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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장군의 묘/정기홍 논설위원

     30년 전 우리 군(軍)에 탱크와 장갑차로 무장한 기계화사단은 딱 하나였다. 맹호부대로 불리는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이다. 당시 북한에는 같은 급의 부대가 3개나 된다는 말도 있었다. 1980년대 중반에 기계화부대는 더 생겼다. 수도기계화사단의 탄생이 월남(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미국의 답례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73년 기계화사단으로 바뀐 이후 한동안 월남전에 투입됐던 탱크와 장갑차가 주류를 이뤄 기갑병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한다.  이 부대에는 월남전을 겪은 간부가 많아 전장의 일화도 여럿 전한다. 애송이 소대장에게 목숨을 맡길 수 없다며 소대원들이 명령을 거부했다든가, 정글의 수풀 속에 매복한 베트콩의 총탄에 부대원을 잃었다는 꽤나 슬픈 얘기들이다. 반면 참전 선임하사(부사관)들이 “왕년엔 베트콩 몇 명은 죽였다”며 으스대는 모습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그 이름 맹호부대 용사들아~가시는 곳 월남 땅~’으로 불린 ‘맹호부대는 간다’란 노래에는 이같은 파월장병의 정서가 오롯이 녹아 있다. 월남전의 전사(戰史)는 끝이 없다. 맹호부대 외에도 청룡부대(해병2사단)와 백마부대의 전투사는 지금도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청룡부대는 짜빈동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신화를 남긴 해병’이란 애칭도 얻었다.  월남전에 파병된 한국군은 31만명을 조금 넘는다. 국군의 ‘양민학살’이 한때 논란이 된 적도 있지만 월남전은 낙후된 우리 경제에 크나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1965년 3월 비둘기부대(비전투부대)가 파병된 이후 미국의 경제지원액이 9억 2700만 달러에 달하고, 우리 기업들이 월남에서 벌어들인 금액도 5억 370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 돈의 상당수가 경부고속도로를 놓는 데 쓰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월남전의 영웅’ 채명신 장군이 “파월장병이 묻힌 사병묘역에 안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겨 새삼 군인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그는 월남 파병 당시 맹호부대장이었고, 초대 주월 한국군사령관을 지냈다. 세계 전투사에 게릴라전으로 유명한 월남전에서 그가 보여준 ‘적과 주민 분리 전술’은 당시 미군이 채택했을 정도로 탁월한 것이었다. 월남전 내내 ‘민심이 70%, 전투는 30%’라는 지론을 갖고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민심을 장악해야 민간에 숨은 베트콩을 색출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채 장군을 게릴라전술의 대가로 부르는 이유다. 월남전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우리의 장병 5000여명이 죽었다. 고엽제 피해 파월장병 1만 6579명이 미국의 고엽제 제조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도 했었다. 사병묘역을 택한 채 장군의 뜻이 월남전 전우들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치유했으면 한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생사고락 함께한 파월 장병 1평 사병 묘역에 묻어 달라”

    “나를 파월 장병들의 묘역에 묻어 달라.” 지난 25일 작고한 채명신 초대 주월남 한국군 사령관은 베트남전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전우들이 묻힌 사병 묘역에 묻어 달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27일 “장군 묘역 안장 혜택을 포기하고 죽어서도 월남전 참전 전사자와 함께하겠다는 고인의 숭고한 뜻과 월남전에서의 공적을 높이 평가해 국립서울현충원 사병 묘역 안장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당초 국방부는 장례를 육군장으로 치르고, 관례대로 대전현충원의 장군 묘역(26.45㎡·8평)에 안장할 계획이었지만 고인의 뜻을 존중해 28일 발인을 마친 뒤 서울현충원의 사병 묘역(3.3㎡·1평)에 안장키로 한 것. 김형기 서울현충원장은 “고인의 묘지와 비석 크기는 일반 사병과 같다”면서 “고인이 베트남참전 유공전우회 회장 시절 추모행사를 진행해 왔던 2번 사병 묘역에 안장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이날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을 찾아 유족에게 정부의 결정을 공식 전달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장군이 사병 묘역에 안장되는 건 현충원 설립 사상 처음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정인씨와 1남 2녀가 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故채명신 장군 “사병 묘역에 묻어달라” 현충원 첫 사례

    故채명신 장군 “사병 묘역에 묻어달라” 현충원 첫 사례

    ”나를 파월 장병이 묻혀 있는 사병 묘역에 묻어달라.” 지난 25일 별세한 채명신 초대 주월남 한국군 사령관이 생전 이 같은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27일 고인이 남긴 이 유언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 결과를 유족에게 통보했다고 국방부 관계자가 밝혔다. 별세한 장군은 현충원에 마련된 장군 묘역에 안장된다. 그러나 고인은 별세하기 전 유족에게 사병 묘역에 묻히길 희망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장군이 자기 신분을 낮춰 사병 묘역에 안장되길 희망한 것은 현충원 설립 사상 최초”라면서 “숭고한 고인의 뜻을 받들어 서울현충원 사병 묘역에 안장하는 방안을 확정했다”고 전했다. 고인이 묻히게 될 묘지 크기는 일반 사병과 같은 3.3㎡이다. 김형기 서울현충원장은 “고인의 묘지와 비석 크기는 일반 사병과 같다”면서 “파월참전자회장을 맡아왔던 고인이 추모행사를 해왔던 2번 사병 묘역에 안장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이날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을 방문, 유족들에게 정부의 결정을 공식 전달할 계획이다. 베트남전의 영웅인 고인은 1949년 육군사관학교(육사 5기)를 졸업하고 이듬해 6·25 전쟁에 소위로 참전했다. 1953년에는 미 육군보병학교를 졸업했다. 육군 5사단장과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을 거쳐 1965년 주월사령관 겸 맹호부대장에 임명돼 1969년까지 4년 가까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을 지휘했다. 이후 육군 2군사령관을 거쳐 1972년 중장으로 예편했다. 군 복무기간 전투에서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태극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등의 훈장을 받았다. 전역 후에는 스웨덴, 그리스, 브라질 대사를 역임하며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대한태권도협회 초대 회장과 월남전참전자회 명예회장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정인 씨와 1남2녀가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폐기물 처리장서 발견된 ‘미라형 시신’은 월남전 참전용사

