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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 “해양경찰청·소방방재청 독립”…탈원전 로드맵 마련

    文 “해양경찰청·소방방재청 독립”…탈원전 로드맵 마련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소방방재청·해양경찰청을 독립시키는 내용을 담은 재난대응에 대한 로드맵을 발표했다. 문 전 대표는 9일 서울 광진구 시민안전체험관에서 열릴 싱크탱크 ‘국민성장’ 주최의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합니다’ 포럼 기조연설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국민안전’ 정책을 공개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을 독립시켜 각각 육상과 해상의 재난을 책임지도록 하겠다”는 것, 그리고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가재난의 컨트롤타워가 되겠다”고 밝힌 점이다. 박근혜 정부 재난관리시스템의 기본 전제를 비판하는 동시에 재난관리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문 전 대표가 “유명무실해진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를 복원하겠다”며 “참여정부가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만들었음에도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사장한 국가위기관리 매뉴얼을 복구·보완하겠다”고 한 것에서 이런 맥락이 잘 드러난다. 아울러 “현재 인력 기준에 많이 부족한 소방공무원을 법정 정원 이상으로 확충하겠다”고 밝힌 것도 최근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약했던 관련시켜보면 소방공무원들의 오랜 요구에 공감한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원전 관련 공약도 밝혔다. 문 전 대표는 “유명무실한 안전규제를 강화하고 원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신규 원전 건설을 전면 중단하고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원전부터 하나씩 줄여나가 원전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40년 후 원전 제로 국가가 될 수 있게 탈원전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미세먼지 대책으로는 “미세먼지 공기 오염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소 역시 원전처럼 신규건설을 중단하고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대로 친환경 발전소로 전환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어 “미세먼지 저감방안을 새롭게 수립해 운행 중인 발전기의 대기오염물질 배출허용기준을 최신발전기 수준으로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질병관리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문 전 대표는 “질병관리본부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한편 권역별 질병 대응체계를 갖추고 분권화해야 한다.지역거점 공공병원의 역할을 높이고 전국적으로 감염병 전문병원을 확충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을 염두에 둔 공약도 제시했다. 그는 “국가적 재난사건에 대해 독립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조사 결과를 국회에 보고토록 해 문제를 개선하겠다”면서 “세월호와 가습기 진상규명과 배상문제는 반드시 국민적 합의를 통해 풀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세월호 침몰·인양이나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조사하고 가습기 살균제의 책임 소재를 밝히는 일에 축소와 은폐가 개입됐다면 공정한 수사를 통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면서 “피해자와 가족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국가재난 트라우마 센터를 건립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국가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인데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국민의 믿음이 배신당했다”며 “안전이 국민의 기본권 중 기본권임을 천명한다”고 덧붙였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고전으로 여는 아침] 미움받을 용기/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고전으로 여는 아침] 미움받을 용기/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기원전 2세기 말에서 1세기까지 로마 공화정은 격동의 시대를 겪었다. 적극적인 대외 정복과 유랑족의 외침으로 전쟁이 잦았고, 식민지 건설과 부의 분배를 둘러싸고 민중과 귀족들의 갈등도 증폭되고 있었다. 플루타르코스(46?~120?)는 ‘비교열전’에서 당시 빚어지던 정치가들의 비열한 짓이나 정의로운 행동들을 자주 기록했다. 기원전 100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민중의 눈치를 살피던 집정관 가이우스 마리우스(BC 156~ 86)는 호민관에 당선된 사투르니누스(?~ BC 100)와 결탁했다. 이 두 사람은 돈에 굶주려 싸움을 일삼는 무지한 민중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온갖 비열한 행동과 선동을 서슴지 않던 이들은 민중의 힘을 빌려 보수파를 대표하던 메텔루스(?~ BC 91)를 탄핵하기로 획책했다. 메텔루스는 아프리카의 누미디아를 정벌한 최고의 장군이자 집정관을 지낸 탁월한 정치가였다. 그는 “진실과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평가받았고, 민중에게 아첨하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그러니 자연히 마리우스나 사투르니누스 같은 민중파와 척을 질 수밖에 없었다. 사투르니누스는 귀족들의 권리를 축소시키는 토지 분배 법안을 내놓고 원로원 의원들에게 민중이 결정한 모든 사항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선서를 하라고 강요했다. 메텔루스는 그 법에 선서하지 않겠다고 했고, 다른 의원들도 그를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민중이 원로원 의원들을 민회에 불러내 선서하라고 요구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마리우스는 선서하지 않겠다던 이전의 말을 뒤집고 민중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선서했다. 귀족들은 마리우스의 배신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마리우스에 환호하는 민중이 두려워 뒤따라 선서했다. 흥분한 민중의 미움을 받을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메텔루스만은 그릇된 법률에 선서할 수 없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옳지 못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비열한 짓이고, 별 위험이 없을 때 명예로운 행동을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오. 그러나 정의롭고 용기 있는 사람이라면 위험이 있더라도 정의를 지켜야 하오.” 결국 사투르니누스의 동의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되고 메텔루스는 해외로 망명했다. 그 후 정국을 완전히 장악한 사투르니누스는 무도한 짓을 일삼다 살해되고, 이듬해에 이전의 결정을 후회한 민중의 결정에 의해 메텔루스는 귀환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탄핵정국에서 모략과 배신이 판을 친다. 정치인들은 민중의 환심을 사고자 앞장서 선동하거나 일신의 안위를 위해 좌고우면하고 있다. 민심은 변덕이 심하다. 분노한 민중의 위세에 눌려 정당한 법 집행이 표류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지도자는 오로지 진실과 정의에만 굴복하고 민중의 미움을 당당히 감내해 내는 이다.
  • 7일 개봉 앞둔 원전재난 영화 ‘판도라’ 뚜껑 열어 보니…

