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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척 세계동굴엑스포 10일 개막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동굴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억겁(億劫)의 세월동안 자연이 빚어놓은 별천지 동굴이 손짓한다.‘동굴의 고장’강원도 삼척시가 마련한 2002 삼척 세계동굴엑스포가 ‘가장 깊은 비밀-동굴’을 주제로 10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32일동안 주행사장인 오십천을 중심으로 동양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환선굴,새천년해안유원지,해신당공원 등에서 다채롭게 펼쳐진다.인근에 있는 환선굴 등을 직접 탐사하면서 와락 달려드는 한기로 샤워하면 색다른 피서도 경험할 수 있다. ◇행사 규모-이번 행사에는 제주도 북제주군과 충북 단양군,경북 울진군,강원 태백·동해시,정선군 등 크고 작은 동굴을 갖고 있는 국내 13개 도시와 중국,일본,인도,레바논,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벨기에,불가리아,러시아,스페인,이탈리아,미국,브라질,호주,남아프리카공화국 등 20개국 53개 도시가 참가,동굴 홍보전을 펼친다. 이 가운데 인도의 아잔타 동굴,호주 제놀란 동굴,일본 아키요시다이 동굴,이탈리아 프라사시 동굴,중국 비윤 동굴 등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동굴들이 미니어처 모형이나 영상으로 소개된다.세계의 동굴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셈이다. ◇관람 포인트-동굴엑스포장은 주제관인 동굴신비관과 동굴탐험관,새천년동굴관,세계동굴관,문화레저관,공연장 등 주제별 행사장으로 나눠진다. 우선 커다란 종유석 모양을 한 주제관인 동굴신비관에서는 초입부터 신비한 동굴 내부를 연출해 놓은 ‘동궁(洞宮)’이 눈길을 끈다.건물 2층 높이의 천장과 벽에는 기기묘묘한 모양의 크고 작은 종유석을 만들어 놓고 검은색을 칠한 바닥에는 물을 가둬 놓았다.물 위에는 30초 간격으로 박쥐가 날아 다니고 물고기가 헤엄치는 영상을 음향효과와 함께 틀어주고 있어 마치 진짜 동굴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동궁을 지나 위층으로 올라가면 동굴의 생성과정,동굴의 자원,역사,분포와종유석,석순,석주 등 형성물과 박쥐,장님새우,도롱뇽 등 동굴동식물을 전시한 ‘동굴 체험학습장’이 있다. 서식 생물들과 석순 등이 실물과 모형으로 전시되거나 영상,사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선보이고 있어 여름방학동안 동굴공부를 하려는 학생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더구나 이곳에는 동굴속에서 생활하던 원시인의 주거 모습도 재현돼 있다. 주제관 제일 위층에는 돔형 영상관을 만들어 놓았다.이곳에서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천연기념물 178호 관음굴(觀音窟)이 영상에 담겨져 간접적으로나마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주제관 인근에는 박쥐모형을 한 ‘동굴탐험관’이 있다.이곳에는 용암동굴,사암동굴,소금동굴,석고동굴,얼음동굴,석회동굴,해식동굴 등 7가지의 동굴을 실물처럼 생생하게 재현해 전시하고 있다.동굴탐사장비 전시와 태양광 에너지 홍보관까지 갖춰 놓았다.오십천을 가로질러 임시로 설치된 엑스포브리지를 지나면 대형 에어돔이 설치돼 있고 문화레저관,새천년동굴관,세계동굴관등이 연이어 있다. 문화레저관에는 고생대,중생대의 화석과 보석 원석이 전시돼 있고 공룡시대의 생활모습이 입체영상으로 보여진다. 새천년동굴관에는 국내 참가 도시들이,세계동굴관에는 해외 동굴도시들이 동굴모형을 만들어 놓고 홍보전을 펼친다.쥐라기공원을 재현한 공룡전시관에는 화석찾기,공룡알 만들기,기념사진 촬영공간 등 다양한 체험행사를 마련해 놓았다. ◇이용-입장권은 한장으로 주 행사장 5곳을 모두 볼 수 있게 했다.어른은 1만 2000원,청소년 9000원,어린이 6000원이다.예매할 경우에는 2000원이 싸다(예매는 033-570-3638이나 www.caveexpo.or.kr). 그러나 민간이 운영하는 공룡전시관은 별도로 어른 4000원,어린이 3000원,입체영상관 2000원을 더 내야 한다.주차장은 오십천둔치,봉황둔치 등에 2900대 수용 규모의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주차장과 행사장을 오가는 셔틀버스(6대)도 3분 간격으로 운행한다.엑스포기간중 서울 청량리역,부산역 등 전국 5곳의 기차역에서 특별열차가 운행된다. 삼척 조한종기자 bell21@ ■해신당공원·죽서루 가볼만 세계동굴엑스포장을 찾는 관람객들은 삼척시 주변에 흩어져 있는 각종 동굴과 유적지 등을 돌아보면 만족 2배다. ◇환선굴-천연기념물 178호인 대이동굴지대 안에 있는 동굴로 지난 97년 개방한 동양 최대의 석회동굴이다.동굴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동굴수는 폭포와 계곡을 만들며 흘러 무릉도원을 연출한다.동굴 내부는 수천명이 들어가도 될 만큼 넓은 광장과 20∼30m에 달하는 높은 천장과 기암괴석,소(沼),기기묘묘한 모양의 종유석,석순,동굴내 폭포 등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너와집- 소나무판을 넓게 잘라 지붕을 이은 옛 산촌의 전통적인 가옥으로 방안에는 코콜이라는 벽난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화전민촌의 대표적인 주거형태로 신기면 대이리 환선굴 입구에 잘 보존돼 있다. ◇새천년해안유원지-삼척해수욕장과 정라항을 연결하는 4㎞의 해안도로로 동해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동해안 최고의 일출장소이며 청정해변과 숙박시설,사우나시설을 갖춘 3만평 규모의 해수욕장은 정라항 주변에 있는 호텔,모텔과 횟집거리,전망대와 해안 절경이 어우러져 드라이브코스로 제격이다. ◇해신당공원-미역을 따러 바위섬에 갔던 처녀가,장래를 약속한 총각 사공이 풍랑으로 생사를 알수 없게 되자 결국 죽었다는 ‘애바위 전설’과 함께 처녀의 원혼을 달래고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매년 정월 대보름날 나무로 남근(男根)모양을 깎아 매달고 해신제를 지낸다.최근에는 8000여평 규모의 해신당공원을 만들어 남근 조각 전시,이미지조각품 전시,애바위에 얽힌 전설공연,해신축제 등을 연다. ◇준경묘와 공양왕릉-미로면 활기리의 준경묘는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의 5대조 목조의 아버지 ‘양무장군’의 묘다.주변에는 울창하게 우거진 송림이 장관이다.근덕면 궁촌리의 공양왕릉은 고려의 마지막 왕과 두 아들의 능으로,이성계가 자객을 보내 살해한 사리재라고 불리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밖에 덕품계곡과 응봉산,천은사,신흥사,죽서루,정라진해안로,미인폭포,황영조기념관 등 가볼 만한 곳이 널려 있다. 삼척 조한종기자
  • [발언대]“6·25교훈 되새기며 남북대화를”

