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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달1일 개봉하는 ‘여우계단’ / “여우야 여우야” 피 부른 소원

    ‘1,2편보다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볼 만(?)하다.’ 새달 1일 개봉하는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여우계단’(이하 ‘여우계단’,제작 시네2000) 시사회에서 대체적으로 흘러나온,거친 감상이다.‘여우계단’은 두가지 부담을 안고 출발했다.1·2편과의 차별성과,신예 윤재연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것.3편이라는 딱지는 전편들의 후광에 못지않은 짐이었던 것이다. 뚜껑을 열어본 ‘여우계단’은 내용면에서 밀실 안으로 쑤욱 들어갔다.1편은 성적 만능주의 등 우리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으로,가장 환한 ‘광장’에 서 있었다. 학교풍경과 함께 동성애 등 민감한 사안을 살짝 건드린 2편에서 사적 담론으로 돌아갈 것을 예고했다면,3편은 질투와 시기라는 솔직한 내면세계로 확대경을 들이댔다. 작품의 배경은 예술고교.교내 기숙사로 가는 길에 28개의 계단이 있는데,“여우야 여우야 내 소원을 들어줘…”라고 소원을 빌면서 올라가면 29번째 계단이 보이면서 소원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영화는 어둠 속에서 “여우야…”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함축한 이 내레이션은 고비마다 등장한다. ●첫번째 소원=우정 꿈 많고 말 많은 여고시절이니 너나없이 소원을 빌겠지만,작품을 이끄는 주요 소원은 세가지다.발레반인 소희(박한별)와 진성(송지효)은 단짝.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모차르트형인 소희는 친구들에게 ‘인기 짱’이다.그의 소원은 우정.“영원히 진성이 곁에 남게 해달라.”고 빌 정도로 진성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다. ●두번째 소원=질투 반면 노력파인 진성은 늘 소희에게 밀린다.진성의 ‘2등 콤플렉스’는 질투와 시기로 변하고,1명밖에 나갈 수 없는 콩쿠르를 앞두고 “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무리한 소원을 낳는다.하지만 여우계단은 그의 손을 들어준다.그와 실랑이하던 소희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입원하면서 진성은 티켓을 거머쥔다.이를 비관한 소희는 투신자살한다. ●세번째 소원=복수 세번째 주인공은 ‘뚱녀’로 불리는 미술반 혜주.그는 소희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모두 간직할 정도로 ‘소희 마니아’다.최고에 대한 동경은 병적일 정도의 집착으로 변질하고,소희가 죽은 뒤엔 “소희가 내 곁에 있게 해줘.”라고 기도한다.소희의 원혼이 그에게 씌면서 피를 부르는 복수가 시작된다. ‘여우계단’의 높이를 제일 숨가빠했던 사람은 윤재연 감독.전반부의 구성은 다소 느슨해 지루하지만,갈수록 밀도를 높여갔다.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조소실·지하작업실·기숙사 등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나,조소실에서 도망가는 진성의 발목을 잡는 소희의 원혼,계단에 묻혀 있다 살아 움직이는 원혼 등 곳곳에 배치한 ‘공포 장치’에 감독의 세심한 신경이 살아 있다. 소희의 원혼이 씐 혜주와,진성 소희 등 주요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신인답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이종수기자 vielee@
  • 꼬리무는 원혼들의 저주 / 오늘 개봉 일본 호러 주온

    ‘아시아 호러의 전성시대?’ 홍콩·한국 귀신에 이어 이번엔 일본 귀신이 찾아온다.장궈룽(張國榮)의 유작으로 유명한 ‘이도공간’과 ‘장화,홍련’에 이어 27일 개봉하는 일본 호러물 ‘주온(呪怨)’. ‘주온’은 일본 공포물답게 끔찍한 살육장면을 사용하지 않는다.대신 귀신의 얼굴을 멈추거나 클로즈업하면서 머리카락을 쭈뼛하게 만든다. ‘주온’은 ‘끝나지 않은 저주’를 뜻하는 제목에 걸맞게,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들의 저주를 담고 있다.작품은 의처증에 걸린 젊은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뒤 자신도 자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첫 원혼이 탄생한 것이다.이렇게 원한을 품고 죽은 아내의 혼이 으스스한 기운으로 그 집에 남아 집을 찾아오는 사람을 덮치고,희생된 그 원혼이 다시 뒤의 방문객을 살해하는 ‘유령 도미노’가 탄생한다. 31세의 신예 감독 시미즈 다카시의 앵글은 ‘끔찍한 시작’에서 5년 뒤로 훌쩍 뛰어넘는다.사회복지센터의 자원봉사자 리카는 병든 노파 사치에의 상태를 살피러 간다.섬뜩한 기운이 느껴지는 집에서 찢어진 가족사진과 함께,2층 다락방의 남자아이를 발견한다.이어 사치에 노파를 휘감는 검은 혼령을 본다.그러나 그가 본 건 빙산의 일각.이미 사치에 노파의 아들 가쓰야 부부와,가쓰야의 여동생 히토미도 원혼의 희생자가 됐다. 귀신 릴레이는 이어진다.5년 전 사에키 부부사건을 맡았던 형사 도야마는 그 집에서의 연쇄살인 소식을 듣고 ‘저주의 싹’인 집을 불태우려고 석유통을 들고 찾아간다.거기서 그가 본 것은 미래 딸의 모습.그 역시 원혼에게 당하고 미래의 딸도 당한다. ‘유령 도미노’가 진행되면서 엘리베이터 바깥,인형,화장실,물방울,샤워실 등 장면 장면에 귀신이 지천에 깔렸다.이들이 숨돌릴 틈을 주지 않고 희생자를 낳아 지루하지 않다.다음 희생자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면서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이종수기자
  • 편집자에게/ 日의 ‘유사법제’ 당당한 외교대응 필요

    -노대통령 방일 보도를 보고 노 대통령의 방일에 대해 아마 일본측에서는 한국민의 너그러움에 큰 감명을 받았을 것 같다.노대통령은 일본 도착 1시간여전 일본 국회가 ‘유사법제’를 통과시키는 외교결례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눈감아 주었다.과거사의 족쇄를 풀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열어가기로 했으며,일왕과의 만찬에서도 일본의 과거 가해행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일본의 언론들은 양국 모두 과거사를 언급하지 않은 최초의 만찬이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이쯤 되면 섬나라 일본이 한국측의 아량에 감탄할 만도 하지 않은가. 그러나 뭔가 찜찜하다.그것은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되었던 징용·징병에 대해서 피해보상은커녕 진상조사도 없다.소위 종군위안부로 불리는 성노예착취행위에 대해서는 민간 차원의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한다.남의 땅에 끌려가 피폭당한 원혼들과 그 후손들은 양국 정부로부터 모두 외면당한 채 잊혀져 가고 있다.역사왜곡의 망언은 계속 터져나오고 바야흐로 일본은 본격적인 재무장화의 길에 들어섰다.유사법제는 분명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과 병행해 군사대국화의 길을 활짝 열어준 ‘전쟁준비법’이다.개헌과 자위대 증강도 곧 진행될 것이다. 과거에 얽매이자는 것은 아니나 ‘과거를 망각’하고 ‘미래의 불행을 준비’해서도 안되지 않는가.노무현정부의 ‘당당한 외교’의 실체를 보고 싶다. 장유식(변호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 피붙이가 더 무섭다? 가족공포영화 붐

