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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영변에 원자로 3기 보유/미,일본에 브리핑

    ◎94년엔 「광도형 원폭」 한해 6개 제조 가능/핵시설 한곳 집중… 핵무기 생산의도 뚜렷 북한에는 현재 3기의 원자로가 있으며 오는 94년에는 히로시마(광도)형 원자폭탄을 1년에 6개나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 21일 밝혀졌다. 이날부터 발매된 일본의 주간지「주간문춘」(29일자)은 지난달 하순 일본을 방문한 미국정부의 핵·군사정보 브리핑팀이 일본측에 설명한 북한의 원폭공장 실태를 상세히 소개했다. 미국측은 일본 외무성의 다니노 사쿠타로(곡야작태랑) 아시아국장을 비롯,방위청·경찰청·내각조사실의 스태프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북한의 원폭개발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전후 45년간의 배상금」이 원폭제조비에 전용되지 않도록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리핑은 이렇게 시작됐다. 『전부터 미국의 군사위성은 평양북방 88㎞ 지점 영변산중에 핵 재처리시설이 있는 것을 탐지했다. 당초엔 이것을 발전용으로 보았으나 그후 정보수집 결과 핵무기제조에 절대 필요한 플루토늄 제조시설로 판단하게 됐다. 미국정부는 북한이 핵무기제조를 의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으며 그 완성시기는 오는 95년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제조하려 한다는 근거로서 다음 4가지 증거를 들고 있다. 첫째는 2기의 원자로를 비롯한 핵리사이클 시설이 전부 같은 구역안에 있다는 점이다. 제1원자로는 소련제를 모델로 한 흑연 감속가스 냉각방식의 소형으로 출력은 10∼30메가와트. 이 원자로는 87년 9월 가동됐는데 현재 제2의 대형 원자로가 밀집돼 건설중에 있다. 84년 착공된 이 원자로는 50∼2백메가와트의 출력을 갖고 있으며 준공 예정시기는 오는 94년. 이 원자로들의 외형적 특징은 송전선이 달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전력공급등 평화적 이용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2의 증거는 핵연료 재처리공장의 건설이다. 벽두께가 1m나 되고 건물 자체가 좁고 긴 점,배기가스를 뿜는 연돌이 높고 특수기계를 도입하는 입구가 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핵연료 재처리시설임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현재 내부설비를 부착중이며 반복테스트 중이다. 시설가동시기는 95년께로 추정된다. 이들이 평화적 이용목적의 원자로라고는 생각될 수 없는 제3의 증거는 시설주변에 저공공격용의 대공포를 비롯한 방위병기가 배치되어 있는등 엄중한 경계가 펼쳐지고 있으며 산에 둘러싸여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지형을 선정한 점이 지적되고 있다. 네번째,원자로 부근에 저레벨의 폭발실험 흔적이 있다는 점이다. 비록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폭발실험을 행한 흔적이 클레이터로 남아 있다. 이 폭발실험장은 소련이 제공한 핵연구시설 근처에 있는데 83년부터 88년까지 약 70회에 걸쳐 폭발실험을 했다. 이런 실험이 핵개발에 응용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폭발능력의 분석에 불가결한 것이기도 하다. 이 구역안에는 우란 농축공장도 있다. 북한엔 천연우라늄 자원이 부존돼 있으며 이곳에서 핵연료로서의 우란으로 농축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측의 보고를 종합하면 현재 북한에는 3기의 원자로가 있다. 제1은 소련이 제공한 연구용으로 지난 60년대 건설되어 기초연구에 사용된다. 두번째는 소련제를 모델로한 것으로 기술적으로는 구식이지만10∼30메가와트의 출력을 갖는 흑연 감속가스 냉각식 원자로다. 지난 80년에 건설이 결정되어 87년부터 가동했다. 그 전출력으로 미루어 계산하면 1년에 5∼6㎏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으며 풀가동하면 7㎏의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 1개의 원자폭탄은 6㎏의 플루토늄이 있으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세번째 원자로는 프랑스에서 제조된 대형이다. 기술은 구식이지만 완성되면 연간 18∼50㎏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 이것은 원폭 2∼5개 분량에 상당한다. 즉 북한은 이 프랑스형 원자로가 완성되는 94년에는 히로시마형 원자폭탄을 1년에 6개나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 제조능력을 갖게 된다. 『실제로 프랑스제 원자로가 흑연감속형으로 가압수형이 아닌 점이 중요하다. 흑연형은 플루토늄의 생산이 용이하며 천연우란의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북한에 꼭 맞는 형이다. 따라서 외국의 도움 없이도 독자적으로 핵개발이 가능하다』고 원자력 전문가는 지적하고 있다. 이번 미국측 설명에서 일본 정부 관계자들이 무엇보다 놀란 것은 대형원자로 바로옆에 김일성주석의 별장이 있다는 사실이다. 정보에 따르면 김은 빈번히 평양에서 이곳 별장을 드나들며 현지 지도를 한다고 한다. 김이 「현지 지도」를 한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이 시설을 중요시하는가를 나타내는 반증이라고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 북한 아직도 전쟁준비하는가(사설)

    전반적인 군축과 긴장완화라는 세계적 추세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반도에는 남북한을 합쳐 자체방위 수준을 초과하는 과다한 병력과 무기가 존재하고 있다. 6ㆍ25전쟁 당시의 80배가 넘는 파괴력을 가진 전력이 있고 이 상태에서 전쟁이 터질 경우 1주일내에 2백40만명의 사상자가 나오게 된다. 전쟁이 한 달 이상 계속되면 5백만명의 사상자가 생기고 모든 시설의 80%가 파괴된다. 이상은 전혀 허구의 숫자도,단순한 가상도 아니다. 양쪽의 전력과 과거 전쟁의 결과를 토대로 수량적 분석과 평가 아래 나온 「워 게임」 예상결과임을 최신판 국방백서는 밝히고 있다. 어느 쪽의 도발에 의해서건 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면 남는 것은 완전한 파괴와 공멸뿐인 것이다. 전쟁의 도발자는 누구일 것인가. 과거 남북한간 군사적 대치상황과 군사력 현황 등에 비추어 어느때건 선제로서 전쟁행위에 나설 수 있는 쪽은 북한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그것은 안팎의 군사관계전문기구에 의해 객관적으로 검증되고 있다. 그런 북한이 최근 남한 전역과 일본 남부일부지역까지 공격할 수 있는 신형 유도미사일의 두 번째 실험을 준비중이라고 외신은 전한다. 더구나 이 미사일에 신경가스를 탑재한 탄두나 고성능 폭탄 또는 산탄용 폭탄을 장전할 수 있다는 보도내용은 그 소스가 미 정보소식통이라는 데서 더 신빙성를 갖게 되며 그만큼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배전의 경각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북한이 조만간에 핵폭탄을 제조 보유하리라는 것은 국제적으로 일찍이 확인된 「사실」이다. 이미 80년대초부터 평북 영변의 대형 연구용 원자로 부근에 두 번째의 대규모 시설을 건설,완공단계에 있는 것도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봄에는 휴전선 비무장지대 부근에 새 탄도미사일의 실험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 발사대도 그기를 건설중인 것이 확인됐었다. 당시 체니 미 국방장관도 이를 확인하면서 의회 증언을 통해 북한의 일련의 핵개발계획이 동아시아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었다. 이번의 실험준비가 그와 관련된 것이라면 이는 북한이 적어도 내년까지는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의 실전배치를 완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북한의 군사력은 90년 현재 총병력 99만으로서 65만5천의 한국에 비해 1.5배에 이른다. 게다가 이미 60년대초부터 화생방무기의 연구 및 생산을 통해 현재 연대급까지 화학소대를 편성하여 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국제정세 발전 추세에 힘입어 한반도에서 군비통제 또는 군축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도 남북한 군축문제와 관련하여 몇 개의 발전적인 방안을 제시한 바가 있다. 또 일본과의 수교 예비교섭 과정에서는 핵안전협정 체결문제도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그들의 핵개발 및 실험인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얘기다. 북한이 정말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전쟁을 방지하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나서려면 안팎의 다른 자세부터 고쳐야 한다. 우선 핵무기 개발과 관련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하는 것이다.
  • 거센 「반핵역풍」… 설땅 잃은 「원전 정책」/안면도 사태

