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원자폭탄
    2026-01-25
    검색기록 지우기
  • 기금
    2026-01-25
    검색기록 지우기
  • 분양가
    2026-01-25
    검색기록 지우기
  • 전수조사
    2026-01-25
    검색기록 지우기
  • 콘서트
    2026-01-2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00
  • 이란 “NPT잔류”/테헤란당국 발표

    【테헤란 로이터 연합】 이란이 원자폭탄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가운데 이란은 6일 이스라엘이 핵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조약이 갱신되면 계속 조인국으로 남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란원자력기구(IAEO)의 레자 암롤라히 대표는 이날 이란 뉴스지와의 회견에서 『이스라엘은 NPT에 가입하지도 않고,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도 받아들이지 않는 등 일체의 제재나 감시를 받고 있지 않다』고 비난하고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정부와 비교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이란은 NPT 회원국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 러,이란과 핵협력 계속/미의 원전거래 금지 요구 거부

    【모스크바 AFP 연합】 러시아는 이란이 러시아와의 핵협력을 원자폭탄 개발에 이용할 것이라는 미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란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러시아 고위 외교소식통이 6일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이 소식통은 인테르팍스통신과의 회견에서 러시아는 이란의 서부 해안도시 부세르 원전의 1단계 공사를 완성하여 가동시키기 위해 지난달 8일 이란과 체결한 계약의 이행을 중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부세르 원전은 독일이 건설에 착수했으나 지난 79년 이란혁명으로 철수했다.이란 라디오에 따르면 지난달 이란과 러시아간의 계약에는 러시아가 원전에 농축 우라늄을 제공한다는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은 지난달 안드레이 코지레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이란이 핵무기 생산을 위한 수단을 얻으려 하고 있다는 주장을 반복하면서 러시아와 이란간 무기거래 협정의 세부사항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 미 박물관/스미소니언/원폭투하기 전시계획 취소

    ◎“살상미화”·“일을 희생자 오도” 거센 반대/일선 “원폭공포 알릴 기회 무산” 아쉬움 워싱턴의 세계적 박물관 스미스소니언이 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당시의 B29 폭격기를 우주항공박물관에 전시하려는 계획이 많은 찬반 논란 속에 1일 전격 취소됐다. 스미스소니언측은 지난해부터 1945년8월6일 일본 히로시마에 첫 원자폭탄을 떨어뜨렸고 3일 후 나가사키에 원폭을 떨어뜨린 당시의 B29 폭격기 「에뉼라 게이」(조종사의 어머니 이름을 따라 명명됨)의 동체를 실물 그대로 박물관에 상설 전시하는 계획을 마련,오는 5월 개장할 예정이었다. 스미스소니언은 『역사의 사실을 기록하고 전쟁을 조기에 종식시킴으로써 더 많은 생명을 구했다』는 논리로 반대에도 불구,전시 계획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미국의 중요한 압력단체의 하나인 재향군인회 등은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진주만을 기습당하는 등 분명히 침략을 당한 나라임에도 이것을 전시하면서 마치 우리가 침략자이고 일본이 희생자인 것처럼 역사를 오도하고 있다』는 논리로 반대했다.또 평화그룹들은 한 순간에 21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원폭투하는 인류의 수치라는 또 다른 주장으로 반대운동을 폈었다. 이처럼 반대운동이 격해지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마이클 헤이먼 사무총장은 지난 30일 박물관의 운영이사회의 소집을 앞두고 이사들에게 계획 자체의 전면취소를 고려하고 있음을 알렸으며 마침내 1일 이를 취소한 것이다. 일본측은 오히려 『원폭의 공포를 알리기 위한 기회가 없어진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취소 방침에 반대 입장을 보였는데,미의회가 이 계획이 입안·취소된 과정에 대한 청문회를 요구한데다 미·일 양국간에 2차대전에 대한 현격한 입장 차이가 다시 노출된 만큼 이에따른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 남북분단의 전말(새로쓰는 한국현대사:3)

