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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퍼트 美대사 습격 김기종 1심 12년刑

    마크 리퍼트(42) 주한 미국대사를 흉기로 습격해 구속기소된 김기종(56)씨가 1심 재판에서 징역 12년을 받았다. 법원은 살인미수 부분은 유죄로 인정했지만 국가보안법 위반은 무죄로 판단했다. 검찰은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부장 김동아)는 11일 살인미수, 외국사절 폭행, 업무방해,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 대해 “미필적으로나마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며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안면부 열상 1~2㎝ 아래 경동맥이 있어 사망에 이를 수 있었다”며 “왼팔의 관통상의 공격방향도 얼굴이나 몸 혹은 가슴 쪽이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보법 위반 부분은 “김씨의 전력과 활동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부정하거나 북한의 주장을 추종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무죄로 봤다. 보관하고 있던 북한 원전 서적 등 이적성 문건과 이메일도 전체 서적과 이메일의 양에 비춰보면 비중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지난 3월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 조찬 강연회에서 리퍼트 대사의 얼굴과 왼쪽 팔뚝 등을 과도로 찌르고 현장에서 붙잡혔다. 리퍼트 대사는 병원에서 얼굴 상처를 80바늘 꿰매고 왼쪽 팔에 수술을 받고 퇴원했다. 앞서 검찰은 김씨에게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5년을 구형했다. 선고 직후 검찰은 “국보법 위반 혐의 무죄와 양형에 대해 2심 판단을 받겠다”며 항소 입장을 밝혔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날개 단 아베 독주… ‘집단자위권 법안’ 다음주 강행 처리

    날개 단 아베 독주… ‘집단자위권 법안’ 다음주 강행 처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8일 임기 3년의 집권 자민당 총재에 연임됨에 따라 장기 집권의 길에 들어섰다. 자민당은 이날 총재 선거를 공시했으나 다른 입후보자가 없어 아베 총리가 무투표로 당선됐다. 자민당 총재 무투표 당선은 2001년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이래 14년 만이다. 이로써 아베 총리는 첫 집권 직후인 2006년 10월 자민당 총재로 취임한 뒤 3선 연임에 성공하게 됐다. 그가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을 확정한 것은 당내 기반이 견고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런 점으로 미뤄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이 전망된다. 내각제를 채택한 일본에선 집권당 당수가 총리가 되는 까닭에 아베 총리는 총재 재선으로 총리직을 3년 동안 더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확보했다. 아베 총리는 다음달 초 개각과 당3역 등 간부진 교체 등의 인사를 단행할 계획이다. 새 총재 임기는 다음달 1일부터 3년간이다. 그는 집권 2년 8개월째여서 자민당 총재 임기 종료 시기인 2018년까지 하면 2001년 4월부터 5년 5개월 동안 집권한 고이즈미 전 총리를 넘어서는 장기 집권이 가능하다. 당장 현안은 참의원에 계류 중인 ‘집단자위권 법안’(안보 법안)의 처리다. 자민당은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오는 16일쯤 참의원에서 통과시키겠다”는 강행 처리 입장을 보였다. 아베 총리는 장기 집권의 발판이 된 양적 완화와 엔저를 기반으로 한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다지면서 “필생의 업”이라고 공언한 헌법 개정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대미 안보동맹 강화를 축으로 주변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한 외교 관계 안정화를 겨냥하고 있다. 10월 말에서 11월 초 한국에서 열릴 한·중·일 정상회담과 한·일 첫 정상회담을 통한 관계 정상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아베의 장기 집권과 헌법 개정을 위한 첫 관문은 내년 7월 상원 격인 참의원 선거 결과에 달려 있다. 크게 이겨 개헌 지지 세력을 개헌안 발의 정족수인 양원 각각 3분의2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는 구도를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참의원에서 자민당은 정원인 242명의 절반에 못 미치는 115명을 확보하고 있다. 중의원에서는 전체 의원 475명의 절반이 넘는 291명을 자민당이 확보한 상태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35명을 합치면 개헌에 필요한 3분의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해 놓고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앞길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다음주로 예정된 안보 법안 법제화 강행 처리 과정에서 국민 여론과 야당의 반발을 무시하는 ‘일방통행식’ 정치 행태에 대한 비판 여론을 넘어서야 한다. 지난달 30일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12만명이 넘는 시위대가 국회의사당 도로와 주변을 점거하는 등 ‘반(反)아베 운동’이 뜨겁다. 아베의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아베노믹스도 중국발 불안 등으로 흔들거리고 있다. 최근 중국 경제 침체가 바로 국제적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는 엔화 강세를 가져오고, 일본 수출 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주식 하락세로 이어지고 있어 엔저와 수출 확대를 중심으로 한 아베노믹스의 앞길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재정 적자 보완책의 일환으로 소비세를 8%에서 10%로 올리는 2차 인상 단행일인 2017년 4월도 다가오고 있어 서민들의 반발도 정권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원전 재가동,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 등도 아베의 장기 집권 가도에 입을 턱 벌리고 지키고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IAEA 원자력발전국장에 한도희 박사

    IAEA 원자력발전국장에 한도희 박사

    한도희(59)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원자력발전국장으로 선임됐다고 미래창조과학부가 8일 밝혔다. IAEA 원자력발전국은 원전 도입부터 혁신형 원자로 개발까지 원자력 발전에 관한 기술 사안을 총괄하는 부서다.
  • 한수원 “삼척에 원자력발전소 유치 어려울 듯”

    주민투표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원자력발전소 예정 부지 철회를 요구해 왔던 강원 삼척시가 원전 신규 건설 예정 지역에서 빠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원전 부지 선정에 대한 정부 결정이 번복될 경우 향후 국가 정책 수립에 관한 지역 갈등 확산과 사회적 비용 낭비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삼척에는 원전 유치가 어려울 것 같다”면서 “지방자치단체(삼척시)에서 강하게 반대하고 있고 (원전 유치에 따른) 지원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수원은 토지보상공고를 하지 않은 상태다. 이 관계자는 정책적으로 결정된 원전 예정 부지가 철회 논란 등 난항을 겪는 데 대해 “(원전 부지 선정에 관한) 정책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삼척은 2010년 12월 경북 영덕군과 함께 원전 유치를 신청해 한수원 부지선정위원회의 평가를 거쳐 2011년 12월 후보 부지로 선정됐으며 2012년 9월 원전 신규 건설 예정 지역으로 지정 고시됐다. 한수원은 영덕에 남은 원전이 유치될 것으로 봤다. 삼척시가 진행한 지난해 10월 주민투표에서 삼척 주민 85.6%는 원전 유치에 반대표를 던졌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고 전했다. 한편 한수원은 오는 10월 아랍에미리트(UAE)와 2009년 12월 수주한 20조원 규모의 원전 4기 운영을 위한 인력 공급 계약을 체결한다고 밝혔다. 한국이 해외 원전을 짓고 운영까지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인당 연봉은 체재비 등을 포함해 최소 2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부터 2030년까지 10년간 운영될 원전 1기의 지원 인력은 200명으로 총 800명 규모가 될 것이라고 한수원은 설명했다. 이번 원전 운영지원 계약(OSSA) 규모는 최소 10억 달러(약 1조 200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한수원 관계자는 “원전 건설비 20조원 수주외에도 인력 지원 등 일자리 창출을 포함한 직간접적 경제 효과는 수백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워싱턴 스테이크 쿠거스 치어리더들의 “광적인 포퍼먼스...그런데 승부는..”

    워싱턴 스테이크 쿠거스 치어리더들의 “광적인 포퍼먼스...그런데 승부는..”

