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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AEA사찰단 ‘12.5㎏’ 손실경로 집중 검증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오는 19일쯤 다시 방한할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어느 부분에 조사가 집중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이번 2차 조사의 대상은 1차 때처럼 서울 노원구 공릉동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와 대전의 한국원자력연구소가 될 전망이다. 과학기술부 관계자는 “1차 조사는 우리나라가 올 2월 비준한 IAEA 안전조치 협정에 따라 신고한 내용을 확인하는 수준이었고,2차 조사는 1차에서 미진했거나 자료가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완조사의 성격”이라고 말했다. ●신고내용 확인수준 예상 그러나 상당수 원자력 전문가들은 IAEA의 최근 움직임을 심상치 않게 보고 있다.장흥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의 ‘심각한 우려’ 발언 등을 볼 때 IAEA가 이번 핵 관련 실험을 어물쩍 넘기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특히 이라크에서 핵무기를 찾아내지 못해 사찰능력을 의심받았던 IAEA가 오명을 씻어낼 기회로 한국을 점찍었다는 관측도 있다. 우리 정부나 IAEA가 핵실험 당시의 상황이나 보고내용을 상세히 공개하지 않고 있어 정확한 추측은 힘들지만 대체로 핵 관련 물질의 경로추적에 조사가 집중될 전망이다.특히 민간기업인 영남화학이 인광석(燐光石)으로부터 제련한 천연우라늄 약 900㎏을 원자력연구소가 사들여 얼마만큼을 언제,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 면밀한 점검이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언제 어떤 용도로 얼마나 사용? 우리 정부는 이 가운데 700㎏은 월성 원자력발전소 연료로 사용했고 150㎏은 1982년 금속 형태로 정련해 방사선 차폐용기 제작시험 등에 사용했으나 이 과정에서 일부 폐기물이 발생하면서 12.5㎏이 줄어든 상태(134㎏)로 보관해 왔다고 이미 해명한 상태다.또 2000년에는 3.5㎏이 원자 증기 레이저 동위원소 분리법(AVLIS)을 이용한 우라늄 농축실험에 추가로 사용됐으며 여기서 0.2g의 저농축도 우라늄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IAEA 사찰단은 또 1982년 당시 생산된 금속우라늄의 행방,특히 폐기물 발생으로 12.5㎏이 줄어들었다는 한국정부 해명의 타당성과 이 문제가 20년간 보고되지 않은 경위 등을 당시 실험 관계자 면담 등을 통해 집중 검증할 것으로 전해졌다.이를 위해 사찰단은 지난 1차 조사에서 못했던 플루토늄 시료(試料·분석에 쓸 표본) 채취를 할 가능성이 높다.IAEA는 82년 트리가 마크Ⅲ 연구용 원자로를 이용한 연료봉 중성자 조사(照射)실험에 이어 플루토늄 추출 실험이 이뤄진 점을 중시,이 실험과 비슷한 시기에 생산된 금속우라늄의 행방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이란 1~4년뒤 핵폭탄 제조”

    |워싱턴 연합|이란은 1∼4년 후면 핵폭탄을 만들 수 있으며 핵능력을 갖게 되면 테러조직을 더 지원하려 할 것이라고 미국의 비확산정책교육센터가 14일 전망했다. 미 국방부의 자금 지원을 받는 비확산정책교육센터는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이 이란과 핵협상을 벌이는 것은 “자멸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이같은 협상보다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해 핵능력을 동결시키고 다른 나라들이 이란의 뒤를 따르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비확산정책교육센터는 “이란이 앞으로 12∼48개월 후면 핵폭탄을 만들 수 있고 기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결여된 것이 없다.”고 밝히고 이란이 “이같은 능력을 확보하는 데 필사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이란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집트,시리아,터키,알제리가 핵개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으며 이란의 해상 통행 위협으로 원유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이란의 핵보유 선택을 저지하는 것이 “이제 불가능할지 모르기 때문에” 미국과 동맹국들은 이란이 핵폭탄을 갖게 되면 다른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이 조치에는 이스라엘이 디모나 원자로 폐쇄 등 핵자제 노력에 앞장서도록 설득하고 이란을 이 지역의 유일한 핵연료 생산자로 고립시키는 방안이 포함된다.보고서는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보상을 해 이란과의 핵협력을 중단하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 미국·중국 반응

    미국·중국 반응

    ■’양강도 대폭발’ 美분석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정부는 지난 9일 북한 양강도에서 발생한 폭발이 핵 실험은 아니었다고 판단하고 있다.그러나 북한의 핵 실험 가능성은 계속 주시하고 있다.이런 가운데 폭발사고가 난 김형직군은 산악지대로 지하 미사일기지가 있는 곳으로 알려져 미사일 관련 사고일 가능성도 있다고 워싱턴포스트 등이 전했다. ●산악지대… 지하기지 소재 뉴욕타임스는 11일(현지시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 실험이 임박했다는 정보를 보고받았다고 보도했다.보고의 주된 내용은 북한에서 지난 3,4주 동안 포착된 핵 관련 활동들이다.특히 보고에는 한국의 정보기관이 최근 북한의 핵 활동 의심 지역에서 ‘강력한 화재’가 발생한 사실을 감지,미국의 정보당국에 소규모 핵 실험 가능성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이것이 양강도 폭발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정보 당국자들은 지진이나 폭발의 진앙지를 찾아가는 진원(震源)조사를 통해 그 화재가 핵 실험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신문은 보도했다.국무부 당국자는 12일 “북한에서 발생한 폭발은 핵 폭발이나 핵 실험에 의한 것이 아닌게 분명하지만,아직 폭발의 실체에 대한 구체적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보고서에는 ▲북한이 핵 실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지목된 장소 등에서 지난 3∼4주간 핵 활동 관련 물질의 빈번한 이동이 위성사진 등에 포착됐고 ▲의심 가는 장소에는 북한이 핵무기 실험 전단계인 ‘고폭실험’을 실시했다고 지목돼온 곳도 포함돼 있으며 ▲실험에 사용할 핵 무기는 영변 원자로의 8000개 연료봉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통해 만든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 등 다른 정황도 포함됐다.미 정부 관계자는 “최근 관찰된 북한의 움직임은 핵 실험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일련의 징후”라면서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은 최근 4주동안 아주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최근에 입수된 북한 핵 관련 정보의 중요성과 신빙성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전했다.특히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정보에 회의적이었던 정보 전문가들은 최근 북한에서 포착된 활동이 반드시 핵무기 실험의 전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타임스는 전했다. ●“폭발실체 구체결론 아직 못내려” 정보관련 고위관리는 “북한이 뭔가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것이 실제로 핵 실험 실시를 의미하지 않는다.”면서 “북한은 자신들의 움직임이 미국에 포착될 수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그것은 북한의 위협전술 또는 협상전술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일부 관리들은 또 북한이 핵 실험을 할 경우 그것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dawn@seoul.co.kr ■中 ‘침묵’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 정부는 북한 양강도에서 9일 대규모 폭발이 발생했다는 보도와 관련,12일 현재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관영 신화통신을 비롯한 중국 언론들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가 주요한 외교정책인 중국정부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폭발의 사실 여부와 배경 등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핵실험 가능성에 대해선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달 말 6자회담 4차회의 성사를 당면 목표로 움직이고 있는 중국은 회담 개최에 미칠 영향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다.중국정부는 현재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 성사를 위해 리창춘(李長春) 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난 10일 평양에 보내 북한 지도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양강도 대규모 폭발에 대해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유일한 북한의 후원국인 중국이 결사 반대하고 있는 핵실험을 강행,스스로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중국 지도부의 핵심인 리창춘 상무위원을 초청해 놓고 면전에서 핵실험을 강행하는 것은 중국과 국교를 단절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oilman@seoul.co.kr
  • [‘82년 플루토늄 추출’ 파장] IAEA 97년 사찰서 ‘단서’ 발견

