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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여성처럼 불쌍한 여성은 없다

    한국여성처럼 불쌍한 여성은 없다

      『한국여성처럼 불쌍한 여성은 없을 것 같다-』남성으로부터「뭇매를 맞을 듯한 소리」를 펼친다. 신학박사 김태묵(60)목사의 거침없는 결론이다. 약 1년 전부터「카운셀링」(정신위생상담)업을 개업, 갈등을 안고 찾아온 내담자(來談者)와의 정신분석적인 대담 끝에 얻을 결론이란다. 상담실 찾아오는 여성 손님들은 거의 신경쇠약증 환자 김태묵 목사는 그 학위가 말해주듯 바로 신학자이고 또 종교활동가이다.「하와이」한인교회 목사,「워싱턴」한인교회 창립, 서울 남대문교회 목사, 중앙신학교 교장, YMCA연맹 총무, 대구 신명(信明)여고 교장 등의「코스」를 주로 걸어왔다. 그 목사가「한국정신위생원」이라는 정신상담소를 개업, 사무실을 서울 중구 충무로 2가 52의 4에 있는「소피아·하우스」에 차렸다. YMCA에 근무할 때부터 젊은이들의 정신상담을 맡아 듣고 차차 그 방면의 공부를 해온 결과, 근대화병의 하나인「노이로제」를 고쳐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8·15해방과 6·25동란, 4·19와 5·16의 두 차례의 혁명 등 수차에 걸친 정치 문화의 격동기를 거친 우리 겨레는 지금 급격한 사회 변천과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정신력의 박약과 부조화로 근심 불안 번뇌 등 각종 정신장애와 절망감 좌절감에 사로잡히는 신경쇠약증에 빠져들어가고 있습니다』 「카운셀링」개업의 변(辯)이다. 『서울에는 정신장애자가 많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일례를 들면 호주머니에는 돈 한 푼도 없으면서 큰 사업을 합네 하고 다방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일종의 정신질환 환자일겝니다』 1년 동안에 약 2백 건의 상담을 받았다. 목회(牧會) 상담학의 강의를 맡고 있는 장로교 신학대학과 숭실대학 학생들의「카운셀링」을 맡아보고 또 교회의 목사들이 보내주는 신도들의 정신상담을 들었다. 상담내용의 대부분이 가정문제 애정문제의 갈등이 일으킨 정신장애, 입시 등에 실패한 중·고교학생들의 열등감과 이로 인한 부모들의 정신적 고통 등이다. 특히 기혼여성들의 대담자가 많았다. 최근에「카운셀링」한 여성 대담자의 고민 두 가지를 실례로 들었다. ① 결혼 생활을 약 20년간 해온 주부 김영숙(45·가명)씨의 경우. 원래는 국민학교의 교사였는데 10년 전에 그만두고 양장점을 차렸다. 장사는 계획대로 잘 되었다. 자연 바빠졌다. 그녀의 장사수완이 가족의 생활을 유지해 왔다. 한편 남편은 회사원이었는데 10년 전에 실업. 월급쟁이는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남편은 아내가 번 돈을 번번이 가지고 나가 사업을 한다고 뛰어 다녔으나 제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처음 5년 동안은 아내를 실업 이전과 다름없이 다루었다. 폭력도 쓰지 않았다. 그것이 5년 전부터는 아내의 일거일동에 일일이 말썽을 부리고 폭력을 휘둘렀다. 신경쇠약증에 빠진 이 주부가「카운셀링」을 받기 위해 김박사를 찾아왔다. 돈 못 벌면 열등감만 남는 남편한테 매맞고 구박 받기 일쑤 김박사의 진단 -『남편이 의처증을 나타내고 폭력을 쓰는 것은 열등의식의 발로이거든요. 5년 전까지는, 비록 실업상태에 있고 또 아내의 도움을 받았었지만 자기도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뛰어다니는 기력이 있었기 때문에 아내를 옛날과 다름없이 사랑할 수가 있었죠. 빈번한 실패로 그 기력조차 없어지고 아내에 대한 열등의식만이 남았습니다. 남편은 자기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아내에게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온 것입니다』 김박사는 그 주부를 만난 후 남편의 상담도 받았다.「카운셀링」은 내담자에게 고민거리를 모두 쏟아 놓게 한다. 내담자는 자기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확 털어놓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기의 해결방법을 발견해 낸다. 이 부부는 그 이후 다행히 원만한 가정생활로 돌아갔다. ② 일류 여대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여성 이강희(40·가명)씨의 경우. 초혼에 실패하고 재혼한「인텔리」여성인데 이혼문제를 들고 김박사를 찾아왔다. 초혼에 실패한 것은 춤바람 때문이었다. 그 초혼은 부모가 정해주는 남자와의 평범한 결혼. 십수 년을 같이 살아 오는 사이에 두 남매까지 두었다. 춤을 배우기 전까지는 그저 남자란 모두 남편과 같은 줄만 알고 지냈다. 3년 전에 춤을 배워「댄스·홀」에서 자기와 같은 나이 또래의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가 남편보다 훨씬 좋아졌다. 화끈 달아오르는 연애감정을 느꼈다. 남편과 이혼했다. 친정어머니가 준 돈 3백 만원을 가지고 그 남자와 결혼을 했다. 새 남편은 공무원이었다. 3년 동안의 새 살림을 위해 3백 만원이 고스란히 들어갔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남편이 번번이 가출했다. “그래도 무슨 정이 남았는지” 이혼계(離婚屆) 차마 못내기도 드디어 이혼을 결심, 새 남편도 그것에 동의하고 이혼신고서에 도장을 찍었다. 남은 절차는 자기의 도장을 찍어 구청에 내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이여인의 고민이 시작됐다.『그래도 무슨 정이 남았는지』그것을 구청에 낼 수가 없었단다. 신경쇠약에 빠졌다. 이 부부도 다시 평화스러운 가정으로 되돌아갔다. 애정문제의 갈등의 대부분은 여성쪽이 피해자였다. 그래서『우리나라 여성처럼 불쌍한 여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벌써 이혼을 했을지도 모를 문제들을 안고 한국여자들은 고민에 떨어지고「노이로제」에 빠진다. 요즘은 이혼들을 쉽게 한다지만 그래도 이혼이라는 것은 한국여성에게 있어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대사건이다. 여기서 생기는 마음의 갈등과 부조화가 기혼여성들을 괴롭힌다. 김박사는 반드시 결합만 시킨 것은 아니었다. 이혼을 서둘러 시킨 예도 있다. ③ 젊은 남녀가 목사의 소개로 그를 찾아왔다. 두 사람은 결혼식만 올린 부부였다. 결혼식 후 신혼여행을 어디로 가느냐고 두 사람이 대립했다. 남자는 유성온천을, 여자는 제주도를 내세웠다. 그 길로「별거생활」이 시작되었다. 이 부부는 나란히 앉아 김박사와 상담한 결과 이혼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삶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영남지방에서 다소는 알려진 승려, 법옹(法翁)스님이 박사의 선친이다. 승려의 아들이 16세에 기독교에 입신, 목사가 됐다. 미국유학(오벨린대학) 중에 제2차대전이 터지자 일어능력으로 발탁되어 대일본어 방송의 요원으로 활약, 일본제국은 궐석재판에서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여 선고문을 고향인 대구의 자택까지 보내왔다. 선고장을 들고 온 일본인이 김박사의 선친을 위로한답시고 말했단다. 일본이 이길 것이니 전승기념특사가 내리면 10년 징역으로 감형될 것이니 안심하라고. 해방 후는 미군정청 관리로 일했고 4·19 후는 YMCA 총무 자리를「쫓겨났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때까지 안 얻은 미국시민권을 갖고 정신분석학을 연구,「카운셀러」가 된 것이다. 현재는 정신병원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다. 『「카운셀링」은 그러므로 제2경제의 실천행동이 되기도 합니다』라고 상당히 확대된 포부를 피력했다. [ 선데이서울 69년 1/26 제2권 제4호 통권18호 ]
  • 남자 디자이너 그거 괜찮아요