    7일 개봉 앞둔 원전재난 영화 ‘판도라’ 뚜껑 열어 보니…

    ‘한국은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 1위의 국가이다. 2016년 현재 4개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총 24기의 원자로가 가동 중이며 전체 원자력 발전소 단지 반경 30㎞ 이내에 9개의 광역자치단체와 28개의 기초자치단체가 밀접해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많은 나라들이 탈핵을 결정하였지만, 한국은 현재 6기를 추가 건설 중이고 4기의 건설 계획을 진행 중이다.’ 국내 최초로 원전 사고를 소재로 한 재난 블록버스터 ‘판도라’의 엔딩 자막을 보며 관객들은 무슨 생각을 갖게 될까. 오는 7일 개봉하는 ‘판도라’는 영화적 재미를 떠나 탈핵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는 충분한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재난은 그만큼 묵직하고, 생생하게, 상상 이상으로 관객을 덮친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한반도에 유례없는 규모 6.1의 강진이 일어난다. 영남권의 노후 원전 한별 1호기에서는 냉각수가 새는 문제가 발생한다. 청와대에서부터 원전 하청업체 직원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인재가 하나씩 겹치며 한별 1호기는 결국 폭발하고, 방사능이 대규모로 유출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안전을 담보해야 할 정부는 사태를 축소하기에 급급하다. 원전 인근 지역의 주민들은 아비규환에 휩쓸린다. 재앙으로 치닫는 재난에 맞서 가족과 이웃, 동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정부가 아닌 소시민들이다. 영화 속 원전 재난 상황은 절망적이고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제작진은 압도적인 규모의 재난과 거대하고 복잡한 원전 시설을 구현하기 위해 전체 2400컷 가운데 1300컷가량을 최첨단 컴퓨터그래픽 기술(CG)로 작업했다. 영화만 떼어 놓고 보면 과장되고 작위적인 설정이 이따금 눈에 띄기도 한다. 주민 대피 계획을 묻는 대통령에게 그러한 시나리오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행정안전부 장관, 악화일로의 상황에도 원자로 폐기처분의 손실을 보지 않으려고 주판알을 튕기는 원전 마피아, 주민들을 체육관에 가둬 놓은 채 줄행랑을 치는 공권력 등을 보며 관객들은 혀를 차게 된다. 이러한 장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그런데, 우리 사회가 겪어 온 현실들이다. 세월호 참사,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훨씬 이전에 기획됐지만 영화 속 정부의 무능력함은 작금의 상황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시류에 편승했다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아 일부 장면은 최종 편집에서 들어냈을 정도다. 요즘은 재난 영화에도 양념으로 곧잘 뿌려지는 유머와 위트가 ‘판도라’에서는 자리잡을 틈이 없다. 폭발 장면에서부터 관객들은 좀처럼 숨을 돌리지 못한다. 전대미문의 상황 속에 놓인 배우들의 연기도 열연임에는 틀림없지만 전반적으로 힘이 들어간 느낌이다. 지나치게 해설적인 전반부의 일부 장면은 영화적 재미를 반감시킨다. 종반부로 갈수록 신파로 향하는 것도 상업영화 틀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하나 아쉬운 대목. 박정우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며 감히 내린 결론은 원전은 100% 완벽하지 않고, 사고가 일어났을 때 대비책이라는 게 사실상 없다는 것”이라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이 영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나는 눈물의 왕이로소이다…덕수궁의 밤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나는 눈물의 왕이로소이다…덕수궁의 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1922년 9월 <백조 3호>지에 발표된, 일제의 국권침탈에 대한 설움을 토해내던 홍사용 시인의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마지막 시구이다. 눈물의 왕이었다. 고종(高宗)은 덕수궁 함녕전에서 1919년 1월 21일 식혜를 마시고 승하했다. 조선의 제 26대 임금으로, 대한제국(1897~1910)의 초대황제로, 결국은 일본 제국의 이태왕(李太王)으로 조각 구름같은 삶을 정동(貞洞)의 하늘에서 놓았다. 이렇듯 대한제국의 절멸, 고종의 독살(毒殺)설, 3.1운동의 실패로 만들어진 공포와 비애의 감정, 그 시원(始原)이 ‘덕수궁’이다. 비가 내렸다. 엊그제 폭염을 하루 만에 추억으로 만들어 버린 비였다. 덕수궁이 앉아 있는 정동에도 낮 동안 가을 내음, 비가 내렸다. 덕수궁은 비가 어울린다. 덕수궁은 다른 궁과는 달리 눈물겹다. 목이 한껏 메어오는 공간이다. 서글픈 집이다. 누구든 이 궁에서는 주인 자리 한번 제대로 잡지 못한 이야기만 한가득 만들었다. 굳이 지금에서야 벼르고 벼른 듯 덕혜옹주의 삶을, 고종황제의 삶을, 역사적 진위를 확인하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이문세가 노래하듯 이제는 그 때의 모든 것들이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서 이 모든 것들의 덕수궁의 아픔, 그 시간만으로도 늘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궁궐로서의 덕수궁만을 우리는 살펴보자. ● 정릉동 행궁(行宮)이 경운궁(慶運宮)으로 덕수궁은 시청 광장 옆,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정동에 있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궁궐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사적 제124호이며 면적은 6만 3069㎡에 이르는 서울 도심 속에 위치한 궁궐이기도 하다. 덕수궁은 시민들에게는 늘상 지하철 1호선이나 2호선 시청역에서 내리면 바로 만나게 되는 생활 속의 공간이자, 가을길 은행나무 잎 가득 덮인 돌담길로 연인들을 유혹하는 옛날 궁궐이기도 하다. 대개의 사람들은 덕수궁을 20세기 역사의 언저리에 등장하는 근대의 궁궐로 인식한다. 그러나 애당초 덕수궁은 궁궐이 아니라 세조(世祖)의 큰 손자 월산대군의 저택이었다. 그러다 조선의 역사 한가운데로 급작스레 등장한 시기가 임진왜란 때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의주로 피난을 갔던 선조(宣祖)가 한양으로 돌아와서 승하할 때까지 이곳을 시어소(時御所)로 명하여 거처하는 행궁으로 삼는다. 비로소 왕이 거주하는 궁궐이 되었다. 이후 1608년 선조가 승하한 뒤, 광해군이 이곳에서 즉위하고 경운궁(慶運宮)이라 이름 붙여주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명명한 경운궁에서, 자기를 쫓아낸 인조가 임금이 된다. 인조는 경운궁에 거처하지 않고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경운궁은 다시 역사의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져 한적한 별궁으로 변한다. ● 대한제국의 정궁(正宮)에서 덕수궁으로 1897년 2월 20일,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이곳 경운궁으로 옮겨오게 되자 본격적으로 근대 궁궐로서의 기능을 하게 된다. 9월 17일에는 소공동(小公洞)에 위치한 환구단에서 하늘에 고하는 제사를 지내고 드디어 경운궁은 대한제국의 정궁(正宮)이 된다. 그러나 1904년에서 화재가 일어나 궁궐의 상당 부분이 소실이 되고 급하게 선원전(璿源殿)·함녕전(咸寧殿)·보문각(普文閣)·사성당(思成堂) 등이 축조, 복원되었지만 제대로 보수되지는 못한다. 1907년 7월 고종이 퇴위하고 순종(純宗)이 즉위하면서 이제껏 불렀던 경운궁을 덕수궁이라 부르게 된다. 이는 고종의 궁호(宮號)가 '덕수'이기 때문에 지금의 덕수궁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순종은 즉위 후 창덕궁으로 이어(移御)하였고, 이후 1910년에 한성부가 ‘경성부(京城府)’로 바뀌게 되자 덕수궁은 일제 총독부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게 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1913년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벚나무 500그루가 경성일보 사장 ‘요시노’에 의해 덕수궁 곳곳에 심어졌으며, 1914년에는 대한제국의 원년을 선포했던 환구단 자리에 조선철도호텔이 들어선다. 이후 일제는 193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덕수궁의 색깔을 지우기 위해 많은 공사들을 시행한다. 우선은 1933년에 덕수궁의 주요 전각인 함녕전, 덕홍전, 중화전, 석조전을 제외한 나머지 전각을 철거하거나 그 규모를 축소하고, 공원으로 개조하여 일반에 공개한다. 석조전은 일본근대미술품을 전시하는 ‘덕수궁미술관’으로 개관하고 급기야 1935년 5월에는 돈덕전이 있던 자리에 동물원을 신설해서 옛 궁궐로서의 품격을 완전히 격하시킨다. 그러다 한국전쟁을 거쳐 1955년 6월, 석조전을 국립박물관으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1963년 1월 18일에 사적 제124호로 지정되어 다시 우리 역사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본격적인 수많은 복원 공사를 거쳐 현재 석조전이 대한제국역사관 개관, 운영되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다시 자리 잡게 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덕수궁에 대한 여행 10문답> -아래 질문은 실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을 바탕으로 만든 10문답입니다.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인가? -당연하다. 서울 4대 궁궐로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을 들 수 있는 데, 이 중 가장 근대적인 면모를 갖춘 궁궐이다. 특히 석조전, 석어당, 정관헌 등은 기존의 옛 궁궐에서 찾기 힘든 근대 역사 유적으로서 가치가 있다. 한 마디로 궁궐로서의 위엄보다는 생활공간으로서의 친근함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2. 이 공간을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은? -이제 갓 사랑을 시작한 연인이라면 누구든지. 특히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의 경우 10월과 11월에는 누구든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고즈넉함을 제공한다. 3. 덕수궁 야경이 그렇게 유명해? -말을 할 필요가 없다. 1964년 4월 15일에 덕수궁 야간공개가 시작된 이래 야경투어의 정석이다. 특히 종로의 높은 빌딩과 네온사인들이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 밤풍경을 제공한다. 4.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면 연인들은 진짜 헤어지나? -과거 가정법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지금은 시립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 역시 덕수궁 돌담길을 유명하게끔 만든 재미있는 이야기다. 5. 덕수궁에서 놓치지 말고 꼭 봐야 하는 건축물은? -물론 최근에 복원된 건축물들도 많지만, 근대 건축물로서의 원형이 보존된 곳이 많다. 덕수궁 미술관으로 불리는 석조전, 새로 지어진 석어당, 고종황제가 커피를 즐겨 드시던 정관헌, 덕혜옹주를 위해 유치원을 만들어 주었던 준명당 등이 있다. 6. 홈페이지 주소 및 도움되는 사이트 주소는? -문화재청 덕수궁 http://www.deoksugung.go.kr/ 7. 입장료와 기타 관광지정보는? -25세 이상 개인1000원, 단체 800원이다. 만 24세 이하, 65세 이상은 무료이다. 단, 미술관은 덕수궁의 관람권을 구입하고 난 뒤, 미술관에서 별도의 관람권을 구입해야 한다. 8. 주변에 가 볼만한 다른 공간도 있을까? -정동 주변은 근대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우선,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난 뒤 성공회 서울 주교좌성당, 예전 대법원과 가정법원자리였던 서울 시립 미술관, 정동제일교회, 배재학당, 러시아 공사관, 세실극장, 김수근의 경항신문 사옥 등등 덕수궁 돌담길은 다른 볼거리도 무궁무진한 진정한 서울 근대 문화유산의 보고(寶庫)다. 9. 이곳에서 꼭 추천하고픈 체험은? -당연히 덕수궁 대한문에서의 수문장 교대 의식이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3회 이루어지는데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3시 30분에 의식이 있다. 좀 더 자세한 사항은 02-120(다산콜센터)로 문의하면 된다. 10. 총평 및 당부사항, 기타정보 -모든 궁궐을 둘러보는 것 자체가 역사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지만, 덕수궁은 더더욱 그러하다. 비운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우리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귀한 체험이 될 수 있다. 반드시 문화재해설을 듣는 것을 강추!!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서울시의회 하나고 특위, 하나임직원 자녀전형 즉각 폐지 요구

