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원수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침체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5만원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주원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대선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997
  • 교대 내년 6백80명 증원/서울·부산교대는 동결

    교육부는 6일 전국 11개 교육대학의 94학년도 입학정원을 93학년도보다 6백80명 늘어난 4천9백80명으로 확정,발표했다. 이번 정원조정에서는 근무여건이 상대적으로 불리해 교원수급에 차질을 빚고있는 지역소재 교육대학에 우선증원했으며 서울·부산 교육대학은 인구집중억제책에 따라 정원이 동결됐다. 정원조정 내역은 다음과 같다.( )은 93정원 ▲서울5백20명(5백20) ▲부산4백40명(4백40) ▲대구6백명(5백60) ▲인천6백80명(4백80) ▲광주4백40명(3백60) ▲춘천4백40명(3백80) ▲청주4백명(3백20) ▲공주5백20명(4백20) ▲전주3백60명(2백80) ▲진주4백60명(4백60) ▲제주1백20명(80명)
  • 미 연방공무원 감축/5년간 25만명… 전체의 12%

    【워싱턴=이경형특파원】 클린턴 미행정부는 향후 5년간 행정개혁에 박차를 가해 당초계획보다 2배이상인 25만2천명의 연방공무원을 감원하고 불필요한 행정절차 등을 간소화함으로써 1천80억달러를 절감할 것이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행정부소식통들을 인용,5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고어부통령이 이끄는 국가행정재평가팀이 마련한 정부활성화대책보고서의 주요내용을 보도하는 가운데 연방공무원 감원대상인원이 당초 클린턴대통령이 명령한 10만명에서 25만2천명으로 늘어났다고 전하고 이는 연방공무원을 12%나 감원하는 것으로 지난 66년이래 처음으로 연방공무원수가 2백만명이하로 내려가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 캄 유엔기구와 관계단절 선언/시아누크

    【프놈펜 AP 로이터 AFP 연합】 캄보디아의 노로돔 시아누크공은 4일 자신의 왕위복귀를 거부한데 이어 유엔캄보디아과도행정기구(UNTAC)와의 관계를 단절한다고 선언했다.시아누크공은 또 오는 9월15일까지 귀국키로 했던 당초 계획을 취소,의회가 자신을 국가원수로 추대하는 서면서약서를 입수할때까지 계속 중국에 머물겠다고 밝혔다.시아누크는 또 UNTAC 대표 아카시 야스시에게 보낸 서신에서 다음주로 예정됐던 북경회동을 취소했다. 서방 분석가들은 시아누크가 유엔기구내에서 제한적인 권한의 군주제 복귀만을 인정하겠다는 시사가 나오고 있는 것에 항의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 진료비/신용카드로 납부된다/행정쇄신위,개선안 의결

    ◎국공립·대학병원 가맹 의무화/민간 의료기관에도 권장키로 앞으로 국·공립병원과 대학병원,정부지정병원의 진료비는 신용카드로 납부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3일 행정쇄신위원회(위원장 박동서)를 열고 이들 병원의 신용카드가맹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의료기관 진료비 납부방법 개선안」을 의결했다. 이에따라 지금까지 진료비 전액을 현금으로 내야 했던 병원이용자들의 불편과 병원수납창구주변에서 끊이지 않던 현금도난사례가 크게 줄어들게 됐다. 보건사회부와 교육부는 이달안으로 의료기관 신용카드가맹 권장지침을 마련,이들 병원에 시달하기로 했다.정부는 민간병원에 대해서도 카드수납을 적극 유도해 나갈 방침이다. 한편 행정쇄신위는 이날 회의에서 의료보험 요양급여기간 산정방법을 개선해 피보험자가 하루동안 양방과 한방,약국등에서 잇따라 진료를 받을 경우 요양급여일수를 3일이 아닌 1일로 간주하도록 했다. 이를위해 현행 요양급여기준및 진료수가기준을 내년 1월까지 개정할 방침이다. 행정쇄신위는 이와함께 풍속영업규제법 시행령을 개정,18세미만의 미성년자라도 부모와 동반한 경우에는 노래연습장에 출입할 수 있도록 노래연습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노래연습장의 자막화면은 공연윤리위의 「미성년자 관람가」판정을 받은 화면만을 사용토록 요건을 강화했다. 행정쇄신위는 이밖에 이달안으로 외항선원의 승선허가제도를 개선해 외항선박이 국내 항구간을 이동할 경우에는 선원의 배우자와 자녀도 동승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또 일부 외국수입상품에 적용되고 있는 가격과 원산지표시제도를 중국과 동남아시아 상품에까지 확대하기 위해 올 가을 정기국회에서 대외무역법을 개정키로 했다.
  • “질문 40분서 10분으로/분야도 세분화 바람직”

    ◎국회 「대정부질문」 개선 공청회 국회운영위(위원장 김영구)는 3일 국회에서 「대정부질문 개선에 관한 공청회」를 열고 대정부질문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토론을 벌였다. 이날 공청회에서 우병규중앙선관위원,김영정적십자사부총재,김광웅서울대행정대학원장,황소웅한국일보논설위원,강경근경실련시민입법위원,김학수서강대교수,정성철정무1차관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현행 대정부질문제도는 권위주의시대의 산물이라고 지적하고 질문시간의 단축,질문의원수 확대,질문의제의 세분화,정부측 답변의 충실화 등을 개선방향으로 제시했다. 우병규위원과 김광웅원장은 『장황한 연설식 질문을 지양하고 30분인 질문시간을 10분으로 제한하고 정치,통일·외교,경제,사회·문화등으로 돼있는 질문분야를 중요 이슈별로 나누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 대통령·직계가족/관세감면도 폐지/내년부터

    재무부는 2일 대통령과 그 가족이 사용하는 수입물품에 대한 관세감면 및 사치성 물품에 대한 특별소비세감면을 폐지,내년부터 세금을 제대로 물리기로 했다. 정부는 일본의 천황에 대한 관세혜택 사례와 국제 관례에 따라 지난 73년부터 국가원수와 그 가족이 사용하는 수입물품에 대해 관세를 1백% 면제해왔다.지난해의 관세면제액은 청와대의 신축에 따른 비품에 대한 2천7백만원이었다. 한편 정부는 현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수입하는 학술연구용품에는 관세의 90%를,기증받아 공용으로 사용하는 물품에는 1백%의 관세를 감면해주나 일반적인 수입물품에는 관세를 면제해주지 않는다.
  • 교개위 개혁인사로 구성하자/김신일(정경문화포럼)

    ◎소신갖춘 인물만이 교육난제 해결/정책수립때 현장소리 최대한 반영 금융실명제의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회분위기이다. 그만큼 엄청난 경제개혁의 단행이었다.그러나 경제개혁만으로 한국사회가 새롭게 탄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동시에 모든 국민들이 갈망하고 있는 것이 교육의 개혁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현정부의 교육개혁추진을 담당할 「교육개혁위원회」가 드디어 9월중 발족될 것 같다.청와대는 지난7월29일 국무회의가 위원회의 설립규정을 확정한후 발족준비를 서둘러온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문화비서실은 25인이내로 되어있는 위원선정을 위하여 교육부를 비롯한 각부처및 여러 사회단체로부터 후보자 추천을 받아놓았으며 참신하면서도 각계각층을 대표할만한 인물을 선정하는 작업에 골몰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 가운데에도 위원장을 어떤 인물로 선정하느냐하는 것은 교개위의 성패를 좌우할 문제이므로,천거된 몇몇 인사를 놓고 저울질이 한창인 모양이다.한편 전문적 연구 조사역할을 수행할 10인이내의 전문위원 인선도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이나,위원과 위원장 인선을 마친뒤로 미루는 것 같다. 교개위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엄청날 뿐아니라 현정부가 지난2월에 출범한 이래 지난 여섯달동안 교육에 관한 핵심적인 문제는 모조리 「앞으로 구성될」 교개위로 미뤄놨기 때문에,교개위 위원들의 임무와 책임은 더욱 무거워졌다.인선의 중요성이 그만큼 더 커진 것이다. 위원장은 자신이 교육에 관한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거나 간에,위원들의 자유롭고 다양한 의사개진을 촉진시키고 일단 결정된 개혁방안은 적극적으로 실현시킬수 있는 강한 의지를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대통령의 눈치나 살피고,이 위원장 자리를 발판으로 다른 직책이나 따보려는 인사는 배제되어야 한다.대통령과 맞서서 위원회의 결정을 관철시킬만한 소신을 소유하고 있는 인사여야 한다.적어도 현 감사원장 만큼의 소신과 배짱을 갖춘 인물을 뽑아야할 것이다. 위원들은 각 분야를 대표할만한 인물을 고르되,각계 각층간의 균형을 우선으로 삼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국민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제도를 확립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한 인사들로 구성해야할 것이다.그리고 기존 교육제도와 정책 그리고 교육의 기득권층을 비호할 인물은 배제하고,강하면서도 다소간 진보적 개혁의지를 갖춘 인사를 선정해야 교육위원회 설치의 본 뜻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개혁의 방향을 설정함에 있어서 반드시 경계하여야할 두개의 위험한 주장이 있다.그 하나는 교육정책을 경제정책에 예속시켜,경제적 잣대를 가지고 교육정책을 가늠하려는 발상이다.물론 교육이라고 해서 경제와 무관할 수는 없으며,동일한 교육적 목적을 달설하는데 있어서 더 경제적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택하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물가에 주는 영향을 고려하여 교과서 값을 형편없이 낮게 책정한다거나,학급당 학생수의 기준을 설정함에 있어서 교사의 주의가 학급내의 학생들에게 미칠수 있어야한다는 교육적 기준을 무시하고 30명이면 어떻고 40명이면 어떠냐는 식의 무지한 기준설정 같은 것은 발상부터 바꿔야 한다. 경계하여야할 또하나의발상은 자유주의로 그럴듯하게 포장한 사(사)교육주의적 사고이다.우리 교육의 근본적 문제의 하나가 교육의 사유적(사유적)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의 근본적 개혁은 도외시하고 사학을 확대발전시킴으로써 교육문제를 해결하려한다거나,학교의 교육여건을 개선하는 일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중산층이상이나 가능한 학원수강을 자유화시킴으로써 교육재원이 입시산업에로 유출되도록 촉진시키는 식의 정책은 당연히 방향전환을 하여야 한다. 모름지기 교육개혁위원회는 개혁의 철학이 분명한 인사들로 구성해야 한다.어정쩡한 구색맞추기 위원구성은 모처럼의 교육개혁기회를 아깝게 놓치도록 만들 것이다.
  • 가깝고도 먼 섬 대마도(일본속의 한국문화:1)

