 전원에게 나눠줄 정도면 그만큼 가슴 속에 새겨둘 얘기가 많다는 것이고,향후 국정운영의 큰 틀이 될 것이란 예단을 갖게 한다. 필자가 최근 만난 여권의 관계자들도 노 대통령의 ‘변신’을 전해주고 있다.“시끄럽게 떠드는 게 중요하지 않고,하나둘씩 법을 만들고 제도를 고쳐 나가는 게 중요하다.”거나 “당장의 현안들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여당의 당권이나 당직 등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겠지만 정책이나 노선은 적극 언급하겠다는 발언도 여권의 아이덴티티를 실용주의로 이끌고 가려는 것으로 읽혀진다. 필자는 노 대통령의 이같은 변화를 긍정 평가한다.집권 2기를 흔들림없이 ‘실용주의’로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더이상 말로 떠들 게 아니라,작은 것이라도 실천에 옮기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이라크 파병문제에 관한 노 대통령의 언급은 실용주의로 한발짝 더 다가서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현재 한·미관계에서 미국과 등지고 사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동북아관계가 변해도 미국과의 관계는 여전히 의존적인 면을 띨 수밖에 없다.” 한종태 정치부장 jtham@seoul.co.kr˝
  • 盧대통령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반대”

    盧대통령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반대”

    노무현 대통령은 9일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개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시장을 인정한다면 원가 공개는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민주노동당 지도부 및 의원단과 만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고 “이것(원가공개 반대)은 경제계나 건설업계의 압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소신”이라고 강조했다고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노 대통령이 ‘개혁 후퇴’ 논란의 상징처럼 비쳐지고 있는 원가공개 문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노 대통령은 “분양원가 공개는 개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전제,“열린우리당이 미처 대통령의 소신을 확인하지 않고 공약했다가 차질이 생겼으니 이를 개혁후퇴의 상징처럼 보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내용의 옳고 그름은 앞으로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부유세 신설에 대해서도 “부유세 같은 것을 하려다가 저항에 부닥치면 진짜로 해야 할 개혁을 못할 수도 있다.”고 반대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라크 추가 파병 논란에 대해 “파병은 한·미동맹의 현실과 미래 등 이런저런 것을 다 고려해 고심한 끝에 결정한 것이며 국제사회 여론과 주둔부대 안전성까지 검토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분배를 잘 하기 위해서는 시장 친화적인 방법을 써야 하는 것이지 법적 규제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면서 “경제활성화가 되면 세금이 더 많이 걷히게 될 텐데 그것을 통해 분배를 이뤄 나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투기를 규제하면 건설경기가 1조원 가라앉고 2만명 실업이 예상되지만,2만명을 구제하기 위해 부동산투기를 용납할 수는 없다.”며 “실업부문은 다른 쪽에서 수용하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고,부동산투기는 기필코 막아내겠다.”며 부동산투기 억제 정책을 유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노 대통령은 노동시장 유연화 및 비정규직 대책과 관련,“파견법(개정)을 가지고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된다면 하겠지만,해결책이 아니다.”면서 “노동운동이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해야 되는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과연 그러하냐.”고 반문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盧대통령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반대”

    노무현 대통령은 9일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개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시장을 인정한다면 원가 공개는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민주노동당 지도부 및 의원단과 만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고 “이것(원가공개 반대)은 경제계나 건설업계의 압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소신”이라고 강조했다고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노 대통령이 ‘개혁 후퇴’ 논란의 상징처럼 비쳐지고 있는 원가공개 문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노 대통령은 “분양원가 공개는 개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전제,“열린우리당이 미처 대통령의 소신을 확인하지 않고 공약했다가 차질이 생겼으니 이를 개혁후퇴의 상징처럼 보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내용의 옳고 그름은 앞으로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부유세 신설에 대해서도 “부유세 같은 것을 하려다가 저항에 부닥치면 진짜로 해야 할 개혁을 못할 수도 있다.”고 반대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라크 추가 파병 논란에 대해 “파병은 한·미동맹의 현실과 미래 등 이런저런 것을 다 고려해 고심한 끝에 결정한 것이며 국제사회 여론과 주둔부대 안전성까지 검토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분배를 잘 하기 위해서는 시장 친화적인 방법을 써야 하는 것이지 법적 규제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면서 “경제활성화가 되면 세금이 더 많이 걷히게 될 텐데 그것을 통해 분배를 이뤄 나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투기를 규제하면 건설경기가 1조원 가라앉고 2만명 실업이 예상되지만,2만명을 구제하기 위해 부동산투기를 용납할 수는 없다.”며 “실업부문은 다른 쪽에서 수용하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고,부동산투기는 기필코 막아내겠다.”며 부동산투기 억제 정책을 유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노 대통령은 노동시장 유연화 및 비정규직 대책과 관련,“파견법(개정)을 가지고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된다면 하겠지만,해결책이 아니다.”면서 “노동운동이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해야 되는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과연 그러하냐.”고 반문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울진 5.2 사상최대 강진… 건물 내진설계 기준 강화해야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경북 울진에서 기상청이 관측을 시작한 이후 최대 규모의 강진이 발생했다.전문가들은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닌 만큼 구조물의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9일 오후 7시14분쯤 경상북도 울진 동쪽 80㎞ 해역인 위도 36.8도,경도 130.2도 지점에서 리히터 규모 5.2의 지진이 일어났다.또한 30일에도 오전 4시45분쯤 울진 남동쪽 70㎞ 해역에서 리히터 규모 2.0의 여진에 이어,오후 9시45분쯤 울진 북서쪽 10㎞ 해역인 위도 37도,경도 129.3도 지점에서도 리히터 규모 2.2의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청은 “1978년 속리산에서도 진도 5.2가 기록됐지만,그동안 측정기술의 발달을 감안하면 이번 지진이 사실상 남한지역에서 일어난 가장 큰 규모”라고 말했다.한반도 전체로는 1980년 북한 평북 의주에서 기록된 5.3이 가장 강한 것이다. 이날 지진으로 경상도 일대에서 건물이 흔들리는 정도의 진동이 있었으며,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전국적으로 진동이 감지됐다고 기상청은 밝혔다.기상청과 언론사에는 위험을 느낀 시민들의 문의전화가 쏟아지기도 했다. 한국전력은 진앙에서 가까운 동해안의 울진·월성·고리 원전은 리히터 규모 6.5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정상가동에 문제가 없지만,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주요 안전 관련 설비를 점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체계적인 방진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기상청 지진담당관실 장익순 사무관은 “우리나라의 내진 설계 기준은 일본 등 지진 다발국에 미치지 못한다.”면서 “이번 정도의 지진이라도 산자락에 지은 고층아파트 밀집지역에서 일어난다면 대규모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채수범기자 lokavid@˝
  • [28일 TV 하이라이트]

    ●귀여운 여인(오후 8시20분) 재하와의 결혼 축하 파티장에서 마냥 즐거워하는 금례.향숙까지 축복의 말을 건네며 어떤 선물을 받고 싶냐고 묻자 진심으로 행복해한다.한편 소연이 대웅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유진은 대웅이 정시에 재하의 파티장에 나타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라이프n조이(오전 8시25분) 스키장 가운데 봄철을 맞아 용도전환을 시도하여 ‘레포츠 파크’로 새롭게 태어난 곳들을 찾아본다.공중을 나는 쾌감을 선사하는 플라잉 폭스,상쾌한 스피드를 즐길 수 있는 ATV(4륜 오토바이),야외 온천 등 자연 속에서 싱그러운 에너지를 충전시킬 수 있는 스키장의 이색 변신들을 들여다본다. ●일과 사람들(오후 8시20분) ‘생생 직업속으로’코너에서는 도서관 사서직에 대해 알아본다.국립중앙도서관의 정보봉사실,사회과학실,납본과 등의 업무를 들여다보고 어린이 도서관에서 하는 일도 함께 알아본다.인천항만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현재 인천 남항에서 크레인을 운전하고 있는 한월성씨의 업무 모습도 엿본다. ●TV 요리천국(오전 9시20분) 현대인의 무서운 성인병 당뇨를 앓고 있는 환자가 점점 늘어 한국의 성인 30명 중 한 명이 당뇨병 환자라고 한다.최근 들어서는 소아 발병이 늘고 있어 심각하다.한의사 편주리씨로부터 당뇨병에 좋은 식이요법과 예방·치료법을 듣고 당뇨환자에게 좋은 요리와 한방차 만드는 법을 배운다. ●여자플러스(오전 11시10분)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교육비를 줄이고 자녀를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엄마들의 똑똑한 자녀교육법이 눈길을 끌고 있다.유아교육 품앗이를 실천하고 있는 엄마들의 특별 교육법과 아이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게 하는 노하우,아이 특성에 맞는 공부법 등에 대해 알아본다. ●윤도현의 러브레터(밤 12시10분) 상큼 발랄한 모던 록,깊은 밤에 어울리는 R&B와 색소폰의 만남.실력있는 신인의 무대와,요즘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젊은 그룹을 함께 만나본다.신예 트리오 SG워너비,밴드 BUZZ,색소폰 연주자 대니정,R&B디바 ANN,신인가수 Mr.JUN과 함께한다. ●찔레꽃(오전 8시5분) 술에 취한 채 잠들었던 민규는 새벽녘에 깨어나 준서에게 유경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이임을 밝힌다.수옥이 이를 듣고 놀란다.유경은 명욱뿐 아니라 성희의 말조차도 믿을 수가 없다며 명욱에게 결혼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를 말해달라고 한다.한편 샤리의 노래교실로 테이프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
  • [시론] 플라톤과 공자/황필홍 단국대 교수·명예논설위원