    지난 4일 전남 나주의 폐기물 처리장에서 발견된 시신의 신원은 혼자 살던 60대 국가유공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5일 나주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전 8시쯤 나주 한 폐기물 처리장에서 발견·신고된 미라 형태 시신의 손과 발의 지문을 감식한 결과 광주 서구 마륵동에 사는 A(67)씨인 것으로 잠정 확인됐다. 경찰은 손과 발이 작아 여성의 시신으로 추정했지만 확인 결과 남성이었다고 밝혔다. 혼자 살던 A씨는 결혼 기록이 없으며 160㎝가량 키에 왜소한 체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주택은 인근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됐다. 경찰은 A씨의 최근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친·인척들은 “3년 전 연락이 끊겼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 인근 슈퍼마켓의 외상장부에는 지난 6월 술 등을 사간 기록이 있었으며 슈퍼마켓 주인은 그 이후 A씨를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월남전에 참전한 국가유공자인 A씨는 고엽제 후유증 등으로 월 130만원가량의 지원금을 받아왔다. 경찰은 일단 A씨가 고독사한 상태에서 누군가 중장비로 집을 철거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살아있는 상태에서 철거작업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A씨의 사망시점,범죄와의 연관성 등을 파악하기 위해 금융거래, 병원 진료 기록, 휴대전화 통화내역 등을 조사하는 한편 시신의 DNA를 정밀 분석해 A씨가 확실한지 확인할 방침이다. 경찰은 또 마륵동 철거현장,나주 폐기물 처리장 등에서 시신의 나머지 부위가 있는지 수색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韓·베트남 정상회담] ‘아버지의 적’ 호찌민 묘 앞에 선 딸… 미래 위한 ‘마음 얻는 외교’

    [韓·베트남 정상회담] ‘아버지의 적’ 호찌민 묘 앞에 선 딸… 미래 위한 ‘마음 얻는 외교’

    베트남을 국빈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국부’로 불리는 호찌민 전 국가주석의 묘소를 찾아 헌화했다. 박 대통령은 50년 전인 1964년 미국의 요청으로 베트남 파병을 결정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고, 호찌민 전 주석은 미국에 맞서 싸우며 베트남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적장’의 관계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번 방문을 통해 한때 서로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아픈 과거사를 묻고, 번영의 미래를 논의하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한층 심화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대통령이 호찌민 묘소 방문을 국빈 방문의 첫 공식 일정으로 잡고, 월남전에 참전했다 전사한 박순유 중령의 아들인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을 특별 수행자로 동행하도록 한 것 등도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전날 한·베트남 경제협력 만찬간담회에서 베트남을 ‘사돈의 나라’라고 칭하는 등 친근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아픈 과거사를 딛고 공동번영의 미래로 향하자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승용차에서 내려 수행원들과 200m가량을 걸어 묘소로 이동한 뒤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라고 쓰인 리본을 조화에 붙이며 목례로 예의를 표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방명록에 서명한 뒤 호찌민 집무실도 둘러봤다. 박 대통령은 이날 공동기자회견 말미에 “베트남 정부에 감사를 드리면서 베트남 국민께 우리 국민의 따뜻한 인사를 전한다”면서 ‘까몬’(감사하다)이라는 베트남어로 회견을 마무리했다. 양국 간 과거사 문제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는 어느 정도 일단락된 상태다. 베트남 정부는 1992년 수교 당시 “승전국으로서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선언했고, 전쟁으로 인한 배상 문제도 논의 자체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교 이후 묘소 참배와 과거사를 둘러싸고 양국 간에 신경전도 있었다. 1992년 양국 수교 이후 1996년 베트남을 처음 찾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 등에 침묵했고 ‘월맹’의 지도자인 호찌민 묘소 참배도 거부했다. 그러나 1998년 베트남을 방문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베트남 국민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고, 호찌민 묘소도 처음 참배했다. 당시 참전 사과 언급에 대해 보수층이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경우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을 먼저 얻음으로써 경제·외교 관계를 더욱 심화, 발전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국가 가운데 베트남을 첫 방문지로 택한 것이나 아오자이·한복 패션쇼에 직접 모델로 나서 베트남 국민들에 다가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박 대통령은 베트남 방문 직후부터 “향후 20년간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긴밀한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고 강조했다. 하노이 오일만 기자 oilman@seoul.co.kr 서울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생큐 아메리카” 상이군인 美서 600㎞ 자전거 질주

    “생큐 아메리카” 상이군인 美서 600㎞ 자전거 질주

    한국 상이용사들이 미국 뉴욕에서 워싱턴까지 무려 600여㎞를 자전거로 달릴 예정이어서 주목을 끌고 있다. ‘국가유공자1급 중상이용사회’(회장 최희용) 소속 회원 16명은 지난 22일(현지시간) 오전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유엔본부 앞에 모였다. ‘핸드바이크’(다리 대신 손으로 움직이는 자전거)에 몸을 실은 이들은 이날 유엔본부 앞을 출발해 워싱턴 소재 한국전쟁 참전비까지 달릴 예정이다. 상이용사들이 이날 모인 것은 정전협정 60주년을 기념해 한국전쟁에 힘을 보태 준 미국과 미국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하고 싶다는 취지에서다. 그래서 행사 이름도 ‘정전60주년 희망의 핸드사이클 출정식’이다. 주자들은 6·25 한국전과 월남전, 제2연평해전에서 다리를 잃었거나, 군 복무 중 척수손상으로 하반신 마비가 된 퇴역 용사들이다. 이번 행사의 단장인 박상근 용사회 부회장은 “해방 후 해외로부터 원조를 받고 나라를 지킬 힘도 없을 때 미국과 유엔의 도움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됐다”면서 “미국에서 세계평화와 자유민주주의, 한·미 동맹 관계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자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척수 손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한태호(49·1996년 애틀랜타장애인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씨도 “부상 후에도 삶은 존재할 뿐만 아니라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으로 내 자신을 일깨우며 이번 행사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출정식에 나온 손세주 뉴욕 총영사는 “여러분의 숭고한 뜻을 바탕으로 한·미 동맹이 굳건해지고 남북통일과 세계평화가 조속히 실현되기를 희망한다”면서 참석자들의 용기를 북돋웠다. 상이용사들은 오는 27일 워싱턴DC 한국전쟁 참전기념비 공원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인 정전 6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한다. 백악관 앞에서 미국민에게 전하는 감사의 편지도 낭독한다. 또 28일 미국 상이군인중상이자(PVA)들과 백악관에서 합류해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등대까지 동반 레이스를 하고 나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담은 글을 읽을 예정이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연합뉴스
  • 6대1 경쟁률 뚫고 레바논 평화 지키러 떠난다

