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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의 ‘삶이 피곤한’ 사람들 2제] 단순노동직 실업률 늘고 월급은 줄어…

    ‘외화내빈(外華內貧)속의 부익부 빈익빈?’ 제조업 일자리는 줄고, 전문직과의 소득격차는 벌어지면서 미국 노동자들의 어깨는 갈수록 처지고 있다고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 등이 전했다.4일 미국 노동자의 날을 즈음해 이 신문들은 “겉으로는 상황이 나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양극화 늪에 빠져들었다.”고 진단했다. 지난 1일자 CSM은 전문직들은 업무량이 늘면서 과다한 일 부담을 호소하고 있지만 단순직 블루칼라들은 낮은 급료와 일할 시간 부족에 애를 태우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속에서 2001년 이후 경제는 12% 성장했지만 중간층의 가계 소득은 오히려 0.5% 떨어졌다. 지난해 상위 20%의 가계 소득은 2% 느는데 비해 중간층 소득은 0.9% 증가에 불과했다.학사학위 소지자의 실업률은 2.3%지만 고졸 이하 학력 소지자의 실업률은 6.7%인 것도 양극화의 한 모습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또 연금을 받는 민간기업 직원도 10년 전보다 6%포인트나 줄어든 18%. 노동자에 대한 혜택이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 준다.CSM은 비용절감 차원에서 어지간한 업무는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등 해외로 아웃소싱되고 작업환경이 컴퓨터 중심으로 변화되면서 전문직의 활용도는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반면 단순 노동직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강금실 전 법무 여성인권 대사직에 반년만에 재임용 논란

    강금실 전 법무 여성인권 대사직에 반년만에 재임용 논란

    지난 3월 서울시장 선거(5·31) 출마를 위해 정부의 대외직명 ‘여성인권’ 대사직을 자진 사퇴한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6개월 만에 다시 그 자리에 임용됐다. 사퇴 당시는 1년 임기(2004년 1월∼2005년 1월)를 마치고 연임까지 하던 상황이었다. 강 전 장관은 31일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강 전 장관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선거를 의식해 자진 사퇴한 자리를 낙선한 뒤 다시 챙기는 모양새가 보기에 좋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대외직명(Ambassador at Large) 대사는 공식 직명이 ‘대사’지만 외무공무원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민간인 신분을 유지한다.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고 외교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하며 월급도 없다. 그러나 대외 활동에 나설 경우 항공료와 체류비용 등 경비 및 현지 우리 공관원들의 지원도 받는다. 제도상 임기는 1년이며 임무수행상 필요한 경우 1년에 한해 연장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도상 10명 이내로 대외직명 대사를 두게 돼 있으며 외교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공관장 인사가 그렇듯 외교관 아닌 외부인사의 경우 청와대의 뜻으로 임명되는 게 상식. 필요성이 있을 때 대상자를 뽑는다고 돼 있지만, 사실상 특정인을 놓고 자리를 마련하는 관행이 계속돼 왔다. 이날 강 전 장관 외에 황인성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평화협력 대사로, 최양부 전 주아르헨티나 대사가 농업통상 대사로 각각 임명장을 받았다. 동북아위원회 위원장을 하다 물러난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최근 국제안보 대사직에,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을 지낸 정찬용씨가 NGO 대사를 맡고 있다. 대외직명 대사 제도는 지난 92년 만들어졌으며,2∼3명씩 있었으나 참여정부 들어선 7∼10명을 유지했다. 강 전 장관은 이날 서울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임명장을 전달한 반기문 외교장관으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은 뒤 “그동안 잘 쉬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떠오르는 아베시대] 집안 내력과 성장 배경(상)

    [떠오르는 아베시대] 집안 내력과 성장 배경(상)

    |도쿄 이춘규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관방장관이 1일 사실상 총리를 뽑는 집권 자민당 총재선거 출마 선언을 한다. 하지만 그의 차기총리 당선은 확실시된다. 그는 이미 전직 총리들을 예방하며 성원을 부탁하는 등 총리 행보를 시작했다. 다가오는 ‘아베 시대’에 앞서 그의 성장배경과 인맥, 정치 철학과 한반도 인식 등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아베의 성장 배경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우선 그의 출신지역이 야마구치현이라는 점이다. 야마구치현은 일본의 근대국가를 출범시킨 1868년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을 배출한 지역이다. 야마구치현은 근대 일본 최대의 파워엘리트집단을 배출했다. 한반도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도모, 가쓰라 타로, 데라우치 마사다케, 다나카 기이치, 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 등 7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일본 광역단체 중 가장 많은 숫자다. 도쿄도, 이와테현은 각각 4명씩을 배출했다. 아베가 총리가 되면 8번째 야마구치현 출신 총리다.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 이후 34년만에 야마구치(조슈) 대망론이 재현되는 셈이다. 그의 집안은 화려하다. 그는 ‘우파’‘강경파’‘매파’‘네오콘´(신보수)이란 표현을 싫어한다. 그러나 아베는 강경우파로 인식된다. 지역출신이나 가계의 내력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베의 외할아버지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그는 태평양전쟁 기간 ‘천황’을 보필해 성전을 수행하는 군국주의 정치 운동을 했던 정치가였다. 패전과 동시에 A급 전범 용의자로 수감됐다가 1948년 다른 전범들이 처형되기 전날 석방돼 ‘쇼와의 요괴’로 불렸다. 석방 배경은 수수께끼지만 미국과의 뒷거래설이 제기되고 있다. 기시는 석방후 정치무대에 복귀,1955년 결성된 자민당 초대 간사장, 외상을 거쳐 57년 총리로 취임해 60년 미·일안보조약 개정을 강력한 반대여론 속에 실현시켰다. 당시 여섯살이던 아베는 도쿄 시부야 기시의 집을 형과 함께 자주 다니던 사실을 회상하며 “데모대에 포위됐던 할아버지의 집”이라고 회상하고 있다. 기시는 자주헌법과 재군비를 강조한 자민당 강경우파의 원조였다. 일본이 진정으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자주헌법’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신조이자 일생의 정치 목표였다. 아베도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를 통해, 자민당 결성은 “일본이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되찾기 위한 것”으로 표현했다. 아베는 점령군사령부의 의지가 담긴 현행 평화헌법 대신, 자주헌법 실현을 위한 개헌과 교육기본법 개정을 외친다. 그러면서 “아버지보다 (외) 할아버지의 정치적 DNA를 이어받았다.”고 말하곤 한다. 기시 전 총리도 죽기 전에 외손자 아베 신조를 불러 “빨리 정치가가 되라.”고 했을 정도로 강경우파의 피가 이어지고 있다. 기시 집안은 메이지유신과 맥이 닿는다. 기시는 야마구치 현청 직원 사토 히데스키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증조부 사토 신칸은 메이지유신의 철학적 토대를 쌓았다는 조슈 출신의 요시다 쇼인이나 이토 히로부미 등과 폭넓게 교제하는 등 조슈 인맥의 명망가였다. 하지만 기시는 중학교 3학년때 아버지쪽 집안인 기시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사토 집안에서 양자로 왔다. 그의 동생 사토 에이사쿠는 나중에 총리가 된 뒤 노벨평화상(1974년)을 수상했고, 형 이치로는 해군 중장까지 역임했다. 아베의 아버지는 총리를 눈앞에 둔 채 병으로 작고(1991년)한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이고, 친할아버지 아베 간 역시 중의원 의원(1946년 작고)이었다. 이처럼 세습정치가 전통인 일본에서 아베는 지역이나 집안 면에서 일본 정계의 ‘성골(聖骨)’이다. 그래서 ‘강한 자’에 따르는 일본인들이 귀공자 아베를 좋아한다고 한다. 아베 신조는 1954년 기시 전 총리의 장녀 요코와 아베 신타로 전 외상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인은 모리나가제과의 마쓰자키 아키오 전 사장 장녀 아키에(44)다. 아베 신조의 형 히로노부는 우시오 전기 회장의 장녀와 결혼하는 등 재계와의 연결고리도 튼튼하다. 아베는 공부는 신통치 않았다. 외할아버지, 아버지처럼 도쿄대학을 지망했지만 실패했다. 귀공자들이 다닌다는 세이케이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캘리포니아대 정치학과로 2년간 유학했다. 미국에서 귀국한 뒤 고베제철소에서 3년 반 월급쟁이를 한 뒤 아버지의 비서관으로 들어가 정치수업을 쌓았다.1991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지역구를 물려받아 1993년 37세에 중의원에 처음으로 당선된 뒤 승승장구했다. taein@seoul.co.kr
  • [명문대 교육혁명] (19)중국 베이징대

