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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찰랑찰랑 비즈 인테리어

    ■ 더위 식혀주는 구슬 발 올여름은 그냥 더운 정도가 아니라고 한다.‘사상 초유의 폭염’이라는 무시무시한 수식어를 동반한 더위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에어컨 바람에 더위를 식힐 생각하니 벌써부터 숨이 콱콱 막힌다.잠시 에어컨을 끄고 집안 문을 앞뒤로 열어둔 채 대(大)자로 뻗어 잠을 청한다면 보기 흉할까. 발이 필요하다.중국집에서 보던 촌스럽고 탁한 느낌의 발은 잊자.대신 투명하고 영롱한 구슬로 만들어 신비한 느낌까지 주는 비즈(beads)발을 걸자.빛을 받으면 눈이 즐거울 뿐 아니라 시원한 느낌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올여름,비즈발과 함께라면 집안에 앉아 있어도 시원하다. ●여름 인테리어 인기 아이템 비즈발이 국내에 선보인지는 4,5년쯤 됐다.보통 호텔이나 백화점 등 사업장에서 주로 볼 수 있었다.하지만 최근 1,2년 사이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재료에 따라 여러 느낌을 낼 수 있지만 대부분 투명하고 시원한 느낌이 나서 여름에 사랑받는 집안 꾸미기 아이템이다. 주로 현관이나 거실과 주방 사이에 걸어 공간을 분리하는 기본적인 용도에서 인테리어 효과까지 볼 수 있어 인기다.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 비즈발은 창가에 걸어 두면 가장 아름답다.자연광을 받아 구슬이 제대로 색을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벽에 걸어도 비즈발은 집안 분위기를 새롭게 만든다.가구를 들여놓거나 액자를 달기에 마땅치 않은 벽에 간격이 넓은 비즈발을 걸면 밋밋한 느낌을 없앨 수 있다.또 커튼 위나 식탁보 끝에 달면 식상한 공간에 색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 여름이라고 해서 반드시 파란색이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다.집안 분위기와 어울리는 색을 기본으로 하되 시원한 느낌을 주는 색의 구슬을 포인트로 쓰면 된다.또 흰색과 검은색처럼 서로 상반되는 색으로 엮어도 청량감을 준다. ●직접 만들면 1석 2조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직접 만드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우선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촘촘한 느낌을 주는 20줄짜리 발 완제품이 평균 7만,8만원 정도지만 직접 만들면 3만∼4만원이면 OK.작업하는 데 필요한 공구가 3000원 안팎이므로 한번 만드는 데도 부담이 없다. 또 직접 만들면 나만의 개성 있는 발을 만들 수 있다.시원함을 극대화해 주는 유리볼과 섞어 만들거나 리스를 이용해 입체적인 발도 만들 수 있다.또 조화용 나뭇잎 등을 섞어 집안에 자연의 느낌을 더해 줄 수 있다. 비즈발 만들기는 일반 비즈공예와 달리 쉽다.초등학생도 5분이면 배울 수 있다. 최여경 나길회기자 kid@seoul.co.kr ■ 도움말 핑크윙 배정희 실장,인테리어디자이너 강강순,소품 전문점 뜰에빛 백윤정 대표 ■ 여기서 팔아요 재료를 직접 보고 고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은 ‘동대문 종합상가’다.액세서리를 만드는 비즈공예 재료는 남대문이 종류도 많고 가격도 저렴하지만 비즈발 재료는 그렇지 않다.비즈발 재료의 경우 대부분 수입이 아닌 국산이기 때문이다. 또 남대문은 대부분 도매(100∼1000개 단위)로만 판매하기 때문에 대량 으로 사용하지 않는 일반인들이 이용하기 적당치 않다.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 9번 출구.(02)2262-0114. 초보는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는 게 편하다.가격은 대량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 크게 연연해 할 필요가 없을 만큼 비슷하다.대신 선택의 폭을 좁혀준다. 인기 많은 비즈를 구입해 구성하거나 디자인이 정해진 DIY세트도 괜찮다. 핑크윙(www.pinkwing.co.kr),비즈박스(www.beadsbox.co.kr) 등이 대표적인 사이트.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이렇게 만들어요 재료준비 (1줄 당)땅콩체인 110㎝,92각 구슬 20㎜ 6개,14㎜ 11개,고정볼 17개,원형 누름쇠,집게공구 #step1 땅콩체인 끝부분을 동그랗게 돌려 두줄을 모아 원형 누름쇠 안에 넣고 집게공구로 세게 눌러 고정한다. #step2 이때 고리의 지름은 커튼봉의 지름보다 커야 한다.(원안은 고정된 모습) #step3 땅콩체인에 구슬을 하나 넣고 고정볼을 끼운 다음 집게공구로 고정시킨다.같은 방법으로 구슬과 고정볼을 번갈아 끼운다. #step4 맨끝부분에도 고정볼을 끼우고 마무리한다.밖으로 삐져 나온 부분은 가위나 니퍼 등으로 정리한다.
  • 노량진 뉴타운 녹지비율 40%로

    개발에서 소외됐던 노량진 일대가 오는 2012년까지 상업·업무지역과 녹지 중심의 주거단지로 집중 개발된다.서울시와 동작구는 21일 동작구 노량진동 270 일대 76만 2160㎡(23만 900여평)에 대한 ‘노량진뉴타운 개발구상안’을 발표했다. ●노량진,상도 양대 축으로 노량진뉴타운은 노량진역을 중심으로 노량진지구와 장승백이역을 축으로 한 상도지구로 나뉘어 개발된다. 노량진지구에는 여의도와 용산 부도심을 배후에서 지원할 사무실·소호형 주택·공연장 등이 집중 유치된다.상도지구엔 전문쇼핑몰과 의료시설,패스트푸드점 등 지원시설이 들어선다. 장승백이길 양쪽으로 너비 10m짜리 보도가 만들어지고,대형 할인점과 복합 영화관 등을 갖춘 25∼30층 규모의 빌딩 4개를 묶어 주거 겸용 매머드 타운센터도 들어선다. 노량진뉴타운은 오는 10월 세부적인 개발기본계획이 확정되면 11월 중 착공할 예정이다.1단계로 2007년까지 남쪽인 타운센터와 신노량진시장·노량진 1구역 및 상도지구 재개발이 완료된다.다음 2단계로 4차로인 장승백이길을 25m에서 40m로 확장하는 한편 중앙상업가를 축으로 한 이면도로 주변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게 된다. 대부분 도로가 4m 안팎으로 비좁고 접도율이 17%뿐인 열악한 환경을 해결하기 위해 격자형 내부 도로망을 거미줄처럼 뚫는다.총연장 6㎞에 이르는 노량진역∼장승백이∼상업단지 순환 자전거도로망과 연장 2.6㎞,폭 6∼27m의 보도를 개설해 자전거도로와 녹지를 잇는다. ●녹지 풍부한 ‘전원도시’ 노량진뉴타운은 녹지가 40% 이상인 전원형이다.푸른 녹지공간을 느낄 수 있는 마을로 만들어 나간다는 구상이다.현재 녹지율이 1.9%로 1인당 0.5㎡에 그치고 있지만 공사가 매듭되면 녹지 비율은 40%,개인당 9.5㎡로 높아진다.이를 위해 현재 2곳인 공원을 6개로 늘린다.뉴타운에는 1만 2500가구가 건립된다.중·소형 임대주택이 2200가구,중형주택 4800가구,여의도에 근무하는 외국인과 전문직 종사자를 겨냥한 중·대형아파트 1000가구,소호형 주택과 단독주택 4500가구 등이다.어디서나 실개천을 즐기도록 백로공원∼장승공원으로 도는 순환형 물길을 조성한다.북쪽으로 한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공원도 마련된다. 김경규 동작구 부구청장은 “지하철 1·7호선과 공사 중인 9호선이 지나가는 등 빼어난 교통여건과 여의도 금융업무단지를 배후 지원하는 상업·주거단지 기능으로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한편 쾌적한 생태공간으로 가꿀 것”이라고 밝혔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R&D서비스’ 창업 稅감면

    새로 창업한 연구·개발(R&D) 서비스업체가 올해부터 고용을 창출하면 고용증가율에 비례해 법인세와 소득세를 최고 전액 면제받는다.고용 창출이 없어도 창업 중소기업과 마찬가지로 4년간 법인세와 소득세를 50% 감면받는다. 또 내년부터는 이들 업체에 근무해도 병역특례요원으로 인정되며,기업부설연구소와 똑같은 세액공제 혜택도 받게 된다.R&D 업무를 전문으로 기획,평가 관리하는 자격증(연구기획평가사) 제도도 도입된다. 아울러 급속히 진행되는 노령화 사회에 대비해 ‘실버산업진흥법’이 새로 만들어진다.기존 주택을 노인들이 생활하기 쉽게 문턱을 없애는 등 ‘무장애 주택’으로 개·보수하면 정부 지원금을 주는 방안도 검토된다.3세대가 함께 사는 맞춤형 동거주택과 역모기지론(집을 담보로 생활비를 대출해주는 것) 공급도 활성화된다. 정부는 16일 과천청사에서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경제장관간담회를 열어 이같은 내용의 ‘연구개발서비스업·실버산업 육성방안’ 등을 결정했다. 정부는 국내 연구개발서비스업 기반이 선진국에 비해 너무 취약하다고 보고 정부출연연구소나 대기업 부설연구소로부터 R&D 서비스 기능을 분리,독립시키는 방안을 적극 유도하기로 했다.이를 위해 올 하반기부터 창업 R&D서비스 기업에 대해서는 4년간 세금을 50% 감면해주고,고용증가율에 비례해 추가 감면혜택을 준다. 또 내년 상반기부터 기술개발 위탁에 들어간 돈은 세금부담이 없는 ‘비용’으로 인정해주고,사업용 자산구입 및 시설투자에 대해서도 투자비용의 7%를 세금에서 깎아준다.병역특례업체로도 추가 지정돼,이들 업체에 4년간 근무하면 병역의무를 대체한 것으로 간주된다.기업체 부설연구소들이 받고 있는 혜택을 그대로 주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또 실버산업 지원의 법적 근거인 ‘실버산업진흥법’ 제정안을 올 가을 정기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법이 통과되면 의료·요양·여가·생산활동 등이 복합된 전원형 복합실버타운모델 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아더 왕 이야기/장 마르칼 지음