    6·25전쟁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70세 이상의 전쟁을 치른 세대와 전쟁교훈을 교육받은 정도의 세대로 구분할 수 있겠으나 신세대 대부분이 6·25를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아니 오늘날 안보에 대한 무감각을 어디 신세대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호국의 달’ 6월이면 어김없이 길거리에 내걸린 현수막을 볼 수 있지만 과연 우리국민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흐름이기에 쉬지 않고 흘러간다.그러나 분단 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세월이 흘러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6·25 한국전쟁이다.6·25가 역사 속에 묻히고 있을지 몰라도 현실의 6·25는 우리 곁에 있다. 동족상잔의 피로 물들었던 조국산하에 포성이 멎은 지 어언 52년이 지나건만 못다핀 나이에 조국을 위해 몸바친 원혼은 여전히 동강난 조국의 아픔을 애달파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삶의 기회를 박탈당했던 사람들이나 남편을 잃고 홀로 거친 세상을 살아온 미망인들의 통한이 아직 씻겨지지 않았는데 어찌 6·25를 잊을 수 있겠는가. 불과 2년 전 분단 반세기만에 남북정상이 만나 포옹하고 전쟁없는 밝은 세상을 만들어가기로 약속했다.이에 따라 경의선 복원과 도로연결 작업 등에 착수했지만 북한은 아직 미동조차 하지않아 안타깝기만 하다. 지난 5월 남북경협추진회의,그리고 북한의 경제시찰단 방한계획과 금강산 실무회담도 일방적으로 무산되고 말았다.이러한 일련의 사항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러나 인내심을 갖고 남북대화를 통해 전기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지속해야 하며,이들 문제가 해소될 때 비로소 남북의 현안이 자연스럽게 풀려나갈 것이다. 산고 끝에 6·15 공동선언을 이끌어냈지만 북한의 적화통일 목표가 바뀌었다고 믿는 것은 오산이다.그러나 가능하다면 남북이 대화로 공동사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동질의식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이를 통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다. 평화학의 창시자이며 국제정치학자인 요한 갈퉁 교수의 말처럼 ‘미래를 중시하는 민족은 발전하고 번영하게 된다.’는 사실을 함께 인식하고 화해협력의 통일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6·25의 교훈을 되새기면서 남북은 하루빨리 대화를 진행하고 평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신영근 합참 전문위원
  • [대한광장] 헌법 비웃는 ‘연좌제’ 유령

    대한민국 헌법에 의하면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13조 3항) 모반이나 반역 혐의자에게 삼족을 멸하던 왕조시대에 비하면 실로 눈부신 인권의식의 성장이 아닐 수없다.연좌제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무엇일까?세습제 왕조시대의 한 장면이 아닐까? ‘단종애사'의 사육신에 얽힌 일화중에 심금을 울리는 대목은 성삼문이 형장으로 끌려 가면서 어린 딸에게 한 말이다.‘너는 괜찮다.너는 딸이니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라던. 왕조의 몰락과 함께 사라진 연좌제는 군국주의 일본이 식민통치 강화를 위해 소생시켰다.아무 법적 근거없이 독립사상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휘두른 이 피묻은 칼날은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인해 고난받아야 했던 숱한 원혼과 짓붉은 상흔을 남겼다. 그래서 동족 학살과 단군 이래의 천문학적 부정축재로 역사에 오명을 남긴 전두환 정권조차도 그 비이성과 반인륜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어 폐지를 결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연좌제가다시 유령처럼 출몰하고 있다. 한밤중에 햄릿에게 몰래 나타나 원한을 애소하던 힘 없는 유령이 아니다.밤비 내리는 음습한 묘지 어드메쯤서 배회해야 할 유령이 나타난 곳은 어디인가.초국적 자본이 지구촌을 휘젓는 세계화의 중심부에 서 있는 21세기 한국의,인터넷 환경이 종이매체의 권위를 붕괴시키고 있는 기술정보 강국의 대선 후보자를 향한 검증 과정이라는 환한 대낮의 광장이다.그것도 민주인권 국가를 소망하는 노벨평화상수상자가 대통령으로 있는 곳이다. 필자는 인권위에서 차별행위 조사와 구제라는 소임을 맡고 있다. 이 서슬 푸른 연좌제마저도 철저하게 차별적으로 적용됐음을 역사는 기록으로 말하고 있다.박정희 전 대통령은 본인이 젊은 한때 남로당 군사책이었고,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장인으로 대구 10·1폭동에 연루돼 사망한 박상희는 그의 형이었다.인근에서 그는 두루 존경받았던 인품으로 전해지고 있다.뿐만 아니라 5공 실세였던 허화평씨는 남파된 동생 때문에 군복을 벗을 뻔했다가 전두환씨의 부하사랑으로 구사일생했다.오랫동안 공화당의 곳간 열쇠를 관리한 김성곤씨 부부는 인민위원회 활동가 출신이다. 반면 권력과 먼거리에 있는 문인들은 피울음을 삼켜야 했다.이문열·김성동·이문구·김원일 등은 작가로 입신해야 했다.이뿐인가.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의 확인되지 않은 좌익 경력으로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꿈을 접어야 했던가.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남편의 행위 또는 ‘머릿속 생각'으로 고난을 감내했던가. 혈연관계로 인한 책임을 묻는 ‘연좌(緣坐)'든,사제간 또는 친구와 같은 비혈연적 관계의 연대책임을 묻는 ‘연좌(連坐)'든 간에 이는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최고가치로 삼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념에 정면으로 반한다.연좌제는봉건왕조와 군국주의가 체제수호를 위해 제한적으로 쓰다가 버린 낡은 유물이다. 굳이 말하자면 장인 사위관계는 혈연도 아닌 관계이다.설령 혈연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시비선악을 떠나 민족사의아픔이 가로놓인 문제를 두고 손쉽게 경쟁자를 비방하는근거로 들이대는 일만은 제발 되풀이하지 말았으면 한다.일거수 일투족이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는 공론의 장,특히 그 파급력이 폭풍과도 같은 대선후보 검증과정에서벌어지는 연좌제 공방은 깨어 있는 국민을 한없이 부끄럽게 한다. 필자의 친구중에 방송가에서 성공해 이름이 꽤 알려진 이가 있는데 그가 지난해 어느 밤에 불쑥 집에 찾아 왔다.취기가 완연한 얼굴에 눈이 젖어 있었다.북에 어쩌면 살아있을지 모르는 팔순 아버지를 적십자사에 상봉신청하고 오는 길이었다.나는 그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줄로 알고있었다.남편의 월북을 감지하고 평생 홀로 살아온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장래를 염려한 나머지 일찍이 사망신고한까닭으로 그는 입사시에 큰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았다.그날 밤,그는 말했다.‘내 가슴에 박힌 못을 누가 알겠노?' △ 유시춘 국가인권위원·작가
  • [김성호기자가 본 종교 萬華鏡] 해원과 상생 사이

