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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천년 걸맞는 정치체제 필요”

    국민회의 총재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2일 “정치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데는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고,여당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한뒤 “새천년을 맞아 정치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야 하며,지식과 정보,문화창조력에맞는 정치체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이만섭(李萬燮)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등 지도부와 원외지구당 위원장 10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하면서 “정치는 여야가 같이 하는 것이므로 야당도 잘해주지 않으면 정치를 할 수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특히 김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것은 소수 여당의 한계”라면서 “내년 총선을 통해 반드시 국민의 지지를 얻어 여당의 안정세 확보가 중요하다”고강조했다.또 “여당이 안정되어야 나라가 안정되고 국민생활이 안정된다”며 “총선에서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김대통령은 공천문제에 대해서는 “정확한 여론조사를 통해 선거구민이 가장 원하는 후보를 공천할 것”이라면서 “선거구민의 지지를 받으면 당연히공천한다”고 약속했다. 이어 김대통령은 언론문제에 대해 언급,“국민의 90%는 언론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정부가 언론을 억압하거나 탄압해서는 안된다”면서 “나는 언론의 자유를 확고히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과거 언론의 자유가 없는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어두운지를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언론이 정상적이고 공정하게 보도하지 않을 경우국민의 권리로,또는 이해당사자로 시정을 요구하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金대통령의 정국 소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12일 국민회의 원외지구당 위원장 오찬에서 정치개혁과 여야관계,언론자유 등 최근 정국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털어놨다.중앙일보 홍석현(洪錫炫) 사장이 보광그룹 탈세사건으로 구속된 이후 한달여 만이다. 김대통령은 정치개혁과 여야관계를 먼저 꺼냈다.“이는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며,여당인 우리들의 책임이 크다”고 여권 자성론(自省論)을 제기했다. 이어 야당의 협조를 거론했다.“정치는 여야가 같이 하는 것으로,야당이 잘해주지 않으면 정치를 할 수 없다”면서 취임 초 야당의 국무총리 인준안 처리 거부 등의 사례를 다시 적시했다. 그러면서 김대통령은 지난 13대 여소야대 시절과 김영삼(金泳三)정부 때 야당총재로서 미국의 대한(對韓) 통상압력을 비판하는 등 국정에 적극적으로협조한 사례들을 상기시켰다.“나는 애국심을 갖고 야당총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며 현 야당의 태도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어 화두(話頭)는 신당으로 넘어갔다.대통령은 “새 천년을 맞아 정치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역사적 필연성을 강조했다.김대통령은 “2000년에 대비할 수 있는 정당이 나와야 하고,인터넷 시대에 대응할 정치체제가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물론 불안해 하는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을 다독거리는 것도 잊지않았다.“몇 %의 물갈이는 근거가 없다” “선거구민이 가장 원하는 후보를 공천할 것이다”는 게 김대통령이 이들에게 건넨 얘기다. 마지막으로 김대통령은 언론자유에 접근했다.현 정부의 언론자유를 가장 극명하게 표현한 사례로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의 장외집회 발언을 꼽았다.“야당이 집회를 열어 대통령을 빨치산에 비유하는 그런 소리를 하는세상이다” 김대통령은 “국민의 90%가 언론개혁을 요구하고 있다”며 “그러나 누차얘기하지만,정부가 개입해 언론개혁을 하면 안된다”고 거듭 지론을 강조했다.양승현기자 yangbak@
  • 與 현역의원·위원장“나 지금 떨고있니”

    국민회의는 여권 신당추진위원들이 ‘내년 총선용’임을 숨기지 않았다.1차로 발표된 25명 중 23명이 나설 것이라는 얘기가 핵심인사들로부터 나온다. 해당지역 현역의원과 기존 원외 지구당위원장들은 긴장하고 있다. 강덕기(姜德基)전 서울시 부시장은 고향인 경남 진주보다는 초대 구청장을지낸 서울 강동구에서 출마가 점쳐진다.386세대인 우상호(禹相虎)전연세대총학생회장은 모교를 업고 서울 서대문갑 출마를 준비중이지만 김상현(金相賢)고문과 공천경쟁이 쉽지는 않다. ‘신바람건강학’의 황수관(黃樹寬)연세대교수는 여러 현역의원들의 애를태우는 사례다.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지만 경기 시흥·군포에살아 유선호(柳宣浩)의원과 공천경쟁설이 나돌기도 한다.연세대와 가까운 서대문을 출마도 가능한 것으로 예상된다. 유기홍(柳基洪)민화협사무총장은 40년간 기반을 다져왔다며 서울 동대문을공천을 원한다.이곳은 지구당위원장인 김창환(金昌煥)전의원,고려대 학생회장 출신의 허인회(許仁會)당무위원,이인영(李仁榮)초대전대협의장 등도후보자로 거명되고 있어 만만치 않다. 이원성(李源性)전대검차장은 고향인 충북충주출마를 강력 희망해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합당하게 되면 자민련 김선길(金善吉)의원과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영남 출신들은 고향 출마를 기피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김경애(金慶愛·부산)동덕여대교수,이태교(李太敎·대구)한성대행정대학원장,정지태(鄭之兌·경북 칠곡)가톨릭대교수는 비례대표 후보를 바라고 있다. 박대출기자 dcpark@
  • 신당 창당 준비작업 어떻게 돼가나

    여권의 신당 창당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다.논의 주체는 창당 발기인들이다. 신당의 성격과 방향,창당준비위의 규모 등을 둘러싼 준비 작업을 발기인 모임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간다는 방침이다.이를 위해 발기인들은 오는 17일 1박2일 일정으로 워크숍을 갖고 신당의 활동방향과 정치개혁 방안 등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인다. 김민석(金民錫)발기인 대변인은 12일 “새천년을 맞는 장단기 100대 정책과 10대 정치과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주요 정치과제로는 깨끗한 정치,민주정당,합리적 공천,대화정치 등이 화두로 꼽힌다. 발기인들은 특히 창당 과정의 신진인사 영입이 내년 총선 여당 후보의 대폭 물갈이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에 원칙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국민회의 한화갑(韓和甲)사무총장이 이날 ‘당 해체 후 신당 참여’를 전제로 당 소속 현역의원의 대폭 물갈이를 시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한총장은“외부 충원인사가 150∼200명 규모라고 해서 현역 가운데 일정 비율을 미리 계산해 물갈이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그러나 원외 지구당 위원장등을 감안하면 무게중심은 ‘헤쳐모여식’ 물갈이쪽으로 실린다는 해석이다. 공천과정의 합리성과 민주성도 발기인들이 지향하는 창당 방법론의 주요 과제다.한총장등 여당 수뇌부도 전적으로 공감하는 대목이다.지역여론과 원내활동 등을 기준으로 외부 여론조사기관의 조사결과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한 공천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연합공천 문제는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객관적기준을 토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衆論)이다. 창당준비위의 발족 시기는 다소 유동적이다.당초 예정된 10월10일은 휴일인데다 국회의원들이 한창 국정감사에 매달려 있을 시기다. 발기인 모임과 달리 창당준비위 단계부터는 법적 지위가 부여된다는 점에서 국민회의와 관계 설정도 고려해야 할 대목이다.창당준비위내 당 소속 의원이 20명을 넘게 되면 국회법상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갖추기 때문이다. 박찬구 이지운기자 ckpark@
  • “국회기능 확대따라 지역구의원도 전문성 중시를”/공천기준 이렇게