    ◎조선통신사 뱃길따라 전파현장을 가다/부산서 50㎞… 조선사신 유적 곳곳에/임란후 통신사 12회·역관사 50회 파견/첫 경유지… 한·일 교유의 징검다리로/최근 역관사순난비 제막… 1703년 일행 112명 익사 비극 추모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문화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흘러들어갔다.그 대표적인 경로는 한반도의 남동부에서 대마도·일기도를 통한 것이었다.특히 조선시대 우리나라가 일본에 파견한 공식외교사절인 통신사는 부산∼대마도의 이즈하라∼일기도의 가쓰모토∼시모노세키를 거쳐 오고감으로써 이 경로를 「통신사의 길」로 여기기도 했다.대마도와 일기도는 이를테면 한일문화교류의 징검다리였던 셈이다. 이 문화전파로에는 아직도 체감되는 선인들의 숨결과 흔적들이 곳곳에 살아있다.광복 48주년을 맞아 현지에 남아있는 우리문화의 모습을 되새겨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집필은 박성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맡았다. 대마도 최북단 언덕위에 서서 북쪽 바다를 건너다보면 부산 영도가 보인다.특히 밤에는 부산야경이 아름답다.불과 50㎞.우리 이수로 1백20리다.지도를 보더라도 대마도는 우리 경상남도 해안에 바짝 붙어 있다.그에 비하면 제주도는 훨씬 남쪽으로 처져 있다.이렇게 가까운 대마도를 누가 먼 섬이라 했던가. ○밤에는 영도 보여 한일회담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어떤 일본인이 한국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불렀다.그래서 지금까지도 이 아리송한 말을 일본인들이 애용하고 있다.누가 두 나라 사이를 가깝고도 먼 나라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없이 마치 한국 때문에 먼 나라가 된 것처럼 들리게 한 말이 바로 이 신조어다.그래서 필자는 이 말을 싫어한다. 그러나 대마도에 대해서만은 이 말을 사용하고 싶다.일의대수란 말이 있듯이 대마도는 띠처럼 좁은 한 줄기 바닷물을 사이에 두고 우리와 마주보고 있다.대마도의 남쪽으로는 일본 구주땅이 있으나 그 거리가 85㎞이며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단지 그 사이에 또 하나의 섬 일기도가 있을 뿐이다.이 일기도가 대마도에서 50㎞다.따라서 대마도에서 일기섬은 육안으로 보인다.대마도 최북단언덕 위에 서서 필자는 엉뚱하게 이런 생각을 했다. 「만일 한·일 양국사이에 이 대마도와 일기도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어쩌면 두 나라는 서로 남남으로 아무 애증관계 없이 지낼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서로 모르는 사이로 지냈더라면 차라리 좋았을지도 모른다.서로 가깝다느니 멀다느니 할 것도 없고 「주는 것 없이 미운 나라」니 하는 말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대마도와 일기섬 때문에 지금으로부터 2천년이나 이전부터 우리 민족이 바다를 건너 일본땅으로 이주해갔던 것이다. 이 섬이 보이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건너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보이니까 배를 타고,거친 파도를 가르고 건너갔던 것이다.차라리 대마도가 좀더 한국측에 가까이 다가서 있어 대마도에서 일기도가 보이지 않았던들 더이상 남쪽으로 가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2천년에 걸친 한일관계사를 돌이켜보면 서로 육안으로 보이는 대마도의 현재 위치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섬으로 하여금 일본쪽으로 가든지 우리쪽으로 더 다가서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단지 현재 그 위치대로 과거의 잘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두 나라가 서로 헐뜯고 싸우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서로 굳게 다짐하자는 약속할 자유밖에 없다. ○애증관계 2천년 이러한 약속을 상징이나 하듯이 대마도 최북단 언덕 위에 최근 한 비석이 세워졌다.이른바 조선국역관순란지비가 그것이다.때는 1703년2월5일(음력).지금으로부터 꼭 2백90년전의 일이다.일단의 우리나라 역관사일행이 부산항을 떠나 저녁무렵 대마도 악포에 도착했다.악포란 대마도 최북단에 자리한 작은 포구인데 실제로 악어가 살았다고 해서 악포라 이름한 것이 아니라 악어처럼 무서운 파도가 몰아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이 악어의 입에 들어서기 직전 갑자기 황파가 몰아쳐서 정사 한천석이하 1백8명의 사절단이 수장되고 말았다.배안에는 정·부사를 비롯하여 상관 28명,중관 54명,하관 24명이 타고 있었고 그밖에도 안내역을 맡은 대마도 관리 4명이 동승했다. 요즘이라도 1백12명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면 큰 사건인데 하물며 당시로서는 여간 큰 사건이 아니었을 것이다.그것도 민간인이 아닌 외교사절이었으니 대마도로서는 거국적인 참사였다고 할 수 있다.역관사란 무엇인가.임진왜란 이후 통신사가 일본에 파견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나 역관사를 보낸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누구나 대마도에 가보면 놀라는 일이지만 한마디로 산투성이의 섬이다.우리나라에 산이 많다고 하지만 대마도에 비하면 양반이다.대마도는 바위에다 엷은 흙으로 도배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바위가 많은 섬이며 손바닥만한 평지에 집들이 밀집해 있는 보기에도 각박한 고도다. 이런 외딴섬이었기 때문에 한때는 왜구의 소굴이 되지 않을 수 없었고 임란 이후에는 단절된 조선과의 무역관계를 하루속히 재개하여 우리나라 쌀을 수입해야만 했다.오징어가 잘 잡힌다고는 하지만 오징어만 먹고 살 수는 없는 것.그래서 대마도주 종가는 임란후 10년만에 가까스로 기유약조(1609년)를 맺는데 성공하여 연간 2만섬에 달하는 많은 조선쌀을 얻어내게 되었다.이 쌀을 실어가기 위해 특별히 큰 운미선을 지어서 한 척에 2백가마씩 실어날랐으니 적어도 한해에 백척이상의 운미선이 대한해협을 오간 것이다. 이 2만섬이나 되는 쌀을 대마도 사람들이 다 먹지는 않았다.많은 양을 일본 됫박으로 다시 달아서 일본으로 팔아넘겨 폭리를 취했다. 그러니 이 쌀의 전매무역만 하더라도 대마도로서는 우리나라에 큰 은혜를 입은 셈인데 후술하는 바와 같이 임진왜란때 큰 배신행위를 했다.그래서 그런지 임란후의 우리나라 통신사 기록을 보면 대마도의 노련한 뱃사공 말까지도 믿지 않고 우리나라 사공의 말을 듣고서야 부산항을 떠났다. 통신사는 임란이후 2백년동안에 모두 12번 파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그도 그럴 것이 통신사일행의 총인원이 5백명에 이르고 있는데다가 서울에서 일본의 강호(현재의 동경)까지 가는 긴 여정이었기 때문에 한번 갔다하면 그 비용이 어마어마한 것이었다.물론 이 비용을 일본측이 부담하는 것이었다고는 하나 우리측으로서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19세기초 왕래 끊겨 그래서 인원수를 대폭 줄여서 1백명으로 하고 여정도 대마도의 청중(현재의 엄원)까지로만 하는 약식사절을 파견하기로 했던 것인데 이 사절을 역관사라 이름했던 것이다.이 약식사절은 무려 50여회나 파견되었다고 하니 적어도 4년마다 한번 꼴로 대마도에 파견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대마도는 임진왜란에서 일제침략기에 이르기까지 한일 두나라의 징검다리역할을 수행하였고 그 때문에 우리나라 남해안은 평온할 수 있었다.부산쪽을 건너다보면서 서 있는 조선국 역관사지비문에는 이런 글귀가 보인다 『강호시대 엄연한 쇄국체제 하에서도 일본이 유일하게 정식국교를 맺은 나라는 조선이었다.그때의 한일외교는 양국간의 신의를 바탕으로 한 선린외교였다.이제 바야흐로 고조되고 있는 한일교류의 새로운 조류를 맞이하여 지난날 두 나라 교류의 지침이던 「성신지교린」의 이념이 되살아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지당한 말이다.한일간에 통신사와 역관사가 오가던 시절에 누구보다도 우리측에서 신의와 성신을 강조하였었다.일본측의 빈번한 불신행위로 인하여 부산에 성신대를 지어 그들에게 보이기까지했었다.그러나 1811년 마지막 통신사가 대마도를 방문한 이후 부산과 악포를 있는 해협에는 뱃길이 끊기고 다시 정한론을 부르짖는 자들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이른바 명치유신정부는 대마도의 대한외교교섭권을 박탈하고 도주 종가를 도쿄에 유폐시켰다.대마도는 다시 절해의 고도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우리를 안내해준 영류혜구씨(대만문화재협회회장)는 이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왜 대마도공항에 KAL기가 오지 못하는지 의아하다는 것이다.제주도를 일본관광객에 개방했듯이 일본도 한국을 믿고 대마도를 한국관광객에 개방해야 될 것이다.그 길만이 대마도가 가깝고도 가까운 섬이 되는 길일 것이다.
  • 이인영선생(이달의 독립운동가/다시 새기는 그 충절)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13도 의병 규합… 1907년 “서울진공” 시도/12월말 8천여명 연합부대 편성·지휘/양주서 집결… 동대문밖 30리까지 진격/무기·병력 열세로 일제에 패배… 한말 15년의병사 마감 『동포들이여,우리는 함께 뭉쳐 조국의 독립을 되찾아야 한다.우리는 일본제국의 잘못과 광란을 전세계에 호소해야 한다』 ○27세 여주서 거병 이인영선생은 1868년 9월23일 경기도 여주군 군북면 교곡동에서 부친 이현상씨와 모친 한씨의 4남매중 맏이로 태어났다. 선생은 27세인 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등 압제를 강화해나가자 보다못해 유린석등과 함께 복수하기로 결심하고 여주에서 의병 5백여명을 규합,왜군과 싸웠다.1896년 여름 고종이 일제의 압력에 못이겨 의병해산령을 공포하자 선생은 할 수 없이 의병을 해산하고 경북 문경 산중에서 은둔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이후 일제는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군을 해산시킨 뒤 고종을 폐위하는등 더욱 오만무례한 행동을 자행,나라의 형세는 말이 아니었다.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 다시 일어나고 있을 때 강원도에서 의병 2천여명을 일으킨 이은찬 이구채등이 선생을 통솔자로 모시기 위해 찾아왔으나 부친의 병이 깊을 때여서 선뜻 허락을 하지 못했다.이은찬등은 나흘동안을 유숙하며 선생의 결단을 촉구하자 선생은 마침내 허락을 하기에 이른다.1907년 7월25일이었다.선생은 즉시 원주로 가 의병원수부를 설치한 뒤 관동창의대장으로 추대됐다. 선생은 곧 국내외에 격문을 발송했다.일제는 인류의 적이므로 분쇄,조국의 독립을 찾자는 내용이었다.해외동포들에게도 격문을 보내 분위기를 고조시켰으며 많은 우국지사들이 이 격문에 감동,의병으로 참가,그 수가 무려 1만여명에 달했다. 선생은 이때부터 1907년 11월까지 원주·철원등 강원 지역에서 38차례나 일군과 항전했다. ○일군 접전 38차례 선생은 시골에서 아무리 일군과 싸운다해도 서울을 일군이 장악하는 한 국권회복은 멀다고 판단,전국의 의병을 하나로 뭉쳐 서울로 진격시키는 전략을 굳혔다.산발적인 의병활동을 대규모 연합의병부대로 통합,일거에 일군을 패퇴시키려는방책이었다. 각 의병대장에게 1907년 11월 경기도 양주로 집결하라는 전갈이 전달된다.선생은 13도 창의대진소 원수부가 설치된 뒤 의병장들의 협의끝에 만장일치로 총대장으로 옹립됐다.선생도 이를 쾌히 승락하고 조직을 정비,관동군(강원도지역)6천여명과 진동군(경기·황해지역)2천여명을 축으로 연합대부대를 편성했다. 서울 진격일을 12월말로 정한 선생은 예하 각 의병대장들에게 경기 양주군 구리면 수택리 일대에 진주토록 했다. 선생은 각 의병진에서 결사대원 3백여명도 엄선했다. 선생은 공격개시에 앞서 심복부하인 김세영에게 격문원고를 작성,서울에 가 이를 인쇄토록 지시했다.인쇄된 격문은 김세영이 직접 서울주재 각국영사관에 전달하게 했다. 선생은 이 격문에서 을사조약의 폐지와 13도 창의대진소를 교전단체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한 뒤 2천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동대문밖 30리 지점까지 진격한다.그러나 이때 이미 일군은 수천명의 보병과 기마병으로 망우리 일대 군사요충지를 선점,기다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결사대원이 앞장서 싸웠음에도 연발총무기로 무장하고 정규군대 훈련을 받은 일군 앞에는 불가항력이었다.선발대 의병은 항일 일념으로 전투에 임했지만 열악한 화살총으로는 패전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선발대는 설상가상으로 각도 의병진들이 기일내에 도착하지 않아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이게 됐다. 선생은 눈물을 머금고 망우리고개를 넘지 못한 의병대에 후퇴명령을 내리고 패전의 진용을 재정비할 무렵 부친의 사망소식을 접하게 된다.1907년 12월25일(양력 1908년 1월28일)이었다.선생은 허위군사장을 불러 군무를 위탁하고 총대장직을 사퇴한다.3년상이 끝나면 다시 합세하겠다는 뜻을 알리고 그날로 문경 고향집으로 달려간다. ○42세때 체포·순국 선생이 부친상을 치르고 있을 때 후임 의병총대장 허위는 소요산까지 퇴군하게 되었는데 일군이 산을 태워 공격하는 화공작전으로 나와 의병들은 1908년 5월14일 포천 영평에서 체포되는 신세가 됐다.의병 15년사의 대미를 장식하려던 서울공략계획은 이로써 무산돼 버렸다. 선생은 이후 시영으로 이름을 바꾸고 경북 상주,충북금계동으로 피신생활을 하면서 3년상이 끝나는대로 다시 의병을 일으키려고 마음을 먹었다.그러나 부친의 묘를 성묘하는 것이 단서가 돼 1909년 6월7일 금계동에서 9명의 일군헌병에게 붙잡혔다. 일본 헌병의 가혹한 심문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견뎌낸 선생은 『당시 전황이 그러한데 어찌 부친이 사망했다고 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부모의 상을 치르는 것은 조선의 규칙인데 이를 행하지 않으면 불효요 부모에 효도하지 않는 자는 금수와 같으며 금수는 신하가 될 수 없다.그러면 그것이 바로 불충인 것이다』고 답했다. 선생의 마지막 소원은 일왕과 만나 담판을 짓는 것이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1909년 9월20일 사형이 집행됐다.42세때였다. 정부는 선생의 업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효자동 사랑방」 오늘 문연다

