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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환희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종묘대제’ 참석

    박환희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종묘대제’ 참석

    서울시의회 박환희 운영위원장(국민의힘·노원2)은 지난 7일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있는 종묘 영녕전에서 개최된 ‘2023년 종묘대제’에 참석해 제향했다. 종묘대제는 지난 200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으며, 왕이 직접 거행하는 의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예를 중시하는 유교적 절차에 따라 엄격하게 진행되는 의례이다. 제향은 신을 맞이하는 절차, 신에게 잔을 올리는 절차, 신을 보내드리는 절차로 진행되며, 제향에 앞서 경복궁 광화문에서 종묘에 이르는 어가행렬이 진행된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종묘대제 참석은 지난달 27일 박 위원장이 직접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을 방문해 세계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약속한 이후, 처음으로 개최되는 행사로 세계문화유산인 태강릉 보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박 위원장의 적극적인 참석의사에 따라 성사됐다고 알려졌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사장 이귀남)은 조선 및 대한제국의 유·무형 문화재 보존관리와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5대 제향(조경단대제, 원구대제, 종묘대제, 사직대제, 건원릉대제)과 칠궁제를 주관하는 단체이다.박 위원장은 “국토교통부가 추진하고 있는 태릉골프장 부지의 택지개발에 대해 노원구 주민들과 함께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으나, 문화재청이 세계문화유산 태릉의 완충구역인 연지(蓮池) 보존을 위한 노력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고 토로하면서 “태릉cc 일대 개발을 저지하고 세계문화유산 보전을 위해 전주이씨대동종약원과 적극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특히 박 위원장은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제향행사로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땅과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환구대제의 원형복원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라며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문화재지킴이의날 행사가 올해에는 택지개발 위협에 처해있는 태강릉에서 진행될 예정이며, 전국 8만명의 문화재지킴이가 참석해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서울시 문화재지킴이 조례 제정과 함께 문화재지킴이의날 행사 태릉 유치, 태릉cc 개발반대 청원, 세계유산영향평가 법제화 및 태릉연지 보존촉구, 태릉연지 생물다양성 연구용역, 태릉연지 습지지정 요청, 서울시 유네스코 세계유산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조례 제정 등 문화재 보호를 위해 노력해왔다.
  • 광화문 월대 확인… ‘임금의 길’ 되찾는다

    광화문 월대 확인… ‘임금의 길’ 되찾는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경복궁 광화문 앞 월대가 원래의 모습과 규모로 돌아온다. 그간 사진 자료로 추정했던 월대의 전모가 실물 자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되면서 복원 공사도 탄력을 받게 됐다. 문화재청은 25일 광화문에서 월대 발굴 조사의 성과와 향후 복원 계획 등을 발표했다. 지난해 9월부터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발굴 조사를 진행했는데 월대의 전체 규모, 임금이 지나다니던 어도지 기초시설, 월대 동편의 모습을 통해 경복궁 중건 시 월대의 전체 모습 등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월대는 궁궐의 중심 건물인 정전 등 주요 건물에 설치한 넓은 대(臺)를 뜻한다. 고종 시절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남긴 ‘영건일기’에는 1866년 3월 3일 ‘광화문 앞에 월대를 쌓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발굴 조사를 통해 월대는 남북 48.7m, 동서 29.7m로 육조 거리를 향해 뻗어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월대 중앙에서 광화문 중앙문과 이어지는 어도의 너비는 약 7m에 달한다. 동·서 외곽에는 잘 다듬어진 장대석(길이 120~270㎝·너비 30~50㎝·두께 20~40㎝)을 이용해 2단의 기단을 쌓았고, 그 내부에 서로 다른 성질의 흙을 교차로 쌓아 주변보다 높게 대를 만들었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광화문 월대는 특별히 양옆에 난간을 만들어 훨씬 장식적이고 화려해 다른 궁궐의 월대를 뛰어넘는다”면서 “공연하기 위해 월대를 활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여러 복합적인 공간으로 이용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월대는 축조 이후 크게 네 단계의 변화를 거쳤다. 초기에는 남쪽에 3개의 계단이 존재했으나 2단계에서 가운데 어도 계단이 경사로로 바뀌었다. 3단계에서는 경사로 범위가 확장되고 계단이 동·서 외곽으로 축소 변형됐다. 전차선로가 들어선 4단계에서는 월대를 이루던 난간석 등이 철거되고 도로로 바뀌었다. 이날 공개된 월대에는 일제가 놓은 전차선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 옆의 어도계단지에서는 소맷돌을 받쳤던 지대석이 확인돼 월대 원형 복원에 중요한 단서로 주목받고 있다. 문화재청은 자료를 바탕으로 1890년대 이전의 월대를 복원할 예정이다. 1920년대 해체 이후 경기 구리 동구릉 등에 이전돼 있던 난간석, 하엽석 등의 월대 부재도 재사용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기계가 아닌 손으로 돌을 다듬어 질감을 비슷하게 하고, 원형이 잘 보존된 동편을 기준으로 서편도 복원한다”고 설명했다. 오는 10월 완공 이후 월대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돌아온다. 문화재청은 가을 궁중문화축전과 연계해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월대 주변의 삼군부 및 의정부 터 일부와도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활용할 계획이다.
  • 일제가 놓은 전차선로 치운다… ‘광화문 월대’ 원형 복원 탄력

    일제가 놓은 전차선로 치운다… ‘광화문 월대’ 원형 복원 탄력

    일제가 전차선로를 깔고 훼손했던 경복궁 광화문 앞 월대가 원래의 정확한 모습과 규모로 돌아온다. 그간 사진 자료로 추정했던 월대의 전모가 실물 자료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되면서 복원공사도 탄력을 받게 됐다. 문화재청은 25일 광화문에서 월대 발굴조사의 성과와 향후 복원계획 등을 발표했다. 지난해 9월부터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를 진행했는데 월대의 전체 규모, 임금이 지나가는 어도지 기초시설, 월대 동편의 모습을 통해 경복궁 중건 시 월대의 전체 모습 등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월대는 궁궐의 중심 건물인 정전 등 주요 건물에 설치한 넓은 대(臺)를 뜻한다. 고종 시절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남긴 ‘영건일기’에는 1866년 3월 3일 ‘광화문 앞에 월대를 쌓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궁궐 정문에 난간석을 두르고 기단을 쌓은 경우는 광화문 월대가 유일하다.발굴 조사를 통해 월대의 전체 규모는 남북 48.7m, 동서 29.7m로 육조 거리를 향해 뻗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월대 중앙에 광화문 중앙문과 이어지는 어도의 너비는 약 7m에 달한다. 동·서 외곽에는 잘 다듬어진 장대석(길이 120~270㎝, 너비 30~50㎝, 두께 20~40㎝)을 이용해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내부는 서로 다른 성질의 흙을 교차로 쌓아 주변보다 높게 대를 만들었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광화문 월대는 특별히 양옆에 난간을 만들어 훨씬 장식적이고 화려해 다른 궁궐의 월대를 뛰어넘는다”면서 “공연하기 위해 월대를 활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여러 복합적인 공간으로 이용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광화문 월대와 관련해 19세기 이전에 명확하게 명시된 기록이 나오진 않지만 광화문 앞이 무과를 치르거나 사신을 맞는 등의 공간으로 활용됐다는 기록이 세종실록 등에서 확인된다.월대는 축조 이후 크게 4단계의 변화를 거쳤다. 초기에는 남쪽에 3개의 계단이 존재했으나 2단계에서는 가운데 어도 계단이 경사로로 바뀌었다. 3단계에서는 경사로 범위가 확장되고 계단이 동·서 외곽으로 축소 변형됐다. 전차선로가 들어선 4단계에서는 월대를 이루던 난간석 등이 철거되고 도로로 바뀌었다. 1923년 언론 기사의 보도를 통해 당시까지는 월대가 그래도 남아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취재진에 공개된 월대에는 Y자형으로 일제가 놓은 전차선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 옆으로 어도계단지에서는 소맷돌을 받쳤던 지대석이 확인돼 월대 원형 복원에 중요한 단서로 주목받고 있다.문화재청은 자료를 바탕으로 일제가 놓은 전차선로를 치우고 1890년대 이전 버전의 월대로 복구할 예정이다. 1920년대 해체 이후 경기 구리 동구릉 등에 이전돼 있던 난간석, 하엽석 등 월대 부재도 재사용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기계가 아닌 손으로 돌을 다듬어 질감을 비슷하게 하고, 원형이 잘 보존된 동편을 기준으로 서편도 복원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문화재 복원의 주요 요소인 진정성을 최대한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10월 완공 이후 월대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돌아온다. 월대만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공간까지 광장처럼 조성된다. 문화재청은 가을 궁중문화축전과 연계해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월대 주변의 삼군부 및 의정부 터 일부와도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활용할 계획이다.
  • 홍국표 서울시의원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 훼손 심각 서둘러 보수해야”

    홍국표 서울시의원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 훼손 심각 서둘러 보수해야”

    서울시의회 홍국표 의원(국민의힘·도봉2)은 지난 12일 도봉구청과 세종 왕자영해군파종회 관계자 등과 함께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을 방문해 묘역 훼손 상태를 점검하고 관리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영해군파 묘역은 조선 세종대왕의 아홉째 아들 영해군 이당과 그 아들 영춘군 이인을 비롯한 후손들의 묘역이 다수 분포하고 있는 묘역으로 서울지역 조선 전기 묘역으로는 드물게 묘역 전체가 석물과 함께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묘역의 서편 능선에 있는 영춘군 이인의 신도비는 1509년에 건립됐는데 비문에 있는 ‘도봉(道峯)’, ‘노원(蘆原)’ 등 현재 사용되고 있는 지명이 최초로 언급된 기록으로 추정돼 가치가 매우 높다. 또한 영해군의 손자 강녕군 이기를 대신해 심문받다 숨진 충노(忠奴) 금동의 묘와 묘비로 조선시대 왕손의 묘역에 노비의 묘를 쓰고 비석을 세운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이날 현장점검 결과 훼손이 심했고 묘역 주변을 멧돼지가 파헤친 흔적도 있어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영해군파종회 관계자는 “후손들이 적극적으로 관리를 하려고 해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돼있어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다. 서울시가 보다 적극적으로 살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훼손된 것을 보니 매우 착잡하다. 서울시가 도봉구와 영해군파종회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제대로 관리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며 “서울시가 지정한 많은 유형문화재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관리체계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개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서울시와 협의해 훼손된 부분에 대한 복원 및 보수를 서둘러 진행할 것”을 관계자들에게 당부하며 현장점검을 마쳤다.
  • 김건희 “한국의 얼과 프랑스 매력 어우러진 건축물”

