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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숫자를 잘못 본 탓에…” 살인 부른 18세 소녀

    “어이구,그놈의 돈이 뭐길래…숫자 ‘0’자 한자 더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바람에 내 신세가 완전히 망가져 버렸네.” 중국 대륙에 같은 방 친구의 돈을 빼앗기 위해 자신의 정부(情夫)를 불러들여 살인까지 저지르게 한 냉혈 소녀가 붙잡혀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 남부 하이난(海南)성 하이커우에 살고 있는 한 소녀는 같은 방을 쓰는 친구의 돈을 빼앗기 위해 정부를 불러 살인까지 저지르게 한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받아 주변을 경악하게 했다고 광주일보(廣州日報) 인터넷신문인 대양(大洋)망이 5일 보도했다. 대양망에 따르면 살인에 연루된 사건의 장본인은 올해 18살의 모델 지망생 왕진잉(王金英)씨.시골에서 가난하게 자랐지만 순박했던 그녀는 물욕에 눈이 먼 정부와의 잘못된 만남으로 영원히 헤어나기가 어려운 나락으로 떨어졌다. 중국 중서부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출신인 궐녀는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해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집안의 농삿일을 거들며 생활해왔다. 그러나 자신이 연예인 못지 않은 뛰어난 미모와 쭉 빠진 늘씬한 몸매에 왕은 항상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몸맵시가 뛰어난 만큼 장래 희망이 슈퍼모델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때문에 힘든 농삿일을 계속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왕은 자신의 아름다운 몸매 하드웨어를 최고의 전략상품으로 내세워 청두 잡화점의 판매원으로 취업했다.뛰어난 외모에 늘씬한 몸매의 그녀가 판매원으로 나서자마자 매출이 급증했다.매출이 2배·4배·8배 등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특히 많은 젊은이들이 왕의 아리따운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기 위해 이 가게로 몰려들었을 정도로 궐녀의 인기가 상한가를 기록한 덕분이었다. 매출 급증에 즐거운을 비명을 올리던 잡화점 사장 위안카이밍(袁開明)도 아리잠직한 왕의 모습을 볼 때마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흠뻑 빠져들었다. 위안은 어떻게 하면 왕을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수 있을까 하고 노심초사했다.그래서 궐자는 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매일 그녀 옆에 붙어 온갖 ‘교태’를 다 부렸다. 다른 점원들의 월급이 300위안(약 3만 6000원)에 불과했지만,매출이 좋다는 이유를 내세워 궐녀에게만은 2배 이상 많은 800위안(약 10만 4000원)이나 줬다.여기에다 가게 근처에 깨끗한 오피스텔까지 얻어줬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오후,위안은 왕에게 매출이 하루가 다르게 크게 늘어나고 있으니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사겠다고 꼬드겼다.이들 두사람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깔끔하게 식사를 마친 뒤,헤어지기가 너무 아쉬워 2차를 갔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서로 주거니받거니하며 53도짜리 독주를 2병이나 비웠다.그동안 술이 별로 먹어본 적이 없는 왕으로서는 온몸에 열이 나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한 것은 당연했다.비틀거리는 왕을 부축한 위안은 곧바로 호텔로 가 성관계를 맺으면서 왕의 정부가 됐다. 위안은 멋있는 여자를 애인으로 둔 탓에 궐녀가 언제 도망갈지 몰라 항상 마음을 졸였다.해서 그는 잡화점 경영은 내팽개치고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비싼 옷을 사주랴,맛있는 음식을 사먹이는데 올인했다.자연히 잡화점의 매출이 날이 갈수록 뚝뚝 떨어져 끝내 부도를 냈다. 지난 2005년 2월,왕은 돈을 벌기 위해 위안이 소개해준 하이난성 하이커우로 왔다.슈퍼모델을 꿈꾸고서….모델이 되기 전 왕은 우선 5성급 호텔 가라오케에 1000위안(약 13만원)씩 받고 웨이트리스가 됐다. 당시 이곳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웨이트리스는 천(陳)모씨.같은 청두 출신이었다.왕은 천씨와 함께 방을 쓰며 생활하게 됐다.같이 생활을 하다보니 천씨는 손님들에게 인기가 있을 뿐 아니라 사장에게도 신임을 받고 있어 월급 외에 부수입도 꽤 짭짤했다. 하루는 왕이 천씨가 예금통장을 들고 돈이 얼마나 예금돼 있는지를 보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옆에 가서 슬쩍 엿보니 무려 50만위안(약 6500만원)이 아닌가. 50만위안! 자신은 도대체 얼마 동안 일을 해야 벌 수 있는 액수일까.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이었다.바로 이 순간,왕의 마음은 탐욕스러운 ‘돼지’로 변했다.궐녀는 천씨의 돈을 강탈하기 위해 곧바로 청두에 있는 정부 위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해 5월 25일,위안이 득달같이 하이커우로 달려왔다.이들은 호텔 방을 빌려놓고 돈을 털기 위해 도상 연습까지 했다. 마침내 D-데이가 됐다.왕은 같은 고향인 점을 내세워 고향에서 친구들이 왔는데 함께 저녁이나 하자며 꼬드겼다.이들은 저녁을 하러 나온 천씨를 욱대겨 돈을 찾을 작정이었다. 저녁하러 나온 천씨와 함께 간단한 식사를 마친 뒤 술집으로 끌고 가 예금통장을 내어놓으라고 협박했다.이에 천이 내놓은 통장의 잔고는 고작 5만위안(약 650만원).이들은 거짓말하지 말라며 천씨를 마구 때렸다.이들의 무차별 몰매를 맞은 천씨는 결국 열명길에 올랐다. 아무리 윽박질러도 더이상의 돈은 없을 수 밖에 없었다.왕이 50,000위안을 500,000위안으로 잘못 본 것이다. 이들의 잔인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천씨가 숨을 거두자 이들은 ‘완전 범죄’를 위해 시체를 토막내 플라스틱 봉지에 넣어 바다에 갖다버렸다. 얼마 뒤 천씨의 부모는 1주일에 한두번씩 꼭 안부 전화를 하던 딸이 1개월 여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 하이커우 공안당국에 딸의 실종신고를 냈다. 신고를 받은 공안당국은 천씨가 일했던 호텔 가라오케에서 수사를 벌여 왕과 위안 등을 살인죄·강도죄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하이커우시 중급인민법원은 왕과 위안에게 살인죄·강도죄 등의 혐의를 적용해 왕에게는 무기징역,직접 살인을 저지른 위안에게는 사형을 각각 선고했다. 온라인뉴스부
  • 정부 “개성공단 투명”

    통일부 고경빈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은 6일 “북측은 임금 직불을 약속했고, 현재 임금을 북한 노동자들에게 직접 지불하기 위해 공단내 북한측 은행 설치도 준비 중”이라면서 “조만간 임금 직불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 단장은 “보고서는 ‘개성공단’을 전체적으로 조심스레 표현하고 있다.”면서 “이는 미측이 그동안 개성 공단에 대해 가져온 오해를 바로잡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고 단장은 지난 2일 캐서린 스티븐스 미 국무부 부차관보의 개성공단 방문과 관련,“북한 근로자들에게 지급되는 월급 지급명세표 등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면서 “개성공단의 투명성과 노동환경, 한반도 상황의 긍정적인 역할 등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고 설명했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가슴 속 그림 한 폭] 분청사기 그림들