    1980년대 초 국내 일부 과학자에 의해 극미량의 플루토늄을 추출해 냈던 사실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해 공개되면서 추출 배경과 IAEA의 확인 과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측에 따르면 1982년 4∼5월 서울 공릉동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화학적 특성 분석을 위해 수㎎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다.통상 플루토늄은 원자력발전용으로 쓰고 난 폐연료봉을 화학약품 등에 반응시켜 추출할 수 있다.이 경우 연구용의 추출이라면 연구실 단위에서도 가능하지만,전력생산 또는 핵무기 제조를 위해서는 대규모 공장시설 단위의 재처리시설이 필요하다.당시 연구소에는 대규모의 재처리시설이 없었으며,문제의 플루토늄 추출도 연구실에서 화학약품 등을 이용해 이뤄졌다는 것이다.정부는 이같은 사실을 83년 9월 IAEA에 신고했다.당시 신고내용은 ‘실험에 사용된 핵물질이 손실됐으니 안전조치 대상에서 제외시켜 달라.’는 것이었다.이듬해인 84년,실험에 사용된 폐연료봉과 시료는 재사용이 불가능하도록 폐기돼 원자력연구소로 이관됐으며,현재까지 보관중이다. ●당시 연구책임자 이미 세상 떠나 당시에는 IAEA도 사찰이나 시료채취 조치를 하지 않았다.IAEA는 이 연구소 시설에 대해 매년 정기적인 사찰을 해왔지만,사찰기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탓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이후 ‘환경조사 기법’이 발달하면서 플루토늄 추출 흔적을 찾아냈다.환경조사는 핵 의혹 지역 주변의 대기·식물·건축물 외벽 등에 대한 방사성 잔여물 존재 여부를 조사하는데,이를 통해 반감기가 수십년 이상인 핵물질 자체를 감지해 낼 수 있다.플루토늄의 반감기는 2만4000년이다. IAEA는 97년 원자력연구소에 대해 환경 샘플링 조사를 실시해 플루토늄 추출의 단서를 발견하고 이듬해인 98년 우리 정부에 확인을 요청했다.그러나 정부는 정권이 몇번 바뀌면서 관련 자료를 찾아내질 못했다.프로젝트 책임자 등 당시 과학자 중 몇 명도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추출 의도를 확인해 낼 길이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IAEA는 지난해 재차 환경샘플링 조사를 했고,지난 8월29∼9월4일에 같은 지역에 대한 3번째 환경조사를 실시했다.결론은 플루토늄이 추출된 사실이 있다는 것이었다.이 과정에서 정부는 IAEA의 거듭된 요청으로 조사에 착수한 뒤 이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공릉동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TRIGA)’ 1962년과 1972년에 미국으로부터 ‘트리가 마크Ⅱ’,‘트리가 마크Ⅲ’가 도입됐다.연구로1,2호기로 명명됐다.1호기는 원자력공학도 교육·훈련 등 원자력 인력양성과 원자로 특성연구,화학·생물학 분야의 기초연구,동위원소 생산 등을 목적으로 도입됐다.원자력 기반기술 확립과 원자력 기술인력 훈련과 양성에 크게 기여했다.현재 해체 대기중이다. 2호기는 중성자 빔 물성연구와 사진촬영,원자로 특성연구,방사화 분석 및 각종 재료 실험 등을 목적으로 들여왔다.이미 시작된 해체작업이 내년 6월 끝난다.1·2호기는 노후화된 데다 부속품 구입도 어려워 1995년 1월말과 12월말 각각 가동이 정지됐다.같은해 대전의 한국원자력연구소에 도입된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가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주병철 안미현기자 bcjoo@seoul.co.kr
  • [‘82년 플루토늄 추출’ 파장] 정부 ‘뒷북해명’ 신뢰도 타격

    ‘농축우라늄’ 파문이 가라앉기도 전에 이보다 더 민감한 ‘플루토늄 분리실험’이 사실로 확인돼 우리나라가 사면초가에 빠졌다.정부는 핵무기 개발 의도가 전혀 없다고 극구 해명한다.하지만 당시 연구책임자가 이미 세상을 떠나 ‘버선목 뒤집듯’ 고의성 여부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국제사회 일각과 일부 외신들이 고(故) 박정희 대통령 때의 ‘비밀 핵실험’ 사실과 연계시키고 있어 더욱 곤혹스러워졌다.우리 정부는 정부대로 “20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을 왜 이제서야 자꾸 문제삼는지 모르겠다.”며 은근히 IAEA(국제원자력기구)측의 의도를 의심했다.하지만 정부의 대응방식과 핵실험 관리체계에도 적잖은 문제점이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정부,“핵개발 의도없다” 펄쩍 과학기술부는 우라늄 실험과 마찬가지로 플루토늄 추출실험도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 차원이었다.”고 강변한다.“국가적 차원의 핵무기 개발 등의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면 IAEA에 자진신고했겠느냐.”는 반문이다.다만,플루토늄 추출실험은 신고의 ‘성실성’에 다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했다.플루토늄 실험이 진행된 이듬해인 1983년 9월,IAEA에 해당사실을 신고하면서 핵연료 성격을 잘못 기재했다는 것이다.‘쓰고난 핵연료’는 ‘G’로,‘신(新)연료’는 ‘F’로 표기해야 하는데 수작업으로 이뤄진 신고서 작성과정에서 ‘G’를 ‘F’로 잘못 적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게 정부측의 해명이다.과기부 김영식 원자력안전심의관은 “당시 제대로 보고가 이뤄졌다면 IAEA측이 좀 더 철저히 조사했을 테고,그랬다면 모든 실험과정과 의도 등이 그 시점에 밝혀졌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쓰고난 핵연료를 新연료로 誤記 김 심의관은 그러나 “핵개발 의도가 있었다면 (플루토늄을 양산할 수 있는)재처리시설을 갖춰야 하는데 문제가 된 서울 공릉동 원자로의 ‘핫 셀’은 창문 크기만하다.”면서 “연구비 지원도 열악했던 당시에 과학자 몇 명이 벌인 실험을 재처리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일축했다. 정부는 ‘우라늄 분리실험’에 이어 ‘플루토늄 추출실험’ 사실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한다.관련 보고서나 기록도 일절 남아있지 않다고 밝혀 핵실험 관리체계의 허점을 그대로 노출했다.관련의혹이 불거진 뒤에도 ‘쉬쉬’하다가 주요 외신들이 폭로하면 ‘뒷북 해명’하는 식이어서 공신력 훼손을 자초했다.농축우라늄 실험을 조사하기 위해 최근 방한한 IAEA 사찰단의 일부가 서울에 남아 공릉동 원자로를 조사했을 때도 정부는 “늘 둘러보는 차원”이라고 둘러댔다.이와 관련,과기부측은 “IAEA의 사찰활동은 비밀을 유지한다는 신사협정이 있다.”고 해명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강남 모노레일 건설 급물살

    강남구(구청장 권문용)는 9일 말레이시아 교통기업그룹 엠트랜스(MTrans)와 합작투자법인 설립을 위한 투자협약서(MOA)를 체결했다. 투자협약서를 통해 엠트랜스그룹은 강남모노레일사업을 위한 합작투자법인에 75% 이상의 지분출자를 확약했다.이날 투자협약서 체결로 강남모노레일 건설 사업은 앞으로 급속도로 추진될 전망이다.엠트랜스그룹은 먼저 강남모노레일 사업의 주체로서 사업승인 관청인 서울시에 사업제안서를 제출하게 된다. 강남구는 또 모노레일 건설의 전반적인 행정지원자로서 사업의 기본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주민의사를 최대한 반영,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강남모노레일은 강남의 주요지역을 모두 순환하는 14.4㎞의 노선으로 건설될 예정이다.1단계로 오는 2007년말까지 2000억여원을 들여 신사역∼학여울간 6.6㎞가 먼저 구축될 계획이다.예산 가운데 40%는 강남구와 서울시의 예산으로 투자키로 했고 나머지 60%는 민자를 유치하는 방법으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82년 플루토늄 추출’ 파장] 플루토늄-원자·수소폭탄 주재료

    플루토늄이 관심을 끄는 것은 농축우라늄과 함께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의 주재료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고순도 플루토늄 1㎏은 원자폭탄 하나의 위력을 지닌다.또 500g의 플루토늄은 500만kWh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플루토늄의 원소기호는 ‘Pu’,원자번호는 94이다.1940년 미국 캘리포니아대의 시보그,맥밀런 등이 발견한 동위원소로 태양계 행성인 명왕성(Pluto)에서 이름을 따왔다.자연에서도 극미량이 존재하지만 핵분열 생성물인 우라늄이나 넵투늄으로부터 용매추출법,이온교환수지법,침전법 등의 방법으로 인공제조된다.천연우라늄의 99.7%를 차지하는 우라늄238은 핵분열을 일으키지 않지만 원자로에서 중수소로 충격을 가하면 중성자를 흡수해 핵분열을 일으키는 플루토늄 239로 만들어진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82년 플루토늄 추출’ 파장] ‘추출’ 소량의 연구목적·’재처리’ 대량의 군사목적

