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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전하듯 맞물린 무대…공전하듯 맴도는 고통

    자전하듯 맞물린 무대…공전하듯 맴도는 고통

    어둠이 깔린 원형 극장. 눈앞엔 동그란 두 개의 달 표면이 놓여 있다. 큰 달은 45도 각도로 기울어져 있고, 그 아래 작은 달이 맞물려 있다. 배우들은 120분 동안 두 달을 분주히 오가며, 때로는 위태롭게 움직이면서 극을 이어 간다. 이해하기는 다소 어렵지만 몰아치는 흐름으로 몰입도를 높인 작품이다. 어쩌면 미리 짜 놓은 ‘정답’이 없기 때문에 저마다 작품을 이해하는 방식 또한 다를 것이다.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이렇게 관객과 관계를 맺었다. ●작품성 인정 장강명 소설, 신체행동 연극으로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가 극단 ‘동’과 함께 제작한 이 작품은 한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 장강명의 동명 소설을 무대화한 작품이다. 소설은 제20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았고, 연극은 지난해 9월 초연 후 “추상적인 소설의 내용이 신체행동 연극을 주로 펼치는 극단 동의 장점과 잘 결합된 수작”이라는 평을 받으며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받았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한국연극 ‘공연 베스트 7’에도 모두 이름을 올렸다. 장강명 작가와 남산예술센터 그리고 신체행동을 중심으로 표현하는 극단 ‘동’이 만났으니 굳이 수상 이력이 아니더라도 작품성은 보장된 셈이다. 극단은 ‘시간의 해체’라는 원작의 형식에 감정이나 심리의 직접적 표현보다는 행동의 나열을 통해 인물과 장면을 전달하는 ‘신체행동연기’를 접목해 관객에게 열린 해석의 기회를 제공한다. ‘작품성과 대중성은 반비례한다’는 통설 또한 이 작품은 비켜난다. 단편적이지만 서로 유기적인 사건들이 흡입력 있게 펼쳐진다. 연극은 소설의 큰 흐름을 따라 간다. 고등학교 시절 연인이었던 남자와 여자가 있다. 동급생 ‘영훈’을 죽이고 교도소에 간 남자는 ‘우주 알 이야기’라는 소설을 써 여자가 일하는 출판사로 보낸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다시 만나고, 죽은 영훈의 어머니가 두 사람 주변을 집요하게 맴돌면서 극의 갈등은 재점화된다. ●시·공간 해체됐다 뒤섞이며 사건 휘몰아쳐 작품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의 흐름을 파괴했다. 각 사건이 벌어진 시간과 공간은 해체되고, 서로 뒤섞인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남자와 여자, 영훈 어머니의 시각에 따라 다른 해석이 펼쳐진다. 기울어진 원형 무대 위에서 펼치는 배우들의 위태로운 몸짓은 원작의 주제의식을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 준다. 배우들은 무대 위를 끊임없이 자전하듯 돌고, 상대 배우를 중심으로 공전하듯 맴돌며 연기를 이어 간다. 배우들의 기울어진 모습과 과장된 몸짓은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저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보는 듯하다. 작품은 전에 없던 이야기 구조로 기억과 시간, 고통, 속죄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고, 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넘겼다. 오는 27일까지 남산에서 관객을 맞으며, 12일 공연에는 관객과의 대화 행사도 진행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무자비한 식민 도시화의 상흔에 민족혼 부활의 새살 돋다

    무자비한 식민 도시화의 상흔에 민족혼 부활의 새살 돋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4차 창덕궁~창경궁 궁장 길’ 편이 가을이 농익어 가는 지난 5일 종로구 와룡동과 원서동, 계동 일대에서 2시간 20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창덕궁 정문 돈화문 앞에서 집결, 궁장을 따라 은덕문화원과 카페 ‘싸롱 마고’를 지나 ‘한양 3대 빨래터’로 유명한 원서동 빨래터를 찾았다.외삼문 앞에는 한샘디자인센터 연구소의 층층 한옥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중앙고등학교 교정에서 기미년 삼일운동이 태동한 비밀아지트 3·1기념관과 창덕궁 안 비공개 공간인 신선원전의 속살을 엿봤다. 성균관과 창경궁을 경계 짓는 성균관대 캠퍼스 옆 사색의 길을 따라 창경궁 앞으로 내려왔다. 국립어린이과학관에서 옛 청량리행 전차와 과학의 문을 구경한 뒤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에서 투어는 마무리됐다. 이번 코스의 유일한 서울미래유산인 은덕문화원 탐방은 백미였다. 100여년 전에 지어진 한옥 세심당과 일본식 가옥 인화당이 한 몸을 이루는 묘한 건물이다. 은덕문화원 김법열 원장이 “귀한 손님 오셨다”면서 투어단을 직접 안내했다. 해설을 맡은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해박한 궁궐지식으로 주말나들이를 흥겹게 했다.신이 자연을 창조했다면 인간은 자연개조를 통해 도시를 만들었다. 특히 도시는 근대를 대표하는 인간의 창작품이다. 이 땅에 근대성이 강제 이식된 일제강점기 경성(서울)은 식민지 종주도시의 특징에 맞게 근대도시로 성형됐다. 이 시기 창덕궁과 창경궁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안식처였다. ‘총독부’라는 살아 있는 권력 앞에 ‘이왕직’이라는 식물성 권력이 숨을 죽이며 엎드려 있는 암담한 공간이었다.식민지 근대화를 실현하는 무자비한 도시계획이 경성을 휩쓸었다. 경성의 근대화는 1912년 발표된 ‘경성시구개수’라는 이름으로 이뤄졌다. 옛 한양의 간선도로망을 정비하고 공간구조를 재편하는 내용이다. 요새 말로 서울도시계획이며 이때 서울 구도심의 얼개가 갖춰졌다. 당시 조성된 도시화의 대표 업적은 첫째 경복궁~남대문 구간 태평로(세종대로)의 개설이고, 둘째 경운궁(서울시청)~황금정(을지로) 간 방사성 도로망 구축이며, 셋째 경복궁~총독부의원(서울대병원) 간 종묘관통선(율곡로)의 부설이었다. 이 밖에도 26개의 남북 간, 동서 간 도로망 개설계획이 실행에 옮겨졌다. 경성 도심부를 격자형으로 정비, 전통적 중심 북촌과 일본인 거류민들의 신개척지 남촌을 연결했다. 1926년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를 신축이전하기에 앞서 총독부와 총독부광장을 중심으로 경성시내의 모든 도로를 연결하려는 사전정지 작업이었다. 조선왕조의 상징적 공간구조를 해체하려는 속셈이 숨어 있었다.창덕궁·창경궁 앞 도로 즉 지금의 율곡로가 바로 종묘관통선의 산물이다. 경성시구개수 제6호선 구간이다. 1912년 발표된 경성시구개수 예정계획도에 보면 ‘광화문 앞~대안동(안국동)광장~돈화문통(돈화문) 횡단~총독부의원(서울대병원) 남부 관통~중앙시험소(대학로 방송대 역사관) 부근의 너비 12간 도로’라고 돼 있다. 1간이 1.818m이니 21m가 넘는 신작로가 생긴 것이다. 문제는 이곳이 본래 길이 아니고, 길이 들어설 수 없는 곳으로 여겨졌다는 점이다. 조선의 핵심적 상징 공간이자 하나의 권역으로 인식된 창덕궁·창경궁·종묘 사이에 새로운 길이 뚫리는 걸 의미했다. 종묘관통선은 창덕궁·창경궁과 종묘를 분리, 관통하는 길이었다. 종묘관통선은 1912년에 계획이 수립됐지만, 1926년에야 공사가 시작됐고 1932년 완공될 만큼 거센 반발을 겪었다. 새로운 길이 종묘 영녕전 20여m 앞을 지나간다는 보고를 들은 순종이 왕실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종묘를 훼손하는 일이라면서 기겁을 했다. 1907년 즉위 이래 통감부나 총독부에 반대한 것은 처음일 정도로 이례적 사건이었다. 당시 이왕직 장관이던 이재극은 순종의 꾸중을 듣자 “종묘를 헐고 그곳으로 길을 낸다고 함은 열성조에 대하여 황송한 일”이라면서 총독부와 협의를 시도했다. 종묘관통선은 순종 생전에 추진되지 못했다.1926년 순종 사후 종묘관통선 부설계획이 다시 수면에 떠올랐다. 전주이씨 종약소를 중심으로 이른바 ‘종묘이전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총독부기관지 매일신보는 1926년 4월 29일자에서 “…장차 신설할 공원은 종묘이다. 현금 불경의 염려가 유하야 임의 출입을 금하는 터이나, 중인이 그 안에 들어가서 배관을 자주 할수록 숭경하는 심도가 더할 터임으로 공원으로 개방하는 것이…”라며 종묘를 궁에서 분리해 공원화하는 계획을 보도했다. 매일신보는 또 같은 해 5월 28일자에서 “이 길이 새로 나기만 하면 교통을 위해서는 비상히 편리할 터이나 대궐로서는 종묘와 연하였던 길이 끊어지고 종묘 중앙부가 끊기어 도저히 옛날의 엄숙함을 유지할 수가 없음으로 차라리 다른 적당한 장소를 택하여 이봉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여 그런 이전설이 생긴 것이라더라”라면서 이전움직임을 제시했다. 종묘를 관통하는 도로의 개설과 공원화가 식민당국과 관제언론의 일방적 주장만은 아니었다. 동아일보는 1926년 6월 28일자 사설에서 “혹자는 말하리라. 종묘는 지엄함 곳이니 일반 민중을 위하여 지대를 개방함은 그 숭엄을 범함이라고. …그러나 이것도 시세의 문제이다. 종묘사직이 계견불문처(닭이나 개 짓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만 그 숭엄을 보장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이다. …종묘지대는 경성부민의 보건과 도시미를 위하여 한걸음 더 나아가서 공원으로 공개될 것은 금후의 조선정세가 여하히 변할지라도 필연히 닥쳐올 운명이라고 아니 볼 수 없다”면서 당시로서는 매우 ‘불경한’ 주장을 폈다.종묘관통선 부설은 민족혼 말살차원에서 창덕·창경궁과 종묘를 분리시키려는 일제의 풍수단맥 시도인가 아니면 일반 공중의 교통편의와 도시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근대적 도시계획의 선택인가. 그동안 풍수단맥을 노린 의도적 도시계획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당시 일제가 굳이 종묘를 통과하는 직선노선을 고집하지 않고 종묘를 우회하는 새로운 수정노선을 제시한 점 등으로 미뤄 풍수단맥설을 정설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백영 광운대 교수는 “피식민 대중의 정서에 반하는 식민권력의 근대주의적 실천이 식민주의적으로 오인된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종묘관통선 개설은 1928년 공식화되고 1932년 준공됐다. 무시무시한 식민권력도 1912년에 계획을 세운 뒤 무려 20년 만에 완공한 도로이다. 서울시는 1986년 창경궁과 종묘의 단일 권역화를 처음 시도했지만 고궁의 원형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문화재 당국의 반대로 진척되지 못하다가 1988년 흐지부지됐다. 다시 20년이 더 흐른 2009년 창덕궁·창경궁과 종묘 사이의 통과구간을 원형대로 복원하는 지하화 공사에 들어가 연내 개통을 앞두고 있다. 현재 진행되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방안이 표류하는 가장 큰 원인이 교통흐름 처리문제이고 보면 100년 전 종묘관통선 개설 사례에서 배울 점이 많다. 돈과 시간이 들더라도 율곡로와 사직로를 직선으로 지하화해서 온전한 광화문광장을 만드는 게 정답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25차 성균관과 반촌 ■일시 및 집결 장소 : 10월 12일(토) 오전 10시 혜화역 3번 출구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서울 청량리·회기동에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