    김건희 “한국의 얼과 프랑스 매력 어우러진 건축물”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는 지난 15일 최근 수년의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원형으로 복원된 주한 프랑스대사관을 찾아 개관을 축하했다. 김 여사는 개관식에서 주한 프랑스대사관에 대해 “한국의 얼과 프랑스 고유의 매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건축물”이라고 말했다고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이 전했다. 한국 현대건축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프랑스 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였던 고 김중업 선생의 설계로 1962년 지어진 뒤 여러 차례 증개축됐다가 이번에 원형으로 복원돼 새롭게 문을 열었다. 김 여사는 전시기획자였던 2016년 르코르뷔지에를 국내에 소개하는 전시회를 개최한 인연이 있다. 김 여사는 개관식 참석에 앞서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교장관을 만나 환담을 나눴다. 김 여사는 최근 프랑스에서 새로운 동물복지법이 통과돼 2024년부터 펫숍에서 유기동물 입양 외에 반려동물을 판매하는 것이 금지되는 점을 언급하며 “양국이 동물권 진전을 위해 정책 교류를 이어 나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콜로나 장관은 “프랑스는 헌법 등에 동물 존중의 정신과 동물이 감정을 지닌 생명체임이 명시돼 있다”고 설명하며 공감을 나타냈고, 윤 대통령 부부의 프랑스 방문도 요청했다.
  • 佛대사관 개관식 찾은 김건희 여사 “양국 매력 어우러진 건축물”

    佛대사관 개관식 찾은 김건희 여사 “양국 매력 어우러진 건축물”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는 15일 최근 수년의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원형으로 복원된 주한프랑스대사관을 찾아 개관을 축하했다. 김 여사는 개관식에서 주한프랑스대사관에 대해 “한국의 얼과 프랑스 고유의 매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건축물”이라고 말했다고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이 전했다. 한국 현대 건축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주한프랑스대사관은 프랑스 건축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였던 고 김중업 선생의 설계로 1962년 지어진 뒤 여러 차례의 증·개축됐다가 이번에 원형으로 복원돼 새롭게 문을 열었다. 김 여사는 전시기획자였던 2016년 르 코르뷔지에를 국내에 소개하는 전시회를 개최한 인연이 있다. 김 여사는 개관식에서 과거 르 코르뷔지에 전시를 준비할 당시 프랑스 대사관의 도움을 받았던 인연을 소개하며 “개인적으로 르 코르뷔지에를 사사한 유일한 한국 건축가 김중업 선생이 대사관을 설계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개관식 참석에 앞서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교장관을 만나 환담을 나눴다. 김 여사는 최근 프랑스에서 새로운 동물복지법이 통과돼 2024년부터 펫숍에서 유기동물 입양 외에 반려동물을 판매하는 것이 금지되는 점을 언급하며 “양국이 동물권 진전을 위해 정책 교류를 이어나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콜로나 장관은 “프랑스는 헌법 등에 동물 존중의 정신과 동물이 감정을 지닌 생명체임이 명시돼 있다”고 설명하며 공감을 나타냈고, 윤 대통령 부부의 프랑스 방문도 요청했다.
  • 열정에 빠지다, 화려함 품은 ‘붉은 구’

    열정에 빠지다, 화려함 품은 ‘붉은 구’

    지금 선 곳은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슐레이마니예 모스크 후원이다. 비잔틴과 오스만 제국이 번갈아 수도로 삼을 만큼 번성했던 고대 도시의 한 지점이다. 눈앞으로 골든혼만과 마르마라해, 보스포루스해가 펼쳐져 있다. ‘금각만’ 골든혼 너머로는 수많은 마천루가 모스크의 미나렛(첨탑)처럼 솟았다. 여기가 상업과 현대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떠오른 베이욜루 지역이다. 구시가지가 고대의 보석이라면 신시가지는 현대의 보석이다. 중세 때부터 20세기 초까지 ‘저쪽’이라는 뜻의 ‘페라’라고 불렸다지. 이제부터 ‘베이욜루 컬처 루트’를 따라 걸으며 용광로처럼 들끓는 이스탄불의 열기를 느껴 볼 참이다.베이욜루 컬처 루트는 튀르키예 문화관광부가 펼치고 있는 관광 캠페인이다. 우리 둘레길처럼 부러 조성한 것이 아니고 일종의 개념도처럼 만든 것이다. 아타튀르크 문화센터(AKM)에서 ‘이스탄불의 명동’이라는 이스티클랄 거리를 거쳐 갈라타 탑까지 이어져 있다. 거리는 4㎞, 십 리가 조금 넘는다. 이 길을 따라 갤러리 등 수많은 문화시설이 늘어서 있다. 그 덕에 일 년 내내(이슬람 기도시간을 제외하고) 다양한 문화 행사들과 만날 수 있다. 들머리를 AKM으로 삼은 건 이 건축물이 이스탄불 현대 문화의 아이콘이란 지위를 단단히 꿰차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내리막길을 따라 걷겠다는 얄팍한 심보도 깔려 있다. 알려졌듯 이스탄불은 일곱 개 언덕의 도시다. 직접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언덕이 많은 건 분명하다. 언덕 위엔 대부분 이슬람 모스크가 들어서 있다. AKM은 다르다. 맞은편 탁심 모스크보다 높은 지대에 있다. 그 덕에 힘 안 들이고 수월하게 갈라타 타워까지 걸어 내려갈 수 있다. ●이스탄불 현대 문화의 아이콘 AKMAKM은 압도적인 공간이다. 웅장하고 화려한 외관은 말할 것도 없다. 복합문화센터답게 오페라 하우스와 공연장, 도서관, 전시장, 레스토랑 등 내부 공간들도 짜임새 있게 들어찼다. AKM은 1969년 세워진 동명의 아트센터를 리모델링했다. 튀르키예 문화예술의 허브 구실을 하다 운영상의 이유로 10년간 버려졌던 걸 2년여 개보수 공사 끝에 2021년 말 다시 문을 열었다. 핵심 시설은 메인 공연장인 오페라 하우스다. 직사각형 건물 안에 원형으로 지어졌다. 외벽엔 붉은빛 타일을 붙였다. 무슬림이 좋아하는 파란빛이 아닌 게 이채롭다. 18명의 여성이 수개월 동안 1만 5000여장의 타일을 이어 붙여 완성했다고 한다. 현지어로는 ‘크르므즈 큐레’가 공식 명칭이다. ‘붉은’(크르므즈) ‘구’(큐레)라는 직관적인 의미다. ‘붉은 구’ 외에도 찾을 만한 공간이 무척 많다.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돌아보길 권한다. 월요일은 휴관. 일부 전시, 공연 시설을 제외하고 무료로 개방된다.AKM 앞은 탁심 광장과 탁심 모스크다. 이스탄불 주민들의 대표적인 ‘만남의 광장’이다. 탁심 광장 앞에 튀르키예 공화국 수립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튀르키예의 국부’로 추앙받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투쟁사가 조각돼 있다.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반드시 기념사진으로 기록을 남겨야 하는 ‘성지’ 대접을 받는다. ●이스티클랄 거리, 보고 먹고 즐기고 이어진 이스티클랄 거리는 ‘이스탄불의 명동’ 같은 곳이다. 화려한 쇼핑 공간, 근사한 맛집, 미술관과 박물관 등 전시시설, 옛 기독교 건물 등에다 길거리 음식점까지 빼곡하다. 주민과 관광객이 뒤섞여 낮밤을 가리지 않고 붐빈다.명물은 노면전차다. 관광용으로 조성된 것인데, 이스티클랄 구간만 왕복 운행한다. 요금은 9.9리라(약 700원), 튀넬에서 탁심 광장까지 6분 정도 소요된다. 오전 7시~밤 9시 30분 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주말엔 첫차 30분, 막차는 5분 늦춰진다. 운행 간격은 30~35분으로 당겨진다.갈라타 타워는 신도시의 화려하고 들뜬 분위기를 묵직한 존재감으로 균형을 맞추는 고대의 건축물이다. 무려 670여년의 역사를 품었다고 한다. 내부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전망대에 오르면 이스탄불 전경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내려올 때는 대부분 계단을 이용한다. 터널 같은 계단은 이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인증샷 명소다.●고풍스러운 유네스코 역사 유적 지구 신세계에서 예술과 문화의 향기에 흠뻑 취했으니 이제 구세계의 고풍스러운 역사에 빠질 때다. 구시가지 쪽의 유네스코 역사 유적지구엔 방문해야 할 명소들이 수두룩하다. 먼저 아야소피아는 팬데믹 기간인 2020년에 이슬람 사원으로 지위가 변경됐다. 1935년 종교와 무관한 박물관으로 변경된 지 85년 만이다. 입장료는 없어졌지만 관람 대기줄은 훨씬 늘었다. 아름다운 고대 벽화로 장식된 2층도 출입 통제다. 1층만 돌아볼 수 있다. ‘블루 모스크’라 불리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는 내부 공사로 출입 불가다. 튀르키예 문화관광부 한국사무소 측은 “여름 성수기 전에 마칠 예정”이라고 전했다. ‘지하궁전’이라 불리는 예레바탄 사라이는 5년 개보수 공사 뒤 지난해 다시 문을 열었다. 대리석 열주 사이사이에 몇몇 조각상을 세웠고, 조명도 새로 설치했다. 역사 위에 ‘문화의 옷’을 한 겹 겹쳐 입은 듯하다.뤼스템 파샤 모스크는 ‘모든 이슬람 건축의 표준’이란 상찬을 받는 건축가 미마르 시난이 설계했다. 크기는 아주 작은데 모스크 내부를 장식한 이즈니크 타일로 유명하다. 시난이 평생 흠모했던 단 한 명의 여인을 빼앗은 뤼스템 파샤를 위해 지었다는 얄궂은 스토리가 얹혀 있다.인근의 슐레이마니예 모스크도 시난이 설계했다. 그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후원에서 보는 풍광이 빼어나다.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 신구 시가지를 가르는 골든혼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난의 영묘도 모스크 인근에 있다. 발렌스 수도교도 필수 방문지다. 386년 세워진 높이 29m의 유적이다. 현대인들에게 ‘수도관’도 이렇게 아름답게 지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는 듯하다. 슐레이마니예 모스크에서 1㎞ 정도 떨어져 있다. ●전설의 ‘오리엔트 특급’ 주인공 된 듯 영화팬들이라면 시르케지 역을 찾아보길 권한다. 전설적인 기차 ‘오리엔트 특급’의 동쪽 출발지다. 동명의 영화로도 숱하게 제작됐다. 주요 기능은 이스탄불 역으로 옮겨 갔지만 고풍스러운 풍경은 여전하다. 2025년엔 옛 오리엔트 특급 열차가 복원돼 다시 유럽을 누빌 예정이라고 한다. 귀국 선물은 그랜드 바자르보다 가급적 이집션 바자르에서 고르길 권한다. 시장 등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사원을 유지하는 걸 ‘와쿠프’라고 하는데, 이집션 바자르도 예니 자미(사원)의 유지를 위해 17세기 초 조성됐다. 향신료 시장으로 유명했던 초창기엔 ‘향신료의 무게만큼 금으로 거래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 온다. 지금은 이집트 고추장부터 달달한 과자 로쿰까지, 다양한 상품을 판다. ◆고침-동영상 자막 중 마르마르해는 ‘마르마라해’, ‘갈라타 타워는 베이욜루 컬쳐 루트의 시작점이자 출발점’에서 ‘출발점’은 ‘종착지’, 이즈믹 타일은 ‘이즈닉 타일’, 시르케치역은 ‘시르케지역’으로 각각 수정합니다.
  • 김동연 ‘4·16 기억교실’ 방문…“별이 된 희생자들 잊지 않겠다”