    추출인가,재처리인가. 원자력연구소의 플루토늄 추출을 두고‘플루토늄 추출’인지 아니면 ‘핵연료 재처리’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플루토늄 추출은 극미량의 단순한 연구활동으로 볼 수 있으나,재처리는 폐연료봉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대량의 플루토늄을 얻기 위한 것이다. 과학기술부는 ‘트리가 마크Ⅲ’ 원자로에서 시행된 실험은 플루토늄의 화학적 특성을 연구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단위의 극미량의 플루토늄을 추출한 단순한 실험이라고 밝혔다.핵무기를 만들려면 4∼8㎏이 필요하며 기술수준이 낮으면 최소 10㎏은 돼야 한다는 것. 핵연료 재처리 과정과 플루토늄 추출실험은 처리수준과 목적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82년 원자력硏서 플루토늄도 추출했었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서울 안미현기자|한국원자력연구소가 1982년 초에 연구용 원자로에서 핵연료인 플루토늄을 극미량 추출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이 연구소는 최근 논란이 된 ‘농축우라늄 분리실험’(2000년초)을 했던 곳이다. 정부는 ‘우라늄 실험’과 마찬가지로 ‘플루토늄 실험’도 순수한 학문적 탐구활동 차원이었다고 적극 해명하고 있지만 정부의 공신력이 이미 훼손돼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과학기술부는 9일 지난 1982년 4∼5월 서울 노원구 공릉동 소재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연구용 원자로인 ‘연구로 2호기’에서 플루토늄 추출실험이 실시됐고 그 결과 ㎎단위의 극미량 플루토늄이 추출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과기부 김영식 원자력안전심의관은 “20여년 전의 일인 데다 당시 실험보고서나 관련 기록이 없어 정확한 파악은 어렵지만 관계자들을 역추적한 결과,소수의 과학자들이 플루토늄의 화학적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 추출실험을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이를 재처리라고 보기는 어려우며,추출된 플루토늄의 양도 극미량의 ㎎단위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당시 실험을 주도했던 책임과학자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심의관은 “당시 실험에 사용된 모든 장치와 시료들은 재사용할 수 없도록 지난 1984년 폐기된 뒤 원자력연구소로 이관돼 보관돼 있으며 트리가마크Ⅲ 원자로는 현재 해체작업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모든 (핵) 활동이 과거에 일어난 일이며,그중 일부는 ‘매우 오래 전’이라는 것”이라고 말해 미 정부가 이미 알고 있었음을 시사했다. hyun@seoul.co.kr ■ 美관리 “우라늄실험 안보리 갈것” |워싱턴 연합|한국이 4년전 실시한 우라늄 농축실험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다뤄질 것이라고 미국 행정부 관리들이 9일 밝혔다.미국의 한 관리는 이날 로이터통신에 “이 문제를 안보리에 회부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다른 관리들은 안보리에 넘기는 목적은 한국을 제재하려는 게 아니라 정보보고 차원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 [사설] 北, 우라늄 분리실험 왜곡 말라

    당국이 4년 전의 농축우라늄 분리실험 사실을 시인한 데 이어,20여년 전 플루토늄 실험 사실까지 공개돼 당혹스럽다.당국은 당초 우라늄 분리실험이 문제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다가,분리된 우라늄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신고 사항임을 뒤늦게 시인하는 등 대처에 미숙함을 드러냈다.플루토늄 실험도 IAEA에 보고돼 별 문제가 아닌 사안인데도,정부가 뒤늦게 공개하면서 모양이 안 좋게 됐다. 당국은 플루토늄 실험이 80년대 초 서울 공릉동 소재 연구용 원자로에서 실시된 것으로 IAEA 안전조치를 철저히 이행했고,해당 원자로도 폐기처분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실제로 IAEA 사찰단이 농축 우라늄과 플루토늄 실험 관련 자료를 채집해 갔으니 판정결과를 기다리면 될 일이다.정부는 이 과정에서 IAEA의 조사활동에 전폭 협조해 불필요한 의혹을 사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문제는 북한의 움직임이다.우리는 처음부터 북한이 이 문제로 6자회담에 지장을 주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그런데 북한이 한성렬 유엔 주재 대표부 차석대사 등 해외 주재 외교관들의 입을 통해 우리의 우라늄 분리실험이 동북아 핵무기 경쟁을 가속화한다는 식으로 첫 반응을 낸 것은 실망이다.순수 연구용의 우라늄 분리실험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동일시하려는 의도인 셈이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달 말 열기로 한 6자회담 참석 약속을 지켜줄 것을 북한에 거듭 당부한다.만약 우리의 우라늄 분리실험에 의문점이 있다면,그것도 6자회담에 참석해 따지면 된다.IAEA 사찰단을 추방하고,핵 억지력을 확보했다고 스스로 주장한 북한이다.연구용 우라늄 분리실험과는 경우가 다르다.어렵게 마련한 대화의 틀을 손상시키는 일은 하지 말 것을 북한 당국에 거듭 당부한다.
  • 日 원전사고 안전불감증 탓

