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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은 시인『대동강 앞에서』

    무엇하려 여기 왔는가 잠 못 이룬 밤 지새우고 아침 대동강 강물은 어제였고 오늘이고 또 내일의 푸른 물결이리라 때가 이렇게 오고 있다. 변화의 때가 그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는 길로 오고 있다 변화야말로 진리이다 무엇하러 여기 강물 앞에 와 있는가 울음같이 떨리는 몸 하나로 서서 저 건너 동평양 문수릿벌을 바라본다 그래야 한다 갈라진 두 민족이 뼛속까지 하나의 삶이 되면 나는 더 이상 민족을 노래하지 않으리라 더 이상 민족을 이야기하지 않으리라 그런 것 깡그리 잊어버리고 아득히 구천을 떠돌리라 그때까지는 그때까지는 나 흉흉한 거지가 되어도 뭣이 되어서도 어쩔 수 없이 민족의 기호이다 그때까지는 시퍼렇게 살아날 민족의 엄연한 씨앗이리라 오늘 아침 평양 대동강 가에 있다 옛 시인 강물을 이별의 눈물로 노래했건만 오늘 나는 강건너 바라보며 두고 온 한강의 날들을 오롯이 생각한다 서해 난바다 거기 전혀 다른 하나의 바닷물이 되는 두 강물의 힘찬 만남을 생각한다 해가 솟아오른다 찢어진 두 동강 땅의 밤 헤치고 신새벽 어둠 뚫고 동트는 아픔이었다 이윽고 저 건너 불근 솟아오른 가멸찬 부챗살 햇살 찬란하게 퍼져간다 무엇하러 여기 와 있는가 지난 세월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왔다 다른 이념과 다른 신념이었고 서로 다른 노래 부르며 나뉘어졌고 싸웠다 그 시절 증오 속에서 5백만의 사람들이 죽어야 했다. 그 시절 강산의 모든 곳 초토였고 여기저기 도시들은 폐허가 되어 한밤중 귀뚜라미 소리가 천지하고 있었다 싸우던 전선이 그대로 피범벅 휴전선이었다 총구멍 맞댄 철책은 서로 적과 적으로 담이 되고 물이되어 그 울안의 하루하루 길들여져 갔다 그리하여 둘이 둘인 줄도 몰랐다 절반인 줄도 몰랐다 둘은 셋으로 넷으로 더 나뉘어지는 줄도 몰라야 했다 아 장벽의 세월 술은 달디 달리라 그러나 이대로 시멘트로 굳어버릴 수 없다 이대로 멈춰 시대의 뒷전을 헤맬 수 없다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였다 천년 조국 하나의 말로 말하면서 사랑을 말하고 슬픔을 말하였다 하나의 심장이었고 어리석음까지도 하나의 지혜였다 지난 세월 분단 반세기는 골짜기인 것 그 골짜기 메워 하나의 조국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다 무엇하러 여기 와 있는가 아침 대동강 강물에는 어제가 흘러갔고 오늘이 흘러가고 내일이 흘러가리라 그동안 서로 다른 것 분명할진대 먼저 같은 것 찾아내는 만남이어야 한다 큰 역사 마당 한가운데 작은 다른 것들은 달래는 만남의 정성이어야 한다 얼마나 끊어진 목숨의 허방이었더냐 흩어진 원혼들의 흔적이더냐 무엇하러 여기 와 있는가 우리가 이루어야 할 하나의 민족이란 지난 날의 향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난날의 온갖 오류 온갖 야만 온갖 치욕을 다 파묻고 전혀 새로 민족의 세상을 우러러보며 세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통일은 재통일이 아닌 것 새로운 통일인 것 통일은 이전이 아니라 이후의 눈시린 창조이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하러 여기에 와 있는가 무엇하러 여기 왔다 돌아가는가 민족에게는 기필코 내일이 있다 아침 대동강 앞에 서서 나와 내 자손 대대의 내일을 바라본다 아 이 만남이야말로 이 만남을 위해 여기까지 온 우리 현대사 백년 최고의얼굴 아니냐 이제 돌아간다 한송이 꽃들고 돌아간다. 고은 시인은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가, 이 시를 14일 밤 평양 목란관의 김대중대통령주최 만찬 석상에서 직접 낭송했다.
  • 특별기고/ 맑은 마음으로 허심탄회해지시라

