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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원폭 62주년… 서러운 한국인 피폭자

    |도쿄 박홍기특파원|6일 ‘원폭의 날’을 맞은 일본은 추모에 바빴다.62년 전인 1945년 8월6일 오전 8시15분 히로시마에 인류 역사상 처음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에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자리였다. 원폭이 떨어진 시간인 오전 8시15분 ‘원폭 사망자 위령식·평화기원식’이 열린 히로시마의 ‘평화기념 공원’에서는 평화의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동시에 묵념도 이어졌다. 그러나 올해도 역시 한국인의 피폭자들을 위한 사죄는커녕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때문에 이날은 강제로 일본에 끌려와 히로시마에서, 나가사키에서 원폭을 맞은 한국인들에게는 서럽기 짝이 없는 날이기도 했다. 7만여명에 달했던 한국의 피폭자들은 세월 탓에 2650명 정도밖에 생존해 있지 않다. 사죄를 요구하는 피폭자와 시민단체들에 1965년 한·일 기본협정에 따라 책임배상이 종료됐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게 일본 정부다. 더구나 일본 후생노동성은 한국인 피폭자들에 대한 특별수당 등의 지원도 지자체의 관할에 있다는 이유로 정확한 통계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언론도 한국인 피폭자들에게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다. 평화기념 공원의 행사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비롯, 피폭자와 사망자의 유족 등 4만여명이 참석했다. 위령비에는 지난 한 해 숨진 5221명을 추가한 25만 3800명의 원폭 사망자 명부가 바쳐졌다. 특히 규마 후미오 전 방위상이 지난달 2일 원폭 투하와 관련,“어쩔 수 없었다.”는 발언 탓에 행사는 한층 관심이 높았다. 일본의 언론들은 이날 당시 피폭자나 유족들을 인터뷰하는 등 특집을 싣는가 하면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을 겨냥,“일본으로서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며 책임을 묻는 목소리를 여느 때보다 높였다. 그러나 왜 ‘유일하게’ 피폭을 당했는지에 대해 자성하는 목소리는 묻혀 있었다. 가해자로서의 전쟁이 아닌 원폭에 당한 ‘억울한’ 피해자로서의 전쟁을 바라볼 뿐이다. 전쟁의 책임을 아예 망각한 듯싶을 정도다. 아키바 다다토시 히로시마 시장은 행사에서 평화선언을 통해 “유일한 피폭국인 일본 정부는 겸허하게 피폭의 실상과 피폭자의 철학을 배워 세계에 널리 알릴 책임이 있다.”면서 “일본 정부는 핵개발을 계속하는 미국의 정책에 반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추도사에서 “앞으로도 헌법의 규정을 준수해 국제평화를 희구하고 비핵화 3원칙을 견지해 갈 것을 다시 한번 맹세한다.”고 밝혔다. 또 규마 전 방위상의 원폭 정당화 발언과 관련,“피폭자의 마음을 매우 상하게 하는 결과가 됐다.”면서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hkpark@seoul.co.kr
  • 조지프 美특사 “원폭투하로 추가 희생 막았다”

    |도쿄 박홍기특파원|2차대전 당시 미국의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를 정당화한 규마 후미오 전 일본 방위상의 발언 파문이 아직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로버트 조지프 핵비확산 담당 특사가 “핵 폭탄 투하로 전쟁을 조기 종결, 결과적으로 많은 일본인의 생명을 구했다.”고 발언했다고 교도통신과 NHK 등이 4일 보도했다. 그는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자 그대로 수백만 일본인들의 목숨이 더 희생될지도 몰랐던 전쟁을 끝낸 것으로 모든 역사가가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아키바 다다토시 일본 히로시마 시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역사학자들 사이의 정설(定說)과도 맞지 않는 주장”이라며 “미국 정부 수뇌부는 히로시마 등 피해자들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또한 나가사키 피폭자이자 원자·수소폭탄철폐 일본국민회의 가와노 고이치 부의장은 “이처럼 (미국이) 원폭투하를 정당화하고 미국의 핵무기를 ‘정의의 핵무기’라고 주장하는 한 우리가 요구하는 핵무기 철폐는 실현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hkpark@seoul.co.kr
  • ‘美 원폭 정당 발언’ 日 방위상 경질

    |도쿄 박홍기특파원|미국의 2차대전 말기 원자폭탄 투하에 대해 “어쩔 수 없다.”면서 정당화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규마 후미오(66) 일본 방위상이 3일 사실상 경질됐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이날 규마 방위상의 사의를 수용했다. 아베 총리는 후임 방위상에 고이케 유리코(55) 국가안전보장 담당 총리보좌관을 내정했다. 여성 방위 수장은 방위성 전신인 방위청까지 포함해 처음이다. 고이케 내정자는 카이로대학을 나와 아랍어 통역과 방송인을 거쳐 정계에 진출한 뒤 고이즈미 내각에서 환경상 등을 역임했다. 아베 내각에서는 총리보좌관에 발탁돼 미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본뜬 ‘일본판 NSC’의 설치 준비를 주도해 왔다. 앞서 규마 방위상은 지난달 30일 미국의 원폭 투하를 두둔하는 발언을 한 이후 야당과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있을 수 없는 발언”이라는 등의 거센 비난과 함께 사임 요구를 받았다. 야당은 이날 아베 총리에게 규마 방위상의 파면을 건의했다. 아베 총리는 당초 규마 방위상을 감싸오다 여론 악화에 따른 참의원 선거(29일)에 대한 부담으로 경질을 택했다. 규마 방위상은 이날 아베 총리에게 사의를 표한 뒤 “(발언에 대해) 좀처럼 이해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총리에게 ‘스스로 매듭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규마 방위상은 나가사키 2구 출신 중의원 9선 의원으로 도쿄대를 졸업한 뒤 농수산성 공무원과 나가사키현 의회를 거쳐 정계에 진출, 방위청 장관과 자민당 간사장 대리, 총무회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아베 내각 출범 때 다시 방위청 장관에 취임한 뒤 지난 1월 방위성의 승격에 따라 초대 방위상이 됐다. 규마 방위상의 경질로 지난해 9월 출범한 아베 내각에서 교체된 각료는 3명이 됐다. 지난해 12월 사다 겐이치로 전 행정개혁상은 정치자금 문제로사임했으며, 지난 5월 마쓰오카 도시카쓰 전 농림수산상은 정치자금 의혹 문제로 자살했다.hkpark@seoul.co.kr
  • 美의 원폭투하 두둔 日방위상 발언 파문

