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원일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 주말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 나는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 재무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 흥미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496
  • [씨줄날줄] 합참의장의 自省/육철수 논설위원

    합참의장이 명실상부한 군령권을 가진 것은 1990년부터다. 6·25전쟁 직후인 1954년 연합참모본부가 생긴 이래 1963년 합동참모본부가 창설돼 오늘에 이르는 동안 35명의 합참의장이 거쳐갔다. 그러나 1990년 정호근 합참의장 이전엔 형식상 군 최고 직위였을 뿐 그 위세는 각군 참모총장보다 떨어졌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됐을 때 김종환 합참의장보다 서열이 아래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에 임명된 사실은 합참의장의 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합참의장의 위상은 1990년 10월1일 합동군제 합동참모본부로 바뀌면서 확 달라졌다. 합참의장에게 육·해·공군본부 예하 군사령부 및 해병대사령부, 정보사령부 등 3개 직할 합동부대에 대한 작전지휘권이 부여됐기 때문이다. 이후 1994년 한미연합사로부터 평시 작전통제권을 넘겨받아 최고 군령기관의 수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천안함 침몰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해군참모총장은 뒷전이고 합참의장이 전면에 떠오른 것은 그 권한 및 책임과 무관하지 않다. 막중한 자리인 만큼 천안함 침몰 당시 합참의장의 동선(動線)과 허술했던 보고체계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이상의 합참의장은 이명박 대통령보다 20분이나 더 늦은, 침몰 49분 만에 첫 보고를 받았다. 이 합참의장은 침몰 당일 충남 계룡대에서 토론회와 만찬에 참석한 뒤 부관과 경호대장을 대동하고 KTX 편으로 상경했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지휘통제반장이 합참의장과 장관에게 보고하는 걸 깜빡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군의 보고체계로 미루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속사정이야 모르겠지만 합참의장 일행이 통신축선 사각지대에 있었다면 그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이 합참의장은 그제 육·해·공 예하부대에 자필 지휘서신을 내려보냈다고 한다. 그는 지휘서신에서 “작금의 모든 일들은 내 부덕의 소치”라면서 “미리 대비하지 못한 책임을 고백한다.”고 썼다. 실의에 빠진 해군과 고(故) 한주호 준위, 실종장병의 가족 등을 위로하고 최원일 함장 등 생존 장병에게 격려와 애정을 보냈다. 또 “군심을 결집시키는 게 내가 할 일”이라며 “이제 고개를 들자.”고 했다. 이 합참의장의 ‘자성(自省)의 서신’을 보는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 없다. 부지불식간 당한 일이긴 하나, 천안함 침몰 직후 ‘부실 지휘’가 그의 36년 군생활을 욕되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23일은 함평에 나비 보러

    국내 최대 봄 축제인 함평 나비축제가 23일 개막된다. 전남 함평군은 15일 ‘함평나비대축제’를 23일~5월9일 17일 동안 개최한다고 밝혔다. 115만㎡ 규모의 함평엑스포 공원 일대에서 열리는 축제에는 꽃과 나비·곤충을 소재로 한 전시, 문화 체험 등이 다양하게 이어진다. ‘나비=희망’을 주제로 ‘나비의 꿈, 녹색의 향연’이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되는 이번 축제는 관광객과 주민이 한데 어우러지는 체험형 위주로 짜여졌다. 특히 올해는 축제 참여자들의 거리 퍼레이드가 7년 만에 부활된다. 관광객들이 계절 꽃이 만발한 야외에서 자연을 느껴볼 수 있는 식물 관찰장과 나비·벌·잠자리·갑충류·수서생태존 등이 운영된다. 또 나비축제가 2010년 초등학교 국정교과서에 수록된 것을 기념해 곤충생태학교를 특별 기획하는 등 가족 단위 관람객을 고려한 체험 중심의 프로그램을 한층 강화했다. 행사기간 틈틈이 실내외에서는 25종 10만여 마리의 나비가 방사된다. 행사장인 함평천 생태공원과 엑스포 수변공원에 만개한 유채꽃과 안개초, 꽃창포, 자색채 등 형형색색의 봄꽃과 나비가 어우러지면서 장관이 연출된다. 나비 탄생관, 나비 애벌레 생태 전시코너, 곤충 생태전시 코너, 초등학교 교과서 수록 특별전시관 등도 운영된다. 자연학습장을 전시관 형태로 꾸민 것도 특징이다. 농업의 세계관에는 논밭 작물, 약용식물, 채소류 등 150여종에 이르는 품종을 실제 재배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자연생태관에는 애완동물관, 파충류·갑각류관, 패류·양서류관, 농촌의 세시풍속, 허브 향기터널, 자연생태 이야기, 누에체험관 등이 마련됐다. 이밖에 선인장 등 모두 2500여종의 다육식물과 나비·곤충의 화석, 천연기념물, 한국 토종 민물고기 등이 전시된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SK브로드밴드, ‘B의 고객사랑 캠페인’ 전개

    SK브로드밴드, ‘B의 고객사랑 캠페인’ 전개

    SK브로드밴드는 새로운 브랜드인 ‘B’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는 ‘B의 고객사랑 캠페인’을 실시한다고 15일 밝혔다. 이 캠페인은 SK브로드밴드가 현장에서 고객 사랑을 실천해 신뢰를 높이자는 취지에서 마련했다. SK브로드밴드는 오는 6월까지 구성원들이 장애처리 고객 가정을 방문해 통신 단말기에 ‘B’ 브랜드 스티커를 부착하고 PC 청소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영업 현장에서는 신규 브랜드와 망내 무료요금제 등을 홍보하고 가두 캠페인을 전개한다. SK브로드밴드 구성원과 콜센터 직원들은 5월 가정의 달과 ‘B’ 브랜드 런칭에 맞춰 30~40대 장기 고객을 대상으로 자필 카드를 발송할 계획이다. 임원일 SK브로드밴드 마케팅부문장은 “새로운 대표 브랜드 ‘B’ 출시를 계기로 고객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는 대고객 캠페인을 전개할 것”이라며 “4월 초 망내무료요금제를 출시한 데 이어 가계 통신비 절감을 위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앞장서 선보이는 등 고객중심경영을 한층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진= SK브로드밴드 서울신문NTN 김윤겸 기자 gem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천안함 침몰 이후] 다도해함은 비밀작전중?

    다도해함은 뭘 하고 있을까. 천안함 침몰 해상 인근지역에서 활동하는 다도해함의 행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잠수정 모함으로만 알려진 다도해함이 백령도 인근에 있는 이유는 공식적으로는 감압장치인 챔버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행동 반경이 작은 잠수정의 모함인 다도해함은 그 자체가 군사기밀에 속한다. 이런 다도해함이 백령도 인근에서 기동하는 이유에 대해 군 안팎에서는 ‘뭔가 은밀히 찾고 있다.’거나 ‘작전을 준비 중’ 이라는 등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다. 7일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 합동조사단의 발표에 따르면 해군 2함대사령부는 천안함 침몰 시각(오후 9시22분) 25분 뒤인 9시47분 인천 옹진군 덕적도에 있던 대잠(對潛)헬기인 링스헬기 1대를 백령도로 전개하도록 지시했다. 슈퍼링스로도 불리는 링스헬기는 수중에서 활동하는 잠수함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링스헬기는 줄에 매달린 ‘디핑(dipping) 소나’를 바다에 넣어 액티브(active) 소나로 잠수함(정)을 탐지한다.당시 속초함 등이 사고 현장으로 즉시 출동했고 ‘새떼’를 적으로 오인해 사격까지 했다는 군의 발표를 보면 군은 천안함이 잠수함(정) 등의 수중무기에 의해 피격됐을 가능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최원일 함장이 사건 발생 당시 2함대사 22전대장과의 통화에서 “뭐에 맞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힌다. 군 소식통은 8일 “군은 당시 천안함이 잠수정 종류로부터 어뢰 피격을 받아 침몰한 것으로 판단해 보고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공격한 잠수정을 잡았는지 놓쳤는지는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대북관계를 고려할 때 이번 상황에 대해 북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것은 금기시되고 있어 사건 초동 단계에서 극도로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사고 직후 군은 링스헬기 기동과 대잠경계태세 발령에 대해 함구했다. 군사비밀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합조단의 발표를 보면 군은 당시 상황을 잠수함(정)에 의한 피격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저만 돌아와 죄송” “너라도 살아와 다행” 또 눈물바다