    ◎구상서 철회까지/서해연구단지 추진 단계서 발단/수중저장등 「영구처리」개발 시급 안면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건설은 주민들의 반발시위가 심해짐에 따라 일단 철회됐다. 정근모 과기처장관은 8일 하오 퇴임에 앞서 『핵폐기물 영구처분장 시설은 처음부터 세울 계획이 없었다』고 밝히고 『서해연구단지 조성은 충남도와 협의해 구상중이었으나 주민들의 오해가 풀리지 않는 한 어떤 신규시설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혀 이 문제에 주민들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으며 합의가 도출되지 않는 한 추진이 어려울 것임을 밝혔다. 안면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건설이 서해과학산업단지 조성의 한 계획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 누설됨으로써 엄청난 홍역을 치른 과기처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으로 원전추진 및 방사성 폐기물처리해결 등에서 상당한 시간을 잃게 되었다』며 앞으로의 일을 난감해 했다. 이번 안면도선정 과정은 언제부터 적극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는가에 대한 자세한 일정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속에 정 전장관이 석좌교수로 있던 아주대 에너지문제연구소에서의 연구보고서가 추진의 한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보는 쪽도 있다. 아주대가 동력자원부의 의뢰를 받아 지난해 말 끝낸 「2천년대 원자력전망 및 대처방안 수립에 관한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서해안의 ▲태안반도 북단 ▲남해안의 무안반도 ▲고흥반도 ▲보성만 지역과 경북 북부해안을 유력한 원전후보지로 꼽고 있다. 이 보고서는 원전의 부지 선정시 고려할 사항으로 ▲인구 2만5천명의 밀집지역에서 일정거리를 유지하고 ▲공업용수를 확보할 수 있고 ▲견고한 암반을 가진 곳 등을 꼽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핵폐기물 관리대책은 원자력 상업발전이 시작된지 8년뒤인 1983년부터 거론되기 시작했다. 83년 원자력위원회 주관하에 핵폐기물관리 대책위원회가 설치되었으며 88년 7월 제220차 원자력위원회에서 보다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을 논의,「95년말까지 저ㆍ중준위 폐기물,97년말까지 사용후 핵연료 중간처리시설을 건설한다」는 기본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원자력연구소는 조사를 시작,88년초 경북 울진ㆍ영일ㆍ영덕 3곳을 후보지로 압축하고 88년 12월 제221차 원자력위원회에서 경북 임해지역에 동굴처분한다는 정부방침을 확정지었다. 그후 89년 3월부터 3개 후보지에 대한 지질조사를 시작하려 했으나 그때마다 돌이 날아오는 등 해당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로 중단됐고 지난 2월 과기처는 무인도로 폐기물 처분장 후보지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안면도가 중간저장시설 후보지로 확정된 것은 지난 9월 제226차 원자력위원회때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 회의는 이것을 3급 비밀로 분류,공개하지 않고 추진하다가 드러난 것. 과기처가 일을 서둘러 온 배경에는 동자부와 부처간 싸움끝에 가까스로 확보한 「방사성폐기물관리사업 기금 확보와 집행」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자부와 과기처 사이의 이해가 엇갈려 오랜 입씨름 끝에 핵연료 사업은 동자부관할로,방사성폐기물사업은 과기처가 맡기로 일단락지어지며 과기처는 해마다 7백억원에 가까운 핵폐기물관리기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즉 지난해 봄 원자력위원회에서 원전전력생산 1㎾/h당 1∼1.4원씩을 매년 징수할 수 있게 되었다. 기금은 확보해 놓고도 사업은 착수조차 못하자 한전은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었던 것. 원자력시대가 시작된 이래 세계에서 핵폐기물을 「외계로 쏘아 날려버리자」「극지의 얼음에 묻어버리자」는 방안까지 논의되었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들이 핵폐기물을 원자로옆에 여과되고 냉각된 물속에 저장하며 영구적인 처분기술이 개발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은 안전하고 외진 사막이나 소금암반층에 처분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발전소내의 저장용량은 늘리고 ▲사용후 핵연료도 현지저장후 외국에 재처리 보내고 ▲무인도를 영구저장소로 활용하는 연구 및 ▲시멘트고화 등 방사성폐기물 처분기술개발등에 노력하는 길밖에는 당장의 해결방법이 없다는 것이 전체 전등의 반이상을 원자력 불에 의해 밝히고 있는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시위배경ㆍ후유증/“관광개발 위장한 폐기시설” 오해/정부해명 일관성 없어 불신 증폭 정부의 핵폐기물 처리장설치에 반대하며 나흘동안 집단시위를 벌여온 충남 태안군 안면읍 주민들은 9일 정부관계자의 잇단 해명과 공권력 투입으로 일단 과격한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주민들은 정부의 일관성 없는 답변에 미심쩍어하며 추이를 관망하고 있는 상태여서 외관상으로는 평온을 되찾기는 했으나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안면도를 중심으로 한 태안군 고남면ㆍ남면일대 주민ㆍ학생 등 2만5천여명이 집단반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일 정부가 핵폐기물처리장을 이곳에 설치하겠다는 방침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부터였다. 주민ㆍ학생 등 1만여명은 급기야 지난 7일 생업과 학교수업을 제쳐놓고 시위에 참가,읍사무소를 점거해 행정을 마비시키고 지서방화ㆍ공무원 납치폭행 등 과격한 행동으로 요구를 관철시키려다 경찰과 충돌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이번 사태는 충남 도유림사업소가 지난달 안면읍 승언리 조계산에 산림전시관ㆍ청소년 야영장 등 휴양림 조성사업을 착공하자 주민들이 핵폐기물처리장 건설공사로 오해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주민들이 정부의 정책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데는 분명히 근거가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던 차에 정부측에선 무엇인가 공사를 착수하고 해명조차 부처간의 일관성이 없어 불신감이 증폭된데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곳 주민들은 지금까지 안면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농업 어업 등에 종사하며 평온하게 살아 왔으나 지난 88년부터 정부의 서해안개발계획에 따라 외부의 땅투기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평당 2천∼1만원하던 땅값을 20∼1백배까지 올려 놓아 기대에 부풀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 지난 1월에는 정부가 안면도를 국제관광지로 조성한다는 계획까지 발표돼 상당히 고무되어 있던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들어 관광지개발은 소문만 무성할뿐 착수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안면도가 핵폐기물처리장으로 된다는 소문에 땅값이 폭락하고 핵에 대한 공포증 또한 심화돼 자구책으로 집단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현지주민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일부 주민들은 이에 따라 안면도가 관광지는 물론이고 과학연구단지화되는 것조차 반대하고 현재의 상태로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이곳이 국제관광지가 된다해도 일부 서비스업이나 유흥업소에서는 환영할만하지만 대부분이 영세업ㆍ농업에 종사하고 있어 경제력이 없기 때문에 땅을 사 돈을 벌 수 있는 형편도 못되고 개발의 혜택도 없다는 주민들의 인식에 따른 것이다. 주민 신모씨(37ㆍ농업)는 『핵폐기물처리장이 안면도가 아닌 다른 곳으로 확정발표될 때까지 정부의 어떠한 말도 믿을 수 없다』면서 『이제는 아무리 섬사람이지만 언론을 통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눈가림식 행정은 지양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공무원 윤모씨(54)도 『주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커진 이유는 정부의 계획이 정확히 주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면서 『차라리 이곳에 어떤 개발계획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무튼 이번 「안면도사태」는 정부가 강력한 공권력 투입만으로 이들의 요구를 임시방편적으로 막으려 할 것이 아니라 핵폐기물처리장 설치에 대한 확실한 계획을 밝히는 것이 사태해결의 최선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북한,독가스등 생화학무기 비축/90국방백서

    ◎95년 핵개발도 가능/군사위성 발사 검토 이국방 북한은 지난 64년 평북 영변지역에 대규모 원자력연구단지를 조성,우라늄 생산·제련 및 핵연료 가공시설을 갖추고 핵기술을 개발,오는 95년쯤에는 핵무기 보유가 가능한 것으로 평가됐다. 국방부는 8일 발간한 90년도 국방백서를 통해 『북한은 현재 2개의 원자로를 가동중이며 올해말 제3원자로를 완공,핵 재처리시설을 추가 설치,대량의 플루토늄의 생산이 가능해졌다』고 밝히고 『95년 이후에는 핵개발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85년 12월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한 뒤 핵안전협정에는 서명을 기피,국제감시를 거부하고 있어 핵무기개발 사실을 반증해주고 있으며 북한이 핵무기를 가질 경우 한반도 안보상황은 크게 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방백서는 또 북한은 60년대 초부터 화생방무기개발 및 생산에 주력,현재 수포성 신경성 질식성 혈액성 최루성 유독가스를 대량 비축하고 있으며 콜레라 페스트 탄저병 유행성 출혈열 등 전염성 작용제까지 생산 보유하고 있는한편 생체시험까지 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연대급까지 화학소대를 편성해 화생무기공격훈련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 화생무기를 휴전선 부근에서 지상포를 이용,서울 등 후방지역으로 공격한다면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군사력은 90년 현재 ▲육군 86만5천명 ▲해군 4만5천명 ▲공군 8만명 등 모두 99만명으로 한국의 65만5천명에 비해 1.5배 수준이며 인구와 국토면적비율로 볼 때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의 중무장국이라고 밝혔다.
  • 외언내언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에는 기체상의 것,액체상의 것,고체상의 것이 있다. 기체상 방사성 물질은 단명이어서 며칠 내에 붕괴된다. 그러나 기체의 분열생성물 중에도 크립톤 85와 트리늄은 예외이다. 이들의 반감기는 12년이다. 다행히 이들은 핵분열 생성물 중 가장 위험이 적은 편이다. ◆액체나 고체상의 방사성 물질들은 그 반감기가 가장 짧은 것이 30년이고,긴 것에는 몇만 년짜리도 있다. 라듐은 1천6백30년,토륨은 7만6천년이다. 그래서 결국 원전 폐기물은 영구처분의 방법을 가져야 한다. 원자로가 아니라 상업시설이나 군사시설에서 나오는 경미한 것들도 최소 40년 이상 저장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스웨덴과 캐나다는 이 기간을 50년으로 정하고 있다. ◆미국 과학아카데미는 60년대초부터 이 문제에 매달렸다. 심해저에 가라앉히는 방법이 가장 좋다는 결론을 갖고 있다. 영국에서도 바다 속에 방사성 폐기물을 넣고 그 경과를 30년이나 측정해 보고 있다. 해상으로 용출되는 플루토늄이 10여 년 전부터 관측되고 있으나 무시해도 좋을 만한양일 뿐이다. 그래도 이 방법이 아직 본격적으로 쓰이진 않는다. 여전히 강력한 반대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지하 심층에의 격리가 유일한 선택이다. 유리나 난용성 세라믹으로 고화시킨 뒤 다시 시멘트,세라믹,금속 등으로 피복한다. 그러고도 저장환경의 화학적 특성,온도변화 압력변화들의 반응을 고려한 적지를 찾아야 한다.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핵폐기물에 대해 우리는 너무 안이하게 있어왔다. 원전이 9기나 되고 그간 발생된 폐기물이 2만8천드럼이나 되는데도 말이다. ◆과기처가 이제 충남 안면도에 방사성 폐기물 영구보전처리장 건설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물론 주민들의 반발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거점을 선정하든 주민과의 협의에 힘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니 왜 이곳이 최적지인가를 과학적으로 논증하고 이를 설득하는 일만이 중요하다. 영구저장시설의 시급성은 설명할 것도 없다.
  • 북한의 「핵사찰」 동의(사설)