    남자 디자이너 그거 괜찮아요

      일과(日課)는 여성 접대. 돈도 벌 수 있고 잘하면 인기명사급으로「매스콤」의「스타」가 될 수도 있다. 이런 호조건(好條件)의 남성직업이 어느 이웃나라 아닌 서울 명동의 요즘 화젯거리. 직업의 이름은「패션·디자이너」다. 자영살롱 없어도 월급 4~5만원, 선생님 경칭(敬稱) 들어가며 1월 중순 12명의 남성「디자이너」가 무더기로「데뷔」한 것이 얘기의 실마리. 30 전후의 실무출신(재단·가봉·「디자인」을 할 줄 아는)의 현직「디자이너」들인데 23명의 남녀「디자이너」가 결속한「코페드」(한국「패션·디자인」작가회의·회장 김태산)의 회원.「헬리콥터」기금모금 겸「데뷔·쇼」로 마련한 합동발표회(1월 14일 YMCA회관 강당)에서 탄생된 명사후보들이다. 이들 중 반 이상이 직영의「패션·살롱」을 가지고 있는데 양장점의 전속「디자이너」인 경우라도 월급 4만원~6만원.「선생님」의 경칭으로 불리며 독창적인「디자인」의 예술성을 간섭 받지 않는 칙사대우다. 직영의「살롱」인 경우 최소한 월 15만원의 인건비가 든다. 한 벌 1만원에서 5만원까지의 옷을 적어도 하루 두 벌 만들어 내니까 돈의 회전액이 아무리 적어도 15만원~30만원. 이것만으로 보아도 그리 작은 기업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디자이너」라는 한격 높은 호칭으로 불리는「드레스·메이커」를 찾는 여자 손님들은 옷을 옷 자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옷이 좋아야 할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위광(威光)을 위해서 댈 수 있는「살롱」의 이름도 필요하다. 여자 손님은 여자 디자이너보다는 좋아해… 필수조건 - 유식해 보여야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던가. 양장점마다 옥호(屋號)보다 더 중요한 전속「디자이너」를 고액(高額)으로 채용하고 있는 것은 그런 필요의 발명. 이를테면「디자이너」는 그 양장점의 간판 구실을 한다. 위광의 문제가 최대 관심사인 여성 고객을 끌어 모으는 데는 간판 구실「디자이너」에게 몇 가지 특기가 있어야 한다. 「매스콤」의「스타」가 된다는 것이 그 하나, 대인관계에서 느낌이 좋을 것이 그 둘, 실제로 유식해 보여야 한다는 것이 그 셋, 바느질과「디자인」도 좋아야 한다는 것이 그 넷. 여성「디자이너」라고 이런 조건을 갖추지 말라는 법이야 없겠지만 남성「디자이너」가 더욱 적격이다. 우선「매스콤」의 먹이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최초, 최선, 희소의 가치를 그들은 지니고 있는 셈이니까. 게다가 이성이라는 점에서 생기는 묘한 상상은 고객과의 대인관계를 무척 원활하게 한다. 그 쪽 분야에서 이미 대성했다고 자타공인하는 남성「디자이너」는「앙드레·김」씨. 개업 5년에「패션·쇼」도 10회를 넘겼고 얼마 전에는 미국에 3만 5천「달러」어치「디자인」수출을 했대서「매스콤」의「스타」다운 화제를 던졌다. “남자에게 매력 있게 보이려는 게 여성본능” 그러니 장사 잘될 수밖에 명성은「앙드레·김」씨만 못하지만「살롱」을 두 개나 갖고 기업으로 밀고 나가는「디자이너」가 이용렬(李勇烈)씨. 이밖에도 몇 명 있는 남성「디자이너」에게는 사실 구수한 구설(口舌)도 많았다.「시스터·보이」들이라느니 여성「패트론」이 뒤에 있다느니 하고. 사실이야 어떻든 그동안 이들 남성「디자이너」들이 이른바『해사한 여성적인 성격에 미목이 수려하고「살롱」안에는 현학적이거나「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해 놓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다분히 외설스런 소문과는 상관없이 영업으로서의 남성「디자이너」소유「살롱」에는 위광을 사랑하는 상류사회의 고객들이 들끓고 있다. 최근 명동에「패션·살롱」을 연 B씨는 남성「디자이너·붐」을 꽤「아카데믹」하게 풀이한다. 『남자에게 매력 있게 보이려는 것이 여성의 본능이란다면 남성「디자이너」의 영업이 잘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죠. 아무래도 여성미(女性美)제작에는 남자가 더 낫지 않을까요. 여성미를 보는 남자의 직관, 대담성에 여성고객이 끌리는 겁니다』 어쨌든「패션·디자이너」라는 것도 어엿한 남성이 가져서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직업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긴 것만은 확실하다. 복장(服裝)학원엔 남자수련생 수두룩, 거의 대학 나온 인텔리 앞서 든「코페드」회원 12명 밖에도 서울에는 명함에「디자이너」라는 직함을 쓰는 현역 남성「디자이너」는 20여명. 각 복장학원에서「패션·디자이너」의 대망을 품고 공부하고 있는 수련생까지 합치면 대단한 숫자가 된다. 국제(國際)복장학원(원장 최경자)만 해도 지금「디자이너」수련중인 남성이 60여명. 대학 졸업생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전공과목도 다양해서 정외과 체육과 국문과 공과 생물학과 등. 공부하는 열의도 여학생보다 대단하다. 대성해야겠다는 결의가 아무래도 여성보다 굳기 때문인 것 같다는 최경자씨의 말. 지난번「코페드」의 자선「패션·쇼」의 기획진행도 남성회원들이 전담했다는 얘긴데 10여 년간 발표회 뒷얘기에 익은 서수연(徐壽延)씨(코페드자문위원)는 남성의 우수한 기획력을 알았다고 말한다. 원래 합동발표회란 것은 작품이 비교를 당하기 때문에 발표자들간에 잡음이 나게 마련이고 대개는 발표 후에「그룹」자체가 와해되는 것이 보통. 그런 것이 이번「코페드」만은 무사하게 발표도 끝내고「그룹」활동도 계속하겠다고 결의를 굳히고 있다는 상당히 희망적인 서씨의 논평이다. 68년 무역박람회「패션·콘테스트」특선 경력이 있는 손일광씨(「코페드」회원)도 그런 민완의「디자이너」. 『한국에도「피에르·카르당」만한 대가가 나올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우리 젊은「디자이너」들은 진짜 예술활동으로서의 작품을 만들고 있거든요』라고 기염이 대단하다. 이런 남성들의 움직임은 여성「디자이너」에게는 상당한 위협일 수도 있다.「패션」에 관한 한 여성전용(專用)이라고 마음 놓고 있을 시대는 지나갔다는 얘기니까. 어쩌면 몇 년 후에는 여성「디자이너」가 희소가치로서「매스콤」의 먹이가 되는 희극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선데이서울 69년 1/26 제2권 제4호 통권18호 ]
  • 5분 데이트 (17) - 정순자

    5분 데이트 (17) - 정순자

      『보통 퇴근시간이 밤 10시, 10시 반이니까「데이트」할 시간이 없어요.「올드·미스」로 늙기 꼭 알맞죠?』 우선 쾌활하다. 자칫하다간「왈가닥」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러나 정순자(23)양 자신은 『보기하곤 달라서 집에 들어가면 요조숙녀가 되죠』 수산청장 비서실 근무 1년. 고향은 제주도이나 태어나긴 일본의「오사카」. 해방된 다음 다음해, 그러니까 정양이 두 살 때 귀국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넜다. 『일본서 살던 기억,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어머님이 아직도 순 일본식이라 꽃꽂이며 예의범절, 손님접대 등 어머님께 배우는 게 많죠』 광주여고를 거쳐 수도여사대(首都女師大) 영문과 졸업. 2남 3녀의 셋째. 키 166cm에 54kg의 후리후리한 몸매. 올해엔 결혼을 꼭 해야 할 텐데 아직 애인이 없어 큰일이라는 정양은 『상대방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남자면 OK. 제 키보다 적어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마음은 커야죠』 끼고 있는 진주반지가 눈에 띄어 누가 선물한 것이냐니까, 『우리 수산청에서 기른 양식진주예요. 예쁘죠?』 하며 슬쩍 PR. 월급을 타면 봉투째 어머님께 상납(上納)하지만 하루 5백원씩 타다 쓰고 또 옷까지 해 입으니 어머님이 항상 적자라고. 「잉그리드·버그만」「제니퍼·존스」등 옛 여배우들이 제일 좋고 음식은 단연 전골. 전골 만드는 솜씨도 1류「쿡」뺨칠 정도라고. 무슨 향수를 쓰냐니까 『아직 젊은데 향수 쓸 수 있나요?「젊음」이란 향수 뿐이죠』 ※ 뽑히기까지 수산청에서 후보로 뽑아놓은 아가씨는 무려 11명. 우선 이중에서 8명을 추려내고 심사위원단을 구성,「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 건물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면접 채점. 결국 세 아가씨를 선발했는데 이중에서 1명을 고르는 덴 30분을 요했다. 결국은 정양이「눈이 커서」「미스·수산청」의 영광을 차지. [ 선데이서울 69년 1/26 제2권 제4호 통권18호 ]
  • [8·31 대책이후] 중개·이사업체 ‘불똥’… 폐업 속출 우려

    [8·31 대책이후] 중개·이사업체 ‘불똥’… 폐업 속출 우려

    ‘8·31대책’불똥이 엉뚱한 쪽으로 튀고 있다. 부동산 거래가 ‘올스톱’되면서 중개업소, 이사·인테리어업체, 법무사 등이 된서리를 맞고 있는 것이다.‘거래 실종’은 당분간 계속될 예정이어서 관련 업계의 폐업 속출마저 우려된다. ●중개업소,“두달 동안 겨우 전세 한 건 성사” 주택거래신고지역으로 지정된 서울 강남구에서 지난 6,7월 거래된 주택은 각각 598건과 259건에 불과했다. 이 지역 부동산중개업소는 2050개. 한달 내내 0.13건을 거래한 셈이다.1년 내내 가야 매매계약은 1건 정도 쓴다는 얘기다.7월 분당 신도시 주택거래는 99건이고 중개업소는 1053개가 몰려 있다.1년 내내 아파트 한 건 거래하기 위해 피 튀기는 경쟁을 벌여야 하는 셈이다. 신고지역으로 지정된 9곳 모두 사정은 비슷하다. 신고지역에서는 의무적으로 실거래가로 신고해야 하므로 세금이 올라가고 자금이 노출돼 당사자들이 거래를 꺼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내년부터는 전국 모든 지역에서 실거래가신고가 의무화되므로 신고지역지정 효과가 나타나 거래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서초구 반포동 건설공인 김석중 사장은 “IMF 때에는 가격이 폭락했지만 팔아달라는 사람이 많았고 낮으면 낮은 대로 사는 사람도 많아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면서 “지금은 매물도 없고 매수자도 나타나지 않아 7∼8월에는 매매를 한 건도 성사시키지 못해 수입이 10분에 1로 줄어들었다.”고 울상을 지었다. 용산구 동부이촌동 미투리공인 관계자는 “8월에는 겨우 전세 한 건 성사시켰다.”면서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지만 그나마 나오는 매물의 경우 집주인이 한 푼도 낮춰 팔 생각이 없다고 고집해 당분간 매매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전·월세라도 열심히 뛰어야 하지만 그마저 거래가 활발하지 않아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중개수수료의 경우 매매는 전체 거래금액의 0.4%, 전세는 0.3% 수준. 매매가는 전세가보다 3배 가량 높기 때문에 거래가 실종된 만큼 중개업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수입 감소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이사 업계는 구조조정(?) 규모가 영세한 이사업계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월급받는 직원들을 일당으로 돌려야 하는 실정이다. 서울 풍납동 삼정이사 고병조 사장은 “원래 보름이나 한달전에는 예약받아 다음달 일정이 나오는데 9월 예약률은 전달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면서 “8월 들어 하루 50통씩 걸려오던 전화가 요즘은 다섯 통도 안된다.”고 얼굴을 찌푸렸다. 대치와 잠실 지역에서 20년째 이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송파구 문정동 통인익스프레스 이상복 사장은 “8월에도 수익이 안나 지난 6월에 남긴 500만원을 모두 비용으로 까먹었다.”면서 “더이상 적자를 감당할 수 없어 월급 직원 4명중 3명은 일당으로 돌렸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어 “하루에 25일 일하는 사람들이 6∼7일만 일하고 있다.”면서 “돈 있는 사람들이야 세금 좀 더 내더라도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들에게 의지해 먹고 살던 우리 같은 사람들의 피해는 대책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법무사·인테리어도 폐업 속출 대한법무사협회는 지난 8월 폐업신고를 한 법무사가 8곳에 달한다고 밝혔다. 대치동 양재만 법무사 관계자는 “7,8월엔 등기업무가 평상시 3분의 1도 안되고 8월에는 두 건을 했다.”면서 “그나마 이것도 봄에 송파쪽에 영업사원을 한명 영입해 두었는데 최근 미니신도시 호재로 송파·거여쪽이 뜨면서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송사업무도 병행하는 법무사들은 그래도 괜찮지만 등기만 전담하는 법무사들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전했다. 목동 신시가지 김기태 법무사 관계자는 “등기업무가 하루 10건은 보통이었는데 7월 이후에는 거의 일이 없다.”면서 “기준시가에서 실거래가로 과세 기준이 바뀌면 취·등록세가 두배 정도 인상되기 때문에 향후에도 거래 한파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한숨지었다. 한편 강남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일대에서 10여년간 인테리어 사업을 해온 K종합인테리어 관계자는 “7월달엔 내리 놀았고 8월달엔 전셋집 하나 일했다.”면서 “인테리어업계는 경쟁이 심해 가뜩이나 힘든데 1년만 더 해보고 안되면 문닫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일대 10여군데 업체들이 모두 같은 사정이라고 덧붙였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타악과 재즈의 달인 류복성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타악과 재즈의 달인 류복성