    [천안함 침몰 이후] “저만 돌아와 죄송” “너라도 살아와 다행” 또 눈물바다

    “너라도 살아와줘서 고맙다.”, “어머님, 저만 돌아와 죄송합니다.” 온통 눈물바다였다. 아들의 생환을 애타게 기다리는 어머니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남은 장병들 모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8일 오후 경기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 정비식당. 실종자 어머니, 아내, 누나 등 가족 59명과 생존 장병 39명(부사관 26명, 사병 13명)이 가슴 아픈 첫 만남을 가졌다. 실종자 가족들이 지난달 26일 천안함 침몰 이후 온갖 루머와 억측·오해를 뒤로하고 14일 만에 대화와 화해의 시간을 마련했다. 최원일 함장 등 군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만남에서 어머니들은 실종된 아들의 함상 생활과 사고 당시 상황, 군의 대응 등 궁금해 하던 것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생존 장병들과 나눴다. 실종자 어머니들은 해군근무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장병들이 식당으로 들어오자 차가운 바닷속에 갇혀 있을 아들 생각에 흐느끼기 시작했다. 실종자 어머니들은 “살아오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를 연신 외쳐대며 생존 장병들의 두 손을 움켜 잡았다. 한 실종자 가족은 “살아돌아온 분들을 원망하려는 것이 아니라 고마우신 분들을 모시고 위로를 받고자 만든 자리”라고 말했다. 처음에 한숨을 쉬고 허공을 응시하며 어쩔 줄 몰라하던 장병들도 자리에 앉자마자 금세 눈물을 쏟았다. 상처받은 마음은 실종자 가족들의 위로에 순식간에 녹아내린 듯 보였다. 김동진 하사의 어머니 홍수향(45)씨는 아들의 이름이 쓰인 명찰을 내보이며 “우리 동진이 아는 사람없어요?”라고 외치며 한 병사를 부둥켜 안고 울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인 채 의자에 앉아 있던 병사도 “어머니 울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따라 울기 시작했다. 홍씨는 안경을 벗어 눈물을 닦는 병사의 눈물을 닦아주고 “괜찮다.”며 등을 두드려 줬다. 서대호 하사의 어머니 안민자(52)씨는 한 병사의 손을 꼭 잡으며 “우리 대호랑 같은 방에 있었나?”고 물으며 흐느꼈다. 이어 “맞아 우리 애는 꼭 살아 있을 거야. 대호는 강해.”라면서 “마음 크게 먹고 전우들이 못 이룬 꿈 꼭 이루고. 아프지 말고.”라고 생존 장병을 위로하며 오열했다. 문규석 상사의 어머니 유의자씨도 아들 동료들의 어깨를 감싸며 “니들이라도 살아왔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고생 많았다.”고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문 상사의 아내는 옆에서 연신 눈물만 훔쳤다. 한 생존 장병은 천안함 침몰 직전 실종자들의 위치를 적었던 수첩을 내보이며 가족들에게 설명했다. 정종률 중사가 가속엔진실 부분에 있었다는 설명을 듣던 가족들은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이날 만남의 자리에는 실종자 가족들 중 희망자만 참석했다. 일부 가족들은 “생존 장병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실종된 ‘제2연평해전 참전’ 박경수 중사의 사촌형 경식(36)씨는 “한 번 겪어본 일이라 갈 수가 없었다.”면서 “기억하기 싫은 일을 말하는 장병들을 괴롭히기 싫어 참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해군 측과 실종자 가족 협의회는 면담에 참여한 가족들이 충격에 실신할 것을 우려해 구급차 3대를 마련했으나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한편 전날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고(故) 김태석 상사의 평택 해군아파트에는 주민들이 조기를 자발적으로 달고 김 상사를 추모했다. 이 아파트에는 실종 승조원 46명 중 7명이 살고 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천안함 생존자 증언] “쾅! 소리에 정전… 펑! 소리에 배가 90도 기울어”

    [천안함 생존자 증언] “쾅! 소리에 정전… 펑! 소리에 배가 90도 기울어”

