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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작자 오태석씨 직접 출연 화제/「백마강 달밤에」 앙코르 공연

    지난해 베세토연극제 참가작인 극단 목화레퍼토리의 「백마강 달밤에」가 21일부터 2월 5일까지 하오 3시와 7시30분 연세대 1백주년기념관 콘서트홀에서 다시 선보인다. 특히 이번에는 이 작품의 원작자이자 연출자인 오태석씨가 직접 출연키로해 화제가 되고 있다.「태」,「비닐하우스」,「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등 화제작을 잇따라 발표해 온 오씨는 70년대 중반 이호재씨의 모노드라마 「약장수」에 고수로 등장,무대에 오른 적은 있었지만 배우로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모교의 1백주년기념관 무대에서 동네사람인 「구서방」으로 군중장면 등에 출연,공연 시간의 절반 가량이나 무대 위에서 배우로 참여한다. 오씨는 이작품에서 등장인물 사이에 맺힌 한풀기를 통해 바로 우리 역사의 용서와 화해를 추구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백마강…」은 황산벌 전투에서 죽은 백제 병사들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별신굿을 올리는 충청도 어느 마을의 늙은 무당과 그 수양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한국 현대연극의 주요한 한 흐름을 대표하는 오씨의 무한한 상상력과 우리 전통의 뿌리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93년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공연으로 초연된 「백마강…」은 지난 5일 시작된 종합예술제전 「열린 문화축제」의 마지막 프로그램.이번 공연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정은표 김남숙 정원중 이상희 장진각 등 출연.공연시간 하오 3시·7시30분.문의 361­4507.
  • 김지섭 의사/“일제고관 제거”상해의열단서 활약(이달의 독립운동가)

    ◎총독부·동양척식회사 등 폭파 시도/23년 도쿄서 「일왕폭사 거사」중 잡혀 『한국사람은 한국의 독립을 위해 독립선언서에서 명시한 바와 같이 최후의 일인,최후의 일각까지 항쟁할 것이다』 일본 도쿄 왕궁입구에 폭탄을 던진 뒤 일경에 체포된 추강 김지섭 의사(1884년7월21일∼1928년2월20일)가 일제 재판정에서 밝힌 최후진술내용이다.선생은 이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일본 감옥에서 복역중 44세의 장년에 순국했다. 선생은 유학자가 많은 경북 안동에서 출생,어릴 때부터 한학을 배웠으나 일어를 독학으로 익히는등 새로운 문물에도 관심이 깊었다.21세때 금산지방법원 서기 겸 일어통역으로 첫 일을 시작한 선생은 1910년8월 경술국치로 국권이 상실되자 조국독립을 위해 싸울 것을 결심했다.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간 선생은 김원봉·곽재기·김시현 등 동지들과 시국토론등을 가지며 독립운동방법을 모색했다. 선생은 1919년 3·1운동이 펼쳐지자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서기로 하고 단신으로 만주로 망명했다.1922년 여름 상해에서무장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한 선생은 일제고관을 제거,민족정기를 고취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거사에 필요한 폭탄마련에 힘을 쏟았다.이듬해 상해에서 각계파로 분열된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위해 개최된 국민대표대회에 참석한 뒤 국내로 폭탄을 들여가기 위해 애를 썼다. 선생은 김시현등과 함께 신의주를 거쳐 폭탄의 일부를 국내반입하는 데 성공했으며 나머지는 의열단원인 경기도 경찰부 경부 황옥을 통해 서울로 운반했다.선생등은 이에 따라 3월15일을 기해 총독부·경찰서·재판소·동양척식회사·매일신보등의 건물을 일제히 폭파하기로 하고 현장답사등 사전준비를 펼쳤다. 그러나 이 거사는 김시현등 동지 3명이 체포되는 바람에 무산됐으며 선생은 김원봉등 동지 2명과 함께 일경을 피해 상해로 피신했다.이 거사가 실패하자 독립운동가 사이에는 한인경찰인 황옥이 일경의 밀명으로 의열단에 가입한 뒤 거사전모를 일경에 밀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일었으나 정확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후 선생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일왕을 타도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판단,일왕 폭사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당시는 일제가 관동대지진(1923년9월1일)으로 고조된 국민의 불만을 한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한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무고한 한인 6천여명을 학살한 시점이었다.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은 한인 학살소식을 듣고 동포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일본 본토에서 폭탄을 투척키로 결의했다.선생은 때마침 일제가 도쿄에서 제국의회를 개최한다는 신문내용을 보고 의열단장 김원봉에게 자신이 의회에 폭탄투척을 감행하겠다고 자원했다. 선생은 신분을 일본인 밀수업자로 위장하고 상해에서 외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떠났다.이때 선생은 『평생 뜻한 바 갈 길 정하였으니 고향을 향하는 길 다시 묻지 않으리』라며 애국충정의 웅지를 시로 남겼다.항해 10여일만에 일본 복강현 안벽에 도착한 선생은 의복등을 전당포에 맡겨 여비를 마련한 뒤 도쿄를 찾아갔다.선생은 그러나 예정된 제국의회가 휴회되자 대신 왕궁에 폭탄을 던지기로 계획을 바꿨다.선생은 도쿄지도를 구해 지리를 익힌 뒤 24년1월5일 하오7시쯤 왕궁과 가까운 이중교에서 왕궁을 향해 폭탄 3개를 투척했다.관광객처럼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왕궁까지 들어가 폭탄을 던질 기회를 찾았으나 일경이 갑자기 검문을 하는 바람에 서둘러 폭탄을 던진 것이었다. 선생은 검문일경을 밀어붙이고 폭탄 1개를 던졌으나 도화선 고장으로 불발되자 다시 이중교 중앙으로 달려나가면서 다른 2개를 던졌다.그러나 이 폭탄들은 습기에 젖어 폭발력이 약해 그다지 피해는 없었다.선생은 곧 일경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됐으며 1925년8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 3년여만에 의문속에 순국했다.일제는 선생이 순국한뒤 사인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서둘러 시신을 화장해버렸다.정부는 광복후 경북 예천군 대지동에 선생의 유택을 마련했으며 선생의 공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말없는 경고 새겨들을줄 알아야(박갑천칼럼)

