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원혼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우울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전출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AA- 유지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타인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52
  • 연극인 김시라(이세기의 인물탐구:158)

    ◎풍자극 ‘품바’ 탄생시킨 ‘각설이 마술사’/3,700회 최장기 공연… 한국기네스북에 등재/거리 시낭송­벽시운동도 펼치는 중견시인 생전의 함석헌 옹은 김시라의 ‘품바’를 보고‘이것이 바로 우리의 연극’이라고 했다. 그리고‘거지’를 극의 주인공으로 삼았을뿐 ‘품바가 무슨 연극이냐’고 했을때 ‘품바는 연극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라고 두둔했다.‘아무 소리말고 몇년만 기다려보라’던 함옹의 예언대로 ‘품바’는 88년 뉴욕을 비롯한 전미순회에서 우리 연극의 해외공연사상 ‘전무후무’한 대성공을 거두었다. 동국대 황필호 교수는 ‘품바를 보지않고는 한국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고 94년 3천700회 최장기 공연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이것이 우리의 연극” ‘어얼씨구씨구 들어간다/저얼씨구씨구 들어간다/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왔네’로 연극이 시작되면 누더기 차림에 찌그러진 깡통, 벙거지를 눌러쓴 걸인의 걸판진 놀이판에 객석은 온통 흥청거림으로 넘쳐난다. ‘일자나 한장 들고나 보니/일각이 여삼춘디 오십분단이 웬말이냐/두이 이자를 들고나 보니 이화도화는 만발한디 이산민족이 슬피운다’는 분단의 슬픔에 대한 울부짖음이며 ‘남인들은 북인치고 서인들은 동인치고 소론들은 노론치고’는 통렬한 정치풍자가 아닐수 없다. ‘품바’는 널리 알려진대로 ‘소외계층의 민주화운동’을 소재로한 ‘우리들의 자화상’으로 매스컴들은 일찍이 ‘민족의 통곡’으로 특필한바 있다. 한때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드러낸다는 이유로 일본초청공연이 금지되기도 했으나 ‘거지에게조차 저러한 여유와 풍자의 힘이 있음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중론이 지금까지도 관객의 호응을 받고 있는 이유가 된다. 이 연극의 대본을 쓰고 연출한 김시라는 누구인가. 그는 실제로는 민족문학과 우리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중견시인이다. 그의 대표시인 ‘오­! 자네왔능가/이 무정한 사람아/청풍에 날려왔나/현학을 타고왔나/자넨 /묵이나 갈게/난 자우차 끓임세’는 그의 집안의 가훈이자 작가가 자라난 환경과 사람됨됨이에 대한 설명이다. 그는 전남 무안군 일로읍에서 10남매중 6째로 태어났다. 현재 직계만도 42명, 한학자인 부친 김두성옹(84)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자상하여 찾아오는 이웃을 마다하지 않았고 찢어지게 가난한 속에서도 어머니 채애임 여사(85)는 낯을 찡그리는법 없이 항상 손님접대하기를 즐겼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적이 없고 납부금을 내지못해 학교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런중에도 집안에는 웃음과 노래가 그치지않아 부친은 논어와 한시를 가르치고 ‘재물과 명예’에 사로잡히지 말고 ‘청빈을 자랑하라’고 타일러왔다. 고교1학년때부터 목포로 통학을 하면서도 밤에는 동네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고 고교졸업후에는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쌀가마를 등에 지거나 우마차에 실어 나르는 중노동으로 집안의 생계를 도왔다. 그런중에도 그의 손에는 언제나 책이 떠나지 않았다. 고향을 학문과 예술의 고장으로 만든다는 의지로 ‘인의 예술회’를 조직하는가 하면 5·18의거가 일어나자 ‘사건이 사건인 만큼 그대로 앉아있을 수만은 없어 죄없이 죽어간원혼’을 달래기 위해‘품바’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사회적 물리적 폭력에 대한 각설이 패들의 응어리진 한과 비애가 어떻게 태동했는가를 비범하면서도 강건한 시선으로 조명해 나갔다. 겉으로는 흥겨운 각설이 타령이지만 섬뜩하게 다가오는 사설과 날카로운 비판은 한순간도 현실의 모순을 놓치지 않는다. 이러한 시대정신은 지난 86년 ‘한민족 방언연극제’를 제안하고 사분오열된 지역갈등을 내용으로 한 ‘남바’를 발표하려다가 무산되기도 했다. ○‘인의 예술회’ 등 조직 81년 고향의 마을공회당에서 ‘품바’ 초연후 목포 광주를 거쳐 83년 서울로 진출했고 한달만 머물려던 계획이 86년까지 장기공연되면서 ‘민초의 시대사’란 찬사와 함께 그는 일약 스타로 부상했다. 연극의 무대공연실황을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가 1백만장이상이나 팔리는가하면 전용소극장인 ‘왕과 시’ ‘강강술래’를 갖게 되었고 나이 사십이 넘어 결혼한 부인 박정재씨와의 사이엔 2남1녀. 그가 살고있는 대학로 동숭동에는 아들을 등에 업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늦게둔 자식사랑’이 소문나 있다. 그는 여전히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지난해 미국 카네기홀공연 약속을 올해 중반에 실천해야하고 ‘품바’영화화를 위한 시나리오와 뮤지컬대본도 끝내야 한다. 연극을 하는 한편으로는 끈질기게 시운동을 펼친대로 한달에 한번씩 보리수 시낭송회, 거리 시낭송과 벽에다 시를 쓰는 ‘벽시’운동을 펼치고 있다. 모든 일에서 순풍에 돛단 듯한 유유자적은 없겠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남루에도 진솔한 심성을 변치않는 ‘순금같은 존재’다. 더구나 감수성이 예민해서 그가 쓰고자 하는 시와 대사가 꿈속에서 물흐르듯이 계시되는 예감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시나리오 손질 시인 송수권이 ‘김시라의 삶은 신재효만큼 자리매김을 할수 있는 예술가’라는 말은 그의 예술정신과 끈질긴 탐구성을 두고 적절하다. 그리고 ‘나를 바르게 길러주신 부모님, 어려울때마다 돌파구를 열어주신 함석헌 스승님’과 친구를 좋아하며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을 하나같이 감싼다. 그래서 소설가 최일남은 ‘그러한 푸근한 인간성으로 인해 구수한 입담과 배꼽을 쥐는 관객의 모습은 삶의 역리가 맞닿아있고 웃음속의 눈물이 번뜩인다’고 평한다. 그는 과연 ‘품바’의 이론과 현장정립에 혼신의 힘을 쏟아왔다. 연극속에는 속되고 악한 세태, 인정에 따라 변하는 얄팍한 인심을 꾸짖는 꾸지람이 범람하지만 욕설을 듣고도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은 이 연극만의 ‘양심과 고뇌의 복음’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모든 인류의 양심일 수도 있는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가지고 그는 지금 세계무대로 나가려는 야심찬 계절에 감연히 서있다. □연보 ▲1945년 전남 무안출생 ▲1965년 목포고­한영신학대학­건국대 행정대학원­고려대 노동대학원수학 ▲1966년 시 ‘오 자네왔능가’발표 1976년 인의예술회 창립 회장 ▲1981년 연극 ‘품바’ 첫 공연 (전남 무안군 일로면 공회당) ▲1983년 ‘민족과 문학’지 시추천, ‘품바’ 서울 첫 공연 ▲1985년 극단 ‘가가’창단 ▲1986년 사회성극 ‘꽃관(막달라 마리아)’ 첫 공연 ▲1990년 MBC­TV ‘우리시대의 명인’및 ‘오! 자네왔능가’시낭송회 1988년 전용극장 품바예술극장개관 1988·91·92·96년 미국순회(30회공연) 및 일본 괌 호주공연 ▲1991년 ‘품바’공연 2천회 돌파 ▲1992년 전용극장 ‘왕과 시’·‘강강술래’ 개관 ▲1993년 ‘한민족방언시학회’창립 ▲1994년 국민시 생활운동 ‘벽시’동인회 및 상황문학회 창립회장 ▲1996년 ‘품바’ 한국연극사상최장기공연(3천700회) 한국기네스북수록, ‘한민족 방언연극제’ 조직위원회발족 ▲1997년 호주 시드니 일본 순회공연 ▲1998년 2월 ‘품바’ 4천회기념공연예정 소설 ‘품바시대’(상하권) 희곡집 ‘품바’ 방언시집 ‘오! 자네왔능가’ 상황시집 ‘어머니 대통령’ 시민시집 ‘형이중학’ ‘한민족 방언시학회’ ‘품바타령집’ 등 한국백상예술대상(88년) 한국기독교문화대상(97년)
  • 강택민의 방미행보/나윤도 워싱턴 특파원(오늘의 눈)