    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침몰 13일 만에 공개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최원일 함장을 포함한 생존 승조원 58명 가운데 57명이 7일 오전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강당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침몰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신은총 하사는 참석하지 못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고발생 보름이 다 돼가는데 가족들은 실종 장병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함장도 살아있을 것으로 기대하나. -(최원일 함장) 실종된 장병들이 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살아 있다는 희망을 계속 갖고, 복귀신고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사고 해역에서의 주임무는 무엇이었나. -(최 함장) 2008년 8월에 부임해 20개월 근무했다. 그 구역은 누구보다 자신있는 구역이고 16회 정도 경비했다. 주요 임무는 도발대비 태세 유지였다. ●정확한 사고발생 시간은 →사고 시각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과연 몇시 쯤 사고가 났나. -(작전관 박연수 대위) 함교에 당직사관이 확인할 수 있는 컴퓨터 모니터가 있다. 마지막으로 직접 확인한 시간이 21시24분이다. 그 시간에 대해 정확성은 판단할 수 없다. →9시16분쯤 백령도 방공진지에서 큰 소음을 들었다고 보고했다. 들린 게 있나. -(통신장 허순행 상사) 9시14분부터 18분까지 통화를 했다. 함 내부에서 들렸다면 분명 전화를 끊고 상황파악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들렸다. -(갑판병 황보상준 일병) 9시16분 당시 좌현 함교 외부 당직이었다. 16분대에 일체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디젤엔진이나 기관실 등에서 폭발 소리를 들었나. -(정종욱 상사) 함정이 6노트(11㎞) 저속일 때는 디젤엔진으로 기동한다. 군생활 17년 됐는데 배에서 폭발했다는 것은 전혀 들은 바 없다. →포술장의 최초 보고 내용과 ‘피격’이라고 한 것의 의미는. -(최 함장) 비상통신기와 휴대전화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제가 계속 통신기를 잡고 있으면 현장 구조가 어려워 옆에 허순행 상사를 위치시켜 지시한 내용을 전파하라고 했다. ‘뭐에 맞은 것 같고 충격이 너무 컸다.’고 우리끼리 얘기했다. -(김광보 중위) 밖으로 올라가 휴대전화로 함대 직통실에 보고했다. 너무 정신이 없어 직통실 전화가 아니라 군부대 교환대를 이용했고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 안난다. 상황장교가 전화를 받았고 제가 처한 위치나 상황, 구조요청 등을 두서없이 말해서 기억이 안난다. →함장이 사고시각을 침몰 다음날 27일 9시25분으로 했다가 28일 번복한 이유는. -(최 함장) 당시 전술지휘체계(KNTDS) 컴퓨터 자료를 검색하던 중 우측화면에서 오후 9시23분으로 확인했다. 저는 사고 다음날 바로 현장에 가서 선체나 실종자 상황을 지휘, 보좌하고 있었다. ●사고 순간, 꽝 소리는 두번 →‘꽝’ 소리가 두 번 났는데, 파편을 본 사람 있나. -(전탐장 김수길 상사) 자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꽝, 꽝’ 소리를 두번 느꼈다. 처음 ‘쿵’하는 소리는 어디에 부딪힌줄 알고 제가 바로 전탐실로 향했고, 이후의 ‘꽝’하는 소리는 약간의 폭음과 전등이 떨어지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사고 순간에 폭발음이 났다고 발표가 됐다. 그 이후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가. -(병기장 오성탁 상사) ‘쾅’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공중에 붕 떴고 정전이 됐다. 정신을 차려보니 암흑세계였다. 아무 것도 안보였다. 발밑에 걸리는 게 있어서 만져보니 출입문이 바닥에 있었다. 순간 다시 ‘펑’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90도로 기울었다. ‘쾅’ 소리는 귀가 아플 정도로 컸다. 문 주위의 컴퓨터책상이 모두 무너져 문이 안 열렸다. 가족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살겠다는 일념으로 손에 잡히는 집기를 모두 치워서 15분만에 밖으로 나왔다. 외부에 의한 충격으로 생각했다. →화약 냄새라든지 폭발 징후라고 느꼈던 것들이 있었나. -(오 상사) 제가 탄약을 담당하는 병기장이라서 잘 아는데 만약 화약이 있으면 불이 나고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 그 순간 화약냄새는 전혀 안났다. ●사고직후 물기둥은 못봐 →갑판에 있었던 사람이 있었나. 물기둥은 봤나 -(김 상사) 침실에 들어가는데 ‘쿵’ 소리 후 3∼5초 있다가 다시 ‘쾅’소리 났다. 90도로 배가 기울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외부 소화호스 타고 5∼7분 걸려 탈출하고 난 뒤 달빛 보고 외부로 향하려고 하는데 외부 함미가 없었다.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함정은 야간이 되면 등화관제를 실시한다. 적에게 발견되지 않기 위해 각종 문을 닫고 있다. 기본적인 항해등만 켜고 항해해 물기둥은 실제적으로 볼 수 없다. →천안함이 오래됐다. 물이 새는 등 내부 문제는 없었나. -(기관장 이채권 대위) 물이 샌다고 하는 경우는 잘 모르는 대원들이 함정 내부에 온도차에 의해서 파이프에 물이 맺히는 경우를 두고 말한 것이다. 외부에서 물이 스며드는 건 전혀 없었다. →마지막으로 안전점검 받은 일자는. -(이 대위) 부임한 지 50일 가량 됐는데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출항 2∼3일 전부터 작동을 시작하니까 장비나 선체의 노후는 아니라고 본다. ●해경 구조선에서 지휘보고 →사고 후 구조대가 오기까지 한시간 동안 함장 지시는. 뭐하고 기다렸나. -(박 대위) 함교에서 좌현 통로로 외부로 나온 뒤 구조선이 오기 전까지 구조세력이 왔을때 선체에 접근을 해서 어느 방향으로 대원들을 이함시킬지 함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 -(통신관 박세준 중위) 전투상황실 당직이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많은 장비들이 떨어졌다. 전탐실에서 끼어있었던 하사 2명을 구조한 뒤 올라와서 심리적으로 불안해하는 대원들을 안정시키는 임무를 했다. -(김덕원 소령) 우현으로 배가 기울고 함장실 앞에 있는 외부 도어를 풀고 가장 먼저 올라왔다. 확인 결과 함미가 안보였다. 여러 대원들이 갑판 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밑에서는 함장실이 잠겨 있어서 풀려고 노력했고 함장이 구출된 뒤 인원파악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통신망으로 상황전파 후 침착하게 함장 지시에 따라 대처하면서 구조세력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사병들 가운데 함미를 사고 직후 본사람 있나. 구조 직후 함장이 말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나. -(최 함장) 해경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였다. 나는 사관실로 이동했고, 병들은 치료 휴식을 위해 해경정에 있는 침실에 배치됐다. 해경에서 지휘보고가 이뤄졌다. 참모총장, 작전사령관과 통화해 보고를 했다. 휴대전화 회수는 사실이다. 구조가 해경, 고속정 등 여러 곳에서 이뤄졌고 당시 피흘리고 다리 골절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혼란방지 차원이었다. ●다른 가능성은 →암초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김병남 상사) 암초에 걸리면 기본적으로 찢어지는 소리가 나고 배가 출렁인다. 외부 충격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초 상황시 사고 원인에 대한 보고는 없었나. -(최 함장) 당시는 급박한 구조 상황이었다. 사고원인은 차후였다. 오후 10시32분 통화할 때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외부충격으로 느꼈다. →어뢰, 기뢰, 암초, 내부폭발, 선체폭발 등 사고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최 함장) 정말 답답한 심정이다. 세상이 생명과 같은 천안함을 제발 있는 그대로 이해해줬으며 감사하겠다. 아직도 옆에있는 듯 장병들이 가슴에 묻혀있다. 누구보다 슬퍼할 실종자 가족들 생각 뿐이다. ●사고당시는 정상근무중 →사고 직전에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나. 비상상황인가 휴식상황인가. -(박 대위) 함교 당직사관으로서 정상근무 중이었다. 특이한 일이 있었다면 나한테 보고가 됐을 거다. 따로 보고된 바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사고 직전이나 혹은 그 이전이라도 함정의 소나(음파탐지기)에 이상징후 포착된 것 있나. -(홍승현 하사) 특별한 음탐신호가 없었다. 당직자는 정상근무였다. →사고직전 외부와 통화했던 승조원들 어떤 내용으로 통화했나. 끊을 만한 상황이 있었나. -(허 상사) 오후 9시14분부터 18분 몇 초까지 전탐실 후부 계단에서 집사람, 딸과 통화했다. 아내가 임신한 상태라서 관련해서 통화했고 딸에게는 엄마가 많이 힘드니까 도와주라고 했다. 이상 상황은 없었고 바로 통신실로 복귀했다. -(기관장 이채권 대위) 기관장이 상황이 있거나 주로 근무하는 위치는 기관조정실이다. 당시 정말 특별상황이 있었다면 고속추진을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내가 당연히 기관조정실에 있어야한다.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 →후타실에 5명이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왜 갔을 것으로 보나. -(오 상사) 저는 운동을 좋아해 그 시간대면 거기 가 있는다. 사고발생 한시간 반 전에 가서 늘 운동했었다. 그날은 업무보고 때문에 후타실에 안 갔다. 추정되는 5명은 항상 운동하는 인원이다. →함미부근 후타실에서 운동할때 어떤 복장으로 가나. -(전준영 병장) 속옷 내의와 반바지를 입고 한다. 운동을 했다면 복장이 그랬을 거다. 나는 침실서 쉬고 있었는데 특별한 상황이 없었기에 속옷만 입고 있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두차례 다른 폭발음… 화약냄새 안나”

    “두차례 다른 폭발음… 화약냄새 안나”

    천안함 생존자들은 침몰 사고 당시 폭발음 같은 큰 소리가 2차례 들렸다고 증언했다. 배가 두 동강이 난 직후 뒷부분이 1분만에 빠져 들어가는 장면을 담은 새로운 동영상도 공개됐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사고 시각이 지난달 26일 밤 9시22분이라고 거듭 확인했다. 천안함 전탐장인 김수길 상사는 7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린 생존 장병 기자회견에서 “당시 안 자고 있었기 때문에 ‘꽝’‘꽝’ 소리를 두 번 느꼈다.”며 “처음 ‘쿵’하는 소리는 어디에 부딪힌 줄 알았고, 이후의 ‘꽝’하는 소리는 약간의 폭음과 전등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들렸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엔 생존자 58명 가운데 중상자 1명을 제외하고 함장 최원일 중령을 비롯해 57명이 참석했다. 병기장인 오성탁 상사는 “사고 당시 지하 2층의 격실에 있었는데 ‘쾅’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공중에 떠오르고 정전이 됐다.”며 “귀가 아플 정도의 폭발음이 났으며 ‘펑’하는 순간에 배가 90도로 기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화약이 있었으면 불이 나고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라며 “화약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타장 김병남 상사는 “배가 암초나 사주(모래톱)에 걸리면 기본적으로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며 “그러나 이번 사고는 외부 충격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승현 하사는 “당시 상황에서는 음파탐지기에 특별한 신호가 없었고 당직자는 정상근무했다.”고 했다. 한 병사는 “당시 갑판 위 함교 옆에서 배가 진출하는 쪽을 관찰하기 위해 나와 있었는데 물기둥 같은 특이한 점은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채권 대위는 “사고 이전 물이 샌 경우는 전혀 없었다.”면서 “ 장비나 선체의 노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천안함 침몰사고 민·군 합동조사단은 중간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사고 당시 천안함은 계획된 항로를 따라 정상적인 항해 중이었고, 승조원 역시 평상 일과를 진행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합조단에 따르면, 최 함장은 사고 직후 제2함대사령부와의 휴대전화 통화에서 “뭐에 맞은 것 같다. 함미가 안 보인다.”고 보고했다. 합조단은 “해병 6여단 동시영상체계를 점검하던 중 자동녹화된 천안함 정상기동장면과 두 동강 난 장면, 배 앞부분 침몰장면을 발견했다.”면서 동영상을 공개했다. 합조단은 일각에서 제기된 오후 9시16분 사고설을 부인했다. 김상연 이민영기자 carlos@seoul.co.kr
  • [천안함 생존자 증언] 장병들 침통… 눈물 흘리기도