    여권 신당의 바람직한 공천기준에 대한 견해는 현역의원,영입파,원외지구당위원장, 시민사회단체 등 각자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그러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제시한 3대 원칙(원내 활동,지역 신망,당선 가능성)에는 모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현역의원들은 3대 원칙 중 특히 당선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전문성을 추가로들었다. 원외지구당 위원장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토를 달았다. 시민사회단체는 개혁성과 도덕성을 중시했다. 공천의 주도권을 중앙당에서 지구당으로 넘기라는 시민단체의 주문에 현역의원들은 현실적 어려움을 들며 절충형을 제시하기도 했다. -정세균(丁世均) 국민회의 의원 대통령이 공천기준으로 당선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소수여당으로서 국정운영의 어려움을 반증한 것이다.원내 활동,지역구내 신망과 함께 공천의 제1조건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아울러 전문성이 중요하다.국회 기능이 확대되면서 전문가가 더욱 많이 필요해졌다.비례대표제를 통해 전문가들을 수용하고 있지만 현 수준으로는 한계가 있다.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도 어렵다.때문에 지역구의원들도 전문적 식견을 보유해야 한다. 중앙당이 주도하는 공천제도의 불합리성이 제기되면서 상향식 공천제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이는 이론상으로 가장 민주적인 제도이지만 우리현실에서 적용의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현 시점에서는 지구당 체계정비와 함께 인물에 대한 객관적 검증방안을 마련,두 제도의 장점만을 선택한 절충형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박범진(朴範珍) 국민회의 의원 여소야대(與小野大) 구조로는 개혁을 완수할 수 없기 때문에 당선 가능성이 가장 중시돼야 한다.대통령이 제시한 기준은 당연한 것이다.하지만 이것이 충분조건은 아니다. 선진정당을 위해서는 당 구성원 역시 선진적인 인물이어야 한다.‘전문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이는 약한 표현이다.‘뛰어난’ 인물이어야만 한다.과거경력만으로 인정받는 시대는 지났다. 또한 국정개혁에 신념이 있는 사람,전국정당에 도움이 되는 인물이어야 한다.영남지역 등에서 뛰어난 인물이 당에 들어와야 한다.호남인사도 동서를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중도개혁적인 인사가 필요하다.계급정당으로 출발한 유럽좌파정당도 모두 국민정당을 표방하고 있다.세계적으로 중도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공천도 이같은 큰 흐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강동년(姜東年) 국민회의 강남갑지구당 위원장 8·30 국민회의 제4차 중앙위원회에서 대통령은 공천기준을 지역구 신망과 당선 가능성에 두겠다고 했다.당지도부의 자의적 공천은 끝낼 것이며 기존당원들에게 기득권을 버릴 것을 강조했다.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그러나 공천 결정은 총체적 기준에 따라 일괄 적용돼서는 안된다.각 지역의 정치적 특성과 정서를 고려,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기준으로 이뤄져야 한다. 당에 대한 충성도,지역구에 대한 헌신도,청렴성,정직성과 함께 역대선거에서 나타난 지역적 특징,인물선호도 등도 고려돼야 한다.공천결정이 단순한여론조사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한 계량적 수치만으로 이뤄져서는 선거에서이기기 어렵다. -손혁재(孫赫載) 한국정당정치연구소 부소장 신당은 시민사회에 대해 개방적인 구조가 돼야 한다.이를 위해 중앙당과 지구당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신당의 공천은 이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지명도나당선 가능성에 얽매여서는 참신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개혁성과 도덕성,민주화 과정에서의 헌신 등을 우선순위로 해야 한다.물론 자질과 능력도 고려해야 한다. 절차는 지금처럼 중앙당 위주의 공천이 아니라 지구당이 공천의 실질적인책임을 지는 상향식 공천이 제도적으로 확립돼야 한다.당비를 내는 당원으로구성된 지구당 논의구조에서 자율적으로 일정한 수를 추천하면 중앙당에서그 중 한 사람을 후보로 결정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비례대표는 중앙당에서2∼3배를 추천하고 전당대회 등에서 다득점 순위로 후보 순위를 결정해야 한다. 정리 이지운기자 jj@
  • 신당 공천 3원칙/지역구 신망도 제1의 잣대로

    여권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국민회의 중앙위에서 제시한 3대 공천기준의 구체적 적용 방법을 다음과 같이 검토하고 있다. -원내 활동 현역 또는 전직 의원들의 공천기준.입법 및 상임위 활동,당 기여도 등을 종합 고려,순위를 매길 방침이다. 특히 이번 정기국회는 현역의원들에게는 ‘기말고사’가 될 전망이다.당지도부는 현역의원들의 이점은 살리되 기득권을 보장하거나 ‘의리 공천’은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지역구 신망 가장 중요한 공천 기준.영입파 의원을 포함한 현역의원,원외지구당 위원장,신진인사 모두에게 적용된다. 한화갑(韓和甲)사무총장은 “당원들의 뜻과 지역 여론이 상충되면 지역여론을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당선 가능성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지역 주민들에게 신망이 있는 인물을 공천,국민과 함께 하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신진인사들을 공천할 때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선 가능성 철저한 사전 여론조사를 통해 각 후보들의 당선 가능성을 검증한다. 이는 지역에서의 신망과도 직결된다.해당 후보들이 지역에서 모두 신망이 있을 때는 ‘당선 가능성’이 고려된다. 그러나 후보간에 당선 가능성과 지역구 신망이 엇갈리면 지역구 신망에 우선가산점을 줄 방침이다. 신망이 있으면 선거전에서 당선 가능성을 쉽게 높일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강동형기자 yunbin@
  • [새 정당 새 인물] (4) 주목받는 법조계

    내년 4월 치러질 총선에서는 법조계가 주목받을 것 같다.다른 전문가 그룹에 비해 노·장·청이 골고루 포진해 있는 데다 사회활동 및 기고 등을 통해 낯익은 얼굴들을 쉽게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여야의 신당 창당 과정에서법조계 인사가 영입대상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50여명 정도가 자천 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다.이에 따라 여야 각 정파는 이들을 상대로 ‘물밑 교섭’을 진행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서 가장 탐내는 사람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박원순(朴元淳)변호사다.그러나 박변호사는 정치에는 뜻이 없다고 영입 제의를 뿌리치고 있다.헌법재판소 출신의 이석연(李石淵)변호사도 여권이 신당 창당 과정에서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이는 인물이다. 민변의 간판격인 박인제(朴仁濟)·윤종현(尹鍾顯)변호사도 물망에 오르고있다.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있는 김주원(金周元)변호사도 출마의사가 있는것으로 전해진다. 386세대로는 이정우(李政祐)·원희룡(元熹龍)·송영길(宋永吉)·최용석(崔容碩)변호사 등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이·원·송변호사는 운동권 출신이다.최변호사는 기고활동과 함께 인터넷을 통한 법률서비스로 주목받는다. 텔레비전 인기사회자와 코미디언으로 널리 알려진 오세훈(吳世勳)·고승덕(高承德)변호사도 정치에 대한 꿈을 접지 않고 있다.특히 6·3재선거에 한나라당 공천까지 받았다가 도중하차한 고변호사는 ‘명예회복’을 다짐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여성 법조인 가운데는 박주현(朴珠賢)·배금자(裵今子)·황덕남(黃德南)·조배숙(趙培淑)변호사가 단연 두각을 나타낸다.최근 전남 고흥군 군판사를지원,낙향을 결심한 조영황(趙永晃)변호사도 정치권에서 탐내고 있는 인물이다. 국민회의에서는 임종인(林鍾仁)·이종걸(李鍾杰)변호사가 각각 서울 성동과 경기 안양지역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임변호사는 현재 당무위원을 맡고있으며,이변호사는 같은 당 이종찬(李鍾贊)부총재의 사촌동생이다. 자민련에서는 원외지구당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재훈(李宰勳·경북 상주)·정종복(鄭鍾福·경북 경주)변호사가 ‘새인물’ 대열에 들 수 있다.고순례(高順禮)변호사는 자민련에서 활동중인 ‘홍일점’이다. 한나라당의 원외지구당 위원장인 심규철(沈揆喆·충북 영동·옥천)·정인봉(鄭寅鳳·서울 종로)변호사의 출마는 확실하다.당 소속 인권위원인 엄호성(嚴虎聲)·이종웅(李鍾雄)변호사도 부산과 서울의 지역구를 노린다. 검찰 출신 변호사들이 많이 거론되는 것도 특징이다.지난번 ‘검란’(檢亂)때 옷을 벗은 최병국(崔炳國)전전주지검장은 고향인 울산에서의 출마가 확실하다.본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원성(李源性)전대검차장,심재륜(沈在淪)전대구고검장,안강민(安剛民)전서울지검장도 정치권 진출이 거론된다. 검찰 고위직 출신으로는 정해창(丁海昌)·김종구(金鍾求)전법무장관,신건(辛建)전법무차관 등이 오르내린다.대전 출신인 김전장관은 지역에서 출마권유가 더 많은 실정이다.이밖에 문형식(文亨植)·함승희(咸承熙)·노인수(魯仁洙)·임운희(林雲熙)·김용원(金龍元)·원용복(元容福)·진봉헌(陳鳳憲)·이석형(李錫炯)변호사도 ‘정치 후보군’으로 떠오른다. 오풍연기자 poongynn@*법조계 시각…법조인들 의회진출 바람직 법조계 인사들은 내년 총선에서 법적 기본소양을 갖춘 변호사들이 대거 의회에 진출하기를 희망했다.입법기관으로서 국회의 위상을 한층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그러나 여야 신당 창당 과정에서 단순히 ‘구색용’‘선거용’으로만 이용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석연(李石淵)변호사는 “법조인들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방패나 소모용품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며 “먼저 새 인물들이 의회에 진출해 활동할 수있는 정치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신당 참여에 앞서 ‘새로운 정치틀’이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용석(崔容碩)변호사는 “미국의 경우 의원입법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다”면서 “법을 다뤄본 율사 출신 의원들이 원내에 많이 포진하면 국회의 역량도 훨씬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여야의 ‘새 피’수혈에 법조인이 적합하다는 논지였다. 함승희(咸承熙)변호사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누가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별로 나아질 게 없을 것”이라며 “다만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들의 정치권및 의회진출은 다른 직종에 비해 바람직하다”고 평했다. 문형식(文亨植)변호사는 “서초동 법조 타운에 정치권을 비아냥대는 소리는많이 들리지만 총선 얘기는 별로 안 나온다”면서 올 가을 정치권 변화가 본격화돼야 법조인들의 정계 진출이 가시화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석형(李錫炯)변호사는 공천기준에 대해 “노·장·청 등 나이로 구분할것이 아니다”고 전제,“그러나 참신하고 개혁적이며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법조인의 정계 진출에 대해서는 “2000년대 변화를 바라는 정치권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與 물갈이설 불안감 ‘진화’

