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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하루 8시간 근무’ 고정관념부터 깼다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하루 8시간 근무’ 고정관념부터 깼다

    |암스테르담(네덜란드) 류지영특파원| 네덜란드 최대 슈퍼마켓 체인인 ‘알버트 헤인’에서 일하는 안나 미첼슨은 담 광장 인근 매장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4시간(오전 8시∼정오) 일한다.10년 전 입사 당시에는 주 40시간을 꽉 채워 일했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회사와 협의해 근무시간을 세 차례 바꿨다. 지난해부터는 지금의 근무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여섯살짜리 쌍둥이 자녀를 둔 미첼슨이 받는 월급은 1500유로(약 270만원) 정도.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전일(全日) 근무자와 비교할 때 근무시간에 따른 임금차이 외에는 불평등한 점이 없다. 급여는 줄었지만 자녀에게 그만큼 시간을 더 투자할 수 있어 일과 육아간의 절충점을 찾게 됐다.. 기업 입장에서도 탄력적인 근무시간제는 이득이 많다. 이 매장은 오전 8시부터 문을 열지만 계절이나 경기에 따라 오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는 매장운영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한국처럼 기업이 원한다고 해서 근로자에게 임의적으로 연장근무를 요청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시간제 근로자를 많이 고용할 수 있는 노동환경은 그만큼 매장 운영시간 조절을 쉽게 만들어준다. 네덜란드 금융그룹 ING에서 노무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아널도 반 베스트리넨 역시 지난해부터 주 3일만 근무한다. 남는 시간에 자신이 꿈꿔왔던 미국 유학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유학 뒤 다시 회사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회사는 그에게 차별을 두거나 불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 회사의 정규직 근로자 비율은 95%에 이른다. 그럼에도 개인적 사정으로 자발적 시간제 근무를 택한 이들은 전체 직원(약 3만여명)의 20% 정도인 6000명에 달한다. 정규직 신분을 유지하면서도 자유롭게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원하는 시간에 압축적으로 일할 수 있어 업무처리 속도가 빨라졌다.”면서 “예전에는 주로 여성들이 시간제 근무제를 선호했지만 요즘엔 자기계발 등의 목적으로 남성들도 선호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정오에 퇴근후 자녀교육에 전념 네덜란드는 고속성장을 구가하고 있다.1970년대에는 높은 물가와 실업률로 상징되는 ‘네덜란드 병’으로 고전하기도 했지만 지금의 네덜란드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5만달러-경제성장률 3.5%에 달하는 강국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변신은 ‘정규직 근로자는 하루 8시간씩 일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깬 유연한 ‘시간제 근무제’에 힘 입은 측면이 크다. 1959년 네덜란드는 북해에서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를 발견했다. 천연가스를 수출해 매년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자국의 굴덴화 가치는 급속도로 높아졌다. 이 때문에 네덜란드는 급속히 수출경쟁력을 상실했다. 여기에 정부가 천연가스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사회보장 등 재분배에 힘쓰면서 임금과 물가가 가파르게 치솟았다. 결국 1970년대 들어 실업률이 높아지고 재정적자가 늘어나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이른바 ‘네덜란드 병´이었다. 1982년 당시 총리였던 루드 루버스는 병든 네덜란드를 과감히 수술하기 시작했다. 경기침체 해결을 위해 임금인상 억제, 노동시장 단축, 일자리 공유, 사회보장 완화 등을 골자로 한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었다. 바로 ‘바세나르 협약’이었다. 이 협약을 통해 노조는 9%의 실질임금 하락을 받아들였고, 기업주들은 노동시간을 5% 단축해 일자리를 나누기로 합의했다. 그 뒤 10여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1996년 ‘시간제 근로자 차별금지 규정’을 마련했다. 임금, 교육 훈련 등 모든 지원에 있어서 전일 근무자와 차별이 없도록 하는 ‘동일직무 동일대우’의 원칙을 확립했다. 여기에 ‘근로자 노동시간 단축 요구권’(2000년) 등을 보완하면서 네덜란드의 노동시장 유연화 과정이 일단락됐다. ●짧아진 노동시간이 오히려 생산성 높여 현재 이러한 노동 개혁의 성과는 여러 수치들이 잘 설명해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정규직 해고 제한지수(1.06)는 OECD 국가 중 포르투갈, 스웨덴에 이어 세번째로 높다. 그럼에도 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5.5년으로 해고가 자유로운 영국이나 아일랜드 수준으로 짧다. 지난해 네덜란드의 시간제 근로자 비율은 전체 취업자(700여만명) 의 45.5%나 됐지만, 이 중 비자발적으로 시간제 근무를 택한 이들은 전체 시간제 근로자의 3.9%에 불과했다. 노동자가 자신의 상황을 고려해 시간제 근무제를 자유롭게 활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노동시간이 짧아지고 불규칙해진 만큼 근무를 소홀히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달리 생산성은 크게 높아졌다. 개인이 스스로 시간제근무를 선택한 만큼 책임감이 높아진 덕분이다.2006년 네덜란드의 시간당 노동 생산성은 51.2달러로 유럽연합(EU) 평균보다 21% 정도 높다. 경직된 노동 환경 탓에 ‘일할 직장´과 ‘일할 사람´ 이 모두 부족한 우리로서는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국내 근로자들이 느끼는 직능안정감과 고용안정감 순위는 각각 46위,42위(2004년 기준)로 우리보다 해고가 자유로운 나라들보다 낮았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준 연구원은 “근무시간만 탄력적으로 운용해도 현재의 고용수준을 유지하면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꾀할 수 있다.”면서 “근무시간의 유연화는 특히 육아를 고민해야 하는 여성인력의 활용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superryu@seoul.co.kr
  • 광주상무 선수들도 ‘군대리아’를 먹을까?

    광주상무 선수들도 ‘군대리아’를 먹을까?

    흔히들 우스갯소리로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고 한다. 확인 불가능한 이야기이기에 그 누구도 자신의 군대 시절 축구 실력을 솔직히 고백하는 이는 없다. 하지만 이들 앞에서는 그 어떤 이도 자신의 군대시절 ‘축구 무용담’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그렇다 진짜 군대에서 축구만 한 광주상무의 이야기다. 우리는 과연 광주상무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상무의 프런트는 모두 군인일까? 아니다. 상무 구단에서 군무원 신분으로 4급 공무원 대우를 받는 이강조 감독과 이수철 코치를 제외하면 모두 일반인이다. 구단의 사소한 업무를 맡은 직원부터 나무석 단장까지 모두 축구가 좋고 광주가 좋아 자발적으로 모인 이들이다. 광주상무 구단 사무실은 여느 프로팀 구단 사무실과 마찬가지로 화기애애하다. 군기 같은 건 없다. 경기 외에는 일반 사병과 똑같이 생활할까? 리그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상무 선수단은 해당 지역의 호텔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하지만 경기가 없는 날에는 성남의 국군체육부대에서 다른 종목의 상무 선수단과 똑같이 생활한다. 아침 점호를 받고 구보 후 에어로빅을 한 뒤 오전 일과, 점심 식사, 오후 일과 순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들에게 일과란, 물론 공을 차는 일이다. 외곽근무는 없지만 불침번은 전투복을 입고 일반사병과 똑같이 선다. 오늘도 박규선 병장은 일과가 끝난 후 내무실에 누워 달력에 X표를 한다. 구단 버스는 운전병이 몰까? 2003시즌, 구단 버스를 몰던 운전병이 전역했다. 하지만 이 운전병은 전역 후 취업 형태로 다시 구단에 입사해 지금도 그대로 구단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구단 측에서도 이 운전사의 능력을 인정해 흔쾌히 그를 다시 받아들였다. 광주상무 선수단은 ‘고조 할아버지 군번’이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있는 셈이다. 팀닥터는 의무병일까? 아니다. 현재 상무의 팀닥터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명의’다. LG트윈스 프로야구단에서도 트레이너로 활동했던 전문가를 모셔온 상무는 선수들의 부상 치료에 여느 K-리그 구단 못지않게 신경을 쓰고 있다. 상무는 축구 뿐 아니라 모든 종목에 의무병이 아닌 전문 트레이너를 두고 있다. 승리 시, 포상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군 팀의 특성상 이들에게 승리 수당은 없다. 다만 휴가와 외박이 있을 뿐이다. 원칙적으로는 국군체육부대 경기 대장의 승인이 있어야 하지만 상무 구단의 포상 휴가와 포상 외박은 이강조 감독이 큰 영향력을 차지한다. 이강조 감독은 선수단의 경기력에 따라 휴가증과 외박증을 건의하고 경기 대장으로부터 승인을 받는다. 23경기 동안 한 번도 못 이겨서 포상 휴가증 못 받았지? 그거 누가 그랬을까? 경고나 퇴장 등에 따른 벌금은? 대부분의 K-리그 구단은 선수가 경고나 퇴장 등 경기력을 저해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 자체적으로 벌금을 부여한다. 하지만 상무에는 벌금 제도가 없다. 몇 푼 되지 않는 월급으로 생활하는 이들에게 벌금까지 부과한다면 그건 너무 잔인한 짓이다. 상무는 큰 잘못으로 프로축구연맹에 벌금을 내야하는 선수가 있다면 이를 구단 차원에서 대신 내주기도 한다. ‘짬밥’과 ‘군대리아’도 먹을까? 운동 선수라면 풍부한 영양은 생명. 이들은 ‘짭밥’과 ‘군대리아’는 먹지 않는다. 성남에 위치한 국군체육부대에서 생활하는 축구 선수를 포함한 모든 상무 선수들은 균형 잡힌 식단으로 식사를 한다. 이들이 ‘짭밥’을 먹을 기회는 1년에 단 한 번, 연말 전방부대 체험 행사 때 뿐이다. 상무에도 계급이 존재할까? 첫 한 달 동안만 계급이 존재한다. 아무리 나이가 많은 선수라도 입대 후 훈련소를 거쳐 상무로 자대배치를 받으면 이등병이 할 일을 해야 한다. 말투도 무조건 ‘다’나 ‘까’로 끝낸다. 하지만 자대배치를 받고 한 달이 지나면 계급이 아닌 축구계의 선후배 순으로 계급이 바뀐다. “XXX 병장님”의 호칭도 자연스레 “XXX형”으로 바뀌고 말투도 “~요”로 변한다. 말년 병장 조재진 역시 “이등병 김상식이 더플백을 메고 자대에 들어와 꼬인 말년을 보냈다”고 상무 시절을 회상했던 바 있다. <사진=광주상무 구단 제공> 기사제휴/스포츠서울닷컴 김현회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품격 한식 전도사 조태권 광주요 대표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품격 한식 전도사 조태권 광주요 대표

