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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급여 574만원 넘으면 세금 더 뗀다

    월급여 574만원 넘으면 세금 더 뗀다

    당장 이번 달부터 월급에서 꼬박꼬박 떼가는 ‘근로소득 원천징수세액’의 기준이 바뀌어 직장인들의 월급통장에 찍히는 실수령액이 달라진다. 지난해 정부가 소득세 최고세율(38%)이 적용되는 과세표준 구간을 3억원 초과에서 1억 5000만원 초과로 낮추고,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소득공제를, 세금감면 폭이 일정한 세액공제로 바꾼 소득세법 개정안이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19일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에 따르면 이런 내용의 2013년 세법개정안이 반영된 ‘2014년 근로소득 간이세액표’가 이달부터 적용된다. 기재부에서 지난달 21일 간이세액표를 개정했지만 기업에서 전산 시스템에 반영하는데 1~2주일가량 걸려 이달 월급부터 적용되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는 간이세액표에 따라 월급에서 소득세를 떼고 나머지 금액을 직원에게 주면 된다. 간이세액표는 직장인이 받는 월급 총액에서 식대, 일직료, 숙직료, 여비 등 비과세소득을 뺀 ‘월급여액’과 ‘부양가족 수’(1~11명)를 기준으로 원천징수세액을 정하고 있다. 새 간이세액표에 따르면 월급여액을 기준으로 1인가구는 568만원 이상, 2인가구는 582만원 이상, 3~4인가구는 574만원 이상이면 매달 세금을 더 떼인다. 4인가구의 경우 월급여액이 574만원 미만이면 지난해와 비교해 원천징수세액이 줄거나 변화가 없다. 다만 월급여액이 600만원이면 3만 90원씩, 700만원이면 6만 150원씩, 800만원이면 7만 2150원씩, 900만원이면 8만 9020원씩, 1000만원이면 10만 8020원씩 매달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반면 월 2000만원을 받는 고액 연봉자는 세 부담이 1~5인가구 기준으로 월 38만~39만원가량 증가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해 연간 총급여액이 7000만원 이하인 중산층에게는 세 부담이 거의 늘어나지 않도록 소득세법을 개정했고 이번 간이세액표도 마찬가지”라면서 “고소득자들도 매달 세금을 더 떼이더라도 내년도 연말정산을 통해 소득공제, 세액공제를 받아야 최종 소득세 납부액이 확정된다”고 밝혔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진경호의 시시콜콜] 문제는 방위비 협정이 아니다

    [진경호의 시시콜콜] 문제는 방위비 협정이 아니다

    3월 임시국회 소집 문제를 놓고 여야의 드잡이가 시작됐다. 당장 24일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원자력방호방재법 처리가 화급한 현안으로 떠올랐으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협정(SMA) 국회 비준도 한시가 급하기는 매한가지다. 이달 안에 국회가 비준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의 한국인 근로자 8500명이 다음 달부터 월급을 받는 데 차질을 빚는다. 물론 못 받지는 않는다. 무엇 하나 제때 처리하는 게 없는게 대한민국 국회임을 훤히 꿰고 있는 주한미군 측이 다른 데 쓸 예산을 끌어다 댈 ‘비상계획’을 세워놓았다고 한다. 과연 굳건한 한·미동맹이라고 박수라도 칠까. 전에도 다른 돈 끌어다 월급 준 적이 있으니 별일 아니라고 넘길까. 예산 전용에 대해 “한국인 근로자와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밝힌 주한미군 측의 외교적 언사에 가려진, 한국 의회를 황당하게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그냥 못 본 척 넘어갈까. 주한미군 눈치 보자는 얘기가 아니다. 따질 건 따지고, 짚을 건 짚어야겠으나 그렇지 못하기에 하는 소리다. “동맹이 맞느냐”는 말이 나올 만큼 치열했던 6개월간의 협상을 마치고 정부가 비준안을 국회에 낸 날은 2월 7일이다. 민주당은 신속히 반응했다. “굴욕협상이고, 퍼주기 협상이다.”(전병헌 원내대표) ‘졸속협상’이란 주장을 능가할 ‘졸속반응’을 이틀 만에 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2월 하순 국회 외교통일위 차원의 공청회가 한 차례 열렸을 뿐 변변한 논의는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 사이 민주당은 미국과의 재협상을 요구하는 ‘방위비 개선 6대 요구안’을 내걸며 장벽을 더 높였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을 캐겠다며 중국 선양의 한국 총영사관으로 달려가는 열의는 있었으나 방위비협정 비준에 대해선 “정부가 답할 차례”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담을 쌓았다. 민주당 소속 심재권·정청래·홍익표 의원이 선양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비준안을 다룰 예정이었던 외통위 법안심사소위도, 2월 국회 처리도 끝내 무산됐다. 그리고 3월, 외통위 여야 의원들은 일제히 ‘의원외교’를 외치며 해외로 흩어졌다. 새누리당 소속 안홍준 위원장은 아프리카로 떠났고, 민주당 간사 심재권 의원 일행은 북유럽을 돌았다. 새누리당 간사 정문헌 의원 일행은 지난주 남미로 떠났다. 3월 국회를 연들 이들이 없으니 비준안은 손도 못 댈 판이다. 초당(超黨) 외교는 해외 나들이 갈 때나 쓰는 말인 이들에게 방위비라니…. 무슨 재 뿌리는 소린가. 글로 따지는 수고조차 아깝다.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전통 춤 인생 50년… 이 시대의 춤꾼 국수호