    한 거장이 있다. 짧은 백발, 까만 반팔 티셔츠에 공수특전단 군복바지를 늘 입고 다닌다. 얼핏 악동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눈을 지그시 감는다. 양미간을 찡그리더니 하얀 이를 살짝 드러낸다. 오른손 왼손, 어깨가 절로 흔들린다.‘두르르타타 두르르타타’ 봉고와 콩가, 그의 무릎앞에 놓인 원초적 ‘타악’을 인정사정없이 불러낸다. 심장이 박동한다. 다들 생명의 날개를 달고 춤을 춘다. 한바탕 신명과 환희에 빠져들게 한다. 류복성(64)씨.1970년대 TV화면에 봉고라는 작은 타악기를 들고나와 미친 듯 두드리던 사내. 암울하고 가난했던 시절, 그의 열정적 연주를 보고 어깨를 들썩이며 잠시나마 위안을 받기도 했다. 또 있다.71∼89년까지 최장수 인기프로였던 TV드라마 ‘수사반장’의 타이틀곡을 제작한 추억의 주인공이다. 얼마전에도 영화 ‘살인의 추억’ 오프닝곡에서도 스릴넘치는 봉고연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평론가들은 류씨를 “심장으로 연주하는 타악기의 거장”이라고 곧잘 표현한다. 또한 한국 재즈계의 살아 있는 역사, 봉고와 드럼 연주의 1인자라는 자리매김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 어떤 즉흥연주에도 생명력과 아름다운 선율로 혼을 빼는 감동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류씨 자신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태초의 음악은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라는 일념으로 47년 재즈인생을 살고 있음을 자부한다. 지난 24일 밤 9시.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의 재즈카페 ‘천년동안도’ 2층.20∼30대 연인들, 단체 입장한 회사원, 그리고 외국인 남녀 등 약 300명의 관객들로 꽉 차 있었다. 이들은 ‘류복성과 재즈 올스타즈’의 연주에 맞춰 테이블에 앉아 몸을 흔들고 있었다. 특히 류씨가 박진감 넘치는 드럼과 봉고 연주를 할 때면 무아지경에 빠진 듯 환호한다.‘수사반장2’를 새로 선보이자 한동안 박수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류씨는 이날도 여전히 까만 티셔츠에 군복바지 차림. 연주 도중 갑자기 음악을 멈추는가 하면 기상천외의 물건(?)을 흔들며 코믹한 연기를 자주 펼쳐 많은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입장객들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시선을 무대에 고정시켜 온몸으로 흔들흔들 즐긴다.‘혼자걷는 명동길’ 등 추억의 노래와 ‘수비두비돔’이라는 즉흥곡이 나올 땐 더욱 그랬다.“우리는 만났지 재즈클럽에서/처음 본 순간 너무 좋았지/열받는 사람 신나는 사람/여기 다 모여 노래를 부르자.” 그렇게 2시간 동안 류씨 연주에 흠뻑 빠진 관객들은 좀처럼 떠나줄 몰랐다. 한 종업원은 “요즘 날씨가 선선해지고 가을이 다가와서 그런지 재즈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류복성씨 공연때에는 추억의 재즈팬들이 많이 찾는다.”고 귀띔했다. 류씨는 매주 목요일 저녁 이곳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공연이 끝난 이튿날 서울 광진구 구의동 ‘류복성 드럼&퍼커션 스쿨’(www.mrbongo.co.kr 02-3435-7827)에서 별도의 인터뷰를 가졌다. 류씨는 만나자마자 음악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매스컴에서 각광받는 요즘 세태를 보노라면 정말로 한심하다고 쏘아붙인다. 상업성만 좇는 매스컴 관계자들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재즈는 전세계에 팬들을 확보한 지구촌 최상급 음악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전설적인 재즈 가수 루이 암스트롱의 불멸의 히트곡 ‘What a wonderful world’의 가사를 보더라도 “이 세상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은 없다.”고 노래하고 있지 않으냐며 재즈 선율의 감미로움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니 어쨌든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갈 뿐”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어쩌면 재즈계의 거장으로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혜안과 고달픔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뒤 제자 몇명이 왔다. 이들은 류씨에게 깍듯이 인사를 한 뒤 각자 악기 앞에서 곧바로 연습에 몰입했다. 가끔 귀에 들리는 소리가 거슬렸던지 류씨는 “그게 아니야, 이거야. 두리두리 바라밤, 오케이.”하면서 지적해 준다. ‘류복성의 드럼&퍼커션스쿨’은 류씨의 타악인생 45년을 기념해 2년전 문을 열었다.5개의 드럼부스와 합주공간에서 취미반 입시반 프로반 등을 마련,1대1 레슨을 시키는 사실상 국내 유일의 곳. 류씨는 “그동안 배우고자 하는 요청이 많았지만 제대로 보답하지 못했다.”면서 이제 여생에 좋은 후배들을 많이 양성하는 일에 더욱 신경을 쓸 생각이라고 재즈사랑과 고생담을 회고했다. 류씨는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부터 부모가 아무리 말려도 동네에 찾아온 풍물패를 쫓아다닐 정도의 음악에 미쳤다. 타고난 끼 덕에 꽹과리와 징소리는 그에겐 늘 즐거움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우연히 미8군 방송(AFKN) 라디오를 통해 ‘스바라두바 스두비디바라’라는 음악을 접했다. 듣는 순간 리듬에 맞춰 몸이 절로 움직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일즈 데이비스 퀸텟’이 캐논볼 애덜리(알토 색소폰), 존 콜트레인(테너 색소폰) 등과 함께 연주한 ‘Straight no chaser(58년)’라는 곡이었다. 이 노래로 인생이 확 바뀐다. 바로 저런 음악, 재즈연주자의 길을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재즈를 배울 만한 곳이 없었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큰집이 있는 창신동으로 갔다. 때마침 동북고등학교에서 밴드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는 한 달음에 달려갔다. 오디션에 거뜬히 합격했다. 공부에는 조금도 흥미가 없었고, 늘 학교건물 지하에 있는 밴드부에서 살았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맨날 행진곡풍 음악만 연주해 밴드부를 뛰쳐 나왔다. 며칠뒤 우연히 종로 거리를 지나는 길에 미8군 쇼를 보게 됐다. 그 길로 미8군 쇼단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단장을 쫓아다니며 짐도 날라주고 허드렛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좀처럼 드럼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루는 단장이 ‘버디 리치’라는 드러머가 쓴 드럼 교본을 빌려 줬다. 곧바로 문방구에 달려가 오선지 공책을 하나 사서는 통째로 옮겨 적었다. 이때부터 하루 20시간을 연습했다. 그후 악단을 여기저기 찾아 다니면서 드럼을 쳐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경험부족이란 이유로 받아 주지 않았다. 얼마뒤 전국 드럼경연대회에 우연히 출전했다. 여기에서 많은 박수갈채를 받게 됐고, 이때 고 이봉조 선생과 만나 프로 악단에 입문하게 됐다. 그러던 중 67년 워커힐호텔에서 재즈 드러머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호텔 ‘힐탑바’라는 재즈클럽이었다. 여기에서 색소폰 연주자 정성조씨를 만났다. 둘은 곧 ‘류복성과 재즈 메신저스’라는 팀을 만들어 재즈 전도에 나섰다. 또한 이태원의 재즈클럽 ‘올 댓 재즈’에도 자주 나갔다. 당시 이곳은 재즈음악의 산실로 재즈를 한다는 사람들은 죄다 모이곤 했다. 류씨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인근 미군부대 앞 중고품 가게에서 월급을 몽땅 털어 재즈 LP판을 샀던 기억 등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이후 70년대 들어 나미의 ‘영원한 친구’, 송대관의 ‘해뜰날’ 등 수많은 대중음악 타악기 연주자로 참여해 돈을 벌었다. 그러나 사운드 엔지니어나 편곡자들과 마찰이 자주 생겨 나중에는 때려 치우고 말았다. 90년대 들어 나이 쉰을 넘긴 뒤에도 ‘재즈 알리기’를 멈추지 않았다.92년의 ‘대한민국 재즈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97년 ‘서머 재즈 페스티벌’,99년 ‘아듀 재즈 콘서트’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공연을 기획, 국내의 재즈 뮤지션들을 한 곳에 불러모으는 성과를 거둔다. 잠시 창밖을 응시하던 류씨는 “이제 그만하자.”고 했다. 나이를 의식한 듯 자신의 재즈사랑을 이어줄, 거장의 바통을 이어갈 후배를 그리워하는 눈치였다. “지난 세월, 정말 미친 듯이 살았습니다. 세상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왜 그래요?(침묵) 가슴을 뻥뚫는 음악, 필요해요 안해요?”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1년 용인 출생 ▲1958년 미8군 쇼단 입단 ▲61년 이봉조 악단 입단 5년간 연주 ▲66년 길옥윤 재즈올스타즈와 연주활동 ▲67년 류복성과 재즈메신저스, 정성조씨와 창단 ▲68년 세계적인 타악인 아기콜론(미국)에게 사사 ▲71∼89년 MBC 수사드라마 수사반장 타이틀곡 봉고연주 ▲78년 류복성과 신호등(라틴코리아나)창단 및 출반 ▲87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류복성 재즈올스타즈 협연 ▲88년 한강 국제재즈페스티벌 출연 ▲92년 제1회 대한민국 재즈페스티벌 연출기획 ▲97년 여름재즈페스티벌 연출기획 ▲2000년 각 대학 특강 및 군악대 특강 ▲03년 재즈인생 45주년 기념 류복성 재즈콘서트 ▲05년 현재 류복성 라틴재즈 올스타즈 활동
  • 세제개편안 시행까지 ‘곳곳 복병’

    세제개편안 시행까지 ‘곳곳 복병’