    바위에 꽂혀 있던 명검 엑스칼리버를 뽑아 영국의 왕이 된 아더.‘아더 왕과 원탁의 기사들’ 이야기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아더는 정의롭고 용감하며 관대한 군주로,영국뿐 아니라 프랑스나 독일문학에도 심심찮게 등장한다.아더 왕은 이렇듯 유명하지만 정작 그의 이름은 역사에 기록돼 있지 않다.켈트족의 전설적인 영웅으로만 존재할 따름이다.왜 지금 아더 왕인가. 최근 ‘아더 왕 이야기’(장 마르칼 지음,뮈토스 펴냄)를 우리말로 번역한 김정란 교수(상지대)는 아더 왕이라는 인물 자체보다는 아더 왕을 매개로 켈트신화를 바로 이해하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고 강조한다.우리는 사실 ‘반지의 제왕’이나‘해리포터’ 같은 영화들을 통해 켈트신화를 알게 모르게 소비하고 있다.국내에서도 켈트음반,켈트게임 등이 인기를 모으는 등 켈트신화 붐이 일 조짐도 있다.김 교수는 “켈트신화는 유럽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상종가를 치고 있는 듯하다.”는 정치·사회적 해석도 내놓는다.유럽통합이 광범위하게 실현되면서 유럽인들이 스스로를 한데 묶을 수 있는 신화적 바탕이 절실해졌다는 얘기다. 아더 왕 전설에서 왕권을 쥐고 있는 쪽은 여성이다.또 여신이 문제를 해결하는 현자의 역할을 대신한다.여신이 남성을 보조하거나 들러리 구실을 하는 다른 신화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김 교수는 켈트신화의 강한 여성성을 ‘미녀와 야수’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아더 왕 전설에서는 남녀 한 쌍의 원형이 ‘미녀와 야수’가 아니라 ‘미남과 야수’다.미녀가 남성 야수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는 게 아니라,미남이 여성 야수에게 다가가 입을 맞춘다.” 그에 따르면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신성을 가지고 있는 자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인 셈이다. ‘아더 왕 이야기’의 줄거리는 낯설지 않다.아더 왕과 기네비어 왕비,왕비를 사랑하는 호수의 기사 란슬롯,그리고 원탁의 기사들이 빚어내는 웅장한 모험담이다.‘현대의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장 마르칼의 ‘아더 왕 이야기’(전8권)는 아더 왕 전설군(群)에 속한 모든 신화와 전설들을 아우른 결정판이란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이번에 나온 것은 아더 왕과 성배의 전설이 시작되는 ‘엑스칼리버’편과 가웨인을 비롯한 수많은 기사들의 모험이 종횡무진 펼쳐지는 ‘원탁의 기사들’편 등 두 권.연말까지 ‘호수의 기사 란슬롯’‘요정 모르간’‘가웨인과 아발론의 길’‘웨일스인 퍼시발’‘갈라하드와 어부왕’‘아더 왕의 죽음’ 등이 차례로 출간된 예정이다. 그리스 신화가 서양문화의 근간이 된 것은 분명하다.하지만 그것이 신화의 전범이 될 수는 없다.최근의 ‘그리스 신화 편식현상’은 신화 자체를 외곬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 않다.김교수가 ‘켈트신화의 전도사’로 나선 것은 우리의 그런 왜곡된 문화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각권 89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올림픽 2780년의 역사/주디스 스와들링 지음

    ●올림픽, 아는 만큼 보인다 올림픽의 역사는 기원전 77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그러니까 올해 아테네 올림픽까지 따지면 그 역사는 2780년에 이른다.고대 올림픽은 원래 제우스신을 찬미하기 위한 종교행사로 출발했지만 종교적 의미는 점차 빛을 잃었다.392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정하고 이교도 숭배를 금지하면서 올림픽 경기는 마침내 394년 중단되고 말았다.올림픽이 다시 살아나는 데는 1896년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현대 올림픽이 탄생하기까지 100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예술작품과 마찬가지로 올림픽도 아는 만큼 보인다.올림픽 경기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단순한 규칙뿐만 아니라 그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때마침 나온 ‘올림픽 2780년의 역사’(주디스 스와들링 지음,김병화 옮김,효형출판 펴냄)는 그런 점에서 퍽 반가운 책이다.대영박물관의 그리스·로마 유물국 부국장인 저자는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평원의 유적과 박물관 소장 유물들을 분석,고대 올림픽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고대 올림픽의 기원과 의미,경기 종류와 규칙,올림픽 여성수난사 등 고대 올림픽에 관한 사항들을 폭넓게 다룬다. ●신의 경지에 이르려던 욕망의 표출 고대 올림픽은 신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운동경기를 통해 풀어준 축제였다.그리스인들은 신의 도움을 얻은 자만이 올림픽에서 우승할 수 있다고 믿었다.그러기에 선수들은 경기에 앞서 규칙을 지키겠다는 서약과 함께 신의 은총을 비는 공양을 최고신 제우스에게 올렸다.제우스에겐 황소 100마리를 바쳤다.이 대규모 희생공양은 축제 중간 날,즉 보름날 바로 다음날 아침에 치러졌다.고대 그리스인들은 일몰부터 다음 일몰까지를 하루로 계산했기 때문에 보름날과 희생공양일은 같은 셈이다. 고대 올림픽 경기 중엔 흥미로운 게 많다.호플리토드로미아,즉 갑주경주는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끌 만하다.25명의 주자가 참여하는 이 경주에서 선수들은 투구를 쓰고 정강이받이(종아리갑주)를 차고 원형 방패를 들고 달린다.절그렁 절그렁 소리를 내며 달리는 기묘한 광경은 상상만 해도 우스꽝스럽다.제우스 신전엔 지금도 그들이 사용한 방패 한 벌이 보관돼 있다. ●고대에도 올림픽은 ‘국경 초월한 잔치’ 고대 올림픽은 오늘날처럼 세계인이 참여하는 지구촌 잔치였을까.고대 그리스 올림픽 하면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한 작은 나라에서 열린 행사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당당한 국제 행사였다.고대 그리스는 미노아 문명 이래 지금의 터키,이집트,리비아,스페인,프랑스,이탈리아 등을 무대로 한 지중해 지역의 초국가적 공동체였다.올림픽은 지역의 통합에 기여했다.올림픽 경기가 계속되는 동안 이뤄진 이른바 ‘올림픽 정전(停戰)’은 일시적인 것이었지만 그리스 도시국가와 식민국가를 통합시키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 저자가 그려 보이는 고대 올림픽의 모습은 지금의 올림픽과 별로 다르지 않다.그 옛날에도 선수들은 과학적인 훈련방법을 택했으며 경기력 향상을 위해 약물복용도 서슴지 않았다.고대 올림픽과 의사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경기 임원들 가운데 한 명은 으레 의사가 차지했다.‘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바람직한 운동경기용 식단과 상처에 대한 치료법을 남겼으며,명의로 이름을 떨친 고대 그리스 의학자 갈레누스는 검투사를 담당하기도 했다.4세기 후반 올림픽의 중요경기들이 중단되는 바람에 의술의 발전이 멈췄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1900년 이후에야 여성 참여 가능 올림픽과 여성도 의미있는 주제.고대 올림픽이 열린 올림피아는 금녀의 땅이었다.올림픽 축전에 대해 많은 기록을 남긴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는 ‘그리스 이야기’에서 “올림픽 경기에서 발각된 여성은 모조리 깎아지른 듯한 티파에움 산에서 거꾸로 내던져졌다.그것은 고대국가 엘리스의 법이다.”라고 적고 있다.올림픽 경기에선 이처럼 여성이 배제됐지만 여성들만의 축제도 있었다.‘헤라이아’라고 불린 행사다.헤라 여신을 찬양하기 위한 이 대회도 올림픽처럼 4년마다 열렸지만 경기라고는 달리기 하나밖에 없었다.여성들이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것은 1900년 이후부터.하지만 현대 올림픽 초창기 여성은 테니스(1900년),궁술(1904년)에만 참여할 수 있었다. 오늘날 올림픽은 상업주의에 빠져 본연의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을 듣는다.고대 올림픽에서도 물론 뇌물과 스캔들,스폰서 제도,대중 선전 등이 힘을 발휘했다.최고 기량의 선수들은 우승을 노리는 도시국가에 ‘판매’되기도 했다. 올림픽이란 무엇인가.“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성공이 아니라 노력인 것처럼,올림픽 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다.핵심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잘 싸우는 것이다.” 현대 올림픽을 창시한 쿠베르탱 남작의 올림픽 정신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1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우리 창작극 세계인이 함께 본다

    우리의 순수 창작물 2편이 해외 무대에 진출한다.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열리는 제40회 카르타고 국제페스티벌에 초청된 국립극장(극장장 김명곤)의 총체극 ‘우루왕’과 캐나다 토론토에서 공연하는 에이콤 인터내셔널(대표 윤호진)의 뮤지컬 ‘명성황후’. 먼저 카르타고국제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선정된 ‘우루왕’은 15일 카르타고시 야외 원형극장에서 공연한다.카르타고 국제페스티벌은 연극,오페라,무용 등 모든 장르를 아루르는 아랍 및 아프리카 지역 최대 공연예술축제이다.‘우루왕’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우리 고대설화인 ‘바리데기’를 혼합한 작품으로,판소리·한국무용·국악관현악 등 우리 전통 공연 양식을 활용했다.김명곤 극장장이 대본과 연출을 맡고,국립극장 산하 4개 예술단체 소속 예술가 42명이 출연한다.‘우루왕’은 2000년 경주문화엑스포에서 초연된 이후 지난해 터키 아스펜도스 야외 원형극장 공연 등 모두 5차례 해외공연에 초청됐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8월5일부터 9월1일까지 캐나다 토론토 허밍버드센터에서 공연한다.지난 95년 초연된 이래 뉴욕,LA,런던 등지에서 공연했지만 주로 해외교포 위문 성격에 그쳤던 것에 비해 이번엔 캐나다 굴지의 프로덕션인 머비시프로덕션의 2004·2005 시즌 프로그램으로 선정돼 개막작으로 무대에 오른다.록그룹 ‘퀸’의 노래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위 윌 락 유’,브로드웨이 흥행작 ‘위키드’ 등이 ‘명성황후’와 함께 초청됐다.에이콤은 “다른 참가작과 패키지로 판매되는 티켓이 벌써 4만장이 팔려 60%의 예매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토론토 공연에는 이태원(명성황후) 김성기(미우라) 등 기존 출연진과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윤영석(고종) 등이 참여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아테네올림픽 D-30] 金보다 값진 ‘영광의 상처’

    국가대표 선수들은 대부분 몸에 금메달보다 값진 ‘영광의 상처’를 하나쯤 지니고 있다. 대표적인 종목이 레슬링과 유도 등 격투기 선수들의 뭉그러진 귀.‘레슬링 영웅’ 양정모(52)씨의 귀가 아직까지 펴지지 않은 것을 보면 이 종목의 선수들은 평생 일그러진 귀를 갖고 살아야 할 것 같다. 매트에 수없이 귀를 비벼서 뭉툭해진 것 같지만 사실은 상대방의 몸에 부딪혀 실핏줄이 터지면서 생긴 상처다.피가 밖으로 분출되지 못하고 피부 안에서 고인 뒤 딱딱하게 굳은 것.안한봉 대표팀 코치는 “레슬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 10개월쯤 지나면 이렇게 된다.”고 말했다.올림픽 2연패를 노리는 여자양궁의 에이스 윤미진(21·경희대)의 갸름한 턱과 앵두 같은 입술에는 활시위 자국이 선명하다.양궁선수들에게 입술과 턱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나 다름없다.처음에는 닿는 부위가 일정치 않지만 5개월 정도 지나면 기계처럼 일정해지고,입술과 턱에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남는다. 역도 선수들의 엄지손가락은 유난히 못생겼다.보통 주먹을 쥔 듯한 손모양으로 바벨을 들어 올리면 자칫 빠져나갈 우려가 있어 선수들은 바벨을 잡을 때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 엄지손가락을 감싼다.결국 엄청난 무게의 바벨이 엄지를 짓누르는 셈이어서 손가락이 변형되기 십상이다. 펜싱선수들의 손에는 특이하게도 3곳에 엄청난 굳은살이 박혀 있다.엄지와 검지 사이의 움푹 패인 부분,손바닥과 손목이 만나는 지점은 각각 강철로 된 칼자루(피스톨)가 닿는 부분이며,중지 가운데 윗마디는 칼날(블레이드)과 칼자루의 접점에 있는 원형의 보호막(가드)과 맞닿기 때문에 굳은살이 생긴다.여자배구선수들의 배에는 남자 못지 않은 ‘왕(王)’자가 새겨져 있다.복근력이 약하면 점프는 물론 공중에 떠서 자유롭게 공격을 할 수 없어 체력훈련의 대부분을 복근력 강화에 쏟는다.대표팀에서는 주포 구민정(31·현대건설)과 최광희(30·KT&G)의 복근력이 단연 최고로 꼽힌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 국립극장 17~21일 ‘범패 페스티벌’