    천안함 사고 이후 13일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낸 생존 승조원 57명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으며, 일부는 사건 당시 괴로운 기억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만 살아돌아왔다는 죄책감이 가시지 않은 듯 했다. 중환자실에 있는 신은총 하사를 제외하고 최원일 함장을 비롯해 모두가 참석했다. 7일 오전 10시25분쯤 환자복 차림의 천안함 승조원들이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일부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일부는 목발을 짚기도 했다. 목과 허리에 깁스나 보조대를 착용한 장병도 있었다. 가슴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장병들은 어깨를 쉬이 펴지 못했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실종된 동료들이 아직 차가운 바닷속에 있을 생각에 괴로워하는 듯했다. 질의응답에 앞서 합동조사단 발표가 진행되자 일부 장병들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눈가를 훔치거나 눈을 감기도 했다. 기자들의 질문에는 중령, 소령 등 영관 장교와 위관 장교 및 상사·중사·하사 등 부사관들이 대부분 대답했다. 사병 중 대답한 사람은 당시 갑판에서 당직을 서고 있던 황보상준 일병과 전준영 병장 2명뿐이었다. 전 병장은 울음이 복받쳐 나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함미 부분 후타실(체력단련실)에 있을 장병들이 어떤 복장을 하고 있겠나.”는 기자의 질문에 “보통 우리가 운동할 때는 소복 내의와 반바지를 입고 한다. (승조원들이) 운동을 했다면 복장이…”까지 말하고 말을 끊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어깨가 들썩였다. 눈물이 새어나왔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간신히 이어갔다. 후타실에 있을 5명의 승조원이 생각나는 듯했다. 전 병장은 대답이 끝나고도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벌건 눈을 연신 비볐다.
  • [천안함 생존자 증언] 합동조사단 5대의혹 해명

    [천안함 생존자 증언] 합동조사단 5대의혹 해명

    민·군 합동조사단은 7일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1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주요 의혹과 해명을 짚어 본다. 합조단은 발생시간을 “3월26일 오후9시22분”으로 확정했다. 생존자와 실종자들의 휴대전화 통화기록 ,해군 전술지휘체계(KNTDS) 기록시간, 천안함과 해군 2함대사령부 간 국제상선공통망 교신내용,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기상청의 지진파 감지 시간 등을 근거로 내놓았다. ① 천안함 침몰시각은 합조단은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통해 오후 9시16분쯤 침몰했다는 일부의 의혹을 일축했다. 실종자 한 명이 사고 당일 오후 9시16분에 가족과 통화하던 도중 “지금은 비상상황이니 나중에 통화하자.”고 말했다는 진술과 관련, “통신사실 확인자료 분석결과 통화한 사실이 없었다.”고 밝혔다. 또 차모 하사의 문자메시지 중단 의혹에 대해선 “실종자인 차 하사가 여자친구에게 오후 9시16분42초에 마지막 문자를 보냈으나 여자친구가 응답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합조단은 오후 9시16~22분에 통화한 내역도 새로 공개했다. 생존자 휴대전화 통화내역 조회 결과 A상사와 그의 부인이 오후 9시14분11초에서 오후 9시18분52초까지 4분41초간 통화한 사실이 나왔다. B하사에게 그의 대학후배가 오후 9시14분31초와 사고 직전인 오후 9시21분25초에 문자를 발송한 기록도 찾았다. 통화 기록 조회 내용 중에는 실종된 C상병의 동생이 집전화를 이용해 오후 9시17분19초~21분47초 실종된 D중사의 휴대전화로 3차례 전화를 걸어 C상병과 통화했던 기록도 나왔다. KNTDS 기록은 보다 논리적인 정황 증거 역할을 했다. 합조단 조사결과 천안함으로부터 발신되는 자함 위치신호가 오후 9시21분57초에 중단됐다. 백령도 지진파 관측소가 진도 1.5 규모의 지진파를 감지한 오후 9시21분58초, 백령도 기상대 관측소가 지진파를 탐지한 오후 9시22분쯤도 KNTDS의 기록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천안함과 2함대사령부가 국제상선공통망으로 오후 9시19분30초에서 오후 9시20분3초 사이 33초간 교신한 내용도 공개됐다. 당시 2함대사는 “갈매기232(천안함), 여기는 갈매기200(2함대사) 감도 있습니까.”라고 호출했고, 천안함은 “여기는 갈매기232 이상”이라고 답신했다. 또 2함대사가 “여기는 갈매기200, 감도 양호 감도 양호 이상”이라고 통신망 유지상태를 물었고, 천안함은 “귀국 감도 역시 양호 교신 끝”이라고 답신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② 섬엔 왜 가까이 갔나 천안함이 수심이 얕은 백령도 남쪽 1.8㎞ 해안을 이동한 것과 관련, ‘정상적인 운항’이 아니라는 의문들이 제기됐었다. 수심이 낮아 암초에 걸려 좌초되거나 물 흐름이 빨라 초계함이 운항하기에는 위험한 곳이라는 이유에서다. 백령도 어민들도 “사고 지점은 까나리어장 안쪽으로 바다 위에 흰색 부표를 띄워 어장을 표시하기 때문에 해군 함정은 항상 어장 남쪽으로 다녔다.”는 진술들이 잇따랐다. 합동조사단은 사고 발생 지점을 백령도 남쪽 2.5㎞라고 고쳐 발표했다. 생존 승조원들의 진술, KNTDS 기록 등을 근거로 군의 최초 발표보다 남쪽으로 700m 더 아래쪽이라고 밝혔다. 또 천안함은 지난해 11월10일 대청해전 이전에는 백령도 서북쪽 경비구역 안에서 기동했으나, 같은 달 24일 2함대사령부의 지침에 따라 백령도 서남쪽 지역으로 조정된 경비구역에서 작전하게 됐다고 한다. 합조단은 “천안함의 기동수역은 홍합여, 연봉 등 암초가 있는 백령도 남쪽지역으로부터 9~10㎞ 떨어져 있다.”고 밝혀, 운항 안전성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혔다. 천안함 함장으로 부임한 지 20개월 된 최원일 함장이 그동안 사고발생 지역에서 16차례 임무를 수행해 지리적으로 익숙했다는 판단과 함께다. ③ 당시 작전중이었나 지난 3일 일부 언론이 보도한 ‘군 상황일지’에 따르면 해경의 보고 일지에는 ‘3월26일 오후 9시15분’ 천안함의 위치를 위도 37도50, 경도 124도36으로 기록돼 있다. 군이 당초 ‘오후 9시22분’을 기준으로 천안함의 사고 지점을 위도 37도55, 경도 124도37로 밝힌 것과 비교할 때 천안함이 7분사이에 9.4㎞쯤 북상한 것이 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천안함이 가스터빈 엔진까지 가동하며 시속 40노트(시속 74㎞) 이상으로 빠르게 북상한 게 북한 잠수정 등에 의한 긴급한 작전이 벌어진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내놨다. 이에 대해 합동조사단은 이날 “천안함은 사고 당시 정상기동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합조단에 따르면 사고 전날인 지난달 25일 풍랑주의보가 발효돼 경비구역을 빠져나와 대청도 동남쪽으로 피항했던 천안함은 사고 당일 오전 8시20분부터 정상 경비 구역에서 정상적인 작전 임무를 했다. 또 “지난달 26일 오후 8시 이후 야간 당직근무자 29명을 제외한 인원이 휴식이나 정비활동을 하고 있었다.”면서 “비상 기동하고 있었다면 전원 근무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합조단은 “천안함은 사고 발생전 백령도 북서쪽으로 시속 6.3노트(시속 11.3㎞)로 정상 기동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④ 침몰원인 좌초였나 천안함 사고 뒤에 일부 공개된 해경 보고서에 따르면 해군 2함대사령부 당직사관이 해경정 지원을 요청하며 ‘백령도 서쪽 우리 함정에서 좌초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천안함이 암초에 걸려 물이 새고, 피항(避航)하기 위해 빠르게 기동하다가 결국 두동강난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하지만 합조단은 “상황 전파가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합조단은 “사고 당일 오후 9시28분 천안함 포술장에게서 휴대전화로 최초 상황보고를 받은 2함대 상황장교는 ‘포술장이 다급해하며 빨리 구조해 달라는 뜻의 말을 하면서 좌초되었다고 보고했고, 다시 좌초되었냐고 묻자 포술장이 좌초라고 말했다.’는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천안함 포술장은 “당황해 빨리 구조해 달라는 말을 했지만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 못한다.”고 진술했다. 합조단은 “급박한 상황에서 경황이 없어 정확한 용어 사용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⑤ 5명 후타실 왜 갔나 해군 2함대사령부는 지난달 26일 천안함 침몰사건 뒤 생존자들의 진술을 통해 실종자들의 당시 선내 위치를 설명하면서 “후타실에 5명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초계함 승조 경력자들은 “일반적으로 후타실은 출입금지 구역으로, 5명이나 있었다는 건 조타장치에 문제가 있어 후타실에서 배를 조종해야 할 급박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합조단은 “후타실에 있던 5명은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후타실에는 배의 엔진과 스크루가 연결되어 방향을 잡는 조타장치가 있다. 예전에는 후타실이 개방되지 않았지만 최근 승조원들의 선내 체육활동을 위한 운동기구를 후타실에 갖다 놓으면서 체력단련실로 활용됐다. 생존 승조원들도 “후타실에 휴식시간 때 운동을 하려고 자주 들어갔다.”는 진술도 나왔다. 합조단은 “만약 긴급상황이었다면 장교와 함께 병력이 투입되는데, 사고 당시 하사 3명과 수병 등만 있었던 것으로 추정돼 긴급상황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사설] 한층 무거워진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평결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의 전원일치 평결을 1심 재판부가 선고에 일부 반영했다면 상급심도 그 평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는 그동안 배심원들의 평결이 법관의 판단을 돕기 위한 ‘권고적 효력’을 넘어 ‘법적 기속력’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다시 말해 법원이 배심원의 의견을 단순한 참고 수준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도 있다는 변화여서 국민참여재판제의 진전에 대한 기대도 크다. 최모(23)씨는 2008년 8월 정모(34)씨가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지려 하자 정씨를 폭행하고 금목걸이를 빼앗은 혐의(강도상해)로 기소됐다. 1심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최씨에 대해 만장일치로 강도상해 혐의에 대해 무죄 의견을 냈고 재판부는 배심원 평결의 일부를 받아들여 상해죄만 인정했다. 그러나 2심에서는 범행 정황을 들어 강도와 상해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1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2심 판결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루어진 1심 판단을 합리적 근거 없이 뒤집어 공판중심주의 등을 위반했으며, 2심에서 명백히 반대되는 사정이 나타나지 않는 한 배심원의 만장일치 의견을 수용한 1심 판결은 한층 더 존중되어야 한다.”며 사건을 2심 재판부로 돌려보낸 것이다. 우리는 대법원이 배심원 평결의 중요성을 일깨운 판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2년 전 도입한 국민참여재판은 법조계의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의 신뢰를 얻고 있다. 그동안 배심원의 의견이 법관의 판결과 90.6% 일치했다는 사실은 이 제도의 착근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한다. 그런 점에서 법관들에게 배심원의 의견 및 존재를 상기시킨 대법원의 의중을 이해하고자 한다. 배심원들도 수준 높은 평결을 위해 더 노력하고 재판의 들러리가 아닌 주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 ‘회피 연아’ 영상 유포자 “문광부 고소, 과민반응”