    세상에는 말이나 글로 하는 경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어떤 경고 가운데는 오관이나 오장육부에 직접 와닿는 것도 있다.또 제6감을 통해서 전달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한데 사람들은 이 후자의 경우들을 네뚜리로 알면서 그 의미를 희석시키려 들기도 한다.사실은 더 두려운 것인데도 말이다. 억울하고 슬프게 죽은 단종이 시공을 뛰어넘어서 하는 경고도 있을수 있는 것이 세상사.한준겸의 「유천차기」에 보이는 얘기를 「옛사람들의 갖은소리」로만 돌려버릴 일은 아니다. 노산군(단종의 강등된 호칭)이 작고한뒤 제사도 안지냈을 뿐아니라 묘지에서 나무하고 소치는 일도 금하지 않았더니 「요괴한일」이 말할수 없이 일어났다.그중에서도 주목되는 것이 영월군수 가운데 「폭사자」가 많았다는 사실이다.이게 말하자면 원혼의 「경고」였다고 할것이다.그걸 알아들은 사람이 낙촌 박충원이었다.파직되었다가 영월군수로 재기용된 그는 부임하는날 제사부터 지냈다.그러자 「요괴스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중병도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그사이 몇번이고 경고가 온다.다만 사람들이 그걸 대수롭잖게 본다는 것 뿐이다.가령 당뇨병을 조심하라는 경고로서는 목이 마르고 나른해지며 쉬이 지치는 증상을 보인다.무시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은 고혈압의 경보일수 있다.미열의 계속,손발이 자주 저리는일,어지럼증도 각종질환에의 경고이다.하다못해 손톱이 세로 째지는 것도 내장기관의 이상을 알리는 경계경보이다.첫단계에서 듣지않으면 2단계 3단계의 경고를 발한다.하건만 사람들은 야발만 떨고 있다가 천수를 다하지 못하는 죽음을 맞는다. 얼마전 세계보건기구는 공식보고된 지구촌 에이즈환자가 1백만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그러면서 실제환자는 4백50만은 될것이고 바이러스 감염자는 1천9백만에 이른다고 덧붙인다.이게 그릇된 성생활의 옰이다.그렇건만 사람들은 지구촌 멸망에의 이경고를 듣지 못한다.듣지 않는다.무서운 천형의 비웃음소리가 들리는양하다. 『하늘이 언제 말을 하더냐』(천하언재:「논어」양화편).경고를 못듣는게 어디 에이즈의 경우 뿐인가.도덕성의붕괴하며 공해에 대한 경고도 얼마나 잦으며 심각한가.어,참으로 두렵구나.
  • 피폭한국인 유골 49년째 방치/히로시마 본원사서 86구 발견

    ◎귀국하건 징요자들,태풍만나 몰사/유해관리 일인,“고향에 안장됐으면” 지난 44년 경기도 지방에서 20세 전후의 젊은 나이로 강제 징용당해 히로시마시 미쓰비시중공업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며 노역하다 피폭의 아픔까지 겪은 징용한국인 86구의 유골이 3일 발견됐다.발견된 곳은 히로시마 중구 사정에 자리한 본원사 광도별원 불상밑. ○목선 빌려 귀향길 9개의 상자에 뒤섞여 있는 유골은 지난 45년 9월15일 일본정부의 징용해제 결정에 따라 피폭 한달여만에 「죽음의 땅」 히로시마를 떠난 2백41명의 징용한국인과 5명의 민간인 가운데 일부의 원혼들인 것으로 보인다.규슈지방의 호전항에서 전세낸 조그만한 목선을 타고 해방된 조국을 향해 떠난 이들은 갑자기 불어닥친 「마크라자키」 태풍으로 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사실은 징용한국인들을 미쓰비시중공업에서 히로시마역까지 인솔한 일본인 후가가와 무네도시(심천종준)의 끈질긴 추적 끝에 의해 밝혀졌다. ○67년 위령비 찾아 당시 모두 2백20여척의 배가 태풍으로 침몰했고,규슈 쓰시마섬이키섬 등지의 해안에는 수백구의 한국인 익사체가 밀려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현지인의 증언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알아낸 후가가와씨는 그해 10월 나가사키현에 속해있는 이키섬 키요시야마에서 한국인 위령비를 발견했다.후가가와씨는 지난 67년 3월19일 건립된 「대한민국민 위령비」라는 비석을 통해 이들이 이 섬에 표류해온 징용한국인의 시신인 것으로 확신하고 이를 내용으로 한 「진혼의 해협」이라는 책을 74년 출간하기도 했다. 후가가와씨는 76년 8월10일 이키섬 해안에 가매장돼 있던 이들 유골을 발굴,히로시마의 선교사로 옮긴 뒤 84년 이 유골들에 대한 방사능검사를 통해 피폭 징용한국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그러나 한·일정부의 외면과 이들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길이 없어유골들은 그대로 방치되어 왔다. ○도쿄에도 45구나 현재 지병으로 말을 잘하지 못하는 후가가와씨는 『유골들은 현재 무료로 안치되어 있으나 언제 옮기게 될지 모르는 상태』라면서 하루빨리 이 유골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그러나이 유골 말고도 도쿄의 유천사에는 이키섬 아시베 납골당에 보관되어 있던 신원불명인 45구의 징용한국인 유골들이 무관심속에 버려져있어 후가가와씨의 기원이 가까운 장래에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 아!르완다(외언내언)

    터널 같은 구덩이에 거적덩어리를 쏟아붓고 있었다.처음 그것이 화면에 비쳤을 때는 그게 무엇인지 몰라보았다.나중에사 그것이 사람들의 시체라는 설명을 듣고 전신에서 기력이 싸악 빠져나가는 무력감이 엄습했다.우리가 함께 숨쉬고있는 지구촌 어딘가에 그런 떼주검의 구덩이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를 찍기 위한 세트도 아니고 옛날에 찍어둔 낡은 필름도 아닌,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도 그치지 않을 현실의 일이다.유엔 난민기구라는 것도 있고 인도적 차원의 구호기구들이 활동도 하고있다는 이 20세기 말미의 지구위에서 이런 일이 이렇게 끊이지 않는다.인간의 존엄성같은 것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이런 현상이 사람끼리의 분쟁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에 몸서리가 쳐진다. 학살이 무서워 고향을 떠나와서 늪지의 하등생물처럼 죽어가는 「사람」들.그들의 한맺힌 원혼이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 역습을 하러오지는 않을까 두려움이 들 지경이다.나라가 국민에게 살길을 열어주고 그럴만한 국력으로국제간에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며 생존을 보장하는 능력을 확보해주지 못하면 인민들이 이렇게 하등동물같은 운명에 처한다. 기근으로 팔다리가 자코메티의 철사조각처럼 가늘어지고 배만 바람든 공처럼 부풀어진 몰골은,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어준 신의 뜻을 모독하는 몰골이다.분쟁을 일으킨 민족에게는 죄없는 인민에게까지 이렇게 벌주는 것이 신의 방침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르완다로 한국인 한사람이 구호활동길을 떠났다고 한다.그 한사람의 존재로 우리 모두가 대속받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마음으로 위안을 삼기에는 적지 않은 힘이 된다.근본적으로 학살도 주저치 않는 악마적 이기심이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런 죽음은 지구촌 어디서 또 잉태되고 있을지 알수 없는 일이다.사람에 대한 신뢰를 덧없이 저버리는 이런 일이 너무 슬프다.
  • ’94 전통문화축제 7일 화려한 팡파르/내고장 향토문화제 꽃피운다