    이런 저런 위령제가 줄을 잇는다.까닭도 모른 채(사실은까닭있게) 죽어간,이른바 의문사한 망자들의 한도 풀어야하고 시위 도중 밟혀죽고 맞아죽은 어린 학생들의 넋도 달래야 한다.천주교계에선 박해 순교자들의 시복(諡福) 시성(諡聖)이 한창이다. 천기를 누설하면 구천에 떠도는 원혼이 된다고 했는데 이땅엔 무슨 비밀이 그리도 많길래 풀어줄 한들이 그렇게 많은지 모를 일이다. 유난히 ‘해원’(解寃)과 ‘상생’(相生)의 목소리가 높은 한 해였다.새 밀레니엄의 진정한 원단이니,한 세기의진짜 시작이니 하며 새해 벽두부터 알듯말듯한 화두로 나온 해원 상생이 연말인 지금 일상용어로 정착된 느낌이다. 심오한 의미의 종교 철학 용어가 이렇듯 생활속의 쉬운 말이 됐으니,역시 말은 삶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수단임이 틀림없다. 기독교의 ‘원죄’나 불교의 ‘무명’(無明)처럼 원과 한은 많은 종교에서 중시하는 인간 고통의 씨앗이다.이 맺히고 쌓인 원과 한을 풀어주는 해원을 상생의 질서로 바꿀때 그 고통이 해결된다는 게 ‘해원 상생’의 요체랄 수있다. 한풀이의 해원이 죽은 자를 위한 철학이라면,나도 살고너도 살고 서로 보듬고 잘 살아보자는 상생은 산 자를 위한 철학이다.그런데 따지고 보면 해원이나 상생이나 모두‘산 자’를 위한 철학이다.죽은 자의 한을 푼다는 해원도산 사람이 잘 살아보자고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젯상의 음복(飮福)은 산 사람의 몫이다.경북 안동의 그 이름난 헛제사밥 집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않는다고 한다. 잠깐 넋 타령을 접고 옆을 보자.아니 굳이 애써 보려고하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이웃들을 바라보자.찬 하늘과바람만 가려진 틈새에서 웅숭크리고 있는 노숙자며,고사리같은 손으로 어린 동생들을 챙기는 소년소녀 가장, 의지할곳 없는 독거노인들…. 이들에게 해원과 상생의 말뜻을 한번 물어보자.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는 ‘세상이 추워져야 소나무의푸르름을 보게 된다’는,차가움과 따스함의 미학이 함께담겼다.인적도 끊긴 채 고립무원 유배중인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준 벗에의 고마움이다. 가슴저린 작품이지만,그래서 세한도의여백은 더욱 넉넉하다.세한도의 숨은 뜻을 풀어냄은 살아있는 우리의 몫이아닐까.죽은 자의 한풀이도 좋다.하지만 산 자부터 챙겨보자.아이구 산 자들의 이 많은 한을 어떻게 다 푸나. 김성호 기자 kimus@
  • [사설] 恨 못푼 우키시마호 원혼들

    일본 교토지방법원은 23일 해방 직후 한국인 징용자들과가족들을 한국으로 송환하던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가 교토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사건의 생존자들과 유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 정부는 한국인 생존자 15명에 대해 300만엔의 위로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재판부는 “국가는 징용에 의해 일본으로 끌려온 원고들을 안전하게 부산항까지 송환할 의무가 있었다”고 말하고“전쟁중 미군이 설치한 기뢰가 위험했다면 출항을 보류하거나 출발했던 항구로 돌아갔어야 했다”고 판시했다.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이 일어난 지 56년만에,소송을 제기한 지 9년만에 나온 일본 법원의 판결을 보는 우리의 심경은더없이 착잡하다.일본 패전 직후인 1945년 8월24일 한국인징용자들과 그 가족들을 태우고 부산항으로 가던 이 수송선이 침몰했을 당시 일본 해군은 “이 배에는 한국인 3,700명과 일본인 승무원 250명이 타고 있었고 그 가운데 한국인 524명과 일본인 2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피해자들과 그 유족들은 하루라도 빨리귀국하고싶은 한국인들이 다투어 승선했기 때문에 7,500명이 타고있었고 5,000여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해 왔다.배가 침몰한원인도 미군 기뢰에 충돌한 게 아니고 일본군이 폭파시켰다는 것이다.일본군은 한국인 징용자들에게 강요됐던 비인간적인 처우가 공개되는 것을 꺼려했고,일본인 승무원들은 배가 부산항에 입항할 경우 반일감정을 지닌 한국인들에게 억류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일본인 승무원들이 구명정을 타고 도망친 사실 등이 그증거로 제시됐다.무엇보다 우키시마호에는 부산항까지의 편도용 연료만 실려 있었다고 한다.폭발이 계획적이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또 배가 침몰한 마이즈루만은 부산항과는방향이 전혀 엉뚱한 항로라는 것이다. 일본 법원이 한국인 징용자들에 대한 일본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그러나 어르고 뺨 때리는 격이라고나 할까.재판부는 원고들이 주장한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 요구를 배척한데다 대다수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을 제외하고 생존자 중 극히 일부에게만 ‘위로금’을 지급하도록 했다.배가 침몰한 원인도 미군 기뢰로 규정했다.일본 법정의 어정쩡한 판결로 사건의 진상규명마저 봉쇄되고만 것이다.뿐만 아니라 사망자는 제외하고 생존자에게만 위로금을 지급하는 것은 한국인 생존자들 대부분이 70∼80대의 고령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소송이 추가되더라도 부담을줄이려는 잔꾀로 보인다. 해방의 감격에 겨워 귀국선에 올랐던 우리 동포들은 우키시마호의 원혼이 돼 50년 넘게 한을 풀지 못한 채 아직도마이즈루만 해역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 “사죄조차 않는 日정부 저주 고의폭파 의혹 꼭 밝혀져야”

    “일본의 만행으로 억울하게 수장된 원혼들의 한을 꼭 풀어드리겠습니다.저승에서나마 편히 쉬소서….”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24일 일본 아오모리(靑森)현 군사시설에서 강제 노역을 끝내고 일본 해군 소속 수송선 우키시마마루호(浮島丸)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오다 배가 침몰해 숨진 희생자들의 위령제가 24일 오후 생존자 4명과 유가족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중구 남산동 한국영화감독협회시사회실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浮島丸事件犧牲英靈 神位’(우키시마호 희생자영령 신위)라 쓰인 위패와 제상을 정성스럽게 마련하고 묵념과 추혼,추도사,헌화,살풀이 춤 순으로 원혼을 달랬다. 지난 93년 일본측에 손해배상 소송을 낸 지 8년만에 23일자로 교토(京都)지방법원으로부터 희생자 15명에게 300만엔씩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아냈지만 참석자들의 얼굴엔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우키시마마루 폭침사건 진상규명위원회’ 전재진(田在鎭·44)회장은 “교토 법원의 판결은 일본이 처음으로 우키시마 사건을 공식 시인한 것이지만 고의 폭파의혹을 밝히지않은데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도 빠진 것으로 용납할 수없다”며 분노했다.그는 “일본이 모든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배상하고 머리 숙여 사죄할 때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유가족 임서운씨(60·여)은 “최근에야 아버지가 징용을 끝내고 돌아오다 숨졌고,위폐가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전범들과 합사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어린시절 아버지없이 홀로 자란 고통을 생각하면 사죄조차 하지않는 일본 정부가 저주스럽다”고 울먹였다. 당시 상황을 증언한 생존자 지홍섭씨(84·충남 천안)는 “고통스런 강제 노역을 끝내고 돌아오던 길에 배가 가라앉아동료들이 모두 죽었다”면서 “수많은 조선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우키시마호 사건에 대해 일본이 사죄하지 않는 것은죽은 사람을 두번 죽이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한편배가 침몰했던 일본 마이즈루(舞鶴)항에서도 이날 우키시마마루 순난자(殉難者)추도회 소속 회원들과 재일동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위령제가 열렸다. 조현석기자 hyun68@
  • 유족회등 ‘야스쿠니 한국인’공청회