    5일(현지시간) 미국 위싱턴 풀만(Pullman)에 위치한 마틴(Matain) 스타디움에서 열린 워싱턴 스테이트 쿠거스(Cougars)와 포틀랜드 스테이트 바이킹(Vikings)과의 경기에서 쿠거스 치어리더들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포틀랜드 스테이트가 위싱턴을 24대 17로 이겼다. ⓒ AFPBBNews=News1/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왜곡·오류 넘치는 검인정 역사교과서

    왜곡·오류 넘치는 검인정 역사교과서

    위험한 역사시간/이주한 지음/인문서원/416쪽/1만 8000원 역사 교과서가 위태롭다. 정부여당 대표는 최근 국회 대표연설에서 “중립적인 시각을 갖춘 국정 역사 교과서 도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황우여 교육부총리는 “교실에서부터 역사에 의해 국민이 분열되지 않도록 역사를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고 맞장구쳤다. 지난 7월 22일 열린 고위 당·정·청 회동에서 이미 국정교과서 문제를 의제로 다뤘다. 반면 서울대 역사 관련 교수들은 “똑같은 역사 교재로 전국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역사적 상상력과 문화 창조 역량을 크게 위축시키고 민주주의는 물론, 경제발전에도 장애를 초래할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교과서 국정화는 유신시대인 1973년 시작해 2001년에 사라졌다. 교육부는 이달 말까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전환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역사에 대한 접근 및 사유의 방법을 획일화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역사 왜곡을 초래한다. 이 책은 국정교과서 이전 현재 검인정 역사교과서조차 역사적 사실과 고고학적 증거를 외면하는 등 역사 왜곡과 폄훼가 심각하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고대사를 중심으로 역사의 시간과 공간을 나눠 검인정 교과서, 그리고 교과서 지은이들이 쓴 다른 책까지 낱낱이 해부하며 사관(史觀)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책이 대표적으로 이야기하는 역사 왜곡의 대표적 사례는 한반도 청동기의 시기 규정이다. 기원전 15~30세기까지 올라가는 수많은 고고학 유물과 유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과서들은 일률적으로 기원전 10세기 무렵으로 서술한다. 또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가 고조선이 아니고 위만국(교과서는 위만조선으로 표기)인 이유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제왕운기’ 등의 기록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 바탕에는 일본의 사서와 ‘삼국사기’ 등의 기록이 불일치하면 일본의 사료에 더 신뢰를 보내면서 나타난 결과이고, ‘단군조선 부정하기’, ‘임나일본부설 조작’ 등을 위한 식민사학의 영향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자칫 ‘국수주의’, ‘재야사학’ 프레임으로 읽히기 십상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사료에 근거한 역사적 사실 관계조차 외면당하는 현실에 대해 주장이 아닌, 더욱 구체적인 사료들로 대응한다. 단재 신채호는 1908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했던 ‘독사신론’에서 “현재 각 학교의 교과용 역사책을 살펴보니 가치가 있는 역사책은 거의 없다”고 일갈했다. 2015년 9월 100년 남짓 전의 한탄이 더 심각하게 반복될 위기에 놓여 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빙하는 흐른다…발길을 홀린다

    빙하는 흐른다…발길을 홀린다

    스위스가 새 여행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스위스 그랜드 투어’다. 스위스 전역을 연결하는 이 루트는 무려 1600여㎞에 이르는 대장정이다. 숨 막히도록 빼어난 자연과 옛사람들이 척박한 땅에 일궈 놓은 삶의 풍경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그 가운데 비교적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했던 스위스 남녘 곳곳을 훑었다.스위스는 철도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다. 어지간한 곳까지 마을버스처럼 기차가 들어간다. 여행지가 어느 산골에 있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한데 풍경은 ‘타이밍의 예술’일 때가 많다. 계절적으로도 그렇고 하루 중에도 그렇다. 반드시 아침이나 저녁에 가야 하는 곳이 있다. 하지만 기차로는 원하는 곳에 제 시간에 닿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미리 가 있어야 하는데, 여러 곳을 바삐 움직여야 하는 여행자로서는 불만일 수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떠오른 게 자동차와 오토바이다. 스위스의 매력은 도시보다 바깥에 있다. 푸른 초원, 수정 같은 호수, 빙하와 만년설로 뒤덮인 험산을 찾아 구불구불 알프스의 고갯길을 달려야 제맛이다. 그랜드 투어의 핵심이 여기 있다. 핸들 잡은 운전자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가라는 것이다. 스위스정부관광청이 올해와 내년을 ‘그랜드 투어의 해’로 정한 것도 이런 이유다. 스위스 그랜드 투어의 총길이는 1643㎞다. 길을 새로 낸 건 아니고 여행자의 일정에 맞도록 스위스관광청에서 동선을 최적화했다. 이 길을 달리면 문화가 전혀 다른 4개 언어권을 지난다. 길 주변에는 44개의 명소가 있고 11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도 있다. 물론 안전 운전은 필수다. 그림 같은 절경을 보느라 ‘전방 주시 태만’해서는 곤란하니 말이다. 부디 운전대 꽉 잡으시라. 이번 여정에선 로잔을 들머리 삼았다. 취리히에서 곧장 남쪽으로 내달아 오른쪽으로 도는 코스를 돌아 보기로 했다. 이 길의 핵심은 태고의 정적이 흐르는 빙하 따라 걷기와 자연에 깃든 선인들의 체온을 느끼며 걷는 포도밭 하이킹이다. 빙하는 우리나라에서 전혀 볼 수 없는 자연환경이다. 알레치 빙하를 여정의 가장 앞줄에 세우려는 건 그런 까닭이다. 알레치 빙하의 제원을 먼저 살피자. 길이 22㎞로 유럽에서 가장 길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도 등재돼 있다. 6만 년 전쯤 생성된 지형이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평가를 받고 있어서다. 빙하 아래 가장 깊은 곳은 무려 900m에 달한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빙하 트레킹을 즐기다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라도 만나면 어찌 될까. 모골이 송연해진다. 실제로 빙하는 매우 위험한 자연이다. 전망대에서 편하게 감상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알레치 빙하의 무게는 270억t에 달한다고 한다. 이 빙하가 다 녹을 경우 전 세계 인구가 6년 동안 마실 수 있는 양의 물이 된다. 지구 온난화 등 환경 변화로 빙하의 양은 지금도 꾸준히 줄고 있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현재 진행된 대기오염은 약 30년 뒤부터 빙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한다. 대기오염이 지금처럼 이어진다면 2100년쯤 알레치 빙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인다. 빙하를 따라 트레킹을 즐길 수 있도록 등산로가 조성돼 있다. 빙하 위를 걷는 건 아니고 산정에서 빙하를 따라 내려가는, 이른바 다운 힐을 즐기기 맞춤한 코스다. 길도 험하지 않다. 등산화만 갖춰 신는다면 복장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길은 수월해도 둘러친 풍경은 정말 대단하다. 아름답다거나 빼어나다는 수사보다 장엄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해 보인다. 들머리는 베트머알프 마을이다. 해발 4000m를 넘나드는 고봉들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산골 마을이다. 맹장 아래 약졸 없다던가. 마을의 높이도 만만치 않다. 해발 1950m다. 지리산 천왕봉(1915m)보다 높다. 걸어 오르기는 일정상 어렵고, 아래쪽 베텐 기차역에서 케이블카로 올라야 한다. 알레치 빙하를 굽어볼 수 있는 베트머호른 전망대까지 가려면 다시 리프트를 타야 한다. 등산로는 베트머호른 전망대 옆에서 시작된다. 거대한 빙하의 강을 오른쪽에 두고 비탈길을 내려간다. 부분적으로 암릉 구간이 있긴 하지만 그리 험하지는 않다. 볕은 따스하게 몸을 감싸고, 알프스의 맑은 산소 알갱이는 피부를 간질인다. 눈앞에는 엽서에서나 보던 알프스가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다. 길을 걷다 보면 짹짹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린다. 천적이 나타났을 때 마멋이 내는 일종의 경계음이다. 마멋은 베트머알프 일대에 서식하는 설치류다. 겨울 동면을 앞두고 부지런히 먹어 둬야 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사람의 발걸음이 꽤 신경 쓰이는 거다. 베트머알프 마을까지는 3시간 가까이 걸어야 한다. 그랜드 투어에선 모두 5개의 이름난 패스(고갯길)를 지난다. 그 가운데 험하고 멀기로 수위를 다투는 고갯길이 푸르카 패스다. 안내판에 적힌 사전적인 설명은 ‘글레치 마을과 안데르마트 마을을 잇는 고갯길’이다. 한데 굳이 목적지를 염두에 두고 찾을 필요는 없다. 푸르카 패스에 가는 것만으로도 운전의 맛과 보는 맛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푸르카 패스는 해발 2429m를 지나는 산악 도로다. 그랜드 투어 일정 중 가장 고도가 높다. 영화 007 시리즈 ‘골드핑거’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뱀이 똬리를 튼 것 같은 형상의 산악 도로를 따라 추격 장면을 찍었다. 발 밑으로는 천길 낭떠러지다. 이런 길이 10㎞ 정도 이어진다. 오르는 내내 아찔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차를 세우고 굽어보면 일망무제의 풍경에 또 한번 머리가 아득해진다. 현지 가이드는 푸르카 패스가 기원전부터 있었던 길이라고 했다. 험하고 돌투성이였던 길을 다듬어 1867년 첫 마차가 지나갔고, 1921년엔 차가 처음으로 이 길을 지났다고 한다. 산장 호텔 벨베데르는 쉬어 갈 겸 꼭 한번 들러볼 만하다. 호텔 주변 도로에 서면 마터호른 등 알프스의 영봉들을 굴비 꿰듯 죄다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푸르카 패스 맞은편은 그림젤 패스(2100m)다. 이 길도 만만찮게 험악하다. 푸르카 패스가 동서를 잇는다면 그림젤 패스는 남북을 연결한다. 길은 여름 시즌에만 운영된다. 우리처럼 ‘제설 작업’ 하며 오르내리는 수준의 길이 아니다. 고개 아래 글레치 마을은 푸르카 패스와 그림젤 패스가 교차하는 작은 산간 마을이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앞으로 론 빙하가 흘렀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와 반비례해 커진 것도 있다. 호수다. 론 빙하가 있던 산자락은 호수가 장악했다. 보기엔 예쁠지 몰라도 호수는 사실 ‘빙하의 눈물’이나 다름없다. 스위스 남부 곳곳을 적시며 흐르는 론 강도 여기서 발원한다. 작은 산간 마을인데도 어김없이 트레일은 조성돼 있다. 정말 ‘하이킹의 천국’답다. 이제 막 강으로서의 일생을 시작하는 우윳빛 론 강을 따라 자박자박 걷는 맛이 각별하다. 한적한 시골 마을 생모리스엔 마을 이름과 같은 수도원이 있다. 1500년 전에 세워진 건물로 추앙받는 선교자들을 위한 장소다. 중세 금세공업자들이 만든 걸작 성물 예술품 등 기독교의 보물도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원 정문엔 김대건 신부 등 한국의 순교자 이름도 한글로 적혀 있다. 수도원 중앙의 분수대는 주변 산에서 흘러 오는 맑은 물인 데다 성수로도 알려져 있으니 한 모금 마시고 나오는 것도 좋겠다. 니더발트는 작은 산간 마을이다. 샬레(오두막집) 스타일의 집들이 여태 남아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리츠 계열 호텔의 설립자인 세자르 리츠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글 사진 로잔·시에르(스위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빙하는 흐른다… 발길을 홀린다

