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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강간범,대법원·대검 뭐하나/강지원 변호사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했다. 김종빈 검찰총장도 취임한 지 몇 달 되었다. 지금 법조계 수장들은 사법개혁이다, 수사권조정이다 해서 무척 바빠 보인다. 그런 와중이지만 한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모름지기 법조계인사들은 그 같은 거대담론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 고통 받고 있는 서민들의 아픔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은 성폭력을 당해 고통 받는 여성들 이야기를 하겠다. 도대체 이 나라 법원과 검찰은 그동안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 왔는가. 한 20대 미혼인 여성은 천성이 소심한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술을 함께 마신, 아는 오빠가 자기 집에 가자고 했다. 혼자 사는 집인데 돌려 줄 책이 있다고 했다. 그러려니 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한순간 침대에 쓰러뜨렸다. 싫다고 했다. 그리고 힘껏 뿌리쳤다. 그러나 끝내 당할 수밖에 없었다. 큰 소리 한번 쳐 보지 못했다. 억장이 무너지는 두려움과 황당함 때문에 변변한 반항조차 못해보았다. 몇 달 후 수사검사는 가해자 강간무혐의라고 판정했다. 이유는 왜 반항할 수 있었는데 반항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강간죄로 가해자를 처벌하려면 가해자가 피해여성의 반항을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로 강한 폭행이나 협박을 휘둘러야 하는데, 이 사건 가해자는 그저 완력으로 그런 짓을 했을 뿐 그런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뒤집어 표현하면, 피해여성이 필사적으로 반항을 할 때 이를 꼼짝 못하도록 폭력을 행사하고 성관계를 해야 처벌해 주는데, 피해여성이 도무지 반항 같은 반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 남자는 ‘무죄’라는 것이다. 세상에 이 무슨 야만적인 법적 태도인가. 이 나라 어떤 여성이 이 따위의 결정에 승복을 하겠는가. 세상의 사람이 모두 다르듯이 여성도 모두 다르다. 활달한 여성이 있는가 하면 소극적인 여성도 있다. 또 아무리 활달한 여성이라 해도 상대가 직장 상사라든가 신세를 지고 있는 관계라든가 하는 이유로 어려워하는 사이가 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덮쳐 왔다. 이럴 때 다시는 안 볼 작정으로 과감하게 소리치고 반항하고 욕을 퍼부을 여성이 얼마나 될까. 잘못 반항했다가는 더 큰 폭력이 행사될까 무서워 꼼짝 못하는 여성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그 끔찍한 가해자가 무죄란다. 그렇다면 여성은 화간(和姦)을 한 꼴이 된다. 게다가 거짓말쟁이까지 된다. 심지어 꽃뱀으로 몰리기도 한다. 바라는 것이 있어서 꼬리를 쳤다고도 한다. 왜 술을 마시고 따라갔느냐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남자들이 그 정도로 나오면 그냥 꼼짝없이 당하고 있으라는 것이겠지. 그리고 찍 소리하지 말고 고소 같은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것이겠지. 도대체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살 충동을 느끼는 피해 여성들을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감히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 왜 법집행에서 이런 피눈물나는, 해괴한 사태가 발생할까. 바로 ‘대법원판례’라는 것 때문이다. 대법원이 한 사건에 대해 판례를 남기면 그 이후에는 줄줄이 사탕처럼 붕어빵 판결들이 줄을 잇는다. 그리고 온 나라의 형법교과서들이 이를 받아서 ‘정답’처럼 가르쳐댄다. 그저 달달 외우기 잘 해서 판검사가 된 사람들이 의문 한번 가져보지 않고 똑같은 판단들을 쏟아낸다. 이래선 안 된다. 이제 대법원은 성폭력관련 판례를 하루바삐 고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검이 검사들로 하여금 종전 판례와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작심하고 기소토록 해야 한다. 한국은 강간범 1등 국가다. 고통 받는 여성들에게 눈곱만큼이라도 피해자적 감수성을 함께할 수 있는 판검사들을 양성해야 한다. 강지원 변호사
  • 이용훈 대법원장 지명자 8일 인사청문회

    이용훈 대법원장 지명자 8일 인사청문회

    이용훈 대법원장 지명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8,9일 이틀간 국회에서 열린다. 이번 청문회는 지난 2000년 인사청문회법 제정 이후 대법원장 지명자에 대해 처음으로 실시되는 것이다. 여야는 이 지명자의 판결 성향과 재산 등 대법원장으로서의 기본 자질과 도덕성 등을 점검할 예정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 대리인이었다는 점을 강하게 문제삼을 것으로 보여 이를 두고 여야간 공방이 예상된다. 그러나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당에서도 전반적으로 임명을 극력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동의안은 큰 무리없이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14일 본회의를 열어 임명동의안을 처리한다. 청문회에서 가장 큰 쟁점은 역시 대통령 탄핵사건 대리인으로 활동한 경력이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자기사람 봐주기’ 인사임을 거론하면서 이 지명자가 대법원장이 될 경우 법원판결이 친정부·친여 성향으로 흐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중립성 유지에 강한 의문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판결 성향과 재산문제는 큰 논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 모두 판결성향에 대해 중립성을 유지해 왔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재산에서도 이 지명자가 퇴임 이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5년간 22억원의 재산을 모은 것이 주목받고 있지만 21억원에 이르는 세금을 납부하는 등 정당하게 재산을 모았다는 점에 여야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사건수임 방법 등에 대해서는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노동당은 정당한 세금 납세와 별도로 변호사 법률서비스 비용 과다를 들어 사법개혁과 연관지을 것으로 보인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LG전자 ‘PDP세계1위’ 눈앞

    LG전자 ‘PDP세계1위’ 눈앞

    LG전자가 세계 PDP시장의 1위 탈환을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LG전자는 다음달부터 월 생산능력 최대 16만대 수준인 구미의 A3(4기)라인 양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30일 밝혔다. 기존 A1과 A2라인의 월 생산능력 19만대를 합치면 LG전자는 월 35만대 생산이 가능한 세계 최대의 PDP 공급능력을 확보하게 된다.2002년 이후 세계 PDP시장을 독주해온 삼성 SDI에 세계 1위를 되찾아 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LG전자가 지난해 5월부터 총 6600억원을 투자한 A3라인은 세계 최초로 ‘6면취 공법’(1장 원판에서 6장의 유리기판을 잘라낼 수 있는 공법)을 적용했으며, 특히 8면취 공법도 가능해 향후 생산량을 유연하게 늘릴 수 있다.6면취 기준으로는 월 12만대의 생산능력이 가능하며,8면취 공법을 적용하면 생산능력은 최대 16만대로 늘어난다.LG전자는 연말까지 6면취 기준으로 월 생산량을 최대 수준으로 끌어올린 뒤 내년 안으로 8면취 공법을 적용키로 했다. LG전자는 A3라인이 완전 가동되는 오는 11월에 월 31만대 생산이 가능해지며,A3라인이 8면취 공법 체제로 전환되는 내년에는 월 35만대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세계 최대의 PDP 생산업체로 떠오르게 된다. 이에 따라 LG전자는 올 4·4분기에 세계 최대의 PDP모듈 메이커로 올라서는 데 이어 내년에는 세계 PDP모듈뿐 아니라 PDP TV시장까지 모두 석권할 계획이다. 그러나 세계 1위 업체인 삼성 SDI와 최근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마쓰시타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삼성 SDI는 올 연말에서 내년 초까지 라인 업그레이드를 통해 기존 4면취 체제를 6면취로 전환해 월 생산능력을 30만대로 확대할 방침이다. 쉽사리 1위 자리를 LG전자에 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LG전자와 2위 다툼을 벌여온 마쓰시타도 연말까지 생산능력을 30만 5000대 수준으로 확충할 예정이어서 세계 PDP시장 1위를 향한 3파전은 한층 달아오를 전망이다. 지난해 세계 PDP시장 점유율은 삼성 SDI와 LG전자가 각각 25%,23%로 1,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올 2·4분기에는 삼성 SDI가 31.0%, 마쓰시타 24.9%,LG가 24.2%로 LG전자가 마쓰시타에 2위 자리를 내줬다. 윤광호 LG전자 PDP사업 부사장은 “A3라인은 LG전자가 세계 PDP시장 1위 달성을 위한 신형 엔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세계최초 7세대LCD 출하 개시

    삼성전자와 일본 소니가 합작으로 설립한 ‘S-LCD’가 19일 세계 최초로 7세대 기판(1870×2200㎜)의 TFT-LCD 패널 생산을 개시했다. S-LCD는 19일 충남 탕정사업장에서 삼성전자의 이윤우 부회장과 이상완 LCD총괄 사장, 이재용 상무, 소니의 주바치 료지(中鉢良治) 사장 등 양측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품 출하식을 가졌다.7세대 LCD는 한 장의 유리기판에서 32인치 12장,40인치 8장,46인치 6장을 만들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7세대 라인 가동을 계기로 32인치 이상의 대형 LCD TV 시장에서 40,46인치로 제품 표준화 경쟁을 주도해나간다는 방침이다. 7세대 라인은 가동 초기 월 1000장(원판기준)가량을 생산한 뒤 올해말쯤 생산량을 월 6만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생산량은 삼성전자와 소니가 절반씩 공급받는다. 삼성전자는 이번 라인에 이어 내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2조원 이상을 투자,7세대 두번째 라인인 7-2 라인을 탕정사업장에 짓고 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월인석보 판목 400년만에 공개