    [김문이 만난사람] 전통 춤 인생 50년… 이 시대의 춤꾼 국수호

    그저 손 끝 하나가 나풀거릴 뿐인데 지나간 세월이 아지랑이로 나타나고 다가올 미래를 살며시 열어젖힌다. 또한 꺼져가는 한 자락의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어 하늘 높이 솟아올린다. 조지훈이 ‘승무’에서 읊었던 한 구절이 떠올려진다.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먼 하늘 한개 별빛에 모두오고~’ ●농악소리에 혼이 팔려… 16세때 처음 장구춤 1964년, 그러니까 전주농고 1학년에 막 입학했을 때였다. 우연히 농악소리에 혼이 팔려 농악대에 들어갔다. 북 치고 장구 치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그저 신이 났다. 전주 권번의 춤사범 출신인 정형인 선생이 이런 그를 보고 미래의 춤꾼으로 확실히 점지하고 지도를 했다. 그리고 몇달 뒤 덕수궁 석조전 앞에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가 열렸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 관객들 앞에서 처음으로 장구춤을 췄다. 이때부터 그의 춤 인생길은 손짓과 몸짓을 휘휘 감아돌며 시작됐다.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 이수자이자 이 시대의 춤꾼으로 유명한 국수호(66)씨.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 여자도 아닌 남자가 춤에 빠져 살다 보니 어느덧 50년 세월이 후딱 지나갔다. 하여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춤 인생 5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춤의 귀환)에서 다시 한번 그의 진가를 발휘했다. 그는 이 무대를 통해 하나의 ‘화두’를 던졌다. 아직도 우리 전통춤이 기거할 ‘집’이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과 이제는 ‘전용극장’이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호소했다. 많은 문화예술인들도 공감하는 무대가 됐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디딤무용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그 ‘화두’부터 꺼낸다. “우리나라에는 우리의 전통예술을 맘껏 펼칠 수 있는 무대는 없고 오페라 등 서양식 무대만 있습니다. 창(판소리)만 하더라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데 전용극장이 없잖아요. 한국인에게는 의식주가 삶의 버팀목입니다. 그렇듯이 우리 정신의 버팀목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바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가(歌), 무(舞), 악(樂)에 있지요. 집도 없이 공연한다는 것은 빈터에 공염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50년 동안 그렇게 춤을 추다 보니 항상 마음 놓고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습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순수예술의 집’이다. 국립극장이나 국립국악원, 예술의전당 등도 있지만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대부분 서양의 공연을 염두에 두고 지어졌다는 것이다. 이웃나라 중국의 경극만 하더라도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는 물론 지방마다 전용극장이 수없이 많으며 일본의 가부키(歌舞伎)와 노(能) 역시 국립극장을 비롯해 여러 지방에서도 마음 놓고 공연할 수 있는 전용극장이 있어서 전통의 맥을 제대로 이어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립은 고사하고 도립이나 시립에서 운영하는 전통 극장조차도 없다고 말한다. 우리 춤이 지지부진하고 대중에게 잊혀 가는 이유가 바로 특성화된 ‘순수예술의 집’이 없기 때문이며 이는 춤뿐만 아니라 음악, 창극 모두에 해당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한국의 음악과 소리, 그리고 춤은 한국인의 기호품이 아니라 한국인한테 필수적인 의식주에 해당되는 영혼의 양식이라는 것이다. “순수예술 문화는 우리의 정신적 샘입니다. 따라서 한국인은 그 물을 마시고 살아가야 하며 그것이 튼튼해야 대중문화도 튼튼해지는 것이지요. 일본이 국가차원에서 전통예술에 관심을 갖고 융성시키는 것은 바로 국가를 위한 국민의 정신적 힘이 강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문화융성위원회가 있지만 이러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구려 당시 동맹제나 무천제 등을 보십시요. 이는 곧 고구려의 정신이었고 광활한 땅을 거느릴 수 있는 국가권력의 튼튼한 발로였습니다.” ●정형인·박금슬 선생은 춤인생 최고의 스승 이와 관련된 얘기를 더 나누다가 화제를 바꿨다. 춤인생 50년을 잠시 돌아보자는 의미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그는 전북 완주에서 태어났다. 3~4세 때 비봉면 마을에 전주댁이라는 무당이 있었다. 쾌자 자락을 휘날리며 꽃을 들고 길길이 뛰는 무당과 옆에서 장구와 꽹과리를 치면서 경을 읽는 모습이 어린 그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의 예술적 끼는 주변 환경도 한몫 거들었다. 봉황이 난다는 비봉마을 골짜기마다 꽃가지 사이로 지저귀는 산새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어깨가 저절로 으쓱으쓱해졌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에는 단상에 올라가 아리랑 춤을 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런 시골의 정취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서울 같은 곳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대단한 기억으로 남는 시절이었다”고 회고한다. 그의 부친은 토지개량조합장 등을 거쳐 1960년대초까지 민선 면장을 지냈다. 이런 집안 분위기 때문에 그는 춤과 음악을 좋아하는 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주 서중학교에 진학한 그는 혼자 하숙을 하면서 브라스밴드부에 가입했다. 북을 치고 서양의 악보를 아버지 몰래 공부했다. 음계와 악보를 알고 분석할 수 있는 기초를 다진 것도 이때였다. 졸업 무렵 아버지가 농고에 진학할 것을 권유했다. 할 수 없이 전주농고 토목과에서 측량을 공부했다. 하지만 몸속 깊이 내재돼 있는 끼는 주체할 수 없었다. 정규수업이 끝나자마자 농악대에 가서 북과 장구, 한국 음악과 무용 등을 익혔고 18세까지 정형인 선생한테 승무와 북춤, 남무 등 남자춤을 배웠다. 서라벌예술대학에 진학해서는 송범과 김백봉 선생한테 강의를 들었고 특히 박금슬 무용연구소에서 3년간 숙식을 함께하며 박금슬 선생이 오세암 천월스님으로부터 사사한 바라 승무를 익혔다. 정형인과 박금슬 선생은 그의 춤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한영숙, 은방초 등 당대 무용계를 주름잡던 전통춤꾼들을 사사했다. 1971년 군 복무 시절이었다. 전북도지사의 부탁으로 1사단장한테 특별휴가를 얻은 그는 전주농고 농악대에서 잠시 안무를 하게 됐다. 얼마후 그의 지도를 받은 전주농고 농악대는 전국대회에 출전해 대통령상을 받았다. 대회가 끝나자 전국의 고등학교에 농악대가 생기는 붐이 조성됐고 그의 안무실력은 자연스럽게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1973년 2월 제대한 그는 때마침 국립무용단이 생기자 남자로는 처음으로 입단하면서 월급받는 직업무용수가 됐다. 이때부터 ‘국립무용단 남자 무용수 1호’라는 꼬리표가 항상 붙어다녔고 매스컴에서 집중조명을 받았다. ●국립무용단 남자 무용수 1호로 주목받아 “제가 국립무용단에 들어갔을 때 송범 선생께서 단장을 맡고 있었지요. 10년동안 여자 단원이 20명쯤 있었는데 남자는 저 혼자였지요. 남자라는 이유로 일주일에 한 번씩 언론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날마다 주인공이었죠 뭐.” 이 무렵 남자무용수 시대를 예상하고 중앙대 연극영화과 3학년에 편입해 춤극을 공부했다. 기존의 무용에 극적인 요소를 결합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어 대학원에 진학해 민속학을 전공했고 ‘한국 민속 연희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러한 이론적 행위는 그의 춤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예술적 바탕이 됐다. 직접 무대 출연은 물론 대본, 안무, 연출, 음악 등 여러 영역으로 넓혀나가는 작업을 꾸준히 해나갔다.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27세에 서울예대 교수로 임용됐고 이후 중앙대에서 26년간 교수직을 겸하면서 30년 가까이 국립무용단에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러면서 130여개국 순회공연을 통해 한국의 전통춤을 어떤 식으로 추고 어떤 식으로 창작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서부터 김만중의 ‘구운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로 세계인이 공감할 작품을 만들어냈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2002년 월드컵 개막식 등에서 총괄 안무를 맡아 세계인들에게 여러 감동을 선사했다. ●“1년에 한두편 창작 춤극으로 관객과 소통하고파” 그는 지난 50년 세월을 뒤돌아보면서 “춤도 춤이지만 자료수집하느라 참 바쁘게 지냈다. 이사할 때 무용 관련 책만 트럭 10대분이 넘었다. 이런 것들이 작품의 골격을 세우고 무너지지 않게 하는 튼튼한 인문학적 토대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춤의 매력은 진정 무엇일까. “인간이면 지닐 수 있는 핏빛 움직임이 있습니다.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공들여닦여지고 정신이 들어간 움직임을 통해 미학적으로 보여질 때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력을 쌓은 실 하나가 내 가슴에서 저쪽 사람의 가슴으로 건너갈 때 금실이 되는 것처럼 춤의 매력은 세련미와 정성들여 쌓은 공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60대 중반이지만 무대 위에서는 여전히 청춘이다. 건강비결을 묻자 “걷기를 주로 하고 불필요한 생각을 하지 않으며, 예술과 관련되지 않는 불필요한 곳에는 되도록 가지 않으려 한다”면서 “가끔 식구들과 먹거리가 좋은 데 찾아가는 것을 작은 행복으로 여긴다”고 대답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1년에 한두 편씩 창작 춤극을 만들어 가급적 소극장 무대에서 관객들과 더 가까워지겠다고 말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국수호는 88올림픽 개막식 등 안무가로도 명성 춤극의 지평 넓혀 1948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났다. 1964년 전주농고 1학년때 스승 정형인 선생한테 농악과 한국음악, 장단 등을 익혔다. 그해 공식무대인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장구춤을 췄다. 이후 서라벌예대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중앙대에서 연극영화를, 중앙대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전공했다. 1973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했고 이듬해 ‘왕자호동’을 시작으로 30여 편의 작품에서 주역을 맡았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안무를 병행해 안무가로도 명성을 쌓았다. 88올림픽 개막식과 2002년 월드컵 개막식 공연의 안무를 맡았고 국립무용단 단장, 서울예술대 교수, 중앙대 교수 등을 역임했다. 1987년에는 국수호디딤무용단을 창단해 ‘무녀도’ ‘대지의 춤’ ‘한국 환상’ ‘봄의 제전’ ‘명성황후’ 등으로 춤극의 지평을 꾸준히 넒혔다. 주요 수상으로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전북농악지도 대통령상(1971년), 88올림픽 개회식 안무 ‘화합’(국무총리표창), 최우수 예술가상 한국예술평론가협회 작품상(1988년), 한국 예술평론가협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인물(1999년), 제16대 대통령 취임식 총괄안무 대통령표창(2003년), 올해의 예술가상 춤극 ‘고구려’(2006년) 등이 있다. ‘세계 춤 기행문집- 춤 내사랑’ ‘국수호 춤 작품집-국수호의 춤’ 등의 저서를 펴냈으며 현재 국수호디딤무용단 예술감독 겸 이사장을 맡고 있다.
  • [경제 블로그] 조세재정硏도 안 따르는 조세정책