    ◎진해군항제 시작으로 11월까지 전국 7곳서/정인원 3천명 참가… 전토예술 세계화 역점/의상·소도구등 2만점 동원… 예산 총4억원 투입/서울신문사·금성 공동주최 「94 향토문화축제 지원사업」의 첫번째 결실인 「충무공 승전행차행렬」이 오는 7일 군항제가 열리는 경남 진해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올해로 5회를 맞는 「향토문화축제 지원사업」은 서울신문사와 금성사가 우리의 전통축제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고 지역문화를 육성하기 위해 지난 90년부터 시작한 것.KBS의 후원아래 회를 거듭할수록 지역민의 폭넓은 호응을 얻고있는 이 축제는 이제는 전국 각 지역 향토문화제의 대표적 행사로 뿌리를 내렸다.올해는 특히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지역축제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방침으로,행사진행도 단순행차행렬 일변도에서 벗어나 가·무·낙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지는 역동적인 무대를 꾸미는데 역점을 둘 예정이어서 한층 관심을 모은다. ○「축제예술」이 진행 올해는 전국의 대표적인 향토문화제 기간중 각 지역의 특색과 전통이 담긴 일곱차례의 축제행사를 펼친다.이벤트전문기획사인 「축제예술」(대표 허규)이 연출·진행을 맡은 이번 행사에는 4억여원이 투입됐으며 출연할 총인원은 3천여명,의상·소도구·장비등 예상 소요물품도 2만점에 이르는 등 완벽을 기해 어느해보다 알찬 축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주최측은 전통축제행렬을 해당지역의 역사적·문화적 특성을 살린 축제로 발전시켜나가기 위해 현지의 민속놀이및 민요와의 연관성을 고려,내용을 재구성했다.또 각 지역의 문화예술인·향토사가등 지역문화 담당자들과의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축제의 완성도를 높인 것도 올해의 특징.이밖에 지역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향토문화제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지난해에 이어 지역유지등 현지주민과 관계저명인사등을 중심인물로 출연케 할 예정이다. 전국을 신명난 축제의 마당으로 만들게 될 이번 행사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본다. ▷진해 군항제◁ 충무공의 기개가 어린 충절의 고장 진해에서 벚꽃 만발한 가운데 펼쳐질 군항제가 7일 우렁찬 팡파르를 울린다. 올해로 32회를 맞는 군항제는 이충무공호국정신선양회가 주최하는 종합향토예술제.「충무공승전행차」는 경축식이 열리는 진해 공설운동장에서 필승로∼충무공시비∼진해역을 거쳐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2·5㎞구간에서 펼쳐진다. 경축식은 충무공의 안골포해전 승리를 알리는 파발마가 폭죽과 연막탄이 터지는 가운데 식장으로 달려 들어오며 시작된다.이어 충무공이 취타대의 주악속에 입장하면 최초의 승리를 알리는 장계가 낭송되고 승전무와 검무·사물놀이등 축하공연이 펼쳐진다.경축식이 끝나면 사물놀이패와 충무공의 영정을 앞세운 승전행차행렬이 출발한다.행렬에는 거북선과 판옥선이 등장해 충무공의 기개를 드높인다.또 시내중심가에서는 축포속에 판굿을 벌이는등 풍성한 볼거리를 마련,주민과 관광객들의 적극적인 참여하에 축제분위기의 절정을 이뤄낸다는 계획이다. ▷진도 영등제◁ 전남 진도군 회동마을 신비의 바닷길 현장에서 「영등살놀이」가 다채롭게 펼쳐진다.25·26일 이틀간 진행될 이번 공연은 전남 진도지방에 전해내려오는 「영등살」에 얽힌 설화와 이 지방의 민속예술을 축제극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25일 영등제의 시작을 알리는 고유제에 이어 흥겨운 신뱃노래 연주속에 서울가무악예술단의 신장기춤이 펼쳐진다.본행사날인 26일에는 길놀이와 씻김굿을 통해 「영등살」설화의 주인공인 「뽕할머니」를 모셔오고 진도의 풍속에 따라 재액을 쫓고 바다의 수호신을 맞아들이는 무속의식도 선보인다.한편 영등살은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마을 사이 2.8㎞에 이르는 바다가 매년 음력 3월초 간만의 차로 바닷길을 이루는 현상으로 외국에는 한국판 「모세의 기적」으로 잘 알려져있다. ▷남원 춘향제◁ ○국악의 문화상품화 판소리의 고향인 남원고을에서 열리는 춘향제는 정절의 상징인 춘향의 얼을 부각시키고 한국여인의 아름다움을 드날리기 위해 춘향문화선양회가 마련한 향토축제.64회의 연륜을 자랑하는 행사답게 실속있는 내용으로 꾸며진다.5월18일 광한루 특설무대에서 펼쳐질 「춘향전」(이몽룡 타령)은 올해가 국악의 해인 만큼 「국악의 문화상품화」에 무게중심을 둔 것이 특징.이에 따라 단순한 행렬위주의행사 대신 인간문화재 박동진·오정숙·은희진·박후성씨등 국내 정상급 명창들이 대거 참여,지금은 사라진 협율사창극을 재현해내는 이색무대로 꾸민다.이번에 선보일 춘향전은 구한말 전문창극단체인 협률사에서 공연되었던 창극을 오늘에 다시 본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부여 백제문화제◁ 올해로 40회를 맞는 백제문화제가 오는 10월2일 백제의 고도인 부여 구드레공원에서 열린다.「백제의 영광」을 내세운 이번 행사에는 중요 무형문화재 제58호인 줄타기와 경서도 소리를 위주로 꾸민다.축제의 압권은 환상적인 울림이 돋보이는 가무악 「다스림」공연.특히 이 춤무대는 백제선현의 원혼을 달래고 인간의 화합과 전진을 다짐하는 내용의 검무가 물결처럼 이어지는 장관을 연출해낼 예정이어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경주 신라문화제◁ 오는 10월9일로 예정된 신라문화제는 신라문화선양회가 찬란했던 신라의 문화를 보전·계승하기 위해 주관하는 향토축제.국악대제전·미술대전·궁도대회등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된다.이번 문화제에서도 「태종무열왕 행차행렬」을 재현한다.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진 태종무열왕을 중심으로 김유신장군과 화랑의 행렬을 편성,민족의 숙원인 통일의 사명감을 고취시킨다는 방침.태종무열왕을 앞세운 행렬은 취타대·농악대등을 포함,4백여명으로 편성할 예정이다. ▷충주 우륵문화제◁ ○충효사상 재조명 신라의 악사 우륵을 기리는 우륵문화제는 올해 24회로 오는 10월12일 충주 공설운동장과 시내일원에서 열릴예정이다.이번에 마련된 「임경업장군 출진행렬」은 금나라와 싸우기 위해 전장에 나서는 임경업 장군의 장렬한 모습을 행렬로 재현한 것.안으로는 이괄의 난을 평정하고 밖으로는 왜적을 물리치려던 장군의 기개와 국난극복 의지·충효사상을 재조명한다는 것이 기획의도다.장군을 모시는 청신과정을 통해 장군의 혼을 받드는 제의식이 서두를 장식한다.이어 태껸시연등으로 흥을 돋우며 취타·화관무등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는 위안잔치가 벌어진다.행렬은 공설운동장에서 시작,시청∼제1·2로터리를 거쳐 중앙공원에 이르는 3㎞구간에서 펼쳐진다. ▷진주 개천예술제◁개천예술제는 경상남도가 해마다 거도적으로 벌이는 종합예술제이다.오는 11월4일 선보일 「김시민 목사행렬」은 진주성을 죽음으로 지킨 선현들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고 진주의 역사적 이미지를 고양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김시민 목사를 중심으로 민·관·군이 한덩어리가 되어 왜적을 물리친 사실을 행렬화한다.특히 이번 행렬은 진주 검무 및 진주 오광대·쾌지나칭칭나네 민요와 민속연희등 특징적인 군무의장형식을 도입해 「고수사전지계」의 투철한 정신을 살린 것이 특징. 전도와 취타대·대고·목사 및 군사·의병·민속연희단의 순으로 진행되며 모두 4백여명이 호흡을 맞춘다.
  • 신춘 춤무대 한국춤 바람/태평무·승무·장고춤서 창작무까지 공연

