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원수
    2026-03-02
    검색기록 지우기
  • 군대
    2026-03-02
    검색기록 지우기
  • 유빈
    2026-03-02
    검색기록 지우기
  • 의혹
    2026-03-0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911
  • [중국공산당 90년] 구호로 읽는 90세 공산당

    중국은 ‘구호’의 국가다. 지금도 시골 담벼락이나 도시 아파트촌 곳곳에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각종 구호들이 적혀 있거나 플래카드로 내걸려 있다. ‘위대한 중국공산당 만세!’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공산당 결성후 90년, 그들이 내건 구호는 중국 전역을 폭풍 속으로 몰아넣기도 했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품게 하기도 했다. ●1922년 ‘공산당 만세’… 희망 57명의 당원으로 시작한 1920년대 공산당의 목표는 ‘착근’이었다. 당원들에게 희망을 주는 구호인 ‘중국공산당 만세!’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22년 열린 제2차 당대회 때였다. 1927년 우한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 특별회의에서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고 외쳤고, 1938년에는 혁명근거지 옌안(延安)에서 ‘병사와 백성은 승리의 근본’이라며 전면적인 항전을 촉구했다. 1943년 국민당 정부가 ‘국민당이 없으면, 중국은 없다.’고 강조하자 공산당은 ‘공산당이 없으면, 중국은 없다.’(沒有共産黨, 就沒有中國)는 구호를 제시했고, 이 구호는 지금까지도 공산당 행사에서 우렁차게 울려퍼진다. ●1927년 ‘권력은 총구서’… 항전 국민당군을 몰아내고 신중국을 건국한 공산당은 1949년 10월 1일 톈안먼(天安門) 성루에서 마오쩌둥의 육성을 통해 ‘중국인들이 벌떡 일어섰다.’(中國人民站起來了)는 구호를 제시하며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데 열중했다. ●1966년 ‘위대한 마오’… 우상화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은 20년 가깝게 중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마오쩌둥 추종자들은 ‘위대한 지도자, 위대한 영수, 위대한 원수, 위대한 조타수 마오 주석 만세’ 등 마오에 대해 4개의 ‘위대한’ 수식어를 붙여 개인숭배를 조장했다. ●1978년 ‘사회주의 시장경제’… 발전 마오쩌둥 사후 1978년 제11차 3중전회에서 채택한 개혁·개방은 중국의 변화를 이끌었다. 덩샤오핑은 ‘빈곤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기회를 잡아 스스로 발전하자.’ 등을 부르짖으며 발전을 독려했다. 30년 넘게 발전에만 치중해온 중국은 빈부격차 등 사회모순의 극대화로 큰 갈등을 겪고 있다. 그래서인지 현 지도부는 ‘전면 건설 소강(모두 잘사는) 사회’ 등의 구호로 국민들을 다독이고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1일 TV하이라이트]

    ●독립영화관(KBS1 밤 1시 10분) 박종호는 사법시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기자다. 호시탐탐 사표 낼 궁리만 하던 그는 특종 고발기사 하나로 인해 기세등등해진다. 하지만 그 기사로 인해 한번 물면 안 놔주는 수상한 이웃들의 상상초월 태클이 쏟아지는데… . 종호는 과연 사기 치고, 오해하고, 의심하는 원수같은 이웃들과의 전쟁을 무사히 끝낼수 있을까. ●스펀지 0(KBS2 밤 8시 50분) 대한민국 곳곳의 특별한 맛을 찾아 떠나는 스펀지 네모로드. 이번 주는 올 여름 사상 최악의 폭염을 대비하여 방전된 기력을 회복해주기 위한 보양식을 찾아 나섰다. 삼계탕·추어탕과 같은 평범한 보양식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 추천을 받은 이색 보양식들을 공개한다. ●몽땅 내 사랑(MBC 밤 7시 45분) 혜옥은 대장 용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한다. 김 원장은 자신을 대신해 김 집사에게 혜옥의 병 간호를 맡기고, 혜옥은 김 집사가 자신을 좋아해서 다정하게 간호한다고 착각한다. 한편 미선과 은희의 다툼 끝에 서로 앙금이 생기게 된 두준과 샛별. 서로 소심한 복수를 주고 받으며 마음을 졸인다. ●달콤한 고향 나들이 달고나(SBS 밤 9시 55분) 아이돌 그룹 2PM의 멤버 우영을 응원하기 위해 우영의 어머니가 출연했다. 우영의 어머니는 아들 때문에 남편과 갈라설 뻔했던 사연을 공개했다. 그 이유는 공무원 출신의 보수적인 아버지와 어릴 때부터 춤을 좋아해 가수를 꿈꿨던 아들 우영이의 전쟁 아닌 전쟁 때문에 중재자 역할을 하느라 애를 먹었던 것인데…. ●다큐프라임(EBS 밤 9시 50분) 세상에 완벽한 엄마는 없다. 다만 노력하는 엄마, 행복한 엄마에게서 비로소 아이의 행복이 주어진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고민을 해결하고자 모인 엄마들의 용감한 도전이 시작된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엄마 8명이 그들의 평범한 고민을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나누며 그 해답을 찾아 나선다. ●리얼스토리 추적(OBS 밤 11시) 초동수사에서 검거까지 충격적 사건 현장을 고화질 화면으로 생생하게 포착한다. 150여 현장 기록과 드라마의 화학적 결합을 시도하는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다. 이른바 ‘팩션 드라마’로 사실적 영상과 허구의 드라마가 유기적으로 섞여 있다. 파렴치한 범죄 행각을 낱낱이 고발해 경각심을 일깨운다.