    ◎미 「한반도 점령」 44년초 첫 구상/4국 공동관리→「힘의 진공화」 전략 추진/소의 대일 선전포고에 “양분” 전격 결정/전황 변화 따라 한때 “단독점령” 의지… 대소견제에 역점 □특별취재반 ▲황규호(문화부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호( 〃 〃) ▲김경운(조사부 〃) 1945년 8월11일 새벽(미국 시간)미국 워싱턴 맥클로이 전쟁성차관보의 사무실.미 육군 링컨준장과 러스크대령,본스틸대령등 3명은 벽에 걸린 대형 「내셔널 지오그래픽」지도를 바라보며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곧 지도 한 귀퉁이 한반도 지형 위로 붉은 줄 한가닥이 휙 지나갔다.서울과 평양사이를 통과한 이 줄 오른쪽에 누군가가 「북위 38도」라고 썼다.세 사람은 이어 눈길을 중국대륙 쪽으로 옮겨 나직한 목소리로 뭔가를 상의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연합국측에 항복선언을 하기 나흘 앞서,전후 처리를 맡은 미 전쟁성 전략정책단(단장 링컨준장)간부 몇사람에 의해 「38선」은 이렇게 태어났다.이들이 한반도 처리방안을 논의한지 30분이 채 안되서였다. ○30분만에 「붉은 줄」 한민족의 운명을 결정지은 38선이 그려진 배경과 의미를 이해하려면 태평양전쟁 발발이후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정책을 어떻게 바꾸어왔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일본과의 전쟁에서 연합국을 이끈 미국이 한반도를 포함한 전후처리도 역시 주도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전쟁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한반도 문제를 다루었다」는 오랜 통설과는 달리 최근의 연구성과는 미국이 일찌감치 한반도에 관심을 보였으며 전쟁의 흐름,소련과의 관계변화에 따라 한때는 한반도를 단독점령하려는 의지까지 가졌음을 보여준다.최근 비밀해제된 미 국립공문서보존기록관리국(NARA)의 「국무성 일반자료군」,워싱턴국립기록센터(WNRC)의 기밀문서,국무성 외교문서들에 따르면 미국은 1944년 2월 한반도 점령구상을 처음 마련했다.카이로회담에서 미국·영국·중국의 세 정상이 「적절한 과정에 따라」한반도를 독립시킨다고 합의한지 두달만의 일이다. 44년 들어 전황이 압도적으로 우세해지자 미국은 전후처리 방안을 세우는 기구의 하나로 국무성에 영토연구국을 만든다.이 연구국이 처음 한 일이 「한반도의 해방·점령」보고서를 만든 것이다.국무성은 이 보고서에서 종전후 미·소·영·중등 4개국의 공동점령­일정 기간의 신탁통치,또는 임시정부 수립­완전 독립이라는 3단계 안을 냈다.이 안은 「한반도를 한 국가의 세력권으로 분류하면 소련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크므로 이를 막기 위해 여러나라가 참여해야 한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최근 발굴한 국무성 메모랜덤(44년 5월 작성)에도 『한반도가 독립에 앞선 신탁통치 기간동안 소련에 의해 관리되는 것은 중대한 정치문제를 야기할 것이며 미국은 한반도가 소비에트화하는 것을 태평양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소련 견제가 중요한 정책목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어 한반도 정책의 주도권은 국무성에서 군부로 넘어가 「힘의 공백지대화」전략이 은밀히 추진된다.이 전략도 「한반도 처리문제를 섣불리 꺼냈다가 소련에게 빼앗기느니 차라리 전쟁이 끝날 때까지 논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자」는 구상에서 나왔다.「힘의 공백지대화」는 44년 10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스탈린과 주소련 미대사 해리먼의 군사전략회의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이 회의에서 스탈린은 『만주의 일본군을 효과적으로 격퇴하려면 소련 육해군이 「북부 조선의 항구들」을 점령해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해리먼은 의도적으로 이에 대한 답변을 회피한다. ○소주장 의도적 외면 이 전략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유지돼 결국 미국이 별다른 무력동원 없이 1945년 8월 한반도 반쪽을 차지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45년 초 미 군부는 『태평양상에 방위체계를 구축하기 위해』한반도를 비롯한 일본점령 지역을 미국이 단독점령할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그해 2월에는 링컨준장이 이끄는 전략정책단이 새로운 한반도 처리방안을 내놓았다.이 안은 한국을 도계에 따라 넷으로 나눠 미·소·영·중등 4개국이 분할점령하되 서울과 부산·인천등 주요도시는 미국이 맡는다는 구상이었다. 미국 루스벨트대통령이 45년 4월 서거해 트루먼이 그 뒤를 잇자 한반도 정책은 또 한차례 변화를 겪는다.루스벨트가 국제주의자로서 소련과의 협력에 정책 우선순위를 뒀던 것과는 달리 트루먼대통령은 소련에 대한 견제 전략을 적극적으로 펴나간다. 국수주의자 성격이 강한 그는 45년 2월 열린 얄타회담에서 전임자가 만주를 소련 세력권으로 인정한 것 자체를 「지나친 양보」로 보았다.더욱이 원자폭탄 개발로 일본에 대한 승리가 확실해지자 트루먼은 소련이 대일본전에 끼어들기전에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려고 서두른다.곧 소련이 참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을 끝내면 전후 처리에 있어서도 소련을 배제시킬 수 있다고 희망했기 때문이다.따라서 45년 7월 열린 포츠담회담에서도 예의 「힘의 공백지대화」전략을 써 한반도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한편 동유럽의 공산화에 몰두한 소련은 괜히 미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 한반도문제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1945년 8월6일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에 첫 원자폭탄을 투하한다.그러자 소련도 기회를 놓칠세라 9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로 진격한다.「소련을 배제한 채 승리를 따낼지도모른다」는 미국의 기대는 물건너 갔다.미국으로서는 이제 「한반도」라는 떡덩어리를 혼자 먹을지,소련과 나눠먹는다면 그 크기는 어떻게 잘라야할지 결정할 순간이 왔다. ○고심끝 정치적 판단 미 정부 고위층은 10일 밤늦게까지 고심하다 「소련측과 나눌 수밖에 없다」는 정치적 판단을 내렸고 구체적인 「줄긋기」는 전략정책단에게 맡겼다.「한반도를 도계에 따라 분할점령한다」는 안을 낸 적이 있을 정도로 한국사정에 밝았던 링컨단장은 망설임없이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붉은 줄을 그었다.그 줄이야말로 소련이 받아들일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소련군은 8월11일 밤 함경북도 웅기를 점렴함으로써 한반도에 첫발을 내디뎠고 미군은 9월8일 인천을 통해 상륙했다.이어 소련은 8월27일 38선을 봉쇄,인적·물적 교류를 차단했다.미국도 9월2일 미국육군태평양총사령관 맥아더가 발표한 「포고령1·2·3호」에서 38선이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한 경계선이 아니라 군정관할선임을 분명히 했다. 민족분단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 일제통치의 해악(새로 쓰는 한국현대사:2)