    음식은 ‘사람’이고 그릇은 곧 ‘옷’이다. 하여, 곱게 단장된 밥상 위의 음식은 당연히 ‘스타’처럼 멋있게 보일 터. 그렇다면 우리의 것으로 세계적 ‘슈퍼스타’를 만들어봄직 아니한가. 바로 영원불멸의 진정한 ‘한류’말이다. 조선시대의 명품 도자기 맥을 잇는 조태권(60) 광주요(廣州窯) 대표. 그는 20년째 우리 음식문화의 ‘슈퍼스타’ 발굴에 고집하고 있다. 최고의 도자기는 물론이요 이에 걸맞은 음식과 술은 꾸준히 만들어내고 있는 것. 2년 전이다. 중동 두바이 왕자와 일행들이 한국에 왔다. 이들은 조 대표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의 식당을 찾아 저녁메뉴로 홍계탕을 주문했다. 홍삼과 닭, 버섯, 전복 등의 재료가 들어간 이 홍계탕은 한 그릇에 30여만원에 달하는 고가로 외국인을 겨냥, 최고품으로 개발된 것. 이들은 이날의 맛을 잊지 못했던지 다음날 숙소인 호텔에서 다섯 그릇을 주문했다. 지난해였다. 이들은 또 한국을 잠시 방문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식당에 들르지 못했다. 돌아가던 날 “타고온 자가용비행기가 있는 곳으로 홍계탕 13그릇을 배달해줄 수 있느냐.”고 했다. 식당에서는 기꺼이 응했고 공항에서 540만원을 결제했다. 이후 두바이 부호들이 한국에 올 때면 홍계탕을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소문이 났던지 2007년 ‘뉴스위크지’와 ‘뉴욕타임스지’에 한국의 홍계탕을 파격적으로 소개했을 정도로 홍계탕은 세계적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홍계탕 외에 전복갈비찜, 랍스터떡볶이, 랍스터잡채 등도 세계화를 위해 조 대표가 직접 개발해낸 스타급 메뉴로 한국을 찾는 고급 바이어들에게 선호도가 높다. 그가 3년 전 개발해낸 전통 증류식 소주 ‘화요’도 세계적 인기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07국제주류박람회(IWSC)에 ‘화요’를 출품, 동상을 수상했다. 또 지난 5월 벨기에에서 열린 2008몽드셀렉션(주류·식품 경연대회)에서 우리의 전통주로는 처음으로 ‘화요’가 금상을 차지했다. 출시 3년 만에 수상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국내에서도 일식과 한정식당, 골프장 등에서 양주 대신 ‘화요’를 찾는 고객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그릇-음식-술’을 들고 외국에 자주 다니면서 한국의 고품격 음식문화를 전도하기에 여념이 없다. 국내에서는 1998년부터 매년 ‘아름다운 우리 식탁전’을 개최하면서 우리 식문화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코리아푸드엑스포 2008’이 한창 열리던 지난주, 때마침 한승수 국무총리가 ‘한식 세계화 선포식’을 하던 날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광주요 서울사무실에서 조 대표를 만났다. 자리에 앉으면서 요즘에는 어떤 일로 바쁘냐고 했더니 강의 때문에 정신없이 지낸다면서 한 30여분 동안 다른 질문을 할 틈도 없이 계속 목소리를 높여나간다. “이제는 식생활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변해야 합니다. 생계형 음식도 중요하지만 세계를 지배할 한국적 명품음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미래성장의 원동력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IT산업인가요? 그건 다른 나라도 다 하는 겁니다.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음식문화입니다. 또 그걸 하루빨리 국가적 브랜드화해야 합니다. 일본은 최근 국가적으로 다시 ‘기모노’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결국 미래 국가경쟁력의 상품은 문화상품인 것이지요. 요새 우리가 말하는 한류는 반짝했다 사라지는 감성적인 것입니다. 선진국에 가보면 대부분 그들만의 음식문화를 아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일본의 스시, 프랑스의 코냑, 미국 나파밸리의 포도, 스코틀랜드의 밸런타인 등도 마찬가지이지요. 다행히 이제야 우리도 ‘한식 세계화 선포식’을 가졌지만 음식과 술의 가치를 높이면 포장이 달라지고, 이럴 때 우리나라를 찾는 손님들은 진한 감동을 안고 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전통 음식문화가 단절되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그저 잘 살아보자는 꿈밖에 없었습니다. 한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은 술장사로 터부시했고 그러다보니 돈있는 사람들은 투자를 안 했지요. 우리나라는 지금도 대부분 생계유지를 위해 음식장사를 합니다. 옆집, 앞집 식당과 경쟁을 하게 되다 보니 강한 조미료를 쓰고 가격은 내려야 하지요. 우리나라는 인구 67명당 식당이 한개씩 있고 1년에 10만개의 식당이 문을 닫고 있는 실정입니다. 가치경쟁이 아닌 가격경쟁을 하다 보니 음식발전이 더디지요. 식구들과 외식하려면 집에서 먹는 것보다 가치가 높아야 찾게 되거든요. 이젠 우리의 미래를 위해 대기업들이 이에 뛰어들어야 하고 국책사업으로 지정돼야 합니다.” 그는 한식을 말할 때 이제는 ‘전통’이란 말을 빼자고 했다. 우리의 요리방법에 외국인들이 먹기 좋게, 외국인들이 즐길 수 있는 코스요리 만들어 세계화로 나가면 그게 바로 우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뿌리가 ‘코리아’라고 불리면 된다는 것이다. ▶시장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20년 후 세계 자동차 시장은 1320여조원,IT산업은 2700여조원이지만 외식시장은 50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음식이란 한번 각인되면 아주 오래갑니다. 다른 산업처럼 리스크가 거의 없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음식이 세계화하려면 꼭 전통에만 얽매이지 말고 현재의 우리 재료로 세계의 눈높이에 맞춰 ‘퀄리티업’을 하자는 것이지요.˝ 그는 경남 남해에서 6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사업을 해 어린 시절 비교적 부유하게 지냈다. 경기중 2학년때 5·16이 나자 아버지가 부정축재자로 몰리는 바람에 집안은 풍비박산이 됐다. 가족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고등학교를 다닌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주리대학을 다닐 때 그는 학비는 스스로 벌어야만 했다. 선배의 도움으로 프랑스 식당에서 ‘버스보이’를 했다. 버스보이(busboy)는 웨이터의 심부름꾼으로 웨이터가 월급을 받으면 그중 15%가량 받는 것이었다. 냅킨접기, 접시닦기 등의 일이었지만 정직과 신뢰를 인정받아 곧 웨이터로 승격했다. 이후 방학 때는 웨이터로, 개강때는 공부에 전념했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 ‘메릴랜드 오션시티’의 한 스테이크집에서 3개월 동안 일해 5000달러를 벌어 부모가 계시는 일본에 들렀다. 당시 부친은 맥이 끊긴 조선 도자기 부흥을 위해 경기 이천에 광주요를 창업한 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도자기를 판매하고 있었다. 1974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대우에 취직했다. 입사 후 얼마 안 돼 아프리카와 유럽 지사장에 발탁되는 등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이어 김우중 대우회장의 특명을 받아 방위산업 영업을 맡기도 했다. 퇴사한 뒤에는 직접 무기거래사업을 벌였다. 이때 세계 최고의 부호들과 어울리면서 나름대로 돈을 벌었다. 그러던 1988년 부친이 타계하자 모든 것을 그만두고 광주요 운영에 매진했다. 이후 도공들과 함께 선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박물관을 순례하면서 질 좋은 도자기가 어떤 것이지 새삼 깨달았다. 결국 산화와 환원을 번갈아 시도하는 ‘중성기법’으로 붉은색, 푸른색을 함께 띠는 상감기법의 도자기를 개발해내기도 했다. 그가 우리 음식문화의 세계화를 부르짖게 된 계기는 도자기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바가 컸기 때문. 도자기 강국이 정치, 경제, 문화, 사회가 균형있게 발달된 선진국이라는 걸 실감했고 그릇과 음식, 술 등이 등급별로 만들어져 어울리는 ‘명품’을 보게 됐던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10년 후에는 세계인이 좋아하는 1병당 1000달러짜리 술을 반드시 만들어내겠다.”면서 우리 것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조태권은 누구 ▲1948년 경남 남해 출생 ▲1966년 일본 도쿄 미국인 고등학교(ASIJ) 졸업 ▲1973년 미국 미주리대학 공업경영학과 졸업 ▲1973~1974년 일본 도쿄 마루이치상사 근무 ▲1974~1982년 (주)대우 섬유부· 철강부 특수물자부 근무. 그리스지사장 역임 ▲1988년 (주)광주요 대표 ▲1996년 재단법인 광주요 도자문화연구소 설립 ▲1998~2004년 아름다운 우리식탁전개최 ▲2003년 한식전문 ‘가온’ 1호점 개점 ▲2005년 증류식 소주 ‘화요’ 출시 ▲2006년 중국 베이징에 ‘가온’ 개점, 한식요리 전문 ‘낙낙’과 ‘녹녹’오픈 ▲2007년 런던 개최 국제주류박람회 ‘화요’ 동상 수상 ▲2008년 벨기에 개최 2008몽드셀렉션(주류·식품 경연대회) ‘화요’ 금상 수상 ▲2008년 현재 (주)광주요·화요 대표
  • [글로벌 시대] 돈이 먼저, 능력이 먼저/정희섭 주한 덴마크대사관 투자담당관