    6대1 경쟁률 뚫고 레바논 평화 지키러 떠난다

    레바논에서 6년째 유엔 평화유지군(PKO)으로 활동 중인 동명부대에 충원될 13진 장병 파병환송식이 19일 열렸다. 조정환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이날 인천 국제평화지원단에서 열린 환송식에는 파병준비단장인 김시범(학군 31기) 중령 등 305명의 파병 장병과 가족, 군 관계자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6대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13진 장병 가운데는 대(代)를 이어 파병된 장병도 5명이나 된다. 작전장교 차정석 소령은 월남전에 민사심리전부대 중위로 참전했던 차기문 예비역 중장의 아들이다. 이상민 대위와 한상헌 원사, 이석주 상사, 김범규 하사의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도 주월십자성부대와 맹호부대 등에서 전투를 치렀다. 바통을 이어받은 형제도 있다. 정보통신중대 무선반장 이호진 중사의 친형 이진현 대위는 12진 화학장교로 파병돼 임무를 수행 중이다. 13진 장병 가운데는 레바논, 동티모르, 이라크 등에 이미 파병됐던 경험자가 88명 포함돼 있다. 지금까지 동명부대는 인도적 지원사업 156건, 레바논군 지원사업 62건 및 의료지원 6만여명 등 다양한 민군작전을 통해 평화유지군과 현지인에게 ‘신이 내린 선물’로 불리고 있다. 13진 장병들은 2개 제대로 나뉘어 24일과 새달 5일 출국한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사설] 들쭉날쭉 참전 유공자 복지 정비하라

    참전 유공자들이 받는 의료혜택이 나이나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으로 드러났다. 재벌가 손자들까지 무상보육을 시키는 마당에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 유공자들이 노년에 차등 대우를 받는다면 그야말로 ‘명예훼손’이 아닐 수 없다. 국가에 대한 건전한 의식과 애국정신의 함양을 위해서도 하루속히 시정해야 할 일이다. 보훈병원이 있는 지역에서는 참전 유공자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병원 진료비의 60%를 감면받는다. 서울·부산·광주·대전·대구 등 5곳이다. 나머지 지역에서는 아플 경우 위탁병원을 이용한다. 그런데 보훈병원과 같은 수준의 감면 혜택은 75세 이상이라야 받을 수 있다. 그 이하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 보훈병원이 없는 곳에 사는 참전 유공자들로서는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돈이 아까우면 보훈병원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서 진료를 받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참전 여부가 지역이나 나이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면 보훈 혜택 또한 다를 이유가 없다.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참전유공자는 한국전 참전유공자 14만 5000여명, 월남전 참전 13만 3000여명 등 모두 27만 8000여명에 이른다. 한국전 참전 유공자들의 경우, 8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 대부분으로 해마다 1만명 정도 줄어드는 추세다. 국가보훈처는 인천에 보훈병원을 설치하는 문제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올해 중으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수도권에도 보훈병원이 필요하다는 유공자들의 오랜 요청에 따른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보훈병원 추가 설치뿐만 아니라 위탁병원에서 제공하는 질병별 감면 혜택 수준을 올리는 정책도 함께 추진하기 바란다. 지방자치단체가 조례에 근거해 보훈처와 별개로 제각각 지급하는 참전 명예수당에 대해서도 지원기준의 통일을 요청하기보다는 보훈 대상자는 나라에서 모두 책임진다는 자세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래야 품격 있는 국가다. 보훈 대상자를 단순한 원호 내지 구호대상자가 아닌 ‘명예로운 인물’로 예우하고 존경하는 분위기가 확산돼야 진정한 국민통합도 이뤄질 것이다. 차제에 차관급 부처로 돼 있는 보훈처의 위상을 제고하는 문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유공자 수당·의료비 지역·연령별 제각각