    |도쿄 박홍기특파원|규마 후미오 일본 방위상이 지난 30일 “미국의 원폭투하는 어쩔 수 없었다.”라며 원폭투하를 두둔하는 발언을 해 파문을 빚고 있다. 특히 민주당 등 야당은 물론 해당 지역 및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강력하게 비난하며 규마 방위상의 파면까지 요구하고 있다. 규마 방위상은 1일 파장이 커지자 사과와 함께 발언의 취소를 통해 진화에 나섰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는 이날 지바현 레이타쿠대학의 강연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와 관련,“미국은 일본이 질 것을 뻔히 알고 있었는데도 굳이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그렇게 하면 일본도 반드시 항복을 하고 소련의 참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잘못했으면 홋카이도까지 소련에 먹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것으로 전쟁이 끝났다. 지금와서 보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방위상으로서 적절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비판했고 공산당 측은 “국회와 선거전에서 추궁해나갈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사민당은 성명을 통해 규마 방위상의 즉각 파면을 촉구했다.‘원·수폭금지 일본협의회’는 성명에서 “원폭투하로 21만명이 목숨을 잃고, 지금도 26만명의 생존 피해자가 고통을 겪고 있다.”며 비난했다. 한편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 내각과 자민당에서는 29일 치러질 참의원 선거를 의식,‘악재’를 미리 막기 위해 “유감이지만 고칠 이유가 없다.”며 소신을 내세우며 버티는 규마 방위상을 설득했다. 결국 규마 방위상은 1일 당의 의견을 수용, 기자회견을 통해 “피폭자를 경시한 인상을 줬다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hkpark@seoul.co.kr
  • “외부와 단절…” 중국 첫 비밀핵기지 ‘국영221공장’

    항상 베일속에 감쳐진 각국의 핵기지중 이웃한 중국의 첫 핵무기 개발기지는 어떤 곳일까? 중국CCTV는 12일 일명 ‘국영221공장’이라 불렸던 첫 핵기지의 비밀을 마지막 책임자였던 왕징항(王菁珩)과의 인터뷰를 통해 보도했다. 중국의 첫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개발을 성공시킨 ‘국영221공장’은 1958년 5월 31일 칭하이성(靑海省) 하이옌셴(海晏縣) 진인탄(金銀灘)에 건설되었다. 철근과 콘크리트로 단단히 지어진 이 기지는 지휘실, 통신실, 발전실등 총 8개 부분으로 구성돼 있으며 학교, 병원등의 편의시설까지 갖춰 외부세계와는 완전히 차단됐다. 진인탄 주변의 2000평방키로미터는 새도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철통같이 경비됐으며 지도상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기지의 연구인력은 대부분 베이징의 과학연구원과 동북의 군수공업에 종사했던 엔지니어들. 이들은 보안을 위해 결혼까지도 당국의 심사를 거쳐 배우자를 광산지대로 위장한 이곳으로 발령내 기지내에서 해결하게 했다. 왕징항은 “36년 동안 이곳 종사자들은 사진 한장도 남기지 않았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다.” 며 “조국의 발전과 핵무기 개발을 위해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다.”고 밝혔다. 재미있는 일화로 1957년 당시 중국의 유명 감독이었던 링즈펑(凌子風)이 만든 영화 ‘진인탄’이 영화제목이 핵기지 지명과 같다는 이유로 상영중에 중국정부에 의해 금지되었으나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다. 1995년 완전 폐쇄된 이 기지는 지난 4월 28일 관광지로 개발돼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사진=중국 CCTV 나우뉴스 신청미 기자 qingme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미래의 고고학 느껴보세요”

    |베니스 윤창수특파원| 세계 최대의 현대미술축제인 2007베니스 비엔날레가 8일(현지시간) 막을 올렸다. 올해로 52회. 거리 곳곳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상징 동물인 핑크빛 악어 조형물이 건물 벽에 나붙는 등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다. 베니스의 대표적인 공원지대인 카스텔로 자르디니에 자리잡은 한국관. 입구에 이르면 관객은 칠흑같은 어둠의 통로로 안내된다. 온통 검은 색의 전시장 한 가운데에는 섬뜩한 뼈다귀들이 조명을 받으며 서 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인 설치조각가 이형구(38)의 연작 ‘아니마투스’다. 유명 만화영화 ‘톰과 제리’의 주인공들이 살점은 사라지고 뼈만 남은 채 정교하게 처리돼 있다. 흑백의 대비 속에 레진(플라스틱 재료)으로 만든 인공뼈들은 마치 자연사박물관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씨는 “톰과 제리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로, 현재 이탈리아에서 TV만화로 방영 중인 점을 감안했다.”고 말했다. 이번 한국관은 1995년 개관 이래 처음으로 한 작가의 개인전으로 꾸며져 특히 관심을 모은다. 현지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전시 총감독을 맡은 삼성미술관 리움의 안소연 학예실장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모마(Moma) 이사진들이 이미 한국관의 작품을 구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귀띔했다. 한국관 바로 옆에는 일본관이 있다. 한 일본 큐레이터는 “일본관 전시가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사건을 주제로 한 ‘과거의 고고학’이라면, 한국관은 미래의 고고학을 담고 있다.”고 평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에는 역대 최다인 77개국이 참여했다. geo@seoul.co.kr
  • “위안부 문제 별일 아니다” 아베 외교브레인 망언

    |도쿄 박홍기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교 브레인인 오카자키 히사히코 전 태국 주재 대사는 5일 도쿄의 한 강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당시 시대 상황에 비춰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는 취지의 ‘망언’을 했다. 6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오카자키 전 대사는 “20세기는 중국에서 수천만명이 죽었으며,(옛 소련에서는) 스탈린의 숙청으로 수백만명이 죽었고, 미국도 원자폭탄과 공중 폭격을 했다.”면서 “일본의 위안부는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아베 총리가 지난 4월 미국 방문 때 “20세기는 인권이 모든 지역에서 침해를 당한 시대”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언급한 배경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hkpark@seoul.co.kr