  • [中 공산당 90주년] 공산당을 이끈 10명의 주역

    ●천두수(陳獨秀·1879~1942) 공산당 초기 지도자. 청년 시절 반청(反淸) 활동에 몸담고, 5·4운동 후에는 마르크스 사상에 심취. 베이징대 교수 시절 ‘매주평론’ 등 사상지 발간. 상하이 지역 공산당 조직 결성. 제1차 당대회에 불참했지만 초대 중앙국 서기에 선임되는 등 5차 때까지 중앙국 서기, 중앙국 집행위원장, 총서기 등 역임.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두 말할 필요 없는 중국 공산당 역대 최고지도자이자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주역. 자신이 결성한 후난성 공산당 조직을 대표해 제1차 당대회 참석.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며 무장봉기 주도. 대장정 도중인 1935년 1월 ‘준이(尊義)회의’에서 당권 장악. 신중국 건국 후 당과 국가의 전권을 장악.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의 대오류에도 불구하고, 건국의 아버지로 신격화. ●저우언라이(周恩來·1898~1976) 혁명운동 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마오쩌둥과 평생을 함께한 동지이자 영원한 2인자. 건국 후 초대 총리(외교부장 겸임)를 맡아 사망할 때까지 27년간 역임. 탁월한 정치적, 외교적 수완과 함께 고도의 청렴성으로 사망 후에도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역대 총리로 추앙받음. ●주더(朱德·1886~1976) 중국 10대 원수 가운데 한 명. 독일 유학 중 저우언라이의 추천으로 중국 공산당 가입. 소련에서 군사학을 전공한 뒤 귀국해 국민당군에 합류. 1928년 병력 1만명과 함께 마오쩌둥의 징강산 해방구에 가담. 제2차 국공합작 때는 8로군 총사령관으로 항일전쟁을 지휘. 건국 후 인민해방군 총사령관, 국가부주석,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을 역임. 문화대혁명 때 물러났다가 1971년 복권. ●펑더화이(彭德懷·1898~1974) 6·25전쟁에 인민지원군 총사령관으로 참전한 중국 10대 원수 가운데 한 명. 1928년 입당해 항일전쟁 때 부총사령관으로 주더 총사령관을 보필. 건국 후 국방위원회 부주석, 국무원 부총리, 국방부장 등을 역임하며 군 현대화 추진. 1959년 루산회의에서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 실패 등을 지적하다 실권.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 중화인민공화국 제2세대 지도자.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두 차례 실권됐다가 복권된 ‘오뚜기’. 항일전쟁 및 내전 시기에는 정치공작, 건국 후에는 국정에 참여. 실용주의 노선을 주창해 마오쩌둥 추종자들과 대립. 마오쩌둥 사후 화궈펑(華國鋒)과의 권력투쟁 끝에 실권 장악. 개혁·개방 선도하며 중국의 발전 견인. “자본주의에도 계획이 있고,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다.”며 ‘사회주의 시장경제’ 도입.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 개혁파 지도자. 1989년 4월 사망하자 청년학생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모여들면서 ‘톈안먼 사태’ 촉발. 1928년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에 가입한 뒤 홍군의 일원으로 대장정 참여. 건국 후 공청단 제1서기 등으로 공청단 업무 주관. 1980년 2월 당 총서기로 선출된 뒤 개혁 및 실용주의 정책을 펼쳤으나 1987년 대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 등으로 실각. ●장쩌민(江澤民·1926~ ) 제3세대 지도자. 상하이교통대 재학 시절인 1946년 입당. 건국 후 공장 관리자 및 공업연구소 책임자 등으로 일하다 문화대혁명 때 공직에서 축출. 복권된 뒤에는 상하이시 당서기 등으로 승승장구하면서 핵심인물로 부상. 1989년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가 실각하자 총서기로 선출됨. 1990년 4월 덩샤오핑의 마지막 공직이었던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선출되면서 당·정·군 전권 장악. 재임 중 한·중 수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성사. ●후진타오(胡錦濤·1942~ ) 제4세대 지도자. ‘퇀파이’(團派·공산주의청년단 출신)의 대부. 칭화대 수리공정학과 졸업 후 학교에 남아 정치보도원으로 후배들의 정치교육 담당. 문화대혁명 때 간쑤성 수력발전소 노동자로 하방됐지만 승진을 거듭해 덩샤오핑에 의해 4세대 지도자로 낙점돼 1992년 최연소로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됨. 이후 2002년 당 총서기, 2003년 국가주석, 2004년 중앙군사위 주석에 선출되면서 당·정·군 장악. ‘과학발전관’을 주창. ●시진핑(習近平·1953~ ) 후진타오의 뒤를 이을 5세대 핵심지도자. 아버지는 국무원 부총리 등을 역임한 시중쉰(習仲勳)으로 ‘태자당’(당·정·군 혁명원로들의 자제그룹) 계열. 문화대혁명 때 아버지의 실각 등으로 중학교 재학 중 산시성 오지로 하방. 10번이나 입당이 거부될 정도로 시련을 겪었으나 경력을 쌓고, 저장성 당서기 등을 거쳐 2007년 상하이시 당서기에 오른 뒤 같은 해 제17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됨. 이듬해 국가부주석, 지난해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선출돼 후계 입지 공고화.