    ◎한민족 주체 말살… 남북분단 단초로/반일세력 살상·6백여만 강제징발/창씨개명·신사참배로 「정신」 황폐화/「황국 신민화」강요,「친일지식인」양산… 민족갈등의 불씨 남겨 □특별취재반 ▲황규호(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호( 〃 〃 ) ▲김경운(조사부 〃 )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맞이한 광복의 빛은 찰나에 그치고 말았다.1910년 국권을 결정적으로 빼앗겼다가 일제가 2차세계대전에서 패망한 1945년 8월15일 민족해방의 날.그 광복으로 일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났지만,환희의 기쁨은 곧 퇴색해버렸다.다만 예측할 수 없는 파란만장한 다른 시대가 민족의 미래로 다가서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우리의 현대사는 어언 50년이 되었다.그 반세기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얼핏 떠올려 볼 수 있는 말이 있다. 「미국이 한국에 깊숙이 개입해 온 시기는 일본 식민통치 전체기간을 상응하고도 남는다.팝뮤직등 한국의 잡동사니문화가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지속적인 영향은 일본으로부터받았다.전후 한반도에서 두 국가를 건설한 것도 일본의 영향이다」 미국 시카고대 교수 브루스 커밍스(정치학)의 이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해방과 더불어 막을 올린 남북분단의 비극을 포함한 격동의 현대사 속에는 일제침략의 유산이 짙게 깔려 있는 것이다.우리가 8·15해방을 맞았을 때 민족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다시 말하면 일제36년의 파쇼통치를 통해 민족주체가 거의 말살되어 무력화한 상태였다.더구나 대전을 승리로 이끈 연합동맹국의 시각은 한반도에 뚜렷한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이 물음에 대답할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1910년 강제합병 이후 복벽운동 성격의 의병전쟁과 현대정치사상에 입각,독립선언의 의미를 지닌 3·1운동에서 입은 피해는 엄청나다.한 현대사자료는 3·1운동의 경우만도 10만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1923년 8월 일본 도쿄 등을 휩쓴 간토(관동) 대지진의 피해를 한국인 폭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날조,무차별 살해한 대학살을 자행했다.당시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독립신문」은 한국인 6천6백11명이 살해된 것으로 보도했다. 일본 제국주의 정부 비호아래 자경단이름으로 저절러진 만행현장에 대한 당시 경찰관의 증언.『아이들은 줄을 세워놓고 부모들이 보는데서 목을 잘랐다.그 다음은 부모들을 찔러 죽였다.온통 피바다를 이루었기 때문에 장화를 신지 않고는 걸어다니지 못할 지경이었다』 1925년 「치안유지법」을 제정한 일제는 국내에서도 반일세력을 모두 잡아들였다.조선총독부가 각년판으로 펴낸 「조선의 최근 치안상황」에 따르면 1931년 한햇동안 붙잡아 투옥한 인원만도 3만8천7백93명에 이르고 있다.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 일제는 육군특별지원령 공포(1938년)를 시발로 징용령(1939년)및 학병제(1943년)실시,여자정신대근무령 공포(1944년)등으로 인명을 수탈했다. 「조선인 강제연행기록」은 모두 6백만명이 끌려간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일제는 이 기간에 정신적 민족주체성 말살정책을 병행했다.동화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말과 글을 못쓰게 한 한글교육금지(1938년),고유한 성과 이름을 강탈해버린 창씨개명이 그것이다. 그리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1940년에는 황국신민화운동을 가속화했다.전통적 씨족관념마저도 앗긴 국민의 정서는 황폐 그것이었다. 일제는 황국신민화운동을 추진하면서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그리고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을 침략을 찬미하고 부추기는 자리에 끌어들였다.이 과정에 반민족적 지식인들이 생겨남으로써 민족내부의 분열을 가져왔다.이는 결국 민족갈등의 씨앗을 뿌려 일제 식민통치가 남긴 가장 큰 악영향으로 남게 되었다.일제하 독립운동이 희석된 까닭도 여기 있거니와 오랜 세월을 두고 민족화해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전의 전세를 차츰 유리하게 호전시키고 있던 연합동맹국의 눈에 들어온 한반도는 일본 패전 이후의 전리품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그나마 한국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계를 유지해 왔던 중국 국민당정부의 장개석인 것으로 알려졌다.1943년 11월 미국,영국,중국의 수뇌가 만난 카이로 회담에서다.「조선인민의 노예상태에 유의,적당한 시기에 자유독립시킬 것을 결의한다」는 내용의 관심을 보였다. 우리가 각별히 주목할 것은 포츠담회담이다.카이로회담에서 합의한 「1차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탈취한 모든 지역은 반환되어야 한다」는 내용도 재확인했다.그렇다고 한반도가 민족의 손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고,전승국인 미국과 소련이 넘겨받기로 한 것이다.그리고 「적당한 시기에 독립시킨다」는 카이로선언 원칙아래 처음으로 한반도 분할점령이 논의되었다.일본의 강점지역이라는 이유로 한반도와 거기 사는 사람들은 또 다른 운명을 기다려야 했다. 포츠담회담은 미국으로 하여금 다른 전략구상을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원자폭탄을 이미 보유한 미국은 자국의 전력이 소련보다 우위라는 사실을 감지한 것이다.이에 따라 미국은 한반도에 관한 논의를 의도적으로 지연시켰다.소련 진출을 적극 차단키로 한 미국은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1945년 7월25일 한반도 점령지시를 내렸다.하지만 미국의 주력병력은 한반도에서 먼 오키나와에 있었다. 그리하여 미국은 8월6일 서둘러 히로시마에 원폭을 떨어뜨렸다.소련은 다급한 나머지 미국이 두번째로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하기 전날인 8월8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나섰다.그리고 한반도에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작전계획을 바꾸어 가면서 8월11일 밤 기계화군단을 포함한 소련군 25군 예하의 3개 군단과 2개사단이 황급히 한·소국경을 넘기 시작했다.미국은 소련군이 아직 한·소국경을 넘지 않은 8월11일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한 분할선을 부랴부랴 그어버렸다. 여러 증언을 종합하면 이날 하오 2∼3시 사이에 분할선을 긋기까지 워싱턴 미 육군성 차관보 부속실 벽시계바늘은 고작 30분을 움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분단의 역사는 너무 길었다. ◎“16세부터 노역·위안부… 한 어찌 풀까”/종군위안부 강덕경 할머니 증언/「역사의 진상」낱낱이 파헤쳐 사죄 반드시 받아야/민간기금으로 「과거」 무마 시도 일 태도 용납못해 「민간 위로금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일본찌 정부가 낱낱이 진상을 밝히고 과거의 죄과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해야 합니다.일본 정부가 종군위안부 문제를 민간기금을 가지고 위로금을 지급하는 형식으로 무마하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일본 제국군의 위안부로 끌려갔던 강덕경할머니(66)는 민족자존이 회복되길 바랄뿐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노했다. 『철 모르는 나이에 끌려가 아무 죄도 없이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생을 해야 했던 위안부 피해자들의 50년이 넘는 아픔을 누가 알겠습니까.세월을 탓하며 사라져 간 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넋을 다소나마 어루만져 주기 위해서도 사죄는 받아내야 합니다』 진주에서 태어난 강덕경할머니는 16세때인 1944년 요시노국민학교(현재의 중앙국민학교) 고등과 1학년 재학중 여자근로정신대 1기생으로 일본에 끌려가 후지코시 비행기공장에서 부품깎는 일을 했다.감옥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이 너무 고달파서 한밤중에 도망을 치다 군인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부대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됐다. 위안부 생활이 남긴 급성신우신장염으로 시달리고 있지만 그는 유엔인권위원회,세계인권대회,국제사법재판소등을 통해 반세기 동안 청산되지 않은 군위안부 문제를 국제여론화하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활동에 참여해 왔다.『한국 역사의 수치라고 생각하고 덮어 두어서는 안된다』는 강할머니는 민간단체들이 마련해 준 서울 혜화동 「나눔의 집」에서 같은 처지의 할머니 여섯분과 살고 있다.
  • 음주 풍속도(외언내언)