    돌아앉은 엄마의 등 뒤에서 아이가 다정하게 부른다.“엄마-” 여자에게서 돌아온 싸늘한 대답,“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 오래전에 유행한 ‘괴담성 유머’다.그런데 최근 이런 것들이 국내 극장가에서 쏠쏠한 흥행소재가 되고 있다.이른바 ‘패밀리 호러’물이 줄을 잇는 것.지난달 30일 개봉한 ‘다크니스’부터.‘장화,홍련’이 두 자매와 새 엄마의 갈등으로 극적 효과를 노렸다면,이 영화는 가족갈등의 요인을 아버지에 둔다.오래 전 아버지에게 씌워진 저주의 굴레로,단란했던 가족들이 질서를 잃어간다는 줄거리. 가족간의 불신을 공포코드로 바꾼 ‘장화,홍련’이 공포영화 마니아들의 발길을 유인하는데 이어 박신양·전지현 주연의 ‘4인용 식탁’(8월 개봉예정)이 흥행 분위기를 이어갈 조짐이다.‘4인용 식탁’은 신혼부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가족괴담.식탁에서 귀신을 목격하고 불안에 떠는 남자와,귀신을 볼 수 있는 신비한 주술능력을 지닌 여자가 엮는 오싹한 이야기다.‘장화,홍련’속 귀신이 옷장이나 싱크대,마루밑에 웅크리고 있듯 이 영화에서도 TV나 식탁 같은 집안의 노출된 공간이 늘 께름칙하다. 원혼과 저주 때문에 가족공동체가 극심한 혼란을 겪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은 포스터의 카피부터 역설적이고 도발적이다.“우리집에 놀러 오세요.”(장화,홍련) 가장 친숙하고 신뢰하는 대상인 가족에게서 공포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건 그 자체가 소름끼치는 일.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디 아더스’의 성공이 보여주듯 공포영화의 새 코드는 평범한 일상에서 찾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수정기자
  • “이젠 용서할때, 하지만…”/ 13일로 ‘1주기’ 효순·미선양 부모 마르지않은 눈물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요.가슴에 묻은 딸아이들 명복을 위해서도 그래야 하고요.하지만….” 1년 전 6월13일 미군 장갑차에 치여 ‘못다핀 꽃’으로 스러진 고(故) 신효순·심미선양의 부모들은 1일 오후 사고 현장 옆인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국도56호 도로변에 세워진 추모비 앞에서 애써 울음을 참는 듯했다 ●SOFA 제대로 고쳐져야 미움 다 털텐데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이 온전하게 고쳐져야 미움도 분노도 다 털어버릴 것 같아요.” 효순양의 아버지 신현수(49)씨와 미선양의 아버지 심수보(49)씨는 “추모비를 세운 미군도,정치하는 이들도 ‘인권의 존엄성을 일깨운 죽음을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제까지 결과는 너무 미흡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추모비 앞에는 전국에서 온 참배객들이 놓고간 수천마리의 종이학과 장미·백합·해바라기꽃과 편지가 놓여 있었다.화강암 추모비문 마지막에 적힌 ‘미2사단 일동’이란 문구는 누군가가 지워버리려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추모비 수천마리 종이학·꽃 원혼달래듯 추모비에 새겨진 딸의 사진에 시선을 멈춘 미선양 어머니 이옥자(46)씨는 “이젠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가 봐요. 이모나 외삼촌 꿈에는 보인다는데 제 꿈엔 안보여요.”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효순양의 어머니 전명자(40)씨는 “미선이가 엄마를 힘들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며 이씨를 다독거리면서 “들일을 하고 오면 시키지 않아도 저녁밥 지어놓고 기다리던 효순이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엄마 잊고 싶은지 이젠 꿈에도 안보여 심씨는 “너무나 억울해 인터넷에 아이들의 죽음을 띄우고 여야 3당 대표에게 사고 현장 방문을 요청했지만 월드컵 열기에 묻혀 외면당할 때는 너무 막막하고 외로웠다.”며 당시의 안타까운 심정을 회고했다. 신씨는 “월드컵 끝나고 아이들의 죽음이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SOFA가 뭔지 처음 알았다.”면서 “힘이 있다고 우리땅에서 미군들이 자기들 법대로 한다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월드컵이 끝나고 딸들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부모들은 사고 현장과 효촌리 마을,서울시청앞에서 열린 추모제와 촛불시위 등에 참석하고 조문객들을 맞느라 경황이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참다가 밤이면 집 뒤의 풀숲에서 남몰래 오열해야 했다. ●두 아이 죽음 국론분열 빌미되지 않기를 “국민 모두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죽은 자식들과 저희에게 보내준 애도와 격려가 없었다면 무너져 내리는 심신을 추스를 수 없었을 겁니다.” 지난 1년 동안 효순네와 미선네 집에는 전국에서 수많은 애도와 격려 편지가 쇄도했다.지난 설날엔 낯모르는 대학생 3명이 세배를 다녀갔다.그날 미선이네 3년생 토종견은 수캉아지 2마리를 낳아 집안에 잠시나마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심씨는 “남북대치 상황이란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정치하는 이들이 미국을 상대로 우리 자존심을 찾기 위해 더 노력해 매듭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고통을 되새김질하지 않도록 지나친 관심은 자제해 달라.”면서 두 아이의 죽음과 이후의 파장이 자칫 국론분열의 빌미가 되지 않기를 소망했다. 효순이와 미선이 부모들은 두 딸의1주기 관련 집회 등엔 가능한 참석할 뜻을 밝힌 뒤 “고추밭과 콩밭에 할일이 산더미”라며 발길을 돌렸다. 추모비 뒤쪽 언덕의 자그마한 나무에는 추모객들이 가지에 걸어 놓은 메모지 수십개가 바람에 꽃잎처럼 흔들리며 ‘이승의 고통을 넘어 저 세상에서 행복하거라.’,‘미안하다,꼭 복수해 줄게.’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비문 뒷면에 새겨진 추도시는 비문의 주인공들에게 ‘바람부는 이곳 서낭당 고개에 누워 새소리 듣느냐,바람 소리 듣고 사느냐.’고 묻고 있었다. 글·사진 양주 한만교기자 mghann@
  • “넋의 세계 다루려 ‘4·3’ 소재 삼았죠”/ 전집 완간·새 장편 ‘신화를 삼킨 섬’ 출간 이청준

    작가 이청준(64)씨는 최근 겹경사를 맞았다.전집 완간(24종 25권)을 기념해 지난 20일 심포지엄을 연데다,장편 ‘신화를 삼킨 섬’(열림원)을 펴냈다.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그의 자택에서 소감을 들었다. ●글쓰기는 ‘헤맴'… 40년 흔적 정리 “글쓰기는 ‘헤맴’입니다.이리저리 흩어진 작품을 모아 40년(65년 ‘퇴원’으로 ‘사상계’를 통해 등단했다) 가까이 헤매온 제 모습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그를 통해 앞으로의 ‘글 길’을 모색할 요량이었죠.” 그러나 그는 모색에 그치지 않고 전집 출간을 준비하면서 신작 ‘신화를 삼킨 섬’(이하 ‘섬’) 집필에 들어갔다.전집 출간에 맞춰 ‘섬’ 2권까지 낸 것은 치열한 작가정신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더구나 작품을 낼 때마다 “이번이 ‘소설의 낭떠러지’에서 내놓는 마지막 작품”이라고 말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온 그가 아닌가. “보통 전집 발간을 마무리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더 열어놓는 계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자꾸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지려고요.” 작가가 자신을 경계(警戒)하기 위해 썼다는‘섬’은 신군부를 상징하는 서울 큰당집 사람들의 부탁으로 제주도의 4·3 사건 원혼들에게 씻김굿을 해주려고 온 육지 심방(무당)인 유정남,그의 아들 정요선과 신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역사적 사건보다는 관념적 세계를 주로 다뤄온 그가 4·3사건을 소재로 한 자체가 흥미롭다. “구상의 출발점은 4·3사건이 아니라 ‘넋’이라는 화두였습니다.(인터뷰 중간에 그는 가진 것 하나 없는 촌사람인 자신이 지금 아내의 ‘넋’을 앗아 결혼했다고 우스갯소리를 섞었다.)소설은 현실·역사·넋 등 세요소로 이뤄지는데,저는 권력·이념의 현실 요소나 그것의 정신적 자원인 역사를 다룬 적은 많아도 ‘넋’을 이야기한 적은 거의 없어요.백성의 삶을 온전히 이야기하려면 넋을 빠뜨릴 수 없지요.해서 넋의 세계를 주재하는 무당에 관심을 가졌고 그들이 달래줄 원혼이 가장 많은 제주로 눈길이 갔죠.” ●무당은 ‘살아있는 신화’ 작가는 넋을 형상화하려고 멀리는 삼별초의 원혼부터 가까이는 4·3 사건이 시작된 근대사의 “그 무서운 살육과 공포의 1948년 봄”(83쪽)을 파고 들었다.그러나 작가는 늘 그랬듯이 직접적으로 한을 이야기하지 않고 알레고리로 치환하는데 이번의 장치는 바로 심방의 씻김굿이다.권력은 자신의 핏자국을 감추려 심방을 내세워 ‘역사 씻기기’를 시도하지만 정작 심방은 권력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원혼의 넋을 달래는데 몰입한다.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한판 굿을 통해 망자의 한을 달래고 산자의 응어리진 가슴앓이를 풀어준다. “무(巫)(직접 쓴 뒤)자를 보면 하늘과 땅과 사람 사이에 있잖아요.이들만이 백성의 한을 치유할 수 있어요.그 방법은 원혼의 넋을 불러와 달래는 ‘굿’이죠.연극이나 제의 성격이 강한 ‘굿’은 문자로 기록되기 전의 형태,즉 신화이니 그것을 주재하는 무당은 ‘살아있는 신화’인 셈이죠.” ●소설은 헛것 통해 백성에 힘 주는 것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배치된 아기장수 설화는 작품의 신화적 의미를 더해준다.겨드랑이에 작은 날개가 달려 태어난 아이의 비극을 다룬 설화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눈 뒤 그 사이에 4·3의 원혼을 달래는 이야기를 넣었다.이에 대해 “아기장수가 세상을 뒤집지 못할 줄 알면서도 계속 기다리는 것이 백성들의 바람”이라며 “소설도 그처럼 헛것을 통해 힘을 주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의 말대로 ‘섬’에서 4·3의 원혼을 불러 달래는 씻김굿은 소설 속에 갇히지 않을 성 싶다.그 한풀이는 현실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나와 이 땅에 사는 백성들의 시름을 달래줄 것으로 보인다. 용인 글·사진 이종수기자 vielee@
  • 새달 5일 개봉 장궈룽 유작 이도공간 / ‘상처받은 영혼’ 음울한 연기 섬뜩