    ◎역대 대통령비서실장 공관… 5백50평/서울변천사 한눈에… 국빈들 선물 전시 「효자동 사랑방」이 2일 상오 9시부터 일반에게 개방된다. 역대 대통령비서실장의 공관으로 쓰던 집을 서울시가 다듬고 꾸민 효자동 사랑방은 5백50평의 부지에 2층 건물로 1층 문을 열면 서울6백년 전시실과 시정홍보실이 나온다. 5백99년전에 태조가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길때부터 조선왕조 5백년의 변천,근·현대를 거쳐 오늘의 서울이 있기까지의 흐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2층으로 올라가면 단연 인기를 독차지할 국빈선물전시실이 나온다.이곳에는 그동안의 대통령들이 재임기간중 외국의 원수등으로부터 받은 선물들로 가득하다.모두 1백10종 1백98점의 희귀선물. 박정희,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과 김영삼대통령이 받아 민속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3백70여점가운데 고르고 고른 선물들이 권역별로 전시돼 있다. 또 장신구들만 모은 전시관과 북한관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선물들은 넥타이핀·기념주화·브로치등에서부터 상아조각품·산돼지 이빨·주류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대부분 상대국의 민속품이거나 그 나라를 잘 상징할 수 있는 것들로 국가원수에게 보내진 물건들인 만큼 민속과 섬세한 공예를 알기에는 그만이다. 김영삼대통령이 취임 6개월여동안 받은 선물 52점가운데 8점이 전시돼 있다.나카소네전일본총리로부터 받은 「정치와 인생」한글판 책이 눈에 띈다. 북한관은 노태우전대통령이 연형묵북한총리로부터 받은 선물등이 전시돼 있는데 불로술·들쭉술·인삼주·자개원형함·은수저등이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박정희전대통령이 태국총리로부터 받은 「승전고」.70㎝쯤 되는 상아뿔과 양끝에 징이 달려 있는 승전고는 사랑방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서울시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용시간은 매일 상오9시부터 하오6시까지 개방된다.월요일은 휴관.
  • 내년도 세제개편 정부안 요지

