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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패러다임이 변했다는 말은 엄청나게 큰 변화가 왔다는 것을 뜻한다. 흔하게 쓰는 표현이지만 이 단어가 우리의 세계관에 얼마나 큰 변혁을 일으킨 것인지 곰곰이 따져보지 않고 쓰는 경우가 많다. 이는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이 우리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결과로 볼 수 있다. 이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패러다임이라는 표현은 미국의 과학철학자 겸 과학사학자 토머스 쿤(1922~1996)이 1962년에 발표한 ‘과학혁명의 구조’(SSR)에서 과학의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입한 개념이다. 패러다임은 그리스어 ‘파라데이그마’(paradeigma)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 단어의 일상적 의미는 하나의 일정한 형태나 본보기로 삼을 만한 사례를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쿤은 패러다임을 한 시대를 지배하는 과학적 인식·이론·관습·사고·관념·가치관 등이 결합된 총체적인 틀 또는 개념의 집합체로 정의하고 있다. 쿤은 1922년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쿤의 부모는 아들을 하버드대학에 보내기 위해 유명 사립 고등학교(이 학교는 지금도 명문으로 인정받는 태프트 고등학교)에 입학시켰다. 쿤은 과학과 수학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물리학을 전공하기 위해 하버드대학에 들어갔다. 학부를 졸업하면서 이론물리학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철학을 포함한 다른 학문 분야의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 했다. 이런 쿤의 희망은 우연한 기회에 실현된다. 쿤이 자신의 행로를 물리학에서 시작하여 과학사로, 그리고 철학으로 계속하기까지 그가 학부 시절에 역사와 고전문학, 근세 철학에 관해 다양하게 공부했던 것이 도움이 됐을 것이다. 쿤이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자신의 연구 분야를 바꾸려 할 때 마침 하버드 총장 코넌트는 과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 학생을 위한 과학 교양 교육을 개설하고 있었다. 쿤은 코넌트의 초청으로 과학사 교과목의 운영을 담당하는 조교가 됐다. 미국 대학에서의 조교는 한국 대학에서의 조교와 많이 다르다. 미국 대학의 조교는 강의를 계획하고 학생들에게 직접 수업하고 시험도 관리하는 등 거의 교수나 다름없는 역할을 한다. 1940년대 중반 당시만 하더라도 과학사는 이제 막 대학에서 하나의 학과가 되기 시작하는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코넌트가 요청한 조교직은 쿤의 관심을 물리학에서 과학사로 전환하는 데 큰 계기가 됐다. 쿤은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에 관한 자료들을 읽게 되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현대 물리학과 비교해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누군가 알 수 있는 오류를 저지른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이 어떻게 해서 그리 오랫동안 중요하게 인정받았을까. 자신의 과학사에 대한 해석이 잘못됐다고 느낀 쿤은 매우 당황했다. 그러나 쿤은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은 현대 물리학의 관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에 가까운 방식으로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전을 기존에 늘 해 오던 방식과 다르게 해석하는 통찰력을 갖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여기서부터 SSR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쿤은 개별 과학의 과거를 보면 특정한 시기에는 언제나 개인이 아니라 전체 과학자 집단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모범적인 틀이 있는데, 이 모범적인 틀이 패러다임이라고 설명한다. 쿤에 의하면 패러다임은 두 가지 특성을 가진 주목할 만한 과학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신선하고 전례가 없어 전문 과학자 집단의 관심을 충분히 받을 만하고, 둘째는 이렇게 관심을 갖는 전문가 집단에게 풀 문제를 던져줄 만큼 충분히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일단 어떤 과학자가 이런 업적에 해당하는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많은 과학자들이 이를 수용하면, 이 패러다임에서 나타나는 갖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계속 연구·탐구 활동을 한다. 이른바 과학은 쿤이 정의한 정상과학의 시기에 진입하는 것이다. 이어 정상과학을 통해 일정한 성과가 누적되다 보면 기존의 패러다임은 차츰 부정되고, 경쟁적인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난다. 그러다 과학혁명이 일어나면서 한 시대를 지배하던 패러다임은 완전히 사라지고, 경쟁관계에 있던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따라서 하나의 패러다임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고, 생성·발전·쇠퇴·대체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이 패러다임은 전혀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자연과학 위에서 혁명적으로 생성되고 쇠퇴하며,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된다. 이런 흐름은 ‘기존 과학→패러다임 출현→정상과학→위기→혁명→경쟁적 패러다임 등장→새 정상과학’으로 요약할 수 있다. 쿤의 주장에서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쟁점은 두 패러다임 간의 비교와 관련한 부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턴 패러다임 사이에, 뉴턴 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사이에는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근대에 뉴턴의 과학 패러다임이 등장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 패러다임은 사라졌지만 뉴턴 패러다임이 더 우수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패러다임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패러다임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뉴턴 패러다임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상과학의 수정과 보완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예를 들어 지구의 공전을 천동설로는 설명할 수 없을 때 이는 천동설을 개선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천동설과는 전혀 다른 지동설을 받아들여야만 과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쿤은 과학적 연구에서 보편적 원칙은 없다고 했다. 과학은 영구불변의 진리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의 부산물이기 때문에 역사적 상황이나 사회적 여건이 변하면 진리의 내용도 변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쿤의 주장은 당시 과학의 발전은 완벽한 진리를 위해 점진적으로 나아간다는 전통적인 과학의 진보 개념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상대주의적 요소도 있다 하여 과학철학자들의 반발을 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쿤의 철학은 과학 분야를 넘어 세계를 보는 혁명적인 시각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쿤의 패러다임은 과학의 발전을 보는 새로운 철학적 관점을 제공했으며,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를 넘어 공학, 사회과학, 정치, 경제, 국제관계 등의 변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툴을 제공했다. 쿤의 패러다임과 SSR은 숱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의 SSR은 20세기 하반기 동안 가장 많이 읽히고 인용됐고, 그의 주장의 많은 부분은 이제 상식이 됐다. 쿤의 영향은 쿤의 패러다임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올 때까지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그들의 치적?… 日帝의 오만과 왜곡

    그들의 치적?… 日帝의 오만과 왜곡

    ‘동양’(東洋)은 한쪽으로 치우친 단어다. 애초 중국의 무역항인 광저우를 중심으로 동쪽 바다를 일컬었으나 근대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들어와 동아시아 혹은 아시아 전역을 뜻하는 용어로 탈바꿈했다. 19세기 후반 유럽 열강을 통칭하던 ‘서양’(西洋)과 대비돼 사용된 이 단어에는 ‘동양 유일의 문명국’을 자처하던 일본의 오만과 교만이 잔뜩 배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박물관들(조선총독부박물관·이왕가박물관)에 수장됐다가 넘겨받은 아시아의 유물과 미술품 1600여점 가운데 200여점을 추려 28일부터 내년 1월 11일까지 특별전 ‘동양을 수집하다-일제강점기 아시아 문화재의 수집과 전시’를 이어간다. 전시 유물 중에는 일본 승려 오타니 고즈이가 탐험대를 파견해 중앙아시아의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끌어모은 ‘천불도’, ‘기마여인’ 등 ‘오타니 콜렉션’도 포함됐다. 수집 뒤 박물관에 기증되거나 매매를 통해 수장고에 들어왔으나 일본 수집상이나 탐험가들의 손을 거친 만큼 약탈품으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박물관 측은 “해방 뒤 미군정이 ‘적산처분’을 통해 조선총독부의 재산을 우리 정부에 귀속시킨 만큼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고 밝혔으나, 향후 소유권을 놓고 잡음이 불거질 수도 있다. 그만큼 이번 전시는 일본의 ‘동양’에 대한 집착을 시대적 맥락에서 살펴보는 자리다. 유물들은 중국 한대(漢代) 고분 출토품부터 일본의 근대 미술품까지 다양하다. 조선총독부 청사의 중앙홀 북벽 벽화, 중국의 불비상과 북위(北魏)와 북제(北齊)시대의 반가사유상, 아래가 좁고 뾰족한 한나라의 말 머리 꾸미개와 악명 높은 일본인 고미술상 ‘야마나카 상회’의 주인이 직접 총독부박물관에 기증한 청동제 수정 감입 네 잎 금속장식, 아프가니스탄에서 출토된 부처의 머리, 고대 부여의 사람 얼굴 모양 장식 등이 망라됐다. 대다수가 상설전시를 통해 꾸준히 모습을 내비친 작품들이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70여년 만에 수장고를 나와 빛을 보는 유물들도 있다. 일본인 조사단이 만주 지역을 돌며 1912년의 광개토대왕비 모습 등을 그린 ‘여진비’ 스케치와 부여의 정치 중심지였던 북만주 마오얼산에서 1923년 출토된 사람 얼굴 모양 장식, 중국 허난 지역에서 출토된 수정이 감입된 네 잎 금속장식 등이다.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조선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종합박물관을 지향하면서도 중국, 인도, 중앙아시아 그리고 일본 문화재를 대거 수집했음을 방증하는 사례들”이라고 밝혔다. 전시에는 1940년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한 일본인 화가들의 작품 10여점도 처음 공개된다. 박물관이 소장한 250여점의 근대 일본화 가운데 금기시된 ‘군국주의’란 주제 탓에 공개되지 못했던 것들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옛 조선총독부 청사 중앙홀의 북벽에 걸렸던 길이 14m의 벽화. 1996년 청사 해체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이 민족의 교훈으로 삼고자 수장고에 보관해 왔다. 그림을 그린 일본인 화가 와다 산조는 한국과 일본에 함께 전승돼 온 전설인 ‘날개옷 이야기’(나무꾼과 선녀)를 “민족의 뿌리가 같다”는 내선일체(內鮮一體))의 관점에서 풀어냈다. 북벽에선 금강산, 남벽에서는 시즈오카현의 경승지인 미호를 각각 배경으로 삼았는데. 이번에는 북벽 벽화만 공개된다. 작품은 마(麻) 재질의 캔버스 위에 고대 일본의 전통 종이인 도사지를 사용했는데 와다 산조는 1926년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1000년이 가도 변치 않도록 했고, 이는 양국의 영구적 일치(식민 통치)를 기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왕가박물관에 전시됐던 중국 북제 시대 반가사유상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중국 불교 조각 중 백미로 꼽힌다. 일본 수집상인 우라타니 세이지가 당시 1162원의 고가에 매도한 6세기 대리석 불상으로, 직사각형의 대좌 중앙에 배치된 반가사유상의 얼굴과 신체는 간결하면서도 균형감을 갖췄다. 아프가니스탄의 잘랄라바드 인근 고대 유적에서 출토된 부처 머리는 기원전 2세기부터 1세기까지 유행했던 후기 헬레니즘 양식을 담았다. 총독부박물관이 1920년대 프랑스 고고학 조사단을 이끌었던 아캥 당시 프랑스 기메박물관장으로부터 기증 받은 것이다. 이태희 학예연구사는 “당시 총독부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가운데 중국 한대의 것들이 많았는데, 이는 낙랑군이 한반도에 문화를 전수했다는 관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며 “한반도의 것과 유사한 일본 기타큐슈 지역의 토기들을 전시한 것도 같은 맥락(임나일본부설)”이라고 전했다. 박물관은 다음달 14일 국내외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관련 국제학술대회도 개최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원전 위험 축소·신재생에너지 강조… ‘원전 마피아’ 관여 의혹