    지날달 투신자살한 장궈룽(張國榮)의 유작으로 화제가 된 ‘이도공간’(異度空間·6월5일 개봉)은 귀신 이야기다.16년 전 장궈룽이 출연한 ‘천녀유혼’의 귀신이 고대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이번 버전은 현대판 귀신이다. 정신과 의사 짐(장궈룽)은 귀신이 보인다는 환자 얀(린자신·林嘉欣)을 치료하다 그 원인이 얀의 내면의 상처에 있음을 발견한다.그러던 중 묻어둔 슬픈 사랑의 기억이 되살아 나면서 스스로도 귀신이 보이고,몽유병과 우울증에 시달린다. 영화에서는 두 사람에게 나타나는 원혼을 중심으로,그들의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그러나 영화가 주는 전체적 느낌은 어중간하다.판타지와 공포물이 뒤죽박죽 섞여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로 사용한 충격 음향도 빈도가 너무 잦아 오히려 부작용을 낳았고,귀신들의 연기도 너무 어색해 판타지 효과를 반감시킨다. 그나마 볼거리는 장궈룽의 연기다.특유의 슬픈 표정과 우수어린 얼굴로 상처받은 영혼의 의사역을 잘 소화했다. 배역에몰입하는 열연으로 유명한 장궈룽은 이 영화 촬영뒤 바로 투신해 더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영화 속에서 자기 때문에 죽은 옛 여자친구의 원혼에 쫓겨 고층빌딩에서 보인 투신 직전의 장면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특히 “지금까지…난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어.”라는 마지막 대사는 단순히 영화가 아니라,현실의 심경을 담은 고백처럼 들린다.그 톤은 애잔하다. 이종수기자 vielee@
  • 첫 소설집 ‘깃발’ 낸 홍희담 / “아물지 않은 광주의 상처 여성성으로 치유해야죠”

    문학의 기능 가운데 하나가 현실을 비판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깨어 있게 환기시키는 것이라면 홍희담(58)이 낸 첫 소설집 ‘깃발’(창작과비평사)은 그에 썩 잘 어울리는 수작이다. 작가는 88년 계간 창작과비평 봄호에 중편 ‘깃발’로 등단하면서 “광주 민중항쟁을 처음으로 노동자의 관점에서 다루었다.”는 평을 받았다.이를 입증하듯 그는 줄기차게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문제의식에 천착했고,그 결실을 모아 작품집을 냈다. ●노동자의 눈으로 본 ‘오월 광주’ ‘깃발’에 실린 5편의 중단편 모두를 꿰뚫는 작가의 화두는 역시 ‘광주’다.45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을 마친 그이지만 “광주가 없었으면 소설을 못썼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광주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78년 정착한 이후 22년 동안 광주의 모든 것을 몸으로 겪은 그가 광주를 과거형으로 박제시키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그는 “한때의 민주 항쟁으로 치부하고 넘어갈게 아니라 폭력에 대항한 보편적 가치로 보면 아직 유효하다.”고 말한다. 홍희담 이전 작가들은 대개지식인이나 대학생 중심으로 광주 항쟁을 이야기했다.하지만 그는 표제작에서 도청을 사수했던 주요 인물이 대개 무산계급임을 강조하고 있다.작중 인물인 순분이 들려주는 주인공인,여자 노동자 형순의 다음과 같은 말은 작가의 시각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어떤 사람들이 항쟁에 가담했고 투쟁했고 죽었는가를 꼭 기억해야 돼.그러면 너희들은 알게 될 거야.어떤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가는가를…그것은 곧 너희들의 힘이 될거야.”(63쪽). 홍희담은 이 항쟁의 주역이었던 노동자들의 모습을 이후 파업을 주도하는 노동자 ‘광한’과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고 농민운동에 나서는 어머니(‘이제금 저 달이’)라는 역사적 주체로 확장시킨다.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 형상화 작가의 시선은 항쟁 이후를 소재로 한 작품에서는 더 넓어진다.그 과정에서 작가는 주로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을 밀도있게 형상화한다.‘그대에게 보내는 편지’는 도청 사수파로 남았다가 체포,고문 도중 왼쪽 뇌수가 함몰돼 기억이 80년에 정지한 형철과 그 주변인물의 상처를그리고 있다.이밖에 ‘문밖에서’는 임산부 영신이 민주화운동 당시 살해된 또래의 임산부에 대해 죄의식에 가까운 연민을 느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다수 작품의 등장인물이 여성이란 점도 인상적이다.작가는 “손주를 키우면서 모성애의 힘을 실감하게 됐다.”며 “폭력과 투쟁,힘을 특징으로 하는 남성 우위의 사고로는 ‘광주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고 말한다.당연히 작가는 상생과 사랑의 힘을 작중 인물에 투영했다.단편 ‘문밖에서’의 인물 수환이 태아로 바뀌어 살해된 임산부의 모태에 안착,그 원혼을 달래는 상징성은 압권이다. 해설을 맡은 임규찬 성공회대교수는 “항쟁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며,아이를 키워 역사를 지속시키는 일상적인 어미의 삶에 그 의미를 새로이 부여한다.”며,작품집에 골고루 스며있는 여성성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이종수기자 vielee@
  • 韓國戰 정전 50년 양민학살 재조명