    [글로벌 시대] 돈이 먼저, 능력이 먼저/정희섭 주한 덴마크대사관 투자담당관

    취업 시즌이 시작되었다. 천고마비의 가을이 오면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기지만, 학업을 계속할 사람이 아닌 이상, 사회에 나가 그동안 갈고 닦은 스스로의 능력을 발휘할 직장을 찾아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에게 맞는 조직을 찾는 것만큼 예비 직장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없다. 그래서 이맘때쯤이면 다시 한 번, 이력서도 가다듬고, 자기소개서에 스스로를 부각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를 함축적으로 표현할 문장을 뽑아내느라 고심하게 된다. 한편, 국내외 기업들은 소리 없는 전쟁을 시작한다.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쟁탈전이 그것이다. 이윤의 극대화라는 기업의 궁극적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열정과 패기, 전문적 업무 능력과 글로벌 감각을 소유한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업을 이끌어 갈 ‘초우량’ 인재가 없는 조직은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없고, 글로벌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없다. 매력적인 연봉과 근무 조건을 제시하면서 인재를 불러들이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국내 모 대학의 취업지원실에 전화를 걸어 모집 직종과 직무, 간단한 근무 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적합한 지원자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그런데 취업담당자의 첫 번째 질문이 돈을 얼마나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연봉은 지원자와 인터뷰를 통해 상호 협의하여 조정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한사코 먼저 연봉의 수준을 말해 달라고 해서 기본적인 처우 사항에 대해 말해 주었다. 취업 담당자는 요새 학생들은 돈에 민감해서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를 미리 말해 주지 않으면 지원을 꺼린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을 하지 못하는 사회적 문제를 일컫는 이른바 ‘청년 백수’라는 말이 무색하게 들렸다. 그리고 지원자가 갖춘 여러 가지 능력도 검증하지 않았는데, 지급할 연봉의 수준부터 이야기하라는 상황 자체가 과연 맞는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질문의 첫 번째가 급여라는 것이 조금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중소기업들의 투자 유치 상담을 다니다 보면 사람은 많은데 쓸 만한 인재는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 능력과 적극적인 태도를 갖춘 사람은 별로 없다는 말과 다름없다. 다른 말로 하면, 기업에서 바라다보는 인재의 기준과 기업에 취업하려는 지원자의 눈높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지원자의 입장에서는 보다 많은 연봉과 보다 좋은 근무 조건을 제공받고 싶을 것이고, 기업 입장에서는 지원자의 능력을 먼저 보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두 입장이 대립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적성보다는 월급이 많은 직장, 재능을 실현할 수 있는 직장보다는 안정적으로 오래 근무할 수 있는 직장이 가장 인기가 좋다. 자신이 진정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라면 처음 받는 월급의 많고 적음이 아닌, 수행하는 업무가 스스로에게 보람이 있는지, 내가 일함으로써 내가 속한 조직이 앞으로 더 발전해 나갈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북구 선진국의 직장선택 조건과는 많이 다르다. 취업조차 국경이 없는 글로벌 시대를 사는 젊은이가 필히 가져야 하는 마인드가 있다. 취업을 막 시작하며 받는 연봉의 수준과 근무 조건보다는 십년 후, 이십년 후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느냐에 대한 숙고가 그것이다. 최고의 전문가를 꿈꾼다면 오늘 받는 돈의 무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 부수적인 것이 될 뿐이다. 부수적인 것에 너무 신경을 쓰면 정작 본질적인 것을 생각할 수 없게 됨을 잘 이해하여야 한다. 정희섭 주한 덴마크대사관 투자담당관
  • 2008 벼랑끝 취업전쟁

    경기가 날로 악화되면서 취업생들 사이에서 “내년에 심각한 경제위기가 도래한다.”는 ‘외환위기 재현 괴담’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구직자들은 “올해 반드시 취업해야 한다.”며 취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어학연수를 중단하고 귀국하는 대학생들이 속출하는 등 ‘벼랑 끝 취업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건국대 전기공학과에 다니는 이모(26)씨는 캐나다 어학연수 수료를 5개월 앞두고 지난달 급히 귀국했다. 이씨는 취업 인터넷 카페에서 ‘제2의 외환위기설’을 보고 귀국을 결심했다. 취업 인터넷 카페 ‘취업뽀개기’ 등에는 “내년에 각 기업들이 취업 문을 완전히 닫는다.”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 있다. 이씨는 “어학연수를 수료하면 영어회화 실력은 나아지겠지만 취업할 곳이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말했다. ●해외 연수생들 연내 취업 위해 유턴 부경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이모(25)씨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1년 예정이었던 어학연수를 끝내지 않고 7개월 만에 취업을 위해 귀국했다. 이씨는 방송국 PD가 목표이지만 우선 연내에 합격 가능성이 있는 일반기업을 준비 중이다. 유학 포기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대 대학원 도시환경분야 석사과정을 마친 강모(27)씨는 “경기침체가 오면 외환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박사 실업자가 쏟아질 것”이라면서 “우선 취업에 올인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각 대학의 취업센터는 급증한 취업상담 신청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성균관대 취업센터는 지난해 479명이 상담을 받았지만 올해는 10월까지 이미 557명이 상담을 받았다. 단국대는 두 달 이상 상담이 밀려 있고, 국민대는 하루 5~7명이던 상담신청수가 두 배로 급증했다. 상명대 관계자는 “무조건 연내 취업하려는 학생들 때문에 평소에는 각광을 못받던 비정규직에도 학생들이 몰린다.”고 말했다. ●고시 포기하고 월급 100만원 중소기업으로 ‘눈높이 낮추기’는 기본이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모(26·여)씨는 4년간 행정고시에 실패한 후 공기업에 도전했으나 이 역시 실패하자 지난 9월 월급 100만원 남짓한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고려대 대학원 정외과에 다니던 이모(27·여)씨 역시 일본계 종합상사 한국지사에 다니다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공부를 그만두고 이전보다 적은 연봉을 받으며 다른 회사에 취업했다. 이씨는 “이번 경기침체는 일본처럼 10년 이상 지속된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내년이 되면 공부는 사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모(29)씨는 애인의 반대에도 나이지리아에 가는 조건으로 지난 4월 건설회사에 합격해 먼 길을 떠났다. ●“中·美 동반 침몰… 2~3년간 취업난 극심” 연내에 취업하려는 구직자들이 몰리면서 하반기 취업경쟁률은 상반기보다 더욱 높아졌다. 외환은행 입사경쟁률은 상반기 167대1에서 하반기 218대1로 치솟았다. 한국투자증권은 회사 역대 최고 수준인 120대1을 기록했다. 신한은행·우리은행·대우증권 등도 100대1을 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9월 구직자는 40·50대가 증가한 반면 20·30대는 줄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청년실업자와 유휴청년(구직포기자)을 합친 ‘청년백수’는 올해 상반기에만 6만명이 늘어 136만명 수준이 됐다. 직업능력개발원 채창균 박사는 “미국과 중국의 동반 경기침체로 길게는 2~3년간 취업시장이 얼어붙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손민중 연구원은 “최근 고용률이 0.4%포인트 더 하락해 59.8%에 불과하다.”면서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고용을 늘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경주 김정은기자 kdlrudwn@seoul.co.kr
  • 서울 어린이집 準공영제로