  • 美 核비확산 정책 창안 레벤탈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언론인 출신으로 미국 핵 통제정책의 기초를 창안한 폴 레벤탈 원자력통제연구소(NCI) 명예소장이 10일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으로 메릴랜드주 체비 체이스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16일 보도했다.69세. 뉴욕포스트 기자, 의회 보좌관 등을 지낸 레벤탈 소장은 1978∼1981년 미 상원 핵규제소위원회의 실무 국장을 맡아 미국 핵원조 수혜국의 모든 핵활동에 대해 국제 기구의 전면 감시를 의무화한 비확산법을 창안했다.특히 81년 NCI를 출범하면서 뉴욕타임스에 ‘미래의 테러리스트들은 원자폭탄을 갖게 될 것인가’라는 제목의 전면광고를 내 핵확산 위험을 경고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는 1차 북핵 위기가 불거진 94년에는 북한 영변 원자로 시설 선제 공격론에 대해 “북한이 한국·일본 등의 유사 시설을 보복 공격함으로써 체르노빌 참사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것과 같은 참사가 벌어질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었다. 72∼74년 하버드, 브루킹스 연구소에서의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핵무기 확산 문제의 전문가가 된 그는 플루토늄의 상업적 거래 및 핵 테러 위험성을 일찍이 깨닫고 핵통제 문제에 전념하게 됐다.dawn@seoul.co.kr
  • [특파원 칼럼] 진정성 없는 아베총리 사과/박홍기 도쿄 특파원

    1945년 3월10일 일본 도쿄에 미군 B29 폭격기의 대대적인 폭격이 있었다. 도쿄는 삽시간에 불바다가 됐다. 사상자만 10만명에 달했다.62년 전에 일어난 이른바 ‘도쿄 대공습’이다. 일본 관공서들은 올해도 로비에 불에 탄 시신들과 폐허가 된 시가지를 담은 사진들을 전시했다. 곳곳에서 위령제도 거행했다. 대다수 언론들은 ‘잊지말자.’고 주문을 외는 듯 유족이나 부상자들의 삶을 추적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8월6일의 상황도 엇비슷하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곳에도 ‘왜’가 없다는 사실이다. 왜 대공습이 있었고, 왜 원폭이 투하됐는지는 간데없고 참상만을 부각시키는 형국이다. 실제 일본의 일각에선 자신들이 2차 세계대전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인 양 떠들어 대고 있다. 그러면서도 야스쿠니 신사에 딸린 전쟁기념관 유슈칸(遊就館)을 통해 노골적으로 침략과 전쟁의 정당성을 내세운다. 분명 역사의 왜곡이지만, 그리 간단찮다. 그만큼 뿌리가 깊어지는 탓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5일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연행 사실을 부인했다. 협의니 광의니 하는 용어까지 동원해 자신있게 ‘증거타령’을 늘어놓았다. 어찌보면 뜬금없어 보인다. 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군대위안부 문제를 ‘민족주의’에 호소, 추락하는 자신의 지지율 반등을 겨냥했다. 군 위안부들의 아픔과 한을 ‘비열한 계산’ 아래 건드린 것이다. 강점의 피해를 입은 국가들은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질서마저 무시해 버렸다. 망언의 역풍은 예전같지 않다. 인권을 무참하게 유린한 가해자로서의 뻔뻔함에 질려서다. 지고지선으로 여긴 미국의 움직임이 가장 강력하다. 의회뿐만 아니라 언론, 정부까지 나서 ‘민주국가 지도자로서의 수치’ 등의 비난을 가하며,‘솔직하고 책임있는 태도’를 주문했다. 독일도, 네덜란드도, 호주도, 캐나다도 분노했다. 아베 총리는 망언한 지 21일 만인 지난 26일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총리로서 지금 당장 사과한다.”라는 짧디짧은 말이 전부다.‘진정성’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아베 총리는 전후 세대 첫 젊은 총리다. 총리가 되기 전인 97년에 만들어진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의 사무국장까지 맡아 ‘자학성 사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외치던 장본인이다. 식민지배와 침략을 인정하고 사죄한 패전 50주년 국회 결의문과 1995년 ‘무라야마 담화’도 못마땅해했다. 1998년 5월 ‘고노 담화’에 대해서는 “강제연행에 관련 근거가 없는 데도 관헌 등이 직접 가담하고, 의사에 반해 연행됐다는 점을 인정한 것은 큰 문제”라고 따졌을 정도다. 그런 아베 총리가 “총리로서”라는 전제를 붙이고 “고노 담화에 쓰여 있는 그대로다.”라고 밝혔다. 진심에서 우러났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망언이 망언이 아닌 본심일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따져 보면 아베 총리만의 사과로 풀릴 군 위안부 문제가 아니다. 아베 총리의 주변에는 현재의 역사를 ‘자학성 사관’이라며 불만을 토로하는 정치인이 한둘이 아닌 까닭에서다.“일부 부모들이 딸을 팔았던 것”이라는 막가파식 발언을 서슴지 않은 시모무라 관방부장관도 그 ‘의원 모임’의 멤버다. 일본은 다시금 역사를 똑바로 봐야 한다. 특히 전후 세대 정치인들의 올바른 역사인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렇기에 아베 총리는 전후 세대의 첫 리더로서 가해자의 역사를 올바로 인식, 인정해야 한다. 군 위안부들의 피맺힌 목소리를 경청, 진정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 대세에 밀려 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던지는 사과가 아니다. 아베 총리는 지금 세계가 군 위안부 문제의 해법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hkpark@seoul.co.kr
  • 금융허브 홍콩 거의 마비 타이완~美통신 60% 단절

    26일 오후 타이완 남부 해안을 강타한 지진이 타이완, 홍콩,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일대의 통신·인터넷 대란을 몰고 왔다. 특히 금융통신의 피해가 극심했다. 타이완 기상국은 이번 지진이 100년 만의 최대 규모로,6개의 원자폭탄의 위력을 지녔다고 밝혔다. 최소 2명이 숨지고 42명이 부상했다. 지금까지 120차례가 넘는 여진이 이어졌으며 앞으로 규모 5이상의 여진도 예상돼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 지진으로 아시아 지역 통신대란 사태가 초래된 것은 지각 판이 움직이면서 타이완의 해저 케이블에 큰 손상을 입혔기 때문이다. 타이완 최대 통신회사인 청화 텔레콤측은 “타이완의 케이블 시스템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7개 라인이 연결돼 있는데, 남쪽의 2개 라인이 지진으로 손상되면서 북쪽 라인까지 모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2개 라인의 손상으로 타이완 통신 용량의 60∼70%가 단절됐고, 타이완과 연결된 중국 일본 한국과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미국으로 가는 서비스의 60%도 단절됐다.‘금융허브’ 홍콩의 경우 거의 마비 상태에 빠졌다. 대만과 홍콩, 중국, 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을 잇는 통신이 부분적으로 두절되고 국제금융통신망(SWIFT)장애로 금융의 물류라고 할 수 있는 은행간 자금결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 현재 홍콩 은행들은 국제금융통신망 복구가 제때 이뤄지지 않을 경우, 급한 자금결제의 경우 본점에서 지급을 하고 나중에 본·지점간 정산을 할 수도 하는 등의 비상플랜을 가동할 태세다. 국제금융통신망은 해커의 침입 위험을 우려해 웹방식이 아닌 전용선으로 네트워크가 구성된다. 때문에 해저케이블 손상으로 인한 피해가 커졌다. 홍콩 최대 통신사인 PCCW는 데이터 용량의 50%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타이완, 한국으로의 인터넷 연결도 원활치 못했다. 홍콩-타이완간 통화도 두절됐다. 중국 CCTV는 베이징의 차이나 텔레콤(CTC)이 미국과 유럽과의 연결시 위성을 임시로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의 경우도 타이완 인근의 해저 케이블을 사용하는 인도, 중동 지역 통화가 두절되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 청화텔레콤측은 손상된 케이블을 끌어올려 배위에서 수리해야 하기 때문에 복구에 3주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김수정기자 외신 종합 crystal@seoul.co.kr