    한국전쟁이 끝난지 50년이 지났는데도 몸서리쳐지는 아픔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당시의 양민학살 현장에서 최근 유골이 잇따라 발굴되면서 유가족들을 중심으로 학살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보상,명예회복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다. ■경남 산청 외공리사건 경남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 소정골에서는 3년 전부터 매년 4월5일 위령제가 열린다. 소정골에서 양민들이 학살됐다는 소문은 2000년 5월 14일 사실로 확인됐다.진주와 산청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앞장서 현장에서 250여구의 유골과 유품을 발굴했다. ●통비(通匪)로 몰린 마을주민 떼죽음 당시 발굴작업을 지켜본 참석자들은 설마하다 쏟아져 나오는 유골을 보며 치를 떨었다.굴삭기가 땅을 1m쯤 파내려가자 희생자들의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됐다.어린이와 부녀자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도 다수 있었다.발굴단은 당초 6기의 무덤을 모두 발굴키로 했으나 1기에서 엄청난 유골이 나오자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발굴된 유골만 수습해 합장하고 작업을 중단했다. 발굴작업을 주도했던 ‘지리산 외공리 민간인학살 진상규명대책위원회’ 김영이 사무국장은 “뒤엉켜 있는 유골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면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유골이 나와 작업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국전 당시 거창·함양에서 양민들이 빨치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학살당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낮에는 태극기를 게양하고,밤에는 인공기를 꽂는 상황이었지만 국군들은 양민들을 통비(通匪)로 몰아 무차별 처형했다.당시 열한살이었던 강복석(63·진주시 상봉서동)씨도 “학살현장에서 2시간 정도 총소리가 들렸고,골짜기에서 나온 군인들이 삽과 곡괭이를 강물에 씻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이곳에서의 학살은 사건발생 10년만에 신문보도로 드러났지만 이듬해 일어난 5·16쿠데타로 다시 어둠속에 묻혔다. ●유골 쏟아져 작업중단 외공리 대책위는 누가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지난 3월 개혁당 김원웅 의원을 통해 국회에 청원도 했다.외공리 대책위 서봉석 실행위원장은 “민간인에 대한 집단학살은 반인륜적인범죄”라며 “한국전이 끝난지 5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진상규명이 안됐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산청 이정규 기자 jeong@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사건 경북 경산시 평산동 폐(廢)코발트광산 인근 대원골에서 최근 한국전쟁 직후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인의 두개골·치아 등 25점의 유골과 신발밑창 등 다량의 유류품이 발견됐다.2000년 3월 폐쇄된 코발트광산 입구 및 갱도 속에서 한국전쟁 당시 처형된 희생자들의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된 데 이은 것이다. ●70년대 초 정부가 갱도 입구 폐쇄 경산 폐 코발트광산 학살사건의 희생자는 35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들 대부분은 대구형무소 수감자와 국민보도연맹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이 사건이 터진 것은 50년 8월 중순쯤.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재소자와 보도연맹원들이 북측에 가담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전국적으로 대량 학살이 저질러질 때였다. 학살은 군경이 이들을 폐광산 위 수직갱도 주변으로 끌고가 총살하거나 산 채로 수직갱에 밀어 넣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알려졌다. 이 동네에서 평생을 살아온 김모(73)씨는 “사건 후 폐광산 주변 계곡에서 흘러 나온 물이 온통 핏빛으로 물들고 악취도 심해 농사를 짓지 못할 지경이었다.”며 “그러다 70년대 초에 와서 정부가 갱입구를 시멘트나 흙,철망으로 막아 버렸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은 95년 평산동청년회 등이 중장비를 동원,광산 입구를 파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그러나 이후 5년여간 방치돼오다 ‘경산시민모임 민간인학살대책위(위원장 장명수·47)’가 구성되면서 본격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2000년 첫 확인… 본격 진상조사 경산시의회도 지난해 말 ‘경산 민간인학살 특별위원회’를 구성,학살현장 확인 등 조사활동을 벌인 뒤 관련 특별법 제정을 정부에 건의했다.유족과 시민모임대책위는 2000년부터 매년 7월에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경산유족회 이태준(66·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 상임대표) 공동대표는 “군경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문제를 제쳐 두고라도 50여년간 구천을 헤메고 있을 원혼을 달래려면 정부 차원의인도적인 진상규명과 유골 수습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경산 김상화기자 shkim@ ■대전 산내사건 대전 ‘산내학살사건’의 희생자는 7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제주 4·3사건 관련자 300명,여순반란 및 보도연맹사건 관련자 3000여명에다 민간인들도 상당수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건이 터진 것은 1950년 7월 초에서 중순 사이.북한 인민군이 내려오고 있다는 말에 군경이 대전 동구 산내동(당시 충남 대덕군 산내면 골령골) 계곡에 이들을 모아놓고 2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학살을 저질렀다. 첫번째 학살은 7월4일부터 6일까지 사흘 동안 이뤄졌다.대전형무소 수감자 3000여명을 트럭으로 이곳에 실어온 뒤 총살했다.2차 학살은 17일 같은 곳에서 있었다.이 때 여성 등 민간인들도 상당수 포함됐다. ●美국립문서보관소 관련자료 나와 지난해 4월 발굴된 영국 데일리 워커지 앨런 위닝턴 기자의 증언록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는 “학살 직후 현장엔 6개 구덩이에 7000여명이 묻혀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그는 “인민군이 금강을 돌파하자 이날 새벽 남아 있던 대전형무소와 인근 교도소 정치범 등을 트럭 1대에 100명씩 모두 37대에 태워 옮긴 뒤 학살했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은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의 관심으로 바깥에 알려졌다.충북 영동 노근리 학살사건으로 군경에 의한 학살사건이 공론화되자 이 단체는 99년 10월 ‘산내학살사건 민간조사단’을 구성하고 진상조사에 나섰다.같은 해 12월에는 이 사건과 관련된 증거가 나왔다.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비밀문서가 해제된 뒤 탐라대 이도영 교수가 아버지를 잃은 4·3사건 관련자료를 뒤지다 이를 발견한 것이다. ●“최고 상층부서 지시” 기록 비밀문서에는 “사흘간 대전형무소 수감자 1800명이 산내에서 학살됐다.”며 “이는 최고 상층부의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적혀 있다.그러나 위닝턴 기자는 증언록에서 “미군의 지시로 일어난 학살사건 중 하나다.”고 밝혀 누구의 지시로 학살사건이 이뤄졌는지는 아직도 불투명하다. 유가족과 대전참여연대는 2000년부터 매년 7월8일 희생자들의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특별법청원 박재욱의원 제주 4·3사건의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이 추진되면서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한국전쟁 전후의 양민학살 사건에 대한 국회 차원의 관심도 탄력을 받고 있다.개혁당 김원웅 의원 등이 발의한 법률안 2건이 계류돼 있고,경북 경산 등 전국적으로 15곳에 이르는 사건의 특별법 제정 청원이 24건이나 된다. 지난 해와 올해 두 차례 입법청원을 낸 한나라당 박재욱(사진·경북 경산·청도) 의원과의 일문일답. 청원서를 내게 된 배경은. -경산에 코발트 광산이 있었는데 6·25 직후에 3500명 가량이 갱도에서 처형됐다.규모로는 전국에서 제일 클 것이다.3∼4년 전부터 유족과 지역주민들의 제기로 진상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해 경산시의회 등에서 청원이 올라왔다. 요구사항은 무엇인가.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이다.피해보상까지 해주면 좋지만 현재로선 기념식과 위령탑 건립을 바라고 있다. 사실 이념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당시에는 법도 없었고 재판절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양민이 상당수 무고하게 희생됐을 것으로 본다. 최근 예결위에서도 정부의 지원을 요구했는데. -행정자치부는 당시 사정을 알 수 있는 서류나 증거물이 미비하다며 국회나 기타 신뢰성 있는 조사기관이 진상조사를 실시하면 정부 차원에서 적극 협조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예산 문제다.조사가 시작되면 아마 전국적으로 피해 신고가 봇물처럼 올라올 것이다.일개 부처에서 손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국회 차원의 조사 활동은. -곧 시작할 것이다.공청회도 해야 한다. 박정경기자 olive@
  • 韓國戰정전 50년 양민학살 재조명