    |도쿄 이춘규특파원|9일 발생한 일본 후쿠이현 미하마원자력발전소 3호기 증기누출사고는 안전성보다 경제성을 우선하다 생긴 인재로 분석됐다.사고위험이 있는데도 작업 가동률을 높이려다 빚어진 사고라는 얘기다. 아울러 노후화된 원자력발전소의 안전관리문제에 경종을 울렸다.문제의 3호기는 1976년 12월부터 상업 운전을 개시,29년 가까이 됐다.현재 일본 전역에서 가동중인 상업용 원자력발전소 52기 가운데 운전개시후 25년 이상인 원자로는 18기다.노후 원전의 보수,가동이 큰 과제란 의미다. 하지만 일본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은 후보 지역 주민들의 반발 때문에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최악의 인명사고까지 발생,신설작업은 더욱 어려워졌다.원자력에 대한 신뢰 회복을 더 멀게 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원자력 안전 확보를 위해 비상이 걸렸다.경제산업성 원자력 안전·보안원은 10일 미하마 3호기와 같은 모델의 원자력발전소를 보유한 전력회사에 긴급배관점검을 지시했다. 일본내에서는 미하마 3호기와 같은 가압수형은 23기가 가동중이며,출력 기준으로 일본 전체 원자력 발전량의 42%를 차지한다. 안전점검을 위해 일시에 많은 수가 가동을 중단할 경우 전력난도 우려된다.간사이전력은 전체 발전량 중 원전의존율이 60%이다. 보안원은 가압수형 경수로를 중심으로 안전 총점검 방침을 굳혔다.과거에 배관의 두께 등을 검사했던 적이 있는지,문제가 생겼을 때 적절하게 대처했는지 등을 재점검하도록 했다. 간사이전력 등에 따르면 문제의 배관부분은,점검 누락 때문에 30년 가까이 한번도 배관의 두께를 조사한 적이 없다.고온·고압의 냉각수가 흐르며 마모가 심했고,이번 사고부분은 얇아진 배관 중에서도 특히 마모가 심한 부분에서 고압열수가 삐져나와 일어난 사고로 풀이됐다. 간사이전력은 이날 3호기의 파손 부분은 지난해 4월 협력회사가 점검 명단에 포함시켜 간사이에 같은 해 11월 점검 필요성을 전달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사고가 났다고 인정했다. taein@seoul.co.kr
  • 日 원전 증기누출 사고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원자력발전소에서 9일 오후 증기누출사고가 발생,4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2명은 중태,3명이 중상이고,2명은 경상이다. 일본전기사업연합회에 의하면 일본국내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운전중에 두 명 이상이 사망한 사고가 일어난 것은 처음으로,일본의 원자력발전소 사상 최악의 사고다.원자로는 사고 직후 자동 정지됐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 59주년 추모일을 맞아 일어난 사고로 인해 국가 전체 에너지의 3분의 1을 원자력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에서 원자력발전에 대한 불신감이 한층 커질 전망이라고 외신들은 긴급기사로 보도했다. 이날 오후 3시28분쯤 혼슈 북쪽 후쿠이(福井)현 미하마초(美浜町)의 간사이(關西)전력 미하마원자력발전소 3호기 터빈이 있는 건물내에서 증기누출사고가 발생했다. 원자로는 가압수형 경수로로 출력 82만6000㎾형이며,지난 1976년 영업운전을 시작했다.91년 2월엔 같은 발전소 2호기에서 증기발생기 배관이 깨져,방사능에 오염된 1차 냉각수가 새어나오는 사고가 발생했었다.간사이전력에 따르면 숨진 4명은 모두 오사카에 위치한 하청업체 ‘기우치계측’ 직원들이다. 경제산업성 산하 원자력안전보안원은 검사관 6명을 현장에 파견,사태 파악을 서두르고 있으며 방사능 누출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사고가 발생한 터빈 건물은 내부온도가 섭씨200도 이상으로,고온·고압의 증기로 터빈을 돌려 발전하는 시설이다.증기는 2차 냉각수라 방사능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회사측은 밝혔다. 간사이전력측은 직경 50㎝의 배관에 구멍이 생겨 고온·고압의 수증기가 새어나와 주변에서 일하던 작업자들이 사망·부상했다고 추정했다. 터빈은 건물 3층에 있었고,사망·부상자들은 모두 건물 2층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회사측은 밝혔다. 2층에는 냉각수가 터빈으로부터 증기발생기로 이동하는 주급수관이나 펌프 등이 있지만 구멍이 뚫린 배관 이외 다른 지점의 파손 여부는 즉각 확인되지 않았다. 문제의 3호기는 지난해 7월 정기검사를 받았으며,오는 14일부터 1개월간 정기검사 예정이었다. 기우치계측은 터빈의 계측기기 검사를 하청받아 사고 당시 검사를 위한 공구를 반입중이었다고 한다. taein@seoul.co.kr
  • 儒林(154)-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儒林(154)-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이는 사기에 나와 있는 다음과 같은 기록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노나라의 대부 맹희자(孟僖子)가 병으로 임종하면서 자신의 대를 이을 아들.의자(懿子)에게 엄숙히 타일러 말하였다. ‘공구는 성인의 후손이다.송나라가 망하자 노나라로 온 것뿐이다.그의 조상 불보하는 처음에 송나라의 군주로 즉위할 신분이었으나 아우 여공( 公)에게 양보한 분이다.정고보 대에 와서는 송의 대공,무공,선공을 보좌해 상경이 되었다.‘” 맹희자는 청동 솥에 새긴 명문의 내용을 설명하고는 다시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고 사기는 전하고 있다. “…정고보는 공손하기가 이와 같았다.내가 들은 바로는 ‘성인의 후손은 벼슬에 오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반드시 사리에 통달한 현인이 나타난다’고 하였다.지금 공구는 비록 나이는 젊지만 예를 좋아하니 필시 그는 사리에 통달한 현인일 것이다.그러니, 내가 죽더라도 너는 반드시 그를 스승으로 섬기거라.” 이 말을 하고 맹희자가 죽자 아들 의자는 아우인 남궁경숙과 더불어 공자에게 가서 예를 배웠던 것이다. 맹희자가 ‘공구는 지금 나이는 젊지만 예를 좋아하니’하고 말하였던 것처럼 그 무렵 공자의 나이는 불과 17세로 아직 가르침을 펼 때가 아니었다.그러므로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예를 배운 남궁경숙은 오히려 공자보다 나이가 많은 권신이었을 것이며,공자가 정식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펼 때에는 이 무리 속에 끼지 않았을 것이다.따라서 이들의 이름이 ‘제자열전’에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이 무렵 남궁경숙의 지위는 상당해서 젊은 백면서생에게 예를 배울지언정 제자노릇은 차마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그러나 남궁경숙은 공자에게 든든한 후원자로 정신적·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공자가 47세 되던 해 주나라로 두 번째 출국을 단행하려 하였을 때 선뜻 따라나서서 동행하였던 것이다.그뿐 아니라 군주인 정공에게 부탁하여 교통의 편의까지 받게 되는 것을 보면 남궁경숙이 이미 상당한 세력가일 뿐 아니라 공자의 후원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기록이 사기에 다음과 같이 나오고 있다. “노의 남궁경숙이 노나라의 군주(정공)에게 부탁하였다. ‘청하오니 공자와 함께 주나라로 가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군주는 이를 허락하면서 승용거 한 대,말 두 필,종자 한 사람을 딸려주었다.” 이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공자의 첫 번째 출국은 군주의 허락을 받지 않은 망명이었지만 공자의 두 번째 출국은 군주로부터 정식으로 허락을 받았을 뿐 아니라 수레와 말까지 하사받은 호화여행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공자는 남궁경숙과 군주가 내린 말이 이끄는 수레를 나란히 타고 종자를 앞세워 노나라를 출발하여 주나라로 떠난다.이 무렵 주나라의 왕조는 훗날 낙양으로 알려진 낙읍.노나라에서 주나라에 이르는 그 길은 오늘날에도 쉽게 여행할 수 없는 수천수만리의 긴 여정이었다. 도중에는 진나라와 조나라,정나라와 같은 여러 제후국들을 지나야 했으므로 자칫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여정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는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해서 47세의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이와 같이 험난하고 머나먼 여정을 떠나고 있는 것일까.그렇다.공자가 떠난 이 여행은 인류사상 가장 극적이고 가장 신비스러운 여행이라고 일컬어 신과 신이 만나기 위해 벌인 ‘신들의 여행’이라고까지 불리고 있다.
  • 美대선 ‘케리 베트남전 훈장’ 진위공방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공화당과 민주당간에 상대 후보 깎아내리기를 자행하는 ‘이전투구(泥田鬪狗)’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베트남전에서 받은 무공훈장이 ‘사기극’이라는 TV광고를 내놓았고,이에 대해 케리 후보는 직접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테러 대응방식을 비난하고 나섰다. 최근 미 전역을 긴장상태로 몰아넣은 알 카에다의 국제금융기관 테러 위협의 실체를 둘러싼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여론조사결과에서 박빙의 승부가 이어지면서 부시,케리 양 진영이 네거티브 공세를 벌이는 형국이다. ‘진실을 위한 고속순찰정 참전용사들’이라는 이름을 내건 예비역들이 5일부터 오하이오 등 3개주에서 “케리 후보가 지난 69년 3월 적군의 총격속에 위험을 무릅쓰고 강물에 빠졌던 특수부대 요원을 구했다는 것은 훈장을 받기 위한 거짓말이었다.”고 주장하는 60초짜리 광고를 시작했다. 이들은 CNN,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현장에 있던 5척의 순찰정에 대한 적군의 사격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케리 후보가 구조한 특수부대 요원은 CNN의 대질 프로그램에서 “분명히 적군의 총격이 있었으며,무언가 폭발했기 때문에 내가 강물에 떨어졌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해 5년간 포로생활을 했던 공화당 소속 존 매케인 애리조나주 상원의원은 부시 대통령의 재선운동을 지원하지만,이 선거광고를 “부정직하고 비열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케리 후보 진영은 이 광고에 사용된 돈 15만 8000달러 가운데 10만달러가 오랫동안 공화당에 선거자금을 낸 후원자로부터 나온 점을 들어 부시 진영을 ‘배후’로 의심했다. 이에 대해 부시 진영은 “우리와 무관한 일”이라며 “우리는 케리 후보의 베트남전 참전에 결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으며,앞으로도 제기할 생각이 없다.”고 부인했다. 또 전직 해군장교 등은 다음주 발간할 예정인 ‘사령관이 될 수 없는’이란 제목의 책에서 케리 후보가 베트남전 참전 당시 도망치는 10대 베트콩 소년을 사살하고 은성(銀星)훈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고 드러지리포트가 보도했다. 케리 후보는 5일 워싱턴에서 열린 소수인종 언론인 회의에서 지난 2001년의 9·11 테러 당시 대통령이었다면 부시 대통령과 달리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케리 후보는 만일 그가 부시 대통령처럼 그 당시 플로리다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 것이냐는 질문에 “나는 계속 책을 읽는 대신 어린이들에게 매우 정중하게 미국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 뒤 그 일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는 부시 대통령이 지난 1일 테러경보 수준을 격상하는 방안을 승인했을 때 정치적 이익을 도모했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딘 전 주지사는 CNN에 출연,“파키스탄에서 알카에다 조직원이 체포된 것은 7월 중순인데 그로부터 나온 정보를 토대로 테러경보를 격상한 것은 지난 1일”이라고 지적하면서 “만일 이 정보를 얻는데 3주일이 걸렸다면 당국은 미국을 보호하는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dawn@seoul.co.kr
  • [Seoulites] “술도 우리 게 좋은 거여”

    [Seoulites] “술도 우리 게 좋은 거여”

    술을 빚는 사람들이 삼각산 자락에 모여 전통주 계승에 힘쓰고 있다.주인공은 ‘향토민속 가양주 발전연구회’ 회원 20여명(회장 최규선·62).모두 강북구에 거주하는 주민들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양주를 나눠 마시며 우리의 멋과 맛을 이웃들에게 전하고 있다. ●담소주등 가양주 6종 육성 나서 가양주는 가정에서 소규모로 만들어져 명절·잔치때 나눠먹는 특별식이다. 김현풍 강북구청장은 지역민들에 전해져 오는 가양주를 찾아 지역을 대표하는 ‘민속 가양주’를 개발하기 위해 민속주 시음회를 거쳐 지난 2003년 3월 가양주 선발대회를 열었다. 이 행사를 통해 삼각산 담소주(최규선),삼각산 누룩주(서봉기),삼각산 진달래술(이복수),삼각산 송엽주(송순자),삼각산 대추주(홍명숙),삼각산 더덕주(임진환) 등 6종류의 가양주를 찾아 지역 대표술로 결정하고 작품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육성에 나서고 있다. 이때 술 빚는 주민 6명과 지역 유지들이 가양주 발전연구회를 만들고 주민들에게 우리의 가양주를 맛보이고 있다. ●구청장·구의원등이 ‘홍보요원’ 이 모임 최규선 회장댁에서 만들어지는 ‘담소주’는 ‘웃으면서 재미있게 먹는 술’이라는 뜻이다.회원들은 서로의 가정에서 만든 가양주를 매개로 정을 나눈다. 삼각산 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이들은 매월 25일이면 회원집에서 모임을 갖고 그 집에서 빚어놓은 가양주를 즐긴다.구청장,구의원 등 술을 빚지 않는 나머지 회원들은 평가자이자 든든한 후원자로서 함께 즐기며 가양주를 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상품화 가능성은 아직 희박 최규선 회장은 “대부분의 회원들이 가정에서 항아리 4∼5개 정도 소량의 가양주를 만들고 있다.”며 “상품화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특히 상품화는 판매망을 갖추고 제조시설 등 제반여건이 형성되어야 하는데다 세법 등 관련법 규정도 까다로워 대량 생산체제는 시기상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구청 등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지원아래 공동투자나 기업 등의 투자유치가 가능해야 현실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양주 거리 조성 적극 검토 회원들은 상품화보다 우선 지역을 대표하는 먹을거리로 육성시켜 주길 바라고 있다.삼각산 자락 등 특정 지역에서라도 일반인들이 편리하게 전통주를 맛 볼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강북구도 최근 가양주 거리,막걸리 거리 등을 조성키로 하고 구체적인 연구·검토작업을 진행중이다.회원들은 “지역을 찾는 외국 관광객이나 손님들을 위해 주막 또는 음식점 형태라도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Seoulites] “술도 우리 게 좋은 거여”