    김동연 ‘4·16 기억교실’ 방문…“별이 된 희생자들 잊지 않겠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일주일여 앞둔 8일 안산시 단원구 4·16민주시민교육원 기억관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을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김 지사는 기억교실 방문 뒤 SNS에 올린 글에서 “영원히 기억될 4·16 추모시설 건립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오늘 안산 4·16가족협의회와 단원고 4·16 기억교실을 찾았다”며 “언젠가 만날 그리운 가족을 위해 기운 내시고 씩씩하게 사시도록 유가족들께 위로를 드렸다”고 전했다. 김 지사는 “우리 1400만 경기도민 모두 별이 된 희생자들을 잊지 않겠다”며 “영원히 기억될 추모시설 건립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4·16 기억교실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이 사용하던 교실 10칸, 교무실 1칸을 구현한 것으로 학교에 보존돼 온 책상, 의자, 추모 물품과 개인 유품을 옮겨 원형 복원했다. 4·16민주시민교육원은 세월호 참사를 기리기 위해 옛 안산교육지원청 자리에 세워진 경기도교육청 직속 기관이다. 김 지사는 해외투자 유치 등을 위해 도 대표단을 이끌고 9~19일 미국과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라 해외 출장에 앞서 기억교실을 찾아 애도를 표했다.
  • 박환희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 “세계문화유산 ‘태강릉’ 보호…협력 및 지원 요청”

    박환희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 “세계문화유산 ‘태강릉’ 보호…협력 및 지원 요청”

    서울시의회 박환희 운영위원장(국민의힘·노원2)은 지난 27일 전주이씨대동종약원(약칭 종약원) 이석무 총무이사와 이태우 전례이사를 만나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보존을 위한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을 요청했다. 이날 만남은 세계문화유산인 태강릉이 소재하고 있는 공릉동 출신 서울시의원인 박 위원장의 적극적인 요청으로 성사됐다. 사단법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사장 이귀남)은 조선 및 대한제국의 유·무형 문화재 보존관리와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5대 제향(조경단대제, 원구대제, 종묘대제, 사직대제, 건원릉대제)과 칠궁제를 주관하는 단체이다. 공릉동에 소재하고 있는 태·강릉과 관련해서는 봉향회 및 왕릉제향 체험학습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국토교통부가 추진하고 있는 태릉골프장 부지의 택지개발에 대해 노원구 주민들과 함께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으나, 문화재청이 세계문화유산 태릉의 완충구역인 연지(蓮池) 보존을 위한 노력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고 토로하면서 “태릉cc 일대 개발반대 촉구, 한양도성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 등과의 발 빠른 연대가 시급하다”고 역설했다.또한 박 위원장은 “종약원이 추진하는 태릉 및 강릉에 대한 봉향회 및 체험학습에 노원구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석해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이며 “향후, 태강릉 일대를 세계문화유산 보호와 생태습지 보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문화생태공원’으로 추진하겠다”고 포부를 제시했다. 이에 대해 이태우 전례이사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 보호를 위한 학술토론회, 합동간담회 및 대정부 촉구건의안 등 서울시의회의 노력에 대해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은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다”라며 “대한제국 당시 고종황제가 땅과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환구대제(圜丘大祭)의 원형이 복원될 수 있도록 서울시의회의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이어 박 위원장은 서울시의회 운영위원회 소속 직원 등 배석한 관계자들에게 문화재보호를 위한 합동간담회, 조선왕릉 태강릉 보호관리 연구용역, 태강릉일대 문화생태공원 연구용역 등 후속 작업을 차질 없이 시행할 것을 지시했다. 특히 박 위원장은 서울시 문화재지킴이 조례 제정과 함께 문화재지킴이의날 행사 태릉 유치, 태릉cc 개발반대를 위한 청원서 제출, 세계유산영향평가 법제화 및 태릉연지 보존촉구, 태릉연지 생물다양성 연구용역, 태릉연지 습지지정 요청, 서울시 유네스코 세계유산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조례 제정 등 문화재 보호를 위해 노력해 왔다.
  • [데스크 시각] 영약삼단과 새로운 동맹/이제훈 신문국 에디터

    [데스크 시각] 영약삼단과 새로운 동맹/이제훈 신문국 에디터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북동쪽 약 1.5㎞에 있는 로건서클. 로건서클 주변에는 빅토리아와 로마네스크 양식의 고풍스러운 건물 135채가 있다. 1972년 6월 미국 정부가 ‘역사지구’로 지정한 이곳에 빅토리아 양식의 지상 3층, 지하 1층의 건물이 원형을 유지한 채 당당하게 서 있다. 1877년 지어진 이 건물은 원래 해군 출신 정치가이자 외교관인 세스 L 펠프스의 저택이었다. 조선이 청국의 중재로 미국과 외교 관계를 맺었던 1887년 초대 공사로 파견된 박정양이 고종이 준 2만 5000달러로 이곳을 구입해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으로 사용했다. 1889년 2월부터 16년간 대한제국 공사관으로 사용된 이 건물은 2012년 정부가 350만 달러를 들여 구입한 뒤 2015년 12월 문화재청 등이 원형 복원 공사를 해 2018년 5월 박물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 건물을 바라보면 구한말 열강의 각축 속에서 자주 외교를 펼치고자 했던 조선의 몸부림과 한계가 느껴진다. 1882년 조선과 미국 사이에 이뤄진 조미수호통상조약은 날로 강해지는 러시아와 일본의 영향력을 미국을 통해 견제하고 싶어 하는 조선의 입장과 함께 연해주를 야금야금 먹어 들어오는 러시아를 막고 일본의 대조선 영향력을 견제하고 싶었던 청국의 노림수가 있었다. 청국은 공사를 미국에 파견하려던 조선에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여기던 조선이 미국에 외교관을 파견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조선의 뜻이 완강하자 청국은 ‘영약삼단’(另約三端)의 황당한 원칙을 받아들이면 공사 파견이 가능하다는 뜻을 전했다. 영약삼단이란 첫째, 주재국에 도착하면 조선 공사가 청국 공사를 먼저 찾아와 그의 안내로 주재국 외무부에 간다. 둘째, 회의나 연회석상에서 청국 공사 밑에 자리잡는다. 셋째, 중대 사건이 있을 경우 반드시 청국 공사와 미리 협의한다는 내용이었다. 청국의 터무니없는 억지를 조선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정양은 미국 도착 다음날 청국에 아무런 통보 없이 국무부를 방문하고, 미국 대통령 방문 일자를 잡아 신임장도 제정했다. 이를 알게 된 청국 공사가 박정양을 불러 항의했지만 박정양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영약삼단을 무시했다. 하지만 청국의 압력을 못 이긴 조선은 그를 11개월 만에 소환해야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12년 만에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가진 뒤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결단을 강조하고 있지만 반대 여론 역시 상당한 형편이다. 다음달에는 윤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해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 위협과 반도체지원법 문제 등을 논의한다. 특히 올해가 한미동맹 70주년이라 그 어느 때보다도 이번 미국 방문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과 미국 방문을 통해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한미일 공조 체제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와 안보가 한 묶음으로 엮인 현재 상황은 구한말 조선이 처했던 국제정세만큼이나 급변하고 있다. 영약삼단의 요구만큼은 아니지만 최근 미 상무부가 밝힌 반도체 보조금 지원 조건은 까다롭기만 하다. 향후 10년간 중국에서 범용 반도체는 100%, 첨단 반도체는 5% 이상 생산 능력을 확장할 수 없다는 게 보조금의 조건이다. 당초 예상됐던 것보다 조건이 완화됐다지만 사실상 중국에 대규모 공장을 갖고 있는 삼성이나 SK하이닉스로서는 점진적인 철수를 요구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청국의 요구를 무시하며 미국과 관계를 맺었듯이 이번에 동맹 70주년을 맞는 한미 관계의 새로운 발전을 위해서라도 윤 대통령은 기회가 되면 옛 대한제국 공사관에 들러 과거 선조들이 국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역사의 현장을 한번 둘러봤으면 한다.
  • 성남 율동공원, 내년 말 생태문화공원으로 새 단장

    성남 율동공원, 내년 말 생태문화공원으로 새 단장

    성남 율동공원, 내년 말 생태문화공원으로 새 단장…수변무대·물놀이장·캠핑장 4개 공간조성 경기 성남시는 283억5000여만원을 들여 분당구 율동공원을 내년 말까지 수변무대와 캠핑장 등을 갖춘 생태문화공원으로 새단장한다고 7일 밝혔다. 시는 이를 위해 올해 말까지 생태문화공원 조성을 위한 기본계획과 실시설계 용역을 진행한다. 88만9000여㎡ 규모인 율동공원은 분당저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근린공원으로 지난 1999년 개장했다. 시는 율동공원의 자연생태 공간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면서 노후 시설물과 훼손된 생태 수림을 재정비하는 선에서 수변문화·자연치유·감성힐링·건강활력 등 4개 공간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수변문화 공간에는 번지점프대 주변에 수변무대와 분수 시설을 설치하고 어린이 물놀이장, 스케이트장 등을 조성해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한다. 자연치유 공간은 훼손된 생태 수림을 복원해 피톤치드길, 전망대, 반딧불이 정원 등으로 꾸민다. 감성힐링 공간에는 넓은 평지에 잔디광장을 조성해 시민 피크닉 공간으로 활용하고 2만㎡ 규모 캠핑장도 조성한다. 건강활력 공간에는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1㎞)이 조성된다. 꽃과 나무가 있는 숲길도 새로 낸다. 주차 공간은 현재 726면에서 340면을 추가해 1066면으로 확충한다. 시는 8일 서현도서관에서 주민설명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한 뒤 공원 조성계획에 반영할 계획이다.
  • 3·1 운동 맨처음 해외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와 딜쿠샤 이야기