    ‘회피 연아’ 영상 유포자 “문광부 고소, 과민반응”

    이른바 ‘회피 연아’ 동영상을 유포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 장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된 네티즌이 입을 열었다. 차모 씨(29)는 최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김연아 선수의 표정이 재미있기에 올린 것뿐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군대에서 전역했다는 차씨는 “유인촌이 문광부 장관인 줄도 몰랐다.”고 밝혔다. 이 동영상은 지난 2일 벤쿠버 동계올림픽을 마치고 귀국하는 김연아 선수에게 유인촌 문광부 장관이 꽃다발을 목에 걸어 준 뒤 포옹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김연아 선수가 회피하는 듯한 장면을 담은 것이다. 인터넷에 유포된 동영상은 KBS가 촬영한 영상 화면을 편집한 것으로 ‘회피 연아’라는 이름을 달고 트위터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유인촌 장관에 대해서는 호감이 더 많다는 차씨는 “‘전원일기도 좋아했고 연극인으로서 친근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악의적으로 비방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문광부가 자신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에 대해서 차씨는 “황당하다.”고 답했다. 그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소재로 다뤄진다. 유인촌 장관이 등장하는 ‘회피 연아’ 동영상도 그 정도의 패러디로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또 차씨는 “문광부 장관이면 공인이다. 입장 발표라면 몰라도 고소는 과민반응이다.”고 비판적 입장을 드러냈다. 사진 = 해당 동영상 화면 캡처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천안함 침몰 이후] “속초함, 北 기습공격후 도주로 판단해 격파사격”

    [천안함 침몰 이후] “속초함, 北 기습공격후 도주로 판단해 격파사격”

    국방부는 1일 언론 등에서 제기된 천안함 사고 관련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해명하는 자료를 내놓았다. 국방부는 당초 사고원인과 관련해 40여가지 쟁점을 세분화해 설명할 예정이었지만 또 다른 의혹을 낳을 수 있다는 판단으로 쟁점을 10여개로 묶어 설명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천안함은 3월16일 평택항을 출항해서 백령도 근해에서 경비임무를 수행하다 26일 오후 9시22분쯤 침몰했다. ●새 떼에 76㎜ 함포사격? 국방부는 천안함과 인근에서 작전 중이던 속초함이 76㎜ 함포사격을 한 것에 대해 새 떼가 아니라 북의 반잠수정이라는 의혹에 대해 자세히 해명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속초함은 사고 현장에서 남쪽 49㎞ 근해에서 중국어선 180여척을 감시하고 있었다. 천안함 침몰 상황이 벌어졌을 때 2함대사령부는 A급 비상경계태세를 발령하고 속초함에 백령도 서방 현장으로 향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속초함이 백령도에 이동하는 도중 2함대에서는 현장에 이미 충분한 세력이 있으므로 현장으로 가지 말고 혹시 모를 불순세력에 의한 피습에 대비해 백령도 서방으로 가서 차단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백령도 서방으로 항해하던 속초함은 오후 10시55분에 백령도 북방에서 고속으로 북상하는 표적을 포착했다. 이에 속초함은 2함대에 사격 허가를 요청, 허가를 받고 11시부터 경고사격 후 격파사격을 실시했고, 11시5분 표적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가자 사격을 중지했다. 표적은 11시8분 사라졌다가 9분에 다시 포착됐고 이후 육상으로 올라가 11분에 다시 사라졌다. 국방부는 또 북한군 항공기를 포착한 것은 27일 0시33분이었으며 그 위치는 NLL 북방이었다면서 시간이나 위치를 고려할 때 침몰 사고와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속초함이 사격을 끝낸 후 레이더 상에 포착된 물체를 분석했고 새 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새 떼로 추정하는 이유로, 국방부는 표적이 한 개에서 두 개로 분리됐다가 다시 합치는 현상이 2회 반복됐고, 소음과 물결(wake)이 식별되지 않았으며, 표적이 최종적으로 사라진 지점이 육지에 해당한다는 점 등을 꼽았다. 특히 속초함 레이더는 해수면 레이더로 함정포착용이지만 수면에 가깝게 나는 새 떼도 포착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국방부의 설명은 천안함 사고 발생 직후 군은 사고 원인이 ‘북의 공격’일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속초함을 불러 경계상황을 펼치고 레이더에 나타난 점들에 대해 즉각 대응한 정황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게다가 속초함이 격파사격을 실시한 시간이 밤 11시쯤인 점을 고려할 때 ‘새 떼’가 그 시각에 해수면 위를 낮게 날아 이동했다는 점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다.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왜 연안으로 기동했나 천안함은 초계함 임무가 해상 경계인 점에서 볼 때 백령도 연안에서 2㎞ 안팎으로 기동하면서 작전을 진행 중이었다. 이와 관련, 북의 잠수정을 발견하고 쫓아가거나 특수임무를 수행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천안함이 백령도에 다소 근접해 기동한 것은 북한의 새로운 공격형태에 대응해 경비작전 시 지형적 이점을 이용하는 측면이었다.”고 설명했다. 최원일 함장 부임 후 이 같은 훈련을 10여회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고 당시 단순한 작전 중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여부는 확인해 주지 않았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천안함이 연안에 인접해 이동한 것과 관련, “풍랑이 세서 그쪽으로 간 것”이라면서 “기본적으로 의심하고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천안함이 작전 중이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장관의 발언과 국방부의 설명내용이 다른 점 등을 고려하면 사고 당일 천안함의 연안 기동 작전 목적에 많은 의문부호를 달게 만든다. ●사고발생시간과 초동조치 천안함 침몰 이후 사고 발생 시간은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국방부는 당초 26일 오후 9시45분에서 9시30분, 다시 9시25분으로 시간을 변경해 발표했다. 발생 시간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근 백령도 해병대원의 열영상촬영 장면이 공개되면서 사고 발생 시간에 대한 의문이 증가하고 있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사고 발생 시간에 대해 사고 초기 그런 점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정확성보다는 신속성을 강조해 다소 오차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또 함장 진술과 보고 시간, 해병대원이 녹화한 장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침몰 당시 측정한 지진파 발생 시간 등을 종합해 최초 사고 발생 시간은 26일 오후 9시22분쯤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침몰 당시 초동 조치가 적절했는지 여부에 대해 “함장을 포함한 장교들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승조원과 함께 구조활동을 했으며 적절한 조치를 했다.”고 설명했다. ●천안함 상태 최상? 천안함이 정비 부족으로 침몰했다는 의혹에 대해 군은 그동안 최상의 장비로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천안함과 같은 초계함의 경우 3년마다 정기수리를 실시하고 연 2회 야전정비를 실시한다.”면서 “필요시 자체정비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규정에 따라 천안함은 2008년 8월부터 10월까지 정기정비를 실시했으며 지난해 야전정비 2회, 자체정비 1회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또 올해 2월 자체정비를 했고, 장비 고장으로 인해 작전 임무를 중지한 사례는 없었다고 못 박았다. 특히 2008년 정기정비 기간 중 선체를 육상에 들어 올려 확인한 결과 선저(배바닥)를 포함해 선체 마모도, 노후도 등에서 특이사항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새롭게 사고 원인으로 떠오르고 있는 ‘피로파괴’와 관련, 천안함에서 그 피로파괴의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하지만 피로파괴는 배의 균열 등을 육안으로 확인해서 예방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선체에 누적된 하중으로 갑작스럽게 배의 일부가 절단되는 현상으로 사전 정비로도 감지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위기대응 매뉴얼 있다? 이번 사고가 위기대응 매뉴얼이 없어 더욱 커졌다는 의혹과 관련, 국방부는 충분한 매뉴얼을 보유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국방부는 “함정은 작전 임무 수행 중 적의 유도탄 공격, 화생방 공격, 어뢰 및 폭뢰공격, 화재 및 선체 손상 등 비상상황에 대비해 각 제대별 위기대응 지침서를 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천안함처럼 우발적인 해상사고 발생 시 현장 지휘관은 긴박한 상황을 고려해 먼저 조치하고 나중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면서 “함장은 비상시에 대비한 절차에 따라 생존자 확인 및 구조를 위해 최우선적으로 모든 조치를 강구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함정훈련 중 함정이탈 훈련을 해마다 20회씩 실시한다고 설명했지만 15회는 출동준비, 2회는 수리, 나머지는 전투력 검열과 소화방수훈련이 1회씩 포함돼 있어 실질적인 이함훈련이 이뤄지는지는 불분명하다. ● 어선 침몰 천안함 먼저 발견? 천안함이 침몰한 후 군은 실종자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함미 부분을 찾지 못했다. 사고 발생 사흘 만인 28일 음향탐지기 소나(SONAR)를 갖고 있는 옹진함이 도착해 함미를 발견했지만 이보다 먼저 민간어선인 해덕호가 어군탐지기를 이용해 발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군이 적극적으로 수색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해덕호로부터 수중 물체를 포착했다는 통보를 받고 기뢰탐지함인 옹진함이 같은 날 오후 도착해 최종 식별했다고 밝혔다. 또 “먼저 수색에 나섰던 속초함의 소나는 잠수함을 찾는 데 쓰이고, 어군탐지기는 물 속 바닥까지 탐지하는데 쓸 수 있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생존자들 입 단속? 군이 천안함 생존 병사들을 병원 한 곳에 수용해서 외부와의 접촉을 막는 것은 숨기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혹에 대해 국방부는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국방부는 “작은 불만도 쉽게 인터넷에 올리는 요즘의 신세대 병사들의 특성을 고려해 볼 때 입단속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실종자 가족과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대표성 있는 함장으로 하여금 인터뷰를 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생존자들은 자신들만 살아 돌아왔다는 자책감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어 상당기간 치료와 안정이 필요하다.”며 “사안이 안정되는 대로 생존자들의 증언도 공개토록 할 예정”이라고 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인사]