    서울 어린이집 準공영제로

    서울시가 일반 어린이집(보육시설)에 재정적 지원을 통한 어린이집 ‘준(準)공영화´ 사업을 추진한다. 일반 어린이집의 보육료를 국·공립 수준으로 내리고 서비스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다. ●내년 480곳… 4년 내 4780곳 전환 15일 서울시에 따르면 공공보육서비스 개선을 위해 국공립·민간 구분 없이 일정 기준 이상의 보육환경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육시설에 대폭적인 재정 지원을 하는 ‘서울형 어린이집 프로젝트’를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내 보육시설 5532곳 가운데 86%를 차지하는 일반 어린이집 4780곳이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시의 예산지원을 받는 공공보육 기관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 시는 이번 사업에 2012년까지 총 2109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1차로 내년에 480곳, 2010년까지 2050곳의 일반 보육시설을 ‘서울형 어린이집’으로 인증할 계획이다. 시로부터 인증을 받은 어린이집에는 ▲보육교사 인건비 30~80% 지원 ▲평균 보육료 수입 10% 시설 개·보수비로 지원 ▲보육·급식도우미 파견 ▲어린이집 CC-TV 설치 등의 지원이 이뤄진다. 이를 통해 보육비를 월 5만 1000~6만 4000원으로 낮추고 국·공립의 80% 이하 수준인 보육교사의 월급은 높아져 우수 보육교사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일반 어린이집이 서울시의 인증을 받기 위해선 92개 항목을 충족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오세훈시장 “여성이 행복한 도시로” 한편 시는 ‘1동 1공공보육시설 확충’ 계획을 예정대로 추진하고 서울키즈센터건립과 영유아플라자 확충 사업도 병행해 나가기로 했다. 오세훈 시장은 설명회에서 “서울형 어린이집 사업을 통해 민간보육 시설을 국공립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라면서 “보육문제 해결을 통해 여성이 행복한 도시, 여성의 경쟁력이 높은 도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열린세상] 우리를 진정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열린세상] 우리를 진정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며칠새 기온이 뚝 떨어졌다. 하늘은 눈부시게 투명하고 볼을 스치는 바람이 자못 삽상하다. 밤거리엔 사람들이 어느새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고 종종걸음을 친다. 몸과 마음이 미리 알고 따스한 것을 찾는다. 한 잔 차로 몸이야 데울 수 있지만, 마음은 온기를 머금을 줄 모른다. 겨울을 나기 힘든 이들이 많은 까닭이다. 많은 이들이 “혹여 범죄자라면 어떠냐. 경제만 살려다오.”라는 마음으로 MB를 선출하였는데,IMF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고 난리다. 자고 나면 가게가 속속 문을 닫는다. 지하철을 타면 구걸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음식점에 들어가면 첫손님인 경우가 많다. 교외로 나서면 길이 한산하다. 그래도 IMF 때는 기업과 은행이 부도가 난 것이라 국민들이 노력하여 살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자영업이 휴폐업하고 가계가 적자투성이이고 개인이 부도가 난 것이라 그를 일으켜 세울 주체 자체가 절망 상태에 있다. 한마디로 민간소비가 위축되고 내수 기반이 무너진 것이기에 공적 자금 투여와 같은 방법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게다가 미국의 금융위기로 국제 경제조차 좋지 않으니 앞날이 더욱 캄캄하다. 하여 풍요로운 이 가을날에 우리는 가난과 고통의 수렁에서 절규한다. 서민들의 절규가 처절한 것은 경제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우선 상대적 빈곤과 불안감이 도를 넘어섰다. 비정규직이 860만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반 이상이 한 달에 100만원 이하의 월급을 받고 있다. 생계가 곤란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나마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노동을 해야 한다. 정규직 또한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강도 높은 노동과 해고 위협 아래 일하는 하루, 하루가 고통의 연속이다. 자고 나면 물가와 교육비가 오르니 실질 소득은 팍팍 줄어드는 셈이다. 대부분의 가계가 빚을 지고 있어 덜 먹고 덜 입고 덜 가르치며 한푼 두푼 모아 빚 없는 날을 고대하며 살고 있는데, 금융 위기는 그 바람마저 거품으로 만들고 있다. 지금 고통스러우면 어떠랴. 우리는 내일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하는 데는 세계 최고인 민족이다. 하지만 지금 미래가 없다. 지도자는 전혀 비전이 없다. 간혹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지만, 현재 닥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립서비스요, 미봉책인 줄 초·중딩도 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제도와 시스템의 개혁인데 현재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마저 더 나쁜 상황으로 악화시키는 정책만 난무한다. 세계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깨닫고 그 본산지인 미국에서조차 실패를 선언하고 유턴하고 있는데, 유독 MB정권은 신자유주의 독재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니 꿈을 꿀 수도, 그 꿈을 향하여 현재의 고통을 감내할 길조차 없다. 예전에는 서울에서도 골목문화가 남아있을 정도로 공동체의 유산이 강하였지만,IMF 이후 각 정권이 신자유주의를 과도하게 강요하면서 우리 안에 남아있던 공동체는 사라졌다. 회사에선 의리나 인간적인 정이 사라지고 오로지 돈을 준 만큼, 잘리지 않을 만큼 일한다. 동료가 곧 적이고 경쟁상대다. 사회에선 오로지 재테크와 욕망을 추구하는 일만 관심사다. 신자유주의식 시장 전체주의는 학교와 종교의 성역에도 스며들어 목사나 대학교수조차 돈과 욕망을 좇고 공동체의 가치를 저버린다. 눈물을 닦아 줄 형제가 있고 고통을 나눌 친구가 있고 젖동냥을 기꺼이 해줄 이웃이 있는 한 가난은 겉옷에 불과할 뿐, 삶은 의미로 충만하다. 그 의미들은 가난을 극복하는 힘과 용기와 지혜의 바탕이다. 이제 MB정권은 집토끼만 챙기는 요요(yoyo)경제가 미국의 금융위기를 낳았음을 직시하여, 양극화와 상대적 빈곤을 강화하고 1%만 잘살게 하는 경제정책과 조세정책을 중지하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전환을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 경제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한국 노동의 미래, 노르웨이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한국 노동의 미래, 노르웨이

    |오슬로(노르웨이) 류지영특파원|주부 수잔 페터슨(32)은 두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은행원이다. 아이 돌보기에도 바쁜 시기지만 남편의 도움으로 별 어려움없이 직장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남편이 일주일에 3일간 일하고 수잔이 나머지 2일을 근무해 번갈아가며 아이를 돌본다. 부부가 회사와 협의해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바꾼 덕분이다. 아이를 낳고 12개월에 걸친 출산 휴직 기간에 수잔은 회사에서 받던 월급 2만 크로네(약 450만원)를 모두 정부 육아 수당으로 충당했다. 수잔은 내년쯤 둘째 아이를 가지려 준비 중이다. 두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때쯤 남편은 전일 근무방식으로 돌아가고, 수잔은 오전 4시간만 일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아이를 계속 돌볼 계획이다. ●‘복지’야말로 최고의 노동정책 여성 회사원이 임신을 하면 유·무형의 퇴직 압박에 시달리는 우리로서는 꿈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노르웨이에서는 일상이다. 누구든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 여부를 스스로 정할 수 있으며, 근무시간도 바꿀 수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 차별도 없으며, 시간제 근로자에 대한 처우도 전일제 근로자와 동일하다. 우리 기준으로는 상당히 느슨해 보이지만 노르웨이의 단위 시간당 생산성은 우리의 3배를 웃돈다.‘미국식이 곧 정답’이라고 생각해온 우리에게 다른 방식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노르웨이 집권 노동당 출신 정치인으로 현재 정부 노동·사회통합부에서 정치고문으로 활동 중인 케틸 린드세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나아갈 길을 살펴봤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노르웨이의 노동정책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이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노동자에 대한 ‘복지’야말로 경제성장의 견인차라는 게 우리의 믿음이다. 노동자가 근무여건, 자녀 교육, 주택, 노후 등 문제로 걱정이 많다면 사회적 생산성은 자연스레 떨어지게 돼 있다. 노동자가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노르웨이가 최근 중점을 두고 있는 노동 관련 사안은 무엇인가. -이른바 ‘보이지 않는 차별’을 없애는 것이다. 얼마 전 노르웨이에서도 ‘임신했다.’는 이유만으로 여직원을 한직에 배치한 기업주가 적발돼 사회 문제가 됐다. 근로자는 임신·육아 등 ‘가족친화적 사안’으로 인해 어떠한 차별도 받아선 안 된다. 사실 이는 정부의 의지 문제다. 정부가 이런 차별을 묵인하면 결국 그 사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건강성이 떨어진다. ●정부가 특정집단 편들면 노사관계는 악화 ▶노르웨이는 현재 노동생산성면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데, 산유국이라는 점이 결정적인 게 아닌지. -그렇게 따지면 중동 산유국들의 노동생산성이 최고가 돼야 한다. 노르웨이의 생산성이 높은 것은 바로 노동의 창의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실제 근로시간과 노동생산성 간에는 역(逆)의 상관관계가 있다. 때문에 노동의 질을 높이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충분한 휴식’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한 사회가 성장하는 과정은 마라톤에 비유할 수 있는데,(한국처럼) 장시간 노동에 의지해 성장하려는 것은 마라톤 경주 초반부터 단거리 스퍼트를 하는 것과 같다. 시간이 지나면 가족이 해체되는 등 각종 사회문제가 불거져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수 없다는 게 우리 결론이다. 노르웨이가 주당 노동시간을 37.5시간으로 정한 것도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면서도 사회적 생산량을 최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근 경기 침체로 프랑스가 주당 35시간 근무제를 수정하자 한국의 보수 언론들이 ‘유럽도 좌파적 정책이 막을 내리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는데. -유럽 국가들은 좌파나 우파 중에 누가 집권해도 노동자를 비용으로 간주하는 미국식 노동정책을 선호하지 않는다. 노동자의 복지를 우선시하는 사민주의적 풍토는 유럽에 대체적으로 형성된 공감대로 봐도 된다. ▶한국은 올해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친기업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입장은 어떠한가. -우리가 한국의 경제정책을 평가할 입장은 아니다. 다만 경제사정이 어렵다 해도 국가가 노사문제, 특히 임금 문제에서 한쪽 편을 들어선 안 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노골적이든, 암묵적이든 국가가 기업 편을 들면 당연히 노동운동은 격해진다. 반대로 국가가 노동조합과 가까워지면 기업은 규제 강화를 우려해 국외로 떠난다. 한 나라의 노사관계가 악화돼 있다는 것은 그동안 정부가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도 우리의 중립적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노르웨이에서는 노동자의 파업이 2주를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수십년에 걸쳐 노사가 대화를 통해 스스로 해결점을 찾아 온 전통이 확립된 덕분이다. superryu@seoul.co.kr <특별취재팀> 미래생활부 박건승부장(팀장)·이도운차장·박상숙·류지영·박건형·정현용기자, 도쿄 박홍기·파리 이종수특파원, 국제부 박홍환차장·안동환·이재연기자
  • [추락하는 세계금융] 자금조달 스톱 상태… 임금체불 업체 속출

    원·달러 환율 상승의 여파로 중소기업이 밀집한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옛 구로공단)에는 임금체불 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액정표시장치(LCD)를 생산하는 코스닥 상장업체 A사는 지난 2개월 동안 근로자 110명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회사 측은 “환율 상승으로 중국 현지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OEM) 생산단가가 올랐고, 로열티도 올랐는데 국내의 ‘메이드 인 차이나’ 이미지가 좋지 않아 물건값을 못 올렸다.”면서 회사 경영을 정상적으로 하기 어려운 사정을 밝혔다.5년째 근무한다는 김모(33)씨는 “어디다 말도 못 하고, 속만 타들어 간다.”고 말했다. 회사 노조지부의 상급단체인 전국금속노조 서울지부 관계자는 “상반기 선물시장에서 원자재값이 올랐고, 요즘에는 환율 때문에 원자재가격이 올라 회사가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단지 내 근로자들은 회사사정을 알기 때문에 체불임금을 받기 위한 단체행동을 펼치기도 주저하는 눈치다. 전선을 제작판매해 지난해 매출 450억원을 달성했던 중견기업 B사의 전선사업부에 6년째 다니고 있는 서모(36)씨는 “월급날인 지난달 25일을 열흘 넘긴 지난 5일 노조원 61명은 월급을 100% 받았지만 비노조원 60명은 50%밖에 받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회사 노조 지부 부회장이기도 한 서씨는 “다음달도 걱정되는 판에 단체행동은 엄두도 못낸다.”고 털어놨다. 회사측 관계자는 “외환위기 당시 한 차례의 체불 뒤에 처음 맞는 사태”라면서 “환율폭등까지 이어져 자금 조달이 중단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환율 공포’에 떠는 수입상가·수출공단 르포