    수많은 양민학살 사건 가운데 제주 4·3사건과 거창 양민학살사건에 대해서만 정부가 조치를 취하자 여기저기서 형평성 문제를 들면서 억울한 원혼을 달래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전국의 대표적 양민학살 현장을 다시 돌아보고,특별법 제정과 관련한 청원을 낸 국회의원과 정부의 입장을 알아본다. ■고양 금정굴사건 경기도 고양시 금정굴 학살사건의 유족들은 지난달 1일부터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요구하는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9·28수복직후 부역혐의자 연행 지난달 30일 농성장에 나온 희생자 유족회 서병규(68) 회장은 15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두 형을 금정굴에서 잃었다고 했다.서씨는 “정부와 정치권은 금정굴 학살 진상조사를 더 이상 미뤄선 안된다.”고 말했다. 1995년 9월 유족들은 자비와 시민단체가 모은 1300만원으로 금정굴 유해 발굴작업을 폈다.당시 발굴된 유골은 모두 153인으로 추정됐다.그중엔 여성 10여명과 어린이 유골도 1구 발굴됐다.금정굴 학살은 50년 9·28 수복 직후부터 그해 11월 초까지 부역자를 색출한다며 경찰과 우익단체가 혐의자를 대거 연행,경찰서 창고에 가뒀다가 살해한 사건이다. 경기도의회는 99년 진상조사특위를 구성,금정굴 사건이 학살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경기도는 이에 따라 고양시에 유골의 추가 발굴과 위령사업을 추진하도록 통보했다. ●지하 15m 금광서 400여명 처형 고양시의회는 그러나 ‘금정굴위령사업촉구결의안’을 부결시켰다.유족들과 고양시민회 등이 결성한 ‘금정굴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시의회의 공식 사과와 우익단체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며 분노했다.유족들은 “희생자들은 반공과 국가안보라는 이념의 제물로 희생된 양민”이라며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의 한을 반드시 풀어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금정굴 사건 공대위 이춘열 집행위원장은 “금정굴 희생자와 함께 연행된 사람들 가운데 부역혐의가 짙다고 판단된 사람들은 당시 서울로 송치됐고 아이로니컬하게도 대부분 목숨을 건졌다.”며 희생자들이 억울하게 처형됐다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금정굴 현장은 1995년 1차 발굴후현재 방수포로 덮여 있다.금정굴은 일제 때 금을 캐기 위해 뚫었던 수직굴로,유골이 발굴된 곳은 지하 15m 지점이다.유족들과 증언자들은 당시 금정굴로 끌려간 이들이 400여명에 이른다며 추가 발굴도 요구하고 있다. 입구엔 장승 조형물이 세워졌고 철제 안내문과 안내판이 서 있다.유족들은 인근 창고를 사무실로 쓰면서 현장을 지키고 있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 ■나주 세지면 동창교사건 전남 나주시 세지면의 일명 ‘동창교 양민학살 사건’(51년 1월20일) 희생자는 136명.면 소재지인 오봉·벽산리 300여가구 주민 가운데 어린이와 노약자를 뺀 젊은이들이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살육전에 희생됐다. 이들은 대낮에 “동창교 아래에서 강연이 있다.”며 위협하는 국군 제11사단 20연대 2대대 5중대 소속 군인들의 총칼 아래 억울하게 죽어갔다.군인들은 함평에서 영암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국사봉의 빨치산을 토벌하러 가던 길이었다.(육군 전투상보 기록) ●주민 5열로 세운뒤 총난사 “지금도 그 때만 생각하면 몸이 떨린다.”는 조기영(73·세지면 벽산1구)씨는 당시 22살 청년으로 현장에 끌려갔다가 ‘경찰가족’이라고 거짓말해 사지(死地)를 벗어났다.현재 세지우체국 담벼락에 몸을 숨긴 그는 “군인들이 동창다리 밑으로 주민들을 5열횡대로 세운 뒤 다리 위에서 M1소총과 기관총으로 난사한 뒤 인근 논과 밭,산에서 일하던 주민들까지 잡아죽였다.”고 증언했다.이어 “당시 세지초등학교 박모 교사의 부인을 총으로 쏜 군인들이 등에 업혀 울던 세살바기마저 사살했다.”고 몸서리쳤다. 이후 47년간 숨죽이며 살던 세지면 주민(37명)들은 1998년 7월,‘세지 동창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 추진위원회(위원장 이상계·46·나주시의원)’를 출범시켰다.이어 유족회를 만들고 2000년부터 해마다 합동위령제(음력 12월12일)를 지내고 있다.내년에는 위령탑을 세울 계획이다. ●“주검 일일이 확인사살” 이상계 추진위원장은 “군인들은 총을 쏘기 전 주민 5명을 가려내 소를 잡아 먹고 일일이 주검을 들춰가며 확인사살까지 자행할 정도로 인간 이하의 행동을 했다.”는 증언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 추진위원장은 “한국전쟁의 동일선상에서 자행된 함평 양민학살 사건은 60년 6월 국회에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진상조사가 이뤄졌으나,동일부대의 만행으로 저질러진 동창 양민학살사건은 조사마저 안돼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나주 남기창기자 kcnam@ ■전주형무소 사건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전북 전주시 전주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던 좌익 정치·사상범 1400여명이 군경에 의해 학살됐다는 증언과 자료가 나와 한국사에 또 하나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당시 형무관 “4차례 자행” 증언 당시 전주형무소 형무관이었던 이순기(78·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씨는 “50년 6월 26일부터 전주가 인민군에게 점령당한 7월 20일까지 4차례에 걸쳐 좌익 사상범들이 퇴각하는 군경에 의해 집단 살해됐다.”고 증언했다.전쟁이 터진 다음 날인 26일 상부로부터 좌익 사상범에 대한 ‘예비검속령’이 떨어졌고,이날 저녁부터 3년 이상 장기복역한 사상범이 끌려나가기 시작했다는 것. 그해 7월 4일 이씨는 사상범 40명이 5명씩 끈으로 묶여 실려가는트럭에 동승했다.전주농고 동문 쪽 야산에서 군인들이 미리 파놓은 구덩이 앞에 죄수들을 나란히 세우고 기관총으로 쏘아 살해했다고 증언했다.이씨는 “사상범들은 현재 전북대가 있는 건지산,농협전북본부와 완주군청이 있는 자리,진안으로 나가는 소리개재 등으로 끌려가 살해되고 그 자리에 묻혔다.”고 말했다.특히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황방산에 묻힌 시신들은 막판에 재판도 받지 않고 끌려가 죽은 사람들이라고 밝혔다.이들은 좌익계통 사람들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있던 억울한 사람들이었다. ●“좌익 접촉” 이유 재판없이 처형 “7월 16일 전주를 떠났다가 10월 13일 다시 돌아와 보니 전주교도소 주변에서 인민군과 함께 철수하던 좌익들이 우익인사 400명을 죽여 시신들이 수습되고 있었습니다.” 한편 진보잡지인 ‘월간 말’은 5월호에 한국전쟁 당시 전주형무소 집단학살 사건의 처형장으로 지목됐던 전주 황방산 부근을 발굴한 결과 수많은 유골을 찾아냈다며 이를 다룬 미국 정부문서보존소 사진을 공개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정부 대책 없나 정부는 다수의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정부 차원의 추가 대책을 마련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양민학살 관련 정부지원 현황 대규모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작업은 행정자치부 산하 ‘4·3사건 지원단’과 ‘거창사건 지원단’에서 맡고 있다.4·3사건이 한국전쟁 이전에 불거졌다는 점을 고려하면,전쟁 당시의 민간인 희생과 관련된 정부지원단은 거창사건이 유일하다.지원단의 업무는 해당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묘역조성사업 등이다.피해보상 문제는 제외됐다. 거창사건 지원단의 경우 1996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 특별조치법’이 제정됨에 따라 구성됐다.지원단은 그동안 거창사건과 관련된 피해접수자 557명 가운데 548명,산청·함양사건 피해접수자 399명 중 386명에 대해 각각 명예회복을 마쳤다.현재는 묘역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4·3사건 지원단은 99년 제정된 특별법에 따라 구성돼 그동안 1만 4028명의 피해신고를 받았다.이 가운데 2778명을 희생자로 결정했으며,오는 2004년 말까지 모든 접수자에 대한 결정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다른 피해자들과 형평성 문제 정부는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의 어려움,전쟁 당시 다른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이 얽혀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어 난감한 입장이다. 거창사건의 경우 당시 이루어졌던 군사재판을 근거로 진상규명 등을 했지만,양민학살사건 대부분은 관련 기록이 전무한 실정이다.따라서 진상규명작업이 유가족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객관성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100만∼200만명으로 추정되는 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자들의 형평성 문제 등을 고려,희생자 1인당 1억원씩 보상한다해도 최소 100조원이 필요해 국가재정에서 충당이 불가능하다.게다가 양민학살사건은 군의 작전과정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정확한 진상조사를 위해서는 국방부가 나서야 하지만,양민학살 인정은 군의 명예 실추와 직결된다는 부담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유가족들의 억울함을 이해하지만,정부가 대책 마련에 앞장 서기도 어려운 입장”이라면서 “국회 차원의 정치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세훈기자 shjang@
  • [발언대] ‘여순사건’도 진상규명 명예회복해야