    조세 제도의 국내 최고 전문가 집단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차 사실상의 업무상 상급기관인 기획재정부의 조세정책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작년보다 연말정산 환급액을 덜 받거나 오히려 더 토해내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 직장인들의 불만이 크다는 보도가 최근 나왔지만, 조세재정연구원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두둑한 ‘13월의 보너스’를 챙겼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기가 막힙니다. 2012년 9월에 기재부가 근로소득원천징수세액을 10%가량 내리도록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했지만 이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기재부는 당시 침체된 경기를 살리고 소비를 늘리기 위해 직장인 월급에서 매달 떼가는 근로소득원천징수세액을 깎아줬습니다.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근로소득간이세액표의 특별공제율을 상향 조정하는 방식으로 매달 월급에서 떼는 소득세를 인하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2012년 9월 이전의 근로소득간이세액표를 적용해 왔습니다. 즉 매달 직원들로부터 근로소득원천징수세액을 정부 방침보다 10%씩 더 뗀 것입니다. 당연히 세금을 미리 많이 떼었으니 나중에 그만큼 더 많이 돌려받는 셈입니다. 조세정책을 연구하는 조세연구원이 소득세법 시행령까지 지키지 않았던 이유는 연말정산 때 환급액이 줄어들거나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직원들이 나타나면 불만이 커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조세 전문가들조차 정부의 소득세법 시행령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입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연구원이 소득세법 시행령을 지키지 않고, 기재부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매달 직원들로부터 세금을 더 떼서 국세청에 꼬박꼬박 납부한 만큼 가산세를 물거나 처벌도 받지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세법을 잘 모르는 중소기업이나 울며 겨자먹기로 정부의 정책을 따라가는 기업들은 구성원들의 불만에 직면했습니다. 왜 ‘13월의 보너스’ 대신에 ‘세금폭탄’을 때렸냐는 거죠. 조삼모사라고 치부할지 모르지만 적금을 타듯 연말정산을 즐기던 직장인들은 분명 허탈합니다. 조세 전문가들은 이번 연말정산 사태와 함께 지난해 세법개정안, 2·26 전·월세 대책 등에서 정부가 세금을 경기 활성화나 주택시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합니다. 기재부는 당분간 근로소득원천징수세액을 다시 조정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민심을 제대로 읽는 연습은 여전히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우려가 현실로… TM업체 직원들 2월 급여 못 받아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금융당국의 영업정지 조치로 약 한 달간 일손을 놨던 텔레마케팅(TM) 업체 직원들 상당수가 2월치 급여를 아직 못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TM영업제한 조치가 텔레마케터들의 고용불안을 야기한다는 지적이 일자 뒤늦게 영업재개를 허용했지만 정작 각 금융사가 임금 보전에 늑장 대응을 하면서 텔레마케터들의 생계 위협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상당수 카드사가 외주 TM업체에 월급일인 지난 10일까지 인건비 등을 전달하지 않았다. 텔레마케터 직원들의 급여 보전 수준에 대해 합의를 마친 농협카드와 현대카드, 하나SK카드 등 일부 카드사를 제외한 나머지 카드사들은 급여 보전 비율과 지급 방법을 두고 TM업체 측과 협의를 벌이고 있다. 현대카드와 농협카드는 기존 급여의 90~100%를 지급했고 하나SK카드는 상담직원 인건비 150만원을 보전해주기로 했다. 다른 카드사들은 지난 1월 금융당국으로부터 TM영업 정지조치를 받은 뒤 TM업체 소속 텔레마케터들에게 기존 급여의 70~100% 수준을 지급한다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실제 이행되고 있지 않은 셈이다. 앞서 지난달 고용노동부는 금융당국과 고용안정지원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기존 임금의 70%를 휴업수당으로 지급하라”는 지침을 내놨다. 한 카드사의 아웃바운드 TM영업 업무를 담당하는 업체 영업팀장인 최모(37·여)씨는 “직원들에게 나눠줘야 하는 인건비가 아직 들어오지 않아 직원들의 생계불안이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지난달 TM영업 재개 이후에도 사실상 적극적인 영업을 못하는 상황이어서 실적이 낮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마케터들의 잘못이 아니라 애초에 영업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아직 외주TM업체에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은 한 카드사 관계자는 “정부와 당국의 방침에 따라 기존 급여의 70%를 보전해주겠다는 내부방침은 세운 상태지만 다른 회사들의 지급 수준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아직 분위기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역시 TM영업 정지조치를 받았던 보험사의 TM업체들도 급여 보전 규모와 지급 방식을 놓고 외주 TM업체와 보험사 간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이슬람 vs 기독교 종교·빈부갈등 폭발

    이슬람 vs 기독교 종교·빈부갈등 폭발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무슬림 무장괴한들이 민간인 100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AP통신은 13일(현지시간) 오토바이를 탄 무장괴한들이 지난 11일 나이지리아 카치나주 마을 4곳을 급습해 농민들을 학살하고, 오두막과 자동차에 불을 질렀다고 보도했다. 당국 관계자는 “이슬람 테러단체인 ‘보코하람’의 소행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지만, 카치나주는 무슬림 유목민과 기독교 농민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곳이어서 무슬림 연관 세력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 나이지리아에서 이슬람과 기독교 갈등은 해묵은 문제다. 사건은 100년 전인 19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민 통치하던 영국은 당시 나이지리아 국경선을 확정하면서 각기 다른 부족과 종교를 지닌 남부와 북부를 통합했다. 영국은 이슬람 지역을 피해 남부에서만 선교 활동을 했고, 이는 북부 이슬람과 남부 기독교로 나뉘는 결과를 가져왔다. 북부와 남부는 생활수준도 차이가 크다. 미국 외교협회(CFR)에 따르면 북부의 72%가 빈곤층이지만 남부는 27%에 불과하다.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는 석유와 천연가스도 대부분 남부에 매장돼 있다. 보코하람은 이슬람 율법에 따른 나이지리아를 목표로 2001년부터 활동하는 무장 단체로 ‘나이지리아의 탈레반, 알카에다’로 불린다. 서구식 교육을 금지한다는 의미를 가진 보코하람은 올해 들어서도 본부가 있는 보르노주에서 학교와 마을을 연쇄 공격해 약 13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아프리카 전문가 안토니 골드맨의 말을 인용해 “학교나 기숙사 등 만만한 곳을 표적으로 삼는 가장 잔인한 이슬람 테러 단체”라고 설명했다. 미국 일간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보코하람은 조직원에게 월급을 주는데다 그들 스스로 정의를 위한다는 명분이 있어 점점 더 득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나이지리아 현지 언론은 ‘보코하람이 알카에다의 후원을 받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굿럭 조너선 대통령은 이달 초 전 육군참모총장 알리야 구사우를 2012년 6월 이후로 공석이던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알자지라는 보코하람에 대한 전략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북부 무슬림 출신인 신임 국방장관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로고스대 다포 토머스 교수는 “무력만으로 보코하람을 이길 수 없다. 정보와 첩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올리버 다쉐 돔 가톨릭 주교도 “보코하람이 나이지리아 군대보다 더 잘 무장돼 있다”면서 보코하람에 대한 새로운 대책을 요구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구로구 3년 연속 일자리 우수기관 영예

    구로구 3년 연속 일자리 우수기관 영예

    구로구가 3년 연속 일자리 공시제 우수기관 선정의 영예를 안았다. 구는 고용노동부 주관 ‘2014 지역 일자리 목표공시제 종합평가’에서 우수기관에 뽑혀 인센티브 9000만원을 받았다고 13일 밝혔다. 2012년 최우수상, 지난해 우수상에 이은 성과다. 일자리 공시제는 자치단체장에게 임기에 추진할 일자리 목표와 대책을 미리 알리고 실천하도록 하는 제도다. 전국 240여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일자리 계획 수립, 집행, 추진 성과 등 4개 분야 9개 항목을 평가했다. 구는 지난해 일자리 1만 3700여개를 만들었다. 구로 일자리 플러스센터를 통해 3734명, 청장년·장애인 취업 박람회를 통해 571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특히 디지털단지와 연계한 청년 인턴사업 수료자 231명 중 92%인 213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올해는 1만 2000여개 창출을 목표로 삼았다. 구는 민선 5기 들어 ‘일자리=최고의 복지’라는 구호를 내걸고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2010년 7월 이후 지난해까지 일자리 4만 8200여개와 일용직이나 공공근로 등 공공분야 임시직을 제외한 좋은 일자리 1만 4500여개를 창출했다. 아울러 구는 일자리지원과를 신설하고 구청과 동 주민센터에 취업상담 창구를 설치했다. 지역 기업과 기관, 학교 등과 업무 협약을 맺고 구민을 우선 채용하도록 했다. 매월 19일을 ‘일 구하는 날’로 정하고 대형 일자리 박람회, 소규모 취업 박람회, 장애인 일자리 박람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청년 인턴사업을 통해 디지털단지 등에 매년 300여명의 청년 미취업자들을 인턴으로 보내고 월급의 일부를 지원하기도 한다. 그 결과 서울시가 자치구를 대상으로 한 일자리 평가에서도 약진했다. 이성 구청장은 “일자리는 주민 행복을 위한 전제조건”이라며 “앞으로도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애쓰겠다”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대학 취업률 부풀리기 ‘꼼수’

