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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통사람 오신다” 차분한 대통령맞이/노대통령 방일 앞둔 일 표정

    ◎교포들,현수막등 내걸고 환영준비/궁중만찬선 「손에 손잡고」 연주 계획/한인 원폭희생자비 방화 등 일극렬파 극성 여전 ○…노태우대통령 방일을 맞는 일본에서는 전반적으로는 환영무드가 일고 있으나 좌ㆍ우익 과격파 단체등이 각각의 톤으로 방일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어 경시청당국은 연일 2만여명의 경찰병력을 동원,노대통령 일행이 통과할 주요 간선도로변의 맨홀을 점검,봉인하고 교통규제를 실시하는 등 있을지도 모르는 좌ㆍ우익 과격파의 테러에 대비,24시간 비상경계체제를 펴고 있다. 당국은 아키히토(명인)국왕의 과거역사 사죄발언에 반대하는 우익과격파의 테러는 물론,천황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기독교단체 등 좌익단체들도 노대통령 방일이 자기들의 주장을 알리는 호기가 될것으로 판단,각종 테러를 자행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노대통령 방일을 맞는 재일동포사회의 환영분위기도 전두환 전 대통령때와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달라져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하고 있다. 전두환 전대통령 방일때는 한국국가원수의 첫 일본방문인데다 당시의 국내분위기가 재일동포 사회에까지 이어져 다소 긴장된 가운데 일견 요란한 듯한 환영행사가 많았으나 이번에는 『보통사람 대통령을 보통의 기분으로 따뜻이 맞이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주류를 이뤄 전에 비해 차분해진 느낌. 도쿄(동경)도내에 있는 재일거류민단본부에는 며칠전부터 「대통령 방일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고 민단 기관지 한국신문은 22일자 컬러판별쇄로 노대통령의 인물소개와 함께 「21세기의 한일관계 구축」「동포문제는 전후처리차원에서」등의 특집을 실었으나 전에 비해 절제된 분위기. ○…일본정부와 언론ㆍ재일동포사회의 이같은 환영분위기와는 달리 자칭 1백30개단체,1천6백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는 우익단체연합회 전애회의와 재일한국청년동맹 등 좌ㆍ우익단체들은 전국 각지의 전철역 등지에서 방일반대전단을 돌리는 등 노대통령 방일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전단에서 『언제까지나 과거에 집착,일본을 모욕한다면 한일기본조약을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한일합방은 역사의 추세였으며당시 한국정부에 통치ㆍ외교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일본경찰은 연일 2만명의 경찰병력을 동원,24시간 경비태세를 펴고 있는데 특히 과격 게릴라와 테러리스트들이 사정이 긴 화약류를 이용하거나 원격조정장치를 사용하는 등 활용범위가 넓어지고 있음을 고려,3백여군데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경비범위를 전두환 전대통령때의 주요 시설물로부터 1m이상에서 이번에는 3m이내로 확대했다. 또 10대의 헬기와 29대의 순시선을 노대통령의 방문여로에 배치. ○…일본 국내청은 노대통령을 맞아 아키히토(명인)일왕이 24일 저녁에 베푼 궁중만찬에서 노대통령내외를 위해 요리와 음악ㆍ여흥 등에서 이례적으로 여러가지 특별서비스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궁내청에 따르면 궁중만찬의 경우 국왕이 손님을 만찬장으로 맞아들일때 일본음악인 「친애」가 연주되는 것이 관례이지만 노대통령이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역임했음을 고려,이번에 한해 올림픽 주제가의 하나였던 「손에 손잡고」를 연주키로 했다는 것. 당국은 이밖에 궁중행사의 경우 보통 국왕 한사람에게만 붙이도록 돼있는 통역을 표현의 차이로 인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노대통령에게도 한국인 통역을 따로 두기로 했으며 보통 국빈에게 제공되는 국화문양의 국왕전용 승용차(닛산ㆍ프린스 로얄)대신 가까운 곳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져도 끄떡없는 외무성의 특별장비차를 제공키로 했다.