  • 日정부 “현 헌법으로도 핵무기 보유 가능”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정부가 현행 평화헌법으로도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밝혀 파문이 예상된다. 정부는 14일 한 의원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을 빌려 “현 헌법은 자위를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경우 핵무기 등 모든 무기의 보유를 반드시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고 서면 답변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통신은 그러나 정부가 비핵화 원칙을 이탈하지는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산케이 신문은 15일 ‘일본의 핵개발, 기술은 있어도 실현은 곤란’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마음만 먹으면 몇년 뒤에 기술력을 가질 수 있지만 몇개월이나 1∼2년 안에는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렸다. 신문은 “이데올로기나 국제정치 등과 별개로 기술적 측면에서만 핵무기 개발이 가능한지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는 전제로 이같이 분석했다. 신문은 핵무기를 단기간에 개발하기 위해서는 ‘재료’와 ‘기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원자폭탄에는 핵분열 물질로서 우라늄을 사용하는 히로시마형과 플루토늄을 사용하는 나가사키형이 있지만 현실성 있는 것은 나가사키형이라고 주장했다.플루토늄은 원자력 발전소의 사용후 연료에 다량 포함돼 있다. 일본은 55기의 상업 발전용 원자로를 가동 중이며, 지난해 말 현재 나가사키형 원폭 790기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 5.9t을 보유하고 있다. 해외 재처리시설에도 38t의 플루토늄이 있어 원폭을 만들 재료는 충분히 갖고 있다. 그러나 이 플로토늄은 핵분열을 일으키는 플루토늄 239 함유 비율이 65%로 통상 무기급(93%)에 크게 못 미친다. 신문은 “이를 이용해 원폭을 제조하는 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보고가 있지만, 실제로 만든 국가는 없다.”고 소개했다. 고속증식로를 가동할 경우 플루토늄 239 비율이 96%를 넘는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고속증식로 계획이 11년이나 정체돼 있어 실현 전망이 불투명하다. taein@seoul.co.kr
  • [책꽂이]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조지프 아마토 지음, 김승욱 옮김, 작가정신 펴냄) 중세시대 보행자들은 말을 타고 다니는 기사나 귀족을 만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하는 자신의 열등한 지위를 깨달았다.18세기엔 상류층의 산책문화가 생겨나면서 그들만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우아하게 걷는 법을 개발해냈다.19세기 말엔 낭만주의 사조가 등장, 고독을 즐긴 사상가들은 걷기를 통해 세상과 자연과의 교감을 시도했다.20세기 들어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국민에게 같은 음악에 맞춰 행군하도록 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다졌다. 인류가 처음 두 발로 서게 된 600만년 전부터 현재까지 걷기의 역사를 살핀 책.2만 5000원.●카사노바 나의 편력(자코모 카사노바 지음, 김석희 엮어옮김, 한길사 펴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배우의 아들로 태어나 민법과 교회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가방끈 긴 남자,‘문체의 솔직함’으로 단테와 보카치오 이후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작가 반열에 오른 글쟁이. 생계를 위해 이름을 안토니오 플라토리니로 바꾸고 과거에 자신을 감옥으로 보낸 재판소를 위해 밀정이 된 인물. 조반니 자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는 그러나 무엇보다 희대의 호색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썩어서 냄새 나는 치즈와 여자 냄새를 좋아한 감각주의자였다. 이 회고록엔 인생향락가 카사노바가 체험한 18세기 유럽 사회의 풍속사가 담겼다. 전3권 각권 1만 5000원.●죽음의 향연(리처드 로즈 지음, 안정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광우병의 원인 물질로 알려진 프리온 단백질, 인간 광우병으로 불리는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등 광우병을 둘러싼 진실을 다룬 과학 논픽션.‘원자폭탄 만들기’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자는 광우병의 감염원이 단백질이 아닌 바이러스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광우병은 감염성은 낮지만 은밀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1만 6000원.●클라시커 50 오케스트라(울리케 팀 지음, 이용숙 옮김, 해냄 펴냄) 륄리에서 코렐리, 모차르트, 하이든, 브람스를 거쳐 바르토크와 번스타인에 이르는 작곡가들의 대표적 관현악곡을 중심으로 400년 서양음악사를 살폈다. 요한 슈트라우스 곡의 소재로 사용된 도나우강이 푸른색인 적이 없었다는 사실, 관조적이고 내면적인 바흐의 음악이 사실은 20명의 자녀들이 법석대는 상황 속에서 탄생됐다는 사실, 헨델이나 모차르트 시대에는 연주가 훌륭하다고 생각되면 청중은 연주 도중에도 즉각 감동을 표현했다는 사실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 실렸다.1만 8000원.●히틀러와 스탈린의 선택,1941년 6월(존 루카치 지음,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펴냄) 1941년 6월22일 발발한 독·소전쟁은 그 전까지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던 내전 성격의 전쟁이 전면적인 2차세계대전으로 치닫게 된 분수령이 된 사건이다.6월22일전, 히틀러는 이미 어두운 미래를 예감했으며,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러시아가 히틀러와 맞서주기를 간절히 바랐고, 스탈린은 끝까지 히틀러의 침공을 믿지 않으려 했다. 이런 히틀러와 스탈린 사이의 불꽃튀는 심리전은 2차대전의 운명을 뒤바꾸게 된다. 저자는 헝가리 출신의 미국 역사학자. 히틀러와 스탈린의 모습을 대비시켜 역사적으로 재구성했다.9500원.