    모레,2000년 6월12일,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대표단과 취재단 일행이 대거 평양으로 들어간다.그렇게 2박 3일간의 북한 체류 일정이 시작된다. 남북 당국간에 이 합의가 이뤄진 뒤 지난 두어달 어간에,이 나라의 수많은논자들은 이번 이 회담의 거창한 뜻을 중언부언 강조한 바 있거니와,정작 이 날에 와 닿으니,그 수다한 말,말,말 너머의 본원적인 떨림,전율이 온 몸을휘감아 온다. 더러는 ‘언외(言外)’의 국면이라는 것이 있다.한두마디 말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어느 절대절명의 정지.말 몇마디나 글 몇줄이 일거에 싹수가 없게 떨어져버리는 국면.이번 남북 정상회담이야말로 바로 대표적으로 그런 정지요,국면이다. 1948년 대한민국이 선포되고,같은 해에 역시 인민공화국이 선포되면서 나라가 반 동강이 난 뒤,실로 처음으로 남북 두 정상이 마주 앉는 이 자리는,비단 지난 55년간의 피 어린 남북 분단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 이전, 19세기 말부터 이 나라 운세가 곤두박질 쳐 오다가 끝내는 35년간식민지로전락해 버렸던 저 망국의 비운까지, 지난 백년 어간의 이 나라 이민족의 갖은 환란과 굴욕을, 그리고 끝내는 제 땅에서 못 살고 이국 땅을 떠돌다가 유랑민으로 숨져갔던 선대들의 통한까지를 안 자락으로 깔고 있는 것이다. 남북 정상 두 분께서 만나는 그 현장을 우리 산 사람은 산 사람들대로 텔레비전 화면으로 볼 것이지만,이미 저승에 가서도 유한(遺恨)을 품은 채 삭이지 못하는 6·25전란시의 저 수다한 남북 양측 전사자들의 원혼과,그 이전에 나라를 잃고 이국 땅에서 비명에 간 저 수많은 우리 선대들도 선대들대로,한껏 눈을 부릅뜨고 두 정상이 만나는 저 광경을 뜨겁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그렇게 ‘망국’에서 ‘식민지’로,다시 ‘분단’으로,지난 백년을 악몽으로 얼룩지게 했던 우리 현대사는 한 맥락이었음이 이 자리서도 새삼스럽게 확인이 된다. 따라서 이 민족의 지난 현대사 백년의 그 깊은 질곡을 이 참에 끝장내고,이 민족이 명실상부하게 새롭게 일어서며 웅비(雄飛)해갈 수 있는 기본 터전을 마련해 보자는 웅대한 뜻이 이번 이회담에는 담겨 있다.두 정상께서는 어련하시겠지만,2박 3일 긴 체북(滯北) 일정을 지켜보게 될 우리 모두 이만한시야는 모름지기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거창한 뜻을 중언부언 강조하는 것이 이 자리에서는 조금 어색하고 가당치 않아 보이기도 한다.왜냐하면 남북 정상의 만남이 바로 코 끝에 와 닿은 이 마당에서는,그런 종류의 장중한 연설은 그 분들의 운신을 필요 이상으로 무겁게 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며칠 전의 모 기관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3.3%가 2차 정상회담도 열릴 것으로 벌써 전망들을 하고 있었으며,서울에서 열릴 경우 95.1%가 찬성한다고 하였고,특히 81.9%는 그럴 경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환영할 것이라고도 하고 있었다.환영할 것이라고…!! 아,어떤가.놀랍지 않은가.이 정도로까지 우리 남쪽 인심은 지난 2,3년 어간에 급변하고 있었던 것이다.98년 ‘현대’의 정주영옹이 소 1,000마리를 끌고 판문점을 넘어 입북(入北)할 때만 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기겁을 하게 놀랐었고,온 세계가그 그로테스크한 정경에 혀를 내둘렀었지 않은가.그리고작년 99년에는 서해상에서 남북 함정 간에 불을 뿜으며 투덕투덕 맞붙기도했었는데,이젠 북의 국방위원장이 서울로 오게 되면 환영할 것이라고들 하고 있으니,이거야말로 명실공히 격세지감이 아니고 무엇인가.우리 남북 관계는 비록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이런 정도로 급변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우리뿐만 아니라 북도 마찬가지였다.지난 2년 어간에 북도북대로 알게 모르게 엄청나게 변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오죽하면,김정일 총비서가 예고도 없이 비밀리에 베이징을 방문,중국 요인들을 만났을 것인가…!! 요컨대 결론은 간명할수록 좋다.무겁고 장중한 것일랑 일단 차후로 미루고,우선은 남북 정상 두 분께서는 진정으로 맑은 마음으로 허심탄회해지시라.그렇게 두 분부터 그 간에 50여년간 끊겼던 동족의 정분이 싸목싸목 되살아 오며,공히 가슴이 화릇하게 따뜻해지시라. 두 분이 같이 파안대소로 많이 많이 웃으시라.우리 모두 이번 두 정상의 ‘만남’에서는 그 이상으로 더 바라질랑말자.과욕을 부릴 것 없이,이번 ‘만남’에서는 이런 정도면 족하다.이거야말로 바로 남북간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발이 될 것일테니까…. 이호철 소설가·경원대 초빙교수
  • [대한포럼] 베트남에서 있었던 일

    우리의 젊은 청년들이 베트남전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 내내 떠돌았던 하나의 신화가 있었다. 한국군은 너무나 용감하고 잘 싸우기 때문에 베트콩은 한국군 이야기만 들어도 도망을 가고 만다는 것이었다.그때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척자랑스러워 했었다.그런데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베트콩이 한국군을 피했던진짜 이유가 다른데 있었다고 한다면 우리가 그토록 감격해 마지 않았던 한국군의 신화는 어찌되는가. 노근리에서 미군은 한국 양민을 학살했지만 베트남에서는 우리 군이 베트남 양민을 학살했다는 증거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베트콩이 달아났던 진짜 이유는 한국군이 너무나 무서워서였다는 증언들이 나오고있다. 이제 우리는 어찌할 것인가.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앉아 버텨볼 것인가,아니면 한국군은 언제나 명예롭게 싸웠으며 지금와서 양민학살 운운하는 것은 적반하장이요 사실이 아닌 조작된 것이라고 우겨볼 것인가. 고민이 아닐 수 없다.우리는 지난해 노근리 사건이 표면화된 이래 기회만있으면 미국에 노근리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피해를 보상하라고 사설을 쓰고 있다.이제 베트남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1965년 12월12일,한국군 2개 대대가 빈딩성 턴지앙촌에 500여발의 대포를 발사한 뒤 ‘깨끗이 죽이고,깨끗이 불태우고,깨끗이 파괴한다’는 구호 아래 수색소탕작전을 펼쳤다.그들은 이 마을에서 어린이,여성,임산부 등 50명이 넘는 양민을 학살했다” “66년 1월23일부터 2월26일까지 한달여동안 빈딩성 일원에서만 1,200명의 주민이 한국군에 의해 살해됐다.그 중에는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한 가족이 8가구나 됐으며 1,535채의 집과 649마리의 물소가 불태워졌거나 총탄에 쓰러졌다”. 이 기사는‘한겨레21’이 베트남에서 취재한 자료와 현지 증언을 토대로 지난해 5월과 9월 두차례에 걸쳐 보도한 ‘아! 몸서리쳐지는 한국군’ 제하 기사의 일부분이다.우리는 이 기사가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하는가. 베트남전을‘전선없는 전쟁’이라고 했다.베트콩은 어디에도 있었고 어린이도 여자도 베트콩에 협력하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군은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총구는 양민을 향해서도 열려 있었고 학살은 미리부터 예정돼 있었는지도 모른다고‘한겨레 21’은 쓰고 있다. 베트남 문화통신부는 불완전한 통계임을 전제로 베트남전동안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양민수가 5,000여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피해자의 주장들이 얼마간 과장됐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있었던 이런 이야기들을 통째로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노근리 사건의 잔학상이 한국전에서 자유를 위해 싸웠던 미군의 총체적전적을 손상시키지 않듯이 우리군의 일부가 베트남에서 저지른 잘못이 베트남에서 싸웠던 한국군의 빛나는 전공을 말살하지도 않으려니와 그곳에서 목숨을 바친 5,000여 원혼들의 명예를 더럽히지도 않을 것이다. ‘한겨레21’과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말’지 등이 베트남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시 담아내려는 노력을 계속 하고 있다.노근리 사건을 한국인 아닌 미국의 AP통신이 파헤쳤듯이 한국의 언론이 베트남에서의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찾아내고 있는 것은 그나마 한국언론의 양심이라 할 수 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언론·사회단체,필요하다면 정부가 나서서라도 베트남에서 있었던 일들을 사실대로 밝혀내야 한다.그리고 우리가 미국에 주장하듯이 진상을 밝힌 후 필요하다면 적정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그렇지 않고 우리가 노근리 사건등을 얘기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부끄러운 역사를 스스로 밝히는 일은 용기이지 치부가 아니다.그것이 한국인의 양심이고 한국의 희망이다. 임춘웅 논설위원limcw@
  • “한국군 베트남戰 부끄러운 역사 고백을”