    보물 제582호 월인석보판목(月印釋譜板木)이 400여년 만에 일반에 공개된다. 충남 공주시 국립공원 계룡산에 있는 사찰인 갑사는 19일 “부처님 오신날(5월 15일)을 맞아 5월 1일부터 20일까지 갑사 보장각 전시실에서 이 판목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갑사가 소장하고 있는 가로 90㎝, 세로 21㎝의 이 판본은 불교경전 ‘월인석보’를 새겨 책으로 찍어내던 각판(刻版)으로 현존하는 유일한 원판이다. 갑사가 소장중인 46개 원판이 이번에 모두 공개된다.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쳐, 세조 4년에 편찬한 것으로 훈민정음 창제 이후 최초로 한글로 만든 불교경전이다. 월인석보판목은 모두 25권(권당 57장)이었으나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당시 불타고 현재 갑사가 소장중인 21권 46장만 남아 있다. 이 판목의 시주자는 충청도 한산에 사는 ‘백개만’이라는 이로 선조 2년(1569년)에 제작돼 논산 쌍계사에서 보관하다 70여년 전 갑사로 옮겨졌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차기교황 獨라칭거 유력”

    |파리 함혜리특파원|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을 인물이 누가 될지에 전세계가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이탈리아 언론들은 독일의 요제프 라칭거(77) 추기경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았다.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비밀회의(콘클라베)를 닷새 앞둔 13일 이탈리아 언론들은 보수파인 라칭거 추기경이 투표권을 가진 80세 이하의 추기경 115명 가운데 40∼50명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분석했다. 비밀 투표에서 교황에 선출되기 위해서는 3분의 2 이상, 즉 77명 이상의 표를 얻어야 한다. ‘르 코리에르 델라 세라’는 “상당수 추기경들이 기본적인 가톨릭 교리를 엄격하게 수호하려는 라칭거 추기경의 강경 보수적 노선에 동조하고 있으며 40여명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전했다. 좌파 성향의 ‘라 레퓌블리카’도 라칭거 추기경이 비밀투표에서 40∼50표를 받을 것으로 분석했다. 신문은 일부 이탈리아 추기경들이 밀라노 대교구의 디오니지 테타만치(71) 대주교가 교황이 되는 것을 거부하며 라칭거를 지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한편 성인들의 생일로 복권당첨 번호를 예상해 온 유명 칼럼니스트 겸 수비(數) 역술인 파브리조 샤미르는 차기 교황이 남미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보도했다. 샤미르는 “지도 위에 황금 진자를 올려놓고 30분을 있었더니 진자가 남쪽으로 밀렸다.”며 “전문가로서 숫자와 직관은 남미라고 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신문은 샤미르의 ‘진자’는 지난 1978년 요한 바오로 2세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제 264대 교황으로 선출되기 며칠 전 동유럽으로 요동을 치고, 팔레르모 복권 원판도 30에서 멈췄는데 그 숫자 역시 바르샤바 혹은 그 인근을 암시하는 숫자였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저명한 도박 전문업체 윌리엄 힐사(社)에 따르면 프란시스 아린제 추기경(나이지리아)이 9대 4로 가장 확률이 높았고, 테타만치 추기경이 7대 2, 오스카르 로드리게스 마라디아가 추기경(온두라스)은 6대 1, 라칭거 추기경 9대 1, 클라우디우 우메스 추기경(브라질) 10대 1 순으로 나타났다. 바티칸의 언론들은 오는 20∼21일쯤 성베드로 성당 굴뚝으로 새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lotus@seoul.co.kr
  • [13일 TV 하이라이트]

    ●대추나무 사랑걸렸네(KBS1 오후 7시30분) 판수가 덕보를 찾아와 조카 친구가 공장 부지로 철웅이네 올빼미 밭을 사고 싶어한다며 도와달라고 한다. 덕보는 판수를 괘씸해하며 절대로 땅을 파는 데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한다. 길에서 상훈을 만난 판수는 철웅의 어머니를 설득해 줄 것을 부탁하는데…. ●생방송 TV연예(SBS 오후 8시55분) 불량주부 손창민이 떴다. 드라마 ‘불량주부’에서 아주 불량스러운 주부 연기로 대한민국 주부들의 마음을 통하게 한 손창민을 만나보고, 드라마 ‘불량주부’의 요절복통 NG를 모두 공개한다. 또 기상천외한 동작으로 열풍의 주역이 된 ‘웃, 찾, 사’의 ‘화상고’ 3인방을 만나본다. ●박주현의 시사 업클로스(YTN 오후 3시5분) 지난해부터 서울시에서 실시하고 있는 밤 10시 이후의 학원교습 금지가 무효라는 법원판결이 나왔다. 그렇지만 교육청에서는 이에 반발, 학원의 심야교습 규제를 계속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교육당국과 학원, 그리고 학부모들의 다양한 의견을 종합해 토론해 본다. ●문화센터(EBS 오전 11시) ‘비즈공예’는 개성 있는 스타일을 연출하고자 하는 많은 여성들에게 인기를 누리고 있다. 비즈 공예에 필요한 기본 공구와 부속, 기본 기법 등을 배우면서 비즈공예의 매력에 빠져보자. 여러 가지 소재와 모양의 비즈들 중 가장 인기 아이템인 크리스털을 이용해 심플한 반지를 만들어 본다. ●신입사원(MBC 오후 9시55분) 강호는 문과장의 지시로 사무실을 청소하러 온 미옥에게 빵이나 먹자고 한다. 마주앉아 빵과 음료수를 먹던 도중 미옥이 사무실에 혼자 있냐고 묻자, 강호는 자기가 비밀 프로젝트 팀에 있다고 은밀하게 일러준다. 송 이사는 강호를 찾아내 봉삼과 현아가 있는 경영지원본부로 데려온다. ●해신(KBS2 오후 9시55분) 번성한 청해 저잣거리에 도착한 염장은 정화의 여각으로 찾아가 어엿한 여각주인이 된 정화를 애틋하게 바라본다. 무진이 누군가 정화를 뒤따라오는 낌새를 눈치채고 공격하자, 염장은 무진에게 일격을 가한 뒤 자취를 감춰버리지만, 정화는 자신을 쫓아온 존재가 왠지 염장일거란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 장애인 등외엔 대리접수 안돼

    올해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들은 수험생 주의사항을 더욱 꼼꼼히 살펴야 한다. 부정행위에 대한 예방 대책과 처벌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밝힌 대책을 문답으로 살펴봤다. 지난해 수능에서 부정행위로 적발됐는데 올해 응시할 수 있나.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처벌을 강화할 계획이지만 소급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응시할 수 있다. 수능 응시를 제한하는 기준은. -답안을 훔쳐보거나 보여주는 행위, 커닝 쪽지나 신호를 주고받는 행위, 감독관의 지시에 불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 해 시험만 무효처리한다. 그러나 미리 부정행위를 계획하거나 조직적으로 모의하는 경우, 대리시험 의뢰 및 응시, 다른 수험생에게 답안을 보여주도록 협박하는 행위, 부정행위와 관련해 금품을 주고받은 경우 등은 그 해는 물론 이듬해에도 응시를 제한한다. 과거 부정행위로 무효처분을 받은 수험생이 다시 적발되면 그 해부터 3년간 응시할 수 없다. 가족이나 친구가 원서를 대신 접수해도 되나. -안 된다. 재학생은 학교를 통해 일괄접수하고, 졸업생은 출신 고교나 시·도교육청에 직접 접수해야 한다. 장애인이나 수형자, 군 복무자, 입원 환자, 해외 거주자 등은 예외다. 이 경우에도 대리 접수자는 응시자와의 관계를 입증하는 서류나 장애인등록증, 수감확인서, 복무증명서, 입원확인서 등 관련 서류를 내야 한다. 대리접수한 경우에는 수험표에도 표시돼 시험실에서 특별관리된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현상해 원서에 붙여도 되나. -상관없다. 그러나 여권용 사진 크기(3.5×4.5㎝)에 맞춰야 한다. 스티커 사진이나 원판을 변형한 이미지 사진 등은 쓸 수 없다. 시험실에 휴대전화를 갖고 들어가도 되나. -휴대전화나 디지털카메라,MP3, 전자계산기 등 모든 전자기기는 시험실에 갖고 들어갈 수 없다. 어쩔수 없이 갖고 들어갔을 때는 1교시 시작 전에 감독관에게 맡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행위로 간주된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레저+α]

    [레저+α]

    ●제주도 유채꽃 나들이 제주신라호텔은 다음달 말까지 봄의 절경인 유채꽃 풍광을 할인된 가격에 만끽할 수 있는 유채꽃 패키지를 내놓았다. 호텔내 피트니스클럽과 수영장은 무료이며, 겔랑스파는 할인된다. 렌터카도 50% 할인된다. 요금은 2인 조식을 포함해 주중 18만원, 주말 24만원.www.chejushilla.com,1588-1142. ●동백꽃도 보고 해신도 보고 우리테마투어는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19일까지 매주 토요일 전남 완도군 보길도 동백과 완도 해신 촬영장을 돌아보는 여행상품을 마련했다. 일정은 해남 땅끝마을과 완도보길도, 세연정, 완도 해신 세트장, 강진 백련사 등이며, 가격은 왕복교통비와 식사(2회), 입장료를 포함해 6만 9000원이다. 출발은 서울 시청역 1,2번 출구 덕수궁 정문앞.www.wrtour.com,(02)733-0882. ●섬진마을 매화축제 강산여행은 봄향기가 그윽한 전남 광양시 섬진마을 매화축제와 여수 오동도 동백섬을 돌아보는 상품을 마련했다. 다음달 11·12·18·19일 출발하는 무박 2일 상품으로 남해안 일출명소인 향일암에서 일출을 감상한 뒤 섬진강 매화마을과 여수 오동도를 돌아보는 코스다. 요금은 5만 3000원.www.kangsantour.co.kr,(02)3426-3211. ●인터넷으로 하와이 화산여행을 하와이관광청은 인터넷으로 하와이의 화산을 여행할 수 있는 웹사이트(www.efieldtrips.org)를 개설했다고 밝혔다. 디스턴스 러닝 인터그레이터사가 제공하는 이 웹사이트는 하와이의 화산을 비롯해 캘리포니아의 데스벨리, 알래스카 등을 온라인으로 구경할 수 있으며, 펄하버를 비롯한 역사적인 장소도 화상으로 여행할 수 있다. 오는 3월10일에는 국립공원 관리직원과 화상 채팅을 실시해 화산에 대해 궁금한 것을 직접 물어볼 수 있다.(02)777-0033. ●3·1절에 태극기 만들어 봐요 서울랜드는 3·1절을 맞아 다음달 1일 세계의 광장에서 ‘태극기 탁본체험 행사’와 ‘3·1절 OX퀴즈’ 등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탁본체험행사에서는 독립기념관에 전시된 태극기와 기미독립선언문의 원판 모형본으로 직접 탁본을 할 수 있으며, 탁본을 관람객들에게 기념으로 나눠줄 예정이다. 아울러 3·1절 만세운동을 재현하는 기념 퍼레이드가 오후 2시 펼쳐지며 태극기 아저씨로 유명한 이계춘씨가 함께하며 태극기 스티커를 무료로 나눠주고 기념사진도 촬영한다.www.seoulland.co.kr,(02)504-0011. ●렌트카 제공 이벤트 제주 재즈마을은 3월 31일까지 제주도 재즈마을 펜션을 예약하는 사람에 한해 렌트카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이벤트는 화∼목요일 예약자에 한하며, 재즈마을 복층 1박(렌트카 24시간 포함) 16만원, 원룸 1박(렌트카 24시간) 11만원이다.1577-4241,www.djj.co.kr.
  • [씨줄날줄] 디렉터스 컷/이용원 논설위원