    [명문대 교육혁명] (19)중국 베이징대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세계 각 방면의 초일류 인사를 손쉽게 만나는 방법….’아마 세상살기에는 중국 베이징대학 캠퍼스에 눌러 앉아 있는 것도 빠르고 편한 길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세계 여러나라의 대통령부터 유명대학의 총장과 석학, 유력기업의 총수와 최고경영자(CEO), 고위 관료들과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베이징대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12월에 있었다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코피 아난 유엔사무 총장도 최근 연설을 하고 돌아갔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재임 기간에 연설을 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각국의 장·차관들의 강연은 부지기수다. 현재 위르겐 하버마스 등이 체류 중이고 운이 좋으면 노벨상 수상자들의 강연도 접할 수 있다. 청룽(成龍) 등 초일류급 연예인의 강연도 들을 수 있다. 이처럼 세계 유력인사들이 베이징대에서의 강연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보다 중국의 미래 지도자들과 미리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초강대국으로 성장해가고 있는 중국에 나름의 연결 고리를 걸어둘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이처럼 중국과 함께 이 대학을 주목하고 있는 세계의 ‘눈’과 ‘관심’은 베이징대의 ‘미래 경쟁력’이 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베이징대의 가치를 여기서 찾는다. ●미래 지도자의 산실 중국에는 ‘다칭(大淸)제국, 베이다황(北大荒)’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그간 칭화대는 국가지도자급 인사를 많이 배출했지만, 베이징대는 그렇지 못해 ‘황량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이공계 전공에 칭화(淸華)대 출신 인맥이 4세대를 이끌고 있다면,5세대 미래 지도자군에는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한 베이징대학 졸업생들이 눈에 띈다. 차세대 주자의 상당수가 베이징대 출신이며 실무급 간부진도 베이징대 졸업생 비율이 높아져가는 상황이다. 우선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베이징대학 일본어과를 나왔다.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 쉬관화(徐冠華) 과학부장도 베이징대 졸업생이다. 차세대 지도자들의 선두주자인 리커창(李克强) 랴오닝(遼寧)성 서기는 베이징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베이징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상무부장 보시라이(薄熙來)도 베이징대 역사학과 출신이다. 리위얜차오(李源朝) 장쑤(江蘇)성 서기 등도 베이징대 동문이다. ●최고의 인재 집결지 ‘인구 100만명당 1명꼴´로 들어갈 수 있는 베이징대는 줄곧 중국인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최근 모집 정원이 크게 늘었지만, 베이징대는 엄청난 ‘바늘구멍 뚫기식’의 입학만으로도 경쟁력을 갖는다. 때문에 입학생들은 수재로 간주된다. 국가의 재정 배려도 상당하다. 정확한 액수나 비율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국가 교육예산의 상당 부분을 ‘독식’하는 바람에 다른 대학의 원성과 불평이 이마저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타이완대 우허마오(巫和懋) 국제학 교수, 주자샹(朱家祥) 경제학 교수, 훠더밍( 德明) 경제학 교수 등 타이완의 석학들이 잇따라 베이징대로 옮겨오면서 타이완 학계에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급성장 중인 중국 경제를 현장에서 연구할 수 있고 좋은 인재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옮기기로 결정했다.”는 그들의 말은 베이징대의 미래 경쟁력을 가늠케 한다. 반면 베이징대 교수들은 미국·유럽에서 쏟아져오는 강연 요청을 정리하기에 바쁘다.‘방학 때 베이징대에는 교수들이 없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중국 관련 학과와 연구소를 개설한 세계 각 대학에서 몇주씩 관련 강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jj@seoul.co.kr ■한국유학생 600여명 학점이수·관리 철저해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베이징대학에 재학 중인 한국인 유학생 수는 분명치 않다. 중국 교육부와 한국 교육부가 파악하고 있는 수치가 크게 다르다. 한국 유학생회가 파악하기로 학부 재학생만 6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석·박사 과정을 합치면 수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베이징대는 일부 학과의 외국인 입학을 불허하는 등 다른 나라 대학과는 다소 다른 점들이 있다.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이다. 최근 교내 스피치 대회에서 상을 받은 신문방송학과 1학년 정금아씨는 “조별 과제가 이어지고 끊임없이 조별 토론을 해서 인터넷에 올려야 한다.”고 소개했다. 같은과 3학년 윤현정양은 “베이징대는 남학생들이나 여학생들이나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캠퍼스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는다. 늘 책을 끼고 다니면서 이곳저곳에서 보곤 한다.”고 말했다. 경제학과 3학년 허철씨는 “학생들의 경쟁 의식과 학습열의가 대단하다.”고 전했다.“복수 전공을 택한 학생들이 많아 일요일에도 거의 정상 강의가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해외파를 비롯한 유명 교수들이 ‘비주얼’에 강한 점도 하나의 특색으로 꼽았다. 출석 체크는 하지 않지만, 베이징대의 학사 관리는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커닝은 제적감이다. jj@seoul.co.kr ■신문화 운동의 중심지 중국 지성과 양심 대표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베이징대학은 중국 근·현대사에서 늘 주동(主動)의 위치에 섰다. 우선 1919년 5·4운동이 베이징대 학생들의 시위로 촉발됐다. 그래서 개교 기념일도 5월4일이다. 이 전통은 1989년까지 이어진다. 톈안먼(天安門) 광장으로의 집결 역시 베이징대학 학생들이 주도했다. 중국에서의 마르크스 사상도 여기서 태동했다. 중국공산당 창당자인 천두슈(陳獨秀)는 문과대학장을, 리다자오(李大釗)는 문과대학 교수 겸 도서관 주임을 지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리다자오의 조교와 도서관 사서를 맡았다. 마오는 여기서 러시아혁명과 마르크스·레닌주의 서적을 탐독한 것으로 알려진다. 베이징대가 지난 100년간 중국의 지성과 양심을 대표하는 학교로 꼽힐 수 있었던 데는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대학의 전신은 1898년 창설된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이다.1912년 중화민국이 성립된 이후에 베이징대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1910년대 중반에는 천두슈, 후스(胡適) 등의 젊은 교수들이 등용되면서 신문화 운동의 중심지가 됐다. 당시 정치적으로 성향이 대립된 20대 초반의 젊은 교수들이 한 학과에 배치되는 등 개성이 중시됐다. jj@seoul.co.kr ■ “능력 안되는 교수는 떠나라” |베이징 이지운특파원|그러잖아도 질시를 많이 받는 베이징대가 다른 대학교수들로부터 듣는 불평이 하나 더 있다.‘교수 평가제’ 시행이다. 논란은 여전하지만, 베이징대가 처음으로 실시한 뒤 전국 대학과 연구기관 등으로 퍼져갔으며 중앙 당교(黨校)도 이를 뒤따랐다. 이 제도는 2002년 시행 이후 지금까지 전국에서 수십명의 교수, 연구원들을 ‘과로사’로 내몰 정도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 장본인은 바로 쉬지홍(許智宏) 총장.1999년 부임과 함께 이른바 ‘티에판완(鐵飯碗·철밥그릇)’과 ‘다궈판(大鍋飯·다함께 먹는 큰 솥의 밥)을 뒤집기 시작했다.‘베이징대학 교수 초빙과 승진제도 개혁 방안’은 대학 사회를 술렁이게 했다. 쉬 총장은 끊임없이 교수들을 닦달했다.“논문을 국제 세미나에서 발표하라.”고 몰아세웠다.“능력이 안되면 대학을 떠나라.”고까지 했다. 물론 압박 기준은 서양 대학들에 비하면 대단히 관대하다. 부교수 이하는 6년 계약제로 채용해 두 번의 임용 기회를 주고,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내보내는 식이다. 부교수 이상은 12년 계약제로 역시 두 번의 임용 기회를 준다. 그럼에도 ‘한번 베이따(北大) 교수면 영원한 베이따 교수’라는 ‘종신 고용제’를 깼다는 것 자체가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교수들 사이에 등급차를 두고 월급도 크게는 3배 이상 차이가 나도록 만들었다. 교수들 사이에서는 ‘나가거나, 올라가거나(Out or Up)’로 불린다. 한 교수는 “교수간의 빈부격차가 커지고 교수간 경쟁이 말할 수없이 심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이 제도로 교수의 15% 이상이 밀려난 것으로 알려진다. 언론들은 “베이징대 전체 교수의 3분의1이 학교를 떠나야 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 빈자리는 실력있는 유학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최근 해외 초빙 교수 조작 논란이 제기되기는 했으나, 교수 교체의 목표는 분명했다.‘학술상의 근친 번식’을 막겠다는 의도였다. 석·박사 연구원과 지도교수, 그 지도교수의 교수가 모두 한 식구로 구성되는 상황을 타파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다시 베이징대학 출신을 신임 교수로 임용하지 않고 각계 전문가를 기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베이징대 출신이 외국 학위를 다시 취득하거나, 다른 대학에서 일정한 경력을 쌓은 경우에 채용을 허용하는 등의 조치가 뒤따랐다. jj@seoul.co.kr
  • 가계 ‘빚 돌려막기’ 대란 오나

    가계 ‘빚 돌려막기’ 대란 오나

    주택담보대출 열풍이 불던 지난해 3월 은행에서 1억원을 대출받아 새 집을 장만한 김모(38)씨는 벌써부터 1년4개월 뒤가 걱정이다. 이씨는 이자만 내는 거치기간을 3년으로 하고,17년 장기분할상환 방식으로 돈을 빌렸다. 거치기간에는 월 50만원 정도의 이자만 내면 되지만 1년4개월 뒤부터는 원리금을 합쳐 매월 100만원 정도씩 갚아 나가야 한다. 더구나 이씨는 3개월마다 금리가 바뀌는 변동금리부 대출상품을 택했기 때문에 지난 1년여 동안 이자가 연 100만원 이상 올랐다. 이씨는 “대출을 최대한 많이 받기 위해 장기 분할상환방식을 택했다.”면서 “월급이 300만원인데 어떻게 월 100만원을 갚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결국 이씨는 거치기간이 끝나면 다른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현재의 대출을 갚을 생각이다. ●빚으로 빚 갚는 악순환 우려 금융감독당국은 가계대출의 신용경색을 우려해 주택담보대출을 만기일시상환에서 원리금분할상환 방식으로 바꿀 것을 독려하고 있다. 만기일시상환은 3년 이내의 단기대출에 적용되고, 원리금분할상환은 10년 이상 장기대출에 적용된다. 짧은 기간에 한꺼번에 갚는 것보다는 오랫동안 원리금을 차근차근 갚아나가는 게 금융시장의 안정과 가계빚 해소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부는 2003년 ‘10·29 부동산대책’ 이후부터 대출 만기가 10년 이상인 아파트에 한해서만 담보인정비율(LTV)을 60%까지 적용하고 있다. 그 이전에는 10년 기준이 없어 주택담보대출의 90% 이상이 3년 이내의 만기일시상환 방식으로 나갔다. 서울신문이 23일 국민, 우리, 신한, 하나, 외환 등 5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6월말 현재 131조 6243억원)의 상환방식을 분석한 결과 만기 일시상환이 56.8%, 원리금분할상환이 43.2%를 차지했다. 만기일시상환의 비중이 크지만 ‘10·29대책’ 이전보다 개선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난 2년간 급증한 장기 원리금분할상환 방식의 대출은 대부분 LTV 비율을 60%까지 적용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라고 시중은행들은 입을 모은다. 결국 거치기간(보통 3년)이 끝나면 다른 은행에서 빚을 내 이전 빚을 갚는 사람이 속속 나올 것이란 분석이다.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담당자는 “대출받을 당시에는 3년 뒤엔 집값이 크게 올라 빚을 갚고도 남으리라는 기대가 컸지만 최근 부동산 시장이 위축돼 이런 기대는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면서 “2000만∼3000만원을 10년 이상 장기로 빌린 사람은 원리금분할상환에 나서겠지만 1억원 이상을 빌린 사람 중에 과연 얼마나 원리금을 분할 납부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내년부터 ‘대환대출’ 대란 시작된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2년 전부터 원리금분할상환 방식이 유행처럼 퍼졌다.”면서 “결국 내년에는 이 자금을 갚기 위한 ‘대환대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출 경쟁을 하는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을 갈아타려고 오는 고객을 막을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기존 대출고객을 지키고 대환대출 고객을 유치하려는 경쟁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과거에 단기 일시상환 방식으로 대출받았다가 만기가 돌아온 사람들도 빚을 청산한 게 아니라 장기 원리금분할상환 방식으로 갈아탄 것으로 분석돼 빚은 갚지 못하고, 만기만 연장되거나 대환대출이 거듭되는 구조가 고착화될 우려마저 있다.A은행의 경우 지난 6월에 일시상환 방식의 대출금 4000여억원이 만기가 돌아왔지만 이 가운데 85%가 만기를 연장했다. 나머지도 빚을 갚았다기보다는 갈아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은행측의 설명이다. 한편 5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중 변동금리부 대출은 여전히 98.1%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상승은 고스란히 떠안으며, 원리금은 갚지 못한 채 만기만 연장하는 불안한 구조가 계속될 전망이다. 더욱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만기 연장이나 대환대출시 손에 떨어지는 대출금이 이전보다 작아진다. 결국 빚을 갚을 수 있는 여력(담보액)은 줄어들고 이자는 올라가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바다이야기’ 파문 확산] ‘경품 상품권 내년4월 폐지’ 오락실 관련업계 패닉