  • [박기철의 플레이볼] 핵을 버리고 김재박을 택하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온 세계가 소란하다. 필자는 이번 사태를 남다른 감회를 갖고 본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의 꿈이 원자폭탄을 만드는 거였고 대학 시절 전공도 핵공학이기 때문이다. 이런 필자가 전혀 엉뚱한 야구를 직업으로 택하게 된 데는 두 가지 사연이 있다. 하나는 궁정동의 총성과 함께 핵개발을 추진하던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뒤이어 등장한 신군부의 핵 관련 프로젝트 포기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다른 하나가 현대의 김재박이다.1977년 한국화장품이 창단될 때까지만 해도 야구는 필자에게 좋아하는 여러 스포츠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고, 더구나 실업 야구의 인기는 고교 야구에 현저하게 밀리는 상태였다. 이런 필자를 실업 야구 마니아로 만들고 거의 모든 실업 대회를 쫓아다니며 경기를 기록까지 하도록 만든 것이 유격수 김재박이다. 당시 신인 김재박은 그 해 타자가 탈 수 있는 상을 모조리 휩쓸며 7관왕이란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필자를 야구에 빠지게 만든 것은 그의 타격이 아니라 수비였다. 거의 좌익수 앞까지 빠진 타구를 쫓아가 역동작으로 1루에 던져 아웃시키고 넘어져서도, 달리면서도, 공중에 뜬 상태에서도 송구가 가능했던 그의 플레이는 그림이었다. 수비 하나만으로도 팬을 매료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플레이 이전과 플레이 도중에 이루어지는 소프트웨어였다. 매 타자마다 매 투구마다 수비 위치를 조정하는 것은 요즘에야 기본이지만 당시는 기본이 아니었다.또 평범한 플라이 볼을 수비할 때도 경기 상황에 따라 일부러 공을 땅에 떨어뜨리기도 한다. 타자가 열심히 뛰지 않으면 1루에 던져 타자를 먼저 포스 아웃시키고 주자를 태그 아웃시키는 리버스 포스 더블 플레이를 시도한다. 타자가 열심히 뛰면 그냥 2루에 던져 1루 주자만 아웃시킨다. 이런 플레이는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실제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실행하기란 더욱 어렵다.약 30년간 야구를 지켜보면서 그런 플레이를 목격한 것은 스무 번이 채 안 된다. 그런데 그 중에 태반을 유격수 김재박이 보여주었다. 선수 김재박 덕분에 필자는 프로야구가 창단될 때 전공을 포기하고 야구기록원으로 지망할 용기를 얻었다. 선수가 아닌 감독 김재박과 두뇌 싸움이라면 결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김인식 감독이 포스트시즌에서 대결하면서 구사하는 용병술을 지켜보는 일은 매우 즐겁다. 따라서 한 경기라도 더 볼 수 있도록 5차전을 기다리는 일은 이기면 삼성을 상대해야 하는 두 감독에게는 가혹할지 모르지만 팬들에게는 희망사항이다.‘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cobb76@gmail.com
  • [토요일 아침에] 구원에 이르는 길/길자연 목사·왕성교회 당회장

    에머슨은 “인간은 믿도록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믿음 없이 사는 것보다 힘들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데 부정적인 여건들로 가득찬 세상에서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실상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믿지 않고 사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창조하실 때 우리 속에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심성을 심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를 하나님의 형상이라 부르는 바 이를 가리켜 사람들은 종교성이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하나님을 믿도록 태어난 인간들이 하나님 없이 자기 혼자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매 그 자체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을 갖고 산다는 것은 믿음 없이 사는 것보다 쉽고 또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믿음은 결코 삶의 액세서리가 아닙니다. 믿음이 우리 인생의 전부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믿음 속에 현실문제의 해답이 있고, 믿음 속에 영생의 유일한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다 있는 것이고 믿음이 없으면 다 없는 것이라는 등식이 성립됩니다. 성경이 이 믿음을 두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 중에는 삶이 죽음과 동시에 끝났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사후에 존재하는 내세 천국에 가려면 선한 일을 행해야 한다는 신념아래 온갖 선행에 힘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이 잘못된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획대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또 우리 인간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도록 섭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천하 범사에 예수 이름 외에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이런 믿음에 대하여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훌륭한 원동력은 바로 믿음이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믿음이야 말로 삶의 원동력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믿는 일에는 누구나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도록 창조된 인간이 믿음에 대해 미온적이며 동시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 모순 속에서 살 때 사람들은 삶의 힘을 잃게 될 뿐 아니라 삶의 본질을 외면한 채 물질과 쾌락에 빠져 들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힘은 불행과 실패를 막아주고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인생을 살게 해줍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해 줍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사는 삶이 행복한 것입니다.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 전 간곡한 경고문이 여러 가지 모양과 다양한 크기로 뿌려졌습니다.“히로시마 시민 여러분,1945년 8월6일 오전 0시에 히로시마 50리 밖으로 도피하십시오!” 그러나 히로시마 시민들은 매일 같이 뿌려지는 이 경고문에 귀를 귀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도리어 그 경고를 거짓말로 여겼습니다. 드디어 8월6일 두 대의 비행기가 날아와서 두어 번 히로시마 상공을 선회하다가 검은 물체를 떨어뜨렸습니다.‘꽝’하는 굉음과 함께 번쩍하는 순간 30만 명이 타 죽었습니다. 그들이 만약 미국의 경고를 믿음으로 받아 들였다면 그들은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믿음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성경의 말씀은 그래서 진리인 것입니다. 길자연 목사·왕성교회 당회장