    한 편의 영화는 언제 어디서 보아도 똑같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편집에 따라 스토리 전개, 러닝타임, 결말, 주제가 다른 여러 버전이 존재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디렉터스 컷(director’s cut)’, 곧 감독판이다. 감독판이 나오는 까닭은 영화의 상품성과 작품성이 종종 충돌하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개봉한 영화 ‘나비 효과’의 비디오는 두 가지 결말을 함께 보여 준다. 영화가 끝난 뒤 시차를 두고 감독이 당초 구상한 결론을 6분 정도 다시 틀어 주는 방식이다. 극장판이 해피엔딩인 데 견줘 감독판은 매우 염세적이어서 작품 전체의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영화가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권에 진출하다 보니 그에 맞춰 모양새를 바꾸는 사례도 흔하다.1970년대의 대표적 성애 영화인 ‘엠마누엘 부인’ 시리즈는 처음부터 구미판과 동양판을 따로 출시했다. 성애물에 덜 익숙한 동양 관객이 가질 거부감을 줄이고 각국의 검열에서도 벗어나려는 의도였다. 국내에서는 최근 이병헌·최지우 주연의 영화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가 일본판을 별도로 편집해 수출한 바 있다. 감독판을 비롯한 공식적인 이본(異本)만 있는 것은 아니다.1996년 국내 상영된 로버트 드니로·알 파치노 주연의 ‘히트’는 시사회에서 처음 공개됐을 때 러닝타임이 2시간8분이었다. 그러나 필름이 30여분 잘린 사실이 밝혀지는 바람에 원판으로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다시 받아 극장에 올렸다. 두 작품을 비교하면, 원작은 가정의 붕괴를 바탕에 깐 현대의 묵시록인 데 비해 잘린 뒤에는 단순한 갱스터 영화였다. 필름을 자른 주범은 수입사로, 상영 횟수를 늘리는 게 목적이었다. 말하자면 ‘수입사판’이다. 이밖에 검열이 있을 당시에는 마구 가위질 당한 영화 즉 ‘검열판’이 비일비재했으며, 최근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가처분신청에서는 법원이 세 장면을 삭제하도록 했으니 ‘법원판’이 새로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오는 25일 국내에서 개봉하는 미국영화 ‘숨바꼭질’이 결말이 다른 두 가지 버전을 동시에 극장가에 내건다고 한다. 유례 없는 일이다. 영화팬에게 선택과 비교의 기회를 주는 다양한 버전이 싫을 건 없지만, 두 배로 늘어날 관람료는 어찌할거나.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광화문 현판 ‘원래대로’

    고종 2년(1865) 경복궁 중건 때 함께 지어졌던 광화문 현판 원형을 사진 판독을 통해 찾을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의 박정희 대통령 친필 현판 교체 방침으로 빚어진 논란도 일단락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15일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광화문 옛 사진(1916년 촬영 유리원판)을 박물관 학예연구실에 의뢰해 디지털 분석을 통해 글자를 복원중이며, 글자의 윤곽을 비교적 뚜렷하게 판독해냈다.”고 밝혔다. 사진의 광화문 현판은 경복궁 중건 때 서사관(書寫官)을 지낸 임태영(任泰瑛)이 쓴 것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아리랑’ 원본필름 공개될까

    ‘아리랑’ 원본필름 공개될까

    |도쿄 이춘규특파원|한국 최초의 영화인 ‘아리랑’의 필름 원판이 드디어 발견되나. 일본의 전설적인 영상수집가 아베 요시시게가 지난 9일 타계, 춘사(春史) 나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의 원본필름이 발견될지 주목된다고 마이니치신문이 11일 보도했다. 조선총독부 경찰의사를 지낸 부친 때부터 영화를 수집,5만점 이상의 희귀 필름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아베가 오사카병원에서 상속인 없이 타계함으로써 일본 문화청이 소장품을 승계, 관리할 것으로 보인다고 신문이 전했다.‘아리랑’ 원본은 6·25 때 불타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아베가 소장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고, 언론은 그의 자택 소장목록에서 ‘아리랑/9권/현대극’이라는 목록을 확인했다. 고인도 생전에 자신이 ‘아리랑’을 소장하고 있음을 시사했지만 공개는 거부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남북 영화관계자들이 고인으로부터 아리랑을 얻어내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북한측은 조총련 산하 총련영화제작소장인 여운각(78)씨가, 한국측은 다큐멘터리 작가 정수웅(62)씨가 건네줄 것을 호소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아리랑은 식민지시대 반일(反日)영화인 만큼 일본인으로서 생각할 점이 있다.”며 “내놓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남북한이 통일되면 평화를 위해 내놓겠다.”고 말했었다. taein@seoul.co.kr
  • [여담여담] 불법복제시대의 예술/김소연 문화부 기자

    학창시절, 학교 근처엔 중고 희귀 LP 음반을 팔던 가게가 있었다. 하굣길마다 총총걸음으로 들른 그 곳엔 수입 원판들이 유리창 너머로 저마다 멋진 표지를 자랑하며 진열돼 있었다. 당시 기자는 미지의 땅을 처음 밟는 탐험가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음반들을 하나둘 훑어보며 행복한 상상에 젖어들곤 했다.10여년전 만들어졌을 음반에는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손때가 묻었을 테다. 여러 사연을 품은 채 바닷길을 건너왔을 테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눈빛은 ‘원본’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빛났다. 하지만 한 장에 5만원을 훌쩍 넘겼던 그 음반들은 ‘그림의 떡’이었다. 그러다 욕심이 나는 원판이 생겼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던 데다 두 장짜리 표지가 무척이나 탐이 났다. 힘들게 용돈을 모아 그렇게 처음으로 구입한 원판이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이었다. 몇개월 뒤 라이선스로 발매가 됐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내 건 원판이었으니까.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이 모든 것은 아스라한 추억속으로만 남았다. 아마도 컴퓨터로 다운받아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세대들은 당시 기자의 노력과 마음을 이해하기 힘들 듯싶다. 이미 1930년대에 발터 벤야민이 논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원본이 사라지는 시대의 변화를 정확히 감지했지만, 예술 마니아들은 자신들이 수집하는 복제 예술품에도 원본의 흔적을 새기려고 애써왔다. 하지만 화질이나 음질의 손상이 거의 없는 디지털 무한 불법복제는 이같은 원본의 흔적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극장이나 음반가게에 찾아가 정품에 돈을 지불하는 것조차 귀찮고 불필요한 일로 여긴다. 얼마전 회사 근처를 지나가다 최신 개봉작을 총망라한 불법 DVD를 파는 걸 본 적이 있다. 같이 있던 회사선배들은 영화담당인 기자에게 재미있는 영화의 추천을 부탁했다. 웬만하면 극장에 가라는 기자의 말에 “애가 있어서”라는 ‘편리한’ 이유를 대면서…. 문득 오래전 원판가게 앞에서 서성이던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불법복제의 편리함이 감동과 경이로움이라는 소중한 감정들을 빼앗아가 버렸다는 사실에 새삼 가슴이 저릿해왔다. 김소연 문화부 기자 purple@seoul.co.kr
  • [클릭 이슈] 김민수교수 vs 서울대 공방 2라운드