    [‘바다이야기’ 파문 확산] ‘경품 상품권 내년4월 폐지’ 오락실 관련업계 패닉

    성인오락실 관련업계가 ‘패닉’(공황) 상태에 빠졌다. 정부가 내년 4월 경품용 상품권을 폐지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게임의 퇴출까지 동시에 예고되고 있어서다. 상품권 환전 기피현상은 이미 시작됐다. 오락기 가격은 급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성인오락실 사업자들은 공동 소송을 추진하고 있다. 1만 5000여개 성인오락실 업주들의 모임인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는 곧 성인오락실 관련 조치의 유예를 위한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내기로 했다. 이미 회원들로부터 기계 1대당 2만원씩 회비를 모아 소송비용을 마련했고 변호사도 2명을 선임했다. 이들은 “상품권 폐지와 바다이야기 퇴출까지 최소한 1년의 유예기간을 둘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 23일 게임업계는 크게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지난 6월 10억원을 들여 서울 청량리에 85대 규모의 바다이야기 오락장을 연 김모씨는 “문제가 불거진 뒤 손님이 하나도 없다. 직원 12명 월급 주고 기계 살 때 빌린 돈 이자 갚으면 완전히 적자”라면서 “최근 정부의 움직임은 전국 성인오락실 종사자 100만여명을 실업자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냈다. 관련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영등포 유통상가의 한 상품권 유통업자는 “정부에서 상품권을 쓰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한꺼번에 쓰지 말라고 하면 그 손해는 누가 책임지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락실 업자들 사이에서는 상품권을 서둘러 환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내년 4월에 한꺼번에 환전수요가 몰리면 제대로 돈으로 바꿀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한 상품권 유통업자는 “환전 요청이 쇄도해 며칠 전까지만 해도 2∼3시간이면 현금화가 가능했는데 지금은 2∼3일은커녕 열흘 가까이 걸릴 판”이라고 말했다. 새 상품권으로의 교환도 늦어지고 있다. 한 오락실 주인은 “갖고 있던 상품권 8000장 중 4000장을 이미 환전했고 나머지 4000장도 점차 줄여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감소분은 인증제 이전처럼 ‘딱지(미지정)상품권’을 쓸 것”이라면서 “물론 불법임은 알지만 법대로 했다가 내년에 현금화가 안 되면 누가 책임지겠느냐.”고 했다. 업체들의 고의 부도설도 나돌고 있다. 한 상품권 유통업자는 “보유 현금이 부족한 상품권 업체는 고의로 부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면서 “서울보증보험의 자산을 압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당수의 상품권 업체들이 그간의 수익을 다른 사업에 써 버린 경우가 많아 당장 현금 보유 능력을 확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불거지면서 오락기계의 가격도 급락하고 있다. 한창 때 신품 770만원, 중고 650만원이던 바다이야기 기기 값은 현재 200만원선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사는 사람이 없다. 한 오락기 대리점 직원은 “폐업을 하고 싶은데 기계 50여대를 ‘땡처리’하면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는 문의를 받는 등 이쪽에서 서둘러 손을 털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오락실 업자는 “지난해 4월부터 기계를 3차례 바꾸면서 빚만 늘었는데 기계값 본전도 못 뽑고 문 닫게 생겼다.”고 울상을 지었다. 19개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들의 모임인 ‘경품용 지정문화상품권 발행사협의회’도 대책을 논의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발행사들이 내년 4월 상품권 폐지 때까지 정상 유통을 계속할 것인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김효섭 윤설영기자 newworld@seoul.co.kr
  • 행복날개 SK “요즘만 같아라”

    행복날개 SK “요즘만 같아라”

    SK그룹의 새 로고는 ‘행복 날개’다. 요즘 재계에서는 “날개까지는 아니어도 SK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것은 사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삼성·현대차·LG 등 주요 그룹이 각각의 대형 악재로 속앓이가 심한 것과 달리, 유독 SK는 이렇다할 악재가 없기 때문이다.SK측은 “나름대로 고민이 적지 않다.”며 애써 표정관리 중이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 문제로 이건희 회장이 검찰에 소환될 위기에 처했다. 현대차그룹은 불법 비자금 조성으로 정몽구(MK)회장이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나오는 등 살얼음판이다.LG는 그룹의 주력사인 LG전자의 수익 악화로 비상등이 켜졌다. 반면 SK는 당장 발목 잡힌 현안이 없다. 상반기 실적도 좋아졌다. 세금을 떼기 전의 순익(상장사 기준)이 2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 늘었다. 주요 재무지표인 영업이익률(8.55%), 자기자본이익률(10.21%),1인당 영업이익(1억 4681만원원)에서도 10대 그룹 가운데 모두 1위를 차지했다. 통계상의 허점이 있긴 하지만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기업 보고서 분석 결과, 직원 1인당 평균 월급도 SK㈜가 523만원으로 10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높다. 롯데쇼핑(168만원)의 3배다. 이같은 자신감을 반영하듯 인재 채용도 대폭 늘렸다. 올 하반기에만 800여명을 새로 뽑는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늘어난 수치다. 외국자본 소버린과 경영권 전쟁을 치르면서 기업지배구조도 상당폭 개선돼 정부당국의 ‘순환출자’ 칼날에서도 어느 정도 비켜나 있다. 삼성과 현대차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출자총액제한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순환출자 해소 방안에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으로 최근 몇년새 마음고생이 심했던 SK가 요즘에는 가장 태평성대여서 전화위복이란 말이 실감난다.”고 말했다. 그룹 내 분위기도 많이 좋아졌다는 게 SK 직원들의 얘기다. 한 직원은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한차례 큰 시련을 겪고 나니 직원들간 결속력이 끈끈해지고 위기 대처능력도 좋아졌다.”고 전했다. 한때 ‘심각한’ 위기에까지 내몰렸던 탓인지 “최태원 회장이 달라졌다.”는 얘기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러나 그룹 관계자는 “주력사인 SK텔레콤이 500억원에 이르는 과징금을 맞은 데다 해외 성장동력도 확보되지 않아 고민이 적지 않다.”면서 ‘SK 행복론’을 경계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20&30] 이직 “삶 업그레이드 위해 그래~ 옮기는 거야”

    [20&30] 이직 “삶 업그레이드 위해 그래~ 옮기는 거야”

    ‘평생직장’이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이 첫 직장에서 근무하는 평균 기간은 1년 9개월. 첫 번째 일자리를 구하기까지 평균적으로 무려 12개월이나 걸리지만,2년도 안돼 과감히 뿌리치고 나온다. 그들이 이직이라는 모험을 감행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입사 3년이 못돼 직장을 옮긴 2030들의 다양한 속내를 들어봤다. ●“10년 뒤의 내 모습을 떠올려봤지요” 석달 전부터 한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김모(29·여)씨가 전 직장을 버린 이유는 자기계발 때문이었다. 김씨는 10년 뒤를 내다보고 당장의 안정을 과감히 버렸다. 김씨는 2004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했다. 남부럽지 않은 연봉에 사내 복지 등은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10년 뒤 미래를 생각했을 때 떠오른 영상은 꼭 ‘맑음’이 아니었다. 여전히 여성으로서 대기업 임원이 될 수 있는 기회는 적었고 전문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기에도 경쟁이 만만치 않았다. 연봉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김씨는 지금 직장에서 충분히 자기계발을 해가며 전문 컨설턴트로서 이름을 날릴 미래를 꿈꾸고 있다.“대기업에선 결국 하나의 부속으로 종속될 가능성이 크지만 지금 회사에선 경영 컨설팅 등을 직접 해가며 기업의 미래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하고 있어요.”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채모(28·여)씨도 중견 기업 회장 비서직을 1년만에 훌쩍 내던졌다. 영문학과를 졸업한 채씨에게 비서직은 당초 원하던 직업이 아니었다.3000만원이 넘는 연봉과 불확실한 미래가 발목을 잡았지만 질끈 눈을 감고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2년 동안 호주의 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지금, 채씨는 고객 회사들에 대해 분석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하면서 보람도 얻고 고액의 연봉도 손에 쥐고 있다.“아마 지금까지 비서 일을 해서 3년차가 훌쩍 넘었다면 그만두기 힘들었을거예요. 나이도 있고 2년간 유학으로 자기 계발을 하지 않았으면 지금같은 직장 구하기도 힘들었을 테니까요.” ●“상사가 지독하게 싫어서….” 직장 상사와의 트러블도 중요한 이직 사유 가운데 하나였다. 외국계 무역회사에서 일하던 이모(29·여)씨는 40대 여자 부장과의 트러블을 참지 못하고 1년 만에 회사문을 박차고 나왔다. 외국 바이어들과 만나 수출입 전반에 대해 논의하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이씨에게 부장은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았다. 한번은 실수로 단순 계산이 틀린 이씨에게 부장은 “넌 수학도 못하니. 아니 이건 수학이 아니고 산수지 산수.”라며 굴욕을 안겼고 동료와 외모를 비교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취직이 급해 들어간 직장에서 나름대로 보람을 찾고 있었지만 괴팍한 상사와 싸우다 보니 세상사는 게 참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 늦기 전에, 더 나이들기 전에 새로운 길을 찾아야할 것 같아 1년 공부 끝에 좋은 회사에 재입사했죠.” ●“쥐꼬리만한 월급이 지겨워…” 2002년 대학을 졸업하고 의료 진단키트를 개발하는 벤처기업에 입사한 오모(27·여)씨. 오씨는 전공인 생물학을 살리기 위해 벤처기업을 선택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하루 12시간 몸바쳐 일해도 돌아오는 월급은 한달에 80만원도 채 되지 않았다. 연구개발에서 보람을 찾으려해도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5명밖에 안되는 직원들 때문에 빈자리가 너무 커보여 이직을 망설였지만 6개월 만에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지금은 대학교 사무직으로 직장을 옮겼다.“함께 일하던 직원들과의 정 때문에 회사를 등지기가 쉽진 않았어요. 하지만 그 정도의 월급으론 미래를 담보하기 어려웠죠.” ●“이직은 ‘삶의 업그레이드’수단” 홍모(25·여)씨는 잡지사에 다니다가 최근 사보 제작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지 1년 반밖에 안됐지만 이번이 세 번째 직장이다. 홍씨가 생각하는 직장상은 주5일제와 초과근무에 대한 적정한 보상, 쾌적한 근무환경 등 세 가지. 첫 직장은 모두 갖춰지지 않았지만 취직을 해야겠다는 급한 마음에 들어가 1년 3개월 동안 일했고, 두 번째 직장은 조건이 얼추 맞았지만 상사와의 충돌을 견딜 수가 없어 한달 반만에 그만뒀다. 이번 직장은 세가지 조건에 거의 맞는데다 꽤 만족스럽지만 그는 3∼5년정도 경력을 쌓은 뒤에 다시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제게 있어서 이직은 삶을 ‘업그레이드’시키는 하나의 방편이기 때문이죠.” ●“유유자적한 삶을 위해서…” 삶의 여유를 생각하는 2030도 많았다. 남부럽지 않은 IT관련 대기업에 다니던 김모(29)씨가 2년 반 만에 회사를 그만 둔 이유는 재충전 시간의 부족 때문이었다. 김씨에게 재충전 시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지만 잘 나가는 그의 회사는 명목상만 주 5일제일 뿐 사실상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 하루는 회사에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재충전 시간을 놓치는 것을 수당과 분위기 때문에 참고 넘어간다면 언젠가 후회할 것 같아 과감하게 사표를 내던졌죠.”그는 경력을 희생해서라도 근무시간이 명확한 한 은행으로 최근 재입사했다. 2002년 대학을 졸업한 장모(31)씨는 우수한 성적으로 한 증권사 IT담당 애널리스트로 뽑혔다. 하지만 매일 이어지는 야근에 주말조차 바쳐야하는 애널리스트 일을 하면서는 도저히 사람답게 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장씨는 수천만원대 연봉을 뿌리치고 직장을 나와 한 재수학원에서 1년간 공부를 거쳐 지난해 한의대에 입학했다.“정신없이 살다보니 일에 치여 사는 내 삶이 이해되지 않아 좀더 안정된 삶을 찾고 싶었죠. 한의학 공부로 미래를 개척하면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돼요.” 이재훈 서재희기자 nomad@seoul.co.kr ■ “인간적 신망 잃지말고 떠나라” 근속자들의 충고 한 회사에 오랫동안 근무한 ‘근속 직장인’들은 3년도 안돼 직장을 옮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대구의 한 시내버스회사에서 40년 동안 근속한 이상한(63)씨. 그는 요즘 젊은이들의 이직은 새로운 트렌드로 꺼릴 것이 아니하고 생각한다. “60∼70년대에는 다양한 직업군이 형성되지 않아 한 회사에 충성을 다하며 신임을 얻지 않으면 생계수단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자기 적성과 보다 높은 임금을 찾아 이직하는 것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씨는 이직을 하더라도 전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에서 신망을 잃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했다.“직장에서 만난 사람과의 인간관계는 언제 어디서 다시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동료들이 ‘배신당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적절한 이직 이유 등을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중에 개인 사업을 하더라도 결국 자기가 일했던 직종과 관련한 일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하죠.” 올 해로 15년째 한 식품회사 홍보팀에 다니고 있는 조모(40)씨도 “발전적인 이직은 권장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왜 직장을 옮기려 하는가는 중요하다고 본다. 적어도 특정 상사와의 충돌 때문에 회사를 옮기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자기가 정말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다시 시작하는 것은 이를수록 좋고 선배 입장에서도 적극 권장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직 사유중 상사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던데 이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와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떤 직장이냐보다 오히려 운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적극적으로 부서를 옮기거나 조직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가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20년 동안 한 대기업에 다니다가 90년대 말 외환위기를 맞아 어쩔 수 없이 퇴사한 김형태(가명·58)씨는 너무 잦은 이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회사에 너무 애착을 갖는 것도 문제지만 최소한의 책임감도 없이 그만두는 젊은이들을 보면 솔직히 이해가 안가요. 특히 몇 개월마다 직장을 옮겨다니며 공백기를 갖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회사에 불만이 있어도 일단 그만두고 보자는 생각보다는 일을 하면서 자립할만한 기반이나 대안을 찾아야 하죠.” 서재희 이재훈기자 s123@seoul.co.kr
  • [2006 세제 개편안] 월급쟁이 ‘稅테크’ 비상