    ◎양도세 감면한도 1억으로 축소/신용카드 매출액 공제 전업종 적용/손자·손녀 상속·증여세액 20% 할증/상속­증여세 누진율 최고 50­55%로 인하/위스키·럼 관세 96년부터 20%로 낮춰 재무부는 1일 올해의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세제개편안의 주요내용을 간추린다. ▷실명제 세제보완◁ ▲세율 및 공제액조정을 통한 세부담 줄이기 ○소득세 세율인하 및 공제액조정=과세표준(소득액에서 기초공제등 각종 공제액을 뺀 금액)에 따른 소득세율은 다소 낮아진다.과세표준이 4백만원이하일 때는 5%로 같지만 8백만원까지는 현재의 10%에서 9%로,1천6백만원까지는 20%에서 18%로 부담이 줄어든다.또 3천2백만원까지는 27%,6천4백만원까지는 37%,6천4백만원초과는 47%로 각각 현재보다 3%포인트씩 낮아진다. ○상속세 및 증여세 누진세율완화=5단계의 상속세율은 변함이 없고 최고세율을 제외한 세율도 현재와 같지만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세율기준을 다소 올렸다.상속세 10%를 현재의 2천만원이하에서 5천만원이하로,20%를 2억원까지에서 2억5천만원까지로 각각올렸다.상속세 30%의 기준은 현재의 2억∼5억원에서 2억5천만∼5억5천만원으로,40%의 기준은 5억∼10억원에서 5억5천만∼10억원으로 올렸다.10억원이상일 때 현재는 상속세가 55%이지만 50%로 낮아진다.증여세도 세율 15%를 적용받는 금액이 현재의 1천만원이하에서 2천만원이하로,25% 적용은 1천만∼9천만원에서 2천만∼1억5천만원으로 오른다.35%는 2억5천만원까지에서 3억원까지로,45%는 2억5천만∼5억원에서 3억∼5억원으로 오른다.5억원이상일 때의 증여세 세율은 60%에서 55%로 낮아진다. ▲중소제조업에 대한 법인세·소득세경감=중소제조업체에 대해서는 올해말로 끝날 예정이었던 조세감면제도를 계속 적용받을 수 있게 한다.올해까지는 세액감면율이 20∼40%이지만 20%로 단일화된다. ▲사업자의 부가가치세 부담경감 ○부가세 매입세액 공제요건완화=재화나 용역의 공급때 세금계산서를 받지 않아도 관계자료에 의해 거래사실이 확인되면 매입세액공제를 해준다. ○신용카드 세액공제대상확대=현재는 음식·숙박업·소매업·서비스업을 하는 사업자의신용카드에 의한 매출분에 대해 매출금액의 0.5%를 내야 할 부가세에서 공제해주고 있으나 모든 업종으로 확대한다. ▲기업경영여건 및 재무구조개선 ○초과유보소득 과세완화=현재 비상장 대법인은 법인세후 배당이 가능하지만 주주에게 배당하지 않고 사내에 유보시킨 금액의 40%를 공제한 나머지에 대해 15%의 세금(초과유보소득에 대한 법인세)을 내고 있지만 앞으로는 초과유보소득의 50%나 자본금의 10%중 큰 금액만큼 공제한뒤 15%의 세금을 내도록 해 기업의 부담을 줄였다.예컨대 주주에게 배당하지 않고 사내에 유보시킨 금액이 1백원일 때 현재는 60원에 세율 25%를 곱해 15원을 내야 하지만 앞으로는 자본금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50원에 세율 15%를 곱한 7.5원만 내면된다. ○중간예납기간조정=법인세의 중간예납기간을 60일로 연장하고,중간예납때 내지 않은 세금을 현재는 납부기한이 지난때부터 20일내에 내야 하지만 30일로 연장해 기업의 자금부담을 줄인다. ○기업회계와 세무회계 차이조정=할부와 연불로 되어 있는 것을 할부판매로 통합한다.현재는 이자지급의무가 확정된 때 손비로 처리하지만 앞으로는 지급이자를 내야 할 때가 아니더라도 기간경과분은 비용으로 인정한다.부동산등 고정자산에 대한 임의평가제도를 없앤다. ○가산세완화=소득탈루혐의가 명백할 때 산출세액의 20%를 가산세로 내야 하는(중과소신고가산세) 것을 없애고 가산세는 10%(일반과소가산세)로 통합한다.액면가액 5백만원이하의 공모설립법인 및 장외등록법인 주식소유자의 이동상황은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가지급금 규제강화=차입금비율에 관계없이 업무와 관련없는 가지급금에 대한 차입금이자는 모두 손금에 넣지 않도록 해 기업자금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다. ▷조세지원제도◁ ▲일반 조세지원의 축소 ○세액감면제도 축소=창업중소기업·농공단지입주기업·의료취약지역신설병원·위탁영농회사·사업전환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소득세 또는 법인세를 현재는 3년간 1백%,2년간 50% 줄여주는 것을 5년간 50% 감면으로 한다. ○증자소득공제제도 축소=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국내법인이 자본을 증가한 경우 중소기업은 증자금액의 12%까지 공제해주던 것을 일반기업처럼 10%로 한다. ▲양도소득세 비과세·감면 축소 ○공공사업용지에 대한 양도세 감면축소=국가등 공공사업 시행자에게 공공사업용지로 처분하는 경우 50∼1백% 감면해주던 것을 30∼75%로 감면율을 줄인다.감면율은 5년이상 보유한 경우는 50%로(채권보상분은 75%),5년미만은 30%(채권보상분은 45%)로 줄어든다.토개공·주공·도시개발공사·농어촌진흥공사 또는 컨테이너부두공단등에 토지등을 양도하는 때도 지금은 양도세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앞으로는 양도세 감면혜택을 볼 수 없다. ○공공법인이 양도하는 토지에 대한 양도세 감면대상축소=토개공·주공등이 공공사업시행자로 조성한 토지가 아닌 개별적인 필요로 갖고 있는 토지의 양도세 감면을 없앤다.토개공등이 공공사업시행자로 택지나 공단등을 조성해 양도하는 경우는 현재와 같이 50%의 감면혜택을 계속 본다. ○주택용지로 양도하는 토지에 대한 양도세 감면율축소=현재는 국민주택 건설용지로 주택건설등록업자가 기업에게 양도하는 경우50%를 감면받고 있으며,기숙사 건설용지로 기업이나 기숙사 운영사업자에게 양도후 기숙사 건축때 양도세를 전액 돌려주고 있으나 앞으로는 5년이상 보유일 때는 30% 감면으로,그외는 20% 감면으로 감면율이 줄어든다. ○주택을 신축해 분양하는 건설업자가 같은 단지 또는 동일건물내에 주택과 상가를 함께 지어 분양할 경우 상가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양도세를 내야 한다.주택양도 차익에 대해서는 현재와 같이 양도세를 내지 않는다. ○양도세감면 종합한도액축소=개인의 양도세감면 종합한도액은 세액기준으로 3억원에서 1억원으로 줄인다.법인의 양도세감면액도 현재는 사업연도별로 양도세 산출세액의 70%를 한도로 하고 이 부분을 넘는 부분에 대해서만 과세하고 있지만 50%로 줄인다. ○농지양도차익에 대한 양도세감면범위축소=8년이상 재촌자경한 사람이 농지를 처분한 경우 양도세 감면종합한도를 적용받지 않고 전액세금을 내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는 이때도 양도세 감면종합한도를 적용받는다.법인도 현재는 8년이상 경작한 농지를 처분하면 전액 비과세되지만 법인의 자경농지에 대한 양도세감면은 영농을 목적으로 하는 농업생산법인이나 영농조합법인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공공법인에 대한 세율인상 및 범위축소 ○공공법인에 대한 세율조정=과세표준 3억원이하의 경우 세율을 18%로 1%포인트 높여 일반법인의 낮은 세율과 같게 한다. ▷상속·증여세제◁ ▲공익법인을 통한 우회적인 상속·증여규제 ○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연하는 경우 감면범위축소=의결권 주식의 면세범위를 주식발행법인 주식발행총액의 5%로 줄인다.내년부터 출연·취득하는 경우부터 적용한다.기존에 5%를 넘는 법인은 내년부터 새로이 얻는 주식에 대해 적용한다. ○공익법인의 특수관계자 이사취임 허용범위축소=공익법인의 출연자 및 그 친족등 특수관계자의 이사취임허용은 학술·장학·의료·사회복지법인은 이사인원의 20%로,학교법인은 40%로 줄인다.출연자 및 그 배우자·직계존비속의 경우 한 사람에 한해 이사취임을 허용한다.내넌부터 설립되는 공익법인부터 적용되며 기존법인은 1년간 경과조치후 개정규정을 적용받는다.○공익법인에 대한 주무관청과 국세청의 업무협조=주무관청은 법인 설립허가자료·재무검사결과등 과세자료를 국세청에 통보한다. ▲사전상속이나 변칙증여에 대한 과세강화 ○상속·증여세의 조세시효기간을 현재는 일반적인 경우는 5년으로 되어 있지만 이때도 무신고·허위신고 경우처럼 10년으로 늘린다. ○세대생략 상속·증여에 대한 할증세율 적용제도 신설=친족관계에 있는 피상속인과 상속인 또는 증여자와 수증자간에 2세대이상 차이가 있는 때는 일반 상속·증여때의 세액에 20%를 추가해 할아버지가 1세대를 넘어 손자에게 직접 상속·증여함으로써 아들이 부담해야 할 상속·증여세를 내지 않으려는 것을 막는다. ○명의신탁에 대한 증여세 과세때 회피목적이 되는 조세의 범위=명의신탁으로 증여세대상이 되는 조세회피의 범위를 상속·증여세를 내지 않으려는 경우는 물론 소득세·법인세·재산세·종합토지세 등 다른 세금을 회피할 목적인 경우도 분명히 한다. ○특수관계 없는 사람에게 신주 인수권을 싼 가격으로 배정할 경우도 증여세를 물린다. ○상속세 공시대상이 되는 고액상속자범위를 현재는 신고된 상속재산가액이 50억원이상으로 조세회피가능성이 높은 경우로 되어 있지만 30억원이상으로 늘린다. ▷소비세제 개선 ▲특수소비세 ○사치성 서비스업에 대한 과세강화=투전기 설치장소에 대한 입장세는 현재 1천원에서 2천원으로 오른다.카지노의 경우 한국사람은 3만원에서 5만원으로 오르지만 현재 외국인만 출입이 허용되므로 현단계에서 실익은 없다. ○무허가면세제도중 일부폐지=국가원수 및 그 가족이 사용하는 물품에 대한 특별소비세 면제제도가 폐지된다. ▲주세 ○혼합위스키의 주세는 현행 80%에서 내년부터는 1백%로,현재 30%인 위스키의 관세는 96년부터는 20%로 낮아진다.럼·진·보드카·리큐르·기타브랜디의 관세는 현재는 40%이지만 내년부터는 30%로,96년부터는 20%로 각각 낮아진다.내년 1월의 청주 수입개방에 따라 알코올 도수 25도미만인 기타주류의 세율이 50%에서 70%로 높아진다. ○탁·약주 공급구역제한폐지=주조기술과 수송수단의 발달로 제품의 보존성이 향상되었으므로 현재 탁주의 경우 소재지지역의 시·군으로,약주의 경우 소재지지역의 도로 되어 있는 공급구역제한을 없앤다.
  • 재산공개 D­7… 여의도 “태풍전야”

    ◎“새달 7일 공개” 확정이후의 풍향/“1차보다 갑절이상의 치명타” 긴장/윤리위,의혹 없애려 전원실사 방침/서류미비의원 2백55명 막바지 “보완” 국회의원들의 재산공개시기가 다음달 7일로 확정됨에따라 선양들의 재산은 지난3월 1차 공개에 이어 또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 전망이다.이미 6명의 희생자를 낸 뼈아픈 경험을 가진 정치권은 이번에도 몇명이 「정치적인 사형선고」를 받을 것인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와관련,국회주변에서는 『지난번 「정치적인」 재산공개 때와 달리 이번에는 「법적인」 재산공개인데다 허위신고시 엄격한 처벌규정도 있는만큼 정치생명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는 의원수가 1차때에 비해 최소한 두배이상은 될 것』이라는 얘기가 점차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어 의원들의 불안감은 옆에서 보기에도 딱할 정도다. 따라서 공개이후 실사과정등을 거쳐 문제의원들이 다수 발생할 경우 정치권은 다시한번 「태풍권」에 휩싸일 것으로 관측된다.그리고 이것은 실명제와 맞물려 당직개편은 물론 「정치판 새로짜기」와 무관치 않을 가능성도 있다.물론 여기에 대한 징후는 아직까지 없다.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위원장 박승서)는 30일 2차 전체회의를 열어 이같이 공개시기를 결정하고 공개방법등도 확정했다.국회의 재산공개대상은 의원 2백92명(황인성국무총리등 각료5명과 8·12보선당선의원 2명제외)을 포함,모두 3백31명이다. 이중에서도 윤리위 첫회의때 등록서류보완지시를 받았다는 2백55명의 사후조치가 관심을 끄는 사항.물론 지시내용은 대부분 단순한 서류작성의 오기나 자동차가액의 총액합산,증빙서류미비등 그야말로 「사소한」것들이라는 지적이 높다. 윤리위원인 박헌기의원(민자)은 『2백55명이라는 숫자는 실무자선에서 무조건 서식과 맞지않는다는 이유로 작성한 초안』이라며 『실제 보완지시를 받은 의원은 반도 채 못된다』고 귀띔,이를 반증했다.그러나 실제 보완지시를 받은 의원들의 유형은 각양각색. 자신의 부동산을 담보로 한 비상장회사채무를 「보증채무」란 항목으로 등록했다가 개인채무와 법인채무는 구분해야된다는 요지의 보완지시를 받았던 P의원은 『비록 법인채무형식이지만 전적으로 소유자인 내가 부담할 수 밖에 없는 부채』라며 비고란의 보증채무 글자만 지웠다. 골프장회원권과 관련,팩시밀리로 증빙서류를 첨부했다해서 지적을 받은 C의원은 비서관을 골프장에 직접 보내 서식을 떼왔다.또다른 C의원은 자동차가액을 총액에서 빼고 서류를 재작성,윤리위에 넘겼다.수작업 지적을 받은 L·K·P의원등은 내용에는 일체 손대지않고 워드프로세서로 재산목록을 기술했다.K의원은 부동산목록을 「…외 몇필지」로 서술했다가 이번에는 하나하나 자세히 적었다. 이와함께 재산실사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끄는 대목.공개직후 3개월동안 충분한 시간이 있는만큼 공개·비공개 대상을 가릴 것 없이 전원심사한다는 게 윤리위의 굳은 방침이다. 한때 검토했던 선별심사는 의혹이 제기될 소지도 많아 전원심사로 쉽게 합의됐다는 후문이며 다만 비공개대상자는 윤리위가 다른 기관에 위촉,실사를 벌이도록 한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 군주제 부활안 포함/캄 2개 헌법안 마련