    강택민은 누구인가.이번주 미국민들의 관심은 12년만에 처음으로 미국땅을 밟은 중국 국가원수에 쏠려 있다.그는 영어를 말하고,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설파한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줄줄 외우며,팝송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를 즐겨부른다.어렸을때는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읽고 상상의 나래를 폈고,40∼50년대 헐리우드 영화를 두루 섭렵했으며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전기를 탐독하기도 했다. 확실히 그는 72년 미·중 수교 이후 미국을 찾았던 등소평,이선념 두 국가원수는 물론 역대 어느 누구보다도 미국을 잘 아는 중국 지도자임에 틀림없다.더우기 그는 최근 전대에서 등 사후 힘의 공백에서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자신의 입지까지 확고히 했다. 미국민들이 강주석의 방미에 어느때보다도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바로 이같은 그의 지미에 대한 기대 때문일지도 모른다.이를 간파했는지 그의 미국방문은 하와이에서 2차대전의 원혼들을 달래는 일부터 시작됐다.다음에는 미 이민의 첫 상륙지인 윌리엄스버그로 가서 300년 역사에 경의를 표했다.그리고 정상회담 후에는 미민주주의의 발상지인 필라델피아의 인디펜던스 홀을 방문한다. 이같이 그의 방미일정들은 미국민들의 감성을 향한 이른바 ‘부드러운 터치’로 일관돼 있다.불법선거자금 유입,무역역조 심화,핵기술 이전,인권침해,종교탄압,강제노동문제 등으로 인한 중국에 대한 미국민들의 분노가 무차별 쏟아질 전장터로 향하는 장수의 얼굴표정 치고는 지나칠 만큼 다소곳하다. 그를 맞는 미국내 표정들은 제각각이다.행정부는 국익을 이유로 살살 달래기 위한 당근을 준비중이다.그러나 의회는 강제노동에 의한 중국제품 거부,종교탄압 중국관리들에 대한 비자발급 거부 등 반중국 입법 11개라는 몽둥이를 준비하고 있다.인권운동가들의 데모와 달걀세례도 준비돼 있다.다소곳한 강주석에게 숨겨논 또다른 얼굴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 위안부위령비(외언내언)

    일제강점아래서의 군위안부들이란 전혀 타의에 의해 꽃다운 청춘과 빛나는 인생을 강탈당한 이들이다.50여년만에 국적을 되찾은 ‘훈할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열일곱살의 그는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도 모른채 “엄마,어머니”라고 목놓아 울면서 배를 탔고 딸을 떠나보내는 어머니는 울다 지쳐서 방파제에 쓰러졌다고 기억한다.그때의 충격이 가시지 않아 모국어마저 잊은채 그는 장구한 세월을 낯선땅에 얹혀 지냈다.이렇게 생생히 살아있는 역사를 해괴한 기변이나 궤변으로 지울수는 없을 것이다.만약 외면한다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그동안 종군위안부에 대해 억지 외면을 해오던 일본이 이를 인정한것은 지난 93년부터다.고노 요헤이(하야양평) 관방장관이 ‘태평양전쟁당시 종군위안부의 강제모집과 위안소 설치’에 관여했음을 시인하면서 “수많은 고통을 경험하고 심신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준 종군위안부들에게 사죄와 반성을 표한다”고 했다.그러나 도덕적 책임만을 인정할 뿐 국가적 책임부분에서는 시종 얼버무리기에만급급해 왔다. 그런 일본에서 2차대전중 강제 연행된 한국인 군위안부를 추모하는 위령비가 세워진다니 만시지탄이나 다행한 일이다.오키나와현 도카시키시마에 세워질 이 위령비는 일본인 민간단체가 주동이 되어 재일동포 3세 도예가인 이주인마리코(이집원진리자)씨의 ‘환생’을 주제로 삼고 있다고 한다.민간단체든 정부차원이든 위령비가 일본땅에 세워지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가려질수 없는 진실과 역사가 현지에 각인된다는 점에서도 여간 뜻깊은 일이 아니다. 태평양전쟁 패전때까지 일본이 동남아 각국에서 강제동원한 군위안부는 당시 12세부터의 어린 소녀를 포함한 20여만명,그중의 70∼80%가 한국인이고 보면 지금도 동남아 외딴섬이나 대륙의 오지에 남아 고국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이화여대 홍성필 교수(법대)는 최근 ‘한국법철학회’지에다 “일제의 군위안부문제는 미래의 문제”이며 “일본이 도덕의식을 가질때 위안부문제는 명쾌하게 풀릴것”이라고 충고한다.군위안부들이 이미 유명을 달리했다면 남태평양을 떠도는 원혼들은 위령비가 일본땅에 세워졌다는 것만으로 작은 위로를 받을지 모른다.
  • 중국 교포시인 김철씨 시집 ‘북한기행’

    ◎따뜻한 가슴으로 그린 ‘분단 현실’/고목밑에/녹슬은 철모하나/…패랭이꽃 한송이/원혼의 넋으로 피어 있었다…/남은 ‘풍요의 비극’ 북은 ‘빈곤의 비극’ 현실 통탄 〈…비애의 절정을 딛고 선 보릿고개는/해발 1만 미터 상공에서 /이지러진 속세의/비운을 탄식한다/고개 너머엔 무엇이 기다릴지/허망한 꿈을 안고/타박타박 무거운 발길이/허기진 세상/가파른 황톳길을 덮고 있었다〉(‘원산가는 길목에서 만난 보릿고개’중에서) 중국 교포시인 김철씨(65)가 최근 북한의 모습을 한권의 시집 ‘북한기행’(문학사상사 펴냄)에 담아냈다.중국의 2백만 조선족 교포를 대표하는 그가 이번 시집 출간을 위해 서울에 왔다. 중국 55개 소수민족을 대표하는 문학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의 기관지 ‘민족문학’의 주필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1억을 헤아리는 중국의 소수민족을 이끌어가는 ‘1급문인’.특히 이번 시집은 분단 52년만에 처음으로 북한의 안타까운 현실을 서정적인 시어로 고발한 ‘기행시집’이란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모두 4부로 나뉘어진 이 시집에서 김씨는 분단현실이 낳은 북한의 참혹한 정황과 정경을 이데올로기를 넘어 따뜻한 시인의 가슴으로 그린다.시인은 남한에는 ‘풍요와 포만의 비극’이,북한에는 ‘빈곤과 굶주림의 비극’이 휩쓸고 있는 현실을 통탄한다.그리고 ‘죽음 아니면 통일’을 목청껏 외친다.〈…가슴에도 걸려 있는 가시철망을 거두어/용광로에 처넣어 쟁기를 만들고/가벼운 저 구름 하­얀 넋이 되어/남과 북 훨훨 거침없이 날아봤으면…〉(‘녹슨 철보망 앞에서’)분단을 극복하려는 민족의 한은 상감령 마루 전투에서 산화한 병사의 영혼에도 어김없이 깃들여 있다.〈포탄에 허리 잘린/고목 밑에/녹슬은 철모 하나/뚫어진 탄구멍을 비집고/패랭이꽃 한 송이/원혼의 넋으로 피어 있었다…〉(‘휴전선 상감령 마루에서’중에서) 한국전쟁 당시 죽은 병사의 소망과 그리움이 마침내 풀꽃이 되어 통일의 넋으로 피어있음을 시인은 절절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김씨는 조선족으로는 드물게 우리말을 아름답게 구사하고,민족전통의 원형을 살려내 미학적으로 형상화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원로시인 구상씨는 그를 탁월한 민족시인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그의 시편에는 우리 겨레 고유의 심미적 정서의 표상인 ‘멋’과 ‘한’의 가락이 배어 있다.그는 긍·부정간의 이념적 당위성이나 선입견 없이 오직 사무사한 시심으로 노래한다”는게 구상시인의 말이다. 전남 곡성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무렵 부모를 따라 중국 길림으로 이주한 김씨는 57년 첫 시집 ‘변강의 마움’을 낸뒤 25권의 우리말 시집과 두권의 중국어 시집을 냈다.이번에 나온 ‘북한기행’은 88년과 89년에 각각 나온 장편서사시 ‘동틀 무렵’(동광출판사)과 ‘샛별전’(을유문화사)에 이어 한국에서 펴낸 세번째 작품집.중국의 ‘계관시인상’과 극소수의 문인에게만 주어지는 ‘국가특수공헌상’을 수상한 김시인은 지난 91년에는 한국문인협회가 수여하는 제2회 ‘한국해외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 ‘킬링필드’ 단죄소식을 들으며(박갑천 칼럼)

    캄보디아 정치정세 얘기가 나올때 텔레비전은 곧잘 수없이 쌓여있는 두개골사진을 비쳐준다.폴 포트의 무작스러움을 들그서내는 이른바 킬링필드의 까팡이들.볼때마다 오싹해진다. 유럽쪽에는 해골성당이라는게 있다.그가운데 유명한 것이 로마의 산타마리아 델라 콘체치오네성당.베네토거리를 남쪽으로 내려가면 나온다.1528∼1870년 사이에 죽은 약4천명의 수도사들 뼈로 실내장식을 했다는 것으로 알려진다.세모꼴의 제단하며 촉대,천장의 아라베스크무늬,천장에서 드리워진 샹들리에…등등.이 모두가 두개골과 대퇴골등의 뼈로 만들어졌다.죽음과 친숙해져야겠다는 종교적 산물이었으니 한맺힌 캄보디아의 해골들과 비길 일은 아니다. “하늘도 무심하다”느니 “천도가 없다”느니 한다.사람들의 이같은 탄식은 왜 나오는가.올곧은 자세가 꼭뒤눌리고 굽잡히는가 하면 바냐위고 사막스러워서 저주받아 마땅할 자가 까들거리며 떵떵거리는 것을 보게되기 때문이다.“하늘에 사부(사사로이 감쌈)없고 땅에는 사재(사사로이 실음)없으며 해와 달에는 사조(사사로이비춤)없다”(〈예기〉공자한거)고 했던뜻이 무엇인가.하늘은 화복·길흉·상벌…등 이승의 모든현상에 기울고 치우치고 함이 없이 공평무사하다는 것 아니었던가.하건만 사람들은 그게 잘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그래서 “하늘은 죽었다”는 말도 나오는 것 아닌가 한다. 론놀정권을 무너뜨리고 서슬퍼랬던 폴 포트만 해도 그렇다.쌓인 해골들이 말해주듯 그는 2백만명의 목숨을 사냥한 ‘인간백정’.그렇건만 하늘은 그를 ‘사사로이 감싸오는것’같기만한 18년세월이 아닌가.그 많은 원혼들의 저퀴씌움도 없었던건지.한데 하늘은 역시 무심치 않다는걸까 “죽여라.죽여라”의 함성속에서 종신형선고를 받은것으로 전해진다. 사람의 모자란 ‘눈’에 있는듯 혹은 없는듯 비친다뿐 하늘뜻에 ‘사부’는 없는 것이리라.죄악의 옰은 어떤형태로건 받는다고 보아야 한다.하다못해 그것은 내생으로까지 이어지는 터.이승에서 요절함은 전생에 살생한 때문이요 이승에서 병고에 시달림은 전생에 사람들 괴롭힌 때문이라는 불교의 생각도 그런 것이다. 죄악은 사람눈을 기인다 해도 하늘그물(천망)을 빠져나갈 수는 없다.“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구약·잠언26:27)〈칼럼니스트〉
  • 곳곳에 2차대전 상흔·기묘한 산호/관광·레저의 「천국」 추크섬