    [2006 세제 개편안] 월급쟁이 ‘稅테크’ 비상

    내년부터 금융상품에 대한 세금 우대 혜택이 대폭 줄어들게 돼 서민·월급쟁이들의 ‘세(稅)테크’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1일 발표된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우선 절세 수단으로 많이 활용되는 세금우대종합저축의 비과세 한도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현재 일반인은 모든 금융기관에서 판매되는 정기예금, 정기적금, 상호부금, 양도성예금증서(CD), 적립식펀드 등 해당 상품에 1년 이상, 합계 4000만원까지 가입해 법정 세율인 15.4%보다 낮은 9.5%의 이자소득세를 적용받는다. 그러나 내년부터 새로 가입하거나 내년 이후 만기를 연장할 경우 2000만원까지만 가입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연 이자율 5%를 기준으로 할때 11만 8000원의 이자소득세 혜택이 절반인 5만 9000원으로 줄게 됐다. 다만 올 연말까지 가입하면 한도는 기존처럼 만기까지 4000만원이 유지된다. 만기가 없는 예금에 가입한 경우는 2009년 12월을 만기로 보고 이후부터 2000만원 한도를 인정한다.60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은 예전처럼 6000만원의 가입 한도가 유지된다. 농협, 수협, 산림조합, 신협, 새마을금고 등의 예탁금 이자소득 비과세 한도도 1인당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줄어든다.2007년부터 2009년 사이에 생기는 이자소득에 대해서는 1000만원까지 비과세한다.1000만원에서 2000만원 사이는 5%를 과세한다.2010년부터는 2000만원까지 9%의 분리과세율이 적용된다. 반면 농어가목돈마련저축 가입시 이자소득에 대해 비과세하는 혜택은 올해 말 일몰 시한을 연장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폐지된다. 대주주와 고액 자산가만 혜택을 받는다는 지적을 받아 온 1년 이상 장기보유 주식의 배당 소득에 대한 비과세는 기준 금액이 줄어든다. 내년부터 주식을 1년 이상 보유하면 액면가 기준 3000만원까지 비과세,3000만원∼1억원까지는 5%의 세율로 분리과세한다. 현재는 5000만원까지는 비과세,5000만∼3억원까지는 5%의 세율로 분리과세하고 있다. 이밖에 우리사주 조합원이 보유한 우리사주 배당소득 비과세 제도는 시한을 2년 연장하되, 기준 금액이 축소된다.2008년까지는 3000만원,2009년 이후에는 1800만원까지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 무주택자나 전용 면적 25.7평 이하 1주택 소유자에 대해 지원하는 장기주택마련저축의 이자와 배당소득에 대한 비과세는 올해말로 돼 있는 일몰 시한이 2009년 말까지 연장해 유지된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톱·스타 10년 신성일의 영광과 고독

    톱·스타 10년 신성일의 영광과 고독

    10년간 주연작품이 5백편에 육박하고 있다. 국산영화의 3분의1 이상이 신성일(申星一·33)의 것이었다면 신성일아성(申星一牙城)이란 낱말만으로는 모자란다. 5백편 주연이란 기록은 세계 어느 영화사에도 있을 수 없고 앞으로도 있을 것 같지 않다. 한 마디로 60년대의 국산영화는 신성일에 의한, 신성일을 위한 신성일의 것이었다고 할 수 밖에. 10년 겹치기·5백편주연 3천만원 짜리 집도 짓고 영화제작자·연출자는 신성일(申星一)의 「스케줄」에 따라서 촬영 일정을 정한다. 배우가 촬영 「스케줄」에 따르는게 아니고 제작자가 배우의 「스케줄」에 맞춰 촬영계획을 짜는 것이다. 신성일이 한 영화에 주는 시간은 보통 1개월에 하루 정도를 꼽고 있다. 그가 이틀동안 출연해야 한다면 그 영화는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69년에 내놓은 작품이 개봉된 것만도 이미 50편. 요즘도 『만종(晩鐘)』(신상옥(申相玉)감독)을 비롯해서 15편에 동시 출연 중. 한 때는 최고 33편의 겹치기 기록을 세웠다. 아무리 쉽게 만드는 영화라 해도 초인적인 정력이다. 겹치기 출연의 강행군 속에서 10년을 보내 신성일의 오늘의 느낌은-. 『연애 한번 못한다고 병신이라고 하더군요. 한가지만 바라보고 살았으니까 그 말이 곧 내 생활의 일면을 말해주는 것 같아요』 배우 신성일은 있어도 인간 강신영(姜信泳 본명)은 잃은 것 같다면서 『허무하다』고 덧붙인다. 그가 『로맨스·빠빠』(신상옥감독)로 「스타돔」에 나선게 59년(개봉은 60년). 10년간 나라에 바친 세금만도 5천만원이 넘는다. 68년에 7백20만원을 낸 그는 69년도에도 7백만원을 내어 연예인 중 최고 납세자의 위치를 계속 유지했다. 국가소득을 증대시켰다는 점에서도 신성일은 매우 중요한 인물. 23세 때 병아리 「스타」 신성일은 서울 종로구 계동에서 구화 1만7천환짜리 하숙생활을 했다. 신(申) 「필름」이 내놓은 별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 신성일(申星一)이 그 때 신「필름」에서 받은 월급이 지금돈으로 5천원(구화 5만환). 하숙비 주고 옷 사입고 용돈이 항상 모자랐다. 그러나 3년 뒤엔 가회(嘉會)동에 50만원짜리 전셋집을 얻었고 다음해엔 소격(昭格)동에 1백20만원짜리를 샀다. 지금 살고 있는 이태원(梨泰院) 집은 63년에 7백20만원을 주고 산 것. 2층집을 전면개수해서 건평 1백52평, 싯가 3천만원 짜리 4층 저택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가옥구조의 변천으로 비유해 본 신성일의 경제성장률. 청춘(靑春)영화 「붐」타고 출세길 상대역 돼야 여우(女優)도 햇빛 10년동안 신성일의 상대역이 된 주요 여배우는 지금의 부인 엄앵란(嚴鶯蘭)과 김지미(金芝美), 태현실(太賢實), 김혜정(金惠貞) 그리고 문희(文姬), 고은아(高銀兒), 남정임(南貞任), 윤정희(尹靜姬) 등이다. 이 중 절반이 자의든 타의든 「스크린」과 멀어졌다. 신성일의 상대역이 됐다는 건 곧 「톱·스타」가 됐다는 증거고 상대 역에서 떨어졌다는 건 바로 인기저락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문희, 남정임, 윤정희의 3차전이 벌어지기 시작할 때 세 배우는 신성일과 공연하기 위해 남모를 경쟁을 벌였다. 신성일의 의사에 의해 상대역이 결정된다는 소문도 있었다. 지금 이들 세 여배우가 차지하는 신성일과의 공연 비율은 대충 3대 1 정도, 어쨌든 공평하게 나눠졌다. 5백편에 육박하는 작품이지만 신성일의 위치를 확고히 다져준 건 60년대 상반기의 청춘(靑春)영화 「붐」이었다. 『가정교사』 『맨발의 청춘』 『성난능금』 등 당시 「아카데미」극장 단골의 청춘영화는 신성일의 「포스터」를 그려붙이는 것만으로도 우선 「만원사례」였다. 신성일의 연기개안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은 유현목(兪賢穆)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지만 그가 꼽는 대표작은 『안개』 『까치소리』 『날개』 등 문예영화. 청춘 영화에서 올린 「스타」로서의 명성이 문예영화 「붐」에서 완숙의 연기력으로 결실한 셈이다. 「톱·스타」 10년의 신성일이 생각하는 「스타」의 조건은? 그는 『영화적인 「센스」 70%와 30%의 양식』이라고 단정했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영화연기가 퍽 안이한줄 알고 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예민한 관찰력, 적응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 연예인들이 「스캔들」때문에 기를 못 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양식의 문제다. 30%의 양식을 70%로 활용하면 그런 것(스캔들)에 말려들 우려는 없다』 인기있는 날까지 배우로 현역 물러나면 감독생활 『연애 못한다고 감정이 메말랐다는 평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스타돔」에 오르고 정상을 극복한다는게 그리 쉬운줄 아는가?』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이 오직 영화만 알고 살아 온 생활이 오늘의 위치를 갖다준거라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착실히 살았기 때문에 대중이 좋아하고 아껴주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그러나 정상만 바라보고 뛴 생활이 그 자신에게서 사생활을 빼앗아갔다고 후회도 했다. 『전혀 인생을 즐겨보지 못했어요. 위축된 생활, 긴장과 초조감으로 살았을 뿐인 걸요』 그래서 이제는 밤 12시 이후의 촬영은 안하기로 결심했다. 시간이 나면 「무스탕」자가용에 부인 엄앵란을 태우고 경인(京仁)고속도로 「드라이브」를 즐긴다. 70년 부터는 작품을 골라서 출연함으로써 무리한 겹치기를 안할 생각. 『사실 요즘 국산영화는 찍으면서도 의욕을 못 느껴요. 모두 여성취향의 눈물 영화 뿐이라 진력이 나요. 국산영화도 방향을 바꿔야 해요』 -앞으로 10년간은? 『인기가 유지될 때까지 배우를 하겠어요. 배우가 인기에 무관심하다는 건 거짓말이고 언제든 대중이 싫다면 물러서는거죠. 그렇게 되면 감독생활을 해볼 생각입니다. 그동안 여러 감독과 작품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출연만 할게 아니라 내 마음에 맞는 작품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는 얼마 전 상영된 『아듀·라미』같은 남성적인 영화. 「여자(女子)」행렬의 영화에 진력이 나서 「남자(男子)」용의 영화를 해보고 싶단다. 어쨌든 60년대 「스크린」을 휩쓴 그의 위치는 이제 「스크린」 안에만 제한돼 있진 않다. 연 7백만원 납세자인 그의 집엔 정치, 경제, 문화계 인사들의 출입이 잦고 단순한 「팬」 이상의 교류(交遊)를 즐기고 있다. 신성일이 어느 때쯤 정치가(政治家)가 되겠다고 나설지 전혀 부정만 할 일도 아니다. [선데이서울 69년 12/21 제2권 51호 통권 제 65호]
  • ‘파국’ 치닫는 쌍용차 노·사