    ◎김세일라·국수호씨 창작무용 선보여/윤덕경·이윤자씨 충주·정주·부산서 춤판 중견춤꾼들의 의욕적인 춤무대가 신춘무용계를 잇따라 장식,관심을 모으고 있다.김세일라(김세일라무용단 단장),국수호(중앙대 무용학과교수),윤덕경(서원대 무용학과교수),이윤자씨(부산대 무용학과교수)등이 그들.공연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이 한창인 이들은 모두 한국춤 분야에서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고있는 중진들이어서 한층 묵직한 무대가 될것으로 보인다. 「김세일라무용단」은 28·29일(하오7시30분) 93년 공연예술창작활성화 지원작품인 「파야」를 서울 국립극장 대극장무대에 올린다.신라시대 「파야」라는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권력의 광기와 숭고한 사랑의 힘을 절제된 춤언어로 풀어낸 이 작품은 특히 산사에서의 종춤이 압권.이는 인간의 심리적 갈등과 고뇌를 불교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으로 한국무용만이 갖는 독특한 「정중동의 흐름」을 읽게한다. 국수호교수는 춤인생 30년을 결산하는 개인전「춤」을 오는 4월22일(하오7시30분),23일(하오4시·7시30분),24일(하오4시) 서울 국립극장 대극장무대에서 펼친다.우리 민속춤의 동작과 호흡법을 기초로 의욕적인 안무활동을 해온 그가 선보일 무대는 조선조 5백년의 진혼무인 45분짜리 대작「명성황후」를 비롯,독무「신무1­신고」,베트남전의 원혼들에게 바치는 「혼의 바다」등.이 가운데 특히 서울정도 6백년 기념무대로 마련된 「명성황후」는 한국판 진혼곡인 종묘제례악과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합성,동서양음악의 만남을 시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윤덕경무용단」은 30일부터(하오7시)사흘간 충주(충주문화회관),대전(우송문화회관),정주(정읍사예술회관)등 3개시에서 지방순회공연을 갖는다.승무·태평무·살풀이·장구춤등 전통무용 외에 「보이지 않는 문」등 창작춤도 선보일 이번 공연은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인 윤교수의 11년 안무생활을 중간점검해보는 무대.왕성한 실험정신으로 우리춤의 주제찾기에 골몰해온 그는 『죽음과 삶을 동질적으로 보는 한국인의 심성을 삶의 통과의례를 통해 표현하는데 안무의 역점을 뒀다』고 말했다. 이밖에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이수자로 우리춤의 맥을 잇기위해 노력해온 이윤자교수의 다섯번째 개인춤판이 29일 하오7시30분 부산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다.「이윤자 춤­화두」로 명명된 이번 공연에서는 우리 근대무용의 시조라할 한성준옹이 다양한 춤사위를 집대성해 만든 전통민속춤 「태평무」를 비롯,창작무용「제행무상,늘 새로운 현재여!」「히말라야 설음」등 3편의 작품이 선보인다. 한편 중견춤꾼들의 이같은 풍성한 봄맞이무대는 대부분 인간적 삶의 근원을 모색하는 완성도높은 대작들로 꾸며지고있어 한 무용가의 개인적 자화상을 엿보는것 이상의 철학적 의미를 갖게한다.
  • 어제 전북부안서 임란 코무덤 원혼 안장

    【부안=조승용기자】 임진왜란때 왜병들이 승전의 표시로 베어간 뒤 일본에 방치했던 우리 선조들의 코무덤(비총)이 4백여년만에 고향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를 추모하는 「코무덤환국안장대회」가 26일 상오 11시 박삼중스님(부산 자비사 주지),유호준목사,일본 불교계 인사,주민 등 1천5백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진왜란 전적지인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호벌치에서 엄숙히 거행됐다.이날 행사는 선조들의 원혼을 달래는 추모법요와 안장집례,유체안장,영가천도대제 등 4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 임란 코무덤 오늘 봉환/부안 호벌치에… 어제 부산서 노제

    【부산=이기철기자】 임진왜란때 왜군에 의해 살륙된 뒤 일본 오카야마현의 「코무덤」에 묻혀 있던 선조들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한 노제가 25일 하오 부산시 동래구 사직운동장앞 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노제는 삼귀의례와 심경봉독·헌향·헌화에 이어 한·일 양측 각계 인사의 추도사와 조사 순으로 진행됐으며 원혼을 달래기 위한 고전무용가 홍복순씨(40·여)의 「살풀이 춤」도 펼쳐졌다. 노제를 마친 「코무덤」영령들의 위패와 유골함은 남해고속도로를 통해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호벌치로 떠났으며 26일 열리게 될 임진왜란 비총 환국 안장추모대회」가 끝난뒤 영구히 안장된다.
  • 페리호희생자 진혼제/격포앞 해상서… 2천명 참석