    유공자 수당·의료비 지역·연령별 제각각

    나라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참전 유공자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혜택이 지역과 연령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형평성 논란이 거세다. 모두 목숨을 걸고 희생했지만 이에 대한 금전적·의료적 보상은 현재 거주하는 지역과 나이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여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참전 유공자의 명예수당은 자치단체(거주지 기준)에 따라 최대 10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5일 국가보훈처와 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전국 대부분의 자치단체는 2005년 5월 제정된 국가보훈기본법에 근거해 6·25 등 참전 유공자에게 명예수당을 지원하고 있다. 전국 17개 광역 자치단체 가운데 10개 자치단체는 관련 조례를 제정해 참전 명예수당을 지원하고 있다. 시·도별 참전 명예수당 지원액은 매월 1인당 1만~10만원으로 최고 10배 차이가 났다. 세종시가 1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인천·대전시 각 5만원, 서울시·제주도 각 4만원, 부산·대구·광주·울산시 각 3만원, 경북도 1만원 등이다. 특히 세종시는 명예수당 지원 대상을 65세 이상으로 제한한 다른 시·도의 지원 기준과 달리 모든 참전 유공자에게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반면 경기·강원·경남·충남·충북·전남·전북도 등 나머지 7개 도는 참전 명예수당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대신 이들 도의 시·군·구 대부분은 참전 명예수당으로 매월 1인당 2만~10만원씩을 자체 예산으로 지급하고 있다. 자치단체 간 명예수당 지원 범위도 달랐다. 일부는 6·25전쟁과 월남전 참전 유공자를 포함하는 반면 어떤 곳은 6·25 참전 유공자로 한정하고 있다. 명예수당을 광역·기초자치단체가 중복 지원하는 곳도 있었다. 경북도와 시·군(3만~5만원), 인천시와 구·군(3만~6만원), 광주시와 서구(2만원) 등이다. 6·25 당시 칠곡 전투에 참가했다는 김영조(83·가명·대구 남구)씨는 “경북에 사는 전우는 매월 6만원을 명예수당으로 받지만 난 그 절반밖에 안 된다”면서 “전장에서 목숨 걸고 고생한 건 마찬가지인데 거주지 자치단체가 다르다고 수당까지 차별을 둬서야 되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자치단체마다 참전 수당 지원 기준이 달라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면서 “이미 수년 전부터 자치단체들에 참전 수당을 매월 1인당 평균 4만원 수준으로 조정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참전 유공자의 의료 혜택도 거주지와 연령별로 차이가 심각하다. 정부는 대상과 나이에 따라 본인부담 진료비의 50~100%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보훈병원과의 접근성에 따라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다른 실정이다. 현재 전국에는 310여개의 위탁 병원이 있고, 보훈병원은 서울과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 5개 지역에만 있다. 보훈병원에서는 참전 유공자의 연령에 상관없이 의료비 60%의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반면 위탁 병원에서는 75세 이상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75세 이하 참전 유공자가 의료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서울이나 대전 등 대도시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서울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4.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명사가 걸어온 길] 4.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1960∼70년대 기타 하나 들고 혜성같이 나타나 한국 가요계를 풍미했던 신중현(75). 그에겐 ‘록의 대부’며 ‘록의 비조’ ‘6현의 연금술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많은 가수와 음악인들은 역사의 기억 너머로 묻혀졌던 그의 묵은 음악을 다시 꺼내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중현을 ‘살아있는 전설’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당대의 숱한 히트곡과 스타들을 만들고 배출한 불세출의 명인이지만 정작 그의 삶은 굴곡으로 점철돼 있다. 그 질곡의 길을 걷게 한 단초는 배고픔과 외로움이라고 신중현은 말한다. 하지만 그의 삶과 분신인 음악에 담긴 메시지는 한 가지, ‘새로운 것들을 향한 멈추지 않는 열정’. 그래서일까, 한국 가요계의 이단아이자 진보주의자였던 그는 2006년 은퇴를 앞두고 내놓은 자서전 제목도 이렇게 썼다.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2006년 7월 신중현이 전격 은퇴 선언을 한 뒤 마지막 전국 순회공연을 준비할 무렵,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록의 대부’라는 제목으로 신중현의 살아온 이야기를 실었다. 최근 경기 용인시 양지면의 거처에서 만나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기억하느냐’는 첫 질문에 신중현은 “나도 의외였다”고 했다. 유난히 작은 키에 ‘작은 거인’이란 별명이 겹쳤다. 신장이 얼마나 되느냐는 미련한 질문에 “한 번도 재 본 적이 없어 모른다”며 무심코 던진 한마디. “돌이켜 보면 내가 살아온 인생은 꼭 곡예 같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줄 위에서 움직이는 꼴이라고 할까.” 용인 거처는 은퇴와 함께 1986년부터 20여년간 음악 활동의 아지트로 썼던 서울 송파구 문정동 ‘우드스탁’ 생활을 마감하고 2007년 새로 튼 보금자리. 거처 겸 연습실, 작은 공연장을 갖춘 공간이다. 지금도 대패며 망치를 들고 구석구석을 다듬고 만들고 있다. 혼자 작업실을 꾸미느라 힘들지 않았느냐고 묻자 “어린 시절 그 험한 고생을 했는데 이까짓 거야”라며 초년 시절로 이야기를 돌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만주에서 이용업을 하며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6·25전쟁 통에 한 푼도 건지지 못한 채 충북 진천으로 옮겨 어렵게 살아야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1년 새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사별한 고아. 동생을 친척 집에 맡기고 상경해 제약회사를 하는 친척 집에 얹혀살았다. “공장 일이 너무 힘들고 서러웠어요. 판자 쪼가리에 군용 전화선을 매어 만든 기타를 치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중학교 때 공장 일을 해 모은 돈으로 기타를 사서 혼자 연습하다가 고교 2학년 때 집을 뛰쳐나와 서울 종로 바닥을 전전했다. 당시 종로엔 ‘기타 잘 치는 신중현’이란 명망이 파다했고 미8군 무용수 눈에 띄어 오디션을 거쳐 미8군 플로어쇼에 데뷔한 게 음악 인생의 시작이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어요. 보수도 당시로선 큰돈이었고 미군부대 공연 때마다 최상급 대우를 받았으니까요.” 언제부터인가 ‘재키’ ‘히키’ ‘스코시’라는 별명이 미군들 사이에 퍼졌고 공연이 끝나면 악수를 청하는 미군들이 줄을 섰다. 미군 정보부 요원들이 출입하는 용산역 건너편 ‘시빌리언 클럽’에서 1960년 가졌던 첫 기타 독주 공연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연주가 끝난 뒤 떨려서 인사도 못 하다가 얼떨결에 고개를 들어 보니 미군 전원이 기립박수를 치고 있는 게 아닙니까.” 