    2300년 전 플라톤의 대화편 유티프로(Euthyphro)에는 동료를 살해한 하인을 죽인 아버지를 아들이 고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정직한 사변가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유티프로는 자기 아버지를 고발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리라는 소크라테스의 염려에도,그리고 아들이 아버지를 살인범으로 고발하는 것은 불경스럽다고 실제로 자신의 친지들이 비난하지만,정의의 이름으로 아버지를 법의 심판대에 서게 하겠다는 것이다. 2500년 전 공자의 논어(論語)에도 유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양을 한 마리 훔친 아버지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심기가 곧기로 소문 난 궁(躬)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섭공(葉公)이 묻자,공자는 아버지는 아들의 죄를 덮고 아들은 아버지를 덮어주는 데에 되레 정직이 있다고 응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위 두 경우에서 플라톤(여기서는 그의 대변자인 소크라테스)과 공자는 다같이 정직함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아이러니를 다루고 있는데,비록 플라톤은 사회정의라는 명분으로 고발을 수용하고 공자는 부모에의 공경 즉 효도라는 명분으로 증언을 반대하지만,그들은 유티프로나 궁의 행동이 만사를 고려하여 부적절하다는 데에는 적어도 공감하고 있다. 두 가지를 생각해 보자.첫째,미학의 차이다.플라톤과 공자 모두 공경과 관련해 정직함이라는 단어가 갖는 이중성에,말하자면 정직의 외양과 그 외양이 내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경과의 모순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보다 정확히 말하자면,정직에 관한 외양적 현상적 지각 뒤편에는 그 지각에 상반되거나 모순되는 인간에게 요청되는 내적 질서나 규범이 있다는 데 플라톤과 공자 공히 동의하고 있으며 또 그 상반의 갈등 탓으로 다들 고민한 흔적이 있다. 그러나 결국 플라톤은 공경의 부차적인 도덕성보다는 전면에 압도하는 대의명분 즉 정의에 경도돼 공경의 미학을 거부하며,한편 공자는 주저없이 불경함을 거부하고 사회정의 뒤에 단단하게 버티고 서 있는 개인의 효도의 우선성을 극력 지지하고 있다.우리가 서양인에 비해서 예의와 격식의 미학을 더 중시하는 이유가 여기서도 비롯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현대에 와서 그 어느 문명국가에서도 부모의 잘못을 알고서 자식이 고소고발하지 않아도 법적인 처벌이나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 점을 생각한다면 공자의 생각이,굳이 플라톤과 비교하여,인간 보편성의 이해에서 한 수 앞선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둘째,개인과 사회를 보는 견해차다.플라톤은 개인의 공경 즉 자식의 부모에 대한 효도(고대 희랍에는 효도라는 단어는 없었지만)에 동정적이었지만 그의 절체절명의 과제였던 건강한 이상국가의 건설을 위한 정의구현이라는 명분 앞에 개인의 공경은 본질에서 사회의 정의에 맞설 수 없다고 판단한다.그것은 플라톤이 저서 ‘공화국(Republic)’에서 보여주듯 공동주의적 국가사회를 지향한다는 자신의 목표와 부합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공자가 사회정의에 우선하여 개인의 공경 곧 효도를 사람됨의 근본으로 강조한 것은 소위 의(義)와 예(禮)와 도(道)의 잘 닦음을 통해서 인간 개개인의 심성을 개발하며 나아가 정의로운 사회 건설과 사회 구성원들의 진정한 행복의 추구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그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사상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효도의 정신은 그만큼 우리에게는 역사적으로 정통성과 우월성을 갖춘 자랑스러운,시공을 넘는 덕목이다.5월8일은 어버이 날이다. 황필홍 단국대 교수·명예논설위원˝
  • [길섶에서]10년만의 해후/우득정 논설위원

    30년 전 고교 시절,한 묶음처럼 몰려다니며 아옹다옹했던 세 녀석이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기억조차 아련한 옛 얘기들을 앞다퉈 끄집어내며 소주 잔은 무서운 속도로 돌고 돌았다.그동안 건성으로 전화로만 안부를 물었던 서로의 무신경을 나무라면서 머리에 내려앉기 시작한 서릿발을 새삼 탄식하기도 했다. 금방이라도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한 착각에 잠길 무렵,기억의 재고가 동이 난 탓인지 어느 새 화제는 ‘최근’,그리고 ‘현재 진행형’으로 옮겨졌다.얼굴이 익숙한 특정인을 필두로 한 정치와 이념,성장이냐 분배냐,주한미군 문제 등 세 녀석 사이에 전혀 공통분모가 없는 주제들이었다.하지만 술을 들이켤수록 머리는 더욱 맑아지고 목청은 높아갔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당연시하는 한 녀석과 그것 자체를 부정하는 또 한 녀석.접점 없는 논쟁만 거듭하다 보니 종업원이 계속 눈치를 준다.새벽 3시가 넘었다.‘같음’을 느끼기 위해 시작된 만남이 ‘다름’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다.세월의 간극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우득정 논설위원˝
  • 안병영 부총리에 들어본 ‘교육개혁’