    우리는 술에 대해 비교적 관대해온 사회였던 것 같다.술에 핑계대면 웬만한 실수도 쉽게 용서를 받고,취중에 한 짓은 별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은근히 만연해 있다.사람을 소개할 때도 흔히 주량을 기준으로 한다.『말술을 마시는 사람』이라고 하면 호탕하고 대범한 사람인 것처럼 평가되기도 하고 『술 한말 지고 가라면 못지고가도 마시고는 갈수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면 걸출한 사람인 것 같은 분위기를 띠게도 된다. 모든 행사에서는 취하도록 마시는 것을 성과로 여기고 술때문에 폐인이 되어버린 사람이 아니라도 자주 인사불성이 되어 길에 누워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특성이 잘 드러나는 것이 연말연시의 술추렴이고 대학가의 음주 풍속이다.망년회 폭주가 예사로 죽음을 부르고 신입생 환영주가 젊음의 꽃봉오리를 피기도 전에 지워버리는 경우가 해마다 숱하게 생긴다.올 연말에도 술에 의한 횡액의 희생이 적지 않았고 대학사회에서는 온갖 술마시기 유행이 연신 창출되고 있다. 「원자폭탄」이니 「수소폭탄」이니 하는폭탄시리즈는 올드 패션이 되었고 「파도타기」「네버게임」「진실게임」「흑기사와 흑장미」「숫자부르기」「우리말 애용하기」따위 술마시기 이름이 대학가에 새록새록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젊음의 낭만과 어우러지는 대학가의 풍습이므로 새로운 것이 개발되는 일은 이해할 수 있지만 새 이름이 생겨날 때마다 더욱 자극적이고 「죽음에 이르는」위험을 동반하는 것은 옳은 발전이 아니다.젊은이 어른 할 것 없이 이렇게 거칠고 과격한 음주풍습으로 치닫는 것은,비명횡사를 부르기도 하고 사회를 황폐하게 만들고 무책임한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술은 배울 때부터 조심해야 평생동안 술로 인한 후회를 하지않는다고 술예법을 익혀주시던 것이 우리네 선인들의 지혜였다.그런 전통을 살리는 노력으로라도 잘못되어가고 있는 술풍습은 바로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싶다.
  • 미,50년대 북·중에 원폭 투하계획/합참본부 한국전 극비문서 공개

    ◎중국의 대북원조 종식시키려 단행 검토 미국이 한국전쟁 직후인 지난 54년 북한과 중국·만주일대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에 관한 극비문서사본이 한 대학 연구소에 의해 공개됐다.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소장 최영희·사학과)는 27일 이 연구소 객원교수인 방선주박사(워싱턴 거주)가 지난달 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지시로 비밀해제된 한국전 관련 극비문서중 하나인 「한반도와 인도차이나에서의 중국 공산당의 침략예측 보고서」(Possible CHICOM Aggression in Koreaand Indochina) 사본을 보내왔다며 이날 전문을 공개했다. 미 합동참모본부가 54년 4월17일 작성한 이 극비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쟁이 종결됐음에도 불구,중국이 북한에 대한 대규모 군사원조등 미국에 대항하는 적대행위를 계속할 경우 만주와 북한내 군사시설물에 대한 원폭투하를 가장 우선적으로 실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 『한반도 일원에서 중국의 전쟁수행능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중국 본토에 대한 대규모 공중폭격을 단행해야 한다』면서 『미지상군의 피해를 극소화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재래식무기 및 원자폭탄을 투하,적군을 일시에 섬멸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어 『중국에 대한 공중폭격을 감행할 경우 중국의 공산화 야욕을 분쇄하기 위해 중국내 목표물에 대한 신중한 선별폭격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와함께 중국해안과 연안 도서들을 봉쇄하는 한편 중국본토 상륙을 위해 대만의 국민당 군대를 이용한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이번 작전계획은 미합참본부 「합동전략계획위원회」(JointStrategic Plans Committee)가 54년 4월16일 내부회의를 거쳐 작성한 것으로 각 예하부대는 이 계획에 따라 필요한 세부 작전계획을 수립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림대 이삼성교수(정치외교학)는 『미국은 실제로 54년 5월 베트남 서북부 「디엔비엔푸」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열세에 몰리자 이를 지원하기 위해 월맹군 진지에 원폭을 투하하려 했으나 NATO회원국과 아시아국가들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된 바 있다』며 『중국 원폭투하계획도 미아이젠하워 정부의 공산진영에 대한 「대량보복전략」(Massive Retaliation)의 일환으로 보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또 『미국은 실제로 지난 58년 한국에 「제4미사일 사령부」(The Fourth US Missile Command)를 설치,이곳에 전술핵무기인 「어네스트 존」을 배치한 바 있다』고 밝히고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50년대 중·후반기 미국의 대한반도 핵정책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 일제 세균무기 연구문서 발견/방위청 도서관서

    ◎“적성국 멸족 기도” 입증 【도쿄=강석진특파원】 일본제국군이 태평양전쟁 발발 다음해인 1942년 미드웨이해전에서 패하자 「적성민족멸망」을 목적으로 하는 전파·광선·세균 등 결전용 무기의 개발을 적극 추진했음을 보여주는 군문서가 방위청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발견됐다고 일본의 니혼케이자이신문이 8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42년3월 미국의 원자폭탄 연구에 관한 정보가 입수되고 6월에는 미드웨이해전에서 해군의 주요 함선을 잃는 등 전세가 불리하게 되면서 일본군 수뇌부가 결전무기의 개발에 기울어지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문서라고 평가했다. 릿쿄대학 강사인 이코 도시야씨가 발견한 이 문서는 42년8월15일 참모본부 작전과 제1부장 등이 작성한 모두 14쪽의 「결전병기고안에 관한 작전상의 요망」이라는 문서로 지금까지 부분적으로 인용된 경우가 있었으나 전문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 미 「원폭기념우표」에 일강력 반발

    ◎“피폭상처 자극” 정계·언론계 떠들썩/「전쟁종식 앞당겼다」 문구도 못마땅 일본은 2일 미국정부가 원자폭탄 투하 뒤의 버섯구름을 일본에 대한 승전기념우표세트(10장)의 하나로 채택한 사실이 전해지자 강력한 반발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그 우표도안의 하단에 「원자탄은 전쟁을 빨리 종결시켰다」고 적힌 문구에도 못마땅한 것 같다. 뉴스가 전해진 2일 고노 요헤이(하야양평) 외상은 『피폭국민의 감정으로 말하면 결코 좋은 느낌은 아니다』라면서 『우리 감정을 어떤 형태로든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도 『국민감정을 거스르는 것은 곤난하다』고 강한 불쾌감을 표시.이가라시 고조 관방장관도 『원폭으로 일본국민 30여만명이 죽었다.아직도 많은 사람이 원폭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이 아픔이 국민감정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점도 고려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또 정부각료의 잇따른 불쾌감표명에 이어 사회당의 세키야마 노부유키(관산신지) 정책심의회장이 『원폭은 써서는 안될 무기다.(미국이) 인식부족으로 깊이 생각지 못한 행동』이라고 강력반발. 정계만이 아니다.마이니치신문은 『무신경한 행위』라면서 『미국의 양심은 유태인 학살에는 강한 관심을 보여 기념관까지 건설하면서 일본의 원폭희생자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인종편견의 심리가 작용한 것은 아닌가』라고 묻고 있다.히로시마와 나가사키시장 등도 유감을 표명했다. 미국 스미소니언항공우주박물관이 원폭투하 50주년 특별전의 원폭피해내용을 일부 바꾼 사실이 일본인의 아픈 마음을 건드린 지도 얼마되지 않은 터다. 하지만 이번 일을 보면서 근대화이후 패전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침략행위를 통해 우리나라와 중국 등 아시아인을 처절하게 짓밟은 데 대해서는 아직도 이런저런 알쏭달쏭한 말로 피해나가고 그에 대해 아시아인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일본이 정말 알게 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기소불욕물시어인이라는 말을 일본인이 일찍 깨달았다면 아시아의 선린우호관계가 한세기는 먼저 자리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 구소,군동원 「인체 핵실험」/54년 우랄서