    쌍용자동차 노사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 18일 쌍용차에 따르면 쌍용차는 지난 16일 비상자금회의를 열어 현재 ‘옥쇄파업’ 중인 노동조합이 파업을 철회, 정상조업에 나설 때까지 임금·세금·출장비 등 현금으로 발생하는 일체의 경비 지급을 중단키로 했다. 쌍용차는 지난해에 이어 올 상반기에도 적자를 낼 정도로 경영사정이 좋지 않은데다 노조파업으로 매출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현금유동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은 부인하지만 파업 중인 노조를 압박하기 위한 전략으로도 해석된다. 쌍용차는 이번 현금 지급 중단에 앞서 이미 ‘내핍경영’ 중이다. 서울 역삼동 포스틸타워의 임대공간을 4개층에서 3개층으로 줄이는 대신 서울사무소 조직을 평택으로 이전했다.432명은 이미 ‘희망퇴직’했다. 임원을 11명 줄이고 임원 급여도 10% 삭감했다. ‘무노동 무원칙’에 따라 파업 중에 월급을 받지 못하는 노조원뿐만 아니라 비노조 관리직도 이달 25일 월급을 받지 못하게 됐다. 쌍용차는 각종 세금, 전기료, 통신요금 등을 내는 것도 미루고 있다. 앞으로 가산세를 물 계획이다. 다만 만기가 돌아온 협력업체 어음에 대해서는 현금으로 지급하거나 새로운 어음으로 바꿔줄 경우 7.5%의 이자를 지급키로 했다. 쌍용차는 지난달 14일부터 계속돼온 부분파업 및 지난 11일부터 이어지고 있는 전면파업으로 1만 640여대의 생산차질 발생했다고 잠정 집계했다.노사는 이날 평택공장에서 21차 교섭을 가졌지만 입장차가 워낙 커 파업이 장기화할 전망이다.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7) 현대중공업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7) 현대중공업

    “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많은 이윤을 내야 고용이 보장되고 임금인상과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사화합이 중요합니다.” 현대중공업 김성호(48) 노조위원장은 17일 “노조가 협력해 기업의 경쟁력을 키워 성장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노동자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것이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노선”이라고 강조했다. 현중 노조는 지난 2004년 민주노총 산하 금속연맹과 결별하고 독자노선을 가고 있다. 시대변화에 맞춰 합리적인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한 뒤 그 기조를 지키고 있다. 산업연맹과 결별로 내지 않게 된 연간 6억여원에 이르던 연맹비와 무파업으로 절약되는 노조비를 지역사회 봉사활동 등에 사용해 주민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노조의 이같은 합리성향에 힘입어 올해로 12년 연속 쟁의없이 노사협상을 타결했다. ●최강성에서 합리노조로 탈바꿈 조합원 2만 5000여명에 이르는 현대중공업 노조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노동계가 인정하는 제일 강성 노조였다. 노동운동 초창기부터 현대자동차 노조와 쌍두마차를 이루어 과격분규를 주도했다.1988년부터 이듬해까지 계속됐던 128일 파업, 고공농성의 효시로 불리는 1990년 골리앗크레인 점거농성 등은 대표적 투쟁사례로 꼽힌다. 투쟁 외골수였던 노조가 합리적인 선진노조로 탈바꿈하게 된 데는 노사신뢰가 바탕이 됐다. 노사는 오늘의 상생관계가 있기까지 비싼 대가를 치렀다. 1987년 노조 설립뒤 해마다 장기파업으로 생산손실·대외신인도 하락 등 유·무형의 손해가 컸다. 회사측이 파업기간에 대해 ‘무노동 무임금’원칙을 지키는 바람에 파업을 할수록 노조원들의 월급봉투는 얇아졌다. 투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노조원들이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됐다. ●고용보장에 노조원 감동 김종욱 노사담당 이사는 “회사가 경영 제1목표로 삼고 추진한 고용안정 정책이 노조원들의 성향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창사이래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단 한명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회사측은 조선·플랜트·해양·엔진기계·전기전자·건설장비 등 6개 사업분야 가운데 조선·건설장비를 뺀 나머지 사업분야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동안 침체상태였음에도 고용만큼은 보장했다. 김 위원장도 “회사의 확실한 고용보장에 노조원들이 감동해 회사를 이해하는 마음과 애사심이 싹트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노사 불신의 벽을 허물기 위해 영업현황·경영위기상황 등 회사 안팎사정을 있는 대로 숨김없이 노조에 설명하는 등 꾸준히 애를 써 노사신뢰를 쌓았다.”고 밝혔다. 조합원 복지에도 회사는 지속적으로 투자를 했다. 사원아파트 1만 6000여가구를 지어 시중분양가보다 30% 싼 값에 공급했으며 동구 관내에 6개 문화예술회관을 짓고 7개 잔디구장을 조성해 사원가족들이 여가와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노사관계 안정으로 세계 일등 노조는 지난해 21세기 선진노조 건설을 선언하고 ‘노조이념’과 ‘노조강령’ 각 6개항을 채택했다. 항목마다 ‘노사 상생·노사 공존공영·상생적 노사문화·노사안정·신노사문화 창출’과 같은 노사화합을 강조하는 문구가 들어 있다. 그러나 ‘투쟁’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노조사무실 모습과 분위기도 과거와는 전혀 딴 모습이다. 일반사무실보다 더 정갈하고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노동운동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나 벽보 등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됐다. 외부 방문객을 대하는 노조 상근자들의 친절한 자세도 인상적이다. 지난해 초 노조위원장이 선박을 발주한 미국 엑손모빌사에 “최고의 기술을 발휘해 멋진 선박을 건조할 기회를 주어 감사하며 최고 품질로 보답하겠다.”는 내용의 감사편지를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안정적인 노사관계는 세계 최고 기술을 갖춘 현대중공업의 대외신인도를 정점으로 끌어올려 외국 고객사들은 마음놓고 선박건조를 맡긴다. 현대중공업은 현재 2009년까지 일감을 확보해 놓고, 부가가치가 높은 선박 위주로 수주활동을 하고 있다. ●방심은 금물 김 위원장은 “노조 집행부와 회사가 노사관계에 항상 신경을 쓰고 노력해야 신뢰가 깨지지 않고 지금의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조 집행부는 매주 하루씩 현장에 조합원들을 찾아간다. 현장에서 조합원들과 대화를 하며 건의사항 등을 듣고 회사가 나서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회사측과 의논해 해결한다. 김 이사는 “노조가 과거처럼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기 때문에 노조 건의사항은 회사가 되도록 들어주려 한다.”고 말했다. 올해 임·단협에서 정년을 1년 연장해 58세로 합의한 것은 당초 회사가 수용하기 힘든 요구였으나 회사가 노조를 믿고 받아들인 좋은 사례이다. 글 사진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벼룩의 간을 내먹고도 남을만큼 치사한 사내