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나고야(명고실) 오사카(대판)등지에서 극우극력분자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방화ㆍ테러사건이 빈발하고 있는 가운데 23일에는 히로시마(광도)평화공원부근에 세워진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의 대좌에 놓여있던 추모용 종이학이 방화로 불에 탔다. 이들 종이학은 수학여행온 학생들이 바친 것으로 이날 상오 1시20분쯤 불이 붙고있는 것을 통행중인 트럭운전사가 발견,소화기로 진화했다. 이날 방화로 위령비자체에는 피해가 없었다. 경찰은 이 사건이 노대통령의 방일을 반대하고 있는 극렬분자들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 84년 「유감」보다 진전… 대승적 차원서 수용

    ◎일왕 「사과문안」 최종절충 안팎/가ㆍ피해자 명시됐지만 「책임」은 약해/일왕ㆍ총리 사과 합치면 우리측 요구수준 될듯 노태우대통령 방일시 아키히토(명인) 일왕이 궁정만찬석장에서 밝히게 될 대한사과문안에 대한 한일 양국간 협상은 방일 하루전인 23일 일단 마감됐다. 야나기 겐이치(유건일) 주한일본대사가 이날 하오 최호중외무장관을 예방,일본측이 과거사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시하고 사과의 주체를 밝히는 내용의 최종적인 일왕사과문안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최장관도 이날 야나기 주한일본대사를 만난 뒤 기자들에게 『일본측이 노대통령을 정중하게 맞이하는 자세를 견지,신중하고도 많은 고심을 한 결과라고 일단 평가한다』며 일본측이 제시한 최종사과문안에 대한 소감을 피력한 데 이어 『이번 방일에서 아키히토 일왕이 밝힐 사과수준은 84년 전두환 전대통령 방일당시 히로히토(유인) 일왕이 말한 「유감표명」보다는 진전된 것』이라고 강조,우리측 요구가 상당부분 수용됐음을 시사했다. 일본측이 제시한 최종문안은 ▲한일 양국간 과거사에 있어 가해자및 피해자 명시 ▲사과주체의 표시 ▲84년 당시의 「유감」보다는 더 강도가 높은 사과표현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초 우리정부가 요구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적시,식민지배에 대한 「책임」과 「반성」을 분명히해야 한다는 수준에는 못미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 수준을 토대로 일왕사과문안을 정리해본다면 『본인(일왕)은 금세기 한 시기에 있어서 우리나라(일본)가 한국에 끼친 불행했던 과거가 있었던 데 대해 고통과 슬픔을 통절히 느끼며 다시는 이같은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로 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양국간의 이번 협상은 우리측의 강력한 입장개진과 일본측의 양보가 어우러져 마무리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번에야말로 완전한 과거청산을 희망했던 국민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미지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일본측은 84년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정식외교경로 전달방식을 선택,이날 하오 야나기 대사가 최장관을 예방하는 자리에서 일왕의 최종사과문안을 한국측에 전달. 일본측은 이에앞서 22일 밤 고위특사인 세지마 류조(뇌도용삼)씨의 보고를 토대로 가이후(해부) 총리 주재로 나카야마 외상,사카모토 관방장관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회의를 열고 최종문안을 23일 제시키로 결정했다는 후문. 일본측은 이 자리서 일왕발언의 헌법상 허용문제를 감안,일왕의 사과표명을 한국측의 요구수준보다는 낮추되 대신 가이후 총리가 한국측의 요구를 대폭 수용,깊은 반성과 책임을 밝힌다는 기존의 방침을 재확인했다고. ○…야나기 대사는 당초 예정시간보다 35분가량 늦은 이날 하오 2시35분쯤 외무장관접견실로 최장관을 예방,최종문안 전달과 함께 일본측의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했다고 한 배석자가 전언. 40여분간 계속된 이 면담에서 최장관은 『양국관계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도 일왕의 사과문안이 우리국민의 기대를 상당한 정도 담기를 희망한다』면서 일본측의 성의있는 자세를 재차 강조했으며 야나기 대사는 이에대해 어려운 일본 국내사정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고. 