    술을 빚는 사람들이 삼각산 자락에 모여 전통주 계승에 힘쓰고 있다.주인공은 ‘향토민속 가양주 발전연구회’ 회원 20여명(회장 최규선·62).모두 강북구에 거주하는 주민들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양주를 나눠 마시며 우리의 멋과 맛을 이웃들에게 전하고 있다. ●담소주등 가양주 6종 육성 나서 가양주는 가정에서 소규모로 만들어져 명절·잔치때 나눠먹는 특별식이다. 김현풍 강북구청장은 지역민들에 전해져 오는 가양주를 찾아 지역을 대표하는 ‘민속 가양주’를 개발하기 위해 민속주 시음회를 거쳐 지난 2003년 3월 가양주 선발대회를 열었다. 이 행사를 통해 삼각산 담소주(최규선),삼각산 누룩주(서봉기),삼각산 진달래술(이복수),삼각산 송엽주(송순자),삼각산 대추주(홍명숙),삼각산 더덕주(임진환) 등 6종류의 가양주를 찾아 지역 대표술로 결정하고 작품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육성에 나서고 있다. 이때 술 빚는 주민 6명과 지역 유지들이 가양주 발전연구회를 만들고 주민들에게 우리의 가양주를 맛보이고 있다. ●구청장·구의원등이 ‘홍보요원’ 이 모임 최규선 회장댁에서 만들어지는 ‘담소주’는 ‘웃으면서 재미있게 먹는 술’이라는 뜻이다.회원들은 서로의 가정에서 만든 가양주를 매개로 정을 나눈다. 삼각산 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이들은 매월 25일이면 회원집에서 모임을 갖고 그 집에서 빚어놓은 가양주를 즐긴다.구청장,구의원 등 술을 빚지 않는 나머지 회원들은 평가자이자 든든한 후원자로서 함께 즐기며 가양주를 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상품화 가능성은 아직 희박 최규선 회장은 “대부분의 회원들이 가정에서 항아리 4∼5개 정도 소량의 가양주를 만들고 있다.”며 “상품화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특히 상품화는 판매망을 갖추고 제조시설 등 제반여건이 형성되어야 하는데다 세법 등 관련법 규정도 까다로워 대량 생산체제는 시기상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구청 등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지원아래 공동투자나 기업 등의 투자유치가 가능해야 현실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양주 거리 조성 적극 검토 회원들은 상품화보다 우선 지역을 대표하는 먹을거리로 육성시켜 주길 바라고 있다.삼각산 자락 등 특정 지역에서라도 일반인들이 편리하게 전통주를 맛 볼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강북구도 최근 가양주 거리,막걸리 거리 등을 조성키로 하고 구체적인 연구·검토작업을 진행중이다.회원들은 “지역을 찾는 외국 관광객이나 손님들을 위해 주막 또는 음식점 형태라도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인사]