    ■농림수산식품부 ◇과장급 전보 △대통령실 전출 우동식 ■소방방재청 ◇전보 △소방정책국 소방제도과장 이용만△제주소방본부장 강철수 ■진실·화해를 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2국 조사3팀장(직무대리) 강은지 ■한국표준협회 ◇승진 △산업표준본부장 임현철 ■한국해양연구원 △전략개발실장 김동성△재무총괄팀장 홍광유△자재계약〃 김석기△연구관리〃 박준수△성과확산〃 정성재△동해연구소 운영관리〃 이진용 ■한국가스안전공사 ◇승진 △인사행정처장 정성만△공정진단처 시설진단부장 김광용△강원영동지사 검사〃 김홍철△경남지역본부 검사2부장 유방현△강원지역본부 〃 양윤영◇전보△인천지역본부장 김성수△연구관리실 연구기획부장 박장식△경기지역본부 교육홍보〃 김병주△시험검사실 연소기기〃 김한국△충북지역본부 검사1〃 고영규△안전연구실 기기연구〃 성종규 ■한국수력원자력 △상임이사 박현택 정인수 ■한국교원대 △대학원장 최병순△제1대학장 강충열△제3〃 박용남△제4〃 이성도 ■YTN △보도제작국장 정영근△미디어전략실장 문중선△경영기획〃 류희림△총무국장 박득송△마케팅〃 이홍렬△미디어사업〃 이병균△보도〃 김흥규 ■한겨레신문 △독자서비스국 지방영업부장 이성환△미디어사업국 부국장 이승진 ■매일경제 △매경닷컴 총괄국장 파견 윤형식△편집국 사회부장직대 윤구현△〃 뉴스상황실 부장(문화부장직대 겸임) 황국성 ■신한은행 ◇부서장 전보 △해운대백병원지점장 이종찬 ■메리츠화재 ◇임원 변경 △기업사업부장 정광호<본부장>△고객서비스 김태열△개인보험 이용국△기업보험 민홍기△기업영업2 문용식△부산경남권 임원일△방카슈랑스 김홍현△신채널 박성훈◇임원 승진△기업영업3본부장 이윤희△경북권〃 강용보◇부서장 변경 <팀장>△인재개발 김능가△고객전략 유현우△고객서비스 김영철△장기보험상품 유석용△장기보험업무 이희석△자동차보험상품 원항재△자동차보험업무 정현욱△기업보험전략 손진호△부산경남권본부마케팅 김경철△방카슈랑스전략 김상호△신채널전략 이주빈△Online자동차보험 김태윤<부장>△법인영업1 박종환△법인영업2 서중선△법인영업3 전강표△법인영업4 김무상△건설SOC영업 최학용△국공단체영업 박영준△선박항공영업 이종철△퇴직연금영업 김낙청△New Account영업 김재훈<지역단장>△강원 김형구△부천 배승일△대구 윤여일△대전 김명환△구리 서현택△인천 이계용<영업단장>△서울Agen cy3 주영돈△경남Agency 이기혁△충청Agency 박용주△부산Agency 권진호◇부서장 승진△업무지원팀장 장영환△개인보험전략〃 정유철△손해사정〃 정현영△경북권본부마케팅〃 최상원<지역단장>△동대구 김인식△안양 강유찬△성남 조경호△청주 조범준△천안 김용일△전주 서재용△부산 강동구△마산 김기돈 ■메리츠증권 ◇승진 <부장>△기업금융1팀 홍영길△리서치센터 심재엽△마케팅팀 양광영△법인영업1팀 정선우△신탁팀 홍석준△업무개발팀 최영언△인사총무팀 이강천△컴플라이언스팀 김석주△강서지점 진병현△영동지점 한정례△플라자지점 정영근 ■대신증권 ◇승진 <이사대우 부장>△결제업무 박형근△인사 홍대한△채권운용 정기동△기업분석 문정업△영업부 조용현<이사대우 지점장>△전주 황상규△동래 위호열△광명 박진규△종로 신병준△수원 유기상<부서장>△법인자산영업 민영기△SF 김태훈△신규서비스지원 박성준<지점장>△강남 이순남△대림동 김종오△부전동 윤건준△무거동 김정현△남천동 이정화△나주 박흥철△용산시티파크 한명희△정자동 박중욱△목포 정연규◇전보 <본부장>△Wholesale1본부 박규상△Whol esale2본부 이창화<이사대우 부장>△중부법인사업 유광조△금융주치의추진 장우철<이사대우 지점장>△역삼동 조우진△선릉역 윤원철△일도 고상범△인천 강성호△부천 김창빈<부서장>△IT전략기획 현준호△트레이딩시스템 최명재△채권영업 안경환△퇴직연금컨설팅1 이제영△퇴직연금컨설팅2 나동익△금융주치의전략 정재중△E-biz 조정건△컨설팅Lab 주명호△기획 김호준△신탁 오행근△비즈니스시스템 김병회△기업금융1 민정식△Trading 최형근<지점장>△중앙청 박찬일△하계동 김상조△뚝섬 육철한△천안 류광일△북인천 이홍윤△창원 이수정△대전 김남곤△둔산 배형갑△상암DMC 이현호△구리 박영복△영동 윤여준△무역센터 송영진△제주 김성익△관악 이연미△오산 김경남△마산 황성휘△광주 김영설△서대전 박판주△안산 황성훈 ■대신투자신탁운용 ◇본부장 승진△경영관리 오홍진△금융공학 정만성△마케팅 최규철◇본부장 전보△주식운용 김삼두 ■대신홍콩현지법인 ◇법인장 승진 △홍콩현지법인 조주연
  • [천안함 침몰 이후] 지휘부 따로, 현장 따로… 헷갈리는 軍발표