    지난해 9월말부터 국내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사건은 다름아닌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수백명의 양민을 대량학살한 ‘노근리 사건’이었다.그러나 이 사실은 국내 언론이 아닌 미국의 AP통신에 의해 처음으로 공론화됐다는 점에서큰 아쉬움을 남겼다.이에 따라 한국언론이 ‘외신 사대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게 일었다. 미국이 ‘가해자’임을 과감하게 밝힌 AP통신에게 진 ‘빚’을 갚으려는 것일까.모든 언론의 관심이 희망찬 21세기와 새천년으로 쏠리고 있는 지금,일부 언론이 20세기의 ‘부끄러운 역사’를 밝혀내기 위한 외로운 작업에 나섰다.‘노근리’의 양민학살과 같은 사건이 30여년전 베트남에서 한국군에 의해 자행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지면을 통해 밝혀내기 시작한 것이다. 보도의 발단은 지난해 5월 ‘한겨레21’ 256호에 실린 구수정(34) 베트남통신원의 기사 ‘아!몸서리쳐지는 한국군’으로부터 시작됐다. 5페이지 분량의 이 기사는 베트남 전범조사위의 한국군 만행 기록에 주로 바탕을 두었다. 이어 구 통신원은 과거 한국군 주둔지를 중심으로 베트남을 종단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수집했고,같은해 9월 ‘한겨레21’ 273호에 12페이지짜리 특집기사를 실었다. ‘베트남의 원혼을 기억하라’라는 제목의 이기사는 국내 언론이 최초로 보도한 한국군의 양민학살 기록이다.때마침 10월,베트남의 시사주간지 ‘일요 투오이쩨’는 베트남 언론 최초로 한국군 양민학살 문제를 제기했고,이어 여러 매체에서 구 통신원의 기사를 소개했다. ‘한겨레 21’은 한발 나아가 280호부터 ‘부끄러운 역사에 용서를 빌자’라는 주제 아래 ‘베트남전 양민학살 피해자가족 돕기운동’에 나섰다.이 잡지의 편집장은 성금모금 캠페인을 벌이는 배경과 관련,“우리의 비극에 햇빛을 들이대길 요구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치부에 햇빛을 비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금운동은 292호까지 벌써 13회째 이어지고 있다.성금액도 일주일에 300∼400만원씩 꾸준히 모여 모두 5,000만원을 넘어섰다.베트남관련 기사 및 캠페인을 맡고 있는 고경태(33) 기자는 “앞으로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 진상규명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또 “밝혀져야 할 ‘역사의 진실’ 앞에서 다른 언론의 동참이 없는 것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최근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를 창간한 오연호(36) 전 월간 ‘말’지 기자도 월간 ‘말’ 1월호와 ‘오마이뉴스’ 창간준비호에서 35년만에 입을 연베트남 참전 청룡부대 전투소대장들의 증언을 생생히 담았다. 오 기자의 심층보도가 전해지자 KBS ‘추적60분’팀이 현장취재에 들어갔고,곧 ‘오마이뉴스’에서는 기사를 영문번역해 베트남에 알릴 계획이다.오 기자는 “과거의 ‘가해’역사를 솔직히 반성해야 ‘노근리 사건’에 대한 배상 요구도 떳떳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불우장애인 돕기 자선공연 ‘홍어’

    좀체 가시지않는 불황의 짙은 그림자로 우울하게 새천년을 맞이한 연극계.그러나 남을 도우려는 마음은 누구보다 넉넉하다.한국연극배우협회소속 젊은이들의 모임인 ‘예삶’(대표 정범길)이 7일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무대에 올리는 ‘홍어’(김태수 작 송미숙 연출)는 수익금 전액을 불우장애인들에게 기증하는 자선공연이어서 보는 이를 훈훈하게 한다. 극은 물에 빠져 죽은 여자의 원혼을 달래는 바닷가 당제를 배경으로 남성의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성의 유린과 여성의 수난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다.당제의 제주로 정해져 고향에 내려온 명문대생 형욱은 소꼽친구인 영선을 범하고나서 모른체 한다.평판이 좋지못한 명구는 이 사실을 빌미로 영선에게 사랑을 애걸하며 실랑이를 벌이다 영선이 휘두른 돌에 맞아 쓰러지고,이를 본영선은 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는다.바다에서 시신을 건져올린 명구는 영혼결혼식을 올리고,새로 제주가 되어 당제를 성공적으로 치른다. 이진우,문용철,최병규,정재은 등이 격정적이고 치열한 젊음의 초상을 설득력있게 펼쳐보인다.2월27일까지(02)764-5087이순녀기자 coral@
  • [대한광장] 기록과 국가

    지난 9월말께 미국 AP통신사는 추적취재를 통해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26일 미군이 무차별 포격과 사격으로 500명 가량의 양민을 학살한 이른바‘노근리사건’의 사실성을 확인해 국내외에 큰 반향을 불렀다.이 사건은 그간 피해자 가족들이 한국과 미국 정부에 여러차례 진상조사를 확인했으나 사실적 근거가 없다고 하여 묵살돼 왔던 터라 AP의 기사는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 보도가 있자 국내의 언론이나 일반의 반응은 여러가지로 나타났다.‘군사작전 지휘권’이 미국에 있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되새기면서 ‘반미구호이유있다’는 독자투고가 있었는가 하면,이미 사건이 벌어진 직후부터 이제까지 꾸준히 진상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통신사가 보도하니까 대서특필하는 국내 언론의 ‘사대주의’를 꼬집는 한 언론인의 자기반성이 있었고,도대체 반세기가 다 되도록 억울하게 숨져간 원혼들을 위로하려는 마음의 자세조차 보여주지 못한 정부를 과연 정부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주위의 탄식도 있었다. 필자가 보도를 접하면서 받은 감상은 역시 미국은 세계를 지배할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강렬한 느낌이었다.AP통신사가 입수해 공개한 문서는 한국전 당시 미1기갑사단의 명령서와 25보병사단의 명령서,미8군 본부의명령서 등 4가지다. 1기갑사단은 양민학살 당시 현장에 배치돼 있었고,25보병사단은 1기갑사단의 오른쪽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으며,8군은 한반도에 투입된 모든 부대를 관할하고 있었다.특히 1기갑사단 휘하 8연대의 통신문은 사건이 있기 이틀 전에 7연대 2대대가 발포명령을 받고 있었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중요한 것은놀랍게도 이 모든 문서를 미군이 급격하게 수세에 몰리는 상황에서도 간수해 이제까지 보관해 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같으면 ‘전통’으로 처리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을 것을 왜 미국은 자신에게도 불리한 이 문건들을 다른 엄청난 규모의 전사자료와 함께문서고에 유지해온 것일까.이는 기록의 작성과 유지가 연속성을 보장하고 책임의 소재를 명확히 하며 근본적으로는 역사의식을 확보해주는 가장 확실한 장치이기 때문이다.그러기에 근대국가만이 아니라 왕조국가에서도 나라다운 나라가 서게 되면 통치자는 기록을 남기고 보관하려고 노력했다.주권자의속성에 따라 기록작성 의도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그것은 나라를 주체적으로 꾸며보겠다는 의지의 한 강렬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조상들도 그러했다.국왕은 사관이 입석하지 않은 채 신하를 독대할수 없었으며,사관은 국왕의 일거수 일투족만이 아니라 국사와 관련한 모든자료를 사초에 기록해 실록에 전했다.왕실은 ‘규장각’을 만들어 문서고로서 기능하게 했다.조선왕조의 이런 행위가 프랑스혁명 직후 의사록 작성과국립문서고 설치를 결정한 혁명의회의 조치와 일정한 차이가 있음은 사실이지만 문화적 자존과 역사적 주체의식이 양자에 공통된 것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현재의 우리가 부끄럽게도 조상들이 지녔던 기록문화를 발전시키기는커녕 복원하는 데도 이르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최근 정부문서기록보관소가 생기기는 했지만 아직도 중요한 사항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반문화가 건재하고 있다.대통령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퇴임하면 재임시에 지녔던 문건들은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 양 함부로 가져 나오거나 없애는 일이 아직도 다반사인 듯하며,국회나 지방의회에서만 속기록이 작성될 뿐 정작 중요한 국무회의는 간단한 회의록만을 남기고 있다. 모든 중요한 공적 회의에서는 속기록이 작성돼야 한다.자신의 모든 언행이남김없이 기록돼 진정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면 어찌 “기억이 나지않는다”고 둘러댈 것이며,‘역사’ 운운하며 진실을 호도할 수 있겠는가.속기록이 작성되는 회의에서 발언의 무게가 어떨 것인지 우리는 쉽게 상상할수 있다. 우리는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후 아직도 나라를 주체적으로 꾸렸던 역사적경험을 회복하고 있지 못하다.기록문화의 복원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의 주인이 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관건인 것이다. [崔甲壽 서울대교수·서양사]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1돌 기념