    “일본 총리까지 당신을 사지로 몰아넣은 일제 전범들에대한 참배에 나서다니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13일 오전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 및 한국인 합사(合祀)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연 공청회는 분노로 가득찼다. 피해자와 유족 70여명은 “일본 1급 전범들과 함께 묻힌채 돌아오지 못하는 원혼들을 송환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유족들은 특히 이날 오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소식을 전해듣고 “과거사에 대한 반성없는 오만한 행동이자 군국주의를 부활하려는 책동”이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열살 위 오빠를 잃은 임효순(林孝順·69·서울 동대문구이문동)씨는 “16살에 일제 총알받이로 끌려가 스무살의나이에 숨진 오빠가 1급 전범들과 함께 누워 제대로 눈을감을 수 있겠느냐”면서 “더욱이 일본 총리까지 전범들에대한 참배를 강행해 원혼을 욕보였다”며 격분했다. 임씨는 해방 뒤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오빠의 ‘전우’들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헤맸지만 91년에야 한 일본인 기자의도움으로 겨우 야스쿠니 신사에서 오빠의 명부를 확인했다. 일본 해군 군속으로 근무하다 해방 뒤 귀국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폭격으로 숨진 아버지가 신사에 합사된 사실을 지난달 말에 알게된 임서운씨(60·여·성북구 길음동)도 “교과서 왜곡에 이어 총리의 신사참배로 아버지가 편히 잠드시지 못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한국인 군인·군속,유족 252명을 대표해 지난 6월29일 일본정부를 상대로 ‘합사철폐·유골반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김은식(金銀植)사무국장도 “1급 전범을 순국 선열처럼 떠받들거나 침략전쟁을 대동아 성전이라고 추앙하는 것은 심각하게 역사를훼손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또 “빠른 시일안에 재한군인재판지원회 등 일본의 시민단체들과 공동으로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도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강행을 규탄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은정(鄭銀定·27)간사는 “신사참배는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고 군국주의를 부활시키려는 수순”이라며 비난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신용하(愼鏞廈)교수는 “일본 총리의 참배 강행은 아시아 국가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면서 “정부는 물론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단결해 응징을 해야한다”고 분노했다. 독도수호대 김점구(金點九) 사무국장은 “일본이 아시아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원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라면서 “우리도 강경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시민단체들은 오는 15일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으로 진행될 ‘특별수요집회’에서 신사참배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하는 등 공동 대응할 계획이다. 류길상 박록삼 안동환기자 ukelvin@
  • [씨줄날줄] 야스쿠니의 원혼들

    중종실록에는 경순왕후 위패 도둑을 잡은 포도청 관리에게면포 1,500필과 3계급 특진의 포상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면포 100필을 포상한 일반 도둑 검거에 비해 파격적인 것으로 위패를 소중히 여기는 우리의 숭조사상은 그만큼 뿌리가깊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야스쿠니(靖國) 신사(神社)에합사된 한국인 징용희생자의 위패반환을 일본 정부에 공식요청키로 방침을 정한 것은 교과서 왜곡문제가 불거지고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 결정과 관계없이 진작서둘렀어야 할 일이다.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는 2만1,000여명의 한국인 위패가 안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 원혼들이 아직 야스쿠니에있다는 것은 전쟁이 끝나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징용으로 끌려가 잡혀 있는 셈이다. 일본측은 이들 위패에 대해 “전사한 시점에서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사후에도 일본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든가“일본 군인으로 싸우다 죽었기 때문에 야스쿠니 합사는 당연하다”는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물론 개중에는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며 죽어간 ‘영광스러운 황군 장교’ 출신도 있겠지만 그 자체가 침략이 빚은 넌센스이니 그 또한일제의 피해자가 아닌가.그리고 그 역시 영혼이나마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을 터이니 이들의 귀향은 너무나 당연하다. 야스쿠니 신사가 어떤 곳인가.도죠 히데키(東條英機)를 비롯,종전후 처형된 14명의 A급 전범과 함께 11번의 전쟁에서전사한 246만명의 일본인 위패가 안치된 곳이다. 입구에는일왕이 내린 제국 군인의 덕목을 적은 ‘칙유비’가 있고‘일본 육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 동상,자살비행을 감행했던 가미카제 ‘특공용사의 동상’,군마(軍馬)군견(軍犬)위령탑이 있다.말하자면 일본국민의 군국주의 학습장이나 마찬가지다.그 뿐인가.지난해 집권 자민당은 ‘야스쿠니 간담회’를 만들어 국가재정 지원등 사실상 신사 국영화를 시도 했다.종전 55년을 맞아 본격적으로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한 것이다.교과서 왜곡,고이즈미 총리의 참배 등이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보면 예삿 일이 아니다.설사 그들이 한국인 위패를 모신 뜻이 진심이라하더라도 A급 전범위패와 함께 있는 한 한국인 원혼 뿐 아니라 일본인 영혼들도 모골이 송연할 일이다.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영화감독들 TV서 ‘여름사냥’

    올 여름 방송가는 ‘썰렁’하다.경기 불황 탓인지 특수효과를 이용한 납량드마라를 경쟁적으로 만들었던 예년과는달리 특별한 여름 공포특집물이 없다. 유일하게 KBS2가 7월29일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10시40분4부작 납량특집 드라마 ‘도시괴담’을 방송할 예정이지만 이마저 외주 제작이다.‘도시괴담’은 영화감독들이 연출을 맡아 화제를 모은다. KBS가 기획하고 외주 프로덕션캐슬인더스카이가 제작하며 편당 1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될예정이다. 연출을 맡은 감독들은 ‘유리’‘리베라메’의 양윤호,‘물고기자리’의 김형태,‘가위’의 안병기,‘마요네즈’의윤인호 감독이다. 네 감독들이 받을 연출료는 일반 외주제작사 PD들이 한편당 받는 최고 1,500만원 선으로 알려졌다. ‘도시괴담’은 현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공포물로세간에 널리 알려진 무서운 이야기를 영화적 기법과 특수효과 등을 이용,짜임새 있게 꾸밀 계획이다.양윤호 감독이연출할 제1화 ‘죽은 자의 노래’(가제)는 폐허가 된 지3년만에 다시 문을 연 녹음실에서 한 신인가수가 우연히원혼이 서려있는 CD를 발견하면서 으스스한 이야기가 시작된다.김형태 감독이 연출을 맡은 두번째 이야기 ‘어둠 속의 속삭임’(가제)은 의대 해부실에 출몰하는 원령들의 저주에 얽힌 이야기며,안병기 감독의 3화 ‘생령’(가제)은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인 ‘도플갱어’를 소재로 공포를 부른다.윤인호 감독이 맡은 마지막 편 ‘어둠의 집’(가제)은 귀신이 출물하는 산장을 상속받은 한 가족이 휴가 첫날밤을 공포 속에 보낸다는 내용이다. MBC와 SBS는 공포영화 특선을 준비했다.MBC는 7월 주말의명화로 ‘옥토퍼시’‘뷰투어킬’‘리빙 데이라이트’ ‘네버다이’등의 007시리즈를,8월에는 ‘스위치킬러’‘이벤트 허라이즌’‘프랑켄슈타인’‘드라큐라’등 대부분이미 방송을 탄 적이 있는 공포영화들을 틀 계획이다.SBS는 납량특선으로 15일 ‘텔미썸딩’,22일 ‘여고괴담2’,29일 ‘스크림3’를 내보낸다. 방송관계자는 “납량드라마를 특별히 만들더라도 들인 제작비만큼 시청률이 안 나오고 시청자들도 기존 편성을 깨고 여름특집이 끼어드는것을 예상보다 별로 달가워하지않는다”면서 썰렁한 여름 방송가를 분석했다. 윤창수기자 geo@
  • 한국전 희생자 지리산 위령제