    ‘환율 공포’에 떠는 수입상가·수출공단 르포

    원화가 미국 달러뿐 아니라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 유럽 유로화에 대해서까지 약세를 보이면서 중소기업·자영업자와 일반 서민들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서울신문이 10일 서울 구로 디지털단지, 용산전자상가, 구로 중국동포 마을, 충무로 인쇄골목 등 4곳을 현장 취재한 결과 중소기업과 서민들은 “환율이 이렇게 무서울 줄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엔화 환율 등으로 용산전자상가에서는 한국인 손님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외국인 고객들만 북적였다. 구로 디지털단지에서는 임금을 체불하는 업체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충무로인쇄골목은 문을 닫는 업체들이 속출했다. 구로구 중국동포들은 국내에서 같은 월급을 받아 중국에 보내면 절반수준이라면서 한숨을 내쉬었고, 환차익을 보기 위해 중국에서 국내로 역송금하는 사례도 빚어지고 있다. 이경주 장형우기자 kdlrudwn@seoul.co.kr
  • ‘우리들의 이웃’ 작가 이외수를 만나다

    ‘우리들의 이웃’ 작가 이외수를 만나다

    작가 이외수가 라디오 DJ로 변신한다.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가 이외수가 매주 청취자들과 세상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옆집 아저씨 같은 편안한 외모와 정곡을 찌르는 감성 언어로 10대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작가 이외수를 늦은 저녁 여의도에 위치한 한 식당에서 만났다. # 우리들의 이웃 작가 이외수를 만나다 외부인들도 자주 드나들지 않는 강원도 산골 화천의 감성마을에 사는 이외수가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이외수에게는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인 만큼 하루 종일 빽빽한 스케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몇 차례의 스케줄을 소화한 그가 결국 옆에 있던 부인 전영자 씨에게 불평섞인 투정을 토로했다. “오늘 스케줄이 라디오 관련 사진 촬영과 인터뷰, 강연, ‘화제집중’, ‘2580’ 등 네 군데가 넘어요. 이렇게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수입이 다 부인에게 돌아갈 뿐 제게는 한 푼도 남지 않으니 이게 노예계약이 아니고 뭡니까?(웃음)” # 작가 이외수, DJ가 되다 이외수는 오는 13일부터 MBC 라디오 표준FM(95.9㎒)에서 ‘이외수의 언중유쾌’의 진행을 맡았다. 최근 MBC 인기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무릎팍도사’,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등을 통해 몇몇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췄지만, 지금처럼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건 처음이다. 그렇기에 작가 이외수에게도 라디오 DJ 도전은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세대간의 소통이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인터넷 악플도 문제가 되고 있는 이때 어른들이 먼저 나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과 함께 나누다 보면 분명 개선의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실제 이외수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젊은 이들과 소통하는 걸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때론 10대들마저 놀라게 할 정도의 인터넷 용어를 사용하기 까지 한다. 또한 그는 온라인을 제외하고도 강원도 일대 부대의 관심사병들에게 직접 강연을 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더듬이가 잘라나간 곤충들처럼 자신의 인생 목표에 대해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학창 시절엔 대학을 목표로 했다면, 그 이후로는 취업, 월급 인상 등 만을 생각하죠. 그런데 그게 과연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들은 자신을 조금 더 혹독하게 키워야 할 필요가 있죠.”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 그것이 바로 이외수식 감성의 요체다. 그는 자신만의 감성으로 청취자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초기 제 작품 등을 보면 주인공들이 좌절을 겪다 결국 자살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어느 날 제가 독자에게 자살, 절망을 가르칠 수 밖에 없는 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이후 8년 동안 글을 쓰지 않았고, 그 후부터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죠.” 작가 이외수가 라디오 DJ를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이들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지켜보는 것은 사실이다. 아직 방송 출연에 익숙하지 않은 그가 일주일에 5번 꾸준하게 청취자들과 만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외수는 이 모든 걱정을 한번에 날려 보낼 준비를 마쳤다. “작가라면 독자에게 구원을 제시하고 진정한 행복을 모색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또한 실제적인 행복, 구원 등을 독자에게 전해 줄 때가 왔다고 생각해요. 글 뿐만 아니라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그것을 직접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제게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사진제공=MBC 서울신문NTN 서미연 기자 miyoun@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오른 국정감사] 기강해이 공직사회 2題

    오른 국정감사] 기강해이 공직사회 2題

    ■ 행동강령 위반 공무원 4000명 육박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은 6일 국민권익위원회가 제출한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자 적발·처리 현황’ 자료를 근거로 지난 2003년 제정된 공무원 행동강령을 위반, 적발·처벌된 공무원이 3928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위반 유형별로는 ▲금품·향응 2584건(65.8%) ▲예산의 목적 외 사용 671명(17.1%) ▲이권 개입 및 청탁·알선 168명(4.3%) ▲공용물 사적사용 144명(3.7%) 등의 순으로 나타나 공직자들의 기강 해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전공노 간부 10명 근무지 무단이탈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6일 행안부가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근거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손영태 위원장을 비롯한 간부 10명이 휴직 등 절차를 밟지 않고 근무지를 이탈해 서울 영등포구 노조사옥 등지에서 지내며 노조 활동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신 의원측은 공무원노조법상 노조 전임자는 휴직·무급 상태에서 활동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전공노 간부들은 매달 월급을 받았으며, 이들 외에도 휴직하지 않고 사실상 노조 전임활동을 한 공무원이 556명으로 추정됐다고 주장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김문 기자가 만난 사람] ‘바람의 나라’ 만화가 김진

    [김문 기자가 만난 사람] ‘바람의 나라’ 만화가 김진

    어느날이었다. 무심코 ‘삼국사기’를 거꾸로 읽었다. 흥미진진, 재미에 푹 빠졌다. 마법에 홀린 듯 점점 깊이 들어갔다. 그러자 어떤 목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저절로 따라갔다. 희뿌연 안개 속에 덩더쿵 굿판이 벌어진다. 누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리왕, 무휼, 해명, 호동, 세류, 연, 가희, 여진…. 그러더니 금빛 찬란한 왕관을 쓴 사내가 눈앞에 등장했다. 바로 ‘대무신왕’이었다. 위풍당당, 그 모습 뒤로 북소리와 함께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소리,‘바람의 나라∼바람의 나라∼’였다. ●‘바람의 나라´ 17년… 100만부 이상 팔려 2000년 세월을 뛰어넘어 한 작가와 ‘대무신왕’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1991년 ‘대무신왕’이 만화 ‘바람의 나라’로 현세에 다시 나타났던 것. 이후 제목에 걸맞듯이 ‘바람’의 위력이 결코 멈추지 않는다.17년째 메가톤급 태풍이 계속 불고 있다. 만화 ‘바람의 나라’는 고구려 건국 초기의 역사를 다룬 판타지 물이다. 지금까지 25권째 발간되면서 100만부 이상이나 팔릴 정도로 두꺼운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다.‘바람의 나라’는 온라인게임의 세계에서 13년째 지존을 지키면서 무려 600여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또한 뮤지컬로도 여러 차례 공연됐으며 이제는 안방극장(KBS-2TV, 송일국 주연)으로 파고들어 시청자들로부터 인기를 사로잡고 있다. 과연 언제까지 ‘거센 바람’이 계속 불어댈까. 여류 만화가 김진(48)씨.‘삼국사기´를 읽다가 대무신왕에 푹 빠져 ‘바람의 나라’라는 걸작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지난달 30일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열린 ‘2008 대한민국 만화애니메이션 캐릭터 대상’에서 ‘대한민국 만화대상’을 받아 그 위상을 공식 입증하기도 했다. 그는 대학에서 관광학을 전공하다 그만두고 1983년 한국만화가협회의 김형배씨 추천으로 ‘여고시대’ 잡지에 ‘바다로 간 새’로 데뷔했다. 이후 25년동안 숱한 작품을 쏟아냈다.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이 대체로 심각하고, 난해하며, 다소 어둡다고 평가한다. 서울 강남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올해로 데뷔 25년이 됐습니다. “23세때 시작했으니 만화가로는 늦은 편이네요. 우리나라 만화시장이 불황을 겪을 때였지요. 잡지라고 해봐야 ‘여학생’‘여고시대’등이 있었으나 그나마 꼭지만화였지요.” ▶요즘 TV드라마 ‘바람의 나라’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원저작자로 어떻게 보시는지요. “원작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입니다. 드라마 작가나 연출자 등의 영역이 어느정도 있겠지만 역사를 어긋나게 하지 말고, 또 역사를 의심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삼국사기를 토대로 작품을 쓰는 데 무척 오래 걸렸고 고생도 많이 했어요. 드라마를 보면서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삼국사기´ 읽다 대무신왕에 푹 빠져 ▶‘바람의 나라’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17년 전이지요, 육영재단에서 발간하는 ‘댕기’라는 순정만화잡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역사물을 써달라는 청탁이 왔어요. 의외였지요. 어쨌든 그때부터 무엇을 쓸까 고민하면서 자료를 뒤졌습니다. 어느날인가 ‘삼국사기’가 손에 잡히더라구요. 아무 생각없이 거꾸로 읽었습니다. 아주 재미있대요. 고구려 건국 초기역사에 이르더니 ‘호동의 아빠’가 저를 불렀습니다.(웃음)” 그는 작품을 구상하거나 집필을 할 때 가끔 주인공을 불러낸다고 했다. 작품속의 주인공 또한 작가를 부르는 경우도 있단다. 그럴 땐 서로 만나 질펀하게 굿을 하면서 무언의 교감을 갖는다고 했다. 그는 “남(주인공)의 인생이라도 작가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역사속의)그 사람이 했던 일과 인생을 틀리게 해서도 안 되고 역사 또한 망가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해)어쩌면 역사속의 인물과 만나 굿판을 벌이는 것이 업보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아울러 모든 역사를 작품으로 다룰 수는 없으며 서로 인연이 있어야 된다고 부연했다. ▶‘바람의 나라’가 뮤지컬, 온라인게임, 드라마 등 이른바 원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use)로 계속 인기를 끄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실패도 많이 했어요. 하고자 하는 쪽에서 의뢰가 오면 조심해서 (원작을)보내줍니다. 그러고 나서 종종 회의도 느낍니다. 다른 장르로 접목을 시킨다는 것, 다시 말해 작품에도 운명이 있거든요.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독자들이 다치게 되는 경우가 있지요. 그러면 당연히 원작자가 손상을 입게 됩니다. 작품이 (원작자)손에서 떠나고 나면 접근금지가 되거든요.” 앞으로 국내 문화콘테츠 산업에서 원소스멀티유스가 발전해나가려면 원작의 큰 줄기를 결코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재창조와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란다. ▶‘바람의 나라’는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됐나요. “우리는 ‘삼국사기’가 있어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해요.‘바람의 나라’를 집필하면서 15년 넘게 ‘삼국사기’를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고대사화 등 방계자료들을 많이 모았지요. 나중에는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도 인정하게 되더군요. 아무튼 ‘삼국사기’를 축으로 하면서 다른 자료를 추가했고 자신이 없는 것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는데 혹 균형이 안맞을까 고민하다가 다시 교정하고 그랬지요. 현재 27권째 연재 중이고 앞으로 30권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세 부분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돈이 필요할 때마다 우선 신용카드로 쓰고 나중에 통장에서 돈을 꺼내 결제하는 월급쟁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대학진학 때 관광학과를 택한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됐는지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친구 따라서 입학원서를 쓴 것밖에 없어요. 원래부터 글을 쓰고 만화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유리왕 소홀히 다룬 부분 보강해 소설로 ▶소설도 썼는데요. “만화에서 유리왕에 대해 소홀히 다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때마침 청탁이 왔고 유리왕도 ‘나를 불러내 굿을 한번 하라.’고 하더군요.(웃음), 유리왕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소설을 썼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살 때 아버지가 ‘새소년’ 창간호를 사다줘 처음 만화를 접했다. 양쪽 페이지에 걸쳐 있는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과 킹콩이 대치하는 그림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하는 놀라움었다. 이후 예쁜 그림이 그려진 동화책과 만화책을 많이 접했다. 그러면서 그림과 글로 표현하려는 욕구가 저절로 생겨났다. 초등학교때는 물론이고 중·고교 시절에도 그림과 글짓기 백일장 등에 단골로 출전, 전국대회에서 입상을 했다.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에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 신춘문예에 공모했으나 낙방했다. 결국 글과 그림, 천성적인 끼를 택했고 오늘날 300만 독자를 거느린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그는 독신으로 살고 있다. 이에 대해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고 또 관심도 없다.”고 했다. 하루종일 밤낮 구분없이 작업실에 파묻혀 사는 게 행복이라는 설명도 곁들인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김진은 누구 ▲1960년 서울 출생 ▲83년 대학 관광학 전공 그만두고 ‘여고시대’ 잡지에 ‘바다로 간 새’로 데뷔 ▲90년 스포츠조선 ‘신들의 황혼’ 연재 ▲91년 ‘바람의 나라’ 첫 출간, 현재 25권째 ▲95년 명지대 사회교육원 만화 창작과 지도교수, 일본 동아시아 만화아카데미상 대상 수상 ▲97년 여성만화인협의회 회장,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 저작상 수상 ▲99년 문화부 주최 ‘오늘의 우리 만화상’ 수상 ▲2008년 ‘바람의 나라’ 문화부 선정 ‘대한민국 만화대상’ 수상 # 주요 작품 별의 초상,1815,The Song, 짝꿍,SOS! I LOVE YOU,LOVE MAKER, 숲의 이름,HERE, 꿈속의 기사,HEY! 튜즈데이,3+1=?, 어떤 새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남쪽으로 날아간다, 바람의 나라, 푸른 포에닉스, 조그맣고 조그맣고 조그마한 사랑 이야기, 레모네이드처럼, 노랑나비같이, 신들의 황혼,FRESH, 은빛 아프락사스 등.
  • 그 한 사람을 위한 요리