    3·1 운동 맨처음 해외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와 딜쿠샤 이야기

    딜쿠샤(Dilkusha, 힌두어로 이상향이란 뜻)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 이름이다. 서울 종로구 행촌동의 인왕산 자락, 권율 장군의 생가 느티나무 건너편에 지금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붉은색 벽돌로 지은 지하 1층에 2층 건물로 총 면적은 624㎡정도다. 1923년 이 집을 짓고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될 때까지 살았던 주인은 미국의 광산기업인이자 언론인 앨버트 와일드 테일러(1875∼1948)와 부인 메리 테일러다. 집 이름은 물론 테일러 부부가 붙였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서양식 주택 중에서도 구성과 외관이 매우 독특하다. 화강석 기저부 위에 붉은 벽돌을 세워 교차하면서 쌓는 흔치 않은 방식으로 지어졌다. 테일러 부부와 딜쿠샤 얘기를 갑자기 꺼낸 것은 그가 1919년 3·1 운동을 해외에 맨처음 알린 인물이기 때문이다. 마침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삼일절을 맞아 앨버트 테일러의 삶을 기리는 4분 길이의 영상을 제작해 배포했다고 28일 밝혔다. 서 교수의 영상은 우연히 입수한 독립선언서를 미국으로 반출해 3·1 운동을 세계에 알리고, 제암리 학살 사건 등을 취재해 보도한 테일러의 삶을 상세히 다룬다. 서 교수는 “외국인으로 대한민국 독립에 기여한 분들이 많다”며 “이번 일을 시작으로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국내외에 널리 소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선에서 금광과 무역 사업을 하던 앨버트 테일러는 미국 통신사 UPI의 서울 특파원으로 임명돼 일했다. 그는 민족대표 33명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입수한 뒤 동생을 통해 몰래 독립선언서를 외국으로 보내 보도되게 했다. 테일러는 그 뒤에도 일본군이 수원 제암리에서 주민들을 집단 학살한 사건을 취재하는 한편, 일본 총독을 찾아가 조선인 학살에 대해 항의했다. 이런 사건들로 그는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 복역하기도 했으며 1941년 자택에 감금됐다가 이듬해 미국으로 추방됐다. 1948년 미국에서 사망한 뒤 그의 유언에 따라 서울외국인묘지공원에 안장됐다. 딜쿠샤는 현재 우리 정부 기획재정부 소유로 돼 있다. 원래 이곳은 어니스트 베델이 양기탁 등과 함께 창간한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의 전신) 사옥으로 이용됐을 것으로 추정된 곳이란 의미도 있다. 서울시는 1995년부터 딜쿠샤의 문화재 지정을 추진했으나, 건물 기초에 새겨진 ‘딜쿠샤 1923’와 건물의 역사가 확실히 규명되지 않아 진행되지 못했다. 그랬다가 2006년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한국을 찾아 상세한 건축 역사를 전달해 전기를 만들었다. 2016년 2월 서울시와 문화재청, 종로구가 ‘딜쿠샤 보존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딜쿠샤는 원형 복원돼 3∙1 운동 100주년이던 2019년 전면 개방됐다. 당시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 제니퍼가 한국을 찾아 앨버트 테일러 부부의 유품 등 394점을 서울시에 기증해 지금도 이곳을 찾으면 일부를 구경할 수 있다.
  • 느긋하게, 신비한 역사 속으로…특별하게, 찬란한 문화 품으로[권다현의 童行(동행)]

    느긋하게, 신비한 역사 속으로…특별하게, 찬란한 문화 품으로[권다현의 童行(동행)]

    태국어로 천천히, 느릿하게, 편하게라는 뜻의 ‘사바이 사바이’. 이 낯선 단어가 멀리 태국 치앙마이로 나를 이끌었다. 혼자 두 아이를 데리고 외국으로 장기여행을 떠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어쩐지 결심은 금세 이뤄졌다. 여행자들은 물론 엄마들 사이에서도 겨울방학을 이용한 한 달 살기 성지로 유명한 치앙마이 아니던가. 따스한 날씨와 저렴한 물가, 다국적 여행자들을 위한 편의시설, 특유의 친절함과 여유로운 태도까지 망설일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만나고 경험하는 게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다시금 알려 주고 싶었다. ●란나왕국 두 번째 수도 ‘새로운 도시’ 치앙마이의 ‘치앙’은 도시, ‘마이’는 새롭다는 의미다. 즉 새로운 도시, 역사적으로는 란나왕국의 두 번째 수도를 뜻한다. 첫 번째 수도는 치앙라이였다. 란나왕국은 13세기 이 지역에 들어섰던 나라로 ‘란나’는 100만개 논을 상징한다. 그만큼 비옥한 토지를 배경으로 풍요로운 문화를 꽃피웠다. 한때 미얀마의 속국으로 전락하기도 했던 란나왕국은 1775년 태국의 도움으로 독립한다. 이후 태국에 조공을 바치며 독립국의 위치를 겨우 유지했던 란나왕국은 1939년 왕조의 마지막 왕자가 사망하면서 태국으로 편입됐다. 같은 태국임에도 수도 방콕과는 또 다른 독창적인 문화를 간직한 것이 치앙마이의 매력이다. ●아이들 호기심 충족 ‘란나민속박물관’ 아이들에게 이런 도시의 역사를 알려 주기 좋은 장소가 올드시티 내에 자리한 란나민속박물관이다. 이름 그대로 란나 사람들의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으로, 그들이 어떤 형태의 집에 살고 어떤 음식을 먹고 또 어떤 옷을 입었는지 유물보다는 모형과 마네킹을 활용해 실감 나는 전시가 이뤄진다. 때문에 별다른 설명 없이도 아이들이 눈으로 란나왕국의 민속을 이해할 수 있다. 박물관 입구에서 첫째에게 태국어로 된 안내문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하면 한국어로 번역해 주는 애플리케이션 사용법을 알려 줬더니, 궁금한 것은 스스로 찾아보기도 했다. 나중엔 호기심 많은 둘째에게 직접 설명해 주는 자신감까지 보였다.●시선 강탈 높이 6m ‘불두’ 만약 숙소가 님만해민 지역이라면 치앙마이국립박물관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과거 주 법원 건물을 활용한 란나민속박물관과 달리 이곳은 란나 양식의 전통건축법으로 지어졌다. 태국 북부를 대표하는 국립박물관답게 선사시대부터 이 지역의 자연과 생태, 역사, 문화 등 보다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다. 란나왕조의 전성기와 미얀마 점령기, 독립과 재건 그리고 근대 란나왕조의 경제와 문화, 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기록과 유물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란나왕국의 기념비적인 유물로 꼽히는 프라샌스와에 불상머리(Head of Phra Saenswae)가 박물관 입구에 자리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세기 동안 사원에 버려져 있다 발견된 불상머리는 크기가 1.82m로, 유실된 몸까지 합하면 전체 높이가 6m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14~15세기에 제작됐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 불상은 란나왕국 유물 중 가장 큰 규모로 꼽힌다. 원래는 방콕국립박물관에 전시됐던 것을 1973년 치앙마이국립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옮겨 왔다. 란나민속박물관과 치앙마이국립박물관을 둘러보면 공통적으로 란나 사람들에게 불교가 굉장히 중요한 의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종교를 넘어 생활과 문화, 예술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영향을 끼쳤다. 이는 태국인 모두에게 해당한다. 현재 태국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국민의 93% 이상이 불교도다. 남자라면 일생에 한 번 승려로 출가해 수행하는 것이 관행으로 여겨지고, 이를 따르지 않은 사람은 콘딥(Khondip) 즉 무르익지 않은 사람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그래서 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 대부분은 사원이다.●1411년에 지은 ‘60m 넘는 탑’ 장관 치앙마이 곳곳에는 무려 300여개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태국어로 사원을 왓(Wat)이라고 하는데, 올드시티의 경우 골목마다 왓 표지판이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원들이 밀집해 있다. 우리나라 사찰과는 전혀 다른 화려한 외관에 흥미로워하던 아이들도 닷새쯤 지나니 “또 사원이에요?” 지루한 모양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라면 특색 있는 사원 서너 개를 골라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일단 올드시티를 대표하는 사원이라면 왓 프라싱과 왓 체디루앙, 왓 치앙만을 꼽을 수 있다. 들어서는 순간 이국적인 건축물과 금빛 탑이 압도적인 화려함을 뽐내는 왓 프라싱은 태국 3대 프라싱을 모신 사원이다. 프라싱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의 모습을 사자와 같은 당당함으로 표현한 불상을 가리킨다.왓 체디루앙은 60m가 넘는 체디(탑)가 관광객들을 끌어모은다. 1411년 완공 당시 90m에 달했다는 체디는 대지진과 전쟁을 겪으며 상반부가 무너졌던 것을 유네스코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왓 치앙만은 란나왕국을 건립한 멩라이왕이 치앙마이에 처음으로 지은 사원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15마리의 코끼리가 떠받친 모양의 황금빛 체디와 13세기 말 화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도시를 지키는 불상으로 여겨지는 10m 높이의 크리스털 불상이 인상적이다. ●동굴사원에서 천천히 사색 즐기기 아이들이 꼽은 독특한 사원은 왓 록몰리와 왓 우몽, 왓 스리수판이었다. 왓 록몰리는 14세기 란나왕국의 왕족들을 위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커다란 체디 아래에는 왕족의 묘실을 안치했다. 미얀마의 침공으로 폐허가 됐던 것을 20세기 들어서 복원했는데, 특히 돌을 활용한 세련된 양식과 아름다운 벽화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왓 우몽은 멩라이왕이 자신에게 여러 도움을 줬던 승려의 명상을 위해 도이수텝 산기슭에 동굴(우몽)을 파서 완성한 사원이다. 700년이 넘은 고색창연한 동굴사원과 란나양식의 체디, 고요한 호수를 끼고 걷는 산책로까지 아이들과 함께 찬찬히 사색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왓 스리수판은 실버템플로 불린다. 14세기 은 세공사들이 모여 살던 마을에 지어진 사원으로, 태국의 은 세공기술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예술작품과도 같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섬세한 은빛사원에 아이들도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마이암현대미술관 찾아 예술 감성 충전 예술가 마을 반캉왓… 공방·아트숍 눈길 코끼리와 공존 위한 케어 프로그램 감동 눈과 입 즐거운 플리마켓 찾는 재미 쏠쏠 치앙마이에 남은 란나왕국의 가장 큰 영향력은 예술이 아닐까 싶다. 치앙마이는 태국 내에서 예술의 도시로 꼽힌다. 치앙마이대학교에서 다양한 개성의 예술가들을 배출할 뿐 아니라, 란나왕국에서 이어진 색다른 문화와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매료된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치앙마이로 몰려들고 있다. 실제로 시골 전통가옥에서 하룻밤 머물게 됐는데, 알고 보니 호스트가 한국에서 온 화가였다. 그녀에 따르면 치앙마이는 예술가들을 존중하고 이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덕분에 현재 태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예술가 중 치앙마이 출신이 많다고 한다. 그녀 역시 예술가에게 호의적인 치앙마이에 반해 수시로 찾아와 머물던 중 태국인 건축가 남편을 만나 정착을 결심하게 됐단다. 남편이 자신의 할머니를 위해 지었다는 집은 구석구석 그녀의 작품들로 채워져 특별한 감성을 더했다. 이 집 그네에 앉아 감자밭 위로 떨어지는 황금빛 오후 햇살을 마냥 바라보던 순간, 우리는 사바이 사바이란 단어의 힘을 고스란히 느꼈다.●미술관·대학교 아트센터서 예술 산책 치앙마이에서 예술가의 감성을 느끼기 좋은 공간이라면 마이암현대미술관과 치앙마이대학교 아트센터, 그리고 반캉왓(Baan Kang Wat)이 대표적이다. 마이암현대미술관은 라마 5세의 왕후 차오 촘 이암의 이름을 딴 것인데, 그녀의 조카 에릭 버나그가 가문에서 30년간 모은 소장품을 공유한 것이 미술관의 시작이 됐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치앙마이 출신 예술가로 잘 알려진 나빈 라와차이쿨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 더욱 반가웠다. 그는 안양예술공원 내에 전시된 작품 ‘로맨스정자’의 작가이기도 하다. 태국 전통 양식의 정자와 천장에 그려진 가상의 러브스토리가 흥미로운 이 작품은 태국 인플루언서의 방문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마침 서울역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상작품도 전시 중이어서 치앙마이 한복판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기도 했다. 은빛 외관이 인상적인 미술관 내에는 기념품숍과 카페도 자리하고 있어 여유롭게 둘러보기 좋다. 치앙마이대학교 아트센터는 학생들의 전시는 물론 다양한 아트페어가 수시로 마련된다. 기성작가뿐 아니라 젊고 감각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꽤 재미있게 둘러봤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통유리 너머 초록빛 정원을 함께 감상할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인 공간이다. 반캉왓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 마을이다. 가운데 원형극장을 두고 20여개의 아기자기한 공방과 아트숍들이 모여 앉았다. 액세서리에 관심이 많은 첫째는 여기서 마음에 쏙 드는 은반지를 하나 골랐다. 자신의 작품을 알아봐 준 아이에게 젊은 작가는 애정 가득한 칭찬을 한참 쏟아냈다. 요즘도 아이는 반지에 관심을 보이는 친구를 만날 때마다 으쓱대며 반캉왓을 추천한다.●같이 걷고 씻고… 코끼리와 우정 쌓는 캠프 아이들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으로 꼽은 것은 코끼리 케어 프로그램이다. 한때 태국은 코끼리쇼와 트레킹으로 유명했다. 물론 지금도 이를 찾는 관광객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동물학대와 코끼리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하나둘 사라지는 추세다. 하지만 이미 인간에게 길들여지고 사유화된 코끼리들을 무조건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을 터. 치앙마이에서는 인간과 코끼리의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관광프로그램인 코끼리 케어를 곳곳에서 운영 중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코끼리에게 먹이를 주고 함께 정글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산책 후에는 목욕을 함께 하며 진흙마사지를 곁들인다. 여기에 참여한 관광객들이 지불한 비용은 코끼리 구조와 치료에 사용된다. 아이들에게 조금 더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고 싶어 치앙마이 외곽에 코끼리캠프를 겸한 숙소를 예약했다. 그동안 동물원에 갇힌 코끼리를 멀리서만 바라봤던 아이들은 바로 곁에서 같이 걷고 직접 먹이를 주며 교감하는 과정에서 큰 감동을 느꼈다. 함께 목욕을 할 땐 코끼리가 내뿜는 물세례에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아이들이 강바닥 진흙을 퍼서 등을 문질러 줬더니 코끼리는 기분이 좋은 듯 연신 물을 뿜어댔고, 눈부신 햇살 덕에 예쁜 무지개가 꿈처럼 비쳤다 사라졌다. 여기선 아침에 코끼리 모닝콜 서비스도 운영한다. 정해진 시간에 코끼리가 숙소 테라스로 찾아오면 투숙객이 먹이를 줄 수 있다. 포대를 가득 채웠던 바나나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보며 아이들은 코끼리에게 먹보란 별명을 지어 줬다. 실제로 코끼리는 하루 100~200㎏의 먹이를 해치운다고 한다.●벼룩시장·대규모 야시장… 즐길거리 풍성 치앙마이의 또 하나 즐길거리는 플리마켓이다. 마을에서 열리는 소소한 벼룩시장부터 대로를 통째로 활용하는 대규모 야시장까지 일주일 내내 이들만 찾아다니기에도 바쁠 정도다. 그중에서도 토요일 아침 7시부터 열리는 나나정글(Nana Jungle)은 울창한 숲과 갓 구운 크루아상, 다양한 유기농 음식들이 어우러져 특별한 매력을 느끼기 좋다. 로컬 아티스트들의 작품도 구경하고 신선한 음식들을 한자리에서 맛보고 싶다면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리는 참차마켓(Cham Cha Market)과 징자이마켓(Jing Jai Market)을 추천한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야자수농장을 배경으로 열리는 코코넛마켓(Ba Pao Flea Market)이 아기자기하고 재밌다. 여행작가
  • ‘MICE 전주’로 대변혁 시작… ‘전라도의 수도’ 옛 영광 되찾는다