    ◎폭격당한 등대·수장된 일 전함·전투기/한국인도 2천명 희생… 원혼 외로이/사철 수영 가능… 참치 낚시도 묘미 산호의 아름다움은 갖가지 기기묘묘한 모양과 색깔에 있다.산호로 둘러싸인 섬주위의 짙은 코발트빛은 보는 이의 가슴을 시리게 한다.섬 둘레가 온통 산호로 뒤덮여 있는 곳.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하는 청정 그 자체인 섬.제2차 세계대전의 잔해가 고스란히 남아 방문자를 숙연케하는 아픈 역사의 현장.마이크로네시아의 추크(CHUUK)다. 추크는 마이크로네시아 연방국가의 4개주중 하나로 280여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총인구 3만8천여명중 40%가 가장 큰 섬인 웨노섬에 산다.스페인,일본,미국 등의 지배를 받다 지난 79년 독립했으며 섬의 대부분이 미개발지로 자연 그대로 남아 있다.해양성 열대기후로 1년 내내 해수욕을 즐길수 있다. 추크는 「스킨 스크버의 천국」.각양각색의 산호들과 그 사이를 떼지어 유영하는 온갖 색깔의 열대어들만으로도 이런 찬사는 무리가 없다.전문 다이버들을 더욱 흥분시키는 것은 2차대전 당시 미군의 폭격을 받고 수장된 일본의 침몰선들.25년간 이 곳에서 다이빙을 지도한 현지인 다이빙 가이드 파울러스씨(52)는 『당시 60여척의 군함들과 200여대 이상의 전투기들이 추크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150여m에 이르는 해저전함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는 즐거움은 이곳 스킨 스크버들만의 특권. 스킨 스크버를 하기 어려운 노약자들이라면 스노클링을 통해 해저의 아름다움을 만끽할수 있다.수경과 물속에서 입으로 숨을 쉬기 위한 대롱모양의 스노클,추진력을 얻기 위한 핀(오리발)만 갖추면 1∼2m 깊이의 그림같은 해저풍경은 곧 나만의 수족관이 된다.연평균 수온이 섭씨 28도 정도로 하루종일 물속에 있어도 춥지 않다. 추크에서 또 한가지 빼놓을수 없는 해양레포츠는 참치낚시.추크의 여러 섬들을 둘러싸고 있는 대보초(Barrier Reef) 안팎으로 참치가 우글거린다.바라쿠다,마히마히,블루마린 등 1m안팎의 열대어들도 많다.낚시보트에 현지인 가이드와 동승,3시간 가량 트롤링으로 잡은 참치가 12마리나 됐다. 가이드는 『오늘 잡은것은 3㎏가량의 새끼지만 10㎏정도의 참치와 2m이상의 상어도 심심찮게 잡힌다』고 귀띔한다.냉동 참치회에 길들여진 입맛에 갓 잡은 참치는 그야말로 감칠 맛이다. 해수욕과 다이빙,낚시 등을 즐기고 시간이 남으면 섬 내륙 곳곳에 널려있는 전쟁의 잔해들도 둘러볼만 하다.미군의 상륙을 막기위해 설치한 등대,거대한 대포들,가미가제 특공대들의 전투기 잔해들은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상황을 말해준다.당시 이 곳에서 2천여명의 한국인 젊은이들이 징용으로 끌려와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웨노섬 동쪽 해안에는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비가 쓸쓸하게 서 있다. 토속음식의 독특한 맛은 추크 여행의 묘미를 더해준다.섬에는 코코낫나무와 빵나무(Bread Wood)가 가득하다.농작물이 전혀 나지 않아 이들 열매가 주식이나 마찬가지.빵열매를 굽거나 쪄서 만든 음식은 실제 빵이나 떡에 비해 손색이 없다.전분이 많아 고소하고 영양분도 풍부하다.코코낫은 물이 귀한 이곳의 음료수.나무가 워낙 많아 수확도 돼지 않고 버려지는 열매가 태반이다. 원주민들은독특한 방법으로 돼지바베큐를 만들어 먹는다.구덩이에 불로 달구어진 돌멩이들을 밑에 깔고 돼지를 통째로 넣은 뒤 다시 돌로 덮고 위에서 불을 지핀다.7∼8시간 정도 열을 가하면 기름이 쪽 빠지고 고기가 골고루 익는다.부드럽고 쫄깃한 맛이 일반 돼지고기맛과는 차원이 다르다.300달러 정도면 중간 정도 크기의 돼지 1마리를 요리해준다.여행 마지막날 밤,해변에서 남태평양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둘러앉아 벌이는 돼지바베큐 파티는 추크 여행에 대한 뿌듯함을 더해주는 마무리다. ◎숙박시설 등 한국인 경영… 관광불편 해소 추크는 직항노선이 없어 괌에서 비행기를 바꿔타야 한다.괌∼추크 항공편은 하루 1∼2회,주 4일 운항되며 비행시간은 1시간 40분정도. 숙박시설로는 한국인이 세운 「추크 퍼시픽 리조트」(C·P·R)가 돋보인다.다른 호텔이 몇개 있으나 컨티넨탈 마이크로네시아 항공이 직영하는 컨티넨탈 호텔을 빼고는 모두 수준이하.C·P·R은 한국에서 운수회사를 운영하는 최면식씨(45)가 세운 다이빙과 바다낚시 전문리조트다.21개의 객실과다이빙룸,낚시룸 등을 갖추고 있다.숙식과 다이빙장비 대여 및 교습까지 포함해 1박 기준 250달러. 최사장은 『괌·사이판 등 남태평양의 대규모 리조트시설은 거의 일본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다』며 한국업체가 일본에 앞서 이곳에 개발 거점을 마련한 것에 큰 자부심을 갖는다.리조트 옆 부지에 전문 다이빙보트 3척을 건조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배가 완성되면 1척을 추크 주정부에 기증,기반을 더욱 다질 계획이다. 추크 여행상품은 국내에서는 마이크로네시아 지역 전문 업체인 헐리우드여행사가 유일하다.C·P·R과 연계해 숙박 및 식사 일체,항공료,다이빙교습료 등을 포함한 5박6일 상품가격이 89만원.문의처 3452­1800.
  • 약육강식의 현장(송화강 5천리:11)