    빙하는 흐른다… 발길을 홀린다

    스위스가 새 여행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스위스 그랜드 투어’다. 스위스 전역을 연결하는 이 루트는 무려 1600여㎞에 이르는 대장정이다. 숨 막히도록 빼어난 자연과 옛사람들이 척박한 땅에 일궈 놓은 삶의 풍경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그 가운데 비교적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했던 스위스 남녘 곳곳을 훑었다. 스위스는 철도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다. 어지간한 곳까지 마을버스처럼 기차가 들어간다. 여행지가 어느 산골에 있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한데 풍경은 ‘타이밍의 예술’일 때가 많다. 계절적으로도 그렇고 하루 중에도 그렇다. 반드시 아침이나 저녁에 가야 하는 곳이 있다. 하지만 기차로는 원하는 곳에 제 시간에 닿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미리 가 있어야 하는데, 여러 곳을 바삐 움직여야 하는 여행자로서는 불만일 수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떠오른 게 자동차와 오토바이다. 스위스의 매력은 도시보다 바깥에 있다. 푸른 초원, 수정 같은 호수, 빙하와 만년설로 뒤덮인 험산을 찾아 구불구불 알프스의 고갯길을 달려야 제맛이다. 그랜드 투어의 핵심이 여기 있다. 핸들 잡은 운전자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가라는 것이다. 스위스정부관광청이 올해와 내년을 ‘그랜드 투어의 해’로 정한 것도 이런 이유다. 스위스 그랜드 투어의 총길이는 1643㎞다. 길을 새로 낸 건 아니고 여행자의 일정에 맞도록 스위스관광청에서 동선을 최적화했다. 이 길을 달리면 문화가 전혀 다른 4개 언어권을 지난다. 길 주변에는 44개의 명소가 있고 11개의 유네스코 세계유산도 있다. 물론 안전 운전은 필수다. 그림 같은 절경을 보느라 ‘전방 주시 태만’해서는 곤란하니 말이다. 부디 운전대 꽉 잡으시라. 이번 여정에선 로잔을 들머리 삼았다. 취리히에서 곧장 남쪽으로 내달아 오른쪽으로 도는 코스를 돌아 보기로 했다. 이 길의 핵심은 태고의 정적이 흐르는 빙하 따라 걷기와 자연에 깃든 선인들의 체온을 느끼며 걷는 포도밭 하이킹이다. 빙하는 우리나라에서 전혀 볼 수 없는 자연환경이다. 알레치 빙하를 여정의 가장 앞줄에 세우려는 건 그런 까닭이다. 알레치 빙하의 제원을 먼저 살피자. 길이 22㎞로 유럽에서 가장 길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도 등재돼 있다. 6만 년 전쯤 생성된 지형이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평가를 받고 있어서다. 빙하 아래 가장 깊은 곳은 무려 900m에 달한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빙하 트레킹을 즐기다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라도 만나면 어찌 될까. 모골이 송연해진다. 실제로 빙하는 매우 위험한 자연이다. 전망대에서 편하게 감상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알레치 빙하의 무게는 270억t에 달한다고 한다. 이 빙하가 다 녹을 경우 전 세계 인구가 6년 동안 마실 수 있는 양의 물이 된다. 지구 온난화 등 환경 변화로 빙하의 양은 지금도 꾸준히 줄고 있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현재 진행된 대기오염은 약 30년 뒤부터 빙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한다. 대기오염이 지금처럼 이어진다면 2100년쯤 알레치 빙하는 완전히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인다. 빙하를 따라 트레킹을 즐길 수 있도록 등산로가 조성돼 있다. 빙하 위를 걷는 건 아니고 산정에서 빙하를 따라 내려가는, 이른바 다운 힐을 즐기기 맞춤한 코스다. 길도 험하지 않다. 등산화만 갖춰 신는다면 복장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길은 수월해도 둘러친 풍경은 정말 대단하다. 아름답다거나 빼어나다는 수사보다 장엄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해 보인다. 들머리는 베트머알프 마을이다. 해발 4000m를 넘나드는 고봉들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산골 마을이다. 맹장 아래 약졸 없다던가. 마을의 높이도 만만치 않다. 해발 1950m다. 지리산 천왕봉(1915m)보다 높다. 걸어 오르기는 일정상 어렵고, 아래쪽 베텐 기차역에서 케이블카로 올라야 한다. 알레치 빙하를 굽어볼 수 있는 베트머호른 전망대까지 가려면 다시 리프트를 타야 한다. 등산로는 베트머호른 전망대 옆에서 시작된다. 거대한 빙하의 강을 오른쪽에 두고 비탈길을 내려간다. 부분적으로 암릉 구간이 있긴 하지만 그리 험하지는 않다. 볕은 따스하게 몸을 감싸고, 알프스의 맑은 산소 알갱이는 피부를 간질인다. 눈앞에는 엽서에서나 보던 알프스가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다. 길을 걷다 보면 짹짹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린다. 천적이 나타났을 때 마멋이 내는 일종의 경계음이다. 마멋은 베트머알프 일대에 서식하는 설치류다. 겨울 동면을 앞두고 부지런히 먹어 둬야 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사람의 발걸음이 꽤 신경 쓰이는 거다. 베트머알프 마을까지는 3시간 가까이 걸어야 한다. 그랜드 투어에선 모두 5개의 이름난 패스(고갯길)를 지난다. 그 가운데 험하고 멀기로 수위를 다투는 고갯길이 푸르카 패스다. 안내판에 적힌 사전적인 설명은 ‘글레치 마을과 안데르마트 마을을 잇는 고갯길’이다. 한데 굳이 목적지를 염두에 두고 찾을 필요는 없다. 푸르카 패스에 가는 것만으로도 운전의 맛과 보는 맛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푸르카 패스는 해발 2429m를 지나는 산악 도로다. 그랜드 투어 일정 중 가장 고도가 높다. 영화 007 시리즈 ‘골드핑거’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뱀이 똬리를 튼 것 같은 형상의 산악 도로를 따라 추격 장면을 찍었다. 발 밑으로는 천길 낭떠러지다. 이런 길이 10㎞ 정도 이어진다. 오르는 내내 아찔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차를 세우고 굽어보면 일망무제의 풍경에 또 한번 머리가 아득해진다. 현지 가이드는 푸르카 패스가 기원전부터 있었던 길이라고 했다. 험하고 돌투성이였던 길을 다듬어 1867년 첫 마차가 지나갔고, 1921년엔 차가 처음으로 이 길을 지났다고 한다. 산장 호텔 벨베데르는 쉬어 갈 겸 꼭 한번 들러볼 만하다. 호텔 주변 도로에 서면 마터호른 등 알프스의 영봉들을 굴비 꿰듯 죄다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푸르카 패스 맞은편은 그림젤 패스(2100m)다. 이 길도 만만찮게 험악하다. 푸르카 패스가 동서를 잇는다면 그림젤 패스는 남북을 연결한다. 길은 여름 시즌에만 운영된다. 우리처럼 ‘제설 작업’ 하며 오르내리는 수준의 길이 아니다. 고개 아래 글레치 마을은 푸르카 패스와 그림젤 패스가 교차하는 작은 산간 마을이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앞으로 론 빙하가 흘렀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와 반비례해 커진 것도 있다. 호수다. 론 빙하가 있던 산자락은 호수가 장악했다. 보기엔 예쁠지 몰라도 호수는 사실 ‘빙하의 눈물’이나 다름없다. 스위스 남부 곳곳을 적시며 흐르는 론 강도 여기서 발원한다. 작은 산간 마을인데도 어김없이 트레일은 조성돼 있다. 정말 ‘하이킹의 천국’답다. 이제 막 강으로서의 일생을 시작하는 우윳빛 론 강을 따라 자박자박 걷는 맛이 각별하다. 한적한 시골 마을 생모리스엔 마을 이름과 같은 수도원이 있다. 1500년 전에 세워진 건물로 추앙받는 선교자들을 위한 장소다. 중세 금세공업자들이 만든 걸작 성물 예술품 등 기독교의 보물도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원 정문엔 김대건 신부 등 한국의 순교자 이름도 한글로 적혀 있다. 수도원 중앙의 분수대는 주변 산에서 흘러 오는 맑은 물인 데다 성수로도 알려져 있으니 한 모금 마시고 나오는 것도 좋겠다. 니더발트는 작은 산간 마을이다. 샬레(오두막집) 스타일의 집들이 여태 남아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리츠 계열 호텔의 설립자인 세자르 리츠가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글 사진 로잔·시에르(스위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순천만 국가정원 대한민국 제1호…입장료 50%할인한다