    속세에서 접하기 힘든 불교음악 범패(梵唄)와 불교무용 작법(作法)을 서울 도심 야외무대에서 감상하는 기회가 마련된다.17∼21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리는 ‘범패 페스티벌’은 국립극장이 민족문화의 원류를 찾고자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이번 무대는 각 지방의 사찰에서 전승되고 있는 5편의 범패와 작법을 선보이는 자리로,우리 전통예술의 한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 의미있는 공연이다.범패는 불교의식인 ‘재(齋)’를 올릴 때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며 부르는 노래로,정가·판소리와 함께 3대 전통 성악으로 꼽힌다. 인도에서 발생해 9세기쯤 당나라를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진 유래 때문에 주로 산스크리트어나 한문으로 돼 있지만 전승 과정에서 우리말 가사와 곡조로 된 한국식 범패 ‘화청’‘축원’등도 불려졌다.민요 명창들이 불러 유명해진 ‘회심곡’이 한 예이다. 무대에 오를 범패와 작법은 서울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영산재’(17일),전라도의 ‘영산작법’(18일),영남의 ‘불모산 영산재’(19일),조계종 스님들이 펼치는 ‘범패와 작법’(20일),현대 언어로 만들어진 ‘현충재’(21일).범패는 난이도가 높아 범패를 제대로 전수받은 스님들만이 수행할 수 있다.현재 태고종 사찰인 서울 봉원사에 보존회가 결성돼 범패와 작법을 가장 잘 보존·전승하고 있으며, 지방에 따라 전라도식 범패와 경상도식 범패가 전승되고 있다. 이번 무대에는 조계종 전통의식연구원,영산작법보존회,불모산 영산재보존회,조계종 불교어산작법학교,범패와 작법무보존회 등 주요 단체들과 동주 스님,이석정 스님,석봉스님,인묵 스님 등 예능 보유자들이 참여한다.영산재는 보통 사흘에 걸쳐 열리는 대규모 행사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각 범패의 주요 부분을 간추려 1시간30여분 길이로 축약해 선보일 예정. 예술감독을 맡은 최종민 국립극장예술진흥회장은 “불교를 빼놓고 한국문화를 모두 다 안다고 할 수 없듯이 불상·불탑 감상 못지않게 불교음악과 불교무용을 직접 보고 듣는 것도 한국문화의 깊숙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행사의 의의를 설명했다. 국립극장은 이번 ‘범패 페스티벌’에 이어 내년에는 ‘굿 페스티벌’을 마련할 예정이다.1만 5000∼2만원.(02)2280-4115.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칠산바다 지키는 수성당할머니

    ●깎아지른 절벽위 여신모신 성소가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새삼 에게해와 그리스신화가 관심을 끈다.아테네 도심의 파르테논 신전 못지않게,아티카반도 끝자락 수니온곶(串)의 포세이돈 신전도 낙조 풍경과 어울려 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포세이돈 신전.에게해의 찬란한 석양이 비끼는 천애 절벽에 각인된 역사와 신화의 지문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신화시대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다.바다의 신 포세이돈.그의 뜻에 따라 질풍과 노도가 일어나니,바다의 모든 것이 그 앞에서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포세이돈의 황금전차가 말발굽 요란하게 바다 위를 가로지를라치면 거센 폭풍은 간데없고 잔잔한 고요가 그를 옹위했다.원형은 파괴됐으나 15개의 도리아식 원주는 고스란히 남아 에게해의 험한 바닷길을 아우르고 있다.지금도 이 신전 앞을 지나는 그리스 어부들은 고개 숙여 예를 표한다.첨단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뱃길에 나선 사람은 누구나 포세이돈의 신화적 영력에 깊은 외경과 간절한 기원의 뜻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반도국가 그리스의 끝자락에 바다의 신전이 있다면,같은 반도국가인 우리의 사정은 어떠할까? 우리라고 왜 바다신을 모신 신전이 없을까만,남의 떡만 크게 보이고,내 것은 초라하게만 여기는 문화사대주의의 병폐가 여기에서도 예외는 아니다.나이아가라폭포의 웅장함에 취해 박연폭포 정도는 ‘애들 장난’으로 치부하는 이들에게 필자가 줄 수 있는 최선의 해답은 ‘우리 것부터 좀 챙겨 보라.’는 충고이다.포세이돈이 중요하다면,중국의 여자 해신 마조(祖)도 알 필요가 있으며,더불어 ‘문화 종다원성’을 위해서라도 한반도 바로 이 땅의 수성당할머니를 생각해야 한다. ●서해바다 거닐며 거친 물길 다스려 해신은 세계 어느 바다에나 있었고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변산반도의 끝자락 격포 수성당은 우리 해신의 위엄과 격식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신성(神聖)의 성소(聖所) 격이다.우선,위치가 눈길을 끈다.잘록한 자루처럼 돌출한 곶의 깎아지른 절벽을 ‘성소’로 선택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수성당 길목은 해안초소를 설치해 민간인 출입을 막는 군 작전구역이었다.그 후 전주박물관에서 이곳 일대를 발굴한 결과,고대의 제사터임이 확인되었다.민간의 구술(口述)전승이 이루어진 이곳에서 확인 발굴이 이루어졌음은 우리 문화에서 구술이 지닌 실증적 힘을 웅변한다.트로이문명이 애초에 구술과 신화에서 출발했다가,훗날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입증된 것과 다를 게 없다. 수성당은 시누대가 창검처럼 밀집해 빼곡하게 들어찬 단애(斷崖)에 숨어 있다.바닷물이 밀물처럼 다가와 이 안에 들면 절벽에 서있다는 느낌을 잊게 된다.그러나 자칫 한발 잘못 내디디면 벼랑으로 곤두박질이다.오금이 저리도록 가파른 곶.벼랑 아래로는 여근처럼 갈라진 해식동굴이 있어 조수가 드나들며 보는 이의 현기증을 자아낸다.일명 용굴 혹은 여우골이라 불리는 이곳이 수성당할머니의 거처이다.서해 어업의 중심기지였던 위도가 굽어보이는 칠산바다의 관망대에 해당하는 곳으로,임진왜란 때 왜군이 여우골로 몰려오는 것을 할머니가 무찔렀다는 전설은 지금도 남아 전한다. ‘개양할미’라고도 불리는 수성당할머니는 딸만 여덟을 낳아 각도에 한명씩 시집보냈다고 전해진다.더러는 그녀가 딸 일곱을 낳았으며,그들이 수성당에서 굽어보이는 칠산바다의 일곱 섬 지킴이가 되었다고도 한다.수성당 할머니는 엄청나게 큰 키로 굽나무신을 신고 저벅저벅 서해바다를 걸어다녔다.위험한 곳에는 표지를 남겨 어부들이 해를 입지 않게 돌보았으며,심지어 수심까지 재어 어부들이 알도록 했다.괴력난신(怪力亂神)의 힘을 보여준 ‘서해 창건주’의 전설이므로 이 말이 맞느냐,아니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변산 격포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정초에 정성껏 제물을 마련해 이곳을 찾는다.세상이 바뀌어 서해 여신으로서의 지위는 볼품없이 쪼그라들었지만 그때의 마을굿 양식이 여전히 잔존해 있으며,무신도도 걸려 있었으나 지금은 불타고 없다.‘1804년 상량(上樑)’이라고 적힌 상량문으로 미뤄 적어도 200여 년 전에 이 신당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신당이 어찌 사람의 신탁(神託)의식과 같은 나이일 수 있겠는가.이 상량문과 무관하게 훨씬 이전에 신당이 있었고,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의 가슴 속에 수성당할머니가 살아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수성당은 변산반도 일대를 지켜주는 ‘지역신’으로 ‘강등’되었으나,그 해양문화적 원형은 바다를 지켜주는 거녀(巨女)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다.제주도의 설문대나 전국에 골고루 분포한 마고할매는 수성당할머니의 문화적 원형이다.마고나 설문대가 순 토속어인 반면 수성(水星)이라는 한문투 용어가 후대에 덧 씌워졌을 뿐이다.즉,마고식의 해양문화 원형질에서 수성이란 지역적 여신이 탄생한 것이다. ●거대한 치맛자락에 가려 어둠 내리고 사실,우리의 의식에는 가부장적 남신들만 가득 차 있었다.그러나 바다만은 달라 그곳은 늘상 여신들의 무대였다.바다는 모든 생명체가 탄생한 최초의 자궁이다.그런데도 기이하게 바닷가에서 여성은 사실상 금기의 대상이다.지금은 그런 금기의식이 많이 희석됐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신권(神權)만큼은 여신의 손아귀에 놓여 있다.‘여신을 숭앙하는 바다’의 신권과,‘여성을 배척하는 바다’의 생활이란 두 측면은 바다문화를 둘러싼 대단한 역설을 설명해 주는 단초가 된다. 수성당에서 서쪽을 굽어보니 초여름 햇살을 받은 칠산바다가 싱싱한 비늘을 반짝이며 꿈처럼 펼쳐져 있다.그곳에 서서 신화적 상상의 날개를 펼쳐본다.수성당에 기대 칠산바다를 바라보는 마음의 물길을 따라 당할머니가 들어왔다.그녀는 저물어 수평선 아래로 잠겨드는 해를 안간힘으로 붙들려고 했으며,그러다가 이른 저녁의 별밭을 거닐어 내게 이른 것이다.그 덕분에 칠산바다는 여름의 붉은 황혼에 늦도록 젖어 있었다.흡사 쌩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첫마디를 속삭였을 때처럼 그렇게 붉게. 그녀는 깊은 바닷물에 겨우 발목만 적신 채 아주 천천히 걸음을 떼고 있다.아주 천천히,우리 역사의 태고적 울림은 그렇듯 바다로부터 시작되었다.서해바다가 아직 형성되지 않아 우리와 중국이 육지로 맞붙어 있던 그 옛날의 땅을 디디고 걸었음직한 그런 발걸음이다.생각해 보면 수성할머니 같은 거녀는 한반도 탄생의 비밀을 알려주는 중요한 존재가 아닐수 없다. 여신들은 늘 바닷가를 뚜벅뚜벅 걸어다녔다.풍랑이 일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는 깊었다.깊은 곳으로 발을 잘 못 내디뎌 빠지는 바람에 치맛자락이 살짝 젖었다.끝모르게 큰 여신들이었지만 치맛자락이 젖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그녀는 젖은 치마를 벗어 산 위에 펼쳐 널었다.산에서는 난리가 났다.치마를 널자 지상이 온통 컴컴해졌고 동물들은 갑자기 맞은 밤이 두려웠을 것이다. 여신은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소피도 여러번 보았다.여신의 오줌이 물길을 만들어 곳곳에 강이 생겨났다.여신의 똥은 군데군데 섬으로 남았다.저녁 무렵에 찬 이슬을 맞자 마고는 기침을 했다.그러자 폭풍이 불어 풍랑이 일었고,산과 들의 나무들이 뿌리째 뽑혔다.이윽고 밤이 왔다.여신은 하늘의 별을 만지고,달을 껴안고 그렇게 외로운 밤을 지냈다.참으로 외로웠다.사람이 탄생하기 전이라 그녀를 즐겁게 할 미물 인간이 아직 없었던 탓이다. ●위도 핵폐기장엔 인간사 갈등 고스란히 얼마나 컸으면 바다를 걸으며 치맛자락만 적셨을 뿐일까.참으로 막강한 여성의 위력이다.우리 신화의 들머리를 차지하는 마고,수성당할머니 등은 지모신(Great Mother,Mother Goddess)이다.수성당을 찾아온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잃어버린 여성의 힘.거녀로서 세상을 창조하는 거대담론을 이끌어 온 문화적 원형질을 당할머니에게서 발견한다.현대인들은 그만 그 거대한 신화적 힘,자연친화적 순응을 거부하고 말았으니,수성당 코앞의 새만금간척지나 위도 핵폐기장 같은 인간사의 복잡다단한 갈등이 그것이다. 당할머니가 바다를 걷는 발자국소리를 듣노라니 상상력은 멀리 상전벽해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왜 하필이면 국가적인 큰 제사터가 수성당에 자리잡고 있었을까.우리는 그동안 ‘전북지역은 곧 백제문화권’이라는 도식적 편견에 함몰돼 있었다.전주박물관 발굴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유병하는 이를 3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의 마한,백제,가야,왜의 노천제사라고 주장했다.3세기 후반에는 마한,4세기는 마한과 백제,5세기 전반과 6세기 전반은 백제,가야,왜의 제사가 이루어진 듯하다. 마한,백제는 그렇다치고 멀리 가야와 왜의 유물이 나온 사실은 흥미롭다.백제 땅으로 들어서자면 반드시 변산반도를 돌아,고군산열도를 비집고 들어가,금강하구로 들어서야 했을 것이니,수성당의 위치는 지정학적으로 해양의 길목이다.위도나 고군산에서 바라볼 때,곶의 신비로운 장소에 신당을 세우고 해신에게 정성껏 제사를 올렸으리라.채석강과 적벽강이 펼쳐진 천혜의 절경에 자리잡고 있으니 신들조차도 비경을 선호했음이다. 근년까지도 풍어기(豊漁旗)가 올라가던 수성당 앞바다에서 역사시대의 제사가 올려졌고,더 앞선 시대에는 마고할머니가 걸어다녔다는 사실에서,천년을 훌쩍 뛰어넘는 수성당 신앙의 해양문화적 지속성을 보고야 마는 것이다.이렇듯 바다에는 인간 이전에 여신들도 살고 있었던 것이니,‘바다에 살어리랏다‘에서 어찌 이들을 모른 채 할 수 있을 것인가.˝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칠산바다 지키는 수성당할머니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칠산바다 지키는 수성당할머니