    [가슴 속 그림 한 폭] 분청사기 그림들

    쌩 하고 달려가는 게 꼭 디즈니 만화속 ‘도널드 덕’ 같다. 입을 뾰족히 내밀고 웅크린 개,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학, 딴청 피우는 듯한 물고기. 웃음이 절로 난다. 현대 화가들이 단숨에 완성한 드로잉 같은 이 그림들은 놀랍게도 조선시대 분청사기에 그려진 것들이다. 도자전에서 적잖이 보았으면서도 무심코 지나쳤던 것을 만화 ‘고인돌’의 박수동(64) 화백이 깨우쳐 주었다. “분청사기 그림은 제 스승입니다. 젊었을 적 우연히 들른 도자전에서 분청사기를 보고 마치 장난하듯 그려진 그림들에 미쳤어요. 대담하면서 소탈하고, 해학과 자유분방함이 넘쳤습니다.” 분청사기는 고려 청자에서 조선 백자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200여년간 집중적으로 제작됐던 도자기다. 모든 면에서 달라졌지만 특히 독특한 분위기의 그림들은 현대 드로잉이나 추상을 연상케 한다. 학, 용, 연꽃 등 소재는 청자 그림과 비슷하지만, 격식을 완전히 던져버렸다. 큼직한 눈동자는 학을 더 이상 고고하지 않게 하고, 서슬 퍼렀던 용은 재롱을 부리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어 웃음을 자아낸다. 연꽃은 우아함 대신 편안함을 택했고, 당초무늬의 세련됨은 일필휘지의 단순함에 자리를 내주었다. 박 화백을 특히 매혹시킨 그림은 분청사기조화유조문호(紛靑沙器彫花柳鳥文壺)의 그림. 무엇엔가 쫓기듯 버드나무 가지 사이를 달리는 새의 모습을 경쾌하게 포착했다. 분청사기상감연화학문매병(紛靑沙器象嵌蓮花鶴文梅甁) 그림도 못지않게 좋아한다. 타원형으로 단순하게 그려진 연 이파리 사이에서 무언가 몹시 불편한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학의 모습을 그렸다. 박 화백은 “그림들이 엄숙함을 버렸으면서도 보는 이를 즐겁게 해주는 표정을 짓고 있다.”고 말한다. 단 한 점의 분청사기라도 소장, 좋아하는 그림을 곁에 두고 보는 게 박 화백의 소원. 하지만 어지간한 것이라도 수억원을 넘으니 ‘그림의 떡’일 뿐이다. 박 화백은 70년대 초반 서울신문에서 냈던 주간지 ‘선데이서울’에 ‘고인돌’을 연재하면서 본격적 직업 만화가로 나섰다.18년이나 연재를 하며 한국 잡지사상 최장기 연재 기록을 세웠으며, 이후 ‘딸기코 감독’‘월급쟁이 만세’‘오성과 한음’ 등 수많은 화제의 인물들을 창조했다. ‘분청사기에 나오는 그림처럼 폼 잡지 말자. 허풍떨지 말자.’ 되뇌이며 살려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뜻대로 안 된다는 박 화백. 하지만 내년 2월 학교(전주대)를 정년퇴임하면, 이미 자리를 봐놓은 전북 고창에 내려가서 그림 속 주인공처럼 천진스럽게 살아보겠단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농업 희망을 쏜다] (9) 장인정신·경영마인드로 승부

    [농업 희망을 쏜다] (9) 장인정신·경영마인드로 승부

    “아내가 어느날 짐을 싸더군요. 이유요?좋은 직장 관두고 도라지를 키우겠다는데 가만히 있겠어요, 허허.” 경남 진주시 금산면 장자리 ㈜장생도라지 이영춘(49) 대표의 너털 웃음엔 ‘스타 농꾼’이 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이 배어 있었다. 도라지 하나로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 대표는 장인정신에 경영마인드가 합쳐지면 농업도 대박을 터트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20년 이상 묵은 도라지를 사탕, 한방차, 화장품 등으로 개발해 지난해에만 5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는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 정도(正道)를 걸으면 어둠의 끝이 보인다.”고 말했다. ●빚더미에서 캐낸 도라지 이 대표는 빚더미에서 헤매던 옛 얘기부터 꺼냈다. 아버지인 현 장생도라지연구소 이성호(76) 원장은 가정보다 도라지 재배에만 관심을 쏟았다. 집안 형편은 말이 아니었고 신문배달로 학비를 벌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전기용접기능사 등 2개의 자격증을 딸 만큼 악착스러웠다. 그 결과 1977년 진주기계공고를 졸업하자마자 선망의 대상인 울산에 있는 삼성중공업에 들어갔다.“이제 어려운 시절은 끝났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당시 공무원 월급보다 3배나 많은 12만 3000원을 받았다. 하지만 월급 봉투는 뜯기도 전에 텅 비기 일쑤였다. 당시 다년생 장생(長生)도라지 재배 실패로 400만여원의 빚을 졌던 아버지가 집에 와서 월급을 송두리째 가져갔다.“아내가 생기면 그러시지 않겠지하고 결혼했는데 축의금 380만원을 들고 지리산 도라지 밭으로 가시더군요.” 이런 생활이 계속되면서 이 대표도 빚 700만원을 떠안았다. 좋은 직장을 갖고도 97년까지 5만원짜리 단칸방 월셋집을 전전했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가업을 잇기로 결심했다. 예상대로 주위의 만류는 만만치 않았다. 당시 삼성항공(현 삼성테크원) 인사과장이란 직책을 포기하는 것은 누가봐도 이상했다. 아내와는 6개월간 별거했다.“아버님이 20년근 도라지 재배에 성공한 뒤 공장을 확장하다 28억원의 빚을 지셨어요.4남 1녀의 장남인 제가 안나서면 누가 나서겠습니까.” ●45년 외곬 인생,21년산 도라지 재배에 성공하다 아버지 이 원장은 ‘인간 승리’의 장본인이다.54년부터 고향인 진주에서 평균 수명 3년인 도라지를 20년까지 키워내겠다는 집념에 평생을 바쳤다. 이 원장은 “가족들까지 미쳤다고 손가락질 했어. 하지만 난 ‘오래된 도라지가 산삼보다 낫다.’는 확신이 있었지.” 이 원장이 도라지 연구에 빠진 것은 14살때. 기관지 천식과 폐질환을 앓던 50대 이웃 아저씨가 산에서 큰 도라지를 캐먹고는 사흘간 잔 뒤 병이 씻은 듯이 난 것을 본 뒤로 도라지 재배에 매달렸다. 하지만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70년에 도라지를 3∼4년마다 새 흙에 옮겨 심으면 계속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91년에는 세계 최초로 다년생 도라지 재배로 특허를 땄다. 이 원장의 성공담은 고등학교 교과서 ‘한국지리’에 “도라지 하나로 세계를 제패하다.”는 제목으로 실리기도 했다. ●무결점 ‘항공기 생산’ 방식의 접목 부도 직전 회사를 떠맡은 이 대표는 ‘항공기 생산’ 방식을 떠올렸다. 사소한 결함 하나까지 점검하는 항공기의 생산공정처럼 치밀하게 살피고 엄격하게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재무분석부터 시작했다.“빚 28억원 가운데 사채가 11억원이나 됐죠. 더욱 기가 막힌 것은 ‘1억원을 빌려서 4년 뒤에 4배로 갚겠다.’는 사채까지 있더라고요.” 이 대표는 이후부터 아무리 돈이 많아도 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기업은 일어설 수 없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2000년에는 4억 5000만원을 투자, 최신식 생산 자동화 시설을 구축했다. 고객관리와 생산기준을 위한 매뉴얼도 직접 개발했다. 단골 손님이 주문하는데 이름을 또 물어보면 말이 되겠냐는 것. 그래서 고객 명단을 전산화했고 관리의 효율성을 높였다. 또한 매출의 20% 이상을 연구개발에 재투자했다. 직원들의 보수는 대기업의 80% 수준으로 지역에선 최고 수준이다. 친조카가 지원해도 성적이 안되면 떨어뜨린 사례는 지금도 거론될 정도다. 현재 국내 21개 대리점,30개 직영점, 해외 8개 영업망을 구축했다. 일본·홍콩·미국 시장은 물론 싱가포르와 중국 시장도 개척 중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1억 5000만원을 진주경상대와 진주국제대에 발전기금으로 내놓았다.“기업이 돈을 벌면 일단 직원들의 자존심을 올려주고, 이후 남는 것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다른 신화를 쓰려고 한다. 도라지의 약용 효과를 이용한 신약 개발이다.“매일 아침 눈을 뜨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어요. 오늘은 어떤 일을 하며 즐길까라는 생각에 희열이 느껴지거든요.” 진주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장생도라지’ 성공요인 분석 장생도라지는 구전으로 내려오던 다년생 도라지를 과학기술로 현대화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성공했다.‘오래된 도라지는 산삼보다 좋다.’는 전통지식과 ‘산에서 자생하는 도라지’ 자원을 현대화한 세계 유일의 상품을 내놓았다. 때문에 다른 경쟁자가 모방하기 어려워 경쟁력을 계속 유지할 수가 있다. 새로운 기업이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제품화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확률은 매우 낮다. 시장진입 과정을 ‘죽음의 계곡’을 통과하는 데 빗대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신생기업들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생산화하거나 마케팅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장생도라지도 특허를 얻었지만 처음에는 투자를 위해 악성자금을 끌어다 썼다. 관리능력 부족으로 부실이 발생, 사업 첫해부터 부도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현 경영진의 안목과 위기관리 능력으로 ‘죽음의 계곡’에서 벗어났다. 설립자인 부친의 장인정신에 현 경영자의 기업마인드가 합쳐진 결과다. 장생도라지는 국내에서 최고가의 건강식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암시장에서는 구할 수가 없다. 국제박람회와 학술대회 등을 통해 제한적으로만 브랜드를 알린 전략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입소문을 통해 제품이 알려지면서 고급스러움을 더했고,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암시장의 부정거래를 원천봉쇄했다. 장생도라지는 1차 산업으로 분류된 농업이 의약·신소재 등의 첨단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그러나 건강기능성 식품과 관련된 법과 제도의 비현실성으로 외국에선 인정받는 장생도라지가 국내에선 기능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 유럽 정상들 월수입 2700만원 vs 320만원