    서울시의회 하나고 특위, 하나임직원 자녀전형 즉각 폐지 요구

    서울시의회 하나고등학교 특혜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위원장 이정훈)는 지난 8월 8일(월) 서울시의회 별관 6층 교육위원회 회의실에서 제9차 행정사무조사를 실시했다. 이날 행정사무조사에서는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과 교육행정국장이 출석한 가운데 하나고등학교에서 제출한 2017학년도 하나고등학교 신입생 입학요강(안) 관련 업무 보고와 하나고등학교 임직원자녀전형에 대한 질의와 답변이 이루어졌다. 먼저 특별위원회는 하나고의 재정부족에 따른 학교운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법인전입금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하나고 측에 법인전입금 중단 원인이 되는 ‘하나임직원자녀전형’에 대하여 단계적 축소가 아닌 즉각적인 폐지를 촉구했다. 특히 입학요강(안)에 대한 승인 권한이 교육감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서울시교육청으로 하여금 하나고가 ‘하나임직원자녀전형’을 계속해서 고집할 경우 입학요강(안)을 승인하지 말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또한 지난 2008년 10월 학교법인 하나학원 법인설립 당시 담당사무관이었던 공무원이 현재 하나학원 법인기획실장으로 취업한 것과 관련하여, 이러한 퇴직공무원의 취업이 관련 업무에 대한 대가성 측면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 교육청에 대한 법인관련 로비를 위한 것은 아닌지 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교육청이 퇴직공직자에 대해 엄격하게 사후관리를 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 밖에도 서울단위에서 전국단위로의 학생 모집 확대와 사회통합전형의 선발비율 축소, 지역인재전형 설립, 강남 3구 제한선발의 폐지와 전형료 인상 등 하나고가 당초 교육청에 제출한 2017학년도 하나고 신입생 입학요강(안) 전반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지적하면서 서울시교육청의 엄격한 관리‧감독을 요구했다. 동 특별위원회 이정훈 위원장(새정치민주연합, 강동1)은“하나고의 법인전입금 중단은 하나임직원전형을 유지함에 따른 결과”라고 비판하면서, “하나고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하나임직원전형을 즉각 폐지함으로써 법인전입금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In&Out] 석탄 화력발전과 ‘가지 않은 길’/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In&Out] 석탄 화력발전과 ‘가지 않은 길’/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미국 최초의 석탄 발전소는 토머스 에디슨이 1882년 뉴욕시를 대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석탄은 미국의 주요한 전력 생산 연료가 됐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저렴한 셰일가스 발견과 함께 천연가스 발전이 늘어나면서 석탄 발전의 비중은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천연가스가 나지 않는 데다 액화천연가스 형태로 수입할 수밖에 없어 천연가스 발전소의 경제성이 크게 떨어진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난 6일 석탄 발전소 10기를 폐지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 이유는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크고, 온실가스 감축을 추진하는 ‘파리 신기후 체제’와 어긋나기 때문이다. 석탄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먼지는 직접 배출 기준으로 국내 전체 배출량의 3% 수준이다. 하지만 발전소에서 먼지와 같이 나오는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등이 공기 중의 수증기 등과 반응해 미세먼지로 전환되는 것까지 감안하면 석탄 발전이 국내 미세먼지 발생의 14%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의 석탄 발전 축소 정책은 기존 에너지 정책을 과감히 전환하고자 하는 노력이고, 과거의 에너지 정책과는 크게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그동안 산업 경쟁력을 지원하는 에너지 정책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친환경적인 에너지 정책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석탄 발전소 축소를 주저한 이유에는 발전 원가가 저렴해 산업 경쟁력에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환경보다는 발전에 치우쳐 있었던 셈이다. 둘째, 석탄 화력 축소의 범위와 강도가 넓어지고 세졌다는 점이다. 2015년 7월 ‘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의 수립 과정에서 건설 예정이었던 석탄 발전 4기를 철회한 것까지 포함하면 이번 정부 들어 총 14기의 석탄 발전소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이는 총 7085㎿ 규모의 발전, 즉 원전 7기에 해당하는 유례가 없는 큰 규모다. 셋째는 기후 변화 대응과 친환경적인 투자를 비용이 아닌 기회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30년 이상 된 노후 석탄 발전 10기 폐지뿐 아니라 운영 중인 43기 발전기에 대해서도 전면교체 수준의 환경설비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새로 짓는 발전소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배출 기준을 적용한다. 이를 위해 미세먼지·질소산화물·황산화물 저감 시설과 발전소 성능 개선 투자에 총 10조원을 투입한다. 이는 친환경 산업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일각에서는 건설 중인 발전소를 모두 취소할 것을 주장하지만 새로 친환경 설비로 투자하면 석탄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의 총량(황산화물·질소산화물·먼지 직접배출량, 2차먼지 생성량 포함)을 2030년까지 지난해 대비 40%가량 줄일 수 있다. 정부는 사실 석탄 발전의 사회적 비용을 반영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발전용 유연탄에 대해 사실상 ‘탄소세’라고 할 수 있는 개별소비세를 2014년부터 도입했다. 지난해는 발전용 유연탄 개별소비세를 현재 1㎏당 18원에서 23원으로 올렸다. 외국에서도 한국의 석탄 발전 감축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석탄 발전 폐지와 친환경 투자를 통한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국제 사회에 알려 신기후 체제하에서 한국이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할 것이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쓴 ‘가지 않은 길’에는 “두 길이 숲 속에서 갈라져 있어 나는 결국 덜 다닌 길을 택했고 그리고 그것이 큰 차이를 만들었다”는 구절이 있다. 한국의 석탄 발전 감축 정책은 그동안 덜 다니던 길을 선택한 것이고, 앞으로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에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본다. ●이 글은 지난 7월 15일자 본란에 실린 이화여대 소비자학과 석광훈 교수의 ‘경유차가 아니라 석탄발전소가 문제다’에 대한 정부의 반론 차원의 기고입니다.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시멘트·석고 미륵불 ‘파격’을 담아낸 불상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시멘트·석고 미륵불 ‘파격’을 담아낸 불상

    정관 김복진(1901~1940)은 현대적 개념의 조각가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물로 미술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는 카프(KAPF)라는 영문 약칭이 더 익숙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한때 불문(佛門)에 귀의했다는 그는 불모(佛母)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오히려 서양미술에 바탕을 둔 조각 작품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50점 남짓한 작품 가운데 동상은 제2차 세계대전 막판 일제의 쇠붙이 공출로 사라졌고, 목조와 소조의 유작도 동생인 팔봉 김기진의 인쇄소 창고에서 6·25전쟁 때 소실됐다고 한다. ●한국 최초 현대 조각가… 불상 10여점 남아 있어 불상으로는 충북 보은 법주사의 미륵대불이 그의 작품이었다. 미륵대불은 김복진이 머리 부분을 완성하고 전체 비례를 잡아 놓은 상태에서 자금난으로 중단됐다고 한다.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미륵대불은 1963년에야 완성됐다. 이후 흔한 시멘트 조각이라는 이유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김복진으로서는 오히려 시멘트라는 새로운 수입 재료를 거대 불상 조성에 이용하는 실험이었을 것이다. 미륵대불은 1990년 금동상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두 차례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김복진의 체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전북 김제 금산사 미륵전의 본존불도 그의 작품이다. 미륵전은 내부가 아래위로 뚫려 있는 3층으로 본존불은 높이가 38척이니 12m가 넘는다. 법주사 미륵대불에 시멘트를 이용한 것처럼 금산사 미륵본존불도 서양조각 재료인 석고를 썼다. 당초의 삼존불은 미륵전을 중창한 인조 13년(1635) 조성한 것이다. 미륵불은 특이하게 커다란 무쇠솥 위에 봉안되어 있다. 참배객들은 삼존불에 배례하고는 무쇠솥과 대좌 사이 공간에 시줏돈을 넣고는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34년 3월 9일 저녁 시줏돈을 거두는 소임을 맡은 동자승이 촛불을 잘못 다루는 바람에 솥 내부에서 불이 났다고 한다. 불길은 곧바로 소조상 내부 목재에 옮겨 붙었고 본존불은 무너지고 말았다. 금산사는 미륵본존의 복원불사를 추진했다. 공모에는 김복진과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화승들인 보응 문성, 금용 일섭, 이석성이 응모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보응, 금용, 이석성은 서울 안양암의 천오백불상도 함께 조성한 적이 있다. 이당 김은호 화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도 눈길을 끈다. 김복진에게 응모를 권유한 것도 이당이었다고 한다. ●일제시대 옥살이하며 밥으로 불상 만들기도 김복진은 도쿄미술대학에서 공부한 뒤 1923년 신극운동 단체인 ‘토월회’를 조직한다. 1924년에는 일본 제국미술원전람회, 1925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각각 나체 조각 작품으로 입선한다. 이듬해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나체상 ‘여인’이 특선에 올랐다. 하지만 조선공산당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1928년 일본 경찰에 붙잡혀 6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김기진은 감옥살이 당시 형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참담한 감옥살이 중에도 김복진은 먹지 않고 남긴 밥을 주물러 점토처럼 만들고는 인물상과 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솜씨에 놀란 간수들이 김복진을 목공소로 보내 작은 목조불상을 깎게 해서 감옥소 직매장에서 팔게 했다는 것이다. 김복진이 불교 조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 기간이었던 것 같다. 금산사 미륵불 조성에 나선 것은 풀려난 직후가 된다. 남아 있는 김복진의 불상 작품은 10점 남짓이다. 금산사 미륵불과 그의 흔적이 남은 법주사 미륵대불, 서울 영도사 석가모니불입상, 충남 예산 정혜사 관음보살좌상, 충남 공주 계룡산 소림원 미륵입상 등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소림원 불상이다. 소림원의 높이 117㎝ 석고 미륵은 금산사 미륵불을 조성하기 위한 축소 모형이라고 한다. 다만 머리 부분의 비례가 소림원 쪽보다 금산사 쪽이 조금 더 커보인다. 참배객들이 고개를 들어 한참을 높이 올려다봐야 하는 대형 불상인 만큼 의도적인 비례 조정이다. dcsuh@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시멘트·석고 미륵불 ‘파격’을 담아낸 불상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시멘트·석고 미륵불 ‘파격’을 담아낸 불상