    서울대 대학본부 앞에는 지금도 김민수 전 미대 교수의 항의 농성용 천막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지난달 28일 김 전 교수의 재임용 탈락을 취소하라는 신청에 법원은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천막은 거둬지지 않았고, 지난 3일에는 오히려 천막에서 겨울을 나겠다는 듯 비닐이 하나 덧씌워졌다. 이틀 전 정운찬 총장이 “3월1일까지 김 전 교수를 재임용하고 7년 동안 받지 못한 봉급도 보상하겠다.”고 말했지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학교 측 언론에만 입장발표” 김 전 교수가 가장 못마땅해하는 것은 학교측의 ‘무반응’이다. 김 전 교수는 6일 “학교측은 나에게는 어떤 제안도 내놓지 않았으면서도 언론에만 전향적으로 결정하겠다는 뜻을 흘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학교는 3월1일 나를 강단에 세우겠다고 하지만 법원 송달에 10일, 행정처분에 14일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수강신청기간이 지난 뒤 강의실을 내준다면 학생 없이 수업을 하라는 말이냐.”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학교측은 “세부적인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타협안을 제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면서 “우리도 최대한 신속하게 결론지을 수 있도록 학칙과 법률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대는 판결 이후 학장회의 등을 잇따라 갖고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29일에는 총장 주재로 무려 6시간에 걸쳐 회의를 열어 김 전 교수의 재임용을 ‘전향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공식 발표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안은 여전히 논의 중”이라는 말로 설명을 대신했다. ●“7년 무시하고 조교수 자리 주겠다니…” 판결 이후 학교측과 김 전 교수는 법원의 결과를 놓고 논쟁을 펼쳤다. 김 전 교수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당시 심사는 명백하게 잘못됐던 것으로 드러난 만큼 ‘재임용’이라는 단어 대신 ‘원직 복직’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교수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고유창 변호사는 “김 전 교수의 동료들은 이미 부교수를 거쳐 정교수의 자리에 올랐다.”면서 “학교측은 형식적으로 재임용 심사를 거쳐 조교수 자리를 주겠다는 부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 변호사는 “이미 6개월 전부터 교수지위확인소송과 피해배상소송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논쟁이 길어지자 교수협의회(회장 장호완)도 나섰다. 교수협의회는 지난 3일 “대학당국은 김 전 교수의 교단 복귀와 희생보상을 위해 법과 학칙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협의회는 양측이 ‘재임용’과 ‘복직’이라는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리지 말라는 당부도 했다. 교수협의회는 “정 총장이 김 전 교수가 정상적으로 교수직을 수행했다면 기대할 수 있는 정상적 지위에 대한 개연성을 고려해 달라는 제안에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고 전했다. 김 전 교수측은 그러나 “복직에 관련된 사항은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고, 또 대학은 사법부를 무시하는 행정처분을 내리고 있다.”고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김 전 교수는 “학교측에서 형식논리에 따라 재임용 심사를 받으라고 한 뒤 곧바로 미대에서 승진심사를 받으라고 하면 다시 탈락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미대 교수들과 김 전 교수는 이미 감정의 골이 깊게 패어 있다. 권영걸 미대 학장은 최근 ‘김민수 교수 공동대책위원회’가 1998년 심사 당시 김 전 교수에 낮은 점수를 주어 탈락시킨 당사자로 자신을 지목한 데 유감을 갖고 있다. 지난해 12월 김 전 교수측은 “권 학장이 사실상 서울대 교수로 내정된 내부인사이면서 외부인사 자격으로 심사에 참여했다.”고 의혹을 제기했으나 권 학장은 “심사에 참여한 적이 없다.”고 맞받아쳤다. ●학생들 의견도 엇갈려 학생들도 생각이 서로 달랐다. 인문대 한성신(21)씨는 “대학측이 무관심하다가 법원판결이 있고 나서야 결정을 존중하는 양 언론에 생색을 내려고 하는 것 같다.”면서 “교수지위 확보와 명예회복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고법 파기환송심 판결이 나기 전에는 이 문제에 관심을 보였던 학생들도 판결이 나자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반면 사회대 김종권(21)씨는 “김 전 교수의 싸움이 정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원한을 풀기 위한 것 같다.”면서 “김 전 교수도 승소 판결이 났으니 다른 학교로 가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새만금사업 취소·변경 판결] 혈세 2兆 ‘수몰’위기

    [새만금사업 취소·변경 판결] 혈세 2兆 ‘수몰’위기

    법원이 4일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해 ‘계획변경 또는 사업취소’ 판결을 내림에 따라 지금까지 2조원 이상이 투입된 대형 국책사업이 또다시 표류하게 됐다. 현재로서는 정부가 법원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지만 어찌됐든 예정대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특히 정부가 지난 3일 지율 스님의 단식중단 대가로 경부고속철 천성산구간에 대해 환경영향 조사를 다시 하기로 하는 등 국책사업들이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있다. 법원은 이날 원고인 환경단체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소송 당사자들의 최대 쟁점 중 하나였던 방조제 공사에 대해서는 집행정지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남은 2.7㎞ 구간 공사를 마무리해 방조제를 완공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셈이다. ●보강공사 年800억… 정부 항소 뜻 일단 정부는 항소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당초 어느 쪽이 1심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든 대법원(3심)까지 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해온 터였다. 농림부 관계자는 “방조제 공사를 일시 중단할 경우, 보강공사를 하는 데만 연간 800억원의 혈세를 투입해야 하고 태풍이나 해일 등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추가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가 법원 판결을 수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 경우, 농지와 담수호 조성이라는 기존의 사업계획을 일정한 절차를 거쳐 변경한 뒤 새로운 사업계획안을 확정하고 새만금사업을 계속 추진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가 새 사업계획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환경단체, 전북도 등 이해 당사자들간의 의견을 절충하기가 쉽지 않고, 설혹 새 사업안을 마련하더라도 환경단체가 막판에 이의를 제기하며 소송에 나서면 또다른 ‘소송 전쟁’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무리한 사업 강행탓” 책임론도 새만금사업 외에 경부고속철 공사, 원전수거물관리센터(원전센터) 건립 등 대형 국책사업들이 곳곳에서 홍역을 앓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미리 주민이나 환경·시민단체들을 설득시키지 못한 채 무리하게 사업을 강행한 데 대한 책임론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지난 3일 국회와 지율 스님의 뜻을 받아들여 향후 3개월간 환경영향 공동조사를 실시키로 함에 따라 천성산 구간 공사는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됐다. 공사가 완전 중단되는 것은 아니지만 공동조사 기간에는 조사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행위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공사에 필수적인 대형 발파작업을 할 수가 없는 탓이다. 이에 따라 경부고속철 2단계 구간은 2010년 말까지도 개통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는 당초 경부고속철 2단계 구간공사를 2008년까지 완공한다는 계획이었다. 정부는 공사중단시 공사비 증액 등 직접적인 손실은 물론 연간 2조원 정도의 사회·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천성산 공사중단 피해 年2조원 경인운하(인천 시천동∼서울 개화동 18㎞ 구간의 수로) 건설사업도 환경단체들이 경제성 부족과 환경훼손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면서 결국 2003년 9월 사업이 보류된 뒤 지금까지 표류하고 있다. 정부는 사업보류로 국고 10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봤다.86년부터 추진해 온 원전센터 부지선정 작업도 19년 동안이나 표류하고 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행정법원 조정권고안 의미·향후절차] 권고안 관계없이 공사 계속될듯

    [행정법원 조정권고안 의미·향후절차] 권고안 관계없이 공사 계속될듯

    17일 서울행정법원이 새만금사업에 대해 ‘일단 중지’를 권고함에 따라 85%(사업비 기준)가 진척된 방조제 공사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쏠린다. 현재 새만금 방조제는 전체구간 33㎞ 중 30.3㎞가 완공된 상태다. 나머지 2.7㎞는 올 연말 배수(排水)갑문 등 시설을 모두 지은 뒤 마지막으로 물막이를 하기 위해 남겨져 있다. 농림부는 이번 법원 조정권고안 수용여부와 관계없이 공사가 바로 중단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정권고안 수용할 경우 농림부 관계자는 “남은 방조제 건설구간을 새만금사업의 용도측정 등을 실시할 민관위원회 구성 때까지 막지 말라고 법원이 주문했지만 이는 마지막 2.7㎞ 구간에만 해당하는 것”이라며 “신시배수갑문 건설, 기존 구조물 보강 등 당초 올 연말까지 진행키로 했던 공사는 계속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공사를 중단할 경우, 기존 구조물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등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정권고안 거부할 경우 법원판결로 가서 불리한 결과가 나온다 해도 공사 진행에는 법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는 게 농림부 주장이다. 환경운동연합이 제기한 이번 행정소송의 내용이 ▲정부 조치계획 취소 ▲매립면허 무효확인 등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당장 공사계속 여부의 결정과는 무관하는 얘기다. 농림부 관계자는 “법률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대법원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공사를 진행하는 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농림부에 불리한 판결이 나올 경우, 환경단체 등의 여론을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음달 4일 이번 조정권고안과 비슷한 내용의 1심 판결을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법원이 직권으로 공사 집행정지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새만금 사업이란 1991년 시작된 새만금사업은 전북 군산∼부안 앞바다에 33㎞의 거대한 방조제를 쌓아 서울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이르는 1억 2000만평 규모의 농지와 담수호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사업목적은 ▲대규모 우량농지 및 수자원 확보 ▲배후농지(1만 2000㏊) 침수 방지 ▲관광 활성화 등이다. 지금까지 총 공사비 2조 514억원 가운데 1조 7483억원이 투입돼 2개 구간 2.7㎞를 뺀 모든 구간의 공사가 마무리된 상태다. 정부는 연내 기존 구조물에 대한 보강공사와 신시배수갑문 공사를 마치고 내년 초 나머지 2.7㎞ 구간의 물막이에 나서 연말까지 공사를 끝낼 계획이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말 알아듣는 꽃’ 기생들의 삶 한눈에