    정부가 지난주 발표한 세제 개편안의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세부담이 늘어날 도시서민이나 근로자뿐 아니라 재계와 야당, 이익단체들까지 반대하는 등 곳곳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세수부족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설명했지만, 경기회복이 불투명한 시점에서 가계소비를 억누르게 될 개편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이다. 부동산 대책에만 신경쓰느라 개편안을 졸속으로 마련했다는 비판도 거세다. 환율을 잘못 예측한데 따른 세수 부족분을 소주세와 같은 간접세의 증대로만 손쉽게 만회하려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런데다 정부는 소득세 면세점을 고정시켜 근로소득세를 매년 올리려는 중장기 조세개혁방안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서민들이 ‘봉’이냐 재경부가 소주세율을 72%에서 90%로 올리는 배경을 설명하면서 음주의 사회적 비용이 15조 5000억원에 이른다고 밝히자 “경기가 회복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담뱃값 인상에 반대해 온 재경부가 갑자기 국민들의 건강을 걱정하느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네티즌들은 포털 사이트에 글을 올려 “서민들로부터 쉽게 세금을 거두려 하지 말고 고소득 탈세자에게 세금을 거두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관계자는 “간접세를 올리는 게 세수증대에는 최상의 처방이지만 시기적으로 좋지 않은 것 같다.”고 문제점을 시인했다. 소주세가 인상될 경우 식당에서 받는 소주 1병당 가격은 3000원에서 3500원으로 오를 전망이다. 이 경우 식당에서 1주일에 소주 1병만 마셔도 소비자는 연간 2만 4000원을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1주일에 3병을 마신다면 연간 추가 부담액은 7만 2000원이다. 액화천연가스(LNG)에 붙는 세금을 ㎏당 20원씩 올리면서 농민들이 난방용으로 쓰는 등유에 비해 세율이 낮다는 이유를 댄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근로소득자들의 유리지갑 비우기 신용카드 소득공제 혜택을 줄이기로 함에 따라 신용카드를 평균 1000만원 사용할 경우 연봉 3000만원인 월급쟁이의 경우 세금 혜택이 5만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특히 근로소득 면세점을 고정시켜 근로소득 과세 대상을 확대하는 조세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럴 경우 근로자들의 유리지갑은 지금보다도 더욱 얇아지게 된다. 아울러 월급생활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세금우대종합저축통장 가입시 주고 있는 이자소득세 면제 혜택을 올해로 끝내면 1000만원을 적립할 경우 내년부터는 이자세 6만원을 내야 한다. 도시민들이 주말에 농촌에 머물 수 있도록 대지 200평 이내의 농어촌 주택을 매입,3년 이상 보유하면 다주택자 산정시 제외시켜 준다던 양도소득세 과세특례 제도는 시행 2년만에 사라지게 됐다. 도시와 농촌간 교류활성화를 추진해 온 농림부로서는 굳이 없앨 이유가 없다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재계와 이익단체들도 반발 열린우리당이 세제개편안을 국회에서 다시 논의키로 한데 이어 한나라당도 정책 실패에 따른 세수 부족을 국민 부담으로 떠넘길 수 없다며 정부안의 대폭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아파트 관리비에 대한 부가세 면제 혜택을 없애기로 한 것과 관련, 용역업체 모임인 한국 공동주택 전문관리협회는 아파트 입주민들과 함께 관리비 부가세를 영구히 면제토록 하는 건의서를 정부에 냈다. 집단대응할 태세다. 한국세무사회도 정부가 도입키로 한 간편납세제가 영업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스포츠 포커스] 남녀배구 프로시대 과제

    프로배구는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 2월 프로원년을 선언하고 한 시즌을 치른 남자 배구에 이어 여자 배구도 05∼06시즌부터 프로로 바뀐다. 본격적인 ‘프로배구시대’를 열게 된 것. 하지만 프로로 전환했다고 해서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것이 배구계의 처지다. 농구와 함께 겨울 스포츠를 양분하며 구름 같은 ‘오빠 부대’를 몰고다녔던 인기 종목이었지만 일찌감치 프로로 전환하며 마케팅 시장과 관중 동원 등에서 안정적 운용시스템을 구축한 야구, 축구, 농구에 서서히 밀리더니 이제 존립마저 위태롭게 됐다. 배구 프로화는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이다.   ●프렌차이즈 확정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핵심 중 하나는 지역 연고의 유무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지난 25일 이사회를 열고 남녀 각각 삼성-KT&G(대전), 현대-흥국생명(천안),LG-한국도로공사(구미), 대한항공-GS칼텍스(인천), 상무·한전-현대건설(수원) 등으로 묶어서 공동 연고 지역을 확정지었다. 오는 12월3일부터 4개월동안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7라운드(남 105경기, 여 70경기)를 갖게 된다. 지역 마케팅의 성공 여부가 프로배구 중흥의 성공을 결정짓는다는 얘기다. 더불어 월급을 받던 ‘회사원 선수’가 샐러리캡(남 11억 3500만원, 여 6억원) 아래에서 연봉 체제로 바뀌고, 선수 수급제도 역시 단순한 신인 스카우트가 아니라 프로답게 드래프트 제도를 도입한다. 외국 용병도 팀별로 1명씩 보유할 수 있다.●응원단 대신‘서포터스’를 그러나 작위적인 연고지 결정 때문에 체육관에는 해당 기업에서 동원한 ‘응원단’이 아닌 ‘진짜 서포터스’는 거의 없다. 메이저 종목들이 선점하고 있는 대도시를 피해 중소도시를 선택하다 보니 시장이 더욱 작다. 지난 시즌 평균관중은 1800여명에 불과했다. 어떤 경기는 300∼400여명의 관중만이 있기도 일쑤였다. 프로 개념이 부족한 구단의 팬마케팅 의식 부재의 결과였다. 4개 구단 중 가장 낫다는 현대캐피탈 ‘자일즈’에도 연고지인 천안 출신은 별로 없다. 안남수 현대캐피탈 사무국장은 “올시즌 팬마케팅 등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준비가 안 돼 있다.”면서 “KOVO나 다른 구단과 협조해 준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른 구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배구계에선 단순히 기념품 나눠주는 식의 이벤트가 아니라 스타와 팬의 만남을 정례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지자체와 함께 배구 인프라를 늘리고 연고지 유소년팀과 연계하는 등 공격적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전력 평준화로 활로 모색 지난시즌까지 삼성화재가 실업리그 포함,9연패의 독주를 이어갔다. 현대캐피탈이 제동을 걸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연승을 끊는 데 그쳤을 뿐이다. 흥미를 반감시키는 것은 당연지사.LG화재와 대한항공 등 다른 팀들의 약진이 없는 한 썰렁한 코트를 달구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현재 한국전력과 상무가 아마추어 자격으로 참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4개팀에 불과한 프로구단의 숫자도 늘어날 필요가 있다.●‘배구의 박주영’은 어디에 김세진, 신진식(이상 삼성화재), 이경수(LG화재), 후인정(현대캐피탈) 등은 최고 스타로 꼽히지만 이미 식상한 느낌을 준다. 배구 중흥을 위해서는 ‘축구천재’ 박주영(20)에 버금가는 스타가 출현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다. 팬들을 흡인할 수 있는 스타마케팅도 기술적으로 검토가 필요하다. 올시즌 ‘신인 최대어’로 꼽히는 강동진(22·한양대)과 ‘초고교급 레프트’ 김연경(17·한일전산여고)이 중흥의 전도사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우물안’서 탈출해야 수십억원 몸값을 호가하며 메이저리그와 유럽빅리그로 진출해 있는 야구, 축구, 그리고 NBA 진출을 끊임없이 노크하는 농구와 달리 배구는 여전히 ‘우물안’에 갇혀 있다. 유소년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면서 두꺼운 선수층 인프라를 구축할 뿐 아니라 당장 프로배구의 인기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배구 수준의 국제화’를 꾀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오일만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중국의 새로운 고민 ‘컨라오쭈’

    왕옌(王燕·25·여)은 베이징에서 대학교를 졸업했다.사회에 나와 국유기업 비서직과 중소기업 사무직 등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1년도 못돼 스스로 직장을 그만 둔 상태다. 왕옌은 오전 내내 컴퓨터 채팅으로 소일하다가 오후에는 베이징에서 비싸기로 소문난 자오양취(朝陽區) 타이핑양(太平洋) 백화점에서 2000위안짜리 화장품 세트를 신용카드로 구입했다. 물론 부모의 카드를 사용했다. 저녁에는 또래 친구들과 카페촌에서 라이브 음악을 감상하거나 때론 나이트 클럽에서 신나게 몸을 흔든다.그녀는 “한달에 1500∼2000위안의 월급을 받으며 미래가 없는 회사에서 인생을 썩히고 싶지 않다.”며 화려한 백수생활에 만족감을 표시한다. 최근 중국에서 실업자 급증과 함께 부모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컨라오쭈( 老族)’들이 확산되고 있다.‘‘부모를 파먹고 산다.’는 의미가 더 정확하다. 이런 컨라오쭈들이 중국 경제인구의 30%에 육박하고 있다고 난징(南京)대학 노령과학연구센터가 최근 밝혔다.컨라오쭈들은 1차적으로 부모의 책임이 크다.7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이른바 ‘샤오황디(小皇帝) 세대’들이 주력이다. 외동인 까닭에 인내심이 부족하고 독립심도 없는 잉여인간으로 길러졌다는 지적이다. 컨라오쭈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만족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비자발적 실업자’나 회사 적응에 실패해 스스로 직장을 떠나는 ‘비회사형 인간’들도 적지않다.화둥(華東) 사범대학 심리상담센터 예빈(葉斌) 주임은 “부모에 대한 의존성이 커져 컨라오쭈들은 결국 인생을 향한 동력이 떨어진 상태”라고 진단한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자금의 출처를 차단하고 단호하게 굶기면서 자립 의식을 키워야 한다.”며 강력한 처방을 내린다. 중국 사회 전체로 보면 컨라오쭈들의 확산은 중국의 노령화를 10년 이상 앞당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경제인구의 30%가 놀고 먹는 상황에서 컨라오쭈들은 부모들의 노후 연금마저 ‘파먹는’ 극한 상황까지 올 수 있다는 진단이다.이 때문에 중국 언론들은 컨라오쭈를 ‘중국 가정의 일급 파괴자’라고 부른다.oilman@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새로 알려진 것들

    26일 공개된 베트남전 관련 외교문서에는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던 비화(話) 등이 여럿 포함돼 있다. ●“제주도, 미군기지 될 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5월27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한·미 국방 각료회담에서 최영희 국방장관은 주일 미군기지의 한국 유치 의사를 피력했다. 일본이 철거를 요구하는 미군기지를 한국으로 옮긴다면 필요한 토지까지 제공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하지만 닛즈 당시 미 국방차관은 “막대한 예산이 드는 일이어서 간단하게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듬해 6월3일 서울에서 열린 2차 국방 각료회담에서는 이전 대상 지역이 ‘제주도’로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임충식 국방장관은 회담에서 “오키나와기지를 제주도로 옮긴다면 공군 및 해군기지를 만들어 주겠다. 이 경우 여러가지 면에서 실질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패커드 차관이 “제의를 염두에 두고 세계적인 기구를 포함해서 연구를 해나갈 것”이라고 답했으나 이후 이 제안은 특별히 진전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 “정보 수집차 북파 공작원 보내겠다.” 1차 각료회담 때 한국측은 정보 수집력 보강을 위해 북한지역에 공작원을 침투시키겠다는 의사도 피력했다. 최 장관은 “제3국이나 일본, 자체 수단 등을 통해 대북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나 앞으로 더욱 강화해야 한다.”며 “국제법 때문에 현재는 공작원을 북한에 보내지 않고 있으나, 앞으로는 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브라운 주미대사가 정색을 하면서 “첩보원을 북한에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느냐.”고 묻자 최 장관은 “내가 헌병사령관 당시 첩자를 보낸 일도 있고 사진도 찍은 일이 있다. 한국은 할 수 있다.”고 호언했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1951∼1994년 1만 3000여명의 북파 공작원이 양성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너무 싼 파월 국군 몸값 당시 파월 한국군의 해외 근무수당을 보면 준장∼중장이 일당 7∼10달러였고 이병∼병장은 1.25∼1.80달러였다. 당시 국내에 있던 이병의 월급이 1달러가 채 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조금 더 많다. 하지만 함께 근무했던 타 국군에 비하면 매우 낮았다. 태국군의 경우 한국군보다 최고 1.5배(장성급)의 해외근무수당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이 미군 1인의 전쟁관련 전체비용을 1만 3000달러, 필리핀 비전투요원은 7000달러, 한국군은 5000달러로 잡았다는 통계도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당시 각국별 해외근무수당은 해당국의 국민소득 등을 감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외교부,“미측이 대선 때문에 종전 분위기 띄우고 있다.” 철군 논의가 한창이던 1971년 4월 한국 외무부는 본국에 보낸 보고서를 통해 미국 정부가 1972년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에게 월남전의 종말이 가까워 온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국내(미국) 정치적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미국이 앞으로 월남에 대한 협력체로 참전국에 국한하지 않고 일본 등도 참여시켜 미국의 책임을 경감시키려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홈쇼핑 장애인 상담원 박미용·구현정씨