    이달 초 ‘제주 4·3사건’55주년기념행사 장면을 TV 화면에서 보고 깜짝 놀랐다.‘4·3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정부차원에서 진상 규명이 일부 이루어지고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설치돼 가동한 모양인데,어찌 동일선상에서 일어난 ‘여순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세상이 다 아다시피 ‘여순사건’은 ‘제주 4·3사건’을 진압하고자 제주도로 파견될 예정이던 여수 주둔 국군 14연대가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다.따라서 이는 어디까지나 ‘4·3사건’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것인 만큼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관계가 있는 것이다. 아울러 두 사건은 전개 과정이나 주민피해 등에서 그 성격이 비슷한 점이 대단히 많다.건국 초기에 좌익분자들이 무장봉기를 한 점에서 그렇고 무고한 주민들이 엄청나게 희생되었으며 사망한 이는 물론 그 유족·후손이 ‘빨갱이’라는 오명을 쓰고 오랫동안 우리사회에서 큰 피해를 입어온 점이 그러하다. ‘4·3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순사건’에서도 진압군이 무고한 양민을학살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반란군이 지리산으로 퇴각한 뒤 여수에 ‘쳐들어온’ 진압군은 전 시민을 학교 같은 공공건물에 잡아다 놓고,가담자를 가려낸다는 핑계로 무고한 시민들을 찍어내 마구잡이로 처형했다.그야말로 동족상잔의 수라장이었다. 그해 10월2일 계엄령이 선포되자 14연대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전국적으로 각 건물에서 4호실을 없애라고 불호령을 내릴 정도였다.아울러 토벌작전에 지장이 있다고 3개월 동안 여수∼서울간 열차를 없애버리고 전주∼서울간만 오가게 함으로써 국민 경제활동에 일대 불편을 초래하기도 했다.또 이승만의 독재에 날개를 달아줬고 국가보안법을 산출시켜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역사적인 비극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여순사건’은 건국 초기 나라의 근간을 뒤흔든 큰 사건이었다.정부가 ‘제주 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노력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하지만 역사적으로 동일선상에서 일어난 ‘여순사건’에 대해서도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를 같이 만들어 역사의 진실을 규명해 주기 바란다.그 길만이 당시 억울하게 숨져간 많은 무고한 시민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한편 그 멍에를 지고 살아온 유족들의 명예를 되살려 주는 방법이 될 것이다. 김 계 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 [CEO 칼럼] 이라크 終戰이후가 더 중요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는 “전쟁은 남자에게 여자의 모성과 같은 것”이라며 마치 전쟁에 대한 욕구가 인간의 본능인 것처럼 국민을 현혹했다.또 독일의 군사학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이란 저서에서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해 수행되는 정치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말로 모든 전쟁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려 했다. 이라크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식 저변에는 외견상 드러난 각종 명분 외에 클라우제비츠류(類)의 철학이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세계사는 전사(戰史)로 점철돼 있으며,잘 알려진 영웅과 위인의 상당수가 전쟁속에서 탄생했다.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카르타고의 한니발,로마의 카이사르,이슬람의 살라딘(십자군 전쟁),프랑스의 잔다르크와 나폴레옹,영국의 넬슨,그리고 한국의 이순신 등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는 영웅들이 전쟁속에서 태어났으며 그들의 용기와 철학,어록은 후세 사람들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영웅이 탄생하기까지는 숱한 비극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칼과창,포연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희생된 부하 군인은 물론 무차별적인 포격으로 죽어간 무수한 민간인의 원혼이 항상 승리 뒤의 암영(暗影)으로 남아 있다.따라서 영웅의 화려한 이미지에 가려진 처참한 실상을 실제로 목도한다면 과연 그 영웅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될지 의문이다.위대한 영웅일수록 그 희생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이번 이라크 전쟁도 어차피 발발한 것이야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하루속히 끝났으면 한다.더 길어지면 파괴와 인명손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 나중에 승패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예상되는 전후 상황을 철저히 분석해 나름대로 새로운 국제질서에 적응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조만간에 예정된 전후 처리와 함께 새로운 경제전쟁이 벌어질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전쟁 시작전부터 항간에서 전쟁의 목적이 원유 확보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돈 점을 보면 전후에 유전개발과 복구사업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질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국제질서의 재편도 불가피할 전망이다.전쟁전까지만 해도 세계는 글로벌화가 가속화됐지만 전쟁 찬반을 놓고 국가와 민족간에 갈등을 빚으면서 불편한 대결 구도가 형성돼 앞으로의 국제관계는 민족주의와 이익지상주의가 혼재된 채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특히 틈이 벌어진 미·영과 독·불의 역학관계가 국제사회에 어떤 파급효과를 몰고 올지도 관심거리다. 미국은 벌써부터 연합군 주도로 전후 복구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하면서 전쟁 기여도에 따라 국가간 이익 배분을 차등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우리도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이 같은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현재의 악화된 국내 경제 여건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특히 건설과 함께 중동지역 수출 특수가 예상되는 만큼 각종 복구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전담팀을 구성해야 한다. 현재 우리 경제는 내수부진,수출감소,주가하락,유가상승 등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돌파구를 시급히 마련하지 않으면 불황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전쟁 피해자의 아픔을 같이하는 데 동참하는 동시에 국가 경제와 안보를 튼튼히 하기 위해 국익을 생각하는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임 승 남 롯데건설 사장
  • 네번째 창작집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낸 소설가 이순원

    88년 등단한 이후 쉼없는 창작활동으로 주목받은 소설가 이순원이 4번째 창작집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생각의 나무)를 내놓았다. “삶에서 만나는 여러 종류의 이별을 담았다.문학잡지에 연재할 당시 아줌마 독자들의 엽서나 전화를 많이 받았는데 아마 선한 사람들의 슬픈 얘기라서 그런 것 같다.” 그가 구현하려는 ‘원형질에 대한 그리움’이 감수성 풍부한 이들의 눈물샘을 건드려서일까.그는 문단에서 ‘아줌마 부대’를 몰고 다니는,몇 안되는 작가 중 하나다. 5편의 중단편으로 이뤄진 작품집을 읽다보면 이순원이 ‘기억의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문학,특히 소설이 기억과 무관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작품들은 유달리 ‘기억 찾기’의 성격이 강하다. 5편 모두 장소는 다르지만 주인공의 ‘기억 찾기’ 형식으로 짜여 있다.식물학자인 ‘나’는 지방에 야생화 강의를 하러갔다가 화전민 이야기를 듣고 찢어질 듯 가난했던 어린시절과,아버지가 준 양귀비 달인 물을 먹고 죽어간 여동생을 떠올리고 환청을 듣는다(‘아비의 잠’).‘삐비꽃 여인’의 주인공은 유산한 아내를 달래주려 여행에 나섰다가 군 시절 만났던 미친 여자 ‘성야’에 대한 추억에 잠긴다.‘은규’는 이혼의 상처를 잊으려 동해안과 중국 여행에 나섰다가 만난 여인과의 인연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기억이 가장 짙게 배인 작품은 표제작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와 ‘망배’다.장애인 소몰이꾼 해파리 아저씨에 대한 기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표제작은 현대인들에게 바쁜 일상에 눌려 잊고 사는 것들을 들려준다.이렇듯 이순원은 화전민 마을,중국,군대,고향 등 각기 다른 우물에 기억이란 두레박을 내린다. 그 두레박으로 길어올리는 기억들은 아련하고 슬프다.이 중 표제작은 가장 가슴아린 이야기다.읽다 보면 저 밑에서 싸한 기운이 올라온다.태어난 지 얼마 안돼 두 발이 오그라들고 한팔은 없다시피 해 ‘해파리 아저씨’라 불린 7촌 당숙의 “착해두 너무 착한”(234쪽) 삶은 “참으로 힘들게도 살았고,착하고,용하고,바르게 살다가 간 사람”(249쪽)의 전형을 보여준다. 멀리서 올리는 절,혹은 제사라는 뜻인 작품 ‘망배(望拜)’에서는 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하지 못한 주인공이 집에서 같은 시각에 제사를 지내며 할아버지를 기린다.주인공은 비슷한 연배의 노인인 마을 촌장이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를 찾아온 ‘망종’(亡終)장면을 “가장 아름다운 이별”로 묘사한다. 작가는 슬픔을 택한 이유에 대해 “날로 변하는 현대의 삶 속에서 누구나 원형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면서 “이번 소설집을 묶으며 ‘10년 뒤에도 읽힐 만하다’고 자문자답했는데 이는 ‘세월의 풍화’를 견딜 그 무엇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신들린’사람이다.그러나 그에게 빙의(憑依)한 것은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아니다.늘 ‘소설 거리’를 구상하면서 걷다가 계단에서 자주 미끌어지기 때문에 집을 나설 때마다 부인에게 늘 “조심하라.”는 말을 듣는다. 이종수기자 vielee@
  • 이 사람/ 제주 4·3희생자 유족회 이성찬 회장