    |파리 함혜리특파원|유럽국 대통령과 총리들이 받는 월수입 총액(세전 기준, 기본급·상여금·수당 합계) 중 최고액은 2만 2834유로(약 2700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 최신호에 따르면 메리 매컬리스 아일랜드 대통령이 2만 2834유로로 최고액을 기록했고, 다음으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2만 1262유로, 하인츠 피셔 오스트리아 대통령 2만 775유로, 버티 아헌 아일랜드 총리 2만 558유로,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 1만 8553유로 순이다. 또 볼프강 쉬셀 오스트리아 총리 1만 8546유로, 장 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 1만 8500유로, 조르조 나폴리타노 이탈리아 대통령 1만 8200유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1만 5249유로 등이 뒤를 이었다. 이에 반해 동구를 포함한 옛 공산권 국가 지도자들의 월급은 상대적으로 크게 적은 것으로 나타냈다. 아이가르스 칼비티스 라트비아 총리 3108유로, 미쿨라시 주린다 슬로바키아 총리가 2684유로(약 320만원)로 가장 적은 월수입을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기본급은 월 6714유로로 나타났지만, 월급 외에도 파리 시장 등 각종 직책을 역임한 뒤 받고 있는 퇴직연금 1만 3549유로를 매월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현재 월수입은 2만유로(약 2400만원) 이상이 된다. 시라크는 또 내년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5342.73유로의 연금을 매월 추가로 받게 된다. lotus@seoul.co.kr
  • 앞치마·장바구니 만들어 쓰레기 줄이고 저소득층엔 일감

    앞치마·장바구니 만들어 쓰레기 줄이고 저소득층엔 일감

    “쓰레기 줄여 환경 살리고, 소중한 자원 재활용하고, 어려운 이웃도 돕는 1석3조의 효과죠.”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사용된 현수막은 약 7만 9000개.10m짜리 현수막 천의 무게가 약 1.5㎏인 것을 감안하면 전체 120t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폴리에스테르 등 합성섬유가 대부분인 현수막 천은 썩지도 않고 태울 때 유해물질이 나와 그야말로 ‘처치곤란 애물단지’다. 지난 1일 서울 관악봉천자활후견기관내 환경개선사업단에는 민주노동당으로부터 “우리 당 소속 후보들이 사용했던 현수막을 한데 모아 갖다 주겠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곧이어 다른 후보 사무실과 현수막 제작업체들에서도 비슷한 전화가 잇따랐다. 이곳은 2004년부터 수명이 다한 현수막을 가공해 장바구니, 앞치마, 토시 등으로 재생시켜 왔다. 직원 7명이 장바구니만 한달에 1000여개씩 만든다. 관악봉천자활후견기관 김태인(29) 사회복지사는 “그동안 물량부족으로 다른 곳에서 폐현수막을 구해 온 적까지 있었는데 이번 지방선거 때 사용한 현수막 물량이 역대 최다라 한동안 일감 걱정을 안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현수막을 활용한 장바구니는 대부분 ‘아름다운 가게’에 납품하고 있다. 앞치마, 신발주머니, 토시 등은 인근 초등학교에 공짜로 주고 있다. 특히 앞치마는 방수가 되는 천으로 만들기 때문에 인기가 좋다. 그동안 다이어트 식품이나 대리운전 광고 현수막이 많았고, 요즘엔 베트남 처녀 결혼광고 현수막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현수막이라고 해서 모두 재활용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물에 번지는 값싼 염료나 먼지가 많이 묻은 것은 사용하지 못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기초생활수급대상자들이다. 마땅한 기술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활의 기회도 되고 있다. 그동안 빌딩 청소, 미싱사 등 안해본 일이 없다는 이송미(42·여)씨는 “미싱 기술을 활용해 적은 돈이지만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돼 생활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면서 “시장에서 우리가 만든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아주머니를 만나면 기분이 참 좋다.”고 말했다. 직원 7명 중 청일점인 김창석(44)씨는 “쓰레기 처리비용도 줄이고 환경오염도 막고 우리 같은 사람에게 경제적인 도움도 주고 있다.”면서 “곧 서울시장 후보의 얼굴이 담긴 장바구니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복지사는 “아직은 장바구니의 판로가 마땅치 않다. 구청 차원에서 대형마트에 납품을 도와준다든지 재활용제품을 사용하도록 지침을 내려준다든지 하면 훨씬 좋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현수막 장바구니는 아름다운 가게(02-743-1004), 서울관악봉천자활후견기관(02-876-6730∼1)에서 1500원 정도에 살 수 있다. 글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길섶에서] 결혼기념일/한종태 논설위원

    “어제가 무슨 날인지 아세요.” 얼마 전 아내가 정색을 하고 질문을 던졌다.“무슨 날이라니?” 하고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지만 이내 시원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내는 그런 나의 모습에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쯧쯧. 그것도 몰라요. 결혼기념일이잖아요.”라고 쏘아붙인다. 아뿔싸! 18번째 맞는 결혼기념일을 까맣게 잊고 그냥 지나쳤던 것이다. 무슨 바쁜 일이 그렇게 많다고. 얼마나 서운했을까.5년간의 ‘한길’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해서인지 결혼기념일만큼은 두 사람 모두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터이기에 더욱 미안했다. 빠듯한 월급에 3명의 자식 키우랴, 부모님 챙기랴, 집안 행사 신경쓰랴 너무 고생이 많은 아내에게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요즘 건강도 예전 같지 않은 눈치인데…. “정말 미안하오. 다시는 이런 실수가 없도록 하겠소.” 아내를 포옹하는 순간 괜히 바쁘다는 핑계로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중요한 것을 소홀히 했다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은혼식을 멋드러지게 하고 금혼식까지 성대하게 할 수 있도록 우리 건강하게 오래오래 삽시다.” 한종태 논설위원 jthan@seoul.co.kr
  • [열린세상] 당선자들 낮은 곳을 향하라/강지원 변호사