    국민회의가 신당 창당과 관련,‘기득권 포기 선언’에 따른 ‘당내 동요’를 막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급기야 김대중(金大中)대통령까지 직접 진화에나섰다. 김대통령은 지난 25일 청와대에서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을 만난 자리에서 “총선 공천에서 몇%를 물갈이한다는 것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고 이대행이 26일 전했다. 국민회의 지도부에 ‘비상’이 걸린 것은 당내 동요가 심상치 않다는 판단때문.기득권 포기선언 이후 ‘지구당 위원장 50% 물갈이 설’‘호남의원 대폭 물갈이설’ 등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물갈이를 하려면 동교동계가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역공’의 목소리가 여과없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국민회의는 그동안 논란이 됐던 지구당 위원장직 사퇴 결의도 불필요하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기득권을 포기한다는 각오’로새로운 모습을 보이라는 선언적 의미라고 지구당위원장들을 다독이고 있다. 신당 창당과 기득권 포기선언으로 지구당 위원장들이 동요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당지도부가 오는 30일 중앙위원회에 앞서 일선 지구당위원장들과 별도의 회동을 갖고 신당 창당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대통령은 또 “현역 의원은 원내 활동과 지역구 신망을 기준으로,원외 위원장은 지역구 신망을 선거(공천)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라며 ‘공천기준’도 제시했다.호남 등 특정지역 또는 동교동계라는 특정인과 세력을 물갈이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에 의해 총선 후보를 공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화갑(韓和甲)사무총장은 이와 관련,“당 기여도와 여론 사이에서 여론을더 중시하겠다”며 공천기준을 보다 구체화했다.무엇보다도 지역 여론을 중시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당 지도부의 이같은 해명으로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구당위원장들의불안감은 어느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신당 창당으로 다수 지구당위원장의 교체가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당내 동요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강동형기자 yunbin@
  • 총재대행 원내인사 유력/국민회의 새지도부 윤곽

    국민회의의 새로운 지도부의 윤곽이 차츰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1일 오후 현재 총재권한대행 후보를 압축은 했지만 낙점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행의 인선이 쉽지 않은 까닭은 누구를 시키느냐에 따라 당 정비의 강도,내각제 향배,대야(對野)관계 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총재대행의 인선은 자민련과의 관계가 ‘최우선의 고려사항’이 될 거라는 얘기다.전임 대행이 JP 때문에 물러난 점을 간과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당 안팎에서는 새 총재대행이 ‘원내(院內)’에서 나와야 한다는 게 대세를 이루는 분위기.누가 되든 정국대치 상황을 풀고 특검제와 정치개혁입법 등국회를 활성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오후 늦게까지 한광옥(韓光玉)부총재와 조세형(趙世衡)전총재대행을 놓고 막판 저울질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조전대행은 ‘서상목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파동’으로 대행직에서 물러날때까지 원만하게 당을 이끌어왔고,당 운영의 연속성을 기할 수 있다는 점이강점이다.한부총재는 ‘여여(與與)관계’를 우선 고려할 때 유력한 대행후보로 꼽힌다. 내각제 협상론자인데다 대야 관계에서도 정치개혁을 진전시킬 적임자로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야당이 지난 ‘3·30 재선’에서의 ‘선거자금 과다지출’ 의혹을 문제삼는 것이 변수다. 국민회의 내부에서는 아직 ‘대행자리=후계구도’라는 등식은 성립된다고보지 않는다.이런 점에서 ‘개혁마인드’를 갖춘 장을병(張乙炳)부총재와 원외인사인 김원기(金元基)상임고문도 여전히 검토대상이다. 반면 이종찬(李鍾贊)부총재나 이수성(李壽成)민주평통부의장,이인제(李仁濟)고문 등은 ‘원대한 뜻’ 때문에 전당대회를 통한 공식 컴백을 선호한다. 당3역은 ‘실세형’을 내세운다는 당초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전망이다.한화갑(韓和甲)전총무가 사무총장으로 유력한 상태다.총무에는 호남출신의 실세총장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야 협상력을 구비한 비(非)호남권 인사의 기용을 적극 검토중이다. 이 경우 김원길(金元吉)전정책위의장이 유력한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다.당에서는 박상천(朴相千)전법무장관·조홍규(趙洪奎)의원도 적극 ‘추천’하고 있다. 정책위의장엔 장영철(張永喆)전의장의 유임이 점쳐지고 있으나 이해찬(李海瓚)전교육장관이나 장재식(張在植)의원 등이 후보에 오르내리고 있다. 유재건(柳在乾)총재비서실장의 후임으론 김옥두(金玉斗)의원이나 이강래(李康來)전청와대정무수석의 기용이 점쳐진다. 유민기자 rm0609@
  • 제2공화국과 張勉(28)-金대통령 특별회고(상)