  • [北 핵실험 파장] 韓·日·타이완 ‘핵무장’ 딜레마

    |도쿄 이춘규특파원·베이징 이지운특파원|북한의 핵 실험 강행으로 인해 한국과 일본, 그리고 타이완 등 주변국들이 ‘핵 딜레마(고민)’에 빠졌다. 특히 ‘핵개발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느냐가 국제사회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됐다. 동북아지역에서 핵개발 도미노가 일어나느냐 여부는 향후 미국의 대응방향, 그리고 북한이 제2,3의 핵 실험을 강행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될 전망이다. 아울러 기존의 동북아질서 자체에 근본적 변화도 예상된다. 현재 국제사회와 전문가들은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에 위기감이 고조된 것에 맞서 한국과 일본은 물론 타이완까지도 핵개발에 나설 수 있을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자민당의 한 국방전문 의원은 9일 “동북아의 핵 도미노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핵개발 가능성이 가장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북핵에 대응하는 핵무장론이 공공연하게 제기되고 있다. 최근 나카소네 전 총리는 물론 일본 극우인사들이 일본의 핵무장을 주장했으며 아베 신조 총리도 2002년 5월 한 강연에서 “원자폭탄을 갖는 일이 일본 헌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결심하면 1주일 이내에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일본의 핵무장론은 북한을 핑계로 대지만 중국을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 여하튼 북한의 핵 실험 강행으로 일본의 핵무장론은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본은 현재 마음만 먹으면 핵무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은 2004년 말 기준으로 수천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43.1t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아오모리현에 있는 로카쇼무라 핵 재처리 공장을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한국도 핵무장론이 현실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자위 차원에서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실험을 했고, 향후 일본이 핵무장을 할 것에 대비, 한국도 핵무장 문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만 비핵원칙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최근 한국사회에서 이 같은 핵무장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이 조금씩 늘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중국과 타이완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타이완측도 핵무장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taein@seoul.co.kr
  • [전쟁 무기에 숨은 과학 원리] 엄청난 폭발력의 시작은 미세한 충격

    며칠전 태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해 탱크를 앞세운 군인들이 방콕 거리를 장악했다. 군부는 총 한발 쏘지 않고도 손쉽게 정권을 빼앗았다. 문민의 힘을 간단히 무력화시킨 군부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이치에 맞지 않지만, 쿠데타 세력들은 ‘모든 힘은 강력한 무기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같은 생각은 현재 세계 각국이 벌이는 최첨단 과학 무기 확보 경쟁에서도 엿 볼 수 있다. 전쟁 무기에 관련된 과학 원리를 살펴보자. 대포가 발사되는 과정에서는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가 적용된다. 포탄이 발사되는 과정은 ‘자극→뇌관 폭발→점화제→추진제→발사’로 진행된다. 포탄에는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폭발하는 민감한 화약이 담긴 뇌관이 있다. 이 곳에 직접 충격을 주거나 전기스파크를 가하면 화약이 순간적으로 폭발하고 가스가 발생한다. 이 가스의 팽창에 따라 엄청난 가스압력이 발생되는데, 대포는 가스가 빠져나갈 수 있는 방향이 구멍이 뚫린 포신의 방향 밖에 없기 때문에 그 쪽으로 팽창하게 된다. 이때 가스가 팽창하는 힘에 덩달아 포탄도 운동에너지를 얻어 포신 밖으로 밀려나면서 발사가 되는 것이다. 대포를 발사하게 되면 포탄은 앞으로 운동을 하게 되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포신을 밀게 돼 뒤로 밀리게 된다. 잠수함이 물속과 수면 위를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는 것은 그 유명한 ‘아르키메데스의 원리’ 때문이다. 물체가 액체속에 잠겨 있으면, 그 물체에 의해 밀려나온 액체의 중량과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부력’이 걸리게 된다. 잠수함은 진행할 때 내부의 공간 만큼 가벼워지는데 이 부력이 잠수함의 무게와 같을 때 뜨거나 가라앉지 않고 평형 상태를 유지한다. 만약 잠수함이 부력을 더 받는다면 수면으로 떠오르게 된다. 현대 잠수함에서는 공기탱크를 설치해 잠수함의 무게가 부력과 같아지도록 조정한다. 수면으로 떠오르기 위해서는 공기탱크내에 압축공기를 공급한다. 전투기가 나는 원리는 스위스 수학자인 야곱 베르누이가 발견한 ‘베르누이의 원리’로 쉽게 설명된다. 전투기의 날개를 보면 윗면이 아랫면보다 불룩한 모양으로 돼 있다. 날개면을 따라 흐른 공기는 위쪽이 아래쪽보다 진행 속도가 빠르게 돼 공기 압력이 낮아진다. 따라서 그 압력 차이 만큼 위로 향하는 힘, 즉 양력(揚力)이 발생하면서 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양력이 생기려면 항공기가 속력을 얻어야 된다. 전투기가 속도를 내기 위해 이륙할 때 활주로를 힘차게 달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전투기에는 양력 외에도 공기에 의한 저항력인 항력(抗力), 엔진에 의한 추진력, 동체 무게에 따른 중력 등이 작용하면서 비행을 하게 된다. 