    뜨거웠던 지방선거 열풍이 지나고 당선자들의 면모가 드러났다. 지금쯤 기쁨에 들떠 있을 당선자들에게 따끔한 몇 마디를 전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지난 60여년의 선거역사를 통해서 잘못된 전례를 답습하는 희한한 꼴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첫째, 우쭐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체로 당선된 자는 자신이 잘나고 특별한 인물이어서 이겼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례의 말이지만 그것은 착각일 가능성이 많다. 상대가 있는 게임에서 상대보다 많은 표를 얻은 것과 사람에 대한 이성적 평가에서 우위였는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선거란 그때마다 특유의 바람의 영향도 있고 투표 경향도 춤춘다. 대결구조에 따라 다르고 투표율 영향도 받고 심지어는 날씨의 영향까지 받는다. 그러니 차라리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기보다 그냥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교만하지 않는다. 겸손을 안다. 그래서 상대에게 미안한 생각도 하고 무엇보다 국민을 향해 낮은 자세를 가지게 된다. 공직자란 근본적으로 심부름꾼이다. 이제부턴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아먹고 공무를 처리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찌 한 자리 차지했다고 교만하고 우쭐할 수 있는가. 선거운동 때 그토록 머리를 조아리고 허리를 굽히고 다니던 모습,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자세를 견지하는지 계속 지켜보아 줄 참이다. 둘째, 낮은 곳을 향하라는 것이다. 우리네 세상에는 늘 높은 곳과 낮은 곳이 있기 마련이다. 돈을 많이 가진 쪽과 덜 가진 쪽만이 아니다. 공부를 많이 해 학식을 가진 쪽과 덜 배운 쪽도 있고, 건강을 가진 쪽과 그렇지 못해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쪽도 있다. 사회적 지위나 감투를 얻은 쪽, 명성이나 인기를 얻은 쪽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쪽도 있다. 숫자적으로 다수에 속해 유리한 쪽이 있는가 하면 소수에 속해 목소리가 작을 수밖에 없는 쪽도 있다.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기득권논쟁으로 끌고 가고자 하나, 이는 부질없이 이념적 갈등만을 부추기는 악습일 뿐이다. 문제는 이같은 얻은 자와 덜 얻은 자의 관계는 다양성 차원에서 서로 존중해야 하는 관계라는 점이다. 얻은 쪽은 덜 얻은 쪽을 배려하고 돕는 길을 모색하고 덜 얻은 쪽은 얻은 쪽을 인정하고 참여해서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선자들은 일단 감투를 얻은 자들이므로 일단 이번에 자신에게 표를 던져주지 않았던 쪽을 향해 배려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간혹 정파적 이욕의 노예가 되어 반대자들에게 각종 보복을 가하거나 못살게 구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말한다. 보복은 반드시 보복을 부를 것이라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름지기 지역사회의 지도자적 위치에 서게 되었다면 우리 사회의 균형과 통합을 위해 ‘덜 얻은 자’에게 뜨거운 가슴을 보이라는 점이다. 돈, 학식, 건강, 지위, 명성, 인기 등 그 어떤 것이 되었든 조금 덜 가진 탓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서도 최선의 배려를 다하라는 것이다. 셋째,‘뻥’치지 말라는 것이다. 그동안 각종 선거에서 얼마나 ‘뻥’치는 공약들이 난무했는지, 그래서 선거가 끝난 후 그 선택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우리 국민들은 다 경험했다. 잘사는 고장 만들겠다고 큰 소리를 뻥뻥 쳤는데 그렇지 못했다면 좀 심하게 말해서 그것은 ‘사기’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번엔 매니페스토 정책선거운동으로 후보자들의 상당수가 정책공약을 실현가능한 방식으로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평가결과는 다양하게 나타났다. 매니페스토평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후에도 계속된다. 당선자들은 부디 ‘사기’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정책공약의 실천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강지원 변호사
  • [사설] 이제 지방자치 주민감시가 중요하다

    5·31 지방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는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전국 단위의 마지막 선거여서 여야 정당 모두 전력투구한 탓에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이란 지방자치제의 본령에서 크게 벗어난 게 사실이다. 공천장사나 막판 불법·혼탁선거가 기승을 부린 것도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에 오염된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당사자 모두 선거의 승패를 떠나 지방자치 본래의 이념과 목표를 실천하는 데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선 지방자치가 더 이상 중앙정치에 예속되지 않도록 도와주려는 각 정당의 노력 역시 중요하다. 더욱이 이번 임기부터는 지방의원 유급제가 시행된다. 주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시·도 의원과 시·군·구 의원이 월급을 받는 것이다. 지방의원들이 주민들의 편익과 복리 증진을 위해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감시활동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크다 하겠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주민들은 4년마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 선거에 참여해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는 게 고작이다. 막대한 예산을 단체장이 어떻게 쓰는지, 또 의원들은 견제활동을 똑바로 하고 있는지 알 방법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 올바른 지방자치 정착을 위해서는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의식과 함께 현재 엉성하기 이를데 없는 주민감시체계를 폭넓게 제도화하는 것이 급선무라 하겠다. 특히 내년 7월부터 도입되는 주민소환제가 성공을 거두려면 이같은 주민감시체계가 제대로 가동돼야 할 것이다. 주민감시제의 활성화는 각 자치단체의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막고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예방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남발 가능성을 우려하는 주민소환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불식시키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부드러운 저음의 가수 안다성(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부드러운 저음의 가수 안다성(2)

    우리나라 드라마 주제가 제1호인 ‘청실홍실’은 당시 중앙방송국(현 KBS) 전속가수 안다성씨와 송민도씨가 듀엣으로, 그리고 40인조 시온성합창단(단장 이동일)에 의해 취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불려지는 노래는 스스로도 근사했으며 반응 또한 예상 밖이었다. 그러나 정작 음반은 현인씨와 권혜경씨의 목소리로 출반되었다. 이 노래로 실력을 인정받게 된 안다성씨는 곧바로 오아시스레코드사에 전속된다. 당시 오아시스는 일류 작곡가들이 활동하던 메이저 음반사로 그는 전속되자마자 박춘석 작곡의 ‘아주까리 주막집’을 비롯해 이재호, 손석우, 김호길씨의 곡을 고루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한다. 모나리자, 비극은 없다, 흐르지 않는 강, 보헤미안탱고, 굿바이탱고, 바닷가에서, 사랑이 메아리칠 때 등. 이미 가요 명곡으로 자리매김한 그의 초창기 노래들은 발표 당시만 해도 이전 가요들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안다성씨는 이 노래들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창법을 유감없이 표출해 보였다. 안다성씨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당시 내 월급이 아마도 대통령 월급의 다섯 배는 되었을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는 이듬해 국민들의 귀를 온통 라디오에 쏠리게 만든 드라마 ‘꿈은 사라지고’의 주제가 역시 취입한다.50년대 말, 이 ‘꿈은 사라지고’는 ‘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꿈이 절실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드라마로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 주제가 역시 영화화되면서 남자주인공 역을 맡은 최무룡씨에 의해 음반으로 출반되었다. 안다성씨 입장에서는 ‘청실홍실’에 이어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는 워낙 철두철미한 성격 그대로 누구보다 연습을 많이 했고 취입에 대비했다. “당시는 단 한 번만에 녹음을 끝내야 했지요. 악단이라든지 가수가 취입 도중 실수라도 하면 가차 없이 처음부터 새로 녹음해야 했기에 모든 경비가 이중으로 든다는 것이 당시 여건에서 가장 큰 난제였습니다. 실제로 가수가 취입 도중 몇 번씩 가사가 틀려 계속 NG를 내자 화가 난 음반사장이 연주인들과 식사를 하러가면서 가수를 안에 가둔 채 아예 밖에서 문을 잠그고 나갔던 일화도 있었던 시절이었지요.” 때문에 안다성씨는 취입할 때 감정에 몰입하다 보면 1,2,3절 가사가 혼동되어 실수할까봐 가사를 각각의 다른 색깔로 구분했다. 이를테면 1절은 검정,2절은 빨강,3절은 파랑 등으로 가사를 악보에 적어 마이크 앞에 섰을 정도다. 때문에 그로 인해 녹음이 중단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전성기 때 그의 별명이 ‘탱고의 왕’이었듯 그에 걸맞게 무려 20여곡이 넘는 탱고 곡을 발표했다. 보헤미안 탱고, 뒷골목 탱고, 나의 탱고, 이별의 탱고 등….‘에레나가 된 순이’ 역시 탱고리듬의 곡. 이 노래는 본래 가수 한정무씨가 취입했으나, 한씨가 교통사고로 타계하자 안다성씨가 재 취입해 60년대 말부터 ‘극장식 술집’에서 십년 넘게 불러 유행시킨 노래이기도 하다. 2005년, 그는 50여년 만에 꿈을 이룬다. 그의 데뷔 초기 취입곡 ‘청실홍실’과 ‘꿈은 사라지고’를 비로소 자신의 육성으로 음반을 출반한 것이다. 우리 가요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며 지금의 한국가요, 즉 ‘K-Pop’을 구축했다고 평가받는 작곡가 손석우 선생의 음악생활을 기념하는 ‘손석우 노래 55년’ 음반에 이 노래가 비로소 수록된 것이다. 이 노래를 첫 취입한 지 무려 50년 만이다. 그는 분위기 있는 노래 위주로 활동했던 만큼 다른 한편으론 분위기를 띄우는, 일종의 신나는 템포의 곡은 거의 없다. 심지어 지나치게 서정적인 노래로 인해 곤혹을 치른 적도 있을 정도다. 전성기였던 50년대 말, 경남 사천비행장 항공대원들을 위한 공연에서 그는 대표곡인 ‘바닷가에서’를 부르는 도중 갑자기 관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야유를 받았다. 말하자면 신나고 빠른 노래를 불러달라는 주문의 야유였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다른 한편에선 앙코르가 나오고 또 다른 한 쪽에선 야유가 계속되면서 급기야는 객석을 가득 메운 장병들이 두 패로 나뉘어져 싸움이 났다. 야유가 나오면 무대 뒤로 들어가고 앙코르가 요청되면 다시 나오고. 두세 번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연출되었다. 지금은 웃으며 회고하지만 당시 가수 입장에서는 식은 땀나는 노릇이었을 터. “얼추 잡아도 그동안 500여 곡은 족히 불렀던 것 같은데 말이지,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무대에서 내 노래를 부르는 후배들을 보지 못했어요. 그만큼 내 노래가 너무 어려웠던 것 같아. 안 그런가?” 안씨의 얘기다. sachilo@empal.com
  • [이현세 만화경] 낙도 어린이의 꿈