    안병영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23일 취임 4개월을 맞는다.‘재수 장관’인 안 부총리가 가장 역점을 둔 정책인 ‘사교육비 경감 대책’의 핵심,EBS의 수능 방송 및 인터넷 강의는 일단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안 부총리는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 ‘해열제’의 효력이 떨어지기 전에,그 방향을 공교육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틀고 있다.또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대학 개혁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특히 대입제도 개선,대학 서열화 완화,국·사립대 구조개혁 등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들로 꼽는다.안 부총리에게서 참여정부의 교육 개혁 방향과 함께 교육 현안에 대한 대책·복안 등을 들어본다. ●“EBS 강의 수능에 충분히 반영” EBS의 수능방송과 인터넷 강의가 연착륙했다.하지만 이미 밝힌 대로 문제는 대학수능 시험과의 연계이다.일부에서는 80% 정도 출제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수능 방송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는 많은 걱정을 했다.하지만 학교현장에서 준비에 애쓰신 선생님을 비롯,모든 분들의 적극적인 성원으로 별 무리없이 진행되고 있다.정말 다행이다. 수능 방송 내용을 수능시험 출제에 반영하는 비율을 딱 떨어지게 몇 %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많이 반영되도록 다각적인 방안을 세우고 있다.방송 강의는 수능시험 준비에서 보완적인 구실을 한다.중요한 것은 학교 수업이다.학교 교육을 충실히 받고 EBS 수능방송을 착실히 들은 학생은 수능 문제를 충분히 풀 수 있도록 연계할 계획이다. 실제 수능시험을 총괄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EBS와 방송 초기 단계부터 협의하고 있다.강의 교재의 구성에도 참여한다.때문에 평가원은 방송 강의를 통한 수능시험의 출제 경향·내용을 충분히 파악,반영할 것으로 본다. 보충·자율학습에 관한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일부에서는 예전처럼 반강제적·획일적으로 운영하는 실정이다. -교육감협의회에서 밝힌 대로 보충학습·자율학습에 대한 기본 입장은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학교가 자율적으로 운영하되,교육과정에 지장을 주거나 학생의 건강을 해치는 과도한 학습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물론 지역의 교육환경 등 특수성을 고려키로 한 교육감협의회의 의견을 존중한다.하지만 단위학교에 자율성을 부여한 만큼 책무성도 강화,변칙운영 사례에 대해서는 엄정 대처하겠다. ●“3년 기록한 내신이 수능보다 정확” 2008학년도 대입 제도의 새 틀을 짜기 위해 위원회까지 구성했다.내신 비중을 높이고 수능 비중을 낮춘다는 기본 방향을 밝혔는데. -대입전형 제도에서 대학의 학생선발권 보장이라는 측면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잖게 고교교육 정상화라는 교육적 기능을 간과할 수 없다.3년 동안 교사들이 기록한 내신이 하루에 치르는 수능시험 성적보다 학생을 훨씬 정확하게 평가하는 자료라고 생각한다.따라서 2008학년도 이후의 대입전형은 고교내신을 위주로 하면서,수능을 등급으로 활용하거나 최저자격 기준으로 쓰는 등 영향력을 축소하도록 유도해나갈 계획이다.이를 위해 내신의 신뢰도 제고가 우선돼야 한다.8월까지 학교현장 및 전문가·학부모 등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 대학의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대학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국가의 미래가 없다.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원칙과 방향은.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제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의 역할 및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때문에 대학을 ‘공부하는 대학,연구하는 대학,사회와 함께 하는 대학’으로 변화시켜야 한다.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경쟁을 통한 대학의 교육 및 연구력의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Post-BK21’사업을 통한 연구중심대학 집중 육성,대학 구조개혁 추진,우수 이공계 인재 적극 양성,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사업(NURI),대학교육의 경제사회 적합성 제고,대학교육의 국제화·정보화 등이 대학 경쟁력 강화 방안의 예이다.이런 정책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고등교육재정을 GDP의 1% 수준으로 확충해야 한다. 지방대 혁신역량 강화 사업과 함께 추진하는 국립대의 구조개혁은. -지방대 혁신역량 강화사업은 지방의 국·공·사립대를 특성화해 우수 인력을 키우고 대학 중심으로 지역발전을 촉진하는 것이다.국립대 구조개혁은 교수 1인당 학생수 감축,교육과정 개편,대학 운영의 자율성 제고를 통해 대학 교육의 수월성과 함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립대는 고등교육 기회의 확대 차원에서 양적 팽창을 계속했다.현재 대학 44개,전문대 7개 등 모두 51개교나 된다.그러나 대부분의 국립대는 백화점식으로 운영돼 사립대와 차별화가 안 된다.국립대에 대해서는 학생정원 감축,연합대학 체제 구축,대학간 통폐합,행정조직 간소화,대학 운영 자율성 확대 등을 검토하고 있다.국립대 구조개혁은 대학의 자율과 책임 아래 추진된다.정부는 제도 개선과 행·재정 지원 등을 통해 국립대의 자발적인 구조개혁을 적극 유도할 방침이다. ●“국립대도 이젠 국가 보호막서 벗어나야” 국립대도 이제 국가의 보호막에서 벗어나 경쟁체제로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학벌 극복 종합대책을 통해 밝힌 국립대 법인화에 관해 말들이 많다.교육부의 입장 및 방향을 뚜렷하게 밝혀달라. -정부는 개인 역량이 중요시되는 능력중심 사회를 구현하고자 ‘학벌주의 극복 종합대책’을 지난 6일 발표했다.참여정부의 12대 국정과제의 하나인 학벌극복을,교육의 형평성 향상과 사회계층간 통합을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 국립대의 공익 법인화 문제는 그동안 간헐적으로 논의되다 처음 공론화했다.이제는 실행 여부에 답을 구하는 수준은 아니다.국립대도 조직·예산·인사에서 자유로워야 한다.정부도 길을 터줘야 하는 것이다.국립대의 공익법인화는 대학 운영체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조치인 만큼 신중히 접근할 필요는 있다. 많은 선진국의 국·공립대들이 공익법인 형태로 운영된다.일본도 올 4월1일부터 국립대를 행정기관에서 법인으로 전환했다.국립대가 법인으로 바뀌면 행정조직에 적용되는 많은 규제에서 벗어나 사립대와 같이 변화에 빨리 적응할 수 있고 자발적·적극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다.때문에 대학 서열구조 개선 및 지방대 발전의 가속화도 유도할 것으로 기대된다.그렇지만 교직원 신분이 공무원에서 법인 직원으로 바뀌는 등 많은 변화가 뒤따르는 만큼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중·장기적으로 추진하겠다.현재의 대학자율화개혁추진위원회도 대학자율화 및 대학구조개혁추진위원회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체벌 전면금지, 아직 사회적 공감대 형성 안돼” 최근 체벌에 연루된 교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교권 강화와 함께 체벌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다.아니면 체벌을 전면 금지할 용의는 없는지. -개인적으로 체벌을 하면 안된다는 게 소신이다.하지만 체벌금지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법으로 완전 금지하면 교원들의 교육 활동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교육부에서는 현행법의 규정에 따라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에만 사회통념의 합당한 범위 내에서 체벌을 허용하되,그 내용은 학교 구성원의 민주적 합의 절차를 거쳐 학교 규정에 명시토록 지도하고 있다.체벌금지는 앞으로 체벌에 대한 사회의 인식변화 추이 등을 봐가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전반적인 문제를 신중히 검토할 계획이다. ●“교육구성원 상호간의 신뢰 회복 절실” 초·중학생의 선행학습,즉 과외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특수목적고 진학 때문이다.특히 외국어고는 취지와 달리 입시기관화했다.특목고의 체제 개편은 어떻게 진행하는지. -특목고 운영의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인 개선 방향은 4가지다.첫째,설립목적에 맞는 교육과정의 편성·운영을 위한 방안 마련이다.둘째,교과능력 위주가 아닌,해당 분야의 특기와 소질을 지닌 인재를 선발하도록 입학전형 방법을 개선한다.셋째,특목고 학생이 관련 전공분야 학업에 전념하도록 특별전형 확대 등 대입전형 방법을 고친다.마지막으로 제도적 개선과 더불어 특목고 정상 운영을 위한 장학지도의 강화이다.현재 태스크포스팀을 짜 개선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공교육 체제에서 실업계 고교도 중요한 한 축이다.하지만 일반계 고교에 비해 관심이 적다.내실화·정예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실업계 고교 육성대책 등을 세워 추진하고 있으나 학생의 진학기피 현상이 여전한 데다 질 높은 직업교육이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이 많다.앞으로는 고교 단계의 직업교육을 국가 인적자원 개발의 맥락에서 정책을 펼 계획이다.전문대·산업대 등 직업교육체제 전반과 연계한 종합적인 발전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또 실업계고 지원도 하드웨어 중심에서 벗어나 지식·정보화사회와 평생학습 체제를 고려한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정책을 추진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을 꼽는다면.또 교육 주체들에게 당부하고픈 말은. -교육계의 많은 문제들은 상반되는 교육이념이 충돌해 발생해 갈등의 폭을 줄이기가 어렵다.고교평준화제도의 보완 문제가 가장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교원평가제 개선,교원호봉체계 개선,교원 증원,전문상담 및 사서교사 등 전문직종 증원이 필요한 데 예산 확보가 만만찮다.특히 교육계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교육구성원 상호간의 신뢰 회복이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방황하는 과학영재] ② KAIST의 현주소

    ‘아시아 최고에서 세계 최고를 목표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구성원이면 누구나 이런 꿈을 가슴에 품고 있다.학부생의 3분의2가 과학고를 2년 만에 졸업하고 특별전형으로 진학한 영재들이어서 자긍심이 대단하다.수업·실험·연구,모두 세계 수준이다.1971년 설립 이후 30여년 동안 연구중심 교육으로 학문적 탁월성을 국내외에서 인정받았다.석·박사는 미국대학의 상위 10% 이내,학사는 30% 이내로 평가됐다. ●세계 최고를 꿈꾼다 최근 3년간 국제논문색인(SCI) 게재 실적은 4370건,교수 1인당 11.23건으로 미국의 MIT·스탠퍼드·버클리 등을 앞질렀다.연구수행 실적은 72년부터 지난해까지 1만 3325건(8582억원)으로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막강하다.일본 혼다사의 로봇 아시모를 능가할 만한 두 발로 걷는 로봇을 조만간 발표할 정도로 연구능력은 세계 최상급이다. 국내 이공계 교수 1만 5000여명 가운데 2000여명이 카이스트 출신으로 학계에도 널리 진출해 있다.벤처기업은 물론 삼성전자 등 국내 주요 기업의 연구분야엔 카이스트 출신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카이스트 교수 390명 가운데 27.1%인 106명은 연구실적 인센티브를 받아 연간 수입이 1억원을 넘는다.특허등록실적은 설립 이후 국내 1167건,국외 336건 등이며 최근 들어 급증하는 추세다. 카이스트가 세계적인 연구중심 대학으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것을 두루 보여주는 증거다. ●갈수록 줄어드는 지원 그러나 카이스트에 재학중인 학생들은 학업에 몰두하면서도 장래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국가발전에 이바지하는 과학자가 되겠다는 사명감에 불타지만 정부는 거꾸로 각종 지원과 혜택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정부는 우수과학자 양성을 위해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하지만 ‘구호’에만 그치고 있다는 게 카이스트인들의 불만이다. 카이스트에 지원되는 정부예산비율은 해마다 줄고 있다.지난 91년에만 해도 정부의 출연금 비율이 80.7%에 달했지만 올해는 전체 예산 2342억원의 35.5%인 831억원에 불과하다.지난 96년,하루 2454원이던 급식보조비는 98년부터 1500원으로 줄었다.연간 17만 6000원이었던 학사과정 1인당 실험실습비 역시 98년부터 16만 7000원으로 감소했다. 남학생의 경우 예전에는 석사과정만 입학해도 병역특례 혜택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박사과정부터 혜택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외국유학 등을 계획하는 경우 큰 걸림돌이 된다.장래에 불안을 느낀 카이스트인들 중에는 과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의·치대나 한의대에 편입하는 학생도 늘어나고 있다. ●화두는 이공계 위기 외환위기 이후 카이스트인들 사이에서도 화두는 ‘이공계 위기’다.연구원과 기업에서 젊음을 불사르던 선배들이 구조조정의 칼날 아래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하는 것을 보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이들이 말하는 이공계 위기는 다른 대학과 사뭇 다르다.지방대학을 비롯한 일반대는 이공계에 지원하는 학생수가 줄어든 현상을 이공계 위기로 본다.카이스트 홍창선 총장은 “이같은 현상은 이공계 대학의 위기이지 이공계의 위기는 아니다.”고 못박았다.이·공학도 수의 문제가 아니라,우수한 인재들이 의·치대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질적인 저하’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지난해 카이스트 자퇴생수는 114명으로 2002년 78명보다 46% 늘었다.이중 박사과정 자퇴생수가 61명으로 2002년 34명보다 79% 증가했다.사유야 다양하겠지만 이공계 위기 현상과 무관치 않다. ●스타 과학자를 키워라 카이스트는 이공계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스타 과학자’ 육성을 제시한다.이를 위한 정부와 기업의 투자 확대도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국민의 혈세를 여러 대학에 무차별적으로 나눠주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마찬가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만큼 ‘선택과 집중’으로 이공계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학영재들에게 병역면제 혜택을 주어 지속적으로 학업과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병역혜택과 연금이 주어지는 것처럼,국가사회 발전을 위해 밤낮 연구에 매달리는 과학자에게도 같은 수준의 혜택과 지원을 하고,과학자들의 직업 안정성도 강화해야 이공계가 산다는 주장이다. 대전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방황하는 과학영재] ① 과학고는 실패작인가 - 영재뽑아 범재 만드는 과학고