    원전 위험 축소·신재생에너지 강조… ‘원전 마피아’ 관여 의혹

    ‘원자력은 폭탄뿐 아니라 자기공명영상장치(MRI)에도 활용된다. 방사성물질 유출 사고를 방지함으로써 원자력은 화석연료 대체 에너지로 주목받는다. 오염 물질을 거의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 발전 비중을 높이고 신재생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 원자력문화재단 요구에 따라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후인 최근 4년 동안 바뀐 초·중·고교의 사회와 과학 교과서 내용을 중심으로 원자력 관련 기술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기존 교과서가 ‘원자력의 잘못된 이용’이란 주제로 1945년 일본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 사진만을 제시했다면 새롭게 바뀐 교과서는 ‘두 얼굴의 원자력’이란 표제 아래 MRI와 같은 원자력의 생산적인 사용 사례를 원폭과 병기했다. 풍력, 조력 등의 신재생 에너지만 ‘오염 적은 에너지’로 묘사했던 교과서도 슬며시 원자력을 포함하는 쪽으로 수정됐다. 무엇보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원전의 방사성물질 유출 사고를 인류가 통제할 수 있다는 식의 묘사가 늘었다. 전반적인 ‘분식’(粉飾)이 이뤄졌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7일 “학생들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해야 할 교과서가 원전에 대해 일방적이고 막연하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활용되는 것은 우려스럽다”고 총평했다. 이어 “특정 단체의 입장이나 이해관계가 교과서 수정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도록 교육부가 관련 절차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 의원이 ‘특정 단체 입장이나 이해관계’를 거론한 것은 최근 4년 동안의 교과서 수정이 납품 비리를 일으킨 ‘원자력 마피아’들의 ‘원전 불가피론’과 연관됐다는 의혹 때문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인 같은 당 박완주 의원에 따르면 원자력문화재단은 산업통상자원부 유관 기타 공공기관으로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부터 지난해 76억 5000만원의 홍보예산을 지급받았다. 특히 수정된 교과서에서 원전의 경제성을 강조하는 대목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으로의 원전 수출을 ‘녹색성장’으로 치켜세운 이명박 정권의 인식과 맞닿아 있다. 최근 4년 동안의 교과서 수정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이뤄졌다. 첫째는 신재생 에너지 범주에 원자력을 포함하는 방향이다. 풍력·조력·태양열 등 신재생 에너지의 범주에 원자력을 삽입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고교 화학, 사회, 경제 교과서 등 과목을 망라해 원자력이 신재생 에너지와 병기됐다. 둘째로는 한국 산업의 발전상을 설명하는 매개로 원전을 제시하는 방향인데, 이 과정에서 UAE로의 원전 수출이 부각됐다. 예컨대 고교 경제지리 교과서에서는 우리나라와 세계의 경제적 관계를 설명하는 자료로 기존에 활용하던 ‘조선업’을 빼 버리고 UAE 원전을 소개했다. 셋째로 방사능 유출 등 원자력의 위험성 언급을 축소하거나 모호하게 기술하는 방향의 수정이 이뤄졌다. 고교 기술가정 교과서는 당초 “방사선 유출과 방사성 폐기물 처리 등이 해결 과제로 남았다”며 원자력의 한계를 기술했지만 이 표현은 “방사성 폐기물 관리와 사고 시 발생할 수 있는 방사성물질 유출 문제 등이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로 바뀌었다. 방사성물질 유출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처럼 불의의 사고가 났을 때만 가능하다는 식의 기술이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15) 서울시장(상)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15) 서울시장(상)

    ●관직명 판사-판부사-판윤-부윤-서울시장 등 13번 바뀌어 서울시장이란 어떤 자리인가. 서울의 역사는 기원전 18년 한성백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달빛 아래서 흐릿하게 나타나는 야사(野史)가 대부분이다. 대낮에 떳떳하게 펼칠 수 있는 정사(正史)는 조선 개국 이후로 봐야 한다. 당시 서울은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사실상 국가 그 자체였다. 서울이 조선이고, 조선이 곧 서울이었다. 서울은 한성 또는 한양이라고 불렸는데 한성부(漢城府)가 오늘의 서울시청이며, 한성판윤(漢城判尹)이 서울특별시장이다. 일제 식민 시기 서울은 경기도에 속한 일개 지방도시였고, 경성(京城)이라는 생소한 지명을 부여받았다. 제국의 유일한 수도는 도쿄(東京)였기에 조선 사람의 뇌리에서 수도의 위상을 지우려는 얄팍한 수작이었다. 서울시장의 지위 또한 경성부윤으로 깎아내렸다. 판윤(判尹)이라는 벼슬의 주인은 한성판윤 단 한 사람이었지만 부윤(府尹)은 여러 지방도시의 장(長) 중 한 명이었다. 나라를 되찾은 이후에야 서울과 서울시장은 어느 정도 권위를 회복했다. 한성판윤과 관선 시장이 왕조와 권위주의 시대 최고 권력자의 하수인 역을 주로 수행했다면 민선 자치 20주년을 앞둔 지금 서울시장의 주가는 상한가를 치고 있다. 누가 서울시장을 지냈으며 어떠한 족적을 남겼을까. 서울역사박물관이 1997년 발간한 ‘한성판윤전’에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추출해 정리한 ‘한성판윤 선생안’(先生案)이 수록돼 있다. 초대 성석린 판한성부사부터 민선 6기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에 이르기까지 620년 동안 거쳐간 1446명의 이름이 명멸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관직 이름도 판사-판부사-판윤-부윤-서울시장 등으로 13차례나 변경됐다. 실록에 한성판윤의 이·취임 내용이 누락돼 한성판윤을 역임하고도 수록되지 않은 인물이 적지 않았고, 너무 자주 바뀌었고 중임자가 많았던 점 등을 고려하면 숫자와 명단이 정확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또 일제강점기에 재임한 일본인 경성부윤 18명과 광복 이후 서울특별시의 관선 시장 29명과 민선 시장 5명도 포함된 숫자다. 이와 관련해 향토사학자 박희씨는 2005년 발표한 ‘역대 서울시장 연구’에서 “한성판윤을 포함한 서울시장은 모두 1427명이었으며 이명박 시장이 제2005대 서울시장”이라고 주장했다. 조선 중기 이언강이 무려 11차례나 중임한 것을 비롯해 한 사람이 여러 차례 시장에 재임한 사례가 의외로 많았다는 것이다. 박씨의 주장에 따르면 박원순 시장은 제2008대 서울시장이며 역대 서울시장을 지낸 사람은 모두 1429명이다. 최고 권력자로 따지면 역대 조선왕 27명과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11명에 대통령직무대행 6명을 합쳐도 40여명에 불과하고,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영의정 165명과 조선 말 총리대신 및 의정대신은 물론 정부 수립 후 역대 국무총리 42명을 다 합쳐도 220명 남짓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숫자다. ●한성판윤은 민선 서울시장보다 파워 막강했던 자리 조선의 중앙행정체제는 1부 6조 체제였다. 삼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전원 일치 합의제 기구인 의정부(議政府) 아래 오늘의 정부 부처인 6조(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를 두었다. 현재의 부(部)를 조선시대에는 조(曹)라고 했다. 한때 지금의 광화문광장 KT 사옥 앞 옛 한성부터에 ‘경조(京兆) 아문터’라는 표석이 서 있었는데 이 때문에 6조와 경조를 유사 부서의 이름으로 잘못 알게 됐다. 2009년 광화문광장을 조성하면서 세종대왕 동상 옆에 한성 부터 표석이 새로 설치됐다. 한성부는 의정부와 맞먹는 파워 집단이었다. 한성부의 권한과 업무는 오늘의 서울시청보다 더 광범위했다. 정2품 한성판윤은 비록 임명직이지만 왕에게 신임을 얻었을 때는 지금의 민선 서울시장보다 힘이 더 셌다. 한성부는 지방행정조직이 아니라 중앙행정조직이었고, 한성판윤도 관찰사나 부윤과는 달리 중앙 관직이었다. 사법 기능과 수도 치안 유지 기능까지 한손에 쥐었다. 한성부는 행정기관이면서 형조, 사헌부와 함께 삼법사(三法司)의 하나였고, 포도청과 더불어 궁궐과 도성을 지키고 순찰하는 치안업무도 맡았다. 20만명이 거주하는 동시대 세계 최대 규모 도시의 하나인 한성의 도시 시설을 관리하는 관청인 동시에 한성 부민에 대한 목민관청의 역할을 했다. 지방의 선위사(宣慰使)로 파견되거나 왕의 행차 때 어가를 안내하기도 했다.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영접사를 맡거나 사신으로 파견되었으니 외교업무마저 한성판윤의 몫이었다. 한성부는 전국의 호적 관리와 호패 발행을 통해 도성 안팎의 인구를 통제하고 군역과 부역을 관리했으며 궁궐과 한양 도성, 시장, 도로, 하천을 관리했다. 일반 행정 기능과 함께 사법 기능까지 수행한 까닭은 전국에서 발생하는 토지나 가옥, 채무 관련 소송을 한성부가 도맡아 처리했기 때문이다. 한성부 아래에 오늘의 구청인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 등 5부를 두고 각 부 아래 이방, 호방, 예방, 병방, 형방, 공방 등 6방을 둔 것이 기본 편제였다. 한성부가 사실상 정부 역할을 한 이유는 다분히 복합적이다. 판서가 다스리는 중앙부처는 6조였으나 한성부를 의정부와 함께 부(府)라고 칭한 것은 오늘의 정부(政府) 반열로 봤기 때문이다. 지금도 서울시는 국방을 제외한 모든 종합 행정이 이뤄지는 기관이다. “한성판윤 되기가 영의정 되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비록 정승이 영예로운 자리이지만 한성판윤의 집행 권한이 그만큼 많고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켰다는 뜻이었다. ●낙점하기 전 친·외가의 3대까지 집안의 지체 살펴 한성판윤만 제대로 두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체제였다. 조선의 왕들은 한성판윤을 낙점하기 전에 친가와 외가의 3대까지 집안의 지체를 살폈고, 어느 당파에도 치우치거나 성품이 편협되지 않은 인물을 고르고자 외가 쪽 3대까지 살폈다고 한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육조거리 왼쪽에 의정부-이조-한성부가 나란히 위치한 것만 봐도 한성부의 위상을 짐작할 만하다. 한성판윤을 지낸 다음 이조판서로 옮겨 가는 사례가 많았고 한성판윤 역임자 중에 영의정을 지낸 인물이 유독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판윤은 좌윤(左尹)과 우윤(右尹)이 보좌했는데 오늘의 서울특별시 행정 1부시장과 2부시장 격이다. 오늘의 장관에 해당하는 6조 판서는 참판이라는 1명의 차관을 두었지만 한성부는 예외적으로 차관이 2명이었다. 업무의 과중함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한성판윤은 중앙 관직이어서 3정승, 6판서와 함께 왕이 집전하는 어전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장인 서울특별시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세계 유일의 전통이 여기서 비롯됐다. 지금의 도지사나 광역시장에 해당하는 관찰사와 부윤이 종2품의 외관직이었지만 한성판윤은 수도의 시장 이상의 의미를 뒀다. 한성판윤은 판서를 지내거나 참찬, 대제학, 강화유수를 지낸 정2품이 가는 자리로 여겨졌고 종2품 참판이나 관찰사, 승지에서 발탁된 사례도 가끔 있었다. 한성판윤을 지낸 다음 승진보다 수평 이동을 할 경우 대개 이조판서로 옮겼다. 의정부 좌우참찬이나 관찰사, 대사헌으로 많이 옮겼으며 정1품 우의정으로 승진한 사례도 있었다. ●유명 인물로는 황희·맹사성·서거정·민영환 한성판윤을 지낸 유명 인물로는 황희, 맹사성, 서거정, 권율, 이덕형, 박문수, 박규수, 박영효, 지석영, 민영환 등을 꼽을 수 있다. 4차례 이상 지낸 사람은 53명이었다. 무려 10번을 중임한 이가우는 헌종부터 철종까지 13년 동안 취임과 퇴임을 거듭해 별칭이 ‘판윤대감’이었으나 재임 기간은 통틀어 1년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북벌을 추진했던 이완은 7번, 독립협회에 가담했던 이채연은 6번이나 한성판윤을 지냈다. 철종 때 김좌근, 고종 때 이기세, 한성근, 임응준은 1일 초단임 시장으로 끝났다. 한성판윤은 왜 그렇게 자주 바뀌었을까. 한성부를 다스리기보다 중앙정치에 지나치게 간여하여 적을 많이 만든 게 탈이었다. 송사를 다루는 사법업무도 수명을 재촉했다. 무엇보다 구경(九卿)이라고 하여 의정부 좌우참찬, 6조 판서, 한성판윤을 아홉 개의 명예로운 벼슬로 꼽았는데 9경 벼슬을 여러 번 거치는 게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런데 골치 아픈 한성판윤직에 오래 머무르기보다는 이름만 올리고자 한 욕심이 자리 이동이 가장 심한 관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만들었다. 조선 513년(1392~1905) 동안 한성판윤은 평균 재임 기간 3.6개월의 ‘파리목숨’이었다. 광해군 때 오억령은 무려 13년 4개월이나 집권했으며 단 하루 만에 바뀐 사람도 5명에 이른다. 조선 말 순조대에 접어들면 1년 이상 자리를 지킨 인물이 1명도 없었다. 잦은 교체로 말미암은 공백을 채우려고 종5품 판관 중 1명은 장기 복무케 했다. 한성판윤을 10명 이상 배출한 가문은 전주 이씨, 여흥 민씨, 달성 서씨, 파평 윤씨 등 모두 35개 가문이었다. 왕족인 전주 이씨가 43명으로 가장 많았고 여흥 민씨가 35명이었는데 8명이 고종대 20년 동안 발령났다. 고종 27년인 1890년에는 한 해 동안 25명이 바뀌었고, 고종 재위 43년 7개월 동안 모두 378명의 한성판윤이 옷을 입었다가 벗었다. 영조 때 병조판서를 지낸 홍상한과 아들 낙성, 손자 의모가 3대에 걸쳐 한성판윤을 지냈고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서종태와 두 아들 명균, 명빈 3부자가 한성판윤에 오르기도 했다. 오늘날 국무총리를 지내고 나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게 흠결이 되지 않는다. 서울시장을 지낸 인사가 대통령에 당선된 사례가 있고, 서울시장에 오르면 차기 혹은 차차기 유력 대권 주자로 꼽히는 것도 500년 이상 내려온 한성판윤의 오랜 전통과 내력의 힘이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늘어난 원자력 홍보 거꾸로 가는 교과서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 에너지의 활용과 관리에 회의적인 국제 사회 기류와 다르게 최근 4년 동안 국내 초·중·고교 교과서에 원자력 홍보 문구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위험을 경고하는 내용을 삭제하는 대신 원자력의 활용과 산업 발전을 연결짓는 방향으로 교과서 내용 수정이 231건 이뤄졌다. 교과서의 중립성 훼손 문제와 수정을 주도한 원자력문화재단에 연간 76억원이 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이 투입되는 것이 적절한지도 논란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6일 원자력문화재단이 제출한 ‘2010~2013년 교과서 수정·보완 요구’를 공개했다. 유 의원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듬해인 2012년을 제외하고 매년 60건 이상씩 원자력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교과서가 수정됐다”고 밝혔다. 교과서는 원전과 원자력 무기의 위험성을 축소하거나 모호하게 표현하는 쪽으로, 풍력·조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 범주에 원전을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수정됐다. 어둡게 찍힌 원전 사진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는 산뜻한 사진으로 교체한 사례도 있었다. 연예인, 지식인, 어린이 등 긍정적인 이미지의 모델을 총동원해 원자력을 광고했던 일본의 ‘원자력 프로파간다’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정기홍의 시시콜콜] 법원의 ‘원전 갑상선암 판결’ 되짚기