    ◎4만여명 폭심 진입… 상당수 사망/일 마이니치,당시 비디오 입수 폭로 【도쿄=강석진특파원】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은 20일 구소련이 지난 50년대와 60년대에 실시한 비밀 핵실험훈련의 영상을 입수했다면서 당시로서는 세계 최대급의 슈퍼 수소폭탄 폭발모습을 1면 머리기사 및 사회면 2개면에 걸쳐 보도했다. 이 신문은 히로시마 투하 원자폭탄의 1천5백∼3천배 위력을 가진 슈퍼수소폭탄 및 원자폭탄 실험과 「인체실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군사훈련 및 구소련의 핵전략이 기록돼 있다고 전했다. 비디오에 담긴 강력 수소폭탄 실험은 61년 2차례 노바야젬랴에서 실시된 30메가t,58메가t의 슈퍼 수폭실험 기록으로 추정되며 「세계에서 행해진 최대의 핵실험.수천만톤의 위력」이라는 해설이 붙어 있어 냉전이 피크를 이루고 있던 당시 소련이 핵전력의 확충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음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또 비디오에 담긴 영상에는 한국전이 끝난 1년 뒤인 54년 9월 우랄평원 남부의 인구밀집도시인 쿠이비셰프시 부근에서 플루토늄 원자폭탄을실제 투하한 뒤 아무런 방호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병사들을 폭발 중심지로 진격시키는 인명경시의 「인체실험」도 행해졌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당시 소련군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과의 핵전을 가상,실험동물등을 폭탄투하지역에 배치해 생물영향을 확인했을 뿐 아니라 병사 4만7천여명을 투하 1시간만에 방호장비 없이 폭심에 진격시킴으로써 이 가운데 상당수가 피폭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 “일본 종전직전 살인광선 개발”/일국회 도서관 자료 공개

    ◎3m거리서 토끼쏘여 죽여 성공/원폭연구 이론계산수준 머물러 【도쿄=강석진특파원】 일본이 2차대전중 살인광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으며 원자탄도 개발하고 있었던 사실이 13일 밝혀졌다.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은 이같은 사실이 일본 국회 도서관 연합군 총사령부(GHQ)자료속에서 조사이 대학의 마쓰모토 미와오 교수 등에 의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이들 자료는 일본이 항복한뒤 미국의 조사단이 일본을 방문,관련 과학자들을 조사한뒤 작성한 것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전쟁말기에 내각기술원 총재 등을 역임하면서 전시 과학동원에 앞장섰던 야기 슈지 박사는 미국조사단에 『일본 육군이 살인광선을 개발,토끼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 성공했다.인체실험은 미처 실시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살인광선은 4㎾의 극초단파로 3m거리의 토끼를 죽였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전후 중간자이론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유가와 히데키 박사의 연구실에서도 원자탄 개발과 관련된 문제들이 미군의 압수수색으로 발견됐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이 문서들은 원자폭탄의 이론적 계산이 이뤄지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 구소/40년전 5만명 원폭실험/폭발현장으로 내몰아 방사능위력 측정

    ◎대미 전력우위 확보에 인명·환경 외면/러 이타르통신 폭로 지금부터 꼭 40년전 구소련이 인간을 대상으로 원자폭탄의 위력을 처음으로 실험한 사실이 있다고 이타르 타스통신이 폭로했다.당시 소련은 미국에 뒤지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인명과 환경오염문제는 전적으로 도외시했다.다음은 타스통신의 보도요지. 54년9월14일 최근 미·러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된 러시아남부 토츠크의 특수군사훈련장에서 게오르기 주코프원수(당시 제1국방차관)의 지휘아래 소련은 사람을 대상으로 원자폭탄의 폭발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했다. 이날 핵실험으로 4만5천명의 군인과 인근주민 1천여명이 원폭의 방사능에 그대로 노출됐다.당시 원폭의 폭발력은 3만5천∼4만t의 TNT 위력에 해당했으며 방사선복사도도 1·5뢴트겐으로 매우 강력했다.부근에 집결해 있던 군부대들은 충격파가 사라지기를 기다려 일시에 폭발현장으로 돌진했다. 당시 타스통신은 이날의 실험과 관련,『과학연구계획에 따라 소련이 원자무기의 한 종류를 실험했다.실험결과 소련은원폭공격으로부터 조국을 방위할 수 있는 고귀한 자료를 얻게 됐다』고 보도했다.비극은 지난 40년간 이렇게 베일속에 덮여 있었다. 당시 소련의 핵무기연구를 주도한 과학자들중 하나인 유리 하리톤(90)박사는 최근 당시의 핵실험에 대해 『당시 핵실험의 장단점을 세세한 부분까지 고려하지 못한 것을 이제 와서 감출 필요는 없다.우리는 인류멸종의 위험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미국보다 뒤지지 않는 것만이 1차적 과제였다』고 밝히고 『당시 핵폭발의 충격은 과학자들까지 두려움에 떨게 할 정도였지만 KGB의장 베리야는 쾌재를 불렀다』고 덧붙였다.
  • 태풍반경 630㎞ “비켜가도 큰피해”/「더그」 위력과 예상진로