    천주교,개신교,불교,원불교 등 7개 종단과 190개 시민단체는 지난 26일 전북 남원 지리산 뱀사골 달궁계곡에서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군경과 민간인,빨치산,인민군들의 원혼을달래는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 위령제’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종교계 지도자와 각 시민단체 대표,시민 등 4,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원혼들이 찾아올 길을 닦는 길놀이와 이들의 한을 푸는 씻김굿으로 시작,시종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유족 대표들은 분향과 헌주로 영령들을 위로하면서 안식을기원했고 시민단체 대표들도 백두산과 백두대간에서 떠온흙과 물을 한 그릇에 담는 합수합토(合水合土) 행사로 화합을 다짐했다.이날 지리산 계곡을 배경으로 설치된 제단의사방 벽면에는 전쟁 당시 이 곳에서 희생된 3만여 명의 위패가 나붙었다. 김성호기자 kimus@
  • [씨줄날줄] ‘지리산 위령제’

    ‘네가 누운 무덤 가만히 보니/스물둘 서리꽃만 엄청나게피워대는/그랬구나 산이었구나/젊은 울아비들 불러 가선 영영 보내지 않는/바로 그 산이었구나.’(‘반란군 뫼똥’전문) 오봉옥은 시집 ‘지리산 갈대꽃’(창비시선 69) 첫 머리에서 다짜고짜 이렇게 뇌까렸다.그에게 지리산은 젊은 우리아버지들을 불러가 반란군이란 낙인을 찍은 채 돌려 보내지않는, 그래서 묘(뫼똥)로밖에 인식되지 않는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한반도의 등뼈 백두대간이 동해를 따라 달리다 서쪽으로확 틀어 마지막 용틀임을 한 곳,행정구역상으로 전북 남원시와 전남 구례군,경남 산청·함양·하동군 등 영호남 3도5시·군을 끌어안은 넉넉한 땅 덩어리가 바로 지리산이다. 그래서 북의 백두산과 견줘 남쪽을 대표하는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꼽히는 이 산은 근·현대에 들어서는 가장 많은사연을 담은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이 좌절된 뒤 농민군이 일본 군·경의 총포에쫓긴 것을 시작으로 한국전쟁 전후해서는 빨치산과 토벌대가 서로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눠 숱한희생자를 낸 비극의 땅이었다.그러므로 오봉옥 시인에게처럼 지리산은 ‘억울한 민초들의 무덤’일 수도 있지만,토벌대로 나가 희생된 사람의 유가족에게는 ‘반란의 땅’이기도 했다.하지만이제 옳고 그름을 따져 무엇하랴,인적 없는 계곡 양지 바른한 모퉁이에서는 빨치산과 토벌대가 백골이 돼 서로 끌어안고 나란히 누워 있을 것을. 오늘 오후 1시 지리산 자락 남원 땅 달궁에서 ‘생명평화민족화해 지리산위령제’가 열려 산에 떠도는 원혼(寃魂)은물론 금수·곤충에 이르기까지 생명 잃은 모든 넋들을 위로하게 된다.불교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민족종교 등 7개 종교단체,환경운동연합·경실련을 포함한 시민단체 등 행사에 참여한 190여 단체는 이를 일회성으로 끝내지않고 생명에 바탕을 둔 평화와 민족 화해의 큰 걸음을 떼는자리로 삼겠다고 한다.그같은 다짐은 ‘지리산 선언문’ 마지막 구절에 온전히 담겨 있다. “영령들이시여!고이 잠드소서-살아 있는 우리는 왜곡된역사를 바로잡고 나라와 겨레의 발전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루겠습니다.”이용원 논설위원 ywyi@
  • [씨줄날줄] 헤이그의 권판사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헤이그,우리에게는 통한의 과거가 서려있는 곳이다.1907년 7월 14일,이준(李儁) 열사는 만리 타국 네덜란드 헤이그 여관에서 쓸쓸하게 운명했다.같이 파견됐던 이상설(李相卨) 특사와 여관 주인 두 사람만이 그의 임종을 지켜보았다.열사는 그 해 4월 22일 고종황제 의 밀명을 받고 서울을 떠나 6월 25일 헤이그에 도착했다. 6월 15일부터 열리고 있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참석,을 사조약의 부당성을 각국 대표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그 러나 일본측의 방해로 회의장에 입장하지 못하자 열사는 그 자리에서 할복을 시도했다.울분을 삭이지 못한 열사는 함께 파견된 이상설,이위종(李瑋鍾) 등과 현지 신문에 대 한제국의 처지를 알리는 호소문을 배포,일본의 침략을 세 계에 고발했다.그리고 단식끝에 순국했다. 94년 전,이준열사가 입장을 제지당했던 만국평화회의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헤이그 ‘평화궁전’에 국제사법재 판소(ICJ)가 있다.만국평화회의 정신을 계승해 평화를 짓 밟은 국제사범을 다루는 기관이다.이 유서 깊은 국제사법재판소 산하기구인 국제형사재판소(ICTY)에 한국 권오곤( 權五坤·48·대구고법 부장판사)판사가 재판관으로 선임됐 다.거의 한세기가 지나서야 이준열사의 분(憤)을 조금이라 도 풀게 된 셈이다. 권 판사가 국제형사재판관으로 신청하게 된 동기도 이준 열사의 원혼과 관계가 있다.즉 후배 판사로부터 헤이그의 이준 열사 기념관에서 일하는 한국 할머니의 소원이 “국 제사법재판소가 들어 있는 ‘평화궁전’에 한국인이 진출 하는 것을 보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게 직접적인 동기 가 됐기 때문이다.국제사법재판소 설립 후 일본 법조인은 두 명이나 진출했는데 한국 법조인은 없다는 그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권판사는 마침 법무부로부터 국제형사 재판관 신청자 접수 소식에 그 길로 신청서를 낸 것이다. 국제사법 기관에 한국인의 진출은 박춘호(朴椿浩)국제해 양법재판관이 유일했다.이번 권 판사에 이어 오는 10월에 있을 국제법위원회 후보에 오른 한양대학교 지정일(池楨日 )교수가 선임되면 겨우 체면은 서게 된다.이준 열사의 진 혼제가 따로있겠는가.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3.1절 TV ‘특집다큐’ 다채

    ‘3.1절을 다큐멘터리와 함께’공중파 방송사들이 공들여 만든 특집 다큐멘터리가 3월1일안방에 ‘뜻깊은’ 휴일을 선사할 예정이다. 먼저 KBS는 물량공세를 편다.1TV를 통해 오전11시 ‘무주촌사람들’,오후10시 ‘망명객 서재필,세번의 귀향’을 준비한다.27일부터 이어져온 ‘백만인의 한’도 밤 12시10분 마무리격인 4·5부를 내보낸다. ‘망명객…’은 중용을 터득한 진정한 독립투사에서 친미외교론자까지 평가가 엇갈리는 서재필에 대한 집중해부.갑신정변 실패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 젊은날,‘독립신문’ 활약상,조선독립 지원과 그로 인한 파산,해방정국 이승만과의 세겨루기,말년의 쓸쓸한 미국행까지 일생을 파노라마로 펼친다. 한·미·일 3국을 뒤져낸 방대한 자료가 완성도를 높인다. ‘무주촌…’은 중국 지림(吉林)성의 또다른 조선족자치주무주촌 취재기.전라북도 무주에서 일제에 등떼밀려 강제이주해온 주민들은 갖은 고초를 뚫고 60년 이상을 우리말과 전통,맛을 지켜오고 있다.북도촌 남도촌 등과 함께 중국속의 전라도 인심을 일궈오고 있는 이들에 KBS전주방송총국이 카메라를 들이댔다.한편 ‘…한’은 마에다 켄지라는 일본감독이 한국인 강제연행,종군위안부 실상을 기록했다 해서 화제가된 5부작 필름.28일 밤12시 ‘종군위안부들’에 이어 3월1일 밤12시10분 ‘천황과 마쓰시로’‘원폭피해자들’ 편을 만날 수 있다. MBC가 오후5시50분 마련한 ‘하이난섬의 대학살-땅속에 묻은 진실’은 일제에 학살된 조상들의 원혼을 위무하는 기획.태평양전쟁 당시 강제연행돼 중국 해남도에서 일본군에 학살된 1,000여명 조선보국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목격자인 주민들 입을 통해 이곳이 ‘조선촌 천인갱’으로까지 불리게된 끔찍한 목격담을 듣고 당시 일본해군 16경비대 사령관을인터뷰,일본군의 잔학상을 파헤친다. 이에 비해 SBS는 한결 소프트한 특집을 내건다.98년 최초의육사 여생도로 입학한 강유미씨를 취재한 ‘새끼사자 길들이기’(오전11시).‘역할모델’도 없는 최초의 여생도로 고된훈련과 선배들의 기합에 눈물짓던 강씨는 어느덧 3학년이 돼 초창기 자신의 처지였던 예비생도들을 이끌고 있다.강씨의일상을 들여다보며 젊은이들에 이어내리고 있는 3.1절 기상을 되새긴다. 손정숙기자 jssohn@
  • 2001 길섶에서/ ‘외투’