    [정기홍의 시시콜콜] 법원의 ‘원전 갑상선암 판결’ 되짚기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선과 암 발생 간의 인과 관계가 다시 논쟁거리로 부상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민사2부는 지난 17일 부산 기장의 고리원전 인근(10㎞ 내외)에서 20년을 살았던 박모(48·여)씨가 원전의 방사선 때문에 갑상선암에 걸렸다며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500만원을 지급하라며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원전과 일부 암 발생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첫 사례다. 한수원은 “판결한 인과 관계가 모호하다”며 항소한 상태다. 이 판결은 서울대 의학연구원이 2007~11년 실시한 전남 영광원전 주변의 암 발생 위험도 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원전 주변 지역인 반경 3km 이내와 근거리인 5km 이내, 원거리인 30km 이상 떨어진 경기도 양평 주민을 대상으로 삼았다. 원전 현장 직원들도 포함됐다. 조사 결과 원전 주변에 사는 주민의 갑상선암 발생률이 원거리에 사는 주민보다 1.8배 높았다. 당시 조사팀은 “60대 이상과 여성의 암 발생률은 주변 지역이 원거리 지역보다 높았지만, 통계적 유의성이 없어 방사선의 영향 가능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2010~13년 말 고리원전 지역을 대상으로 동남권원자력의학원과 기장군이 실시한 조사에서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었다. 한수원은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박씨가 살던 곳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정한 방사선량 기준치에 못 미치고, 원전 주변과 원거리 지역의 방사선량 준위 차도 없다고 밝혔다. 원전 옆의 방사선량은 0.05mSv(밀리시버트) 이하로, 땅과 음식을 통해 노출되는 2.4mSv에 훨씬 못 미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갑상선암 발병률이 원전의 주변 지역 거주 기간과 비례하지 않다는 게 서울대 역학조사 내용”이라며 재판부의 판단을 되받아쳤다. 박씨도 1심 결과에 불복한 상태여서 상급심에서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그 결과에 따라 향후 원전정책에 큰 영향을 주게 돼 파장이 커질 게 뻔하다. 대체로 암은 오랜 기간을 추적 조사해야 인과관계를 알 수 있는 특성은 있다. 최근에 갑상선암은 여성에게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재판부가 “대기·수질오염 소송에서 원인물질이 대기나 물이라면 지금의 과학 수준으로 해명할 수 없는 분야가 있다”는 견해를 밝혀 상급심이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도 주목된다. 하지만 1심에서 둘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만큼 원전 당국은 앞으로 객관적이고 과학적 근거자료를 더 내놓아야 한다. 민관 공동검증단을 구성해 조사에 나서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이다.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삼척 원전 찬반 갈등 고소·고발전 비화

    “원전 유치 주민서명부는 조작됐다.”(삼척원전백지화 범시민연대) “원전 반대 주민투표 과정에 공무원을 동원한 것은 잘못이다.”(유치 찬성 주민들) 강원 삼척 원자력발전소 반대 주민투표 이후에도 주민들 사이에 찬반이 엇갈리며 진정과 고발이 잇따르는 등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23일 삼척시에 따르면 지난 9일 원전 유치 반대 주민투표 당시 공무원들이 동원됐다는 주민의 진정에 이어 삼척원전백지화 범시민연대가 최근 원전 유치 주민서명부와 관련해 관련자들을 형사 고발하는 등 사태가 증폭되고 있다. 범시민연대는 지난 22일 원전 유치 주민서명부와 관련해 김대수 전 삼척시장과 정재욱 전 삼척원자력산업추진협의회 대표 등 원전 유치 당시 삼척시 국·과장과 담당 공무원 등에 대해 공문서 훼손 은닉 파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2011년 주민 수용을 담보한 주민서명부는 대다수 주민이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96.9%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 허위 조작 서명부”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통상자원부는 모든 게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돼 예정 부지도 해제할 수 없다고 주장해 오히려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고 고발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삼척에서는 지난 9일 실시한 삼척 원전 유치 찬반투표와 관련해 공무원과 이·통장들이 동원된 사안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과정에 공무원과 이·통장들이 동원된 것은 잘못됐다며 한 주민이 김양호 삼척시장을 상대로 경찰과 안전행정부에 진정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날 강원도 18개 시장·군수협의회가 한자리에 모여 원전 반대 성명서를 내는 등 삼척 원전을 둘러싼 갈등은 삼척을 벗어나 강원 지역 전체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삼척 지역 주민들은 이같이 원전과 관련한 논란이 확산되는 데 대해 “원전 유치 찬반투표까지 한 마당에 더 이상 주민 간 고소, 고발 등이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에서 하루빨리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해 주민 간 갈등을 해소시켜 줘야 한다”고 말했다. 삼척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기고] 원전 수용에 대한 해법은 신뢰/장성호 배재대 교수

    [기고] 원전 수용에 대한 해법은 신뢰/장성호 배재대 교수

    세상사 모든 관계가 그렇겠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신뢰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도 원자력발전의 기세는 여전한 듯하다. 전 세계적으로 2030년까지 현재 운용되고 있는 430여기의 원전이 최소 90개에서 300개까지 추가 건설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연재해와 인재가 결합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노출한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세계적 이슈가 되면서 원자력 자체에 대한 불신이 과거에 비해 비이성적으로 높아진 것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5월,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발표된 원자력 발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의 원전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특히 지난해 원전 부품 비리사건 이후 국민들의 원전에 대한 불안감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원전 부품 비리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이 국민 눈높이에 따르지 못했다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언론과 내부 고발자 등을 통해 문제가 확대되기 전에 자정노력을 기울이는 등 냉철한 처신이 아쉬웠다. 원전마피아라는 말이 회자될 만큼 수십년간 그들만의 잔치처럼 이루어진 원전 부품에 대한 검증과 관리는 정부의 관리소홀과 안전불감증, 모니터링 제도 부재가 그 원인이다. 세계적인 원전 개발기술과 운용능력을 보유한 우리나라의 원전이 다시 예전과 같은 국민들의 사랑과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투명하게 원자력 발전에 대한 장단점과 공과를 국민에게 공지하고 국민들이 의심을 갖는 부분에 대한 속시원한 대답을 통해 점차 원전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아무리 좋은 도구라도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원자력이 아무리 안전하고 그 어떤 에너지보다 값싸다 해도 원자력의 지속 가능성 여부는 국민에 의해 결정된다. 독일 등 일부 국가들의 탈핵 결정을 볼 때도 정책의 문제를 효율성 문제로만 접근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순진한 낙관론이다. 원자력발전과 신재생에너지 사이의 선택의 문제는 사회구성원 절대 다수에 영향을 주고, 그 사용 여부에 대한 모든 결정 또한 국민 다수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할 때 원자력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임을 분명하게 직시해야 한다. 그 길만이 국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확실하게 원전정책을 실행해 나가는 가장 최선의 방책이다.
  • [명인·명물을 찾아서] 충북 괴산 특산물 ‘절임배추’