    ‘청년실업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수도권의 상당수 대학에서 취업률을 부풀리기 위한 편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학 취업률은 수험생이 대학을 선택할 때 중요한 참고자료인 데다 정부가 대학에 재정 지원을 할 때 기준으로 삼는 주요 지표이기 때문이다. 12일 인천지역 대학들에 따르면 교내 취업을 통해 취업률을 높이는 게 가장 흔한 수법이다. 교내 행정인턴 등으로 단기 채용하면서 필요한 인원보다 많은 수의 미취업자를 등록하는 방법이다. 상당수 학교들이 학생과 6개월∼1년의 단기 계약을 맺고 사무보조원 등 아르바이트 수준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개월 이상 근무하고 건강보험에 가입되면 취업자로 인정하는 교육부 기준을 악용한 것이다. 이를 빼면 취업률이 10% 포인트 가량 떨어지는 대학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 A대학 등 일부 학교는 1개월 미만의 단기간 고용 근로자와 비상근 근로자 또는 1개월 근로시간이 60시간 미만인 단시간 근로자는 직장 건강보험 적용자에서 제외하게 돼 있는데도 기업에 부탁해 건강보험에 가입시켜 취업자로 산정하는 방법을 쓰는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교수가 창업한 소규모 기업에 직원으로 등록한 뒤 대학이 월급·보험료를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취업률 부풀리기는 전국적인 현상이란 지적도 있다. 경기 부천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대학 취업률이 높으면 교육수준이 높은 것으로 동일화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러나 편법으로 취업률을 높이는 것은 국민과 수험생을 속이는 반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현실적 요인에 기인한다는 주장도 있다. 취업률이 낮으면 부실 대학으로 인식돼 예산을 지원받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다. 실제로 교육부의 대학 재정지원 기준항목 중 취업률이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며, 학교 자체적으로도 학과 구조조정 등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취업률이 51%에 미치지 못하면 부실 대학 선정 시 우선 검토 대상이 된다. 권경주 건양대 교수는 “대학이 취업률에 목맬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는 공정한 취업률 산정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면서 “근본적으로 정부가 인력충원 시스템을 개선하고 청년실업률을 낮추는 방향으로 경제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88만원 세대 대변… “새 교섭모델 개발할 것”

    88만원 세대 대변… “새 교섭모델 개발할 것”

    “고용지표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경제성장률이 오른다고 해도 청년 일자리가 생긴다는 보장은 없죠.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남아야 합니다.” 국내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의 김민수(24) 위원장은 창립 4주년을 하루 앞둔 1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멘토보다는 동료가 필요한 시대”라며 이렇게 말했다. 2010년 출범한 청년유니온은 ‘피자 배달 30분제 폐지’ ‘미용실 스태프·학원 강사 근로 조건 실태조사’ 등의 사업을 통해 ‘88만원 세대’의 노동권을 대변해 왔다. 15~39세 비정규직, 정규직, 구직자, 실직자 등으로 구성된 청년유니온은 노조 설립신고서를 낸 지 여섯 번째 만인 지난해 4월 드디어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조 설립 신고필증을 교부받았다. 고용부는 구직자, 실업자 등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닌 자가 노조에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전국 단위 노조 설립 신고를 다섯 차례 반려했었다. 2009년 12월 청년유니온에 합류한 김 위원장은 2011년 상담팀장을 거쳐 지난 2월 위원장으로 뽑혔다. 김 위원장은 “1, 2기 때는 청년유니온의 존재를 알리고 법 내 노조로 인정받는 것이 목표였다”면서 “앞으로는 개별 사업장, 정부 등을 상대로 사회적인 형태의 새로운 교섭 모델을 개발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20~30대 청년들이 직면한 문제로 ‘이겨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을 지목했다. 그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통의 목소리를 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이기는 경험”이라면서 “대학을 졸업한 뒤 구직을 하는 과정에서 좌절한 경험이 많은 청년들이 청년유니온 같은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우리에게도 이런 힘이 있구나’ 하고 느낄 기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직장에서 월급을 떼였을 때, 집주인과의 사이에서 전세 보증금 갈등이 생길 때, 대출금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할 때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는 순간 청년유니온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 동료가 되겠다”고 덧붙였다. ‘안녕하지 못하다’는 청년들의 외침이 끊이지 않는 지금, 김 위원장은 얼마나 행복한지 궁금했다. “매 순간 ‘나는 행복한가’라고 되묻는 것이야말로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행복은 특정한 순간에 오는 것이 아니라 긴 흐름 속에 얻어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삶에 대한 긴장을 놓지 않은 채 고민을 하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겁니다. 고민이 많으시면 청년유니온에 전화 주시고요(웃음).” 글 사진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내러티브 리포트] “아프리카 예술혼 담은 이 손, 한국에선 14시간 접시만 닦았다”

    [내러티브 리포트] “아프리카 예술혼 담은 이 손, 한국에선 14시간 접시만 닦았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예술흥행(E6) 비자를 발급받고 한국행을 선택한 외국인들이 인신매매, 성매매, 임금 체불, 폭력 등 인권침해 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그간 E6 비자 제도의 부작용이 꾸준히 거론돼 왔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관계 부처가 나서서 인권침해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프리카 무용 예술가에서 불법 체류자로 전락한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에밀라(가명·35·여)와 가수 활동을 기대하고 입국했으나 유흥업소에서 일하다 필리핀으로 돌아간 마리아(가명·23·여)와의 심층 인터뷰를 내러티브 리포트(Narrative Report) 형태로 재구성했다. ■ 아프리카빌리지 무용수 에밀라 2002년 6월. 에밀라(당시 23·여)와 동료 무용수 10명은 지구 반대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코레 뒤 쉬드’(프랑스어로 남한)’. 코트디부아르에서 이틀 동안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낯선 땅 한국이었다. 그래도 에밀라는 두렵지 않았다. 코트디부아르의 ‘글라오지에티’ 전통예술극단 단원들은 이전에도 프랑스, 독일, 리비아 등으로 해외 순회공연을 하러 다녔다. 에밀라는 한국에서의 공연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며 기대에 차 있었다. 하지만 에밀라의 기대가 깨지는 데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이들을 초청한 경기 남양주의 아프리카 예술 체험장인 ‘아프리카빌리지’ 관리자와 함께 도착한 곳은 수도나 화장실은커녕, 주변에 인적조차 드문 폐가였다. 집 안에는 곰팡내가 진동했다. 물을 사 먹거나 씻으려면 20분이나 걸어 나와야 했다. 현실은 점점 악몽으로 다가왔다. 한국에 오기 전 공연단은 하루 8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200달러를 받기로 계약했다. 하지만 이들이 월 200달러의 급여조차 언감생심이란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이마저도 몸이 아파서 하루 쉬거나 청소를 안 하면 매번 5~15달러씩 공제됐다. 전화비로 1분에 3달러가 떼였다. 업주는 이것들을 한국어로 ‘흑인급여장부’라고 적힌 파일에 기록하고 관리했다. 무엇보다 그들을 힘들게 한 건 노예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예술가의 자존심은 처절하게 짓밟혔다. 에밀라와 동료 무용수들은 쉬는 날 없이 일해야 했지만 거역할 수 없었다. 하루 3~4회 공연이 끝난 뒤에도 식당 서빙과 요리, 청소, 호객, 제초작업까지 하루 14시간이 넘는 고역을 견뎌야 했다. 그들이 일한 곳은 이름은 박물관이지만, 업소 등록은 음식점으로 돼 있는 곳이었다. 에밀라와 동료 무용수들이 항의하면 업주는 ‘그러면 나가라’며 코웃음을 쳤다. 업주는 알고 있었다. 돈도, 비행기 표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에밀라와 단원들이 목숨을 건 탈출을 하진 못할 것이란 걸. 4개월이 흐른 뒤 에밀라와 동료 무용수들은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의 도움을 받아 끔찍했던 아프리카빌리지를 탈출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에밀라의 곁에는 동료 무용수였던 남편 바토(51)밖에 없다. 그들은 사업장을 탈출하는 동시에 E6 비자를 박탈당했고, 갈 곳을 잃었다. 단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사이 코트디부아르에는 내전이 발생했고, 에밀라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한국에 남기로 한 에밀라는 이듬해 난민 신청을 했다. 하지만 난민 신청은 11년이 지난 아직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때 유럽 순회공연을 다니는 예술가였던 에밀라와 바토는 결국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 가는 불법 체류자로 이 땅에 남아 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가수 지망했던 필리핀인 마리아 2010년 12월, 필리핀 국적의 마리아(23·여)는 부푼 꿈을 안고 한국 땅을 밟았다. 필리핀을 강타한 ‘한류’ 열풍 속에서 가수의 꿈을 키운 마리아는 한국에서 “내 꿈에 날개를 달겠다”고 다짐했다. 돈을 벌겠다는 현실적인 목표도 있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필리핀에서 지인 소개로 알게 된 현지 기획사 직원은 “한국에 가면 가수로 일하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며 마리아를 유혹했다. 간단한 오디션을 거친 마리아는 한국 기획사와 공연 계약을 체결한 뒤 예술흥행(E6) 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에 들어왔다. 공항에서 만난 기획사 직원은 마리아를 대구의 노래방으로 데리고 갔다. 생전 처음 겪는 추위도 싫었지만, 한국 사람들의 시선은 더 견디기 어려웠다. 한 달 뒤 마리아는 부산의 한 외국인 전용 클럽으로 옮겨졌다. 미국인이 좋아하는 용모에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 때문. 생활은 더 비참했다. 업주가 허락하지 않으면 근무시간인 밤에는 물론, 낮에도 클럽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하루 9시간씩 손님 옆에서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불러 받는 월급은 고작 40만원. 필리핀에서 마리아만 바라보는 5명의 식구들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한 달에 2번씩 정기 휴무를 약속받았지만, 그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아파도 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파서 일을 못할 때면 사장이 “하루 수당을 못 벌었으니 벌금으로 10만원을 내라”고 윽박질렀다. 다른 클럽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손님의 술 시중을 들고 접대하기 위해 마약을 먹는다고도 했다. 오랜만에 쉬는 날, 마리아는 아파트에 혼자 있기 싫어 자신이 일하는 클럽에 갔다. 손님과 동석해 술을 마셨고, 손님의 요청으로 무대에서 노래도 불렀다. 손님들이 준 팁을 세어 보니 20만원. 이를 본 사장은 득달같이 달려와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휴무에 번 돈이라고 사정했지만, 사장은 벌컥 화를 냈다. “누가 일하게 해 줬는데 어디서 이렇게 거만하게 나와? 당장 나가.” 그날 밤 마리아는 도망쳤다. 갈 곳을 잃은 마리아는 한국에서 알게 된 친구의 소개로 이주 여성을 위한 쉼터에 머물렀다. 마리아의 사연을 들은 쉼터의 활동가들은 계약을 위반한 업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자고 했다. 업주는 “한국에 입국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들었고 세금도 내야 하기 때문에 월급은 그 정도밖에 줄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후 1년 2개월의 지루한 소송이 이어졌고 법원은 마리아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마리아는 필리핀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임시로 G1 비자(치료·소송 등을 이유로 3개월 이상 머물러야 할 때 내주는 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에 머물렀지만 소송이 종료된 만큼 더 머물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2012년 6월, 마리아는 상처만 얻은 채 쓸쓸하게 한국을 떠났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저소득 직장인 건보료 형평성 논란