    그 한 사람을 위한 요리

    비엔나에 식당을 갓 개업한 여자가 있었다. 파리만 날리던 늦은 오후, 한 남자가 들어와 국수를 시켰다. 주방장이 만든 국수를 내갔는데 손님은 몇 젓가락 뜨고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맛없는 음식을 내놓고 돈을 받자니 괴로웠지만 임대료에 직원들 월급 주려면 당장 몇 푼이 급했다. 손님에게 죄송했고, 그 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이 너무 비참했다. 결국 주방장을 내보내고 자신이 직접 주방으로 들어갔다. 두 달간 하루 열 시간씩 회를 떴고, 모르는 재료가 있으면 그 맛이 기억날 때까지 먹고 또 먹었다. 몇 년 뒤 그는 요리 평론가들에게 격찬을 받고,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다섯 개 방송사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비엔나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사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자신의 가게 앞을 지나는, 과거 맛없는 국수를 대접했던 손님과 마주치게 되었다. 당연히 그 손님은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그 손님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당신을 우리 식당으로 초대할 테니 와서 맛있게 드셔주세요.” 이 요리사가 바로 비엔나의 퓨전 한식 레스토랑 ‘킴 코흐트’의 대표 김소희 씨(43세)다. 그가 지난 8월 서울푸드페스티벌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슬퍼도 먹고 기뻐도 먹는다 “내 입맛이 좀 깐드로와.” 부산 앞바다에서 방금 건져 올린 것 같은 싱싱한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비엔나에서 같이 온 직원과 나누던 독일어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의 고향은 부산. 남편도 없이 혼자 자갈치 시장에서 식당을 하며 외동딸을 키웠던 소희 씨의 어머니는 장은 물론이고 김치에 들어가는 젓국까지 모두 제 손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었다. 식구라고는 소희 씨밖에 없는데도, 어머니는 배추김치 하나를 담가도 속재료와 양념을 달리해서 다섯 가지로 만드셨단다. 그러니 사먹는 음식이 입에 맞을 리 있겠는가. 그것이 식당을 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란다. 소희 씨의 직업은 원래 디자이너였다. 1980년대 초 어수선한 시국에 딸이 엇나갈까 걱정하셨던 어머니는 고등학교 2학년인 소희 씨를 비엔나로 유학 보냈다. 디자인 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고 의상 디자이너로 7년간 활동했지만 디자이너들의 자유분방한 생활 방식이 그와는 잘 맞지 않았다. 그만두고 무엇을 할까 고민했을 때 떠오른 것이 어머니의 이 말씀이었다. “사람들은 슬퍼도 먹고 기뻐도 먹는다.” 밥장사를 하면 그래도 밥은 먹고 살겠지 하는 생각으로 식당을 열었다. “엄마, 있잖아. 그걸 넣어서 이렇게 만드니까 손님들이 참 좋아하더라” 자랑하면 “아이구, 잘했네. 내 손이 내 딸이다” 하셨던 어머니는 그가 성공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암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지 벌써 8년인데 그는 아직도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부터 쏟아진다. “그 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요. 내 손이 내 딸이네 하는 소리.” 유독 밥이 맛있게 잘된 날이면 가게 한켠에 밥 한 그릇 떠서 올려놓는다. “엄마, 맛있제?” 하고. 킴은 사랑으로 요리한다 킴 코흐트, 말 그대로 ‘킴이 요리한다’는 뜻이다. 3개월에 한 번씩만 예약을 받는 이 식당은, 늘 예약이 꽉 차 있어 오스트리아 수상도 세 달을 기다려야 식사를 할 수 있다. 육식을 위주로 하는 오스트리아에서 그는 생선과 채소를 주재료로 한식의 조리법과 한방재료를 사용해 건강식을 만든다. 모든 요리는 그가 직접 한다. 말이 쉽지, 어림잡아 하루에 300그릇 이상의 양이다. 그도 사람인지라 지칠 때가 있지만, 일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신이 올라 발에 불나도록 주방을 뛰어다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단다. 그렇다고 요리를 맛있게 차려내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손님은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될 것이 분명하기에 두세 코스 정도는 쉴 것을 권한다. 음식을 파는 것보다 음식을 먹는 사람이 그에게는 더 중하기 때문이다. 킴 코흐트를 유명하게 만든, 참치와 한국 배로 속을 채운 돼지비계 요리도 한 사람을 위한 요리로 시작되었다. 어느 날 단골손님인 의사 페터가 수술이 잘 안 되었다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 식당을 찾았다. 그의 원기를 북돋아주고 속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음식이 뭘까 고민하다 즉석에서 만든 것이 입소문을 타서 킴 코흐트의 대표 메뉴가 되었다. 이렇듯 킴 코흐트의 메뉴판에는 단 한 사람을 위해 만든 요리가 적지 않다. 결혼을 앞두고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오이를 썰어서 넣은 비빔국수에 회를 얹어서 준다. 국수 면발처럼 길게, 새콤 달콤 매콤하게 살라는 뜻이다. 그는 디자인을 하듯 맛을 그린다. 새로운 메뉴를 구상할 때도 빽빽하게 조리법을 쓰는 것이 아니라 완성된 음식의 모습을 종이에 그린다. 그의 요리는 기존 조리법에 구애받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재료를 사용하지만, 예상치 못한 조합으로 새로운 맛을 낸다. 그 맛에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는다. “손님들이 그라는데 내 음식은 먹는 순간 입이 즐거운 맛이 아니라, 오래 음미하면서 먹는 맛이라 하대.” 취재, 글 이미현 기자 ┃ 사진 한영희 김소희 씨 프로필 1965년 생. 1996년 첫 음식점 오픈. 2001년 4월 ‘킴 코흐트’ 오픈. 2003년 국제적인 권위의 요리평가 단체인 알 라 카르테로부터 외국요리 부문 최고상 수상. 2004년 구어만드 월드쿡북어워드에서 요리 부문 오스카상 수상, 최근 출간한 요리책이 2007년‘세계 최고의 아시아 요리책’으로 선정.
  • [데스크시각] 미국 금융위기에서 배울 것/손성진 경제부장