    ◎일제 「731부대」 인체실험 만행 생생히…/하얼빈 「죄증진열관」에 마루타의 원혼이…/목단강변엔 일군피해 몸던진 팔녀투강비가/동북3성 곳곳에 항일 유적지/자전거로 역사현장 2만리 답사나선 이도 하얼빈시 민족호텔에서는 유유히 흘러가는 송화강이 한눈에 조망되었다.그 강건너로는 중국 동북지방에서 이름난 위락지 태양도가 보였다.지난해 태양도에는 호랑이를 사육하는 동북호림원을 만들어 호기심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다.입장료 30원을 내면 지프를 타고 호랑이 무리 사이를 돌아다닐 수 있다.따로 돈을 더 받고 개 따위의 먹거리를 호랑이에게 제공하는 상술까지 동원되었다. 그러니까 약육강식의 현장이 호림원인 것이다.호림원에서 문득 떠오른 것은 약육강식의 세계는 어디 동물에게만 있는 것일까,하는 생각이었다.인간사회에도 분명히 존재했다.그 흔적이 바로 하얼빈시 평방구에 있는 「일본침략군 731부대 죄증진열관」이다.거기를 가보면 일본 침략군의 온갖 만행이 살아서 다가왔다.산 사람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각을 떠서 표본을 만드는장면,추운 겨울날 사람을 알몸으로 밖에 매어놓고 얼어죽게 하는 화면들이 영상으로 돌아갔다. ○과거숨기고 떠돌이 생활 죄증진열관 한효관장을 만났다.그는 일본침략군 731부대에 근무했던 당시 일본인 요원들을 만나기 위해 일본을 찾은 일도 있는 인물이었다.731부대의 생존요원들로부터 일본에서 들은 여러가지 증언을 소상히 들려주었다. 『지금도 500여명이나 되는 731부대 요원들이 일본에 살고있어요.제가 일본에 갔을 때 100여명을 만날 수 있었지요.그 중에서 양심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과를 인정하더라구요.며칠전에는 여기를 찾아온 사람도 있었습니다.참회하는 기색이 역력합디다』 한효관장이 죄증진열관을 찾아왔다고 말한 장본인은 오바라 다케다루(79)라는 일본인이다.731부대 요원이었던 그는 전쟁이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가 이름까지 바꾸고 한 때는 떠돌이 생활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731부대가 해산할 때 내린 부대장 명령때문이었다.부대장은 731부대에 근무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고 부대원 서로가 연락을 하지 말라는 명령도덧붙였다.가족에게도 지난날을 속인 그는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속일 수가 없다는 생각에서 죄증진열관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는 딸 오바라 바쿠코(44)와 동행했다.그녀는 전후세대여서 부친의 죄상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고 한다.당시는 전쟁기였던 만큼 그 문제로 죄값을 치러야 할지,아니면 징벌을 받지 않아도 되는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그러나 부친 오바라 다케다루 노인은 몇번이고 미안하다는 말로 참회의 뜻을 표했다는 것이 한효관장의 전언이다.절치부심했던 일제의 만행이 속죄만으로 어찌 지워지겠는가….역사는 영원히 기록할 것이다. ○조선족 독립운동 재평가 흑룡강성 목단강시 강변공원에는 팔녀투강비가 서 있다.일본군 포위에 든 8인의 항일여군이 송화강 지류 목단강에 뛰어들어 삶을 마감한 용기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이 8인의 항일여군 가운데 2인은 조선족 여인들이었다고 한다.그렇듯 피로 얼룩진 유적이 중국 동북3성에는 숱하게 널려있다. 그 숱한 피를 뿌린 항일유적지에 최근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죽은 이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이들을 끌어들였다.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조선족의 독립운동이 올바로 평가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그 이전에는 민족주의 독립운동은 반동으로 취급되었다.그 세월이 너무 오랫동안 계속되어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많은 선열들의 넋이 대륙을 떠돌았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독립운동의 숨결이 밴 역사현장을 찾아나선 사람이 있다.연변사회과학연구원 강용권 선생인데,자전거로 218일 동안 7천500㎞를 달렸다.그 대장정의 자전거 답사에서 52개 유적을 살펴보고 600여명으로부터 독립운동사의 증언을 이끌어냈다.그의 자전거 바퀴는 길림·흑룡강·요령성 등 동북3성은 물론 멀리 하북성까지 다다랐다.그의 2만리 여정은 지난해 「만주 항일유적 답사기」라는 책으로 나왔다. 그는 책 머리에 이런 글을 썼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봉오동과 청산리 전투로부터 벌써 70년,이 전투에 30살의 청년이 살아있다면 100살이 되었을 것이다.키를 넘는 낙엽을 밟고 역사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는 것은,백년 산삼을 캐러가는 그런 희망 같은 것이었다.백년 산삼은 귀하다.그러나 산에 있는 것은 틀림없다.백년 산삼을 찾는 마음으로 그 어딘가에 남아있을 유적을 찾아나섰던 것이다」 그가 찾아낸 독립운동가 가운데는 오수암 의사가 있다.한국 대전시 산성동 우성아파트107동 910호에 사는 오금손 여사(67)의 간청으로 오의사의 행적을 밝힌 것이다.그녀는 아버지 오수암 의사를 한 차례도 본 일이 없는 유복녀다.1930년 북경에서 태어난지 1주일만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 친구인 국민당 왕진송 장군의 양딸로 자랐다.그러다 1943년 역시 아버지 친구인 오세덕이라는 분이 광복군 3지대에 데려다 주었다.광복이 되어 광복군을 따라 그녀는 귀국하고 말았다. ○600여명 증언 낱낱이 기록 그녀가 아는 가족사라고는 아버지 친구 오세덕으로부터 들은 것이 전부다.아버지는 독립군 오수암이고 어머니는 상해로 아버지를 찾아가다 숨졌다는 사실이 고작이었다.그리고 아버지의 가명만도 오흥삼,오운남등 12개에 이른다는 사실밖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개혁개방 이후 아버지의 행적을 찾기위해 1991년 중국에 왔지만,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 막막했다.그 때에 연변사회과학연구원 강용권선생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세 노인들로부터 증언을 듣게 되었다.그녀는 맨먼저 길림시에 사는 장인덕 노인을 만났다.만날 당시 92살이었던 노인은 1928년 참의부·정의부·신민부 통합회의때 간부로 일했던 그녀의 아버지를 만났다는 것이다.이어 흑룡강성 상지시에서 김규식 장군의 딸 김현태 노인을 만났더니 80살 노령인데도 오수암 의사를 기억해냈다.김규식 장군 장례식날 이청천 장군과 함께 그녀의 아버지 오수암 의사가 장례에 참석했다면서 오의사의 생일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오의사의 최후는 흑룡강성 쌍성시에 사는 퇴직교원 왕정 노인이 증언했다.1931년 이청천 장군의 독립군이 중국군과 함께 쌍성시를 공격하는 와중에 오의사는 중상을 입고 마을 목수집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다.왕노인은 당시 목수집 어린 아들이 동갑내기 친구여서 그 집에 놀러갈 때마다 오의사를 보았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일본군이 다시 쳐들어와 목수집을 덮쳤다.그 이후 부상한 오의사는 하얼빈으로 끌려갔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것이다.일본침략군의 731부대가 창설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니까,오의사는 마루타가 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그래도 지난해 731부대 죄증진열관을 찾은 오금손 여사는 시신을 태웠다는 굴뚝앞에 술을 따랐다.
  • 서울 쓰레기 절반이 음식물이라니(박갑천 칼럼)

    도교에는 곡식 안먹고 사는 벽곡법이란게 있다.세속 등진 옛사람들이 그렇게 살았다.그게 신선으로의 길 아니었던지. 이덕형의 「송도기이」에 보이는 안경창도 그렇다.그는 자기호를 사내라 했다.그까닭이 있다.그는 한절에서 늡늡한 이승을 만난다.밤이면 북두에 절하고 솔잎만 먹는 스님.안경창은 그에게서 그 법을 배워 네가지 괴로움(추위·더위·배고픔·목마름)을 이겨낼수 있었다.그래서 지은 호가 네가지를 참아낸다는 「사내」였다. 우리역사를 거스르면 굶어죽은 사람이 적지않다.흉년든 해는 말할것도 없지만 남의 나라 침노를 받고 갈무리해뒀던 양식을 뺏기면 굶을수밖에 없었다.윤국형의 「문소만록」에서 임진왜란때의 참상을 읽어보자.『…시체는 쌓여 들에 가득하고…아비는 자식을 팔고 남편은 아내를 팔았으며 게사년 봄에 이르러서는 무두질 이길양으로 사람들끼리 서로 잡아먹고 시체를 쪼개어 앞다투어 물어뜯었으며…』.그럴때 안경창같이만 살수 있었더면…. 조선조들어 구황식을 개발하는 것도 그런 불행 막자는 뜻이었으리라.「구황촬요」·「구황보유방」 등에는 곡식을 안 쓰거나 쓰더라도 약간만 섞는 법들이 적혀있다.그 주된 원료가 솔잎.다만 변비를 막기위해 느릅나무껍질 즙을 함께 먹어야 했던 듯하다.그런 소나무(솔잎)임으로해서 최두익은 그의 「찬송방」에서 솔을 찬양한다.『솔은 백목의 어른으로서 공으로 삼으며(송자를 말함) 그 공의 공이야말로 넓고 크다 하겠다』 배고파보지 않은 사람은 배고픈설움 모른다고 했다.솔잎을 선식 아닌 구황식으로서 먹었던 사람들은 그걸 뼈저리게 느끼고도 남았을 일이다.오죽 괴로운 것이었으면 불교에서의 삼악도(악인이 죽어서 간다는 세계)에 아귀도가 들어있겠는가.솔잎도 못먹은채 탈탈 굶으면서 매만 맞는다니 어찌 당해낼 괴로움이겠는가. 서울쓰레기의 절반이 음식물이라 한다(서울신문 11.27).구황식 먹었던 후손들. 「보릿고개」 못 넘기고 굶어죽는 걸 보고 겪은 세대로서는 버력입을 짓이로구나 싶기만하다.귀한줄 모르고 교만한 자는 망한다 했다.굶어죽은 땅속 원혼들이 보고 있는 것을.〈칼럼니스트〉
  •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축하/한·일 국악관현악축제 연다

    ◎24일 하오 7시30분 국립극장 야외특설무대/80명 출연… 두나라 음악 원류와 현재 조명 2002년 한·일월드컵공동개최를 축하하는 한·일국악관현악축제가 24일 하오 7시30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야외특설무대에서 열린다. 한·일 양국의 전통 관현악과 타악기를 선보이고 합주를 함으로써 뿌리가 맞닿아 있는 두 나라 음악의 원류와 현재를 조명할 이 무대에는 우리나라 국립국악관현악단,사물놀이 한울림 연주자 37명과 일본의 일본음악집단,가고시마 「데코보스」타악연주단 43명 등 모두 80명이 나선다. 일본음악집단은 일본 현대음악계를 대표하는 미키 미노루(삼목념)가 이끄는 연주단체로 일본의 전통음악에 바탕을 두고 현대음악을 추구하는 세계적인 음악그룹.「데코보스」는 리듬감과 박동감을 자랑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타악연주단이다. 연주곡은 주로 두 나라 민족음악을 대표하는 박범훈과 미키 미노루의 작품으로 모두 7곡이 연주된다.이 가운데 다무로 나쿠오의 지휘로 한·일합동 관현악단이 연주할 미키 미노루의 「혼」은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만행에 대해 사죄하고 희생한국인의 원혼을 위무하는 진혼의 의미를 갖고 있다.가고시마 데코보스 타악연주단은 일본 전통악기인 대고 연주를 펼쳐 보이며 사물놀이 한울림과 함께 한·일 타악기를 위한 합주곡 「신모듬」을 연주한다. 국립국악관현악단 박범훈 단장은 『그동안 일본과의 문화교류는 부정적 시각이 지배적이어서 음성적으로 상업적 문화교류만 발달해왔다』면서 월드컵공동개최를 계기로 한·일간의 올바른 문화교류전통을 쌓아간다는 차원에서 이 음악제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 명산마다 열린다는 철쭉잔치에(박갑천 칼럼)