    ●깎아지른 절벽위 여신모신 성소가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새삼 에게해와 그리스신화가 관심을 끈다.아테네 도심의 파르테논 신전 못지않게,아티카반도 끝자락 수니온곶(串)의 포세이돈 신전도 낙조 풍경과 어울려 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포세이돈 신전.에게해의 찬란한 석양이 비끼는 천애 절벽에 각인된 역사와 신화의 지문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신화시대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다.바다의 신 포세이돈.그의 뜻에 따라 질풍과 노도가 일어나니,바다의 모든 것이 그 앞에서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포세이돈의 황금전차가 말발굽 요란하게 바다 위를 가로지를라치면 거센 폭풍은 간데없고 잔잔한 고요가 그를 옹위했다.원형은 파괴됐으나 15개의 도리아식 원주는 고스란히 남아 에게해의 험한 바닷길을 아우르고 있다.지금도 이 신전 앞을 지나는 그리스 어부들은 고개 숙여 예를 표한다.첨단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뱃길에 나선 사람은 누구나 포세이돈의 신화적 영력에 깊은 외경과 간절한 기원의 뜻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반도국가 그리스의 끝자락에 바다의 신전이 있다면,같은 반도국가인 우리의 사정은 어떠할까? 우리라고 왜 바다신을 모신 신전이 없을까만,남의 떡만 크게 보이고,내 것은 초라하게만 여기는 문화사대주의의 병폐가 여기에서도 예외는 아니다.나이아가라폭포의 웅장함에 취해 박연폭포 정도는 ‘애들 장난’으로 치부하는 이들에게 필자가 줄 수 있는 최선의 해답은 ‘우리 것부터 좀 챙겨 보라.’는 충고이다.포세이돈이 중요하다면,중국의 여자 해신 마조(祖)도 알 필요가 있으며,더불어 ‘문화 종다원성’을 위해서라도 한반도 바로 이 땅의 수성당할머니를 생각해야 한다. ●서해바다 거닐며 거친 물길 다스려 해신은 세계 어느 바다에나 있었고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변산반도의 끝자락 격포 수성당은 우리 해신의 위엄과 격식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신성(神聖)의 성소(聖所) 격이다.우선,위치가 눈길을 끈다.잘록한 자루처럼 돌출한 곶의 깎아지른 절벽을 ‘성소’로 선택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수성당 길목은 해안초소를 설치해 민간인 출입을 막는 군 작전구역이었다.그 후 전주박물관에서 이곳 일대를 발굴한 결과,고대의 제사터임이 확인되었다.민간의 구술(口述)전승이 이루어진 이곳에서 확인 발굴이 이루어졌음은 우리 문화에서 구술이 지닌 실증적 힘을 웅변한다.트로이문명이 애초에 구술과 신화에서 출발했다가,훗날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입증된 것과 다를 게 없다. 수성당은 시누대가 창검처럼 밀집해 빼곡하게 들어찬 단애(斷崖)에 숨어 있다.바닷물이 밀물처럼 다가와 이 안에 들면 절벽에 서있다는 느낌을 잊게 된다.그러나 자칫 한발 잘못 내디디면 벼랑으로 곤두박질이다.오금이 저리도록 가파른 곶.벼랑 아래로는 여근처럼 갈라진 해식동굴이 있어 조수가 드나들며 보는 이의 현기증을 자아낸다.일명 용굴 혹은 여우골이라 불리는 이곳이 수성당할머니의 거처이다.서해 어업의 중심기지였던 위도가 굽어보이는 칠산바다의 관망대에 해당하는 곳으로,임진왜란 때 왜군이 여우골로 몰려오는 것을 할머니가 무찔렀다는 전설은 지금도 남아 전한다. ‘개양할미’라고도 불리는 수성당할머니는 딸만 여덟을 낳아 각도에 한명씩 시집보냈다고 전해진다.더러는 그녀가 딸 일곱을 낳았으며,그들이 수성당에서 굽어보이는 칠산바다의 일곱 섬 지킴이가 되었다고도 한다.수성당 할머니는 엄청나게 큰 키로 굽나무신을 신고 저벅저벅 서해바다를 걸어다녔다.위험한 곳에는 표지를 남겨 어부들이 해를 입지 않게 돌보았으며,심지어 수심까지 재어 어부들이 알도록 했다.괴력난신(怪力亂神)의 힘을 보여준 ‘서해 창건주’의 전설이므로 이 말이 맞느냐,아니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변산 격포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정초에 정성껏 제물을 마련해 이곳을 찾는다.세상이 바뀌어 서해 여신으로서의 지위는 볼품없이 쪼그라들었지만 그때의 마을굿 양식이 여전히 잔존해 있으며,무신도도 걸려 있었으나 지금은 불타고 없다.‘1804년 상량(上樑)’이라고 적힌 상량문으로 미뤄 적어도 200여 년 전에 이 신당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신당이 어찌 사람의 신탁(神託)의식과 같은 나이일 수 있겠는가.이 상량문과 무관하게 훨씬 이전에 신당이 있었고,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의 가슴 속에 수성당할머니가 살아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수성당은 변산반도 일대를 지켜주는 ‘지역신’으로 ‘강등’되었으나,그 해양문화적 원형은 바다를 지켜주는 거녀(巨女)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다.제주도의 설문대나 전국에 골고루 분포한 마고할매는 수성당할머니의 문화적 원형이다.마고나 설문대가 순 토속어인 반면 수성(水星)이라는 한문투 용어가 후대에 덧 씌워졌을 뿐이다.즉,마고식의 해양문화 원형질에서 수성이란 지역적 여신이 탄생한 것이다. ●거대한 치맛자락에 가려 어둠 내리고 사실,우리의 의식에는 가부장적 남신들만 가득 차 있었다.그러나 바다만은 달라 그곳은 늘상 여신들의 무대였다.바다는 모든 생명체가 탄생한 최초의 자궁이다.그런데도 기이하게 바닷가에서 여성은 사실상 금기의 대상이다.지금은 그런 금기의식이 많이 희석됐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신권(神權)만큼은 여신의 손아귀에 놓여 있다.‘여신을 숭앙하는 바다’의 신권과,‘여성을 배척하는 바다’의 생활이란 두 측면은 바다문화를 둘러싼 대단한 역설을 설명해 주는 단초가 된다. 수성당에서 서쪽을 굽어보니 초여름 햇살을 받은 칠산바다가 싱싱한 비늘을 반짝이며 꿈처럼 펼쳐져 있다.그곳에 서서 신화적 상상의 날개를 펼쳐본다.수성당에 기대 칠산바다를 바라보는 마음의 물길을 따라 당할머니가 들어왔다.그녀는 저물어 수평선 아래로 잠겨드는 해를 안간힘으로 붙들려고 했으며,그러다가 이른 저녁의 별밭을 거닐어 내게 이른 것이다.그 덕분에 칠산바다는 여름의 붉은 황혼에 늦도록 젖어 있었다.흡사 쌩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첫마디를 속삭였을 때처럼 그렇게 붉게. 그녀는 깊은 바닷물에 겨우 발목만 적신 채 아주 천천히 걸음을 떼고 있다.아주 천천히,우리 역사의 태고적 울림은 그렇듯 바다로부터 시작되었다.서해바다가 아직 형성되지 않아 우리와 중국이 육지로 맞붙어 있던 그 옛날의 땅을 디디고 걸었음직한 그런 발걸음이다.생각해 보면 수성할머니 같은 거녀는 한반도 탄생의 비밀을 알려주는 중요한 존재가 아닐수 없다. 여신들은 늘 바닷가를 뚜벅뚜벅 걸어다녔다.풍랑이 일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는 깊었다.깊은 곳으로 발을 잘 못 내디뎌 빠지는 바람에 치맛자락이 살짝 젖었다.끝모르게 큰 여신들이었지만 치맛자락이 젖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그녀는 젖은 치마를 벗어 산 위에 펼쳐 널었다.산에서는 난리가 났다.치마를 널자 지상이 온통 컴컴해졌고 동물들은 갑자기 맞은 밤이 두려웠을 것이다. 여신은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소피도 여러번 보았다.여신의 오줌이 물길을 만들어 곳곳에 강이 생겨났다.여신의 똥은 군데군데 섬으로 남았다.저녁 무렵에 찬 이슬을 맞자 마고는 기침을 했다.그러자 폭풍이 불어 풍랑이 일었고,산과 들의 나무들이 뿌리째 뽑혔다.이윽고 밤이 왔다.여신은 하늘의 별을 만지고,달을 껴안고 그렇게 외로운 밤을 지냈다.참으로 외로웠다.사람이 탄생하기 전이라 그녀를 즐겁게 할 미물 인간이 아직 없었던 탓이다. ●위도 핵폐기장엔 인간사 갈등 고스란히 얼마나 컸으면 바다를 걸으며 치맛자락만 적셨을 뿐일까.참으로 막강한 여성의 위력이다.우리 신화의 들머리를 차지하는 마고,수성당할머니 등은 지모신(Great Mother,Mother Goddess)이다.수성당을 찾아온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잃어버린 여성의 힘.거녀로서 세상을 창조하는 거대담론을 이끌어 온 문화적 원형질을 당할머니에게서 발견한다.현대인들은 그만 그 거대한 신화적 힘,자연친화적 순응을 거부하고 말았으니,수성당 코앞의 새만금간척지나 위도 핵폐기장 같은 인간사의 복잡다단한 갈등이 그것이다. 당할머니가 바다를 걷는 발자국소리를 듣노라니 상상력은 멀리 상전벽해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왜 하필이면 국가적인 큰 제사터가 수성당에 자리잡고 있었을까.우리는 그동안 ‘전북지역은 곧 백제문화권’이라는 도식적 편견에 함몰돼 있었다.전주박물관 발굴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유병하는 이를 3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의 마한,백제,가야,왜의 노천제사라고 주장했다.3세기 후반에는 마한,4세기는 마한과 백제,5세기 전반과 6세기 전반은 백제,가야,왜의 제사가 이루어진 듯하다. 마한,백제는 그렇다치고 멀리 가야와 왜의 유물이 나온 사실은 흥미롭다.백제 땅으로 들어서자면 반드시 변산반도를 돌아,고군산열도를 비집고 들어가,금강하구로 들어서야 했을 것이니,수성당의 위치는 지정학적으로 해양의 길목이다.위도나 고군산에서 바라볼 때,곶의 신비로운 장소에 신당을 세우고 해신에게 정성껏 제사를 올렸으리라.채석강과 적벽강이 펼쳐진 천혜의 절경에 자리잡고 있으니 신들조차도 비경을 선호했음이다. 근년까지도 풍어기(豊漁旗)가 올라가던 수성당 앞바다에서 역사시대의 제사가 올려졌고,더 앞선 시대에는 마고할머니가 걸어다녔다는 사실에서,천년을 훌쩍 뛰어넘는 수성당 신앙의 해양문화적 지속성을 보고야 마는 것이다.이렇듯 바다에는 인간 이전에 여신들도 살고 있었던 것이니,‘바다에 살어리랏다‘에서 어찌 이들을 모른 채 할 수 있을 것인가.
  • [부고]