    순수 기초과학의 구축과 ‘21세기 과학입국’의 미래를 짊어질 과학영재들의 ‘외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과학고의 최상위 성적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회적 지위와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의학·한의학 계열로 진로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3학년이 되면 입시에 매달려 기초교육이 부실해지는 것은 물론 영재교육 본연의 수월성도 추구할 수 없게 된다. 과학고 학생들은 2004학년도 입시에서 의대 진학에 초강세를 보였다.전북과학고의 경우 3학년 졸업생 21명 가운데 9명이 의대·치대·한의대에 진학했다.3학년 졸업생 27명을 배출한 대전과학고도 48%인 13명을 의·약학계열에 진학시켰다.이런 추세는 2003학년도에도 마찬가지였다.전국 16개 과학고 가운데 전남과학고와 제주과학고를 뺀 14개 과학고에서 서울대에 진학한 학생은 2학년 조기 졸업생을 포함, 모두 83명.이 가운데 35%인 29명이 의학계열을 택했다. 과학고 학생들은 수학과 과학 과목에 한해 대학 신입생 수준의 고급과정을 배운다.실험시설은 웬만한 자연계 대학보다 낫다.하지만 이들에게도 대학입시는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다.이 때문에 2학년 1학기까지는 ‘영재교육’을 받지만 2학기부터 수능시험을 위한 ‘범재교육’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한성과학고 3학년 박지예(18)양은 “수학과 과학은 고급과정을 배워 처음 수능문제집을 대하면 쉽다고 느끼지만 실제 시험점수는 그렇게 나오지 않는다.”면서 “수능은 문제유형이 달라 실력과 별도로 적응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2학년 홍유경(17)양은 “2학년 때 의대로 진학하는 학생들은 극소수”라면서 “3학년 가운데 상당수는 2학년 때 수능점수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아서 진학하는 경우”라고 말했다. 홍양은 학부모들의 요구와 경제적인 여건을 고려해 의대를 원하는 과학고 학생들이 상당수라고 덧붙였다.‘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는 이런 현실을 반영,과학고 학생들을 위한 특별반을 따로 편성한 입시학원이 있을 정도다. H학원에는 S과학고 학생들이 한 학년에 무려 40여명이나 다닌다.한 학년이 120∼130명 정도임을 고려하면 3분의1에 해당하는 수치다.한성과학고 3학년 오수현(18)양은 “과학고 학생들은 대다수가 수시와 특별전형으로 입학하기 때문에 내신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다.”면서 “과학·수학의 경우 학교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지만 수능점수를 잘 따려면 주말이나 방학 때 입시학원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이에 대해 한성과학고 수학과 전용주(46) 교사는 “학원에서는 짧은 기간에 문제를 푸는 기술만 전수해 기초가 취약해진다.”면서 “학교에서 기초교육을 다시 시키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유종기자 bell@˝
  • 儒林(73)-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73)-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조광조의 정치사상을 엿볼 수 있는,알성시에서 ‘하늘과 사람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라고 시작한 조광조의 답변은 바로 조광조의 지치주의 사상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하늘과 사람이 하나로 연결되는 합일체,즉 ‘천인무간(天人無間)’의 명제는 하늘의 뜻이 인간의 일과 분리되지 아니한다는 ‘천리불리인사(天理不離人事)’로 발전되어 사람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세상은 반드시 하늘의 뜻이 실현되는 이상적인 사회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철학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의 구성원인 개개인이 각각 수양을 통해서 도덕을 실천함으로써 성인이 되는 것이다.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때에는 먼저 정치적 대표자인 왕이 수양을 통해 성인이 됨으로써 백성들을 교화할 수 있는 것이다. 조광조는 당시 군주인 중종이 수양을 통해 성인이 될 수 있고,따라서 이상정치의 실현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하여 경연에서 중종에게 공자의 도인 성리학을 열심히 가르쳤던 것이다. 조광조의 정치사상인 지치주의는 4가지의 방법을 필요로 한다. 그 하나는 현인군자를 적극 정치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용현정신(用賢精神)이며,또 하나는 사림 보호를 위한 선비들의 사기진작,세 번째는 방법적 폐단이 있을 때는 시의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진보적 개혁정신,마지막으로 언로는 반드시 열어 놓아야 한다는 언론 자유정책이었다. 지치주의를 구체화하려는 이 네 가지 방법은 결국 사회의 개혁을 의미하며,그러기 위해서는 갖바치와 밤을 새우며 토론하였던 대로 무엇보다 사람을 바꾸는 대규모의 물갈이를 통해 새로운 피를 수혈해야 하는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정치무대에 나온 지 불과 4년 만에 하룻밤 사이에 대역 죄인으로 전락한 조광조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바로 인물개혁이었던 것이다. 물론 도교의 일월성신을 제사 지내는 소격서(昭格署)를 폐지한 일과 향약을 실시하여 미풍양속을 권장한 괄목할 업적도 있었지만 조광조의 개혁은 주로 인적 자원의 개발과 인적 청산에 있었다. 조광조가 이를 위해 첫 번째로 시행한 제도가 바로 현량과(賢良科)의 설치였다.과거제는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긴 역사를 갖고 있었다.고려 광종 때에 쌍기의 제안으로 처음 시행된 이래 과거제는 고려의 전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조선왕조 건국 이후에도 인재를 선발하는 가장 중요한 제도로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다.그리고 이 제도는 당시의 신분제적 질서와 결합됨으로써 귀족신분층이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오히려 조선왕조 건국 이후 이 과거제도는 학교제도와 더불어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져 이 제도의 중요성은 더욱 강화되었다.그러나 이 과거제도는 결국 권력의 세습이라는 고질적인 폐단으로 변질되어 갔으며,숨어 있는 인재를 발탁하는 데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었다.따라서 조광조는 단 한 번의 시험제가 아닌 천거제를 통해 인재를 발굴하는 한나라의 현량방정과(賢良方正科)를 본받아 ‘현량과’라는 새로운 과거제도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조광조는 과거제도의 혁신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아 원래 인물이 적습니다.거기에다 서얼과 사천을 분별하여 등용하지 않습니다.중국에서는 귀천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등용시키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는데,하물며 작은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인재등용을 좁게 할 수 있겠습니까.중국 한대의 현량방정과를 그대로 복원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이런 방식으로 하면 대현인이라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내 조광조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서 천거과는 중종 13년에 시행된다.육조 및 홍문관,사헌부,사간원과 지방의 관찰사,수령들이 마땅한 인물을 선발하여 예조에 추천하면 예조는 추천된 사람 개개인의 신분을 조사하여 왕의 임석하에 중전에서 시행하여 뽑는 것이었다.
  • 儒林(72)-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조광조의 정치사상을 엿볼 수 있는,알성시에서 ‘하늘과 사람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라고 시작한 조광조의 답변은 바로 조광조의 지치주의 사상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하늘과 사람이 하나로 연결되는 합일체,즉 ‘천인무간(天人無間)’의 명제는 하늘의 뜻이 인간의 일과 분리되지 아니한다는 ‘천리불리인사(天理不離人事)’로 발전되어 사람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세상은 반드시 하늘의 뜻이 실현되는 이상적인 사회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철학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의 구성원인 개개인이 각각 수양을 통해서 도덕을 실천함으로써 성인이 되는 것이다.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때에는 먼저 정치적 대표자인 왕이 수양을 통해 성인이 됨으로써 백성들을 교화할 수 있는 것이다. 조광조는 당시 군주인 중종이 수양을 통해 성인이 될 수 있고,따라서 이상정치의 실현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하여 경연에서 중종에게 공자의 도인 성리학을 열심히 가르쳤던 것이다. 조광조의 정치사상인 지치주의는 4가지의 방법을 필요로 한다. 그 하나는 현인군자를 적극 정치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용현정신(用賢精神)이며,또 하나는 사림 보호를 위한 선비들의 사기진작,세 번째는 방법적 폐단이 있을 때는 시의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진보적 개혁정신,마지막으로 언로는 반드시 열어 놓아야 한다는 언론 자유정책이었다. 지치주의를 구체화하려는 이 네 가지 방법은 결국 사회의 개혁을 의미하며,그러기 위해서는 갖바치와 밤을 새우며 토론하였던 대로 무엇보다 사람을 바꾸는 대규모의 물갈이를 통해 새로운 피를 수혈해야 하는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정치무대에 나온 지 불과 4년 만에 하룻밤 사이에 대역 죄인으로 전락한 조광조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바로 인물개혁이었던 것이다. 물론 도교의 일월성신을 제사 지내는 소격서(昭格署)를 폐지한 일과 향약을 실시하여 미풍양속을 권장한 괄목할 업적도 있었지만 조광조의 개혁은 주로 인적 자원의 개발과 인적 청산에 있었다. 조광조가 이를 위해 첫 번째로 시행한 제도가 바로 현량과(賢良科)의 설치였다.과거제는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매우 긴 역사를 갖고 있었다.고려 광종 때에 쌍기의 제안으로 처음 시행된 이래 과거제는 고려의 전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조선왕조 건국 이후에도 인재를 선발하는 가장 중요한 제도로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다.그리고 이 제도는 당시의 신분제적 질서와 결합됨으로써 귀족신분층이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오히려 조선왕조 건국 이후 이 과거제도는 학교제도와 더불어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져 이 제도의 중요성은 더욱 강화되었다.그러나 이 과거제도는 결국 권력의 세습이라는 고질적인 폐단으로 변질되어 갔으며,숨어 있는 인재를 발탁하는 데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었다.따라서 조광조는 단 한 번의 시험제가 아닌 천거제를 통해 인재를 발굴하는 한나라의 현량방정과(賢良方正科)를 본받아 ‘현량과’라는 새로운 과거제도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조광조는 과거제도의 혁신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아 원래 인물이 적습니다.거기에다 서얼과 사천을 분별하여 등용하지 않습니다.중국에서는 귀천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등용시키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는데,하물며 작은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인재등용을 좁게 할 수 있겠습니까.중국 한대의 현량방정과를 그대로 복원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이런 방식으로 하면 대현인이라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내 조광조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서 천거과는 중종 13년에 시행된다.육조 및 홍문관,사헌부,사간원과 지방의 관찰사,수령들이 마땅한 인물을 선발하여 예조에 추천하면 예조는 추천된 사람 개개인의 신분을 조사하여 왕의 임석하에 중전에서 시행하여 뽑는 것이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9)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9)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下)