일본대사관측은 야나기 대사가늦게 도착한 이유에 대해 『본국정부로부터 텔렉스 도착이 늦었기 때문』이라고 밝혀 일본측이 우리측에 공식통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진통을 겪었음을 시사. 최장관은 특히 야나기 대사가 『늦어서 미안하다』며 인사말을 건네자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일왕의 최종사과문안 제시가 온 국민의 관심사항이 되고 있다』고 답변,일본측이 우리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과문안을 갖고 왔음을 의식한 듯한 발언을 하기도. 최장관은 또 야나기 대사와 악수하는 포즈를 잡아달라는 사진기자들의 요청에 『그냥 앉아서 얘기하는 표정을 찍는 것이 낫지 않느냐』며 신중한 자세를 견지. 최장관은 면담을 끝낸 뒤 청와대로 직행,노대통령에게 최종사과문안및 일본측 정황등을 상세히 보고. ○…최외무장관은 이날 노대통령에게 일측 사과문안을 보고한 뒤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과 만나 한동안 문안내용을 놓고 숙의. 노실장은 이어 삼청동에서 외무부관계자들과 대책을 논의,청와대로 돌아와 이수정공보수석비서관을 급히 찾았는데 주변에서는 『일측의 사과문안과관련한 우리측 대응입장을 다시 수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들. 노실장은 기자들이 『일왕사과문안은 절충이 모두 끝났느냐』는 물음에 직접적인 답변은 회피하면서 『비행기 타는 일만 남은 것 아니냐』고 말해 양국간의 절충이 사실상 마무리됐음을 시사. 노실장은 일왕의 사과수준을 캐묻자 『일왕과 총리의 사과내용을 합치면 우리가 요구하는 수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다소 미흡함이 있음을 우회적으로 답변. 노실장은 이날 전달된 일본의 사과내용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는 『당장 문안을 펼쳐보일 수는 없으나 긍정적일 것으로 본다』고 조심스레 피력.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일측 사과문안과 관련,『노대통령의 일왕주최 만찬답사ㆍ국회연설ㆍ일총리주최 만찬답사 등을 일부러 다시 손댈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일본측의 사과수준과 외교적으로는 정상적인 것 같다』고 피력해 다소 우리의 당초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84년 사과수준」보다는 강도가 있는 것임을 시사. 이 관계자는 『일측의 사과문안이 일본내에서는 많은 반대견해가 있을 수도 있는 것으로 일본정부로서는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 ◎노대통령 맞는 동경의 기류/「침략국」인상 씻고 “평화지향 일본” 부각 겨냥/“한ㆍ일 신협력시대”들어 실리 치중 말은 안해도,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에 대해 일본측이 전례없이 중점을 두고 배려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정」에 기인한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미래지향적 우호ㆍ협력관계의 구축을 노대통령 방일실현의 첫번째 목적으로 꼽는다. 앞으로 다가올 아시아ㆍ태평양시대의 이니셔티브를 잡기 위한 두나라 공동전선을 구축하며,세계경제 블록화에 대처하기 위해 보조를 맞춘다는 명분론을 들고 있으나 그 「필요성」은 더욱 현실적인 데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국내의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가이후(해부)정권의 장기안정화를 꾀하기 위해 외교에 치중할 필요가 있다. 오는 8월이면 발족 1년을 맞는 가이후내각으로서는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 방일실현,한국과의 유대강화,동구제국과의 관계개선등 외교실적을 통해 국제적 지위를 부상시킴과 동시에 「본격정권」으로서의 이미지를 내외에 인식시켜줄 필요가 절실하다. 