    ‘MICE 전주’로 대변혁 시작… ‘전라도의 수도’ 옛 영광 되찾는다

    고즈넉한 전통의 도시 전북 전주시가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미래 먹거리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대형 개발사업들에 과감하게 시동을 걸었다. 해묵은 과제였던 종합경기장 재개발사업은 첫발을 내디뎠다.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 개발도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두 사업 모두 전주시의 판도를 바꾸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후백제의 왕도이자 조선왕조의 발상지로서 역사·문화·유적을 하나로 묶어 관광산업으로 꽃을 피우는 ‘왕의 궁원 프로젝트’도 관련 법 제정으로 탄력을 받게 됐다. 올해가 ‘천년 전주의 대변혁’이 시작되는 원년으로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전주, 다시 전라도의 수도로!’ 조선시대 전라도를 관할하던 전라감영을 복원한 전주시는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강한 경제’를 외치고 있다. 시는 전주 대변혁의 첫 사업이 덕진구 종합경기장 재개발이라고 23일 밝혔다. 15년 넘게 개발 방향을 확정하지 못해 표류하다가 올해 들어 궤도에 진입했다. 종합경기장 재개발사업은 야구장과 육상경기장을 외곽으로 이전한 뒤 드넓은 노른자위 땅(12만 715㎡)에 ‘전주의 랜드마크’를 조성하는 것이다. 전주시는 종합경기장 재개발사업의 목적을 ‘마이스(MICE) 산업 복합단지 조성’으로 확정했다. 침체됐던 옛 도심에 사람과 돈이 모이는 인프라를 구축해 강한 경제의 핵심 원동력으로 바꾸는 야심 찬 프로젝트다. MICE 산업 복합단지에는 호텔, 백화점, 대규모 전시컨벤션센터, 시립미술관, 한국문화원형 콘텐츠 체험전시관, 메타버스 사업화 실증단지인 S 타운(Town)이 들어서 전주의 새로운 중심 상권이 형성될 전망이다. 이 사업은 시가 종합경기장 부지 일부를 롯데쇼핑에 넘겨주면 롯데가 대규모 전시컨벤션센터(2만㎡)를 건립해 시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롯데는 남은 부지에 호텔과 백화점을 건립한다. 시는 종합경기장 개발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방침이다. 상반기에 야구장 철거를 끝낼 예정이다. 육상경기장과 야구장을 장동 스포츠타운으로 신축 이전하는 공사도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시가 MICE 복합단지 조성을 서두르는 것은 도청 소재지 가운데 유일하게 컨벤션센터가 없어 대규모 행사를 유치하고 관광산업을 육성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용삼 전주시 종합경기장개발과장은 “글로벌 문화관광도시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광역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전시컨벤션 산업 확대가 필수라고 판단돼 종합경기장 부지를 그 핵심 공간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수립했다”고 말했다. 대규모 컨벤션센터를 중심으로 호텔 등 MICE 시설을 집적화하고 다양한 문화 공간을 배치하면 지역경제가 활기를 되찾아 그 효과가 시 전역으로 퍼져 나갈 것이라는 복안이다. 시는 MICE 산업 복합단지가 지역발전의 핵으로 떠오르려면 전시컨벤션센터뿐 아니라 호텔과 백화점도 규모를 키우고 고급화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MICE 산업 후발 주자인 전주에 방문객들이 찾아와 머무르게 하려면 각종 시설이 상대적 우위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시는 전시컨벤션센터의 규모를 민선 7기 계획보다 4배 확대했다. 민선 8기 들어 5000㎡에서 2만㎡로 늘렸다. 건립비는 1461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배 이상 늘었다. 어느 도시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시설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호텔과 백화점의 고급화도 강조한다. 소상공인들도 지역 상권에 영향을 주는 중저가형 백화점보다 고급 백화점의 건립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에 따라 호텔은 최하 4성급 5000㎡ 이상, 백화점은 3만 5000㎡ 이상 규모로 건립될 예정이다. 건립비는 7500억원으로 추정된다. 전주종합경기장은 1963년 시민들의 성금으로 건립돼 60년 동안 시민들과 온갖 애환을 나눠 온 공간이다. 하지만 시설이 낡아 재개발이 시급해졌다. 2005년 12월 전주시가 전북도로부터 무상양도를 받아 다양한 개발 방안을 구상했으나 특혜 시비 등을 우려해 진척이 없었다. 시민들은 민선 8기 시작과 함께 종합경기장 개발사업이 가시화되자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법원과 검찰청이 이전해 상권이 쇠락한 종합경기장 주변 지역도 부동산 거래가 활기를 띠고 있다. 시는 전시컨벤션 산업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 고용 촉진, 관광 발전, 도시 이미지 개선, 인프라 확충, 세수 확대 등 전방위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본다. 2021년 타당성 조사 결과 경제적 파급효과는 5103억원, 고용 창출 효과는 3982명으로 예상됐다. 시 관계자는 “MICE 복합단지가 조성되면 새만금, 혁신도시, 기업 유치와 연계한 대규모 국제·국내 행사를 유치하고 전문인력 양성, 지역특화 핵심전략 연계·육성 등 다양한 활용 방안을 수립해 100만 광역도시 및 국제도시로 발전하는 기반을 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광주 풍암호 녹조 없애고 ‘명품 친환경 호수공원’으로 재탄생한다