    ■ 前한성대총장 원형갑씨 한성대 총장을 지낸 문학평론가 원형갑씨가 9일 오전 11시10분 남서울 한방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75세. 충남 서천 출신인 고인은 평양에서 성장한 뒤 해방 후,원광대 국문학과를 나와 1958년 ‘현대문학’을 통해 평론가로 등단했다.1960∼70년대 해외 문예이론을 국내에 소개하면서 왕성한 비평활동을 했으며,한성대 교수로 재직하다 1992년부터 95년까지 총장을 지냈다. ‘현대미학의 과제’ ‘현상학과 뉴마르크시즘’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1990년대 이후 ’시경(詩經)‘에 관심을 쏟아 ‘시경과 성애 열락’ ‘시경과 성’ ‘시경의 수수께끼’를 비롯한 연구서를 잇따라 발표했다.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위원장을 지냈으며 현대문학상(1961),한국문학상(1979),대한민국예술상(1986)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명자씨와 일청,문청,재산씨 등 3남2녀.발인은 11일 오전 7시30분,강남성모병원.(02)590-2697. ●崔成大(서울신문 광주지국장)씨 모친상 9일 오전 7시 전남 담양군 금성면 봉서1구 675번지 자택,발인 12일 오전 10시 (062)223-5434 ●金塾(외교통상부 북미국장)垠(자영업)墉(기아자동차 산곡판매점 소장)福珍(인하여고 교사)씨 모친상 9일 오전 8시40분 인하대병원,발인 11일 오전 8시 (032)890-3199 ●金道垣(한국은행 총무국 차장)씨 별세 9일 오전 5시30분 강남성모병원,발인 11일 오전 7시 (02)590-2541 ●玄圭鎬(전 목포지방해운항만청장)씨 별세 庚錫(호주 시드니대학 유학)篠連(전 김&장법률사무소 과장)씨 부친상 吳大煥(일본 나고야상과대학 교수)씨 빙부상 9일 오전 8시10분 서울대병원,발인 11일 오전 8시 (02)760-2014 ●李萬浩(산재의료관리원 이사장)씨 모친상 9일 오전 9시50분 서울삼성병원,발인 11일 오전 5시30분 (02)3410-6920 ●李椿淵(씨네2000 대표)良淵(상진공업 부장)씨 모친상 9일 오전 2시 서울아산병원,발인 11일 오전 7시 (02)3010-2294 ●金長中(인천일보 평택주재 기자)씨 모친상 9일 오전 7시25분 오산장례예식장,발인 11일 오전 8시30분 (031)372-2923 ●朴恩子(대우증권 순천지점 과장)씨 모친상 9일 오전 4시 순천 성가롤로병원,발인 11일 오전 10시 (061)720-2316 ●鄭基雄(KBS대전방송총국 취재부 부장대우)씨 부친상 9일 오후 3시40분 대전 을지대학병원,발인 12일 오전 7시 (042)471-1321 ●金榮盛(한국기원 이사)씨 별세 8일 오후 5시10분 부산침례병원,발인 10일 오전 9시 (051)583-8914 ●李潔(샘표식품 상임감사)씨 부친상 9일 춘천장례식장,발인 12일 오전 9시 (033)263-4403 ●李成槿(대우해양조선연구소장)義槿(삼성전자반도체총괄총무부장)愛德(미국 거주)씨 모친상 8일 오후 8시4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11일 오전 8시 (02)3410-6916
  • [부고]

    ■ 前한성대총장 원형갑씨 한성대 총장을 지낸 문학평론가 원형갑씨가 9일 오전 11시10분 남서울 한방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75세. 충남 서천 출신인 고인은 평양에서 성장한 뒤 해방 후,원광대 국문학과를 나와 1958년 ‘현대문학’을 통해 평론가로 등단했다.1960∼70년대 해외 문예이론을 국내에 소개하면서 왕성한 비평활동을 했으며,한성대 교수로 재직하다 1992년부터 95년까지 총장을 지냈다. ‘현대미학의 과제’ ‘현상학과 뉴마르크시즘’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1990년대 이후 ’시경(詩經)‘에 관심을 쏟아 ‘시경과 성애 열락’ ‘시경과 성’ ‘시경의 수수께끼’를 비롯한 연구서를 잇따라 발표했다.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위원장을 지냈으며 현대문학상(1961),한국문학상(1979),대한민국예술상(1986)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명자씨와 일청,문청,재산씨 등 3남2녀.발인은 11일 오전 7시30분,강남성모병원.(02)590-2697. ●崔成大(서울신문 광주지국장)씨 모친상 9일 오전 7시 전남 담양군 금성면 봉서1구 675번지 자택,발인 12일 오전 10시 (062)223-5434 ●金塾(외교통상부 북미국장)垠(자영업)墉(기아자동차 산곡판매점 소장)福珍(인하여고 교사)씨 모친상 9일 오전 8시40분 인하대병원,발인 11일 오전 8시 (032)890-3199 ●金道垣(한국은행 총무국 차장)씨 별세 9일 오전 5시30분 강남성모병원,발인 11일 오전 7시 (02)590-2541 ●玄圭鎬(전 목포지방해운항만청장)씨 별세 庚錫(호주 시드니대학 유학)篠連(전 김&장법률사무소 과장)씨 부친상 吳大煥(일본 나고야상과대학 교수)씨 빙부상 9일 오전 8시10분 서울대병원,발인 11일 오전 8시 (02)760-2014 ●李萬浩(산재의료관리원 이사장)씨 모친상 9일 오전 9시50분 서울삼성병원,발인 11일 오전 5시30분 (02)3410-6920 ●李椿淵(씨네2000 대표)良淵(상진공업 부장)씨 모친상 9일 오전 2시 서울아산병원,발인 11일 오전 7시 (02)3010-2294 ●金長中(인천일보 평택주재 기자)씨 모친상 9일 오전 7시25분 오산장례예식장,발인 11일 오전 8시30분 (031)372-2923 ●朴恩子(대우증권 순천지점 과장)씨 모친상 9일 오전 4시 순천 성가롤로병원,발인 11일 오전 10시 (061)720-2316 ●鄭基雄(KBS대전방송총국 취재부 부장대우)씨 부친상 9일 오후 3시40분 대전 을지대학병원,발인 12일 오전 7시 (042)471-1321 ●金榮盛(한국기원 이사)씨 별세 8일 오후 5시10분 부산침례병원,발인 10일 오전 9시 (051)583-8914 ●李潔(샘표식품 상임감사)씨 부친상 9일 춘천장례식장,발인 12일 오전 9시 (033)263-4403 ●李成槿(대우해양조선연구소장)義槿(삼성전자반도체총괄총무부장)愛德(미국 거주)씨 모친상 8일 오후 8시4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11일 오전 8시 (02)3410-6916˝
  • 발해 연안에서 찾은…/이형구 지음

    우리 민족과 문화의 원류는 어디일까. ‘발해 연안에서 찾은 한국고대문화의 비밀’(이형구 지음,김영사 펴냄)은 우리의 원형과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만주 지역에 대한 심층적 체계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우리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만주지역을 비롯한 발해 연안이 고구려뿐 아니라 구석기 시대 이후 우리 민족의 뿌리였다고 주장한다. 선문대학 역사학과 교수이자 대학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저자는 발해연안에서 우리의 고대사가 시작됐다고 본다.발해연안은 발해를 중심으로 남부의 중국 산둥반도·서부의 하북성 일대·북부의 랴오닝성 지방·북동부의 요동반도와 동부의 지린성 중남부 및 한반도를 포함해 일컫는다. 저자는 1970년대 곧선사람(직립원인, 直立猿人)의 화석과 함께 발견된 요동반도 금우산 동굴과 본계시 묘후산 동굴의 전기 구석기시대의 석기는 1980년에 발견된 평양시 상원군 용곡리 제1호 동굴 석기와 제작 방법이 같다고 강조한다.모두 ‘내리쳐깨기’와 ‘때려깨기’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발해 연안의 초기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인 빗살무늬토기에는 갈 之(지) 또는 사람 人(인) 자 모양의 독특한 무늬가 연속적으로 새겨져 있는데,압록강 하류 의주읍 미송리 동굴과 남해안 통영군의 상노대도(上老大島),대동강 유역의 평남 온천군 궁산리와 한강 유역의 서울 강동구 암사동 등에서 같은 무늬의 토기가 발견됐다. 저자는 특히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의 무덤에 주목한다.서해 시도(矢島)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의 조개무지(패총,貝塚)적석총과 황해도 황주군 침촌리와 강원도 춘천시 천전리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의 혼합식 적석총은 우리의 신석기 문화가 북방 시베리아가 기원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이 고유하게 발전시켜 온 것임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그 원류인 발해 연안에서 발견된 적석총과 석관묘의 연대는 기원전 3500년 쯤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비해 시베리아의 가장 빠른 돌무덤은 기원 전 2500년 쯤으로 1000년이나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41개의 소주제로 나눠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에 걸친 만주와 한반도의 유적·유물들을 거론하면서 발해연안의 고대문화가 고조선·부여·고구려를 거쳐 백제·신라·발해·고려로 면면히 이어져왔음을 보여준다.고구려 벽화의 대장장이신은 동북아 최대 철기제작국인 고구려의 철 숭배사상을,고구려 안학궁은 당나라 대명궁보다 규모가 더 커 동북아시아 최강국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고증 등은 눈길을 모은다.책을 읽다보면 우리 선조가 동방문명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1991년에 나온 초판을 대폭 보강했으며 원색도판 300여장을 실었다.도판 중 상당수가 저자가 중국과 북한을 현지답사하며 촬영한 것들이다.스스로 40년간의 연구를 총결산한 것이라고 얘기할 만큼 심혈을 기울였다.1만 9900원 황진선기자 jshwang@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살아있는 원시어법 ‘돌살’