    ■ 경찰청 ◇총경 전보 (본청)△감사담당관 尹在國△정보통신1〃 金大鎭△정보통신2〃 鄭鏞三△외사3〃 趙顯五△교통기획〃 許南雲△장비과장 崔源台△생활안전〃 梁性喆△생활질서〃 張大鳳△지능범죄수사〃 金永泰△마약수사〃 金圭喆△수사국(금융정보분석원) 韓基玟△정보2과장 鄭龍仙△정보1과 金致元△총무과(혁신단) 강경량△총무과(교육) 金炳華 朴鍾洙 金永錫 金鎬閏 朴起善(경찰대)△총무과장 金南七△학생〃 黃圭郁△교무〃 許南錫△치안연구소 金潤哲 文鍾燮 李東埈 金榮操△총무과(교육) 丁喆秀 張光△총무과(대기) 孫鍾殷 金榮和△경무과(교육) 黃成贊 黃雲夏 金貴讚 李相植(경찰종합학교)△이전건설단장 金成國(중앙경찰학교)△교무과장 申燦燮(국립과학수사연구소)△총무과장 尹大杓(서울청)△생활질서과장 金仁澤△형사〃 金炳澈△수사〃 閔伍基△경비2〃 李康德△정보1과 李晟漢△1기동대장 尹宗基△2〃 朴秉國△3〃 梁東仁△청사경비대장 金基用△남대문서장 趙吉衡△서대문〃 申斗浩△성동〃 金用判△서부〃 朴在鉉△중랑〃 金鍾遠△종암〃 趙鏞燮△구로〃 柳根涉△노원〃 李逸求△도봉〃 朴雄圭△수서〃 徐千浩(부산청)△정보통신담당관 鄭壽泰△수사과장 李春聲△생활안전〃 趙漢聖△형사〃 辛東建△경비〃 禹熙周△정보〃 金仁圭△보안〃 朴承甲△외사〃 成炅出△중부〃 河柄玉△영도〃 崔承源△서부〃 李濟晟△해운대〃 李文基△금정〃 金忠圭△사상〃 朴煥斗△경무과(교육) 金榮根 張茂植△경무과(대기) 李潤鎬(대구청)△경무과장 吳圭滿△정보통신담당관 任國彬△생활안전과장 嚴勇欽△경비교통〃 李鉉羲△정보〃 李炳喜△보안〃 李台善△남부서장 李鍾錫△수성〃 李良起△달서〃 金相根△달성〃 白承燁△경무과(교육) 李榮泰△경무과(대기) 李正植(인천청)△청문감사담당관 尹鍾玉△경무과장 朴明烈△생활안전과장 金守喆△경비교통〃 朴勍民△정보〃 崔明吉△보안〃 玉周富△국제공항경찰대장 陳正鉉△중부서장 朴成浩△동부〃 李桓燮△남동〃 金榮烈△부평〃 金盛東△서부〃 李昶均△강화〃 黃光基△경무과(교육) 鄭弘根(울산청)△경무과장 趙顯培△생활안전〃 黃景煥△경비교통〃 鄭用煥△정보〃 趙廷來△보안〃 沈守植△동부서장 朴泰植△경무과(교육) 李文國(경기청)△경무과장 沈相仁△정보통신〃 鄭敬謨△교통〃 朴光淳△경비〃 朴鍾漢△형사〃 安重翼△정보〃 裵京煥△보안〃 金洪八△기동대장 白東山△안양서장 金云善△과천〃 車重烈△군포〃 李基萬△성남중부〃 權寧燮△분당〃 朴宗奎△부천남부〃 金龍水△광명〃 金石岩△남양주〃 文秀元△파주〃 金鍾海△이천〃 朱基洲△양평〃 全興培△가평〃 金永俊△구리〃 張世元△경무과(교육) 李元載 安在京(강원청)△청문감사담당관 趙漢鎭△경무과장 尹英煥△생활안전〃 姜德中△수사〃 金成聞△경비교통〃 賈世魯△정보〃 韓基玉△강릉서장 金南雄△원주〃 權赫杓△동해〃 金德漢△속초〃 安紀聲△삼척〃 李丙燦△정선〃 李哲聖△홍천〃 田炳亮△횡성〃 趙容太△인제〃 許英範△경무과(교육) 玉道根△경무과(대기) 郭長星 洪炳哲(충북청)△경무과장 李元九△생활안전〃 李昊均△수사〃 柳承元△경비교통〃 金基勇△보안〃 李鍾福△충주서장 金漢中△제천〃 朴潤信△영동〃 金沅俊△괴산〃 金慶洙△보은〃 具恩洙△음성〃 朴鎭圭△경무과(교육) 曺圭喆△경무과(대기) 李丸珪(충남청)△청문감사담당관 李鍾遠△경무과장 金成一△생활안전〃 吳用大△수사〃 朴商隆△정보〃 李鍾起△보안〃 徐東洙△대전중부서장 朴炳允△대전동부〃 咸石鎬△천안〃 安億鎭△논산〃 明榮洙△보령〃 趙源九△홍성〃 尹석遠△부여〃 白光天△서천〃 金煌在△금산〃 梁洛雲△경무과(교육) 盧赫愚△경무과(대기) 李成浩(전북청)△청문감사담당관 金鍾吉△경무과장 姜二淳△생활안전〃 金貞燮△보안〃 崔靑木△정읍〃 朴瓘培△임실〃 河昇均△경무과(교육) 楊太圭△경무과(대기) 심균상 禹濟泰(전남청)△청문감사담당관 林學雨△수사과장 金大植△여수서장 鄭炳模△나주〃 金斗萬△고흥〃 千勝凡△해남〃 朴定垣△보성〃 尹盛建△함평〃 朴承柱△영암〃 金信基△장성〃 河泰玉△곡성〃 姜聲福△완도〃 梁鍾烈△진도〃 金正燮△경무과(교육) 鄭淳道 全錫鍾(경북청)△청문감사담당관 成德濟△경무과장 李光榮△생활안전〃 金泳秀△경주서장 金聲培△구미〃 徐賢洙△영주〃 全鍾錫△의성〃 姜信明△영덕〃 都範搢△봉화〃 金炳五△성주〃 金榮斗△군위〃 金長完△경무과(교육) 張鄕鎭(경남청)△청문감사담당관 金奇壽△경비교통과장 金綠凡△수사〃 金正奎△보안〃 裵綱△창원중부서장 崔泰榮△진주〃 禹文守△진해〃 金仁奭△통영〃 林鍾植△사천〃 鄭成均△밀양〃 鄭守一△고성〃 金哲準△남해〃 鄭永鎬△함양〃 南玄祐△경무과(교육) 呂義弼 吳殷秀△경무과(대기) 申京泰(제주청)△수사과장 李炳夏△정보〃 金昌浩△보안〃 李漢一△제주서장 韓公益△경무과(대기) 梁貞富 ■ 부산시 〈4급 승진〉△비서실장 조성호△APEC준비단 기획지원과장 최낙민△〃 행사지원과장 김영식△지방공무원교육원 수석교수 직무대리 박래희△서구(국장요원) 김용만△법무담당관 직대 정진학△지방공무원교육원 교육지원과장 직대 노윤석△상수도사업본부 경영기획부장 직대 김정효△충렬사관리사무소장 직대 이규호△항만관리사업소장 직대 이종철〈4급 전보〉△기획혁신담당관 정현민△정보화담당관 안덕우△개발행정담당관 서규수△산업진흥과장 신택현△교통관리과장 엄윤섭△청소관리과장 유진성△시의회 전문위원 직대 장진추△건설본부 총무부장 김순권△상수도사업본부 총무부장 송충삼△체육시설관리사업소장 안수근△차량등록사업소장 정천세△서울사무소장 장기일△청소시설관리사업소장 김양권△엄궁농산물도매시장관리사업소장 권헌식△해운대구(국장요원) 김지척 ■ 한국전력기술 ◇직할부서△홍보실장 白椿善△품질보증처장 金成奎 ◇경영지원본부△기획처장 柳善鏞△행정지원처장 朴奎植△재무관리처장 朴魯珍△노사협력실장 權相鳳◇원자력사업단△원자력사업개발처장 李永澤△원자력사업관리실장 安鍾煥◇플랜트사업단△플랜트사업개발처장 李培秀△플랜트사업관리실장 李貞烈◇원자로설계개발단△원자로사업관리실장 朴詳洙◇전력기술개발연구소△기술관리처장 權五吉△정보화추진처장 崔博烈△사업관리기술처장 陳金澤△토목기술처장 朱寅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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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청 ◇총경 전보 (본청)△감사담당관 尹在國△정보통신1〃 金大鎭△정보통신2〃 鄭鏞三△외사3〃 趙顯五△교통기획〃 許南雲△장비과장 崔源台△생활안전〃 梁性喆△생활질서〃 張大鳳△지능범죄수사〃 金永泰△마약수사〃 金圭喆△수사국(금융정보분석원) 韓基玟△정보2과장 鄭龍仙△정보1과 金致元△총무과(혁신단) 강경량△총무과(교육) 金炳華 朴鍾洙 金永錫 金鎬閏 朴起善(경찰대)△총무과장 金南七△학생〃 黃圭郁△교무〃 許南錫△치안연구소 金潤哲 文鍾燮 李東埈 金榮操△총무과(교육) 丁喆秀 張光△총무과(대기) 孫鍾殷 金榮和△경무과(교육) 黃成贊 黃雲夏 金貴讚 李相植(경찰종합학교)△이전건설단장 金成國(중앙경찰학교)△교무과장 申燦燮(국립과학수사연구소)△총무과장 尹大杓(서울청)△생활질서과장 金仁澤△형사〃 金炳澈△수사〃 閔伍基△경비2〃 李康德△정보1과 李晟漢△1기동대장 尹宗基△2〃 朴秉國△3〃 梁東仁△청사경비대장 金基用△남대문서장 趙吉衡△서대문〃 申斗浩△성동〃 金用判△서부〃 朴在鉉△중랑〃 金鍾遠△종암〃 趙鏞燮△구로〃 柳根涉△노원〃 李逸求△도봉〃 朴雄圭△수서〃 徐千浩(부산청)△정보통신담당관 鄭壽泰△수사과장 李春聲△생활안전〃 趙漢聖△형사〃 辛東建△경비〃 禹熙周△정보〃 金仁圭△보안〃 朴承甲△외사〃 成炅出△중부〃 河柄玉△영도〃 崔承源△서부〃 李濟晟△해운대〃 李文基△금정〃 金忠圭△사상〃 朴煥斗△경무과(교육) 金榮根 張茂植△경무과(대기) 李潤鎬(대구청)△경무과장 吳圭滿△정보통신담당관 任國彬△생활안전과장 嚴勇欽△경비교통〃 李鉉羲△정보〃 李炳喜△보안〃 李台善△남부서장 李鍾錫△수성〃 李良起△달서〃 金相根△달성〃 白承燁△경무과(교육) 李榮泰△경무과(대기) 李正植(인천청)△청문감사담당관 尹鍾玉△경무과장 朴明烈△생활안전과장 金守喆△경비교통〃 朴勍民△정보〃 崔明吉△보안〃 玉周富△국제공항경찰대장 陳正鉉△중부서장 朴成浩△동부〃 李桓燮△남동〃 金榮烈△부평〃 金盛東△서부〃 李昶均△강화〃 黃光基△경무과(교육) 鄭弘根(울산청)△경무과장 趙顯培△생활안전〃 黃景煥△경비교통〃 鄭用煥△정보〃 趙廷來△보안〃 沈守植△동부서장 朴泰植△경무과(교육) 李文國(경기청)△경무과장 沈相仁△정보통신〃 鄭敬謨△교통〃 朴光淳△경비〃 朴鍾漢△형사〃 安重翼△정보〃 裵京煥△보안〃 金洪八△기동대장 白東山△안양서장 金云善△과천〃 車重烈△군포〃 李基萬△성남중부〃 權寧燮△분당〃 朴宗奎△부천남부〃 金龍水△광명〃 金石岩△남양주〃 文秀元△파주〃 金鍾海△이천〃 朱基洲△양평〃 全興培△가평〃 金永俊△구리〃 張世元△경무과(교육) 李元載 安在京(강원청)△청문감사담당관 趙漢鎭△경무과장 尹英煥△생활안전〃 姜德中△수사〃 金成聞△경비교통〃 賈世魯△정보〃 韓基玉△강릉서장 金南雄△원주〃 權赫杓△동해〃 金德漢△속초〃 安紀聲△삼척〃 李丙燦△정선〃 李哲聖△홍천〃 田炳亮△횡성〃 趙容太△인제〃 許英範△경무과(교육) 玉道根△경무과(대기) 郭長星 洪炳哲(충북청)△경무과장 李元九△생활안전〃 李昊均△수사〃 柳承元△경비교통〃 金基勇△보안〃 李鍾福△충주서장 金漢中△제천〃 朴潤信△영동〃 金沅俊△괴산〃 金慶洙△보은〃 具恩洙△음성〃 朴鎭圭△경무과(교육) 曺圭喆△경무과(대기) 李丸珪(충남청)△청문감사담당관 李鍾遠△경무과장 金成一△생활안전〃 吳用大△수사〃 朴商隆△정보〃 李鍾起△보안〃 徐東洙△대전중부서장 朴炳允△대전동부〃 咸石鎬△천안〃 安億鎭△논산〃 明榮洙△보령〃 趙源九△홍성〃 尹석遠△부여〃 白光天△서천〃 金煌在△금산〃 梁洛雲△경무과(교육) 盧赫愚△경무과(대기) 李成浩(전북청)△청문감사담당관 金鍾吉△경무과장 姜二淳△생활안전〃 金貞燮△보안〃 崔靑木△정읍〃 朴瓘培△임실〃 河昇均△경무과(교육) 楊太圭△경무과(대기) 심균상 禹濟泰(전남청)△청문감사담당관 林學雨△수사과장 金大植△여수서장 鄭炳模△나주〃 金斗萬△고흥〃 千勝凡△해남〃 朴定垣△보성〃 尹盛建△함평〃 朴承柱△영암〃 金信基△장성〃 河泰玉△곡성〃 姜聲福△완도〃 梁鍾烈△진도〃 金正燮△경무과(교육) 鄭淳道 全錫鍾(경북청)△청문감사담당관 成德濟△경무과장 李光榮△생활안전〃 金泳秀△경주서장 金聲培△구미〃 徐賢洙△영주〃 全鍾錫△의성〃 姜信明△영덕〃 都範搢△봉화〃 金炳五△성주〃 金榮斗△군위〃 金長完△경무과(교육) 張鄕鎭(경남청)△청문감사담당관 金奇壽△경비교통과장 金綠凡△수사〃 金正奎△보안〃 裵綱△창원중부서장 崔泰榮△진주〃 禹文守△진해〃 金仁奭△통영〃 林鍾植△사천〃 鄭成均△밀양〃 鄭守一△고성〃 金哲準△남해〃 鄭永鎬△함양〃 南玄祐△경무과(교육) 呂義弼 吳殷秀△경무과(대기) 申京泰(제주청)△수사과장 李炳夏△정보〃 金昌浩△보안〃 李漢一△제주서장 韓公益△경무과(대기) 梁貞富 ■ 부산시 〈4급 승진〉△비서실장 조성호△APEC준비단 기획지원과장 최낙민△〃 행사지원과장 김영식△지방공무원교육원 수석교수 직무대리 박래희△서구(국장요원) 김용만△법무담당관 직대 정진학△지방공무원교육원 교육지원과장 직대 노윤석△상수도사업본부 경영기획부장 직대 김정효△충렬사관리사무소장 직대 이규호△항만관리사업소장 직대 이종철〈4급 전보〉△기획혁신담당관 정현민△정보화담당관 안덕우△개발행정담당관 서규수△산업진흥과장 신택현△교통관리과장 엄윤섭△청소관리과장 유진성△시의회 전문위원 직대 장진추△건설본부 총무부장 김순권△상수도사업본부 총무부장 송충삼△체육시설관리사업소장 안수근△차량등록사업소장 정천세△서울사무소장 장기일△청소시설관리사업소장 김양권△엄궁농산물도매시장관리사업소장 권헌식△해운대구(국장요원) 김지척 ■ 한국전력기술 ◇직할부서△홍보실장 白椿善△품질보증처장 金成奎 ◇경영지원본부△기획처장 柳善鏞△행정지원처장 朴奎植△재무관리처장 朴魯珍△노사협력실장 權相鳳◇원자력사업단△원자력사업개발처장 李永澤△원자력사업관리실장 安鍾煥◇플랜트사업단△플랜트사업개발처장 李培秀△플랜트사업관리실장 李貞烈◇원자로설계개발단△원자로사업관리실장 朴詳洙◇전력기술개발연구소△기술관리처장 權五吉△정보화추진처장 崔博烈△사업관리기술처장 陳金澤△토목기술처장 朱寅秀
  • [삶과 경영 이야기] (17) 패션·아트 접목 원조 천호균 쌈지사장