    홈쇼핑 장애인 상담원 박미용·구현정씨

    “CJ홈쇼핑에 뼈를 묻을 거예요.” 재택 상담원으로 얼마나 오래 일할 계획이냐고 묻자 박미용(38·지체장애 2급)씨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여덟살 아들과 여섯살 딸이 결혼한 뒤에도 일하고 싶다고도 했다. 소아마비를 앓아 양쪽 다리가 불편한 그에게 직장은 희망이고 꿈이기 때문이다. ●주부끼리 통하는 ‘감성 응대´ 호평 “결혼하기 전, 어린이집에서 2년간 일하며 정말 행복했어요. 사람을 만나 어울리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러나 이후엔 새 직장을 얻기가 힘들더군요. 일하고 싶다는 욕망에 늘 목말랐습니다.” 박씨는 언젠가 기회가 오리라 믿었다. 그래서 컴퓨터 교육 등을 틈틈이 받으며 준비했다. 지난 5월 CJ홈쇼핑이 장애인 재택 상담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는 망설임 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계약직이지만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도,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일한다는 조건도 ‘꿈의 직장’이기에 충분했다. 전화 상담원 경험은 없었지만 수년간 단련된 ‘아줌마의 힘’에 승부수를 걸었다. “새로 산 물건을 놓고 동네 아줌마와 수다를 떨 듯, 상품을 소개하고 맞장구치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홈쇼핑 소비자가 대부분 주부라 박씨의 ‘감성 대응’은 호응을 얻었다. 기계적인 설명보다 어눌하지만, 다정한 상담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정규직 전환·승진 부푼 꿈 남편과 아이들도 박씨의 도전에 박수를 보냈다.‘남의 회사에 폐나 끼치지 말라.’며 핀잔을 주던 남편도 경제적 짐을 나누려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아들, 딸도 ‘부자 엄마가 맛난 것을 사주는 게 더 좋다.’고 했단다. 기특하게도 엄마가 컴퓨터 앞에서 전화를 받을 때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금방 깨우쳤다. 집안도 훨씬 깔끔해졌단다. 하루 8시간씩 일하니 빨래도, 청소도 미루지 않고 후다닥 해치우게 됐다. “나이가 많다고, 장애인이라고, 전업주부라고 모두가 외면할 때 기회를 준 거잖아요. 회사 로고만 봐도 가슴이 벅찰 만큼 고마워요. 열심히 달려서 정규직 사원도 되고, 승진도 할래요. ”첫 장애물을 넘은 박씨는 자신감에 넘쳤다. ●월급여 130만~160만원 안팎 CJ홈쇼핑 콜센터를 운영하는 CJ텔레닉스는 지난 5월 박씨와 같은 장애인을 50명 뽑았다. 전체 직원 1450명 중 3.65%가 장애인이 된 것이다. 장애인 의무고용비율(2%)을 훨씬 웃돈 수치다. 상담원의 연령(22∼44세), 장애 정도(지체장애 1∼6급)가 다양하다.35세 이상이 22명이고, 중중 장애인이 35명에 달한다. 언어·시각장애가 없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불편하지 않으면 실력에 따라 선발했기 때문이다. 월급은 130만∼160만원. 게다가 2년간의 계약직 근무가 끝나면 평가를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출퇴근이 불편한 장애인의 생활을 고려, 재택 근무를 권장한 것도 지원자에겐 큰 매력이었다. 은행, 홈쇼핑, 카드사 등에서 7년간 전화상담원으로 일한 구현정(33·지체장애 2급)씨는 CJ홈쇼핑으로 옮긴 이유를 “지하철과 버스를 탈 때마다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끝도 없이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 사람과 부딪치고 밀치는 것이 너무 힘겨웠다고 했다. 그래서 오전 9시 출근이더라도 새벽 5시 30분부터 서둘러 집을 나서곤 했단다. 구씨는 “오후 1∼4시,6∼9시에 일해 다소 불편하지만, 출퇴근 시간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득”이라면서 “하루를 꼼꼼히 계획하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보다 배려심 깊어” 재택 근무인데다 대부분 상담원 경험이 없기에 회사측은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우선 지난 6월 한달동안 장애인 고용촉진공단에서 합숙훈련을 했다. 또 인터넷 메신저, 게시판, 유선 통화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상품 정보와 이벤트 소식을 전달한다. 업무시간 10분 전에는 사이버 회의를 진행, 중요 정보를 나눈다. 재택상담원은 입과 귀로 소비자와 대화를 하면서 눈과 손으론 회사와 정보를 주고받는 셈이다. CJ텔레닉스 김혜정 재택센터장은 “일반 상담원보다 장애인들이 소비자의 불편을 더 안타까워하고, 빨리 도와주려 노력한다.”면서 “힘든 삶의 경험이 배려하는 마음을 깊게 만든 듯하다.”고 평했다. 글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의문사위 조사관 ‘무노동 유임금’?

    한나라당 박승환 의원은 2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민간조사관 8명이 지난 2004년 6월 조사활동을 종료한 뒤에도 12월까지 1억 8700여만원의 월급을 받아갔다.”면서 감사원의 특별감사를 촉구했다.답변에 나선 권오룡 행정자치부 차관은 “수사활동은 끝났지만 보고서 발간 등 후속 업무를 위해 계속 고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연말정산 稅테크 현금영수증 미리 챙기자

    연말정산 稅테크 현금영수증 미리 챙기자

    ‘벌써 연말정산 타령?’ 월급쟁이이면서도 이런 생각을 한다면 당신은 ‘세(稅)테크’ 문외한일 확률이 높다.‘유리 지갑’ 급여 생활자로선 연말정산이 월급에서 꼬박꼬박 뗀 세금을 한꺼번에 돌려받을 수 있는 최대의 세테크 기회다. 연말이 가까워서야 부랴부랴 증빙서류를 챙긴다면 이미 때는 늦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매년 초 세금을 돌려받아 월급을 한번 더 받는 효과를 누리려면 연중 소득공제 전략을 짜야 하고, 늦어도 하반기에는 집중관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용카드·현금영수증 합산 대비를 먼저 올해 처음 도입된 현금영수증을 꼬박꼬박 챙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신용카드 사용 내역은 연말이면 카드사들이 배달해 주지만 현금영수증은 5000원 이상을 현금으로 결제할 때마다 반드시 발급받아야 한다. 국세청의 현금영수증 홈페이지(www.taxsave.go.kr)에 회원 등록을 하면 종이 영수증을 일일이 모을 필요가 없다. 올해 상반기(1∼6월) 현금연수증은 1조 6707만건이 발급됐고, 사용금액은 6조 5157억원이다. 이는 같은 기간의 신용카드 사용금액(90조 5540억원)의 7.2%에 불과한 것으로 아직 현금영수증이 정착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지난해까지는 신용카드나 직불카드 등의 사용액중 연봉의 10%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 20%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등을 합쳐 연봉의 15%를 초과하는 금액의 20%까지로 공제기준이 변경됐기 때문에 현금영수증을 잘 챙기기 않으면 소득공제액이 오히려 줄 수도 있다. 국세청이 현금영수증 활성화를 위해 신용카드, 직불카드, 현금영수증 등 3가지 ‘영수증 복권’ 가운데 현금영수증의 당첨 확률을 크게 높였기 때문에 현금영수증을 많이 받으면 1억원(1등)의 행운을 차지할 수도 있다. ●최고의 절세상품, 장기주택 마련저축 연말정산을 대비한다면 혜택이 가장 큰 장기주택 마련저축은 꼭 있어야 한다. 장기주택 마련저축에 가입하면 우선 15.4%(주민세 포함)에 이르는 이자소득세를 낼 필요가 없고, 연간 낸 금액의 40%(최고 300만원)를 소득공제받을 수 있다. 그러나 분기당 납입한도가 300만원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가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부터 매달 100만원씩 연말까지 500만원을 내면 연말정산때 200만원(연간납입액 500만원×40%)을 소득공제받아 내년 초에 약 37만 4000원(세율 18.7% 기준)을 되돌려 받는다. 장기주택마련저축은 만 18세 이상 무주택가구주나 25.7평 이하 1주택소유 가구주면 가입할 수 있다. ●연금저축·연금보험 연금저축은 연간납입액 240만원까지 전액 소득공제를 받는다. 매월 낼 수도 있지만 한꺼번에 내는 것도 가능하다. 은행연금신탁이나 보험사의 연금보험에 240만원을 한꺼번에 넣거나 이달부터 연말까지 매월 48만원씩 나눠서 내면 44만 8000원(세율 18.7% 기준)을 돌려받는다.2000년 12월 말 이전에 개인연금저축에 가입한 사람은 이 상품에 추가 납입할 경우 연간 낸 금액의 40%(최고 72만원)를 소득공제받는다. ●대출상품 활용 기본적으로 주택 담보 대출금의 이자 상환액에 대한 소득공제는 1년 동안 낸 이자 중 최고 1000만원까지 가능하다. 연봉수준에 따라 적게는 88만원, 많게는 385만원에 이르는 세금을 돌려 받을 수 있다. 이미 받은 15년 미만인 대출을 15년 이상 장기대출로 갈아타는 경우에도 추가로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소득공제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무주택가구주, 국민주택 규모 이하,15년 이상 장기대출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주거용 오피스텔, 무상(無償)으로 취득한 상속·증여주택은 소득공제 대상이 아니다. ●주택청약부금 및 보장성 보험 주택청약부금은 올해로 소득공제 혜택이 끝난다.2000년 10월 말까지 가입한 5년제 주택청약부금은 연간납입액의 40%(최고 96만원)를 올해 말까지 소득공제받을 수 있다. 자동차보험, 암보험, 종신보험 등 각종 보장성보험의 보험료도 소득공제 대상이다. 근로자 본인이나 소득이 없는 부양가족 명의로 가입한 보험에 대해 최고한도 100만원까지 소득공제가 가능하다.100만원을 소득공제받을 경우 실제 돌려받는 세금은 8만 8000∼38만 5000원이다. ●무리한 욕심은 금물 소득공제를 더 받겠다고 잔꾀를 쓰는 것은 곤란하다. 장기주택 마련저축은 가입 후 1년 이내 해지하면 저축액의 8.8%(연간 66만원 한도),5년 이내 해지하면 저축액의 4.4%(연간 33만원 한도)에 상당하는 금액을 추징당한다. 연금저축도 5년 이내 중도해지하면 납입액(연간 240만원 한도)의 2.2%에 이르는 해지 가산세를 추가로 물어야 한다. 신용카드 사용액 공제때 배우자 카드 사용액도 포함되지만, 배우자가 연간 100만원 이상 소득이 있는 경우엔 포함해서는 안 된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안귀옥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이혼소송 중에는 아이볼 수 없나요”