    우리는 아직도 조개껍질 속에 들어 있는 듯한 북한에 대해서 약간의 변화라도 눈에 띄게 되면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다. 적어도 변화의 조짐이라도 없나 해서 눈여겨 보는 것이다. 북한이 일본과 요즘 북경에서 수교교섭을 갖는 데 대한 관심도 그중의 하나이다. 최근 북한은 그동안 계속 거부해온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시설사찰 문제와 관련,IAEA측과 그 대상 및 방법 등을 규정한 협정문서의 내용에 합의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아직 북한 당국은 물론 IAEA측의 공식언급은 없다. 북한으로서도 그동안 핵협정 가입을 고집스레 거부해온 만큼 우선 공식적인 입장천명을 유보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측은 하루라도 빨리 이를 공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남북대화의 진전에 도움이 될 것이고 지금 대일교섭을 서두르고 있는 북한측에도 이익이 될 것이다. 국제외교면에서 북한측은 바로 이 핵문제와 관련해서 더욱 고립되고 있다. 지난 8월 제네바에서 열린 핵확산금지조약 평가회의에서도 세계는 북한을 규탄한 바 있다. 북한은 85년 12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으나 그로부터 18개월 안에 IAEA와 핵안전조치 협정을 체결해야 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평양북방 영변근교에 원자로를 비롯하여 핵연료 처리시설을 갖추는 등 핵개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지금 구체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세계에 대해서,또 한반도 문제해결을 위한 대화의 마당에서는 거꾸로 한반도의 비핵화 주장을 하고 나선다. 또한 그들이 전략적으로 대화를 거부하고자 할 때는 항용 주한미군과 핵문제를 한데 묶어 대화중단의 책임을 남측에 떠넘겨왔다. 북한은 지난번 두 차례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불가침선언 채택을 주장한 바 있다. 「불가침」에 관해서는 우리측도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가침」은 그 평화적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문제여서 상호 군축,군사정보교환 및 공개훈련참관,군축결과검증 등 군사적 신뢰구축이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북한은 현재 일본과 수교협상을 하고 있고 우리 견해로는 북한이 궁극적으로는 일본이라는 대서방 창구를 통해 서방측과의 관계개선,특히 미국과의 수교를 겨냥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미측의 대북한 인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 미측은 북한의 완강한 「핵자세」를 통해 그들의 호전성과 대남전략의 불변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미측이 북한에 대해 핵안전협정에 가입할 것을 계속 촉구ㆍ경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은 군사적 목적의 핵개발은 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핵안전협정 체결을 거부해온 만큼 그들의 진정한 평화의지가 국제적으로 공인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북한이 변해야 하고 고립되지 말고 국제무대에 당당히 나서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북한이 핵사찰에 동의했다는 보도가 사실이기를 바란다. 그것이 북한 내부로부터의 괄목할 변화는 아니라 할지라도 핵사찰 동의만으로도 한반도의 긴장상태가 완화되리라고 확신한다.
  • 일 원전건설에 거센 반대여론(세계의 사회면)

    ◎정부,20년간 40곳 증설을 추진/핵공포 경험 시민,백지화투쟁 세계 각국은 지난 86년 발생했던 소련 체르노빌 핵발전소 원자로 폭발사고 이후 자국내 핵발전소 건설을 자제해왔다. 그런데 이웃나라 일본은 지금 이같은 추세에 역행(?)하는 대규모 핵발전소 건설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이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가시와자키­가리와계획」이라 불리는 이 계획은 총비용 2백억달러를 투입,오는 2010년까지 일본의 핵발전소를 현재의 38개에서 78개로 늘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이 계획을 책임지고 있는 도쿄전력(TEPCOX)은 『일본의 증가되고 있는 에너지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선 핵발전소의 건설이 불가피하다』면서 『오는 99년 총전력 수요의 40% 가량은 원자력에너지로 대체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벌써부터 일본내 반핵운동가는 물론 일반시민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치고 있다. 일본 사설에너지연구소 소장 도시아키 유아사씨는 『일본은 핵발전을 위해 무모한 건설을 시도하는 세계 유일의 선진국』이라고 꼬집었으며 반핵운동가인 가즈유키 다케모토씨는 『핵발전이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그들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비난했다. 일본 정부는 도쿄전력을 지원하기 위해 『기름이나 가스 등 천연자원이 없는 일본이 에너지확보를 위해 가능한 방안은 핵발전밖에 없다』고 국민들을 설득하며 『핵발전은 비용도 적게 들어 수력발전으로 1㎾의 전력을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이 13엔인데 반해 핵발전은 9엔밖에 안든다』며 핵발전의 장점을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홍보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일본인들은 이 계획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일본 핵정보연구센터의 유리카 아유카와씨는 『「가시와자키­가리와계획」은 비현실적이며 설득력이 없다』면서 『정부와 도쿄전력은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이 계획을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발전소가 들어서면 도로는 확충되고 일자리는 늘어나게 될지 모르지만 2차대전중 핵의 공포를 경험했던 일본인들은 『생존을 위협 받으면서까지 잘 살고 싶지는 않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자원의 고갈로세계 여러나라들이 대체에너지 대책 수립에 고심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일본이 현재 겪고 있는 이 문제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 소,북한에 핵사찰관 파견 검토/원전건설 지원도 중단

    ◎일 통신/핵무기개발 봉쇄 적극 나설듯 【도쿄 연합】 소련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사찰 수락협정을 체결할때까지 원자력발전소 건설지원을 동결키로 했다고 교도(공동)통신이 북한문제에 정통한 소련소식통의 말을 인용,18일 모스크바발로 보도했다. 이 통신은 또 소련은 IAEA사찰관으로 자국전문가의 파견을 검토중이라면서 소련에 핵연료를 의존하고 있는 북한이 이를 거부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소련은 지난 85년 체결한 협정에 따라 북한에 원자로 4기를 갖춘 핵발전소건설을 지원해 오고 있다. 교도통신은 북한이 지난 85년 핵확산금지조약에 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제기구와 사찰협정을 맺지 않아 특히 미국등 서방국가들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소련 사찰관의 북한파견에 대해 미국이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 국산원자로 92년까지 개발/과기처 업무보고/지역난방에도 활용키로

    ◎중앙기상대는 「청」으로 승격 과학기술처는 11일 현재의 중앙기상대를 기상청으로 승격,대방동 공군대학부지에 8천평규모의 새 사옥을 짓고 제주ㆍ부산ㆍ동해ㆍ군산 등 4곳에 기상레이다를 추가설치하여 태풍 등 일기예보의 정확도를 90% 수준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정근모 과기처장관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요업무보고를 통해 과학기술원이 대덕으로 이전한 대신 홍릉캠퍼스에 전문석사과정을 신설,연간 5백명씩의 고급과학기술인력을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또 국립기상연구소를 정부출연기관인 「대기과학연구소」로 개편하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상설기구화하고 92년까지 다목적 원자로를 자력으로 설계,건조하는 한편 96년까지 지역난방 원자로를 개발하여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보고했다.
  • 코오롱­태평양화학,법정싸움 비화