한편 걸프전이나 이라크전에서 보듯 현재 전쟁은 ‘은밀하게 조용히’ 시작된다. 가장 먼저 적에게 발견되지 않는 ‘스텔스 비행기’가 쥐도 새도 모르게 나타나 목표물을 선제 공격한다. 스텔스기가 적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난반사(亂反射)’와 관계가 있다. 레이더는 전파를 쏜 뒤 물체에 ‘정반사(正反射)’돼 돌아오는 신호를 읽어 위치를 추적한다. 그런데 스텔스기는 동체에 불규칙한 각을 만들거나 아예 각을 없애 둥글게 만든다. 전파를 흩어지게 만들면서 전파가 레이더로 되돌아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현대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핵폭탄이다. 핵폭탄은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등으로 나뉘는데 원자의 핵을 쪼개거나 다른 핵과 융합하는 방법으로 폭발력을 얻는다. 원자폭탄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사용한다. 우라늄을 다량(10∼15㎏) 뭉쳐 놓으면 각각의 핵이 쪼개지면서 중성자라는 것이 튀어 나온다. 중성자는 그 옆의 핵을 때려 역시 중성자가 빠져 나오게 한다. 이런 과정이 순식간에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엄청난 폭발력을 낸다. 이와 반대로 수소폭탄은 핵끼리 뭉쳐지는 핵융합 과정을 거쳐 폭발력을 얻는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원자폭탄, 그 빗나간 열정… ’ /류윤 옮김

    1945년 8월6일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됐다.3일 뒤 두번째 원자폭탄 ‘팻맨’이 나가사키에 떨어지자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그해 말까지 핵폭탄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사망한 히로시마 주민은 14만여명을 헤아린다. 이 중 1만여명은 조선인 징용자로 추정되고 있다. 원폭 투하는 전쟁을 종식시키고, 한반도를 해방시켰지만 동시에 전 세계인에게 이전까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공포를 안겼다. 1903년 마리 퀴리가 피부병 치료에 활용한 기적의 물질,‘라듐’이 40년 후 이렇듯 막대한 인류의 재앙을 초래할지 그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영국 역사가이자 방송인인 다이애나 프레스턴의 저서 ‘원자폭탄, 그 빗나간 열정의 역사’(류운 옮김, 뿌리와 이파리 펴냄)는 원자폭탄에 얽힌 반세기의 역사를 촘촘히 재구성함으로써 과학이 정치와 부적절하게 결합할 때 얼마나 큰 비극을 불러올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상기시킨다. 라듐 추출공정을 발견한 마리 퀴리에 이어 핵물리학의 세계에 한발짝 다가간 이는 영국인 과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다.1911년 원자핵을 발견했고, 원자를 쪼개는 방법까지 알아냈다. 이후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닐스 보어, 등 여러 과학자들이 앞다퉈 핵물리학 연구에 나섰지만 누구도 원자 에너지가 대규모로 방출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핵분열의 위험을 최초로 감지한 과학자는 레오 실라르드다. 핵 연쇄반응을 지속해 폭발물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실라르드는 1934년 봄, 특허를 신청한 뒤 안전을 우려해 이를 영국해군본부에 양도했다. 그로부터 4년 후 분열은 현실로 나타났다. “과학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사물이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 마리 퀴리처럼 대다수 과학자들은 지적인 모험을 연구의 가장 큰 목적으로 삼았다. 하지만 전쟁의 시대가 도래하고 정치세력간에 대량살상무기를 만들기 위한 경쟁이 불붙으면서 이들이 쌓아올린 연구성과는 원자폭탄이라는 괴물을 탄생시키는 데 활용됐다. 책은 과학과 현실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는 과학자들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마리 퀴리에서 히로시마까지 원자폭탄에 얽힌 다양한 사람들과 사건들을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엮어나간 글은 긴박감마저 느끼게 한다.2만 8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매혹과 환멸의 20세기 인물 이야기/이기우 지음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긴박하고 파란만장한 시대로 기억될 만하다. 그만큼 지난 100년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람과 사건이 많았기 때문이다. ‘매혹과 환멸의 20세기 인물 이야기’(이기우 지음, 황금가지 펴냄)는 20세기를 만든 인물과 사건 163건을 되짚어 보면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 시대의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저자는 진정한 ‘현대’를 빚어낸 100여명의 사람들과 주위를 놀라게 한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역사적 진실과 후세의 평가를 짚어낸다. 위대한 예술가 피카소,‘철의 여인’ 대처 총리 등 거물들의 본색으로부터 비운의 스포츠 스타 O J 심슨, 금융사기로 얼룩진 ‘큰손’ 장영자 부부, 신출귀몰한 탈옥수 신창원 등 부정적인 사람들까지 총망라됐다. 마하트마 간디와 빌 게이츠, 처칠, 엘리자베스 2세, 말컴 엑스 등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이면의 진실들, 카다피와 사르트르, 고르바초프 등 유명인들이 또 다른 명사들의 입을 통해 받은 평가와 비판 등도 흥미롭게 펼쳐진다.84%의 흑인들이 영웅으로 떠받드는 맬컴 엑스는 담배와 술, 크리스트교, 노예의 사슬을 끊으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엑스’라는 호칭을 붙였다고 한다. 이와 함께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모양으로 유명한 애플 컴퓨터 로고의 유래와 북한 사람들이 추리소설을 읽게 된 이유, 비키니 수영복과 원자폭탄의 관계, 캐나다 동성애 처벌규정 삭제,‘배꼽 아래의 진실’을 캐기 위해 설립된 킨제이 연구소, 연예인 비디오 파문, 개구리 소년들의 실종 등 국내외 다양한 사건들도 눈길을 끈다. 오늘날의 지구를 만들어낸 사람·사건을 통해 빛바래지 않은 현대사의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듯하다.2만 30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씨줄날줄] 정전폭탄/육철수 논설위원