    대한매일은 ‘정직한 역사 되찾기’의 일환으로 지난 2월부터 ‘제2공화국과 張勉’시리즈를 주 2회 1개 면씩 연재해 왔다.지난번 27회의 ‘장면의 정치 역정과 생애(하)’로 연재는 사실상 일단락되었다.이번 28회는 당시 민주당정부의 당 대변인으로 활약했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회고를 상·하로나눠 그 전반부를 싣고 29회는 후반부를 싣게 된다.마지막 30회는 이번 연재물을 총정리하는 의미에서 제2공화국을 평가하는 대담으로 엮어진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구술하여 녹취한 답변은 ▲장면(張勉)전총리와의인연 ▲그를 만나 가톨릭 영세를 받은 과정 ▲장면정부의 경제제일주의 평가 ▲민주당 신파 출신으로서의 자부심 ▲장면 총리와 윤보선 대통령에 대한평가 ▲제2공화국 및 장면정부 평가 등 여섯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다음은김 대통령이 ‘장면 전총리와의 인연’을 중심으로 하여 술회한 내용이다. ?藜圄? 박사와의 인연 1956년 장면 박사가 부통령으로 출마했을 때 무소속이던 제가 장 박사 지지를 선언한 것이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장 박사가 그 사실을 알고 고맙게 생각하면서 저와 장면 박사의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본격적인 인연은 다음해 제가 가톨릭 영세를 받을 때 장 박사가 대부가 되어주면서 부터입니다. ?嵐适獵? 입당 저는 민주당에 입당해 중앙상무위원으로 일했습니다.민주당중앙상무위는 33명의 국회의원과 50명의 원외 당원으로 구성된 지금의 당무위원회 같은 것입니다.저는 젊은 나이에 발탁되었고 정책심의 등에서 상당히 주목받는 의견을 제시한 기억이 있습니다. 또 하나 당시 민주당 내에는 신·구파의 큰 대립이 있었는데 저는 신파를 대변하는 입장에서 많은 발언을 했고,그런 저에 대한 장 박사의 신임이 매우두터웠습니다.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 역사에 ‘3·15부정선거’라고 기록된 60년 3월15일 정·부통령선거때 대통령 후보인 조병옥(趙炳玉)박사가 돌아가시고 부통령 후보인 장 박사만 남아 선거를 치렀는데 주로 장 박사 계열의 신파가중심이 되어서 선거를 했습니다.저는 강원도 당무위원장으로서 강원도의 험준한 지역을 돌면서 일선에서 선거운동에 임했습니다. 전국적으로 행해진 ‘3·15부정선거’에 대해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저는 인사동 중앙당사 앞에 인산인해를 이룬 시민들 앞에서 마이크를 걸고부정선거를 규탄했습니다.그리고 4월6일 민주당이 중심이 된 시위가 있었습니다.시청 앞에 모여 을지로4가와 종로,그리고 파고다공원(지금의 탑골공원)과 광화문을 거쳐 다시 시청 앞으로 돌아오는 시위였습니다.그때만 하더라도 학생들의 시위는 거의 없었습니다.고등학생 일부가 부정선거를 규탄했고 대학생들은 아직 나서지 않던 때였습니다.그 시위에서 저는 앞장서 휴대용 마이크로 구호를 선창하는 입장이었고,정부에서는 내무장관 포고령으로 발포도 불사한다는 위협을 했습니다.지금 생각해도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던 비장한 심정이었습니다. 시위가 시작되자 정부는 방침을 바꾸어 진압보다는 시위대가 군중과 합세하지 않도록 격리하는 데만 주력했고,파고다공원 앞에 오자 학생들이 시위대에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시위대가 광화문까지 오자 학생들은 경무대(지금의청와대)쪽으로 가려고 해 시위를 주도하는 우리와 약간의 실랑이까지 벌이게 되었습니다.이렇게 전개된 그날의 시위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襤逅? 민주당 대변인 민주당정권이 들어섰을 때 당 대변인인 조재천(曺在千)선생이 법무장관으로 입각하게 되었습니다.저는 부대변인을 했는데 조재천 선생이 “비록 김대중씨가 원외(院外)지만 그 이상 대변인을 해낼 사람이 없다”며 강력히 추천하고 장 박사도 그 말이 옳다고 동의함으로써 제가 여당의 대변인으로 선임되었습니다. 당시 신문에 많이 보도가 되었지만 저는 대변인으로서도 여당 입장을 잘 방어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그때는 매일같이 여야 대표들이 학교나 명동에있던 시공관 등지에서 연설을 했는데 저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연설로 시민들에게서 많은 호응을 받았고,이로 인해 총리인 장 박사로부터 칭찬을 받은일이 몇번 있습니다. ?藍? 박사의 민주정신 저는 대변인으로서 매일 장 박사를 찾아가 몇가지 지시를 받고 제 의견도 말씀드리면서 아주 가깝게 지내게 되었습니다.하루는장 박사가 제게 “이 자리에 오래있는 것보다는 여야간 정권교체가 한번 되어야 이 나라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온다”는 이야기를 아주 진지하게 했습니다.그 말씀에 저는 ‘참,이 어른에 대해 사람들이 약하다고 그러는데 또 약한 말씀을 한다’는 그런 생각밖에 못했습니다.그러나 박정희(朴正熙)정권의 장기 집권을 겪고나서야 저는 그 말씀이 바로 민주주의의 요체였다는 사실을 아주 깊이 깨닫게 되었고 정말 그 훌륭한 민주정신에 대해서 새삼스레 감복한 기억이 있습니다. 장 박사는 정국을 끌어나가는 데 아주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구파가 정권을 차지하는 것에 실패하자 그냥 당을 깨고 나가 야당을 만들었습니다.그것은참으로 불행한 일이었습니다.그때 저는 “이렇게 해서 정국을 불안하게 하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만일 조병옥 박사님이 아직 생존해 계셨다면 적어도 정부를 1∼2년은 안정시켜 놓고 분당을 해도 했을 것이다”라고 한 적이있는데 그것이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襤ㅁ? 흔든 당내 소장파 장 박사가 제일 크게 고생한 것은 당내 소장파들이 조직을 따로 만들어 정부가 하는 일을 일일이 비판한 것이었습니다.‘중석불사건’이라고, 6·25 부산 피란 시절에 중석불 부정불하사건이 있었는데 장 박사가 또다시 중석불 부정을 저질렀다고 소장 의원들이 들고나선 적도있습니다.5.16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 정당성으로 중석불사건 등 부정부패를 지적했는데 군사정권에서 조사하고 재판한 결과 사실무근이라는 것이 밝혀진 바 있습니다. 장 박사는 제게 당내 소장파들의 움직임을 걱정하고 개탄하고 염려한 일이여러번 있었습니다.저는 장 박사에게 소장파 대표를 중요한 각료직에 등용해 정부에서 같이 일하도록 하면 그런 문제가 수습될 것이라고 건의를 드렸는데 이 방안은 당내 노장 중진들의 반대로 잘 안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fi?襤ㅁ? 타도 외친 혁신계 그리고 혁신계가 당시 참으로 사려깊지 못한 일을 했습니다.과거 이승만(李承晩)시대에 완전히 용공으로 몰려 숨도 크게 못 쉬고,감옥에 가고,심지어 조봉암(曺奉岩)씨의 경우는 사형까지 당하고 하던 혁신계는 4·19 이후 민주당정권 아래서 완전히 해방이 되어 자유롭게 활동하게 되었습니다.그런 혁신계가 장면정권 타도를 내세우고 공세를 취했습니다.신문에도 보도된 것이지만 그때 저는 “지금 혁신계가 장면정권을 이렇게 괴롭히지만 만일 장면정권에 불행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큰 타격을 받는 것은 혁신계다.‘입술이 있으면 이가 답답하게 생각하지만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불행하게도 5·16 후제 말 그대로 되었습니다.혁신계는 그후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탄압과 고초를 겪었습니다.저는 민심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 세력들한테 불씨를 주는 행동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藍躍溶ㅁ? 망친 3신(新) 사실 당시 신문도 문제가 있었습니다.모두가 나서서 정부를 매일같이 공격했습니다.심지어 정부기관지라는 신문까지 나섰습니다.결국 정부를 국민 앞에 완전히 불신의 대상으로 만든 것입니다.5·16 후‘3신(新)’이 장면정권을 망쳤다는 말이 유행을 했는데 ‘3신’이란 신문(新聞),혁신계(革新系) 그리고 당내 소장파 모임인 신풍회(新風會)가 그것이었습니다. 장면 박사는 본질적으로 독재자는 아니었지만 강력한 지도자도 아니었습니다.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지도자였는데 그런 분이 당내와 언론과 혁신계로부터의 협격으로 힘도 제대로 못쓰게 되었습니다.그런 불안정한 상황이 일부군인들에게 마치 나라가 공산화되어 가고,나라가 붕괴 직전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 원인이 아니었던가 생각됩니다. 정리 이용원기자 - 金대통령 회고 이모저모 현직 대통령이 일간지의 현대사 연재물에 증언을 해준 것은 대한매일이 연재하고 있는 ‘제2공화국과 張勉’이 처음이다.제2공화국 당시 민주당정부의 집권당 대변인을 맡았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본보의 증언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이 연재물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많은 독자들로부터 “민주당 대변인을 맡았고 장면 박사와 돈독한 관계에 있었던 김 대통령의 얘기가 왜 없느냐”는 등의 성화가 잇달았다. 독자들의 재촉에 못이겨 지난달 하순 서면으로라도 증언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이 오리라고는 사실 기대하지 않았다.당시 개각에 이어차관급 인사가 있었고 곧바로 러시아·몽골 순방이 예정된 대통령의 일정상‘한가롭게’ 40년 전 기억을 더듬을 틈이 없으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러시아 방문길에 오르기 전날인 지난달 26일 밤 대한매일이 서면으로 회고를 요청한 6가지 질문에 대해 소상히 구술했다.청와대 관계 비서관이 이를 녹취하여 다음날 서면으로 옮긴 결과 A4용지 10장 분량이었다.200자 원고지로 34장에 해당하는 상세한 내용이었다. 해외 순방을 앞둔 노(老)대통령은 늦은 밤 질의서를 한장한장 넘겨가며 옛날 일을 되새겼다.대통령의 회고에는 이 땅에 최초의 민주주의 꽃을 피운 제2공화국의 역사가 우리 현대사에 정직하게 기록되어야 한다는 진지함으로 가득했다.또한 그후 역대 군사정권에 의해 폄하된 장면정부가 새롭게 재조명되어야 하며 동시에 제2공화국의 실패를 거울삼아 오늘의 진로를 모색하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는 간곡한 메시지도 회고의 행간에 읽을 수 있었다.이밖에 내각책임제에 대한 진솔한 평가와 집권자로서 정치권에 갖는 바람(29회 게재 예정) 등 김 대통령의 정치관을 다각도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를 제공했다. 이용원기자ywyi@
  • 국민신당출신 독자 목소리 낸다