    “원 세상에,사기칠 때가 따로 있지.어떻게 하루하루 어렵게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등을 칠 수 있단 말입니까.” 중국 대륙에 팔순이 넘은 할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손녀 딸과 결혼식을 올리는데 필요하다며 이리저리 돈을 빌리게 해서 받은 돈을 갖고 도타하다 붙잡힌 30대 사내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동북부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에 사는 한 30대 사내는 2개월전 팔순 할머니와 함께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하던 처녀와 결혼식을 올리면서 신방 마련 등에 필요하다며 돈을 빌리게 한 뒤 그 돈을 빼돌려 도망치다 공안(경찰)에 덜미를 잡혔다고 심양만보(沈陽晩報)가 17일 보도했다. 심양만보에 따르면 ‘정말 치사한 사기사건의 장본인’은 올해 36살의 위레이(于雷·가명).그는 지난 6월 화물 운송품 2만위안(약 240만원)어치를 훔치고,사람을 폭행해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등의 혐의로 공안기관의 수배를 받고 있는 수배범이었다. 이번 사기결혼 사건은 지난 6월 초부터 시작됐다.위는 어수룩하면서도 어지럼증에 시달리던 단단(丹丹·가명)에 접근했다. 단단은 올해 85살의 할머니 후오씨와 함께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후오 할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읜 뒤 맹인인 아들과 함께 살았다.그러던 어느날 집 주위에서 생후 6일째 버려진 단단을 데려와 지금까지 키워온 것.할머니가 그를 데려와 키운 것은 눈이 먼 아들과 서로 의지해 잘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눈이 먼 아들은 오래지 않아 죽고,집에는 후오 할머니와 단단만 남아 서로 의지하며 생활해 왔다.그런데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단단이 어릴 때 쇼크를 받아 항상 어지럼증에 시달리는 ‘신경관능증’이라는 거의 들어보지도 못한 희귀한 병을 앓게 된 됐다. 이 병으로 단단은 20살이 넘도록 일거리를 찾을 수 없어 사회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이들 두 사람은 후오 할머니의 퇴직 연금 매달 몇 백위안(몇 만원)으로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더욱이 이 적은 돈도 절반은 단단의 약값으로 써야 했으니…. 이런 까닭에 후오 할머니의 가장 큰 바람은 손녀 단단의 평생 짝을 찾아주는 것이었다.그래야 편안히 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모든 사실을 간파한 위는 1단계 ‘사기 결혼’ 작전에 돌입했다.단단과 자주 만나 그녀의 신임을 얻은 궐자는 우선 후오 할머니에게 자신을 사영기업의 운전사로 월급은 약 2000위안(24만원),방 3칸짜리 집과 과수원,저축액 3만위안(3600만원) 정도 있다고 허풍쳤다. 이어 전처와 이혼을 하고 아들 한명을 두고 있다고 장단점을 고루 말한 뒤 단단과 결혼하면 집과 과수원을 팔아 돈을 마련해 이곳 선양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겠다고 후오 할머니의 신임도 얻었다. 후오 할머니는 이제야 손녀 단단의 훌륭한 낭군을 만났다며 “단단의 정신이 온전치 못하니 일단 같이 이곳에서 살자.”고 해 이들은 곧바로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7월들어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고 판단한 위는 2단계 작전에 들어갔다.먼저 8월 13일 결혼 날짜를 잡은 뒤 결혼식을 올리려면 돈이 필요하니 친척 등으로부터 돈을 좀 융통해달라고 후오 할머니에게 요구했다. 단단을 시집보낼 수 있다는 즐거운 마음에서 후오 할머니는 이러저리 돈을 빌린 6000위안(72만원)을 위에게 맡겼다.궐자는 이 돈 가운데 몇 백 위안만 방을 수리하는데 보탰을 뿐 나머지는 모두 빼돌렸다. 이것도 모른 단단과 후오 할머니는 결혼식날만 손꼽아 기다렸다.결혼식이 열린 지난 13일,단단은 “이제야,결혼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정말 너무나 기뻤다. 그런데 단단측 결혼식 하객들은 결혼식 분위기가 뭔가 이상다고 느꼈다.결혼식장에서 위의 가족과 친구들을 도대체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해서 궐자에게 신분증과 운전면허증 등 신분을 증명할만한 것을 보여달라고 하니, 집에 놓고 와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고 있다고 얼버무렸다. 이를 이상히 여긴 단단측 결혼식 하객들이 웅성웅성거릴 때 위는 굳은 표정으로 아래층에 친구가 찾아왔다며 잠시 내려갔다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그리고 밤이 돼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저녁,단단측 결혼식 하객들은 선양시 공안국 소속 황구(皇姑)파출소에 신고했다.그때서야 궐자의 이름도 우레이가 아니고,올해 39살로 폭행죄·절도죄 등의 혐의로 수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파출소측의 조사 결과 위는 단순히 결혼 예단비 뿐 아니라 단단과 결혼식을 올린 뒤 단단에게 보험을 들도록 해 그돈마저 빼돌리려한 것으로 밝혀져 주변 사람들의 치를 떨게 했다. 온라인뉴스부
  • 대림 건설부문 월급 683만원 ‘최고’

    대림 건설부문 월급 683만원 ‘최고’

    올 상반기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 가운데 대림산업 건설부문 직원들의 급여가 가장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16일 증권선물거래소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6회계연도 반기보고서를 제출한 587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가운데 직원수가 100명이 넘는 519개사가 상반기에 지급한 직원(임원 제외) 1인당 월 평균 급여는 지난해 296만원보다 9만원 오른 305만원으로 집계됐다. 석유, 화학, 가스 등 1인당 영업이익이 많아 전통적으로 임금 수준이 높은 기업이 상위권에 대거 포진했다. 519개 상장사 가운데 급여가 가장 많은 회사는 대림산업 건설부문으로, 상반기에 직원 한 사람에게 평균 4100만원(월 683만원)을 지급했다. 대림산업 유화부문도 2800만원(월 466만원)을 지급해 39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해 상반기 급여 1위를 기록했던 SK가스는 올 상반기에는 3068만원(월 511만원)을 지급하는 데 그쳐 14위로 떨어졌다. 대림산업 건설부문에 이어 건설회사인 고려개발이 3705만원(월 617만원), 방송사인 SBS가 3550만원(월 591만원)으로 2,3위를 차지했다. 외환은행 국내 직원은 상반기 3390만원(월 565만원)을 받아 4위를 기록해 금융기관 중 직원 월급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상반기 2920만원과 3050만원을 지급했던 두산중공업과 한화석화는 올 상반기에는 호전된 실적을 바탕으로 3330만원(월 555만원)을 지급해 나란히 공동 5위에 랭크됐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한미 FTA·뉴딜은 엇갈림 정책”

    “한미 FTA·뉴딜은 엇갈림 정책”

    요즘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뉴딜’을 내걸고 있다.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잡겠다는 목적은 같은데,FTA는 외부의 충격을 강조하고 뉴딜은 내부의 타협을 더 중요시 하는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엇갈림에 대해 이국영 성균관대 교수의 의견을 들었다. 이 교수는 독일에서 제3세계 발전이론을 전공한 정치학자다. 평등과 분배를 중시하는 복지국가야말로 자본주의 성장의 원동력이었다는 ‘자본주의의 역설’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종속 vs 쇄국’, 생산적 FTA 논의를 막는다 “한·미FTA 하면 싼 제품이 들어오니까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올라간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는 뒤집어 말해 비싸게 생산해오던 기존 일자리는 줄어든다는 얘기입니다. 이 플러스 마이너스를 실제 비교해봤는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한·미FTA 논란에서 가장 위험한 논리는 ‘안 하면 바보된다.’,‘하면 종속된다.’는 식의 극단적 주장이다. “유럽연합(EU)으로 상징되는 유럽경제통합과정을 보면 경제통합으로 인한 수혜자가 누구냐, 피해자는 누구냐, 그렇다면 수혜자의 이득을 어떻게 피해자들에게 나눠주느냐가 논쟁의 핵심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정치인들은 정책을 내놨고 국민투표를 통해 승인받았습니다. 이런 생산적 논쟁을 전혀 못하고 있다는 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극단적인 반대론도 문제지만, 밀어붙이기식으로 FTA를 추진하면서 ‘그러면 쇄국하자는 것이냐.’는 식으로 이들을 몰아세운 정부와 시장주의자들의 책임이 더 큽니다.” 이 교수는 ‘안 하면 바보된다.’는 논리에도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정부에서는 중국·일본·한국·타이완 빼고는 다 FTA를 했다 하는데, 거꾸로 말하면 이들 나라는 성공적인 수출드라이브 때문에 굳이 FTA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외려 이들 국가에 밀리거나 밀릴 것 같으니까 미국이나 유럽은 NAFTA나 EU 방식의 경제통합이라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는 설명도 가능합니다.” ●진정한 ‘뉴딜’이나 고심하라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요즘 들고나온 ‘뉴딜’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강하게 비판했다. 대공황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식의 ‘족보있는 정책’인 줄 알았는데 내용을 보니 재계와 노동계의 타협안에 불과하더라는 것. 그런 수준의 뉴딜이라면 “그걸 하겠다고 나선 기존의 노사정위원회가 왜 실패했는지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 교수는 진정한 뉴딜 정책을 하고 싶다면,‘작은 정부’·‘균형재정’의 신화에서 벗어나라고 주문했다. 복지비용을 ‘낭비’가 아닌 ‘투자’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수라는 것.“대기업 노조 얘기가 나오면 흔히 안정적인 고임금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독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그 월급으로 집 사고, 애들 키우고, 가르치려면 빠듯하다고 합니다. 잘리면 갈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주택비·양육비·교육비에다 실업대책까지 모두 개인 부담이라 그렇습니다. 국가가 탁아소나 양로원을 확대하고, 장기임대주택을 늘리고 실업대책도 세운다면 이런 사회적 비용 부담이 줄게 되고, 그러면 임금을 조정할 수 있는 여지도 더 커집니다.” 또 모두가 그토록 애타게 부르짖는 ‘일자리 창출’도 사회복지 부문에서 대대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런 개념이 진지하게 논의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예산 비중이 최소 15∼17%(미국·일본)에서 최대 25∼30%(유럽)에 이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이 1980년에 이미 19%였는데 한국은 고작 6∼7% 수준이다. 그렇게 목매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장 못미치는 분야가 바로 복지부문이라는 것. 대안으로서 이 교수는 비례대표제 확대를 제안했다.“어차피 1년반 임기내 사회경제적 개혁을 못하겠다면 그 기반이 될 수 있는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김숙기 가족클리닉-행복 만들기] 남편 월급을 시어머니가 관리해요