    정관 김복진(1901~1940)은 현대적 개념의 조각가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물로 미술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는 카프(KAPF)라는 영문 약칭이 더 익숙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한때 불문(佛門)에 귀의했다는 그는 불모(佛母)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오히려 서양미술에 바탕을 둔 조각 작품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50점 남짓한 작품 가운데 동상은 제2차 세계대전 막판 일제의 쇠붙이 공출로 사라졌고, 목조와 소조의 유작도 동생인 팔봉 김기진의 인쇄소 창고에서 6·25전쟁 때 소실됐다고 한다. ●한국 최초 현대 조각가… 불상 10여점 남아 있어 불상으로는 충북 보은 법주사의 미륵대불이 그의 작품이었다. 미륵대불은 김복진이 머리 부분을 완성하고 전체 비례를 잡아 놓은 상태에서 자금난으로 중단됐다고 한다.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미륵대불은 1963년에야 완성됐다. 이후 흔한 시멘트 조각이라는 이유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김복진으로서는 오히려 시멘트라는 새로운 수입 재료를 거대 불상 조성에 이용하는 실험이었을 것이다. 미륵대불은 1990년 금동상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두 차례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김복진의 체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전북 김제 금산사 미륵전의 본존불도 그의 작품이다. 미륵전은 내부가 아래위로 뚫려 있는 3층으로 본존불은 높이가 38척이니 12m가 넘는다. 법주사 미륵대불에 시멘트를 이용한 것처럼 금산사 미륵본존불도 서양조각 재료인 석고를 썼다. 당초의 삼존불은 미륵전을 중창한 인조 13년(1635) 조성한 것이다. 미륵불은 특이하게 커다란 무쇠솥 위에 봉안되어 있다. 참배객들은 삼존불에 배례하고는 무쇠솥과 대좌 사이 공간에 시줏돈을 넣고는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34년 3월 9일 저녁 시줏돈을 거두는 소임을 맡은 동자승이 촛불을 잘못 다루는 바람에 솥 내부에서 불이 났다고 한다. 불길은 곧바로 소조상 내부 목재에 옮겨 붙었고 본존불은 무너지고 말았다. 금산사는 미륵본존의 복원불사를 추진했다. 공모에는 김복진과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화승들인 보응 문성, 금용 일섭, 이석성이 응모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보응, 금용, 이석성은 서울 안양암의 천오백불상도 함께 조성한 적이 있다. 이당 김은호 화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도 눈길을 끈다. 김복진에게 응모를 권유한 것도 이당이었다고 한다. ●일제시대 옥살이하며 밥으로 불상 만들기도 김복진은 도쿄미술대학에서 공부한 뒤 1923년 신극운동 단체인 ‘토월회’를 조직한다. 1924년에는 일본 제국미술원전람회, 1925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각각 나체 조각 작품으로 입선한다. 이듬해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나체상 ‘여인’이 특선에 올랐다. 하지만 조선공산당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1928년 일본 경찰에 붙잡혀 6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김기진은 감옥살이 당시 형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참담한 감옥살이 중에도 김복진은 먹지 않고 남긴 밥을 주물러 점토처럼 만들고는 인물상과 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솜씨에 놀란 간수들이 김복진을 목공소로 보내 작은 목조불상을 깎게 해서 감옥소 직매장에서 팔게 했다는 것이다. 김복진이 불교 조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 기간이었던 것 같다. 금산사 미륵불 조성에 나선 것은 풀려난 직후가 된다. 남아 있는 김복진의 불상 작품은 10점 남짓이다. 금산사 미륵불과 그의 흔적이 남은 법주사 미륵대불, 서울 영도사 석가모니불입상, 충남 예산 정혜사 관음보살좌상, 충남 공주 계룡산 소림원 미륵입상 등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소림원 불상이다. 소림원의 높이 117㎝ 석고 미륵은 금산사 미륵불을 조성하기 위한 축소 모형이라고 한다. 다만 머리 부분의 비례가 소림원 쪽보다 금산사 쪽이 조금 더 커보인다. 참배객들이 고개를 들어 한참을 높이 올려다봐야 하는 대형 불상인 만큼 의도적인 비례 조정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데스크 시각] 일본을 본보기로 삼자/이종락 산업부장

    [데스크 시각] 일본을 본보기로 삼자/이종락 산업부장

    기자가 도쿄 특파원으로 재직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간 일본 경제는 고난의 시기를 겪었다. 엔고로 인해 철강, 조선, 해운업계는 글로벌 시장에서 펼친 한국 기업과의 수주전에서 연전연패하며 고배를 마셨다. 더욱이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져 일본 경제는 거의 아사 직전에 이르렀다. 그런데 2016년 5월 지금은 어떤가. 일본의 철강, 조선, 해운업계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친 뒤 중국의 저가 수주 공세에도 견실하게 버티고 있다. 반면 우리 업계는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던 부실 기업 구조조정이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고, 해운·조선업의 구조조정이 중심에 있다. 왜 이런 역전 현상이 벌어졌을까. 먼저 양국 간 기업 문화를 지적하고 싶다. 일본의 기업 풍토는 매사를 중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착실히 대비한다. 반면 국내 업계는 업종을 불문하고 매우 근시안적이고 단기적 관점에서 경영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1950년 이후 세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해 온 일본의 조선산업은 한국과 중국에 크게 뒤지자 불황 극복과 생존을 위해 두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가격경쟁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베트남 등 신흥국으로 진출했다. 에코십과 같은 경쟁력 있는 친환경 선박을 개발, 공급함으로써 선박 수요를 흡수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2012년 4~9월 조선부문이 적자로 전환하는 등 경영 상태가 악화됐다. 수주량의 최고점이었던 2006년 대비 3분의1 정도 가동률이 저하됐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인도의 대기업과 기술 제휴를 맺고 해외 진출을 가속화했다. IHI 자회사인 IHIMU와 유니버설조선도 생존을 위해 합병했다. 과거 일본은 전 세계 조강 생산량 1위를 자랑하던 철강 왕국이었다. 1970년부터 1997년까지 무려 28년간 조강 생산량 세계 1위에 올랐던 일본의 철강 산업은 2000년대 들며 침체의 길을 걸었다. 2006년 룩셈부르크의 철강회사 아르셀로와 인도의 철강회사 미탈이 합병한 아르셀로미탈의 등장과 함께 1위 자리를 내준 신일본제철은 2010년에는 6위까지 추락했다. 부활의 서막을 연 것은 신일본제철과 스미토모금속의 합병이었다. 신일본제철은 2012년 10월 일본 내 3위 기업인 스미토모금속과 합병한 후 ‘신일철주금’으로 재탄생했다. 신일철주금은 합병 이후 중복된 사업부터 정리했다. 하치만(구 신일본)·고쿠라(구 스미모토)·와카야마(구 스미토모)·기미쓰(구 신일본)·도쿄제조소(구 신일본) 등 주요 제철소의 통합 작업에 나섰다. ‘고로 폐쇄’라는 극단적 방법까지 동원하는 과감한 결단을 통해 생산 효율성을 높였다. 이후 신일철주금은 2014년과 2015년 연간 조강 생산량이 각각 4930만, 4490만톤을 기록해 세계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일본의 석유화학 업계도 2013년 제정된 ‘산업경쟁력강화법’에 따라 가동중단과 설비축소, 사업철수 등 구조조정을 해 왔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북미의 셰일가스를 기반으로 한 저렴한 화학제품의 아시아 시장 대량유입이 시작되는 2018년부터 된서리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일본처럼 정상 기업이 부실 기업의 사업부문 중 살릴 수 있는 부문을 인수하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이동해야 하는 근로자들을 위한 지원책도 서둘러 준비해 이들 산업이 또다시 일본을 압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jrlee@seoul.co.kr
  • [열린세상] 신기술로 원자력은 살아남아야 한다/안남성 한양대 에너지학과 초빙교수