    ‘말 알아듣는 꽃’ 기생들의 삶 한눈에

    “소설과 시기(詩妓)의 것에는 감정을 거짓한 흔적이 없습니다. 만일 공자의 사무사(詩無邪)라는 시에 대한 평이 옳은 말씀이라면 이 점에서 아낙네들의 노래는 낙제이고 기생의 시는 급제외다.” 시인 김억의 말대로 유교사상으로 무장한 조선사회에서도 진솔하게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시어로 노래한 이들이 있다면 그건 바로 기생이다. 말을 알아듣는 꽃, 그래서 해어화(解語花). 그들의 삶은 그 자체가 한편의 슬픈 시였다. 널리 알려진 황진이나 그와 쌍벽을 이뤘던 매창, 강릉기생 홍장, 경성기생 홍랑, 평안도 성천 기생 부용 등 옛 기생들은 문학을 비롯해 음악, 춤 등 못하는 게 없었던 당당한 예인이었다. 이들은 신분은 비록 천인이었지만 당대의 전문직 여성으로 상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기생조합을 거치면서 이들의 삶은 성과 관련된 이미지로만 왜곡·폄하돼,‘기생’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센터 전시장에 마련된 ‘기생’전은 시·서·화의 재능과 지조를 갖춘 교양인으로서의 기생들의 역사적 발자취를 살펴보는 색다른 전시다. 기생과 관련된 문학이나 인물 중심의 에피소드는 많지만 시각예술 차원에서의 해석은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게 현실.(주)서울옥션이 주최한 이번 기획전은 기생이라는 단일 주제로 열리는 최초의 전시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전시작품은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에 걸쳐 제작된 엽서와 원판사진 500여 장과 평양 명기 소교(小橋)의 ‘묵죽도’와 죽향이 그린 ‘묵란도’, 초상화가 동강 권오창이 그린 기생 초상, 성행위를 묘사한 동경과 향갑노리개, 비녀, 뒤꽂이 등 장신구와 화장구들로 이뤄졌다. 엽서와 사진들 속에는 담배를 피우며 바둑을 두는 기녀의 모습이나 수업을 받는 모습 등이 담겨 있어 당대 풍속의 한 단면을 엿보게 한다. 기생의 이미지를 현대미술의 시각에서 바라본 작품도 눈길을 끈다. 기생방에서 촬영한 알몸의 여성의 사진 위에 한복연구가 김혜순의 기생한복 이미지를 입힌 사진작가 배준성의 ‘화가의 옷-기생Ⅰ’이 대표적인 작품. 논개의 충혼을 달래주는 진주검무(중요무형문화재 12호)와 관련된 영상, 운보 김기창이 신윤복의 그림을 패러디한 ‘청록산수’, 윤석남의 설치조각 등도 나와 있다.2월 13일까지.(02)395-0331.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美 국토안보부장관 체토프 연방법원판사

    |워싱턴 이도운 특파원|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11일 사임 의사를 밝힌 톰 리지 국토안보부 장관의 후임으로 마이클 체토프 뉴저지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지명했다. 체토프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법무부의 형사업무 책임자로 일하며 9·11테러 당시 미국의 법률적 대응에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다. 이에 앞서 부시 대통령은 10일 백악관 경제보좌관 및 국가경제위원회 사무국장에 하버드대 동창생인 앨런 허버드를 임명했다. 허버드는 지난해 11월 사임한 스티븐 프리드먼의 뒤를 이어 행정부 내 각 부처의 경제정책을 조정하고 의회 및 언론을 상대로 정부정책을 홍보하는 책임을 맡게 된다. 특히 그는 부시 2기 정부의 주요 정책과제인 사회보장 개혁과 세제개편을 앞장서 추진하는 일에 주력할 전망이다. dawn@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빛이 스며든 자리/우승미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빛이 스며든 자리/우승미