    ◎“코오롱”ㆍ“코롱” 상표권 공방/“상표권침해”… 손해배상 소송 제기/코오롱/“60년대초 방향제로 이미 허가난것”/태평양 「리도 코롱」 상표를 놓고 코오롱과 태평양화학이 뜨거운 법정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국내 굴지의 기업 코오롱은 「리도 코롱」이라는 상표로 샴푸와 린스,화장비누 등을 생산ㆍ판매하고 있는 태평양이 자기회사의 「KOLON(코오롱)」 상표를 침해하고 있다며 지난달 서울 민사지방법원에 상표권침해금지와 함께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코오롱측은 이와함께 앞으로 「리도 코롱」상표 사용을 전면금지하고 이미 만들어 창고나 사무실 등에 보관하고 있는 상품은 모두 폐기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두 회사간의 상표권시비는 지난86년 7월 태평양이 특허청에 신청한 화장비누ㆍ샴푸 등에 대한 「리도 코롱」 상표가 『이미 등록돼 있는 주식회사 코오롱 상표와 칭호가 유사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면서 시작됐다. 태평양측은 이에 불복,특허심판소에 항고심판을 제기했으나 같은 이유로 패소하자 잇따라 대법원에상고했었다. 이에 대법원은 『출원인의 「리도 코롱」 상표는 코오롱과 외관 및 칭호가 유사해 상품에 사용될 경우 수요자들로 하여금 주식회사 코오롱과 특수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오인케 할 우려가 있다』며 상표법 제9조 1항을 들어 지난 2월23일 특허청의 상표등록 거부결정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코오롱은 태평양측이 대법원의 확정판결 이후에도 아무런 시정조치를 취하지 않자 다음 단계로 86년 「리도 코롱」을 상표로한 제품생산 이후 기업의 공신력과 고객흡입력을 떨어뜨림으로써 입은 유ㆍ무형적 손해에 대한 배상금 10억원을 요구하고 나섬으로써 법정공방 제2라운드에 돌입한 것이다. 코오롱측은 태평양측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코롱」이 방향제의 보통명칭인지 여부를 놓고 지난 3년7개월의 소송기간 동안 다툰끝에 대법원판결을 통해 『「코롱」은 방향제의 보통명칭으로서 일반적ㆍ현실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 졌는데도 태평양측이 계속 주장을 굽히지 않자 「법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민사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대해 태평양측은 60년대초 방향제 지정상품으로 품목허가를 받을 당시 발음나는 대로 「코론」으로 신청을 하자 보사부가 약전에 명시된대로 「코롱」으로 바로잡아 신청하자고까지 했다며 「코롱」 상표의 사용중지에 불복하고 있다. 태평양측은 또 『30년 가까이 모든 화장품업계에서는 콜로뉴의 변형된 발음인 「코롱」을 향수를 나타내는 관용어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만약 「코롱」이라는 상표가 독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화장품업계에서 먼저 분쟁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코오롱은 이밖에 태평양측이 「아모레 코롱」 등 「코롱」이라는 상표로 이미 등록해 놓고있는 3개상품에 대해서도 특허청에 등록무효 심판소송을 청구해 놓고 있다. 태평양측도 이번에는 질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화장품 등 12개 화장품업체들도 태평양의 응원자로 가담해 「코롱」의 관용어 사용여부를 놓고 한바탕 맞붙을 전망이다. 태평양은 또 코오롱이 한국나일론의 영자를 줄여 만든 「KOLON」을 먼저 등록한뒤 76년에 가서야 한글로 「코오롱」 상표등록을 했다며 『누가 KOLON을 처음부터 「코오롱」으로 발음하겠느냐』고 주장하는 한편 코오롱그룹의 어느 계열회사에서도 상표등록만 했을뿐 상품을 생산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입은 손해는 있을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 중국 다야 핵발전소/불서 안전문제 감독/양국,계약 체결

    【파리 AP 연합】 중국은 오는 92년부터 가동될 다야만 핵발전소의 안전조치에 대해 프랑스가 『부분적으로 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라고 핵에너지위원회가 27일 밝혔다. 이 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중국 광동 핵발전소측과 안전조치ㆍ장비판매ㆍ중국 기술자들의 훈련 등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현재 프랑스의 프라마톰사는 홍콩 동쪽 50㎞ 떨어진 다야만에 2기의 수냉식 원자로를 건설중이다.
  • 핵탄원료 플루토늄/북한,생산단계

    【워싱턴=김호준특파원】 북한은 무기급 플류토늄의 생산을 개시할 단계에 있음에도 핵안전협정에 서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는 「핵확산금지 촉진프로그램」의 밴 샌더스 의장이 15일 한 브리핑에서 주장했다. 오는 20일 제네바에서 개막되는 핵확산금지 평가회의를 앞두고 열린 이 브리핑에서 카네기재단의 수석연구원 레너드 스펙터씨는 『특히 우려되는 것은 북한이 플루토늄 생산용으로 설계된 원자로를 이미 건설했고 또 플루토늄 추출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 쿠바 북한 소 경원 줄자 「공산경제」허덕인다

    소련의 석유공급 감축으로 쿠바가 상당한 경제혼란에 빠진 것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소련의 대북한 석유공급이 이미 감축됐으며 앞으로 군사원조도 축소될 것이라고 팔린 소공산당 국제부장이 밝힘으로써 북한도 쿠바와 같은 경제혼란을 겪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소련은 이같은 석유공급 감축이 국내생산 감소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세계적인 탈냉전 조류를 도외시한 채 사회주의 고수를 외치는 북한과 쿠바에 대한 우회적인 압력수단으로 해석되고 있다. 소련의 석유공급 감축으로 북한이 겪게 될 어려움,소련과 쿠바의 사정등을 알아본다. ◎원유수급 차질 북한/소의존 높아 30% 줄면 “산업휘청”/전력난 겹쳐 공장에도 제한송전 소련이 최근 북한에 대한 원유공급을 삭감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소련의 이같은 대북한 경제원조 축소가 북한경제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소련이 지난 7일 쿠바와 동구에 대해 국제시세보다 3배가량 싸게 공급해온 「대외원조용 원유」를 30% 삭감키로 결정한 이후 이들 나라들이 심각한 「오일쇼크」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대소 경제의존도가 이들 나라보다 결코 낮지 않은 북한이 겪을 경제적 타격도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한은 원유수입량의 약 30∼40%를 소련에 의존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를 삭감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소련이 비록 「정치적」이유에서 원유공급을 삭감키로 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해 있는 북한으로서는 이번 조치로 인해 심상치 않은 경제적 시련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경제의 대소 의존도는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지만 지난해 3월 소련당국이 발표한 대북한 경제지원 내역에 따르면 소련은 54∼60년 사이에 13억루블을 원조했으며 소련상품이 북한의 총수입상품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7%나 됐다. 특히 북한의 대소무역의존도는 절대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본무역진흥회(JETRO)가 지난 87년 북한과 거래했던 세계 33개국의 무역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북한의 대외수출은 14억6천만달러,수입은 20억7천만달러이며 이중 북한과 소련간의 왕복무역 규모는 총 19억5천만달러(전체대비 55%)로 2위인 중국과의 교역액 5억2천만달러와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또한 북한의 대외 채무액은 88년말 현재 약 52억달러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제1채무국 또한 소련이기 때문에 소련이 대북 경제압력을 가할 경우 북한으로서는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소련의 원유공급 삭감이 미칠 영향과 관련,북한의 에너지 공급현황을 보면 석탄 70%,석유 30%로 비교적 석유의존율이 낮기는 하지만 현재 석탄의 생산실적이 목표량인 1억2천만t에 크게 밑도는 4천70만t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때 소련의 이번 원유삭감 조치는 설상가상의 어려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전략생산부문에 있어서도 오는 93년까지 1천7백만㎾의 발전설비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현재까지의 추진실적은 6백90만㎾에 불과하며 연간 발전생산량 역시 목표량 1천억㎾H에 크게 못미치는 3백억㎾H로 심각한 전략난에 직면해 있다. 특히 소련은 북한의 전력생산을 증가토록 지원하기 위해 93년까지 총 1백76만㎾의 원자력 발전소(44만㎾급 4기)건설을 지원키로 합의했으나 북한의 핵안전협정체결 거부로 인해 소련이 원자로 4기의 대북판매를 일단 중단했음이 지난달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이사회에서 확인됨에 따라 이 계획 역시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 결국 동력원료 연료로서 주된 에너지를 공급하는 전력ㆍ석탄부문의 저조한 실적은 현재 북한의 공업생산과 경제건설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을뿐 아니라 「제한송전」등 주민생활에도 엄청난 불편을 입히고 있다. 따라서 연간 80만∼1백만t 규모(전체대비 40% 정도)로 알려져 있는 소련의 대북 원유공급량중 그 삭감량이 30% 정도만 되어도 북한경제는 엄청난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교역길도 막힌 쿠바/연료 할당량 줄어 국민불만 팽배/에어컨 가동중지ㆍ버스운행 단축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발표한 대통령포고령을 통해 『제3세계에 제공되는 소련의 대외원조는 재정적으로 궁핍한 소련경제에 비춰볼때 감당하기 어려운 「사치품」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고르바초프는 또 향후 『동구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 회원국과의 무역관계를 완전히 태환성을 갖는 통화로 국제가격에 따라 거래되도록 보장함은 물론 이같은 방침을 COMECON 이외의 국가들에게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고르바초프의 이같은 포고령이 발표된지 5일 후인 지난달 30일 발렌틴 팔린 소련공산당 국제부장은 일본 산케이(산경)신문과 가진 회견에서 『소련이 북한에 대한 석유공급을 이미 삭감했으며 앞으로는 군사원조도 축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외교책임자인 팔린의 이같은 발언은 고르바초프의 포고령이 이미 실시되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것으로 소련경제가 대외 군사ㆍ경원까지 감축해야 할만큼 악화됐음을 시사한다는 점과 소련의 대북한 군사ㆍ경제원조의 감축이 경직된 사회주의체제의 유지를 고집하는 북한에 얼마만큼의 압력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두가지 측면에 서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추진 5년동안 전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소련경제는 지금 글자 그대로 파탄 일보직전에 놓여 있다. 유일한 희망이라곤 고르바초프의 권좌유지를 희망하는 서방으로부터의 경제원조인데 그것도 소련경제의 탄력성에 회의를 품고 있는 서방기업들의 망설임때문에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력의 낭비를 최대한으로 억제하겠다는 고르바초프의 의지표명이 제3세계에의 경제원조 중단으로 나타났다는게 소련관측통들의 분석이다. 동구 각국과 쿠바는 이미 소련의 석유공급감축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는데 자유시장경제로의 점진적인 이행을 시도하고 있는 동구국들과는 달리 사회주의경제체제를 고집하는 쿠바가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동구 각국은 가격인상등을 통해 미약하나마 수요를 억제할 「장치」가 있는데 비해 쿠바에선 연료할당량의 감축에 따른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바는 사무실에서 에어컨 가동 중지령을 내렸으며 일부 지역에선 트랙터 대신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일이 다시 등장했고 자칫하면버스운행마저 중단될 위기에까지 이를 수도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제ㆍ군사적으로 대소의존도가 높은 북한 역시 쿠바와 마찬가지로 소련의 석유공급 감축이 오랜동안 계속될 경우 상당한 혼란에 빠질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달 25일 고르바초프의 포고령이 세계적인 탈냉전 분위기를 외면하고 있는 쿠바와 북한을 의식했든 안했든 결과적으로 그것이 두 나라에 상당한 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련의 석유공급 감축은 한사코 마르크스주의의 수성을 고집하는 쿠바와 북한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지는 못하겠지만 대소 의존이란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개방촉구의 압력수단으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 “평양 핵개발땐 한반도 새냉전우려”/미 하원 동아태소위 청문회요지