    일산정발산 치맛자락께로 이사와서 첫봄을 맞았다.이동네는 정발마을이라기보다 철쭉마을이라 불렀으면 싶을만큼 철쭉이 늦봄을 오달지게 수놓았다.빨강·분홍보다 하양이 더많아 동네를 청초한 인상으로.이울어감이 아쉽다. 사람사는 낮은 곳과는 달리 전국 산등성이의 철쭉은 이제부터 흠치르르 따가운 햇볕과 어우러진다.지리산·태백산에서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자생종 철쭉들은 등산객에게 향기뿜어 손짓할 것이다.때맞추어 전국 철쭉명산에서는 이달 하순께부터 새달 초순께까지 철쭉잔치들을 갖는다.이 산위에서의 꽃잔치소식은 설창수시인의 「철쭉꽃애상」을 웅얼거려 보게도 한다. 『뼈에 저려 모진 아픔이 안갯속을 스며/슬픈 피릿가락으로 산야에 흐른다/너 젊은 영혼의 그 그늘에 숨져갔음도/한갓 산상고원의 꽃잔치를 둘러리 세웠음인가/아,그 원혼의 슬픔,끝낸 모두 슬픔임의/감감한 대풍류에 화음하였음인지』(1∼3련전문).아름답게 핀 철쭉을 보면서 먼저 가버린 누군가를 떠올리는 애틋함이 느껴진다. 진달래와 철쭉은 어금지금한듯 많이 다르다.진달래를 참꽃,철쭉을 개꽃이라함은 먹을수 있고 없고를 두고 붙인 이름 아닌가 한다.「개」는 「참」에 비겨 변변치 못함을 이르면서 쓰는 앞가지(접두사)이니 개나리·개살구·개꿈…의 그 「개」다.철쭉은 한자로「척촉」이라 적는데 그뜻은 「발로 땅을 침,발을 구름」.양이 먹으면 훌쩍훌쩍 뛴다는데서 온 이름이라지만 그래서 비슷한 진달래와 견주면서 개꽃이라 했는지도 또 모른다.철쭉은 그「척촉」에서 온듯하다. 철쭉의 학명은 로도덴드론 슐리펜바히(Rhododendron Schlippenbachii).종명 슐리펜바히는 강원도 바닷가에 자생하는 철쭉을 유럽에 소개한 제정러시아해군 슐리펜바흐의 이름을 땄다한다.이 강원도철쭉은 향가 「헌화가」의 멋을 낳게도 한다.신라 성덕왕때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순정공을 따라가던 수로부인.높은 벼랑의 철쭉꽃을 시종들에게 따달라했으나 망설일때 마침 소를 몰고가던 노인이 꺾어 바쳤다지 않던가.미인은 예나 이제나 위대하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는「일본철쭉꽃」얘기가 있다.그 아름다움을 비기면서 우리철쭉이 막모(막모:황제의 네째왕비.추녀였음)라면 그건 서시(서시:월나라 미녀)라고 찬양한다.글투로 보아 개량재배종이었던 듯하다.그때보다 더 아름다워진 오늘의 철쭉은 앞으로도 더욱 아름다워져 가겠지.〈칼럼니스트〉
  • 시련도 있었지만 보람도 컸다/1995년을 보내며(사설)

    1995년이 끝난다.참으로 힘겹고 험한 일이 많았던 한해였다.마찰의 굉음을 내며 달리는 역사의 수레바퀴소리를 들으며 긴장과 우려로 보낸 한해였다. 불의로 잃은 수백의 원혼들을 미처 달랠 길도 없이 떠나보낸 삼풍사고의 비극은 아직도 우리에게는 지속되는 고통이다.그것은 급격한 사회 변동기의 혼란이 빚어온 도덕적 혼미의 결과로 황금만능의 물신주의와 무책임과 부주의가 총합되어 빚은 우리자신의 과오였다. ○삼풍 붕괴 교훈 삼아야 이 사고는 우리 자신이 모든 일에서 정밀하고 성숙하고 품질높은 일솜씨를 정착시켜야만 그때 비로소 개선이 가능해진다.이런 사고의 악몽에서 우리가 아직도 다 벗어나지 못한 것은 언제 「또다른 삼풍사고」가 우리를 위협할지 알수 없기 때문이다. 후반기를 강타한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사건으로 우리의 자존심은 심한 상처를 입었다.전직 대통령을 오라지워 감옥에 가두고 법정에 세워 수인번호로 부르는 모양을 TV중계로 보아야 했던 일은 국민들로 하여금 일상을 좌절하며 한동안 넋을 놓게 했다. 그래도 1995년은우리에게 위대한 극복의 능력을 발휘하게 한 해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지난 반세기동안 역사의 뒤안에 퇴적되어온 많은 과오들을 우리손으로 청산해야만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한 해였기 때문이다.이 역사오류에 대한 인식과 청산의 합의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계기를 마련했다. ○「12·12」「5·18」 단죄의 결단 「12·12」와 「5·18」의 불행속에서 헌정질서를 파괴하며 태어난 정권의 부당성을 명백하게 밝히고 바로잡아야 할 당위에 대한 결단을 바로 우리시대가 보이지 않으면 그것은 이 시대를 산 사람들이 할 일을 유기한 결과를 부르리라는 인식에 도달한 해,그것이 오늘 보내는 1995년이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길에 걸림돌이 되는 역사의 과오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최초이고 비로소 가능한 정부가,바로 우리손으로 이룩한 문민정부이다.정통성에 하자가 없고 완벽하게 합헌적인 정부만이 할수 있는 일이다.아무나 할 수 없고 누구도 시작하지 않았던 일의첫걸음을 내딛는 비장함에,우리는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다. ○「역사 바로잡기」의 착수 그러나 정통성에 하자가 없고 당당한 정부라도 인기를 꾀하거나 정치적 안일만을 생각하는 정부라면 「역사바로세우기」과업은 쉽게 할 수가 없다.용기가 있고 능력이 있지 않다면 생념할 수 없는 어려운 과업이다.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그 성과가 구체적으로 정치적 이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출발한 정권이 우리에게 남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5·18특별법 제정의 역사바로잡기 작업에 착수했다.그리고 그것을 보혁갈등의 좌파적 행보로 모는 논리의 대응은 국민적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많은 사건사고로 얼룩진 한해였으므로 지구촌에 비쳐진 우리의 위상은 부정적일 것이라고 예상되었지만 국제사회에 비쳐진 인상은 오히려 좋아졌다는 징후들이 최근에 보였다.웬만한 소요나 흔들림은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탄탄함을 지닌 성숙된 사회임을 우리는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이미지 크게 개선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분단의 고통에 시달리는,아직도 바로 잡아야 할 많은 역사적 왜곡을 가지고 있는 사회다.해묵은 왜곡의 치유로 「거듭나는 우리」가 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가장 중요한 일이다.그럼으로써 역사에 내장된 민족의 수월성을 찾아내어 민족의 진운에 기여하는 새해를 맞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광주항쟁 영령 이제야 눈 감을것”/전씨 구속­각계의 반응

    ◎헌정중단 불행 다시는 없어야 전두환 전대통령이 3일 상오 고향인 경남 합천에서 반란수괴 등 혐의의 구속영장에 따라 수사관들에게 압송돼 안양교도소에 수감되자 국민들은 대체로 『사필귀정으로 당연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특히 광주 시민들은 『광주항쟁 때 희생된 영령들이 이제야 눈을 감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유석규(65·주부·서울 광진구 구의동)=노씨에 이어 전씨까지 전직대통령에서 하루아침에 재소자의 신분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불행한 역사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지 착잡한 심정이다.그러나 이는 전씨가 16년전 저지른 죄의 당연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김영신(32·회사원)=대통령 재임시절 숱한 민주인사들을 투옥시킨 전씨가 고향집에서 강제연행돼 교도소에 수감되는 모습을 보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낀다.전씨의 구속에 이어 다른 5·18관련자의 처벌도 예외없이 이뤄져야 한다.여야는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5·18 단죄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국론분열과 사회혼란을 야기해 수구세력의 입지를 강화시켜 줄 우려가 있다. ▲김종철(45·사업)=전씨의 구속모습을 보면서 이제야 우리 시대의 응어리진 한을 풀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신군부의 학살로 희생되었던 무고한 광주시민 영혼들에게도 위로가 될 것이다. ▲정한영(변호사·대구 수성구 범어동)=정권창출 지역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착잡하다.전씨 구속을 정치권이 당리당략으로 이용해서는 안되며 특히 이번을 계기로 다시는 헌정이 중단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광주시민 반응/“잘못 뉘우치고 역사 앞에 사죄 마땅” 광주시민들은 『전씨는 이제부터라도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법의 심판을 당당히 받아야 한다』며 『80년당시 계엄군의 총에 맞아 무참히 쓰러져간 원혼들이 이제는 편안히 눈을 감게 됐다』고 말했다. 정수만 5·18유족회회장(48)은 『전씨가 대국민성명에서 보여준 오만방자한 태도에 치를 떨었다』며 『정권찬탈을 위해 무고한 시민을 총칼로 짓밟은 천인공노할 범죄자는 법의 준엄한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조비오 신부(60·5·18기념재단이사장)도 『전씨는 이제 겸허한 자세로 국민과 역사앞에 사죄해야 한다』며 『검찰은 엄정한 수사로 쿠데타로 얼룩진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정기를 바로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서병조 광주시의회의장은 『뒤늦은 감은 있지만 15년여동안 맺혀있던 한이 풀어졌다』며 『다시는 이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가 하루빨리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원혼들에 평안을 안기는 내용으로(박갑천 칼럼)