    ◎중심에너지 히로시마원폭 1만배/북북동진땐 한반도 전체가 영향권 중심부근 최대풍속이 시속 1백55㎞. 성능 좋은 승용차가 4차선 고속도로를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처럼 빠른 바람이다. 또 태풍반경이 6백30㎞로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한꺼번에 뒤덮을 크기여서 엄청난 강수량을 동반하고 있다. A급 초대형으로 분류되는 제13호 태풍 더그의 험상궂은 모습이다. 이같은 태풍이 시시각각 우리나라쪽으로 접근해옴에 따라 그 위력과 진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기상전문가들은 태풍 더그에 의한 피해규모는 차치하더라도 그 위력 자체에 있어서는 지난 59년 9월 남해안 지역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사망 7백50명,이재민 30여만명으로 우리나라 사상최악의 피해를 냈던 태풍 사라에 견줄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태풍은 중심기압이 8일 하오11시 현재 9백60헥토파스칼이고 중심부근 최대풍속은 초속 37m여서 우리나라를 지날 당시 중심기압 9백51헥토파스칼,최대풍속 46m였던 사라보다는 위력이 약한 편. 또 초속 25m 이상의 바람이 부는 반경이 3백60㎞,초속 15m 이상 반경이 6백30㎞여서 그 영향은 중국과 한반도,일본에 한꺼번에 미칠만하다. 기상학자들은 이같은 태풍의 위력을 보통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됐던 원자폭탄 1만개 이상의 파괴력을 지닌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태풍은 전체 에너지의 90% 이상을 자체 기류상승과 이동등에 소모하며 해상에서 육지로 상륙하면서는 세력이 급격히 떨어져 육지에 미치는 위력은 아주 작은 부분이다. 그러나 이번 더그는 우리나라로 방향을 틀때까지도 위력이 별로 줄지 않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어 그 피해규모가 우려된다. 실제로 바람의 초속이 25m면 사람이 서있기조차 힘들고 35m이상이면 나무가 뽑히고 목조가옥이 날아갈 정도여서 중심부근 초속 43m인 더그의 실체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태풍은 중심기압(단위 헥토파스칼)에 따라 ▲A급(9백20∼9백50) ▲B급(9백50∼9백80) ▲C급(9백80 이상)으로 나뉘는데 이번 더그는 지난 6일 9백25,8일 새벽 9백35,8일 하오 9백50 헥토파스칼 등으로 중심기압이 높아지기는 했으나 발생당시부터 워낙 큰 규모로 올라와 세력이 쉽게 약화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태풍 더그의 진로는 현재 북북동 내지 북동진으로 좁혀질 공산이 커 우리나라는 어쩔수 없이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우리나라는 남부에서부터 북부까지 전체가 영향권에 든다. 이밖에 더그가 현재의 진로대로 북쪽으로 곧바로 올라가든지 일본쪽으로 동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으나 기상청은 우리나라로 접근할 가능성이 훨씬 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태풍은 대개 초반에는 북서진을 하다가 북위30도(양자강∼오키나와 북단) 이상에서부터는 북동쪽으로 기울어 진행하기 때문이다.
  • 한국원폭희생자에 애도전문/일 관방장관,각료로는 처음

    이가라시 고조(오십람광삼)일본 관방장관은 6일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에서 열린 제27회 한국원폭희생자 추도식에 신영수 한국원폭피해자협회회장앞으로 전문을 보내 한국원폭희생자들에 대해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가라시장관은 이날 추도식에서 이 협회 서석우부회장이 대독한 메시지를 통해 『원폭이 투하된 지 49주년을 맞아 고향으로부터 끌려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에 희생당한 영정들앞에 애도의 뜻을 표하며 지금도 원폭의 장애로 고생하고 있는 희생자 및 가족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인사를 드린다』며 『우리는 평화헌법하에 국시에 있는 비핵3원칙을 견지함과 동시에 이같은 원폭의 참화가 두번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세계각국에 핵무기의 궁극적 폐기와 전쟁반대를 결의한다』고 밝혔다. 서부회장은 이와 관련,『일본내각의 고위인사가 원폭희생자 추도식에 메시지를 보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 이민 간 「직지심체요절」/신재인(서울광장)

    청주는 아직도 그 고운 자태가 때묻지 않은 넉넉하고 편안한 마을이다.너무 화려하게 개발되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벽촌처럼 고립되어 있지도 않다.내가 있는 대전에서 엑스포 덕을 본 신작로를 따라가면 반시간이면 금방 목에 와 닿게 된다.그래서 가끔 고향의 냄새가 나는,그리고 어머님의 손때가 묻은 음식을 먹고 싶을 때에는 소리없이 이 소박한 마을을 찾아 들어간다.그리고 우연히 한 음식점에서,나기정 청주시장을 만나 뵙게 된다. 그분은 인심좋은 동네 아저씨와 같은 표정을 하고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도 마음을 크게 열고 악수를 청한다.그리고 조금 딱딱하다 싶은 명함을 꺼내어 준다.명함에 있는 직함은 대한민국 청주시장이다.주소에도 어김없이 대한민국이 들어가 있다.아마도 청주시가 중국의 연길시와 자매결연이 되어 있어서 외국사람들을 많이 접촉하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분명하게 쓰고 있는 것 같다.그런데 그 명함 뒷면에는 마치 사진우편엽서처럼 초가집 모양을 본뜬 현대식 건물사진을 인쇄해 놓고 청주 고인쇄 박물관(직지심체요절)이라적고 있다.아마 흥덕사라는 절이 옆에 있는지 둥그런 부채살 무늬의 흥덕사 입구도 사진의 오른쪽 끝에 수줍게 앉아 있다.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사진을 명함의 뒷면에 자리잡게 한 그 연유를 묻게 되었다. 센강을 옆에 끼고서 파리는 성당,박물관,궁전,개선문,오페라하우스,에펠탑등 자랑스런 문화와 예술의 유산으로 화려한 치장을 하고 있다.그중에서도 국립도서관은 빼어난 외모는 없지만 그 안에 소장되어 있는 많은 귀중한 책들의 원전이 있어서 프랑스 국민 모두가 사랑하는 시설중 하나가 된다.뷔용,라블레,파스칼이 지은 원전들도 여기에 있고 구텐베르크의 성서 두권도 그곳에 있다.그리고 이 도서관 안에는 동양문헌실이 있고 그 오른쪽 조그마한 방은 보통 잠겨 있어서 일반인의 관람이 허락되어 있지 않고 있다.그 방안에는 조선말기에 프랑스 대리공사로 우리나라에 나와 있던 콜랭드 플랑시가 수집해서 가져간 그리고 후에 소유권이 프랑스 정부로 귀속된 한국의 고전 「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하권이 조심스럽게 보관되어 있다.이 책은 그 말미에 1377년 청주목의 흥덕사 주지가 인쇄한 것으로 적혀있고 인쇄방법은 금속활자를 사용하였다.이것은 서양에서 구텐베르크가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사용한 시기보다 무려 70년이나 앞선 것이어서 1972년 세계 도서의 해에 프랑스 정부는 인류역사상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으로 유네스코로부터 공인을 받게 되었다.그래서 아주까리 기름 냄새가 베어나는 한지로 만든 우리나라의 고전 원본인 이 「직지심체요절」은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의 한가운데서 밀폐되어 꼭 필요한 사람만이 알현하는 보물이 되어 버렸다. 1985년 청주시는 주택난을 덜기 위해서 운천동에 택지개발을 하고 있었다.그리고 흙속에서 「서원부 흥덕사」라고 새겨진 쇠북과 「황룡십년 흥덕사」라고 새겨진 큰 그릇 뚜껑을 찾게 되었다.그리고 이 문화유물들은 우리가 그렇게 찾고 있었던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금속활자로 책을 인쇄하였던 장소 「흥덕사」가 바로 그곳이라는 사실을 감격적으로 입증해주었다.그러나 사실 그곳의 세계 기술사적인 가치에 대한 평가는 정부와 국민들로부터 높게인정받지를 못하였다.그래서 프랑스를 방문해서 그곳 사람들로부터 우리나라의 훌륭한 문화유산에 대한 칭찬 특히 「직지심체요절」이란 책에 대한 설명을 들은 분께서 한국에 돌아와 흥덕사터를 찾고 그곳에 조그마한 박물관을 짓도록 할 때까지 그자리는 그저 동네 아이들이 즐겨 찾는 빈터에 불과했었다.그러나 이제는 그 자리에 아담한 박물관이 서 있다.그리고 그 안에는 우리나라 옛날 훌륭한 책들의 원본과 사본들이 전시되어 있다.그렇지만 아직도 그곳에는 그 자리에서 세계 처음으로 금속활자로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은 없고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그것이 안타까워 청주시장은 자기의 명함 뒷면에 박물관의 사진을 넣어 못다한 말을 하려고 한다.8월5일에는 북한 핵문제가 중심이 된 북미 회담이 열리고 8월6일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이며 8월15일은 광복절이다.기술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데 우리 기술이 앉아 있는 집은 빈집뿐이어서 가슴이 허전하다.
  • 북 2천10년 플루토늄/원폭 2백60개분 확보/미안보연 보고서