    흔히 진주를 한국 인권의 고향이라 말한다.1862년 류계춘과 그의 동지들이 주도했고 한국 최초의 농민 생존권 투쟁이 된 ‘임술년 농민항쟁’과 1923년 ‘형평사 운동’이 진주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003년은 형평운동 80주년이었고,지난 1993년에는 해방 후 처음으로 진주에서 형평운동 70주년 기념사업회가 결성되었다.백정해방운동을 백정이라는 특수 신분의 해방 운동으로 기념하는 데 그치지 말고,보다 폭넓은 인간의 불평등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한 계기로 삼자는 뜻이었다.인권문제에 애정을 가진 이들이 모여서 형평기념탑을 세우고,인권 문제에 관한 국제 회의도 열어 70년 전 일제 때에 시작된 형평운동 정신을 새롭게 하는 일을 논의하였다.일본에서는 일본의 백정에 해당하는 부락민(部落民) 다수와 부락민의 인권과 차별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부락민의 생존권을 돕고 일본사회의 차별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부락해방인권연구소 관계자들이 참가하기도 하였다. 그때 처음으로 강상호와 장지필의 이름과 생애가 공식적으로 거론되었다.그 이전에는 국내의 극히 적은 연구자들에 의해 간신히 이름과 생애가 이야기되고 있었을 뿐이었다.다행스럽게도 강상호는 진주를 대표하는 부자이며 명문가 출신인데다 후손들이 진주 지역에 살아 있었기에 그에 대한 연구 자료는 풍부한 편이었다.그러나 장지필의 경우에는 그의 후손들이 살아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한국의 후예들은 공식참배 안해 형평운동 70주년 국제 행사 이후 한 해에 두 차례씩 일본 부락민들이 강상호의 무덤을 참배하는 행사가 계속되고 있다.일본 부락민들의 강상호 무덤 참배 때마다 안내자로 참석해온 필자는 올봄 그의 아들 강인수씨와 둘이서만 참배를 했다.참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 최초의 인권해방운동 선구자는 차도 옆에 누워서 자동차 굉음과 흙먼지,행인들이 내던지는 오물,그 보다 더 심한 무관심 속에서 초라하게 삭아가고 있었다.아들은 여유없는 그의 노년을 부끄러워할 뿐 말이 없었다.한국의 백정 후예들이 강상호 무덤을 공식적으로 참배했다는 이야기도 아직 듣지 못하였는데,이 역시 안타깝다. 형평사 운동이 시작되던 1923년 당시 한국에는 40여만 명의 백정들이 살고 있었는데,백정의 원류는 고구려의 영토 확장 때 생겨난 전쟁 포로나 귀순자들이라고 한다.그들은 고구려로 온 뒤 주로 변방에서만 살았는데,‘삼국사기’는 이들이 모여 살았던 곳을 부락(部落)이라 불렀음을 적고 있다.‘280년(서천왕11)에는 숙신을 공격하여 주민 600호를 옮기고 항복한 부락 예닐곱 곳을 부용으로 삼았다’는 것이다.원래 부락은 흉노족이 사막지대에서 떼를 지어(部) 천막을 치고 정착한 곳(落)을 의미했다.고려 때는 고구려에 복속당한 북방 유목민들의 후예인 수척(水尺),양수척(揚水尺),화척(火尺)들이 살던 곳을 부락이라 불렀다.이런 예를 두고 볼 때 부락은 원주민과 다른 족속이 집단을 이루고 사는 곳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겠다. 일제 식민지 이후 총독부는 한국 민속을 파괴하고 마을이나 산의 지명을 바꾸는 것으로 정체성을 소멸시키려 하였다.그 과정에서 한국 고유어인 ‘동네,마을’ 대신 ‘부락’을 쓰게 하였는데,일본의 부락과 부락민이 일본인들로부터 차별 멸시당하듯이 한국인 전체를 부락,부락민으로 취급함으로써 식민지배의 우월성을 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백정들의 거주지를 부락이라 불렀던 것과 일본의 부락민들이 사는 곳을 부락이라 한 것은 우연이라 할 수 있겠다. ●일반인들의 생활언어도 사용못해 당시에 백정들은 갓 대신 패랭이를 써야 했고,상투머리엔 반드시 검은 띠를 둘러 백정임을 표시해야 했다.백정 여자들은 언제나 검정색 물들인 치마를 입어야 했고,비단옷이나 양반들이 입는 두루마기며 도포를 입어서는 안되었다.기와집에 살 수 없었으며 세 칸 이상의 넓은 집은 갖지 못했다.또,백정들끼리만 결혼할 수 있었고,혼인할 때 신부는 가마를 타지 못하고 신랑은 말을 탈 수 없었다.서당이나 향교에서 일반인들과 함께 글을 배워서도 안되었다.죽은 뒤에도 상여에 관을 얹지 못하며,거적대기에 말아 매장하되 일반인 무덤보다 높은 곳에는 봉분을 짓지 못했다.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일반인 소년이나 아이에게 백정은 존댓말을 써야 했고 공공장소를 지날 때는 허리를 숙인 채 빠르게 뜀박질하여 지나가야 했다.이러한 법이나 관습을 어길 경우에는 때와 장소와 상관없이 일반인으로부터 처벌받아야 하고,같은 죄를 다시 범한 백정은 중형에 처해졌다.심지어 일반인들의 생활 언어를 사용하는 것까지 금했다.백정들의 삶은 온갖 금지와 차별의 울타리 안에 구금되어 있었다. 그리고 백정마을은 전국 주요 행정관청이 있는 곳에 만들어졌는데,각 지방관아와 병영에서 필요로 하는 육류와 피혁을 손쉽게 얻기 위해서였다.특히 향교가 있는 지역에서는 봄·가을에 있는 공자와 유교 선현들께 올리는 제사 음식 중에 반드시 필요로 하는 육류와 육류를 가공하여 만든 제수를 공급받기 위해 백정을 꼭 필요로 했다.따라서 숙종 연간만 하더라도 백정은 일종의 관노비였다.그 후 조선사회 신분제도와 경제토대의 붕괴로 지방 토호들이 백정을 사노비화하면서 백정들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었다.그러나 대부분의 백정들은 철저한 문맹과 궁핍으로 최하층민의 가련한 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백정들에게는 무거운 의무만 있고 사람답게 살 권리가 없었다. 강상호는 백정들의 생활을 개선시키지 않고 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 위선임을 절감했다.그리고 식민지 상황에서 조선인들끼리 차별하고 탄압하는 것은 결국 일본의 식민통치를 돕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질타하였다.인간은 평등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사는 삶이야말로 고귀하다고 외쳤다.인간을 차별하는 것은 과거에 집착하기 때문이며,미래를 위해 인간 평등을 지향해야 한다고 굳건히 믿었다. 1923년 봄 진주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인권해방운동이 시작되었다.이 운동에는 백정 출신들과 함께 일반 지식인들도 참여함으로써 신분차별의 철폐가 민족해방보다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새로운 생각을 낳았다.형평운동이 시작되자 전국의 백정들은 일제히 환영하면서 대대적인 집회를 열었다.전국적인 사회 문화 운동의 출발지가 서울이 아닌 진주라는 작은 도시라는 점과 운동본부 및 핵심 지도부 인물 대부분이 지역인들이라는 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백정자식 양자로 들여 취학시켜 강상호·장지필 등 본부 임원들은 각각 순회 지역을 나누어 돌면서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백정들의 군중 집회에 참석,축사를 하거나 앞으로의 진행방향에 대하여 토론을 벌였다.백정들은 수백년 동안 억눌러온 감정을 폭발시켰지만 폭력 사태로는 나아가지 않았다.철저한 온건 노선을 지키면서 모든 조선인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눈물 겨운 장면을 만들어냈다.민족 해방을 부르짖는 것도 아니고,어떤 사회적 쟁점을 논의하기 위한 집회도 아닌 오직 천한 신분 백정도 똑같은 인간임을 인정해달라는 선언과 맹세의 집회다보니 일본 경찰도 적극 단속할 수는 없었다. 형평운동이 본 궤도에 올라 백정들의 생활 개선과 교육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난 차별의 벽은 백정들이 일반인 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만약 백정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일반인들이 모두 동맹 휴학을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강상호는 그때 두 명의 백정 자식을 양자로 들여 직접 아이들 손을 잡고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등 일반 지식인들이 먼저 백정 차별을 극복할 것을 주장했다. 이렇듯 들불처럼 확산되는 형평운동은 그때 막 한국사회에 상륙한 사회주의 노선과 다른 몇몇 사상단체들의 관심을 끌었다.그러면서 점점 예기치 못한 혼란 속으로 빨려 들었다.강상호는 장지필과의 계속되는 갈등에도 불구하고 백정도 떳떳한 조선인으로 대우받는 것이 어쩌면 민족해방보다 값진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형평운동에 자신과 전 재산을 아낌없이 던져 넣었다.국가나 사회보다 인간이 소중하다는 그의 사상을 그는 의심하지 않았다.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 그는 심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죽었다. 굳이 형평운동이 아니더라도 인간평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진주 촉석공원 앞 그의 작고 외로운 무덤 앞에 술 한 잔을 올리고 강상호란 이름을 불러 보면 어떨까.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9)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下)