    다음달 5일부터 7일까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순국선열의 항일정신을기리는 민족문화예술제가 열린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예술제에서는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을 주제로 해원굿,사물놀이,이동연극,무용,설치미술,음향및 조명 퍼포먼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선보일 예정이다. 5일에는 오전 10시부터 형무소 사형장 미루나무 앞에서 순국선열의 원혼을달래는 해원굿이 1·2부로 나뉘어 진행되고,오후 7시부터는 탤런트 최불암씨가 특별출연하는 총체연극 ‘101번지에서 3만3,580일’이 공연된다. 6일 오후 3시부터는 택견시범과 이광수 사물놀이패의 사물놀이 등이 펼쳐지고 7일 오후 2시부터는 아프리카 독립운동에서 파생된 ‘아프리카 독립운동가’공연이 열린다. 이밖에 2000년 ‘제3세계 민족독립운동과 예술’,2001년 ‘세계 소수민족의 독립운동과 예술’,2002년 ‘원주민의 문화정체성 회복’ 등 테마별 행사가 마련된다. 김재순기자
  • [굄돌] 그대,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지난 주 내내 노근리 학살 사건으로 전 지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나는 이 사건의 보도를 접하면서 몇 가지가 뚜렷이 대비되어 마음이 착잡했다.어린딸과 아들을 미군의 총탄에 잃은 팔순을 앞둔 대책위원장 정은용 할아버지와 명령을 따라 무고한 양민을 향해 총알을 퍼부었던 퇴역 미군 증언자 할아버지.‘지구촌 경찰’을 자처한 미국의 추악한 두 얼굴.코소보와 동티모르 등다른 나라의 ‘인종청소’는 잘 알고 있으면서 정작 내가 태어난 한반도의아픈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한 대다수 한국인들.사건의 사실규명을 위해 오랫동안 철저한 조사를 벌였던 미국의 통신사와 무고한 양민들을 잃고서도 피해자 증언조차 청취하지 않았던 정부.그리고 위험을 감수하고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져 있는 언론의 비겁함. 집요한 추적 끝에 이 사건의 진상을 전 세계에 타전한 것은 우리 나라의 언론이 아니라 가해자 미국의 통신사였다.미국 국립 문서보관소에서 비밀 해제된 문서를 뒤져 그 당시 사살 명령서를 찾아낸 주역은 AP통신 한국인 민완기자다.그기자가 기초자료로 삼은 것은 1994년 우리 나라 진보지인 한 일간지와 월간지의 기사였다고 한다.그리고 그 일간지 기사의 바탕이 된 것은 바로 현 노근리 사건 대책위원장인 정은용 할아버지가 쓴 실화소설 ‘그대,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라는 한 권의 책이었다. 이 책의 서술은 분명 육하원칙에 따라 씌어진 건조한 기사체와는 다르다.노근리 사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들려주는 것은 물론,노근리 사건을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가지고 바라보게 한다.그런데 왜 이 책이 출간되던 당시대다수 우리 언론들은 침묵했을까? 왜 우리 국민들은 여태까지 이 책의 출간을 모르고 있었을까? 우리를 ‘구해준’ 미국의 범죄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사상범으로 몰릴 수 있는 우리의 현실 때문이었을까? 나는 노근리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지금이라도 이 책이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기를 원한다.그래서노근리 사건 이외에도 거창,제주 4·3,고양시 금정굴 양민학살사건 등 감춰진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들의 증언에 뒤늦게나마 귀기울이기를 바란다.어쩌면 이것이 무고하게 죽어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을 달래는 진정한 길인지도 모르니까.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 美軍, 예천서도 양민학살

    경북 예천지역에서도 6·25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한 마을 주민 50여명이 집단학살되고 9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주장이 주민들에 의해 제기됐다. 순흥 안씨 집성촌인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 주민들은 지난 51년 1월19일 낮12시쯤 마을 상공에 아군 정찰기 2대가 저공으로 선회한 뒤 잠시후 미군 전투기 6대가 날아와 폭탄을 대량 투하하고 기름까지 뿌려 마을이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고 6일 주장했다. 이로 인해 이 마을 130여가구 가운데 80여가구가 불에 타 전소되면서 노인부녀자 어린이 등 양민 50여명이 숨지고 9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당시 목격자인 안석기씨(74)는 “안동시 북후면과 경계지역인 이 마을 부근에서 국군과 인민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미군이 인민군 낙오병이 마을에 남아있는 것으로 오인하고 폭격을 한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한편 충북도의회(의장 金俊錫)는 이날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과 관련,피해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 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도의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무고한 양민 수백명이 미군에 의해 무차별 학살됐다는 사실에 충격과 비애를 금할 수 없다”며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으로 희생된 피해자와 유가족의 명예회복과 충분한 보상을 뒷받침할 수 있는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도의회는 또 “이 사건에 대해 그동안 보여줬던 정부당국의 미온적인 태도를 규탄한다”며 “한·미 양국 정부는 철저한 진상조사를 벌이고 노근리 사건으로 희생된 영령들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한 위령탑 건립 등 특별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천 김상화·청주 김동진기자 shkim@
  • ‘노근리’ 희생자 300명 넘을듯