    보고와 지휘체계를 자랑으로 여기는 군이 천안함 침몰 사고와 관련, 연일 갈지(之)자 발표를 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지난 26일 밤 천안함이 침몰한 이후부터 군의 발표가 왔다갔다하고 현장과 지휘부 간의 엇박자로 불필요한 의혹만 키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9일 오후 9시30분쯤 일부 언론이 “실종자 대부분이 있는 함미(艦尾) 내부로 산소를 주입했다.”고 보도하자 합참은 20분 뒤 “공기주입에 대해 보고 받지도 않았고 그런 사실이 없다.”면서 “선체 진입을 시도 중”이라고 밝혔다. 합참 관계자는 3시간 뒤인 30일 0시50분쯤 기자실로 찾아와 “사과는 나중에 다시 드리겠다.”면서 “전날 오후 8시14분부터 27분까지 산소통 1개 분량의 공기를 주입했다.”고 정정했다. 구조작업도 이미 오후 9시30분경 끝난 상태였다. 합참은 사고가 난 날부터 사실과 동떨어진 얘기를 했다. 합참은 26일 밤 “사고 발생시각은 오후 9시45분”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다음날 최원일 천안함 함장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오후 9시25분쯤 내일의 작전구상을 하고 있던 중 폭발음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날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국방부는 사고 발생 시각을 9시30분으로 보고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29일 국회 국방위에서 사고시각을 9시25분으로 밝혔다. 승조원 56명을 구조한 해경은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사고발생 시각을 9시15분으로 적시했다. 실종된 부사관이 사고당일 밤 여자친구와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다 오후 9시16분 갑자기 중단됐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에 정황상 해경의 자료가 맞을 가능성이 높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천안함 침몰 이후] 긴박했던 구조 동영상 공개

    [천안함 침몰 이후] 긴박했던 구조 동영상 공개

    26일 밤 천안함 침몰 현장에서 56명의 실종자를 구조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501경비함(함장 고영재)이 찍은 동영상은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비함이 오후 9시35분 출동, 사고 지점에 도착한 때는 10시15분. 이때 천안함은 이미 침수되고 반 이상 가라앉은 상태였다. 해군 고속함정 4척이 먼저 출동해 있었지만 조명만 비춰주고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영재 함장은 “고속정 승조원들이 구명벌 등의 장비를 들고 갑판에 나와 접근을 시도했으나 파도가 3m가량 높게 일고 있었고 천안함이 90도로 기울어져 있어 계류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승조원을 구조해 옮겼던 경비함 고속단정이 심하게 요동치는 모습으로 당시 파고를 짐작할 수 있다. 승조원들은 함수 쪽에 모여 있었고, 어둠 속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승조원들이 동요하거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천안함 밖으로 뛰어내리는 승조원도 없었다. 고 함장은 “승조원들이 군인이어서 그런지 침착하게 질서를 지켰다.”고 말했다. 구조는 경비함 소형 구명보트(리브보트)를 이용했다. 이 보트는 불법조업 중인 중국어선을 단속하거나 조난자 구출에 주로 사용되는 10, 12인승 고무보트다. 칠흑 같은 바다를 가로질러 고속단정 1척이 먼저 경광등을 반짝이며 함수 부분만 남아 있는 천안함에 바짝 붙었다. 고속단정 2호도 크레인에 매달린 채 수면 위에 내려보내졌다. 고속단정은 우선 생존자 12명을 구조했다. 첫 구조자는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경비함으로 올라왔다. 오후 11시35분 구명뗏목을 타고 표류 중인 12명까지 모두 56명을 구조해 해군 고속정으로 인계했다. 해경 구조작업이 마무리될 즈음 천안함 선수 부분에 적힌 고유번호 ‘772’ 숫자도 물속으로 잠겼다. 고 함장은 구조활동 막바지에 한 승조원으로부터 “제가 마지막”이라는 말을 듣고 구조활동을 중단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선 “천안함 함장이 더 이상 생존자가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해군과 함께 다음날 오전 2시30분까지 수색을 계속했다.”고 전했다. 천안함 최원일 함장이 구조된 후 501경비함 내에서 생존 장병 전원을 불러 놓고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 함구령을 내렸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승조원들은 식당에, 함장과 부장장교는 사관실로 격리했기 때문에 서로 만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천안함 침몰 이후] 생존자중 심리치료 대상자 아직 없어

    침몰한 초계함 ‘천안함’ 생존자 58명 가운데 국군수도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인 44명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병원 측은 29일 “상태가 심각한 부상자는 없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건강상태가 크게 호전되고 있다.”고 밝혔다. 당초 생존자의 3분의2에 이르는 장병이 국군수도병원에 이송돼 주말과 휴일 동안 부상자들에 대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등 심리치료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후유증이 심각한 부상자는 아직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군 관계자는 “부상자 대부분이 경상이지만 정신적인 충격을 치료하기 위해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다.”고 밝혔다. 치료를 받고 있는 43명 외에 최원일 천안함 함장 등 5명은 현재 사고해역에서 실종자 수색을 돕고 있으며, 나머지 10명은 2함대 생활관에서 안정 중이다. 이에 대해 분당차병원 정신과 의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당장 나타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두려움이나 무기력감 혹은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세심한 관찰과 심리적 안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 [천안함 침몰 이후] 미흡한 이함 체계… 인명사고 키웠나

    육지에서 불과 1.8km여 거리에서 침몰한 것으로 알려진 천안함에서 유독 많은 실종자가 나온 까닭은 무엇일까? 천안함에 타고 있던 승조원 104명 가운데 부사관과 사병들의 실종이 특히 많았다. 장교 7명은 모두 구조됐지만 부사관은 67명 가운데 30명, 사병은 30명 가운데 16명이 실종됐다. 실종된 부사관과 사병들은 대부분 침실과 식당, 기관실 등이 몰려 있는 함미(艦尾) 부분에 있어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함장인 최원일 중령은 “사고 순간 배가 두 동강이 났으며, 함정 후미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고 말했다. 때문에 함미에 있던 실종자들이 미처 준비할 틈도 없이 함미 부분이 가라앉았을 가능성이 높다. ☞해군 천안함 침몰…긴박한 사고 및 수색현장 최 함장은 인터뷰에서 “폭발과 함께 곧바로 엔진이 멈추고 배 전체에 전기가 끊겨 암흑 상태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한 해군 전역 장병은 “함내 통로가 좁고 복잡한 데다 침수 피해 등을 막기 위해 곳곳에 개폐식의 좁은 출입구가 설치돼 있다.”면서 “갑작스러운 사고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던 데다 정전으로 앞이 전혀 보이지 않으며, 함정이 옆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사병 침실이 있는 지하1층(갑판 기준)에서 탈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미흡한 상황 대처와 준비 부족도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27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폭발로 함장실에 갇혀 있던 최 함장은 함장실에서 나온 뒤 상황을 파악하고 곧바로 ‘이함(퇴함)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폭발로 인한 정전으로 통신망도 사용할 수 없어 휴대전화로 사고를 보고한 상황에서 이함명령을 어떻게 전달했느냐는 추궁이 이어졌다. 명령이 구두로 전달됐다면 이미 두 동강 나 선체에서 떨어져 나간 함미 등에는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침몰한 천안함의 최종 이함자가 누구인지도 관심사다. 국방부는 최종 이함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 “확인되지 않았다.”고만 밝혔다. 평상시 이함훈련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천안함 전역자는 “이함훈련은 자주하는 편도 아닌 데다 ‘재수없는 훈련’이라면서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폭발 정체는…생존자 “내부 아니다” 靑·美軍 “北 가능성 낮다”

    [천안함 침몰 이후] 폭발 정체는…생존자 “내부 아니다” 靑·美軍 “北 가능성 낮다”