    원통한 죽음은 눈만 못감는게 아니다.설사 눈을 감아도 썩지 않는다고 했다.어찌 썩지 않으리요마는 오뉴월에라도 서리가 치듯이 한이 맺히는 법이라는 뜻이었으리라. 불륜·보복등이 기록된「추관지」2편에 충청도 대흥땅 열녀 우씨얘기가 있다.남편이 죽자 그 종손된 자가 짐승같은 짓을 하고자 협박하나 끝내 거절하니 때려죽여서 묻는다.그러고서 아홉달이 지나 관이 알게 되어 파내었는데 그얼굴은 산사람과 같았다.그때의 군수 이도선이 이를 밝혀 한을 풀어주자 이태동안 가물던 그 고을에 비가 내렸다.그때 사람들은 이를 「절부의 비」라 했다. 이런 얘기는「계서야담」에도 보인다.풍원군 조현명(풍원군 조현명)이 영남안찰사일때 정언해가 통판이었다.어느날밤 정통판에게 순사로부터 빨리 오라는 전갈이 왔다.득달같이 달려갔더니 칠곡의 배이발·지발형제를 찾아 지발을 체포하고 이발의 딸 주검을 검증하라는 것이었다.통판이 주검을 파내보니 죽은지 3년이 지났건만 그모습에 변함이 없었다.동생지발이 재산상속문제로 형의 후처와 짜고 했던 짓.사형에 처해 원한을 풀어준다.원혼이 순사에게 현몽하여 옴나위없이 밝혀진 것이다. 그렇게 원통함과 억울함을 푼 다음에는 여느 주검과같이 되면서 서릿발을 거두는 것일까.하여간 그걸 풀지 못하는 동안에는 버력내릴 길을 백방으로 찾는다.광주의 5.18원혼들도 지금껏 이승의 얼굴을 지우지 못한채 있는 것이리라.한은 구천에 사무쳐있다.더구나 그들의 죽음을 딛고 깔고 펼쳐진 가해자들의 주눅좋은 영화가 그들을 더욱더 분통터지게 해왔다.그러는한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들은 서릿발을 이고지고 떠돌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천하에는 본디 아무런 일이 없건만 용렬한 자들이 난을 꾸며서 어지럽게 한다』.순암 안정복 「임관정요」(처사장)에 나오는 경구이다.이글은 이렇게 이어진다.『알선하고 변통할만한 재주가 없으면서 경장을 좋아한다면 폐단이 가시기 전에 백성은 먼저 병폐를 받는다』.「무능한 정부」라면서 그에 갈음하겠다고 총칼로 일어선 자들의 명분론·당위론을 찌르는 글귀 아닌가 한다. 현안이던 5.18특별법이 마련된다.원혼들은 생전의 그눈빛을 띠고서 어떤 내용으로 되는지 지켜보는 것이리라.거늑해진 그들이 주검의 본디모습으로 돌아갈수 있도록 만들어져야겠건만.
  • 성수대교 참사 1주기 위령제/한강에 국화던지며 원혼 달래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숨진 희생자 31명에 대한 1주기 합동위령제가 21일 상오 11시 서울 성수대교 남단 진입로에서 유가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수대교 붕괴사고 유족회」(회장 성운경·40)의 주관으로 열렸다. 유가족들은 이날 다리 남단에 고인들의 위패와 생전의 사진으로 임시빈소를 차려놓고 헌화,분향하며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위령제가 진행되는 동안 유족들은 고인의 사진을 부여안고 통곡했으며 일부 유족들은 한강에 흰 국화꽃송이를 던지며 원혼들을 달랬다. 이날 유족대표로 나온 김학윤씨(30·회사원)는 추도사에서 『비참하고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들께 삼가 명복을 빌며 가슴에 스며드는 슬픔을 참을 길이 없다』면서 『작지만 소박한 꿈을 안고 착하게 살아가던 우리 부모·형제·아들딸들을 이제 어디서 다시 보아야 하느냐』며 오열했다. 한편 이날 일부 유족들은 유족회측이 서울시에 위령제 참석을 요청했는데도 불참한 것에 분노,조순 서울시장이 보내온 화환을 부수는 등 한때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 삼풍희생 여직원 2명 영혼결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숨진 이혜선(20·삼풍직원)·한명순양(20·삼풍직원) 등 2명과 다른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10명등 남녀 12명의 영혼 결혼식이 14일 상오 10시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백련사 대웅전에서 거행. 이날 행사를 주관한 이설산스님(한국 불교사회봉사회 총재·54)은 발원문에서 『오늘 영혼 결혼식을 올리는 이들이 이 세상에서 가졌던 모든 집착과 원한을 풀어버리고 극락세계에서 다시 태어나 이승에서 못다받은 명과 복을 한없이 받도록 해달라』며 극락왕생을 기원. 이날 결혼식에서 애써 눈물을 삼키던 유족들은 마지막 행사로 스님 3명이 바라춤과 천수경을 독경하는등 구천을 떠도는 원혼의 환생을 비는 천도제를 올리자 끝내 북받치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
  • 회견 자청 삼풍 이 사장/김태균 사회부기자(현장)

    ◎입이 열개라도 할말 없을텐데… 『피해보상을 위해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싶습니다』 5일 상오 10시10분쯤 서울 서초경찰서 수사과장실.붕괴사고로 구속된 삼풍백화점 이한상(42) 사장은 변호사 자격으로 찾아온 전 무소속 서울시장 후보 박찬종씨와 자리를 마주했다. 애꿎게 죽어간 원혼들에 대한 죄책감때문이었는지,아니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철창 밖의 분노한 여론이 두려웠을까. 이사장은 핏발이 선 눈에 퍽이나 초췌한 표정으로 박씨와 마주 앉았다.갑작스런 박씨의 방문에 처음에는 놀라는 기색이었지만 곧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수그렸다. 박씨가 어색하게 운을 뗐다.『부모·형제를 앗아가고도 사죄는 커녕 「내 재산도 날아갔다…」운운하는 이들을 보고있자니 하도 답답해 접견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대화는 약 20여분동안 계속됐다.이사장은 접견이 끝날 즈음,나지막한 목소리로 『피해자 가족과 국민들에게 아픈 상처를 남긴데 대해 사죄한다』고 말문을 열었다.마치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긴 숨을 들이쉬었다. 이어 『가족과 회사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털어놓았다.피해보상을 위해 아버지 이준(73) 회장과 가족 및 법인 명의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내놓겠다는 것이다. 이사장은 끝으로 박씨에게 기자회견을 주선해 줄 것을 부탁했다.자기의 이러한 뜻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릴 기회를 갖고싶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어딘지 앞뒤가 맞지않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재산을 헌납하면 그뿐이지 기자회견은 해서 무얼 하겠다는 것일까. 『이럴 때는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좋은데…』.이사장의 말을 전해들은 한 경찰관의 말이다.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조차 민망스러울 정도로 그 잘못을 따지기 어려운 이사장.그는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다」는 평범한 속담의 뜻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 교육개혁 발자취/50년새 6차례… 「입시」만 11회 “손질”