  • ICC, 카다피 체포영장 발부

    국제형사재판소(ICC)는 27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에 대해 민간인 살상과 관련한 반인륜범죄 혐의를 인정,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카다피와 함께 체포영장이 청구된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 카다피, 친·인척인 압둘라 알세눗시 군 정보국장에 대해서도 영장이 발부됐다. 현직 국가원수를 대상으로 ICC 체포영장이 발부되기는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재판부의 체포영장 발부로 ICC 검찰은 카다피를 비롯한 3명의 피의자 신병 확보에 나서게 되지만, 카다피 정권이 트리폴리에서 버티는 한 이들을 체포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공군력을 업은 반군 세력이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려 이들의 신병을 확보, ICC에 인도해야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 앞서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 수석검사가 이끄는 ICC 검찰은 지난달 16일 재판부에 카다피와 사이프, 알세눗시 등 3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한 바 있다. 모레노 오캄포 수석검사는 당시 “카다피는 비무장 민간인을 공격할 것을 명령했고, 친위부대는 저격수를 배치해 기도를 마치고 이슬람 사원에서 나오는 민간인을 사살하는 등 반 인륜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ICC의 카다피 체포영장 발부를 환영했다. 라스무센 사무총장은 “이로써 민간인 보호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는 나토의 명분은 더 확고해졌다.”고 밝혔다. 리비아 반군의 대표기구인 국가과도위원회의 무스타파 압델 잘릴 위원장도 이날 반군의 거점 도시 벵가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카다피를 법정에 세울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정관수술(精管手術), 과연 정력(精力)에 이상 있나?

    정관수술(精管手術), 과연 정력(精力)에 이상 있나?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지난 10일「코리아나」호텔에서 국내 24개 여성단체 대표와 각계 인사 40여명이 모인 가운데「가족 계획에 있어서의 남성의 역할」이란 주제로 공개 세미나를 가졌다.  이 세미나는 처음으로 여성들이 남성에게 과감하게 문제를 던졌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학계,가족계획사업 관계자와 정치·문화계 인사 등 다채로운 각 분야 남성들이 초빙되어 또한 이채로왔(웠)다.    토론의 취지 설명에서 이화여대 이효재(李效再) 교수는『우리나라의 여성은 그동안 출산의 노예로 살아왔다. 자녀를 낳는 것도, 안낳는 것도 그 책임이 여성에게 있는 것처럼 몰려 왔다』며 어떻게 하면 단산의 책임만이라도 남성에게 맡길 수 있느냐는 문제를 던졌다.  특히 근래의 여성들은 인구 조절이라는 과제 앞에 피임약을 먹고 루프 등 피임기구를 몸 속에 끼우고 살아야 하는 불안, 인공유산을 해야 되는 위험을 홀로 감수하고 있다고 강조.  『낳는 것은 여자가, 안낳는 것은 남자가』-이(李)교수의 설명은 피임에서부터 단산에 이르기까지 그 실천을 남성이 솔선해서 해달라는 애절한 호소와도 같았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강갈원 박사는『이상적인 피임 방법이 개발되었다면 이 세미나가 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실패율이 전혀 없는 것은 남성의 정관 절제와 여성의 난관 결찰(結紮) 수술뿐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토론은 남자쪽이 수술하는 편이 훨씬 간편하다는 정관절제(불임수술)에 관해 집중되었다.  한국의 피임은 전체 대상 인구의 25%가 실시하고 있다고. 선진국의 60% 이상인 것에 비하면 너무도 낮은 율이고 그 가운데 남자 불임수술은 2%, 여자의 난관 결찰률이 0.5%이다. 나머지는 콘돔과 투약 등 재래식 방법과 자궁내 장치(루프) 등으로 대부분 여자쪽에서 실시하는 것. 남성이 피임에 참여하는 율은 고작 20%.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한 부인들은 인공유산 방법으로 이를 해결하기 때문에 한해 약 30여만명이 이 수술을 받고 있으며 그 중 60%에 해당하는 18만여명은 수술 이유가 가족수 제한이었다. 