    1945년 8월6일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가공할 위력은 잘 알려져 있다. 길이 3m, 지름 71㎝, 무게 4.5t짜리 원폭(일명 리틀보이)은 폭발 순간 7만명의 생명을 앗아 갔고, 가옥 6만채를 잿더미로 만들었다.3만℃에 이르는 고열과 방사선 피해도 엄청나서 원폭으로 인한 공식 사망자는 24만명이나 됐다. 원폭의 위력은 인류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어서, 이후 전쟁에서는 두 번 다시 사용되지 않았다. 전쟁은 이렇듯 인명살상과 건물파괴 등 참상을 불가피하게 수반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른 20세기에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만도 무려 4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지금은 각종 대량살상용 무기(WMD)의 개발로 어느 나라가 독한 마음을 먹으면 지구의 존망도 장담할 수 없는 시대다. 그래서 나라마다 머리를 짜내고 있는 게 ‘비살상무기’(non-lethal weapon)다. 인간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고 적의 전투력을 무력화시키자는 것이다. 비살상무기는 WMD처럼 국제 규제도 없어 제법 흥미로운 무기들이 이따금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사람을 기절만 시키는 거품탄·고무탄·척탄(擲彈), 사람의 눈과 귀를 잠시 멀게 하는 섬광탄, 썩은 시체 냄새를 풍겨 구토를 유도하거나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하는 악취탄 같은 게 있다. 도로와 활주로를 미끄럽거나 끈적거리게 해서 차량·항공기·병력의 이동을 방해하는 점착탄·윤활탄도 있고, 기계에 들어붙어 작동을 멈추게 하는 무기, 전자기기만 골라 못쓰게 만드는 전자폭탄(e폭탄) 등 첨단 비살상무기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우리 군(軍)도 전력시설을 최장 20시간 차단할 수 있는 ‘정전(停電)폭탄’(탄소섬유탄)을 자체 기술로 개발하기로 했단다. 이 폭탄은 터지면서 거미줄 모양의 탄소섬유가 살포되는데, 이것이 송전시설에 달라붙으면 방전·누전으로 인해 전기가 한동안 나간다는 것이다.90년대 걸프전과 유고전에서 사람한텐 안전하다고 입증됐다니 안심은 된다. 그렇다고 목숨만은 살려 준다는 이유로 이런 무기를 ‘인간적’이라고 표현하자니 좀 꺼림칙하다. 사람을 죽이든 살리든 서로를 못 믿어 자나 깨나 별의별 신종 무기를 만들 궁리만 하는 인간들이 처량하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문화마당] 거꾸로 가는 일본의 역사시계/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패전이전 일본의 군국주의가 여성용 속옷 브래지어라면, 일본의 우파는 그 속에 든 찌그러뜨려도 원형으로 돌아가는 형상기억 합금이며, 일왕은 호크라고 할 수 있다. 좀 민망하지만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일본의 우경화 현상을 설명할 때 종종 드는 예화다. 군국주의의 사전적 정의는 “군사력에 의한 대외적 발전을 중시하여, 전쟁과 그 준비를 위한 정책이나 제도를 국민생활에서 최상위에 두고 정치·문화·교육 등 모든 생활 영역을 이에 전면적으로 종속시키려는 사상과 행동양식”이다.“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일왕이 통치한다.” 대일본제국헌법(1889) 제1조이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세계 모든 나라의 헌법이 공통적으로 보장하는 국민주권과 이를 지킬 국민저항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타이완침략, 운요호사건, 청·일전쟁, 의화단 봉기 진압, 러·일전쟁, 제1차 대전시 대독 선전포고, 러시아혁명에 간섭한 시베리아 침략, 만주사변, 중·일전쟁, 소련과 충돌한 모몬한 사건, 그리고 태평양전쟁. 당시 이웃나라를 상대로 열 손가락도 모자랄 만큼 쉼 없이 전쟁을 일으킨 나라는 일본 이외에는 없다. 그 죗값으로 맞은 원자폭탄 두 발에 군국 일본은 무릎을 꿇었다. 침략전쟁의 두 주역 군부와 재벌이 해체되고(1945), 일왕은 살아 있는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앉았으며, 전쟁을 금지하는 평화헌법이 만들어졌다(1946). 미국은 일본인들의 가슴을 옥죄고 있던 브래지어를 풀어내려 하였다. 하나 이게 웬일인가? 1947년 중국 국민당이 공산당에 밀려나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주저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역코스(reverse course)라 부르는 점령정책의 전환이다. 미국은 민주주의라는 선물을 일본 시민에게 주었다 포장도 뜯기 전에 다시 빼앗아갔다. 역사의 시곗바늘은 거꾸로 돌기 시작하였다. 1948년 재벌기업의 자회사 폐지계획이 축소되었으며, 극동 군사재판은 침략전쟁의 주역들 대다수에게 면죄부를 주었다.1949년 중국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쫓겨 가고 1950년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자, 전범자는 죗값도 치르지 않고 정계에 복귀하였다. 이들은 1951년 미군주둔을 허용하고 미국의 전략체제 속에 일본을 종속시키는 미일안전보장조약을 맺는 대가로 1952년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립을 얻어 내었다. 반공의 이름으로 전범세력과 타협한 미국은 군국주의라는 때묻은 브래지어를 다시 일본 시민들에게 채웠다. 일왕이라는 호크와 침략전쟁의 주역인 형상기억 합금은 그대로 남았다.1954년 미·일 상호 방위원조협정에 따라 방위청이 세워지고 자위대라는 미명하에 다시 군대가 들어섰으며, 이듬해에는 평화헌법 개정을 당헌으로 내건 자민당이 집권하였다. 전후 집권세력의 뿌리는 군국주의 전범세력이다. 이들은 형상기억 합금처럼 미군정에 의해 구부러지기 이전 군국주의 시절로 되돌아가려 했으며,1991년 냉전의 해체는 그 복원력에 탄력을 더해주었다. 침략의 과거사를 미화하는 역사교과서 왜곡, 전범세력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전쟁도 벌일 수 있는 ‘보통국가’ 만들기, 일장기 달기와 기미가요(일본국가) 부르기의 의무화나 ‘애국심’ 교육 강화를 통한 전체주의 되살리기, 독도 영유권 주장, 그리고 작금의 북한 선제공격론은 모두 일본 우익이 벌이는 원형찾기 작업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이처럼 지배 엘리트가 철저한 역사적 성찰을 하기는커녕 원폭을 핑계로 마치 전쟁의 피해국인 양 침략의 역사에 분칠을 하는 일본의 역사시계는 아직도 뒤로만 가려 한다. 하나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불빛을 본다.2001년과 2005년 일본 우익이 주도한 역사교과서 왜곡파동 때 역사의 기억을 둘러싼 내전에서 승리한 일본 시민사회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력으로 가슴을 옥죄는 브래지어를 벗어버리고 동아시아와 함께 사는 진정한 평화국가 일본을 이룰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기꺼이 연대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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