    【유엔본부·싱가포르·프놈펜 AFP 연합】 캄보디아 과도연정의 공동총리 훈 센과 노로돔 라나리드공은 27일 국가원수 노로돔 시아누크공에게 군주제 부활안을 포함한 2개의 헌법안을 다음주 제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두 총리는 이날 싱가포르를 방문중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헌법채택을 위한 다음주 의회 개회에 앞서 공화제와 입헌군주제를 각각 골자로 하는 2개 헌법안을 시아누크공에게 제시키 위해 다음주 평양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주제 부활과 관련,이 안을 입안한 푼신펙당의 지도자인 라나리드총리는 부친인 시아누크공이 이를 수락할 것으로 예상치는 않으나 『캄보디아의 안정을 위해 모든 정당을 초월한 인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훈 센 총리의 소속당인 캄보디아인민당(CPP)은 이날 성명을 통해 어떤 형태로든 시아누크공의 국가원수직을 지지하며 『입헌군주제를 포함한 헌법안의 원칙들과 관련해 라나리드총리의 결정들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 전 전대통령 대 국민 발표 전문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새정부 출범과 함께 국민 모두가 심기일전해서 열심히 땀흘려 일하고 계신 이때,제가 새삼 재임중의 일에 관해 번거롭게 말씀을 드리게 된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요즘 일기가 불순하여 농사마저 어려워져서 농민 뿐만아니라 많은 국민의 걱정이 더해가고 있는 터에,그동안 정부가 두번이나 바뀐 6∼7년전의 일이 또 다시 시비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대해 그저 민망할 따름입니다. 평화의 댐 건설은 제가 현직에 있을때 대통령으로서 정책판단을 하고 결정했던 일입니다. 평화의 댐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지난 수년간 국회의 본회의와 관련 상임위원회,특히 1988∼89년의 국회특별위원회 등에서 되풀이 다루어졌고 더러는 일부 정당차원에서의 조사도 있었던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평화의 댐 축조에 관계했던 공무원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필요한 자료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답변을 했던 것으로 알고있으며,저 자신도 1989년 12월의 국회증언에서 말슴드린바 있습니다. 그러나 근자에 이르러 정치권과 언론등에 의해 다시 평화의 댐에 관한 의혹들이 잇따라 제기되었고,저 스스로는 침묵으로 일관한 결과 많은 사실들이 왜곡인식되고 있으며,이것이 정부의 안보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우려도 없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안보와 관련된 문제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현상을 전직 대통령으로서 모른척 할 수 만은 없고,또 그것이 저와 관계된 사안인 만큼,이 기회에 평화의 댐 축조를 결정하게 된 경위와 배경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역사를 돌아볼때,조선왕조 선조임금때 일본에 갔던 통신사가 『일본이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고,율곡 이이선생이 10만양병을 제창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다 아는 일입니다. 그때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비록 국고가 다소 축이 나고 민생이 어려워졌을는지는 몰라도 왜적의 침입을 받아 수년간 전국토와 백성이 유린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파적 입장때문에 『침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잘못 보고한 통신부사의 말을 따른 결과 엄청난 국난을 자초한 셈이 된 것입니다. 만일 그때 10만의 군사를 길러 대비했으면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침략을 당했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세의 우리들은 어떤 선택이 옳았다고 해야 하겠습니까. 영세중립국도 군대는 갖고 있고,수 백년간 전쟁을 모르고 살아온 나라들도 만일의 외침 가능성에는 철저히 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1953년 휴전이래 북한의 전면남침이 없었다고 해서 40년동안 매년 국가예산의 3분의1을 방위비에 투입하여,북한의 전면전도발에 대비하도록 한 역대 대통령들의 정책판단이 단순히 「세금의 낭비」를 가져왔다고 비난할 수가 있겠습니까. 옛말에 『한나절 싸움에 이기기 위해 1천일에 걸쳐 군사를 기른다』(양병천일 용어일일)고 했는데,9백99일동안은 전투가 없었다고 해서 공연한 정성과 시간을 투입했다고 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국방문제는 본질상 그러한 측면이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 북한이 금강산주변의 산악지대에 길을 닦고 도수터널 공사를 하는 등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정보를 국내외 관계기관으로부터 처음 입수한 것은 1986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어 같은해 4월에는 북한의 방송이 금강산 발전소계획을 확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뒤 저들이 댐 공사의 착수를 공식 발표한 10월까지 수개월동안 북한의 동향과 의도를 면밀히 주시,분석한 결과 금강산댐이 군사적 목적으로 만드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판단의 근거는 첫째 그들이 전력과 산업용수 확보를 위해 댐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화력발전소를 만들거나 다른 지역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경우와 비교해서 전력생산단위가 3∼4배 높다는 계산이 나온 것입니다. 다음으로 댐이 완공되면 그들 주장대로 산업용수 확보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댐 건설로 인해 금강군등의 농경지가 수몰되어 22만t 정도의 미곡감산이 예상되는 바,이것은 채산성이 안맞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처럼 경제성도 채산성도 없는 댐을 만들기 위해 그 험준한 지역에 인민무력부 주도 아래 수만명의 군병력을 동원해서 난공사를 강행하는 뜻은 분명히 군사적 목적 때문이며,그것은 우리에게 곧 수공의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당시 북한은 10만 병력의 상호감축을 제의했는데,이것도 감축된 병력을 댐공사에 투입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했으며,실제 그들은 5만명을 초기공사에 투입했던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북한공산주의자들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집단인가 하는 사실과,또 그들이 우리에게 기상천외 하고 악랄한 도발과 위협을 얼마나 많이 되풀이 해 왔는가 하는 점은 전 세계가 다 아는 일입니다. 6·25는 물론 1·21사태,남침용땅굴,아웅산 암살 폭파사건,KAL기 폭파사건 등 전쟁광이나 할 수 있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 바로 저들인 것입니다. 이처럼 수많은 전과가 있는 북한이 우리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보인다면,그들의 숨겨진 의도가 무엇인가 따져보고 대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위에 열거한 사건 가운데 그 어느 것 하나도 자신들의 소행임을 인정하기는 커녕,모두가 우리의 자작극이라고 덮어 씌워왔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북한이 서둘러 착공한 금강산댐이 인위적으로 폭파되거나 사고로 무너질 경우 한강수계에 큰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그들의 선의를 믿고 팔짱을 끼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설혹 「수공의도가 전혀 없다」는 그들의 말을 믿어 주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 믿음이 1백% 확실한 것이 아니고,다만 1%의 의심이라도 남는다면,그리고 그 1%가 우리의 생존권에 위협이 된다면 국가안보를 책임진 대통령으로서는 대응책을 찾아 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그 시기는 북한공산집단이 방송등 그들의 선전매체를 통해 『서울올림픽을 결코 수수방관하지 않겠다』고 되풀이 위협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의 고위당국자들이 「금강산댐을 만들어서 비상시에 문을 열어 놓으면 서울 시내에서 물에 잠기지 않는 아파트는 하나도 없다」「남조선 것들이 올림픽한다고 우쭐대지만 금강산댐만 만들어 놓는 날에는 서울이 물바다가 될것」이라고 공언했다는 사실을 귀순한 북한관리들이 증언한 바 있습니다. 10여일 전에 귀순했다는 북한군 장교도 엊그제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이 인민무력부에 대해 인민군의 전투 준비완성에 큰 몫을 할 금강산댐의 건설을 지시했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들이 귀순한 것은 제가 이미 퇴임하고 서울올림픽이 끝난 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정권안보를 위해 금강산댐의 수공가능성을 조작했다」고 비난 받는 저를 변명해주기 위해 없는 말을 만들어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오늘에 와서는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우리가 얻을 수 있었던 여러 이점들을 지난 몇년간 헛되이 흘려 보냈다는 반성이 있지만,어쨌든 서울올림픽이 우리의 국가발전과정에서 선진국 도약의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저는 지금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서울올림픽을 반드시 성공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당시 우리의 시대적 과제요 국민적 합의였습니다. 아시아 경기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1986년에서 올림픽 때까지의 그 엄청났던 민족적 열의와 고조된분위기가 너무도 허무하게 사그라져 버린 오늘의 시점에서는 실감하기 어렵지만,그때 우리는 올림픽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였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대회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를 연달아 반쪽 올림픽으로 치른 국제올림픽 관계자들도 혹시나 서울올림픽마저 북한의 방해때문에 실패하지 않을까 크게 걱정하고 불안해 했습니다.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소련을 비롯한 동구가 붕괴된 오늘의 상황에서도 북한의 호전적이고 경직된 자세는 변함이 없지만,1986∼87년 당시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승천하는 용」이라는 찬사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던 우리와의 체제경쟁에서 결정적 열세에 몰린 나머지 극도의 초조감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국운이 뻗어 오르던 그 소중한 시기에,만에 하나라도 북한의 침략기도를 사전에 봉쇄하지 못해서 전쟁이 일어날까봐 애를 태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가안보를 확고히 해야 할 대통령으로서 최악의 상황,있을 수 있는 모든 위협의 가능성까지 철저히 점검해야 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정부가금강산댐에 관해 처음 발표할때 2백억t이라고 한 것은 정보입수 초기에 댐건설 현장으로 추정되는 위치의 지형자료등을 토대로 계측한 그 지역의 용적의 최대치라고 이해했으며,나중에 외국전문기관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와도 일치한 것으로 보고 받았습니다. 북한이 겉으로 내세우는 건설목적과 규모야 어쨌든 일방적 댐건설이 공유하천이용에 관한 국제관례에도 어긋나는 일인 만큼 정부로서는 공사를 중단하라고 여러차례 촉구하였습니다. 금강산댐이 그들 주장대로 전력과 산업용수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우리 쪽에서 전력을 공급하는등 충분한 보상을 해 주겠다는 대안도 제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우방 여러나라는 물론 국제연합과 세계 대댐 학회등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의 일방적이고 무모한 댐건설을 중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이러한 모든 제의를 묵살한 채 공사를 강행하였습니다.그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전쟁을 각오하고 금강산댐 공사현장을 폭격할수는 없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불가피하게 정부는 대응댐의 축조를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측이 공사에 관한 사항을 극비에 부치고 있어서 그 시점에서는 댐의 정확한 위치나 규모등을 모두 추정밖에 할 수 없는 형편이었고,따라서 우리측도 대응댐에 관해 실무자사이에 여러가지 다른 의견들이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대응댐 공사를 2단계로 나누어 추진하자는 데는 쉽게 합의를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1단계로는 우선 북한이 3억t 정도 가물막이 공사를 끝냈을때의 위력에 대비하는 규모로 댐을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1984년 홍수때의 수량 9.4억t과 북한의 가물막이댐 3억t을 합쳐 12.4억t 정도의 수량이 될 것인바,이에 대응하는데에는 평화의 댐 5.9억t과 화천댐등 기존댐의 수위조절 저수량 7억t을 합친 12.9억t으로서 최소한의 응급책은 된다고 계산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2단계공사는 금강산댐의 최종적인 규모를 확인해가면서 그들의 공사 진도에 맞추어 추가하여 순차적으로 추진할계획이었던 것입니다. 현재 1단계 공사가 끝난 상태로 있는 평화의 댐이 물을 담고있지 않은 모습으로 있어서,일부에서는 「막대한 국민성금을 삼긴채 쓸모없이 서 있는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이라고 비판적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만,덩그렇게 그런 모습으로 서 있는것 자체가 평화의 댐의 본래의 「쓸모」인 것입니다. 발전을 하거나 산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댐이 아니라 유사시 북으로부터의 수공을 막는 일종의 「방벽」의 성격이 그 1차적 기능인 만큼 일반적인 댐의 모습과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최근 대전 엑스포 현장에서도 몇시간의 호우로 인해 적잖은 지장을 초래했었고,서울의 한강변은 몇년에 한번씩 홍수가 져 큰 물난리를 겪는것이 우리 실정인 것입니다. 1984년 홍수때에는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소양댐이 범람하고 파괴되더라도 수문을 열지않고 버텨야 하느냐,아니면 서울이 물바다가 되더라도 수문을 열어야 하느냐하는 심각한 기로에 섰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와 비슷한 상황에서는 2백억t이 아니라 수억t만 더 쏟아져내려와도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금강산댐으로부터 2백억t의 물이 쏟아져 내려오거나 70억t의 물이 쏟아져 내려오거나 서울이 마비될 정도의 피해를 입게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1단계 공사를 조기에 착공한 것은 북한이 초기에는 5만 병력을 투입했으나 1986년 가을에는 15만명의 투입을 결정하는등 공사를 급히 서두르는 징후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이러한 동향은 단기적 군사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았고 그것은 곧 서울 올림픽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하는 우려를 갖게 한 것입니다. 당국의 분석으로는 3억t 정도의 저수량인 가물막이 댐은 북한이 5개월 안에 만들수 있다는 계산이었고 따라서 정부로서는 올림픽이 열리는 1988년 우기이전에 최소한 10억t 안팎의 수공만이라도 막을 수 있는 5.9억t 규모의 1단계 댐을 조기착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일부 잘못 알려져 있듯이 공사를 하다가 흐지부지 중단된 것이 아니고,예정했던 1단계 공사는 당초 계획대로 1988년 6월에 완공된 것이며,현재도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북한쪽의 공사진도에 따라서는 2단계 공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계획이 서 있는 것입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화천댐등 우리의 기존댐만으로도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평화의 댐은 불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으나,그것은 비현실적인 얘기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다시 말하면 북한의 수공에 대비해서 우리의 댐들을 모두 비워놓고 있어야 하는데,그로인한 경제적 손실은 평화의 댐을 만드는 비용보다 더 많을 뿐 아니라 화천댐은 수공을 받으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지질학적 분석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제가 듣기로는 지난해에만 해도 김일성과 김정일이 금강산댐에 관한 교시를 발표하고 건설사령관인 인민무력부장에게 군병력의 집중투입을 지시하는등 직접 공사를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금강산댐과 수공위협의 가능성은 분명히 실체가 있는 것입니다. 평화의 댐이 지금은 우리의 시급한 관심사가 아니라고 해서,또 평화의 댐을 건설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지금에 와서는 실감할 수 없다고 해서 그때의 일들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속에 지난 일을 오늘의 상황과 기준에 서서 따질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단임의 실현으로 우리 헌정사상 초유의 평화적 정부이양을 이룩하는 것이 저에게 부하된 최대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신념을 시종일관에서 지켜왔고 또 실천하였습니다. 평화의 댐 건설을 착공할 당시 저로서는 잔여 임기를 불과 1년 남짓 앞둔 시기였습니다. 당시의 시국이 다소 어려웠다고 하더라도,있지도 않은 북한의 위협을 날조해가면서까지 1년 남은 정권을 유지해야 할 만큼 그렇게 허약하고 부도덕한 정부는 아니었다고 저는 믿고 있고 또 주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6·25때 「맥아더」원수가 막료들이 모두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천상륙작전을 결행해서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킨 일도 있듯이,최고결정권자는 국가의 이익과 백년대계등을 종합적으로 생각해야하기 때문에 부분적 진실에만 집착하기 쉬운 특정기관이나 특정인의 판단에 구애받아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의 댐과 관련한 사항도,모든 정보보고와 판단자료를 제가 검토하고 심사숙고해서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지시한 것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혀 두고자 합니다. 끝으로 한가지 간절히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1988년과 1989년 국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기회에도 호소한 바 있습니다만,지난 날의 허물과 잘못은 모두 저에게 물어 주시고,이제는 밖의 세계로 눈을 돌리고 미래를 지향하면서,보다 살기 좋고 훌륭한 나라를 만드는데 매진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비록 재임중 과오도 많았고 부덕하고 불민한 이 사람이지만 그 점만은 국민 여러분께서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경제성도 없는 금강산댐을 빨리 만들라고 오늘도 인민무력부장을 다그치고 있는 김일성 부자가 그 대응댐을 만든 전직 대통령의 「저의」를 거듭거듭 따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에 생각이 미치면 안타깝고 답답해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덧붙여거듭 강조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제가 재임중에 정부와 공직자가 한 모든 일은 그것이 어떤 경로로 입안되어 어떻게 실행되었든,그것은 최종보고받고 결정하고 지시한 것은 대통령이었던 저였습니다. 따라서 그 책임은 비록 퇴임한 후인 지금에 와서도 모두 저에게 귀착된다는 사실입니다. 일부 실무자나 전문가들의 보고,건의와는 다른 내용의 결정을 내린 경우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전두환씨 감사원 회신(전문) 1,본인은 1993년 8월16일자 귀원의 「평화의 댐 감사관련 질문서를」를 받고 본인이 취할 수 있는 합당한 대응방법에 대하여 원로들과도 의견을 교환한 바 있습니다.그런데 법률적 문제에 대하여 조언을 해준 분들은 대통령 소속하에 있는 감사원이 대통령의 정책결정의 배경·경위와 타당성에 대하여 직무감찰을 하는 것은 헌법 제97조와 감사원법 제24조의 규정내용에 비추어 볼때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밝혀 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헌정사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스럽지 못한 선례가 된다는 점을 우려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귀하도주지하고 계시겠지만 대통령의 국법상의 행위는 문서로써 행하여 지는 것이 원칙이며 평화의 댐에 관련된 정책결정 역시 관련 부처에서 작성된 문서로써 행하여 졌습니다. 따라서 귀원의 감찰활동상 필요한 자료와 사실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보관중인 관련문서를 통하여 확인하는 것이 순리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평화의 댐과 관련한 문제에 대하여는 지난 수년간 국회차원에서도 다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자에 이르러 또다시 세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칫 정부의 안보정책에 대한 불신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본인은 대통령으로서 평화의 댐 축조를 결정한 배경과 경위에 대하여 모든 국민에게 아는대로 설명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별첨한 「평화의 댐에 관하여」는 이러한 목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깨끗한 정치 어떻게 가능할까