    저소득 직장인 건보료 형평성 논란

    정부가 ‘2·26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 이후 소규모 월세 소득자들의 소득세와 건강보험료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이 계속되자, 이달 들어 부랴부랴 세금과 건보료 부담을 줄여주는 보완책을 내놨다. 하지만 소규모 임대소득자들의 부담을 낮춰주자 이번엔 비슷한 규모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 은퇴 근로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생계형 임대소득자들의 소득세 및 건보료 부담을 줄이기로 해주면서 은퇴 이후 불로소득에 가까운 임대소득을 벌어들이는 집주인들에 비해 경비원 등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은퇴 근로자들이 훨씬 많은 건보료를 내게 됐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5일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 보완조치를 내놓으면서 2주택 보유자로서 임대소득이 연간 2000만원 이하인 소규모 임대사업자에 대해 14%의 분리과세를 적용하되, 연간 400만원을 소득에서 빼주는 등 현재보다 소득세가 늘어나지 않도록 했다. 또 그동안 직장에 다니는 자녀의 직장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등록해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았던 임대소득자들의 경우 앞으로 소득이 국세청에 노출되면 건보료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을 우려해 소규모 임대소득자에게는 피부양자 자격을 그대로 인정하고, 현재보다 건보료 부담을 늘리지 않도록 했다. 정부의 이번 조치로 같은 금액의 소득을 버는 근로자보다 임대사업자가 내야 할 소득세는 더 많아졌다. 예를 들어 은퇴자(배우자와 2인 가구)로서 경비원 등으로 근무하며 연간 1800만원의 총급여(연봉-비과세소득)를 받는 근로자와 연간 같은 금액의 월세를 받는 임대소득자가 내야 할 소득세는 각각 7만 7385원, 49만 2800원으로 임대소득자가 41만 5415원이 많다. 하지만 임대소득자에게는 2016년부터 소득세가 과세돼 내년까지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건보료 차이는 훨씬 더 크다. 건보료의 경우 직장가입자에게는 총급여의 2.995%가 부과된다. 총급여 1800만원인 근로자의 경우 연간 53만 9100원(1800만원×2.995%)의 건보료를 내야 하고, 건보료에 6.55%가 붙는 장기요양보험료까지 더하면 연간 57만 4411원이 월급에서 자동으로 빠진다. 반면 임대소득자는 건보료 부담이 늘지 않는다. 자녀의 직장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가입된 임대소득자는 예전과 같이 건보료 부담액이 ‘0원’이다. 세 부담은 임대소득자가 더 많지만 건보료까지 합하면 근로자가 내야 할 돈이 임대소득자보다 연간 15만 8996원이 많다. 임대소득자에 대해 2015년까지 소득세 과세가 유예된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2년 동안은 은퇴 근로자가 임대소득자보다 매년 65만 1796원씩을 더 내야 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번에 전·월세 대책을 내놓으면서 2주택 이하, 연간 2000만원 이하 임대소득자에게는 급격한 세금 및 건보료 부담을 완화하기로 한 것”이라면서 “한쪽을 깎아준다고 원래 (건보료를) 내던 사람들까지 다 깎아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대책에 연달아 이 같은 허점이 발견되자 전문가들은 세금과 준조세인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4대 보험료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좀 더 세밀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이번 조치와 같이 누구는 세금과 보험료를 깎아 주고 누구는 안 깎아 주면 더 큰 사회적 분란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적어도 부동산 정책에서는 세제를 임시방편으로 써서는 절대 안 되며, 4대 보험료도 소득을 기준으로 부과하기 때문에 미국식의 사회보장세 형태로 세금에 포함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군입대자 고용 유지 中企 지원금·법인세 감면 혜택

    회사에 근무하다가 입대한 근로자를 해고하지 않고 제대한 뒤에도 계속 일하게 하는 중소기업에 고용 유지 지원금을 주고, 법인세도 깎아주는 방안이 추진된다. 임신,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 못지않게 군 입대로 인한 고졸, 전문대졸 20대 초반 남성의 경력 단절 문제도 심각해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10일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청년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교육부, 중소기업청 등 관계 부처 합동으로 이런 내용의 ‘청년 취업 활성화 대책’을 마련해 빠르면 이달 말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선 군 입대자를 해고 대신 휴직 상태로 두고 고용을 계속 유지하는 중소기업에 지원금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확한 액수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중소기업이 지원금으로 군 입대자를 대체할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월 50만원 이상을 주는 방안이 유력하다. 전역한 근로자를 다시 고용한 중소기업에는 별도의 장려금을 주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현재 마이스터고를 졸업한 근로자가 입대 전에 다녔던 중소기업에 제대 후에 복직하면 해당 중소기업에 복직자 월급의 10%를 법인세에서 깎아주는 세액공제 제도가 운영 중이다. 국비 해외유학이나 대학의 겸임교수 선발 때는 중소기업에 장기 재직한 근로자에게 혜택을 주고, 대학에 가려는 마이스터고 졸업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대기업 근로자와의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중소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이자소득세(14%)를 면제해 주는 ‘청년희망통장’을 내년 초에 출시하기로 했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씨줄날줄] 중국 경제의 루이스 전환점/박홍환 논설위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년여가 흐른 2010년 정월, 중국 동부연안 공업지대에는 일제히 구인 포스터가 나붙었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창장(長江)삼각주와 광둥(廣東)성 주장(珠江)삼각주의 각급 기업들이 치열한 구인전쟁에 돌입했다. 그 결과, 근로자 임금이 큰 폭으로 상승해 전년보다 30% 많은 월급을 제시하는 기업들이 속출했다. 어마어마한 인구 탓에 ‘화수분’처럼 노동력이 공급될 것이라 여겼던 중국에 ‘용궁황’(用工荒·구인난)이란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이맘때다. 한국 무역협회에 따르면 중국 베이징의 올해 최저임금이 월 1560위안(약 27만원)으로 책정됐다. 지난해 대비 12% 올랐고,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800위안)과 비교하면 배 가까이 인상된 금액이다. 지난해 1620위안으로 중국 내 최고였던 상하이는 아직 올해 최저임금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10% 정도는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임금 폭등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중국 정부는 내년 마무리되는 ‘12·5 규획’(12차 5개년 계획) 기간 중 도시근로자 임금을 배증시킨다는 방침을 2011년 초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중국에서는 몇 해 전부터 이른바 ‘루이스 전환점’(Lewisian turning point) 논쟁이 한창이다. 루이스 전환점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더 루이스가 제기한 개념으로 개발도상국에서 더 이상 농촌 잉여노동력을 확보할 수 없어 도시근로자의 임금이 폭등하고, 고성장은 둔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는 1970년대 중반 경험했다. 인구통계학적으로도 중국의 루이스 전환점은 가시화되고 있다. 2010년 인구조사 결과 중국의 총인구는 13억 7053만명이고, 이 가운데 15~64세 노동가능인구는 9억 9843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72.85%에 이른다. 문제는 0~14세 인구의 급감이다. 1990년 전체 인구 대비 27.69%였던 0~14세 인구 비중은 2000년 22.89%로 내려앉았고, 2010년에는 16.6%까지 떨어졌다. 중국사회과학원 인구·노동경제연구소 차이팡(蔡昉) 소장은 중국의 노동가능인구가 내년에 정점을 찍고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고집스럽게 유지하던 ‘한자녀 정책’을 사실상 폐기한 것도 노동력 확보를 위한 고육책 성격이 짙다. 이제 질문은 우리에게 던져질 차례다. ‘임금 따먹기’나 하려고 중국에 생산기지를 만들었다간 망해 먹기 십상이다. 고부가가치 산업 외에는 도태시킨다는 각오로 중국도 고강도 산업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중국 스스로도 긴장하고 있는 중국 경제의 루이스 전환점에 우리 기업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 치밀하게 대비하고는 있는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정상화 모범 공기관 인센티브…부진 기관은 임직원 임금 동결”