    헝클어진 노랑 머리에 청홍의 꽃무늬가 새겨진 알록달록 캐주얼 남방.얼굴에는 웃음을 가득 머금었다.“신문에 나올 사진 때문에 오늘은 얌전하게 입은 겁니다.”기자의 호기심을 읽었는지 쌈지 천호균(千浩均·55) 사장은 묻지도 않은 대답을 첫머리에 던졌다.2시간 남짓의 인터뷰 동안 그의 웃음소리는 미래공간처럼 꾸며진 사장실을 쉬지 않고 울려댔다.‘패션’과 ‘아트’를 접목시킨 원조로 통하는 그의 철학을 들어봤다.(‘아트’는 우리말로 예술이나 미술쯤으로 번역될 수 있겠지만 그가 생각하는 건 더 큰 개념인 것 같아 그대로 살렸다.) -1978년 시작한 대기업에서의 첫 직장생활.남들은 보수 괜찮고 안정적이라며 부러워했지만 입사 때부터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대외차관과 기술제휴 담당이란 업무는 도통 처음부터 나와 어울릴 수 없는 일들이었다.나는 뜨거운 태양과 비바람을 맞으며 발로 일하고 싶었지만 쏟아지는 일들은 나를 계속 책상머리에 붙들어 앉혔다.게다가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했지만 내가 제출한 기획안이 회사에서 통과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입사 4년만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회사를 나왔다. -경기중학교 시절 나는 전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던 악동이었다.수업시간에 낄낄대기,똥침 놓기,뒤에서 갑자기 의자빼기에 마치 의무감 같은 것마저 느끼던 때.당연히 공부는 뒷전이었다.결국 집안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고 경기고등학교에 떨어졌다.하지만 자존심은 누구 못지 않았다.다른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그 학교 교복 입기가 너무나 창피해 하굣길에 사복으로 갈아입고 다니다가 결국 재수를 선택했다.이듬해 경기고 배지를 달았지만 습관을 못버리고 다시 다른 일에 빠졌다.이번에는 주먹질이었다.교내에서 내 주먹은 최고였다.그때 말로 교내를 ‘평정’했다.오죽하면 고2 때 권투코치가 “공부도 별로니까 권투선수나 하라.”고 했을까. -성균관대 영문과에 입학한 뒤에도 공부보다는 사업에 관심을 더 쏟았다.기원(棋院)을 차렸는데 복덕방처럼 바둑만 두는 곳이 아니라 바둑을 주제로 한 카페처럼 꾸몄다.그러나 장사가 잘되자 앞의 가게에서 무허가 기원이라고 고발을 해버려 문을 닫고 말았다.대학 앞에서 카페를 할 때도 그랬다.지금의 홍대 앞 카페처럼 클럽식으로 꾸몄다.누추하고 허름한 분위기로 70년대의 획일적인 화려함과 차별화를 꾀했다. -81년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가죽수입업을 하던 친구가 사업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실패원인는 너무나 단순했다.가죽을 수입하기 전에 국내 수요자들의 의견을 물었어야 했는데 친구는 막무가내로 수입부터 해놓고서 국내 수요자들을 쫓아다니고 있었다.친구회사를 인수해 3년 만에 돈을 엄청 벌었다.그러나 수익성을 발견한 큰 회사들이 앞다퉈 이쪽에 뛰어들면서 사업은 위기를 맞았다. -“대기업의 자금력은 도저히 당해낼 수는 없다.이 사업은 이걸로 접고 가죽 가공제품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당시 핸드백은 패션제품이 아니라 가방과 같은 실용품이었다.모양도 똑같이 직사각형으로 표준화돼 있었다.“여성들의 몸과 옷에 맞는 핸드백을 만든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내가 직접 디자인하고 ‘데코’라는 상표를 붙여 시장에 선보였다.‘핸드백을 입자.’는 게 컨셉트였다.남들은 영문과 나와서 어떻게 디자인을 하느냐고 했지만 아이디어는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샘솟았다.특히 우리 핸드백은 백화점 등 대중매장에서는 외면받고 루비나 등 당시 유명 패션디자이너들이 더 좋아했다.어느 날 백화점 행사에 20개 패션업체가 참여하기로 했는데 한 곳이 펑크를 내 우리 회사가 대신 들어가는 행운을 잡았다.그날 우리회사가 판 것이 다른 19개 업체가 판 것보다 더 많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남과 다른 생각,다른 행동을 많이 했다.남들의 생각을 대신 해보는 게 취미였다.그래서 얻은 별명이 ‘탐정’이었다.9형제 중 8번째로 태어나 눈치코치 보는 게 생존도구가 된 때문이었을까.강원도에서 상경한 아버지는 동대문에서 신발 도매상을 했다.자녀 9명의 양육은 아버지에게 큰 짐이었다.아침 5시에 광화문 집에서 동대문 가게까지 걸어서 출근했다.차비를 아끼기 위해서였다.술·담배를 전혀 안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나는 가게에서 장사하는 걸 좋아했다.특히 문 열고 들어오는 손님을 보면서 그 사람이 무엇을 살 것인가 알아 맞히는 게 취미였고,상당한 적중률을 보였다.지금으로 말하면 소비자 심리예측인데,일찌감치 훈련을 했던 셈이다. -데코 핸드백은 기대 이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그것도 5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다.핸드백만이 아닌 구두,모자,선글라스 등 다양한 패션상품으로의 다각화가 필요했다.그래서 92년 탄생한 게 토털 액세서리 브랜드 ‘쌈지’였다.쌈지(작은 주머니)를 통해 ‘작다’와 ‘싸다’에서 나오는 다양한 문화적인 느낌들을 담고 싶었다.처음에는 일본 브랜드라는 오해도 많았다.쌈지는 놈,아이삭,진리,딸기 등 우리회사의 순한글 브랜드의 출발점이 됐다. -쌈지의 브랜드 전략은 ‘아트’로 설정했다.아트와의 동맹이 절실했다.그때까지 아트하는 사람들과 전혀 일면식이 없던 나는 그들과 본격적으로 친구되기에 들어갔다.매장에서 판화작품과 음악CD를 함께 팔았다.큰 돈을 들여 서울 강남의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국내 첫 ‘아트쇼’를 열기도 했다.무용,그림,보디페인팅,설치미술 등이 종합연극처럼 펼쳐지는 공연으로 일반 패션쇼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또 ‘쌈지 스페이스’라는 작업실을 만들어 아트하는 사람들에게 1년에 10명씩 공간을 빌려 줬다.불과 5년 만에 50명이 우리의 인맥에 들어왔다.그들에게 한달에 한번씩 우리 회사에서 디자이너와 직원들을 상대로 그들의 ‘크리에이티비티’(창의성)를 강의하도록 했다. 여기에서 나온 에너지는 곧바로 쌈지 등 제품디자인에 반영됐고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내년 봄 서울 인사동에서 오픈하는 건평 1000평 정도의 상가 ‘쌈지길’(가칭)은 아트와 패션의 복합공간으로 자리할 것이다.이미 ‘숨’‘팔자’‘손’ 등 그 안에 입점할 한글 가게이름을 25개 등록했다. -쌈지는 최근 경기도 파주에 ‘딸기가 좋아’라는 문화 테마파크를 열었다.그 안에 세운 건물이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초청작으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나는 건축가들에게 어떻게 지어달라고 구체적인 주문을 한 적이 없다.건축가들이 쌈지가 그동안 같이 해온 작가들의 작품과 건축주의 철학을 자유롭게 해석해 걸작을 만든 것이었다.이른바 ‘쌈지컬처’란 게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가장 기분 좋을 때는 “저거 쌈지스타일이야.”라는 말을 듣을 때다.어딘지 괴팍하거나 뭔가 잘못된 것 같을 때 쓰는 말이다.내가 가장 주목해온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대표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 우리의 최대 수출 브랜드 ‘딸기’다.딸기는 열살 난 초등학생 여자아이다.심술 궂고 욕심 많고 안 예쁘고 엉뚱하고 어른들한테 매일 혼나지만 의리 있고 심지가 분명한 아이다.예쁜 여자,잘 생긴 남자,공부 잘 하는 사람에만 우리교육의 초점이 맞춰지고 인성에 대한 강조점이 사라지고 있는데 대한 우리의 메시지이기도 하다.딸기는 현재 타이완 등지로 문구,팬시,잡화 등으로 수출이 많이 되고 있다. -내 차림새에 대해 한마디씩 던지는 사람이 많다.과거 회사가 작을 때에는 무시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매출이 좀 느니까 개성으로 인정해 주는 씁쓸한 경험도 했다.나의 차림새는 일종의 시위(示威)다.편안함과 자연스러움,자유로움을 내부직원과 외부사람들에게 몸으로 보여 주려는 것이다.나는 현역으로 만기제대했지만 우리나라 군대문화를 혐오한다.군대문화의 부작용이 획일성이다.3년간 모두 똑같이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보니 사람들이 똑같아진다. -기업경영은 이윤추구가 목적인데 너무 문화쪽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너무 미래형이라는 것이다.솔직히 단기적으로 손해라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하지만 단순한 패션회사가 아니라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예술가들과 함께 하나의 문화를 창조해 가는 것,이것이야말로 쌈지의 자산이다.물론 이것은 아트를 영원한 테마로 하자는 고객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천호균 사장은 쌈지 천호균 사장은 1980년대 서울 명동거리를 휩쓴 ‘거지백’의 창시자다.‘핸드백을 입자.’라는 개념으로 시작한 거지백은 당시 젊은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고 어깨에 메어 봤을 공전의 히트작이었다. 천 사장은 젊고 가난한 예술인들에게는 든든한 후원자로 남아있다.예술이 패션의 출발점이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2002년 말 시작된 경기침체로 지금은 다소 고전하고 있는 편.그러나 패션몰 등 사업다각화로 극복한다는 게 천 사장의 복안이다.지난해 매출 1364억원에 5억원 가량의 영업이익을 올렸으나 당기순익은 적자가 났다.▲97년 한국섬유대상(패션경영부문) ▲99년 월간미술대상 대상(쌈지아트프로젝트),한경마케팅대회 디자인상,문화예술지원기업대상 수상. ˝
  • [클린턴 자서전 My Life] “딸이 알까 두려워 진실 숨겼다”