    [열린세상] 신기술로 원자력은 살아남아야 한다/안남성 한양대 에너지학과 초빙교수

    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은 파리협정이 원자력에 대한 국민의 수용성을 크게 증진시켜 앞으로 원자력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외에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수단이 제한된 입장에서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원자력 기술이 이미 수명을 다했다며 이제는 재생에너지와 디지털 기술 중심의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60년 전에 개발된 원자력이 지금까지 우리 경제와 에너지 공급에 크게 기여했지만 새로운 에너지 기술이 이제 시장에 들어올 수 있을 만큼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을 보면 원자력의 역할이 축소돼야 한다는 후자의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기술의 발달을 보통 S곡선으로 설명하는데 원자력 기술은 성숙 단계에 도달한 지 30~40년이 지났고, 이제는 안전성 논란을 제거할 수 있을 만큼 더 안전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적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물론 원자력의 아킬레스건인 안전성과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하고자 액체 금속로와 같은 제4세대 원전 개발에 여러 국가가 노력하고 있지만 이러한 기술 역시 근본적으로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 많은 미래학자는 앞으로 제4차 산업혁명 사회에 진입하게 되고 이럴 때 가장 큰 역할을 디지털 플랫폼 기술이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기반 사회에서의 에너지 및 수송 시스템과 같은 인프라는 현재 시스템의 연장이 아닌 새로운 S곡선에 기반을 둔 에너지 시스템 기반의 인프라로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원자력이 미래의 에너지로 살아남으려면 미래 사회와 DNA가 같은 에너지 기술로의 혹독한 변신을 요구받고 있다. 현재의 가압 경수로 기술에서 좀더 개선되는 기술로는 국민의 수용성을 확보하기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는 미국이 스리마일섬(TMI) 원전 사고를 겪지 않았다면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던 미국이 혁신적인 원자력 기술을 개발해 지금 거의 100% 안전한 원자력을 운영하고 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구글의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원전을 운영하면 원전 사고를 거의 제로화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논쟁은 피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하면 원자력이 미래에 살아남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원자력 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에 현재의 기술로도 충분하다는 안이한 생각을 버리고 제4차 산업사회에 맞는 디지털 기술 기반의 새로운 원전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한다. 기후변화 문제는 100년 이상이 소요되는 장기적인 프로젝트이며 이 시간은 새로운 원전 기술을 개발하는 데 충분하다. 인공지능이 운영하는 디지털 기반 소형 원전 기술이 개발된다면 환경단체와의 안전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도 대폭 감소하고 국민의 수용성은 크게 증진될 것이다. 최근 한국수력원자력의 이익이 늘어 기술 개발의 투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투자가 원자력의 미래 지향적인 새로운 개념의 장기적인 기술보다는 현재 기술의 운영이나 보수 기술 개발과 같은 단기적인 기술 개발에만 투자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미래의 에너지 시스템은 미래 사회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소형이면서 친환경적인 디지털 기반 에너지 기술을 요구하고 있다. 원자력도 예외가 아니다.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이 운전원 없이 운전할 수 있는 소형 원전이 원자력의 미래라고 많은 전문가는 예측하고 있다. 이 기술을 우리가 주도하면서 구글과 같은 플랫폼 회사와 주요 원전 국가들이 공동으로 새로운 원자력 기술을 개발할 수 있으면 파리협약이 원자력의 게임체인저가 돼 기후변화 정책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고, 이를 이용한 새로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원자력 기술 개발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원자력 기반 기술과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원자력 산업계의 새로운 시도와 노력을 기대해 본다.
  • [후쿠시마원전 사고 5년] 방사능 불안·복구 지연… 주민들 “가족·일터 잃었는데 어디로”

    [후쿠시마원전 사고 5년] 방사능 불안·복구 지연… 주민들 “가족·일터 잃었는데 어디로”

    11일로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이에 따른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과 방사능 누출 사고 등 ‘복합 재난’이 발생한 지 만 5년이 됐다. 당시 재난으로 인한 사망자는 1만 5892명, 행방불명자는 2573명이었다. 또 질병, 자살 등 관련 사망자도 3314명에 이른다. 5년이 지나면서 일본 정부는 원전 피난민의 귀환을 준비하며 상처 치유에 들어갔지만 현실은 녹록잖다. 피난민 17만 4000여명은 정든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가설주택이나 친척 집 등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방사능 불신과 지지부진한 후속 조치가 남긴 마음의 상처는 일본 사회에서 트라우마로 깊어졌다. 경제산업성 등 정부 부처 건물들을 길 하나 사이에 둔 도쿄 중심부 히비야 공원에서는 원전 피해자들의 집회가 최근 연일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 800여명이 모인 지난 2일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아베 신조 정부의 피난 지시 해제와 ‘원전 피난민’에 대한 지원 축소 결정을 재고하라”고 촉구했다. ‘원전 사고피해자단체 연락회’(연락회) 주최로 열린 이날 집회 참석자들은 “(방사능)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는데, 정부가 피난 지시를 해제하고, 일부 피난자에 대한 주택 무상 제공 등 지원을 내년 3월부터 끊겠다고 한 결정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日정부, 피난자 지원 끊어 복귀 유도 내년 3월까지 피난 지시구역 내 거주제한구역과 해제준비구역에 대한 피난 해제를 마무리하겠다는 아베 정부 정책은 사실상 ‘재해지역’으로 원주민 복귀를 유도하겠다는 것으로, 피난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세가와 겐이치 연락회 공동대표는 “연간 피폭 선량이 1mSv(시버트·방사선이 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단위)를 밑돈다는 것이 실증되지 않는 한 피난 지시는 계속 유지돼야 한다”면서 “정부와 도쿄전력은 빨리 사고 마무리를 하면서 없었던 일로 하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사능 위험에 대한 불안이 여전한 상태에서 피난민들은 내키지 않는 복귀에 떠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얼마 전부터 후쿠시마현 나라하마치의 옛집으로 돌아간 60대 중반의 엔도 오쿠조는 “8명의 가족 가운데 노모와 처, 아들 부부와 손자, 손녀 등은 돌아오지 않고 센다이 등에 계속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부족한 인프라 시설에다 방사능 불안이 큰 탓이었다. 다른 한 피난민은 “방사능은 둘째치고, 돌아가 봐야 부서진 집을 다시 지을 돈도 없고, 공장과 일터도 문을 닫았으니 어떻게 하냐”고 반문했다. 가족과 집을 잃고, 직업과 터전을 상실한 채 임시 주택에서 목숨을 부지해 온 적잖은 원전 피난민들은 5년이 지났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실의 벽 앞에서 망연자실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 5년 동안 26조 3000억엔(약 273조 9200억원) 을 쏟아부으며 거리를 새로 조성하는 등 복구 작업에 힘을 쏟았지만, 되레 방사능 불신과 마음의 상처는 깊어졌다. 후쿠시마 제1원전이 있는 후쿠시마현 오오쿠마를 비롯해 후타바, 나미에, 도미오카 등 원전 인근 지역은 여전히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여전히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텅 빈 채 남아 있다. ●인구 감소 속 아이 울음소리 사라져 총무성의 지난 2월 발표에 따르면 원전 주변 42개 시·읍·면 가운데 36개 지역에서 15만 6000명이 빠져나갔다. 인구 감소 속에 더 큰 문제는 젊은이 비율이 더 줄어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졌다는 데 있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는 피해지역인 이와테 현 12개 연안 시·군 인구가 2040년에는 현재보다도 34.9%가 적어지고, 미야기현의 15개 시·마치는 11.3%가 더 줄 것으로 예측했다. 젊은이들은 방사능에 더 민감했다. 후쿠시마, 이와테 등 피해 지역에선 주산업이던 농수산업, 임업과 관련 산업이 죽었고, 가공공장들도 문을 닫았다. 일자리가 없어져 타지로 피난 간 젊은이들이 돌아올 길도 없어졌다. 이 때문에 “산업 재생, 일자리 마련이 함께 진행돼야 했다”는 볼멘소리가 커졌다. 산업진흥을 겨냥한 아베 정부가 지난해 11월까지 4727억엔(약 5조원)을 1만여 사업자에게 지원했지만 최근 도호쿠지역 경제산업국 조사에 따르면 “예전 상태로 돌아갔다”고 응답한 수산·식품가공업은 3할 수준으로 8할 수준인 건설업과는 대조적이었다. 일본 농림수산성의 지난 1일 발표에 의하면 피해 농지 중 74%인 1만 5920㏊가 생산을 재개할 수 있는 상태로 회복됐다. 또 피해를 본 319개 어항(漁港) 가운데 지난 1월 말 현재 73%인 233곳의 기능이 회복됐다. ●“다니는 사람 90% 복구 근로자” 그러나 현지 언론들은 복구작업이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도로 정비, 택지 조성 등 건설 인프라 진행은 나은 편이다. 다시 올지 모르는 쓰나미 대비를 위한 방조제 건설, 재해민을 위한 공영주택인 ‘부흥 주택’ 건설 등도 계획보다 늦어졌다.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등 3개 현에서 지어진 부흥 주택은 1만 4000여 가구. 전체 계획 2만 9385가구 가운데 절반 정도가 이뤄졌다.방조제 총연장도 도쿄에서 오사카 간 거리와 맞먹는 400㎞. 매우 어렵고 복잡한 용지 취득과 입찰 부진 등으로 완공은 계획의 14%, 83곳에서만 이뤄졌다. 미야기 현 등에서는 방조제가 경관을 망가뜨린다는 반대도 나왔다. 일본 정부는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다음달부터 5년 동안 6조 5000억엔(약 68조원)을 더 배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한 피난민은 “지역민이 돌아와야 복구가 이뤄지는 것이지 지금은 후쿠시마 등 피해 지역에 다니는 사람들의 9할은 복구 작업을 하는 근로자들”이라고 씁쓸해했다. 그런 가운데 쓰나미에 쓸려간 가족들의 시신을 혹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바닷가와 폐허 더미 속에서의 행방불명자 수색은 계속되고 있다. 피난민의 고통과 복구작업도, 원전 안전성 논란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기고] ‘원자력폐기물’보다 무서운 ‘무관심’/박영규 명지대 법대 교수