    흔히 진주를 한국 인권의 고향이라 말한다.1862년 류계춘과 그의 동지들이 주도했고 한국 최초의 농민 생존권 투쟁이 된 ‘임술년 농민항쟁’과 1923년 ‘형평사 운동’이 진주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003년은 형평운동 80주년이었고,지난 1993년에는 해방 후 처음으로 진주에서 형평운동 70주년 기념사업회가 결성되었다.백정해방운동을 백정이라는 특수 신분의 해방 운동으로 기념하는 데 그치지 말고,보다 폭넓은 인간의 불평등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한 계기로 삼자는 뜻이었다.인권문제에 애정을 가진 이들이 모여서 형평기념탑을 세우고,인권 문제에 관한 국제 회의도 열어 70년 전 일제 때에 시작된 형평운동 정신을 새롭게 하는 일을 논의하였다.일본에서는 일본의 백정에 해당하는 부락민(部落民) 다수와 부락민의 인권과 차별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부락민의 생존권을 돕고 일본사회의 차별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부락해방인권연구소 관계자들이 참가하기도 하였다. 그때 처음으로 강상호와 장지필의 이름과 생애가 공식적으로 거론되었다.그 이전에는 국내의 극히 적은 연구자들에 의해 간신히 이름과 생애가 이야기되고 있었을 뿐이었다.다행스럽게도 강상호는 진주를 대표하는 부자이며 명문가 출신인데다 후손들이 진주 지역에 살아 있었기에 그에 대한 연구 자료는 풍부한 편이었다.그러나 장지필의 경우에는 그의 후손들이 살아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한국의 후예들은 공식참배 안해 형평운동 70주년 국제 행사 이후 한 해에 두 차례씩 일본 부락민들이 강상호의 무덤을 참배하는 행사가 계속되고 있다.일본 부락민들의 강상호 무덤 참배 때마다 안내자로 참석해온 필자는 올봄 그의 아들 강인수씨와 둘이서만 참배를 했다.참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 최초의 인권해방운동 선구자는 차도 옆에 누워서 자동차 굉음과 흙먼지,행인들이 내던지는 오물,그 보다 더 심한 무관심 속에서 초라하게 삭아가고 있었다.아들은 여유없는 그의 노년을 부끄러워할 뿐 말이 없었다.한국의 백정 후예들이 강상호 무덤을 공식적으로 참배했다는 이야기도 아직 듣지 못하였는데,이 역시 안타깝다. 형평사 운동이 시작되던 1923년 당시 한국에는 40여만 명의 백정들이 살고 있었는데,백정의 원류는 고구려의 영토 확장 때 생겨난 전쟁 포로나 귀순자들이라고 한다.그들은 고구려로 온 뒤 주로 변방에서만 살았는데,‘삼국사기’는 이들이 모여 살았던 곳을 부락(部落)이라 불렀음을 적고 있다.‘280년(서천왕11)에는 숙신을 공격하여 주민 600호를 옮기고 항복한 부락 예닐곱 곳을 부용으로 삼았다’는 것이다.원래 부락은 흉노족이 사막지대에서 떼를 지어(部) 천막을 치고 정착한 곳(落)을 의미했다.고려 때는 고구려에 복속당한 북방 유목민들의 후예인 수척(水尺),양수척(揚水尺),화척(火尺)들이 살던 곳을 부락이라 불렀다.이런 예를 두고 볼 때 부락은 원주민과 다른 족속이 집단을 이루고 사는 곳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겠다. 일제 식민지 이후 총독부는 한국 민속을 파괴하고 마을이나 산의 지명을 바꾸는 것으로 정체성을 소멸시키려 하였다.그 과정에서 한국 고유어인 ‘동네,마을’ 대신 ‘부락’을 쓰게 하였는데,일본의 부락과 부락민이 일본인들로부터 차별 멸시당하듯이 한국인 전체를 부락,부락민으로 취급함으로써 식민지배의 우월성을 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백정들의 거주지를 부락이라 불렀던 것과 일본의 부락민들이 사는 곳을 부락이라 한 것은 우연이라 할 수 있겠다. ●일반인들의 생활언어도 사용못해 당시에 백정들은 갓 대신 패랭이를 써야 했고,상투머리엔 반드시 검은 띠를 둘러 백정임을 표시해야 했다.백정 여자들은 언제나 검정색 물들인 치마를 입어야 했고,비단옷이나 양반들이 입는 두루마기며 도포를 입어서는 안되었다.기와집에 살 수 없었으며 세 칸 이상의 넓은 집은 갖지 못했다.또,백정들끼리만 결혼할 수 있었고,혼인할 때 신부는 가마를 타지 못하고 신랑은 말을 탈 수 없었다.서당이나 향교에서 일반인들과 함께 글을 배워서도 안되었다.죽은 뒤에도 상여에 관을 얹지 못하며,거적대기에 말아 매장하되 일반인 무덤보다 높은 곳에는 봉분을 짓지 못했다.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일반인 소년이나 아이에게 백정은 존댓말을 써야 했고 공공장소를 지날 때는 허리를 숙인 채 빠르게 뜀박질하여 지나가야 했다.이러한 법이나 관습을 어길 경우에는 때와 장소와 상관없이 일반인으로부터 처벌받아야 하고,같은 죄를 다시 범한 백정은 중형에 처해졌다.심지어 일반인들의 생활 언어를 사용하는 것까지 금했다.백정들의 삶은 온갖 금지와 차별의 울타리 안에 구금되어 있었다. 그리고 백정마을은 전국 주요 행정관청이 있는 곳에 만들어졌는데,각 지방관아와 병영에서 필요로 하는 육류와 피혁을 손쉽게 얻기 위해서였다.특히 향교가 있는 지역에서는 봄·가을에 있는 공자와 유교 선현들께 올리는 제사 음식 중에 반드시 필요로 하는 육류와 육류를 가공하여 만든 제수를 공급받기 위해 백정을 꼭 필요로 했다.따라서 숙종 연간만 하더라도 백정은 일종의 관노비였다.그 후 조선사회 신분제도와 경제토대의 붕괴로 지방 토호들이 백정을 사노비화하면서 백정들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었다.그러나 대부분의 백정들은 철저한 문맹과 궁핍으로 최하층민의 가련한 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백정들에게는 무거운 의무만 있고 사람답게 살 권리가 없었다. 강상호는 백정들의 생활을 개선시키지 않고 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 위선임을 절감했다.그리고 식민지 상황에서 조선인들끼리 차별하고 탄압하는 것은 결국 일본의 식민통치를 돕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질타하였다.인간은 평등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사는 삶이야말로 고귀하다고 외쳤다.인간을 차별하는 것은 과거에 집착하기 때문이며,미래를 위해 인간 평등을 지향해야 한다고 굳건히 믿었다. 1923년 봄 진주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인권해방운동이 시작되었다.이 운동에는 백정 출신들과 함께 일반 지식인들도 참여함으로써 신분차별의 철폐가 민족해방보다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새로운 생각을 낳았다.형평운동이 시작되자 전국의 백정들은 일제히 환영하면서 대대적인 집회를 열었다.전국적인 사회 문화 운동의 출발지가 서울이 아닌 진주라는 작은 도시라는 점과 운동본부 및 핵심 지도부 인물 대부분이 지역인들이라는 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백정자식 양자로 들여 취학시켜 강상호·장지필 등 본부 임원들은 각각 순회 지역을 나누어 돌면서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백정들의 군중 집회에 참석,축사를 하거나 앞으로의 진행방향에 대하여 토론을 벌였다.백정들은 수백년 동안 억눌러온 감정을 폭발시켰지만 폭력 사태로는 나아가지 않았다.철저한 온건 노선을 지키면서 모든 조선인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눈물 겨운 장면을 만들어냈다.민족 해방을 부르짖는 것도 아니고,어떤 사회적 쟁점을 논의하기 위한 집회도 아닌 오직 천한 신분 백정도 똑같은 인간임을 인정해달라는 선언과 맹세의 집회다보니 일본 경찰도 적극 단속할 수는 없었다. 형평운동이 본 궤도에 올라 백정들의 생활 개선과 교육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난 차별의 벽은 백정들이 일반인 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만약 백정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일반인들이 모두 동맹 휴학을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강상호는 그때 두 명의 백정 자식을 양자로 들여 직접 아이들 손을 잡고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등 일반 지식인들이 먼저 백정 차별을 극복할 것을 주장했다. 이렇듯 들불처럼 확산되는 형평운동은 그때 막 한국사회에 상륙한 사회주의 노선과 다른 몇몇 사상단체들의 관심을 끌었다.그러면서 점점 예기치 못한 혼란 속으로 빨려 들었다.강상호는 장지필과의 계속되는 갈등에도 불구하고 백정도 떳떳한 조선인으로 대우받는 것이 어쩌면 민족해방보다 값진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형평운동에 자신과 전 재산을 아낌없이 던져 넣었다.국가나 사회보다 인간이 소중하다는 그의 사상을 그는 의심하지 않았다.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 그는 심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죽었다. 굳이 형평운동이 아니더라도 인간평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진주 촉석공원 앞 그의 작고 외로운 무덤 앞에 술 한 잔을 올리고 강상호란 이름을 불러 보면 어떨까.˝
  • ‘알짜’ 봇물… 내집마련 황금기회