    “정상화 모범 공기관 인센티브…부진 기관은 임직원 임금 동결”

    정부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핵심 과제로 내세운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과도한 부채와 직원 복리후생비를 제대로 줄이지 못하는 기관에 대해서는 임직원 임금을 동결시키고 성과급을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모범적으로 정상화를 추진한 기관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당근책’도 마련해,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그동안의 비정상적인 공공기관 경영을 바로잡는 데 굳이 인센티브까지 줄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현오석 부총리가 지난 8일 경기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2014년 공공기관 경영평가단 워크숍’에서 “정상화 계획에 대한 중간 평가 결과에 따라 부진한 공공기관의 기관장과 종사자들은 성과급을 제한받게 되고 임금도 동결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9일 밝혔다. 그동안 정부가 정상화 계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기관장을 해임하겠다고 여러 번 밝혔지만 임금 동결 카드를 내놓은 것은 처음이다. 기재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단을 중심으로 오는 9월에 기관별 정상화 계획 이행 실적을 중간평가하고, 10월 10일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현 부총리는 이어 “중간 평가 우수기관 10개를 선정해 2014년도 성과급 보상금을 추가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재부는 인센티브로 월급의 30~50% 정도를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에 대해 박광서 전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 데 월급의 50%를 성과급으로 준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면서 “정부가 10월까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의 성과를 평가해 상벌까지 내린다는 것은 너무 조급한 정책 추진”이라고 말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길섶에서] 후한 대접/최광숙 논설위원

    아침 출근 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날 같이 점심을 한 지인이다. “만나서 반가웠다. 후한 대접을 해줘 고맙다”는 내용이다. 사실 따지면 그 지인이 훨씬 부자일 것이다. 하지만 몇 년 만의 해후에 오래전 현역에서 은퇴한 어르신이기에 점심 값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는 일부러 다음 날 감사 전화까지 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점심 한 끼를 ‘후한 대접’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내로라하는 위치에 있었던 그는 더 화려한 접대를 오랫동안 받아봤을 터. 그런데도 월급쟁이가 살 수 있는 가벼운 점심 한 끼를 그야말로 ‘후하게’ 받아들이니 오히려 내 쪽에서 고마웠다. 그의 말 한마디에 인품과 경륜이 느껴졌다. 70대 할아버지가 까마득한 후배한테 이런 행동 가짐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작은 행동들이 그를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가게 하지 않았을까. 남한테 신세를 지고도 고마운 줄 모르고, 미안한 일을 하고도 미안한 줄 모르고, 남들의 호의도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화 한 통이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초·중·고 71% 야간 당직기사 1명… 66세 이상 고령자가 15시간씩 근무

    서울의 한 초등학교 야간 당직기사로 일하는 김모(72)씨에게는 주말이 없다. 금요일 오후 5시에 출근하면 토요일과 일요일을 내내 학교에서 보낸 뒤 월요일 오전 9시에야 퇴근한다. 평일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매일 오후 5시에 출근해 꼬박 16시간을 근무한다. 그렇게 하고 받는 월급은 고작 80여만원이다. 허리 통증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그는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 싫어 시작한 일이지만 삶이 마치 노예 같다”고 토로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11월 전국 시·도 교육청을 통해 초·중·고교 1만 274곳을 조사한 결과 이 중 71.1%의 학교가 1명의 당직기사가 숙직근무를 전담하며 혼자서 평일 15시간 이상, 주말 63시간을 꼬박 학교에서 보내는 등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근로 인정 시간은 평일 5시간, 주말 8시간 내외인 실정이다. 용역업체가 계약 금액에 맞추기 위해 임의적으로 당직기사의 근로시간을 줄이고 휴게 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근무시간을 편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직기사의 73.5%는 66세 이상의 고령자로 사례의 김씨처럼 생계 곤란과 함께 각종 질환이나 통증을 겪고 있다. 그러나 받는 월급은 100만원 미만인 경우가 조사 대상의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권익위는 ▲학교 당직 2명 교대근무 체계 원칙 ▲현실적, 합리적인 과업 부여로 적정 근로시간 확보 ▲용역비 산출 내역서상 인건비 비중을 총용역금액 대비 80% 이상으로 상향 ▲월 2회 이상 휴무일과 자유로운 휴식시간 보장 등을 교육부 장관과 시·도 교육감에게 권고했다. 더불어 용역업체가 아닌 학교에서 당직기사를 직접 고용하는 방안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효율적인 결혼자금 마련, 한국FP그룹의 무료 재무설계 상담으로 해결

    3년째 연애중인 직장인 A 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여자친구는 결혼에 대한 압박을 해오는데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성인 남성의 결혼 준비 비용이 9천만 원 정도라고 하는데, 월급을 어떻게 관리해야 빠른 시일 안에 결혼자금을 모을 수 있을지 A씨는 막막하기만 하다. 조급한 마음에 인터넷을 돌아다니던 A 씨는 우연히 한국FP그룹의 재무설계 상담서비스를 알게 됐고, 1:1 상담을 통해 자신에게 꼭 맞는 금융상품까지 추천 받고 재테크 방법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우선 결혼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는 현재 본인의 재무목표 및 자산현황을 분석하는 것이 무엇보다 최우선이다. 자산현황을 알아야 실질적으로 필요한 자금을 정확히 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본인의 투자성향을 파악해야 한다. 이는 투자성향 설문지와 본인 스스로의 투자성격을 감안해 파악하는 것이 좋다. 투자성향에는 원금보장 추구형, 균형 투자형, 고수익, 고위험 투자형 등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결혼자금 마련을 위해서는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포트폴리오로 수정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외에도 일단 성공적인 결혼자금 포트폴리오를 통해 목표 수익률을 달성했을 때는 투자금액 등을 고려하여 2~3개의 펀드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를 계획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한 사항이다. 한국FP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재테크 노하우를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금융 관련 전문가를 만나보는 것이 현명하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집이나 직장 주변에 있는 재무설계 회사, 백화점 문화센터, 대학의 사회교육원에서 진행하는 재테크 강좌에 참여하거나 검증된 재무설계사, 주거래 은행이나 증권회사의 PB를 통해 조언을 듣는 것이 적절한 방법이다. 또한 평소 자신이 처한 재무상황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자산 종목 정보를 신문기사 등을 통해 확인하고 스크랩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실제로 보험, 펀드, 저축 등을 통해 행동으로 직접 재테크의 맛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 한편 한국 FP그룹은 각종 세금 및 연금, 변동되는 정책 등으로 머리가 어지러운 서민들을 위한 무료재무설계 서비스는 물론 현명한 재테크 맞춤형 재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1:1 집중상담, 시간이 없는 직장인을 위한 출장상담 또 일정규모 이상의 자산가들에게 종합적인 재무컨설팅 스페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맞춤형 상담 서비스로 입소문과 함께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명쾌한 재무상담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한국FP그룹에 대한 정보는 홈페이지(www.finance119.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1930년대 유행 풍자가요 부르는 가수 최은진