    눈을 떴다. 문밖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일까. 암실에 있으면 의식도 시간도 모두 멎었다. 이곳에 온 후 나는 주로 암실에서 지냈다. 둥글게 몸을 말고 바닥에 누워, 불필요한 감각이 퇴화된 심해의 생물처럼 눈과 귀를 닫았다.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촉각이었다. 밀폐된 공간의 공기는 아래로 가라앉았다. 공기는 욕조 속의 더운 물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 내 몸을 감쌌다. 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렸다. 경쾌한 리듬의 허밍이었다. 멜로디가 귀에 익었다. 가게 안으로 누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힘겹게 팔을 들어 몸 마디마디를 주물렀다. 피가 돌면서 눌려있었던 몸 왼쪽이 저려왔다. 암실 문을 열자 빛이 쏟아졌다. 손그늘을 만들고 부신 눈을 떴다. 딱딱한 알루미늄 가방 위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햇빛 속에 앉아있는 여자는 스스로 빛나고 있는 빛 무더기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주변을 감싸고 있던 빛이 스러지면서 여자의 윤곽이 드러났다.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여자는 얼굴빛이 유달리 희었다. 여자가 내 쪽으로 팔을 뻗어 손을 내밀었다. 여자의 팔은 윤곽이 희미했다. 홀로그램의 영상처럼 반쯤은 투명해보였다. 악수를 청하는 것인지 자신을 일으켜 달라는 것인지 몰라 잠시 주춤거리다가 여자의 손을 맞잡았다. 여자는 손아귀 깊숙이 손을 넣고 힘차게 흔들었다. 자칫하면 못 찾고 그냥 돌아갈 뻔했어요. 초행이라면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도시에서 상가가 가장 발달한 곳이었다고 한다. 다리 건너편으로 버스터미널이 이전하면서 그쪽에 신시가지가 형성된 후로는 죽은 골목이 돼버렸다. 사진관은 옛 번화가의 뒷골목에 위치했다. 원래는 주택가였는데, 주택을 허물고 상업용 건물을 급조해 형성된 상가였다. 지금은 가게를 연 곳이 거의 없어서 대부분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이곳은 구식 양옥의 1층을 개조해 가게로 쓰던 것이어서 밖에서 보면 가정집처럼 보였다. 오기 전에 부동산에 들렀어요. 한 달 전에 이미 매매되었다고 하더군요. 혹시나 싶어 물어보는 건데 저에게 세 놓을 생각 없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임대를 목적으로 산 집이 아니었다. 여자는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중고로 구입한 17분 컬러 현상기가 한 구석에 놓여있을 뿐, 가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사진관을 하려고 산 건물이지만 한 달째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루의 대부분을 암실에서 보냈다. 배가 고프면 끼니를 때우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여자는 얼룩져 더러워진 벽을 따라 걷다가 쪼그리고 앉아 바닥의 나뭇결을 들여다보았다. 곳곳의 정경들을 기억 속에 새겨두기라도 하려는 듯 천천히 세밀하게 보았다. 여긴 제가 태어난 곳이에요. 오래전에 아버지가 여기서 사진관을 했어요. 위층에 살림을 차리고요. 여자의 나이를 가늠해봤다. 캐주얼한 옷차림 때문에 언뜻 보면 어려보였지만 눈가에 옅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나와 비슷하거나 한두 살 아래쯤일 것이다. 여기서 함께 지내게 해주세요. 처음엔 그냥 둘러보고만 가려고 했어요. 막상 와보니 여기 있고 싶어지는군요. 세를 놓는 건 싫다고 하셨죠? 대신 일을 하겠어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가게를 열면 가게일도 도와드릴게요. 여자는 눈을 깜박거리며 나를 말끄러미 보았다. 여자의 눈빛 속에는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과 거절할 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한데 섞여 있었다. 어떤 말도 선뜻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어머니가 병중에 있을 때 집안일과 병간을 도맡았던 아주머니와 6개월여를 함께 지내본 적은 있지만, 나는 타인과 함께 생활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호하게 거절을 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여자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점. 자신이 태어난 곳을 찾아와 그곳에 살고 싶어 한다면 무언가 절박한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어딘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가 태어났다는 이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투병 중이었던 어머니와 묏자리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어머니는 자동차 안에서 손가락으로 도로의 모퉁이에 나 있는 골목을 가리켰다. ―저기가 느이 아버지가 사진관을 하던 자리다. 나는 자동차 속도를 줄이며 어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저녁 어스름이 내린 골목은 동굴의 입구처럼 어두웠다. 가로수에 가려 골목의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바람에 무성한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음산한 소리가 났다. ―예전에는 이 길이 번화가였지. 세가 워낙에 비싸서 느이 아버지가 저 골목 끝에 있는 집을 사서 아래층을 가게로 개조했다.2층에다 신접살림을 차렸고, 너도 거기서 낳았어. 아버지가 그렇게 일찍 죽지만 않았어도 저기서 오래 살았을 게야. 그때는 입구가 보이지 않는 골목 어름을 언뜻 보고 지나쳤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사진관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어두운 골목 안으로 성큼 들어서고 싶어졌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생전의 아버지처럼 사진관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내 머릿속은 어두운 골목으로 가득 찼다. 그곳에 가면 지금과는 다른 종류의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월의 유순한 흐름을 따라 유유히 나의 생을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49재를 치르고 어머니의 무덤에 왔다가 이곳에 들렀다. 이곳은 비어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는지 뽀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무성한 것은 지붕까지 뻗어있는 담쟁이덩굴뿐이었다. 근처의 부동산을 찾아가 가격을 흥정하지 않고 곧장 계약서를 썼다. 다니던 잡지사에 사직서를 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내 사진기자로 일하던 직장이었다. 지구 곳곳의 풍경을 주제로 하는, 사진 중심의 다큐멘터리 잡지였다. 사직서는 그날로 수리되었다. 잡지는 상업성이 강한 잡지들을 출간하는 모(母)기업의 품격을 위해 창간된 것이었다. 전문적인 사진이 실리는 잡지를 다수의 대중은 외면했다. 독자가 많지 않으니 당연 광고도 들어오지 않았다. 경기가 침체되자 모기업은 서서히 경영에 압력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내가 사직서를 내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권고사직을 당할 형편이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는 동료들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어려 있었다. 내가 사무실 문을 나서자 동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각자의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했다. 통장으로 입금된 퇴직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아파트를 내놓았지만 매매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보험금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내려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남긴 상자에는 어머니의 결혼 예물과 아버지의 사진 그리고 세 장의 보험증서가 있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나는 보험증서를 쥐고 오열했다. 오십 몇 년의 삶의 흔적이라기에는 세 장의 종이는 너무도 가볍고 쓸쓸한 것이었다. 2층의 방을 쓰세요. 저는 여기 암실에서 지내면 되니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혼자 있는 시간을 방해해선 안 됩니다. 어려운 조건은 아니로군요. 여자는 알루미늄 가방을 메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이곳에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처럼 밖으로 나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자연스럽게 밟고 올라갔다.2층에는 방이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반으로 접히는 휴대용 침대를 암실에 갖다놓고, 내 물건들은 거실에 놓았다. 여자가 식사준비를 했다. 여자는 냉장고 뒤쪽 구석에 쑤셔 넣어두었던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여자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자기 집에서 요리를 하는 것처럼 양념통이나 필요한 재료가 있는 곳을 단번에 찾아냈다. 무언가 도와야 할 것 같아서 주위를 서성대던 나는 머쓱해져서 1층으로 내려왔다. 여자가 차린 상은 정갈했다. 냉장고에는 맥주와 인스턴트식품만 가득했었는데, 여자가 차린 밥상에는 찌개에 윤기가 흐르는 밑반찬까지 고루 갖춰져 있었다. 여자의 음식은 어머니가 해주던 것과 맛이 흡사했다. 이 정도면 합격인가요? 여자는 소리를 내지 않고 싱긋 웃었다. 환한 빛이 얼굴 가득 퍼졌다. 이곳에 머무는 대가로는 좀 과분하군요. 시간은 고요하게 흘러갔다. 여자는 늘 조용히 움직였다. 내게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고,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나를 의식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암실에서 보냈다. 여자는 시간에 맞춰 요리를 했다. 거실로 내어 놓은 옷장 속에는 바싹 마른 옷가지들이 반듯하게 개어져 있었다. 여자가 내게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종이에는 거칠게 그린 가게 구조도와 비용에 관한 세목이 적혀 있었다. 사진관을 열었으면 해요. 여자가 건넨 종이를 건성으로 훑어보았다. 종이 몇 장으로는 가게의 모습이 요연하게 잡히지 않았지만 내 생각보다는 훨씬 구체적이었다. 우선 가게에 있는 17분 현상기는 되팔았으면 좋겠어요. 오랫동안 사진과 관련된 일을 해왔지만 사진관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다. 증명사진이나 간단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작은 스튜디오를 갖추고, 현상·인화 서비스를 하면 되겠다 싶어 17분 컬러 현상기를 중고로 구입한 것이었다. 여자는 내 옆으로 바투 다가와 앉아 손끝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계획을 설명했다. 암실은 공간이 꽤 넓으니까 두 개로 나누었으면 해요. 조명기기와 카메라 장비를 구입해서 작은 스튜디오를 만들고요. 표준화된 QSS방식으로는 사진을 기록물로만 여기는 사람들의 기대만 충족시킬 수 있죠.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돼서 현상만으로는 가게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요. 암실을 개방해서 수작업을 할 수 있게 하고, 차나 맥주를 마시며 자유롭게 지식과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곳, 제가 꿈꾸고 있던 사진관이에요. 암실에서 나와 보니 벽에 호두나무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가게 구석에 있던 자동 현상기는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무릎을 대고 엎드린 채 기름걸레로 바닥의 나무를 닦고 있었다. 여자의 손이 닿는 곳마다 켜켜이 나무의 결이 살아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암실 공사하러 인부들이 올 거예요. 가벽을 세우는 거라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조금 시끄러울 거예요. 어디 잠깐 다녀오는 건 어때요? 카메라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이곳에 내려온 후로는 첫 외출이었다. 나오기는 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종착지를 알 수 없는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SLR 디지털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잡지사에서 일하는 내내 들고 다녔던 것인데, 검은 몸체의 카메라가 낯설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사진을 찍지 않았던 것처럼 아니,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카메라가 이물스러워 보였다. 마음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버스에서 내려 몇 컷의 사진을 찍었다. 내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이국의 풍경처럼 주위의 모든 것이 생경스럽게 느껴졌다. 풀조차 자라지 않는 들판에 앉아 서서히 땅에 내리고 있는 어둠을 응시했다. 구릉처럼 낮은 산의 언저리에는 스러진 햇빛이 모여 검붉은 노을로 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도 차도 없었다. 희미하게 보이던 사물의 윤곽이 어둠에 검게 물들어 보이지 않았다. 길을 따라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피로하지 않았다. 끼니를 걸렀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몸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불현듯 여자가 몹시 보고 싶어졌다. 가게에 걸려 있는 간판에 불이 환했다. 간판에는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암실카페 - 빛이 스며든 자리’라고 씌어 있었다. 공사가 끝났는지 가게 안은 조용했다. 출입문을 열자 직사각의 탁자 세 개가 보였다. 한쪽 면을 벽에 붙인 탁자에는 어림잡아 20명 정도는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암실과 스튜디오 사이의 자투리 공간에는 주방이 들어섰다. 주방은 음료와 간단한 안주를 만들 수 있는 바bar 형태였다. 주방 옆에는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여닫이 유리문이 달린 업소용 냉장고 안에는 캔음료와 몇 종류의 맥주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암실 옆의 공간에는 몇 개의 조명기구가 놓여있는 작은 스튜디오가 꾸며졌다. 스튜디오를 제외한 가게의 정경은 카페에 가까웠다. 늦은 시간에 맥주를 마시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겠군요. 사진관보다는 호프집에 더 어울리는 이름이죠. 하지만 저는 이 이름이 썩 마음에 들어요. 어두운 방에 스며든 빛의 흔적, 그게 바로 사진이니까요. 여자는 벽의 진열장을 닦고 있었다. 이곳에 카메라를 진열해 놓았으면 해요. 예전에는 사진관에 카메라 진열대가 있었지요. 집집이 가정용 카메라를 구비해놓기 이전에는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대여했으니까요. 가방 속에 묵혀두는 것보단 가게로 내오면 오래된 사진관 이미지도 풍기고, 손님들에게 쉽게 접할 수 없는 클래식 카메라도 보여주고 좋을 것 같은데요. 진열대는 애초부터 카메라를 놓으려고 만든 것 같았다. 천장에 진열대를 비추는 작은 조명이 있었다. 나무판으로 만든 선반 형식의 진열대에는 유리문이 달려 있었는데, 먼지가 새어들지 않도록 틈새에 실리콘으로 패킹 처리가 되어 있었다. 2층에서 카메라들을 가져왔다. 케이스에 넣어 상자에 보관해왔지만, 오랫동안 손을 타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서 클래식 카메라를 사용할 기회가 없어졌다. 처음에는 오토포커스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부착해 사용했고, 얼마 전까지는 디지털 카메라를 썼다. 내게는 꽤 많은 카메라가 있었다. 사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여러 대의 카메라를 보유하게 마련이었다. 클래식 카메라는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카메라는 내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아버지는 내가 세 살 되던 해 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내게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아버지의 존재는 내게 그리움 따위의 정서적인 것이 아니라 사진첩에 꽂혀있는 사진이나 카메라처럼 정물적인 것이었다. 어머니는 단 한 대의 카메라도 팔지 않았다. 어머니는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카메라를 꺼내 닦았다. 그 일은 어머니에게 지난 일을 추억하게 하는 사진첩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카메라를 닦으며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듣기 싫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되풀이되는 추억은, 흐려지지 않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그림자는, 사막에 묻힌 수천 년 전의 미라처럼 영원히 썩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버리고, 좋은 남자를 만나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바랐다. 어머, 이건 콘탁스II네요. 여자의 음성이 높아졌다. 사진 찍는 일을 업으로 삼기 전에는 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어요. 처음 사진을 배울 때부터 이걸 썼어요. 사진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주로 갖고 있는 카메라는 니콘FM2였다. 가격에 비해 성능이 꽤 괜찮은 제품이었다. 간혹 클래식 기종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라이카를 들고 다녔다. 콘탁스를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 카메라는 아버지가 월남전에서 돌아올 때 구입한 것이라 들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이 카메라의 각별한 내력을 말했으나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자가 2층으로 올라가 알루미늄 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앉아있던 가방이었다. 여자가 가방을 열었다. 거기에는 콘탁스와 똑같은 디자인의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카메라 앞면에는 키릴문자로 киев라는 로고가 각인되어 있었다. 이 카메라는 1949년에 생산된 키예프 카메라예요. 생산지는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지방이지만 부품은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왔지요.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자 소비에트는 전쟁배상금으로 콘탁스 카메라의 메이커인 자이스 이콘(Zeiss Ikon)을 요구했어요. 공장의 모든 부품과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우크라이나로 이송됐지요. 파견된 드레스덴의 노동자들이 자이스 이콘의 부품을 조립해서 만들었으니 이 카메라는 콘탁스II와 완전히 똑같은 쌍둥이인 셈이지요. 여자는 수건으로 자신의 카메라를 닦았다. 카메라를 만지는 여자의 손놀림은 병든 육친의 몸을 닦아주는 손길처럼 조심스럽고 애틋해 보였다. 이 카메라는 제게 존재증명과도 같은 거예요. 아버지가 남기신 유일한 유품이거든요.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했었지요. 월남에서 번 돈으로 이 카메라를 샀어요. 지금이야 회사원의 한 달 월급밖에 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 돈이면 읍내에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해요. 어렵게 구입한 카메라지요. 아버지가 월남에서 부쳐온 돈을 큰아버지가 들고나갔었다니까요. 장사를 해보겠다고요. 그 사실을 안 어머니가 읍내의 모든 술집을 뒤졌대요. 동생이 목숨 걸고 번 돈인데 술맛이 나더냐고 꾸짖어 모셔왔대요. 정혼한 사이긴 했지만 결혼 전이고 손위 시숙인데, 어머니는 무슨 용기로 그랬을까요. 큰아버지는 하는 일 없이 술과 여자로 평생을 보냈어요. 나쁜 분은 아니에요. 어느 집안에나 그런 무능하고 호방한 큰아들이 있는 법이잖아요. 그때 만약 어머니가 큰아버지를 말리지 못했더라면 제게 유품 같은 건 남지 않았겠지요. 지금은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저 혼자니까요. 이 카메라 외에는 제 존재를 증명해줄 무엇도 남지 않았어요. 같은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일까. 나와 비슷한 삶의 내력을 갖고 있는 이 여자가 오래전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혈육처럼 가깝고도 멀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이 사진관으로 온 것도 여자가 카메라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어머니가 죽고 난 후 나는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그 막연한 불안감은, 이 세상에 나의 존재를 증명해 줄 무엇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회귀성 어류처럼 내가 태어난 이 사진관으로 흘러들었던 것인지도. 사진관에는 손님이 없었다. 몇 차례 늦은 시각에 술에 취한 사람들이 들어와 맥주를 찾았다. 