    ◎“제도 보완·불법선거 처벌 강화 병행을”/정당회계감사 의무화 등 도입/정치인·유권자 의식전환 시급 □전문가의 제안 과연 유리알처럼 맑은 정치가 이 땅에도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인가. 금융실명제 실시로 지하에서 떠돌던 「검은 돈」이 제도권으로 흡수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우리의 정치도 체질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새로운 환경을 따라잡기 위한 정치권의 「몸부림」이 정치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기 위해서는 제도의 개선이 필수적이다. 이같은 이유로 정치권뿐만 아니라 정부단체·학계등 각종 기관에서도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등 일련의 정치관계법에 대한 개선방안을 활발히 내놓고 있다. 민자당의 박범진의원은 『법대로 한다면 우리도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돈을 쓸 수 없도록 되어있다』고 지적했다.불법으로 돈을 뿌리는 관행이 정치를 흐리는데 가장 큰 원인이지 제도가 잘못되어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는 얘기다. 박의원은 선거비용과 관련,『영국의 경우처럼 법정선거비용을 1만원이라도 초과해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는 당선무효시키는 등 처벌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 경우 단속의무가 있는 행정부의 의지만으로도 금권선거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의원은 또 미국 영국등과 같이 유급선거운동원을 폐지하고 자원봉사자들을 활용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품수수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금지해온 호별방문의 경우 선진국처럼 허용해 후보자들이 「돈대신 몸으로 때우도록」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미국처럼 지구당을 두지않는 문제에 대해 『우리의 정치행태로 미루어 총량면에서는 정치자금이나 선거비용이 더 많이 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그는 정치자금을 모금하기 위한 후원회 문제와 관련,일본의 경우와 같이 회원 숫자를 아예 폐지하자는 의견도 제시했다. 민주당의 박상천의원은 영국 의회제도의 도입여부에 대해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영국은 국회 중심의 철저한 의원내각제여서 우리와는 정치문화측면에서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히 있다』고 선택의 신중성을 강조했다. 박의원은 그러나 『영국의선거공영제는 모범적』이라면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한뒤 우리의 선거관리제도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개인홍보물의 제작 배포는 금지하되 국가에서 제작비·인건비·발송비용등은 모두 맡도록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후보자의 난립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비율의 득표를 못할 경우 기탁금에서 공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대신 선거운동의 방법을 지금보다 훨씬 다양하게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박의원은 『현행 선거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차량을 이용한 선거운동은 자동차 연료비와 마이크 대여비밖에 들지 않는다』면서 이의 허용을 촉구했다.일정 장소에 청중을 동원하는 연설회보다는 시장이나 도로등 유권자들이 자연스레 모이는 곳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 돈 안드는 선거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박동서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는 정치자금과 관련,『우리나라는 동원가능한 모든 방법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교수는 『미국은 정당에 대해 국고지원을 허용하고 있으나 독일은 금지하고 있다』고 전제,『금융실명제의 실시로 국고지원이 증가할 전망이지만 늘려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또 정당이 국민의 세금을 받아 쓰는 이상 회계감사의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계에서 국고지원을 주장하는 이유는 워낙 야당에 돈이 가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법정기탁금제를 탄력성있게 운영,야당에도 30%정도는 몫이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선거운동의 방법을 가급적 확대해 허용하되 운동원 수는 줄이고 인쇄물 현수막 설치등 돈이 드는 것은 선관위에서 주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구당 문제에 대해 박교수는 『우리 현실에서는 지방정치 활성화를 위해 존속되어야 한다』면서 『유급 당원수를 줄이는 대신 자원봉사자를 늘리면 운영비를 감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동성중앙대교수는 『선거자금법 선거법 의원자세면에서는 부정방지차원에서 영국의 제도가 가장 좋지만 정당운영과 선거관리 측면에서는 독일의 장점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그러나 단순비교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김교수는 선거관련법 개정과 관련,미국의 한 대통령과 기시전일본수상(안신개)의 말을 인용해 『국회의원에게 이를 맡기는 것은 도둑에게 체포관련법을 심사시키는 것과 같다』면서 전문가 집단에 의한 연구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같은 제도의 개선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정치인이나 시민의 의식전환을 통한 올바른 정치문화의 정착이다. 정치제도와 정치문화는 깨끗한 정치를 이루는 수레의 두 바퀴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어느 것 하나도 개혁되지 않는 한 깨끗한 정치라는 목표는 또한번 물 건너갈 것이다. ◎불법선거땐 후보·유권자 쌍벌/영/중앙당 규모 적고 공천제도 없어/미/정치자금 철저 공개… 투명성 보장/독 □선진국의 경우 ▷영국의 선거제도◁ 영국의 선거는 돈이 들지않고 조용히 치러 진다. 영국 선거제도는 ▲선거 공영제의 완벽한 실시 ▲선거자금의 철저한 제한 ▲자유로운 선거운동 ▲부정·불법선거운동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등이 가장큰 특징이다. 법정선거비용은 선거때마다 다소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후보개인은 소액의 법정 선거비용밖에 쓸수가 없도록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법정선거비용 4천3백30파운드(5백여만원)에다 도시는 유권자 일인당 3.7펜스를,농촌은 4.9펜스를 더 쓸수가 있다.한선거구당 평균 유권자수가 7만명인 점으로 볼때 선거비용은 우리돈으로 8백만∼9백만원에 불과하다. 이 돈도 지역구에서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모금으로 조성된다. 조성된 자금은 지구당 사무장의 명의로 특별계좌에 예치하고 필요할때 인출토록 하고있다. 후보자는 선거비용을 신고해야 하며 법정선거비용을 초과하면 당선무효와 함께 형사처벌된다. 매표·향응제공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후보뿐 아니라 운동원,돈을 받은 유권자까지도 함께 처벌받는 쌍벌죄를 채택하고 있다. 당선자나 낙선자 모두 유죄로 인정된 사람은 부패행위의 경우 10년간,위법행위의 경우 7년간 당해 선거구에서 출마할수 없다. 선거법위반사건은 10일 정도면 최종판결이 나올 정도로 신속하게 처리된다. 불법행위는 엄격히 제한하는 대신 선거운동은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라디오나 TV광고만 금지될뿐 선거비용의 한도내에서의 호별방문,개인연설회,현수막등은 제한이없다. 선거사무장과 회계담당자에게만 수당을 지급할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운동원의 대부분이 자원봉사자이다. ▷미국의 정당제도◁ 미국 정당제도의 가장큰 특징은 중앙당의 규모가 작고 상설화된 지구당이 없다는 점이다. 거대한 정당조직이 없음으로 과다한 정치비용을 줄이고 의원 개개인도 지구당관리를 위한 음성자금이 필요없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정당은 워싱턴에 중앙당본부가 있지만 본부인원이 70∼80명 정도의 규모에 불과하다. 중앙당은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 개최등 최소한의 역할만 담당하며 연락본부 기능 정도에 머물고 있다. 정책결정은 의회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공식적인 당정책기구등도 없다. 대통령도 특정정당 출신이지만 중앙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없으며 의원들도 무조건 정당의 결정을 따르는게 아니라 지역의 이익을 대변한다. 정부의 중요한 안건이 의회에 회부되면 정당에서 이에 대한 방침을 결정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자기당 소속 의회지도자들을 초청해 안건에 관해의견을 교환하거나 중요한 의원을 사무실에 초청해 의견을 나눈다. 상설화된 지구당조직이 없으며 주단위로 주위원회,군단위로 군위원회,투표구단위로 투표구위원회가 있다. 전국적으로 노조·기업·직능단체들이 별도로 정치활동위원회(PAC)를 만들어 특정후보를 지원하고 지역구를 관리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물론 활동자금은 전적으로 자발적인 모금이나 자원봉사에 의존한다. 모든 연방직후보자는 후보자가 된후 15일 이내에 그 주된 선거운동위원회로서 정치위원회를 지정해야 하며 후원회로서 주선거운동위원회를 지정할수 있다. 미국의 정당제도의 또다른 특징은 공천제도가 없다는 점이다. 지역당원들이 뽑은 대의원이 각종선거의 후보자를 선출하는 상향식 공천제도이다. ▷독일의 정치자금제도◁ 독일 정치자금제도의 가장큰 특징은 영국등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공개에 있다. 이는 금융실명제의 정착으로 정치자금의 투명성이 보장된다. 독일정당의 정치자금은 당원들이 내는 당비,국고보조금,기부금,교섭단체위원회비,자산에 의한 수입,사업 또는 출판에 의한 수입,선거용 배당금으로 충당된다. 당원은 매월 당비를 내면서 당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특히 선거때가 되면 자원봉사로 정당을 돕는다.현재 독일에서는 당원들의 당비납부 액수가 늘어나고 있으며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도 증대되는 추세이다. 사회민주당 또는 기독민주당과 같은 큰 정당들의 당원에 의한 당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그 정당수입의 약 50%나 되어 당원들의 당에 대한 주인의식이 높다. 일례로 기민당의 경우 월소득 3천마르크인 당원은 당비로 월 30마르크(1만5천원정도)정도를 내고 국회의원인 당원들은 세비의 상당액을 당비로 납부한다. 유권자들도 입후보자를 음식점에 초청해 정견을 들을 때 자신들이 먹은 음식값은 각자가 낸다. 독일정당은 회계보고를 의무화하고 있어 정당은 수입자금의 출처를 회계보고서를 통해 공개해야한다. 회계보고서는 경리심사원 또는 경리심사협회의 검사를 받아 연방의회의장에게 제출하고 연방의 관보에 공포해야 한다.회계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연방의회의장은 자금의 지불을 중지시켜야야 한다. 기부금은 1년간 총액이 개인은 2만마르크(9백60만원정도),법인은 20만마르크를 초과하는 경우,기부자의 성명 주소및 기부금의 총액을 회계보고서에 기재·공표하여야 한다. 4천마르크 이하의 기부금은 면세된다.
  • 「캄」 군주제 복귀 촉구/푼신펙당