    고대 그리스의 아르고 원정대는 ‘황금양털’을 찾아 동쪽으로 대항해를 거듭했다.흑해를 가로지른 이들의 동진(東進)은 호메로스의 영감을 빌려 지금의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필자 역시 황금양털 대신 ‘황금그물’을 찾는 심정으로 10년 이상의 세월,열정을 불태워 왔다.내가 찾는 ‘황금그물’은 지역에 따라 ‘독살’,‘돌발’,‘돌살’,‘원’ 등으로 불리는 자연생태적 ‘돌그물’을 뜻한다.이를 황금그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장 자연생태적이며,덕분에 소멸의 속도도 빨랐던 최고의 전통어법이기 때문이다.다양한 명칭이 있지만 ‘돌살’을 총칭어로 삼는다. ●조수간만의 차이 이용한 함정어법 돌살의 문화사적 원형질은 무엇일까.자문자답부터 해본다. -옛 선인들이 어떻게 고기를 잡았을까. -배를 타고 멀리 나가 낚시나 그물로 잡았을까. -배도 타지 않고,그물도 없이 고기를 잔뜩 잡는 방법은 없었을까. 이런 자문처럼 과연 배를 타고 멀리 나가 낚시나 그물로만 잡았을까.정답은 ‘아니다.’이다.고기가 흔했던 시절에는 위험을 감수한 채 악착같이 먼 바다로 나갈 이유가 없었다.먼 바다 고기잡이는 중선(中船)이 등장해 어획량을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야 보편화되었다.따라서 ‘먼바다로 나가 낚시와 그물로 고기를 잡았다.’는 천편일률적인 교과서 서술은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다.낚시와 그물 못지않게 어살(漁箭),혹은 어량(漁梁)이 중요했다. 어살이란 조수 간만의 차가 큰 갯가,오목하게 들어간 만(灣)에 대나무나 싸리나무,돌멩이 따위로 보(洑)를 막아 고기를 잡는 함정어법.어살은 돌로 막는 돌살,대나무로 막는 죽살 등 다양하다.밀물을 타고 연안으로 밀려온 고기가 생각없이 이 살을 넘었다가는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해 갇히면서 ‘독 안에 든 쥐’가 된다.이 어살의 기원은 인류사 유년기의 추억에서 비롯된다. 어릴 적 고무신으로 송사리를 잡던 아련한 추억을 돌이킨다.큰 물결에 밀리면 허물어지고,다시 모래둑을 쌓아 고기를 몰아넣던 유년기의 추억이 어살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인류의 기술사적 모태와 유년기의 행동 관행은 여러 면에서 일치한다.어살은 고대사회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전통을 고스란히 담은 어법이니,가히 고고민속(Ethnoarcheology)의 표징이라 할 만하다. 어살이 처음 발생한 곳은 강이었다.강을 오르내리는 습성이 있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물길에 살막이를 친다.살은 고기들이 오가는 여울목에 치는 것이 제격이다.V자형으로 하류 방향으로 내리막고 나뭇가지로 살을 엮어 쳐놓으면 이곳에 갇힌 고기는 빠른 물살에 치여 빠져 나오지 못한다. 전통어법이라 어획량이 적을 것 같지만 그건 추측일 뿐이다.특히 바다에 어살이 적용되면서 어획량은 날로 증가했다.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에서는 아예 이런 말도 전해진다.‘좋은 어살 자리는 못자리 하고도 안 바꾼다.’‘고기는 줍는 것이지 잡는 것이 아니다.’ ●고려·조선시대엔 소유권 놓고 쟁탈전도 고려나 조선시대에는 어살을 둘러싸고 권문세가의 쟁탈전이 벌어졌다.왕족이나 유력인사들은 저마다 어살을 차지하려고 나섰고,이 때문에 어민들은 도탄에 빠져 살길이 막막하였다.조정에서는 어살의 배분 문제를 놓고 분쟁이 빈번했다. 어살은 중요한 세원(稅源)이기도 했다.그만큼 어획량이 컸다는 증거다.어살은 돌로 막은 돌살이 원조다.자연석을 쌓아서 썰물이 되면 돌담 안에 들었던 고기가 잡히게 된다.서해안 일대의 대다수 어살은 원래 돌살이었다가 나중에 대나무나 싸리나무로 바뀐 것으로 유추된다.돌살은 비교문화사적으로도 재미있는 흐름을 보여준다. 오키나와에서 제주도,남·서해안을 따라서 북쪽까지 하나의 띠를 형성하면서 돌살문화가 발달했다.제주도와 오키나와에 돌살이 주종을 이루는 것은 섬문화에 해양문화사적 고형(固形)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음을 말해준다.돌살을 통해 해양문화에서의 동아시아적 공통점이 확인되는 순간이다.게다가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에도 있을 정도이니,세계적 범주의 해양문화 유산이다. ●현존하는 최대 밀집지역은 태안반도 국내·외 돌살을 조사한 나의 경험으로는 현존하는 돌살의 최대 밀집지는 태안반도다.한국민속연구소의 조사 결과,무려 100여개에 달하는 돌살이 학계에 보고되었다.세계문화사적으로 유래가 없는,가히 ‘흥분할 만한’ 해양문화 유산이다. 태안반도는 만리포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식으로 명칭을 부여한 해수욕장이 연이어 있어,한여름 바캉스철이면 숱한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그 해수욕장이 바로 돌살터라니! 해수욕장이라고는 하나 어민들 처지에서야 생업을 이어가던 백사장일 뿐이고,완만한 경사를 지닌 백사장은 고기가 몰려드는 천혜의 돌살터로 유리하다.특히 태안반도 의항과 몽산포 굴업돌살은 너무도 선명하고 장중해 서해안의 손꼽히는 해양문화 유산이 아닐 수 없다.그 남쪽 두여,밧개,마검포,바람아래에 이르기까지 돌살이 즐비하다. 모르면 그냥 지나치는 법.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드나들면서 여름바다를 즐겼건만 전통어법이 퍼져 있는 것은 까맣게 몰랐다.모래톱 밖으로 둥그렇게 돌담을 쌓아 그 안에 물이 고인 것을 보고 혹자는 ‘천연 어린이 풀장’이라는 우스운 해석을 남기기도 했다.전통시대 어업기술사의 생생한 현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 안내 간판하나 없이 방치돼 있다.문화재 당국의 해양문화에 관한 인식이 이토록 소홀하고 사려가 없으니 이 중요한 문화재들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을 허비해야 할까.선남선녀들이 헤엄치는 ‘해수욕장 안의 풀장’이 사실은 고기잡는 돌살인 것도 모르는 무지를 어찌 관광객의 탓만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태안반도의 돌살군은 외해의 거친 파도와 바람이 일군 모래사장과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바다와 하늘 사이에 자리잡았다.바닷물이 들어오면 고기떼도 함께 들어왔다가 물이 나갈 때 미처 빠져 나가지 못하고 돌살에 갇힌다.물이 나간다고 해도 돌살 안에는 늘 일정한 양의 물이 고여 있어 하나의 연못을 이루게 된다.거기서 사람들은 조기 갈치 숭어 멸치 등을 필요한 만큼 잡아낼 수 있었다. ●해수욕장의 ‘천연풀장’ 사실은 돌살 15세기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서해안 강령 옹진,인천,태안 홍성,무장 영광에 어살이 널리 퍼져 있었다.황해도 강령만 해주만,경기도 경기만 남양만,충청도 천수만,전라도 곰소만 등 서해안 내만이 중심이었다.수심이 얕고 간만의 차가 커 어살 설치가 용이한 데다 대체로 한양과 가까워 수산물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돌살은 세계 각지의 지혜로운 바닷가 선조들이 창조해 낸 자연적인 살림살이법이었으나 우리 돌살은 세계적 보편성과 함께 한국적 특수성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돌살은 20세기의 ‘싹쓸이 어법’과 더불어 가장 먼저 퇴조한 어법이기도 하다.연근해 어족이 사라지고 갯벌이나 모래밭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어민들은 바다를 ‘바다밭’이라고 부르거니와,바다밭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개발의 발톱’이 바다의 경계선을 허물고 있다.경제논리에 밀려 돌살어업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공을 적게 들이고 고기를 잡던 돌살의 놀라운 생태관은 사라지고,비싼 대가를 치르는 어법만이 남게 되었다. ●촘촘한 그물은 웅덩이에 던지지 않는다 21세기 초반,바다 상황은 비극적이다.오죽하면 2004년 ‘세계환경의 날’ 주제가 ‘구해주세요-생사의 기로에 선 바다!’이겠는가.만약에 돌살이 다시 가능해진다면,바다밭이 되살아나는 증거가 되리라.그런 즉,돌살을 ‘황금그물’이라고 부른 필자의 저의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얼 출신의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박람강기의 문재(文才)를 외국에까지 떨쳤던 이덕무(1741∼1793)의 문집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를 펼쳐 보면 이런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소년어(少年魚)’란 어휘다.‘소년어’,기억해 두었다가 생활 속에서 두고두고 곱씹을 말이다.소용도 없는 ‘소년어 잡기’에 골몰하는 탐욕스러운 우리 시대를 생각하며,그에게 생태적인 전통어법 돌살의 가르침을 청해본다. ‘수륙에서 나는 이익은 공사(公私)가 다같이 필요로 한다.그러나 그것들을 때없이 잡으면 번성하지 못한다.지금 백성들이 소년어 잡기를 좋아하는데,아무리 많이 잡아도 쓸모가 없다.소년어란 세 글자가 새롭다.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에 던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
  • 창립 100주년 맞는 국제로터리 3650지구 윤상구 총재

    “국제로터리는 사업가 및 전문직 종사자들로 구성된 민간 자원봉사단체입니다.전세계 166개국에 122만명의 회원을 두고 있지요.” 국제로터리 3650지구(서울 강북지역)는 한국 로터리를 대표하는 종주지구로 96개 로터리클럽과 3000여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지난 1일 윤상구(55) 동서코포레이션 대표이사는 이 지구의 신임총재로 취임했다. 특히 이날 윤 총재는 ‘로터리창립 100주년 기간(2004∼2005년)’을 선포해 주목을 끌었다.국내 민간 봉사단체로서는 가장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이 때문에 이 행사에는 채수삼 서울신문사장을 비롯,강신호 전경련회장·오재경 전 문공부장관·송인상 한국능률협회 회장·장충식 단국대 재단이사장·민병준 한국광고주협회장 등 각계 인사 500여명이 참석,자리를 빛냈다. ●故 윤보선 前대통령 장남 행사 직후인 지난 주말 윤 총재와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그가 고(故) 윤보선 전 대통령의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언론과의 인터뷰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지난 1985년부터 로터리클럽에 가입해 묵묵히 봉사활동을 펼쳐왔다는 점에서 느낌이 사뭇 달랐다.그는 이날도 청소년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1년째 거주하는 미국인 샘(18·미네소타 출신),자원봉사자인 예비역 소장 이창호(85·경기도 일산)씨와 봉사활동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개인적인 얘기는 하지 말자며 국제로터리 3650지구의 봉사활동을 많이 부각시켜 달라고 거듭 강조했다.그러면서 미담 사례 한토막을 전했다.지난해 8월부터 대일외국어고에서 한국어와 한국의 역사·문화를 배우는 앤디(미 위스콘신 출신).그에겐 4명의 동생이 있다.그중 남동생 2명과 막내 여동생은 한국에서 온 입양아이자 장애인.앤디는 동생들이 자라면 한글을 가르쳐 주려고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단다.앤디는 한국에 머물면서 국내 입양인시설 등에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국제로터리 3650지구는 청소년 활동에 큰 관심을 갖고 미국의 위스콘신주와 미네소타주의 로터리지구,또 도쿄의 국제로터리 2750지구와도 청소년교환 프로그램을 실시합니다.매년 친선사절 장학생을 선발,외국유학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환경운동에도 주력할 것” 그는 이번 100주년 선포와 관련,내년 6월말까지 ‘로터리를 경축하자’(Celebrate Rotary)는 테마 아래 몽골정부·몽골로터리 회원 등과 연대해 몽골에서 황사방지 방풍림 조성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이와 함께 지난 85년부터 펼쳐온 ‘소아마비 박멸사업’에 박차를 가해 내년에는 ‘소아마비 완전퇴치’를 공식 선언할 예정이라고 부연했다.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많은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100년이 되는 내년 2월23일에는 전국의 1200여개 클럽이 동시에 봉사활동에 나서는 대대적인 운동이 전개됩니다.” 지난 66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75년 뉴욕주 시라큐스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했다.이후 76년부터 8년간 미 LA에서 옷장사를 하며 사업을 익혔다.83년 귀국한 그는 건축자재를 수입판매하는 현재의 회사를 설립했다.사업 외에도 ‘북촌문화포럼 공동위원장’과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위원회 부위원장’등을 역임한 그는 부친과 함께 살던 서울 안국동의 고택(古宅)에서 지내고 있다. “전국 100곳 이상 되는 종가집을 네트워킹해 원형보존과 사람이 숨쉬는 생명력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문제를 궁리해 볼 생각입니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살아있는 원시어법 ‘돌살’