    ‘4·3’이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일반적으로 ‘4·3’은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제주지구 소속 한라산무장대가 미 군정 하의 경찰을 향해 본격 공격을 개시한 1948년 4월3일을 일컫는다.이후 제주도 전역이 전란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19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되기까지 6년 6개월동안 군·경과 ‘산(山)사람’들로 인해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된다.지난 2000년 1월12일 공포된 4·3특별법에 의해 공식 신고된 희생자수만 사망 1만 715명,행방불명 3171명,후유장애 142명 등 1만 4028명.신고 이전에 죽은 사람과 미신고자까지 포함하면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인 2만 6000명 정도가 희생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4·3이후 산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가해졌던 ‘연좌제’라는 형벌 아닌 형벌이었다.이제 정부 등 각계의 노력으로 4·3이 제자리를 찾으려 하고 있다.사건이냐,폭동이냐,항쟁이냐에 대한 답과 함께 산사람들에 대한 폭도·무장대·공비·해방군·유격대 등의 표현이 정리되려는 즈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55주기 4·3위령제를 앞둔 이성찬(59) 제주도 4·3희생자유족회장을 비롯한 유족들은 새로운 감회로 올 4·3을 기다리고 있다. 4년여에 걸친 각고 끝에 4·3에 대한 진상이 곧 정부 차원에서 규명되고 희생자 유가족과 제주도민들의 숙원이던 4·3평화공원도 삽질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게다가 정부가 4·3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하려는 기류도 흘러나오고 있다.그렇게 바라던 4·3특별법이 제정된 지도 3년이 지났다.이 회장의 얼굴도 종전에 비해 평안을 찾은 듯하다.머리숱이 많이 빠졌을 뿐이다. 유족회장으로서 4·3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학자가 아니라 정확히 정의하기는 무리지만 느끼고 경험하고 살펴본 바에 의하면 암울한 시대에 국가폭력에 의해 수많은 제주도민이 죽어간 ‘민간인 학살사건’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은 과거 교과서에 실린 내용과는 다른,자칫 ‘좌익적’이라는 오해를 살 만도 하다.그러나 그것은 기우(杞優)이고,‘화해’와 ‘상생’을 힘주는 데서 가장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4·3임을 깨닫게 된다. “4·3의 해법은 ‘화해’‘상생’이 답입니다.4·3특별법이 제정된 취지도 역시 지난 세기에 자행됐던 불행한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기에는 화해와 상생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당시 돌아가신 분들은 이념 때문이거나 누구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희생자일 뿐입니다.서로 위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것이 바로 4·3을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그의 해법대로 4·3문제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 회장의 마음이 편치는 않다.“대립각은 언제나 있을 수 있지요.지금도 4·3을 왜곡하는 사람들과 과거 문제를 들춰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단체나 소수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4·3유족회장으로 간곡히 호소합니다.이제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청산해 가신 임들의 넋을 달래고 희망의 불빛을 밝혔으면 합니다.” 이 회장의 고향은 제주시 오라동,사건 당시는 제주읍 오라마을이다.오라마을은 1948년 5월1일 ‘오라동 방화사건’으로도 유명하다.그에게도 ‘상처’가 없을 리 만무했다. “아버님은 1949년 토벌대의 공격이 너무 무서워 산으로 피신했는데 이후 살려준다는 말을 믿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귀순했으나 경찰은 다른 일행들과 제주읍 동부두 주정공장에 감금해 버렸습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대전형무소로 이감됐고 6·25가 터지자 대전시 동구 낭월동 골령골에서 학살됐지요.” 어느새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어머니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일본으로 건너가 개가했고…,당시 5살이던 저와 동생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슬하에서 ‘폭도자식’이라는 질시와 냉대를 받으며 어렵게 살아왔습니다….” 한참 뜸을 들인 뒤 기자가 보상문제로 말머리를 돌렸다.“지금 보상을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4·3 해결과정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다만 국가 공권력에 의한 잘못이었다고 밝혀진다면 향후 논의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고맙게도 지금 공동체적 보상 형태로 국가가 4·3평화공원을 조성할 계획인 만큼 오는 4월3일 착공할 평화공원 조성 예산을 정부가 적극 지원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신중하지만 할 말을 멈추지는 않는다. “4·3이 발발한 지 어언 반세기가 훌쩍 넘었습니다.지금까지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던 이 사건의 진상이 하루속히 정확히 드러나 당시 희생된 원혼들과 유족들의 피맺힌 한을 풀어 주었으면 하는 게 유족회장으로서의 바람입니다.난항을 겪고 있는 수형인들에 대한 희생자 결정도 4·3특별법 정신에 걸맞게 처리돼 4·3중앙위원회가 4·3의 실상을 가감없이 의결해 주기를 바랍니다.욕심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이 오는 4·3 위령제 때 참석해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아마 오실 것으로 믿습니다.” 글·사진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광화문 촛불시위 오늘 ‘100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렇게 촛불집회를 열어주니 고마운 마음이 먼저 듭니다.이 땅에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함께 기원해야죠.” 지난해 6월 경기도 양주군의 한 지방도로 갓길에서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고(故) 신효순(당시 14세)양의 아버지 신현수(47)씨가 광화문 촛불집회에 대한 소감을 털어놨다. 신씨는 “지난해 12월31일 이후로 광화문 집회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언론을 통해 늘 접하고 있다.”면서 “딸아이가 자꾸 기억나 가슴이 아프지만 또 다른 비극을 막으려면 참아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매일 저녁 6시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촛불집회가 5일로 100일째를 맞는다. 지난해 11월26일 서울 종로구 YMCA회관 앞에서 처음 열린 집회는 시민 100여명이 참석한 조촐한 행사였지만 네티즌 ‘앙마’가 “광화문에서 만나자.”고 제안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됐다.이후 광화문으로 자리를 옮겨 석달 열흘간 계속됐다. 촛불집회를 이끌어온 여중생 범대위는 “여중생의 죽음을 위로하는 동시에 전쟁을 준비하는 미국의 야욕에 반대하는‘반전평화’ 집회로도 확산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광화문 집회를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대학 새내기들도 함께 참여하는 5일 집회에서는 탑 형태의 촛대에 100개의 촛불을 밝혀 여중생의 넋을 달랠 계획이다.원혼굿과 퍼포먼스도 준비된다. 박지연기자 anne02@
  • ‘애도의 날’ 弔鐘… 울음삼킨 대구

    대구 지하철 참사 엿새째이자 ‘시민 애도의 날’인 23일 달구벌에는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졌다.노래방을 포함해 대부분의 상가가 영업을 전면 중단,추모행렬에 동참했다.사건 현장인 중앙로역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지하2층 입구에는 시민들이 두고간 국화꽃 수만 송이가 쌓여 숙연함을 더했다. ●실종자 가족 항의농성 지하철 중앙로역 복구공사에 반발하며 지하1층에서 이틀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실종자 가족 300여명은 지하철운행 전면중단과 사건 현장보존 등을 강력히 요구했다.이들은 “새벽 2시쯤 지하3층 승강장에서 이번 사건 희생자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을 발견했다.”면서 “대구시와 지하철공사측이 현장수습을 서둘러 유골과 유류품이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추모비 위치 놓고 신경전 피해자대책위측과 대구시가 추모비 위치를 놓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대책위측은 “사건현장인 중앙로역 근처에 추모비를 세워 희생자의 원혼을 달래고 시민을 위한 안전교육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그러나 대구시측은외곽공원에 추모비를 설치하는 방안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감식 직원 과로로 실신 사건 전동차가 옮겨진 월배차량기지에서 유골 및 유류품 수습 작업을 하던 김상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물리분석실장이 새벽 3시쯤 숙소에서 실신,병원으로 옮겨졌다.국과수의 한 관계자는 “김 실장이 이틀간 밤샘조사를 벌여 피로가 쌓인 것 같다.”고 전했다. 대구 박지연기자 anne02@
  • 최초 문예동인지 ‘新靑年’ 발견/’창조’보다 열흘 먼저 출간