    순천만 국가정원 대한민국 제1호…입장료 50%할인한다

    순천만 국가정원전남 순천만정원이 대한민국 국가정원 1호인 순천만국가정원으로 공식 선포된다. 순천시는 5일 오후 5시 순천만정원 잔디광장에서 국무총리, 국회의원, 장관, 산림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정원 선포식을 개최한다.순천만국가정원 선포식은 생태·문화·정원이 새로운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는 것을 보여주고 우리나라 정원문화와 정원산업이 순천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리는 선언이다.국가정원으로 지정되면 정원을 가꾸고 보존하는 비용을 국가로부터 지원받게 된다. 무엇보다 제1호 국가정원 보유 도시로 브랜드 가치를 갖게 됨으로써 많은 사람이 순천만국가정원을 방문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것으로 순천시는 기대하고 있다.순천시는 국가정원 선포식을 한 이날 순천만정원을 무료로 관람하도록 했으며, 6일부터 11일까지 순천만국가정원 축하행사 주간으로 지정해 입장료를 50% 할인해 운영할 계획이다.이와 함께 5일부터 11일까지 순천시가 운영하는 주요 관광지인 순천만자연생태공원, 낙안읍성, 드라마촬영장, 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 순천자연휴양림의 입장료를 50% 할인한다.순천시는 수익 창출과 정원산업 활성화 육성 기능을 담당하는 정원지원센터를 2017년까지 건립할 계획이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中 전승절 열병식] 시진핑이 언급한 격언 속뜻은

    ●다모클레스의 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3일 열병식 기념식에서 언급한 다모클레스의 칼은 절박한 위험을 상징한다. 그리스신화에서 기원전 4세기 시칠리아 시라쿠사의 참주 디오니시오스2세의 측근 다모클레스가 왕의 자리에 앉아 위로 올려다보니 한 올의 말총에 매달린 칼이 다모클레스 머리 위로 드리워져 있었다는 데서 비롯됐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1961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인류는 핵이라는 다모클레스의 칼 아래 놓여 있다”며 핵전쟁의 위험을 강조하면서 인용한 적이 있다. ●미불유초 선극유종’(靡不有初 鮮克有終) 시 주석은 또 평화를 위한 세대 간의 노력을 강조하면서 미불유초 선극유종이란 격언을 인용했다. 이는 “처음은 누구나 노력하지만 끝까지 계속하는 사람은 적다”는 의미 즉,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을 잘 마무리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공자가 편찬한 시경에 나오는 구절로, 주나라가 번창을 이어가지 못하고 쇠퇴하는 현실을 한탄하면서 지은 시에서 유래한다. 조선 성종은 이를 침실에 써 두고 새겼다고 전한다.
  • 천일오토모빌 전시장에서 ‘재규어 XE’ 특별 시승!

    천일오토모빌 전시장에서 ‘재규어 XE’ 특별 시승!

    재규어 공식딜러 천일오토모빌(대표 박치현)가 영국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가 프리미엄 스포츠 세단 ‘재규어 XE’ 출시를 기념해 특별 시승 행사를 개최한다. 다이나믹하고 효율적인 스포츠 세단으로 젊은 고객층 사이에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재규어 XE’ 시승은 9월 5일(토) 천일오토모빌 수원 전시장을 시작으로 9월 6일(일) 강남전시장, 9월 13일(일) 대치전시장에서 가능하다. 이번 행사에는 재규어 XE 시승과 더불어 인터콘티넨탈 호텔 케이터링 및 커스터마이징 차량용 디퓨저 서비스가 제공되며, 행사 참가자 전원에게 재규어 우산을 증정한다. 이 밖에도 행사 당일 ‘재규어 XE’를 계약한 고객에게는 차량 출고시 재규어 골프백, 인터콘티넨탈 호텔 델리베스트 아이템 세트, 뷔페 기프트 카드 중 한 가지를 선물한다. 천일오토모빌 박치현 대표는 “국내에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프리미엄 스포츠 세단 시장에서 재규어 XE의 성공을 확신한다”며 “이번 행사에 많은 이들이 방문해 재규어 XE의 다이나믹한 승차감을 느껴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고 전했다. 재규어 XE 론칭 기념 시승행사 신청 및 자세한 내용은 천일오토모빌 강남전시장(02-539-7777), 대치전시장(080-007-1001), 수원전시장(031-235-1001)으로 문의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국 소형원자로 ‘스마트’ 수출 첫발

    한국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소형 원자로 ‘스마트’의 해외 수출을 위한 첫 발걸음을 뗐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사우디왕립원자력신재생에너지원이 스마트 원전 상세설계(PPE)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은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순방 기간 중 맺었던 스마트 원전 상용화를 위한 협정(MOU)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번 협약에 따라 앞으로 3년간 한국은 3000만 달러(약 353억원), 사우디는 1억 달러(약 1178억원)를 투자해 스마트 원전 상세설계를 공동으로 수행하고 사우디 현지 연구인력을 교육, 훈련할 계획이다. 100㎿급 소형 원전인 스마트 원전은 일반 상용 원자력발전소의 10분의1 규모로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 원전 주요 설비가 용기 하나에 들어가는 일체형이다. 건설비가 기존 원전의 5분의1 수준인 데다 도시 외곽에 지을 경우 전력 송배전망 투자비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중동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박재문 미래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이번 협약에 따라 국내에 실증로를 건설하지 않고도 해외 수출이 가능해졌으며 2030년까지 180기에 이르는 전세계 중소형 원전시장 개척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6] 국수와 파스타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6] 국수와 파스타