    ◎정권 바뀔때마다 손대 수험생들 혼란 초래/「새안」 여론수렴 1백여회… 15개월만에 “햇빚” ▲세계 최고의 입시지옥 ▲한해 사교육비 17조원 ▲토플점수 세계 25위 ▲고교학력 세계 최하위 ▲공교육비 선진국의 3분의 1 ▲대학교수 한 사람앞 대학생수 일본의 3.5배­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다. 이 지표에서 보듯 우리교육의 세계 석차는 「꼴찌」에 가깝다. 정부의 교육개혁은 이같은 우리교육의 낙후성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출발했다. 교실에서 분필로 가르치는 암기식 교육으로는 미래의 첨단 정보사회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판단 또한 교육개혁의 절실함을 더해 주었다. ○…교육개혁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시제도를 중심으로 개혁안을 만들었다.그러나 추진력의 부족과 이해집단의 반발,국민의 인식부족으로 언제고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오히려 혼란만 초래했을 뿐이다.시행착오를 거듭하며 11차례나 바뀐 입시제도는 수험생을 혼란스럽게 한 교육행정의 대표적인 잘못된 사례였다. ○…해방 이후 굵직굵직한 교육개혁 조치만 6차례가 단행됐다. 미군정기와 제1공화국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개혁조치는 6­3­3­4제의 단선형 학제 채택과 의무교육 실시가 핵심이었다.한자와 왜색문화 일소를 기치로 내걸었던 당시의 개혁은 미국식 교육의 도입과 교육재건이라는 특징을 지녔었다. 60년 4·19혁명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이 학원혼란 수습이란 차원에서 단행한 개혁은 교육행정의 분권화를 내세웠지만 61년 5·16군사혁명후 혁명정부의 개혁안에 밀려 흐지부지됐고 혁명정부는 반공과 국방교육의 강화,정신혁명을 근간으로 하는 인간개조,생산과 기술교육의 진작 등을 내걸어 군·학 연계에 의한 개혁이라는 특징을 보였다. 제3공화국에서 유신정권으로 이어지는 시기에는 경제발전에 따른 인력양성과 학생운동의 통제수단으로 개혁이 필요했다.중학교 무시험제 도입,고교평준화제 실시,교수 재임용제·학도호국단 창설 등의 조치가 이뤄졌다. 제5공화국도 집권 초기인 80년7월30일 대학본고사 폐지를 주내용으로 하는 대학입시 개혁안을 발표했다.졸업정원제실시,대학입학인원 확대,과외금지 등을 주내용으로 한 당시의 개혁은 국민의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88년 제6공화국은 독학사제도 도입과 함께 대학입시제도를 수능·내신·본고사로 치르는 개혁안을 내놓았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김영삼 대통령의 선거공약에 따라 93년8월10일 교육개혁위원회 규정이 대통령령으로 공포되고 대통령의 직속 자문기구로 교육개혁위원회가 발족됐다. 이 규정에 따라 교육개혁위는 지난해 2월 위원장에 대우재단 이석희 이사장,부위원장에 서강대 김윤태 교수를 선임하고 위원 23명도 위촉,교육개혁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어 3월에는 전문위원 10명을 위촉했고 국무총리행정조정실장을 위원장으로 실무협력위원회가 구성됐다. 교육개혁위는 위원회의 구성을 마친 뒤 곧바로 국민여론 수렴 작업에 들어가 그동안 공청회 3회,정책협의 29회,교육현장 방문 80여회,국민제안 접수 4백40여건등 활동을 벌였으며 외국실태도 3차례나 조사했다.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교개위는 2백여차례의 소위원회,14번의전체회의를 통해 교육개혁안을 논의했다.교개위는 그러나 지난해 6월 대학입시 본고사를 95년부터 폐지하자는 건의안을 냈다가 하루만에 철회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 뒤 지난해 9월 ▲교육재정 확충 ▲대학교육 개혁 ▲사학의 자율과 책임 제고를 우선 추진 3대 과제로 삼고 교육개혁 11대 과제를 마련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교개위는 이 방안을 토대로 최종 개혁안의 입안에 나서 9대 과제를 교육개혁안으로 확정,발표하게 된 것이다. ○…교육개혁안을 마련하는데 핵심역할을 한 사람은 이명현 상임위원(53)이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 위원은 한국외국어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위원과 함께 새 입시제도를 마련하는데 중심적인 활동을 한 곽병선 전문위원(54)은 미국 마켓대 철학박사 출신으로 한국교육개발원 교육공학연구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 구덩이속 사체·차량 뒤엉켜 “아수라장”/대구 가스참사 이모저모

    ◎조명차·기중기 등 동원 밤새 사고현장 수습/서울 가스사고가 언제인데… 시민들 분노 굉음과 함께 치솟는 불기둥,그리고 아비규환….대구 달서구 상인동 영남고 앞 네거리 지하철공사장주변은 28일 아침 「꽝」하는 폭발음이 귀청을 때리는 순간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등교길 학생들을 태운 시내버스가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공사장 철제빔 위에 걸렸고 희생자들의 핏자국과 핸드백 신발 등이 어지럽게 널려 폭격받은 전쟁터를 방불하게 했다. 그러나 사망자 가운데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이 많아 사체가 안치된 병원 등에는 가족의 얼굴을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줄을 이었다. ○…사고현장 복구에 나선 동성종합건설,청구건설 등 대구시내 19개 지하철공구 건설회사 작업반원 1백여명은 기중기 6대를 이용,휘어지거나 부서진 철제빔을 교체하는 등 사고현장 수습에 진력. 작업반원들은 대구소방서의 조명차 4대에 부착된 서치라이트가 사고현장을 대낮처럼 환하게 비쳐주는 가운데 지하 17m 지하철공사장 아래에서 안전시설을 점검하고 양수기6대로 지하공사장에 3∼4m로 차오른 물을 퍼내는데 안간힘.작업반원들은 『생존자가 더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설명. ○…대구 경찰청의 한 직원은 『철야작업을 통해 철제빔 교체작업을 완전히 마칠 수는 있지만 차량이 다시 소통되려면 안전도 검사를 다시 해야 하므로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고 우려. 현장에 나온 한 경찰관도 『흘러나온 가스가 폭발해 사고가 난 것이 분명하지만 어떻게 해서 폭발하게 됐는지는 계속 수사하고 있다』면서 『폭발이 일어나기 10분전쯤 가스공사 직원이 가스냄새가 심하게 난다며 회사에 무전으로 신고를 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이 직원이 현장에서 숨져 현재로서는 정확한 사고원인을 알 수 없다』고 근심어린 표정. ○…밤이 되자,사고현장 바로 옆 영남고 운동장에서는 대구 경찰청 기동대와 방범순찰대 소속 전·의경 5백여명이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켜놓고 현장정리 작업을 강행. 가스폭발이 처음으로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이학교 앞 건널목 옆 2층짜리 「영남서적」건물은 유리창과 건물벽이 모두 깨져 흉칙한모습. ○…해인사 승가대학 승려 50여명은 이날 하오6시쯤 버스로 사고현장을 방문해 어이없이 숨진 원혼들의 넋을 달랬다. ○…폭발사고 현장인 영남고 앞 네거리 지하철공사장 주변은 한개에 7백50㎏이나 되는 철제복공판 1천여개가 부서지거나 엿가락처럼 휘어져 폭발당시의 위력을 짐작하게 했다. 교통신호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던 1백여대의 차량들도 지하철 복공판이 뒤집히면서 대부분 깊이 10여m의 지하로 떨어져 나뒹굴었고 부근 6층 규모의 서일학원빌딩 등 10여채의 건물 또한 폭음과 함께 날아온 복공판에 맞아 대부분 부서지는 등 마치 융단폭격을 당한 모습. 사고현장을 목격한 우신건설 하청업체인 세일기업 직원 서정규씨(30)는 『상오 7시50분쯤 지하공사장에서 40여명의 인부들과 함께 상오 작업을 마친 뒤 아침식사를 하려고 혼자 지상으로 올라서는 순간 굉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면서 『사고 당시 현장에 남아 있었던 인부 40여명의 생사를 알 도리가 없다』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영남고 등 네거리에 진입하다 사고를 당한 신일교통 소속 대구5라3314호 121번 시내버스는 완전 전소돼 승객 대부분이 숨져 최대 피해 차량으로 추정. 또 같은 회사 31번 시내버스도 치솟아 오른 철제빔 10여개가 덮치면서 휴지조각처럼 찌그러져 시내버스로 통학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시신이 안치된 병원들을 찾아다니느라 병원 주변은 온통 북새통. ○…중·고생 10명의 사체가 안치된 불교병원에는 비보를 전해 듣고 찾아온 부모들이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하는 모습. 또 경찰관 2명의 사체가 안치된 불교병원 등에는 동료 경찰관들이 긴급 복구에 모두 동원돼 조문객도 없이 유족들만 자리를 지켜 더욱 쓸쓸한 모습. ○…사망자가 97명에 이르나 사체를 안치할 영안실과 사체보관용 냉동기가 모자라 발을 동동 구르기도.사망자들이 안치된 10개 병원에 시신을 안치할 수 있는 냉동시설은 2∼12개정도여서 사망자의 절반은 냉방시설을 갖춘 부검실 등에 보관. ○…사고 소식을 들은 대구시민들은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경악. 서울 아현동에서가스폭발사고가 터진뒤 이같은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시민들은 『어떻게 해서 이런 사고가 계속 날 수 있느냐』며 몹시 허탈한 표정. ○…이날 하오 9시30분쯤 가장 많은 28구의 사체가 안치된 보훈병원에 양영구 달서구청장이 구청 직원 20여명과 함께 찾아와 유족들에게 『피해보상과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고 나가려 했으나 유족들에게 붙잡혀 멱살을 잡히고 상의가 찢어지는 등 봉변을 당하기도. ○…대구시 지하철 건설본부와 사고 현장 부근에서 백화점 신축공사를 하고 있던 표준개발측은 이번 사고의 책임이 없다며 한결같이 발뺌. ◎대구 폭발가스는 LPG/공기보다 무겁고 구린냄새 특징/누출땐 바닥으로 가라앉아 “위험” 도시가스는 지난 72년 11월 서울시가 강서구 염창동에서 LPG를 공급한 것이 효시다.액화석유가스인 LPG와 액화천연가스인 LNG가 있다.대구에서 폭발한 것은 LPG다.석유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LPG는 프로판과 부탄가스의 두 종류가 있다.배관시설이 없어도 충전소 등을 통해 공급받을 수 있어가정과 사무실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착취제를 섞어 구린 냄새가 나도록 해 누출 사실을 쉽게 알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공기보다 1.5배 무거워 바닥으로 가라앉는다.대구 사고도 새나온 가스가 고여 있다가 대폭발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사고위험이 적은 LNG는 가스전에서 나오며 전량 수입한다.서울 인천 천안 대전 청주지역은 LNG가,나머지 지역은 LPG가 30개 지역 도시가스 회사에 의해 공급되고 있다. 지난 해 우리나라의 도시가스 소비량은 LPG가 5백36만t,LNG가 5백78만t이었다. 대구지역은 대구도시가스(주)가 전량 공급하고 있다. 대성그룹이 90%의 지분을 갖고 있는 대구도시가스는 서구 중리동 6천73평에 9개동의 건물과 LPG 저장탱크와 LPG 기화기,공기압축기,비상발전기,가스저장탱크 등의 공급시설을 갖추고 있다.중압관 3백10㎞,저압관 2백44㎞ 등 배관 5백44㎞와 정압기 1백24개,밸브박스 8백38개 등을 관리하고 있다.직원은 1백87명으로 지난 84년 자본금 30억원으로 설립됐다.연간 도시가스 생산량은 7천만㎥로 대구시 전체와 경산시 일부 등16만가구에 도시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비명 듣고도 손못써 가슴태워/맨처음 출동 소방수 6명/구조장비 부족해 인명 더 못구해 죄송 대구 지하철공사장 가스폭발사고 현장에 맨 처음 달려가 구조활동을 벌인 대구 달서소방서 강완수 소방교(38)등은 아침에 자기들이 해낸 일을 생각하기 조차 싫어했다. 강소방교와 함께 구조작업을 벌인 소방관은 도형길소방장(52)과 유신종소방교(35) 한치황(33)·강영생소방사(32) 등 6명. 이들은 전날 밤을 꼬박 근무한 뒤 이날 상오 7시50분쯤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파출소와 2백m 떨어진 사고 현장에서 들려온 「펑」하는 소리를 듣고 특유의 직업 의식을 발휘,현장으로 곧 바로 달려가 20여명의 부상자를 구출한 뒤 15구의 사체를 수습하는 등 구조작업을 벌였다. 『폭발 순간 불기둥이 1백m 이상 올라가면서 철제복공판 1백여개가 튕겨 나가 현장에 바로 뛰어가기는 사실 겁도 좀 났습니다. 제2의 폭발사고도 우려 되었죠』 구조된 부상자 가운데는 다리가 부러져 비명을 지르는 사람,머리에 피를 흘리며의식을 잃은 사람,옷에 불이 붙어 어쩔 줄을 몰라하는 사람 등 조금만 구조가 늦었어도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도형길 소방장은 어린 영남중학생들의 사체를 수습할 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털어놨다. 구조 장비가 부족해 더 많은 사람을 구조하지 못한 것을 한결같이 안타까워했다. 무너져 내린 지하철공사장 밑바닥에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은 손을 쓸 수가 없었다는 것. 피가 홍건히 묻은 소방관 제복을 만지며 안타까워하는 이들은 아직 구조되지 않은 생존자가 있을 지 모른다며 집으로의 퇴근을 미룬채 사고 현장으로 구조를 위한 발걸음을 옮겼다.
  • 「법률가 양성」 어떤제도 최선인가