    [이현세 만화경] 낙도 어린이의 꿈

    나라 안은 지방선거와 테러와 온갖 잡다한 소식이 쏟아지고 나라 밖 인도네시아에서는 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모든 소식들도 월드컵 앞에서는 무력하다. 월드컵은 지구촌을 덮치는 쓰나미 같은 것이다. 발로 공을 차 넣는 축구라는 스포츠는 너무나 야성적이고 섹시해서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섹스를 연상케 한다. 그 때문인지 축구만큼 전 세계를 열광시키는 스포츠도 없다. 도대체 월드컵의 꿈은 무엇인가? 목포에서 배를 타고 네 시간 정도 가면 자라라는 작은 섬이 나온다. 겨우 50여 가구가 사는 섬으로 젊은 사람은 거의 없고 대개가 노인들이다. 젊은 사람들이 없어 고기잡이는 불가능하다. 노인들은 김양식과 밭농사에 수입을 의존해 생계가 막막하다. 정부 지원금이 조금 있지만 노인들은 고된 삶에 지치고, 그래서 섬은 유령처럼 조용하고 느리다. 섬에 자라분교라는 초등학교가 있다. 전교생이 모두 12명이고 여 선생님 세분이 목포에서 출퇴근하며 봉사하고 있다. 학생들중에 9명은 엄마 아버지가 없다. 가난한 섬의 생활고가 부모들을 헤어지게 했고, 이혼을 한 젊은 부모들은 도시인 목포로 가버린다. 그래서 대다수 아이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다. 섬은 바다와 외로움과 가난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월급조차 제대로 집으로 가져가지 못한다. 그러나 이 새까맣게 그을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유령 같은 섬을 살아서 움직이게 한다. 섬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꿈으로 살아난다. 한달전 자라분교 아이들이 계룡대의 초청으로 서울나들이를 왔다. 계룡대에서 1박을 하고 에버랜드를 거쳐 수방사에서 하루 숙박을 하는 것이었는데 내 임무는 수방사에서 꼬마손님들과 저녁을 같이하고 12명의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것이었다. 냉온방 설비사업을 하는 친구가 자진해 기사노릇을 했다. 먼저 세분 선생님의 캐리커처를 그렸다. 아이들에게 에버랜드는 그림의 떡이었다고 선생님들은 모델의 어색함을 떨쳐 버리기라도 하듯이 얘기를 시작했다. 할머니나 삼촌에게서 받은 용돈은 고작 2000원이나 3000원이었고 그 돈으로는 청룡열차 한번 탈 수 없었다. 섬에는 낡은 자전거 1대가 있다. 누구나 자전거를 갖고 싶어한다. 마음씨 좋은 친구는 그 자리에서 자전거 12대를 기증했다. 애잔한 마음으로 12명의 전교생을 만났다. 아이들의 힘이 전달되어서 좋았다. 눈은 맑고 몸은 정직한 건강함이 있었다. 그러나 증명사진을 찍을 때처럼 놈들은 내 눈을 의식해 주눅이 든다. 이럴 땐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말을 건다. 아이들의 꿈을 묻는다. 남자아이 여섯놈의 장래희망이 축구선수였다. 예상답안이다. 군인이 되고 싶다는 두 놈. 이것도 예상답안이다. 초청을 받고 본 늠름한 멋쟁이 사병의 영향이다. 그리고 장래 선생님이 되겠다는 여자 아이가 셋, 남자아이 하나, 이것도 예상답안이다. 봉사하는 시골 섬마을 선생님에 대한 아이들의 존경심. 그리고 발레리나와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답이 하나 나왔다.5학년 여자아이였는데 장래 소망이 공군이다.“왜 하필이면 공군이니?” “날고 싶어서요!!” 아아. 모든 아이들이 보고 듣는 구체적인 정보에 의해서 꿈을 만들었는데 이 아이만은 순수한 욕망에 의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날개가 없는 아이가 오로지 날고 싶어서! 나는 왜 날고 싶은데라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으니까. 우리 태극전사들이 드디어 한달간의 긴 여정을 향해서 출정을 했다. 월드컵의 꿈은 확실히 비즈니스만은 아니다. 그리고 기어코 이겨서 국위를 선양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승리만이 그 목적도 아니다. 태극 전사들아, 그 따위 국위선양 승리 비즈니스 따위는 다 던져 버리고 순수한 꿈을 꾸어라. 흙먼지 원시의 광야위에서 갈기를 휘날리는 사자의 고독한 순수함처럼 오로지 달리고 싶다. ‘차고 싶다.’라는 순수함으로. 만화가
  • 결혼 하루전 떠나야만 했던 신랑의 속사정은