여자는 암실을 이용할 수 있는 사진관이라고 가게에 대해 설명한 후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첫 손님은 세일러복을 입은 여자애였다. 주민등록증에 쓸 증명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했다.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로 즉석에서 사진을 올린다고 말했다. 여자애는 알고 있다며 한 음절씩 힘주어 말했다. “꼭 필름사진이어야 해요.” 여자애는 탁자에 앉았다. 움직일 때마다 유난히 검은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여자애에게 뜨거운 코코아를 주었다. 커피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여자애가 중얼거리며 코코아를 홀짝거렸다. 여자애는 기름종이로 이마와 콧등의 유분을 닦고, 콤팩트 퍼프로 꼭꼭 눌렀다. “왜 꼭 필름사진이어야 해요?” “이건 증명사진이니까요. 처음 발급받는 주민등록증이거든요. 원판이 있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 사진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주민등록증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숫자와 지명과 이름과 125분의 1초 동안의 모습과 소속된 나라 외에 또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증명이라는 말이 하나의 역설처럼 느껴졌다. 증명이 목적인 플라스틱 카드는 정작 중요한 것은 증명할 수 없었다. “저는 디지털 사진을 좋아하지 않아요. 디지털 사진은 원판이 없잖아요. 디지털 사진은 곧바로 확인할 수 있고, 삭제하는 것도 복사도 고치는 것도 쉽지만, 어쩐지 그것들은 떠도는 이미지들처럼 느껴져요. 상이 음각으로 새겨진 필름의 원판은 이를테면 이미지가 깃드는 집 같은 거죠.” 여자애의 오른쪽 눈 아래에 점이 있었다. 작고 까맣고 윤기가 도는 점이었다. 나는 보정을 원한다면 점을 없애주겠다고 했다. 여자애는 고개를 저었다. “눈 아래에 있는 점은 눈물점이라고 어른들이 빼라는 말을 많이 해요. 하지만 저는 이 점이 좋아요. 점도 제 몸의 일부니까요. 사람들은 이 점 때문에 저를 쉽게 기억해요. 아마 아저씨도 그럴걸요.” “사진은 내일 찾으러 와요. 여기서 직접 현상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려요.” 사진을 담아두는 봉투를 내밀었다. 여자애는 볼펜을 꾹꾹 눌러가며 자신의 이름을 썼다. 동글동글한 귀여운 글씨였다. 여자애는 이현아라는 이름 옆에 한쪽이 지나치게 부푼 하트 문양을 그려 넣고, 내게 찡긋 윙크를 했다. 여자애가 지갑을 꺼냈다. 첫 손님이니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여기 암실도 이용할 수 있나요?” “암실에서 직접 현상할 수도 있고, 현상을 맡길 수도 있어요. 스튜디오도 사용할 수 있고요.” “좋은데요.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곧 손님이 늘어날 거예요.” 암실에 누워 있다가 몹시 갈증이 나 밖으로 나갔다. 진열대의 조명등만 켜져 있었다. 여자는 탁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들고 여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암실은 깊은 바다 속 같아요. 햇빛이 닿지 않아 어둡고 추운 곳. 암실에서는 눈을 감아도 떠도 온통 농밀한 어둠뿐이에요. 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 무서워요. 보이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요. 거기에 있으면 무섭지 않아요? 무서워요. 그런데 당신은 왜 그곳에 있나요? 거기엔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요? 두려움, 고독, 침묵, 약간의 위안, 그리고 나. 암실에 누워 있으면 또 다른 내가 보여요. 조금은 우울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또 하나의 나예요. 수면에 비친 모습처럼 좌우가 바뀐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해요. 암실에 누워있는 나와 나를 응시하는 나 중에 진짜 나는 누구일까. 나는 존재하는 걸까. 당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건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당신의 주변이죠. 당신이 존재할 수 있는 건 당신을 보고 있는 내가 있기 때문이에요. 불빛을 등지고 있어서 여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여자가 조금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주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이 거울 속의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어떤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물질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거울에 비친 것과 같은 구조를 가진 반물질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빅뱅 직후 물질과 반물질이 각각 우주와 반우주를 형성했으며, 이 둘은 서로 맹렬한 속도로 멀어져갔다고 추측했다. 반물질은 물질을 만나는 순간 백만 분의 1초보다 빠른 속도로 상쇄되기 때문에 물질계에 있는 우리들은 반물질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맥주잔을 쥐고 있는 여자의 손을 잡고 싶었다. 여자를 향해 뻗은 손을 거두었다. 내 손이 여자에게 닿는 순간, 물질을 만난 반물질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사진관에 온 두 번째 손님은 가게로 들어와서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는 잡은 손을 경쾌하게 흔들었다. 그는 이현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눈에 그가 이현아의 오빠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현아의 증명사진이 든 봉투를 건넸다. “현아 오빤 거 어떻게 아셨어요? 신기하네. 남매지만 닮은 데가 별로 없거든요.” 굳이 닮았다고 한다면 이미지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이미지로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현아가 다녀가고 난 후 그 다음 손님이 현재였기 때문이었다. 곧 손님이 늘어날 거라던 현아의 말이 불쑥 떠올랐다.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예요, 형.” 그는 가방에서 세 통의 필름을 꺼냈다.‘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아마추어 사진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론으로만 접했던 현상·인화 작업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두 개의 필름을 그에게 다시 건넸다. 외형발색 필름이었다. 외형발색 필름은 유제층 안에 발색제가 없어서 필름제조회사에서만 현상할 수 있었다. 암실 수납장 안에는 약품부터 액정에 불이 들어오는 디지털시계, 라텍스 장갑까지 작업에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현재가 알고 있는 것은 암실작업의 일반적 과정뿐이었다. “암실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입니다.” “말 놔요, 형.” 현재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암실 작업도 사진 찍는 것과 같아.” 나는 사람들에게 쉽게 말을 놓는 편이 아니었다. 막상 말을 놓고 보니 현재가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 서글서글한 눈매 때문인지, 웃음기 많은 얼굴 때문인지 현재에게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느껴지는 거리감이 없었다. 세이프라이트를 켜자 현재가 암실 문을 닫았다. 작업을 하며 가능한 한 자세하게 설명했다. 현재는 손바닥만 한 수첩에 꼼꼼히 적었다. “열심히 이론공부를 해도 직접 찍어보기 전에는 실력이 늘지 않잖아. 암실작업도 그래. 온도와 시간을 지킨다고 발색현상이 잘 되는 건 아냐. 날씨나 환경에 따라 그날그날의 기온과 습도가 다르니까. 적절한 온도와 시간은 암기가 아니라 감이야. 감을 잡으려면 결국 많이 해보는 수밖에 없어.” 현재는 인화된 사진을 보며 뿌듯해 했다. 그의 사진은 대부분 인물사진이었다. 수준급인 사진도 더러 있었지만 사진의 노출이 대부분 오버돼 있었다. 현재는 다음 동호회 모임은 이곳에서 갖기로 했다며, 이제부터는 손님이 꽤 늘어날 거라고 했다. 동호회 사람들은 현재와 비슷했다. 제일 먼저 현재가 현아와 함께 왔고, 오후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암실에서 작업을 하거나 각자의 사진을 돌려보았고, 더러는 일찌감치 술판을 벌이는 치들도 있었다. 열 명 남짓 되는 인원이었다. 그들은 나이도 직업도 각색인 듯 보였다. 그들은 내 이름을 부르거나 현재처럼 나를 형이라고 부르며 격 없이 대했다. 그들은 원래는 풍경사진을 주로 찍는,‘미라지Mirage’라는 비교적 큰 규모의 동호회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이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자연 속에 있다고 믿었던 그들은 시야를 좁혔다.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내게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물었고, 자신이 찍은 사진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은 밤늦도록 돌아가지 않았다. 끝까지 남아있던 사람들은 한 잔 더 해야겠다며 여관방을 잡아 나갔다. 현재가 가게 정리하는 것을 돕겠다고 했지만, 돌려보냈다. 가게 문을 닫고 어질러진 탁자를 그대로 놓아둔 채 암실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신데다가 몸이 몹시 피곤했다. 구석에 접어놓은 침대를 펼치자마자 나는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문소리에 잠이 깼다. 열린 문 사이로 새어든 달빛이 바닥을 은백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침대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여자는 내 쪽으로 몸을 숙였다. 내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고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여자는 내 뺨을 감싸 쥐고 내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 사이로 여자의 혀가 들어왔다. 여자는 혀로 내 잇바디를 훑었다. 여자의 혀는 복족류의 속살처럼 차고 부드럽고 미끈거렸다. 가슴이 더워졌다. 나는 팔로 여자의 등허리를 감고 입을 열어 여자의 혀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잠이 든 체하며 눈을 감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뜨거워진 가슴을 달랬다. 여자는 깊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들어올 때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걸어 나가 문을 닫았다. 늦게야 일어나 암실에서 나왔다. 여자의 둥근 등이 보였다. 여자는 암실을 등지고 탁자에 앉아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가게 안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여자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몸속의 색소가 다 바랜 것처럼 여자의 얼굴빛이 창백했다. 당신의 사진에는 색이 없군요. 하나같이 흑백사진뿐이에요. 게다가 당신의 사진은 너무 어두워요. 노출이 부족해요. 노출이 모두 -2스톱이군요. 글쎄요. 저는 적정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슬라이드 필름을 쓸 때에는 노출이 오버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배웠거든요. 카메라는 어두운 방이죠. 무언가를 찍기 위해서는 빛이 들어와야 해요. 조리개를 조금만 더 열고 셔터 속도를 늦춰요. 햇빛 때문일까. 뒷면에 양면테이프를 붙인 사진을 스크랩하는 여자의 손끝이 투명하게 보였다. 물에 떠 있는 한천질의 자포생물처럼 손가락 아래로 사진이 흐릿하게 비쳤다. 여자의 얼굴은 창백한 것이 아니었다. 눈과 코와 입술의 윤곽이 희미해져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여자를 봤다.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을 감았다 뜬 사이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다시 탁자를 보자 여자는 여전히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며 여자를 보자 여자는 싱긋 웃었다. 여자는 자주 사라졌다. 몇 시간 또는 며칠씩 사라지기도 했다. 돌아온 여자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집안일을 하고 가게를 돌봤다. 손님이 점차 늘어서 가게일이 바빴다. 손님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여자가 어딘가로 떠난 것이 아니라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가게 안에 있던 여자가 어느새 연기처럼 희미해져 실루엣으로만 넘늘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여자가 완전히 사라지던 날, 현재가 현아와 함께 찾아와 라이트 페인팅 작업을 했다. 사진 관련 잡지에서 루미노그램(Luminogram,光跡사진)에 대한 글을 보고 실제로 해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끝에 불이 들어오는 펜 모양의 라이트를 들고 온 현아는 이민 간 친구에게 라이트 페인팅으로 편지를 써서 보낼 거라며 몹시 들떠 있었다. 라이트 페인팅은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었다. 암실에서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시키고 릴리즈를 연결한 후 세이프라이트를 껐다. 셔터 속도를 Blub에 놓았다. 현아는 한 자 한 자 소리 내어 읽으며 글씨를 썼다. 제2노출에서 셔터를 Blub에 맞추고 1 스톱 부족의 노출에서 스트로보를 조사하면 글씨를 쓰고 있는 연출자의 모습이 사진에 나온다. 현아의 작업이 끝난 후 여자가 펜라이트를 들었다. 여자는 허공에 대고 천천히 글씨를 썼다. 제2노출에서 스트로보를 켜자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허공에 떠있던 라이트펜이 따닥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손님들은 여전히 가게로 찾아와 암실을 사용하고 차를 마시고 더러 늦게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누구도 여자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여자가 사라진 후로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암실로 들어갔다. 암실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나는 무기력하게 어둠 속에 누워있었다. 나는 스스로 어둠 속에 갇혔다. 시간은 여전히 흘렀고, 어두울수록 더욱 명징해지는 의식은 여자에 대한 기억을 쫓고 있었다. 문밖에서 경쾌한 멜로디의 허밍이 들려왔다. 처음 내게로 왔던 날처럼 빛에 둘러싸인 채 여자가 앉아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문을 열었다. 가게 안은 어두웠고 텅 비어 있었다. 여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 외로움이 불러낸 환영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여자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우주의 반대편에서 달려온 또 다른 나는 아니었을까. 내가 마음을 열려는 순간 물질을 만난 반물질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현상한 라이트 페인팅 사진을 꺼내보았다. 필름의 마지막 장에는 서정주의 시구가 씌어 있었다. 물 위에 뜬 유성물감처럼 글씨의 획이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었다.‘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여자가 서 있었을 사진의 오른쪽 모서리 공간은 검은 어둠만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낮은 소리로 시의 남은 구절을 읊조렸다.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바람처럼 사라진 여자는 이 사진 한 장으로 내게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여자가 택한 이별이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것이라면, 나는 조금 더 담담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다. 언젠가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다시 입 맞춘다면, 거리낌 없이 이를 열어 여자가 내민 혀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여자의 둥근 어깨를 감싸 안아줄 수 있다면, 그것은 꼭 지금이 아니어도 좋았다. 내 몸이 완전히 스러지고 난 후 먼먼 내생의 어느 날이어도 좋았다. 진열대에는 여자가 남기고 간 키예프 카메라가 놓여있었다. 나는 그 옆의 콘탁스를 꺼냈다. 노출을 오버스톱으로 다시 맞추고 뷰파인더에 키예프 카메라를 고정시켰다. 여자가 자신의 유일한 존재증명이라고 말했던 키예프 카메라는 내게는 여자에 대한 기억의 증거가 되었다. 이 사진은 어두운 방에 잠시 스며들었던 빛, 그 빛의 흔적을 기록한 한 장의 루미노그램으로 남을 것이다.(끝) ■ 당선소감 제게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셨다는 사진관을 스쳐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평범한 상가 2층 건물이었지요. 그 후부터였습니다. 어찌할 수 없이 사는 일이 힘들어지면 아버지의 사진관이 떠올랐습니다. 그곳에서 예전에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사진관을 열고 싶었습니다. 유리로 된 진열장에 오래된 사진기가 들어있는 곳. 증명사진을 찍으러온 나이 지긋한 노신사가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웃으세요, 한 마디에 어색한 미소를 짓는 곳. 소읍의 탄생과 죽음과 기쁨과 슬픔을 기록하는 곳. 돈을 벌어도 좋고 벌지 못해도 좋은, 그런 사진관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음속에 사진관을 넣어두고 저는 수시로 꺼내보곤 했습니다. 그러면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일들도 그럭저럭 견딜 만한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언젠가부터 사진관 안에는 허약한 식물이 자랐습니다. 제 소설은 결여의 토양에서 결핍의 양분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지닌 게 없어도 너무 지독하게는 살지 말자고 제 마음을 다독일 즈음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약한 소설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구효서 선생님!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릴 수 있어 기뻐요. 한결같이 제게 여여한 미소를 보여주셔서 마음이 든든했어요. 가족과 문우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응오씨, 당신은 제 삶에서 만난 가장 큰 행운입니다. 저를 존재하게 하는 건 당신이에요.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우승미 ●약력 1974년 강원도 양구 출생 2003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 심사평 예심을 통과한 9편의 작품은 각기 그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젊은 문학도들에게 패기와 정열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삶의 이름으로건 예술의 이름으로건 하나의 진실에 도달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소설 같은 소설’ 한 편을 적당히 꾸려내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 아닐까. 그러나 그 가운데 좋은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이 특별히 주목한 작품은 ‘소년’‘달을 보고 짖는 개’‘펑크로커 실종기’‘빛이 스며든 자리’ 등 4편이었다. ‘소년’은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난 한 소년의 미래없는 삶을 진지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호감을 샀지만,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약점이 있다. 삶에 대한 진실을 움켜 쥘때 문학적 형상화도 함께 따라올 것이다.‘달을 보고 짖는 개’는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솜씨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었지만, 주제와 구성에서 독창성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잘 만든 이야기, 그러나 너무 자주 들었던 이야기다. 반복되는 낡은 이야기에 새로운 진실이 담기기는 어렵다. ‘펑크로커 실종기’는 누아르 서사의 형식 속에 펑크족들의 생활양태를 담은 소설로 문장이 경쾌하고 구성이 치밀했다. 훌륭한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도 그만큼 많았다. 무엇보다도 한 세계의 겉과 속을 심도있게 성찰하려 하기보다는 이미 알려져 있는 문화적 코드들을 조합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펑크족은 펑크족이다.’라는 말 이상의 매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풍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시선에서 온다. ‘빛이 스며든 자리’는 구렁각시의 민담과 피그말리온의 전설을 현대의 사진예술론으로 재해석하는 가운데 현실과 환상을 정교하게 봉합해서 꾸며낸 예술가 소설이다. 새로운 창조의 자리가 아버지의 자리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었다는 주제의 설정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며, 모든 응모자들의 정진을 빈다. 현길언 황현산
  • 삼성SDI 102인치 PDP세계 첫 개발