    【프놈펜 AFP 연합】 캄보디아 국가원수이며 전국왕인 노로돔 시아누크공의 아들라나리드총리가 이끄는 정당 푼신펙은 24일 성명을 통해 최근 푼신펙과 캄보디아인민당(CPP)소속 의원들이 공동으로 마련한 헌법초안을 거부하고 군주제의 복귀를 촉구했다. 헌법안이 채택되기 위해서는 의회 의석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나 푼신펙당은 총의석 1백20석중 58명밖에 갖고 있지 못하므로 오는 9월10일 소집되는 의회에서 푼신펙안은 물론 공동안도 채택이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 정치자금 제도개혁 모색/정치특위 재개… 법안별 여야 입장

    ◎전국구 배분기준 “의석­득표율” 주장 맞서/국가보안법 개폐는 의견차 커 격론일듯 여야가 23일 국회정치관계법 심의특위를 재개,새로운 정치환경에 부응하기 위한 본격적인 협상「페달」을 밟기 시작했다.실명제 실시로 정치개혁 여건이 어느 때보다 좋은만큼 정치권이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낼지 벌써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정치관련법 개정에 대한 여야 입장을 법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치자금법◁ 여야 모두 실명제실시로 살림살이가 어려워짐에 따라 공개적인 정치자금모금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국고보조금을 확대하는데 인식을 같이한다.하지만 모금방법의 각론에 들어가면 약간의 이견이 있다.민자당은 후원회제도를 대폭 개선하는 쪽에 무게를 실어 현재 연 1억원인 후원회모금 상한선을 2배정도 늘리고 회원수도 확대한다는 방침.또 지정기탁금은 그대로 두되 여당에 편중돼온 문제점을 개선,지정기탁금이라도 75%만 지정정당이 갖고 나머지 25%는 의석이 없는 정당을 포함,비지정 정당에도 공평하게 배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그러나 민주당은 무기명기부금증서(쿠폰)제를 도입,기탁금 여당독점현상의 시정을 바라고 있다.이에대해 민자당은 『실명제하에서 익명의 기부는 더더욱 있을 수 없다』며 반대한다. ▷선거법◁ 선거구제와 전국구 배분방식,선거운동방법개선등이 쟁점.특히 선거구 조정은 극도로 민감한 사안인만큼 이번에 처리되기는 힘들 것 같다.다만 민자·민주 양당은 현행 소선거구제의 골격 유지에 견해를 같이하고는 있다.그러나 민자당 일각에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되면 국회의원의 대표성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커 2∼3명의 의원을 뽑는 중선거구제의 부분적 도입을 검토중이고 민주당도 그다지 반대하지 않는 분위기여서 주목된다.전국구제도는 민자당이 안정의석확보를 위해 현행 의석비 배분을 유지하거나 의석비와 정당득표율을 절충한 방식을 선호하나 민주당은 정당득표율에 의한 배분방식을 주장,난항이 예상된다.전국구의원의 「당적이탈→의원직 박탈」에 대해서는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태. ▷기타법안◁ 정당법은 양당이 정당설립요건을완화,정당정치의 기반을 확대한다는데 찬성하지만 법정지구당수·정당해산요건·공천의 민주적 절차도입등 구체적인 대목에서는 이견이 상존. 지방자치법은 지방의원의 유급제가 현안으로 민자당은 무보수 명예직의 정신을 지키면서 수당형태로 약간의 의정활동비를 보조해주는 방안을 검토중이나 민주당은 완전유급제를 주장한다. 또 안기부법은 현행골격을 유지하되 국회정보위원회를 설치,예산을 심의하자는 민자당입장과 안기부 수사권폐지및 정보조정권의 국가안전보장회의 이관등을 골자로 한 민주당주장이 맞서있는 상황. 통신비밀보호법도 제정취지에는 공감하는 분위기속에 「안보를 목적으로 한 내국인통화의 도청허용문제」가 최대 난관.민자당은 대통령에게 허가권을 줘야한다는 입장이나 민주당은 미국식 특별법원의 통제를 받도록 할 것을 주장. 국가보안법은 여야간의 현격한 의견차로 협상자체가 불가능할 전망.
  • “선거비용 국고보조확대” 한목소리/실명제속 개혁입법 전망