    서울 청량리·회기동에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

    부산 영도에 수리조선 혁신센터 건립 “부동산 시장 과열 땐 사업 중단·연기”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회기동에 바이오·의료 연구개발(R&D) 클러스터가 조성되고, 부산 영도구 대평동 일대는 선박 개조·제조 산업 거점으로 리모델링된다. 정부는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9차 도시재생특별위원회를 열어 ‘2019년 하반기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지’로 76곳을 선정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낙후 지역의 도심을 거점 개발 방식으로 되살리는 프로젝트다. 유형별로 중·대규모의 경제기반형·중심시가지형과 소규모의 일반근린형·주거정비지원형·우리동네살리기 등이 있다. 이번에 선정된 사업지 중 대규모 사업은 ▲서울 청량리·회기동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 ▲부산 영도구 대평동 수리조선혁신센터 건립 ▲경남 거제 고현동 일자리이음센터 건립 등 15곳이다. 정부는 이 사업들에 각각 최대 250억원의 국비를 지원한다. 경제기반형인 청량리·회기동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사업은 홍릉 일대에 49만 7000㎡ 규모의 ‘서울바이오 허브’를 만들고 이를 주변에 대학·연구기관·병원 등과 연계하는 프로젝트다. 사업비 4859억원이 투입돼 창업지원 공간, 바이오 연구·실험 공간, 바이오·의료창업 공간, 유망기업 육성 공간 등이 들어선다. 중소선박 건조 산업 붕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산 영도구 대평동 48만㎡에는 1996억원이 투입돼 기존 선박 수리·건조 산업을 고부가가치 선박 개조·제조 산업으로 전환된다. 경남 거제 고현동 일대(19만3000㎡)에도 1250억원의 예산으로 취업·창업, 일자리 안내 등의 서비스를 한 곳에서 받을 수 있는 ‘도시재생 복합기능 이음센터’가 들어선다. 이 밖에 정부는 소규모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지 61곳도 선발해 주거지역 정비와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사업 등을 진행한다. 정부의 도시재생사업이 부동산시장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김이탁 국토부 도시재생사업기획단장은 “지자체가 부동산시장 관리에 소홀하거나 부동산시장 과열이 우려되는 경우, 사업을 중단 또는 연기하고 다음해 사업 선정 과정에서도 불이익을 줄 것”이라며 “(뉴딜사업이) 부동산시장에 미칠 영향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세종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비긴어게인3’ 박정현 ‘아베마리아’ 무대 공개 “오 마이 갓”

    ‘비긴어게인3’ 박정현 ‘아베마리아’ 무대 공개 “오 마이 갓”

    ‘비긴어게인3’ 박정현이 아레나 원형 극장 앞에서 특별한 무대를 선보인다. 4일 방송되는 JTBC ‘비긴어게인3’에서는 이탈리아 동부 베로나에서 펼쳐진 박정현-하림-헨리-김필-임헌일의 첫 번째 정식 버스킹 현장이 공개된다. 베로나에서 진행된 ‘비긴어게인3’ 녹화에서, 패밀리밴드 멤버들은 ‘아레나 원형 극장’을 찾았다. 이곳은 매년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적인 야외 오페라 축제가 열리는 곳. 패밀리 밴드는 베로나에서의 첫 버스킹 장소로 아레나 극장 근처에 위치한 ‘브라 광장’을 택했다. 음악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에서의 특별한 공연을 앞두고 멤버들은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림은 “‘비긴어게인’을 하면서 가장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역사적인 곳 앞에서 버스킹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다”라며 감격했다. 이윽고 버스킹이 시작됐다. 감성보컬 김필이 첫 주자로 나섰다. ‘Like A Star’를 선곡한 김필의 목소리와 이에 어우러진 헨리의 비트박스가 아레나 광장을 로맨틱하게 물들였다. 또한 헨리는 자작곡 ‘제목 없는 Love Song’을 선보였고, 이 노래를 작곡한 배경을 공개했다. 이외에도 박정현의 ‘P.S. I Love You’, 임헌일과 박정현이 함께한 라디오헤드의 ‘Fake Plastic Trees’ 등 명곡의 향연이 이어졌다. 박정현은 또 한 번의 역대급 버스킹을 펼쳤다. 박정현이 버스킹 마지막 곡으로 선택한 노래는 슈베르트의 가곡 ‘아베 마리아’. 박정현은 노래에 앞서 “오 마이 갓”을 외치며 시종일관 긴장하고 떨리는 모습을 보였다. 박정현은 “(나는) 성악을 배운 사람이 아니고, 심지어 오페라 극장 앞에서 성악을 한다는 것은 모험적인 시도다”라고 고백했다. 이어 “아베마리아는 나도 들을 때마다 눈물 나는 노래다. 이 노래를 클래식 역사가 깊은 이탈리아에서 부르고 싶었다”라며 선곡 이유를 밝혔다. 한편, JTBC ‘비긴어게인3’는 4일 오후 9시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문화마당] 순수를 찾아서/송정림 드라마작가

    [문화마당] 순수를 찾아서/송정림 드라마작가

    시간의 세례를 받았지만 잊히지 않는 영화 몇 편을 다운받아 보다가 ‘시’를 봤다. 영화 속에서 걸어 나와 미자(윤정희)가 물었다. 당신 마음 안에서 순수는 안녕하시냐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느 날 나는 알게 됐다. 그 어떤 것을 해도 더이상 설레지 않는다는 것을…. 삶은 더이상 반짝이지 않았다. 사는 게 시들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가장 서둘러야 할 일은 내 마음속의 순수를 찾는 일이라고. 그래야 다시 행복할 수 있다고. “정교한 그림을 그리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다시 어린아이가 되는 데 사십년이 걸렸다.” 피카소가 한 말이다. 잃어버리면 다시 찾기 힘든 것, 그러나 꼭 찾아야 하는 것, 그것은 순수가 아닐까? 누가 훔쳐가 버린 것처럼 마음에서 사라져 간 순수, 영화 ‘시’에서는 그 순수를 시(詩)로 설명한다. 영화의 오프닝은 잔인하다. 평화롭게 흐르는 강물, 그곳으로 무엇인가가 떠내려 온다. 소녀의 주검이다. 소녀는 순수성을 상징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단언을 내린다. 이 세상에서 순수는 사라졌다고. 66세의 미자는 간병인 일을 하면서 홀로 손자를 키우며 살아간다. “난 꽃을 보기만 해도 배불러 밥 안 먹어도 돼요.” 미자는 시를 쓰고 싶어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 누구도 시원하게 답을 들려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미 순수는 사라졌으니까. 현실에 없는 것을 찾아 헤매는 미자는 그래서 엉뚱해 보이고 바보 같아 보인다. 미자에게 현실이 닥친다. 손자와 친구들이 소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사건이 있었다. 미자는 손자가 괴로워하기를 바란다. 나쁜 짓을 하면 괴로워해야 하기 때문이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면 자기 가슴에는 피멍이 드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자에게는 죄의식이 없다. 슬퍼하지 않는다. 손자와 함께 죄를 지은 아이들의 부모들은 돈으로 사건을 무마하려 한다. 죄를 짓고도 대가를 치르지 않고 넘어가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미자는 사랑하는 손자에게서 벌써 사라져 버린 순수가 슬프다. 시는 죽었고, 세상은 손자처럼 무신경하다. 그 속에서 갈등하며 손자를 사랑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미자는 결국 선택한다. 원칙을 지키기로. 그것이 순수였다. 순수는 곧 사랑하는 마음이다. 요즘 세태를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부모가 사랑하는 아이에게 줘야 하는 게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부모가 앞서서 아이 마음에서 순수를 거둬가 버린다. 순수를 간직한 사람도 드물고 순수를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도 보기 힘들다. 순수란 무엇일까? 순수와 순진은 다르다. 순진이 어린 시절에만 간직할 수 있는 거라면 순수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순수는 소신 있고 주관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세속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잘 알고 있어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순수는 거짓말할 줄 모르고 책임을 질 줄 안다는 것이다. 순수는 남의 잘못은 용서하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살아간다는 일은 어렵고, 그래서 더 가치 있다. 영화는 희망을 전한다. 결국에는 순수를 선택한 미자처럼 우리도 순수를 간직할 수 있다고. 잃어버린 순수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순수한 마음은 곧 시의 마음. 시는 말과 기호를 최대한 아껴서 최소한의 언어로 마음을 표현한다. 군더더기 욕심을 버리는 작업, 삶의 원형에 가까워지려는 노력, 정직해지려는 시도, 이것이 순수를 찾는 과정일 것이다. 순수를 되찾으려는, 원칙을 지키려는 그 시도는 행복에서 멀어져 버린 시린 내 인생에 건네는 따뜻한 악수다.
  • 정의가 넘쳐나는 시대… 조선의 풍문정치 ‘기축옥사’ 닮았다