    결혼 5년차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결혼하고 남편의 월급은 모두 시어머니가 관리했습니다. 생활비를 일일이 타쓰기도 어려워 일상경비는 제가 벌어서 충당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축을 할 수도 없었고, 장래 주택마련 등의 계획을 세우기도 어려웠습니다. 친정어머니께 부탁드려 계를 들고 3년간 곗돈을 부어 아파트를 분양받았습니다. 그런데 남편과 시댁에서는 제가 번 돈을 친정으로 빼돌렸다며 오해를 했습니다. 오해는 집안싸움으로 번져, 저는 시댁에서 친정으로 쫓겨났고, 이혼소송까지 당했습니다.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딸아이는 시댁에 그대로 있는 상태인데, 이혼소송 중에는 제가 아이를 볼 권리도 없는 건가요. -유순진(32)- 부모 사이에서 생긴 문제가 또다른 부모간 정을 끊게 하는 상황이네요. 부모는 아이의 양육에 대해 모든 권리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한 경우 부모가 아이의 생사여탈에 대한 권한까지 갖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부모 의존적이던 아이가 자라 두세살만 되어도 자기 의지를 보이고 독립하려는 성향을 보이게 됩니다. 이때 부모는 아이에게 자립심을 키워주어야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한편으로 서운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아이의 독립을 염려하는 부모는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 반항기를 겪게 되면 배신감마저 느끼게 됩니다. 심지어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그 자녀의 미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 자녀들의 혼인생활에 간섭을 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순진씨와 남편의 부모님도 이런 생각 때문에 자식 내외의 갈등에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혼해서 살림을 차리면 육체적으로만 분가를 시킬 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독립을 시켜주어야 합니다. 결혼을 한 자녀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간섭이 되어 갈등의 소지를 제공하면 안 되겠죠. 순진씨 부부의 양가 부모님들은 심리적·경제적으로 자녀들을 독립시켜서 각자가 미래를 설계해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부모는 ‘이 정도면 충분한 부모 노릇’이라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완전한 부모 노릇’을 하려고 한다면 어느 자식들도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습니다. 부모들의 관심이 자식들의 욕구에 맞춰지는 게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욕구가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순진씨의 경우 일단 남편이 이혼소송을 제기했다고 하니 담당 재판부에 이런 사정을 설명해 부부치료 전문상담을 받고 해결책을 모색할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습니다. 또 이혼재판이 길어질 경우에 대비해 순진씨는 관할 법원에 사전처분으로 이혼재판이 끝날 때까지 아이에 대한 면접교섭권을 신청, 법원의 결정을 받아 재판 중에 아이를 정기적으로 만날 수도 있습니다. 가족갈등 해소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은 사단법인 한국행복가족상담소(www.e-happyhome.or.kr,032-8627-119)에서 상담을 통해 찾으시기 바랍니다.
  • 5분 데이트 (15) - 오혜숙

    5분 데이트 (15) - 오혜숙

      나무랄 데 없는 신부감, 미스·중앙청 오혜숙(吳惠淑)양 『틀림없이 애인은 없고요. 중매는 많이 들어와요. 하지만 첫째 조건인「크리스천」이어야 한다는 데에서 대부분 걸리지요. 다음은 키 170cm 이상이어야 하고 나이는 4~5년 위면 좋겠어요』 묻기도 전에 거침없이 결혼조건을 내거는 이 아가씨는 중앙청 총리실 근무의 오혜숙양. 방년 24세. 대구 아가씨다. 키 160cm에 몸무게 51kg, IQ 140에 경기여고, 이대 가정과를 졸업한 나무랄 데 없는 신부감. 『제9호 표지에 나간「미스」한전 윤숙이완 여고동창이고 같이 농구반에 있어서 무척 친해요. 그런데 또「선데이서울」표지에서 만나게 되는군요』한다. 여고시절 농구를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너무 거칠게 볼까봐 가정과를 지망했다고. 전공은 영양학. 그러나 요리솜씨는 역시 요리학원에 가서 익혀야겠다나. 총리실 근무는 2년째.「타이프」를 치고 있는데「텔레타이프」를 치는 아가씨가 결혼으로 그만두는 바람에「텔레타이프」까지 치느라고 살이 내릴 지경이란다. 『직장에선 처음에 절보고 깍정이 같대요. 하지만 사귀고 나면 제가 없으면 재미가 없어 일할 맛이 안난대요』 흡사 애기처럼 어리광 피우는 듯 자기 PR. 『꼭 한 번 대통령 각하께 찻잔을 갖다 드릴 기회가 있었는데 어찌나 손이 떨리는지 무척 혼났어요』 4남 4녀 중 6째인 3녀. 어깨가 작아 한복이 잘 어울린다고 어머니가 예쁜 한복을 지어주셨는데 그 옷을 입고 아무리 세배를 다녀도 세뱃돈이 안나오니 어떡하냔다. 아무튼 상냥하고 귀여운 아가씨. 윗 덧니까지 애교스럽다. 월급을 타면 몽땅 어머님께 갖다 드리는데 실상은 타다 쓰는 것이 그 두 배는 될 거라는 솔직한 고백. ※ 뽑히기까지 총리실 근무의 남자직원 40여명이 이구동성으로 추천해온 아가씨가 바로 오혜숙양.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친절하고 예쁘고 일 잘한다는 게 추천인단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게다가 오양을 추천한 사람 중에는 여자분도 한 분 끼어있는데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 사진 예쁘게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등 열성을 보이기도. [ 선데이서울 69년 1/12 제2권 제2호 통권16호 ]
  • 월급 가장많은 상장기업 SK가스 717만원

    월급 가장많은 상장기업 SK가스 717만원

    고유가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에너지 관련 기업들의 급여 수준이 여전히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22일 금융감독원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임원을 제외한 올 상반기 555개 상장사 직원들의 월 평균 급여는 296만원으로 집계됐다. 회사별로 보면 SK가스 직원들이 올 6개월 동안 받은 총급여는 1인당 평균 4300만원이었다. 월 평균으로는 717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남자 직원의 월 급여는 783만원, 여자 직원은 333만원이었다. ●에너지 기업·은행 상위권 포진 급여가 많은 상위 25개사 가운데 에너지 기업은 6개였다.SK가스를 포함해 대한도시가스(월 510만원·15위), 한화석유화학(508만원·16위),E1(500만원·18위),LG석유화학(498만원·20위), 호남석유화학(496만원·22위) 등이다.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GS홀딩스 등 3개 지주사의 월 평균 급여는 각각 650만원,617만원,600만원 등으로 나란히 2·3·4위에 포진했다. 지주사의 급여가 높은 이유는 대부분 직원들이 많지 않은데다, 이들 중에는 공인회계사·변호사 등 고임금 전문직이 상당수 포함돼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업은행(월 533만원·11위), 외환은행(월 510만원·14위), 하나은행(월 500만원·19위), 국민은행(월 483만원·25위) 등 4개 은행의 급여 수준도 높았다. ●삼성전자 올 407만원 81위 상반기에 무려 3조 5041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포스코 직원들의 월 급여는 552만원(8위)이었다. 공중파 방송사 SBS가 월 550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특히 대기업 중에서 최고 수준의 급여를 자랑하는 삼성전자의 올 상반기 월 평균 급여는 407만원으로, 순위는 81위에 그쳤다. 하지만 이는 삼성전자가 해마다 많은 상여금을 하반기인 연말에 집중적으로 지급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상반기의 급여가 생각보다는 많지 않았던 것으로 해석된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성적 ‘펄쩍’ 뛴 학생에게 줍니다”

    한남대 교수들이 사비를 털어 성적이 뛰어난 학생보다는 노력형 학생에게 장학금을 제공하거나 어학연수를 보내주고 있어 화제다. 일부 대학 교수들이 연구비를 유용, 물의를 일으킨 것과 달리 새로운 스승상을 구현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가 장학금은 성적이 뛰어나거나 생활이 어려운 학생에게 주로 주어지는 게 상례다. 성적은 그리 좋지 않지만 꾸준히 노력하는 학생이 설자리가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남대 생명과학전공 교수들이 마련한 ‘개구리 장학금’은 이러한 상식을 뛰어넘은 장학금이다. 2003년부터 일부 학과 교수들이 월급과 연구비 등의 일부를 모아서 성적순이 아니라 지난 학기에 비해 성적이 가장 많이 오른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오고 있다. 이들의 장학금이 더욱 뜻깊은 것은 재원을 모두 교수들이 마련했다는 점이다. 일체 기업 등의 후원을 받지 않았다. 대신 금액은 다소 적다. 성적 향상폭이 가장 큰 학생들을 선발,50만원씩의 장학금을 지급한다. 교수들이 어학연수를 보낸 경우도 있다. 지난 7월 경영정보학과 교수들은 3년간 모은 급여의 일부와 외부 연구비 등을 모아서 10명의 학생을 선발, 필리핀 자매대학인 레이테 사법대학에 어학연수를 보냈다. 경비 1000여만원 모두 교수들이 마련했다. 광·전자물리학과 교수(7명)들은 매달 5만원씩 적립해 모은 420여만원에다 지인들의 도움을 합쳐 모두 2920만원을 모았다. 여기에 교내 장학금 등을 포함, 모두 3500여만원의 장학금을 조성했다. 광·전자물리학과에서는 이 장학금으로 2학년 학생 40여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25명이 장학금을 받았다. 이 학과 손대락 교수는 “요즘은 교수들이 연구와 학생지도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취업지도나 장학 또한 필요한 시기”라며 “교수들의 장학금으로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 친밀감과 함께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대전 이천열기자sky@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월급 0원’ 대학 CEO 손병두 서강대총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월급 0원’ 대학 CEO 손병두 서강대총장