    대통령 재임 시절 숱한 스캔들과 함께 미국 경제를 호황국면으로 이끌면서 비난과 찬사를 함께 받았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22일 자서전 ‘나의 인생 (My Life)’를 출간,시판에 들어갔다. 자서전에서 그는 인생의 오점으로 남아 있는 백악관 임시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반성과 함께 자신의 국내외적인 치적을 자세히 소개했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서울 김균미 기자|클린턴 전대통령은 특히 임기 말 북한을 일주일 이상 방문하려 했으나,중동사태 때문에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또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전환하려 했으나,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을 방북,미사일 협상을 종결지으라고 권고했으나 듣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북한 관련 1994년 3월 말 북한과의 심각한 위기가 시작됐다.앞서 2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허용한 북한은 돌연 15일 사찰단의 입국을 막았다.북한은 핵 무기 전단계인 플루토늄을 만들기 위한 폐 연료봉을 연구중이었으며 이를 위해 2개의 원자로 건설을 계획했다. 나는 일주일 만에 패트리엇 미사일을 한국에 보내기로 결정했고 유엔에 대북 경제제재를 요청했다.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제조를 중단시키기로 결정했음을 발표했다.그는 미국이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는지를 북한에 전하기 위해 3일 연속 거친 말투를 썼다.선제공격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6월1일 북한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로버트 갈루치 북핵 대사를 그에게 보내 미국의 심각한 상황을 설명했다.그는 방북을 원했고 나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7월 제네바 협상을 하루 앞두고 김일성이 사망,대화는 한달간 중단됐다.그러나 10월에 협상이 타결돼 북한이 핵 강대국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북한이 1998년부터 핵무기 1∼2개를 만들 분량의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미국이 안 것은 내가 백악관을 떠난 뒤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자가 12월16일 백악관을 찾았다.그는 미사일 방어(MD)와 이라크를 가장 큰 안보 이슈로 생각했다.나는 8년간의 경험으로 비춰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가 안보문제 가운데 첫번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다음이 중동평화,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파키스탄과 탈레반 및 알카에다의 연계,북한 문제,그리고 이라크라고 말했다.빈 라덴을 잡지못한 게 가장 실망스럽지만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을 거의 타결할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말했다.그러나 완전히 종식시키려면 부시 당선자가 북한에 가야한다고 말했다.부시는 듣기만 했지 말하지는 않았다. ●르윈스키와의 관계 전말 1995년 10월 연방정부의 일시 폐쇄로 백악관에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을 때 르윈스키와 처음으로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그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그녀가 국방부로 옮길 때까지 여러 차례 관계를 가졌다.1997년 2월 르윈스키가 주례 라디오 연설 녹음 저녁때 손님중 한명으로 왔고,녹음 뒤 약 15분간 단둘이서 만나 관계를 가졌다. 나도 내 행동이 혐오스러웠다.봄에 다시 만났을 때 이런 행동은 나와 내 가족,그녀 등 모두에게 잘못이라고 말했다.이후에도 르윈스키는 몇번 백악관을 방문했지만 부적절한 관계는 더 이상 갖지 않았다.르윈스키와 나 사이에 일어난 일은 부도덕적하며 바보같은 일이었다.난 그 사실이 매우 부끄러웠고,영원히 세상에 알려지지 않길 바랬다. ●힐러리보다 첼시에게 말하기가 더 힘들었다 대배심 심리가 열리던 1998년 8월15일 토요일 아침 한숨도 자지 못한 상태에서 참담한 기분으로 힐러리에게 르윈스키와의 관계에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힐러리는 마치 배를 주먹으로 얻어맞은 듯한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힐러리는 나와 르윈스키와의 관계 그 자체 못지않게 내가 지난 1월 사건이 불거졌을 때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더욱 화가 나 있었다.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미안하다는 말 뿐이었다.난 내가 그녀를 사랑하며 첼시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난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가족을 지키고 대통령으로서 나에 대한 평가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진실을 꽁꽁 가슴속에 가둬뒀다. 대통령 취임 첫날부터 나와 관련된 그 많던 거짓말과 모함들을 함께 잘 견뎌낸 지금,지난 1월 폴라 존스와 관련한 진술 조서 때문에 대통령직에서 밀려나긴 싫었다.솔직히 지금도 내가 어떻게 그렇게 바보같은 잘못을 저질렀는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딸 첼시에게 사실을 알리는 일은 힐러리에게 고백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모든 자녀가 자신의 부모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시간 문제이지만,내 경우는 정상적인 경우에서 한참 더 나아갔기 때문에 이해를 구한다는 것은 어려웠다.나는 항상 좋은 아빠라고 자부해왔다.나는 결혼생활이 끝나는 것 뿐 아니라 딸의 사랑과 존경을 한꺼번에 잃게 될까봐 두려웠다. mi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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