    지난해 8월 말 국민회의와 합당한 국민신당파 국회의원 및 원외 인사들이단합모임을 가졌다.모처럼 독자 목소리를 낼 태세다.국민신당 대선 후보였던 국민회의 이인제(李仁濟)당무위원과 이만섭(李萬燮)상임고문,서석재(徐錫宰)·장을병(張乙炳)·황명수(黃明秀)부총재 박범진(朴範珍)홍보위원장,김충근(金忠根)특보 등 국민신당 지도부 출신 인사들은 19일 조찬모임을 가졌다.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행동방향을 논의한 자리였다. 이들은‘지구당위원장을 인물 본위로 임명하되 신당에 20%를 할애하고 사무처 당직자도 상응한 배분을 한다’는 합당조건이 대부분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특히 현재 사고 지구당으로 분류된 국민회의 63개 지구당에 대한 조직책 및 위원장 선임때 반드시 국민신당 출신 원외위원장에 일정비율의 자리가 할애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당 지도부에도 이같은 뜻을 강력하게 전하기로 했다. 아울러 국민신당 인사 중 극히 일부만 부대변인 또는 각 상임위 비상근 부위원장 등 사무처 당직에 임명된 데 대해서도 합당정신을 존중,더 많은 인사들에 대한 배려를 촉구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석자는“사고 지구당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당 지도부가 국민신당 소속 인사들과 전혀 협의가 없어 신당 출신 원외위원장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참석자도“전당대회를 앞두고 영남 및 강원권 출신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신당 출신 인사들을 적극 등용하는 것이 당의 전국정당화 방침에도맞는다”면서“전당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합당정신을 존중할 것을 강력히 요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단체장 인사권 전횡 지자체 또다른‘몸살’

    ‘지방공무원에게 희망은 있는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요즘 모이기만 하면 한숨 섞인 탄식을 늘어놓는일이 습관이 됐다.봉급 삭감과 구조조정의 고통뿐 아니라 민선 단체장의 ‘내사람 심기’식 인사 전횡에 따른 편가르기 등 자치단체에만 만연한 병폐도 심각하기 때문이다.부산의 한 구청 계장은 “보복성 인사로 직원간 불신과편가르기 의식이 팽배해 근무 분위기가 엉망”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대부분 자치단체장들은 발탁인사를 빌미로 선거 공신,동문·동향인사 등을노골적으로 챙긴다.잘나가는 인사들은 행정을 좌지우지한다.그러다가 단체장이 바뀌면 하루 아침에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경기도 S시의 K과장은 지난 95년 타지역으로 전출됐다가 지난해 시장이 바뀌면서 총무과장으로 금의환향했고,대구 모구청에서는 ‘단체장 출신고교인 K고 출신이 아니면 출세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소문마저 나돈다.충북의 L시장은 경쟁후보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공무원들을 대부분 정원외 관리자로 발령냈다.모 도지사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선거 당시 도움받은 사람들의 등쌀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을 정도로 정실인사의 폐해는 심각하다. 이같이 ‘줄서기’와 보복이 반복되는 현실 때문에 몇몇 핵심 부서 외에는중하위직 공무원 대부분이 소외의식에 빠져 복지부동이다.지방공무원이 ‘단체장과 그가 소속한 정당의 시녀’가 돼버렸다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자치단체장의 독주로 인해 상당수 부단체장들도 결재서류에 서명만 할 뿐할 일이 별로 없다.올 초 부임한 경기도의 T부시장은 “새로운 일을 창안해간부공무원에게 지시해도 꼼짝하지 않는다”면서 “외딴 섬에 혼자 앉아 있는 기분”이라고 털어놓는다.서울의 K부구청장은 “나는 기능직 1명의 인사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자조했다. 전북도의 한 간부는 “공무원 생활이 아무런 재미도 희망도 없고 잘못 보이면 하루아침에 퇴출당한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있다”고 하소연했다. 전국 종합 shlim@
  • 李총재 ‘對與 초강수’ 정치권 반응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6일 기자회견에서 ‘제2의 민주화투쟁’과‘정권퇴진운동’도 심각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초강수’를 띄웠다. 최근 고승덕(高承德)변호사의 송파갑 후보 사퇴,여당의 정부조직법 개정안변칙처리 등으로 야기된 긴장은 파고를 더하는 분위기다.여권도 이총재의 강경투쟁 선언을 강력 비난하고 나서 대치 정국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총재가 이날 대여 강경투쟁을 거듭 선언한 것은 침체된 당의 분위기를 살리고,당 안팎에서 도전받고 있는 총재 자신의 지도력을 회복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비쳐진다. 실제 회견문을 다듬는 과정에서 정권퇴진투쟁 등의 극단적 언사(言辭)를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반대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강경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수호투쟁위원회’의 강력한 건의를 묵살할 수 없어 초안을 그대로 살렸다는 후문이다. 이총재는 회견에서 ‘집안단속’을 위한 대여공세 강화라는 일부 시각을 일축했다.그는 “이번 기자회견을 6·3재선거 및 당 내부문제와 결부시키는 것은 여당의 시각”이라고 일축한 뒤 “국민과 국가의 장래를 위해 매를 들었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총재의 강도 높은 대여투쟁선언에 대해 당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여권과 일부 시민단체 등은 “노동계의 파업위기를 이제 막 넘긴 상황에서장외 투쟁 운운은 명분없는 공허한 메아리”라고 비판했다.정치개혁 협상 등 난제를 풀어나가는 데 야당도 하루빨리 동참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민회의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한나라당은 반민주경력이 있는 세력으로서 제2 민주화 투쟁 운운할 자격이 없다”면서 “시민불편을 고려해 파업을 자진 철회한 지하철 노조보다도 훨씬 못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또 장외투쟁선언은 국민들의 정치혐오를 불러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내에서도 비주류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않다. 야당을 장외투쟁으로 내모는 여당의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국정운영 방식도문제지만,과거 야당의 구태를 벗지 못하고 그대로 답습하는 것 같은 이총재의 정국대응 방식도 문제라는 주장이다.한 수도권 원외위원장은 “이번 기자회견도 다분히 ‘표밭’인 영남권을 의식한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오풍연 기자
  • [제2공화국과 張勉](16)혁신계의 浮沈/4·19이전의 상황