    [데스크시각] 미국 금융위기에서 배울 것/손성진 경제부장

    왜 우리가 ‘뚱뚱한 고양이(fat cat)’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나. 미국 국민들이 화났다.fat cat은 미국의 특권층 부자, 즉 월가의 CEO들이다. 세계를 혼돈에 빠뜨린 월가의 CEO들은 이미 배를 불릴 대로 불렸다.‘회사는 망해도 사장은 망하지 않는다.’ 이 한국식 격언이 미국에서도 통하고 있다. 천문학적 공적자금이 투입될 AIG의 전 CEO 마틴 설리번은 560억원의 퇴직금을 챙겨갔다. 그는 회사에 130억달러의 손실을 입혀서 지난 6월 경질됐다. 팔리거나 망한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를 포함한 월가 5대 투자은행 CEO들의 연봉은 무려 1400억원이다. 직원도 4억 2000만원, 어지간한 기업의 사장 월급보다 많다. 미국민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도덕적 해이가 우리라고 다르겠는가. 공적자금을 받은 금융기관들은 도리어 허리띠를 풀고 세금이나 다름없는 돈으로 샴페인을 터뜨려 왔다. 스톡옵션을 남발했고 임금을 몇백%나 올렸다. 거액의 명퇴금을 받거나 고객들이 맡긴 돈을 멋대로 이자도 내지 않고 갖다 썼다. 금융은 경제에서 혈액과 같다. 금융가들은 그 절대적인 존재가치를 악용해 왔다. 대부업체들은 살인적인 이자로 궁박한 서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들의 높은 연봉은 서민들의 고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주택담보대출자들은 한달에 백만원이 넘는 돈을 이자로 내며 고통스러워하는데 은행원들은 그 이자로 떵떵거리고 있다. 담보대고 무리하게 돈 빌리는 게 대출자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금융기관들이 부추긴 측면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온 세계에 뿌려놓은 갖은 금융상품들은 결과적으로 개인투자자들의 가슴에 멍이 들게 만들었다. 손실률이 마이너스 50%에 육박하도록 펀드를 엉망으로 해놓고서도 증권맨들은 고객들 돈으로 잔치를 벌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상투’라고 말하는데도 수수료를 벌어야 하는 그들의 마구잡이 투자는 멈추지 않았다. 제 돈이었으면 그랬을까 하고 반문한다면 우스울까. 몇몇의 모럴해저드가 돌이키지 못할 재난을 부를 수 있다는 점 말고도 이번 위기는 소중한 교훈들을 남겼다. 첫째는 주택시장의 거품이 사태를 촉발한 것처럼 우리의 현실도 유의해서 봐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거미줄보다 복잡한 금융상품 체제의 문제점을 분석해 봐야 한다. 셋째는 허술한 감독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맘에 안 든다고 내칠 수도 없는 게 금융이다. 금융의 붕괴는 기업의 도산을 부르고 대대적인 실업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국가의 존립을 위협한다. 미국 정부는 그래서 1년 국방예산보다 많은 7000억달러를 쏟아부어 월가를 회생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도드 미국 상원 금융위원장의 말처럼 ‘국민들의 노후(복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나 미국이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미국처럼 쏟아부은 우리의 공적자금은 물경 168조원이다. 아직도 절반 가까이는 되찾지 못했다.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대공황에 버금가는 이번 월가의 쇼크는 언젠가는 진정된다. 하지만 7000억달러의 공적자금이 남길 후유증에 미국민들은 오래도록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장래를 불안해하는 미국민들이 ‘악마는 월가에서 일한다.’며 분노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분명 금융이 악마는 아니다. 미래에도 금융의 역할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피가 잘 돌면 신체에 생기가 돌듯이 금융도 선순환해야 한다. 하지만 탐욕이 잘못된 시스템과 결합할 때 나타날 대재앙은 이번이 끝이라고 보장하지 못한다. 위기의 교훈을 흘려 넘긴다면 금융이 악마로 돌변하지 않는다고 누구라도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다. 손성진 경제부장 sonsj@seoul.co.kr
  • [Best CEO 열전] (6) 박찬법 금호아시아나그룹 항공부문 부회장

    [Best CEO 열전] (6) 박찬법 금호아시아나그룹 항공부문 부회장

    “부드러우면서도 원칙에 반하는 일에는 털끝만치도 타협할 줄 모르는 합리적 카리스마가 넘치는 최고경영자(CEO)” 박찬법 금호아시아나그룹 항공부문 부회장에 대한 재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박 부회장은 국내 제2민항인 아시아나항공 출범 2년 뒤인 1990년 아시아나에 ‘탑승’했다. 영업담당 임원으로 시작, 글로벌항공사 CEO에 오른 항공 전문 경영인이다. 그는 화학·건설·항공부문으로 구성된 그룹 주력사업의 한 축을 떠받치고 있다. 재계에서는 언변이 뛰어난 CEO로도 잘 알려졌다. 그와 말문을 트면 서너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최근 집무실에서 시작한 인터뷰도 점심식사, 교육장까지 동행하면서 4시간동안 이어졌다. ●영업으로 다진 항공 전문 CEO 세간에서 궁금해하는 것부터 물었다. 오너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는 박 부회장은 “난 (전남)영광 촌놈이다. 선대 회장이나 지금 회장과는 친인척 관계나 학연이 전혀 닿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1969년 ㈜금호에 입사해 아프리카·중동·미국·홍콩 등 해외무역 영업 현장을 주로 누볐다. 아시아나항공에서도 10년 이상 영업 최일선을 챙겼다. 직장생활의 절반은 해외영업 현장에서 보냈다. 그래서 그룹에서 ‘최고의 영업통’으로 통한다. 월급쟁이로서 성공한 장수 CEO의 비결을 묻자,“성공 CEO로 평가받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윗사람이 시키는 일, 조직이 나에게 부여한 일 하기에 바빴을 뿐”이라고 말한다.‘시키는 일만 해서 성공할 수 있느냐.’는 반문에,“자신에게 주어진 ‘듀티(duty·의무)’를 다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며 “조직에서 주어진 의무를 다하는 것이 샐러리맨으로 성공하는 지름길”이라고 조언한다.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로는 2003년 세계 최대 항공사 동맹체인 ‘스타 얼라이언스’ 회원사 가입을 꼽았다. 스타 얼라이언스 가입으로 짧은 기간에 국제선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글로벌 항공사로 비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쟁력에 대해서는 “전 세계 내로라하는 항공편을 자주 이용해봤지만 서비스나 안전성에서 실력을 견줄 만한 항공사는 두세 곳에 불과하다.”며 자신감을 비쳤다. ●외환위기 구조조정 없이 지나 신생 항공사여서 힘들었던 시련도 많았다. 설립 초기 경쟁 항공사의 견제, 외환위기, 미국 9·11테러, 최근의 고유가 파동 등 숱한 어려움을 겪었고 그 때마다 박 부회장의 결단이 필요했다. 박 부회장은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는 글로벌 항공사로 진입하기 위해 순항(順航)비행 고도에 막 올라설 단계였다.”며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내지 못했더라면 글로벌 항공 비행을 접어야 했을지도 모른다.”고 회고했다. 당시 부사장이었던 그는 박삼구 사장(현 그룹 회장)과 함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한 명도 내보내지 않았다. 고통을 함께 나눈 8000여명 임직원과 변치않고 사랑해준 고객이 오늘날 아시아나항공 발전 원동력이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외환위기 때 겪은 혹독한 시련은 이후 웬만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약(藥)이 됐다. 최근 4년간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항공사에 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이란 상은 휩쓸었다. 외환위기를 거울삼아 항공유와 외화에 대해 헤지(Hedge·위험회피)를 해뒀던 것이 최근 고유가·고환율 위기를 견뎌낸 버팀목이 됐다. 그의 경영 수완은 사장으로 재직하던 2005년 조종사 파업 때 더욱 빛났다. 여행객이 밀리는 7∼8월 두달 동안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장기간 조종사 파업이 발생했다. 회사는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국민 일상생활과 국가 경제에도 불편과 피해를 줬다. 무엇보다 항공안전을 책임질 조종사와 항공사간 앙금이 쌓이는 것이 걱정됐다. 조기해결을 위해 타협을 시도하라는 안팎의 압력도 거세졌다. 하지만 박 부회장은 “노조가 요구하는 임금·복리후생·근무여건 개선 등은 사측이 부담을 지더라도 타협할 수 있지만 인사·경영참여 등 경영권 본질을 침해하는 요구는 받아줄 수 없다.”는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그의 합리적인 설득 끝에 조종사들은 조종간을 다시 잡았다. 재계는 당시 박 부회장의 합리적인 카리스마가 노조를 감동시켰다고 평가했다. 노사관계에 대한 소신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인재가 재산, 사원 교육 신봉자 그는 강의하는 CEO로 통한다. 신입사원부터 임원 교육까지 빼놓지 않는다. 특히 열정을 퍼붓는 강의는 항공 부문 모든 직급 3년차 대상 특강이다. 지금까지 85차례,4000여명이 그의 강의를 들었다. 인터뷰 당일 실시한 강의는 경력직으로 들어온 승무원을 대상으로 했다. 주제는 ‘인생의 변곡점(Turnning Point)’으로 새로운 직장을 찾은 직원들에게 딱 어울리는 내용이었다. 그는 “젊은이들은 전문화되고 다양한 재능은 있지만 용기·불굴의 의지는 부족한 것 같다.”며 “변치 않는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충고했다. 글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국세 부족분 서민 전가… 촛불 들고 싶다”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율 인상 방침을 담은 기획재정부의 ‘2009년 국세 세입예산안’에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들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종합부동산세는 완화하면서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의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는 오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부유세’였던 종부세의 과세기준금액이 공시가격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 조정되고, 세율도 낮아지면 개인주택 종부세 납부 대상자는 지난해 37만 9000가구에서 15만 6000가구로 59% 감소한다. 공시가격 10억원 주택의 종부세는 지난해 260만원에서 20만원으로 92.3%나 줄어든다. ●“유리지갑 털어 부동산 부자에 바치나” 하지만 봉급생활자의 근로소득세는 4.4%(평균 9만원) 오르고, 자영업자들의 종합소득세도 5.6%(평균 13만원) 오른다. 이에 대해 봉급생활자들은 고액부동산 소유자들에게 종부세 완화라는 선물을 주면서 생긴 세수 부족분을 자신들에게 충당할 것을 요구하는 격이라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연봉 4000만원에 170여만원의 근소세를 납부했던 직장인 함모(30)씨는 “조세 원천징수가 손쉬운 월급쟁이들의 ‘유리지갑’을 털어 부동산 부자들에게 바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면서 “납세거부 촛불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윤성의(28)씨는 “부동산 관련 세제를 완화하면 부동산 시장의 과열이 불보듯 뻔하다.”면서 “임금도 오르지 않아 집 장만의 꿈은 이미 미뤘지만 근소세까지 올리는 것은 서민들 죽으라는 말”이라고 말했다. 충무로에서 출판인쇄업을 하는 김모(42)씨는 “일하는 사람들이 세금을 덜 내고 불로소득자들이 세금을 더 내는 것이 옳지 않냐.”면서 “차라리 사업을 정리하고 부동산 시장에 뛰어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kuru’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은 “감세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9억원에 가까운 집에 살면서 연봉은 1억원 이상이 돼야 한다.”며 정부의 감세정책을 꼬집었다. ●시민단체 “소득재분배 등 역행” 시민단체는 종부세 완화와 종합·근로소득세 인상에 대해 소득과 능력이 있는 납세자가 세금을 많이 내는 응능부담원칙에 어긋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 김남근 변호사는 “종부세 완화로 인해 향후 3년간 2조 2000억원이 줄어들 교부세를 결국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들이 떠안는 격”이라면서 “납세자의 부담능력에 따라 세금을 걷어야 한다는 복지국가의 조세정의원칙에 역행하는 것으로 대책 없는 감세에 서민들의 짐만 무겁게 됐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윤순철 시민감시국장은 “부자 감세 부분을 서민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는 감세의 부작용을 드러냈다.”면서 “정치구호에나 쓸 수 있는 경제성장률 전망을 근거로 간접세수 증가를 가늠하는 것은 소득재분배와 양극화 완화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공무원 연금개선안에 공무원·일반인 입장차