    국수(면)만큼 거의 세계 전역에서 즐기는 음식도 흔치 않다. 국수의 모양이나 요리법, 곁들이는 고명은 지역의 특징에 맞게 변천했지만, 그 원형은 유라시아 문명 교류의 중요한 상징이다. ●국수, 기원전 5000년 중앙아시아 유목민 음식서 유래 면(麵)은 중앙아시아로부터 전해진 밀가루를 이르는 말이다. 진나라 때 서역인이 ‘밀’이라고 부르는 말을 한자로 음차한 것으로 보인다. 또 국수라는 말은 삶은 면을 물에 헹궈 건져 올린 것을 뜻하는 한자어다. 따라서 밀가루를 반죽해 물에 넣고 삶은 게 면이자 국수다. 국수는 기원전 5000~6000년쯤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음식이었다. 반면 서양인은 기원전 3000년쯤부터 밀가루로 음식을 만들었다. 그들의 주식인 고기에 부족한 탄수화물을 섭취하기 위해서다. 국수가 빵보다 역사가 깊은 셈이다. 국수의 유래에 대해 많은 학설이 있지만, 국수가 유목민의 음식인 까닭은 우선 남방의 쌀과 달리 밀은 북방의 건조한 지역에서 자라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반죽한 밀가루를 굳이 수고스럽게 손바닥으로 비벼서 가는 국수 형태로 만든 것은 잠시 머문 정착촌에서 국수를 물에 삶을 때 되도록 빨리 익히기 위해서다. 가느다란 국수가 식감이 좋고 소화도 잘 됐을 것이다. 또 양고기나 마른 야채 등을 넣고 함께 끓여도 잘 어울린다. 다시 이동할 때에는 반죽한 국수만 잘 보관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숙성의 맛을 더할 수 있다. 국수는 기원전 1~2세기 후한 때 실크로드 상인에 의해 동쪽으로 전파된다. 국수는 진과 당을 거쳐 송나라 때 꽃을 피운다. 송의 수도 카이펑에서는 높은 성벽이 사라지고 개방된 국제도시답게 노점이 성행했다. 이 노점에서 국수에 국물을 붓고 고기 절편 등 고명을 얹어 먹었다. ●통일신라~고려초 한반도 유입... 밀가루 귀해 잔치때만 맛 봐 이 시기인 (통일)신라 또는 고려 초 한반도에도 국수가 전해진다. 그러나 우리 땅에선 밀가루가 귀한 식재료였다. 따라서 조선 시대 때까지도 결혼식, 회갑연, 제례일 등 특별한 날에만 국수를 맛볼 수 있었다. 이는 요즘 결혼식장에서 잔치국수를 내놓고 또 일부 지역에선 제사상에 삶은 국수를 올리는 전통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국수 요리는 크게 냉면, 비빔국수, 국수장국(온면), 제물칼국수로 나뉜다. 이 4종에서 무려 60여 가지의 국수 음식이 탄생한다. 우리는 메밀이나 녹두 가루도 국수 재료로 썼다. 함경도와 평안도에는 비빔국수와 냉면이 있다. 황해도 개성은 예부터 부유한 상인이 많이 살던 곳인 만큼 귀한 밀국수를 즐겼다. 지금 밀국수의 본고장은 옛 개성처럼 국제적 항만 도시인 부산이다. 6·25전쟁 이후 미군 원조로 받은 밀가루 덕분이다. 이어 한양에서는 각종 국수 음식이 다 있었지만 특히 전통식 온면을 으뜸으로 여겼다. 온면의 국수는 밀가루 외에도 메밀가루 등을 썼다. 경기도에선 국물이 걸쭉하고 구수한 칼국수를 먹었다. 온면은 삶은 국수를 먼저 그릇에 담은 뒤 맑은 형태의 육수를 부어 깔끔한 맛을 낸다. 반면 제물칼국수는 각종 식재료가 들어간 육수에 국수를 함께 넣고 푹 끓인다. 전라도와 경상도도 만들기 편한 칼국수를 즐겼는데 다만 서해 지역은 조개, 동해나 남해 지역은 멸치, 육수 등 지역 특산물로 맛을 더했다. 까다로운 선비의 고장이라는 안동의 건진국수는 일종의 칼국수이긴 한데, 이를 다시 온면 방식으로 국수를 건져 육수를 붓는 정성을 더 들였다. ●9세기 이슬람 시칠리아 지배하며 국수 유럽에 전파 동양에선 국물과 함께 먹는 국수 음식이 발달된 반면 서양에선 국물 없이 소스를 이용한 국수를 선호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게르만족, 바이킹족 등이 유럽에서 득세하는 동안 중동에선 신흥 이슬람 세력이 힘을 확장하고 있었다. 이슬람 세력은 중앙아시아도 손에 넣으며 현지 음식인 국수를 받아들인다. 그들은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을 굴복시킨 뒤 오래전부터 지정학적으로 유럽의 교두보 역할을 하던 시칠리아마저 정복한다. 827년 이슬람군 1만명이 시칠리아 섬에 상륙해 200여년 동안 지배하면서 중앙아시아에서 배운 국수 요리를 처음 유럽 땅에 전파한다. 유럽 남부의 지중해 근처에는 흰 경질밀보다 노란 듀럼밀이 흔했다. 듀럼밀은 단단하고 거칠지만 접착력과 탄력성이 좋다. 우리가 아는 파스타의 노란색 국수 원료다. 스파게티는 300여종에 이른다는 파스타의 한 종류일 뿐이다. 이슬람인들은 듀럼밀로 국수를 만들어 먹었고, 이게 이탈리아 본토인 나폴리 등을 거쳐 오늘날 세상에 퍼진 파스타가 된다. 토마토소스는 남미의 작물인 토마토가 유럽에 전해진 것이 16세기, 식재료가 된 게 19세기 중반인 만큼 나폴리 등에서 소스로 사용하다가 이탈리아계 미국 이주민이 늘면서 확산된 것이다. 그전엔 치즈 가루 등만 뿌려 맛을 냈다. ●흰 경질밀아닌 노란 듀럼밀 사용... 포크 사용문화로 면 길이 짧아져 그럼 왜 긴 가닥의 국수가 마카로니 등처럼 짧고 도톰한 모양의 파스타(쇼트 파스타)로 바뀐 것일까. 또 이슬람권에서는 왜 국수가 거의 사라졌을까. 국수를 먹는 방법의 차이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동양에서는 고대 시절부터 젓가락과 숟가락을 사용했다. 젓가락은 길고 미끌미끌한 국수 가닥 한 올까지 잘 잡을 수 있다. 반면 서양인은 포크를 쓴다. 우리 상식과 다르게 유럽 귀족이 지금과 같은 모양의 포크를 사용한 것은 베네치아 공국 이후였고, 백성은 대부분 손이나 작은 칼을 썼다. 그러니 가느다란 국수 가닥을 잡기에는 불편했다. 따라서 더 굵거나 또는 나사 모양으로 돌돌 감은 국수를 파스타의 재료로 사용했다. 아울러 이슬람인은 손으로 음식을 집어서 먹는 게 전통인데, 끈적끈적한 육즙을 묻혀 미끈거리는 국수는 더 이상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옛 이란 원주민은 국수를 이르는 말을 가느다란 ‘실’이라는 뜻과 함께 썼다. 음식은 언어처럼 더 나은 진화를 향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래서 음식의 원형을 찾는 노력을 하면 인류 문명의 긴 역사가 보일 것이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강남 3구, 서울시 에너지 25% 소비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강남 3구’가 서울시 에너지 소비 규모 1~3위를 모두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강남구 전력소비량은 4539GWh로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최소 전력소비량을 기록한 도봉구의 5배에 이르렀다. 강북구, 도봉구, 중랑구 등 세 구의 총전력소비량을 합한 것보다 강남구의 소비량이 더 많았다. 서울시는 2일 ‘2014 에너지백서’를 내고 지난 2년간 연속으로 전력소비량이 줄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전체 전력소비량은 0.6% 증가했지만 서울시는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 결과 전력 사용량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2012년부터 추진한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으로 최근 3년간 태양광 주택이 2369가구 늘었다. 서울에는 원전이 없지만 태양광 주택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의 사업으로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게 ‘원전 하나 줄이기’의 목표다. 서울시의 전력소비량은 전국 사용량의 10% 수준이다. 강남 3구의 전력, 도시가스, 석유 등 에너지 소비량은 전체 서울 에너지 소비량의 4분의1을 차지한다. 전국적으로는 산업용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지만 서울에서는 일반용 전기 사용량이 제일 많다. 강남구는 전력, 도시가스 사용량 모두 1위를 기록했으며 석유 사용량은 송파구가 가장 많았다. 전력 사용량을 인구로 비교했을 때는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인구가 적은 중구가 1위고 2위는 종로구, 강남구의 순위는 3위로 떨어진다. 주유소 숫자는 강남구 47곳, 서초구 42곳, 송파구 39곳 순으로 많지만 강남구보다 인구가 8800여명 더 많은 송파구가 석유 사용량 1위를 기록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원전 스위치 다시 켠 아베… 반대 여론에도 “5년내 30개 재가동”

    [글로벌 인사이트] 원전 스위치 다시 켠 아베… 반대 여론에도 “5년내 30개 재가동”

    일본 원자력발전소(원전)들이 재가동을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센다이 원전 1호기가 지난 11일 다시 운영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모두 정지했던 원전들이 재가동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은 점진적으로 원전 가동을 멈춰 ‘원전 제로(0) 시대’에 들어갔다. 하지만 센다이 원전 1호기의 가동으로 23개월 만에 원전 제로 시대에서 벗어나 다시 원전 가동국으로 질주를 시작했다.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 관계자는 31일 “규슈전력의 센다이 1, 2호기를 비롯해 간사이전력의 다카하마 3, 4호기, 시코쿠전력의 이가타 3호기 등 모두 5기의 원전에 대해 재가동 승인이 난 상태”라고 말했다.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는 일본의 11개 전력회사는 현재 15개 원전에서 모두 25기의 재가동을 신청한 상태다. 일본에는 모두 49기의 원전이 있다. 원전 재가동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력 가격이 25%가량 오른 상태에서 더이상 석탄, 가스 및 대체 에너지만으로는 전력 경쟁력을 유지하기도 어렵고, 국가 경쟁력에도 부담이 된다는 아베 신조 정부의 판단이 깔려 있다. 온실가스 절감을 위한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명분에 전력원 구성의 다양성 확보, ㎾h당 원전의 발전 비용이 10.3엔으로 가장 저렴한 점도 한몫했다. 아베 정부는 2020년까지 전체 전력원의 20~22%는 원전으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으로 30개의 원전을 재가동할 방침을 세워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아베 정부는 2013년 7월 원전 재가동 판단의 전제가 되는 규제 기준을 새로 수립했다. 지난 6월까지 원전 운영사는 2조 3830억엔을 안전대책비로 추가 투자한다는 계획 아래 원전 안전 보강책을 시행해 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원전 반대 정서는 강하다. 우려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주민이 원전 재가동의 열쇠를 쥐고 있다. 원전 재가동을 위해선 지자체와 주민 동의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원전 운영사들은 법적 강제성은 없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지자체 및 주민의 동의를 거쳐 재가동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원전에 대해 최근 NHK의 여론조사 결과 가동 찬성은 17%, 가동 반대 38%로 나왔다. 반대 측은 “후쿠시마 원전의 뒤처리도 못한 채 방향을 잡지 못한 상황에서 재가동은 시기 상조”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일본의 한 원전 전문가는 “원전 재가동으로 사용 후 핵연료 증가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 문제, 재처리 시설 가동으로 인한 플루토늄 증가 등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바닷물 넣어라” 총리 승인 미루다 방사능 유출…후쿠시마 이후, 신속한 결정·비상 전원에 집중