    ◎“고려연방제 집착하면 통일 어려워/북한이 교차승인 원할땐 미 응해야” ○미­북한관계 ▲드세이 앤더슨(국무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미국은 지난 88년 북경에서 북한과 외교관 접촉을 개시한 이래 북한에 대해 남북대화진전,핵 안전협정 체결,테러 포기입증,신뢰구축 조치,미군유해 송환 상례화 등을 촉구했다. 이것은(대북한관계개선의) 전제조건이 아니며,북한은 이를 한꺼번에 취할 필요가 없다. 북한이 대미관계개선 조치를 취한다면 미국은 그보다 더 진전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미국의 대북한 외교관계 수립문제는 신중히 판단되어야 한다. 북한은 한반도 분단고착화 때문에 미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나,일부 북한 대표들은 워싱턴과 평양에 무역사무소나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구상을 지지하고 있다. 북한에 외교공관을 설치하는 것은 정부 승인을 의미하기 때문에 북한이 우리가 요구하고 있는 조치들을 취할 때까지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평양에 외교관을 주재시키는 것은 관계개선을 위한 일련의 상호조치 가운데 마지막 단계가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과정의 출발점에 서 있다. ▲개스턴 시거(조지 워싱턴대교수ㆍ전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지금은 미국이 대북한 관계에서 전향적인 자세를 취할 때다. 외교사절의 교환같은 중대조치는 북한이 우리의 큰 관심사인 핵안전협정 가입이나 남북대화 진전 등을 충족시키는 조치를 취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현 단계에서 미국이 취할수 있는 몇가지 조치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대북한 무역규제를 완화하고 미국인들이 자유롭게 북한에 전화를 걸거나 전보를 칠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는 허담과 같은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을 미국으로 초청,행정부 관리나 의회 인사들과 비공식 대화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지난 2년간 테러행적이 없는 북한을 테러리스트 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것을 검토할 시기가 됐다고 본다. 외교관계 수립문제는 한국과 소련의 관계 개선에 연계시키지 말고 효율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지금 외교사절을 보낼 필요는 물론 없지만 시기가 도래하면 초기단계엔 무역보다도 영사 쪽이적절할 것이다. 연락사무소는 양쪽일을 모두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랄프 클라프(존스 홉킨스대교수)=미국과 북한간의 관계변화를 신중히 고려할 시기다. 북한은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조만간 국내개혁과 대외 개방정책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원칙적으로 미국이 북한에 외교관이나 다른 공식 대표를 상주 시키는 것에 대해 찬동한다. 이는 북한의 개방을 유도할 것이다. 어떤 레벨의 대표를 두느냐는 문제는 소련처럼 서울에 무역대표부를 두고 영사업무를 보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미국의 공식대표를 평양에 두는 것은 우리에게 불이익이 될수 있다. 만일 김일성의 사후의 불안정한 시기에 북한 주민들이 미국대표부에 몰려들어 망명을 요청할 경우 미국은 난처한 지경에 빠질 것이다. 북한에 대한 무역규제도 전략적인 상품을 제외하고는 푸는 것이 북한을 개방시키고 미국과 남한에도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앨런 롬버거(외교관계연구소 연구원)=만일 북한이 교차승인방식으로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원할 경우 미국은 그렇게 해야 한다. 북한에 대해 비전략 물자의 교역을 개방해 주는 것이 필요하지만 미ㆍ북한간 무역사무소 교환 설치가 이익을 특별히 가져올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남북대화가 진전되면 미국은 북경에서 진행되고 있는 북한과의 외교관 접촉 수준을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 ○남북한관계 ▲앤더슨 부차관보=최근 수개월간 다소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남북한간에 합의된 총리회담은 남북한 관계에 전환점을 기록할 것이다. 미국은 남북한 국민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의 평화통일을 지지한다. 한반도는 독일과 일부 유사성이 있지만 독일이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전망은 실질 문제에 대한 대화와 협의가 진전됨에 따라 밝아질수 있는 것이지만 통일 그 자체는 독일처럼 빠르게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남북한은 독일처럼 상호문제를 오랫동안 다뤄 온 경험을 쌓지 못했다. ▲시거 교수=김일성이 고려연방제,즉 체제가 완전히 다른 두 국가에게 하나의 군대와 대외정책을 갖도록 하는 비생산적 개념에 집착하는한 한반도 통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클라프 교수=한국과 독일의 통일문제를 놓고 유사성을 찾는 것은 잘못이다. 동독은 TV 라디오 무역 여행 등을 통해 상당기간 서독에 노출됐었으나 북한은 남한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 철저히 단절됐다. 동독에서처럼 갑자기 공산정권이 무너지는 일이 북한에서는 일어날 것 같지 않다. 김일성이 죽으면 북한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김이 살아 있는 한 한반도의 통일 전망은 희박하다. ○한반도 핵문제 ▲앤더슨 부차관보=북한은 그들의 핵 안전협정 서명과 한반도 비핵지대화 문제를 연계시키고 있으나 미국의 입장은 두 문제가 별개라는 것이다. 북한이 IAEA(국제원자력기구)에 제출한 정보에 따르면 북한은 소련이 제공한 2기의 안전장치가 된 소형연구용 원자로를 갖고 있다. 소련은 북한에 발전용 원자로를 제공하기로 약속했으나 인도는 북한의 핵비확산조약 의무 이행을 조건으로 이뤄지도록 돼있다. 핵 개발에 대한 북한의 불확실성은 한반도 긴장의 원인이 되고 있다. 북한이 무기개발을 시작하면 상황은 급격히 악화될 것이다. 북한이 핵 안전협정을 체결하면 미국은 이에 긍정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시거 교수=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한국을 자극하여 남북한의 핵개발 경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기습공격은 온당치 않다. ▲클라프 교수=남한이 북한의 핵 시설을 폭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은 서울을 명중시킬수 있는 많은 수의 재래식 미사일을 보복 수단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나는 남한에서 미국 핵무기의 철수를 주장했었다. 그러나 이젠 IAEA가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위험이 없다고 판단할때까지 핵무기 철수를 주장하고 싶지 않다. 만일 평양의 핵무기 개발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미국과 한국은 한반도 비핵지대화 협정의 필요성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롬버거 연구원=한국배치 미 핵무기는 철수하는게 바람직하며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 우산 보호는 계속되어야 한다. 북한이 핵 안전협정에 서명할 경우 미국은 한반도에서 핵을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다. 팀 스피리트훈련은 완전 폐지 보다 규모를현 수준에서 20∼25% 축소하는게 좋다고 본다.
  • “탈냉전”… 변화하는 미 안보전략:하