    “제가 배운 것도 적고 돈도 많이 못 벌었으면 떠나지 않았겠지요.지구 끝까지 찾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찾아 행복하게 살 겁니다.” 중국 대륙에 20대 후반의 한 여성이 결혼식 하루전 친구에게 편지 한통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예비 신랑을 찾아달라고 애타게 호소하고 나섰다. 왕추훙(汪秋紅·여·29)씨는 25일 법률구조센터의 탕젠(唐建) 변호사를 찾아와 결혼식 하루 전에 집을 떠나가버린 예비신랑 리제(李杰·29)씨가 1개월이 다 되도록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며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좋으니 찾아만달라고 호소했다고 중국 광주일보(廣州日報) 인터넷신문인 대양망(大洋網)이 26일 보도했다. 왕씨에 따르면 궐녀는 지난 1996년 허난(河南)대 3학년 때 기숙사 동료였던 친구의 소개로 충칭(重慶)대 3학년이던 리씨를 만나 서로 ‘눈이 맞아’ 사귀게 됐다. 사랑을 속삭이던 이들 두 사람은 대학원에 함께 진학,공부를 더 하기로 굳게 약속했다.그러나 왕씨는 후난대학원 국문(중문)과에 합격한 반면,리씨는 시험에서 고배를 마셨다.그래서 리씨는 곧바로 고향 쓰촨(四川)성 청두(成都)로 돌아간 뒤 이웃 충칭(重慶)시 기업에 취직해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했다.월급은 2000위안(약 26만원) 정도를 받았다. 지난해 여름,그녀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아 남자 친구 리씨가 근무하고 있던 충칭시 외국계 기업에 취직했다.월수입은 남친보다 무려 5배나 많은 1만위안(130만원)을 받았다. 충칭에서 근무한 이들 두사람은 둘 다 고향을 떠나온 외지인지라,한 집에서 동거나 다름 없이 생활을 하게 됐다.그런데 왕씨는 남친 리씨에게서 전과 다른 점을 발견했다.이전까지는 매우 활발하고 말도 잘했는데,최근 들어서는 일체 말이 없어진 것이다. 이에 그녀는 그의 친구들을 만날 때면 남친의 입장을 고려해 항상 자신이 박사라는 점과 한 회사 책임자라는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왕씨는 “내가 느끼기에는 그가 아무래도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남친의 체면이 손상되지 않도록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털어놨다. 이후 그녀는 “남친을 위해 더욱 조심해 못마친 일을 집으로 가져오지 않았고 집안에서는 회사 일에 대해 한 마디의 말도 꺼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궐녀의 ‘눈물겨운’ 노력을 가상히 여긴 때문인지,남친 리제씨는 제법 감동을 받았지만,그의 ‘자격지심’만은 한없이 깊어져만 갔다. 여하튼 이들 두 사람은 양가의 허락을 얻어 지난 5월 1일 국경절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약속했다.그리고 시가인 리씨의 집에 혼인신고를 해 결혼증을 받아주도록 요청했다.그런데 결혼식을 하루 앞둔 지난 4월 30일 저녁 예비신랑 리씨가 갑작스레 아무 말도 없이 떠나가버린 것이다. 왕씨는 예비신랑 리씨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허사였다.그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그의 직장으로 찾아가보았으나 이미 사표를 내고 어디론가 떠나가버리고 없었다. “그를 사랑합니다.결코 학력이나 월급이 서로 사랑하는데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그런데 결과가 왜 이렇죠.그를 찾기 위해 사표를 낼 생각입니다.9년 동안 키워온 사랑을 이렇게 무너뜨리고 싶지 않습니다.” 눈 자위가 붉게 물든 왕씨는 “항상 그만 생각하고 있다.”며 “꼭 그를 찾아 행복을 가꾸고 싶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 美 간호사 빼가기 개도국엔 고통

    美 간호사 빼가기 개도국엔 고통

    미국이 전 세계 ‘간호 인력’을 싹쓸이하면서 개발도상국들의 의료 체계가 심각한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미 상원이 외국 간호사의 이민 제한을 사실상 철폐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의료 인력’의 독식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미 병원협회는 현재 11만 8000명의 간호사가 부족한 상태이며 2020년까지 부족한 인력 규모는 8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25일 세계 최대의 ‘간호사 수출국’인 필리핀 병원들이 의료 인력의 대량 유출로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도 개도국의 보건 체계가 크게 흔들리면서 에이즈 등 질병 퇴치를 위한 노력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병원들은 아우성을 치고 있다. 매년 수천명의 간호사들이 필리핀을 떠나고 있다. 의료 전문가들은 국립 병원의 의료 인력 대부분이 이민을 계획하거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고 말한다. 조지 코르데노 필리핀 간호협회 회장은 “숙련된 간호사들이 다 미국으로 가면 남는 건 필리핀 사람들의 고통뿐”이라고 한숨을 내쉰다. 필리핀 정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5만명이 넘는 간호사와 의사가 해외로 떠났다. 폐업하는 민간 병원도 늘고 있다.1998년 이후 687개의 병원이 문을 닫았다. 의료 인력의 부족이 큰 원인이었다. 필리핀 민간병원협회는 앞으로 4년 동안 폐업하는 병원은 1000여곳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현재도 필리핀 전역의 국립 병원과 개인 병원들은 인력 부족으로 진료 과목을 줄이고 있다. 미국 이민은 필리핀 중산층에게 매력적인 기회다. 필리핀에서는 국립 병원 의사의 한 달 월급은 300달러(약 30만원)가 채 되지 않는다. 간호사는 150달러 미만이다. 미국에서 간호사 연봉은 3만 6000달러(약 3600만원)를 넘는다. 필리핀의 의사들조차도 미국에 간호사로 취업할 정도다. 호세 레이예스 메모리얼 병원의 간호 훈련 담당 베아트리츠 솔은 “교육을 마친 간호사의 90% 이상이 6개월도 안돼 (해외로)이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현재 국립병원에서 일하던 수백명의 의사들이 간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교육받고 있다.”면서 “그들도 부끄러워하지만 (미국에서) 간호사가 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한탄했다. 자국 노동력의 해외 수출에 적극적인 필리핀 정부에도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지만 필리핀은 해외로 나간 국민들이 보내는 달러에 많이 의존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해외 거주 필리핀인들이 고국에 보낸 송금액은 123억달러(약 12조 3000억원). 올해는 135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미국 이민 제도로도 매년 전 세계 1만 4000여명의 간호사가 일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가고 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5·31 지방선거 서울 구청장 후보들] 마포구

    [5·31 지방선거 서울 구청장 후보들] 마포구

    마포구는 격전지다. 현구청장인 박홍섭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한나라당 신영섭 후보가 긴장 속에서 표밭을 다지는 가운데 열린우리당 김충현 후보와 민주당 정형호 후보는 한번 해볼 만하다며 추격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마포의 새바람’이란 캐츠프레이즈를 내건 열린우리당 김충현 후보는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와 합정동 균형발전 지구를 연결하는 디지털밸리를 건설하겠다고 공약했다. 국회의원 출신인 그는 130층 초고층빌딩 건립, 상암역 신설, 방송사 유치 등 굵직한 경제분야 공약을 내세웠다.119억원 재산가답게 월급을 받지 않는 클린 구청장을 선언했다. 한나라당 신영섭 후보는 “구태정치는 잘 모른다. 그러나 마포와 경제는 잘 안다.”며 전문성과 참신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경제학자답게 외자유치를 통한 테마파크를 건설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인천공항∼마포∼고양∼일산∼파주∼개성공단으로 이어지는 길목인 마포에 테마파크를 건설해 해외관광객을 유치하고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현 구청장인 박홍섭 후보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50만원 선고를 받은 뒤 마음고생을 하다 뒤늦게 선거전에 뛰어 들었다. 그는 “일 잘하는 구청장이 뚜벅뚜벅 마포를 위한 길을 가겠다.”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경의선 전철·인천공항 철도의 지하화를 관철하고, 홍익대 문화예술의 거리를 개발한 업적을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 어린이 도서관, 미술관 등을 설립해 마포를 삶의 질이 높은 문화·교육도시로 업그레이드할 생각이다. 정형호 후보는 세무사답게 투명한 세정으로 조세정의를 실현하고, 자영업자·재래시장 상인에게 특별 감면 정책을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노동당 홍순광 후보는 ‘지방정치 판갈이, 일하는 나를 위한 선택’이란 슬로건으로 평등하고 건강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보험사도 소액결제 추진