    [기고] ‘원자력폐기물’보다 무서운 ‘무관심’/박영규 명지대 법대 교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지만, 관심은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없는 것보다는 넘치는 것이 낫다. 대학에서 과학기술과 법을 가르치면서 늘 강조하는 것 역시 ‘호기심’인데, 이런 필자조차 전공과 관련이 있음에도 최근 언론을 통해서야 비로소 알게 된 이슈가 있다. 바로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다. 원자력 발전으로 전기를 만들면 부산물로 나오는 것이 사용후핵연료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사용후핵연료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원자력발전소가 우리나라 전력 생산의 30%를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다. 한여름 전력 과소비로 인해 전력 피크만 겪어도 온 언론이 생중계를 하며 야단법석인데, 불과 3년 뒤인 2019년이면 경주 월성원전부터 사용후핵연료 저장 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원전이 문을 닫을 수도 있는 현실 앞에선 왜 이렇게 조용할까. 바로 무관심 때문이다. 당장 스마트폰 충전기가 없는 건 불편해하면서도 전기라는 생활필수품의 부산물인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는 나와는 상관없는 ‘안드로메다 성운쯤의 일’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 공급의 차질로 인해 일상과 산업경제 전반에 걸쳐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사전에 방지하지 위해서는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에 바로 나서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이를 위해 세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공론화를 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들은 원전 정책과 사용후핵연료 정책을 연결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정책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합리적 선택의 결과물로서, 어떤 정책도 만장일치로 결정될 수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원전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느냐와 무관하게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책임이다. 정책 결정이 늦어질수록 모두의 피해로 귀결될 것이기에 무엇보다 과학적이고 현실에 맞는 조속한 정책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은 소통이다.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문제다. 그동안 우리는 사용후핵연료에 대해 제대로 소통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처럼 사용후핵연료가 폭발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까지도 나오고 있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사용후핵연료는 선진국에서 이미 수십 년간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안전하게 관리해 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과학적 사실부터 모든 사항을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소통하되 위험을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책 실행이다. 임박한 경주 월성원전 포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정부는 지역 주민과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 때로는 많은 이견과 반발이 있을 수 있지만, 현실성 있는 감각과 판단으로 중지를 모아야 한다. “모두가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생각하지만, 정작 스스로 변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갈파한 톨스토이의 명언을 되새겨 볼 시점이다. 복잡하고 어렵더라도 미래세대에 부담을 넘길 수 없는 우리 모두의 문제,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에 나부터 변하고 나서야 한다. 관심이 그 시작이다.
  • 울산에 시민안전체험 교육센터 건립된다

    울산 시민안전체험 교육센터 건립사업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4일 울산시소방본부에 따르면 울산시가 지난달 31일 시민안전체험 교육센터 건립공사 실시계획을 고시했다. 시민안전체험 교육센터는 내년에 총 사업비 260억원을 들여 북구 정자동 11만 4882㎡ 부지에 지상 3층·지하 1층 규모로 착공해 2018년 준공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소방본부는 기본·실시설계를 다음달 착수해 오는 11월 완료한 뒤 내년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소방본부는 부지보상비와 설계비 75억 9000만원을 확보했다. 부지보상은 올 상반기 중 완료할 예정이다. 이곳에는 안전체험관과 훈련장이 들어서게 된다. 안전체험관에는 안전체험관과 피난체험관, 잡(job)체험관 등이 설치될 예정이다. 훈련장에는 유류화재진압 시설을 먼저 설치하고 나머지는 차례로 조성할 계획이다. 시민안전체험 교육센터는 애초 400억원 규모에서 260억원으로 축소했다. 소방본부 관계자는 “시민안전체험 교육센터는 대구 등 전국 5곳에서 운영되고 있어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면서 “그러나 석유화학공단과 원전으로 둘러싸인 울산의 특수성을 정부에 적극적으로 설명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경복궁 2차 복원 254동 → 80동으로 축소

    문화재청은 ‘경복궁 2차 복원 사업’의 규모를 축소하고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고 14일 밝혔다. 2011년부터 시작된 ‘경복궁 2차 복원 사업’은 경복궁의 기본 궁제(宮制)를 충실하게 복원하는 방향으로 계획됐다. 복원 추진 과정에서 문화재에 대한 방재여건, 복원 후 활용 방안 등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돼 복원 대상 건물을 254동에서 80동으로 조정했다. 경복궁 원형을 충실히 복원하기 위해 발굴조사와 문헌 등 고증자료를 확보하고 경복궁 내 동시다발적인 공사로 인한 관람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업 기간을 2030년에서 2045년까지 15년 늘렸다. 투입 예산은 54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줄었다. 경복궁 복원 사업은 일제강점기 훼손된 경복궁 위상과 민족 역사성 회복을 위해 추진됐다. 1990~2010년 진행된 ‘경복궁 1차 복원사업’ 땐 광화문, 흥례문, 강녕전, 태원전 등 89동이 복원됐다. 문화재청은 “복원 규모 축소, 복원 기간 연장을 통해 복원된 경복궁에 대한 국민 기대감이 저하되지 않도록 하고, 온 국민이 공감하고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명실상부한 고품격의 우리나라 대표 궁궐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23] ‘카프’ 김복진의 20세기 불상 조각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23] ‘카프’ 김복진의 20세기 불상 조각

     카프(KAPF)라는 영문 약칭이 더 익숙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지도자였던 정관 김복진(1901~1940)은 현대적 개념의 조각가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물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한때 불문(佛門)에 귀의하기도 했다는 그는 불모(佛母)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반면 서양미술에 바탕을 둔 조각 작품은 남아있는 것은 거의 없다. 50점 남짓한 작품 가운데 동상은 제2차 세계대전 막판 일제의 쇠붙이 공출로 사라졌고, 목조와 소조의 유작도 동생인 팔봉 김기진의 인쇄소 창고에서 6.25전쟁 때 소실됐다고 한다.  불상으로는 충북 보은 법주사의 미륵대불이 그의 작품이었다. 미륵대불은 김복진이 머리 부분을 완성하고 전체 비례를 잡아놓은 상태에서 자금난으로 중단됐다고 한다. 미완성으로 남아있던 미륵대불은 1963년에야 완성됐다. 미륵대불은 흔한 시멘트 조각이라는 이유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김복진으로서는 오히려 시멘트라는 새로운 재료를 거대 불상 조성에 이용하는 실험이었다. 미륵대불은 1990년 금동상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두 차례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도 김복진의 체취는 여전히 남아있다.  전북 김제 금산사 미륵전의 본존불도 김복진의 작품이다. 미륵전은 내부가 아래위로 뚫려있는 3층으로 본존불은 높이가 38척이니 12m가 넘는다. 삼존불은 미륵전을 중창한 인조 13년(1635) 조성한 것이다. 서양조각의 재료인 석고로 금산사 미륵본존불은 조성한 것은 특기할 만 하다. 그런데 삼존불 가운데 좌우 협시보살은 제외하고 본존불만 조성했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그래선지 그가 본존불을 조성했다는 사실조차 한동안은 묻혀있다시피했다. 미륵전에는 본존불만 조성한 이유를 알 수 있는 기록이 남아있다.  미륵전 본존불은 특이하게 커다란 무쇠솥 위에 봉안되어 있다. 참배객들은 삼존불에 배례하고는 무쇠솥과 본존불의 대좌 사이 공간에 시줏돈을 넣고는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34년 3월 9일 저녁 시줏돈을 거두어 가는 소임을 맡은 동자승이 촛불을 잘못 다루는 바람에 솥 내부에서 불이 났다고 한다. 불길은 곧바로 소조상 내부 목재에 옮겨 붙었고 본존볼은 무너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금산사는 미륵본존의 복원불사를 추진했다. 공모에는 김복진과 보응 문성, 금용 일섭, 이석성 등이 응모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대를 대표하는 화승들인 보응, 금용, 이석성은 서울 안양암의 천오백불상도 함께 조성한 적이 있다. 금산사 미륵불 역시 세 사람이 공동 응모했을 가능성이 큰 것 같다. 이당 김은호 화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도 눈길을 끈다. 김복진에게 금산사 미륵불 복원에 응모를 권유한 것도 이당이었다고 한다.  김복진은 도쿄미술대학에서 공부한 뒤 1923년 신극운동 단체인 ‘토월회’를 조직한다. 1924년에는 일본 제국미술원전람회, 1925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각각 나체 조각 작품으로 입선한다. 이듬해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나체상 ‘여인’이 특선에 올랐다. 하지만 김복진은 카프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던데다 조선공산당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1928년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일본경찰에 붙잡혀 6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김기진은 감옥살이 당시의 형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참담한 감옥살이 중에도 김복진은 먹지 않고 남긴 밥을 주물러 점토처럼 만들고는 인물상과 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솜씨에 놀란 간수들이 김복진을 목공소로 보내 작은 목조불상을 깎게 해서 감옥소 직매장에서 팔게했다는 것이다. 김복진이 불교조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이 기간이었던 것 같다. 금산사 미존불 조상에 나선 것은 풀려난 직후가 된다.  김복진의 불상 작품으로 남아있는 것은 10점 남짓이다. 금산사 미륵불과 그의 흔적이 여전한 법주사 미륵대불, 서울 영도사 석가모니불입상, 충남 예산 정혜사 관음보살좌상, 충남 공주 계룡산 소림원 미륵입상 등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소림원 불상이다. 석고로 만든 높이 117cm의 소림원 미륵입상은 금산사 미륵불을 조성하기 위한 축소모형이라고 한다. 다만 머리 부분의 비례가 소림원 쪽보다 금산사 쪽이 조금 더 커보이는 것은 높이 올려다 보아야 하는 대형 불상인 만큼 의도적인 조정이라는 것이다.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신규 원전 후보지 삼척·영덕 반대투쟁 2라운드