    [명인·명물을 찾아서] 충북 괴산 특산물 ‘절임배추’

    해마다 김장철이 다가오면 충북 괴산군은 한바탕 즐거운 전쟁을 치른다. 농민들이 생산하는 절임배추가 전국으로 불티나게 팔려 나가서다. 문광면에서 배추 농사를 짓는 정순천(61)씨는 “20일 이후부터 농가들이 배추를 수확해 절임 작업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때부터 한달간 밭에서 배추를 날라 절임 작업을 하면서 걸려오는 주문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괴산의 농가 800여곳은 지난해 배추 8개 정도가 들어가는 20㎏들이 113만 박스를 생산해 33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절임배추는 대학찰옥수수와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이 됐다. 전국 곳곳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절임배추 가운데 괴산 절임배추가 명품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괴산 지역에서 생산되는 배추의 맛이 일품이다. 뛰어난 맛의 비결은 10도가 넘는 가을철 중부 지역의 큰 밤낮 기온 차다. 기온이 높다가 갑자기 뚝 떨어지면 배추가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당도를 높인다. 이 때문에 고소하고 달콤한 배추가 생산된다. 또한 파란 잎은 적고 노란 속잎이 단단하게 차 있어 일반 배추에 비해 김장철 배추로 제격이다. 이 지역 토양도 유기물이 많이 함유돼 비옥하고 산도가 적절해 배추가 자라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국내산 천일염으로 배추를 절인다는 점도 괴산 절임배추의 자랑이다. 괴산시골절임배추영농조합법인은 원활한 소금 공급을 위해 2012년 전남 신안군 도초농협과 천일염 공급 계약을 체결해 최고의 천일염을 우선적으로 공급받고 있다. 태양이 만들어내는 천일염에는 미네랄이 풍부하다. 농민들은 이 천일염을 바로 쓸 수도 있지만 6개월 이상 저장해 간수를 뺀 뒤 배추에 뿌린다. 천일염이 가진 쓴맛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농민들은 2010년 일본 원전 사고와 여름철 잦은 장마로 천일염 품귀 현상이 발생해 소금값이 폭등하면서 농가의 부담을 가중시켰을 때도 국산 천일염 사용을 고집했다. 배추를 씻을 때는 청정암반수만 쓴다. 저렴한 가격도 소비자들이 괴산 절임배추를 사랑하는 이유다. 해마다 천일염과 각종 기자재 가격이 인상되고 있지만 이 지역 농민들은 한번 결정한 가격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올해도 지난해와 같이 3만원을 받기로 했다. 그동안 다른 지역에서는 가격 변동이 자주 있었지만 괴산 절임배추는 4년을 주기로 인상되고 있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지역 절임배추보다 20㎏들이 1상자 가격이 5000원가량 저렴하다. 2010년에는 배추값이 폭등해 ‘금배추’로 불렸지만 괴산 농민들은 시세의 5분의1 가격에 절임배추를 판매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군청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되고 군청에 문의 전화가 폭주했다.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랐고 당시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도 괴산을 방문했다. 유 장관은 “1상자 가격이 10만원을 넘을 수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와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힘든 결정을 했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괴산 절임배추는 1996년 문광면에서 시작됐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였다. 이전까지 농민들은 생배추를 내다 팔았지만 도시 주부들이 김장철이면 김장 쓰레기 처리로 애를 먹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고는 절임배추 생산으로 눈을 돌렸다. 가정에서 곧바로 김장을 담글 수 있는 절임배추는 쓰레기가 나오지 않아 성공할 수 있다는 농민들의 판단이 적중한 것이다. 괴산 절임배추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군은 올해 말까지 30억원을 투입해 현대화된 생산시설 공동 작업장을 마련하고 있다. 이곳에는 자동으로 배추를 씻을 수 있는 버블형 세척기와 절단기 등 자동화 장치들을 설치할 예정이다. 또한 절임배추 생산 기간 연장을 위해 이동식 저온저장고를 만들고 3년 이상 간수를 뺀 국내산 천일염을 쓰기 위해 소금 저장시설도 구축하고 있다. 절임배추 사이즈 규격화, 배추 품종 통일, 소비자가 선호하는 적정 염도 유지(6%) 등 절임배추 표준화도 추진키로 했다. 2012년부터는 절임배추 축제도 열고 있다. 송정호(55) 군 유기농산업과장은 “배추 맛이 워낙 고소한 데다 간수가 제거된 천일염까지 쓰다 보니 절임배추에 설탕을 넣었느냐는 문의 전화까지 오고 있다”면서 “괴산 절임배추는 맛도 좋고 소비자들과 함께하는 의리 있는 배추”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고장이 절임배추를 처음 시작하면서 대도시 김장 쓰레기가 급감했다”면서 “괴산 절임배추는 음식물쓰레기 줄이기에 기여한 철학이 있는 배추”라고 자랑했다. 괴산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가상 부검 ‘복원’한 투탕카멘…“선천적 내반족·뻐드렁니”

    가상 부검 ‘복원’한 투탕카멘…“선천적 내반족·뻐드렁니”

    기원전 14세기 이집트 제18왕조 12대 왕인 투탕카멘의 빛나는 황금 마스크는 또렷한 이목구비의 잘생긴 미남으로 보이지만, 실제 이 소년왕의 모습은 뻐드렁니에 내반족(굽은 발), 그리고 소녀 같은 엉덩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정밀 조사 결과 밝혀졌다. 또 그는 전차 경주를 즐겼다기 보다는 걷기 위해서 지팡이에 의존해야만 했다고 연구자들은 말하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19일 자 보도에 따르면 국제 연구진이 투탕카멘의 미라를 단층 촬영한 컴퓨터 스캔 2000본 이상과 함께 그의 형제자매로 확인된 미이라의 유전 분석도 시행했다. 그 결과, 투탕카멘의 신체 장애는 호르몬 불균형에 의한 선천적 유전병이며, 그의 가족사를 통해 그가 10대 후반(약 19세)에 사망하게 된 신뢰할만한 원인을 밝혀냈다. 기존에는 투탕카멘의 두개골과 다른 신체 부분에서 확인된 골절로 그가 전차 사고로 사망했거나 살해됐다는 여러 속설이 제기돼왔다. 이번 조사 결과, 연구팀은 투탕카멘이 사망하기 전에 한 차례 골절상을 입기는 했으나 그가 지닌 내반족은 전차 사고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선천적인 질환이었음을 확신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유럽아카데미 미이라·아이스맨연구소(EURAC)의 알베르트 징크 소장은 이 고대 이집트 왕족의 DNA를 연구함으로써 그의 부모에 관한 진실도 파헤쳤다. 그는 투탕카멘이 ‘이교적인 왕’(heretic king)으로 알려진 부왕 아크헤나텐과 그의 친남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고대 이집트인 사이에서는 근친상간이 금기시되지 않았으며 이런 행동이 자손에게 유전적으로 나쁜 영향을 주는 것 역시 알지 못했다. 런던임페리얼단과대(ICL)의 수술 강좌 강사인 후탄 아슈라피안은 몇몇 왕족은 호르몬 불균형으로 밖에 설명될 수 없는 질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투탕카멘 이전의 많은 파라오들이 고령까지 살았지만 그의 직계는 조기에 사망했다”고 말했다. 이집트의 방사선 전문의 아쉬라프 셀림은 “가상 부검 결과 내반족으로 땅을 디디기 위해 발가락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심하게 절뚝거렸을 것”이라면서 “또한 그가 죽기 전에 무릎 부위에 한 차례 골절 상을 입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투탕카멘의 신체적 제약에 대한 증거는 그의 무덤에서 발견된 130개에 달하는 지팡이가 뒷받침하고 있다. 해당 연구결과는 오는 26일 영국 BBC 1 방송 다큐멘터리 ‘투탕카멘: 그 진실을 밝히다’(Tutankhamun: The Truth Uncovered)에서 상세하게 공개될 예정이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법원 “한수원, 원전 인근 주민 갑상선암 발병 배상해야”

    원자력발전소가 기준치 이하의 방사선을 방출하더라도 장기간 노출된 인근 주민이 갑상선암에 걸렸다면 원전 운영사가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원전 인근 주민의 암 발생에 대한 배상 판결은 처음이다. 이에 따라 유사 소송이 잇따르는 등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민사2부(부장 최호식)는 17일 ‘균도와 세상걷기’의 주인공인 이진섭(48)씨와 부인 박모(48)씨, 아들이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박씨에게 1500만원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박씨가 원전 6기가 있는 고리원자력본부로부터 10㎞ 안팎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방사선에 노출되는 바람에 암 진단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만큼 피고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고리원전에서 방출한 방사선이 기준치(연간 0.25∼1mSv) 이하이지만 국민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최소한으로 정한 이 기준이 절대적으로 안전을 담보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원전에서 반경 5∼30㎞ 이내 주민의 갑상선암 발병률이 원거리 주민의 1.8배라는 역학조사 결과도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이유가 됐다. 재판부는 그러나 갑상선암 발병 후에도 장기간 생존하는 경우가 많고, 한수원이 방사선을 기준치 이하로 방출하려고 애쓴 점 등을 고려해 청구한 위자료 2억원 가운데 1500만원만 인정했다. 반면 직장암에 걸린 이씨와 자폐증으로 발달장애를 앓는 아들 균도(22)씨의 손배소를 모두 기각했다. 직장암은 방사선 노출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원인이 확실하게 규명되지 않은 자폐증이 방사선 노출과 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한수원 관계자는 “원전 인근 주민이 갑상선암 진단을 많이 받는 것은 한수원에서 종합건강검진을 적극 지원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며 “적극적인 법리 검토를 거쳐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치열한 법정 공방 2라운드가 불가피해졌다. 부산 오성택 기자 fivestar@seoul.co.kr
  • “원전 사업자지원사업 지자체가 주관해야”

    원전이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한국수력원자력의 공모를 통해 원전 주변 주민들이 직접 시행하는 ‘사업자지원사업’을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16일 울주군에 따르면 울산 울주, 부산 기장, 경북 울진, 전남 영광, 경북 경주 등 5개 지자체로 구성된 ‘원전 소재 지자체 행정협의회’는 지난 15일 부산에서 협의회를 열고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 등의 개정을 비롯해 ▲지자체 원전관리 참여제도 보장 ▲지원사업 평가제도 개선 ▲기본지원사업 심의규정 완화 ▲원전 지역자원시설세 세율 개정 ▲한수원의 지역주민 채용할당제 도입 ▲세외수입(원전 관련) 발굴을 위한 용역 추진 등 8개 안을 채택해 추진하기로 했다. 행정협의회는 “한수원이 시행하는 사업자지원사업의 경우 원전 주변 기본지원사업과 유사해 중복될 뿐 아니라 주민들이 추진하면서 행정 인허가 문제 등으로 지자체와 갈등까지 빚고 있다”면서 “지자체가 이 사업을 주관하면 사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인허가 문제도 쉽게 풀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또 원자력 정책에 지자체가 제도적으로 참여하는 방안과 지역주민의 재정적 인센티브 확대를 위해 원전 지역자원시설세 세율을 ㎾h당 0.5원에서 2원으로 높이는 방안 등도 추진하기로 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15) 치즈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15) 치즈