    근대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동인지로 추정되는 잡지 ‘新靑年’(신청년)이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잡지는 고서(古書)를 전문으로 수집해 온 서지학자 오영식(47·서울 보성고등학교 교사)씨가 최근 이 책 3호를 발굴해 서지학 잡지인 ‘불암통신’ 10호에 관련 글을 올린 것을 계기로 존재 사실이 확인됐다. 불암통신에 이같은 사실이 게재된 후 개인 장서가가 설치한 아단문고에 이잡지 제1·2호(복사본)와 4·6호가 소장돼 있는 사실이 이 문고의 하영휘 학예연구실장에 의해 확인됐다. 발행일이 창간호는 1919년 1월20일,2호는 1919년 12월8일,3호는 1920년 8월1일,4호는 1921년 1월1일,6호는 1921년 7월15일(5호는 미확인)로 부정기 반년간 형태를 보인 이 잡지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동인지로 1919년 2월1일 창간된 ‘창조’보다 열흘 가량 앞서 출간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6호까지 발간된 것으로 보이는 이 잡지에는 만해 한용운의 산문 ‘처음에’를 비롯,방정환의 소설 ‘금시계(金時計)’와 ‘암야(闇夜)’,심훈(본명 심대섭)의 소설 ‘찬미가(讚美歌)에 쌓인 원혼(怨魂)’,나도향의 소설‘나의 과거’,박영희의 평론 ‘시인 바이론의 생애’등 아직까지 알려지지않은 작품이 다수 게재돼 있다. ‘신청년’이 발견됨에 따라 앞으로 문학계에서 이 잡지의 성격과 가치를둘러싸고 상당한 논란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성균관대 한기형(국문학) 교수는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이 잡지가 새로발견됨에 따라 우리 문학사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심재억기자
  • 책/ 천년 궁궐을 짓는다 - 고건축 대가의 외길인생 45년

    ‘나무를 달래며’ 살아온 지 45년째.그곳이 궁궐이든 심산의 절집이든,들보를 깎고 서까래를 짜맞추며 평생 나무집만 지어온 ‘대목장’ 신응수(60)씨가 삶의 여정을 책으로 담아냈다.‘천년 궁궐을 짓는다’(신응수 지음,김영사 펴냄)에는 한국 전통건축의 산증인으로 우뚝 선 지은이의 사담(私談)은 물론이고 국내 대표 고건축물에 대한 전문적 고찰이 두루 담겼다. 고건축에 문외한인 독자를 위해 지은이는 ‘대목장’의 뜻부터 살뜰히 짚어준다.‘대목’이란 건물의 중심을 이루는 공사,이를테면 기둥 도리 연목 굴도리 사래 등을 깎고 짜맞추는 목수에게 붙은 이름.‘대목장’은 그들 가운데서도 총책임자이며,‘도편수’로도 불린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기능보유자.충남 천안시 병천면에서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목수인 사촌형을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어떻게든 공부를 더해 볼 요량이었지만,천직은 목수였다.열일곱 푸른 나이.형을 쫓아다니며 굴도리집 공사의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닥치는 대로 목수 일을 배웠다.나무와 일만 바라보며 전국각처에 크고 작은 나무집들을 앉혀갔다.숭례문 공사에서부터 불국사,수원 장안문,경복궁,창경궁,창덕궁,덕수궁,구인사 조사전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고건축물 복원사업에는 언제나 그의 땀얼룩과 손때가 배어야 했다. 궁궐이 아니어도 그의 손길이 미친 한옥들은 일일이 꿰기가 숨차다.안동 하회마을의 심원정사,총리공관의 삼청당,고 이병철 회장의 호암장과 승지원,청와대 상춘재,경주 안압지 임해전…. 고건축에 심드렁한 독자라도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건무슨 까닭일까.한가지 화두를 고집스레 붙들고 살아온 경건한 삶의 자세 때문일 터.지난 세월의 굽이굽이에 좌절이 없었을 리 없다.실측이 틀려 도면실수를 몇번씩 거듭했고,수입송 반입에 반대하다 말도 안되는 모함을 듣기도 했다. 흥미진진한 현장 일화도 빼놓지 않았다.벌목공사 전에 지내는 고사에서 “어명(御命)이요.”를 외치는 건 나무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란다.나무이야기를 할라치면 끝이 없다.오죽했으면 별명이 ‘소나무 박사’일까.‘나의 소나무 이야기’편에서는 평생을 벗해온 소나무 자랑이 원없이 늘어진다.1만 2900원. 황수정기자 sjh@
  • [사설] 인혁당 사건 진상 재조사하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인혁당 재건위 사건 중간 발표 결과를 보며 우리는 다시 한번 역사 앞에 엄숙하게 서야 함을 느낀다.역사는 스스로 진실을 밝히는 위대한 힘이 있다.그래서 역사가 무서운 것이다.여야의원들이 소속 정당을 떠나 진상규명위 활동을 계속하도록 뒷받침하고 권한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규명위에 따르면 인혁당 사건은 애초부터 실체가 불분명했다.1964년 8월 중앙정보부는 대학생들의 한일회담 반대 데모가 커지자 인민혁명당이 북한 중앙당의 지령을 받아 배후에서 조종한 것으로 발표했으나,재판 과정에서 일부에만 실형을 선고했을 뿐이었다. 74년의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철저하게 조작됐다.박정희 정권은 유신체제후 긴급조치를 발동해 민청학련 소속 1024명을 검거하는 한편 인혁당 재건위가 북한의 지령을 받아 조종한 것으로 만들었다.이 과정에서 중앙정보부는 각종 고문에 의한 증거 조작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당시 사형을 선고받은 8명이 대법원의 확정판결 뒤 불과 20시간만에 전격적으로 집행된 점에서도 용공조작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그 때문에 국내외로부터 ‘사법살인’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과거 암울했던 시대에 인혁당 관련자들이 무참하게 인권을 침해당하며 숨지거나 옥살이를 했다는 것은 분명하게 밝혀졌다.그러나 그 진상이 다 밝혀진 것은 아니다.어찌 보면 시작에 불과하다.74년 이후 28년간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과 가족들이 겪은 고통과 어려움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정부는 이제인혁당 사건을 재조사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그리고 억울하게 숨진 원혼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한다.이 과정에서 해당 기관들은 진실 규명에 최대한 협조해야 하며,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의 길도 열어 주어야 할 것이다. 인혁당 사건처럼 공권력에 의한 용공조작 및 심대한 인권침해 사건의 경우,과연 공소시효가 적용되어야 하는지 의문이다.반인륜적 인권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 문제도 공론화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 토요명화/ 엑소시스트 등

    ●엑소시스트(EBS 오후10시)= 악령을 다루는 오컬트 영화의 고전.12세 소녀인 리건에게 어느날 이상한 증세가 나타난다.배우인 엄마 크리스는 병원을 전전하지만,의사들은 치료법을 내놓지 못한다.리건의 행동이 점점 악화하자 크리스는 신부를 찾아 악령을 내쫓는 엑소시즘 의식을 행한다.그러나 악령은 오히려 신부의 몸에 깃들게 된다.요란한 ‘피의 향연’을 부추기지 않으면서도,한겹 두겹 긴장감과 공포를 쌓아가는연출이 압권이다.2000년에 재개봉해 미국에서만 3000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둬,29년이 지난 지금도 고색창연한 공포가 유효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압솔롬 탈출(KBS2 오후10시50분)= 상관의 명령으로 무고한 사람 수백명을 죽인 해병 특수수색대 대위 로빈스.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상관을 살해한 뒤 비밀 사설감옥 압솔롬으로 끌려가는데….‘터미네이터’‘에일리언’제작팀이 미래 특수감옥을 배경으로 94년에 찍은 SF액션.하지만 지리적 배경이 정글 속 형무소여서 원시적인 장면이많이 나온다.‘007 골든아이’‘마스크 오브 조로’의 마틴캠벨 감독. ●스터 오브 에코(MBC 오후11시10분)= 미국의 인기 판타지 소설가 리처드 매트슨의 소설을 ‘쥬라기공원’‘미션 임파서블’의 시나리오 작가 데이비드 코엡이 각색·연출했다.억울하게 죽은 소녀의 원혼을 보는 아이를 다뤄 개봉 당시 ‘식스 센스’와 자주 비교됐다.최면에 걸린 뒤 아들과 함께 초자연적인 환상에 시달리지만 결국은 진실을 밝혀내는 주인공 톰 역은 케빈 베이컨이 맡았다.평범하게 보이는 중산층의 위선과 욕망을 폭로한 1998년 작품. 김소연기자 pur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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