    【도쿄 연합】 미국의 과학·국제안전보장연구소(소장 데이비드 울브라이트)는 북한이 현재대로 핵개발을 진행하면 오는 2천10년에는 원자폭탄 2백60개분의 플루토늄을 확보할 것이라는 긴급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1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연구소는 30일 작성한 「향후 16년간 북한이 생산·보유할 플루토늄량을 추정하는 긴급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히고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북한은 이스라엘이나 인도를 능가하는 핵강대국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민자,「민주 이대표 회견내용」 비난 공세

    ◎“야대표가 「북제재 반대」라니…” 맹공/“원폭제조해도 방관하자는 얘기냐” 힐난/존망걸린 문제 국책불명발언 취소요구 민자당은 14일 민주당 이기택대표의 기자회견과 관련,김종필대표가 기자간담회를 통해 조목조목 반박한 것을 비롯,모든 당직자가 한 목소리로 강도 높은 비난공세를 퍼부었다. 김대표는 이날 하오 긴급고위당직자회의를 소집,이대표의 회견에 대한 당의 대응방향과 수위를 조절한 뒤 전체 당직자가 배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갖고 이대표의 발언을 『어불성설』 『국적불명의 발언』『당치않은 소리』『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표현』등으로 지칭하며 격앙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김대표는 『한 없이 긴장상태가 조성돼 가는 상황에서 야당의 대표가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말문을 연 뒤 『나라에 우려스런 상황이 조성될 때는 비록 야당이라 하더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협력하는 자세가 정상이며 상식인데 그렇지 못한 이대표의 자세는 대단히 유감』이라고 공박. 김대표는 특히 지금의 위기상황은 정부가 조성한 것이라는 이대표의 주장에 대해 『북한으로하여금 원자폭탄을 만들도록 내버려두고 방관하자는 얘기냐』고 반문한 뒤 『북한이 왜 핵을 가지려 하고 누구를 향해 사용하려 하는가를 생각해 볼 때 제재를 하지 말라는 이대표는 과연 한국사람인지 묻고 싶다』고 목청을 높였다. 김대표는 이어 『북한의 핵문제는 정책 이전에 우리의 생사,대한민국의 흥망에 관한 문제로 이대표는 제재가 안된다는 발상이 어디서 나왔는지 되살펴보고 오늘 아침의 국적불명발언을 거둬주기 바란다』고 요구. 한편 이날 민자당 당직자들은 그동안 대야 비난발언을 자제하던 모습을 바꿔 『망발을 서슴지 않은데 대해 경악과 분노를 느낀다』(문정수사무총장),『양식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서청원정무장관),『현실인식의 무지이며 시대착오적인 작태』(박범진대변인),『더듬이가 잘린 곤충과 같이 방향을 못잡는 행태』등 일제히 원색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이기택 민주대표 일문일답/북핵 일괄타결 불변… 독자제재 반대/「상무대국조」 신문광고·탄핵 관철 ­북한이 핵무기보유 의도를 갖고 있다는 안기부의 보고는 핵개발이 협상용이라는 전제아래 성립한 민주당의 일괄타결안의 현실성에 의문을 주고 있다.당론을 변경할 용의는. ▲안기부장의 국회보고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당론은 변함없이 일괄타결방식에 의한 해결이다.유엔제재에는 승복할 수밖에 없지만 미국중심의 제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미국중심의 제재는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엔제재를 수용하겠다는 것과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우리는 유엔회원국이다.따라서 유엔의 이름으로 제재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북한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직접 특사형식으로 북한을 방문할 용의는. ▲정부가 받아들인다면 갈 용의가 있다.북한핵문제를 해결하고 지금의 전쟁위기를 극복하는데 보탬이 될 것이다.내가 먼저 방북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은 사안이 미묘해 물의를 빚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상무대사건 국정조사와 관련,대통령도 탄핵대상에 포함시킬것인가. ▲조사과정에서 비위사실이 드러나면 예외가 될 수 없다. ­정부는 대북제재를 포기하고 북한은 IAEA탈퇴를 철회하라는 식의 촉구성 발언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일리가 있다고 인정한다.그러나 먼저 정부가 남북실무접촉등을 통한 대화노력에 최선을 다했는지 묻고 싶다.이제는 미국이 직접 대화에 나서야 한다.3차고위급회담을 열어야 한다. ­북한의 IAEA탈퇴로 긴박해진 상황에서 상무대사건 국정조사를 계속 문제삼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여야가 힘을 합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잘 알고 있다.그러나 상무대사건 국정조사 역시 유야무야 넘길 일이 아니다.신문광고와 탄핵을 관철시키겠다.국민심판을 기다리겠지만 우선적인 책임은 정부와 여당이 져야 한다.
  • 일 중의원 의원 또 망언/이시하라/“남경대학살은 허구로 가득찬것”