    정의가 넘쳐나는 시대… 조선의 풍문정치 ‘기축옥사’ 닮았다

    거리에 정의가 넘쳐난다. ‘사회정의’를 앞세운 정치인, 대학교수, 대학생, 족벌언론, 법조인들이 거리마다 물결친다. 정의와는 담쌓은 자들이 그러하니 이 나라에 정의가 실현되는 걸까? 하지만 먼저 떠오르는 건 전두환이 방방곡곡 경로당에까지 걸었던 ‘정의사회구현’ 구호다. 각종 ‘사회정의를 바라는…’ 집단이나 모임은 ‘초록이 동색’ 같다. 조선 중기 사림은 3사(홍문관, 사헌부, 사간원)를 장악하고 지금의 국회의원, 교수, 대학생, 법조인 따위의 역할을 했다. 네 차례 사화로 철퇴를 맞기도 했지만, 중기에 이르러 정치와 사회를 주도했다. 그러나 권력을 장악하자 사림은 오로지 고담준론으로 혹세무민했다. 연암 박지원이 ‘양반전’과 ‘호질’에서 비판했던 바로 그 위선 덩어리였다. 선조 즉위년(1567년) 민생은 파탄 나고 국고는 거덜 났다. 중종 대만 해도 삼창(사창·의창·상평창)의 200만 석이 넘던 비축미는 전임 명종을 거치면서 바닥이 났다. 군자곡(군량미)은 연산군 초기만 해도 100만 섬에 이르렀지만, 중종 25년 50만 섬, 명종 6년엔 10만 섬으로 줄었다. 사섬시의 면포는 연산군 초기 20만여 동이었지만, 명종 6년엔 6만 동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세원이 줄고 세수가 줄었기 때문이었다. 세원 감소는 납세자인 양민이 공납 등을 이기지 못해 자경을 포기하고 제 발로 권세가의 머슴이 되었기(투탁) 때문이었다. 세금 내지 않은 권세가의 토지는 크게 늘었고 양민의 경작지는 급감했다. 양민이 권세가에게 투탁하거나 향리에서 도망가면 그 부담은 이웃에게 전가됐으니, 자경 포기자와 함께 세원과 세수는 기하급수로 줄었다. 영의정 이준경은 선조 2년 1월 구폐책을 제안했다. 세원인 공전을 확대하고 납세자인 양민을 늘리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구폐책은 사장됐다. 이른바 ‘개혁’을 입에 달고 다니던 ‘신진 사림’의 반대가 주효했다. 당시 신진 사림을 이끌던 기대승은 선조에게 이렇게 말했다. “변혁하는 것 역시 아름다운 일이나 상의 학문이 높아지고 경력이 오래 쌓인 연후 해야 하는 일들이 견고해질 것”이며 “누적된 폐단이 너무나 많아 지금은 인심을 복종시킬 수 없는데 갑자기 그 폐단을 구제하려고 한다면 다른 병통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준경은 선조 3년 공납의 폐단이라도 줄이려 했다. 조선은 양민들에게 경지 면적에 따라 지방의 토산물과 특산물을 현물로 경지 면적에 따라 내도록 했다. 공납의 수량은 갈수록 늘었다. 게다가 심사관들은 농민들의 공물에 일쑤 퇴짜를 놓았다(방납). 퇴짜 맞은 농민들은 업자들에게 고가로 사서 바쳐야 했고, 이를 위해 양반 대지주들의 고리채를 써야 했다. 철면피라도 방납 혁파의 명분마저 거부할 수는 없었다. 이준경의 제안대로 정공도감을 설치했다. 그러나 문서로만 존재하는 기구로 만들어버렸다. “임금은 전례를 따르기만 하도록 하고, 대신들은 혁신을 싫어해 단지 문서로만 감정하고 늘리고 줄여, 결국 아무 이익도 없었다”(선조수정실록 3년 11월 1일치). 좌의정 권철은 이렇게 딴지를 걸었다. “그와 같은 큰 정책은 명세지재(命世之才)가 아니고는 해낼 수가 없다.”당시 신진 사림은 기대승과 이이가 이끌고 정철, 윤두수 등이 그 뒤를 따랐다. 모두 향촌 출신이었다. 이들은 사화로 철퇴를 맞기도 했지만, 훈신과 척신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 때문에 왕실은 이들의 성장을 꾸준히 후원했다. 조광조의 개혁으로 훈척의 향촌에 대한 침탈이 억제되고, 향약의 보급과 사마소의 확대로 지방의 자율성이 높아지면서 이들은 향촌의 기득권세력이 되었다. 이준경의 개혁은 이들의 이해와 충돌했다. 말로는 조광조의 도학과 대의를 내세우며, 뒤로는 잇속만 차리는 이들에 대해 일찍이 남명 조식은 이렇게 비판했다. “당나귀 가죽에 기린 형상을 뒤집어쓴 것 같은 고질이 있다.” 선조에게 이런 상소도 올렸다. “나라의 폐단이 극에 달해 불에 타고 물에 빠진 것 같지만 조정에선 한갓 허명만 일삼고 논란만 하고 있다.” 이준경은 명종 말까지 사림 정치의 기틀을 놓았다. 명종 20년 문정왕후가 사망하자 영의정에 올라, 백성의 등골을 파먹던 왕실 재산 관리기구 내수사를 개혁하고, 당시 최고의 권력자였던 외척 윤원형을 숙청했으며, 선조 즉위년엔 인순왕후의 외척 심통원을 2선으로 물러나게 했다. 공신 책봉을 저지했으며, 소격서를 혁파하고 궁내 불당을 없애는 등 사림의 주도권을 확고히 했다. 그러나 주도권을 잡은 기대승·이이·정철 등 신진 사림은 이준경·노수신·백인걸·김난상·유희춘·김개 등 원로들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윤원형 시절 고위직에 있던 자들은 모두 윤원형의 앞잡이’라고도 매도했다. 이들은 인순왕후의 외척 청송 심문과도 손을 잡았다. 외척 심의겸은 신진 사림을 적극 후원했고, 아예 사림으로 신분을 세탁했다. 정철은 선조 2년 이이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먼저 (원로 대신들을) 쳐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이이의 ‘석담일기’) 다음은 선조수정실록 선조 2년 6월 1일치 기사. “신진 선비들이 떼 지어 서로 교유하며, 학문을 강론하면서 그들 스스로 한 무리가 되었고,… 이때부터 당파의 경색이 뚜렷이 갈라졌으므로 여염에서는 노(老)당, 소(少)당으로 지목하여 부르게 되었다.” 결국 청백리로 존경을 받던 김개가 쫓겨나고, 을사사화로 20여 년간 유배를 당했던 대사헌 백인걸, 대사간 김난상도 물러났다. 김난상은 심의겸이 사간원 정원에 앉히려던 박점에 대해 비리를 문제 삼아 거부했다가 오히려 탄핵을 당했다. 조정은 신진 사림의 천하가 되었다. 선조 5년 이준경은 마지막 상소를 올렸다. 네 가지 당부 가운데 마지막이 ‘붕당의 사론을 없애라’는 것이었다. “지금 사람들은 잘못한 바가 없고 법에 어긋난 일이 없더라도 자기와 한마디만 맞지 않으면 서로 배척하여 용납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거나 힘써 공부하지도 않으면서 고담대언으로 당파를 짓는 자를 훌륭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폐단을 제거하지 못하면 나라의 근심이 될 것입니다.” 신진 사림의 영수 이이가 발끈했다. “사림의 분열을 언급하여 훈구의 공격에 빌미를 줬다.” “원래 사람은 죽음에 이르면 그 말이 선해지는 법인데 이준경은 그 말이 악하다.” 그를 이렇게 평가하기도 했다. “거만하여 혼자 똑똑하다 하고, 선비들에게 굽히지 않으니, 끝내는 나라를 그르칠 말로 임금을 망쳐놓아 명예를 잃었다.” 서애 유성룡은 ‘운암잡록’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선조 초에 등용된 사람들은 대개 말과 행동이 서로 맞지 않은 이가 많으며, 공도를 버리고 당파를 위해서 죽는 폐습이 이루어졌다. 상공 이준경이 고치고자 하였는데, 사류라고 이름하는 자들이 떼를 지어 일어나 공격했다. 이때부터 조정은 둘로 나뉘어 당의 화가 비로소 일어나더니 이이, 정철 등이 일어남에 이르러 더욱 분열하게 되었다,” 말년의 이이는 후회했다. “동고(이준경의 호)가 옳았다.” 이렇게 한탄하기도 했다. “들뜬 논의의 위력은 태산보다 무겁고 칼날보다 예리해 그 칼날에 저촉되면 공명도 잃게 되고, 뛰어난 인재들도 그 명성을 잃게 된다. 그런데도 끝내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이상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이는 이준경의 뒤를 따라 공납의 폐단 등을 없애기 위해 대공수미법 실시를 주장했다. 그의 개혁안은 후배 사림에 의해 좌절됐다. 이런 일도 있었다. 사간원 관리들의 탄핵으로 용궁 현감이 처벌당했다. 따져보니 의혹은 거짓이었다. 선조는 무고한 자를 처벌하라고 했다. 좌승지 기대승이 막았다. “풍문을 포악한 방법으로 쓰면 허위가 되고 공정하게 쓰면 정당한 것이 됩니다. … 만약 부실했다 하여 말한 자를 죄 주면 누가 감히 탄핵하겠습니까. 들은 것이 있으면 다 말을 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후 툭하면 온갖 풍문, 억측을 동원해 무고하고 모함하고, 숙청하는 일이 벌어졌다. 신채호가 ‘조선 5백년 제1사건’이라고 개탄했던 기축옥사(1589년)는 그 절정이었다. 정철 등이 기획하고 조작한 이 옥사는 임진왜란 전야 조선 조정과 지식인 사회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요즘 위선자들의 ‘풍문 정치’가 그와 다르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논설고문 kbc@seoul.co.kr
  • 굴곡진 인간사도 흘러가는 별천지