    치즈의 역사는 기원전 70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 남동부와 터키 아나톨리아, 지중해 동부에서 먹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기원전 3500년 경에 수메르인들은 이미 치즈 생산량을 점토판에 설형문자로 기록했다. 성서의 욥기와 사무엘 상하 등에서도 치즈가 언급되는 등 오래전부터 근동지역을 중심으로 일상 식품으로 식탁 위에 등장했다. 특히 중동 지역은 단백질을 구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대부분 사막이었던 탓에 수렵할 동물이 많지 않았고, 기온이 높아 음식은 순식간에 상하기 일쑤였다. 그들은 주로 자신들이 기르던 소의 우유로 단백질을 섭취했다. 우유의 단백질을 효과적으로 섭취하기 위해 치즈가 발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치즈는 인(P)과 칼슘 함량이 매우 높다. 성장기 어린이들의 뼈 발육과 노년층의 골다공증에 매우 좋은 음식이다. 칼슘은 혈압을 낮추고 피를 깨끗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 고혈압 등 성인병 환자에게도 좋다. 또한 입안의 산도를 낮춰 치아의 칼슘, 인 등이 빠져나가는 것을 억제할 뿐 아니라 손상된 치아에 미네랄을 보충해 충치를 예방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팔리는 치즈는 대략 800여 종에 달한다. 이에 따라 수분 함량에 따른 단단한 정도를 기준으로 분류한다. 크게는 연질, 반경질, 경질, 초경질 등 4가지다. 연질 치즈의 수분량은 45~52% 정도다. 특히 바로 먹는 신선 치즈는 수분량이 최대 80%에 달할 정도로 부드러우며 숙성 때 생기는 냄새가 없어 샐러드 등에 많이 이용한다. 면양 젖으로 만드는 신선 페타, 우유로 만드는 쿼크, 크림치즈 등이 이에 포함된다. 숙성 치즈 중에서는 페타, 카망베르, 브리 등이 여기에 속한다. 반경질 치즈의 수분 함량은 40~45%다. 2~3개월간 박테리아와 곰팡이로 숙성된다. 브릭, 포트살루와 블루치즈류 등이 대표적인 제품이다. 경질 치즈(수분함량 35~40%)는 4~6개월간 박테리아로 숙성시킨다. 치즈 눈(둥근 구멍)이 있는 에멘탈 치즈는 만화영화 ‘톰과 제리’에 등장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치즈 눈이 없는 치즈는 체다, 고다, 에담 등이 있다. 초경질 치즈(수분함량 30~35%)는 8~14개월간 박테리아로 숙성시키는데 매우 단단한 종류로 피자에 뿌려 먹는 파마산치즈와 로마노가 대표적이다. 가공 치즈는 2가지 이상의 자연 치즈(50% 이상)를 혼합해 녹인 뒤 다른 재료나 첨가물을 넣어 만드는 치즈다. 슬라이스나 포션 형태로 포장돼 대형 매장에서 팔리거나 크림과 혼합해 빵에 발라 먹거나 얹어 먹는 용도로 많이 이용된다. 모조 치즈는 식물성 지방을 녹여 유화안정제(유화제)를 넣은 뒤 식물성 또는 우유 단백질과 섞어 치즈 형태로 만든 제품이다. 모조 치즈는 엄격히 말하면 치즈로 볼 수 없어 ‘기타식품류’로 분류되고 있으며 보통 저가형 피자 등에 쓰인다. 소비자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치즈는 ‘치즈의 왕’이라 불리는 브리다.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700년대 중반에 처음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치즈였으나 이윽고 전 계층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흰색의 곰팡이가 표면을 덮고 있고 향이 깊고 부드럽다는 게 특징이다. 작게 썰어 와인이나 커피와 함께 먹는 디저트로 인기다. 카망베르는 나폴레옹이 좋아한 치즈로 알려져있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흰 곰팡이 연질 치즈다. 표면에 솜털 모양의 흰 곰팡이가 줄무늬 모양으로 덮여 있다. 식빵이나 비스킷, 카나페 등과 잘 어울린다. 마스카르포네는 부드러운 크림치즈다.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이탈리아 디저트인 티라미슈 케이크를 만들 때 쓰인다. 우유에서 크림을 분리해 만들어 지방이 많고 맛이 달며 짠맛이 없어 과일이나 향신료 등을 섞어 다양한 요리에 이용된다. 모차렐라는 피자 치즈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대표 신선 치즈다. 물기가 많고 진득한 게 특징이다. 흰색 젤리처럼 말랑말랑하며 뜨거워지면 실처럼 길게 늘어난다. 피자나 파스타, 샐러드 등에 애용된다. 에담은 네덜란드에서 생산되는 경질 치즈다. 수출을 위해 붉은 왁스가 칠해져 있다. 크림을 제거한 우유로 만들어 지방 함유량이 낮아 딱딱하고 짠맛이 강해 와인과 잘 어울린다. 정석근 국립축산과학원 축산물이용과 농업연구관 ■문의 douzirl@seoul.co.kr
  • [부고]

    ●신명선(전 현대중공업 부사장·전 울산도시공사 사장)씨 별세 찬웅(미국 인디애나 웨슬리언대 교수)혜인(나루아트센터 주임)씨 부친상 이정훈(SK C&C 과장)씨 장인상 유상림(미국 인디애나주립대 교수)씨 시부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8시 (02)3010-2262 ●이재균(삼천리자산운용 대표)씨 부친상 안병석(중앙대 명예교수)명종말(작가)박창욱(여주대 교수)씨 장인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9시 (02)3010-2230 ●이정우(서울아산병원 간담도췌외과 임상강사)정미(문정고 교사)정림(이대목동병원 약제과 약사)은희(장내초 교사)명희(봉은초 교사)영희(연세플러스치과 의사)씨 부친상 권혁상(휴비스 부장)이홍구(현대건설 아랍에미리트원전건설 부장)양주성(바이오니아 이사)손원현(용원초 교사)박홍찬(진위고 교사)씨 장인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6시 30분 (02)3010-2261 ●송규천(전 동김제농협 조합장)규근(전북대 교수)규호(힘찬약국장)씨 부친상 전혜연(신한카드 차장)씨 시부상 15일 전북대병원, 발인 17일 오전 9시 (063)250-1439 ●김해숙(배우)씨 모친상 15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7일 오전 8시 (02)2258-5940 ●이인전(동양화가·이소전 회원)씨 부친상 김준동(대외경제정책연구원 기획조정실장)씨 장인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8시 30분 (02)3010-2233 ●성경옥(전 서울시 청소년사업관장)국경(동양이앤지 대표)경섭(MBC 논설위원)씨 모친상 이웅희(전 전쟁기념관 사무총장)씨 장모상 15일 여의도성모병원, 발인 17일 오전 6시 (02)3779-1918
  • 해외여행 | 실크로드를 따라 1,200km를 달리다