    보험 가입자들도 보험사에 계좌를 만들어 월급을 이체시키거나 송금, 신용카드 대금 및 지로결제, 입출금 등의 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보험료도 은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보험 계좌에서 직접 빠지게 된다.여·수신과 증권거래, 보험 등 각각의 고유영역을 제외한 지급결제 기능이 은행·증권·보험 등 모든 금융기관에서 허용된다는 뜻이다. 시장에서는 은행이 보험업무를 보는 ‘어슈어런스’에 맞서 보험사가 은행업무의 일부를 맡는 ‘어슈어뱅킹’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 임영록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은 23일 한국경제TV에 출연,“현재 보험산업발전방안이 마련되고 있으며 여기에는 보험사에 소액결제 기능을 주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밝혔다. 임 국장은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안과 함께 보험업법 개정안을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시기와 내용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 논의 단계”라고 말했다. 정부가 보험사에 지급결제 기능을 주려는 이유는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에 따라 증권사에도 같은 기능이 허용된 데 따른 형평성 차원이다. 지급결제 기능은 특정 금리를 보장한 적금이나 정기예금 등 은행 수신업무와는 구분된다. 정은보 재경부 보험과장은 “증권사에 허용할 지급결제 기능의 범위를 정한 뒤 보험사 지급결제 기능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증권계좌로도 송금과 이체, 신용카드 대금 및 지로결제 등의 은행업무를 볼 수 있게 해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보험사에는 개인별 보험계좌가 따로 없다. 보험사들은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환영하면서 “보험계좌가 신설되면 은행 수수료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송금이나 이체 등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은행계좌를 통해 고객으로부터 보험료를 받으면서 연간 1000억원에 가까운 수수료를 은행에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전국 가구의 90%가 생명보험에 가입했다. 생명보험 가입자 수는 20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내 작은 정성이 큰 힘이 되었으면”

    육군 상병이 입대 이래 월급 전액을 공익재단에 기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육군 백마부대 김성훈(23) 상병은 지난 2004년 12월 안동대 토목공학과 재학 중 입대, 첫 휴가를 나와 그동안 모은 월급 6만 6000원을 시민공익재단 ‘아름다운 재단’에 송금했다. 김 상병은 이후 일병 월급 3만 6000원 전액을 매달 송금했고, 상병으로 진급한 지난해 12월부터는 오른 월급 3만 9900원을 기부했다. 김 상병은 “신병교육대 훈련 중 군종 신부님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 의미있는 일을 찾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조그만 정성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상병은 송금할 때마다 송금영수증에 메모를 남겼다. 이 메모엔 ‘힘들지만 그래도 했다’ ‘벌써 1년. 내 작은 희망이 큰 힘이 되길’ ‘잔액이 없다. 그래도 더 열심히 해야지’라는 소감을 적었다. 김 상병은 “군것질도 하고 싶고, 추운 겨울엔 주머니 핫팩도 사고 싶었지만 참았다.”며 선행이 알려지는 걸 쑥스러워했다. 김 상병의 기부금은 이제 50만원이 넘었다. 그의 선행은 송금영수증을 우연히 보게 된 부대 행정보급관 김재민 원사를 통해 알려졌다. 김 상병은 최근 봉급이 많이 올라 6만 5000원을 받지만 분대장이 되면서 분대원들을 위한 최소한의 지출이 필요해졌다. 아버지가 트럭운전을 하는 평범한 집안의 1남 2녀 중 막내인 김 상병은 월 4만원을 통장계좌에서 아름다운 재단으로 자동 계좌이체를 시켜놨다.고양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커리어 우먼] 박연신 마르쉐 제과제빵 기능장

    [커리어 우먼] 박연신 마르쉐 제과제빵 기능장

    ‘과자와 빵의 장인’임을 공식 인증받는 제과제빵 기능장은 국내에 200명이 있다. 지난 1992년부터 시험이 생겼는데 실무경험이 11년 이상이거나 기능사 자격 취득 이후 실무경험 8년 이상이어야 응시할 수 있다. 재료과학·식품위생학 등 필기시험 5개 과목과 실기시험 8시간 등의 고난도 시험이다. 여성 제과제빵기능장은 9명. 박연신(51) 마르쉐 서울 역삼점 기능장이 지난 2003년 첫 테이프를 끊었다. 박 기능장은 “2000년에 먼저 기능장이 된 남편(김영광 한국관광대학 제과제빵과 교수)이 여성 기능장이 안 나온다며 지원해 보라고 격려한 것이 가장 큰 힘이 됐다.”고 회고했다. 제과제빵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최고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도 컸다. 시험을 준비하는 1년 6개월 동안 하루 2∼3시간만 잤다. 이론과 실기공부는 물론 실기시험에 필요한 체력을 다지기 위해 운동도 거르지 않았다. 남들은 수차례씩 떨어진다는 시험에 한번만에 붙었다. ●첫 시험때 합격한 여성 기능장 1호 고등학교 졸업 이전인 지난 1971년 조선호텔에 입사한 박 기능장의 업무는 점심·저녁시간에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직원들의 숫자를 세는 일이었다. 휴식시간에 빵 굽는 냄새에 이끌려 베이커리에 들어섰고 이후 시간 나는 틈틈이 베이커리에 들러 일손을 도왔다.1년 뒤 베이커리로 옮기지 않겠느냐는 뜻밖의 제의를 받고 빵의 길에 들어섰다. 박 기능장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늘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버릇이 좋은 인상을 심어준 모양”이라며 “사심없이 바쁜 동료들을 돕다보면 자신에게 득이 된다.”며 두가지 성공비결을 소개했다. 또다른 성공비결은 끊임없는 공부다. 조선호텔에서는 1∼2년마다 베이커리 담당 요리사를 교체했다. 박 기능장은 그 덕분에 여러 명의 서양 요리사들이 갖고 있는 기법이나 기술들을 곁에서 배울 수 있었다. 이어 신라호텔로 옮겨 일본 빵과 과자기술을 익혔다. 신라호텔은 일본 오쿠라호텔과 제휴관계를 맺고 있다. 직급에는 연연하지 않았다.“빵과 과자는 학벌이나 직급이 아니라 실력으로 굽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관련 기술이나 이론 공부에만 전념했다. 남녀차별이 거의 없는 호텔에 근무한 것도 도움이 많이 됐다고 덧붙였다. 실력을 인정받아 조선호텔 근무 당시에는 월급이 1년에 두번 올라 1년새 월급이 두배가 되는 특전도 받았다. ●“빵·디저트 분야도 창의력 중요” 신라명과 창립멤버로 참여했던 박 기능장은 1995년 빵집을 만든다며 회사를 그만뒀다. 하지만 석달만에 실패했고 주한 미군 용산기지에 패스추리담당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 곳에서도 열정을 인정받아 1997년 주한미국대사관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나이가 들기 전에 더 배우고 싶어 1998년 직장을 나와 국내에 막 소개되기 시작한 설탕공예(슈거아트) 학원에 다녔다. 그러던 중 마르쉐에 근무하던 후배 소개로 현 직장에 자리를 잡았다. 기능장 정도면 여유도 있을 법한데 그녀는 요즘도 신참처럼 출근과 동시에 그날 할일을 꼼꼼히 챙긴다. 모든 요리가 그렇듯 빵과 디저트 분야도 창의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애쓴다.“어떤 디저트에 어떤 토핑을 얹을까.”라는 고민을 늘 하지만, 그 고민 자체를 즐긴다. 요즘 박 기능장의 관심은 망고와 딸기 등 과일을 이용한 새로운 디저트 개발에 온통 쏠려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디저트가 맛도 있어야 하지만 먹는 사람의 심리에도 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 기능장은 “디저트가 달고 열량이 높다고 걱정하면서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맛있게 먹고 대신 많이 걸으면 된다.”고 충고했다. 몇년 뒤 “내가 배운 기술이 다 녹아난, 작지만 아담한 빵집”을 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그녀는 빵의 세계에서 시간을 잊고 산다. 글 전경하 사진 도준석기자 lark3@seoul.co.kr ■ 박연신 기능장은 ▲1955년 서울 출생▲1971년 조선호텔▲1978년 신라호텔▲1984년 신라명과▲1995년 주한미군 베이커리 담당 과장▲1999년 마르쉐 입사▲2003년 제과제빵 기능장
  • [한류통신] 외국인의 한국관심 만큼 한국의 외국배려도 중요