    해군 천안함(1200t급)이 침몰한 지 28일로 사흘째가 됐지만 사고 원인과 경위가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으면서 의문점들이 증폭되고 있다. 가장 큰 궁금증은 과연 정부가 어느정도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느냐다. 최원일 함장을 비롯해 구조된 장병이 58명이고 군이 평소 첨단 통신정보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상당부분 진상을 알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생존한 천안함 장병들은 “암초 충돌이나 내부폭발은 아니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외부 공격에 의한 사고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인데, 청와대는 사고 당일부터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낮게 보는 분위기였다. 주한미군 역시 북한군의 개입을 감지하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진상규명이 늦어지면 정부 또는 군 둘 중의 어느 한쪽이 뭔가를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짙어질 수도 있다. 46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배를 탈출하지 못하고 하릴없이 실종된 점도 의문이다. 사병들의 방이 배끝 부분에 있기 때문에 갑작스런 폭발로 물이 들이닥치면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정도다. 천안함 함장도 “꽝하는 폭발음 이후 함장실에서 나와보니 선체 후미 부분이 안 보였다.”고 말했다. 미처 손 쓸 시간이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배 전체가 가라앉기까지는 총 3시간이나 걸렸다는 전언도 있어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해군이 평소 작전훈련에만 주력하고 탈출훈련은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한 해군 전역자는 “함정 탈출 훈련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속된 말로 재수없다고 여겨 잘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해군 천안함 침몰…긴박한 사고 및 수색현장 장교들은 모두 생존한 점도 한때 의문으로 제기됐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장교들의 방은 배 앞 부분에 있어 폭발이 일어난 배끝 부분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져나올 여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고시간을 놓고도 논란이 있다. 당초 합참은 26일 “오후 9시45분에 사고가 났다.”는 발표를 했으나 천안함 함장은 27일 “9시25분 내일의 작전계획을 구상하는 중 ‘꽝’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밝혔다. 천안함 함장이 휴대전화로 사고상황을 보고한 것도 이례적이다. 천안함처럼 큰 배는 무선통신체계를 항시 열어두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함장은 사고 직후 정전으로 통신체계가 불통돼 부득이 휴대전화를 이용했다고 해명했다. 사고 직후 인근 해역에 있던 속초함이 5분여간 경고사격을 한 점도 개운치 않다. 군 당국은 “레이더에 뭔가 걸려서 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날아가던 새떼였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왜 그때 그런 상황이 일어났는지가 공교롭다. 때문에 북한 잠수정을 발견하고 사격을 가한 것이라는 관측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천안함이 수심이 24m밖에 안되는 얕은 지점까지 근접한 것을 놓고도 잠수정을 쫓다가 사고를 당한 것 아닌가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 군사 전문가는 “천안함처럼 큰 배는 섬이나 육지에 그렇게 근접하는 법이 없다.”고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배에 물 들어와 3번 수리했다는데”… 함장은 부인”

    [천안함 침몰 이후] “배에 물 들어와 3번 수리했다는데”… 함장은 부인”

    “함장님, 중사 김경수를 기억하십니까. 늘 집에 와서 함장님을 존경한다고 했던 중사 김경수를 모른다고 하진 않으시겠죠. 두 번째 같이 근무하시는 것이니까요. 함장님 저희 가족들을 가엾게 여기셔서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무런 문제 없는 배였습니까?” “모든 장비, 선체 문제 없었습니다.(최원일 중령)” “주변에서 배에 물이 3번이나 차서 수리를 했다기에 제가 남편에게 천안함 타다가 배 갈라져 물 들어와서 죽으면 어떻게 하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남편이 쓸데없는 얘기라고 화를 냈지만, 진짜 배가 가라앉지 않았습니까. 3번이나 수리를 했다는데.” “심정은 알겠지만 사실 확인이 안 된 얘기입니다. 물이 찬 적 없습니다.(최 중령)” “물이 들어와서 수리한 적 있잖아요. 솔직히 말해 주세요.” ☞해군 천안함 침몰…긴박한 사고 및 수색현장 27일 오후 경기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진행된 함장 최원일 중령과 실종자 가족 간 질의응답 시간. 실종자 가족들은 침몰된 천안함의 선체에 애초부터 결함이 있었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한 실종자 가족은 “언젠가부터 배가 너무 낡아 물이 새는 바람에 수리가 잦았고, 위험한 배라서 부대원들이 승선을 기피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종된 김경수(35) 중사의 아버지 김석우(57)씨는 “배가 출항하면 보통 10~15일 이상 바다에서 임무를 수행하는데 이번에는 무슨 결함이 있었는지 귀항했다가 2일 만에 다시 나간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면서 함선 결함 의혹을 제기했다. 과거 천안함 등에서 근무한 해군 전역자들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90년대 중반 천안함과 비슷한 규모의 신천지함에서 부사관으로 근무한 최모(41)씨는 “20년 넘은 배라면 오래된 축에 속한다.”면서 “해군 함대는 오래돼도 수선해서 다시 쓰는 방식이라 노후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보통 1~2년에 한 번 정도 함대를 정기점검하는 ‘오버홀(Overhaul)’을 하는데 그때 결함이 발견되면 수리를 자주 할 수밖에 없다.”면서 “실종자 가족들 말대로 수리를 자주 했다면 함대에 큰 결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역자 임모(39)씨도 “함선 수명은 20년이 훨씬 넘지만 자동차도 중간에 고장 나는 것처럼 배도 마찬가지다.”라면서 “유류통 근처에 가스터빈이 달려 있는데 이로 인한 폭발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의견을 제기했다. 한편 천안함은 1999년 ‘1차 연평해전’ 당시 선체 뒷부분에 북한군으로부터 피격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96~98년 천안함에 승조해 군대생활을 한 박모(35)씨는 “제대한 직후 일어난 1차 연평해전 당시 천안함 승조원으로 근무했던 후임병으로부터 ‘당시 천안함 후미가 포에 피해를 입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21시25분쯤 ‘펑’ 소리뒤 정전” “선체 오른쪽 직각으로 기울어”

    [천안함 침몰 이후] “21시25분쯤 ‘펑’ 소리뒤 정전” “선체 오른쪽 직각으로 기울어”

    서해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초계함 천안함의 함장 최원일 중령은 폭발 당시 상황에 대해 “내부나 외부의 충격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26일 오후 9시25분쯤 ‘펑’ 하는 폭발음이 들린 후 선체가 오른쪽으로 직각 형태로 기울었고 이후 발전·통신 등 모든 교신수단이 두절됐다.”고 설명했다. 최 함장은 27일 오후 경기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 동원예비군 안보교육관에서 실종자 가족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고 경위는. -26일 오후 9시25분쯤이다. 함장실에서 작전계획을 검토 중이었다. 그때 ‘펑’ 소리와 함께 선체가 직각 형태로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폭발과 동시에 내몸이 50㎝가량 날아올랐고, 책상 밑에 깔렸다. 이후 모든 교신수단이 끊겼다. →사고 원인은 어떻게 분석하나. -내부나 외부의 충격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순식간에 선체가 반파돼 배 반쪽은 없어진 상태였다.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한 사항이다. →폭발 후 상황은. -폭발음이 난 다음 전원이 끊겨 암흑상황이었고 함장실에 5분가량 갇혀 있었다. 누군가 밖에서 망치로 깨고 문을 열어줘 올라가 보니 이미 선체의 후미 반쪽은 없어진 상태였다. →안에서 화약 냄새가 났다는 얘기가 있다. 비명소리는 들었나. -화약 냄새는 안 났다. 폭발로 인해 유류탱크에서 기름이 샌 것으로 보인다. 폭발음만 들었다. →장교들만 모두 생존한 이유는 무엇인가. -함정 지휘소가 모두 함수 부위에 위치해 있다. 함교나 전투상황실 등이 모두 배 상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장교들 모두 살아남았다. 사고 후 함장실에서 올라와 줄과 로프, 소화호스까지 이용해 마지막까지 남은 승조원들을 끌어올리고 이함했다. 함장으로서 지휘책임을 통감한다. 죄송하다. →배가 노후해 사고난 것 아니냐. 사고 전에도 3차례 바닥에 물이 스며들어 수리했다고 들었다. -그런 적 없다. 이번 작전에 나갈 때 모든 장비와 선체에 문제가 없었다. →지금 시급한 문제는 실종자들에 대한 탐색·인양 구조작업인데 진행상황은. -나도 탐색 구조작업을 하다 오늘 오후 부대로 복귀했다. 군과 해경 등이 온 역량을 동원해 탐색·구조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해군 천안함 침몰…긴박한 사고 및 수색현장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