    해외여행 | 실크로드를 따라 1,200km를 달리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가슴 한 켠에 품고 있을 실크로드. 동양과 서양이 만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용광로 같던 그곳. 건조한 바람만이 퍽퍽하게 불어대는 길을 낙타에 비단을 싣고 한 걸음씩 나아갔을 대상들. 그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실크로드’는 1877년 독일의 리히트호펜이라는 지리학자가 비단이 오갔던 곳이라 하여 붙인 이름. 실크로드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이 길을 통해 오간 것은 비단뿐만이 아니다. 각종 물품과 보석, 불교와 이슬람교가 그 길을 통해 흘러가고 흘러들어왔다. 기원전 한무제 때 장건이 사신으로 서역에 다녀온 후 길이 트이기 시작한 실크로드는 세계무역의 중심지였다. 아름다움만큼 약탈 경쟁으로 인한 아픔을 품고 있는 실크로드. 굽이굽이 내려오고 있는 역사와 문화, 자연과 사람들을 만나며 실크로드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 보자. ●황허의 도시,란저우에서 만리장성의 서쪽 끝, 자위관으로 황토색이 지배하는 간쑤성의 성도 중국 지도를 펼쳐 보면 한가운데에 ‘란저우蘭州’라는 지명이 있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의 출발점은 란저우. 1,400여 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란저우는 실크로드 문화유산이 풍부한 간쑤성의 성도로 교통과 문화, 역사, 경제의 중심지다. 칭하이성에서 발원한 황허가 처음 만나는 대도시로 중국인들이 ‘어머니의 젖줄’이라는 황허가 도시 가운데를 유유히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란저우에 가면 어디에서든 황토색이 눈에 들어온다. 란저우 시민들과 여행자들은 시내에 있는 물레방아 공원에서 유유히 산책을 하며 황허를 만난다. 란저우를 황토색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황허뿐만이 아니다. 희토류를 비롯한 35종류의 광물이 매장되어 있는 누런 산들이 란저우를 둘러싸고 있다. 황토색 물에 황토색 산, 란저우에 가면 세상이 온통 황토색으로 이루어진 것만 같다. 실크로드의 문화유산이 가득 모여 있는 간쑤성 박물관과 함께 란저우에서 손꼽히는 것 중 하나는 란저우 라멘이다. 중국 다른 지방에 가도 ‘란저우 라멘’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 음식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고기를 곁들인 란저우 라멘의 맛은 매콤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네 입맛에도 잘 맞는다. 란저우에서 나와 허시후이랑河西走廊을 따라 달린다. ‘허’는 황허를 뜻하는 단어로 허시후이랑은 황허강 서쪽의 긴 복도라는 뜻이다. 한쪽에는 평균 해발 4,000m의 치렌산맥이, 또 다른 한쪽에는 황무지 같은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900km 길이에 폭은 40~100km. 실크로드 상인들은 이 좁고 긴 평지를 따라 비단을 나르고 전쟁을 하고 오아시스를 찾았을 것이다. 일직선으로 뻗은 허시후이랑에는 허시사군으로 불리는 우웨이, 장예, 주취안, 둔황 같은 오아시스 도시들이 이어져 있다. 먼지를 풀풀 내며 달리고 또 달려도 창밖의 풍경은 변하지 않고 사막은 건조하기 이를 데 없다. 버스를 타고 있는데도 온몸이 사막으로 변해 가는데, 그 옛날 대상隊商들은 어떠했을까. 이곳을 말과 낙타를 타고 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절로 머리가 조아려진다. 자연이 그린 수채화 허시후이랑을 따라가다가 장예를 만난다. 장예는 란저우에서 510km 떨어진 도시로 마르코폴로가 1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장예에서 꼭 가 봐야 할 곳은 자연이 만든 예술품인 치차이산七彩山. 어떻게 흙에서 저런 색이 날까 의문이 들 정도로 빨간색과 노란색이 섞여 오묘한 빛을 내는 산들이 펼쳐져 있다. 정식명칭은 ‘장예단하국가지질공원’으로 ‘단하’는 붉은 노을을 의미한다. 오랜 세월 동안 풍화와 퇴적작용으로 만들어진 치차이산은 계곡을 따라 510km나 이어져 있다. 전체 공원은 4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구역마다 조금씩 다른 맛을 보여 준다. 희게 보이는 곳은 소금 성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이 넓은 곳이 과거에 바다였다는 설도 있다. 치차이산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산에서 뿜어내는 색을 가지고 주름치마를 만들어 입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자연의 색이다. 비가 오면 색이 진해져 더 아름답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장예를 찾은 날은 구름만 가득했다. 곽거병의 술샘 치차이산의 감동을 안고 서쪽으로 가다 보니 유인 우주선 발사기지가 있는 주취안酒泉에 닿는다. 주취안이라는 지명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무제가 전쟁에 승리한 곽거병 장군에게 승리의 선물로 술을 한 병 내렸는데 곽거병 장군은 이 술을 혼자 마실 수 없다며 앞에 있는 샘에 술을 부어 부하들과 함께 마셨다는 것. 이 정도의 리더십은 있어야 실크로드에서 장군이 될 수 있는 것이었을까. 곽거병 장군이 술을 부은 샘이 있는 곳이라 도시 이름이 주취안이 되었고 주취안에 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꼭 들르는 곳이 그 샘이다. 둔황을 향해 허시후이랑을 따라 부지런히 또 달린다. 이번에 나타난 곳은 만리장성의 서쪽 끝 자위관이다. 웅장하고 장엄하다. 자위관은 서역의 침입에 대비해서 1372년 명나라 때 만든 것으로 높이 10m, 둘레 733m의 거대한 성이다. 자위관의 크기만으로 서역의 군사들이 겁을 먹지 않았을까. 자위관에는 적의 동태를 살피는 3개의 망루가 있으며 박물관에서는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실크로드의 꽃,둔황 세계 불교 미술의 보고 둔황의 백미는 모가오쿠다. 과거 실크로드를 오가는 이들은 거친 땅과 예측할 수 없는 기후, 적들의 침략 속에서 항상 불안했다. 그들은 무사안녕을 빌기 위해 석굴을 파고 그 안에 불상을 세웠다. 그리고 벽화를 그려 넣었다. 그렇게 1,000년 동안 무려 1.7km에 달하는 깎아지른 절벽에 735개의 석굴이 만들어졌다. 석굴 하나는 절 하나와 마찬가지. 735개의 사찰이 아파트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고 상상해 보자. 처음 석굴에 들어가 벽화를 보았을 때 소름이 돋고 전율이 흘렀다. 모가오쿠가 처음 생긴 것은 16국 시대인 366년. 낙준이라는 승려가 석산 위에 나타난 부처의 상을 보고 만든 것이 시작이다. 이후 14세기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수많은 승려와 조각가가 석굴을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석굴 안의 불상과 벽화에는 당시의 생활상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놀랍게도 건조한 기후와 빛이 들어가지 않은 굴 속에 자리해 1,000년 전 신비로운 색이 남아 있다. 까맣게 변한 것도 있고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도 있지만 오묘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옥색이나 자주색, 노란색 등 여러 색이 석굴 안을 아름답게 빛내고 있다. 수많은 석굴 중 가장 중요한 석굴은 17호 굴. 16호 굴에 들어가자마자 오른편에 난 문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17호 굴이다. 고대의 불교경전이 쌓여 있던 굴로 장경동이라고도 불린다. 17호 굴이 발견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1900년대 초 석굴을 관리하던 왕원록이라는 노인이 모래를 치우다 우연히 작은 굴을 발견했는데 그 안에 책이 가득했던 것. 보물창고를 발견한 것이다. 둔황에서 실크로드의 중요한 문서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이 세계 각국에서 날아들었다. 영국의 스타인, 프랑스의 펠리오, 일본의 오타니 탐험대, 러시아의 올덴부르그, 미국의 워너가 수만 점의 보물들을 각자의 나라로 빼돌렸다. 문서와 유물을 가져간 것에서 그치지 않고 벽화를 뜯어가기까지 했다. 그래서 모가오쿠에 가면 1,000년 전 벽화의 아름다움에 한번 놀라고 약탈 현장의 처참함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둔황이 아니라 프랑스 박물관에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17호 굴을 보고 난 후에는 61호 굴을 챙겨 봐야 한다. 61호 굴은 현존하는 세계 최대 실사 지도로 꼽히는 오대산지도라는 벽화가 있는 굴로 지도에서 신라 고승의 사리탑으로 추정되는 탑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 220호 굴과 335호 굴에 그려진 벽화에는 새의 깃털을 꽂은 조우관을 쓰고 있는 인물들이 있는데 조우관은 고구려시대에 흔하게 발견되던 모자다. 우리 선조들도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니 실크로드의 이야기들이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모가오쿠 남아있는 석굴은 수백 개에 이르지만 관람객들이 볼 수 있는 석굴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미리 예약을 해서 가이드와 함께 1시간 동안 10여 개 정도 석굴을 돌아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특별히 보고 싶은 석굴이 있으면 가이드에게 미리 요청을 해 놓는 것이 좋다. 모래로 만들어진 거대한 산 모가오쿠를 본 후에 사막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둔황 시내에서 남쪽으로 5km 위치에 바람이 불면 모래가 노래를 한다는 밍샤산鳴沙山이 자리하고 있다. 거대한 크기에 입구에서부터 입이 떠억 벌어진다. 높이 1,600m에 동서로 40km, 남북으로 20km나 이어져 있는 모래산. 실크로드 하면 떠오르는 사막을 가르는 낙타의 행렬이 눈앞에 펼쳐진다. 요즘에는 과거 대상들 대신 여행자들이 낙타 위에 앉아 있다. 초승달 모양의 작은 오아시스인 웨야취안月牙泉을 보기 위해 사막을 오른다. 곱고 부드러운 모래에 발이 푹푹 빠진다. 땀이 흐르지만 건조한 날씨에 금세 증발한다. 발가락 사이를 간질이는 모래산에 올라 뒤돌아보니 신비로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2,000여 년 전부터 기록에 등장하는 웨야취안은 오랜 시간 동안 사막의 나그네들에게 생명수를 제공해 주었다. 모래산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수천년간 마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비롭기만 하다. 연간강수량 39mm에 증발량이 2,800mm라니 더욱 놀랍다. 밍샤산에 오르면 웨야취안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멀리 둔황이라는 또 다른 오아시스가 보인다. 모래산을 타고 내려가는 사람들, 모래 사이를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사람들, 곱디 고운 모래로 장난을 치는 사람들, 그윽한 눈으로 멀리 둔황시내를 바라보는 사람들. 같은 밍샤산에 올랐지만 이곳을 느끼는 방법은 사람들마다 모두 달랐다. 끝과 시작이 있는 곳 시안西安을 시작으로 란저우와 장예, 자위관을 거쳐 둔황에 도착한 상인들은 이곳에서 서역으로 갈 채비를 한다. 실크로드는 둔황에서 북로와 남로로 갈라진다. 북로로 가려면 옥문관을 통해, 남로로 가려면 양관을 통해서 길을 떠나게 된다. 둔황 시내에서 80~100km 떨어져 있는 옥문관과 양관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다. 비단을 낙타에 실은 상인들에게 익숙한 곳의 끝, 새로운 서역의 시작을 의미한다. ‘옥’이 오갔다고 해서 이름 붙은 옥문관은 거대한 문 하나만 달랑 남아 있고, 서역 남로 입구인 양관은 높이 4.7m의 봉화대만 남아 있다. 옥문관을 넘어 바라보는 길도 아름답지만 양관의 봉화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더 없이 황홀하다. 높은 곳에서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고비사막을 내려다보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길이 안겨 주는 막막함과 그 길을 헤쳐 나가야 하는 비장함이 함께 느껴진다. 당나라 시인 왕유는 양관에서 ‘그대에게 한 잔의 술을 권하니, 서쪽 양관으로 나가면 옛 벗이 있겠는가’라고 읊기도 했다. 익숙한 것과 이별하고 새로운 것을 향해 나가는 두려움. 얼마나 위험한 일이 펼쳐질지,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을 만나게 될지 모르는 그 마음. 실크로드 여행을 마무리하는 양관에서 수천년 전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으로 나간 그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travel info Airline 동방항공이 인천-란저우 노선을 운영하고 있으며 소요시간은 약 3시간이다. 대한항공 특별 전세기는 인천에서 우루무치까지 약 5시간 소요된다. 두 항공편 모두 10월 초까지 주 2회 운영한다. TIP 시차 베이징과 동일하게 서울보다 1시간이 늦지만 서쪽에 위치해 밤 10시가 되어야 해가 진다. 주의사항 건조하기 때문에 물을 잘 챙겨 마셔야 하며 수분크림과 미스트를 준비해 가면 도움이 된다. 선글라스와 모자는 필수. activity 둔황 야시장도 놓치지 마세요 둔황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주는 것은 둔황 야시장. 과일과 견과류, 각종 기념품과 먹거리가 넘친다.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밤을 즐기기 좋은 곳. 여러 먹거리가 있지만 양꼬치가 특히 인기다. 원하는 부위를 고르면 즉석에서 구워 준다. 꼭 맛봐야 할 것이 하미과. 멜론처럼 생겼는데 겉은 노랗다. 둔황에서 세상에서 가장 달달한 메론을 맛보게 될 것이다. 기념품으로 많이 찾는 제품은 밤에도 보인다는 술잔과 실크로드의 아이콘인 낙타인형이다. 그리고 한 땀 한 땀 손으로 파 낸 목판 장식품이 있다. 야시장에서는 낙타의 모습이 담긴 각종 기념품들이 인기다 에디터 손고은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채지형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기고] 제2의 UAE를 찾기 전에 준비해야 할 일/심경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기고] 제2의 UAE를 찾기 전에 준비해야 할 일/심경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체르노빌의 재앙으로 전 세계가 원자력을 포기할 때 우리는 끝까지 연구를 지속했죠. 덕분에 이젠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이 배우러 옵니다.” 2008년 모로코의 수도 아르바트에서 만난 원자력과학기술센터(CNESTEN) 소장의 말이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를 전후해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신규 원전의 건설을 한때 중단했지만 모로코는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현재 모로코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지원으로 중동·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연구개발과 인력훈련을 선도하고 있다. 오늘날 적잖은 국가들이 에너지원으로서 원자력의 가치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다. 완벽에 가까운 안전장치를 마련해도 불가항력의 재해를 만날 경우 어떤 결과를 감수해야 하는지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급속히 진행되는 지구 온난화를 늦추고 중동산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원자력만 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북극해 항로를 가동하거나 미래의 보고인 심해 자원을 개발하려 해도 궁극적으로 소형 원전이나 다름없는 원자력 추진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보다 수십 배 넓은 국토에서 석유와 천연가스가 솟구치는 중동이나 1970년대 중반부터 화력 발전으로 해수를 담수화해 온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왜 새삼 원전 건설을 고민할까.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급속도로 늘어나는 물 소비량 때문이다. 건기가 장기화되고, 인구 증가와 더불어 경제발전에 따른 해수 담수화의 수요가 폭증하는 중동·아프리카 국가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전력과 용수를 함께 생산할 수 있는 원자로 도입이 절실하다. 이 국가들에 대한 원전 수출은 원전 가동에 따른 감독과 사후 관리까지 100년을 내다봐야 하는 일이다. 원자력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시민의식은 물론, 선진문화까지 고취해야 할 것이다. 원전의 전략적 가치를 고려한 군사적 보호장치까지 갖추도록 도와야 한다. 몇 해 전 UAE 원전시장을 겨냥해 경쟁국 프랑스 측에서 함대 파견을 제안한 배경이기도 하다. 제2의 UAE를 찾아 개도국 원전시장을 공략해야 하는 우리에게도 한층 더 고도화된 패키지 전략이 요구된다. 해당국의 정치·경제, 역사·문화는 물론 수십년간의 기후변화 양상까지 깊은 이해와 전문 지식, 나아가 국가안보 차원의 잠재적 위협과 테러 발생 가능성은 물론, 그 대비책까지 짚어야 한다. 에너지와 안보가 융합된 에너지안보 전문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 [국감 스타] 미방위 여·야 간사