    겨울에는 외투가 소중하다.추운 러시아에서 고골리의 ‘외투’같은 소설이 나올 만도 하다.힘없고 가난한 만년 말단관리가 외투를 강도당하자 비통해하다 죽는다.원혼은 유령이되어 모스크바 밤거리에 출몰한다. 이 사내에게 외투는 옷이상의 것이었다.삶의 기쁨이며 위안이었다.그러나 아무도그의 상실감을 알아 주려 하지 않았다. 푸슈킨 소설 ‘대위의 딸’에도 외투가 나온다.변방에 부임한 젊은 귀족 장교 그리뇨프는 눈벌판에서 만난 초라한 행색의 사내에게 외투를 벗어 준다.이 긍휼의 외투가 뒤에 그리뇨프 목숨을 구한다.대규모 민란이 일어나 포로가 되는데 반란 수괴 푸가초프가 바로 외투 얻어 입은 사내였던 것이다. 외투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우리 처지가 외투 잃은 사내와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외투는 없어졌는데 가져갔다는이는 없고 찾아 주겠다는 이도 없는 것 같다.걱정하고 궁리해야 할 이들은 정신이 딴 데 팔려 있다.어찌해야 하는가.모스크바 사내의 절망까지 닮아서는 안 되는데. 박강문 논설위원
  • 벽송사 조실 원응스님 전시회

    “출가자는 보통 수행에 정진하면서 조용히 사는 게 본 모습인데 공연히 빛깔내는 것 같아 죄스럽고 두렵기도 합니다. ” 40년간 지리산 서암정사에서 수행하면서 틈틈이 화엄경을사경(寫經)해온 대한불교 조계종 벽송사 조실 원응(元應)스님이 오는 27일부터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서 전시회를 갖는다.화엄경 금니(金泥)사경과 묵(墨)사경 외에 금강경보탑 금니,원통보탑 경면주초,금강경 금니 10폭 병풍,화엄경 약찬게 금니부채 등 사경 작품 180점을 선보인다. “옛부터 사경이란 일자일배(一字一拜)의 정성을 들여 완성하는 불사입니다.사경 자체가 부처님의 공덕이지만 사경을보는 것 또한 큰 정성인만큼 부처님 말씀을 통해 마음을 가다듬는 자리가 됐으면 합니다.”고려시대에는 사경원을 두는 등 국가적인 지원 아래 사경이 번성했지만 조선 들어 억불숭유 정책으로 쇠퇴해 사경 문화재는 지금 드물게 남아 있다.특히 60만자나 되는 화엄경 자구에 일일이 금가루를 입힌금니사경은 국내에 단 한건도 없다.따라서 화엄경 80책 전권을 완전 사경한 것은 원응스님의 작업이 처음이다.“지난 61년 지리산에 처음 입산할 당시 백골이 여기저기 나뒹구는 등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원혼을 달래고 부처님의 가피(加被)로 민족화합과 평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발원으로 사경을 시작했지요.” 반야심경 금강경 묵사경부터 시작해 부처님 말씀을 제자들이 마지막으로 옮긴 화엄경을 시작한 때는 지난 85년.이후화엄경 전권을 사경하는 동안 시력이 나빠져 앞이 보이지 않고 탈진상태에 빠져 꼼짝없이 며칠간 누울 때도 있어 그만둘 생각을 수없이 했단다. “화엄경은 우선 저본 수집이 어렵고 오·낙자가 많아 일본 대만과 국내 문헌을 모두 대조하는 점검작업부터 시작했지요.한지(감지)도 일본에서 수입한 것을 쓸 수 있었지만 순우리 문화재를 남기고 싶은 욕심에서 일일이 만들어 썼습니다.” 부처님의 자비를 담은 사경 작품들은 3월5일까지 전시된다. 김성호기자 kimus@
  • [사설] 노근리 ‘유감’ 이후