    삼성SDI 102인치 PDP세계 첫 개발

    한 평만 한 PDP TV가 출시된다. 삼성SDI는 세계 최대 크기인 102인치(가로 2310㎜, 세로 1325㎜) 풀HD급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를 개발했다고 16일 밝혔다. 패널면적이 3.06㎡로 한 평(3.3㎡)과 거의 비슷하다. 102인치 PDP는 브라운관,LCD, 프로젝션,DLP 방식을 통틀어 현존하는 TV용 디스플레이 가운데 가장 크다. 기존 최대 PDP는 삼성SDI가 지난 1월 발표한 80인치였고 LCD는 샤프의 65인치 제품이다. 완벽한 풀HD급(1920×1080) 해상도를 갖춘 이 제품은 1000 칸델라(cd/㎡)의 밝기와 2000대 1의 명암비를 구현했다. 내년 상반기 생산에 들어가며 내년 1월 삼성전자가 TV로 만들어 내놓기로 했다. 102인치 PDP는 크기도 크기지만 개발 과정에서 1장의 유리원판에서 50인치 PDP 4대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4면취 기술’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크다.50인치 PDP의 생산성이 향상됨에 따라 앞으로 50인치 PDP TV의 대중화도 앞당겨질 전망이다. 또 생산라인의 공정수를 3분의1로 줄여 생산원가도 대폭 낮출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삼성SDI 배철한 부사장은 지난달 디스플레이 콘퍼런스에서 “PDP 모듈 제조원가를 꾸준히 낮춰 현재 TV 세트 기준 95 달러인 인치당 가격을 내년 말 60달러,2007년에는 36달러까지 낮출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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