    Q결혼한 지 9년이 되도록 남편의 월급 등 통장을 시댁에서 관리하십니다. 저는 겨우 생활할 정도의 비용만 1주일마다 시어머니한테 타서 씁니다. 남편 연봉이 얼마인지, 통장에 얼마가 저축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시댁이 잘 사는 편이라 불려 준다는 믿음이 있지만 외아들로서 효자 노릇만 하려는 남편이 이해가 안되고 요즘엔 ‘착한 며느리’로 살았던 지난날이 화가 나서 미칠 지경입니다. - 김미영(가명·39세) A남편의 연봉이 얼마인지, 저축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고 살았다니 화가 나고 미칠 것 같은 심정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한다는 것은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자신이 나고 자란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사는 것이지요. 함께 사느냐, 따로 사느냐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서적으로 얼마나 원 가족과 분리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서적으로 분리되지 않으면 독립적인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게 되며, 부모 또한 마찬가지로 자녀를 놓아주지 못하는 관계가 되고 맙니다. 결혼을 했으면 경제적으로도 독립된 가정을 새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기본입니다. 따라서 남편의 월급과 저축통장을 지금부터 아내가 관리할 수 있도록 해 나가야 합니다. 먼저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아내의 입장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남편의 이해와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무엇보다 남편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남편들도 대부분 자신이 중간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지요. 하지만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방관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아내를 공격한다면 고부 갈등을 심각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는 부부관계에도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즉 시댁과의 갈등 자체보다는 시댁과의 갈등 사이에서 남편이 취하는 태도나 해결 방식이 더 문제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남편과의 친밀한 대화로 가장 우선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부가 함께 아들과 며느리의 역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보세요. 시댁과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선이 필요합니다. 시댁의 지나친 요구 또는 배려에 무조건 응하는 자세보다 어느 정도의 선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고 미리 그 선을 합의하에 설정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에는 서운해하며 문제 제기를 하실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받아들이게 되고 서로 편안한 관계가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남편은 결국 독립된 가정을 잘 꾸리고 부부가 사이좋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효도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칫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당신 엄마가 말야.” “당신네 집은 왜 그래?”라며 불만을 표현하거나 비난하기 쉬운데 이런 말은 하지 않도록 하세요. 남편이나 아내 모두 상대가 자기 부모를 비난하는 것은 견디기 힘들어 하고 자기가 욕을 먹는 것보다 더 상처를 받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대신 ‘칭찬과 격려’의 말을 입버릇처럼 하세요.“당신 일 하느라고 고생 많았어요.”“회사가 바빠 힘들 텐데 고마워요.”“당신이 있어 든든해요.” 등 남편을 진심으로 칭찬하고 격려해 주세요. 그래야 원하는 것을 더 빨리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때 더 많은 배려와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참지 말고 내 감정 상태를 평상시에 차분하게 말하도록 하세요. 화난 감정, 억울한 감정을 쌓아두면 그것은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울거나 화내지 않고 평상시에 내 감정 상태를 말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속으로 분을 억지로 삭이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는 것처럼 그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가슴 속에 분노를 쌓아 놓으면 나중에 결국 폭발하게 돼 문제 해결을 방해하게 되니까요. 앞으로는 ‘착한 며느리’보다 ‘행복한 아내’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롭게 헤쳐가길 바랍니다.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장>
  •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4) 빙그레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4) 빙그레

    “집을 지으려면 아귀가 맞아야 하잖아요. 위원장, 아귀가 잘 맞게 협조해 주세요.”(정수용 빙그레 사장) “사장님, 못질은 그렇게 하시면 안 되죠. 힘을 빼고 리듬을 타세요.”(허성수 노조 위원장) 지난 2004년 8월 초 ‘사랑의 집짓기 운동’이 펼쳐진 몽골 수흐바트르지역. 흰색 안전모와 장갑을 낀 정 사장과 허 위원장이 새벽부터 구슬땀을 흘리며 뚝딱뚝딱 망치질을 했다. 뼈대만 있던 집이 이들의 못질, 톱질을 거치면서 벽면이 완성되고 지붕이 덮였다. 노사의 손발이 척척 맞았다. ●노조 협력 유도 ‘스킨십 경영´ 효과 바나나맛 우유, 요플레, 투게더, 더위사냥…. 빙그레의 대표적인 히트 상품들이다. 이런 대박 상품들은 노사 화합에서 나왔다. 정 사장은 “노조의 헌신적인 협력이 있었기에 히트 상품들이 나올 수 있었다.”며 공(功)을 모두 노조에 돌렸다.1987년 이후 19년째 ‘무분규’를 이어가고 있는 빙그레를 찾았다. 한여름 뙤약볕 열기가 후끈한 지난 9일 경기도 남양주시 도농동 빙그레 도농공장. 공장에 들어서자 달큼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게 했다.‘더위사냥’과 ‘투게더’ 등의 원료가 섞인 냄새였다.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허 노조 위원장은 검게 그을린 얼굴에 머리가 밤송이처럼 자라 있었다. 굳센 ‘투사’의 이미지였다. 지난 1일 타결된 올해 임금협상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줬다. 임금 협상은 지난 6월 초 시작됐다. 몇 차례의 교섭이 진행됐지만 노사는 평행선이었다. 허 위원장이 삭발을 하면서 교섭 분위기가 험악했다.‘살벌한’ 교섭이 몇 차례 더 진행됐다. 하지만 ‘파국만은 막자.’는 것이 노사간의 속내였다. 밀고 당기기를 몇 차례, 큰 어려움 없이 5.8% 임금 인상에 합의 도장을 찍었다. 허 위원장은 “아무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수년 동안 순간순간 부딪치는 문제들에 대한 신뢰가 쌓인 결과”라고 전했다. ●86년 파업때 영업망 완전붕괴 교훈 19년 무분규 역사를 쓰고 있는 빙그레의 노조는 약하지 않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1976년 노조 설립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 파업이 86년에 있었다. 강동원 노조 부위원장은 “당시 3일간의 파업으로 전국의 영업망이 완전히 붕괴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붕괴된 영업망을 정상궤도에 올리는 데는 무려 2년이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노조는 당시 파업 피해를 실감했다. 파국을 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때 형성됐다. 그래도 2000년 이전에는 교섭기간이 5∼6개월이나 걸렸다. 회사도 순탄치만은 않았다.1992년 한화그룹에서 분리·독립할 당시 부채비율은 무려 4183%에 달했다. 부채비율이 낮아지나 싶더니 98년 IMF가 덮쳤다. 회사가 존망의 기로에 섰다. 부채 비율이 350%에 달했을 때 노조가 앞장서 상여금을 반납했다. 이에 회사도 월급을 제 날짜에 꼬박꼬박 맞췄다.2003년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던 라면 사업을 철수했다. 다행히 2004년 말 부채가 53.7%로 떨어졌다.92년 3000여명에 이르던 인력도 1700여명으로 줄였다. 드디어 지난해에는 5424억원의 매출에 387억원의 당기 순이익을 기록했다. 독립경영 10여년 만에 식품업계의 ‘작은 거인’으로 거듭났다는 평을 받았다. 환골탈태에는 노조의 협력이 절대적이었다. 노조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회사는 ‘열린 경영’과 ‘스킨십 경영’을 들고 나왔다. 빙그레는 도농(남양주)·김해·광주(경기도)·논산에 사업장이 흩어져 있지만 단일 노조를 갖고 있다. 본사 노조는 도농공장에 있다. 사업장별로 특성이 달라 쟁점도 다르다. 협의회 의결사항은 게시판과 전자메일로 전직원들에게 알려준다. 또 회사는 노조에게 생산, 영업 및 수금 등의 경영정보를 경영진과 똑같이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라면 사업을 철수할 때도 노사가 수개월간 머리를 맞댔다.‘구조조정=노사갈등’이란 싸움의 등식이 깨진 이유다. ●92년 한화서 분리 10여년만에 제자리 또 노사는 사업장마다 두달에 한번씩 산행을 한다. 윤정용 도농공장장은 “몸으로 부딪치는 스킨십이 있어야 노사가 서로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마다 10월이면 노사가 함께 마라톤도 한다. 허 위원장은 “자주 부딪치다 보니 사무직과 영업직의 고충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서로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2001년 김호연 회장이 시작했던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도 노사가 해마다 함께 참여하고 있다. 허 위원장은 “사회 봉사활동을 하니 뿌듯하고 회사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빙그레라는 ‘큰 집’을 짓는 노사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남양주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열린세상] 공직자의 숙명적 윤리와 철학/이종철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조선조 양반사회에서 가난은 선비의 떳떳한 도리라 하였지만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죄악이고 사회적 부채일 수도 있다. 불평등이 절대악이라는 공산주의와 필요선이라는 민주주의의 이념 논쟁 속에서 우리는 불평등이 공정한 경기규칙 속에서 이루어진 결과인가 아니면 불공정한 게임룰에서 비롯되었는가를 문제삼는다. 옛 속담에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이 있다. 이웃이 논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데, 갑종 근로소득세나 세금 한 푼 안 내고 재산만 불린 일부 정치인과 소수의 엘리트층이 손에 옹이가 박이도록 일한 보통사람보다 재산소득이 엄청 많을 때 결과의 불평등을 필요선이라고 공감할 사람이 있겠는가. 변호사, 의사, 회계사, 고위공직자와 국민을 대표하는 선량이 되는 길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들은 모두 벌거벗은 국민의 혈세와 사랑 속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들이다. 이제 현대의 귀족층인 그분들이 화사한 꽃들의 자태를 한껏 뽐내며 국민에게 마음의 보답을 해야 한다. 이것이 꽃의 아름다운 소명이다. 최고의 전문성을 가지고 국민의 생활향상, 복지실현, 지역경제와 기업의 활성화, 교육 문화 육성에 앞장서는 것은 우리들의 소망이다. 더불어 남모르는 자선과 이웃 사랑 또한 그들의 도리이다. 지금껏 자신을 키워준 가족과 사회, 국민을 위하여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나눠 베푸는 것은 이 시대의 아름다운 책무이다. 조상을 잘 둔 탓에 또는 천운이 좋아서 남부럽지 않은 재력을 가지는 것은 보통의 행운이 아니다. 하지만 창조적 엘리트들은 돈이 인생 행복의 목표가 아니라 하나의 작은 수단이라는 것을 각심해야 한다. 건강공단의 2005년 통계에 의하면,1억원 이상을 벌어들인 고소득자가 9만 6500명에 달하지만 월급 100만원 미만의 직장인은 무려 180만 8000명이라 한다. 부디 2007년 공직자 재산신고 때부터는 1급 이상 공직자, 국회의원, 판·검사 등 1000여명 중 재산 신고액이 20억원이 넘는 사람들은 사회기부금이나 자선란을 만들어 작게는 1년에 1000만원에서 크게는 4000만원 정도는 불우이웃, 중증장애어린이집, 노인요양시설, 장학재단에 쾌척하는 선행이 있기를 빈다. 사회지도층이 되어 현직에 오르려는 선택된 계층은 검증에 앞서 스스로 기부하는 정신을 발휘하는 사회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남을 도와보지 못하고 겸손과 정직, 신념과 목표가 없는 명사는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독버섯일 뿐이다. 1993년 공직자 재산등록제가 실시된 이후 현직에 있는 고위직들의 재산이 공개될 때마다 천진한 국민들은 허탈감과 무력감, 때로는 배신감까지 느껴왔다. 최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의 자리는 돈과 부동산을 굴려서 재산을 증식하는 자리가 아니다. 업무상 우월적 직위를 남용한 부당한 부의 축적과 부정부패와 소득의 누락을 멀리하며 국민과 국가에 멸사봉공하여 헌신하는 자리이다. 국민에게 꿈과 희망, 용기를 심어줄 참 공직자의 언행일치와 솔선수범이 이루어질 때 갑작스러운 수마에 허탈하여 망연자실한 국민의 이반된 민심을 달랠 수 있다. 대한민국은 20세기 후반 급속한 산업화의 발전 과정에서 30년 동안 수많은 공직자들이 건강까지 버리며 밤낮없이 일해왔다. 가족과의 정담과 자녀와의 사랑을 나눌 겨를도 없이 명예를 지키며 헌신한 창조적 엘리트 집단이 공직자이다. 국민은 공직자에게 전문성, 공정성, 정직, 성실, 멸사봉공, 애국애족과 함께 선비적인 청빈과 청백리를 기대한다. 이것이 곧 공직자가 품어야 할 숙명적 윤리이며 철학이다. 공직자가 국민으로부터 정서적으로 존경받는 풍토여야만 나라가 살고 정부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민심은 천심이라 하지 않았던가. 국민은 법적 논리에 앞서 정서적 공감을 기대한다. 이종철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 6%대 은행 신용대출 일반인엔 ‘그림의 떡’