    ◎동북아주둔 미국의 역할 진단/「공산화 방지」서 「대일견제」에 주력/“힘 공백땐 안정저해”판단,전면철수 안할듯/북한군부 자극 우려,성급한 개방압력 자제 미국은 지난 4월 주한미군의 3단계 감축계획을 비롯한 동북아주둔 미군의 장래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주한 및 주일미군은 장차 이 지역내에서 전쟁억지를 위한 최소한의 병력만 주둔하는 것으로 축소ㆍ개편토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미군의 전면철수도 가능할 것인가. 이제 동북아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역할은 막을 내리는 것인가. 이같은 의문에 대해 미국의 정부당국자들이나 학자ㆍ의회지도자들은 『미군의 주둔목적이 바뀔 뿐 역할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따라서 대폭적인 철수는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뜻을 같이하고 있었다. 워싱턴 DC소재 존스 홉킨스대에서 국제정치학을 강의하고 있는 윌리엄 와츠교수는 『동북아주둔 미군의 지금까지의 역할은 공산세력의 남하를 저지하는데 있었다』고 밝히고 『그러나 앞으로는 일본을 견제하는 쪽으로 바뀔 것』이라고 밝혔다. ○일의 독주 용납 못해 많은 학자들이 이같은 견해에 동조하고 있었으며 세인트루이스 소재워싱턴대학의 짐 데이비스교수(국제정치학)는 『동북아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위기가 온다』고까지 주장했다. 그 위기는 공산세력의 팽창때문이 아니라 미군철수로 인한 힘의 공백을 메우려는 이 지역 국가들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데이비스교수는 『미군이 아시아에 주둔하고 있는 한 중국이나 동북아 국가들은 미국이 아시아를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러나 미군이 철수하면 일본이 그 역할을 맡으려 할 것이므로 주변국들이 과거의 악몽때문에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일본이 재무장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이유로 와츠교수는 『일본은 과거의 잘못에 대해 주변국들로부터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이 보복을 두려워하는 만큼 중국이나 남북한 및 동남아국가들은 과거의 악몽이 되풀이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미군이 철수하면 이 지역 헤게모니쟁탈전이 본격화될 것이며 이는 동북아정세를 극도의 불안정상태로 몰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가까운 장래에 미군의 대폭철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정치평론가이자 티모시 워즈 상원의원 입법보좌관인 제프 시브라이트씨도 『동북아주둔 미군의 역할은 소련견제가 아닌 일본견제로 바뀔 것』이라며 동감을 표시했고 국무부나 국방부 관리들도 이에 대해 부인하려 하지 않았다. 와츠교수는 일본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에 대해 『일본을 소련과 같은 적으로는 생각지 않지만 장차 미국에 대해 가장 큰 위협을 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의 기술ㆍ경제력이 미국경제를 붕괴시킬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북한의 변화가능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자 관리들이 비관적인 전망을 내리면서도 『그래도 언젠가는 틈이 생길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국무부의 스펜스 리처드슨 한국과장을 비롯한 한국통들은 『북한이 군사화ㆍ요새화돼있는게 동구와 같은 변화를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동구에서는 군대조직이 너무 느슨해서 쉽게 와해될수 있었으나 북한은 다르다는 것이다. 북한의 군부는 김일성사후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해 북한의 장래를 결정해갈 것으로 국무부관리들은 내다보고 있었다. 설사 북한에서 동구와 같은 혁명이 일어난다 해도 민주화의 길로 가기보다는 군부 강경파의 손으로 넘어가기 쉽다는 암시였다. 국방부관리들도 비슷하게 북한군부의 비중을 중시하고 있었다. 특히 소련이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해오면서도 최근까지 스커드 미사일등 고성능 군사장비를 북한에 제공하고 군대와 함대를 친선방문토록 하는 것도 북한군부를 의식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적어도 일부 소련군 지도자들은 김일성사후에도 북한과 제한적이나마 관계를 유지해나가는게 바람직스럽다고 판단,사전에 북한군부와 유대를 다져 놓자는 생각을 갖고 있는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국무부나 국방부관리들이 대북한정책에 너무 보수적이고 현상고착적인 입장을 보인데 반해 젊고 진보적인 학자들은 이를 신랄히 비판하고 있는 점이었다. 국무부관리들은 북한이 최근 미군유해 5구를 송환한데 대해 『그들은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 미국이 줄 선물은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미국과 북한이 워싱턴과 평양에 연락사무소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그것은 그릇된 정보』라고 단호히 부인했다. ○북의 장래 군이 좌우 미국이 대북한관계개선에 이니셔티브를 취하지 않고 있는데 대해 리처드슨 한국과장은 『북한주민에 대한 미국민들의 태도가 보수적이다. 테러리즘 때문일 것이다. 이같은 부정적인 미국민여론이 북한과의 관계진전을 밀어주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워싱턴대학(시애틀)의 도널드 헬만교수(국제정치학)는 『국무부관리들은 동북아에서 주도권을 장악할 호기를 놓치고 있다』고 비난했으며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브루스 커밍스의 제자로 수정주의학자에 속한 데이비드 새터 화이트교수(퓨제트사운드대)는 『팀스피리트훈련을 중지해서라도 북한과의 관계정상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핵」대응책부심 그러나 미의회의 제프 시브라이트보좌관은 『아시아지역에서 냉전이 막을 내릴 날짜는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면서 『남북한관계는 얼음을 조금씩 녹여가듯 서서히 풀어가야 한다. 그러면 북한내부에서 틈이 생겨날 것이다. 급격한 변화는 바람직스럽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바람직스럽지 않은 방향」은 아마도 김일성사후 군부강경파가 집권할 가능성을 말한다. 그는 한국정부가 당면한 두가지 난제로 ▲김일성사후 북한의 혼란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문제 ▲북한의 핵개발이 완성단계에 이르렀을 때 과거 이스라엘이 이라크 원자로를 공습했듯이 특공작전을 펼쳐야하느냐는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정보수집능력과 관련,과연 며칠전에 북한의 남침의도를 간파해 사전경고를 내릴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국방부관리들의 답변은 각양각색이었다. 「수일내」에 가능하다는 주장에서부터 「24시간」이라고 답변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한 한국담당장교는 『북한의 전방배치부대는 현위치에서 즉각 전투에 들어갈수 있어서 사전경고를 할수 없으며 다만 후방부대의 움직임으로 남침의도를 간파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주한미군은 이미 3단계철수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대폭철수는 적어도 현단계에서는 고려되지 않고 있음이 확실하다. 주한미군은 주일미군과 함께 일본을 견제하고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위한 담보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관리들은 한국의 통일에 반대는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통일문제해결에 앞장서줄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그것은 너무 성급하게 나가면 북한정권이 군부강경파의 손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는데다 설사 통일이 된다해도 서독처럼 한국이 주도적 역량을 발휘할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여건이나 준비가 부족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듯 하다. 결국 한반도통일은 한반도인의 손에,한국인의 역량에 달려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 북한,미에 핵 사찰논의 제의/워싱턴당국 확인

    ◎원자력기구 활동 수락 전제/소선 북한 원전 건설 원조 동결 【도쿄 교도 연합】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한 핵관련시설 현장사찰 수락전제조건으로 먼저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제안했다고 일본 외무성과 관계소식통들이 21일 말했다. 북한은 7월 중순 IAEA 빈 본부에 대표단을 파견,미국에 이같은 제안을 했으며 북한이 직접 대화를 제안한 것은 북한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미국측의 다짐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이들 소식통들은 말했다. 한편 미국당국은 이같은 보도내용이 사실이라고만 확인하고 더이상의 논평은 하지 않았다. 【도쿄 연합】 소련은 북한의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원조를 동결했으며 이같은 조치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사찰협정을 맺을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요미우리(독매)신문이 21일 미 핵전문가의 말을 인용,워싱턴발로 보도했다. 소련은 85년에 조인된 북한과의 협정에 의해 원자로 4기를 갖춘 북한의 발전소 건설을 지원하도록 돼 있으나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북한이 국제기구의 사찰을 받아들이도록 소련이 영향력을 행사해주도록 되풀이 요청해왔다.
  • 한중,한전공사 독점/토건ㆍ원자로 설치공사는 제외

    한국중공업이 앞으로 한전이 발주하는 발전소용 주기기인 원자로ㆍ터빈시설은 물론 보조기계 및 전기관련설비등 기전시설 설치공사를 도맡게 됐다. 이로써 한중은 발전소건설사업에서 토건공사 및 원자로 설치공사를 제외한 모든 공정을 독점하게 됐다. 그러나 울진원전 3ㆍ4호기의 기전시설 설치공사와 인천 일도복합화력의 보일러계통을 제외한 주기기제작,안양ㆍ분당ㆍ일산 열병합발전소의 주기기제작 및 기전시설설치공사,월성 원전 2호기 1차계통의 주기기 제작사업은 한중의 수주능력을 벗어나기 때문에 다른 업체의 참여를 허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19일 하오 이승윤 부총리주재로 산업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한중의 경영정상화 및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한 이같은 내용의 「발전설비제조업의 산업합리화 기준변경안」을 의결했다. 이밖에 발전소 보조기기의 경우도 한중이 공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한중이 생산하지 않거나 국산화능력이 없는 중전기등 일부 보조기기는 예외로 인정,한전이 국내업체나 외국업체로부터 조달할 수 있게 했다.
  • 북의 대남전략 변화없어 결실 기대난/첫 남북총리회담과 연형묵