    월급 0원, 비신부 출신 첫 총장 등으로 신선한 화제를 모은 손병두(65) 서강대 신임 총장. 최근 취임 한달을 맞아 ‘손병두호’ 새 진용을 짜고 ‘대학 CEO’로서의 본격 출발을 했다. 주변에서는 격려의 행진곡을 불러주는 등 많은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어 또 한번 관심을 모은다. 지난 12일 오전 강원도 설악산 기슭의 한 호텔. 흔치 않은 하계수련회가 열렸다. 다름 아닌 손 신임 총장과 교직원간의 허심탄회한 만남의 자리. 손 총장은 동행한 130여 교직원들을 상대로 지나온 인생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어릴 적 여동생을 조산한 뒤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안타까운 모습, 그래서 의사가 되려고 가톨릭의대 시험에 합격했으나 가난 때문에 등록금을 내지 못했던 일, 이미 숨이 멎었던 아버지가 막내인 자신을 보자 잠시 눈을 떴던 일, 고학으로 눈물의 빵을 먹으며 고교와 대학을 다닌 일 등등… 이날 교직원들은 처음에는 딱딱한 강의를 예상했으나 손 총장의 인간드라마가 계속되자 고개를 끄덕이며 적지 않게 감명을 받는 모습이었다. 손 총장은 강의 직후 보직교수들과 등산도 했고, 여러 차례의 분임토의 등을 거치며 학교의 발전 방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으는 열정을 과시했다. ●명함엔 귀하를 “서강대후원회원으로…” 잠시 짬을 내 손 총장과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명함을 내민다.‘요한 돈보스코’라는 세례명이 적혀 있고 ‘귀하를 서강대 후원회원으로 모시고 싶다.’는 글귀가 여느 명함 같지 않았다. 순간 손 총장이 “아마, 그런 명함 못봤을 거요.” 하면서 껄껄 웃는다. 40여년 동안 경제계에 몸담았었는데 대학총장으로서의 한 달이 어떠했는지 궁금했다. 먼저 “부총장 둘과 단과대학장 일곱, 그리고 각 처장 등 스태프 인선을 이제야 마무리했다. 첫 단추를 잘 끼우려고 무척 신중을 기했다.”면서 이제는 본격적인 세일즈에 나서는 일만 남았다고 강조했다. ●부총장등 인선 마무리… 시스템 통한 조직문화 개선이 경영핵심 “회사나 대학 조직이나 시스템을 통해 문화를 어떻게 바꾸느냐가 (경영의)핵심”이라면서 “기업은 수직적인 반면 대학은 교수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연결된 수평조직”이라는 비유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꾸준한 대화를 통해 ‘서강 인더월드(In The World)’로 거듭나기 위한 공감대가 많이 형성돼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하계수련회도 그런 차원에서 성공적이라고 자평했다. 비신부이자 경제계 출신이 서강대 총장에 임명된 것을 놓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시선도 있지 않느냐고 하자 “미국의 조지타운대학 총장이 평신도 출신으로 성공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자신 역시 그런 총장이고 싶다는 강한 의욕을 보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희생과 봉사정신으로 교직원이나 학생들을 섬기는 자세로 기도해 나간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손 총장 취임 후 서강대 안팎에서는 모처럼 감동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경남 진해에 사는 한 주부는 얼마 전 60만원을 서강대로 보내 왔다. 서강대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주부는 ‘손 총장이 임기 동안 봉사하며 무보수로 일하겠다.’는 인터뷰 기사에 감동받았다는 것이 송금 이유였다. 지난 8일 서강대총동창회(회장 김호연)는 대학발전기금으로 20억원을 선뜻 내놓았다. ●후원 밀물… ‘1000억 세일즈´ 성공적 출발 앞서 손 총장의 취임식이 열린 지난달 18일 김명렬 연일화섬 회장이 10억원을 내놓았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은 지난달 13일 서강대 초빙교수로 출강하면서 받은 급여 3600만원과 개인돈 1400만원을 합쳐 인성교육원 건립기금 명목으로 학교측에 전달했다. 동문인 김상수 밸류리서치 대표도 최근 1억원을 기부했다. 서강대 여교수협의회에서 운영하는 재활용품점 ‘서강나눔터’는 이례적으로 수익금 2500만원을 모아 학교 발전기금으로 내놓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강대 직원노동조합은 최근 총회를 열어 임금·단체 협상을 학교측에 전부 일임하기로 결의했다. 손 총장의 희생과 봉사정신 의지에 보답하고 학교발전에 조건없이 동참하자는 뜻에서 이같은 결단을 내렸다. 특히 최근 수시모집 지원율이 지난해보다 83%나 증가해 교직원들을 고무시키고 있다. 이처럼 지난 한 달은 ‘느낌표의 연속’ 그 자체였다며 미소 지었다. 손 총장은 임기 동안 1000억원 이상의 기금을 모금해 서강대를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만들겠다고 공약한 상태. 이와 관련,“현안 중 서강대의 국제화가 우선이다. 외국인 교수와 유학생이 머물 수 있는 기숙사가 당장 필요하며 여기에 2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도 가평군 현리에 5만평 규모의 인성교육원을 짓기 위해 300억원, 서강대 50주년(2010년)기념관과 국제인문관 건립을 위해 각각 300억원과 100억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美시카고학파와 교류 모색 특히 손 총장은 전통적으로 서강대는 문(文)·사(史)·철(哲)이 강하다면서 ‘서강학파’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미국 ‘시카고학파’와의 교류방법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또 한번 시장경제의 메카로 키우겠다는 것. 원래 ‘서강학파’는 서강대 경제학과 출신 주축으로 지난 60∼70년대 개발 연대의 한국경제를 견인했다. 초기의 남덕우 이승윤 김병국 교수와 70년대의 이승윤 조성환 황일청 교수 등이 주요 멤버였다. 화제를 돌려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학입시제도, 즉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등 정부의 ‘3불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정부의 원칙을 되도록 따라가는 것이 좋지만 대학에 자율권을 많이 줘야 한다.”고 전제한 뒤 기여입학은 다소 이른 감이 있으며, 본고사는 변별력이 보완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아울러 사립학교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주지스님 집서 자취… 등록금없어 의사길 포기 손 총장은 경남 진양에서 평범한 농가의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여동생을 조산한 후유증을 견디지 못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후 아버지는 진주시내에서 포목장사를 했다. 그러나 손 총장이 경복고에 다닐 무렵 사업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북한산 자락의 승가사 주지 스님 집에서 자취를 하며 고학으로 학교를 다녔다. 배가 고파 친구의 도시락으로 하루 끼니를 대신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의사가 되려고 가톨릭의대에 합격했으나 등록금이 없어 포기했다. 결국 담임 교사와 논의 끝에 서울대 상대에 진학했다. 대학 2학년때 세례를 받으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가.’라는 물음과 함께 독실한 신앙심을 쌓는다. 학군단(ROTC) 2기로 27사단에서 소대장을 마친 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역(공채 2기)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중앙일보 기획실과 광고국을 거쳐 삼성그룹 비서실로 옮겼다가 이른바 ‘왕자의 난’에 휘말려 직장에서 쫓겨나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자식한테 등록금을 대주는 부모가 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습니다. 아버님은 대학 2학년때 돌아가셨는데 저를 보자 감았던 눈을 잠시 뜨는 불가사의한 일이 생겼습니다. 아마 등록금을 대주지 못했던 한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할머니는 제가 약혼식하는 전날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눈을 감으셨지요.” 슬하에는 연년생 2남2녀를 두었다. 바쁜 생활 때문에 부인이 빵집을 운영하며 자식 넷을 훌륭하게 키웠다는 평을 듣는다. 장남 웅기(36)씨는 재경부 사무관, 장녀 영기(34)씨는 이화여대에서 박사과정을 끝내고 미국 로스쿨 유학 중이며, 현대건설에 다니는 차남 석기(33)씨는 다음달 9일 결혼한다. 막내 사위는 검사로 재직 중이다. 설악산에서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 1941년 경남 진양 출생 ▲ 59년 경복고 졸업 ▲ 64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66년 학군(ROTC) 2기 중위 전역 ▲ 66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역 공채 2기 ▲ 70년 중앙일보·동양방송 기획실 및 광고국 차장 ▲ 72∼81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과장, 차장, 부장, 이사 ▲ 81∼82년 재무부 정책자문위원 ▲ 84년 미국 조지타운대, 조지워싱턴대, 메릴랜드대 수학 ▲ 85∼88년 생산성본부 상무이사 ▲ 86∼90년 한양대 경영학박사 ▲ 87년 동서경제연구소 소장 ▲ 93년 카네기클럽 초대회장 ▲ 97년 금융개혁위원회 위원 ▲ 97∼2003년 전경련 부회장 ▲ 97년 한국광고주협의회 상임고문 ▲ 2000년 ROTC2기 동기회장 ▲ 03∼04년 전경련 상임고문 ▲ 04년 4월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협의회 회장 ▲ 05년 7월 서강대 12대 총장 ■ 상훈 데일카네기 리더십상(98년), 동탑산업훈장(99년), 자랑스러운 가톨릭경제인상(02년) 등 ■ 저서 ‘뉴밀레니엄 생존전략’ ‘경제상식의 허와 실’ ‘중간관리자의 리더십과 노사관계’ 등
  • 5분 데이트 (13) - 임장희

    5분 데이트 (13) - 임장희

      IQ 137의 아가씨 미스·상은(商銀) 임장희(任章姬)양 『「미니·스커트」는 싫고요, 그물「스토킹」도 싫고요, 할아버지는 좀 무섭고…』 하다가 할아버지는 무척 잘해주셔서 좋다고 정정하는「미스」상업은행 임장희양. 올해 23세. 진명여고, 성대 도서관학과를 거쳐 올 2월 상업은행에 들어왔다. 임양의 아버지도 조흥은행에 20년 이상 근속한「뱅커」일가다. 키 157cm, 43kg의 체중. 날씬한 건 좋은데 너무 가볍지 않으냐니까『몸만 가볍지 딴 것(행동·생각?)은 가볍지 않아요』하는 재치있는 아가씨. 여고시절 IQ「테스트」에서 137점을 받았다는 재원. 출납계와 보통예금계에서 일 볼 때 한 번 5백원이 남았다가 석 달 뒤에 5백원이 모자라 물어넣었다고. 게다가 1백원씩 두 번 물어넣었으니까 입행(入行) 후 2백원정(整)의 손재수를 입은 셈이라고. 3남 1녀의 외동딸. 오빠 두 분에게선「데이트」자금을 조달받고 남동생에겐 월 5백원의 장학(奬學)·장유(壯遊)(?)비용을 지급하고 있고. 이런 점에선 흑자란다. 은행원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중학시절엔 주산반에 들었었고 대학시절엔 연극반, 방송반에서 일 보기도. 덕택에『졸업 때 상은 여러가지 탔다』는 자가(自家) PR. 첫 월급은 몽땅 선물을 사서 가족·친지들에게 선사.「보너스」가 나오면 어머니에게 드리지만 월급은 용돈, 결혼준비금으로 1백% 활용되고 있다고. 애인 있느냐니까『그런 건 쓰지 마세요』하는 걸 보니 공연히「팬·레터」나 보냈다간 우표값 7원만 손해볼 것 같다. 본점 영업부 영문당좌계 근무. 처음엔 외국인만 보면 겁이 나더니 이젠 익숙해졌고 또 은행을 이용하는 외국인들이「기막히게」한국어를 잘하더라고. ※ 뽑히기까지 상은엔 미녀가 많다.「미스·코리어」출신도 있고 그외 숱한「뷰티·콘테스트」출전자들이 있어 남자행원들도 정작 누구를「미스」상은으로 해야 하는가엔 상당히 당황, 결국 각 부에서 골고루 8명의 아가씨를 선발해왔는데「카메라·테스트」에서 골라진 아가씨가 셋. 이중에서 임양이 창구근무라는 점에서 행운의「미스」상은으로-. [ 선데이서울 68년 12/22 제1권 제14호 ]
  • 증권맨들 “아 옛날이여”