    신규 아파트 시장에 소나기 공급이 시작됐다. 1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다음달 공급되는 아파트는 전국에서 4만가구에 이른다.잇단 집값 안정대책 발표로 주택시장이 침체돼 공급을 멈칫거리던 업체들이 밀어내기식 분양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기다려봤자 분양시장 환경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아파트 공급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서울 대단지 재건축 아파트를 비롯해 전국 택지지구 알짜 아파트 공급이 이어져 실수요자에게는 내집마련의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스피드뱅크 조사에 따르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60곳 2만 329가구,지방에서 36곳 2만 160가구가 분양된다.민영아파트 3만여가구,임대아파트 45가구,주상복합아파트 3000여가구가 일반분양된다. ●서울·수도권 알짜 단지 많아 다음달 공급되는 서울 3차 동시분양에는 모두 3400여가구가 나온다.강남,서초,송파 등 강남권 아파트가 8곳 1073가구다. 잠실주공 4단지는 수요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LG건설과 삼성물산이 짓는 재건축 아파트로 2678가구이다.26평형 548가구가 청약통장 가입자 몫으로 나온다.지하철 2호선 신천·잠실역을 걸어서 이용할 수 있다.롯데백화점,석촌호수 등이 가깝다.삼성물산이 짓는 강남구 역삼동 개나리1차 148가구도 알짜 단지다. 금호동 대우 푸르지오아파트도 눈에 띈다.금호11구역 재개발 아파트로 888가구 단지.22∼41평형 246가구가 일반에 분양된다.대우건설이 짓는다.지하철 3호선과 국철 옥수역을 이용할 수 있다.달맞이 공원,응봉산공원이 단지 인근에 있다.한강을 바라볼 수 있다. 인천 서구 검단택지지구에서는 대주건설이 30∼47평형 917가구를 내놓는다.모두 일반분양 물량이다.단지에 학교가 들어설 예정이다.인천국제공항의 배후도시 역할을 하는 곳이다.경남기업은 용인시 성복동에 33∼48평형 816가구를 일반에 공급한다.대규모 주택단지인 상현동,신봉동과 가깝다. ●지방 대단지 공급 줄이어 부산에서는 투기과열지구 지정 이후 얼어붙었던 분양시장이 서서히 활기를 띠고 있다.지난주 쌍용스윗닷홈 아파트 공급을 시작으로 지난해 12월 이후 끊겼던 공급이 재개됐다.다음달에는 3300여가구가 분양될 예정이다. 대구는 지난 2월 첫 분양한 LG월성자이를 시작으로 이달 중 이천동 월드메르디앙,성당동 신성미소지움이 분양된다.광주에서는 이달말 한국토지신탁이 금호동아파트를,울산에서는 신성건설이 다음달 신정동 아파트를 분양한다. 닥터아파트 조사에 따르면 3∼6월 중 지방 도시에서 모두 11만 6000여가구가 분양된다. 한화건설은 이번주 천안시 다가동 꿈에그린아파트 246가구의 분양을 시작했다.33평형 단일 평형으로 분양가는 평당 530만∼560만원.경부고속철도 개통이란 호재를 안고 있다. 충북 오창지구에서는 5개 업체가 동시분양에 나선다.우림건설 1120가구,한라건설 1560가구,중앙건설 1338가구,한국토지신탁이 948가구,쌍용건설 622가구 등이다.18일 모델하우스를 열고 이달 말 청약을 받는다.오창지구에서는 35만여평의 주거지역에 1만여 가구가 들어선다. 대전에서도 대규모 아파트가 분양 채비를 마치고 수요자를 기다리고 있다.다음달 중구 문화동 육군보급창 터에 들어서는 24∼52평형 2298가구로 대전 지하철1호선(2006년 개통) 서대전네거리역이 걸어서 7∼8분 거리다. 류찬희기자 chani@˝
  • [발언대] ‘랑그’적 사고와 ‘파롤’적 사고/김명한 전주보훈지청 보훈과장

    연극이나 영화 등 대중매체를 비평할 때 기호학적 비평의 기법으로 랑그(langue)와 파롤(parole)의 방법이 있다.나타난 그대로 일상생활을 표현한 것이 랑그이며,전혀 엉뚱한 표현이 파롤이다.즉 양식집에서 양주나 돈가스를 주문하는 것은 랑그적 표현이나,양식집에서 막걸리나 순두부찌개를 주문하는 것은 파롤적 표현이다.부모나 기성세대들은 파롤적 표현보다 랑그적 표현을 중시하며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이를 강조한다.그러나 파롤적 표현이 결코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도 날 수 있다며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목소리가 전선을 타고 전달되는 전화를 발명한 벨 등은 평범한 사람이 느끼지 못한 의문점에서 시작해 인류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 분들이다.바로 이러한 분들의 창조력이 랑그적 사고보다는,약간 현실에서 일탈한 파롤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최근 우리영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인기 절정을 누리고 있다.한 영화를 1000만명 이상이 관람했다면 국민 4명중 1명이 봤다는 계산이 나오며,영·유·노약자를 제외하면 성인 2∼3명중 1명이 관람했다는 결론이 나온다.대단한 성과여서 우리도 이제는 문화국민으로서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미국은 자국의 우월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할리우드 영화 제작진에게 거액을 투자,영상매체를 통해 ‘팍스 아메리카나’문화를 수출하고 ‘세계경찰’이라는 역할 수행에 거부반응을 없앴다.일본은 애니메이션으로 ‘국수주의’와 ‘군국주의’문화를 은연중에 자국민에게 심어줌은 물론 세계에 ‘예스 재팬’문화를 수출한다.이를 볼 때 영상매체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한 것이다. 그러면 ‘태극기 휘날리며’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단순히 애국이나 반공,나라사랑을 주제로 랑그적 표현을 하였다면 이러한 영예를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다만 이 영화와 관련해 우리 현실을 다시금 되새길 필요는 있다. 남북간에 경협 등 화해무드가 조성되고는 있지만 엄연히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어,휴전선에는 지금도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자 춥고 어두운 밤을 뜬눈으로 밝히는 군인들이 있다.또 6·25 당시 입은 상흔으로 50년 넘게 병원에서 신음하는 상이용사가 있다.그러므로 우리는 ‘태극기‘를 보면서 단순히 파롤적 표현만을 볼 것이 아니라,한단계 더 나아가 ‘파롤의 파롤적’사고로 우리에게 자유와 평화를 있게 한 전상용사와 참전용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보자. 김명한 전주보훈지청 보훈과장˝
  • [사교육비 경감대책] 평준화·특목고 정상화