    신규 원전 후보지 삼척·영덕 반대투쟁 2라운드

    정부가 2029년까지 강원 삼척과 경북 영덕지역을 대상으로 신규 원전 2기를 신설하는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을 발표하면서 지역사회가 또다시 들썩이고 있다. 9일 강원 삼척과 경북 영덕지역 주민들은 ‘우리 고장에는 원전이 절대 들어서면 안 된다’며 정부를 상대로 원전 건설 백지화와 반대 투쟁을 분명히 밝히고 나서 갈등이 예고되고 있다. 삼척시는 지난해 원전 건설 주민투표를 실시해 주민 85%가 원전 수용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인근 시·군 등 강원지역 전역에서 원전 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져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제외되는 게 당연시됐다. 삼척원전백지화투쟁위는 “제7차 전력수급계획안 확정을 또다시 미뤄 2018년으로 넘긴다면 삼척핵발전소의 즉각적이고 완전한 철회를 위해 전 시민이 또다시 투쟁할 것”이라며 “핵발전소 건설계획을 2018년으로 넘길 게 아니라 7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즉각 백지화하고 정부의 계획대로 분산형 전원기반 구축을 통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양호 삼척시장도 “국회에 제출한 정부 7차 전력수급계획의 원자력발전소 부분이 종전 4기에서 2기로 줄이겠다는 등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는 만큼 우선 이에 대한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위원장과의 면담을 신청해 놓고 있다”며 “전력수급계획안에 삼척이 포함되면 시민 뜻에 따라 백지화 투쟁을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경북 영덕핵발전소 찬반 주민투표 추진위원회도 이날 “영덕에 새 원전을 건설하는 것은 반드시 찬반 투표를 거쳐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추진위는 “전임 군수와 군의회는 군민 의견 수렴도 없이 핵발전소 유치 신청서를 내는 등 절차 문제를 드러냈다”며 “군과 의회가 군민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군민 스스로 전체 의사를 묻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영덕 원전찬반 주민투표 추진위원회는 지역 종교계와 지식인 등 각계각층 인사들로 지난 8일 출범됐다. 주민투표추진위는 이날 영덕군청 앞마당에서 출범식을 갖고 향후 적극적 행동에 나설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강석 영덕군의회 의장은 “정부가 영덕에 원전을 추가 건설하겠다는 것은 고리에 지으려던 원전을 가져와 건설하겠다는 것으로 고리 주민들이 반대하는 원전을 영덕 주민들은 선뜻 수용하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정부가 원전 건설이 필요하다면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대안을 먼저 제시하는 게 도리”라고 말했다. 이미 고리원전 6기가 설치된 부산지역 환경단체 등은 원전 추가 건설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고리1호기 폐쇄부산범시민운동본부 박재율 공동대표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원전의 위협성이 더욱 높아지면서 대부분 국가가 원전 축소 내지 폐지로 정책을 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정부는 거꾸로 가는 정책을 펴고 있다”며 “이 같은 원전 정책은 마땅히 제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삼척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데스크 시각] ‘메르스 괴담’이 진짜 같은 이유/김태균 사회부장

    [데스크 시각] ‘메르스 괴담’이 진짜 같은 이유/김태균 사회부장

    이번에도 판박이다. 이런 식이라면 후배 기자들 교육 매뉴얼에 아래와 같은 내용을 새로 넣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대형 재난 발생 시 정부가 보이는 전형적인 패턴은 다음과 같다. 발생 초기에 체계적이고 기민하게 대응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경우는 없음.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하며 근거 없이 국민들에게 “괜찮다”고 하니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면 기사 하나가 자동으로 완성됨. ‘국민의 혼란 가능성’을 이유로 관련 정보를 극도로 통제하려는 특성을 보이는데 이때 누군가 근거 없는 내용을 마치 사실인 양 인터넷에 퍼뜨리면 상당수 사람들이 진실로 믿게 됨. 내용이 그럴듯해서이기도 하지만 국민들에게 무작정 안심하라고만 하면서 필요한 정보는 주지 않으니 빚어지는 당연한 결과임. 이로 인해 국민의 불안이 심해지면 정부는 이를 ‘괴담’이라는 말로 포장해 절대로 믿지 말라고 호소하며, 얼마 후 경찰은 ‘괴담 유포자 색출’을 선언함. 그래도 국민 불안이 가라앉지 않고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정부는 초기 대응 실수를 인정하고 마지못해 대국민 사과를 함.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이 앞으로의 교훈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후 다른 재난이 발생해도 정부의 관행이 변하거나 개선되는 것은 거의 없음.’ 지난주 금요일(5월 29일) 휴대전화 카카오톡으로 ‘평택, 수원에 있는 지금 메르스 바이러스 확진자들이’로 시작하는 글이 들어왔다. 이른바 ‘메르스 괴담’ 중 하나다. 지역·병원명 등 확인을 하기 전에는 진위를 알 수 없는 일부를 빼고는 상당 부분이 상식적이고 개연성 있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런 생각은 카카오톡에 친구로 맺어져 있는 다른 지인들도 비슷했던 모양이다. 같은 글이 이 사람 저 사람으로부터 전달되며 휴대전화에서 연달아 ‘카톡’, ‘카톡’ 알람음이 울렸다. 그만큼 사실일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어느 사회에나 괴담은 존재해 왔다. 기원전에 나온 이솝우화 ‘늑대와 양치기 소년’은 개인의 거짓말에 대한 권선징악의 교훈에 더해 대중에 괴담을 퍼뜨리는 혹세무민에 대한 경고의 철학을 담고 있다. 괴담의 역사는 그만큼 오랜 것이다. 하지만 적당히 건전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괴담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유무선 초고속으로 정보가 열려 있는 요즘은 유언비어에 노출될 가능성도 많아졌지만 거꾸로 진실을 가려낼 수 있는 정보의 통로도 다변화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수한 사람들이 이번 ‘괴담’을 가족에게, 친구에게, 동료에게 퍼나른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가 국내 메르스 환자 발생 사실을 처음 발표한 게 5월 20일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일주일 이상이 지나도록 정부에서 나온 것은 걱정하지 말라는 앵무새 같은 얘기들뿐이었다. 사태 초기인 21일 “다른 나라처럼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발언은 그렇다 치더라도 26일에조차 “감시 체계가 정확하게 작동돼 조치들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국민이 정부에 바라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이 있을 리 없다. 내가 낸 세금으로 유지되는 정부가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믿음 정도를 원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정부의 말을 ‘메르스 괴담’보다 특별히 더 신뢰할 것이 없는, 한 개그 프로그램 이름처럼 ‘도찐개찐’(표준어는 도긴개긴)으로 여기도록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windsea@seoul.co.kr
  • [씨줄날줄] 고용 없는 성장의 그늘/구본영 논설고문