    [국감 스타] 미방위 여·야 간사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여야 간사를 맡은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과 우상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3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19대 상반기 ‘불량 상임위’라는 오명을 입었던 미방위를 ‘민생 상임위’로 변신시키기 위해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다. ■새누리 조해진 의원… 통신료 제도 개선책 송곳 지적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목적은 결국 통신사들의 요금 체계 인하를 유도해 소비자들의 장기적인 통신비 부담을 줄여 주자는 것이다. 보조금은 보조금대로 지원받고 통신비는 통신비대로 싸게 받는 체계가 아예 불가능한가.” 국회 미방위의 미래창조부 국감이 열린 10일, 조해진 의원은 ‘가려운’ 국민의 속을 긁어주는 지적을 조곤조곤 나열했다. 단통법 대표발의 의원인 조 의원은 “요금 인가제가 폐지돼야 통신사들의 요금경쟁 체제가 자리잡는데 제도 시행 초반인 아직까지는 혼란이 있다”며 아쉬워했다. 여당 소속이라고 해서 ‘봐주기식 국감’은 없다. 지난주 한국수력원자력의 고리원전 현장 시찰 때는 직접 카메라를 대동해 원전 구석구석을 촬영한 뒤 “주 제어실을 비롯해 국가 핵심 보안시설인 원전의 보안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고 질타했다. 한수원이 “최근 3년간 사내 보안규정 위반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답변 자료를 보낸 데 대해 허를 찌른 것이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새정치연 우상호 의원… 과학기술 인프라 부실운영 비판 “2조 776억원에 해당하는 과학기술 연구 인프라가 부실 운영 관리되고 있다. 정부가 이를 파악했는데도 징계도 없고 눈먼 돈이 되고 있다. 종합대책을 세워서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보고해 달라.” 13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우상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제출받은 국가 연구시설 장비 관리실태 조사 문건을 공개하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354개 기관(5만 7000여점)중 146개 기관이 관리점수 평균 60점 이하(100점 만점 기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 의원은 “하지만 미래부는 실태 조사 결과를 2015년 장비구입 예산 심사에 반영하지도 않았다”며 “관리부실 기관에 개선 권고 공문만 달랑 보내는 등 솜방망이 행정 조치를 했다”고 비판했다. 우 의원은 이날 삼성전자와 LG유플러스가 단말기 출고가격, 소비자가격 등을 협의한 내부 문건을 공개하며 제조사와 이동통신사 간 담합 구조를 지적하기도 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산성(하)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산성(하)

    북한산성은 신라, 고구려, 백제, 고려, 조선 등 5개 나라의 역사가 공존하는 곳이다. 북한산성의 역사는 기원전 1세기 무렵 한성백제가 수도 방위를 목적으로 토성을 쌓으면서 비롯됐다. 132년 백제 개루왕이 산성을 쌓아 북진의 기치를 높이 올렸으나,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점령하여 남진의 발판으로 삼았고, 551년 신라 진흥왕이 차지하여 통일의 기틀을 다졌다. 1387년 고려 우왕이 중흥산성을 쌓았다. 한강을 차지하는 나라가 한반도의 패권을 장악한 것이 우리 전쟁사이다. 한반도의 목구멍(咽喉)에 해당하는 이 지역을 차지하려는 각축의 역사를 웅변하는 것이 북한산 비봉의 진흥왕 순수비이다. ‘순수’(巡狩)란 천자가 제후의 봉지(封地)를 직접 순회하면서 현지의 통치상황을 보고받는 의례이며 순행(巡行)이란 용어가 일반적이다. 순수비란 순수를 기념해 세운 비석인데, 진흥왕 순수비의 비문 속에 나타나는 ‘순수관경’(巡狩管境)이란 구절에서 따왔다. 진흥왕은 가야 병합, 한강 유역 확보, 함경도 해안지방 진출 등 왕성한 대외정복사업을 기념하고자 4곳의 비석을 세웠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 산 3번지 북한산 비봉 정상이 순수비가 서 있던 자리이다. 큰 비석이 있다고 해서 비봉(碑峰)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순수비는 함경남도 마운령비와 황초령비, 경상남도 창녕비와 더불어 진흥왕 재위 말인 568년부터 576년 사이에 세워졌다. 1972년 옮겨질 때까지 최소 1400년 동안 한강과 서울시내를 내려다보며 풍상을 겪었다. 이 비석의 정체는 건립 1200여 년 후인 1816년에야 밝혀졌다. 추사 김정희였다. 추사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학자로 서예가, 화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실은 우리나라 금석학의 개조(開祖)였다. 실용학문을 연구하라는 스승 박제가와 박지원의 가르침을 좇아 금석학과 문자학, 음운학, 지리학, 천문학 등을 두루 연구했다. 그때까지 이 비석은 ‘고려 태조 비’ ‘도선국사 비’ ‘무학대사 비’ 등으로 잘못 알려졌었다. 황초령비와 북한산비의 비문을 고증한 ‘진흥이비고’(眞興二碑攷)에서 추사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는 지금 경도(한양)의 북쪽으로 20리쯤 되는 북한산 승가사 곁의 비봉 위에 있다. 길이는 6척 2촌 3푼(154cm)이고 너비는 3척(71cm)이며 두께는 7촌(16cm )이다. 비문은 모두 12행인데 글자가 모호하여 매 행 몇 자씩을 분별할 수 없다.…이 비문에 연월(年月)이 마멸되어 어느 해에 세워졌는지 모르겠다.…그래서 마침내 이 비를 진흥왕의 고비(古碑)로 단정하고 보니, 1200년이 지난 고적이 일조에 크게 밝혀져서 무학의 비(無學之碑)라고 하는 황당무계한 설이 변파(辨破)되었다”라고 적었다. 북한산비는 1200년 만에 주인을 찾았다. 추사는 비석 왼쪽 측면에 ‘두 번 와서 비의 글을 읽었다’라는 내용의 글을 손수 새겼다. 순수비는 1934년 국보 제3호로 지정됐다. 1400년 역사에다 추사의 글씨까지 더해지니 ‘국보 중의 국보’가 아닐 수 없다. 이를 국보 1호가 아니라 3호로 정한 일제의 간사함에 치가 떨린다. 문화적 열등감의 발호였으리라. 숭례문이 2008년 소실되고서 국보 1호 재지정 논란이 일 때마다 ‘국보의 번호는 관리번호일 뿐 가치의 순서와는 무관하다’고 변명하는 우리 문화재 당국의 순진함도 못마땅하기는 매한가지다. 추사는 비석을 발견했을 때 덮개돌이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고 적었지만 사라졌고, 한국전쟁 때 총알 세례를 받아 탄흔이 선연하다. 언제인지 모르게 몸돌 위쪽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하게 잘렸고, 오른쪽 아래 귀퉁이는 뭉텅 떨어져 나갔다. 1972년 일단 경복궁 근정전 회랑에 옮겨 보존하다가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2006년 10월 그 자리에 복제비를 세웠다.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탕춘대성 그리고 남한산성과 강화성이 서울을 지키는 대표적인 성곽이다. 우리나라에는 3000개에 이르는 산성이 있고, 2000년의 역사를 가진 기원전의 고대 도시 서울주변엔 숱한 성곽의 유허가 존재하지만, 규모나 형태면에서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 성곽이 서울을 제대로 지켰나’라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북한산성은 왜 쌓았을까. 한양도성의 북쪽 외곽 방어막인 북한산성과 탕춘대성은 단 한번도 서울을 사수하지 못했다. 서울을 남쪽에서 보호하는 남한산성이나 강화성과 달리 외적의 침입 때마다 무용지물이었다. 한양도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추풍낙엽으로 무너졌고, 두 번의 반정(중종과 인조) 과 이괄의 난 때도 맥없이 뚫렸다. 한국전쟁 때 창동~미아리 전선을 형성했지만 서울사수의 최후 방어선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권력자는 북쪽 외곽 방어선 축조에 집착했다. 고려의 영향이 컸다. 거란족과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태조 왕건의 관을 옮겨둔 오래된 피란처였고, 1232년 몽골 군과 격전을 치렀으며, 최영 장군의 전공이 있다는 점에서 경복궁의 뒤를 지키는 산성의 필요성을 느꼈다. 성을 지키려면 곡성(曲城)과 돈대(墩臺) 그리고 해자(垓子)가 필요하다. 한양도성은 방어용 성이 아니었다. 임진, 병자 양란에서 경험하였듯이 군사적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도성은 넓고 커서 지키기 어렵다고 여겼다. 도성의 축조가 당초에 성을 지킬 계책에서 나온 것이 아니므로 원래 견고하지 못하였다. 지금 만일 개축한다면 몰라도 수축만 하게 한다면 나을 것이 없을 듯하다”라는 숙종의 고변이 비변사등록에 남아있다. 조선 왕들에게 성곽은 국가 권위와 통치의 표상이었다. 외적을 방어하는 국력의 표현이기에 앞서 내부의 적대세력을 물리치는 대내용이었다. 숙종은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 등 3군문에서 구역을 나눠 성을 쌓게 했다. 축조공사는 불과 6개월 만에 끝났다. 북한산성의 넓이는 49만㎡로 한양도성의 14만㎡보다 3배 이상 넓다. 왕이 집무를 볼 수 있도록 1만㎡에 124칸의 행궁을 지었다. 2만 6000섬의 군량미를 확보하고, 저수지 26개와 우물 99개를 팠다. 인수봉~백운대~만경대~용암봉~시단봉~보현봉~문수봉~나한봉~용혈봉~미륵봉(의상봉)~원효봉~영취봉 같은 험한 봉우리를 이어 구축한 포곡식 산성이다. 숙종은 몸소 시단봉 동장대에 올라 9.73km에 이르는 산성의 위용을 만끽했다. 그러나 이때 지은 성곽과 행궁은 1915년 대홍수 때 대부분 떠내려갔다. 이중환은 ‘택리지‘ 팔도총론 경기편에서 도성과 산성에 관해 여러 차례 의견을 피력했다. “비록 산세를 따라 성을 쌓은 것이나 정동방과 서남쪽이 낮고 허하다. 또 성 위에 작은 담을 쌓지 않았고, 해자도 파지 않았다. 그래서 임진년과 병자년의 두 난리 때 모두 지켜내지 못했다”라고 한양도성의 가치를 깎아내렸다. 북한산성에 대해서도 “숙종 때 조정에서 도성을 고쳐 쌓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동쪽이 너무 낮아서 만약에 강을 막아 그 물을 성에다 댄다면 성 안 백성은 모두 물고기 신세’라는 말이 있어 그 논의는 중지되고 말았다”라고 언급했다. 숙종 재위 기간 내내 이어진 산성 축조 논쟁을 지적한 말이다. 북한산성 축조가 처음 논의된 1675년부터 완공된 1711년까지 무려 36년을 끈 북한산성 축조논쟁을 비꼰 것이다. “도성을 버리고 북한산성으로 가는 것이 과연 옳은 전략인가” “북한산성을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겠는가” “북한산성은 험준하여 지키기는 좋지만 도성민을 수용하기는 좁지 않은가” “물자와 인력이 부족하니 강화성이나 남한산성 둘 중 하나는 포기하는 게 옳다” 등의 온갖 논의가 난무했다. 찬반의 논리는 단순했다. 찬성론자들은 유사시 왕이 피할 곳이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였고, 반대론자들은 병자호란 때 청과 맺은 정축조약의 ‘성곽을 수축할 수 없다’라는 조항을 위배해선 안 된다면서 맞섰다. 숙종이 북한산성을 짓기로 용단을 내린 것은 1710년 청으로부터 날라온 한 장의 외교문서가 결정적이었다. ‘왜구의 노략질이 심하니 연해 지방의 방어에 유의하라’는 문서가 성곽수축 금지조항을 해제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반대논리를 잃자 축성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청화자 이중환은 비판적이다. “도성에서 서쪽으로 5리를 가면 사현(무악재)이 되고, 그 고개를 넘으면 녹번현이 있다. 당나라 장수가 여기를 지나면서 ‘한 사람이 관문을 막으면 만 사람이라도 열 수 없겠다’하였다고 한다. 또 서쪽으로 40리를 가면 벽제령인데 임진년 왜란 때 이여송이 패한 곳이다. 고개 두 곳과 벽제령은 모두 관문을 설치할 만한 곳이다. …천연적인 험한 곳을 버리는 것이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벽제령에서 남쪽으로 40리를 가면 임진나루터이다.…아주 험하게 되어 있으니 참으로 지킬 만한 곳이다”라고 대안까지 제시했다. 소용도 없는 도성과 산성을 짓는다고 백성을 달달 볶거나 세금을 축내지 말고 지킬 만한 곳을 찾아서 지키라는 주장이었다. 천 번 만 번 지당한 말씀이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그리스 유적서 ‘거대 모자이크’ 발굴…알렉산더대왕 측근 추정