    【부안=조승용기자】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영가진혼천도제가 11일 하오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앞 해상에서 열렸다.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김제 금산사 주최로 열린 이날 진혼제에는 유가족 5백여명과 스님,관계 공무원 등 2천여명이 참석했다. 금산사 주지 월주스님(55)은 진혼법어를 통해 『이번 희생자들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 주위의 수많은 문제점들을 깨우쳐 준 것』이라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참석자들은 이어 완도카페리 5호 등 2대의 여객선을 타고 사고해역에 도착해 선상진혼제를 지냈다. 한편 이에앞서 서해훼리참사 유가족배상대책위원회(위원장 박경국·39)는 이날 상오 변산해수욕장에서 유가족총회를 열고 정부에 배상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유가족들은 ▲희생자 원혼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탑 건립 ▲연안여객선의 현대화 등 5개항을 정부에 촉구했다.
  • 백제혼의 귀환(외언내언)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망한 것은 서기660년.수도인 사비성(부여)이 함락되면서 6백년의 왕조 백제는 허무한 종언을 고한다.그러나 백제 유민들의 부흥운동은 그뒤 4년이나 계속되어 임존성(대흥)의 흑치상지와 주류성을 근거로 한 왕족 복신은 2백여개성을 함락하고 한때 사비성을 포위공격하는 위세를 보이기도 했다.그러나 역사의 대세는 돌이킬 수 없는듯 강력했던 부흥운동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만다. 백제가 멸망한 뒤 당나라는 왕과 종친·귀족 88명및 백성 1만2천8백여명을 포로로 끌고간다.망국의 치욕을 피해 많은 백제의 왕족과 귀족·고관등 유민들이 일본으로 망명한다.백제와 위는 전통적인 우호관계가 유지되어 왔으며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위의 원군이 출병할 정도였다. 백제인들은 일찍부터 일본에 한문과 불교를 전해주는등 미개한 위에 문화와 기술을 전파해준다.7세기 전반 일본이 자랑하는 아스카(비조)문화는 실상 백제문화의 연장 혹은 그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당시 일본에서 「구다라노 모노」(백제의 물건)란 말은 최상품을 지칭하는 말이었다니 백제문물에 대한 일본인들의 동경심을 짐작할만하다. 왜국에 귀화한 백제인들은 정치·학문·예술·기술 분야에서 지도적 위치에서 활약했다.절을 세워주고 불상을 만들어주고 성을 쌓아주었으며 양잠기술도 가르쳐주었다. 최근 일본 미야자키현 남향촌의 주민 1백여명이 백제의 왕족인 정가왕과 복지왕부자의 신위를 모시고 부여를 찾아왔다.실로 1천3백년만의 영혼의 환국이다.백제의 왕릉이 집결된 능산리에서 고유제를 지내고 제사도 올렸다. 또 신위를 모시고 사비성문에서 궁궐터가 있는 시내로,다시 백제를 떠났던 금강 구드래나루까지 행렬을 갖기도 했다.주민들은 왕족이 사용하던 동경과 말방울등 유물도 잘 보존했다가 이번에 엑스포 전시관에 출품했다.1천3백년전 조상의 원혼을 달래주려 한 남향촌 주민들의 집념과 정성이 참으로 돋보인다.
  • 백제왕족 신위·유품 부여 귀환/일서 1천3백여년만에/오늘 귀환행렬

    ◎동경 등 17점 엑스포 전시/일 미야자키현서 향토신으로 모셔 【부여=최용규기자】 서기 6백60년에 망국한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갔던 백제 마지막 왕족의 신위와 유품들이 1천3백여년만에 백제의 고도 부여 품에 다시 안겼다. 대전엑스포조직위는 25일 일본 미야자키(궁기)현과 공동으로 「백제촌」으로 불리는 미야자키현 난고(남향)와 기조초(목성정)에서 향토신으로 모시던 백제의 왕족 정가왕과 복지왕의 신위를 백제의 옛터로 봉환해왔다.이날 하오 5시쯤 2백여명의 일본인 봉환단과 함께 부여에 도착한 신위와 유품들은 3천궁녀의 넋이 서린 낙화암이 바라다보이는 부여읍 관북리 부소산 입구 부여객사에 안치됐다. 「백제왕위신위 고국방문환영위원회」(위원장 유재갑·63)는 26일 부여 능산리 백제왕릉에서 귀국보고제사를 지낸뒤 부소산성 정문인 사비문에서 구드레나루까지 귀환행렬을 갖는다. 이날 행사에서는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백제유민이 구드레나루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던 행렬이 1천3백여년만에 재연된다.귀환행렬에는 부여 주민 3백명과 일본인 2백50명,은산별신제행렬과 사물놀이패·농악대행렬이 참여해 돌아온 백제왕족의 원혼을 달래게 된다. 두왕의 신위는 오는 27일부터 11월 7일까지 대전엑스포장 문예전시관 제2전시실에서 일본에서 백제왕족 유품으로 보존돼온 구리거울·말방울 등 17점의 유물과 함께 일반에 공개된다. 이번 봉환은 지난 89년부터 난고촌 주민들이 「백제마을가꾸기사업」을 추진하면서 부여의 여교사와 사물놀이 강사를 초빙,한글과 국악을 배우는 등 우리나라와 민간교류를 해오는 과정에서 이루어지게 됐다.난고촌 주민들은 또 일본서기나 고사기등 일본역사에 백제왕족이 6백60년 오사카,나라 등을 거쳐 당시 휴카국으로 불리던 규슈지방의 미야자키현에 정착했다는 기록에 따라 왕족의 신위와 유품을 봉환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여겨온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백제왕족과 유민들은 발달된 백제의 문화와 농업·의학을 현지에 전했으며 복지왕은 기조정에 정착,같이 피난온 백제유민들과 마을을 이루며 산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 다시 잠긴 여객선/남기창 전국부기자(오늘의 눈)

    17일 밤 서해훼리호가 침몰됐던 위도 앞바다. 공룡같은 모습의 인양선 설악호가 철제로프로 서해훼리호를 붙들고 있었다.거센 파도가 서해훼리호의 선체를 마구 때렸다.파도가 칠때마다 서해훼리호를 붙들고 있는 로프가 흔들거렸다.웬지 불길한 예감이 칠흙같은 바다위로 엄습해 왔다. 시계는 11시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순간,서해훼리호를 지탱하고 있던 두가닥 로프가 서로 엉켜 끊어졌다. 『쏴…철썩…』하는 파도소리와 함께 서해훼리호는 바다로 잠겨버렸다.인양후 12시간만이었다.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힘겨운 작업끝에 건져낸 배가 허무하게 다시 침몰한 것이다. 설악호의 로프는 왜 끊어졌는가. 위도앞바다의 원혼이 모질기도 하다는 다소 미신섞인 한탄에 앞서 서해훼리호의 재침몰은 또하나의 「예견된 사고」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구조대는 선체가 수면 위로 들어올려지자 선체의 물을 빼고 개펄을 제거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이 과정에서 설악호의 크레인이 서해훼리호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절단됐을 가능성이 크다.설악호 기술진들은 『크레인 철제로프가 장시간 장력을 받을 경우 끊어질 위험이 높다』며 『선체를 우선 바지선으로 옮겨 사체인양과 개펄제거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게다가 구조대가 많은 시간을 들여 옆으로 누운 선체를 바로세우고 물빼기작업을 강행한 것은 당초 바지선에 올려놓는다는 계획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또 인양후 예인을 위한 사전 준비가 너무 소홀했다. 선실물빼기에 동원된 모터펌프는 고작 2대에 불과,철제로프가 무리한 장력을 받기에 충분할만큼 작업이 더디게 진행됐다. 여기에다 총괄적인 지휘체계 없이 설악호 기술진과 구조대가 따로 작업을 하는 바람에 선체의 하중변화에 따른 대책과 선체내 작업 진행에 손발이 맞지 않았던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 6·25… 모두 잊고들 있는가(사설)