미8군 스타 생활을 5년 정도 했을까. 베트남전이 터지고 주한 미군이 베트남으로 빠져나가면서 미군부대 쇼도 시들해졌다. 미8군 생활을 접은 건 단순히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공연을 하면서 늘 외국곡을 그대로 따라 연주하고 부르는 데 회의가 들곤 했지요. 한국적인 음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져 가던 때였습니다.” 당시 한국 가요계는 남진, 나훈아로 대변되는 트로트의 세상. ‘한국 가요계를 바꿔보자’며 국내 가요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대중들은 그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가 천착했던 로큰롤이며 사이키델릭 록은 낯설기만 한 것이었다. “우리 가요계의 수준이 서방세계의 음악과 너무 차이 났어요. 당시 미군부대 공연 때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든다는 미군들의 말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왜 우리는 그토록 훌륭한 콘텐츠를 갖고 있으면서도 문화적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걸까.’ 그 창피함과 문제의식은 이후 한국적 특성을 살린 록으로 뻗친다. 한국 최초의 록 밴드 ‘애드4’(Add4)를 시작으로 그룹 ‘조커스’ ‘던키스’ ‘퀘스천스’ ‘더 맨’ ‘신중현과 엽전들’을 결성해 실험적인 음악을 구가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룹 활동을 하면서 발굴해 낸 스타들은 숱했고 음반사와 가수들은 그의 곡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한다. ‘빗속의 여인’이며 ‘커피 한잔’ ‘님아’ ‘떠나야 할 그 사람’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미인’…. 그리고 그 노래들을 부른 펄시스터즈, 김추자, 장미화, 장현, 박인수…. 인생의 굴곡은 사이클을 이룬다고 했던가. 전국에 ‘신중현표’ 음악이 깔리고 입을 통해 번져 갈 무렵, 그는 군사정권의 칼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괘씸죄’로 인한 세상으로부터의 격리다. “대통령 찬가를 만들어달라는 전화를 받았어요. 한마디로 잘라 거절했던 게 미운털이 됐던 것 같아요.” 죄목은 ‘대마초 공급책’이다. “미군부대 공연장엔 당시 월남전에 반대하는 히피들이 많이 모였어요. 대마초며 마리화나를 상습적으로 즐겼던 그들은 우리 집에도 드나들었고 집에 그런 환각제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모진 고문과 심문 끝에 정신병원과 교도소 신세를 졌고 그가 만든 100여곡이 금지곡으로 묶였다. 그에겐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1987년에야 그의 곡들이 해금됐지만 ‘대마초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기만 한 생트집이다. “따져 보면 저를 지옥으로 몰아간 이벤트지요. 어떻게 그 일을 잊을 수 있겠어요.” 이후 소공연을 하면서 기타 산조 ‘무위자연’이며 ‘김삿갓’ 같은 한국적인 곡들을 발표했지만 회생 기미가 없었다. 마침내 2006년 은퇴선언을 하고 용인에서 사실상 칩거에 들어갔다. 그런 그를 다시 세상 밖으로 불러낸 건 2009년 미국 기타 전문 회사 펜더로부터 헌정 기타를 수여받은 일이다. 에릭 클랩턴, 제프 벡, 에디 반 헤일런 등 기라성 같은 음악인들만 받았다는 그 기타다. 세계에선 여섯 번째, 아시아에선 처음이라는 펜더 기타 헌정. “마치 신의 선물 같았어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계시라고나 할까.” 그는 ‘신의 부름’이라는 그 사건 이후 또 다른 삶을 시작했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무엇보다 록 음악이 태동된 본향으로부터 이어진 그에 대한 관심이 놀랍기만 하다. 미국 음반사 ‘라이트 인 디 애틱’은 2011년 사이키델릭 록 모음집과 그가 제작한 김정미의 ‘나우’를 발매한 데 이어 ‘신중현과 엽전들’ 1집을 CD로 제작해 현지 시장에 내놓았다. 지난해 9월엔 미국 음반사의 초청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무대에도 섰다. 오는 10월 그 음반사의 초청으로 같은 장소에서 재공연도 예정돼 있다. 칩거에 들었던 황혼의 음악인을 다시 일으켜 세운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좀처럼 뒤돌아볼 줄 모르는 천성 때문인 것 같아요. 음악 하는 사람은 먼저 치열한 수양을 통해 실력을 쌓아야 하고 무엇보다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요즘 팬들을 몰고 다니는 젊은 아이돌 가수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인기가 하늘을 찌를 것 같지만 실력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상누각이지요.” 실제로 신중현이 ‘6현의 연금술사’라는 별명을 얻게 된 바탕엔 뼈를 깎는 수행과 노력이 있다. 미8군 데뷔 전 기타 교습서며 주한 미군방송 AFKN을 통해 접한 곡들을 손이 갈라지도록 연습했다. 1960년대 초반엔 해군 군악대장을 지낸 이교숙 선생을 사사하며 화성법을 배웠고 그 덕에 작곡에 천착했던 것도 사실이다. 약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 중 세 손가락으로만 연주하는 ‘3·3주법’이며 5음계를 적용한 화성법이나 곡 편성도 전 세계에서 그만이 할 수 있는 독창적인 기법으로 소문나 있다. 그러면 그가 말하는 철학은 또 무엇일까. 놀랍게도 노자와 장자 이야기를 불쑥 꺼낸다. ‘대마초 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두 살 연하인 부인 명정강씨가 가져다준 노자와 장자 책은 그의 음악과 인생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낮은 자세로 살다 보면 다칠 게 없어요. 책을 보면서 마음을 비울 때 많은 것을 얻게 됐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세상에 많은 도움을 주면서도 낮은 데로 묵묵히 흐르는 물을 이길 것은 없지 않습니까.” 그에게 낮음의 철학을 깨우치게 한 책들을 소개한 부인은 미8군 시절 만난 여성 그룹 드러머 출신. 록밴드 시나위의 리더인 큰아들 대철, 기타와 키보드에 모두 능한 둘째 아들 윤철, 드럼 스틱을 잡은 셋째 석철은 모두 아버지 신중현의 길을 따르고 있는 내로라하는 음악인들이다. 4부자는 지난해 12월 함께 공연 무대에 서기도 했다. “대견합니다. 돈벌이에 매달리지 않는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게 걱정스러우면서도 흐뭇하지요.” 모두가 부러워하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실력자라는 세 아들을 포함해 가족들에겐 못난 가장이자 아버지였다고 말하는 신중현. “지금은 떨어져 사는 부인과의 사실상 별리도 음악에 대한 고집 때문이었다”는 말을 전하는 그의 얼굴 표정이 어두웠다. 그 숱한 히트곡과 스타들을 만들었으면서도 드러난 스캔들 한 번 없었다는 그의 꼿꼿하고 고집스러운 음악 인생이 고스란히 읽히는 대목이다. 그가 남은 생애에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평생을 받쳐 천착했던 한국적인 음악이다. 그래서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미인’과 ‘아름다운 강산’을 입에 올린다. 각설이 타령조를 록에 얹은 ‘미인’과 국악풍의 전설 같은 노래. 그토록 열정을 쏟아 만들고 세상을 향해 외쳤지만 번번이 외면받았던 노래들을 요즘 젊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고 다시 찾아 불러 신이 난단다. 요즘은 자신의 음악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정리하는 작업에 매달려 있다. 작은 공연을 생중계할 수 있는 공연장 만들기도 한창이다. 6가닥의 기타 줄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아 살았고, 또 그렇게 살아갈 노장의 버팀목은 철석같은 의지일 것이다.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미주통신] 담배 한 개비 무려 2억원에 팔렸다