    시행 31년째를 맞은 고교평준화제도가 큰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다양하게 보완됐다. 교육부는 과학과 외국어 등 해당 분야의 인재가 선발될 수 있도록 특목고 입학전형부터 과감하게 고치기로 했다.현행 국·영·수 등 교과 성적 위주의 편법적인 구술면접 시험이 사라진다.대학입시 위주로 된 교육과정의 편성·운영지침을 고쳐 전문교과 이외에 보통교과도 설립 취지에 맞는 교과목만 개설토록 할 방침이다.현재 ‘교과 총 이수단위의 10%(19단위) 증배 운영규정’도 전문교과에 한해 허용한다.외국어고에서 자연·이공계 과정이 운영되는 폐해를 막기 위해 별도 교과과정을 만들 때 시·도 교육감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이를 어기면 학교승인도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학급 내 학생간 학력 격차를 인정,수준별 교육이 활성화된다.중1∼고1은 수학·영어의 수준별 이동수업을 오는 2007년 50%선까지 연차적으로 늘린다.국어·사회·과학은 소집단 학습과 보조교사 등을 활용,학급 내에서 수준별 학습이 가능토록 할 계획이다.2007년까지 관련 도구와 교재를 개발하기로 했다. 수준별 집단편성으로 인한 학생의 열등감 해소를 위해 학생의 반편성 선택을 존중하고 하위수준반에는 우수교사를 집중 배치할 방침이다. 학군 안의 희망학교에 학생이 우선 배정될 수 있도록 선 지원의 범위를 넓힌다.선 지원은 학생이 배정 희망학교를 2∼5개 학교 또는 학군 내 모든 고교를 원하는 순서대로 지원하고 희망순서에 따라 무작위로 추첨해 배정하는 방식이다. 인문계 고교에도 학교별로 특성화된 외국어나 예체능 분야의 집중이수과정을 설치,학생의 희망에 따른 학교 선택권도 높여주기로 했다.거주지 학군에 관계없이 지원가능한 공동학군의 신설도 권장하기로 했다. 또 영재육성을 위해 수학과 과학은 물론 정보,예능,언어 등 다양한 영역별 영재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현재 중학교에서 시행하는 영재교육을 고교까지 확대한다. 대학의 교과목을 고교나 대학에서 미리 이수하면 대학 학점으로 인정하는 AP(심화학습 이수인정제)과정을 도입,수월성 교육을 추구하기로 했다.동시에 수시합격자나 수능 이후 교육프로그램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이에 따라 조기 진급이나 조기 졸업이 가능하게 됐다.AP과정 이수자는 이수 검증을 위한 이수인정시험(PT)을 실시,AP 과정 이수에 상응하는 학력을 갖추면 대학에서 해당 과목 학점을 주거나 수업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 [씨줄날줄] 속(續) 실미도/신연숙 논설위원

    영화 ‘실미도‘가 개봉 45일 만인 지난 7일 전국 관객 900만명을 돌파하며 1000만 신기록을 향해 승승장구 중이다.‘실미도’의 흥행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실화에 바탕을 뒀으면서도 더 이상 극적일 수 없는 소재의 탁월성과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관련자들의 새로운 증언으로 국민들로 하여금 영화와 사건 실체에 대해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는 점을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새로 드러난 여러 사실 중에도 36년 전 충북 옥천에서 한꺼번에 실종됐다는 7명의 청년 이야기는 실미도 684부대의 실체에 대해 결코 흥밋거리로 그칠 수 없는 많은 의문들을 제기한다.지난 주말 SBS-TV의 ‘그것이 알고 싶다’는 그들의 가족과 당시의 사건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른 새로운 사실들을 밝혔다.증언자들은 무엇보다 당시 684부대 훈련병들은 범죄자가 아니라 모두 일반인 출신이었다고 말한다.또한 대원 모집책들은 전국 여러 도시에서 구두닦이 등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저학력 저소득층 청년들을 큰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설득해 데려갔으며 당국은 8·23 난동 이후에도 가족들에게 사건을 철저히 은폐했다는 것이다. 훈련병들을 사형수나 무기수라고 한 것은 국가의 의도적인 조작이었다는 의혹이 당연히 제기된다.난동사건 당시 훈련병들의 ‘법적’인 신분은 민간인이었다는데도 이들에게 군사재판을 받게 한 것도 의문점이다.뿐만 아니라 684부대는 누가 만들었는지,난동의 진짜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모두가 안개 속에 있다.과연 실미도의 진실은 무엇인가. 마침내 옥천 실종 청년들 5명의 신분 확인을 통해 실미도 부대의 존재를 최초로 인정한 국방부가 진상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많은 기록이 없어졌다지만 관련자 증언 등을 통해서라도 명명백백한 진상을 밝혀야 할 것이다. 옥천 청년들의 가족은 극장에서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고 한다.영화 속 내용 모두가 거짓말이라고.그러잖아도 영화 ‘실미도’의 국가허무주의를 걱정하는 소리가 많다.국민을 한낱 쓰고 버리는 도구로 삼는 국가권력의 부도덕성.정부의 성실한 조사만이 이를 불식하는 궁극적인 대책이 될 것이다.그때쯤 되면 ‘속(續)실미도’가 제작돼 영화의 오류도 바로잡혀야 하지 않을까 한다. 신연숙 논설위원˝
  • ‘부안 주민투표’ 앞두고 찬성론자 ‘e공세’

    핵폐기장 백지화 범부안군민대책위(핵대책위)가 다음달 14일 원전센터 유치 찬반투표를 강행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에 맞서는 찬성 주민들의 ‘e(전자)공세’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26일 국무총리실(opm.go.kr)과 산업자원부(mocie.go.kr) 등 정부 관련 부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올들어 핵대책위의 주장에 반대하거나 유치를 적극 찬성하는 주민들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올들어 게시판에는 찬성주민의 글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유치 반대론자들의 촛불시위 등에 가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찬성 주민들이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반격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총리실 게시판에 글을 올린 ‘부안사랑’이라는 네티즌은 “핵대책위가 원전센터가 들어오면 부안이 망한다는 거짓을 사실처럼 주장하고 있다.”면서 “지난 2002년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시·군을 찾은 관광객은 부산기장(고리원자력) 844만여명,경주시(월성원자력) 685만여명,영광군(영광원자력) 180만여명으로,원전센터로 인해 관광객이 줄고,주민소득이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 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찬성표’라는 네티즌은 “부안은 현재 지역 발전 수준 평가에서 230여개 자치단체 중 200위 정도에 해당되는 상황”이라면서 “아무런 현실적 대안 없이 지역이야 낙후되든 말든 ‘아니면 말고’ 식의 행동은 이제 지양하여 부안을 1등 지자체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네티즌은 “역학조사 결과 원전센터와 기형아는 연관이 없는데도 원전센터가 들어오면 기형아가 생긴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산자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네티즌 ‘Buan’은 “진정 부안을 위한 마음이 있다면 찬반 인사가 모두 참여하는 대화기구를 만들고 이를 통하여 자유로운 토론을 거쳐 합법적인 찬반투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현석기자
  • 오늘 원전관리 입찰재개

    석연치 않은 이유로 중단됐던 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선관리 용역업체 입찰이 26일 재개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용역업체 선정이 한달 가까이 늦어져 방사선 안전관리에 차질이 우려된다.’는 지적(서울신문 1월19일자 20면 보도)에 따라 원전 3곳에 대한 가격개찰을 26일 오전 10시 재개한다고 밝혔다. 한수원은 25일 “전산장애가 발생한 전자입찰시스템에 대해 외부(한국전산원)기관의 정밀조사를 받았으나 시스템에서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일부 입찰업체들의 재개요구를 받아들여 개찰재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울진원전 1∼6호기,월성원전 1∼4호기,고리원전 1∼4호기 등 3곳의 방사선 관리용역 입찰에 참여했던 7개 업체를 대상으로 한 컴퓨터 가격개찰이 재실시된다.한수원은 지난해 12월21일(최초 개찰 집행일) 정상 처리됐던 영광원전에 대한 H사의 낙찰은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한수원은 당시 영광 원전에 이어 울진 원전의 낙찰업체를 선정하던 중 외부 접속자 과다로 컴퓨터 시스템이 갑자기 다운되자 개찰중단을 선언했으며,이후 전자입찰 규정을 무시하고 재개찰을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참여업체들의 이해다툼에 휘말렸었다. 김경운기자 kkw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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