    ◎기탁금문제엔 이견… “뜨거운 감자”로 금융실명제는 유리처럼 훤히 들여다 보이는 투명정치를 요구한다.실명제가 제대로 실시되면 정치는 맑아질 수밖에 없다.실명제 전격실시에 맞춰 정치권이 깨끗한 정치풍토 정착을 위한 제도마련을 서두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19일 민자·민주 양당간의 3역회담 합의사항에 따라 국회정치관계법 심의특위는 23일부터 본격적인 협상에 돌입,정치선진화의 힘찬 시동을 건다. 정치관계법 개정의 핵심은 정치자금법과 각종 선거법. 물론 정당법도 실명제이후 그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민자당은 이들 법안의 개정시안을 이달말까지 마련한다는 방침이며 민주당도 이와 비슷한 입장이다. 이와함께 지난번 여야영수회담 합의사항인 통신비밀보호법과 안기부법 개정도 올 정기국회에서 처리돼야할 사안이다. 정치자금법은 후원회와 국고보조금,기탁금등 세가지가 골자를 이룬다. 이중에서도 중앙당과 지구당 구분없이 후원회원수와 후원회비 상한액을 현행보다 늘리는 문제와 국고보조금을 증액하는 문제는 여야간 이심전심으로 쉽게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 여야는 앞으로 후원회가 실질적인 정치자금 조달루트가 될 수밖에 없는 만큼 소액다수원칙을 확대하고 모금한도액도 대폭 인상해야 한다는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와관련,정당후원회의 경우 법인 5천만원,개인 3천만원으로 돼있는 기부한도액을 패로 늘리고 개인후원회의 상한액도 현재 1억원에서 2억원으로 인상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공산이 크다.또 중앙당 1천명,시도지부 3백명,지구당 2백명인 후원회원 상한선도 각각 2천명,7백명,5백명선에서 약간 가감되리란 예상이다. 또 국고보조금은 유권자 1인당 6백원(연1백74억원)에서 1천원선으로 상향조정될 듯한 분위기다.하지만 이 문제는 여론의 민감한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정치자금법중 여야간 이견이 좁혀지지않고있는 대목이 바로 기탁금문제.민주당은 기업들이 사실상 여당에만 정치자금을 기탁하는 현실을 감안,지정기탁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펴왔으나 민자당은 여전히 반대입장을 고수,이번 협상에서도 「뜨거운 감자」역할을 톡톡히 하리라는 전망이다. 선거법은 일단 선거구문제는 뒤로 미루고 선거공영제의 철저한 확립과 과열선거방지를 위한 선거운동기간의 단축,선거일의 법정화,선거사범에 대한 엄중한 조치등에 포인트가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관련,주목을 끄는 것이 선관위가 지난 20일 마련한 통합선거법 제정심의안인데 여야 모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협상과정에서 이 안이 상당부분 반영될 공산이 크다. 정당법은 민자당내에서도 지구당폐지문제가 쑥 들어가버린 만큼 중앙당 경상비의 과감한 축소및 체질개선등이 주요골자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 검사장6석 사시8회 승진 확실/검찰,수뇌부 인사 앞두고 술렁

    ◎공석 고검장 세자리 예측 불허/“검찰 꽃” 서울지검장 2·3회 5명 물망/“고시 15·16회는 제외” 중론 고검장급 3명의 승진을 포함한 검찰수뇌부 인사를 앞두고 인사의 폭과 대상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새정부 출범이후 처음 실시되는 검찰의 이번 정기인사는 검찰안팎의 사정활동이 1차 마무리된뒤 생긴 공백을 메우고 일선 검사장의 자리를 바꿔 분위기를 쇄신한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큰폭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현재 비어있는 검사장급이상 수뇌부자리는 부산·대전고검장,법무연수원장등 고검장급 세자리와 광주고검차장·법무부 교정국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등 모두 여섯자리다. 이는 전재기전법무연수원장과 신건전법무차관·이건개전대전고검장이 슬롯머신업계의 대부 정덕진씨 비호사건에 휘말려 구속 또는 사퇴하고 지난 3월 재산공개파동으로 정성진·최신석검사장이 각각 사퇴한데 이어 이번 재산공개를 앞두고 변재일전부산고검장이 물러나 인사요인이 생긴데 따른 것이다. 따라서 이번 인사에서는 검사장급에서 3명이 고검장으로 승진하고 차관급으로 검찰의 사단장격인 검사장 6명이 새로 탄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고시와 사법시험 기수별로 층층을 이루고 있는 검찰조직의 특성상 시험기수에 따른 서열이 승진의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하면 고검장후보로는 장응수대검총무부장(고시15회),서익원수원지검장(고시16회),문종수인천지검장(〃)등을 우선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고검장으로 승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중론. 서열에 의해서만 승진이 결정되어서는 안되고 사시 1회 이후의 후진들에게도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사시출신의 고검장시대는 사시 1회인 이건개전대전고검장이 이미 열어놓고 있다. 때문에 송종의서울지검장,지창권대구지검장,정경식대검공판송무부장,김규한대검형사부장등 사시 1회출신도 고검장승진 대상자로 볼 수 있고 특히 송서울지검장의 고검장승진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음으로 관심을 끄는 대목은 송검사장이 승진할 경우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요직인 서울지검장에 누가 기용되느냐하는 것이다. 송검사장과 전임인 이건개씨가 모두 사시 1회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사시 2회 또는 3회출신이 서울지검장이 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2회에는 김기수부산지검장,황상구대전지검장,김정길광주지검장등이 유력하고 3회에는 김종구법무부검찰국장과 신창언법무부법무실장등이 있으나 다른 때와 비교해 누구를 1번으로 꼽을 수 없는 예측불허의 양상이다. 이번 인사에서는 이와함께 대검참모인 검사장들과 일선지검장들의 대폭적인 자리바꿈도 예상된다. 또 6명의 검사장 승진대상은 서울시내 지청장과 지검차장으로 있는 사시8회출신들이 확실시된다. 안강민서울남부지청장,신현무동부지청장,박순용서부지청장,최경원북부지청장,김수장의정부지청장,유재성부산동부지청장등의 승진이 거론되고 있고 8회중 1∼2명과 서울지검 1·2·3차장등이 이들을 이어 재경지청장자리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인사에는 무엇보다 고검장에 누가 승진하느냐와 서울지검장에 누가 오르느냐하는 것이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고 그것이 또한 인사권자의 가장 큰 고민일 것이라는 분석이다.이같은 예측속에 요즘 검찰간부들은 자신이 어떤 자리에 옮겨 갈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설왕설래하고 있다.
  • 등소평 89회 생일/건강상태 이상없나

    ◎각종 추측보도 불구 질병징후 없는듯/노쇠현상 극심… 의료 감시속 보호 만전 『등소평동지는 지난 2년동안 6번이나 돌아가셨습니다.그분이 걸렸다는 병의 종류만해도 열손가락으로 꼽아야 할겁니다.요도염으로부터 시작해서 고환암·파킨슨씨병 등등…』 중국외교부의 한 관리가 최근에 한 말이다.그는 서방 신문들이 심심하다 싶으면 등의 건강에 대한 추측보도를 일삼고 있다며 이제는 그가 위독하다는 정도는 너무 들어서 신물이 날 정도라고 푸념했다. 그렇다면 22일로 89회 생일을 맞은 등의 건강상태는 과연 어느 정도인가.지난 초여름 그의 가족들이 밝힌바로는 올해들어 손이 떨리는 수전증과 정신이 희미하게 오락가락하는 일이 다소 늘어났을뿐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매 분기별로 실시되는 정밀종합검진중 최근의 것도 그의 몸속에서 아무런 질병의 징후도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설명을 그대로 믿어야 할지는 문제로 남는다.일부에서는 등소평의 생사문제는 중국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사망이 임박하면 온갖 최신의료장비를 동원,식물인간상태라도 몇년간 버티게 할지도 모르며 설사 그가 사망했더라도 상당기간 이를 알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등이 건강하다는 당국의 거듭된 확인에도 불구하고 그의 건강문제가 회자되고 있는 것은 TV에 비치는 그의 모습에서 심한 노쇄현상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이제는 남의 부축없이는 홀로 걷기가 불편한 상태이고 의사들로부터도 수영금지령을 받아 올여름엔 북대하 간부 휴양지에도 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비록 몸에 병은 없다 해도 극심한 노쇄현상 때문에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만해도 목숨을 보존하기가 어려운 상태인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중국의 혁명원로들은 거개가 장수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모택동과 왕진 이선념 등이 80대 중반에 사망했지만 등과 동갑인 진운과 올해 91세인 팽진도 병석에 누웠다는 얘기가 수년전부터 흘러 나왔지만 아직도 살아있다.지난 82년에 사망한 기검영원수는 중국중앙판공청에서 사망이 임박해지자 추도사와 부고까지 작성,언론기관에 미리 배포했었지만 그 뒤로도 3년동안이나 버틴 것으로 유명하다. 원로들이 장수하고 있는 것은 각자 양생의 도를 실천하고 있는 때문이기도 한데 최근에는 등을 비롯,팽진 박일파 송인궁등 많은 원로들이 기공(단전호흡)에 매료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국방과학공업위원회에서는 특이기공 소유자들을 모아 이들이 기를 발해 고위간부들의 병기를 뽑아내도록 하기도 한다. 이들은 영양섭취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서 기름진 음식을 절대로 피하고 있다.등은 평소 아침식사로 연두부나 튀김국수 찐빵을 주로 들고 점심엔 볶은 요리를 먹으며 저녁식사때는 혈액순환을 돕고 위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 「화리」라는 특제약주를 마신다.줄담배를 즐기던 등 한사람을 위해 중국정부는 몇모금만 빨면 금방 타버리는 「웅묘」라는 특수담배를 제공하기도 했다. 중국의 원로들이 급사를 면할 수 있는 것은 철저한 의료감시 때문이다.등의 경우 북경저택에는 주로 301군병원 출신의 의료진이 상당수준의 의료시설과 통신장비,긴급차량 등을 완벽하게 갖춘채 상시 대기하고 있다.이곳 파견 의료진은 철저한 심사를 거쳐 선발될뿐 아니라 근무 또한 빈틈이 없다.한 간호사는 등이 먹을 약과 그의 부인 탁임이 먹을 약을 바꿔놨다가 호된 기합을 받아 정신이상증세를 보이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