    ‘노근리 사건’이 국내외적으로 이목을 끌면서 피해자들의 신고가 이어지고있다.‘노근리 양민학살’ 대책위원회 관계자는 5일 “사건이 언론에 크게 보도된 1일 이후 하루에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전화가 20여통씩 걸려오고 있다”고 밝혔다. 대책위 부위원장 양해찬(梁海燦·56·전 영동군 군의원)씨는 “대책위는 피해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 호적등본 등을 가지고 직접 방문토록 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확인한 사망자 수는 121명이나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를 합하면 300명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때마침 이날 충북도를 국정감사하게 된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의원들은 사건 현장을 방문,유족들의 증언을 청취하고 사건의 진상규명및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국민회의의 유선호(柳宣浩)의원은 “노근리사건은 세계적인 관심사가 됐다”며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철저한 진상규명과 유족들에 대한 배상 등을 위해 발벗고 나서고 원혼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위령제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의 이윤성(李允盛)의원은 노근리 사건을 알게된 시점을 묻는 질문에 이원종(李元鍾)도지사가 최근 언론 보도로 알게 됐다고 답하자 “고향이충북이고 관선지사도 지냈으면서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진상 규명및 배상을요구했었는 데도 전혀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몰아붙였다. 청주 김동진기자 kdj@
  • 金대통령“韓·美공조 노근리 진실 밝혀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일 노근리사건과 관련,“우리가 단독으로 조사하는 것보다는 한·미 합동으로 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며 한·미 공조하에 정확한 진실을 밝히고 보상 등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주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진상조사에 나서야 한다”며 이같이 지시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4일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갖고 한·미 합동으로 진상규명을 위한 기구 구성 문제 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김 대통령은 또 “비록 50년 전 일이지만 그렇게 무고하게 살해된 사람이있다면 진상을 밝혀서 돌아가신 원혼이나마 한을 풀어주고 유가족에게 위로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대통령은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인간의 권리 가운데 가장 절박한 것은 의식주 문제로 탈북자 문제는 중국과 북한에 국한해서 볼 게아니다”면서 “그런 점에서 단순한 불법 월경자로 취급할 사안이 아니어서정부는 이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바오닌著 ‘전쟁의 슬픔’ 출간

    베트남전쟁은 인류의 양심을 시험한 20세기 최대의 사건이다.동원병력과 사상자수,전쟁비용 등에서 그것은 1차세계대전을 능가하며,탄약 사용량에 있어서는 2차세계대전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미국의 경우 1969년 참전군인의 규모는 최대 54만9,500명에 이르렀으며,한국에서는 모두 31만명이 넘는 장병을 파견했다.역사상 가장 큰 파괴전쟁이 바로 베트남전이다. 이 베트남전에 관한 우리의 시각은 과연 정직한 것일까.베트남전에 관한 우리의 시각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우선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를 들 수 있다.‘람보’와 같은 미국의 전쟁영웅을 그린 영화에서부터 ‘지옥의 묵시록’‘플래툰’‘메탈 재킷’ 같은 휴머니즘과 전쟁의 비애를 다룬 영화에 이르기까지 베트남전 영화는 다양하다. 그러나 이 영화들은 한결같이 ‘미국인’이 주인공이다.베트남전쟁은 어디까지나 ‘베트남의 전쟁’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그런 만큼 베트남 전쟁을 베트남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는가,전쟁이 끝난 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하는문제는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 최근 출간된 베트남 소설 ‘전쟁의 슬픔’(바오닌 지음,박찬규 옮김,도서출판 예담)은 우리에게 바로 그러한 베트남전의 진실을 일깨워준다. 소설을 쓴 바오닌(48)은 하노이 태생으로 베트남 해방투쟁과 75년 사이공 함락전투에 참여하기도 한 행동주의 작가다.베트남인들이 겪은 전쟁과 청춘을점령당한 젊은이들의 사랑,울부짖는 영혼이 안개처럼 떠도는 밀림을 생생하게 묘사한다.이야기는 해방군 전사 키엔이 밀림에 메아리치는 전쟁원혼의 울부짖음을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국작가가 쓴 베트남전 배경 소설도 독자들의 만만찮은 반응을 얻었다.‘무기의 그늘’‘하얀 전쟁’‘머나먼 쏭바강’ 등이 그것이다.그러나 이 작품들은 제3자적인 시각에서 베트남전을 다룰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전쟁의 슬픔’은 베트남 문학사상 처음으로 전쟁을 이념이나 정치적 관점이 아닌 휴머니즘에 입각해 그린 작품이란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전쟁의 슬픔’은 베트남의 혁명전사 이야기인 구에반봉의 소설 ‘사이공의 흰옷’과 흔히 비교된다.두 소설은 사뭇 대조적으로 읽힌다. ‘사이공의 흰옷’이 평범한 여학생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마침내 여전사로 우뚝 서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면,‘전쟁의 슬픔’은 혁명의이념보다는 전쟁 자체의 참혹함과 고통을 고발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지난 91년 베트남에서 출간되자 마자 커다란 대중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전쟁의 슬픔’은 영국·프랑스 등 10여개국에 소개돼 좋은 평가를 받았다.94년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이 소설을 최우수 외국소설로 선정하기도 했다. 김종면기자
  • 대전 민족예술단 우금치‘북어가‘공연

    대전의 마당극 지킴이 ‘민족예술단 우금치’가 10번째 정기공연작에서 여성에게 눈길을 돌린다.9∼10일 대전 우송예술관에서 공연하는 ‘북어가 끓이는 해장국’은 사람의 문제를 남녀평등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번씩 패야 한다’는 농담 뒤에 숨은 여성의 억압을 다섯장면으로 나눠 고발한다. 첫 마당에서 펼쳐지는 남녀 불평등 구조에 억압받는 원혼을 달래는 굿패들의 사설과 지전춤,풍물장단 등 볼거리도 그득하다.(042)273-2629이종수기자 vielee@
  • [대한광장] 마비된 안전의식