    현행 법학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과대학의 학부과정을 폐지하는 대신 3년과정의 법과대학원(로스쿨)을 설치하거나 법과대학의 수업연한을 6년으로 늘려 졸업자들을 대상으로 변호사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법과 사회 이론연구회」(회장 권오승 서울대교수)가 14일 고려대에서 개최한 「법률가 양성제도의 개혁방안」 토론회에서 발표된 서울대 공법학과 홍준형 교수의 「법과대학원 설치방안」과 고려대 법학과 배종대 교수의 「법학교육의 개혁방안」을 소개한다. ◎로 스쿨 설립안/서울대 홍준형 교수/고등법원소재지 5∼7개 신설/배출인력 조정·실무법조인 교수확보 용이 법학교육의 개선방향은 「법과대학 6년제안」과 「법과대학원 설치안」 등 두가지안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전자는 2년의 예과과정과 4년의 본과과정을 두는 예·본과형과 4년의 학부과정과 2년의 대학원과정을 두는 대학원혼합형으로 나눌 수 있다.최근에는 예·본과형과 대학원혼합형을 절충한 새로운 안도 제시되고 있다.대학원 혼합형의 틀안에서 4년의학부과정 이수자에게 법학사의 자격을 주는 동시에 이들중 일정한 자격이상의 자만 2년의 석사과정에 진학토록 한다는 것이다. 2년제 석사과정 정원은 3천명 정도로 하되 졸업자중 1천5백∼2천명에게 국가시험을 거쳐 변호사자격을 부여한다는 방안이다. 법과대학원이 새로운 법조인의 배출제도와 구조기능적으로 적합하게 연결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이다.법과대학원 설치 반대론자들은 로스쿨제도가 법률문화가 다른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경쟁력있는 법조인 양성구조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이제도가 최선이다.법과대학원 설치는 국가가 국·공립법과대학원을 설치·운영하는 안과 기존의 법학교육기관들이 소정의 설치기준에 따라 국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아 운영하는 안으로 구분할 수 있다.국·공립 법과대학원 설치안은 사법부 소속 전문법과대학원을 고등법원 소재지 등에 5∼7개 설치,법조인 수급계획에 맞춰 적정수의 인원을 선발하는 방안이다.이는 배출인력의 양과 분포를 조정하기 쉽고 실무법조인을 교수로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국가 재정부담이 높고 기존 법학교육기관이 예비학교로 전락하는 문제점이 있다.따라서 국가가 기존 법과대학중 소수의 대학에 한해 전문법과대학원 설립을 인가하는 설립인가제안이 타당하다. 이 경우 「미국변호사협회」처럼 법과대학원의 공인여부를 결정하는 공인기구가 설치·운영돼야 하며 법학교육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엄격한 설치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또 법과대학과 법원의 분포현황,개업변호사의 지역별 분포 등을 고려해 설치돼야 한다.법과대학원은 현행 법조인의 수가 크게 부족한 점을 감안,늦어도 96년까지는 설치돼야 한다.정부는 95년 하반기까지는 법과대학원 설치인가여부를 심사·결정하는 평가기구를 설치한뒤 96년 1월이전 2∼4개의 전문법과대학원을 인가해야 한다. ◎법대 수학연장안/고려대 배종대 교수/실무교육 강화… 수업 6년으로/현골격 유지… 석사이수자에 변시자격 부여 ▷법학교육의 개혁방안◁ 현행 법학교육의 문제점은 법과대학의 교과과정이 사법시험 위주의 해석론에 편중,실무와 괴리돼 있고전문성이 결여돼 있으며 고급인력이 낭비되고 있는 것으로 요약된다. 법과대학원 도입방안은 기존의 법과대학의 학부과정을 없애는 대신 법과대학원을 설치해 다양한 학부 전공자들을 법과대학원 학생으로 선발,3년과정의 실무교육을 실시한뒤 이들에게만 변호사시험 응시자격을 준다는 것이다. 이 방안은 실무교육을 강화할 수 있고 다양한 전공의 학부과정을 마친 학생들을 법률가로 양성해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찬성론자들은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이방안은 실무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교수진 확보가 어렵고 학부과정 교육이 부실한 우리나라 교육여건 하에서는 다양한 전공자들이 법과대학원에 입학하더라도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3년간의 변호사양성과정인 미국의 로스쿨은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않는 것으로 도입에 반대하며 대안으로 「법과대학 수학연장안」을 제시한다. 이는 법학교육을 법과대학원제도에 전담시킬 것이 아니라 현행 법과대학의 교육기간을 연장하여 교육내용을 전문화하고 이론과 실무를 통합 교육시키는 방안이다. 즉 현행 법과대학체제를 유지하면서 수학연한을 늘려 교육과정을 전문화하고 실무지향적으로 보완하여 개선된 국가시험제도와 결합하자는 입장이다. 이는 법과대학의 수업연한을 6년으로 하고 전문실무교육을 강화한뒤 졸업자들에게만 변호사 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는 안이다. 6년제안은 교양과 전공필수,전공선택과목을 교육시키는 4년의 학사과정과 특별한 전문영역과 실무교육에 치중하는 2년의 석사과정으로 구분된다.학사과정 이수자에게는 법학사 자격을 부여,다른 분야의 전공자들과 마찬가지로 곧바로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동시에 일정한 자격이상의 자(학점제한 등)만 석사과정 입학자격을 준다. 석사과정의 인원은 3천여명으로 하되 졸업자가운데 1천5백∼2천명 정도는 국가시험을 통해 변호사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자격시험탈락자는 석사자격을 갖고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 국가인력의 낭비가 없도록 한다.
  • 본사 「김구 특무대」 해체 성명서 발굴

    ◎항일투쟁하다 광복후 정치라이벌 제거 해방정국에서 테러는 하나의 정치수단으로 악용됐다.애국애족을 외친 숱한 청년단체들이 실제로는 온갖 명분을 내세워 반대파 또는 정치적 라이벌들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같은 테러단체의 뿌리는 일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독립운동의 한 방법으로 일본인·친일파를 제거하는 데 앞장선 테러단체는 해방 이후 좌우 대결에 그대로 이용된다.그러나 테러단체가 비밀결사 조직으로 유지돼온 특성 때문에 이들의 실체를 알려줄만한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시피한 실정이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이같은 상황에서 해방 직후 크게 활약한 한 테러단체의 성격·구성들을 분석할만한 자료를 최근 발굴했다. 워싱턴의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 슈트랜드분소에 보관된 「주한미군 군사실 문서」더미에서 찾아낸 이 자료는 「김구특무대」의 성명서이다.「김구특무대」는 광복 직후부터 악명을 떨치다가 45년 11월29일 김구의 지시로 해체하면서 이 성명서만을 남겼다. 「김구특무대」는 성명서에서『민족 천년의 운명을 좀먹으려는 역적의 무리들에게 향하여 단연코 일도양단 할 숙청의 칼을 뽑은 것』이라고 활동목적을 밝혔다.이어 회원숫자를 수백명이라고 내세운 뒤 『회고하면 조국광복 일념에서 중명을 띠고 내지에 파견됐다(중국의 임시정부에서 한반도로 파견됐다는 뜻)』고 해 일제 때 조직됐음을 분명히 했다. 마지막으로 『자주독립의 절대적 명제를 완수하기 위해 질풍신뢰(질풍신뢰)적 숙청과 응징으로 우리 특무대의 빛나는 임무의 막을 내릴 것』이며 『도적 일군의 시산혈하속에서만 피흘린 선배의 원혼은 비로소 고이 잠들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