    굴곡진 인간사도 흘러가는 별천지

    강원 화천군 사내면 삼일리에 있는 화음동 계곡은 크게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뛰어난 비경의 장소다. 여기에 ‘인문석’이라 부르는 너럭바위가 있다. 원형과 사각형, 팔각형의 낯선 도형들과 몇 개의 한자들이 새겨진 바위다. 얼핏 보면 마치 외계의 미스터리 사인 같다. 그러나 이 기호들은 동아시아 인문학의 기초인 음양도, 하도와 낙서, 복희팔괘와 문왕팔괘다. 이를 확인이라도 하듯, 河.洛.羲.文.-하도, 낙서, 복희, 문왕-의 4자와 인문석(人文石)이라는 3자를 새겼다.●주택·정자··서재… 수양의 정원, 화음동정사 음양도는 두 개의 반원이 서로 교차하며 음양의 운동을 상징한다. 하도는 황하에 나타난 용마가 가져온 그림이며, 인류 문명을 창시한 전설적 제왕 복희가 하도를 얻어 우주 생성의 원리를 터득했다. 낙서는 낙수에 출현한 신성한 거북이가 가져온 책의 한 장으로, 하나라 우임금이 낙서를 얻어 우주 상극의 원리를 깨달았다. 복희는 하도에서 이른바 복희팔괘를 만들어 하늘의 원리에 통했고, 주나라의 기틀을 세운 문왕이 낙서에서 문왕팔괘를 만들어 인간사의 원리를 통했다. 문왕은 더 나아가 두 팔괘를 곱해서 주역의 64괘를 완성했다. 송나라의 유학자 주돈이는 이 상징적 과정들을 종합해서, 태극이 음양을 낳고, 음양이 8괘를 낳았으며, 복희와 문왕의 8괘가 겹쳐 64괘를 낳았다는 거대한 인식론의 체계를 형성했다. 후학인 주희는 이를 바탕으로 실천적인 형이상학 즉 성리학을 정립했고,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 성리학을 개인과 국가의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화음동 계곡의 인문석은 자연 속에 새긴 성리학의 교과서요, 조선 지식계의 확신 선언이었다. 인문석을 새긴 이는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며 고위 관료인 김수증(1624~1701)이다. 그는 이곳에서 인문석을 중심으로 여러 건물들을 짓고, 정원을 만들어 ‘화음동정사’라 했다. 삼일천 개울의 서쪽에 주택을 조성해 거주공간으로, 동쪽에 정자와 서재를 지어 수양공간으로 삼았다. 기록에 따르면 서쪽 주택은 ‘부지암’으로, 작은 연못을 파고 냇가에 정자를 지었다. 주택을 위해 쌓은 석축과 정자의 기둥자리 흔적도 남아 있다. 계곡 가운데 월굴암이라는 우뚝한 바위가 있어 이곳에 건너편 바위인 천근석에 긴 나무다리를 걸쳐 건널 수 있게 했다는데, 현재는 월굴암 위에 초가정자인 송암정만 복원했다. 동쪽 인문석 위에는 삼일정이라는 특이한 정자를 지었다. 매우 희귀하게도 세모난 삼각정이다. 지형 때문에 기둥을 3개만 세울 수 있다고 했지만 오히려 천지인 삼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래 인문석이 성리학의 우주관을 상징한다면, 위의 삼일정은 고유한 삼일사상을 상징해 비로소 전체 우주론을 완성하게 된다. 정자 뒤편에는 서재인 ‘무명와’를 지었고, 방 하나에 삼국지의 제갈량과 생육신 김시습의 초상화를 걸어 ‘유지당’이라 했다. 개울의 좌우에 두 영역을 배열하고, 자신은 깨우친 바가 없어 ‘부지암’에 살지만, 삶의 모델인 제갈량과 김시습은 깨달음의 경지에 달해 ‘유지당’에 모셨다. 좌우와 유무의 설정 자체가 음양론이며, 자연과 건물이 어우러진 변화무쌍한 경치를 즐겼다. 주역의 대가인 송나라 시인 소옹의 ‘음양소식관’을 구현한 결과다.●자연 속의 은거, 김수증의 주자 닮기 성리학은 우주의 원리부터 인간의 심성까지 하늘과 땅의 모든 이치를 밝히고 하나로 엮은 학문이며 사상이었다. 이 거대한 체계를 완성한 송나라의 주희는 주자로 격상돼 조선조 지식인의 사표가 됐다. 그 추종은 거의 종교적이어서 그의 삶과 활동까지도 숭상의 대상으로 올라섰다. 주자는 젊어서 과거에 합격했으나 30대부터 향리에 들어가 일생을 은거했다. 복건성 숭안현 무이산 자락에 무이정사를 짓고, 무이구곡을 경영했다. 정사란 세속과 격리된 곳에 지은 수양용 건축이며, 구곡은 한 계곡의 절경 아홉 곳을 선택한 거대한 자연 정원이다. 조선조 선비들의 이상은 자신만의 정사에 머물고 구곡을 경영하여, 궁극적으로 주자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이었다. 김수증 역시 화음동정사를 짓고, 인근 사내천에 곡운구곡을 경영했다. 김수증의 조부는 병자호란 때 척화파로 유명한 김상헌이며, 큰할아버지는 항복 소식에 순절한 김상용이다. 정승까지 지낸 두 조부의 지조는 조선 선비들의 모범이 됐다. 김수증의 두 동생, 김수흥과 김수항은 모두 영의정을 지낸 대단한 형제였다. 또한 김창집 등 김수항의 여섯 아들은 모두 고위직이며 문예의 대가들로서, 아버지 3형제와 묶어 ‘삼수육창’이라 칭송받았다. 그들의 자손은 더욱 번창해 조선 후기 최고의 명문가를 이루었으니, 그 유명한 신안동(장동) 김씨 가문이다. 그러나 김수증은 세상 명예에 그다지 흥미가 없고 화천 골짜기에 은거하기를 즐겼다. 어지러운 정국 속에서 출세의 허망함을 깨달았을까? 그 시대는 그야말로 정치 광란의 시대였다. 왕가의 상복 입는 문제로 발단한 ‘예송’ 논쟁은 남인과 서인의 사활을 건 투쟁으로 치달았고, 왕들은 이들의 대립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오히려 당쟁을 부추겼다. 서인이 승리한 기해예송을 시작으로 갑인예송, 경신옥사, 기사환국, 갑술옥사까지 남인과 서인의 정권이 교체됐다. 서인의 핵심 세력은 김수흥·수항 형제였고, 옥사와 환국 정국에서 모두 죽임을 당했다. 갑인예송(1674년) 전후로 김수증은 화천 사내면 영당동에 농수정사를 짓고 이주했다. 이때부터 일대에 곡운구곡을 경영하기 시작했고, 1689년 기사환국 때 다시 화천으로 낙향해 화음동정사를 짓고 죽을 때까지 은거했다. 극과 극을 부침한 인간사에서 음양의 진리를 다시 깨달았을 것이다. 위로를 받을 곳은 오로지 자연이요, 믿을 것도 오로지 자연뿐이다. 구곡과 정사에서 은거하기는 주자가 가르쳐 준 유일한 행복의 방정식이었다.●곡운구곡, 물과 바위의 거대한 정원 곡(曲)이란 휘어져 흐르는 물 구비다. 물은 왜 휘어지는가? 산과 바위가 흐름을 막기 때문이며, 물은 휘어 흐르면서 바위를 깎아 절경을 이룬다. 그 가운데 단 아홉 곳만 선택했으니 구곡은 절경 중의 절경이다. 김수증은 이곳을 발견하고 “금강산 만폭동 계곡에 비견할 만한 명승이고, 더욱이 매월당 김시습의 유적이 있는 곳이니 터를 잡아 의지할 곳”이라 했다. 이미 자연주의자 김시습도 인정했던 탁월한 곳이라는 말이다. 구곡은 하류부터 상류로 올라가며 순서를 정한다. 그리고 각각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한다. 1곡 방화계, 2곡 청옥협, 3곡 신녀협, 4곡 백운담, 5곡 명옥뢰, 6곡 와룡담, 7곡 명월계, 8곡 융의연, 9곡 첩석대. 흐르는 물은 그 모양에 따라 여러 이름을 가진다. 계는 평탄한 흐름, 협은 좁고 빠른 흐름, 담은 깊고 작은 고임, 뢰는 급하게 휘도는 여울, 연은 크게 고인 물을 의미한다. 그 앞에 붙은 꽃, 옥, 구름, 달 등은 도교적인 상징으로, 신선의 장소가 된다. 자신의 아들, 조카, 외손들에게 시를 지어 각 곡의 경치를 그린 ‘곡운구곡가’를 만들었다. 그중 9곡가는 “이곳 말고 인간 세상에 별천지가 있으랴” 하고 끝을 맺는다.여기서 끝이 아니라 이제는 그림으로 남겨야 한다. 주자의 ‘무이구곡도’는 조선 양반들이 최고로 선호한 소장품이었다. 가 보지 못하니 그림으로 즐겨야 했기 때문이다. 서인이 정권을 잡은 경신환국 때, 김수증은 잠시 서울로 거처를 옮긴다. 1682년 평양의 양반화가 조세걸에게 직접 현장에 가서 실경을 그리라고 특별 주문해 ‘곡운구곡도’를 제작했다. 화첩으로 만들어 멀리서도 구곡을 감상하려는 목적이었다. 화첩은 아홉 곡과 농수정 그림 하나를 더해 모두 10첩이다. 6곡은 삼일천과 사내천이 합류하는 곳으로 이곳에 농수정사와 정자를 지어 은거지로 삼았다. 현재 곡운영당이 있는 곳이다. 그림은 솔 숲 사이에 초가와 기와의 살림집, 담 밖의 정자와 정원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곡운구곡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김수증의 이상이 응축된 소우주였고, 시와 그림으로 추상화한 거대한 건축이었다. 화음동 삼일정의 세 추녀에 각각 음양, 강유, 인의라고 썼다고 전한다. “인간사는 음양의 굴곡이 있으니, 때로 단단하고 때로 유연해야 하나, 늘 어질고 의로움은 잊지 말라”는 일생의 깨달음을 남긴 것이다.
  • 공연시장 양적·질적 성장했는데… ‘극장 공공성’은 어디 갔나