    동네에 도시가스가 시설되고 난 몇달 후였다.무엇이 잘못 됐는지 배관이 묻혀 있는 대문앞 4미터 도로가 걸핏하면 파헤쳐져 차량출입이 금지되고 길에서 파낸 시멘트 파편들이 길을 메워 통행을 어렵게 했다. 무엇보다 시멘트를 부수는 굴착기 소음에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먼지또한 집주변을 덮쓰듯 해서 참지 못하고 대문을 박차고 나갔다.그리곤 “처음부터 철저하게 잘했으면 이렇게 두번 세번 파헤치지 않을 것 아니냐”하고 음성을 높였다. 그들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미안하다는 말도,자기들이 첫 공사를 하지 않았다는 책임회피의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주민들의 질책에 면역이되어버린 사람들처럼 무표정에 무반응이었다.순간,섬뜩한 느낌이 왔다.YS정부 때의 엄청난 대형사고들이 떠오르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부르짖던 ‘안전’이 결국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저렇듯 무감각 면역만 생기게 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지만 열차탈선,비행기 추락,배 침몰 거기다 땅속 가스폭발까지 하늘 땅 바다를 넘쳐 캄캄한지하로까지 뻗쳐지는가 싶더니,이듬해에는 멀쩡해 보이는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아파트가 종이 구겨지듯 붕괴하는,그야말로 귀신도 경악할 대형참사가 터지면서 수백명의 소중한생명이 비명에 사라지지 않았던가. 사건이 연발할 때마다 모든 입달린 사람들은 안전을 부르짖고,또한 피맺히게 우리의 안전불감증을 성토했다. 성토의 기세가 워낙 크고 절실했기 때문에 이후부터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제반 시설물에는 안전규칙이 필히 지켜질 것이라 믿었다.안전불감증에 고질화된 중증환자라 해도 나라가 흔들릴 만큼의 대형사고를 겪었으니 스스로 깨달아 변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후 또다시 가슴을 에이는 대형참사가 일어났다.돈독이오른 어른들의 상혼(商魂)과 행정 관계자들의 무책임한 처리로 가건물 컨테이너가 철골조 정상건물로 둔갑되어 억만금 같은 어린 생명들을 화염으로 앗아가게 하고 말았다. 고사리손의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숨막히고 뜨거웠을 것이며 공포에 떨었을까 생각하면 명치께가 난자당하듯 저며지고 그들을 사지(死地)에 몰아넣은죄책감으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다.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싶으면 그만 말이 막힌다. 그간 우리들의 안전불감증에 어떤 변화도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불과 수년전의 참사들을 TV드라마 시청하듯 건성으로 구경하고 세월따라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것인지,아니면 불감증이 불치의 질환으로 전신을 마비시킨 것인지실로 멍할 뿐이다. 세계의 방송 언론들은 한국을 당연히 교통사고 세계 1위에다 대형사고 1위국으로도 부상시켜 놓고 있다.누구의 자조(自嘲)처럼 과연 우리 민족은 북한의 게릴라 수출,마약밀매 기술 등과 함께 세계에서 유별난 특성의 종족인 것인지 새삼 음미해 보게도 된다. 물론 안전불감증이 불치의 질환이 아님은 자명한 사실이다.새로 태어나듯새 삶을 시작하듯 기초부터 완벽하게 원칙을 고수하는 ‘다지기교육’을 받을 자세만 되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변화·완치의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어른들의 무자비한 횡포로 비명에 스러진 어린 원혼들의 피울음을 이번에야말로 망각해서는 아니 되리라는 생각이다.얼굴을 붉혀 부끄러워하면서 최소한의 어른 자존심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그것을 기억하고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음은 아직도순수한 인성(人性)을 지녔다는 것이고 존경받을 수 있는 인물됨으로의 여백이 있다.사람답게 살 만한 세상의 가능성 또한 펼쳐져 있는 것이다. 무감각 무반응의 섬뜩한 마비와 납빛 면역현상은 지구의 황폐화 초래와 인간되기 거부의 자초 외에 더는 아니기에 씨랜드 아기들 참사사건은 어른들뇌리에 깊숙이 각인되어 자기 단근질의 철퇴로 영원히 살아 남았으면 싶다. 필자만의 바람일까만은. [김지연 작가]
  • [사설] 의문사규명은 역사적 과제

    국민회의는 69년 3선 개헌 이후 발생한 각종 의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하고 곧 당정협의를 거쳐 법안을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고 한다.이로써 의문사 진상규명과 고인들의 명예회복을 요구하며 6개월 넘게국회 앞 길바닥에서 천막농성을 벌여온 유가족들의 염원도 풀리게 됐다. 남북이 분단된 가운데 정부가 수립된 이후 권위주의적인 제1공화국과 군사정권 3·4·6공을 거치는 동안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은 곧잘 용공(容共)으로 몰려 탄압을 받았으며,노동운동 분야에서도 많은 희생자를 냈다.그런 희생이 쌓이고 쌓인 끝에 우리는 건국 50년 만에야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부를갖게 됐다.국민의 정부가 들어선지 1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법률 제정에 나선 것은 오히려 때늦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특별법안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으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고위원 9명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있다.위원회는 유족이나 관련자들이 진정하는 각종 의문사 사건에 대해 조사를 벌여 범죄 혐의가인정될 경우 즉시 검찰총장에게 고발하고,범죄 혐의의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경우 검찰에 수사를 공식 요청하도록 돼있다.또한 위원회가 실질적인 조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진정인과 참고인 및 사건관련자들에게 출석과 진술은물론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강제구인장을 발부받거나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본격적인 수사를 검찰이 하게 돼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검찰의 자세에 달린 문제다. 현재 유가족협의회는 70∼80년대 주요 의문사 사건을 42건으로 잠정 집계하고 있다.대학재학중 의문사한 사건 20건,군에 강제징집된 뒤 의문사한 사건22건 등이다.대표적인 사건으로는 73년 중앙정보부에서 의문사한 최종길(崔鍾吉) 서울법대교수 사건,75년 등산중에 의문사한 장준하(張俊河)씨 사건,89년 수배중 의문사한 조선대생 이철규씨 사건,89년 의문사한 중앙대생 이내창씨 사건,91년 입원중이던 병원에서 추락사한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사건을 들 수 있다.75년 인혁당사건의 진상도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민주와 통일의 제단에 목숨을 바친 열사들의 의문사 진상을 규명하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은 ‘살아남은 자들’이 담당해야하는 역사적 과제다.눈을 감지 못한 채 우리 산야를 떠도는 원혼들을 달래고,다시는 그같은불의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국민적 다짐이기 때문이다.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20)이애주 교수