    ◎연총리는 합리적 성격의 기술관료 출신/김부자 신임 두터우나 행동반경 의문 북한의 정무원총리 연형묵(65)이 오는 9월초 서울에 온다. 지난 12일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 실무대표들이 남북총리를 각각 단장으로 한 남북고위급회담 1,2차 회담을 오는 9월초순 서울과 10월 중순 평양에서 번갈아 개최키로 완전합의함에 따라 분단 45년만에 최초로 북한의 총리가 서울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장차관급(북한의 경우 정무원 부장ㆍ부부장)을 비롯,수행원 33명,기자 50명 등 모두 90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서울에 오게될 연형묵총리는 현재 북한내 권력서열 6위의 혁명 2세대. 북한권력 서열상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떠받치고 있는 70대고령의 혁명 1세대인 오진우(73ㆍ3위ㆍ인민무력부장),이종옥(79ㆍ4위ㆍ부주석),박성철(76ㆍ5위ㆍ부주석)에 이어 김영남(65ㆍ7위ㆍ외교부장) 허담(65ㆍ11위ㆍ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등 60대중반의 혁명 2세대중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김일성대학 이공학부와 소련우랄공대에서 금속ㆍ기계ㆍ전기ㆍ전자 등을 공부한 대표적인 기술관료(테크노크랫)로서 북한의 행정집행기구의 총책임을 맡고있는 동시에 당정치국원ㆍ당중앙위원 등을 겸직,노동당의 정책결정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는 지난 85년 정무원 제1부총리겸 금속기계공업위원장을 맡아 정무원에 첫 진출,88년 12월 이근모의 후임으로 총리직에 선임됐는데 기계공업분야에 정통하며 북한의 대외경제협력 등을 추진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83년과 84년 김일성을 수행,중국ㆍ소련ㆍ동구권 등을 방문하는 등 김일성의 신임이 두터운 편이며 러시아어와 불어ㆍ일어 등에도 능통,국제감각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25년 북만주에서 태어난 그는 70년 당중앙위 부장에 기용되면서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만경대 혁명학원 1기생으로 김정일의 선배이자 70년대 3대혁명소조운동이 벌어졌을 때 당책임지도원을 맡았던 경력이 말해주듯 김정일 후계체제의 강력한 후원자로서 앞으로 김정일의 정치ㆍ경제 참모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연형묵은 판단이 예리하고 날카로우며 합리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는데 김일성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동시에 김정일의 측근인 그가 앞으로 있을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어떠한 자세를 보일지 주목되고 있다. 이와 관련,북한문제전문가들은 경제실무에 밝으며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기술관료출신의 연형묵이 보다 유연한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북한이 판문점에서의 8ㆍ15 「범민족대회」개최와 제정당ㆍ사회단체가 참여하는 「통일협상회의」개최를 거듭 주장하고 있는 등 기존의 대남적화 통일전략을 바꾸지 않고 있어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얼마만큼의 결실을 거둘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 전쟁의 배경과 준비(새 실록 6ㆍ25:상)

    ◎중국 공산화에 고무… 김일성,남침 서둘렀다/동서냉전 한반도 유입이 「비극의 불씨」로/김일성,스탈린 지원 업고 모의 내약받아/애치슨 발언ㆍ미군철수로 「힘의 공백」초래/여순사건등 사회혼란도 평양오판 불러/소,야크기ㆍ탱크 1백대씩 공급… 북선 통치요원 미리 임명(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 지금으로부터 꼭 40년전인 50년 6월25일. 그날에 시작되어 53년 7월27일에 휴전된,37개월에 걸쳤던 한민족의 동족상잔을 흔히 한국전쟁이라고 부른다. 결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될 우리 근ㆍ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을 3회에 걸쳐 다시 써보려는 것이 이 연재의 목적이다. 제1회에서는 한국전쟁의 배경과 준비를,제2회에서는 한국전쟁의 전개를,그리고 제3회에서는 한국전쟁의 휴전성립과정과 그 유산을 각각 다루기로 한다. □약력 김학준 대통령사회담당보좌역 □1943년생. 인천출신 □서울대 정치학과,동대학원 졸업,미켄트주립대 정치학석사 □미피츠버그대서 「아시아 세력균형에 있어 한국통일」논문으로 정치학박사학위 □서울대 정치학과교수,미국버클리대 동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일본도쿄대 국제관계학과 객원교수 □12대 국회의원(구 민정ㆍ전국구) □「한국전쟁 발발에 있어 중공의 비개입」등 한반도 분단,6ㆍ25동란 등에 관한 주요 논문다수. 한국전쟁이 50년 6월25일에 일어난 것은 사실이나 그 뿌리는 아무리 늦게 잡아도 45년 8월15일 일제로 부터의 해방직후에 나타난 한반도의 분단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분단이 없었다면 전쟁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때 한국전쟁에 대한 설명이 한반도의 분단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당연하다. 한반도의 분단에서는 우선 열강의 권력정치라는 국제적 요인이 짙게 깔려 있다. 지정학적으로 볼때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을 차지하고 있는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이 지역의 화약고로서 주변 강대국들의 수많은 각축을 불러 일으켰던 곳이다. 한말의 청­일 전쟁과 노­일 전쟁이 그 대표적인 보기들인데 여기서 결코 간과될 수 없는 점은 이러한 전쟁이 있을 때마다 열강은 한반도의 분할을 협상했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 전략적으로 탐나는 한반도의 「독식」을 위해 이전투구격으로 싸우다가 승부가 분명해지지 않으면 「분식」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 전쟁 모두에서 일본이 궁극적으로 승리하면서 한반도는 일본의 「독식」아래 들어가고 말았다. ○세계의 열강들 “눈독” 일본이 패망하게 되면서,그리하여 일본이 한반도를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열강의 「식욕」은 다시 한번 자극받게 되었다. 소련은 물론이거니와 중화민국도,그리고 당시는 아직 대륙을 차지하지 못한 중국 공산당조차 한반도에 대한 야심을 감추지 않았으며,영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무력화시켜서는 안된다는 취지에서 은연중에 한민족의 완전한 독립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새로운 각축이 예견되는 두려워할 만한 상황에서,이 지역의 새로운 패자로 자리를 굳힌 미국은 미ㆍ소ㆍ영ㆍ중의 연합국이 함반도를 「공동관리」하게 되면 4강의 이해관계가 조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미국은 한때 4강에 의한 공동점령 및 공동분할을구상하기도 했지만 마침내는 4강이 함께 참여하는 신탁통치로 기울어졌는데,「적당한 시기와 절차를 거쳐」 한민족에게 독립을 주겠다는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은 미국의 그러한 뜻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적당한 시기와 절차를 거쳐」라는 원칙적 선언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청사진과 일정표를 연합국이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제의 항복을 접수하게 되었다. 일제의 항복이 예상보다도 훨씬 빨리 닥쳤던 셈인데,문제를 더욱 미묘하게 만든 것은 미군은 한반도에 진공할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소련군은 이미 한반도의 동북부로 진공해 들어오고 있는 숨가쁜 현실이었으니,여기서 미국은 한반도의 절반이라도 건져야겠다는 절박한 판단에서 북위 38도선에서의 분할점령을 제의했고 이 제의를 소련을 비롯한 나머지 연합국들이 받아들임에 따라 비극의 분단이 이뤄진 것이다. 이 처럼 열강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가운데서 한반도가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점령됨에 따라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 사이에 벌어지는 국제냉전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되었으며,그것은 한국전쟁의 국제적 배경의 틀이되고 만다.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미국은 북위 38도선 이남의 한반도를,그리고 소련은 북위 38도선 이북의 한반도를 각각 군사적으로 점령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우리 겨레 사이에서 벌어진 이념적ㆍ사상적 대결이다. 즉 일제 치하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운동을 특징지었던 좌ㆍ우익 투쟁이 해방된 한반도에서 재연된 것이다. 그것은 남한에서는 좌ㆍ우익 투쟁의 형태로,그리고 한반도에서는 남북한 대결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것은 한반도안에서도 냉전이 벌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국내냉전」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국제냉전」과 얽히고 설키면서 48년에는 한반도에 2개의 「국가」가 세워지는 데 이바지하게 되고 한걸음 더 나아가 50년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나는 데 이바지하게 된다. 이렇게 볼때 한국전쟁이 준비되는 과정에는 국제적 요인과 국내적 요인이 동시에 복합적으로 개입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미서 「38선분할」제의 48년 8월15일 남한에서는 대한민국이 세워졌으며,곧이어 9월15일 북한에서는 이른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세워졌다. 이때 국가로서 국제적 공인을 받은 쪽은 대한민국이었다. 제3차 국제연합 총회는 48년 12월 대한민국을 국가로서 승인했으며 이를 계기로 많은 국가들이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북한에 대한 승인은 소련권에 국한됐다. 이러한 국제적 조처들이 끝나면서 미국과 소련은 각각 자신의 군대를 철수시켰다. 한반도에 국제적 힘의 공백이 형성된 상황에서 남한은 북진통일을 부르짖고 북한은 이른바 남조선해방을 외치는 가운데 무력충돌의 위험성은 높아갔다. 이때 남한이 방어적이었음에 반해 북한은 공세적이었다. 우선 남한의 경우 미국의 군사적ㆍ경제적 지원은 많지 않았다. 트루먼 민주당행정부는 북한이 남침할 위험성이 있다는 경고를 무시했으며,그러한 판단에 입각하여 50년 1월에는 애치슨국무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해 남한이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입장을 표명했다. 이 애치슨선언이 소련과 북한의 지도자들에게 정확히 어떻게 해석되었는지에 대한 공식자료는 없으나 대체로 그들을 고무시켰을 것으로 풀이되어 왔다. 국내적으로도 어려움이 많았다. 48년 가을에 일어난 여순반란사건은 신생 대한민국의 기반을 심각하게 위협했으며,그것이 비록 진압됐다고 해도 반정부적 분위기가 차차 확산되면서 50년 5월30일에 실시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남북협상파를 비롯한 반정부적 중도세력이 승리를 거뒀다. 안팎으로 문제들을 안고 있는 남한으로서 북진통일론은 대체로 미국에 대해 군사원조를 늘려달라는 외교협박용이거나 국민적 단합을 꾀하기 위한 상징조작용에 가까웠다. 이 시기의 대한민국정부의 1차적 관심은 오로지 안보에 있었다는 사실,즉 『어떻게 하면 북한으로부터 있을 수 있는 남침을 막아낼 수 있느냐』에 쏠려 있었다는 사실은 북진통일론이 한낱 구호에 지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49년 방소때 구체화 반면에 북한의 경우 소련으로부터의 군사적 지원이 활발했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이 김일성의 두 차례의 소련 방문이다. 우선 49년 3월의 방문에서 김일성은 「조­소 경제ㆍ문화협력협정」을 얻어냈으며 이것을 계기로 남침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안을 세워 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무렵 중국공산당의 대륙제패 가능성은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 되었고 그것은 북한의 지도층을 크게 북돋웠다. 중국공산당이 중국국민당을 대만으로 몰아내듯이 북한이 남한을 석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 중국국민당이 쫓겨가도 미국이 아무런 구원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북한으로 하여금 자신이 남한을 침략해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갖게 한 것으로 보인다. 마침내 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됐다. 북한 지도층의 사기는 크게 올라갔다. 이무렵 중화인민공화국은 자신의 인민해방군에 속해 있던 조선인 장교들과 병사들을 대거 북한으로 돌려보내기 시작했으며,이 귀환은 50년에 들어서면서 더욱 활발해졌는데 실전경험을 쌓은 이들이 이미 48년 2월에 발족한 북한 정규군에 편입되면서 북한군의 병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이 시점에 곧 50년 2월에 소련의 스탈린은 중국의 모택동과 더불어 모스크바에서 중ㆍ소 우호동맹조약을 체결했다. 배후의 두 공산대국이 군사동맹을 체결했다는 사실은 북한의 지도층을 다시 한번 고무시켰을 것이다. 여기서 김일성의 2차 소련방문이 이뤄졌다. 그는 비밀리에 스탈린을 찾아가 남침계획을 상세히 보고했다. 하나의 허점이 되어버린 남한은 크게 부풀려진 풍선과 같아서 칼로 한번 찌르기만 하면 그대로 터지고 말 것이라는 점,북한의 입장에 동조하는 남조선로동당(남로당) 잔존세력이 지하와 야산으로부터 호응봉기할 것이라는 점,그리고 미국의 개입이 없을 것이므로 짧은 시일안에 남한 전체를 공산화시킬 수 있다는 점 등등을 역설했다. 스탈린은 이미 귀국한 모택동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계획 전체를 놓고 자세히 상의한 것 같지는 않고 그저 원론적인 수준에서 언급한 것 같다. 당시 3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쳤던 내전을 겨우 끝냈기에 국내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모택동으로서 한반도에서의 전쟁계획에 대해 깊이 관여할 수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김일성이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건아래 「미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기 위한 「인민해방전쟁」을 일으킨다는 데 반대할 수 없지 않느냐고 대답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 김일성은 모택동에 밀사를 보내 남침계획안을 원론적인 수준에서 알리면서 군사원조 가능한가에 대해 물었다. 모는 군사원조는 어렵다고 대답하면서도 남침계획안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입장에서 동의했다. 스탈린 스스로와 김과 모 사이의 3각대화를 종합한뒤 스탈린은 김의 계획을 지지하게 되었다. 미국과의 직접적인 군사대결은 어떻게 해서든지 피하겠다는 스탈린으로서도 이것만은 승산이 큰 계획이었다. 미국이 일본을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부흥시킴과 아울러 일본을 동북아시아의 강력한 반공기지로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전승국인 소련을 배제시킨 채 일본과 평화조약을 맺으려 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신속한 군사작전을 통해 미국이 개입하기 이전에 남한을 공산화 해버린다면,그것은 일본 국민들로 하여금 친소ㆍ친공의 길로 굴복하게만들 것이며,그렇게 되면 동아시아에서의 소련의 위신은 크게 올라가고 소련의 정치적ㆍ군사적 발판은 더욱 확실해질 것이었다. ○6월22일 준비 완료 마침 북한주재 소련대사 스티코프도 남침계획을 적극 지지했다. 소련군의 북한점령 3년동안 북한의 사실상의 지배자였고 김일성의 열성적인 후원자로서 북한주재 초대 소련대사가 된뒤 북한을 사실상 「총독」하던 정치장교 출신의 스티코프가 김의 남침계획을 뒷받침하자 스탈린은 50년 봄 남침계획을 최종적으로 승인하면서 북한에 대한 군사지원을 급진전시켰다. 그리하여 49년부터 50년 6월까지 소련이 북한에 공급한 무기는 정찰기 10대,야크전투기 1백대,폭격기 70대,탱크 1백대,중포 상당수에 이르렀다. 이러한 지원을 받은 북한은 50년 6월 현재 13만5천명의 지상군을 확보했으며 남한과의 접경지대에 대한 정예부대의 배치를 완료했다. 이때 남한의 병력은 정규군 6만5천명,해안경찰대 4천명,경찰 4만5천명이었고 장비는 불충분했다. 그만큼 남북한의 병력 수준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었기에 당시 북한 민족보위상(국방상) 최용건은 『비행기ㆍ탱크ㆍ전함과 현대무기로 무장된 인민군은 어떤 전투임무도 효과적으로 완수할 수 있고 조국의 통일과 독립의 적을 분쇄하기 위해 언제나 전투할 태세가 되어 있다』고 호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북한의 구체적인 남침준비는 50년 6월14일부터 22일 사이에 마무리된 것 같다. 이 시기에 북한은 남한에서의 토지개혁과 새로운 법령제정에 대한 준비,그리고 남한의 주요지역의 통치를 담당할 행정요원들의 임명을 완료했다. 민족보위성은 6월15일자로 각 사단에 정찰명령 제1호를,6월22일자로 역시 각 사단에 전투명령 제1호를 내려보냈다.
  • 동북아평화 “태풍의 눈”… 북한 「핵개발」