    [김문이 만난사람] 1930년대 유행 풍자가요 부르는 가수 최은진

    왕년의 노래 한 곡을 잠시 음미해본다. ‘오빠는 풍각쟁이야 뭐/오빠는 심술쟁이야 뭐/난 몰라 이 난 몰라 이/내 반찬 다 뺏어 먹는 건 난 몰라/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구/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고/오빠는 욕심쟁이/오빠는 심술쟁이/오빠는 깍쟁이야~’ 1938년 처음 발표된 ‘오빠는 풍각쟁이’에 나온다. 가수 박향림이 불렀다. 간드러진 콧소리와 가사의 내용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당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노래는 2004년 개봉돼 1174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초반부에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대중에게 다시 알려졌다. 여기에서 궁금증 하나가 생긴다. ‘오빠’는 과연 누굴까. 1930년대의 여학생들은 장래 남편감으로 의사나 상인이 아닌 회사에 다니는 ‘샐러리맨 오빠’를 가장 선호했다고 한다. 시간만 나면 명동극장(당시 명치좌)으로 공연을 보러 다니고 술집도 마음대로 다니면서 불고기, 떡볶이 등 고급 음식을 맘껏 먹고 다녔으니 그럴 만도 했으리라. 이 노래 3절 가사에 샐러리맨 오빠에 대한 얘기가 잠깐 언급된다. ‘~날마다 회사에선 지각만 하구/월급만 안 오른다구 짜증만 내구/오빠는 짜증쟁이/오빠는 대포쟁이야’ 샐러리맨 오빠를 바라보면서 사랑과 투정을 부리는 대목이다. 당시에도 오빠부대를 쫓아다니는 여성팬들이 많았나 보다. 풍각쟁이는 원래 악기를 들고 사람이 많은 곳이나 시장터를 찾아다니는, 즉 떠돌이 인생을 말하지만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로 풀어내는 광대라는 뜻도 있다. 일제 강점기 때의 암울한 세상에서 세태를 풍자하고 희화한 만담(漫談)이 생겨났고 동시에 이를 노래로 만든 만요(漫謠)가 유행했다. 이 가운데 히트를 쳤던 만요가 ‘오빠는 풍각쟁이’를 비롯해 ‘신접살림 풍경’ ‘엉터리 대학생’ ‘다방의 푸른 꿈’ ‘화류춘몽’ ‘아리랑 낭낭’ ‘다방의 푸른 꿈’ ‘연락선은 떠난다’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1930년대 대중음악 개화기 때의 노래들이 80년 세월을 머금고 요즘 다시 한번 등장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 2010년 5월 8일 저녁이었다. 서울 홍대앞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는 흔치 않은 무대가 펼쳐졌다. 보통 때 같았으면 젊은이들이 인디밴드의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출 텐데 이날만큼은 낯설게도 ‘오빠는 풍각쟁이’와 ‘엉터리 대학생’ 등의 음악에 맞춰 박수치며 노래를 흥겹게 따라 부르며 환호했다. 무대 위에서는 어린 아이에서 아가씨의 목소리, 중년의 살롱가수 같은 고혹적인 음색을 가진 여성이 분위기를 사로잡았다. 연주는 ‘기타리스트 하찌와 악단들’이 맡아 클라리넷과 바이올린, 아코디언을 적절하게 섞어가며 과거와 현대를 넘나들었다. 이날 무대는 ‘풍각쟁이 은진, 새로 부른 근대가요 13곡’ 기념앨범 발매 쇼케이스 자리였다. 이후 소문이 번지면서 여러 차례 공연이 이루어졌다. 풍각쟁이 가수 최은진(53)씨는 젊은이들 사이에 그렇게 등장했다. 이에 앞서 2008년 11월 두산아트센터 기획콘서트 ‘천변풍경 1930’에 가수 이상은, 강산에 등과 함께 출연해 흑백영화의 성우처럼 특유의 교태와 아양으로 만요를 불러 관객들의 애간장을 녹이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작은 문화공간 아리랑에서 최씨를 만났다. 2003년 ‘아리랑’ 음반을 내고 나서 1930년대의 만요를 본격적으로 찾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창문 입구에는 ‘은진이는 풍각쟁이’ 등 그동안 공연했던 여러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안에는 고풍스러운 해골 마이크가 손님을 반기듯 홀로 우뚝 드러나 있었다. ‘어떻게 이곳에 자리를 잡았을까’ 궁금해하자 그는 “(건너편에 있는 헌법재판소 정원을 가리키며)목련과 산수화를 볼 수 있고 새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뻥 뚫린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이 집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하는 까치도 함께 있다. 하늘, 달과 별 등 모든 자연이 맑고 순수하다”며 웃는다. “처음에는 1930년대 목소리를 가진 여자가 있다며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다가 ‘풍각쟁이 은진’의 앨범 이후 많이 알려졌습니다. 화가, 사진작가, 패션디자이너, 요리연구가, 영화 관계자 등 문화 예술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오지요. 그들이 오면 자연스럽게 해골마이크를 붙잡고 질펀하게 풍각쟁이 노래를 들려줍니다.” 풍각쟁이가 부르는 만요의 바탕에는 재즈도 있고 엔카도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우리 옆집 대학생 호떡주사 대학생은/십년이 넘어도 졸업은 캄캄해~’로 시작되는 ‘엉터리 대학생’은 스윙재즈에다 엔카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만요는 세태를 풍자하고 희화한 노래로 얼핏 보면 가사가 엉터리 같지만 참으로 맑고 순수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시대의 아픔이 잘 녹아들어 있다고 강조한다. “1930년대는 시인들이 가사를 써서 한국적인 정서로 음악을 만들던 시기였지요. 고향, 꽃 피고 새 우는 것을 노래하고 가슴에도 꽃이 핀다는 것을 노래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현대적인 편곡보다 당시의 분위기를 최대한 복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다행히 이런 노력에 공감해주는 젊은이들이 많아 고맙지요. 그동안 하나의 음악장르로 대접받지 못했던 만요가 당시 민초들의 애환을 엿볼 수 있는 자산으로 평가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만요 되살리기에 앞장선 계기는 2000년 어느 날 재즈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날 채비를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리랑협회에서 최씨에게 아리랑과 관련된 자료를 건네주면서 ‘나운규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아리랑 노래에 대해 뭔가 할 일이 있을 것’이라며 여러 가지 주문을 했다. 아리랑이 운명처럼 가슴에 다가왔다는 것을 느낀 그는 뉴욕행을 포기하고 아리랑을 다시 찾는 일에 몰두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재즈카페에서 ‘개발새발 아리랑’이라는 노래와 연극을 합친 1인극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또한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에서 불린 각종 아리랑을 복원해 ‘아리랑 소리꾼 최은진의 다시 찾은 아리랑’이라는 음반을 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1930년대의 노래를 접하면서 ‘만요 복원’이라는 사명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게 됐다. 이쯤 해서 그의 인생 내력을 알아보자. 인천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이미자의 노래는 죄다 불러 동네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하루는 학교를 가는데 동인천역 옆 한 전파사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를 듣고 꼼짝할 수 없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였다. ‘아, 나도 가수가 될 거야’라고 다짐했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만약 학교에 안 들어가 음악을 계속했더라면 천재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지난번에 낸 만요음반도 누구한테 배워보지 않고 혼자 흥이 나는 대로 저절로 불렀다”고 말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인천의 한 연극단에서 창단멤버로 활동하다가 신학대학에 들어갔다. 고교생 때 잠시 빠져들었던 신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중도에 그만두고 다시 연극무대에 섰다. ‘방자전’ ‘약장수’ 등에 출연했고 노래 ‘광화문 부르스’를 불러 주목을 끌었다. 서른 살 무렵, 연희단거리패에서 무대에 올린 연극 ‘오구’와 ‘산씻김’, 그리고 ‘아시아 1인 연극제’ 등에서 연기를 했으며 그림자극과 인형극에서 장구를 치기도 했다. 특히 ‘오구’와 ‘산씻김’으로 도쿄 연극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연극판에서 ‘잘나간다’는 얘기를 들을 무렵 결혼을 했다. 애를 낳고 살림을 하다가 다시 무대로 나온 것이 마흔 되던 해였다. 1999년 한 케이블TV 방송에서 성대모사를 하는 ‘슈퍼 보이스 탤런트 대회’가 열렸다. 그는 신문광고를 보고 출전해 가수 양희은, 뽀빠이, 아동 TV극 텔레토비의 보라돌이 등을 그럴 듯하게 흉내를 내 우수상을 받았다. 대상 수상자는 배칠수였고 사회는 임성훈씨가 맡았다. 이후 그는 자유로운 영혼이 됐다. 재즈와 아리랑에 심취하고 음악사적으로 묻힌 만요를 끄집어내는 작업을 벌여나갔다. 환경운동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2001년 4개월동안 주변에서 모은 일회용품 쓰레기를 명성황후의 커다란 비녀에 매달아 서울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환경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노래면 노래, 영화면 영화, 책이면 책에 대한 얘기를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이에 대해 “1년에 영화 70~80편을 보고 음악을 많이 듣고 고전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인생은 한번 왔다 가는 것입니다. 제대로 먹고 마시고 잘 놀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든지 제대로 하고 제대로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문화살롱을 여러 곳에 만들어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진 만요를 부르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질펀한 인생을 살아보는 것이지요.” “만요는 나의 인생이고, 정체성”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가수 최은진은 ‘아리랑 소리꾼’으로 불려…근대가요 13곡 음반 내 1960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에 들어갔으나 중도에 그만두고 극단 미추홀 창단 멤버로 참여했다. 이후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방자전’과 ‘약장수’ ‘오구’ ‘산씻김’ 등에 출연했다. 결혼으로 활동을 잠시 접었다가 1999년 성대모사 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차지하면서 다시 무대에 섰다. 2001년 환경 보호를 주장하는 ‘쓰레기 퍼포먼스’를 펼쳤다. 2003년 ‘다시 찾은 아리랑’이라는 음반을 낸 후 ‘아리랑 소리꾼’으로 불렸다. 2008년 두산 아트센터의 기획콘서트 ‘천변풍경 1930’ 무대에 강산에, 백현진, 이상은 등과 참여해 1930년대에 유행했던 만요를 선보였다. 2010년에는 ‘풍각쟁이 은진, 새로 부른 근대가요 13곡’ 음반을 냈다. 요즘에는 서울 안국동에 있는 자신의 문화공간 아리랑에서 만요를 알리고 있다. 틈틈이 여기저기에서 초청을 받고 작은 공연을 열기도 한다.
  • 성실 납세·봉사활동 모범… 공유·하지원 대통령 표창