    증권맨들 “아 옛날이여”

    주식시장은 최대 호기를 맞았으나 증권가 분위기는 과거 호황 때와 달리 푹 가라앉아 있다. 증권사들은 순익이 늘기는 했으나 수익구조가 불안정해 특별 상여금(보너스)을 나눠줄 처지도 못된다. 직원들은 푸념할 틈도 없이 실적 경쟁을 해야 해 몸만 고달프다. ●임원급 50만원이 전부 지난달 20일 대우증권 직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이 회사의 주가가 1만원을 넘으면서 삼성증권을 제치고 6년 8개월만에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되찾았기 때문이다.2300여명의 전 임직원들은 1인당 30만∼50만원씩 특별 보너스도 받았다. 직원들은 “잠시 동안이지만 증시 호조의 분위기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15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증시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지난 5월 3조 1000억원,6월 4조 3000억원에서 7월에는 4조 7000억원으로 늘었다. 주식매매가 늘면 증권사들이 챙길 수 있는 위탁매매 수수료도 덩달아 불어난다. 대우증권은 7월 한달동안 386억원의 순이익을 거두었다. 올 1·4분기 3개월치(436억원)와 큰 차이가 없으며,6월에 비해서는 96%나 급증했다. 현대증권도 3개월치 순익을 뛰어넘는 314억원을 한달만에 벌었다. 우리투자증권도 6월치의 두배 이상인 382억원의 순익을 냈다. 그러나 올 들어 직원들에게 특별 보너스를 지급한 곳은 대우증권이 유일하다. 직원마다 수백만원씩, 지점별로 수천만원씩의 격려금이 지급됐던 과거와 다른 모습이다. ●위탁매매에 발목 잡혀 증권사들이 돈을 벌고도 직원들에게 선심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올 성과가 지난 수년간의 부진을 메우는 데도 빠듯하고, 앞으로 회사 수익이 눈에 띄게 좋아질 가능성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수수료 수입 비중이 워낙 큰 증권사들의 수익구조 영향이 크다. 증권사들은 위탁매매 수수료 55%, 수익증권판매(펀드) 수수료 14% 등 전체 수입의 70% 가까이를 수수료에 의존한다. 하지만 인터넷 주식거래 증가와 증권사들의 과당 경쟁으로 수수료율은 1999년 0.33%에서 0.16%로 절반 이상 떨어졌다. 그런 데다 주식의 직접매매는 줄고 펀드 등 간접투자가 많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42개 증권사의 총 순이익은 467억원으로 1년만에 95.3%나 줄어들었다. 성과급 구조가 과거와 달라진 점도 증권가를 썰렁하게 만들었다. 영업사원들은 월급의 3배인 ‘손익분기점(BEP)’이라는 개인별 수익실적 목표를 갖고 있다. 월급이 500만원이면 BEP가 1500만원이고, 약정고로 따지면 30억원에 이른다. 결코 만만치 않은 실적을 초과 달성하지 못하면 성과급은 커녕, 실적 부진의 압박에 시달린다. 지난해 6000여명, 올해 1500명의 임직원들이 증권가를 떠났다. A증권사 임원은 “80년대말 지수 1000시대에는 주당 가격이 6만∼7만원씩 하는 자사주를 100주,200주씩 골고루 나눠받았고, 이 가운데 2∼3주만 팔면 거나하게 한턱을 낼 수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지금은 능력에 따라 월급이 수백만원씩 차이가 나고, 또 누가 얼마를 받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돈이 있어도 동료에게 술 한잔 못 사고 눈치만 본다.”고 말했다. ●제살깎기에서 블루오션으로 증권가에선 증권사들이 위탁매매 업무 위주에서 벗어나 펀드 상품개발 등 자산관리시장이나 인수·합병(M&A) 등 투자은행 시장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 정설이다. 일부 증권사들은 위탁매매 수수료 비중이 비교적 높은 대우증권이 최근 좋은 성과를 거둔 점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긴다. 오히려 수수료 시장을 등지고 펀드시장에 일찌감치 진출해 창업 8년만에 8개 금융사를 거느린 미래에셋지주의 눈부신 발전에 주목한다. 메리츠증권 김한 부회장은 최근 “투자은행 업무중 인수·합병 분야, 간접투자시장 중 부동산펀드 등 차별화된 증권사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한국증권연구원 조성훈 연구위원은 “위탁매매 업무는 증권사별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어려워 한계비용이 거의 ‘제로’에 근접했다.”면서 “수수료 인하 등 제살깎기 경쟁에서 ‘블루오션’으로 가기 위해선 국내외 투자은행 시장을 개척하는 길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조물주의 실수 - 하늘아래 처음 보는 결혼식

    조물주의 실수 - 하늘아래 처음 보는 결혼식

      들러리가 없다.「웨딩·마치」도 없다. 넒은 예식장엔 외로운 결혼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네 명의 친구들 뿐. 주례가 있을 리 없는 기막힌 결혼식장- 면사포 속 신부의 두 눈에 이슬이 맺힘은, 더욱이 상견례를 올릴 신랑이 없기 때문이었다. 사랑해선 안될 불구(不具)의 몸, 단장(斷腸)의 몸부림 7년 끝에 12월 12일 하오 7시 논산의 미원(美園)예식장에서는 애틋한 화제를 일으킨 한 처녀의「신랑없는 결혼식」이 쓸쓸히 올려졌다. 김형진(金亨眞)(27·논산읍 화지동)양. 여성으로서 마땅히 있어야 할「기능」을 갖추지 못하여 한탄하던 이 불구의 여심은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 쓸쓸한 예식장에서 이날「독신의 화촉」을 울면서 밝혔다. 골격이나 용모, 살결과 음성까지 어느 것 하나 흠 잡을데가 없는(신장 153cm, 35-24-35) 김양은 선천성 질(膣)폐쇄증 환자.「웨딩·드레스」에의 파란 꿈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성불구자임을 알게 된 7년 전에 이미 산산이 깨어졌다. 결혼 첫날밤이면 탄로날 자신의 말 못할 비밀. 결혼이란 그녀로선 감히 생각지도 못할 죄악이었다. 실의와 비탄 속의 7년, 찢어질듯한 가난 속 -. 『결혼을 하자. 제2의 탄생을 하는 거다』그녀는 결혼식을 올렸다. 슬픔을 신랑삼아, 그리고 그녀에게는 이미 먹여 살려야 될 세 동생이 딸려 있었다. 김양이 자신의 신체 구조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한 것은 20세 되던 해. 여성으로 있어야 할「생리」가 없는데 의아심을 품은 그녀는 21세 되던 62년에 산부인과 전문의사를 찾은 결과 자신이 도저히 여성으로서 제 구실을 못할 성불구자임을 알게 되었다. 김양은 부산의 어느 직장에 취직했다. 월급날이면 유명하다는 산부인과를 찾아 다니기에 거의 미치광이가 되다시피 했다. 그녀가 다닌 용하다는 산부인과만도 서울 부산 등에 7개-. 그러나 그 중 한 군데서만『가능성은 없지만 해보자』는 것이었고 나머지는 모두가『수술을 해 봤자 별 수 없다』는 절망적인 선언이었다. 더구나 남자로 성전환도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보면 그녀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죽고 싶다. 난 이제 살 수 없다』그녀는 회사를 결근했다.「보이·프렌드」P가 이튿날 찾아왔다. P와는 5년 동안이나 교제를 한 사이. 결혼할 단계였다.『그런데 내가 성불구라니…』그녀는 몸부림을 쳤다. 그날 밤 어둡고 싸늘한 바닷가를「데이트」하던 P는 그녀의 완강한 버팀에 끓어오르는 격정을 억눌러야 했다. 하숙방으로 돌아온 김양은 밤을 지새며 생각했다. 연인의 뜨거운 청혼에도 홀로 울어야만 했던 비밀 겨우 요도(尿道)만이 수줍은 듯 도사리고 있는 자신의 생식기. 이러한 비밀도 모른 채 P는 결혼을 서두르고-. 『내가 만일 결혼한 여자라면 P의 관심을 끌지도 않았을텐데-』 그녀는 문득 결혼식을 생각했다. 그리고「신랑없는 결혼」을 결심했다. 어쨌든 자신은 이미「결혼한 몸」이란 걸 세상에 선언해야 될 것 같았다. 여자로서 일생 한 번 입어 보게 되는「웨딩·드레스」에의 유혹이 보다 선명하게 그녀를 감쌌을는지도 모른다. 12월 12일. 그「나 혼자만의 결혼식」이 올려지던 날은 따뜻하고 청명했다. 소문을 엿든 사람들은 흔히 있는 영혼식 정도로 저마다 지레 생각들을 했다. 김양에게는 그러나 섬겨야 될 영혼조차도 없는, 너무나 눈물겨운 결혼식이었다. 『세 동생을 키우는데 전심전력을 다 하겠어요. 그들의 착실한 어버이가 되는게 소망이며 꿈입니다』 김양은, 아니 김여사는 다소곳이「의지」를 반짝인다. 생의 보람을 찾으려는 5년 동안의 끈질긴 투쟁은 그녀를 이제 월수 6만원의 사업주로 키웠다. 미용사 3년 만에 작은 미장원을 하나 차린 것이다. 결혼(?)도 했다. 동생들이 훌륭한 모습으로 커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고 했다. 동생 영애(13)양이 올해 논산「쌘뽈」여중에 특기(문예)장학생으로 들어갔을 땐 뛸 듯 기뻤다고 어버이(?)다운 한 마디도 잊지 않는 김양 - 그녀는 지금 논산에서「뼈저리게 외로운 신혼」을 보내고 있다. <논산 = 배기찬(裵基燦)기자> [ 선데이서울 68년 12/22 제1권 제1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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