    [글로벌 인사이트] “바닷물 넣어라” 총리 승인 미루다 방사능 유출…후쿠시마 이후, 신속한 결정·비상 전원에 집중

    “대지진, 쓰나미, 테러 등의 돌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원자로 노심 등 핵심 시설을 보호하고 버틸 수 있게 하는 설비의 보강 상태를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또 위기에 신속하게 대처하고 결단을 내릴 의사 결정 체제 등을 자세히 살펴본다.” ●아시아 원전 운영체 참여해 안전 점검 전 세계 원자력발전소(원전) 운영 회사들의 범국가적 국제민간기구인 세계원전사업자협회(WANO) 도쿄센터의 한경수 처장은 31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교훈을 얼마나 반면교사로 삼아 실천했는지, 또 국제 기준에 따른 기술적·행정적 보완 조치 및 대비를 얼마나 철저히 했는지에 초점을 맞춰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태어난 게 WANO다. WANO는 1984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현장을 아는 전문가들의 점검 필요성이 커지면서 발족됐다. 원전 운영국 모두가 회원국으로 참가하고 있다. 런던 본부를 비롯해 파리, 도쿄, 모스크바 등 4곳에 지역센터를 두고 전문가들을 현장에 파견해 원전의 안전성과 운영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WANO 도쿄센터는 일본 도쿄전력 등 11개 원전 운영사, 중국의 국가핵전력공사(CNNP), 인도 정부 산하 인도원자력공사(NPCIL), 파키스탄의 파키스탄원자력위원회(PAEC), 대만의 대만전력공사(TPC), 한국수력원자력 등 아시아의 모든 원전 운영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WANO는 점검에서 불거진 다양한 지적 사항들을 운영 주체에 전달하고 난 다음 2년 뒤 재검해 등급을 매긴다. 이 등급은 원전 운영 주체의 수준과 해당 원전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기준이 된다. 한 처장은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원인이 됐던 비상 전원의 확대 및 추가 확보에 역량을 집중했다”고 말했다. 간사이전력의 다카하마 3, 4호기, 도호쿠전력의 히가시도리 1호기 등은 한 처장이 팀을 이끌고 점검했던 일본 원전들 가운데 일부다. 한 처장은 “뼈아픈 경험을 토대로 일본 원전들은 사고 이후 외부 전원이 끊어지고, 비상시 디젤 발전기도 사용할 수 없을 경우를 대비한 고정식 가스터빈 발전기, 이동형 발전차량, 이동식 직류전원, 축전지 용량 증대 등 다중의 전원 비상 대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쓰나미로 외부 전원이 끊어지고, 비상시를 위한 디젤 발전기도 물에 잠기면서 전기의 힘으로 이뤄지던 냉각수 공급이 중단돼 결국 원자로 노심이 녹으면서 방사능이 유출된 것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과정이었다. 그는 “원격 제어실의 추가 설치 및 격납 건물 안전 확보를 위한 수소 폭발 방지용 수소 재결합기 설치, 격납 건물 압력방출 여과기 등을 설치하고 있다”고 일본의 안전대책 방향을 소개했다. 후쿠시마 사고 때에는 수소 폭발을 막지 못한 데다 방사능을 나오지 못하게 막고 있던 원자로 격납 용기의 용량이 적고 약해 폭발 충격을 견디지 못하는 바람에 용기 뚜껑이 날아가 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위기 상황 시 의사결정 체계도 한 처장과 WANO의 중점적 점검 대상이다. 사고 과정에서 방사능 유출 전에 바닷물이라도 원자로에 집어넣었으면 원자로 노심은 녹지 않아 방사능 유출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에서는 “바닷물을 넣는다”는 결정을 의사결정의 최종 단계인 총리가 해야 했다. “원자로 노심이 녹고 방사능 유출 때까지 대략 8~11시간이 걸린다. 바닷물을 넣자는 결정이 이뤄진 시점은 연료용융 예상 시점을 8~11시간 초과한 뒤였다. 일본은 이 시간 안에 결정과 행동을 못 했다. 사고가 난 뒤부터 바닷물 주입 때까지 실제 시간은 더 걸렸다. 총리까지 가서 결정해야 하는 사이 이미 방사능 유출이 일어났다.” 바닷물을 원자로에 넣으면 원전은 못 쓰게 되는데 그 부담과 책임을 최고지도자(총리)까지 미루게 된 사례였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신속한 결정을 위해 현장 책임자(원전 소장)와 운영사 사장의 결단 여부가 사고 여파를 막는 데 결정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고 이후 선진국들도 적극 점검 나서 한 처장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WANO의 역할과 활동도 더 커지고 있다”면서 “점검에 소극적이던 선진국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변했고, 2017년 말까지 모든 원전 운영회사 본사에 대한 WANO의 점검이 이뤄지게 됐으며, 비상 대응시설 체제 점검도 이뤄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1982년 한전에 입사해 한국 원전의 산증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수원 위기관리실장을 지내면서 원전 안전 강화대책의 틀을 마련했고, 지난해부터 WANO 도쿄사무소에서 일해 왔다. 2012년 3월 고리 1발전소장 재임 시 정전 은폐 사건을 겪기도 한 그는 최근 고리 1호기 폐쇄 결정에 대해 당시 재가동을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비롯한 국내외 전문기관의 안전성 평가에서 양호한 판정을 받았고, 주요 설비를 다 교체해 성능이 우수했는데도 문을 닫게 되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12만 퇴진 시위에도 끄떡없는 아베 지지율

    일요일인 30일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일본 도쿄 국회의사당 주변에 집단자위권을 밀어부치고 있는 아베 신조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 12만 여명이 운집했다. 안보법안 관련 집회로는 사상 최대 규모라고 NHK는 전했다. 일본 시민단체 등은 전국 300곳 이상에서 ‘아베 정권 퇴진을 위한 10만인, 전국 100만인 행동’ 집회를 개최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63)도 시위대에 합류했다. 사카모토는 영화 ‘마지막 황제’의 영화음악으로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유명인이다. 좀처럼 정부에 대한 불만을, 특히 시위라는 형태로 표출하지 않던 일본인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2012년 고쿄에서 반원전 시위에 17만명이 모인 이후 3년여 만이다.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아이를 안고 나온 엄마, 백발이 성성한 노인까지 전 연령층이 망라됐다. 국회의사당 주변을 발디딜 틈 없이 채운 일본인들의 시위 사진은 31일 상당수 신문의 1면에 실렸다. 아베 총리의 보수적인 대외정책 등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반증일텐데, 이날 일제히 발표된 일본 언론들의 아베 총리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는 시위대의 목소리와 달리 다시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히 전체적인 내각 지지율은 반등했지만 안보법안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아베 담화 발표 이후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40%대를 회복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TV도쿄가 8월 28∼3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7월 조사결과에 비해 8%포인트 오른 46%로 집계됐다.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자 비율은 10%포인트 떨어진 40%였다. 닛케이 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이 반등한 것은 4개월만이다. 지난 7월 2차 아베 내각(2012년 12월 출범)들어 처음으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자가 지지한다는 응답자를 앞섰는데, 1개월 만에 뒤집혔다. 7월 지지율 하락의 최대 원인이 아베 정권의 안보법안 강행처리였다면 이번 지지율 반등은 아베 담화에 대한 국내외의 긍정적 평가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닛케이는 분석했다. 앞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담화 발표 직후에 나온 교도통신(14∼15일 실시) 조사에서 43.2%, 산케이신문 조사(15∼16일)에서 43.1%를 각각 기록하며 40%대에 다시 들어섰다. 하지만 개별 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우세했다. 닛케이 조사에서 집단자위권 행사 용인 방침을 담은 안보법안을 9월 27일까지인 현 정기국회 회기 중에 통과시킨다는 아베의 계획에 대해 반대가 55%로 27%에 그친 찬성의 배 수준이었다. 센다이 원전을 시작으로 약 2년만에 이뤄진 일본의 원전 재가동 회귀에 대해 반대가 56%로 찬성 응답 비율(30%)을 크게 웃돌았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확연해진 안보법안에 대한 반대 여론과 빗속에 국회의사당을 에워싼 성난 민심을 아베 총리가 과연 어떤 식으로 수용할 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김균미 기자 kmkim@seoul.co.kr
  • 수시모집에 쏠린 눈