    4월혁명후 새 세상이 열렸다고 믿은 정치세력 가운데 하나가 혁신계다.이승만(李承晩)정권 12년 동안 철저히 탄압받은 혁신계 인사들은 ‘4월혁명이 완수해야 할 과업이야말로 혁신세력이 책임진 역사적 과업의 주요한 일부’라고 판단했다.그리고 4월혁명이 열어놓은 정치적 공간에 그들의 활동무대도포함된다고 확신했다. 이 무렵 혁신계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혁신계’로 규정된 제(諸)정치세력의 노선·뿌리가 다양한데다,사회적으로 공인받은 정당으로서 맥을이어온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조봉암(曺奉岩)이라는,카리스마와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춘 인물을 잃은 점도 크게 작용했다. 따라서 4월혁명 후 혁신정당 창당은 명망가들의 이합집산에 좌우됐다.첫 단계로 이들은 4월30일 부산에 모여 ‘한국혁신세력집결촉진회’를 구성한다. 이어 통합신당인 ‘사회대중당’을 결성키로 하고 5월17일 창당준비위원회를 갖춘다.민주혁신당의 서상일(徐相日)이 대표를 맡고 진보당계의 김달호(金達鎬) 윤길중(尹吉重)과 혁신계 원로인 장건상(張建相) 이동화(李東華) 정화암(鄭華岩) 등이 참여한다. 그러나 통합을 주장하던 혁신세력은 곧 핵분열을 한다.사회대중당이 창당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장건상이 혁신동지총연맹을 만들어 갈라서는가 하면 전진한(錢鎭漢) 김철(金哲)의 한국사회당,고정훈(高貞勳)의 사회혁신당 등 군소 혁신계 정당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이같은 분열이 이념이나 정강정책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장건상 스스로 회고록에서 밝힌 것처럼 “혁신계가 통일되지 못하고 분산된 근본적인 원인은 이론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인물 중심의 파벌에 의한 것”이었다. 4월혁명을 맞아 혁신계가 창당을 서두른 까닭은 그해 7월29일로 예정된 총선에서 다수의석을 확보해 제도권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그런데도혁신계는 통합하지 못하고 사분오열된 채 후보를 내는 바람에 후보자가 233개 선거구에서 156명에 달했다.혁신정당 후보가 2명 이상 출마해 서로 다툰선거구도 24곳에 이르렀다. 혁신정당에 지식인들이 활발하게 참여한 점도 각 당이 나름대로 자신을 가진 요인이 됐다.예컨대 사회대중당은 창당준비 단계인데도 대구 5개 선거구모두에 ‘반(反)이승만독재 투쟁’으로 유명한 인사들을 공천했다. 제헌의원을 지낸 혁신계의 대표주자 서상일을 비롯해 독립운동가이자 혁신계 원로인 이동화,대구매일신문사 주필 최석채(崔錫采),월간 ‘사상계’ 편집위원 출신인 양호민(梁好民),훗날 국회의장을 지내는 김수한(金守漢) 등이 그들이다.부산에서도 역시 독립운동가에 혁신계 원로인 장건상이 혁신동지총연맹 공천으로 출마해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사회대중당 공천자 121명 중에서 서상일·윤길중(강원도 원성)·박권희(朴權熙,경남 밀양)·박환생(朴煥生,전북 남원) 등 4명이,한국사회당 공천자 18명 가운데 김성숙(金成淑,남제주)만이 원내에 진출했다.이 5명을 제외한 나머지 혁신계 후보는 전멸한다. 함께 치른 참의원 선거에도 58명이 나서 사회대중당의 이훈구(李勳求,충남)와 혁신동지회의 정상구(鄭相九,경남) 2명만 당선됐다. 혁신계는 이처럼 선거에서 참패한 까닭을 ▲유권자들이 아직도 금력·권력에 영향받는 상태였고(申相楚 주장) ▲혁신계를 공산주의자와 동일시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반면 한승주(韓昇洲) 고려대 교수는 저서에서 “국민이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독재적인 지배를 거부한 것이지 반공·보수주의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고 분석했다. 어쨌든 지도부 거의 전원이 원내 진출에 실패함에 따라 혁신계는 원외 세력으로 남아 장외투쟁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됐다.그 와중에서 혁신계는 민주당의 신·구파 싸움과 다름없는 주도권다툼 끝에 갈라서게 된다. 먼저 혁신정당 통합을 목표로 창당을 준비하던 사회대중당은 김달호를 중심으로 한 진보당계만으로 축소 형성됐다.총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방조직을 선점(先占)하는 데 성공한 진보당계는 사회대중당 창당을 진보당의 재건으로 여겼다. 이에 반발해 서상일·윤길중·이동화·정화암 등 비(非)진보당계는 김성숙·고정훈과 손잡고 통일사회당을 형성한다.사회대중당은 60년 11월24일,통일사회당은 61년 1월20일 정식 출범한다. 사회대중당과 통일사회당은 혁신정당의 두 기둥으로 떠오르지만 그 성격에는 차이가 있었다.사회대중당이 급진적인 반면 통일사회당은 온건한 서구의민주사회주의에 가까웠다. 사회대중당은 61년 들어 일선조직인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民自統)’을 만든 뒤 통일과 한·미관계를 이슈로 대대적인 실력행사를 벌인다.‘민자통’의 통일론은 ‘자결의 원칙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이며 북한과의 무조건적인 협력을 주장했다. 이에 견줘 통일사회당은 민자통의 경쟁세력인 ‘중립화통일연맹(中立統聯)’을 지지했다.중립통련은 남북한 전역에서 민주적인 선거를 해 통일을 이루고,통일된 한국에는 중립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했다. 장면(張勉)정부가 반공임시특례법과 데모규제법을 제정하려고 하자 혁신계는 61년 3월22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2대 악법 반대 궐기대회’를 연다. 오후 2시에 시작된 시위는 날이 어두워지면서 난동으로 변했고 횃불을 든 시위행렬이 중앙청에서 혜화동까지 서울시가를 누볐다. 횃불시위는 제2공화국 최후의 대규모 시위였다.장면 정부는 곧바로 김달호·고정훈 등 주요 혁신계인사들을 체포한다. 장면 정부하에서 혁신계는 국회 진출에 실패해 장외 세력으로 남게 된다.그들은 급진적인 학생들과 일부 소외계층의 지원을 받아 거리투쟁에 나서지만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5·16쿠데타를 맞아 다시 기나긴 잠에 빠져든다. - 4·19이전의 상황-曺奉岩 중심 진보당 두각 대한민국 출범후 국내 정치무대에서 ‘혁신계’는 항상 소수파 또는 이단이었다.남북에 분단정부가 각기 들어서 ‘6·25전쟁’까지 치른 뒤 이 땅에는‘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보수우익 정당 아니고는 발붙이기 힘든 것이현실이었다.따라서 이에 속하지 않는 사회주의자,민주사회주의자,무정부주의자,조합주의를 따르는 노동운동가 들을 구분짓지 않고 통틀어 혁신계라고 불렀다. 4월혁명 이전 혁신계를 대표한 지도자는 죽산 조봉암(竹山 曺奉岩)이다.조선공산당 창당멤버인 조봉암은 1946년 박헌영(朴憲永)을 비판한 서신 ‘존경하는 박헌영 동무에게’를 신문에 발표하고 공산당과 결별한다. 48년 제헌의회 선거에 무소속으로 나와 당선되며 이승만(李承晩)정권에는초대 농림장관으로 참여한다.이어 2대 국회에서 부의장이 된 조봉암은 52년대통령선거에 진보적인 강령을 내걸고 출마해 79만표를 얻는다.비록 이승만의 523만표에는 크게 못미쳤지만 그로서는 정치적 입지를 굳힌 계기가 됐다. 55년 통합야당(민주당) 결성 움직임이 일자 조봉암은 참여를 강력하게 희망하지만 신익희(申翼熙) 장면(張勉) 등으로부터 거부당한다.이에 서상일(徐相日)계와 합쳐 혁신정당인 진보당 창당에 나선다.55년 12월22일의 창당준비위원회에는 조봉암·서상일 말고도 이동화(李東華) 박기출(朴己出) 윤길중(尹吉重) 등이 동참한다. 진보당은 창당에 앞선 56년 3월 대통령 후보에 조봉암,부통령 후보에 박기출을 선출한다.이들은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인 신익희·장면과 야당후보 단일화 협상을 벌이지만 두차례 만에 결렬된다.조봉암이 대통령 후보를 사퇴하는 조건으로 ▲부통령 후보를 진보당에 양보하고 ▲집권시 조병옥(趙炳玉)김준연(金俊淵)을 중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진보당 강령 일부를 수용하라고 요구한 것이다.민주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들이었다. 56년 3대 대통령선거는 신익희가 급서한 가운데 이승만과 조봉암의 싸움으로 진행됐다.결과는 이승만 504만표,조봉암 216만표로 나타났다.이후 조봉암은 이승만 정권에게 실재(實在)하는 위협이 된다. 한편 정·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서상일계가 진보당에서 이탈한다.노선상의차이보다는 대통령후보 선출 당시의 주도권싸움 탓이었다.서상일이 후보로추대받기를 원한 반면 조봉암은 투표로 뽑을 것을 주장했고 선출 결과 부통령후보로 지명된 서상일이 고사해 박기출이 대신 후보가 된 것이었다. 진보당은 56년 11월10일 창당대회를 열어 조봉암을 위원장으로,박기출 김달호(金達鎬)를 부위원장으로,윤길중을 간사장으로 각각 선출했다.정치강령으로 ▲책임있는 혁신정치 ▲수탈없는 계획경제 ▲민주적 평화통일을 내세웠고 특히 ‘공산독재를 배격한다’고 강조했다.서상일계도 57년 10월15일 민주혁신당을 창당해 독립한다.58년 5월의 국회의원 총선을 앞둔 그해 1월13일경찰은 조봉암을 비롯한 진보당 간부 전원을 간첩죄 등의혐의로 검거했다. 아울러 자유당 정권은 2월25일 진보당을 등록취소한다. 조봉암은 1심에서 징역 5년을,2·3심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북한 지령에 호응해 진보당을 결성하고 10여차례 자금을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는 판결이었다.대법원이 재심청구를 기각한 다음날인 59년 7월31일 조봉암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진보당과 비슷한 정강정책을 내건 서상일계의 민주혁신당이 어떤 규제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진보당 사건’의 성격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조봉암의 죽음으로 혁신계는 치명타를 입어 4월혁명까지 별다른 활동을 벌이지 못한다. 이용원기자
  • 野, 밀레니엄 후보론으로 與와 차별화