    국토의 허리가 잘려있는 그 상태대로 또 한번의 6·25를 맞는다.동서이념대결의 시대상황으로 해서 광복된 조국이 남북으로 갈려 동족끼리 3년 남짓한 전쟁을 치러야했던 비극이 6·25였다.이제 그 싸움 있게한 냉전시대는 공산주의의 조락과 함께 스러졌건만 지구촌에 유일한 냉전시대 산물로서의 분단국인채로 그날의 아픔을 되새겨야하는 우리의 마음은 쓰리고 착잡해진다. ○「침략상기」와 「통일추구」 사이 6·25에대한 인식은 해가 갈수록 달라져간다.흔히 구세대는 「침략의 상기」로서,전후세대는 「통일의 추구」로서 인식한다고 표현되기도 한다.그만큼 「역사」는 흘렀다.발발한 그해가 43년전이고 보면 지금 50세초로가 국민학교 1∼2학년이었다는 얘기이다.그렇다할때 이 역사적인 민족의 비극을 피부로 지각할수 있었던 세대는 이제 20%안팎으로 좁아들었다고 할것이다.그 현실 속에서 「역사」로서만 객관화하려는 경향은 짙어간다.그탓에선지 일부 체험세대까지 잊어가고들 있고 또 그러한 사고의맥락에서 남북한문제에 접근하는 층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현실은 포성만 멎었다뿐 그날의 연장선상에서 대치가 계속되고있는 상황이다.힘의 균형이 무너질때 언제 그날이 재현될지 모르는 살얼음판 휴전선이 그 대치의 경계가 아닌가.더구나 그날에 전단을 연 북의 무리들은 그날에 내건 「적화통일」의 기치를 이 엄청나게 변화한 지구촌의 시대상황 속에서도 결코 내리지않고 있다.붙들어야할 종주국을 잃은 마당에서 외로워진 생존을 위하여 더 배타적으로 냉혹해졌다고도 할 것이다.핵무기 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세계에 도전장을 낸사실이 그 일단을 말해준다. ○불변의 노선 「적화통일」 그들은 휴전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높이2백m에 이른다는 「전승」기념탑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인민들은 굶주리고 있는데도 6·25를 「이긴전쟁」으로 선전하고자하는 무리한 공사이다.그들은 그렇게 내부결속을 다지면서 개방을 외면한채 체제유지를 위한 폐쇄사회의 틀을 더 굳혀나가고 있다.이와같은 그들의 기본자세를 외면한채 공개사회이기에 지닐수있는 가치관의 잣대로써저들을 재려하는데는 위험이 따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통일의 추구」도 「침략의 상기」를 바탕에 깔때 비로소 올바른 이정표를 세워나갈수 있다고 할것이다. 사실,민주사에 커다란 오점을 찍은 저들의 죄업을 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물질적 피해는 잠시 젖혀두더라도 국군·유엔군의 사망·실종·부상자 1백15만8천명,민간인 1백만명이라는 인명피해만으로도 참상을 알기엔 충분하다.거기에 전재민 4백만명,전쟁미망인 30만명,전쟁고아 6만명,수많은 실향민이 있다.이는 이쪽의 피해일뿐이니 피아를 합치면 얼마로 될것인지 모른다.그 상처를 쉬이 잊을수가 있겠는가.또 잊어서 되겠는가.국립묘지에 잠들어있는 영령은 말할것 없고 수많은 무명용사와 무고하게 죽어간 원혼이 잊지못한다.그뿐이 아니다.그날의 상이용사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보훈병원에 누워 그날을 신음한다.「침략의 상기」를 바탕에 깐 「통일의 추구」여야 한다는 뜻이 여기에 있다. ○잊지 않는것이 재발 막는길 그날에 배후조종한 구소련과는 물론 그날에 우리와 직접 총칼을 맞댄중국과도 수교를 했다.그만큼 세상은 변전했다.그렇건만 유독 북녘의 내나라 내겨레와는 그날과 다름없이 갈라선 채로 오가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한다.그럴수록 겨레의 통일에의 욕구는 용솟음친다.현실보다도 이상쪽에 치우치는 젊은 혈기의 경우는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냉철할수 있어야한다.북한의 인민을 생각하면서도 그 인민과 그 위에 군림하는 집권층은 다르다는 사실에 상도해야한다.남한에 남아도는 쌀을 괭이낯짝같은 체면때문에 못받는것이 집권층이라면 이밥에 고기국물 배부르게 먹기 바라는 것이 인민들이다.감시원 있는데서는 『경애하는…』 운운하다가도 그가 잠시 눈돌리는사이 손을 꼭쥐며 눈물흘리는 고향방문단 누이동생의 마음과 집권층마음을 혼동하지 말자는 뜻이다.하건만 대화의 상대는 불행하게도 그 집권층이다.그점에서 민족을 앞세운 감상이나 여과되지못한 정열은 저들에게 자칫 오판만 심어줄 뿐 지향하는바 통일에의 길에는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겠다. 국민들은 전쟁재발에 대한 우려도 적잖이하고있다(61.1%=91년조사).그러나 그날을 잊지않는 것이 재발을 막는 길임은 두말할것이 없다.잊진않되 민족의 양심으로 돌아올때 용서하고 그 바탕에서 순이에 따를때 통일은 이뤄진다고 할것이다.새문민정부 아래서 그를 위한 지혜와 힘을 모아 나가게 돼야겠다.
  • 군번없는 전몰장병 설악산 합동위령제