    12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이른바 ‘노근리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성명을 발표했다.한국과 미국 두 나라는 이날 한국전 당시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이라는 이 사건의 실체를 사상 처음으로 인정하는 공동발표문을 내놓았다.이는 지난 1999년 9월 AP통신의 보도이후 15개월간 양국 정부차원에서 공동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내린잠정 결론이다.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한 확실한 법적 책임을 규명하지 못한 이같은잠정 결론에 대해 큰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당시 피란길에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의 원혼과 그 가족의 억울함을 달래기에는 미흡하다는 점에서다.이번 조사에서도 발포 명령이 있었는지가 제대로규명되지 않았고,미국측의 보상 또는 배상이라는 실질적 해법을 찾지못했다. 따라서 유족이나 시민단체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는 점을 양국,특히 미국측은 직시해야 한다.노근리 사건이 이제는 역사 속으로사라졌다고 마음을 놓을 게 아니라 그 상흔을 치유하려는 후속 조치를 성실히 밟아 나가라는 뜻이다.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추모비 건립이나 노근리 또는 영동 지역민 대상의 장학사업 등 미국의 약속이차질없이 이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는 50년 전에,그것도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의진상을 정확히 규명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전쟁이 파괴하는것은 생명과 재산뿐만 아니라 진실 그 자체라는 경구도 있지 않은가. 더욱이 노근리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고 제3자적 증언이 없는형편이다.그런 점에서 미국 국가원수가 직접 유감을 표명한 것은 상당한 성의 표시라고 본다.유족들의 한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차원에서만 아니라 양민 희생에 대한 미국측의 실체 인정 사실과 함께 유족들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보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데 유리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진선진미한 결과는 아니지만 노근리 문제가 클린턴행정부 임기내에 일단 정리된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50년 전의 불행한 사건이 양국의 오늘과 내일을 훼손해선 안된다는 맥락에서다.지난해 말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 개정 협상이 타결된 바 있다. 노근리 문제에 이어 조만간 미사일 협상 타결이 발표되면 양국간 3대현안이 매듭지어져 부시 차기 행정부와 한국의 새로운 협력관계 모색여건이 완비된다.앞으로도 한·미 양국은 과거사의 앙금을 털어내는추가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노근리 이외에도 한국전 때 일어난 유사한 양민 피해사건이 더 있기에 하는 얘기다.특히 클린턴 대통령의유감 표명은 상황종료 선언이 아니라 앞으로 희생자 가족들을 위무하기 위한 추가적 노력의 출발선이 돼야 할 것이다.
  • [김삼웅 칼럼] 민주당의 지리멸렬상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지리멸렬 상태에 놓여있다. 공식당명인 새천년민주당의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지 의문이다. 진정 우리 ‘새천년’의정치가 이렇게 시작되어서는 안되겠다. 핵심부는 이른바 친권(親權), 반권(反權)으로 분열상을 보이고 중심부는 당무 거부로 정책기능이 마비상태라 한다. 이해찬정책의장이 사표를 제출한 뒤 4일째 당무를 거부하고 있다. 원인은 최고위원들과의갈등 때문이다. 일부 최고위원이 법률안의 내용도 제대로 모르면서엉뚱한 인기성 발언으로 딴죽을 걸어 일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10일)에는 법무부차관을 불러 국가보안법과 인권법에대한 의견을 조율하는 ‘개혁입법 점검회의’를 열려고 했으나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아 무산됐다고 한다. 한심하다 못해 개탄스럽다. 마을 반상회도 저러지는 않는다. 민주당 지도부는 ‘정치귀족’으로 안일에 빠져있다. 각급 이익집단의 갈등이 첨예화해도 조정기능을 하지 못한다. 정치력도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대통령에게 의존하면서 명맥을 유지한다. 군사독재 시절에 ‘동교동’은 민주화와 양심세력의 상징이었다. DJ집권의 산파역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집권 3년만에권력에 도취했는가, 아니면 국정을 담당할 능력과 수준이 그 정도에불과한가? 모든 정치집단이 분열하고 타락해도 ‘동교동’은 그럴수 없다. 얼마나 긴 세월동안 억압과 회유를 뿌리치고 고난의 길을 걸었던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동지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었는가? 동교동계 인사들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많을 것이다. 우선 정현준사설펀드에 가입됐다 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K.K.K씨의 연루가 사실무근으로 드러난 것이 단적인 경우다. 또 하고많은 사건에 거론됐다는 인사들의 경우 대부분 낭설이거나 조작임이 밝혀졌다. DJ정권을 못마땅해하는 정치세력이나 언론에서 정권핵심이 구심체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부단히 분열 용훼해온 것도 사실이다. 동교동이단합하고 이를 중심으로 뭉쳐질 때 정권재창출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분열·이간책을 쓰고 집중타를 날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문제는 이러한 분열·이간에 놀아나는 형편없는 동지애와 리더십이다. 역경에서는 합심해도 잔칫상 앞에서는 분열하는 장삼이사들의 모습이다. 민주당의 지리멸렬상은 동교동의 책임만은 아니다. 집권당이 연구소는 커녕 정책전문지나 변변한 당기관지 하나 내지 못하고 있다. 과거평민당은 어려운 살림에도 ‘평민신문’과 월간지 ‘민주광장’을 발행하면서 민주화와 정권교체에 열정을 모았다. 국고와 후원금 수백억원을 받는 집권당의 무사안일과 대비된다. 원외정당 민주노동당의 기관지 ‘진보정치’와 비교하면 민주당의무사안일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다. 민주당 인사들은 흔히 일부언론의 편향성을 원망한다. 그러한 측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편파언론을 탓할게 아니라 자체언론으로 반박하거나 설득할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소수여당’의 한계도 푸념의 대상이다. 국민의 선택을 겸허하게받아들여 거대야당과는 당당하게 정도로 맞서면 된다. 국민과 역사를의식하면서 정치를 해야지 야당만 상대하다 보니 ‘발목 잡힌 삼손’이 되었다. 그래서 날치기나 의장 포위와 같은 사도(邪道)에 유혹된다. 야당과 협상하다가 안되면 국민의 심판에 맡기라. 무리수나 변칙은 정체성과 도덕성을 함께 잃게 된다. 민주당에는 훌륭한 인재나 능력있는 국회의원이 많다. 그런데 인재풀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 이 부분도 동교동의 책임이 크다. 덧붙이자면 김대통령의 공천권행사가 끝나서 상당수 의원들이 굳이 궂은 일에 나서지 않으려는‘몸사림현상’도 많은 것 같다. 국가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시기다. 민심도 심히 악화되었다. 할 일은 산적해 있고 갈 길은 멀다. 우선 동교동이 초심으로 돌아가라. 민주화 투쟁의 험난한 고초를 생각하고 군사독재에 희생된 원혼들을 기억하고 집권하면 펼치고자 했던 꿈과 정책을 돌이키면서 초심으로 돌아가라. 국민과 역사는 DJ정권이나 민주당, 동교동계의 좌초보다 YS정권에이어 민간정부의 좌절이 가져올 허탈과 그 이후의 사태가 걱정스러운것이다. △김삼웅 주필 kimsu@
  • [대한시론] 광해군을 위한 변명

    젊었을 적에 센케비치의 영화 ‘쿼바디스’를 보면서 네로(Nero) 황제의 비인도적인 정사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었던 일이 있었다.그러나 훗날 역사를 공부하면서 알아 봤더니 네로가 로마 시를 불태우면서 시를 읊었다는 것도 모두 사실이 아니었고,따라서 그는 그의 학정을 침소봉대하기 위해 역사학자들이 곡필한 희생양이었다는 것을알고서는 더욱 황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이런 식의 역사 곡필이 어디 네로뿐이었겠으며 어찌 고대의로마뿐이었겠는가.한국사를 공부하다 보면 많은 원혼(怨魂)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만주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했다가 역신으로 몰려 김부식(金富軾)의손에 죽은 묘청(妙淸),세종대왕의 옥체를 걱정한 것이 오히려 한글창제를 반대했다는 누명으로 바뀐 최만리(崔萬理),이순신(李舜臣) 현창사업의 희생양이었던 원균(元均),문중 사학의 희생양이 되어 역사의 죄인처럼 기록된 김성일(金誠一)….이들은 아마 저 세상에서 눈을감지 못하고 아직도 원혼이 구천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치학을 공부하는나로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역사의희생양은 광해군이다.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계모 슬하에서 슬픔을 되새길 수밖에 없었던 그는 늘 고독하고 우울한 소년 시절을 보낸다.그러다가 젊은 나이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함경도에서 전라도에 이르기까지 그가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는 백성을 어루만지며 왜병을 물리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이미 어린 나이에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의 운명을 체험했고,국력이 약한 나라의 백성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뼈저리게 느꼈다.서자의 몸으로 온갖 우여곡절과 음해를 겪은 후 왕이 되었을 때그는 꿈도 많고 야망도 있는 젊은이였다. 그의 첫번째 꿈은 왜란으로황폐화된 조국의 경제를 건설하는 일이었다. 국고는 바닥이 났으며생산성은 한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그는 우선 경작지를 개간하여 국가의 재원을 확충하고,선혜청(宣惠廳)으로 하여금 대동법(大同法)을 실시케 하여 민생의 안녕을 도모했으며,허준(許浚)으로 하여금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쓰게 하여 질병에 허덕이는 백성을구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왜란으로 인해불타 없어진 많은 서적을 복간(復刊)하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아‘신증동국여지승람’이며 ‘용비어천가’가 모두 이때 되살아났다. 위와 같은 공적 이외에 정치가로서 광해군의 제일의 업적은 외교였다.그는 명나라와 청나라가 교체하는 그 미묘한 시기에 국경을 튼튼히 함은 물론 탁월한 외교술로써 국가 안보를 튼튼히 했으며,일본과의 조약(己酉條約·1609)을 체결함으로써 동북아시아의 3각관계에서굳건한 입지를 구축했다.그런 그가 퇴위하자 곧 병자호란이 일어났다.광해군을 아무리 비하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재임 기간 중에는 외환이 없었으며,그 시대의 국방과 외교가 조선왕조 500년 동안 가장 튼튼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 시대를 연구하는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그는 외치에 몰두하면서 점차 내치를 소홀히 했다.그것이 그만의 실수는 아니며 당시의 정파 싸움 때문이었다고 변명할수도 있다.소북파는 사사건건 정사의 발목을 잡았고,그를 둘러싸고있던 대북파에는 “그게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충신이 없었고,모두가 자신의 보신과 영달에만 눈이 멀어 광해군을 혼군(昏君)으로 몰아갔다. 계모인 인목대비(仁穆大妃)에게 불효한 것도 사실이고, 이복동생인영창대군(永昌大君)을 죽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어디 그 사람만의책임이며,조선왕조에서 형제를 죽인 왕이 어디 그 사람뿐이었겠는가. 그게 잘한 일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보다 더 부덕했던 사람도 그처럼 혹평을 받지는 않았다는 점이 야속하기 때문이다. 그런 즉,정치란 우선 안을 다스리고 밖을 보아야 한다.가정이고,조직이고,나라고 따질 것없이 안이 화목하지 않고 행복한 법이 없다.관자(管子)의 말처럼 안에서 의식(衣食)이 풍족해야 밖에 나가 예절을아는 법이다.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면서 나는 왜 광해군에 대한 안타까움만이 이토록 더해지는 걸까. 신복룡 건국대대학원장·정치학
  • [대한광장] 거창 학살사건의 전국화와 세계화