    춤꾼은 발딛고 선 땅의 이야기를 허공에 퍼뜨리며 땅과 하늘을 잇는다.하지만 대개의 우리 춤은 관념적인 동작에 머무르며 현실과는 따로 놀았다.87년시위 현장과 노제에서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풀어낸 이애주교수(당시 40·서울대 체육과)의 ‘바람맞이춤’은 이런 통념을 깨뜨렸다. “춤의 본질은 인간의 건강성과 바르게 사는 법을 몸으로 그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어긋나게 흘러왔지요.정부의 탄압과 사회현실을 모르쇠한 춤꾼들의 의식이 주요 원인이죠” 이른바 ‘시국춤’이라 불린 그의 춤작업은 당시 민족·민주운동의 상징이었다.‘춤꾼,더구나 국립대 교수라는 점잖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는 삐딱한(?) 선입관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그러나 거친 무명옷을 입고 온 몸으로 불사르는 이교수의 춤사위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이뤄진 것은 아니다. 70년대초 음악의 이종구·김영동·김민기,마당극의 임진택·채희완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문화운동 1세대와 어울리며 탈춤과 우리춤,민요 등을 연구했다.밤을 새며 토론한 내용은 동작이나 기교로서 탈춤이 아니라 시대를 읽는지혜였다. ‘조국은 하나다’(김남주시집) ‘대륙의 붉은 별’(모택동평전)등 무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책들이 연구소를 채우고 있는 것도 그의 춤을 살찌워온 것이 ‘사회’였음을 보여준다.74년 ‘땅끝’ 공연을 준비하다가 경찰에끌려간 것이나 놀이패 ‘한두레’ 활동,탈춤보급운동 등은 그의 세계관이 어디에 있는가를 대변한다. “민주화운동 현장에 참여한 것은 저의 춤과 삶을 깊이 있게 만들어 줬습니다.예술과 현실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값진 교훈을 주었죠.‘씨·물·불·꽃춤’을 담은 ‘바람맞이춤’도 역사와의 만남때문에 가능했지요” 생명을 잉태하는 ‘씨’와 그것을 살리는 ‘물’은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고문에 대한 대항논리로 만들었고 권인숙을 고문했던 불지짐에서는 ‘불’을보았다는 이교수는 이 모든 양심들이 다시 태어나라는 염원을 ‘꽃’에 담았다고 말한다.“누님은 사회가 춤을 추게해야 한다”는 당시 풍물패 후배 조경만교수(목포대)의 격려도 큰 힘이었다고 술회한다. 이런 치열한 의식이 빚는 춤사위 덕택에 이한열,조성만,문송면(수은중독으로 사망),이석규(분신한 대우노동자)등 당시 열사들의 원혼은 비로소 구천을 떠날수 있었다.차마 감지 못한 눈들이 그의 살풀이춤을 빌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갔다.무대춤 형식으로는 맺힌 것을 풀어주고 극복하는게 불가능했기에 거리로 나선 것이다. “한열이가 최루탄을 맞고 죽는 장면을 재연하면서 베를 가르고 나가는데한열이 어머니가 실신하고 누나는 ‘한열이가 왔다’면 통곡합디다.할복 투신한 조성만의 거리춤 재연때도 비슷했습니다.제가 유족의 한을 풀어주는 무당역할을 한거죠” 과거를 회상하는 이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이어 알듯 말듯한 미소로 표정을 바꾸었다.그 뜨겁던 역사의 현장에서 묵묵히 ‘춤’의 세계로 침잠할 때처럼.이교수는 역사의 현장과 잠시 거리를 둔 상황을 에두른다. “88년 범민족대회를 평가하는 모임에서 크게 실망했습니다.주체세력의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을 보고는 ‘내 춤이 계속 여기 머물러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소신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닐 바에는 차라리 들어 앉아 춤이나 정리하자고 결심했죠” 그동안 10년이 흘렀다.사람들은 ‘이애주가 운동권과 단절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어떤 이는 ‘역사의 현장에서 춤의 뿌리로 돌아왔다’며 애써 이애주의 변신(?)을 반겼다.모두 단편적이고 좁은 시각이었다.모두 그의 춤에서 현실 참여만을 떼서 본 탓이다.애초에 둘은 따로 있지 않았다.그는 전통춤에서 저항이라는 뿌리를 보았던 것이다. “우리춤을 계승하면서 한걸음 더 나아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일부 언론에서 ‘운동권 단절’ 운운해 당황했습니다.무엇보다 운동권에 누를 끼친 것같아 미안했습니다.하지만 저는 결코 단절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이애주에게 춤은 무엇인가.어릴 때에는 몸에서 배어나온 ‘흥’이었다.아버지 직장의 야유회 여흥시간은 그의 무대였다.‘될성부른 나무의 떡잎’을 알아본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민요나 전통춤을 그럴듯 하게 흉내내는 딸을 데리고 이왕직 아악부’(국립국악원 전신)로 갔다.민요춤 소고춤 칼춤을 배웠다.그곳에서 한성준류 ‘승무’를체득했던 김보남선생을 사사한 것은 ‘운명’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그를 눈여겨 본 한영숙선생(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보유자)은 첫 제자로 받아들였다.이애주에게는 몸에 익은 춤사위였다.그러나 한때 스승은 제자의 ‘외도’를 이해하지 못했다.춤만 배울 것이지 이상한패거리들과 어울리다 자신의 연습장에 경찰이 들이닥치지 않나,툭하면 형사들이 찾아와 ‘이애주에게 무얼 가르쳤소’라고 다그치곤 했기 때문이다. “저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셨어요.내색은 않으셨지만 좋아하지 않으셨죠. 나중엔 이해해 주셨는데 제 마음속의 미안함은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최근 이교수는 고구려 벽화에 푹 빠져 있다.그림속 고구려인들에게서 우리춤의 원형을 보았다.그곳에서 새 밀레니엄을 우리식으로 열어 젖힐 방도를찾고 있다. 사위가 어두워질 무렵 그는 다른 약속장소로 향했다.멀리보이는 관악산 위에 그의 단아한 몸이 떠오르면서 수많은 집회·장례식장의 춤이 겹쳐졌다.87년 대통령선거때 백기완후보의 TV유세 찬조연설를 하는 강렬한 인상이 지나가는가 싶더니 하얀 장삼과 붉은 가사,남색 치마를 입고 북채를 들고 있다. 부드럽고 고요하지만 때로는 날카로운 춤사위로 개인의 번민이 아니라 세상의 고통을 토해 내고 있다.그 속엔 현대사의 소용돌이를 정면으로 통과해 온그의 큰 깨달음이 들어 있었다. - 그의 길(이애주 교수) 47년 황해도 사리원 출생 54∼63년 ‘이왕직 아악부’에서 김보남 사사 59∼61년 이화여대 주최 전국무용대회 3년 연속 우승 64년 문화공보부 신인무용경연대회 특상 65년 서울대 체육교육과 입학,석사 학위,서울대 국문과 편입 졸업 69∼8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 한영숙 사사 82년 서울대 체육교육과 전통무용 전임강사 83년 공간 전통예술의 밤’ 공연 95년 서울대 정교수 96년 무형문화재 지정 98년 ‘이애주 춤’ 공연
  • 프리뷰-극단 작예모의 창작극 ‘찬탈’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연극판에서 세칭 ‘돈 안된다’는 창작극을 꾸준히무대에 올리는 극단들이 있다.소극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들 극단중의 하나인 ‘작예모’(작은 몸짓, 예술사랑, 인간모임의 뜻)가 창단 5주년 기념작으로 ‘찬탈’(이희준 작·김운기 연출)을 공연하고 있다. 이 작품은 ‘역사의 블랙홀 속으로’라는 부제에 걸맞게 시공간을 초월한다.‘유리왕’을 지키는 토우(土偶)들이 가상극을 만들 모의를 한다.원혼으로구천을 떠도는 ‘치희왕비’의 한을 달래기 위해 역사에 인위적으로 개입한다.억울하게 죽은 아들 해명태자로 하여금 원수를 갚고 왕위를 잇게 하려는것이다. 이쯤되면 관객은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는 고구려의 ‘황조가’를 떠올릴수 있다.그렇다고 이 작품이 꾀꼬리의 노래를 흉내 내는건 아니다.다만 인물만 끌어왔다.역사에 가정은 없다.타임머신을 소재로 한 숱한 작품이 보여주듯 ‘찬탈’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지 못했다.‘해명태자(정유석)’는 왕이 되지 못하고 권력을 둘러싸고 거듭되는 궁중 암투의 희생물이된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아무리 이성적으로 각본을 꾸며도 이상 사회는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작가 이희준은 말한다. 그러나 조명이 꺼진 뒤 남은건 주제뿐이라는 느낌이다.시간이 짧아서인지가상극은 구성이 성기고 충신‘두로장군’의 모의 결심 과정에 대한 설명부족 등 비약이 곳곳에 보였다. 제관 ‘사비’로 나오는 고물상(김유경류 봉산탈춤 전수자)의 안정된 연기와 딸 ‘수아(성여진)’의 차분한 배역소화는 돋보였다.권력의 화신 ‘화희왕비(천정명)’와 대신 ‘설지(이경희)’는 열정적 연기에도 불구하고 힘이달려보였다. 하지만 어떠랴.아직 덜 익었지만 ‘작예모’의 무대엔 예술에 대한 아름다운 고집이 배어있지 않은가.회를 거듭할 수록 질적 도약도 ‘약속된 땅’일것이다.4월4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월∼목 오후 7시30분 금·토 오후 4시30분·7시30분 일 오후 3시·6시. 李鍾壽
  • 골프클럽 가짜가 판친다(4회)-피해사례