    [한류통신] 외국인의 한국관심 만큼 한국의 외국배려도 중요

    거리에 나서면 한국어에 대한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한다.“여보세요.”“오빠 사랑해.”“안녕하세요.”“감사합니다.” 같은 말들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현지인을 통해 쉽게 들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한류를 통해 여러 사업이 성장할 수 있는 잠재적인 시장이다. 노키아가 장악하던 이곳에 삼성 휴대전화가 파고들어 대학생들 사이에 가지고 싶은 휴대전화 1위가 된 것은 어제 일이 아니다. 뒤늦게 LG가 동방신기를 앞세워 지난 4월 이곳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웬만한 기업 과장급 월급의 반절이나 하는 휴대전화도 팔리는 매력적인 곳이다. 매주 일요일 오후 2∼4시 젊은이들이 많이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어 강좌와 K-POP(한국 대중음악)이 차트로 정리되어 발표된다. 지난 11일부터 닷새간 월드컵에 아시아를 대표해 출전한 한국팀을 위해 한국으로 날아가 거리 응원을 같이 하자는 이곳 여행사들의 마케팅 전략에 1000명이 동참했다.2002년 국제 스포츠 무대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길거리 응원이 한국을 알리는 새로운 관광 자원이 된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여타 동남아시아와는 다르다. 한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래서 한국어 능력 시험 응시율이 낮다. 우리와 달리 97년 잇따른 외환 위기를 당당하게 홀로 이겨낸 나라다. 말레이시아에서는 한류라는 이름보다는 아시아인의 동질성과 일체감으로서 한국으로 접근해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말레이시아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무슬림 국가라는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국에 가면 무슬림들의 종교 음식을 쉽게 먹을 수 있을까.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한국인보다 한국을 찾은 말레이시아인이 더 많은 지금 불행하게도 한국에는 무슬림 전용 식당이 한 곳뿐이다. 다행히 강원도가 찾아오는 무슬림들을 위해 무슬림 전용식당과 기도실을 만들어 무슬림 방한객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의 소중한 것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이 소중히 여기고 필요한 것에 대한 맵시있는 배려가 더 늦기 전에 있어야 한다. 급격하게 일었던 한류를 말레이시아에서는 아무런 분석과 활용 없이 그냥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아시아의 무슬림들에게 한류와 국가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한국 제품의 구매 열기로 이어지고, 이러한 구매 열기가 다시 한류를 촉진시키는 상호 보완적인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마라 대학교 한국어 강사
  • [인천이 원조] (6) 해외이민

    [인천이 원조] (6) 해외이민

    1902년 12월22일 인천 제물포항에서는 미국 하와이로 이민을 떠나는 121명이 ‘켄카이호’에 오르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84%는 인천 사람으로 대개 하층민이었다. 전년에 큰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사람이 많았던 데다 국제정세 또한 나날이 암울해져가는 상황이었지만 이들의 발걸음은 가볍지만은 않았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몰랐던 민초들로서는 이국에 대한 동경심보다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앞섰기 때문이다. 이윽고 출항의 뱃고동 소리가 살을 에는 듯한 바닷바람을 가르자 이민가는 사람들이나 송별하러 나온 친지들은 너나할 것 없이 울음을 떠트렸다. 이로써 우리나라 이민사의 첫 장이 열리게 되었다. 요즘은 자녀교육이나 더 나은 생활을 위한 이민이 대부분이나 당시는 하와이 노동력 확보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이민이 진행됐다. 사탕수수 재배가 한창이던 하와이는 노동인력 부족으로 임금이 상승하는 시기였다. 주한 미국공사 앨런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02년 3월 하와이에서 사탕수수재배자협회와 한인 노동자 이민문제에 대해 협의를 하고 서울로 돌아와 자신을 신임하는 고종에게 적극적으로 이민정책을 권고했다. 이후 사탕수수재배자협회 비숍 회장이 우리나라를 방문해 정부와 이민조약을 체결하고, 정부는 이민업무를 담당하는 ‘수민원(綏民院)’을 설립했는데 책임자는 민영환이었다. 이민자 모집은 수민원의 위임을 받은 미국 동양광산회사 인천 주재 사원인 데실러가 담당했다. 그는 인천에 동서개발회사를 설립하고 서울과 부산, 원산 등지에 지사를 만들어 한국인 책임자를 두고 이민 희망자를 모집했다. 이를 위해 역이나 교회, 외국공사관 등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서 선전활동을 하고, 대한제국 정부 명의로 ‘황성신문’에 공고를 내기도 했다. “하와이 기후는 온화하여 심한 더위가 없으므로 각인(各人)의 기질에 합당하며 월급은 미국 돈으로 15달러씩이요, 일하는 시간은 매일 10시간이요, 일요일에는 휴식함.”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민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자 인천 제물포 내리교회 목사였던 존스가 적극 나섰다. 그는 내리교회 신자는 물론 친지나 이웃들에게 하와이로 갈 것을 권했고, 서울 등을 다니면서 이민을 설파했다. 일종의 ‘이민 전도사’였던 셈이다. 첫 이민자 가운데 내리교회 신자들이 대거 포함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02년 최초의 이민자들이 하와이로 출발했으며,1905년 이민이 금지될 때까지 7200여명이 고국을 떠났다. 첫 이민자(121명)는 내리교회 신도(50명) 외에도 인천항 노무자(20여명), 농민들이 포함됐으며 대부분 인천지역에서 모집됐다. 이들에게는 배삯과 별도의 지참금이 지급되었다. 제물포항을 출발한 이민자들은 일본 고베항에 도착해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20명이 전염병 보균자로 밝혀져 탈락하고 101명(남자 55명, 여자 21명, 어린이 25명)만이 미국 상선 ‘갤릭호’를 갈아타고 1903년 1월13일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하와이 보건당국의 정밀검사로 안질에 걸린 것으로 판명된 4명은 인천항으로 되돌아오고,97명만이 최종적으로 하와이 땅을 밟았다. 하지만 이민 1세대의 생활은 달콤했던 ‘이민 공고문’과는 달리 고난의 연속이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美 ‘실속파 재택근무’ 年10% 는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화이트칼라들의 재택근무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미국에서 정규직만 1200만명을 넘어섰다.2004년 이후 매년 10%씩 늘고 있다고 디어링거 리서치 그룹이 15일 밝혔다. 소도시에 거주하며 컴퓨터를 이용해 대도시의 회사를 위해 일하는 ‘재택 근무자(Telecommuter)’들이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이들은 돈은 대도시에서 벌고 생활은 소도시에서 즐긴다. 소도시가 생활환경도 좋고 물가도 적게 들기 때문이다. 재택근무는 근로자나 회사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윈윈’ 게임이다. 근로자는 대도시의 살인적인 주택비 등 고물가와 교통체증 등을 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뉴욕에서 연간 10만달러(약 1억원)를 벌어야 유지할 수 있는 생활 수준을 노스캐롤라이나의 그린빌에서는 4만 4500달러로 유지할 수 있다. 디어링거 리서치에 따르면 주택비는 77%, 가스·전기·수도 등 공공서비스는 38%, 식료품 구입비는 28% 절약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 회사로서는 사무실과 책상, 전화 등 각종 비용이 절약된다. 미 재택근무협회는 “재택근무자들이 출퇴근 근로자들에 비해 생산성도 높고 실제로 일하는 시간도 길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에서 가장 생활비가 비싼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에 자리잡은 기업들 가운데는 “생활비가 너무 비싸다면 채용에 응하지 않는 구직자들도 있다.”고 CNN이 구인담당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재택근무는 미 연방 및 주 정부 그리고 시민단체 등에서도 적극 후원한다. 조지아 주에서는 CCI라는 단체가 나서 애틀랜타의 기업들을 위해 일할 전국의 재택근무자들을 찾고 있다.이 단체의 사무총장인 크리스 밀러는 “월급은 대도시에서 받고, 일은 생활비가 저렴한 곳에서 할 수 있다.”고 재택근무의 장점을 강조했다. 최근에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소기업이나 1인 기업도 재택근무자를 고용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위스콘신 주의 로디라는 마을에 자리잡은 ‘팀 더블 클릭’이라는 회사는 소기업과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들을 연결시켜 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da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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