    정부가 국민들의 성실한 납세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고 건전한 납세의식을 높이기 위해 매년 3월 3일로 지정한 ‘납세자의 날’ 기념식이 올해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일 열린 제48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세제, 세정 분야의 비정상적 관행을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현 부총리는 축사를 통해 “‘세금 다 내면 바보’라든지, ‘월급쟁이만 봉’이라는 말이 진실인 양 통용되는 불편한 현실을 반드시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모범납세자 316명, 세정협조자 66명, 유공공무원 190명, 우수기관 8개에 대한 시상식도 진행됐다. 성실납세자에게 돌아가는 가장 큰 상인 금탑산업훈장은 세계 최초로 천연식물성 금속가공유를 개발해 산업발전에 기여하고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한 한국하우톤(대표이사 임석순)에 돌아갔다. 라파메디앙스 정형외과의원(대표 김용욱)과 포스코피앤에스(대표이사 권영태)는 은탑산업훈장을 받는 등 모범납세자 14명이 훈장을 받았다. 지난해 1000억원 이상의 세금을 납부한 6개 기업에는 ‘고액 납세의 탑’이 수여됐다. 가장 많은 세금을 낸 삼성전자가 ‘국세 2조 5000억원 탑’을 받았다. 현대모비스는 ‘국세 4000억원 탑’, 한화생명보험과 삼성디스플레이는 ‘국세 3000억원 탑’, 대우인터내셔널은 ‘국세 2000억원 탑’, 에스케이엔에스는 ‘국세 1000억원 탑’을 수상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 영화배우 공유(본명 공지철), 하지원(본명 전해림)씨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공씨와 하씨는 그동안 성실하게 세금을 내고 각종 사회봉사 활동을 펼쳐 국민들의 귀감이 된 점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서울광장] 일상화된 소외의 절망, 연대가 희망이다/박찬구 논설위원

    [서울광장] 일상화된 소외의 절망, 연대가 희망이다/박찬구 논설위원

    ‘스마트폰으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묵념’, 공감 가는 카피다. 스마트폰이 ‘대화’와 ‘가족’, ‘열정’, ‘관심’을 우리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잊히게 하는 세태를 꼬집었다. 먼 훗날 사람은 등이 굽고, 손가락이 길어지며, 지문이 옅어지고, 눈은 흐릿해질지 모른다. 스마트폰에 밀려 대화와 열정이 사라지면 일상에서 개인은 소외된다. 상실이며 단절이다. 첨단기술의 배후에는 거대 기업의 수익 논리와 권력화한 자본이 도사리고 있다. 의제 설정부터 프레임 구성까지, 첨단기기는 우리의 일상을 연출하고 조정하려 든다. 하루하루 일상에서 시민은 ‘기술로부터의 소외’에 직면하고 있다. 일상의 소외는 시장에서도 일어난다. 잘나가던 회사 간부도 거리에만 나가면 맥없이 무너진다. 지난해 부도를 낸 자영업자의 47.6%가 50대 베이비붐 세대다. 거대 자본이 점령한 시장, 갑을병정의 구조가 굳어진 골목에서 자영업자에게 돌아갈 몫이라고 해봐야 단 몇 개월간의 희망과 미련, 끝내 맞게 되는 절망이 거의 전부인 시절이다. 부활의 신화는 드라마의 비현실이다. 풀빵 장수는 한겨울도 못 버텨 천막을 걷고, 거리의 행상은 꾸깃한 천원짜리 지폐를 몇 번이나 세어 가며 하루를 접는다. 영하의 밤에도 우체국 앞 공터를 떠나지 못하는 중년의 행상은 “장사가 너무 안 돼요”라며 때묻은 면장갑만 툭툭 털어댄다. 열심히 정직하게 일하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는 자본이 만들어낸 허구이며 착시일 뿐인가. 일상에서 이웃과 가족은 ‘시장으로부터의 소외’를 피할 수 없다. 공동체의 가치와 시장의 가치가 지속 가능한 성장의 수레를 이끄는 두 바퀴라고 했던가. 자본과 시장으로부터의 소외가 구조화된 일상에서는 헛된 얘기다. 노동은 자본과 제도 권력으로부터 소외되고 배제된다. 부당한 용역계약서로 대학의 청소노동자는 잠재적 범죄자가 되고, 격일로 맞교대 하는 아파트 경비원 상당수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울며 겨자 먹기로 움켜쥔다. 재벌 계열사가 하청업체를 상대로 단가 후려치기를 자행하는 사회에서 상생이니, 적하효과니 외치는 건 뻔뻔스러운 일이다. 노조를 옥죄는 손배·가압류의 악령에 노동자가 짓눌림을 당해도 국회와 정치는 두 손을 놓고 있다. 손배청구 요건과 범위를 강화하는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지만 정치권은 관심 밖이다. 시민의 일상은 ‘정치와 권력으로부터의 소외’로 피폐해진다. 사회 시스템과 권력 구조가 후진적인 사회일수록 시민은 정치와 권력의 주체가 아니라 수단으로 밀려난다. 공적 이슈는 시민들이 활발하게 토론하는 공론(公論)의 장(public forum)을 거치기보다 정치와 권력에 의해 자의적으로 규정되고 좌지우지된다. 기초연금법과 의료민영화, 역사교과서 문제, 정보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이 그렇다. 자율적인 시민의 영역이나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 사상과 이념의 자유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소외된 시민은 ‘홀로’ 남는다. 신용불량과 병마에 시달리던 세 모녀는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고, 빚더미 아버지를 따라 열일곱 소녀가 유서를 쓴다. 나면서부터 비극인 삶이 어디 있으랴마는, 빈부가 세습되고 최소한의 안전망도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누군들 안온한 일상을 장담할 수 있을까. 일상이 소외되고 소외가 일상화되는 사회를 우리는 살고 있다. ‘중산층 복원’은 상투적인 레토릭으로 와 닿는다. 허망한 추락을 반복할 수는 없다. 주변과 나락에서의 탈출, 그리고 일상의 회복은 오롯이 시민의 몫이다. 국가는 물론 선출된 권력조차 외면하는 일이다. 손배·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를 돕기 위해 4만 7000원 기부 운동에 동참하고 나아가 사회적 기구를 띄운 것은 미약할지 몰라도 의미 있는 연대의 시작이다. 흩어지고 파편이 된 개인과 개인이 서로 손잡고 희망을 모색하는 작업, 그것이 구조화된 일상의 소외에서 벗어나 ‘사람’을 되찾는 대안의 첫걸음이 되리라 믿는다. c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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