    담배 한 개비가 무려 2억 원이 넘는 금액으로 팔려 화제가 되고 있다고 미 언론들이 2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물론 일반 크기의 담배는 아니다. 이 담배는 지름만 1m 크기에 길이가 5.8m나 나가며 무게만 725kg이 넘는 거인 담배다. 이 담배는 미국 플로리다 주에 있는 한 특수 담배 제작소에서 전시회 등에 사용하려고 제작한 것이나 익명을 요구한 해외의 수집가에게 2억 7백만 원에 팔렸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이 담배의 제작에는 무려 1만 6천 개 이상의 담뱃잎이 사용되었으며 이는 일반 담배 2만 5천 개비를 만들 수 있는 양이라고 제작자는 밝혔다. 또한, 이 담배를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해 400kg이 넘게 나가는 나무로 만든 특수한 포장 케이스도 함께 제작되었다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하지만 ‘거인’이라고 자체 이름이 붙인 이 담배는 워낙 거대한 크기라서 쉽게 피어볼 수가 없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적어도 이 담배를 피우려면 월남전 때 사용했던 화염방사기로 불을 붙이고 제트 엔진 정도의 흡인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언론들은 덧붙였다.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권익위원장에 이성보 서울중앙지법원장 내정

    권익위원장에 이성보 서울중앙지법원장 내정

    이명박 대통령은 7일 김영란 전 위원장의 사퇴로 공석인 국민권익위원장(장관급)에 이성보(56) 서울중앙지법원장을 내정했다. 이 내정자는 1984년 법관으로 임용된 이후 사법연수원 교수, 법원장 등을 두루 거치면서 약자와 소수자 배려에 무게를 두는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판결을 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고법에 근무할 때는 월남전 참전 군인 가족의 고엽제 후유증 사망 인정 신청에 대해 고엽제와 당뇨병, 심근경색 간 인과관계를 받아들여 공무상 질병으로 결정했다. 장애인 단체에 십수년째 후원금을 납부하는 등 소외 계층에 대한 관심이 높고 환경 분야와 공정거래 등 사회 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과의 소통을 중시하고 조직 내 신망이 두텁다.”면서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큰 틀에서 국민의 권익을 도모하는 위원장의 소임을 충실히 감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으로는 부인 문수애(56)씨와 2남이 있다. ▲부산 ▲경기고, 서울대 법대 ▲사시 20회(연수원 11기) ▲서울동부지방법원장,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청주지방법원장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월남전참전자회 48주년 기념식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회장 우용락)는 12일 오후 2시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에서 ‘월남전 참전 48주년 기념식 및 국가안보 결의대회’를 개최한다. 안보 관련 결의문을 채택하고 베트남 다문화 가정을 돕기 위한 양부양녀 결연식도 갖는다.
  • 참전유공자 위로금 지자체 생색내기용?

    기초지방자치단체들이 참전 유공자들에게 특별위로금을 새로 지급하거나 기존 금액을 올리고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보훈단체를 끌어안으려는 의도지만 위로금인지 막걸리값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적어 생색내기용 선심성 행정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11일 전국 지자체와 보훈단체 등에 따르면 경기 구리시는 내년부터 6·25전쟁과 월남전 참전 유공자들에게 특별 위로금을 지급하기 위한 조례 개정안을 최근 입법 예고했다. 6·25전쟁 참전 유공자는 매년 6월 20일에, 월남전 참전 유공자는 매년 7월 20일에 3만원씩을 받게 됐다. 구리시에는 현재 458명의 6·25전쟁 참전 유공자와 551명의 월남전 참전 유공자들이 산다. 이에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8월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매월 3만원씩 지급하는 참전 유공자에 대한 명예수당을 2014년까지 5만원으로 인상하고 애국지사 44명에게는 보훈 예우 수당 명목으로 매월 10만원씩 새로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보훈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또 현재 1만 8800명에 달하는 3·1절, 8·15광복절 등 각종 기념일 위문 대상자도 내년부터 매년 2000여명씩 늘리고 3만~5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최성 고양시장도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6·25전쟁 당시 금정굴에서 희생된 민간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역사평화공원 조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시 집행부 발의로 제정한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이를 반대해 온 보훈단체 관계자들을 위해 68세 이상 참전 유공자 4100명에게만 지급해 온 매월 3만원씩의 보훈수당을 65세 이상 국가유공자 7900명에게 확대 지급한다고 밝혔다. 이 밖에 경남 남해군이 참전 유공자의 명예수당을 연간 36만원에서 60만원으로, 사망 위로금을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국가수호정책연구소 백동일 소장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애쓴 유공자들에게 위로금을 주는 것은 고맙지만 대선을 앞둔 시기에 소액을 나눠 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면서 “지급 기준을 전국적으로 통일하고 자긍심을 고양할 수 있는 방안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봉기자 hsb@seoul.co.kr
  • 88개국 장교 ‘제2 맥아더’를 꿈꾸다

    88개국 장교 ‘제2 맥아더’를 꿈꾸다

    “좋은 리더십은 지휘 계통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교관) 월권 아닌가요.”(학생) “그렇지 않습니다. 예컨대 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할 때 아프간 장성들이 내 부하는 아니었지만 그들을 설득해서 내 의도를 관철해야 할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 리더십이 필요한 겁니다.” 25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미국 캔자스주 ‘포트 레븐워스’ 육군 기지 내 ‘루이스 앤드 클라크 센터’ 2층 강의실. 강단에 서 있는 교관과 자리에 앉은 학생 16명 모두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1시간가량 진행된 ‘리더십 향상’ 수업은 학생들이 하도 불쑥불쑥 질문을 해대는 바람에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수업이라기보다는 토론장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람보’와 같이 덩치가 큰 미군의 이면에 이런 학구적 면모가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미 국방부는 이날 185년 역사의 포트 레븐워스 취재를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등의 외신 기자 16명에게 허용했다. 국내 언론 중에는 서울신문 등 2개사가 초청받았다. 서부 개척 시대의 교통 요충지에 설치돼 미시시피강 서쪽에서 가장 오래된 미군 기지로 꼽히는 포트 레븐워스는 교육, 교정, 보훈 등의 다양한 기능을 갖춘 미 육군 유일의 다목적 기지로,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1만 2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장교 교육의 요람’으로 불리는 129년 전통의 육군 지휘참모대학(CGSC)과 제병협동본부(CAC), 137년 전에 지어진 미국 최초의 연방교도소(USDB),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버금가는 대규모 국립묘지 등이 모두 포트 레븐워스 안에 있어 ‘미군 기지의 전설’로 불린다. ●北·中·시리아 장교들에겐 개방 안 해 미 육군 유일의 영관급 재교육 기관인 지휘참모대학은 장군을 꿈꾸는 장교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엘리트 코스다. 짧게는 3주에서 길게는 2년간 이곳에서 지휘관이 반드시 갖춰야 할 리더십과 전술, 교양 등을 연마한다. 지휘참모대학의 ‘역사관(官)’인 캘빈 크로는 기지 내 2층 집들을 가리키면서 “이곳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교육받을 때 살던 집이고 저곳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이 기거하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내로라하는 선배 장군들의 숨결을 느끼면서 현재 1300여명의 장교들이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지휘참모대학은 외국 장교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한다. 기지 안에는 외국 국기가 현관에 꽂힌 주택들이 많다. 현재 한국 등 88개국의 장교 120여명이 미국 장교들과 섞여 교육을 받고 있다.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바레인 국왕과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등이 장교 시절 이곳을 수료했다. 한국에서는 ‘월남전 영웅’ 채명신 장군과 김동신 전 국방장관 등이 이곳을 거쳤다. 지휘참모대학은 북한, 시리아, 중국, 리비아 등에는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민주화 이후 교육생을 받고 있다. 최근 독재 정치가 종식된 리비아는 몇 년 내 교육에 참가할 수 있을 전망이다. 지휘참모대학의 외국군 장교 프로그램 디렉터인 짐 페인은 “중국은 아직 공산국가이기 때문에 교육생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해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페인은 외국 장교들을 교육생으로 초청하는 이유에 대해 “미국식 가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솔직하게 답변하기도 했다. 민간과 군을 통틀어 연방 차원으로는 가장 오래된 교도소이자 미 육군 유일의 중범죄자 교도소(레벨3)인 연방교도소에는 살인과 성폭행 등 5년형 이상의 범죄를 저지른 군인 453명이 수감돼 있다. 위키리크스에 군 기밀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브래들리 매닝 일병도 이곳에서 독방 생활을 하고 있다. 제병협동본부 사령관 참모장인 핏 그랜드는 “수감자의 62%가 성폭행 범죄자들”이라면서 ‘분노 다스리기’ 등의 정신 치료와 종교 의식 등 37개에 이르는 교정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랜드 참모장은 “해외의 미 육군 교도소는 한국과 독일에만 있다.”면서 3개월 미만 미결수가 수감되는 교도소(레벨1)들이라고 설명했다. ●기지 내 국립묘지엔 남부군 장병 비석도 2만 2000여구의 유해가 묻힌 기지 내 국립묘지는 알링턴 국립묘지가 너무 먼 유족들이 선택하는 곳이다. 오랜 기지의 역사를 방증하듯 묘지에는 남북전쟁에서 전사한 남부군 장병들의 비석들도 간혹 보였다. 이날 오후 4시 루이스 앤드 클라크 센터 강당에서는 쿠웨이트에 9개월간 파병되는 헌병 35명에 대한 환송식이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행사 중 단상의 대형 스크린에 35명의 스냅사진을 파노라마식으로 팝송과 함께 ‘상영’함으로써 영화 같은 뭉클함을 연출했다. 헌병대장은 연설을 통해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묵묵히 일하고 개인이 아닌 육군의 이름으로 일해 달라.”고 당부했다. 장병들이 부동자세로 내뿜는 군가가 강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포트 레븐워스(캔자스주)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죽을 때까지 독도 지키겠소… 日이 절대로 넘보지 못하도록”