    【양양=조성호기자】6·25때 산화한 군번없는 용사 1백50위의 합동위령제가 부처님 오실날인 28일 상오10시 강원도 설악산 관모봉 기슭의 영혈사에서 거행됐다. 이날 합동위령제에서는 6·25가 발발한 1950년부터 휴전때까지 적후방 교란작전이나 적정 탐지에 앞장섰다가 장렬하게 산화한 군번없는 용사들을 지휘한 한호 소령등 1백50인의 삼육동지회원들의 원혼을 달래주었다. 전쟁 당시 용사들의 소속부대인 육군 모부대 부대장 김동석씨(전 함북지사)는 휴전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부하들의 유택을 찾다 불에 탄 영혈사를 적지로 선정,사찰을 재건한 뒤 위패를 봉안해 왔는데 지난해 새 법당과 충영각이 준공됨에 따라 이날 합동위령제를 가졌다. 영혈사는 통일신라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깊은 사찰이다.
  • 망월동과 연희동(김호준/정치평론)

    문민시대에 들어서 처음 맞는 광주민중항쟁의 날,망월동과 연희동의 모습은 정말 대조적이었다.한때 「저주의 땅」이란 원과 한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광주는 「민주성지」로 우뚝 솟았고,대통령을 두명이나 배출한 「현대판 명당」 연희동은 어느새 을씨년스런 「고도」로 변해버린듯 했다. 역사에까지 뻗친 사정과 더불어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문민정부의 뿌리로 자리매김 되면서 일어난 변화였다. 13년전의 그날을 되새기는 광주의 표정은 누가 보기에도 과거와 크게 다른 것이었다.항쟁의 거리 금남로에선 화염병과 최루탄이 사라진 가운데 각종 추모행사가 평화적으로 진행됐고 망월동의 5·18희생자 묘역엔 이제 정권의 눈총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참배객들이 줄을 이었다.과거의 인식으로 볼때 무엇보다도 신기하게 들린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대통령이 보낸 추모화환이 아무런 수난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광주시민들의 고황 깊숙이 맺혔던 한의 응어리가 풀어져 내리면서 화기가 감도는 분위기를 접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날 두 전직대통령이살고 있는 연희동은 마치 중세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두개운 「갑옷」과 방패로 무장한 수천명의 전경이 두 전직대통령의 집에 이르는 골목길들을 가득 메웠고 교통이 차단된 큰 길에선 두 전직대통령을 「체포」하려는 학생시위대와 이를 저지하려는 전경들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그동안 두 전직대통령 덕분으로 범죄없는 치안을 향유하던 연희동 주민들은 갑자기 온동네를 뒤덮은 최루탄 가스로 문민시대의 매서운 맛을 보아야 했다. 문민시대는 망월동과 연희동의 위상과 그 명암을 바꿔 놓았다.서울의 대학가에선 5·18광주사건과 관련하여 두 전직대통령이 유혈진압의 책임을 져야한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만일 그런 대학생들과 법에 따라 두 전직 국가원수에게 안전을 제공해야 할 전경들간의 대치가 연일 계속된다면 연희동은 6공때의 백담사나 다를바 없게 될 것이라고 현지 주민들은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현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고 선언한 대통령의 특별담화가 해묵은 광주문제를 종결짓는 결정적 전기가 되었음은 이번의 광주 표정이 잘 보여주었다.물론 대통령이 제시한 해결방안과 광주시민의 요구가 전적으로 일치한 건 아니다.가장 큰 이견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문제다.이 문제만은 이번에도 해법이 발견되지 않았다. 대통령은 특별담화에서 『진상규명과 관련하여 미흡한 부분은 역사에 맡기자』고 강조했고 책임자 처벌문제에 대해서도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고 호소했다.대통령은 자신의 말대로 광주민주화운동의 계기가 되었던 「5·17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또한 지난 83년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아선 23일간의 단식을 통해 민주화투쟁을 다시 점화시킨 장본인이었다.그러한 대통령이 「유예」와 「관용」을 호소한 것은 이 나라가 「5·18」의 진상규명에 매달려 구시대의 갈등을 재연할 경우 「신한국」건설의 관건인 개혁이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광주쪽 사람들은 5·18학살의 진상을 밝히지도 않고 가해책임자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누구를 용서하고 누구와 화해하라는 것이냐고 반박한다.일견 대통령의 호소나광주쪽의 주장이나 다같이 충분한 논리적 당위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그러나 「5·18」의 진상에 대해선 이미 대부분의 국민들이 「확신」을 갖고 있다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두 주장의 설득력엔 큰 차이가 발견된다. 80년의 봄을 엄동설한으로 돌린 5·18 유혈사태가 무엇때문에 일어났고 그 책임자가 누구인지는 처음부터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다만 일방적인 사법처리 때문에 진짜 죄인이 법정에 서지 않았을뿐 정치적·사회적으로는 그 진상이 규명된 상태나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진상규명을 주장하는 대학생들이 「체포조」를 결성하여 연희동으로 돌진한 사례야말로 이를 웅변하는 역설적인 반증이 아니겠는가. 미국정부의 견해를 빌릴 필요도 없이 「5·18」은 이른바 신군부의 강압적인 정권장악과정에서 빚어진 유혈사태였다. 당시의 군통수권자는 최규하대통령이었지 보안사령관과 수경사령관은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 당초부터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도 실은 그 진상을 국민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를 피로갚지 않고 용서와 화해를 보내는 건 인간만의 미덕이다.그러나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과오가 있는자의 참회와 속죄가 전제될때 가능하다. 만일 광주사건의 가해자들이 진심에서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어떻게 될까.망월동의 원혼들은 자비의 미소를 보내고 연희동은 다시 조용한 주택가로 돌아갈 것이다.그리고 개혁은 더욱 힘차게 굴러갈 것이다.
  • 망월동묘역 유족의 통곡/박성수 사회3부기자(현장)