두번째는 일왕의 방한실현 타진이다. 침략군국주의의 대명사 쇼와(소화) 일본의 인상을 씻고 평화지향의 헤세(평성) 일본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한국방문이 필요하다. 일왕의 한국방문이 갖는 상징성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경쟁상대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원활히 함으로써 세계적 경제마찰의 초점을 분산시키자는 등의 계산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신칸센(신간선)같은 대형 프로젝트의 판매등을 통해 기존시장을 확대하려는 의도도 없지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의 이같은 외교목표 설정은 한국의 그것과는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지금까지도 불협화음을 빚고 있다. 지난 3월 일본의 학자ㆍ변호사ㆍ종교인등 58명은 『의회는 36년간의 식민지지배를 통해 일본이 한민족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준 데 대해 반성하고 국민의 이름으로 사과한다』는 결의를 채택하도록 일본 중ㆍ참의원및 각 당에 요구했다. 와다 하루키(화전춘수) 동경대교수,다카키 겐이치(고목건일),변호사 다케우치 겐타로(죽내겸태랑) 일본기독교협의회장 등을 대표로 하는 이들은 「한국병합조약 80주년을 맞아 조선식민지 지배 반성의 국회결의를 요구하는 성명」을 통해 이같이 촉구했다. 이것은 진정한 인식전환만이 우호의 바탕이라는 사실을 일본인 스스로가 자각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평화ㆍ안전보장연구소 회장인 이노키 마사미치(저목정도)씨는 최근 산케이(산경)신문에의 기고를 통해 일왕은 일본의 책임소재를 명쾌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국의 상징으로서,일본을 대표하고 있는 것은 천황이다. 노일전쟁으로부터 종전까지 일본은 가해자였으며 한국은 피해자였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기 때문에 천황의 사죄내용에 「일본의 책임에 의해」라는 의미가 명시되어야 한다. 총리가 제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한국민은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간파했다. 그러나 이같은 식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평소 일본의 대한관에서는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일제의 침략과 수탈에 대한 뉘우침과 반성의 뚜렷한 기미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오히려 최근의 오사카(대판) 나고야(명고옥)등지에서의 극우국수주의자들에 의한 폭발테러사건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같이 일제당시의 의식과 시각을 그대로 갖고 있는 언행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과거 일본교과서의 역사왜곡도 그 좋은 예의 하나이다. 일본법원은 일본군의 「침략」과 「대학살」표현을 완화토록 지시한 문부성의 수정지시가 합법적이라는 판결까지 내렸었다. 역사적 사실을 수정하도록 강요하는 정부,또 이를 마땅한 것으로 판단하는 법조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일부 지배층의 기본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한ㆍ일우호관계는 수립될 수 없다. 일본의 잘못된 대한인식과 태도는 지난번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보장ㆍ처우개선 협의에서도 잘 드러났다. 우여곡절끝에 「3세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도의 합의를 보았으나 1ㆍ2세문제는 거론되지도 않았다. 70여만명에 달하는 재일동포들의 법적 지위문제는 바로 인간의 기본권인인권과 생존권의 문제이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교육울 받으며 일본사회에서 살고 있는 재일동포와 그 자손들의 법적 안정성 보장및 차별철폐,원폭피해자문제,사할린거주 한국인문제등 일본이 역사적 책임을 져야만 하는 문제는 많다.