    수시모집에 쏠린 눈

    고3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30일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성균관대 2016학년도 수시모집 지원전략설명회’에서 전형별 지원 전략 등 학교 측의 설명을 듣고 있다. 대입 수시모집 원서 접수는 다음달 9일부터 학교별로 실시된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사설] 30년 만에 준공식 가진 경주 방폐장

    경북 경주시 양북면의 국내 첫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이 어제 준공식을 가졌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서 열린 준공식에는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해 김관용 경북지사, 최양식 경주시장, 지역 주민 등 1000여명이 참석해 축하와 함께 안전 운영을 다짐했다. 경주 방폐장은 1985년 건립 계획이 발표된 지 30년 만에 완공된 것으로 국내 원자력 산업의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 경주 방폐장은 원자력발전소, 병원 방사능 시설 등에서 사용한 장갑이나 부품 등 방사성물질 함유량이 비교적 적은 중저준위 폐기물을 처분한다. 앞으로 전국의 원자력 관련 시설에서 발생하는 각종 폐기물이 선박을 통해 방폐장으로 운반된다. 방폐장에서는 지하 130m에 있는 사일로에 폐기물 10만 드럼(2000만ℓ)을 저장할 수 있다. 앞으로 세 차례에 걸쳐 처분 용량이 80만 드럼까지 확장될 예정이다. 경주 방폐장 준공으로 현재 원전별로 포화율 74∼96%에 이른 폐기물 처리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30년이란 기간이 말해 주듯 경주 방폐장 건설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정부는 건설 계획 발표 이후 전국의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부지 선정 작업에 나섰으나 후보지로 거론된 주민들의 큰 반발에 부딪혔다. 정부가 울진, 안면도, 굴업도 등 무려 아홉 차례에 걸쳐 진행한 후보지 공모는 모두 무산됐다. 그때마다 원전 폐기물을 처리하는 기피 시설물로 인식되면서 우리 지역에는 절대 안 된다는 님비현상에 좌절을 거듭해야 했다. 급기야 정부는 2005년 유치지역지원특별법을 마련해 해당 지역에 3000억원 이상의 각종 지원을 약속하면서 방폐장 건설은 급물살을 탈 수 있었다. 특히 경주는 문화재 보존 지역으로 인한 각종 규제로 지역 발전이 늦을 수밖에 없다는 시민들의 위기 의식도 방폐장 유치의 한 배경이 됐다. 경주 방폐장 건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경주 시민의 지역 발전에 대한 강한 열망이 빚어낸 결과물인 셈이다. 그만큼 큰 의미가 있다. 정부는 이제 경주 방폐장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시설물로 운영해야 할 책임이 있다. 또 애초 약속한 각종 지원사업을 착실히 이행하면서 지역민들에게 자부심을 안겨 줘야 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경주 방폐장의 안전성과 정부에 대한 신뢰만이 폐연료봉 등 고준위 폐기물 처리 시설을 짓는 다음 과제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 [이광식의 천문학+] 온갖 불운을 타고났던 ‘왕따’, 우주의 이정표를 세우다