    6%대 은행 신용대출 일반인엔 ‘그림의 떡’

    연소득이 3500만원 정도인 직장인 이모(35)씨는 최근 신용대출로 500만원을 빌리기 위해 주거래은행을 찾았다. 비록 연봉이 많지는 않지만 연체 기록이 없는데다 월급통장과 신용카드를 모두 한 은행에서 쓰고 있는 이씨는 내심 연 6%대의 금리를 기대했다. 직장인을 우대한다며 6%대 금리가 가능하다는 은행의 대출상품 전단지도 그의 기대를 부풀렸다. 그러나 은행측이 제시한 금리는 연 9%. 이씨는 “도대체 내 신용등급이 어떻기에 이자율이 이렇게 높으냐.”고 항의했다. 창구 직원은 “6%대 신용대출은 공무원이나 전문직 종사자,10대 대기업 종사자에게만 해당된다.”면서 “주거래 고객이기 때문에 금리 할인 혜택을 적용해 그나마 9%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담보·기업대출 줄자 신용대출 경쟁 경기 하락과 금융감독당국의 규제로 주택담보대출과 기업대출이 눈에 띄게 줄어들자 은행들이 신용대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HSBC은행은 원리금 상환액 1500원당 1마일의 항공 마일리지를 주는 신용대출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국민은행은 지난 6월부터 신용대출 한도를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확대하고, 우량 고객에게는 금리를 0.1∼0.5%포인트 깎아주고 있다. 우리은행은 10일부터 최저 금리가 6.14%인 ‘전문직클럽’ 신용대출을 판매한다. 신한은행도 우량기업 직원을 대상으로 최저 금리가 연 6.14%인 ‘엘리트론’을 판매하고 있다. 하나은행의 주력상품인 ‘패밀리론’은 우량기업 종사자들에게 최저 6.75%의 금리를 적용한다.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에만 6%대 적용 은행마다 연 6%대 금리를 표방하는 신용대출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로 이 금리를 적용받는 직군은 판·검사, 변호사, 의사, 공무원, 교사, 공기업 종사자, 회계사, 연봉 8000만원 이상의 대기업 종사자 등으로 한정돼 있다. 의사와 변호사를 대상으로 하는 국민은행의 ‘KB 닥터·로이어론’은 최저금리가 연 5.93%까지 내려가고, 실제 대출평균금리도 6.3∼6.5%이다. 하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신용대출은 최저금리가 연 6.84%이고, 평균 적용금리는 9.5∼10.5%나 된다. 신한은행의 ‘엘리트론’ 금리폭은 6.14∼7.94%이지만 일반 신용대출은 8.75∼13.25%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 6%대의 신용대출을 받는 고객은 전체 신용대출자의 5%에도 못미친다.”면서 “신용대출자의 절반 가량은 신용등급이 5∼7등급으로 연 10% 안팎의 이자를 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전문직이나 우량 대기업 종사자라도 신용등급에 따라 이자율 적용이 천차만별이지만, 규모가 작은 기업의 종업원은 아무리 개인신용이 좋아도 대기업이나 전문직 종사자보다는 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행 대출 자체를 고맙게 생각해야? 은행들은 “대출자에 대한 신용도 체크가 갈수록 엄격해져 그나마 은행 대출을 받는 것 자체를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중은행들은 대부분 개인 신용도를 1∼10등급으로 나누는데,8등급 이하는 아예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카드대금이나 휴대전화 요금 연체, 사채 이용 경력 등이 있으면 8등급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나지 않은 사회 초년병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개인신용도와 관계없이 일단 8등급에서 시작한다. 신용평가회사들에 따르면 은행의 신용대출 거절률은 50% 이상, 카드사의 거절률은 60% 이상이다. 한국신용정보 관계자는 “신용관리를 위해선 대출금이나 카드대금, 휴대전화 요금의 연체 등 불량정보를 남기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금액이 아무리 적더라도 장기연체를 우선 해소하고, 자신의 신용정보를 자주 조회하지 말며,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는 가급적 피하고, 금융거래를 한 은행에 집중해야 신용등급이 올라간다.”고 조언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1) 남양유업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1) 남양유업

    치열한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노사문화도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만족스럽지는 않다.‘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속담처럼 한때 노사관계가 좋지 않았던 기업들이 노사 상생의 정신으로 잘 나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 파업이나 외환위기의 어려움, 워크아웃의 위기상황, 구조조정의 아픔 등을 노사가 한 마음으로 극복한 회사들이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모범적인 사례들이다. 종업원지주제여서 노조는 없지만 전 임직원들이 하나가 돼 경쟁을 헤쳐나가는 기업들도 있다.‘과거의 아픔’을 딛고 노사가 하나가 돼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기업(사업장)들을 찾아가 본다. 남양유업 이형섭(48) 노조위원장은 지난해 가을 영업담당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 나가 ‘산삼주’를 내놓았다. 주말이면 ‘심마니’처럼 산을 찾아다니며 산삼캐기를 즐기는 그가 직접 채취해 담근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 산삼주 드시고 힘내라.”고 말했다. 지난해 9000여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했지만 출산기피 현상과 모유 선호분위기, 수입증가로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자 영업직을 위로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영업담당 직원들은 노조에 ‘운동화’를 보냈다.“품질관리를 위해 열심히 뛰어 달라.”는 뜻을 담은 답례였다. 예전 같으면 영업직원들과 노조는 ‘다른 식구’일 뿐이었다. 영업직원은 비노조원이다. 하지만 두번의 극심한 노사분규를 겪은 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칭찬카드 비치 9일 오후 2시쯤 충남 공주시 장기면 봉안리 남양유업 공주공장. 정문을 통과할 때 게이트 양쪽에서 하얀 소독약이 승용차를 향해 뿜어져 나온다. 청결을 제일로 치는 식품회사임이 단번에 느껴졌다. 남양유업 로고를 단 지입원유차 수십대가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이완주 인사총무팀장의 안내로 ‘이오’ 등 요쿠르트와 1.8ℓ 우유를 생산하는 생산3팀 탈의실로 들어갔다. 벽에는 ‘2&1/2’이란 조그만 나무상자가 매달려 있다. 상자에 ‘칭찬카드’와 ‘고충처리 신청카드’가 꽂혀 있다. 이 팀장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잖아요.”라고 말했다.2003년부터 설치했단다. 생산팀은 물론 공장 탈의실마다 1개씩 놓여 있다. 매주 칭찬이 4∼5건씩 들어오고 있다. 생산1팀장 이교덕(49)씨는 “칭찬을 많이 하고 서로를 위해 주면서 가족적인 분위기로 변했다.”면서 “10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너 친척 회사에 한명도 없어 1989년 6월말 첫 파업이 발생했다. 임금인상률을 놓고 노사간 10여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노조본부는 공주공장에 있지만 집행부가 천안공장에 집결했다. 머리띠를 두르고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정문을 폐쇄한 뒤 창업자인 당시 홍두영 대표이사를 나가지 못하게 막는 바람에 쪽문으로 탈출할 정도로 갈등이 극심했다. 파업은 이틀만에 끝났지만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집유도 이뤄지지 않았다. 젖소 사육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했다. 1992년 파업 때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해 7월 천안과 신설된 경주공장까지 800여명의 전 노조원이 공주공장에 집결했다. 문선대, 사수대 등 좀더 조직적으로 파업이 이뤄졌다. 떠먹는 요구르트 ‘꼬모’를 막 출시하고 대대적으로 광고전을 펼치던 때였다. 한규만 공주공장장은 “3일간의 파업이었지만 소비자들의 신뢰가 실추됐다.”면서 “이것은 재정적 손실보다 더 큰 타격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노조위원장은 대책위원과 회계감사로 두번의 파업에 깊숙이 관여했다.“이러다가는 큰 일 나겠다. 회사가 있어야 노조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노조에 경영설명회 회사측의 태도도 달라졌다. 연초에 경영진이 노조 간부들 앞에서 경영상태와 영업전망 등을 설명한다. 남양유업에서는 한달마다 ‘노사 소위원회’가 열린다. 현장 근로자든 사무직이든, 노조원이든 비노조원이든 가리지 않고 모여 현안과 불만사항을 쏟아낸다.‘현장사원 1일 팀장제’도 실시된다. 이런 과정에서 문제가 걸러져 노사협상이 훨씬 부드러워졌다.‘삼정(正-규정을 준수하는·情-정감있는·晶-명확하게 성과를 배분하는)주의’란 노사문화가 생긴 이유이다. 이런 노사문화가 전직원 월급에서 매달 1000원씩 떼어 난치병 환자나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이웃을 돕는 데로 확산되고 있다. 자연 직원들의 관심도 노사관계에서 품질개선 쪽으로 옮겨갔다. 노조위원장이 연구소장을 만나 “좋은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할 정도다. 회사는 ‘에러 모음집’을 만들어 실수를 줄이게 하고 있다. 파업 전에는 불평불만이 많던 직원들도 자기계발에 힘쓰면서 정부가 지정하는 ‘명장’이 3명이나 나왔다. 남양유업은 1964년 창업이래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노사화합 문화의 역할이 컸다. 빚도 없다. 그런 회사가 사옥 하나 없다. 연구·개발과 공장 신설에는 아낌없이 투자한다. 오너의 친인척이 회사에 한명도 없다. 박건호 대표이사도 신입사원 출신으로 CEO 자리에 오른 전문경영인이다. 이런 점도 노조의 신뢰를 사고 있다. 공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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