    공연시장 양적·질적 성장했는데… ‘극장 공공성’은 어디 갔나

    한국 공연시장 규모는 2017년 12월 기준 8132억원을 기록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07년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후 처음 8000억원대를 넘어섰다. 공연시설 매출액은 3500억원으로 전년보다 1.9% 증가했고, 공연단체 매출액은 4632억원으로 14.5% 늘었다. 전체 공연시장 성장과 맞물려 공연시설 또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말 기준 문체부에 등록된 공공 공연시설만 529곳에 달한다. 롯데콘서트홀, LG아트센터 등 민간 공연시설까지 포함하면 전국에 826개 공연 시설이 있다. 시설 증가와 시장 성장은 질적 성장으로도 이어졌다. 선우예권, 손열음, 조성진 등 클래식계에서는 젊은 연주자들이 끊임없이 세계무대로 나아가고 있고, 국내 제작 뮤지컬과 연극의 해외 시장 공략도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양적·질적 성장을 이룬 국내 공연계에서 ‘극장의 공공성’을 묻는 움직임도 도드라졌다. 성장 중심의 기존 극장 운영 관행을 돌아보는가 하면, 순수예술과 예술인들의 생존이 달린 극장도 있다.●‘정체성 찾기’ 토론회 연 중구문화재단 서울 충무아트센터를 운영하는 중구문화재단은 지난 2월 21일 제6대 사장으로 윤진호 전 서울주택도시공사 미래전략실장이 취임했다. 윤 사장은 취임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다른 기관장들이 관례적으로 여는 ‘취임 언론 간담회’는 열지 않고, 충무아트센터의 방향성과 운영계획을 점검하기 위한 장기 라운드 테이블 진행을 지시했다. 비교적 안정적 수익이 보장되는 인기 뮤지컬 공연 중심으로 운영해온 충무아트센터의 공공성을 재정립하고, 지역사회 공헌과 문화·예술인 지원 방안 모색이 라운드 테이블의 주요 목표다. 중구문화재단은 7월부터 지난 19일까지 3차례에 걸쳐 토론회를 진행하면서 각계 공연·예술 전문가 외에 해당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토론회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극장의 ‘성장’이 아닌 ‘공공성’을 논하는 자리가 마련되자 격론이 쏟아졌다. 논쟁의 포문은 첫 토론이 열린 7월 5일 손상원 정동극장장이 열었다. 손 극장장은 수익성 경쟁에 내몰려 민간극장과 구분이 흐려진 공공극장의 현실을 꼬집었다. 그는 “많은 공공극장이 자신들의 예술적 정체성과 공연장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지만, 큰 노력과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며 우수한 결과를 내놓은 곳은 많지 않다”면서 “공공극장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지역 거점 공간으로서 역할 정립과 방안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대학로에서 바라본 공공극장의 공공성 문제’를 주제로 발표한 김세환 극장 혜화당 대표는 전국 지방자치단체별 공공극장이 놓인 현실을 더욱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김 대표는 “공공극장은 공연장 대관을 통해 수익창출을 목표로 만들어진 극장이 아닌데도, 현재 국내 공공극장들은 독립적인 예술단을 보유한 극소수의 극장을 제외하면 대관을 핵심 업무로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대표는 이어 “대학로의 민간극장 1일 공연 대관료가 평균 20만~40만원 수준이라면, 공공극장에서 공연 시 1일 대관료는 부대설비 항목까지 포함하면 100만원에 육박하거나 그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현실을 극복할 대안으로 프랑스식 공공극장 운영 사례를 제시하면서 “예술가와 지역주민, 극장행정가가 함께 참여해 극장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구문화재단은 충무아트센터의 공공성 회복을 위해 크게 ▲소극장 ‘블루’ 전면 무료개방 및 제작지원 ▲중극장 ‘블랙’ 시즌제 공연시리즈 공동기획 ▲대극장 자체기획 공연 강화 등을 제시했다. 국가가 운영하는 국립극장과 예술의전당, 서울시가 운영하는 세종문화회관과 달리 예산 확보와 지원이 어려운 지자체 공공극장 현실을 감안해 상업성과 공공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절충안으로 이런 방안을 검토 중이다.●친일 재산 사유화 논란 남산예술센터 국내 유일 창작극 중심 공공극장인 남산예술센터(옛 드라마센터)는 당장 폐관 위기에 내몰리면서 연극인들이 행동에 나섰다. 1962년 4월 개관해 원형대로 보존된 가장 오래된 현대식 공연장인 남산예술센터는 2009년부터 10년간 서울시가 극장 소유주인 서울예대(학교법인 동랑예술원)로부터 임차해 서울문화재단이 공공극장으로 위탁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서울예대가 서울시에 일방적으로 임대계약 종료를 통보하면서 연극계 안팎에서 극장의 공공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서울예대가 현재 입장을 유지하면 서울시와의 계약은 2020년 12월 종료된다. 이에 연극계에서는 공공극장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조직됐고 관련 연구를 엮은 책 ‘유치진과 드라마센터-친일과 냉전의 유산’도 발간했다.비대위 조사 내용에 따르면 남산예술센터 건립 당시 이를 주도한 인물은 ‘남한 연극의 아버지’로 추앙받았지만, 문화계 대표적인 친일 인사로 확인된 극작가 유치진이다. 유치진은 미국 록펠러재단으로부터 4만 5000달러를 지원받아 현 부지에 극장을 조성했다. 이 부지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땅으로 해방 후 한국 정부가 소유했다. 개관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특별명예회원으로 특별운영비를 주는 등 냉전시대 한미 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비대위는 “냉전체제에서 미국은 남한에 문화정책을 통한 이데올로기 주입이 필요했고, ‘민족연극’을 내세운 유치진은 2·3공화국 정치 실력자와 결탁해 설립 당시 국유재산이던 남산예술센터를 사유화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유치진은 1966년 한 일간지 인터뷰를 통해 “드라마센터(남산예술센터)는 절대로 사유화되지 않는다. 우선 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당시에도 연극계에서 일었던 사유화 의혹을 해명하는 데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유치진은 남산예술센터를 자신이 세운 학교법인 한국연극연구원(동랑예술원의 전신)에 기부했다.●연극무대에 오른 ‘극장의 과거와 미래’ 비대위는 그간 미국과 한국 정부에서 확인한 과거 기록물을 바탕으로 서울예대와 협상 당사자인 박원순 서울시장 면담을 추진하는 한편, 이 문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연극으로 제작해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남산예술센터가 극단 산수유와 공동제작한 연극 ‘오만한 후손들’은 앞서 출간한 책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았다. 작품은 남산예술센터의 역사를 추적해 부조리함을 재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을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할 것인지’를 묻는다. ‘민족문화의 화합’을 위한 극장이 현재에 이르러 어떻게 ‘불공정한 합법’으로 사유화됐는지를 법의 논리가 아닌 공공의 정의로 이 문제를 다뤘다. 연출을 맡은 류주연 연출은 지난 1월 남산예술센터 시즌프로그램 발표 당시 “드라마센터 사유화 문제는 연극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이번 공연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는 연극계의 우려와 달리 낙관적인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서울예대 측과 임대차 관련 논의를 하고 있는데, 학교 측도 2021년 1월부터 재계약과 관련해 남산예술센터의 장기적 공연 기획을 보장하기 위해 현재 3년 단위 계약기간을 조금 더 장기로 맺는 등 공공극장으로서 안정적 운영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조건에 대해서는 “아직 계약 기간이 1년 남았기 때문에 추후 협의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블랙홀은 어떻게 시공간 왜곡하나…NASA 시뮬레이션 영상 공개

    블랙홀은 어떻게 시공간 왜곡하나…NASA 시뮬레이션 영상 공개

    블랙홀이 시공간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보여주는 시뮬레이션 영상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26일(현지시간) NASA 산하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소속 천체물리학자 제러미 슈니트먼 박사가 커스텀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이런 영상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블랙홀 소식을 다루는 ‘블랙홀 위크’를 맞이해 발표된 영상에서 가상 블랙홀의 모습은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나온 거대질량 블랙홀 가르강튀아와 거의 흡사하다. 시뮬레이션 속 블랙홀은 밝게 빛나는 강착원반에 둘러싸인 모습이다. 응축원반으로도 불리는 이 얇은 디스크는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에 의해 찢긴 물질의 입자들이 매우 빠르게 회전하면서 발생한 열에 의해 빛을 내뿜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블랙홀의 중력은 너무 강력해 바로 이런 주변 환경의 모습을 왜곡한다는 것이다.영상에서 중심의 검은 원반은 블랙홀의 그림자다. 이는 블랙홀이 강착원반에서 근처에 있는 입자에서 나오는 빛을 포획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 바깥쪽에는 밝은 영역이 고리 형태로 나타난다. 빛이 블랙홀의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영역이므로 밝게 빛나는 것이다. 따라서 밝은 고리는 검은 원형의 그림자를 둘러싼 형태로 보인다. 영상에서 블랙홀의 그림자를 둘러싼 고리는 왼쪽이 밝고 오른쪽이 어둡다. 이는 도플러 빔 효과 때문이다. 강착원반에서 가스가 회전하면서 빛을 내면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가스는 도플러 효과를 받아 더 밝게 보이고 반대로 멀어지는 가스는 더 약하게 보이는 것이다. 또한 영상에서 고리 위쪽에 있는 빛은 실제로 블랙홀의 뒤쪽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으로 인해 왜곡돼 보이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슈니트먼 박사는 “이런 시뮬레이션은 아인슈타인이 중력은 시공간의 구조를 휘게 만든다고 말했을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 시각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 “아주 최근까지 이런 시각화는 우리의 상상력과 컴퓨터 프로그램에 제한돼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4월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EHT·Event Horizon Telescope) 협력단의 과학자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블랙홀을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 6대륙에 있는 대형 전파망원경 8대를 연결한 지구 크기의 가상 망원경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NASA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공연리뷰] 기타 맨 꽃미남 핑크빛 목소리…“오빠” “사랑해” 1만명 관객 홀릭