    “죽을 때까지 독도 지키겠소… 日이 절대로 넘보지 못하도록”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한·일 양국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14일 서울신문이 ‘독도 지킴이’로 불리는 김성도(73·울릉군 울릉읍 독도 안용복길3)씨를 단독 인터뷰했다. 월남전 참전 용사이기도 한 김씨는 울릉도에서 태어난 3대째 뱃사람이다. 1970년대부터 독도에서 전복 등 수산물을 채취하며 생활하다 1991년 주소를 아예 독도로 옮기고 앞바다를 텃밭으로 삼았고 2007년엔 독도리 이장에 임명됐다. 부인과 함께 독도 서도 주민숙소에서 유일한 거주 가구로 40년 넘게 독도를 지키며 살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독도를 다녀갔다. 달라진 게 있나. -대통령이 다녀갔다고 해서 특별히 변한 것은 없다. 하지만 내가 분명히 한 게 하나 있다. 비록 늙은이지만 우리 땅 독도를 더욱 잘 지켜야 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했다. →독도 주변 해역에 일본 해상 보안청 소속 순시선이 출현하지는 않나. -불과 5~6년 전만 해도 독도 인근에서 종종 목격됐으나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우리 경비 함정이 독도 해역에 추가 배치됐기 때문으로 안다. 하지만 독도 먼바다에는 자주 출현한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생활은 어떻게 하나. -고무보트를 이용해 물고기와 소라, 전복 등을 잡는다. 매월 이장 수당 20여만원을 받고 있고 경북도청에서 생활비 100만원 정도를 지원해 줘 큰 힘이 되고 있다. →독도 영유권 강화를 위해 상주 거주민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하루빨리 이웃이 생겼으면 좋겠다. 독도 주민숙소도 증개축돼 많이 넓어졌다. 주민숙소에 입주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독도에서 벌어 먹고살 수 있는 길이 막막하다. 누구나 독도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은 곤란하다. 그래서 대책이 있어야겠지. →바람이 있다면. -죽을 때까지 아내와 함께 독도를 지키는 것밖에 없다. 일본이 절대로 넘보지 못하도록…. 독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70년대 경제발전은 월남 파병 대가 참전수당, 최저생계비까지 올려달라”

    “70년대 경제발전은 월남 파병 대가 참전수당, 최저생계비까지 올려달라”

    윤창호(66) 월남전참전용사회 사무총장은 “정부는 참전 용사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오늘날 고속도로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월남전 참전용사들 덕분”이라고도 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8년부터 1970년까지 2년여에 걸쳐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월남 파병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받은 돈을 여기에 투입했다는 것이다. 윤 사무총장은 “이 때문에 경부고속도로 건설 이후 일군 경제 발전은 전우들의 목숨과 맞바꾼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윤 사무총장은 “먹고살만 하니까 참전 용사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는 것 같아 아쉽다.”면서 “정부의 보훈제도도 6·25 참전용사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월남전 참전용사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월남 파병 당시 정부는 ‘돌아오면 영웅으로 예우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모두 감언이설이었다.”고 돌이켰다. 해외파병 수당까지 정부가 떼먹었다는 것이다. 그는 “파병 당시 전투수당은 병장 기준으로 1년에 250달러였는데, 실수령액은 54달러에 그쳤다.”면서 “정부가 80%나 떼갔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필리핀이나 미군들의 수당은 우리보다 10배 이상 많았다.”고 덧붙였다. 윤 사무총장은 “환율, 금리 등을 모두 따져 계산하면 1년 파병 수당이 현재 2억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보훈제도와 관련, 윤 사무총장은 “월 12만원에 불과한 참전명예수당도 터무니없는 액수인데, 그나마 만 65세 이상에 한해서만 제공되는 것은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참전용사와 가족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전쟁 후유증 때문에 경제적 활동을 하지 못하는 전우가 많다. 이를 감안해 참전명예수당을 최저생계비 수준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2014년이면 월남 파병 50주년인데 기념회관은 물론 기념비조차 없다.”면서 “정부가 나서서 기념공원과 회관, 기념비라도 하나씩 만들어 줬으면 한다.”면서 “전국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혜택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월남전 참전이 돈을 벌기 위한 자발적 선택 아니었느냐.”는 물음에 그는 “처음에는 자원을 받아 참전했지만 지원자가 줄자 나중에는 정부가 강제 차출제도를 도입해 공 차며 놀다가 끌려간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라면서 “월남 파병 용사들을 용병으로 매도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무연고 호국영령에게 꽃 한송이를…