    고대 그리스의 아르고 원정대는 ‘황금양털’을 찾아 동쪽으로 대항해를 거듭했다.흑해를 가로지른 이들의 동진(東進)은 호메로스의 영감을 빌려 지금의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필자 역시 황금양털 대신 ‘황금그물’을 찾는 심정으로 10년 이상의 세월,열정을 불태워 왔다.내가 찾는 ‘황금그물’은 지역에 따라 ‘독살’,‘돌발’,‘돌살’,‘원’ 등으로 불리는 자연생태적 ‘돌그물’을 뜻한다.이를 황금그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장 자연생태적이며,덕분에 소멸의 속도도 빨랐던 최고의 전통어법이기 때문이다.다양한 명칭이 있지만 ‘돌살’을 총칭어로 삼는다. ●조수간만의 차이 이용한 함정어법 돌살의 문화사적 원형질은 무엇일까.자문자답부터 해본다. -옛 선인들이 어떻게 고기를 잡았을까. -배를 타고 멀리 나가 낚시나 그물로 잡았을까. -배도 타지 않고,그물도 없이 고기를 잔뜩 잡는 방법은 없었을까. 이런 자문처럼 과연 배를 타고 멀리 나가 낚시나 그물로만 잡았을까.정답은 ‘아니다.’이다.고기가 흔했던 시절에는 위험을 감수한 채 악착같이 먼 바다로 나갈 이유가 없었다.먼 바다 고기잡이는 중선(中船)이 등장해 어획량을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야 보편화되었다.따라서 ‘먼바다로 나가 낚시와 그물로 고기를 잡았다.’는 천편일률적인 교과서 서술은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다.낚시와 그물 못지않게 어살(漁箭),혹은 어량(漁梁)이 중요했다. 어살이란 조수 간만의 차가 큰 갯가,오목하게 들어간 만(灣)에 대나무나 싸리나무,돌멩이 따위로 보(洑)를 막아 고기를 잡는 함정어법.어살은 돌로 막는 돌살,대나무로 막는 죽살 등 다양하다.밀물을 타고 연안으로 밀려온 고기가 생각없이 이 살을 넘었다가는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해 갇히면서 ‘독 안에 든 쥐’가 된다.이 어살의 기원은 인류사 유년기의 추억에서 비롯된다. 어릴 적 고무신으로 송사리를 잡던 아련한 추억을 돌이킨다.큰 물결에 밀리면 허물어지고,다시 모래둑을 쌓아 고기를 몰아넣던 유년기의 추억이 어살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인류의 기술사적 모태와 유년기의 행동 관행은 여러 면에서 일치한다.어살은 고대사회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전통을 고스란히 담은 어법이니,가히 고고민속(Ethnoarcheology)의 표징이라 할 만하다. 어살이 처음 발생한 곳은 강이었다.강을 오르내리는 습성이 있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물길에 살막이를 친다.살은 고기들이 오가는 여울목에 치는 것이 제격이다.V자형으로 하류 방향으로 내리막고 나뭇가지로 살을 엮어 쳐놓으면 이곳에 갇힌 고기는 빠른 물살에 치여 빠져 나오지 못한다. 전통어법이라 어획량이 적을 것 같지만 그건 추측일 뿐이다.특히 바다에 어살이 적용되면서 어획량은 날로 증가했다.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에서는 아예 이런 말도 전해진다.‘좋은 어살 자리는 못자리 하고도 안 바꾼다.’‘고기는 줍는 것이지 잡는 것이 아니다.’ ●고려·조선시대엔 소유권 놓고 쟁탈전도 고려나 조선시대에는 어살을 둘러싸고 권문세가의 쟁탈전이 벌어졌다.왕족이나 유력인사들은 저마다 어살을 차지하려고 나섰고,이 때문에 어민들은 도탄에 빠져 살길이 막막하였다.조정에서는 어살의 배분 문제를 놓고 분쟁이 빈번했다. 어살은 중요한 세원(稅源)이기도 했다.그만큼 어획량이 컸다는 증거다.어살은 돌로 막은 돌살이 원조다.자연석을 쌓아서 썰물이 되면 돌담 안에 들었던 고기가 잡히게 된다.서해안 일대의 대다수 어살은 원래 돌살이었다가 나중에 대나무나 싸리나무로 바뀐 것으로 유추된다.돌살은 비교문화사적으로도 재미있는 흐름을 보여준다. 오키나와에서 제주도,남·서해안을 따라서 북쪽까지 하나의 띠를 형성하면서 돌살문화가 발달했다.제주도와 오키나와에 돌살이 주종을 이루는 것은 섬문화에 해양문화사적 고형(固形)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음을 말해준다.돌살을 통해 해양문화에서의 동아시아적 공통점이 확인되는 순간이다.게다가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에도 있을 정도이니,세계적 범주의 해양문화 유산이다. ●현존하는 최대 밀집지역은 태안반도 국내·외 돌살을 조사한 나의 경험으로는 현존하는 돌살의 최대 밀집지는 태안반도다.한국민속연구소의 조사 결과,무려 100여개에 달하는 돌살이 학계에 보고되었다.세계문화사적으로 유래가 없는,가히 ‘흥분할 만한’ 해양문화 유산이다. 태안반도는 만리포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식으로 명칭을 부여한 해수욕장이 연이어 있어,한여름 바캉스철이면 숱한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그 해수욕장이 바로 돌살터라니! 해수욕장이라고는 하나 어민들 처지에서야 생업을 이어가던 백사장일 뿐이고,완만한 경사를 지닌 백사장은 고기가 몰려드는 천혜의 돌살터로 유리하다.특히 태안반도 의항과 몽산포 굴업돌살은 너무도 선명하고 장중해 서해안의 손꼽히는 해양문화 유산이 아닐 수 없다.그 남쪽 두여,밧개,마검포,바람아래에 이르기까지 돌살이 즐비하다. 모르면 그냥 지나치는 법.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드나들면서 여름바다를 즐겼건만 전통어법이 퍼져 있는 것은 까맣게 몰랐다.모래톱 밖으로 둥그렇게 돌담을 쌓아 그 안에 물이 고인 것을 보고 혹자는 ‘천연 어린이 풀장’이라는 우스운 해석을 남기기도 했다.전통시대 어업기술사의 생생한 현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 안내 간판하나 없이 방치돼 있다.문화재 당국의 해양문화에 관한 인식이 이토록 소홀하고 사려가 없으니 이 중요한 문화재들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을 허비해야 할까.선남선녀들이 헤엄치는 ‘해수욕장 안의 풀장’이 사실은 고기잡는 돌살인 것도 모르는 무지를 어찌 관광객의 탓만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태안반도의 돌살군은 외해의 거친 파도와 바람이 일군 모래사장과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바다와 하늘 사이에 자리잡았다.바닷물이 들어오면 고기떼도 함께 들어왔다가 물이 나갈 때 미처 빠져 나가지 못하고 돌살에 갇힌다.물이 나간다고 해도 돌살 안에는 늘 일정한 양의 물이 고여 있어 하나의 연못을 이루게 된다.거기서 사람들은 조기 갈치 숭어 멸치 등을 필요한 만큼 잡아낼 수 있었다. ●해수욕장의 ‘천연풀장’ 사실은 돌살 15세기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서해안 강령 옹진,인천,태안 홍성,무장 영광에 어살이 널리 퍼져 있었다.황해도 강령만 해주만,경기도 경기만 남양만,충청도 천수만,전라도 곰소만 등 서해안 내만이 중심이었다.수심이 얕고 간만의 차가 커 어살 설치가 용이한 데다 대체로 한양과 가까워 수산물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돌살은 세계 각지의 지혜로운 바닷가 선조들이 창조해 낸 자연적인 살림살이법이었으나 우리 돌살은 세계적 보편성과 함께 한국적 특수성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돌살은 20세기의 ‘싹쓸이 어법’과 더불어 가장 먼저 퇴조한 어법이기도 하다.연근해 어족이 사라지고 갯벌이나 모래밭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어민들은 바다를 ‘바다밭’이라고 부르거니와,바다밭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개발의 발톱’이 바다의 경계선을 허물고 있다.경제논리에 밀려 돌살어업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공을 적게 들이고 고기를 잡던 돌살의 놀라운 생태관은 사라지고,비싼 대가를 치르는 어법만이 남게 되었다. ●촘촘한 그물은 웅덩이에 던지지 않는다 21세기 초반,바다 상황은 비극적이다.오죽하면 2004년 ‘세계환경의 날’ 주제가 ‘구해주세요-생사의 기로에 선 바다!’이겠는가.만약에 돌살이 다시 가능해진다면,바다밭이 되살아나는 증거가 되리라.그런 즉,돌살을 ‘황금그물’이라고 부른 필자의 저의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얼 출신의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박람강기의 문재(文才)를 외국에까지 떨쳤던 이덕무(1741∼1793)의 문집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를 펼쳐 보면 이런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소년어(少年魚)’란 어휘다.‘소년어’,기억해 두었다가 생활 속에서 두고두고 곱씹을 말이다.소용도 없는 ‘소년어 잡기’에 골몰하는 탐욕스러운 우리 시대를 생각하며,그에게 생태적인 전통어법 돌살의 가르침을 청해본다. ‘수륙에서 나는 이익은 공사(公私)가 다같이 필요로 한다.그러나 그것들을 때없이 잡으면 번성하지 못한다.지금 백성들이 소년어 잡기를 좋아하는데,아무리 많이 잡아도 쓸모가 없다.소년어란 세 글자가 새롭다.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에 던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 [새 행정수도 연기·공주] 균형발전효과 최우선 고려