    [공연리뷰] 기타 맨 꽃미남 핑크빛 목소리…“오빠” “사랑해” 1만명 관객 홀릭

    무대 위 꽃미남의 손 키스에 고음의 환호성이 사방에서 터졌다. 별로 길지 않은 머리칼을 쓸어넘길 때면 “아이 러브 유”라는 외침이 객석에서 무대로 쏟아졌다. 캐나다 출신 싱어송라이터 숀 멘데스(21)의 첫 내한공연 분위기는 여느 팝가수들의 내한공연과 국내 인기 아이돌 콘서트 중간쯤에 놓여 있었다. 지난 2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옛 체조경기장)은 약 1만 관객으로 가득 찼다. 2014년 데뷔 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숀 멘데스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팬들이었다. 2013년 기타를 치면서 부른 커버곡 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며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이듬해 정식으로 음반을 냈고 2015년 첫 정규 앨범 ‘핸드리튼’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며 최연소 타이기록을 세웠다. 최근에는 인기 팝가수 카밀라 카베요와 열애설이 끊이지 않으며 톱스타다운 관심을 받고 있다.청재킷을 걸치고 기타를 맨 숀 멘데스는 ‘로스트 인 재팬’으로 무대를 열었다. 노래에 맞춰 관객들이 찬 팔찌의 불빛이 공연장을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메인무대와 별도로 공연장 한가운데 설치된 원형무대 위 거대한 장미 조형물 역시 은은한 핑크빛 조명을 밝혔다. ‘데어스 낫싱 홀딘 미 백’, ‘너버스’, ‘스티치’ 등 경쾌한 무대가 이어졌다. 관객들의 시선은 무대 위를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숀 멘데스의 움직임과 귀여운 미소로 가득 찬 대형스크린을 분주히 오갔다. 그는 “한국에서의 공연은 처음이다. 여기 있는 모든 분에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고마움을 느낀다”며 “공연을 훌륭하게 만드는 것은 여러분이다. 노래를 멈추지 말고 따라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무대 끝에서 허리를 굽히고 팬들과 눈을 맞출 때, 원형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 팬들의 손을 잡아 줄 때는 즐거운 비명소리가 더욱 커졌다.피아노를 치면서 부른 ‘아이 노 왓 유 디드 래스트 서머’, 무대 위에 앉아 부른 ‘와이’ 등 잔잔한 노래 중간에도 때때로 “오빠”, “사랑해” 등 환호가 이어졌다. 노래에 최대한 귀 기울이는 여타 싱어송라이터 공연과는 달리 애정 표현에 적극적인 팬들이 많았다. 관객 열에 아홉은 여성 팬들로 채워진 것도 눈에 띄었다.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20여곡의 꽉 찬 무대를 선보인 그는 “다음에 또 봐요”라는 말을 남기고 작별을 고했다. 한편 공연 주최 측은 공연장에 반입 가능한 가방 크기를 제한하는 등 이번 공연을 유독 세심하게 살폈다. 10만원이 넘는 티켓 가격에도 물품보관 비용은 별도로 3000원이 청구됐고 현금 지불만 가능했다. 일행이 있어도 가방 1개당 비용을 따로 내야 했다. 일부 관객들은 인근 지하철역 물품보관소를 이용하는 등 불편을 겪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공연리뷰] 기타 맨 꽃미남 숀 멘데스… “오빠 사랑해” 1만 관객 홀릭

    [공연리뷰] 기타 맨 꽃미남 숀 멘데스… “오빠 사랑해” 1만 관객 홀릭

    무대 위 꽃미남의 손 키스에 고음의 환호성이 사방에서 터졌다. 별로 길지 않은 머리칼을 쓸어넘길 때면 “아이 러브 유”라는 외침이 객석에서 무대로 쏟아졌다. 캐나다 출신 싱어송라이터 숀 멘데스(21)의 첫 내한공연 분위기는 여느 팝가수들의 내한공연과 국내 인기 아이돌 콘서트 중간쯤에 놓여 있었다. 지난 2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옛 체조경기장)은 약 1만 관객으로 가득 찼다. 2014년 데뷔 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숀 멘데스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팬들이었다. 2013년 기타를 치면서 부른 커버곡 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며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이듬해 정식으로 음반을 냈고 2015년 첫 정규 앨범 ‘핸드리튼’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며 최연소 타이기록을 세웠다. 최근에는 인기 팝가수 카밀라 카베요와 열애설이 끊이지 않으며 톱스타다운 관심을 받고 있다.청재킷을 걸치고 기타를 맨 숀 멘데스는 ‘로스트 인 재팬’으로 무대를 열었다. 노래에 맞춰 관객들이 찬 팔찌의 불빛이 공연장을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메인무대와 별도로 공연장 한가운데 설치된 원형무대 위 거대한 장미 조형물 역시 은은한 핑크빛 조명을 밝혔다. ‘데어스 낫싱 홀딘 미 백’, ‘너버스’, ‘스티치’ 등 경쾌한 무대가 이어졌다. 관객들의 시선은 무대 위를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숀 멘데스의 움직임과 귀여운 미소로 가득 찬 대형스크린을 분주히 오갔다. 그는 “한국에서의 공연은 처음이다. 여기 있는 모든 분에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고마움을 느낀다”며 “공연을 훌륭하게 만드는 것은 여러분이다. 노래를 멈추지 말고 따라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무대 끝에서 허리를 굽히고 팬들과 눈을 맞출 때, 원형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 팬들의 손을 잡아 줄 때는 즐거운 비명소리가 더욱 커졌다.피아노를 치면서 부른 ‘아이 노 왓 디드 유 래스트 서머’, 무대 위에 앉아 부른 ‘와이’ 등 잔잔한 노래 중간에도 때때로 “오빠”, “사랑해” 등 환호가 이어졌다. 노래에 최대한 귀 기울이는 여타 싱어송라이터 공연과는 달리 애정 표현에 적극적인 팬들이 많았다. 관객 열에 아홉은 여성 팬들로 채워진 것도 눈에 띄었다.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20여곡의 꽉 찬 무대를 선보인 그는 “다음에 또 봐요”라는 말을 남기고 작별을 고했다. 한편 공연 주최 측은 공연장에 반입 가능한 가방 크기를 제한하는 등 이번 공연을 유독 세심하게 살폈다. 10만원이 넘는 티켓 가격에도 물품보관 비용은 별도로 3000원이 청구됐고 현금 지불만 가능했다. 일행이 있어도 가방 1개당 비용을 따로 내야 했다. 일부 관객들은 인근 지하철역 물품보관소를 이용하는 등 불편을 겪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 국립광주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 국립광주박물관