    “새 천년(밀레니엄)을 열어 나갈 인재를 찾아라”여권의 ‘젊은층 수혈론’에 맞선 한나라당의 전략 개념은 ‘밀레니엄 후보론’이다.새로운 시대를열어 나갈 내년 16대 총선 후보에 개혁 성향의 참신한 인사를 포진시키겠다는 발상이다. 당위성 차원에서는 여권의 ‘젊은층 수혈론’과 엇비슷하다.그러나 핵심 구상에서는 차별성을 띠고 있다.당 지도부는 현 정권의 중간평가 형식인 16대총선이 민의(民意)에 의한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야당으로서는단순한 ‘생존’이 아닌 발전적 ‘변신’의 계기가 되는 셈이다. 때문에 지도부는 ‘밀레니엄 후보론’의 전제조건을 당 체질개선과 정체성(正體性)확립을 통한 여당과의 차별화에서 찾고 있다.李會昌총재의 한 핵심측근은 22일 “당 체제나 운영방식이 비민주적이면 아무리 좋은 인재라도 함몰될 수밖에 없다”며 “여든 야든 젊은 피를 수혈하려면 체질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李총재가 최근 16대 총선을 1년 남짓 앞두고 새로운 정치비전과 21세기형 선진정치 구상을 제시하기 위한 작업에 골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李총재는 3·30재보선 이후 민생투어와 각종 강연,미국 방문 등을 통해 정리된 생각을 조금씩 내비칠 작정이다. 지도부는 특히 영입의 폭을 과거 민주화 투쟁 경력자에 국한하기 보다 기업,문화 등 미래지향적인 지식인 그룹쪽으로 넓힌다는 구상이다.특정 인물을염두에 두는 단계는 아니지만 원외위원장으로 鄭泰允 金富謙 沈在哲 鄭鎭燮鄭寅鳳 朴啓東 韓昌熙 李忠範씨,당 주변 인사로 陳永 嚴虎聲변호사,具凡會부대변인,당료 출신인 權奇均씨 등이 꼽힌다. 그러나 후보군(群)의 대폭 물갈이는 현실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자칫 엄청난 홍역과 진통으로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李총재쪽은 “교과서적 이상론과 정치 현실,특히 선거 상황과는 괴리가 있다”며 “16대 총선에서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접점을 찾아 ‘신(新)·구(舊)간’ 조화로 환골탈태(換骨奪胎)의 첫발을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찬구 ckpark@
  • ‘선량감 찾기 힘드네’-野 재·보선 인물난

    한나라당이 3월말부터 잇따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의 후보 공천을 앞두고 딜레마에 빠졌다.3월30일 서울 구로을 재선거와 경기 시흥 보궐선거,4월 이후 송파갑 재선거 등 3곳의 후보 적임자가 없어 고민이다. 구로을은 실리와 명분 사이의 괴리가 심하다.공천 신청자는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된 李信行전의원의 부인 趙恩姬씨와 李承哲 옛민주당 지구당위원장 등 2명이다.李전의원이 관리한 지구당과 지역 유지는 조직적인 득표력을 이유로 趙씨를 밀고 있다.그러나 비리사범인 李전의원에 쏠린 시선때문에 趙씨의 출마가 당의 선명성 이미지에 먹칠을 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찮다. 지도부는 沈在淪전대구고검장에게도 손길을 뻗쳤으나 본인이 고사했다.일본에 체류중인 李哲전의원도 물망에 올랐지만 본인은 감감소식이다. 시흥도 골칫거리다.당에서는 “인근 金富謙군포위원장이 출마해 준다면…”이라며 기대하고 있다.그러나 金위원장은 18일 “내년 16대 총선때 군포에서 승부수를 띄우겠다”며 “이번 보선은 피하고 싶다”고 난색을 표했다.자금난으로시달리는 마당에 승산없는 싸움에 뛰어들기가 마뜩찮은 표정이다. 인물난은 송파갑도 심하다.洪準杓의원의 대법원 확정판결이 재선거 요건인‘잔여임기 1년’을 넘겨 선거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바라는 눈치다.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소장파 사이에는 원외 부총재 등 당내 중진의 ‘전진배치론’이제기되고 있다.姜昌成 崔秉烈부총재 등이 ‘위험부담’을 감수하고라도 정국의 분수령이 될 이번 재·보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 再·補選 시기-후보 조율 고심