    ◎“나가노 전법상 문책은 졸속행동” 【도쿄 연합】 일본 정계의 보수·우익 인사중 한사람인 이시하라 신타로(석원신태낭·자민)중의원의원은 2일 『남경대학살은 허구에 가득차 있는 것으로 하타 총리가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전법상을 문책한 것은 졸속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했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공저,대미비판에 앞장서기도 했던 이시하라 의원은 이날 중의원 예산위 질의를 통해 『원자폭탄 투하나 나치의 유태인 학살과 같은 차원에서 남경문제를 취급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면서 망언을 늘어놓았다. 그는 하타 총리에게 당시 남경대학살의 희생자수와 진상에 관해 중국과 공동조사를 벌이라고 요구했다. 하타 총리는 그러나 『나가노 전법상의 문제발언을 중국 정부는 양해해 주었으나 중국의 민중들은 아직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중국뿐만아니라 아시아에는 전쟁으로 인해 깊은 슬픔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며 미래지향적인 측면에서 볼때도 시대를 역행하는 것과 같은 행위는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 원자로 이력서 핵봉 전용여부 열쇠/보관방법 싸고 왜 대립하나

    ◎“최초노심 확임에 분리 보관 필수”/IAEA/“섞였어도 일지 등 통해 계측 가능”/북한 녕변원자로의 연료봉교체 입회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합의결렬로 북핵문제가 다시 어려운 국면으로 전환됐다.이를 계기로 연료봉교체를 둘러싸고 문제가 되고 있는 기술적 쟁점들은 어떤 것들인지 알아본다. 핵연료교체를 둘러싼 북한과 IAEA간 의견대립의 초점은 「북한이 과거 플루토늄을 만들어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86년부터 가동된 이 원자로는 연료교환주기가 6∼7년으로 『가동후 일부 기술적 이유로 부분 연료교체한 것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전체연료교환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북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미 교환시점을 넘어선 상태다.그러나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후 전개된 복잡한 국제상황속에 계속 작업이 미뤄지다 이번에 전격적 연료교환 시작 통보와 함께 문제가 전면으로 불거져나왔다. IAEA는 북한의 NPT 탈퇴전 북한의 핵현황을 초기점검하는 과정에서 이 원자로의 연료봉도 일부 표본조사하려 했었으나 당시 연료봉을 끌어올리는데 필요한 원격조종팔이 고장났다는 북한측의 설명에 따라 추후 연료전체 교환때 조사키로 미룬바 있다.이 원자로는 비록 소형이지만 전체연료를 교환하면 폐연료봉에서 4∼5개의 원자폭탄을 만들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할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즉 폐연료봉속에 우라늄 238과 중성자가 핵반응을 일으키면서 생성된 플루토늄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이를 분리하는 시설이 지난 3월 사찰에서 완수하지 못했다가 이번에 추가사찰을 받은 녕변 핵단지내에 있는 방사화학실험실(사실상의 재처리시설)이다.따라서 핵물질 전용방지를 위해 원자로 연료교체시는 IAEA 사찰단이 반드시 입회하게 되어 있다. 이번 사찰단은 이 「전용방지」와 관련,두가지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즉,▲폐연료봉에서 북한이 플루토늄을 추출하지 못하도록 IAEA의 엄격한 감시아래 두고 ▲이 연료봉중 일부를 임의 선정,표본검사함으로써 이 원자로의 지금까지의 가동이력을 확인하는 것이었다.첫번째 항에는 북한도 「담보의 연속성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이의를달지 않았으나 두번째 「가동이력」확인 방식과 관련,북한과 IAEA는 첨예하게 대립했다. IAEA는 이 연료봉들이 북한주장대로 「최초노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표본용 연료봉들을 사찰단이 임의로 선정,별도로 장착위치 등을 표시해 다른 연료봉들과 섞이지 않도록 따로 보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연료봉계측활동은 북·미회담등의 결과 핵문제가 완전타결된 이후에야 허용하겠다는 북측 입장 때문에 추후계측활동을 위해서는 이같은 사전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IAEA는 녕변원자로 특성상 각 연료 장착부위별로 연소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 연료봉들이 86년에 장착된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이같은 측정방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폐연료에 대한 정밀방사성측정을 통해 IAEA는 해당연료봉들이 핵분열을 일으키면서 변화하게 되는 성분비율을 분석함으로써 연료봉의 장착연도를 확인할수 있게 된다.따라서 표본추출된 연료봉중 「지나치게 핵분열이 덜된」 연료봉이 있을 경우 이 연료봉은 중간에 교체된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게 되고 이는 다른 곳으로 빼돌려진 연료봉의 존재와 여기서 추출,은닉된 플루토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에 대해 모든 연료봉들을 위치특정없이 일괄수거,혼합보관하는 방법을 고수하면서 그러나 『핵문제 일괄타결시 나중에 계측가능성은 보장하겠다』는 기본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점과 관련,운전일지 등을 통해 연료봉의 일련번호등과 장착위치 등을 확인,대조하면 연료봉을 섞어 보관하더라도 나중에 필요로하는 연료봉들을 찾아내 계측하는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북한측 기록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조작 가능성 배제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날카로운 대립을 빚고 있는 쟁점에 대한 합리적이고도 필요충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IAEA측의 입장이다.
  • 일,플루토늄 70㎏축적 시인/과기청관리

    ◎“핵전용 불가능… 가동지속” 발표/“원료 생산중지·행불규명 촉구”/미 핵관리연 【도쿄 AP AFP 연합】 일본 과학기술청 관리들은 10일 동력로·핵연료(동연)개발사업단 산하 플루토늄연료공장 기기에서 당초측정된 것보다 더 많은 70㎏상당의 플루토늄이 축적돼 있었음을 인정했다. 과학기술청 관리들은 이날 이바라기(자성)현 도카이무라(동해촌)에 있는 플루토늄공장의 연료처리기기에 이같은 양의 플루토늄이 축적돼 있었다고 확인하면서,그러나 이 플루토늄이 핵폭탄을 제조하는 데 사용됐을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동연의 대변인은 『그렇게 많은 플루토늄이 생산공정기기에 부착돼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연료공장측에 이를 줄이라고 촉구해왔다고 전했다. 플루토늄연료공장의 대변인도 이 플루토늄이 지난 88년 공장가동이래 생산공정기기속에 부착된 것이라고 밝히면서,그러나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공장의 가동을 중지시키라는 요구를 일축했다. 이에 앞서 미국의 민간연구소인 핵관리연구소의 폴레벤탈소장은 9일 동연핵연료공장의 플루토늄 대량부착과 관련,『 최소한 원자폭탄 9개분에 해당하는 대량의 플루토늄이 생산공정에 남아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지적하고 일본정부에 공장의 즉각적인 가동중지를 요구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서한을 미국무부에 보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