    #빗살무늬토기 #국립광주박물관 #중흥산성쌍사자석등 “빗살무늬토기에는 금이 패어져 있었다...(중략)...예쁘라고 팠다. 금이 있어야 사람이 쓰는 물건이다라고 아빠는 그랬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김훈, 1995, 문학동네> 정말 우리 조상님들은 빗살무늬토기의 금을 예쁘라고 팠을까? 명쾌한 상상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빗살을 그었으리라.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은 한 소방대원과 맹인안마사의 죽음을 통해 신석기 시대의 농경문화와 현재의 기술 문명을 잘 잇고 있다. 더 이상 빗살무늬토기는 품질이 투박하고 조악한 토기가 아니라 문명의 시원(始原)을 증명하는 도구이자 당시 최고 수준의 기술 문명이라고 작가는 에둘러 말한다. 너무도 오래되어 어쩌면 잊혀진 시간들, 그러기에 더더욱 낯설게 남겨진 갈돌, 돌칼, 돌도끼, 빗살무늬토기를 만나러 간다. 빛고을 광주(光州)국립박물관이다.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이미 훌쩍 넘어가버렸다. 그러하기에 국립광주박물관 나들이는 ‘딱’ 제철을 맞았다. 광주체고 길로 올라가도 되고, 매곡동을 지나 직진해도 된다. 국립광주박물관은 광주 도심 안에 적당히 붙어 있으면서도, 외따로 떨어져 있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시간도, 풍경도 충분히 여유롭게 흘러가는 듯 모든 것들이 평화롭다.국립광주박물관은 지역박물관으로서는 단연 맏형이라고 불러도 된다. 왜냐하면 광복 이후에 우리 손으로 지은 최초의 지방 국립박물관이 바로 국립광주박물관이기 때문이다. 1978년 12월 6일에 개관한 국립광주박물관은 광주와 전남지역의 오랜 농경문화와 전통문화의 흔적을 잘 간직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박물관의 규모도 상당하다. 대지면적이 82,993㎡에 달하고 연면적은 15,127㎡, 건축면적 5,575㎡에 이르며 소장품만 120,000여점이 넘는 곳이다. #강진고려청자 #1975년신안해저유물 #광주나들이장소현재 국립광주박물관은 1층과 2층, 그리고 옥외전시실로 크게 구획이 나뉜다. 우선 박물관 로비로 들어서면 국보 제 103호인 ‘중흥산성 쌍사석등’이 보이고 이를 지나면 ‘선사, 고대문화실’이 바로 나온다. 바로 이곳에서 우리는 신석기시대의 덧무늬토기, 청동기시대 간돌검을 비롯하여 국보 143호로 지정된 청동기시대의 화순 대곡리 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또한 1층에는 ‘농경문화실’도 있어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농경유적인 광주 신창동 유적과 아울러 철기 시대의 다양한 농사도구들도 볼 수 있다.박물관 2층에 올라가면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불교미술, 도자, 서화 등 다양하면서도 진귀한 유물들도 만날 수 있다. 2층 전시관에는 수준 높은 불교 미술을 증명하는 사리장엄구, 불교 의식구, 불상 등도 있을 뿐만 아니라 고려청자의 본향인 강진에서 만든 세련된 청자와 조선의 분청사기, 백자 등도 보존 전시되어 있어 선조들의 수준 높은 미의식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975년 신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2만 4천여 점의 진귀한 유물들 중 13세기 후반 중국 원(元)나라 도자기와 연적 등도 전시되어 있어 14세기 해상 실크로드를 통한 동북아 국제교류의 양상도 이곳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또한 박물관 옥외 전시실은 편안한 휴식과 나들이 공간이자 광주 주변 지역 옛 절터, 유적 등에서 옮겨 온 문화재들도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청동기 시대의 전남 고흥의 고인돌 무덤방과 강진의 청자가마터, 광주 장운동의 오층석탑 등이 복원 전시되어 있어 가족 단위의 가을 나들이 공간으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국립광주박물관에 대한 방문 10문답> 1. 방문 추천 정도는? - ★★★☆ (★ 5개 만점) - 편안한 공원 같은 곳이다. 가을 나들이 공간으로는 제격이다. 2. 누구와 함께? - 연인끼리 조용한 데이트를,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나들이 공간. 3. 가는 방법은?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110(매곡동 430번지) - 버스 : 송정 29, 송정 33, 문흥 53, 상무 63, 용전 84, 용전 85, 첨단 95번 광주박물관 하차. 4. 특징은? - 호남 문화의 원형을 만날 수 있다. 광주를 넘어 호남 전역의 농경문화의 시작점을 확인.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늘 한산한 편이다. 가족 단위로 다녀오면 좋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1층 선사고대문화실, 2층 신안해저문화재실 7. 토박이들로부터 확인한 추천 먹거리는? - 매곡동 주변으로 가면 맛집들이 많다. ‘전승규의 감자탕이야기’, ‘윤씨네돼지갈비’, 돌솥밥 ‘넝쿨채’, ‘돼지전설’, 칼국수 ‘달자네집’ 8. 홈페이지 주소는? - 요금 및 운영 관련 자세한 내용은 https://gwangju.museum.go.kr/kor/index.do 으로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광주시립미술관, 중외공원, 광주어린이대공원 10. 총평 및 당부사항 - 국립광주박물관은 광주 안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이 덜 붐비는 곳이지만 소장품이나 박물관 연혁으로 보아서는 국내 최고 수준의 박물관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까지 너끈히 아우를 정도의 박물관이 바로 국립광주박물관이다. 격(格)을 제대로 갖춘 정통 박물관.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이춘재 얼굴 공개, 교도소 수감 동료 하는 말이..

    이춘재 얼굴 공개, 교도소 수감 동료 하는 말이..

    ‘실화탐사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이춘재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이 공개됐다. 25일 이춘재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이 공개됐다. 사진과 화성사건 몽타주를 비교해보면 전체적으로 닮았다. 쌍꺼풀이 없으며 이마가 넓고 턱이 뾰족한 것이 흡사하다. 오른쪽 눈썹이 원형이고, 왼쪽 눈썹은 일자형에 가깝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춘재는 몽타주와 너무 흡사해 그와 함께 부산교도소에서 수감 중이었던 동료 수감자들 사이에서 ‘그가 범인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최근 이춘재와 부산교도소에서 같이 수감 생활을 했던 A씨를 인터뷰가 전해졌다. A 씨는 “화성 연쇄살인사건 범인 몽타주를 봤던 수감자들 사이에서 이춘재를 보고 ‘범인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1988년 7차, 1990년 9차 사건 당시 용의자를 목격했다는 버스운전기사, 안내양, 차를 타고 지나갔던 한 남성 등의 진술을 바탕으로 해당 몽타주를 제작했다. 경찰은 1987년 그를 용의선상에 올려 여러 차례 조사 했지만 범인의 혈액형과 발자국이 다르다는 이유로 모두 풀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찰이 추정한 범인의 혈액형은 B형이었지만 이춘재는 O형이었다. 한편 25일 방송된 ‘실화탐사대’는 아홉 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현장을 다시 한 번 낱낱이 파헤쳤다. 피해자들은 14세에서 71세의 여성들로, 대부분 손발이 묶이고, 목이 졸려 살해당했다. 또 화성 연쇄살인 사건 범행현장을 탈출해 살아남은 여성과, 목격자, 그리고 이춘재의 어머니를 만나보고, 이춘재의 실제 얼굴을 전격 공개했다. 당시의 잔혹한 사건 현장을 되짚어보는 내내, MC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3차례의 경찰 조사에서 이춘재는 자신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범행을 일체 부인하고 있다. 이에 김정근 아나운서는 “다시는 이처럼 잔혹한 범죄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경찰의 엄중한 조사가 이루어지기를 촉구했다. MC 신동엽은 3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하는 한편, 밝혀지지 않은 여죄는 없는지, 이춘재의 지난 행적을 다시 한 번 면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박지훈 변호사는 “3개의 DNA가 검출됐다. 저는 (이춘재가 범임일 가능성을) 100%로 본다”고 확신하며 방송을 마무리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고양 대곡역세권 수혜… 건강 친화형 단지로 꾸며

    고양 대곡역세권 수혜… 건강 친화형 단지로 꾸며

    두산건설은 경기 고양시 덕양구 토당동 271-4번지 일원 능곡1구역을 재개발하는 ‘대곡역 두산위브’(조감도)를 분양한다. 지하 3~지상 34층 아파트 7개동 643가구와, 오피스텔 1개동 48실 등 총 691가구로 규모다. 이중 아파트는 259가구, 오피스텔은 48실을 일반 분양한다. 능곡지구는 능곡1구역(691가구)을 비롯해 능곡2구역(2933가구), 능곡2-1구역(834가구), 능곡5구역(2560가구), 능곡6구역(2501가구) 등 5개 구역에서 주요 건설사가 시공하는 이른바 브랜드 아파트가 줄줄이 분양에 나설 예정이다. 개발이 완료되면 이 지역은 약 9500가구의 미니 신도시로 거듭나게 된다. 특히 대곡역 두산위브 인근에는 약 179만㎡ 규모의 대곡역세권 개발사업이 예정돼 있다. 이곳에는 복합환승센터를 비롯해 첨단지식산업시설, 주거·상업·업무시설 등이 들어서게 된다. 개발사업이 완료되는 2024년에는 지하철 3호선과 경의·중앙선, 서해선 대곡·소사선, GTX-A 노선 등 4개 노선이 교차하는 ‘쿼트러플 교통허브’로 수도권 서북부를 대표하는 교통요충지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는 게 분양사 측의 설명이다. 대곡역 두산위브는 단지 바로 앞에 능곡초, 능곡중, 능곡고가 도보권에 있다. 또한 지상에 주차 없는 공원형 단지로 설계되는 것은 물론 아이들을 위한 테마형 놀이공간 3개소, 배드민턴장을 배치한 운동공간 1개소, 이와 어우러진 휴게공간 등 커뮤니티 공간이 조성된다. 단지 내 산책로 겸 생활형 트랙을 설치하는 등 건강 친화형 단지로도 꾸며진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숭례문·독도 거꾸로 볼까

    숭례문·독도 거꾸로 볼까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설립 50주년을 맞아 야외 문화유산을 거대한 카메라로 거꾸로 보고 그림을 그려 보는 ‘역사가 있는 풍경’을 11월 29일까지 숭례문과 울릉도·독도, 광화문 광장과 경복궁 일대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피사체를 거꾸로 보여 주는 가로 6m, 세로 3m ‘옵스큐라’(사진기의 원형)를 통해 우리 문화유산을 이색적으로 느껴 보는 참여형 행사다. 이번 전시는 대한민국의 대표 문화재인 숭례문(9월 25일~10월 4일)을 비롯해 울릉도·독도(10월 17~27일), 광화문 광장(11월 6~16일), 경복궁(11월 18~29일)으로 장소를 옮겨 가며 차례로 열린다. 울릉도 전시에서는 독도가 육안으로 가장 잘 보이는 안용복기념관 마당에 옵스큐라를 설치할 예정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가을감성 채워 줄 장강명 소설 ‘그믐, 또는…’ 다시 무대 오른다

    가을감성 채워 줄 장강명 소설 ‘그믐, 또는…’ 다시 무대 오른다

    작품성과 예술성이 검증된 연극 한 편이 가을, 서울 남산 무대에 오른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는 극단 ‘동’과 공동 제작한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10월 9일부터 27일까지 공연한다. 제20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한 장강명의 소설을 각색해 지난해 9월 남산예술센터에서 초연,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작품은 ‘기억’, ‘시간’, ‘고통’, ‘속죄’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을 시도한다. 극 중 남자와 여자는 고등학교 시절 연인이었다. 동급생 영훈을 살인한 죄로 교도소에 간 남자는 ‘우주 알 이야기’라는 소설을 써 여자가 일하는 출판사에 보낸다. 여자는 소설의 내용이 자신의 이야기인 것을 알고 남자를 찾아간다. 한편 자신의 아들을 죽인 남자를 쫓는 영훈의 어머니는 재회한 두 사람의 주변을 맴돌고, 남자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이 세상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었는지를 깨닫는다. 초연 이후 “추상적인 소설의 내용이 신체행동 연극을 주로 펼치는 극단 ‘동’의 장점과 잘 결합된 수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제55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받았다. 또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3’, 한국연극 ‘공연 베스트7’ 등에도 이름을 올렸다. 기울어진 원형 무대도 이 작품의 미학적 특징이다. 원형 무대 위에서 저마다의 세계를 표현하는 배우들은 균형이 무너진 채로 끊임없이 돌고 도는 몸짓을 만든다. 강량원 연출가는 “소설을 읽었다면 책과 연극을 비교하는 재미를, 읽지 않았다면 공연을 통해 작품을 알아 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성남 천림산 조선시대 봉수대 복원