    대학생 아들로부터 귀동냥하는 요즘 대학가의 풍속도는 삭막하다. 경영·리더십 분야 등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동아리에 가입하기 위해 치르는 면접장의 분위기는 살벌할 정도란다. 학점 경쟁을 하다 보니 밥조차 혼자 먹는다는 뜻의 ‘혼밥족’까지 생겨나고 있다니…. 청년 구직난 시대에 이런 살풍경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이른바 ‘5포(연애·결혼·출산·취업·주택 포기)세대’란 말이 괜히 나왔겠나. 낭만이 사라진 대학가의 풍경도 취업 빙하시대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는 청년들의 눈물겨운 적응 과정일 게다. 바늘구멍 같은 청년 고용시장이 마침내 ‘호모 솔리타리우스’(외로운 인간)란 한국형 신인류를 탄생시켰다는 보도까지 나오는 판이다. 정부도 청년 취업난의 심각성은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각료들이 “일자리 주도 성장이 옳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지 않은가. 다만 고용 확대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2012년 2.3%였던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2013년 3.0%, 지난해엔 3.3%로 2년 연속 상승했다. 하지만 청년 실업률은 2012년 8.3%에서 해마다 상승해 올 2월에는 무려 11.1%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고용 없는 성장’이 가시화된 느낌이다. 사무 자동화와 정보기술(IT)의 발달로 고용은 외려 줄어들 것이란 경제학자들의 불길한 예언이 들어맞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 박 대통령이 청년실업 해소 방안의 일환으로 적극적 중동 진출을 주문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중동, 네가 가라’라는 청년층 일각의 냉소에 편승한 듯 “청년들을 중동으로 내모는 것은 상처 난 곳에 소금 뿌리는 격”(서영교 원내대변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현 정부가 하는 일이면 뭐든 대안 없이 반대하는 차원이라면 한심한 일이다. 1970∼80년대처럼 건설 노무자 위주가 아닌, 원전이나 IT산업 중심의 중동시장을 진취적으로 선점하자는 게 청년 중동 진출론의 본뜻이라면…. 그렇다 하더라도 고용 없는 성장은 전 지구적 현상이라니 ‘제2 중동 붐’에 올라타는 게 만병통치약일 순 없다. 고용 없는 성장-일자리 축소-결혼 기피-저출산-성장 둔화’라는 악순환이 지구촌의 큰 흐름이라지 않은가. 중동 산유국들이 종전의 단순 시공 사업에서 벗어나 이제 금융과 IT 등을 망라한 종합시행 방식을 요구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 단순 노무자 시장과 달리 첨단 시장에선 박 대통령의 희망대로 “대한민국이 텅텅 빌” 정도의 일자리는 없다고 봐야 한다. 이미 고용 없는 성장이란 세계 문명사의 대전환기에 선 우리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는 듯한 정치권의 행태가 딱해 보이는 이유다. 정략과 표 계산에 눈이 어두워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서비스산업법 하나 절충해 내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野 “재가동 의결 효력정지 가처분 대상”

    野 “재가동 의결 효력정지 가처분 대상”

    국회의 27일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는 월성 원전 1호기 계속운전 허가에 대한 문제제기와 ‘증세 없는 복지’ 논란, 담뱃값 인상 등과 관련한 공방이 이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 의원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표결 끝에 월성 원전 1호기 재가동을 결정한 것과 관련, “안전 문제를 표결 처리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답변에 나선 이완구 국무총리는 “국민의 생명, 안전을 표결로 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에 부분적으로 동의한다”면서 “관련법에 여러 가지 이견이 있을 때 재적인원 과반수로 결정하는 법체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 의원이 “벌써 세월호의 교훈을 잊은 것 아니냐. 이번 의결은 효력정지 가처분 대상”이라고 비판하자 이 총리는 “현행법 체계에 대해 말한 것이고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 ‘증세 없는 복지’ 논란에 대해서는 여야가 이견을 나타냈다. 새누리당 윤재옥 의원은 “정부가 복지사업 부정수급 실태를 조사한 결과 2013년, 2014년에 각각 1300억원이 넘었다”면서 복지 확대보다 기존 수급체계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새정치연합 김태년 의원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처럼, 증세를 증세라고 부르지 못하는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느냐”면서 “교육, 보육, 복지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복지를 어떻게 하면 축소해 볼까 궁리하는 복지 없는 증세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같은 당 남인순 의원은 “저가담배 도입은 결국 ‘병 주고 약 주는 것’ 아니냐”면서 “또한 담뱃값 인상으로 노인들은 기초연금의 대부분을, 장병들은 적은 봉급의 대부분을 담배 구매에 써야 한다”고 지작했다. 이 총리는 “(저가담배 도입은) 좀 더 국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면서 “국민의 건강 증진 측면에서 (담뱃값 인상을) 생각해야 하지만 단시간에 과도하게 인상된 것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LS그룹] ‘태·평·두’ 3세 후계구도 본격화… 아들 위주로 진행

    ‘태·평·두’(구태회·구평회·구두회 명예회장의 줄임말) 구씨 가문의 3세 후계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유교적 색채가 강한 보수적인 LS그룹의 3세 경영수업은 철저히 아들 위주로 진행된다. 배우자는 물론 딸들도 그룹 경영에서 배제된다. LS그룹은 지난 1일 신년인사에서 부사장급 이상 경영 후계자들을 발탁해 중책을 맡겼다. 3세 후계자들은 대부분 승진했다. 지난해 11월 작고한 고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 아들인 구본혁 LS-니꼬동제련 상무는 전무로 승진했다. 구 전무는 국민대 국제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MBA를 마친 뒤 2003년 LS전선에 입사했다. 이후 2009년 지주회사인 LS 경영기획팀에서 경험을 쌓다가 2012년 임원이 되면서 LS-니꼬동제련으로 옮겼다. LS오너 일가 3세 가운데 처음으로 임원 자리에 9년 만에 올랐다. 구자엽 LS전선 회장의 아들인 구본규 LS산전 이사는 상무로 승진했다. 구본규 상무는 원전 부품비리가 터졌던 2013년 연말 인사에서 전반적인 인사폭이 축소되는 중에도 오너 일가로는 유일하게 LS산전 부장에서 이사로 승진했다. 2007년 LS전선에 입사해 2010년 LS산전으로 옮겨 상무가 되기까지 6년 만에 이뤄진 초고속 승진이다. 이들은 모두 고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손주들이다. 그룹의 주력인 LS산전에는 현재 구본규 상무 외에 고 구평회 EI 명예회장의 손주이자 구자열 LS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구동휘씨가 LS산전 부장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2013년 11월 LS산전 차장으로 입사한 동휘씨는 처음에는 경영전략실 전략기획 부문에서 일하다 “공장일부터 배워야 한다”는 부친 구자열 회장의 방침에 따라 바로 충북 청주의 LS산전 생산공장 생산기획팀으로 내려갔다. 아버지의 권유로 입사 전에는 2년간 우리투자증권 투자은행(IB)에서 일했다. 구태회 명예회장의 장손이자 구자홍 LS미래원 회장의 아들인 구본웅씨는 미국에서 벤처캐피탈 회사인 포메이션8을 창업해 벤처사업가로 활동 중이고 구자철 예스코 회장의 외아들 구본권씨는 2012년 LS그룹에 입사해 현재 LS전선 차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2월과 4월에는 두 차례에 걸쳐 구자홍 LS미래원 회장, 구자엽 LS전선 회장, 고 구자명 회장, 구자철 예스코 회장 등 LS그룹 2세 경영진들은 자신들의 지분을 3세에게 고스란히 넘겼다. LS그룹은 지주사인 ㈜LS를 중심으로 LS전선, LS산전, LS엠트론, LS-니꼬동제련 등 주요 계열사 지분을 ‘태·평·두’ 삼형제가 각각 33.4%씩 보유하고 있다. ㈜LS의 33.4%는 가문별로 구태회 명예회장, 고 구평회 명예회장 측, 고 구두회 명예회장 측이 20%씩 4대4대2의 비중으로 나눠서 보유 중이다. 일각에서는 아직까지 2세 경영인이 비교적 젊은 편이어서 후계 논의를 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구자홍 회장 가문의 자식에 대한 자산 승계율은 14.7%, 구자열 회장 가문의 자산승계율은 15.7%에 불과하다. 다만 구자은 LS 엠트론 부회장 가문은 부친인 구두회 회장이 작고한 관계로 자산승계율이 100%다. 가부장적인 LS그룹은 창업주의 2·3세 아들이 경영 전면에 급부상하고 있는 반면 딸들은 삼성·현대가 등과는 달리 완전 배제돼 있다. 현재 그룹 경영에 참여하는 딸은 단 한명도 없다. 고 구두회 명예회장의 차녀인 구지희씨는 2011년 LS지분 8000주를 남동생과 언니인 구자은 LS엠트론 부회장과 구은정 태은물류사장에게 넘기고 LS그룹과의 지분 관계를 완전히 청산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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