    무연고 호국영령에게 꽃 한송이를…

    ‘충효의 고장’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서울 동작구가 다음 달 6일 제57회 현충일을 앞두고 호국영령을 기리기 위한 ‘한사람 한송이 헌화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주민이 자발적으로 꽃을 구매해 국립서울현충원의 무연고 묘지에 드리는 것으로,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애향심을 높이려는 취지다. 국립서울현충원 안장자의 상당수가 한국전쟁 및 월남전 참전자로, 세월이 많이 흘러 찾는 이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무연고 묘지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구는 오는 22일까지 개인은 물론 단체나 기업체, 어린이집, 학교 등을 대상으로 헌화용 꽃 한송이(1000원) 구매 희망자를 모집하고 있다. 구 자치행정과에 기탁서를 제출한 뒤 현충원 한사람 한송이 헌화운동 계좌(우리은행 1006-401-228314)에 입금하면 된다. 구는 헌화용 꽃을 구매한 개인이나 단체에 헌화 확인증을 제공한다. 구 자치행정과(820-9116)나 현충원(826-6234)에 문의하면 상세한 사항을 안내받을 수 있다. 구는 24일 오전 10시~낮 12시 현충원 현충문 앞에서 사회단체와 주민, 어린이집 아동 등 1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사람 한송이 헌화운동 시작을 알리는 공식 참배 행사도 갖는다. 참석자들은 현충탑 헌화와 참배 행사를 갖고 의장대 시범을 관람할 수 있다. 아울러 묘역 헌화와 무연고 묘지 주변의 쓰레기를 정리하고 묘비를 닦는 정화활동도 펼친다. 문충실 구청장은 “나라사랑과 가족사랑을 다짐하고 충효의 고장 주민으로서 애향심을 키우는 뜻깊은 자리에 가족·이웃·단체·친구끼리 많이 참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내 인생경험, 아픈 청춘들에게 약이 되길”

    “내 인생경험, 아픈 청춘들에게 약이 되길”

    “사람은 태어나면 잘났든 못났든 인생의 발자취를 남기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맥락으로 볼 때 똑같은 사람인데 유명인사들은 에세이집 등 자서전을 내고 일반서민들은 자서전을 못내라는 법은 없지요.” 관악구 지원으로 제작된 이수철(77·청림동)씨의 자서전 ‘제2의 인생, 아코디언과 함께’ 서문의 일부분이다. 관악구는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독서의 해를 맞아 관내 어르신들이 지난 삶을 회고·정리하며 자서전를 출판할 수 있도록 돕는 ‘어르신 자서전 제작 지원 사업’을 벌여 최근 6명의 자서전을 출판했다고 25일 밝혔다.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서전을 통해 인생의 경험과 지식을 후손과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 나아가 독서문화 진흥에도 이바지하자는 취지에서 자서전 지원 사업을 기획했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의 주요 공약인 ‘지식문화특구 조성’의 일환이다. 65세 이상으로 제작을 희망하는 어르신에게 200만원 제작 비용과 함께 원고 교정, 구술 정리를 도와 주는 전문작가도 지원된다. 제작이 완료되면 표준도서번호(ISBN)까지 부여받아 원하는 경우 유통도 가능하다. 또 생애사 및 지역사 자료로서 구립도서관에도 보존된다. 올해 첫 사업에는 이씨 등 6명이 참가해 자신들의 인생 역정을 글로 녹였다. ‘빨치산’ 활동경력이 있는 박정덕(82·여·보라매동)씨는 ‘바람에 꽃잎은 져도’에서 평생 자신의 삶에 굴레를 씌운 이념 갈등의 비극에 대해 썼다. 권영식(76·낙성대동)씨는 ‘아름다운 삶의 흔적’에서 해병 대위로 월남전 파병에서 겪었던 고통을 기록하며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구재운(73·인헌동)씨는 ‘구주령을 넘으며’에서, 김윤철(70·서원동)씨는 ‘섬김과 봉사의 삶’에서, 배정웅(69·서림동)씨는 ‘성실과 열정의 나날들’에서 잊지 못할 자신의 인생 경험들을 풀어놨다. 한편 지난 23일에는 저자와 가족, 친지들이 모인 가운데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구는 올 하반기에도 희망자 10명을 모집해 자서전 제작을 지원할 예정이다. 유 구청장은 “자서전이라고 어렵게 느끼지만 평범한 이웃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라며 “자신의 삶을 책으로 기록하는 게 독서문화 진흥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문화운동으로까지 확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美애틀란타서 한인 총기난사 5명 사망

    美애틀란타서 한인 총기난사 5명 사망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한인 사우나에서 21일(현지시간) 밤 총격 사건이 일어나 한인 5명이 숨졌다. 주애틀랜타 한국 총영사관과 외신에 따르면 애틀랜타에서 북동쪽으로 30여㎞ 떨어진 인구 1만명의 소도시 노크로스에서 한인 강모(65)씨가 운영하는 수정사우나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강씨의 처남인 용의자 박모(54)씨가 강씨와 돈 문제로 다투다 강씨와 누나, 여동생 부부에게 총격을 가한 뒤 자신도 총을 쏴 목숨을 끊었다. 이날 밤 8시 45분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총기 1정을 수거했다. 경찰이 감시카메라를 분석한 결과 박씨는 밤 8시 25분쯤 사우나 출입문 앞 계산대에서 강씨와 언쟁하다 총을 쏜 것으로 드러났다. 강씨는 의자에 앉아 숨진 채 발견됐다. 강씨를 포함한 4명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박씨 여동생의 남편은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과다출혈로 숨졌다고 워런 서머스 현지 경찰서장이 밝혔다. 사건 당시 사우나에는 20여명이 있었으나 박씨는 가족들만 표적 사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숨진 강씨는 처가와 함께 15년 전 수정사우나를 창업해 동업 형태로 운영해 왔으나, 최근 경기침체와 경영난으로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강씨와 박씨 등이 돈 문제로 갈등을 빚는 등 가족 간에 불화가 있었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강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월남전에 장교로 참전했으며, 평소 봉사활동으로 지역 한인사회에서 명망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10만명 가까운 한인이 살고 있는 애틀랜타에서는 최근 한국 기업의 진출로 한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한인여성 인신매매와 호스트바 종업원 살인사건 등 강력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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