    ◎“못푼 한 말하려 했는데” 대학생에 항의 18일 상오 9시쯤 광주시 북구 망월동 5·18묘역주변.따스한 봄볕도 아랑곳 없이 때아닌 학생들의 시위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현직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김영삼대통령이 망월동묘역을 참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를 반대하는 학생들의 묘역점거시위가 계속되는 중이었다. 이날 망월동에 운집한 학생5백여명은 저마다 쇠파이프와 각목 등으로 무장한채 입구에는 돌멩이와 통나무 등으로 3겹의 바리케이드를 치고 통행을 막고 있었다.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 없는 망월동 방문을 결사 반대한다』 학생들의 구호는 격렬했다. 김영삼대통령의 망월동 방문이 끝내 취소됐다는 통보가 전해진 것은 상오10시쯤. 학생들의 시위열기가 가라앉자 어디선가 울부짖는 목소리와 함께 고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자식의 시신이라도 찾아 봤으면 여한이 없겠다.만나보지도 않고 당신들이 뭔데 무조건 반대하느냐』 그동안 참배환영 입장을 보였던 유족등 일부 5·18단체 회원들의 거센 목청과 흐느낌이산허리를 타고 메아리 쳤다. 현지에서 만난 한 5월관련자는 『긴 세월동안 못풀었던 「광주의 한」을 풀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잃게 됐다』며 『이번 사태로 인해 대두될 여러 부작용들이 광주를 어떤 모습으로 바꿔놓을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일부 5·18관련 단체와 회원들은 학생들을 설득하는 마지막 노력까지 기울였으나 완강한 반대입장에 밀려 끝내 대통령의 묘역참배가 좌절되자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돌발사태를 걱정했던 많은 시민들은 「상황종료」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날 학생들의 시위를 지켜보던 한 시민은 『대통령 망월동참배가 13년동안 역사의 질곡을 헤매던 광주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또 다시 지역문제로 고착돼 표류하게 됐다』며 걱정했다. 또다른 시민은 『원혼들의 한을 달래는 일은 살아 있는 우리 모두의 몫』이라며 『너와 나로 편가름하는 의식부터 고쳐야 진정 광주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위현장을 나오던 한 학생은 『진상규명 없는 대통령의 망월동참배는 본질을 호도하려는 현정권의 얄팍한 술수』라고 목청을 높였다. 5·18 13주기를 정확히 두달 남겨둔 조용한 망월동 묘역은 이날의 소용돌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말이없었다. 파릇 파릇 새움을 틔우던 잔디와 풀잎들만 까닭없이 놀라 짓밟히고 있는 듯했다.
  • 임란 「코무덤」 어제 환국/2만위 위령제 거행… 자비사 안치

    【부산=이기철기자】 임진왜란때 왜군들이 조선군사와 전라도지역 양민 2만여명의 시체에서 베어간 코를 묻었던 「코무덤」의 원혼이 4백년만인 26일 부산항국제여객부두를 통해 돌아와 임란비총호국영령환국봉안위령대제(봉행위원장 박삼중자비사주지·50)를 지내고 부산시 동래구 온천3동 자비사에 안치됐다. 이날 대제는 자비사신도 2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삼귀의례로 시작,헌화,분향등의 순으로 1시간동안 이어졌다. 이에앞서 지난 24일에는 일본 오카야마현 비젠시 코무덤에서 봉안의식이 베풀어졌으며 오사카를 출발해 돌아오는 길에 대한해협에서는 선상수륙대제와 살풀이를 열어 원혼을 달랬다.
  • “동학혁명정신 알리자” 다양한 행사

    ◎천도교,1백돌맞아 혁명기념관·탑 건립 등 추진/학술회 등 통해 역사적의의 재평가 시도 탐관오리의 숙청과 보국안민을 위해 동학교도들과 농민이 연대하여 분연히 일어섰던 18 94년 갑오동학혁명 1백주년을 앞두고 다양한 기념사업이 펼쳐진다.천도교 동학혁명1백주년기념사업회(회장 김현국종법사)는 민족자존의 자각을 불러일으키고 혁명정신과 동학이념 선양의 일환으로 동학혁명기념관및 기념탑 건립,동학혁명사편찬,학술연구발표회,동학혁명문화축전등 구체적 사업내용을 최근 확정짓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그 첫번째 사업은 오는 21일 하오2시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장에서 열리는 「동학혁명의 현대적 조명」이라는 주제의 학술발표회 ▲동학혁명의 역사적 사회적 성격(신용하·서울대) ▲동학혁명과 민족운동(이현희·성신여대) ▲동학혁명과 태평천국혁명의 비교(노태구·경기대)등 주제발표를 통해 동학혁명의 역사적 의의의 재평가를 시도한다. 또 동학이념구현및 교육도장으로의 활용을 위해 「동학혁명1백주년기념관」을 서울 경운동의 현 수운회관 옆에 짓는다.이 기념관은 4백평규모로 사료및 유물전시실·회의실·강의실등을 갖추고 동학혁명에 관련된 자료를 집대성시켜 명실공히 동학혁명자료센터로 꾸밀 계획이다. 한편 동학혁명당시 숨진 30만 동학군의 원혼을 달래고 그 정신을 후세에 이어받게 하기 위해 동학군 최대의 접전지였던 세성산(충남 천원군 성남면 화성리)과 고승당산(경남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 두곳에 동학혁명군 위령탑을 건립하고 흩어져 있는 동학혁명 유적지에 기념비 또는 표지판을 설치할 예정이다. 또한 동학혁명1백년사를 간행키로 하고 국내외 학자들에게 저술을 의뢰하였으며 동시에 각종 자료를 수집정리한 자료집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채록한 증언집,문헌목록집등도 함께 만들 계획이다.이어서 동학혁명문화제도 열어 국제학술발표대회와 함께 음악제 무용제 연극제 체육대회등을 개최한다. 이번 행사계획과 관련,오익제천도교교령은 『우리는 남의 역사는 높이 찬양하면서도 동학혁명이나 인내천사상등 우리 역사에 대한 평가는 지나치게 인색하다』면서 『민족자존의시대에 걸맞게 동학혁명1백주년기념행사가 천도교만의 행사가 아니라 범국민적으로 확대 전개돼야한다』고 강조했다.
  • 극단 자유 3년만에 창작극 공연

    ◎김정옥작 「노을…」,박웅·권병길 등 출연 극단 자유가 3년만에 새 창작극 무대를 마련했다.김정옥씨가 직접 쓰고 연출을 맡은 신작 「노을을 날아가는 새들」이 25∼11월7일(하오4시30분·7시30분)까지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노을을 날아가는 새들」은 극단 자유가 지난 78년 집단창조와 총체적 연극을 표방하고 「무엇이 될고하니」를 선보인뒤 무대에 올리는 다섯번째 작품.연극의 중심축을 희곡이나 연출가에서 연기자로 옮겨 연기자의 개성이 살아 움직이도록하고 온갖 예술행위와 문화양태를 수용해 연극의 표현영역을 넓혀온 극단 자유가 10여년동안 추구해온 집단창조와 총체연극이다. 「노을을…」은 삼국시대처럼 국가와 민족의 형성과 변화가 이루어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한나라가 망해 왕족과 지배계급이 전사하고 살아남은 사람은 섬으로 달아난다.그러나 한 공주는 자결도 도망도 가지 않은채 백성들과 함께 나라에 남는다.공주와 함께 남은 무당들과 광대들은 패망한 나라와 죽은 자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굿을 한다.과거와 미래,현실과 허구,실제인생과 연극의 세계가 교차하면서 공주는 허구의 죽음을 체험한다.낮과 밤이 바뀌는 시간,밝음과 어둠이 엊갈리는 노을;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시기일지도 모른다는 강한 암시를 던져준다.우리의 전통적 연희양식과 서구적 양식이 접목돼 관객들에게 풍성한 볼거리와 함께 믿과 죽음의 문제를 체험토록 하는 작품이라 할수있다. 김금지 박웅 권병길 최용재 조덕현등 출연.267­5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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