    ◎「6개월안 제조설」의 충격과 파장/소 군원중단 대비한 자구책인듯/루마니아ㆍ동독서 원료ㆍ기술도입 추정/신데탕트 역행… 한반도 긴장 촉발 북한의 핵개발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가. 북한이 6개월 이내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외신 보도는 그동안 많은 논란과 함께 가설로만 무성했던 북한의 핵무기 개발 및 제조의 현실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냉전체제의 마지막 잔재로 남아있는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킴은 물론 동북아시아와 더 나아가 세계의 전반적인 군사균형을 크게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핵개발 가능성은 사실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설은 이미 수년전부터 꾸준히 흘러 나왔으며 특히 얼마전에는 미국의 위성사진을 통해 평양북쪽의 영변에 건설중인 원자력발전소 시설외에 핵폭발시험 용지와 핵연료 재처리공장으로 보이는 시설물등이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및 서방국가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북한의 핵무기제조능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지난 4월 월포위츠 미국방차관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며 제조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었다. 미국은 소련이 철저한 핵확산통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중국의 도움을 통해 핵무기를 제조한다 해도 적어도 5년은 걸릴 것으로 보고 있으며 북한의 자체기술로 핵무기를 제조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소련은 최근 원자로 4기의 대북한 판매를 중단시키고 기술ㆍ자재 등의 판매도 중지시킨바 있다. 일반적으로 북한의 핵능력에 대해서는 현재의 기술수준은 핵무기제조까지는 미치지 못하며 다만 제조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국제감시하에 두어야 한다는 정도로 논의가 돼 왔다. 특히 최근에는 북한 자신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정협정체결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IAEA이사회에 참석한 정근모 과기처장관도 지난 14일 북한이 IAEA와 핵안정협정체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오는 7월에 대표단을 파견하겠다고 통보했다고 밝히고 이는 협정체결의 필요조건이 되는 의미있는 「진일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보도는지금까지 북한의 핵개발 능력에 대한 「정설」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특히 앞으로 5∼6년이 아닌 6개월내에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주장과 소련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동독과 루마니아의 구정권으로부터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기술과 원료를 입수했다는 지적은 매우 심각한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물론 뉴스 소스로 돼 있는 소련관리가 증거를 제시하지 않아 아직은 주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나 북한의 핵무기제조 가능성이 소련으로부터 흘러나왔다는 점에서 관심을 높여주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지금까지 언급이 없었던 소련이 왜 갑자기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정보를 공개했는지에 대해 석연치 않게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핵안정협정체결을 하도록 국제적 압력을 겨냥한 전술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까지 대남군사적 우위 확보를 위해 핵무기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일성은 특히 고르바초프의 신사고에 의한 동구개혁과 세계적 화해가 정착되면서 소련으로부터의 개방압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핵무기보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일성은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소련의 일방적인 통제나 영향력을 어느 정도 배제시킬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북한의 핵개발 노력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안정협정에 서명한다해도 그들의 핵무기개발에 제동을 걸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는 견해도 밝히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 노력은 동서 화해시대에 역행하는 것으로 최근 한소 정상회담으로 긴장완화의 조짐이 보이던 한반도를 심각한 핵위험지대로 만들 개연성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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