    그리스 유적서 ‘거대 모자이크’ 발굴…알렉산더대왕 측근 추정

    그리스에서 가장 큰 고대 매장지에서 이륜전차를 모는 남성을 그린 거대 모자이크 작품이 발굴됐다고 AFP통신 등 외신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지역의 암피폴리스에 있는 유적에서 발굴된 이 작품은 월계수 잎으로 된 왕관을 쓴 수염을 기른 남성이 백마 두 마리가 끄는 이륜전차를 몰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흰색, 검정, 파랑, 빨강, 노랑, 회색 등의 작은 조각이 사용됐다고 그리스 문화부는 설명했다. 전차 앞에는 고대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전령의 신인 헤르메스도 그려져 있다. 이 유적에서 가장 큰 이 모자이크는 세로 4.5m, 가로 3m의 크기로 발굴 작업이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모자이크가 제작된 시대는 기원전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고학자들은 지난 8월 초 고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거대 매장지의 발굴 작업을 했다. 이 유적에 묻힌 인물은 알렉산더대왕의 아내인 록산느이거나 어머니인 올림피아스 등 대왕의 측근 중에 한 사람일 것이라는 다양한 추측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이슈&이슈] 삼척 원전 주민투표 85% “철회”… 향후 전망은

    [이슈&이슈] 삼척 원전 주민투표 85% “철회”… 향후 전망은

    강원 삼척시가 실시한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는 유치 반대로 결론 났지만 정부와의 갈등이 예고되는 등 여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삼척시는 지난 9일 원자력발전소 유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해 투표 참여자 2만 8867명 가운데 2만 4531명(84.97%)이 원전 유치에 반대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시는 시민들의 의사를 충분히 확인한 만큼 정부로부터 원전 유치 철회를 이끌어 낼 작정이다. 우선 정부를 설득해 원전 예정 고시지역 철회와 전원(電源) 개발사업 예정구역 지정고시 해제를 신청할 예정이다. 김양호 삼척시장은 “원전 유치 과정에서 주민 서명이 허위 조작됐다는 의혹이 최근 불거졌고 이번 투표를 통해서도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나타난 만큼 연말까지 원전을 백지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정부에서도 삼척시민들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삼척 원전 백지화 절차를 서둘러 철회하거나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시장은 한발 더 나가 “정부에서 원전 예정구역 지정고시를 철회해 주면 2020년까지 8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200㎿ 규모의 태양광발전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라며 정부를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주민투표 이전부터 “원전 시설의 입지·건설에 관한 사항은 관련법상 국가 사무로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삼척시선거관리위원회도 “주민투표법 제7조에 따라 국가 사무인 원전 유치 신청 철회는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다”며 위탁사무를 맡지 않았다. 결국 원전 찬반 주민투표는 시민들 스스로 만든 주민투표관리위가 주관, 자체 투표인명부를 만들어 투표를 진행했다. 산업부는 주민투표가 끝난 뒤에도 “적법한 절차를 거쳐 추진하는 국가 사무에 주민 찬반투표가 이뤄져 유감”이라며 “원전 건설에 법적 하자가 없는 만큼 주민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원전에 대한 우려가 큰 만큼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투명하게 의사결정을 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처럼 정부가 반대하고 배제된 주민투표 결과를 놓고 삼척시가 정부를 설득하기가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당장 13일에는 전·현직 삼척시장이 국회 국정감사에 나란히 출석해 원전 유치 과정을 놓고 설전을 벌일 전망이다. 인구 7만 4000명 규모의 중소도시 삼척에서 원전 논란이 불거진 것은 처음이 아니다. 삼척시민들은 1991년 정부에서 삼척 덕산지구에 원전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된 뒤 7년 동안 반대 투쟁을 벌여 1998년 12월 원전 계획을 백지화한 전례가 있다. 이광우 시의원은 “이번 주민투표 결과를 정부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1990년대 원전 반대투쟁 때보다 더 심각한 반발이 따를 것”이라면서 “정부에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 주길 시민들은 기대한다”고 정부를 압박했다. 이번 찬반 주민투표까지 이어진 삼척 원전 추진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낙후된 지역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며 시가 당시 원전 유치 동의안을 시의회에 제출하고 의회에서 가결되면서 본격화됐다. 정부의 제7차 에너지 수급 계획에 따라 2030년까지 1500㎿급 가압경수로형 원자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에 따랐다. 이후 한국수력원자력에 신규 원전 건설부지 유치신청서를 제출하고 시민들을 상대로 원전 유치 서명운동까지 벌여 마침내 이듬해 12월 경북 영덕군과 함께 한수원으로부터 원전 후보지로 선정됐다. 김대수 전 시장이 에너지 중심 도시를 표방하며 펼친 사업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발생하면서 시민들의 여론은 급격히 원전 반대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강원도는 원전 후보지 결정에 유감을 표명했고, 비록 법원에서 기각됐지만 원전을 반대하는 일부 시민들은 원전 공사 중지 가처분 소송까지 벌였다. 6·4 지방선거에선 원전 유치 찬반이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선거 결과 원전을 추진하던 김대수 전 시장은 낙마하고 원전 반대를 주장하던 김양호 시장이 당선되면서 원전 반대운동이 힘을 얻었다. 김양호 시장은 발 빠르게 원전 유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 동의안을 시의회에 제출해 가결시킨 뒤 투표를 실시, 정부를 상대로 설득할 발판을 마련했다. 김양호 시장은 “올해 말로 예정된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확정되기 전에 반드시 원전 건설 예정 부지 지정고시 철회를 이끌어 내겠다”며 주민투표를 했다. 최근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지역구가 삼척인 이이재 새누리당 의원, 삼척시와 인접한 강릉·동해시 등도 원전 반대운동에 가세했다. 주민투표는 원전 유치 반대로 일단락됐지만 주민들의 원천 유치반대 목소리는 더 커졌다. 벌써 정부를 상대로 시민궐기대회 등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등 주민투표 이전보다 긴장감은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 원전에 반대하는 일부 시민들은 정부와 국회 농성 등 대정부 투쟁까지 거론하고 있다. 마을마다 여전히 원전 반대를 주장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원전 예정 부지인 대진 지역에서 3㎞쯤 떨어진 근덕면 네거리에도 ‘핵 발전소 몰아내자’, ‘핵으로부터 청정 동해안을 지키자’ 등 지역 단체들이 내건 반핵 현수막 수십 개가 거리를 메우고 있다.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보니 지나다니는 사람보다 현수막 수가 더 많을 정도다. 원전 예정지인 근덕마을에서 평생 살았다는 농민 이모(73)씨는 “2년 전에도 핵 발전소는 절대 안 된다는 의견이 더 많았는데 삼척시가 서명부를 편법으로 작성하면서까지 핵 발전소를 밀어붙여 일이 여기까지 왔다”면서 “발전소를 건설할 돈으로 차라리 대형 관광단지나 항만을 건설하는 게 주민들을 위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원전 반대 시민들은 그동안 ‘안전이 우선 되지 않는 원전 유치는 안 된다’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원전 반대를 위해 수차례 궐기대회도 갖고 김대수 전 시장의 소환 활동도 펼쳤다. 3년 넘게 1인 시위와 촛불시위도 이어왔고 반대 단체와 시민들이 모여 ‘3보 1배 행진’도 했다. 김대호(60) 근덕면 원전반대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처럼 원전의 안전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면서 “주민투표를 통해 시민들의 뜻이 원전 반대로 나온 이상 정부에서는 삼척 원전을 반드시 백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투표에 응하지 않는 등 말 없는 찬성 쪽 시민들도 상당수 있다. 찬성 쪽은 어려운 지역경제를 살리려면 원자력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거점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에서 계획하는 1500㎿급 원자력발전소 4~6기(사업비 24조원)가 가동되는 67년 동안 해마다 800억~1000억원씩 모두 6조 2000억원의 지원금이 지역을 살리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며 시민들의 분열된 의견을 아쉬워했다. 원전이 삼척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지역에서 고립될까 자신의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익명을 요구한 50대 시민은 “새 시장 취임 뒤 원전 건설에 찬성하는 쪽은 말을 꺼낼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상당수가 투표장에 나가지 않는 방식으로 의사표현을 했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김모(48)씨는 “발전소가 들어와야 인구가 늘고 상권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는 자영업자들도 많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연우(63) 원자력산업유치협의회 공동대표는 “한때 석탄과 시멘트 생산단지로 34만명의 인구와 경제력을 자랑하던 삼척이 이제는 7만 4000명 수준의 퇴락하는 도시로 변했다”면서 “원자력을 바탕으로 한 막대한 정부 지원과 고용창출로 삼척이 새로운 도약의 원동력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소방방재산업단지로 시작된 근덕면 대진 지역(부남·동막리) 일대 317만 8292㎡의 원전 부지가 태양광발전단지로 변신에 성공할지, 주민투표가 원전 반대로 끝났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침묵하는 찬성 쪽 시민들과 ‘원전은 적법한 절차를 거친 국가 사무’임을 주장하는 정부를 설득해야 하는 삼척시의 행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삼척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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