    광주 풍암호 녹조 없애고 ‘명품 친환경 호수공원’으로 재탄생한다

    광주 서구 풍암호수 수질개선 사업의 추진 방식을 놓고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광주시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며 펄쩍 뛰지만 지역에선 ‘풍암호수를 매립해 호수가 사라지게 된다’부터 ‘매립한 풍암호수 부지에 아파트를 세운다’는 근거 없는 설들이 나돈다. 풍암호수 수질개선 사업은 광주시가 민간공원 특례사업으로 추진 중인 ‘중앙공원 1지구 개발사업’의 일부분이다.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민간기업이 공원 부지를 매입해 일부는 공원으로 조성해 기부채납하고, 일부는 아파트로 개발해 수익을 보장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풍암호수는 중앙공원의 핵심에 있지만 매년 녹조로 인해 악취가 발생해 민원이 끊이지 않으면서 수질 개선 문제가 지역 최대 현안이 됐다. 풍암호수가 ‘명품 친환경 호수공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근본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풍암호수가 있는 중앙공원이 민간특례사업에 포함됨에 따라 광주시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수질개선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왔다. TF는 수질 관리를 위해 ‘저수지 바닥을 돋워 저수량을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방식이 ‘저수지 매립’으로 부각되면서 주민 갈등으로까지 번졌다. 시는 주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중앙공원 인근 7개 동 주민 35명 및 지역의원을 포함한 ‘주민협의체’를 구성하고 세 차례 회의를 열어 주민 의견을 수렴했다. 다음은 풍암호수와 관련된 각종 소문의 사실 여부다. ①저수지 매립으로 호수가 사라진다 광주시와 TF가 제시한 수질개선 사업 이후에도 호수의 모습은 지금과 거의 비슷하다. 호수 바닥을 돋워 총저수량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균수심을 2.84m(최고수심 4.2m)에서 1.5m(최고수심 2.5m)로 낮춰 저수량을 34만 6000t에서 14만 9000t 규모로 감축하는 것이다. 저수량이 많으면 수질 관리가 어렵고 그만큼 관리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중앙공원 1지구 개발을 추진하는 민간사업자는 당초 1247㎡(약 378평·건축면적) 부지에 거대한 기계식 수질정화시설을 건설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 방식은 연간 30억원의 유지·관리비가 들어가는 게 문제다. 수질정화시설로 사용될 6층 높이의 건물이 들어서 호수 경관도 크게 해칠 수 있다는 점도 TF 논의 과정에서 지적됐다. 결국 이 방식은 논의에서 배제됐다. TF팀은 대안으로 국내 도심호수공원인 세종, 일산, 인천의 호수공원을 벤치마킹해 평균수심 약 1.5m의 ‘관리형 도심호수공원’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풍암호수에 지하수를 끌어오는 방안도 추가했다. ②저수량이 줄면 녹조가 더 발생한다 녹조 발생은 호수 내 총인(T-P) 농도와 수온, 체류시간 등 수리적 환경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총인 농도는 녹조 발생의 직접 요인으로 꼽힌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총인 발생 요인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총인 농도 증가는 저수지로 유입되는 비점오염원이 주범으로 꼽힌다. 배출 지점을 확실하게 식별할 수 없으면서도 광범위하게 확산돼 오염을 일으키는 비점오염원의 유입을 차단하면 수질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TF는 인근 풍암지구와 금당산 등에서 발생해 풍암호수로 유입되는 비점오염원을 차단할 수 있도록 ‘비점오염 배제 박스’를 저수지 바닥에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호수 주변에 심층관정을 개발해 하루 최대 1000t의 맑고 시원한 지하수를 호수로 유입하고, 물 흐름 순환장치를 설치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증발 등을 통해 자연적으로 줄어드는 저수량을 유지·관리하고 호수 수온을 낮춰 녹조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TF는 이 같은 방식이 도입되면 현재 4~5등급인 수질을 3등급으로 끌어올려 녹조 발생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③원형 훼손으로 생태계가 파괴된다 현재의 풍암호수를 원형 보존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나오는 지점이다. TF는 풍암호수가 현재 생태계 보호보다 경관 호수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판단한다. 2008년 시행된 대규모 준설과 자연석 쌓기 공사로 호안 생태계가 소실됐다는 게 이유다. 특히 호수에 서식하는 수생물은 대부분 인위적 방생에 따른 블루길, 붉은귀거북, 배스 등의 외래종이어서 보존해야 할 고유의 원형 생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일부에서 나온다. 현재의 담수량과 수심을 고수해야 할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TF는 차라리 현재 호안의 급경사를 완만하게 만들고 수생식물을 심어 호수의 생태 환경을 회복한다는 구상이 생태계 복원에 더 가깝다고 본다. ④사업자 이익 위해 매립 방식 추진한다 풍암호수의 담수량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21만 4833㎥의 성토량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터파기에서 확보된 토석을 호수 바닥 돋우기에 사용할 경우 절감되는 사업비는 중앙공원 조성사업에 재투입하게 돼 있다. 하지만 중앙공원 1지구 사업자는 성토에 필요한 흙 전량을 외부에서 반입할 계획이어서 민간사업자에게 이익을 안겨 주게 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게 TF의 주장이다.
  • 더 걷고 싶다, 겨울 입은 상당산성