  • “외교는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종합”/한영구 외교안보연 교수

    ◎한일관계의 마찰음을 듣고… 5월24일에서 26일까지로 예정되어 있는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은 일왕의 사과발언문제를 둘러싼 찬반양론의 여론속에서 그 필요성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지 25년이 경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일 양국은 65년 국교정상화 당시로 되돌아간 인상을 짙게 하고 있다. 65년 한일기본조약과 함께 4개의 협정(청구권 및 경제협력협정 ㆍ문화재반환협정ㆍ어업협정ㆍ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한일병합에 이르는 모든 조약 및 협정은 무효임을 선언하고 양국간 국교를 정상화 했으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이라는 의미에서 청구권 자금이 설정되고 문화재 반환에 합의했다. 그리고 당시 한일간의 현안이었던 어업문제,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문제 등에 있어 정부간 협의에 의한 해결방식이 도입되었으며 양국간 경제협력관계가 공식화되었다. 이러한 기본적 틀의 설정하에 한일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이 일본의 안전에도 긴요하다는 기본인식하에서 우호,협력 관계를 추구하여 왔으며 무역역조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긴밀한 경제 협력관계를 모색하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간에 있어서 상호이해와 신뢰관계가 의문시되고 있는 것은 과거의 역사적 관계로 인한 국민감정이 처리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25년간의 한일협력관계가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그 우호관계의 긴밀성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일관계에 있어서는 과거의 역사적 관계에 근거를 두는 대일 불신의 태도가 뿌리깊게 작용하는 관계로 실제의 협력관계 조차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크다. 이러한 대일 불신의 태도는 일본측의 사과발언이 어떤 수준의 내용을 담고 있는가 하는 문제보다 그동안 일본정부가 과거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의식을 명백히 구체화하지 못한 측면이 강했던 점에 보다 근본적인 유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측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4협정의 체결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은 일단 끝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적인 측면에서 65년의 조약과 협정의 체결로 한일간 과거의 역사적 관계가 해결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나,한일간의 관계는 법적인 것 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특수한 상황하에 있다. 그런 점에서 법적인 측면에서의 기본관계의 설정은 정치ㆍ경제ㆍ사회적으로 제반후속조치가 동반될 것이 요청된다. 일본측은 이러한 후속조치를 취함에 있어서 (결국은 그 후속조치를 강구하지 않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색한 태도를 보여 왔으며 게다가 일본정부 각료 또는 고위관료에 의한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 정당화발언이 심심찮게 나옴으로써 일본의 의도가 의문시되어 왔으며 이러한 점들이 한국민의 대일 불신태도를 증폭시켜 왔다고 볼 수 있다. 국가간의 관계는 과거의 역사적 문제만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관계를 명백히 규정하지 않고 현실을 뛰어넘을 수도 없다. 현재 과거의 역사적 관계로 파생된 문제로서 아직도 미해결상태로 남아 있는 문제도 많다. 재일한국인의 거주권문제ㆍ사할린교포 귀환문제ㆍ원폭피해자에 대한 치료 및 보상문제 등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일왕의 사과발언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일왕은 일본의 상징적 존재로서 일왕의 발언은 상징적 의미를 띠는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하겠으나 이와함께 실질적으로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점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 동시에 실질적인 사죄의 방법으로서 앞의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현실적 방안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또한 한일간의 미래지향적 협조관계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협력문제ㆍ과학기술이전문제 등 현안의 해결도 시급하며 21세기 아시아ㆍ태평양시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공동의 번영과 계속적인 발전을 위한 동반자관계의 구축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외교는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금번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이 명분 또는 실리 그 어느 것에만 중점을 두는 것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명분없는 실리는 굴욕적이 될 가능성이 크며 실리없는 명분은 공허한 것이 