    청주에서 사는 A씨는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국캘러웨이골프 A/S점을찾았다가 크게 낙담하고 말았다.자주 다니는 골프연습장에서 ‘본사에서 싸게 나온 물건’이라는 말만 믿고 산 아이언(X-12)이 가짜 모조품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A씨는 “어쩐지 얼마 치지도 않았는데 헤드가 돌아갔다”며 그래도 수리를부탁했으나 ‘사정은 딱하지만…’이라는 위로만 듣고 수리를 거절당했다. 대기업 임원인 B씨는 지난해 혼마 드라이버 한개를 선물받았다.그러나 최근 웃돈을 주고 새 모델로 바꾸려고 단골 골프샵인 강남구 역삼동 D직영점을찾았다가 ‘정품이 아니기 때문에 교환이 안된다’는 말을 들었다. 이처럼 불법용품은 주로 A/S시나 교환시 발견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않는 한 자신의 채가 가짜인줄 아는 경우가 흔치 않다.그러나 수리를 의뢰하는 10명 가운데 2∼3명이 가짜 골프채를 들고 찾아온다는 A/S점 측의 주장을 고려하면 피해는 적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동원혼마골프 현광철 이사는 “가짜 골프채는 스윙웨이트가 들쭉날쭉해 자칫하면 허리나 팔꿈치에 심각한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가짜 유통의 더 큰 문제는 정상적인 흐름을 왜곡시킨 다는 것.특히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국산메이커에는 치명적이다. 국내 15개 업체들은 모두 ‘국산 점유율을 밝히기 어려울 정도로 사정이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지난해 7월 국내 명문업체인 H사는 끝내 골프채시장에서 손을 뗐다. 국내 골프채 시장규모는 모두 2,000억원 정도.이 가운데 국산의 점유율은대략 10% 정도다.하지만 불법용품 때문에 잠식당한 시장을 감안하면 4% 이하라는 것. 코오롱상사 엘로드 김현채과장은 “외제선호 의식과 높은 특소세,여기에다가짜용품까지 판을 쳐 국산업체의 앞길이 너무 어둡다”고 호소했다.김경운 kkwoon@
  • 태평양戰 희생자 첫 진혼제/광복 53년만에 서울 용산역 광장서

    ◎일본인 30명도 참가… 日帝 만행 규탄 “그대를 이 땅에 모시지 못한 속죄의 참회를…” 14일 하오 6시 서울 지하철 1호선 용산역 앞 광장에서는 ‘돌아올 수 없는 한(恨)의 진혼곡’이란 행사가 열렸다. 일제가 일으킨 태평양전쟁에서 희생돼 이역만리 타국에서 숨진 한국인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한풀이’ 행사였다. 53돌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사단법인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중앙회(회장 裵海元)가 마련했다. 행사는 태평양전쟁 희생자를 위한 합동위령제와 상여 행진,무속인들의 한풀이 굿 한마당 순으로 펼쳐졌다. 일본인 30여명도 행사에 참가해 자국 정부의 만행을 규탄하며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랬다. 행사 뒤에는 일본 731부대의 생체실험 만행을 고발하는 기록 사진전이 열렸다. 특히 지난 65년 한일협정 당시부터 93년까지 일본 정부로부터 넘겨받은 37만여명의 희생자 명부가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유족회 관계자는 “광복된 지 53년만에 처음으로 열리는 희생자 위령제가 이곳에서 열려 더욱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 원혼이여 이젠 편히 쉬소서/괌참사 1주기… 희생자 추모비 제막

    ◎어제 니미츠 힐에서 지난해 8월6일 대한항공(KAL) 801편에 탑승했다가 숨진 229명의 원혼을 달래는 추모비가 5일 괌 아가냐의 니미츠힐 언덕에 세워졌다. 괌 한인회와 괌 정부는 사고 1주기를 맞아 니미츠힐 언덕에서 희생자 유가족 354명이 오열하는 가운데 추모비 제막식과 희생자 추모제를 치렀다. 추모비는 8m 높이의 검은 화강암을 재료로 한 4각뿔 모양으로,앞면에 사망자와 생존자,추모비 기증자의 이름과 함께 한글 추모시 ‘영혼의 노래’와 영문시 ‘Wash Away’가 새겨져 있다. 유가족 대표 金元均씨(55)는 “사고 후 지금까지 단 하루도 슬픔을 떨칠 수 없었다”며 한인회와 괌 정부가 추모비를 세워준데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 괌 정부 마델린 보르다요 부지사는 “대한항공기 추락사고 같은 악몽이 재연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추모비를 세웠다”면서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추모비 제막식에 이어 종교별 추모행사가 이어졌으나 일부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이 숨진 당일인 6일에 맞춰 추모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6일 상오 추모제를 다시지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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