    ‘많이 내고 적게 돌려받는 것’을 골자로 한 정부의 공무원 연금제도 개선안에 대해 공무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와 공무원·시민 단체,학계 관계자들이 참여한 ‘공무원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연금 보험료를 현재보다 약 27% 늘리는 대신 수급액(퇴직후 받는 돈)은 최고 25%까지 줄이는 내용의 ‘공무원연금제도 개선 정책건의안’을 마련,24일 정부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은 23일 성명을 발표하고 “공무원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 공무원연금 개악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며 반발했다. 전공노 측은 “공무원 연금 재정을 부실하게 운영해 온 정부가 재정 악화의 책임을 공무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정부가 공무원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하기로 결정한 이후,공무원 연금을 받아 들일 수 없는 수준에서 이미 내부적으로 결정해 놓고 무조건 수용하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공무원 노동자들의 과거,현재 및 미래를 빼앗고,공무원노조를 무시하는 행태”라고 덧붙였다. 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구조조정과 각종 퇴출제로 공무원의 사기가 저하됐을 뿐 아니라 부족한 보수인상으로 공무원 노동자들은 희생만을 강요당해 왔다.”며 “노후생활을 파탄내는 공무원 연금 개악을 공무원 노조는 단호히 거부하고 생존권 사수 차원에서 강력하게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이버상에서도 반발 여론은 거셌다.아이디 ‘연금’은 공무원노조 자유게시판을 통해 “국민의 노후생활은 국가가 책임지는게 당연하다.지금까지 개처럼 부려먹은 공무원들의 노후를 내팽게치겠다는데 노동조합이 동의를 해 준다는게 말이됩니까?”라며 강력한 투쟁을 촉구했다. 또 아이디 ‘c8’은 연금을 지급받기 시작하는 연령을 신규 공무원부터 현재 60세에서 65세로 늦추는 방안에 대해 “교사는 선생님이니 2년간만 손가락 빨면 되고,공무원은 종넘이니 6년간을 손가락 빨아야 되는구나! 언제는 절대로 변경이 없다고 공문에 교육에 사기치더니… 사기친 넘들과 그동안 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론도 없이 무조건 나팔수들을 동원하여 희생만 강요하는 정부의 사기극에 치를 떨고 싶다.”며 분노했다. 하지만 일반 네티즌들은 공무원 연금 개혁안에 대해 국민연금과 통합하라는 의견을 제시하는 등 공무원과는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아이디 ‘a9030114’은 “공무원들 놀고먹는데 퇴직해서 놀때도 국민들이 책임져야 하나? 모든 국민은 공평하니 국민연금으로 통합해라.”고 주장했다. 또 아이디 ‘waxdown’ 역시 “지금까지 낸 돈 안 받을테니 앞으로는 국민연금이라는 세금을 떼가지 말았으면 합니다.대다수의 국민이 바보도 아닌데….버는 족족 다 써버리고 노후대책 안세울까봐 강제로 저축(?)시키는건가요?월급 명세서 볼때마다 속터집니다.”라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현찰 20억 정치권으로?

    현찰 20억 정치권으로?

    KT의 자회사 KTF의 납품비리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윤갑근)는 22일 조영주 KTF 사장을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했다. 조 사장은 이날 사임했다. 서울중앙지법 홍승면 영장전담판사는 영장실질심사에서 “사안의 중대함을 볼 때 범죄의 소명이 있고, 증거 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조 사장은 중계기 납품업체 B사를 실소유하고 있는 전모(57·구속)씨에게 납품권을 주는 대가로 20억여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조 사장은 전씨가 마련해준 차명 계좌와 친인척 명의로 개설한 차명계좌 여러 개를 통해 수십 차례에 걸쳐 송금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씨에게 직접 수표를 전달받기도 했다. 조 사장은 부인 이모(53)씨와 함께 계좌로 받은 돈 대부분을 현금으로 인출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비자금의 용처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조 사장은 리베이트 수수 사실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돈의 용처에 대해서는 “생활이 어려운 친인척들이 사용했다.”고 말하는 등 명확하게 진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 사장이 마케팅비 등을 허위로 부풀려 거액을 빼돌린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져 비자금 규모는 늘어날 전망이다. 조 사장에게 리베이트를 건넨 전씨 역시 하청업체에 물품 대금 명목으로 돈을 송금했다가 차명계좌를 통해 돌려받는 등의 방법으로 61억여원을 빼돌렸다. 검찰은 조 사장이 받은 돈과 전씨가 조성한 비자금 등이 정치권 인사에게 흘러갔는지를 수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각계에서 여러 의혹이 나오고 있는 만큼 수사 단서가 있다면 철저히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씨가 조 사장을 통해 전 청와대 수석 L씨의 부탁을 받고 L씨의 지인을 B사에 취직시켜줬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지인은 B사에 직함만 올려놓고 수백만∼수천만원씩 월급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베리타스 에듀PSAT硏과 함께하는 LEET 실전강좌] 9.자료의 분석

    [베리타스 에듀PSAT硏과 함께하는 LEET 실전강좌] 9.자료의 분석

    ■ 일반자료의 분석 일반자료의 분석은 내용상 일반자료의 이해와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반자료의 이해가 내용이나 자료에 표현돼 있지 않은 부분을 도출, 파악하는 것이라면 일반자료의 분석은 이해한 후 용어의 정의나 제시된 분석방법을 통해 수리적 결과까지 도출해 내는 것까지를 말한다. 이해의 다소 진보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는 주로 새로운 용어나 지수에 대한 정의가 주어지게 되므로, 우선 용어나 지수의 정의를 이해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문제해결에 적용시키는 것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LEET 실전강좌] 일반 자료의 분석 이론 및 실전문제 바로가기 <예제 1> A,B,C,D가 퇴직할 때 받게 되는 연금액수는 근무연수와 최종 평균보수월액에 의해 결정된다. 아래에 제시된 연금액수 산출방법을 따를 때 (보기)의 예상 중 옳은 것으로 묶은 것은? (다만, 연금은 본인에게만 지급되며 물가는 변동이 없다고 가정한다.) 연금액수 산출방법에는 월별연금 지급방식과 일시불연금 지급방식이 있다. (1) 월별연금지급액 = 최종평균보수월액 × (0.5 + 0.02 × (근무연수 - 20)) (다만, 월별연금지급액은 최종평균보수월액의 80%를 초과할 수 없다.) (2) 일시불연금지급액 = (최종평균보수월액 × 근무연수 × 2)+ (최종평균보수월액 × (근무연수 - 5) × 0.1) ●보기 ㄱ.A가 100개월밖에 연금을 받을 수 없다면 월별연금보다 일시불연금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ㄴ.A의 일시불연금지급액은 D의 일시불연금지급액보다 많을 것이다. ㄷ.B가 C보다 월별연금지급액을 40만원 더 받게 될 것이다. ㄹ.D가 월급에 변화없이 10년을 더 근무한다면 D의 일시불연금지급액은 현재 받을 수 있는 일시불연금지급액의 두 배가 넘을 것이다. (1) ㄱ,ㄴ (2) ㄴ,ㄹ (3) ㄷ,ㄹ (4) ㄱ,ㄴ,ㄹ (5) ㄴ,ㄷ,ㄹ <해설> ☞ 조건의 분석 ㄱ.A의 100개월간 월별연금지급액:50만×100개월 = 5000만원,A의 일시불연금:4000만원+150만원=4150만원, 따라서 월별연금급여가 더 유리하므로 틀리다. ㄴ.D의 일시불연금급여액:4000만원+100만원 = 4100만원, 따라서 A의 일시불연금급여액이 더 많다. ㄷ.B:100×(0.5+0.02×15)=80만원,C:100×(0.5+0.02×17)=84만원, 그러나 C의 경우 최종 평균보수액의 80%를 초과할 수 없으므로 80만원이 돼 B와 C의 월별 연금 지급액은 같다. ㄹ.D의 현재 일시불연금급여액은 4100만원이고,10년 후에는 8300만원이므로 두 배가 넘는다고 할 수 있다. 정답:(2) 이승일 에듀PSAT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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