    얼마 전 거창 민간인 학살 49주기 추모식에 참여했다.신원면 골짜기에서 718명의 억울한 생명이 처참하게 학살되었을 당시를 생각하니가슴이 저미는 아픔을 가눌 수 없었다.그래도 거창 학살사건은 정부의 지원 아래 위령제라도 지낼 수 있었고 명예 회복의 길이나마 열렸으니까 이나마 다행이다. 놀랍게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은 이곳 남녘 땅에서만 약 100만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엄청난 학살가운데 좌익과 북한 인민군에 의해 저지러진 학살은 12만 9,000명쯤으로 남한 정부에 의해 공식화되고 있다는 점이다.이는 대부분의 민간인 학살이 이승만 정부에 의해 자행되었음을 의미한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절대적인 보편적 가치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다.그러나 이곳 한반도에서는 이 생명의 존엄성이 외세와 국가,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의무를 부여받은 바로 그 국가에 의해 여지없이 허물어져버렸다.나라의 주인이라는 국민은 전쟁을 빌미로 헌신짝취급도 받지 못하였다.이로 인해 비참하게 희생된 원혼과 그 유족들의 원한은 이곳 한반도 상공을 배회하고 있다.이제 더 이상 이러한야만의 역사를 묻어 둘 수는 없다.인권과 평화와 통일의 업적으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나라에서 가장 원초적 인권인 인간 생명을 앗아가는 극악한 인권 침해를 역사의 뒤안길로 밀쳐버릴 수는 없다. 피해자 수준의 실태조사 수준을 넘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명령구조에 의해 자행된 가해자 수준의 진상조사가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따라 개별 가해자에 대한 심판을 비록 늦긴 하였지만 내려야 한다.동시에 이들 피학살자와 그 유족에 대한 명예 회복과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가 늦게나마 뒤따라야 한다.그리고 이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공식적인 참회의 역사가 후세들에게 길이 역사 교훈으로 전수되어야 한다.이어서 21세기를 맞아 전쟁을 빌미로 한 민간인 학살을 지구촌에서 제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지구촌 시민운동이 전개되어야할 것이다. 이같이 거창사건의 전국화와 세계화를 꾀하면서 짚어볼 게 있다.바로 양민과 민간인을 구분하는 문제이다.굳이 거창 유족들은 거창 학살사건을 양민 학살로 불려지기를 원한다.곧,거창사건의 희생자는 한결같이 아무런 잘못이나 죄가 없이 무고하게 희생된‘양민’이라는점을 강조하자는 것이다.전쟁 당시는‘양민증’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를 소지하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무슨 일만 생기면 혐의부터 먼저받는 위협을 받아 왔다.수없이 무고한 민간인들이 학살되는 상황에서양민증을 소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쉽게 학살의 표적으로 몰리고 희생되었을 것이다.거창 유족들이 세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양민 학살이라는 이름을 굳이 고집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보편적 인권의 개념에서는 이 구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굳이 구분하는 저변에는 반인권적 해석이 따르기 때문이다.곧,양민은 안 되지만 잘못이 있는 사람이나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는 암묵적인 동조가 깔려 있다는 점이다.잘못이 있거나 지은 죄가 아무리 심하더라도 제대로 된 재판 절차에 의해 엄밀히 다뤄지지 않았을 경우 비록 전쟁의 와중이라 하더라도 이는 국가폭력에의한 인권의 심대한 침해행위이다. 좌익도 마찬가지다.사상과 이념의 자유는 천부적 권리이다.국가보안법으로 이들을 처벌할 수는 없다.이들이 형법상의 범죄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결코 처벌되어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 전후로이곳 남한 땅에는‘빨갱이는 죽여도 좋다’는 국가의 원시적 폭력이횡행하였다.모든 민간인은 양민이다.이들이 형법상의 사형에 버금가는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경우 이들에 대한 학살은 비록 국가보안법에의거했다 하더라도 범죄행위이다.21세기 초입에 이러한 범죄행위에대한 과거 청산과 이들 학살에 대하여 사람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사회학
  • 비디오 테이프 원한의 살풀이 ‘링2’

    한을 품고 죽은 원귀는 한국관객들에게 공포영화의 배역으로는 최상이다.이유없이 닥치는대로 난도질해대는 ‘슬래셔 무비’나 잔뜩 컴퓨터그래픽으로화면을 어지럽힌 할리우드 버전들에 비하면 ‘링’시리즈는 확실한 매력포인트가 있다.‘한국식’으로 머리를 풀어헤친 영화속 원귀는 나름대로 치밀한논리를 대며 관객들을 설득시켜나간다. 스즈키 코지의 소설을 원작으로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 연출한 ‘링2’는 1편의 긴장을 그대로 떠안은 후속담이다.전남편 류지 교수가 의문사한 뒤 불안에 떨며 “나는 하고 당신은 하지 않은 것”이라고 중얼대던 레이코(1편의여주인공) 이야기와,저주의 비디오테이프를 복사해 다른 사람에게 보여야만살아남는 ‘링’의 게임법칙을 안다는 전제아래 2편은 전개된다. 우물속에서 사다코의 시체를 발견하고 류지 교수가 죽자,조교 마이(나카타니 미키)는 류지의 사인을 캐내기 위해 전부인 레이코(마츠시마 나나코)를 찾아나선다.어린 아들 요이치를 데리고 행방을 감춘 레이코를 어렵사리 만나지만,단서를 잡을 수가 없다. 사다코와 비디오테이프에 얽힌 비밀을 파헤쳐가던 마이는 사다코의 염사능력이 요이치에게 전달됐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불가항력으로 초능력을 갖게된 요이치와 함께 사다코의 원혼을 불러내 저주를 풀어보려 노력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 복잡하게 꼬이고 저주받은 비디오테이프는 복사를 거듭하며 속수무책으로 퍼져간다. 아무래도 전편보다는 충격이 덜하다.앞서 문제제기된 의문점들을 ‘예정된수순’으로 수습해가는 이야기에서 더 팽팽해진 긴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염력과 인간의 사념을 주요 소재로 삼은 히데오 감독의 공포물은 희소가치가 여전히 크다. 얼마전 막내린 부천영화제에서 ‘링’시리즈는 일찌감치 매진사례를 기록하며 흥행예고편을 띄워놓았다.29일 개봉.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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