    [새 행정수도 연기·공주] 균형발전효과 최우선 고려

    행정수도 예정지가 사실상 ‘연기·공주’로 결정되면서 이전비용이 다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정부는 여전히 46조원이면 충분하다고 하지만,민간 전문가들은 연기·공주가 야산이 많아 공사비가 정부 추산치보다 훨씬 더 들 것이라고 지적한다.서울시의회는 방위비 부담까지 감안하면 무려 200조원이 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 주장대로 45조 6000억원만 든다고 쳐도 경제활동인구(5월 말 현재 2353만명) 1인당 부담은 194만원이다.이전비용이 100조원으로 불어나면 이 부담은 425만원으로 껑충 뛴다.신행정수도기획단 박상규 국장은 “총 이전비용 가운데 민간 몫(34조 3000억원)과 정부청사 매각대금(4조원) 등을 빼면 국민부담은 7조원으로 줄어든다.”면서 “설사 정부청사 매각이 쉽지 않더라도 국민부담 11조 3000억원을 2014년까지 쪼개면 매년 1조∼1조 5000억원에 불과해 큰 부담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물가상승분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정부 공사는 불변가격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관례라는 이유에서다.한양대 건설교통공학부 이태식 교수는 “최소한 앞으로 10년간의 물가상승률은 반영해야 한다.”면서 “2014년까지 공사비가 연평균 각각 5∼15% 오른다고 가정했을 때 행정수도 이전비용은 적게는 51조원,많게는 62조원이 든다.”고 주장했다.연기·공주의 땅값이 크게 올라 정부가 책정한 비용(4조 6000억원)으로 보상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행정수도 후보지 평가단에 풍수지리 전문가는 있되,사회 인프라 경험을 갖춘 토목기술 전문가가 없다는 점도 추가비용 발생요인으로 지적된다.이태식 교수는 “물을 포함해 토양이 괜찮은지,성토 작업이 필요한 지형인지 등에 따라 개발비용은 크게 달라진다.”고 말했다.벌써부터 연기·공주에 야산이 많아 공사비가 급증할 것이라는 지적이 들린다.신행정수도기획단 박 국장은 “가급적 지형 원형을 유지할 방침이기 때문에 추가공사비가 많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새 행정수도 연기·공주] 균형발전효과 최우선 고려

    행정수도 예정지가 사실상 ‘연기·공주’로 결정되면서 이전비용이 다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정부는 여전히 46조원이면 충분하다고 하지만,민간 전문가들은 연기·공주가 야산이 많아 공사비가 정부 추산치보다 훨씬 더 들 것이라고 지적한다.서울시의회는 방위비 부담까지 감안하면 무려 200조원이 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 주장대로 45조 6000억원만 든다고 쳐도 경제활동인구(5월 말 현재 2353만명) 1인당 부담은 194만원이다.이전비용이 100조원으로 불어나면 이 부담은 425만원으로 껑충 뛴다.신행정수도기획단 박상규 국장은 “총 이전비용 가운데 민간 몫(34조 3000억원)과 정부청사 매각대금(4조원) 등을 빼면 국민부담은 7조원으로 줄어든다.”면서 “설사 정부청사 매각이 쉽지 않더라도 국민부담 11조 3000억원을 2014년까지 쪼개면 매년 1조∼1조 5000억원에 불과해 큰 부담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물가상승분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정부 공사는 불변가격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관례라는 이유에서다.한양대 건설교통공학부 이태식 교수는 “최소한 앞으로 10년간의 물가상승률은 반영해야 한다.”면서 “2014년까지 공사비가 연평균 각각 5∼15% 오른다고 가정했을 때 행정수도 이전비용은 적게는 51조원,많게는 62조원이 든다.”고 주장했다.연기·공주의 땅값이 크게 올라 정부가 책정한 비용(4조 6000억원)으로 보상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행정수도 후보지 평가단에 풍수지리 전문가는 있되,사회 인프라 경험을 갖춘 토목기술 전문가가 없다는 점도 추가비용 발생요인으로 지적된다.이태식 교수는 “물을 포함해 토양이 괜찮은지,성토 작업이 필요한 지형인지 등에 따라 개발비용은 크게 달라진다.”고 말했다.벌써부터 연기·공주에 야산이 많아 공사비가 급증할 것이라는 지적이 들린다.신행정수도기획단 박 국장은 “가급적 지형 원형을 유지할 방침이기 때문에 추가공사비가 많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이런 책 어때요]

    동양신화의 주축을 이루는 고대 중국신화의 세계를 알기 쉽게 설명.저자(이화여대 교수)는 서구문명으로 환원되지 않는 동양문화의 원형을 확인하기 위해선 ‘동양신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저자에 따르면 중국 신화에서 태초는 다양한 형태의 암흑으로 묘사된다.기원전 2세기에 씌어진 ‘회남자’는 태초를 ‘다만 어슴푸레한 모습만 있었지 형체는 없는’ 혼돈으로 설명한다.중국의 가장 오래된 신화집인 ‘산해경’에선 혼돈의 형상을 살아 움직이는 새인 ‘제강(帝江)’으로 표현하기도 한다.중국 신화와 우리 문화의 연관성도 살폈다.1만 2800원. 평생 자본주의 문명을 비판해온 저자가 이 시대에 던지는 문명비판.“문명은 사회의 자살행위이다.” 사람에 대한 희망,특히 젊은이에 대한 희망을 강하게 내비치는 저자는 1960년대 베트남 전쟁으로 깨어나기 시작한 미국 젊은이들을 십자군에 견준다.또 모든 새로운 흐름 뒤에 숨어 있는 마지막 개척 분야는 바로 사람 자신이라고 강조한다.그런 만큼 조화로운 삶은 반드시 있으며,그것은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세계를 찾아가는 순례의 길이라는 것이다.니어링이 처음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델라웨어의 ‘아덴’은 그 조화로운 삶의 축소판이다.8000원. 공화주의와 노예해방이라는 두 개의 명제를 모두 실현한 아메리카의 진정한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 이야기.스페인 식민치하의 베네수엘라에서 귀족의 신분으로 태어난 볼리바르는 ‘애국회’를 조직,남아메리카 해방전쟁에 투신한다.타고난 군사전략가인 그는 스페인 군대의 허를 찔러 안데스 종주라는 대장정을 펼쳤고,마침내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 등 남아메리카 5개국을 해방시켰다.볼리바르는 미국보다 46년이나 앞선 1816년 노예제를 폐지,만민 평등을 실천했다.그는 남아메리카인들의 가슴 속에 건국의 아버지로 남아 있다.1만 4000원. ‘투쟁과 고통의 땅’ 티베트의 가장 위대한 여인이자 티베트 불교의 어머니로 추앙받는 예세초겔의 일생과 깨달음을 담은 전기.예세초겔은 티베트의 주술신앙인 본(Bon)교도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티베트에 불교를 국교로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예세초겔은 인간세상에 밀법을 전파하겠다는 생각을 지닌 탄트라의 대가이자 ‘티베트 사자의 서’의 저자인 파드마 삼바바에 의해 티베트땅에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다.중생과 함께 호흡하며 어머니 같은 부처의 모습으로 살다 간 예세초겔의 삶에는 숱한 신화적 요소들이 있지만 실존 인물이다.1만 7900원. 무표정한 일상에 삶의 빛을 던져주는 산문집.저자(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는 여행이나 독서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미려한 문장으로 풀어놓는다.우리 사회의 허위의식과 소외의 문제도 짚어낸다.한 예로 강남구의 가로수는 상당수가 키 크고 잘 생긴 메타세콰이아라는 나무다.반면 강북의 어떤 구는 한 정거장 사이에 여러 수종이 섞여 있을 뿐 아니라 가로수 아래 놓는 쇠판도 신통찮다.한용운의 ‘당신을 보았습니다’,김종길의 ‘설날 아침에’ 등 스스로 마음의 좌표로 삼고 있는 시들을 들려주며 삭막한 일상의 강을 함께 건너자고 위로하기도 한다.8800원.˝
  • [儒林 속 한자이야기] (26)

    克己復禮(극기복례) 유림 123에는 ‘禮’가 나온다. ‘說文解字(설문해자)’에 의하면 ‘禮(예도 례)’는 신 앞에 제사하여 복을 구한다 할 때 신을 뜻하는 ‘示’(보일 시)자와 제를 행하는 그릇을 의미하는 ‘ ’(제기이름 례)자의 합체이며,그 발음도 ‘ ’자에서 취한 글자임을 알 수 있다. ‘示’에 대해서는 光明崇拜(빛광,밝을 명,높일 숭,절 배),生殖器(날 생,번성할 식,그릇 기)의 상징,祭壇(제단) 등의 여러 설이 있으나 모두 神(신) 또는 絶對者(절대자)를 숭배하는 뜻을 담고 있다.그리고 ‘豊’의 원형은 ‘ ’자이며,나무로 만든 제기인 ‘豆’(두) 위에 祭物(제물)을 올려놓은 글자이다.따라서 ‘禮’의 자학적(字學的)인 의미는 역시 神 앞에 제물을 올리며 복을 비는 原始宗敎的(근원 원,처음 시,마루 종,가르칠 교) 의미로 해석하는 게 妥當(온당할 타,마땅 당)할 것이다.사회가 점차 祭政分離(제사 제,다스릴 정,나눌 분,가를 리) 체제로 전환하면서 ‘禮’는 ‘인간 행위의 準則(법도 준,법칙 칙)’이라는 개인의 도덕으로 변모한다. ‘禮’가 쓰이는 단어에는 無禮(무례),禮節(예절),禮儀(예의),克己復禮(극기복례) 등이 있다.‘論語’(논어) 顔淵(안연)편을 보면,안회(공자의 애제자)가 仁(인)에 대하여 묻자,공자는 “자기를 이겨내어 예로 돌아감이 인을 실천하는 것(克己復禮·이길 극,몸 기,회복할 복,예도 례)”이라고 전제,실천덕목을 묻는 질문에 대하여 “예가 아니거든 보지 말며,예가 아니거든 듣지 말고,예가 아니거든 말하지 말며,예가 아니거든 움직이지 마라.”고 宣言(베풀 선,말씀 언)한다. 극기복례(克己復禮)란 ‘내 마음에 끼어드는 사사로운 욕심을 떨쳐버리고 그것을 이겨내어 타고난 착한 성품을 회복함’을 뜻한다.인간 본연의 성품을 회복하자면 자연질서에 어긋나는 것은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도 않으며 행동을 해서도 안된다.非禮(비례)란 天理(하늘 천,이치 리)에 어긋나는 것,곧 자연질서에 온당치 못한 비인간적 삶을 말한다.사사로운 욕심에 사로잡힌 자신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야 비로소 인간다운 모습을 지닐 수 있다는 말이다. 예는 인간 행위,즉 인간다움의 基準點(터 기,법도 준,점 점)이다.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은 기본을 바로 세우고자 노력하고,이를 바탕으로 온전한 가정을 이루며,사회 및 국가의 秩序(차례 질,순서 서)를 확립함은 물론 모든 사물까지도 서로 조화를 이루어 안정을 얻도록 한다.儒家(유가)에서는 이를 大同社會(큰 대,한가지 동,모일 사,모을 회)라 부른다.대동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정치적 方便(방편)이 바로 王道政治(왕도정치)이며,이 왕도정치도 예를 실현하는 것 이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예가 具備(갖출 구,갖출 비)될 때 인간에게 尊嚴性(높을 존,엄할 엄,성질 성)과 價値性(가치성)을 賦與(구실 부,줄 여)할 수 있으나 예를 喪失(잃을 상,잃을 실)할 때 인간은 금수로 轉落(구를 전,떨어질 락)한다.예의 가치는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함으로써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인 만큼 예의 특성은 理性(다스릴 리,성품 성)일 수밖에 없다.따라서 옛 어른들은 예에서 벗어난 행위는 비이성적이요,반인륜적이며,비문화적인 방향으로 흐를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혼자 있을 때조차 예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노력한 것이다. 김석제 반월정보산업고 교사(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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