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1984년 전두환 전대통령의 방일시 일왕은 양국간의 불행했던 과거를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 발언은 분명히 미흡한 것이었으나 이번에 그 이상의 발언을 하느냐 안하느냐는 일본측이 결정할 문제이며 국제국가를 지향하는 일본정부의 양식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오히려 과거의 침략행위를 시인하고 역사의 책임을 통감하는 일본국회의 결의를 촉구하고 일본정부로 하여금 과거의 역사적 관계로 인하여 발생한 미해결의 문제를 개선하도록 요구하는 현실적 방안에 대한 고려를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함께 21세기 아시아ㆍ태평양시대의 도래에 대비하는 한일간의 진정한 선린우호관계의 정립에 대해서도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점에서 노대통령의 방일이 명분이나 실리 어느 쪽에만 치우치지 않고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포괄적 차원에서 한일관계를 주시하는 냉정한 시각이 형성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반성론…명분론…두얼굴의 일본 “대변”/「대한사죄」…일본인의 목소리

    ◎분명한 역사적 죄과 책임인정을 찬/정치적 발언은 국사행위 아니다 반 한일관계를 냉각시키고 있는 일왕의 사죄문제는 지금까지 나타났던 그 어느 현안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것은 「과거청산」의 시발점이며 진정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위한 「대전제」이다. 한일협정의 체결,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보장과 처우개선,교과서 왜곡사건,사할린간류 한국인 귀환문제와 원폭피해자문제등 전후처리문제,무역불균형 시정과 기술이전문제등 한일간에는 많은 현안이 부침했으며 현재도 걸려있으나 일왕의 사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것은 한일간 모든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전제라고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견해는 도쿄(동경)주재 외교관계자들과 재일 한국인들은 물론 일부 정치인과 관료층을 제외한 많은 일본인들도 갖고 있다. 16일자 아사히(조일)신문 3면에 게재된 각계인사들의 코멘트는 이같은 사실을 대변한다. JR윤락죠(유락정)역 근처에서 만난 여행사 직원 난부 사치요(남부상대ㆍ31)씨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적으로 볼때 확실히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일차 분명하게 사죄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새로운 신뢰관계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유감」이라는 말은 관료적이며 모호하다. 분명한 사죄를 하더라도 지금의 일본으로서 잃을 것은 없지 않은가』라며 사죄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자민당수뇌의 『무릎 꿇고 빌라는 말인가』라는 발언에 대해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 멸시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닌가. 한국측은 「무릎을 꿇라」고 말한 일이 없지 않은가』라고 비판적이었다. 기계 메이커 차장인 가와바타 요시히코(천단의언ㆍ49)씨는 『머리를 얻어 맞은 쪽은,때린 쪽에서는 옛날에 잊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법이다. 그러나 한일 새시대라는 말도 생겨났으며 전후 새로운 우호의 기초도 다져진 마당에 옛일을 다시 문제삼을 것은 없지 않은가. 자민당 일부에서 말하듯 「경제협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는 청산됐다」는 것은 이상하지만 한국측이 언제까지나 「사죄」에 계속 구애되고 있는 것은 대인답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헌법학계의 대세는 보다 더 부정적이다. 학습원대 아시베노부요시(노부신희ㆍ66)교수는 『헌법이념은 일왕을 정치의 세계로부터 격리시키려 하는 것이다. 정치적 의미를 갖는 발언은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치적 발언인가의 여부는 발언할 때의 상황에 따라서도 좌우된다. 이번처럼 발언내용이 외교적인 문제가 되어 있을 경우에는 발언이 정치적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한일관계의 역사적 연혁은 이해할 수 있으나 예외를 인정하면 그것이 선례가 된다. 역시 일본전체의 대표로서 총리가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자들 사이에도 견해의 차이는 많다. 일본ㆍ아시아관계론을 전공하는 우쓰미 아이코(내해애자ㆍ48)조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재한피폭자 및 일본군에 징용된 사람에 대한 보상등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초래했던 문제가 남아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져야만 할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같은 문제의 실태를 정확히 조사,보상해야 할 것은 보상하고 사죄해야만 할 것은 사죄한다는제도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방위대교장이며 평화ㆍ안전보장연구소회장인 이노키 마사미치(저목정도ㆍ75)씨의 견해는 더욱 분명하다. 그는 『(소화일왕의 발언은) 어느쪽이 가해자이며 피해자인지 알 수 없다. 일본은 말로 할 수 없을만큼 나쁜 짓을 한국에 저질렀다. 