    여야가 서울 구로을과 경기 시흥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안양·용인시장보궐선거의 시기와 후보를 놓고 고심 중이다. 여권은 4지역중 구로을 재선거와 안양시장 보궐선거를 3월30일 먼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하지만 시흥 보선·용인선거도 같은 날 하자는 목소리도만만찮다. 국민회의 鄭均桓 사무총장은 17일 “선거를 나눠하는 불편과 부담을 줄이기위해서는 한꺼번에 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불필요한 여야간 소모전을 줄이자는 의미도 담겼다.선거전에 접어들면 여야 모두 ‘국민의 정부 중간평가’운운하며 총력전을 펼칠것이 뻔한데 두차례나 격돌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분석이다. 후보문제는 훨씬 복잡하다.구로을은 여권의 경우 국민회의 李康來후보로 사실상 확정되자 자민련의 서울지역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은 서명작업에 돌입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자민련은 시흥까지 양보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수도권 지역의 교두보를 마련하려면 시흥에서 후보를 내 당선시켜야 한다는 게 자민련의 희망사항이다. 국민회의의 생각은 다르다.수도권지역은 자민련의 간판으로는 당선이 어렵기 때문에 시흥도 자민련에 주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시흥의 후보로 국민회의는 朴炳錫 정책위원회 부의장이나 노동계 인사를,자민련은 李哲圭 전 인천 정무부시장과 탤런트출신의 韓仁守씨를 검토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구로을에는 지역구에서 지지를 받는 李信行 전의원의 부인인 趙恩姬씨와 李承哲 옛 민주당 지구당 위원장,기아자동차 노조위원장을 지낸 L씨 등을 후보로 검토하고 있다. 시흥에는 金富謙 군포위원장과 呂益九 전 민불련회장이 후보로 오르내리고있다.
  • 한나라 대표연설자에 趙淳/李會昌 총재 고심끝 결정

    ◎“경제정책 대안 집중 거론”/탈당설 등 관련 배려한듯 한나라당이 다음달 12일로 예정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자로 趙淳 명예총재를 확정했다.원외인 李會昌 총재를 대신할 적임자 선정 문제로 고민하던 당지도부는 29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전직 총재인 趙명예총재가 맡는 것이 상식과 순리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安商守 대변인이 밝혔다. 安대변인은 “경제와 예산문제가 중요한 시점이어서 경제전문가인 趙명예총재가 연설자로 나서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며 “경제 정책 대안을 집중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당내에는 徐廷和 전당대회의장이나 朴熺太 원내총무 등이 ‘대타’로 거론됐다.전 부총재 가운데 金德龍 의원도 강력한 후보자로 물망에 올랐다.최근 사정(司正)정국과 거리가 멀고 비주류 내에서 ‘구당(救黨)정신’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지도부는 그러나 趙명예총재가 金전부총재의 계보모임인 ‘21세기 국가경영연구회’의 명예회장으로 추대된 점 등을 감안,趙명예총재쪽으로 기울었다고 한다.金전부총재도 완곡하게 고사의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당안팎에서 꼬리를 무는 趙명예총재의 탈당설과 관련,李총재 등 주류쪽이 ‘당내 화합’ 차원에서 趙명예총재를 배려했다는 후문이다.
  • 民和協 3일 출범… 산파역 韓光玉 위원장

    ◎“통일 논의 국민적 합의 도출에 온 힘”/170여개 통일운동단체 묶어 남북교류 뒷받침/보수·진보노선 총망라… 명실상부한 민간 구심체 “우선 통일논의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데 진력하겠습니다” 3일 공식 출범하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의 韓光玉 상임위원장의 각오다. 韓위원장은 민화협의 5인 상임위원장단중의 한 사람이다. 하지만 새정부 내에서 그의 정치적 비중과 태동 단계에서부터 산파역을 맡아온 이력때문에 민화협의 ‘사실상 대표’로 꼽힌다. 민화협은 민간 통일단체로선 해방 이후 최대 규모다. 정부에 등록된 기존의 165개 통일단체와 미등록 500여 민간기구 중 현재까지 200여개 단체를 하나로 엮은 통일운동의 민간 구심체인 셈이다. 3일 결성식을 갖는 이 기구에는 이념적으로 폭넓은 스펙트럼의 단체들이 참여했다. 자유총연맹,이북5도민회 등 보수단체에서부터 진보적 노선의 민주노총,민변 등까지 망라하고 있다. 韓위원장은 과격 운동권 단체로 알려진 한총련에도 문호를 열어둘 뜻을 내비치고 있다. 물론 한총련이 변해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다. 특히 국민회의 등 원내의석을 가진 3개 정당도 모두 참여시킨다는 입장이다. 민간차원의 남북교류를 뒷받침하는 명실상부한 범국민적 상설협의체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다. 韓위원장은 “아직 참여를 유보중인 한나라당을 설득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질적인 단체들을 하나로 아우르다보니 ‘불협화음’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韓위원장은 타협과 조정에 능한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대선전에 金大中 후보와 金鍾泌 후보간의 이른바 DJP 후보단일화 성사의 막후 주역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선후에도 1기 노사정위원장으로서 노사정 대타협을 일궈낸바 있다. 민화협을 이끌며 남북 민간교류를 활성화하는 데 그의 ‘솜씨’가 기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특히 金大中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한 현직 국민회의 부총재다. 탁월한 ‘협상력’으로 남북 문제를 푸는 데 모종의 막후 역할이 예상된다. 실세급이면서 원외라는 독특한 정치적 위상 때문인지 그의 의사와 무관하게 앞으로 대북특사역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 한나라 당권싸움 각 진영 사분오열/“차라리 갈라서자”

    ◎흑색선전·인신공격 등 갈수록 혼탁/‘3자밀약’에 ‘음침한 거짓말’ 반박 한나라당 당권경쟁이 이전투구(泥田鬪狗)로 치닫고 있다. 정책과 비전은 자취를 감추고 흑색선전과 비방·인신공격이 난무한다. ‘네거티브식’ 난타전은 ‘李會昌 대 반(反)李會昌’의 구도로 펼쳐지고 있다. 누가 총재로 선출되든 후유증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31일 전당대회 이후 갈라서기 위한 명분을 쌓고 있다”는 말까지 나돈다. 李漢東 金德龍 徐淸源 후보 등 ‘반李’쪽은 ‘李會昌­金潤煥­李基澤’의 3자간 ‘밀약설’과 ‘강압적 줄세우기’를 연일 도마에 올리며 공세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金후보는 26일 강원·영동지역 대의원 간담회에서 “밀실에서 자리를 약속하고 공포 분위기를 만들어 위원장 줄세우기를 일삼는 정치는 새정치가 아니다”며 “특히 3자야합은 우리 당을 수구세력의 정당으로 전락시킬 것”이라고 비난했다. 徐후보도 대구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밀실야합은 심각한 해당행위이며 부실·구태 정치인은 퇴출돼야 한다”고 李基澤 총재권한대행의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李漢東 후보는 울산지역 대의원 간담회에서 “실패한 대선체제로 복귀할 수는 없다”며 “국회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여당에 맞서 강한 야당을 이끌어 갈 수 있느냐”고 반문,원외인 李會昌 후보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李會昌 후보도 맞대응을 서슴지 않는다. 홍보용 소책자를 통해 대선 패배 책임론과 서울 종로 보궐선거 불출마 논란,호화빌라 구입설 등 ‘반李’쪽이 제기한 의혹을 일일이 반박했다. 특히 다른 후보 진영을 “어둠속에서 거짓말을 퍼뜨리는 음침한 사람들”이라고 지목하고 “소규모 계파 수장이 총재가 되면 나눠먹기는 기본이고 집안싸움으로 전당대회 직후 분열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역공(逆攻)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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