    [이광식의 천문학+] 온갖 불운을 타고났던 ‘왕따’, 우주의 이정표를 세우다

    -인류의 위대한 거보 내딛은 천문학자 케플러 20세기 천문학의 영웅 허블이 온갖 행운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17세기 천문학의 영웅 요하네스 케플러는 온갖 불행을 껴안고 태어난 사람이었다. 코페르니쿠스 이후 최고의 천재 천문학자로 꼽히는 케플러이지만, 그의 생애는 가난과 질병, 전쟁, 추방으로 점철된,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이었다. 우선 그의 불행 목록을 잠시 요약해보기로 하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발표된 지 28년 후인 1571년 12월 27일, 독일의 작은 도시 바일에서 태어났다. 칠삭둥이인데다 태어나면서부터 병약했다. 아버지는 “부도덕하고 거칠고 싸움꾼”인 용병이었고, 어머니는 술집 딸로 “성미가 까다롭고 수다스러운” 여자였다.(케플러의 표현) 양친 누구로부터도 그다지 사랑을 받지 못한 케플러는 4살 때 천연두를 앓아 그 후유증으로 근시에 복시(複視)까지 겹쳐 평생을 고통받으며 살았다. 내장기관도 좋지 않았고, 손가락도 온전하지 못해, 가족들이 보기에 장래에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라곤 성직자밖엔 없어 보였다. 아버지는 얼마 후 집을 떠나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한마디로 모든 불운을 한 몸에 타고난 아이가 바로 어린 시절의 케플러였다. 가족들은 어린 케플러를 성직자로 만들기 위해 수도원 학교에 넣었다. 병약하고 내성적인 케플러가 동급생들에게 인기가 있을 리 없었다. 스스로도 “나는 성격도 별로 안 좋고...” 등등의 부정적인 묘사를 하기 일쑤였다. 아이들에게 왕따 당하거나 매 맞는 적도 드물지 않았다. 한마디로 3류 인생으로 온갖 멸시를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재능을 그는 갖고 있었다. 바로 명석한 두뇌였다. 그가 가난한 집안으로부터 거의 학비 지원을 받을 수 없었음에도 대학까지 갔던 것은 오로지 뛰어난 머리 덕분이었다. 항상 장학금을 받아냈던 것이다. 특히 수학에서 그는 발군의 재능을 보였다. 케플러는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지만, 틈틈이 수학과 천문학을 공부하며 과학적 지식을 쌓아나갔다. 수학의 천재였던 케플러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보다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수학적으로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배우면서 완전한 형상과 코스모스의 영광을 엿보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의 심경을 케플러는 이렇게 표현했다. “기하학은 천지창조 이전부터 있었다. 기하학은 신의 뜻과 함께 영원히 공존한다. (...) 기하학은 천지창조의 본보기였다. (...) 기하학은 신 그 자체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 학위 과정에 들어가려 했던 케플러에게 그라츠의 한 개신교 학교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가르쳐달라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 22살의 그는 주저없이 목사의 길을 버리고 신학교를 떠났다. 그라츠에서 케플러에게 맡겨진 임무 중의 하나는 예언과 부합하도록 점성력(占星曆)을 뜯어고치는 일이었다. 당시 이런 일은 관행이었다. 16세기에는 천문학과 점성술은 그 경계가 모호했다. 케플러의 첫 달력이 나왔을 때 그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그는 터키의 침공과 추운 겨울을 예견했는데, 두 가지 예측이 모두 들어맞아 예언자로 명성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살면서 궁할 때마다 점성술로 돌아오곤 했지만, 그 자신은 점성술을 믿지 않았다. 점성술에 대한 그의 한탄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점성술은 어머니인 천문학을 먹여살리는 슬픈 창녀일 뿐이다.” 케플러가 우주를 창조한 신의 마음을 알기 위한 기나긴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은 하나의 계시 때문이었다. 천문학의 일대 혁신을 가져온 계시의 순간은 어느 화창한 여름날 그가 학생들에게 기하학을 가르칠 때 찾아왔다. 행성들은 왜 코페르니쿠스가 알아낸 간격의 궤도만을 따라 도는가? 그 누구도 던져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케플러의 생각은 태양계 구조의 근본에까지 닿았던 것이다. 케플러는 행성 궤도와 기하학은 깊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기나긴 여정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윽고 태양계의 비밀을 푸는 기하학적 열쇠를 손에 쥐었다고 확신했지만, 여전히 다른 의문들이 남아 있었다. ‘왜 바깥쪽 행성은 안쪽 행성보다 느리게 태양 둘레는 도는가?’ 이는 케플러 이전의 어떤 천문학자도 제기하지 않았던 문제였다. 케플러는 이에 대해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빛과 같은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행성들을 조종한다고 결론 내렸다. 케플러는 자신의 이런 이론을 담아 '우주의 신비'(1596)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 여러 곳에 보냈다. 갈릴레오도 그 책을 받은 사람 중의 하나였지만, 서문만 읽어보고는 내용은 끝내 읽지 않았다. 반면 튀코 브레헤는 케플러의 이론에 감명받았을 뿐 아니라, 케플러의 ‘천재’를 알아보았다. '우주의 신비'는 케플러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시골 학교의 수학 선생에 지나지 않았던 케플러는 이 책으로 인해 유럽 천문학계에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졌고, 이것을 고리로 하여 황실 수학자이자 우라니엔보리 천문대장인 튀코 브라헤(1546~1601)의 초청을 받아 그와 같이 일하게 되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육안 관측 천문학자로 꼽히는 튀코는 당시 가장 정확하고 풍부한 행성 관측자료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요리할 만한 수학적인 밑천이 부족했다. 이에 반해, 케플러는 시력이 나빠 관측에는 약했지만, 강력한 이론적인 무기, 곧 수학을 갖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둘은 어느 정도 궁합이 맞는 짝이라 할 수 있었다. 케플러의 '화성 전쟁' 케플러가 튀코의 조수로 가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튀코가 가지고 있던 풍부한 관측자료에 있었다. 매의 눈을 가진 튀코는 망원경이 발명되기 35년 전부터 행성의 겉보기 운동을 측정하는 데 모든 것을 바친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가 행한 관측의 정밀도는 당대 최고였다. 54살의 튀코와 29살의 케플러의 만남은 그다지 부드럽지 못했다. 한 사람은 당대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관측의 귀재였고, 다른 한 사람은 제일의 이론가였다. 협력은 쉽지 않았다. 튀코의 경계심 때문이었다. 행인지 불행인지 케플러가 우라니엔보리에서 일한 지 18개월 만에 튀코는 병으로 급사했다. 어느 만찬에서 포도주를 과음한 뒤 소변을 참다가 방광염에 걸렸고, 그것이 악화되어 며칠 후 숨을 거둔 것이다. 브라헤는 숨을 거두기 직전 "내 삶이 헛되지 않았다고 하소서!" 하고 외친 튀코는 그토록 아끼던 관측자료를 케플러에게 모두 물려준다고 유언했다. 튀코가 죽은 후 케플러는 그 뒤를 이어 황실 수학자로 임명되었고, 튀코의 자료 분석에 밤낮 없이 매달렸다. 케플러가 가장 시간과 정열을 쏟아부었던 과제는 화성 궤도 계산이었다. 지구와 화성이 실제로 태양 주위를 어떤 식으로 운동하기에 화성이 우리 눈에 공중제비를 돌듯이 역행운동을 하는 것일까? 실제로 화성을 관측하노라면, 이제껏 왼쪽으로만 운행하던 화성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엔 이윽고 다시 방향을 틀어 왼쪽으로 운행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화성의 역행운동으로, 고래로부터 수많은 천문학자들로 하여금 머리를 싸매게 한 불가사의한 현상이었다. 기원전 6세기의 피타고라스부터 플라톤, 프톨레마이오스 등 모든 천문학자들이 행성들의 궤도는 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원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기하학적 도형이므로, 완벽한 존재들인 천상의 천체들은 마땅히 원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갈릴레오, 튀코, 코페르니쿠스도 행성 궤도가 원이라는 데에 티끌만한 의심도 없었다. 케플러 역시 화성이 태양 주위를 원궤도에 따라 돈다고 간주하고 브라헤의 관측자료를 분석하고 궤도계산에 매달렸다. 쉽게 끝날 것 같았던 계산은 8년간이나 계속되었다. 그는 복잡하고 지루한 계산을 무려 70차례나 되풀이했다. 이른바 케플러의 ‘화성전쟁’이라 일컬어지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이 과정을 지루하다고 느낄지도 모르는 독자를 위해 이런 각주를 달아두기까지 했다. “이 지루한 과정이 진력나시거든, 이런 계산을 적어도 70번이나 했던 저를 생각하시고 참아주십시오.” 케플러는 타원공식을 사용해 다시 자료분석을 시도했다. 그 공식은 고대 그리스의 페르가의 아폴로니오스(BC 262~190)가 처음 만들어낸 식이었다. 결과는 브라헤의 관측값과 완전 일치했다! 케플러는 탄성과 탄식을 함께 토해냈다. “자연의 진리가 나의 거부로 쫓겨났었지만, 인정을 받고자 겉모습을 바꾸고 슬그머니 뒷문으로 들어왔으니.... 아, 나야말로 정말 멍청이였구나!” 화성이 타원궤도를 돈다는 것은 이렇게 오랜 노역 끝에 얻어진 것이었다. 다른 행성들도 타원궤도를 돌지만, 화성보다는 훨씬 원에 가깝다. 태양은 타원궤도의 중심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중심을 조금 벗어난 초점에 자리한다. 행성의 공전속도는 태양이 가까울수록 빨라지고 멀어질수록 느려진다. 이런 운동 때문에 행성이 태양을 향해 계속 떨어지는 중이지만, 결코 태양에 곤두박질하지는 않는다. ​우주의 이정표를 세우다 행성운동을 규정한 타원의 법칙과 동일면적의 법칙은 1609년에 그의 책 '새 천문학'에 발표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후, '우주의 조화'에서 그의 제3법칙 조화의 법칙을 발표함으로써 케플러의 3대법칙은 완결되었다. 케플러 법칙을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모든 행성의 궤도는 태양을 하나의 초점에 두는 타원궤도이다.2. 태양과 행성을 잇는 직선은 항상 일정한 넓이를 쓸고 지나간다.3. 행성의 공전주기의 제곱은 행성과 태양 사이 평균 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케플러는 3대법칙을 완결한 후, 자신이 신이 우주를 설계한 논리를 발견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엄청난 희열감을 느꼈다. 행성운동의 법칙을 최초로 과학적으로 규명한 케플러 법칙은 행성운동의 거리와 시간관계를 밝힘으로써 60년 후 뉴턴의 중력 방정식을 선도한 것이기도 했다. 케플러는 놀랍게도 태양과 행성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작용하며, 행성운동의 근본 원인이 자기력과 유사한 성격의 것이라고 제안함으로써 중력 또는 만유인력을 예견했던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뉴턴은 만유인력 법칙의 발견에 케플러의 신세를 엄청나게 졌다. 백 번을 감사하다는 말을 해도 모자랄 터인데, 그는 단 한 번도 케플러에게 감사의 말을 하지 않았다." 케플러는 연구가 수행되는 중에도 신변엔 고통이 떠나지 않았다. 1611년, 30년 전쟁의 군인들이 옮긴 전염병 탓에 그의 아내와 가장 사랑하던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의 후견인이던 루돌프 황제가 폐위됨에 따라 케플러는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다. 인류를 위한 우주로의 거보를 내디딘 존재였지만, 케플러의 만년은 흐린 겨울날처럼 스산했다. 30년 전쟁이 유럽을 휩쓰는 가운데 케플러는 모든 후원자를 잃고 가난에 내몰렸다. 그의 만년은 돈을 구하고 후원자를 찾는 피곤한 여정으로 메워졌다. 그러던 중 어느 추운 늦가을, 밀린 급료를 받기 위해 노구를 끌고 먼 길을 나섰다가, 독일 레겐스부르크에서 병을 얻어 며칠 고열에 시달리다 숨을 거두고 말았다. 1630년 11월 15일이었다. 향년 59세. 그날 밤 하늘에서 유성우가 내렸다고 한다. 출생에서부터 임종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불우하기만 했던 이 거인의 유해는 성벽 밖 공동묘지에 쓸쓸히 묻혔다. 빗돌에는 그가 지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어제는 하늘을 재더니, 오늘 나는 어둠을 재고 있다. 나는 뜻을 하늘로 뻗쳤혔지만, 육신은 땅에 남는구나.” 그러나 그의 무덤도 30년 전쟁 와중에 군대에 의해 훼손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케플러가 평생을 바쳐 고난과 싸우며 이룩해낸 그의 업적은 후세 과학사학자들에 의해 ‘과학혁명의 열쇠’라는 평가와 함께 케플러를 그 혁명의 중심 인물로 올려놓았다. 과학사가 제임스 R. 뵐켈은 케플러의 업적이 갈릴레오의 업적보다 천문학적으로 더욱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케플러는 행성운동 법칙 제3법칙을 연구할 당시, 지구에 적용되는 측정 가능한 물리 법칙들이 다른 천체들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을 간파했고, 이로써 인류사 최초로 천체 운동에서 신비주의가 배제되었던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천상의 비밀을 보다 확실하게 세상에 내보인 케플러는 행성운동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인 이론인 ‘케플러 법칙’을 정립함으로써 문자 그대로 우주로 향한 인류의 위대한 거보(巨步)를 내딛었다.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케플러의 삶을 이렇게 평했다. "만약 절대적인 엄밀함을 추구하면서 평생 동안 가장 헌신적인 삶을 산 사람에게 주는 상이 있다면,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그 상을 받았을 것이다.” 2009년, 미항공우주국(NASA)은 케플러의 천문학에 대한 기여를 기리기 위해 우주 망원경에 케플러의 이름을 붙였다. 이것이 케플러 계획이다. 그리고 유엔은 갈릴레오가 최초로 망원경 천체관측을 행하고 케플러가 그의 '새 천문학'을 발간한 지 400주년 되는 2009년을 '세계천문의 해'로 정해 그를 기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후학인 칼 세이건의 다음과 같은 말이 케플러를 위한 최상의 찬사가 될 것이다. “우주 탐사선이 광대한 우주를 가로질러 외계로 달려갈 때, 사람이고 기계고 가릴 것 없이 확고부동한 이정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케플러가 밝혀낸 행성운동에 관한 세 가지 법칙이다. 그의 평생에 걸친 수고로 그는 발견의 환희를 맛보았고, 우리는 우주의 이정표를 얻었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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