일본은 과거를 청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화일왕의 발언에 「일본의 책임에 의해」라는 문언을 삽입했더라면 좋았겠다』고 말했다. 이노키회장은 특히 일왕이 말할 내용에 관해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정치성을 띠게 된다』고 지적하고 『일본인은 역사에 대한 반성이 불충분하다. 현대사의 무지로부터 오는 것이다. 자민당수뇌의 발언은 역사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를 나타내고 있으며 대정당의 간부로서 한심스럽다』고 통박했다. 나아가 이노키회장은 「상징일왕」은 국가원수라는 해석에 입각,『일왕이 외국원수에 사죄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결의로는 서푼의 가치도 없다』며 도이다카코(토정다하자) 사회당위원장이 제창한 「국회결의」안을 일축했다. 반면 국제대 다카노 유이치(고야웅일ㆍ73),사상사 전공인 다케다시미코(무전청자ㆍ72) 교수 등은 『일왕이 국민을 대표해 사죄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 일왕은 헌법상의 상징이라는 입장을 넘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안된다』고 반론을 편다. 문제는 일왕의 헌법상의 제약과 그의 발언이 과연 정치적이냐의 문제로 귀착된다. 일본헌법상 일왕은 헌법에 규정된 국사행위만을 행한다. 국사행위란 정치적 기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헌법개정ㆍ법률ㆍ명령의 공포,국회의원 총선거의 시행공포,외국사절의 접견등 형식적ㆍ의례적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일왕의 국사행위 중에는 총리와 최고재판소장관의 임명과 중의원해산과 같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도 포함되고 있다. 따라서 국사행위의 성격해석을 둘러싸고 학설이 대립되어 있는 실정이다. 나아가 일본국왕은 일본국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 일왕이 행하는 국사행위에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이 필요하며 일왕의 국사행위에 관하여내각은 책임을 진다. 이렇게 볼때 일본의 경우 행정권만을 관장하는 총리를 국가원수로 보기는 힘들며 「국민의 대표」라는 입장은 역시 일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또 일왕의 발언이 「정치적」이냐의 해석도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 없을만큼 미묘하다. 이원경 주일대사가 15일 하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전대장상과의 면담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의 발언의 정치성여부를 떠나 자신의 심경만을 피력하면 족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소화일왕은 헌법에 근거하여 전쟁을 수행하는가. 시대와 인물은 바뀌었더라도 일왕의 이름아래 수행된 전쟁은 일왕의 이름으로 사죄되어야 한다. 상징일왕이라면 그 상징에 맞는 내용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결자해지의 정신을 강조하는 것이다. 헌법의 제약은 구실이며 역사인식은 초법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도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 설군사건이 남긴 교훈/김용원 사회부기자(오늘의 눈)

    검사는 「민주화로 위장한 학원폭력」을 신랄하게 규탄했다. 『그는 운이 나빠 몇대 맞다가 쓰러져 죽은 것이 아니다. 옛말에 「개패듯 때린다」는 말이 있고 「맞아 죽는다」는 말도 있는데 설군은 말그대로 개처럼 맞아 죽었다. 눈이 가리워지고 의자에 결박당한채 기진맥진,고개를 떨구고 「물,물」하며 쓰러져 갔다. 그가 만약 프락치였다 할지라도 프락치는 그렇게 죽어가도 좋다는 것인가』 그리고는 『폭력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에 마땅히 준엄한 심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맞선 변호사는 「시대의 희생자」를 낳게한 우리의 현실을 지적했다. 『어째서 학생들이 학업에 정진하지 못하고 투쟁의 선봉에 서서 희생되어야 했는가. 온갖 불신풍조를 만들어낸 80년대의 정치ㆍ사회현실이 비극의 씨앗』이라고 했다. 최후 진술에 나선 피고인들은 한결같이 고인에게,부모에게,학우들에게 백배사죄했다. 『형을 달게 받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들도 할말은 있었다. 『싸늘한 감방에 앉아 박종철 학우도 생각해 보았고 고문경관을 증오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시대의 증오를 씻고 화해의 시대가 열리기 만을 기원한다』 『어떤한 형태의 폭력이든지 폭력의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 이번 사건의 올바른 극복 방법』이라고도 했다. 지난해 10월 학원프락치로 오인돼 뭇매를 맞고 숨진 동양공전 학생 설인종군의 폭행치사 사건 결심공판이 열린 18일 서울지법 서부지원 형사합의부 법정은 이시대를 혼돈의 시대로 만들고 있는 각종 폭력에 대한 심판장과도 같았다. 설군을 때려 숨지게한 연세대학생과 고려대학생 9명 모두에게 징역 15년∼7년까지의 중형이 구형됐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자식이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면서 흐느끼고 있었다. 한 젊은이의 참담한 죽음을 떠올리며 법정을 나서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들은 『어떤 명분,어떤 형태의 폭력도 결코 용납될수 없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듯 보였다. 그것은 우리시대의 비극이자 새 시대의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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