    더 걷고 싶다, 겨울 입은 상당산성

    눈이 내린 날 찾고 싶은 곳들이 있다. 충북 청주의 상당산성은 그중 하나다. 흰 눈은 흐릿한 성벽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고 후줄근한 주변 풍경을 과감히 생략해 준다. 그 덕에 산성은 옹골찬 본디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다.충북엔 은근히 산성이 많다. 방어해야 할 요충지가 많아서다. 고구려 평강 공주와 온달 장군의 고사가 전하는 단양 온달산성, 삼국시대 이래 단 한 차례도 함락되지 않았다는 무패의 산성 보은 삼년산성, 충주의 장미산성 등 지역마다 하나씩은 꼭 있다. 2010년엔 중부권의 산성들을 묶어 유네스코 문화유산 잠재목록에 올리기까지 했는데 이후로는 감감무소식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느리지만 좋은 소식이 되어 돌아오려는 걸까. 지역 사람들의 느릿한 성정처럼 말이다. ●백제 때 처음 축조… 조선시대에 개축 상당산성이 축조된 건 백제 때다. 당시 토성으로 건설된 뒤 조선시대 숱한 전란을 겪으며 개보수를 거듭하다가 숙종과 영조 때 대대적인 개축 공사를 거쳐 현재와 같은 석성의 모습을 하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석성 가운데 원형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은 산성으로 꼽힌다. 상당이란 명칭은 백제 때 청주 일대를 부르던 ‘상당현’이란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은 상당산(492m) 8부 능선에 4.2㎞에 걸쳐 빙 둘러 있다. 오목한 분지를 품고 산허리를 따라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적잖은 산행을 해야 만날 수 있는 여느 산성과 달리 상당산성은 입구까지 도로가 놓여 쉽게 찾을 수 있다. 상당산성의 정문은 남쪽을 지키는 공남문이다. 무사석(武砂石)을 활용해 홍예문(무지개다리) 형태로 쌓았다. 옹성처럼 문 바깥에 성문을 보호하는 시설을 두는 대신 안쪽에 옹벽을 쌓아 성문을 드나들 때 장애물 역할을 하도록 했다. 남문 인근에는 치성을 세 군데나 뒀다. 치성은 성벽에서 돌출시킨 요철 형태의 시설을 일컫는다. ‘꿩 치’(雉) 자를 쓰는데, 제 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는 꿩의 습성에서 뜻을 빌려 온 것이다. 보통 전방과 좌우 방향에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조성한다. 산의 형태를 활용해 쌓은 포곡식 산성에선 치성을 두는 경우가 드물다. 한데 상당산성 남문 쪽은 산의 굴곡이 거의 없어 방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를 보강하기 위해 다수의 치성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성곽을 따라 둘레길이 마련돼 있다. 주차장이 있는 남문에서 출발해 남암문, 서장대, 미호문(서문), 진동문(동문)을 거쳐 원점 회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시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성 안쪽엔 4만 6000㎡ 규모 자연마당 남문 위에 올라서면 낭성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장 전망이 빼어난 곳은 남암문을 지나 미호문을 향해 걷는 구간이다. 청주 시내와 멀리 미호천 일대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성 안쪽으로는 성안마을과 자연마당 등이 있다. 성안마을은 성내 방죽을 끼고 형성된 마을이다. 청주시에서 벌인 한옥 보전 등의 정책 덕에 비교적 옛 모습을 잃지 않은 편이다. 자연마당은 4만 6000㎡(약 1만 4000평)에 달하는 생태공원이다. ‘다랑논’이라 불리는 휴경지와 생태 습지 등을 활용해 조성했다. 볏과 식물과 사초과 식물, 야생화, 연꽃 등의 군락지로 나뉘어 있다. 논배미 같은 소로를 따라 자박자박 돌아볼 수 있다. 청주 외곽 수비를 담당한 게 상당산성이라면 도시 중심부를 방어한 건 청주읍성이었다. 상당산성에 이어 청주읍성 안쪽을 돌아보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 산성과 읍성은 직선거리로 약 6㎞ 정도 거리다. 고대의 청주는 군사 도시였다. 양반 고을, 교육 도시 정도로 알고 있는 이들에겐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릴 수 있겠다. 삼국시대부터 청주는 각국이 경계를 이루며 으르렁대던 각축장이었다. 조선시대인 1651년엔 충남에 있던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옮겨 왔다. 병마절도사는 해당 지역의 육군 총사령관이다. 이는 청주읍성이 충청병영성의 역할을 겸했다는 의미다. 19세기 말 고종 때엔 삼남 최대 군사기지인 진남영이 설치되기도 했다. 일본과의 전투에서 자존심 구기는 전적을 안기기도 했다. 임진왜란 당시 조헌 등 의병이 가장 먼저 수복(1592)한 읍성이 왜군의 최정예 부대가 지키던 청주성이었고, 19세기엔 일제의 정규군이 청주와 충남 공주 등을 무대로 활동했던 ‘호중동학군’에게 걸핏하면 얻어터졌다. ●일제 ‘눈엣가시’ 청주읍성 허물어 이후 일제는 청주 일대의 유적을 없애는 작업을 벌였다. 청주읍성을 형편없이 허물어 배수로 공사 등에 썼고, 무심천의 돌다리 남석교는 아예 땅 밑으로 묻어 버렸다. 망선루 등 당대의 건축물도 이때 모두 헐렸다. 당시 일제의 만행에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이 없지만 유독 청주가 호되게 당한 건 지난날에 대한 ‘뒤끝 작렬’ 때문이라고 청주 사람들은 이해하고 있다. 청주읍성은 한때 높이 4m, 길이 약 1.8㎞에 달했다고 한다. 현재 남은 건 35m의 복원 구간이 전부다. 규모가 너무 작아 ‘애걔’ 하며 코웃음 치기 십상일 텐데 청주읍성은 규모보다 조성 과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청주읍성은 근래 제작한 것이 분명한 벽돌과 시간의 더께가 쌓여 거무튀튀해진 벽돌들이 피아노 건반처럼 어색하게 어울려 있다. 옛 벽돌들은 청주시가 2013년 성돌 모으기 운동을 벌일 당시 시민들이 십시일반 기증한 것들이다. 건물 신축 과정에서 발굴된 성돌 2개를 시작으로 모두 800여개 성돌이 모였다. 이 가운데 650개 성돌이 복원 공사에 쓰였다고 한다. 청주읍성이 복원된 곳은 중앙공원 서쪽 출입구 쪽이다. 읍성 기초석의 흔적이 확인됐던 장소다. 중앙공원은 청주 도보 여행의 중심지인 만큼 함께 돌아보길 권한다. 중앙공원 안에도 수령이 1000년을 헤아린다는 은행나무 ‘압각수’, 병마절도사영문, 망선루 등의 볼거리가 있다. 쫄쫄호떡 등 MZ세대가 즐겨 찾는 맛집도 이 일대에 즐비하다. 청주의 중심가를 일컫는 이름은 ‘성안길’이다. 그러니까 청주읍성의 안쪽에 있는 길이란 뜻이겠다. 옛 이름은 ‘본정통’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잔재로, 나라 안 어느 도시에나 있었던 ‘혼마치’와 같은 말이다. 1994년부터 ‘본정통’이란 낡은 이름을 버리고 ‘성안길’로 고쳐 쓰기 시작했다. 성안길은 좁게 보면 도심의 번화가를 일컫지만 사실상 청주 중심부를 관통하는 길이라 해도 무방하다. 남쪽의 육거리시장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있는 북쪽 내덕동 일대까지 두루 꿰고 있어서다. 보고, 먹고, 놀 공간들이 이 길을 따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자박자박… 청주읍성길 돌아보니 학천탕부터 간다. 최근 청주시에서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건물이다. 요즘엔 ‘목간’이라는 이름의 카페로 바뀌었다. 목간은 목욕탕을 뜻하는 사투리다. 이름처럼 옛 목욕탕 시설을 그대로 카페 집기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 건축계 전설 김수근의 ‘학천탕’ 청주엔 한국 건축계의 전설 김수근의 작품이 두 개다. 국립청주박물관과 학천탕이다. 두 곳 모두 김수근이 말년에 설계했다. 청주 사람들의 성품을 생각하면 김수근에게 작품을 받은 것 자체가 ‘신통한’ 일이다. 폐 끼치기 싫어하고, 제 자랑 하기 꺼리고, 아쉬운 소리 절대 못 하는 청주 사람들이 어떻게 김수근을 찾아가 작품을 달라고 했을지 상상하기 쉽지 않다. ‘학천’이란 이름엔 한 로맨티시스트의 일화가 깃들었다. 다른 지역에선 특이한 사연이 깃든 곳마다 아내에게 선물한 정원입네, 뭐네 요란하게 자랑하던데, 이 도시 사람들은 당최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 대신 전해 줄밖에. 학천탕은 1988년 완공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빼어난 건축미 덕에 청주의 랜드마크로 통했다고 한다. 무려 8층에 달하는 학천탕을 지은 이는 박학래(1923~2010)다. 14세 때 목욕탕 종업원에서 출발해 결국 그 목욕탕의 주인이 됐다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학천탕은 당시 청주에서 목욕업계의 대부로 불렸던 그가 아내 채천식에게 선물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건물 이름도 부부의 이름의 가운데 글자를 뽑아 지었다. 좀처럼 개인 건물 설계를 맡지 않던 김수근이었지만 이런 사연을 듣고 설계를 허락했다고 한다. 건물 전체를 목욕탕으로 쓰던 학천탕은 시류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몇 해 전 ‘목간’이란 카페로 변신했다. 그래도 남탕만은 남겨 뒀는데 그마저 코로나19 사태로 문을 닫았다.●물 없는 탕에서 그대와 ‘커피 한잔’ 맞이 공간 구실을 하는 카페 1층에는 옛 목욕탕 타일을 다듬어 깔았다. 탈의실 옷장, 때 수건, 번호표 등은 인테리어로 썼다. 2층은 메인 욕조와 사우나, 샤워기 등을 그대로 두고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했다. 물 없는 목욕탕에서 커피 한잔 홀짝대는 느낌이 독특하다. 한데 카페 구역은 과거에 여탕이었을까, 남탕이었을까. 이건 궁금증의 영역으로 남겨 둔다. 불고기 음식점으로 쓰는 3~4층도 마찬가지다. 궁금하다면 훗날 카페 주인에게 넌지시 물어보시길. 육거리 시장은 필수 방문 코스다. 이름 그대로 여섯 개의 길이 모이는 곳에 형성된 시장이다. 호사가들은 국내 5대 시장 중 하나로 꼽기도 하는데, 규모가 어느 지역의 전통시장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만큼 크다. 평상시 유동 인구도 많은 편이어서 초대형 쇼핑센터에 치이기 일쑤인 여느 전통시장보다 한결 북적댄다. 육거리 시장 아래엔 남석교(南石橋)가 묻혀 있다. 남석교는 ‘우리나라 최대 돌다리’라는 평가를 받는 문화재다. 조성 시기는 신라, 고려 때 등으로 엇갈리는데, 2005년 청주대 조사 결과 신라 때 처음 축조됐을 것으로 추정된다.●육거리시장 북적… 그 밑 잠든 남석교 남석교가 ‘문화재’인 건 분명한데, ‘대접’은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실체가 묻혀 있어서다. 시청 관계자는 구체적인 유물 분석 작업을 벌일 수 없어 문화재 지정도 어려운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현재 남석교는 그저 ‘돌로 만든 옛날 다리’에 불과하다. 다리가 건너온 천년의 시간 역시 함께 잠든 상태다. 청주대 학술조사 당시에 원형이 거의 보존된 상태인 걸 확인했다고 한다. 숱한 전란을 겪으며 수많은 문화재를 잃은 우리로선 기적처럼 남은 유물인 셈이다. 한데 남석교가 묻힌 위치가 공교롭게도 육거리 시장 한복판이다. 발굴, 복원 등의 주장들이 간혹 제기되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남석교가 묻힌 위치의 천장에 이를 알리는 조형물이 매달려 있다. 남석교가 모습을 드러내는 날, 청주의 관광 지도 역시 다시 그려지지 않을까.관광객이 실제 볼 수 있는 남석교 관련 유물은 법수(法首)가 전부다. 법수는 교량 등의 초입에 세운 장식물을 뜻한다. 전남 구례 운조루에서 보관 중인 ‘청주읍성도’에 이 모습이 분명하게 그려져 있다.●국립현대미술관·연초제조창도 손짓 남석교 법수는 독특하게 ‘토종견’을 모델로 세웠다. 그래서 이름도 ‘석조견상’이다. 청주대와 충북대 박물관에서 각각 보관하고 있는데 청주대에 남은 석조견상 2기가 꽤 온전한 편이다. 1000년의 세월을 건너온 고대의 작품을 보자면 남석교를 직접 ‘알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시나브로 녹는다. 청주대 인근에 ‘핫플레이스’ 국립현대미술관, 연초제조창, 수암골 벽화 마을 등이 몰려 있으니 묶어 돌아보길 권한다. 시내 구경 뒤엔 대청호를 찾아야 한다. 늘 맑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 문의문화재단지, 청남대, 청주의 아름다운 건축물 10선 중 하나인 카페 에클로그 등이 이 구간에 있다. 옥천군 관내 물비늘 전망대, 부소담악 등에선 빙하기를 닮은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물 흐름이 적어 겨울이면 너른 호수가 온통 빙판으로 변한다.
  • 고종이 러 황제에 선물 ‘조선공예미술품’ 첫 공개

    고종이 러 황제에 선물 ‘조선공예미술품’ 첫 공개

    아관파천(1896년 2월 11일~1897년 2월 20일) 시기 고종이 러시아 니콜라이 2세 황제 대관식(1896년 5월 26일)에 전달한 외교 선물이 127년 만에 공개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박물관 내 무기고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국과 무기고, 마지막 황제 대관식 선물의 역사’ 특별전 개막식에서 ‘흑칠나전이층농’, 장승업의 ‘고사인물도’ 2점, ‘백동향로’ 2점이 공개된다고 8일 전했다.유물들은 당시 러시아공사관(아관)에 머물던 고종이 대관식에 민영환을 전권공사로 파견해 전달한 선물 17점 중 일부다. 민영환과 함께 대관식에 참석했던 윤치호의 일기를 통해 목록 일부가 언급되긴 했으나 실물이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외교 선물인 만큼 당대 최고의 상품이 선정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복원 예산을 지원한 ‘흑칠나전이층농’의 자문을 맡은 김삼대자 전 문화재위원은 “전형적인 ‘통영농’의 형태로 최상품의 나전을 주문한 것 같다”면서 “먼 경치를 표현한 구성도 기가 막힌다. 이렇게 좋게 만든 것은 처음 봤다”고 평했다. 특히 ‘흑칠나전이층농’은 나전칠기 장인 전성규에 의해 1920년 이후 유행했다고 알려진 세밀한 끊음질(자개를 칼끝으로 끊어 채우는 방법)이 이전에도 발전했음을 보여 주는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다.조선 후기 화가 장승업의 그림 또한 외교 선물로는 최고였다. 이번에 공개된 ‘노자출관도’(老子出關圖)는 중국 노장 철학의 창시자인 노자가 주(周)나라가 쇠퇴한 것을 보고 은거했다는 고사를 담았다. ‘취태백도’(醉太白圖)는 ‘이태백’으로 잘 알려진 시인 이백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크기만 174㎝가 넘는 데다 장승업이 자신의 서명 앞에 ‘조선’이라고 쓴 것은 처음 확인되는 사례다. ‘백동향로’는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의미한다. 황제의 치세를 표상하는 대관식의 취지를 잘 표현했다고 평가된다.이번 보존사업은 중국이나 일본 전문가들의 손으로 복원돼 원형의 느낌이 묘하게 훼손됐던 다른 사례들과 달리 재단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현지인들이 제대로 복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보존 처리를 자문한 이용희 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장은 “조금 걱정했는데 러시아에서 복원이 굉장히 적절하게 이뤄졌다. 원칙을 잘 지킨 것 같다”고 말했다. 재단 관계자는 “이번 사례를 통해 문화재를 같이 공유하고 교류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전했다.
  • 고종이 러시아 황제에 선물한 ‘조선공예품’ 127년 만에 최초 공개