    성남 천림산 조선시대 봉수대 복원

    경기 성남시는 수정구 금토동 천림산 봉수대를 조선시대 모습 그대로 복원해 24일 일반에 공개했다. 천림산 봉수대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변방의 군사정보를 중앙에 알리던 통신시설이자 군사시설이다. 조선시대 전국 5개 노선 가운데 부산에서 올라오는 노선 제2노선의 봉수 시설로 용인 석성산에서 받은 신호를 서울 목멱산(남산)봉수로 넘겼다. 세종실록지리지 등 각종 사료에 기록은 있으나 정확한 위치를 모른 채 방치됐다가 1996년 지역주민이 터를 발견해 발굴 조사 과정을 거쳐 2002년 9월 경기도 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됐다. 시는 지난해 6월부터 복원 공사를 시작해 최근까지 16억5000만원(도비 8억2500만원 포함)을 들여 조선 중기 봉수의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옛 봉수 모습 고증에는 8명의 봉수 관련 전문가가 자문위원으로 투입됐다. 서울 남산 쪽을 향하고 있는 연조 5개 중 비교적 원형을 유지한 1개의 연조는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 처리했다. 위쪽 구조가 거의 유실된 4개의 연조는 학술 연구와 전문가 자문회의를 거쳐 복원했다. 333㎡ 규모 봉수대 내부와 계단식 출입시설, 방호벽, 담장 시설을 모두 복원·정비해 내지 봉수의 구조를 온전히 갖춘 모습의 천림산 봉수지를 만날 수 있다. 시는 이날 오후 2시 은수미 시장과 지역주민 3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천림산 봉수지 복원 정비 공사 준공식’을 했다. 말린 쑥과 말똥, 이리똥 등 전통적인 재료를 가지고 연조에 불을 피우는 거화 재현이 진행됐다. 시 관계자는 “천림산 봉수지는 교통·통신의 중심지인 성남의 역사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주요 문화재”라면서 “다양한 문화유산 활용 프로그램 개발해 시민을 위한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가뭄으로 반세기만에 모습 드러낸 7000년 전 스페인 유적지

    가뭄으로 반세기만에 모습 드러낸 7000년 전 스페인 유적지

    스페인 서부에서 7000년 전 고대 인류가 만든 유적이 50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해당 지역에 닥친 가뭄 ‘덕분’이다. 라이브사이언스 등 과학 전문매체의 21일 보도에 따르면 스페인 서부에 위치하며 ‘스페인의 스톤헨지’로도 불리는 ‘과달페랄의 고인돌’(Dolmen de Guadalperal)이 무려 50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유적지는 1960년대 초반, 스페인 정부가 스페인의 저개발 지역에 물과 전기 공급을 위해 저수지를 만들면서 침수됐고, 이후 물속에 잠겨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 이 지역에 가뭄이 닥쳤고,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고인돌이 5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사실이 확인됐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쏘아 올리고 미국지질연구소가 운영하는 위성인 랜드샛 8호가 지난 7월 촬영한 해당 지역의 사진은 거대한 돌이 원 형태로 모여있는 유적지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높이 최대 1.8m 이상 되는 150여 개의 돌이 모여 원형을 만들고 있으며, 고고학자들은 이 유적지에 모여 있는 돌의 위에는 지붕 역할을 하는 석조형태의 구조물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입구로 보이는 한 돌에는 뱀 또는 인근 강을 상징하는 듯한 구불구불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약 7000년 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영국의 스톤헨지보다 그 역사가 더 오래된 것이어서 높은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자랑했지만 지난 50년간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 유적지의 마지막 발굴 기록은 1920년대에 독일 고고학자인 휴고 오버마이어가 남긴 것으로, 그의 연구결과가 발표될 즈음, 과달페랄의 고인돌은 이미 저수지에 잠겨버린 후였다. 이후가뭄이 발생할 때마다 고인돌의 위쪽 끝부분이 노출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전체 모습이 드러난 적은 없었다. 현지에서는 해당 유적지의 돌들을 더 높은 지형으로 옮겨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일부 고고학자들은 돌들을 옮길 경우 돌의 부식을 가속화 해 도리어 유물이 현재보다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1500년 전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1500년 전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1500년 전 고대 압독국(현 경북 경산 지역) 여인의 얼굴을 복원해 공개한다. 영남대 박물관이 오는 26일부터 특별전 ‘고인골, 고대 압독 사람들을 되살리다’를 전시한다. 이번 특별전은 영남대 박물관이 1982년, 1988년, 1989년 임당유적 고총고분의 발굴조사를 통해 임당동 및 조영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고대 경산 사람들의 인골 259구를 연구 분석한 결과를 공개한다. 영남대 박물관은 고인골 연구결과를 2013년 12월 ‘영남대학교박물관 소장 경산 임당유적 출토 인골연구 자료집’으로 발간하였지만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고대 압독국 여성의 얼굴을 3차원으로 복원해 전시 개막전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발굴된 두개골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됐기 때문에 정교한 얼굴 복원이 가능했다. 얼굴이 복원된 주인공은 1982년 발굴된 임당5B-2호(5세기 말 축조) 고분의 주피장자로, 21세~35세 여자로 확인됐다. 인골을 통한 얼굴 복원 작업에는 법의학, 미술 등 각 분야 전문가 협업으로 진행됐다. 영남대 박물관 주도로 서울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김이석 교수팀이 인골의 CT 촬영을 통해 3차원 머리뼈 모델을 완성한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이원준 박사가 근육 및 피부를 복원했다. 이후 미술가 윤아영 작가가 그래픽 채색 및 사실화 작업을 통해 완성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얼굴 복원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발굴된 인골의 연령과 성별, 키를 비롯해 각종 병리현상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DNA 분석 등을 통해 순장자의 가족관계도 확인했다. 이번 전시를 총괄한 영남대 박물관 정인성 관장은 “그동안 발굴된 인골을 영남대 박물관이 30여 년 간 원형 그대로 보존한 것이 이번 연구 성과의 토대가 됐다. 그동안 인골은 유물로서의 가치를 크게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신 과학기술과 만나면서 인골을 통한 다양한 연구 분석이 가능해졌다. 그 시대 사람들의 생물학적, 인류학적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특별전은 11월 29일까지 전시된다. 관람시간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토,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관이다. 상세한 내용은 영남대 박물관 홈페이지(http://museum.yu.ac.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별전 기간 중에는 전시 외에도 학생과 일반인 등 누구나 참석 가능한 세미나 등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도 계획돼 있다. 10월 4일 오후 2시에는 인골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학술세미나 ‘고대 인골 연구와 압독국 사람들’이 영남대 박물관 강당에서 열린다. 10월과 11월에는 4차례에 걸쳐 인골 전문가 초청강연회 ‘고인골 이야기, 전문가에게 듣는다’가 예정돼 있고, 전시기간 동안 체험교육 ‘인골아 놀자’(상세문의 053-810-1712)도 진행할 예정이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오병이어의 기적’ 모자이크화, 7세기 불타버린 이스라엘 교회서 발견

    ‘오병이어의 기적’ 모자이크화, 7세기 불타버린 이스라엘 교회서 발견

    7세기 초반 화재로 전소된 이스라엘의 고대 교회 바닥에서 화려한 모자이크가 발견됐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고 미국 CNN 트래블이 20일(현지시간) 전했다. 갈릴리 호수에서 동쪽으로 1.6㎞ 정도 떨어진 히포스란 산악 마을에 있는 ‘불타버린 교회’ 바닥에서 발견됐는데 이 교회는 1500년 전쯤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0년 전쯤 부분적으로 발굴됐으며 이번에 하이파 대학 팀에 의해 전면 발굴되는 과정에서 놀라울 정도로 생생한 모자이크화가 발견됐다. 그림은 두 마리의 물고기와 다섯 조각의 빵을 묘사하고 있어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수가 5000명을 먹였다는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발굴을 지휘하는 미카엘 아이젠버그는 CNN 인터뷰를 통해 “내가 아는 한 갈릴리 호수 주변의 도시나 마을, 정착촌에 있는 비잔틴 시대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최상의 오병이어 기적 그림”이라면서 “사람들이 그곳에서 기도를 올리고, 물론 5000명에게 먹인 진짜 장소라고 생각했던 곳이 분명 이곳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모자이크화가 발견된 곳이 성가대석과 챈슬(성단), 아일(측랑·側廊)의 끝에 있는 반원형 또는 다각형 공간. 후진(後陣)이라고도 하는 애프스(apse)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아이젠버그는 모자이크 그림을 해석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기적이 행해진 곳을 둘러싼 아주 건전한 학문적 논쟁이 시작됐다. 난 그 일이 히포스 영토의 가장 끝쪽에서 일어났다고 짐작해본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기독교에서는 그 기적이 갈릴리 호수의 북서쪽 끝에 있는 타브하의 오병이어의 교회(Church of the Multiplication)에서 행해졌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아이젠버그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한 뒤 예수가 물 위를 걸어 북서쪽 연안으로 갔다고 돼 있기 때문에 동쪽에서 기적을 행한 것이 맞다고 믿는다고 털어놓았다. 오병이어의 교회 바닥의 모자이크 그림은 두 마리 물고기에 네 조각의 빵만 보여줘 확연히 다르며 신약성서에 나온 것과 정확히 부합하는 것은 이곳 불타버린 교회의 모자이크화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7세기 화재 당시 모든 지붕이 무너져내려 30~40㎝ 두께로 덮인 재 때문에 모자이크화가 그나마 잘 보존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 세 마리 다른 크기의 물고기가 두 열로 표현되고 석류와 사과, 꽃들이 들어있는 바스켓들도 눈에 띈다고 방송은 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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