    고종이 러시아 황제에 선물한 ‘조선공예품’ 127년 만에 최초 공개

    아관파천(1896년 2월 11일~1897년 2월 20일) 시기 고종이 러시아 니콜라이황제 2세 대관식(1896년 5월 26일)에 전달한 외교 선물이 127년 만에 공개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박물관 내 무기고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국과 무기고, 마지막 황제 대관식 선물의 역사’ 특별전 개막식에서 ‘흑칠나전이층농’, 장승업의 ‘고사인물도’ 2점, ‘백동향로’ 2점이 공개된다고 8일 전했다. 특별전은 10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유물들은 당시 러시아공사관(아관)에 머물던 고종이 대관식에 민영환을 전권공사로 파견해 전달한 선물 17점 중 일부다. 이번에 공개되는 유물은 모두 크렘린박물관 소유로, 나머지는 모스크바 국립동양박물관에이 소장하고 있다. 민영환과 함께 대관식에 참석했던 윤치호의 일기를 통해 목록 일부가 언급되긴 했으나 실물 공개는 처음이다. 외교 선물인 만큼 당대 최고의 상품이 선정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복원예산을 지원한 ‘흑칠나전이층농’의 자문을 맡은 김삼대자 전 문화재위원은 “전형적인 ‘통영농’의 형태로 최상품의 나전을 주문한 것 같다”면서 “먼 경치를 표현한 구성도 기가 막힌다. 이렇게 좋게 만든 것은 처음 봤다”고 평했다. 김 전 위워은 “나라가 망해 자개를 좋게 못 만들던 시기인데 뚜껑 열면 문판에도 장식이 있고 속에는 명주로 쌌는데 이런 게 없다. 내가 보기에는 최고로 좋은 것이다”라고 덧댔다. 특히 ‘흑칠나전이층농’은 나전칠기 장인 전성규에 의해 1920년 이후 유행했다고 알려진 세밀한 끊음질(자개를 칼끝으로 끊어 채우는 방법)이 이전에도 발전했음을 알려 주는 사료로서 가치도 높다.조선 후기 화가 장승업(1843~1897)의 그림은 지금껏 학계에 보고된 바 없는 것으로 외교 선물로는 최고였다. 이번에 공개되는 ‘노자출관도’(老子出關圖)는 중국 노장 철학의 창시자인 노자가 주(周) 나라가 쇠퇴한 것을 보고 은거했다는 고사를 담았다. ‘취태백도’(醉太白圖)는 ‘이태백’으로 잘 알려진 시인 이백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크기만 174㎝가 넘는 데다 장승업이 자신의 서명 앞에 ‘조선’이라고 쓴 것은 처음 확인되는 사례다. 나라 이름을 적은 것을 보아 외교 선물로서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백동향로’는 사각과 원형의 기형은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의미한다. 황제의 치세를 표상하는 대관식의 취지를 잘 표현했다고 평가된다. 특히 길상 문자를 기준으로 직선과 유려한 곡선을 조화롭게 융합해 정교하게 투조한 문양의 구조는 일반적인 공예품에서 보기 힘든 세밀한 얼개를 보여 준다. 사각향로 노신에 ‘향연’(香煙), 둥근향로 노신에 ‘진수영보’(眞壽永寶)를 각각 새겨 대관식을 축원했다. 이번 보존사업은 중국이나 일본 전문가들의 손으로 복원돼 원형의 느낌이 묘하게 훼손됐던 다른 사례들과 달리 재단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현지인들이 제대로 복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보존 처리를 자문한 이용희 전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장은 “조금 걱정했는데 러시아에서 복원이 굉장히 적절하게 이뤄졌다. 원칙을 잘 지킨 것 같다”고 말했다. 재단 관계자는 “이번 사례를 통해 문화재를 같이 공유하고 교류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전했다.
  • 1세대 ‘각 그랜저’ 소환… 연속적 브랜드 경험·스토리텔링 입힌다

    1세대 ‘각 그랜저’ 소환… 연속적 브랜드 경험·스토리텔링 입힌다

    ‘헤리티지’(heritage). 우리말로 흔히 ‘유산’으로 번역되는 이 영어 단어는 최근 불경기 속에서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현대자동차 ‘디 올 뉴 그랜저’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한다. 우리 기억 속 ‘각 그랜저’로 남은 1세대 그랜저의 헤리티지를 십분 계승했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 하지만 둥그렇고 미래적인 디 올 뉴 그랜저의 모습에서 중후한 각 그랜저의 유산은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숨었을까. 그리고 전동화를 통해 미래 모빌리티 회사로 거듭난다는 현대차는 왜 지금 굳이 과거를 돌아보는 걸까.그랜저는 36년간 총 7세대를 거쳤다. 1986년 ‘L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일본 미쓰비시와 공동으로 개발한 것이 우리가 아는 1세대 각 그랜저의 시작이다. 현대차에 따르면 9만 2571대나 팔리며 당시 국내 대형 승용차 시장의 수요를 모조리 빨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다 1992년 2세대 ‘뉴 그랜저’가 나오며 한층 부드러워진 곡선미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후 3세대 ‘그랜저XG’(1998), 4세대 ‘그랜저TG’(2005), 5세대 ‘그랜저HG’(2011), 6세대 ‘그랜저IG’(2016)로 이어진다. 현대차는 보도자료에서 역대 그랜저의 유산을 “존중한다”는 표현을 썼다. 포인트는 크게 네 가지다. 우선 ‘엠블럼’이다. 현대차의 영문 앞 글자인 ‘H’를 타원형 모양으로 디자인한 엠블럼을 처음 사용한 모델이 2세대 그랜저다. 디 올 뉴 그랜저는 이를 계승하고 있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2세대에서는 엠블럼이 차량 전면 보닛 위에 은색으로 장식돼 고급스러움을 더했지만 이번에는 알루미늄 소재로 두께는 얇게, 면적은 넓게 다시 디자인해서 부착했다. 조금 더 미래적인 인상을 준다. 둘째, 셋째 요소는 차량 측면부에 있다. 바로 ‘오페라 글라스’다. 뒷좌석과 트렁크 사이의 공간을 ‘C필러’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에 달아 놓은 창문이 바로 오페라 글라스다. 이는 1세대 그랜저의 상징으로 차량 전반의 강인한 이미지와 어우러지는 느낌을 준다. 차량 문을 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요소로 ‘프레임리스 도어’도 있다. 이는 3세대 그랜저를 계승한 것인데, 창문의 위쪽을 잡아 주는 틀이 따로 없는 디자인을 채택했다. 차량의 옆쪽 인상을 깔끔하고 단정하게 정리해 준다. 마지막 요소는 디 올 뉴 그랜저 운전석에 탑승하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운전자의 시선을 잡아끄는 커다란 ‘원 스포크 스티어링 휠(운전대)’이다. 실제로 현대차 디자이너들이 1세대 그랜저의 헤리티지를 어떻게 계승할지 고민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으로 전해진다. 운전대는 손으로 잡는 부분인 ‘림’과 중심축을 뜻하는 ‘스티어링 허브’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스포크’로 구성돼 있다. 차량의 목적에 따라 림의 형태, 스포크의 개수는 천차만별이다. 자동차가 발전하면서 스포크는 단순히 연결하는 기능을 넘어 차량 내 다양한 기능을 조작할 수 있는 버튼들이 탑재되기 시작했다. 디 올 뉴 그랜저의 스티어링 휠은 마치 외적으로는 1세대 그랜저에 적용됐던 것처럼 하나의 스포크가 있는 형태로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베낀 것이 아니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운전자를 위한 편의 사항도 놓치지 않았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단순히 형태를 오마주한 것을 넘어 휠 주변 좌측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차간 거리 설정, 차로 유지 보조 등의 기능과 우측에는 음성 인식, 전화 통화 등 다양한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쉽게 제어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전했다. 현대차의 ‘뿌리 찾기’는 비단 이번 그랜저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앞서 지난 7월에는 수소하이브리드차량 ‘N 비전 74’를 선보였는데, 이는 1974년 제작됐었다가 지금은 사진만 덩그러니 남은 ‘포니 쿠페’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차이기도 하다. 현대차의 첫 번째 전용 플랫폼(E-GMP)이 장착된 전기차 ‘아이오닉5’ 역시 현대차가 한국 자동차 사상 처음으로 양산에 성공했던 ‘포니’의 디자인 요소를 계승한 차이기도 하다. 현대차는 아예 유산을 철저하게 남기기 위해 포니를 디자인했던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에게 포니 쿠페의 복원을 맡기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레트로’(복고풍) 디자인이 유행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이어지는 연속적인 브랜드 경험과 스토리를 치밀하게 구축하기 위한 디자인 전략이다. 현대디자인센터장을 맡은 이상엽 부사장은 최근 주지아로와 만난 ‘디자인 토크쇼’에서 ‘앞으로도 과거의 헤리티지를 계승한 디자인의 신차를 내놓을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다양한 말이 체스판에서 활약하는 게 우리의 기본적인 디자인 전략이다. 헤리티지야말로 체스에서 가장 중요한 ‘킹’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유산을 계승하는 디자인은 매우 어렵다. 공학적 한계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형 그랜저에서도 그러했듯 앞으로도 우리는 여러 한계를 극복하고 과거를 계승하는 디자인을 계속 선보이겠다고 약속한다.” 
  • 우리술, 10년 연구 끝에 개발한 ‘옥지춘’ 1월 중 출시 예정

    우리술, 10년 연구 끝에 개발한 ‘옥지춘’ 1월 중 출시 예정

    전통주 제조업체 ‘우리술’은 10여년의 오랜 연구 끝에 가평잣막걸리의 원형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고 21일 밝혔다. 우리나라 최초의 조리서인 조선시대 ‘산가요록’(어의 전순의·1459년)에서 잣을 이용해서 만드는 유일한 술인 ‘옥지춘’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술’은 10여년 전부터 막걸리의 역사와 전통의 뿌리를 찾는 작업을 지속해 왔으며 그 연구의 일환으로 가평잣막걸리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힘써왔다. 막걸리 대중화 시대에 천편일률적인 맛보다는 오히려 전통 양조방식에 충실한 특별한 막걸리를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히는데 주안점을 둔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둔 것이다. 연구를 총괄한 김진국 우리술 연구소장은 “고문헌에 나와 있는 전통적인 원형 그대로를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 양조용 쌀도 토종벼인 ’흰베‘ 품종을 사용했으며, 토종 누룩(국)과 가평잣 외에 어떠한 감미도 하지 않고 발효를 진행시켜 걸죽한 고형분 형태면서 적절한 산미가 어우러진 독특한 막걸리를 복원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복원한 옥지춘은 내년 1월 정식으로 출시할 계획이며, 유통 채널 선정 등 세부적인 후속 작업이 진행되는 대로 일반 소비자가 접할 수 있게 된다. 1928년 조종양조장을 계승한 뿌리 깊은 기업 ‘우리술’은 ‘막걸리로 온 세상을 즐겁게’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막걸리 업계 처음으로 2013년 HACCP(식품안전관리) 인증을 받았다. 다양한 막걸리로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젊은 층까지 공략해 막걸리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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