3명 이상의 자녀를 두어 더 낳고 싶지 않으면서도 대부분의 부부가 불임수술을 피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부작용이 많고, 수술 비용의 부담을 가지고서도 이를 감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들의 횡포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게 여성쪽의 저항이다. 아이를 낳는 고통과 수술의 고통 등 위험을 맛보지 않은 남편들은 좀더 가정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는「봉처가」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는 것.  이러한 갈망 속에서도『남성들의 불임수술이 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느냐』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구구.  최선의 방법이라는 남자 불임수술이 도입된 62년 이래 수술을 한 남성은 모두 33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구의 1%에 불과한 이 실태는 외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고 있다는 것.  가족계획협회 측은 뒤떨어진 이유를 아직도 불임수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되고 있지 못하지 때문이라고 보고, 수술의 영향에 대한 엉뚱한 기우가 곁들여져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고 말했다.  수술 대상이 되는 남성들은 한마디로 겁장이(겁쟁이). 우선「수술」이라는 이름 때문에 겁을 먹고 정상을 비정상화 한다는 생각으로 크게 꺼린다.  마치 불임수술이 옛날 궁중의 내시(內侍)처럼 거세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며 정력이 쇠퇴되는 등 남성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게 될까보아 심리적으로도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 견해다.  남자 불임수술에 대한 걱정은 남성 자신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도 나왔다. 한 여성단체의 대표로 참석한 박(朴)모 여사는『아내쪽에서도 남편의 수술이 달갑지 않은 경우가 있더라』며 수술 후 남편의 기능이 달라졌다는 어느 부인의 예를 들었다. 정력이 감퇴되었다는 경우였다. 이희영(李熙永) 교수는『그 부인의 경우는 남편이 탈선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씨 없는 수박이 되었으니 마음 놓고 방종을 하는 거죠. 다른 젊은 여자를 보고 있을 지도 모르니 착실히 뒷조사를 하도록 귀띔해 주세요』정관 수술로 이상이 생길 리 없다는 확답이다.  이(李) 교수가 수술을 받은 남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수술의 정신적인 영향 문제에 대해 전체의 70%가「아무 변함 없다」로 절대적이고 20%가「좋아진 것 같다」, 나머지 10%가「나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결국 심리적인 착각을 느끼는 사람이 30%에 이르고 있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정관을 잘라 버리는 이 불임수술은 거세와는 전혀 다른 것.  이 수술의 원리는 정자가 나오는 정관만을 묶거나 자르는 것. 몇해 전에는 복원의 미련 때문에 정관을 아주 자르지를 않고 묶어 두는 벙법도 썼으나 최근에는 그 방법을 쓰지 않고 아예 잘라 놓는 수술을 한다. 그렇다고 영원히 잘린 것은 아니다. 다시 필요하게 되면 언제든지 복원이 가능. 복원수술의 성공율(률)도 크게 기술이 늘어 희망자의 70%는 성공한다고.  수술비는 무료에서 최고 5천원까지. 수술에 소요되는 시간은 2·3분. 더구나 부작용은 4% 미만의 안전한 것으로 1백명에 4명이란 얘기.  「출산은 여자, 단산은 남자」가 하자는 운동을 벌이기로 한 50만 여성단체 회원들이 소리가 바야흐로 메아리치고 있다. <燦>    <투투 클럽의 정관 수술 캠페인>  『공처가가 됩시다』라는 이색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지난 71년 12월 발족한 투투 클럽(TWO TWO CLUB)이 이번에는『행복을 무료로 나눠 드립니다』라는 구호를 들고 나와 남성 정관수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투 투 클럽」이란『딸 아들 구별없이 둘만 나아 기르자』는 세계적인 추세에 절대 호응, 자녀 둘만 가진 부부 5백쌍들의 모임.  이들은『수고하고 짐진 자여, 모두 바스토닉왕국으로 모여라』는 유머스러한 현대판 성경 구절을 창작, 남성 피임을 적극 권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해 10월에 이어 두번째로 내주부터 연말까지 5백명의 남성에게 수술비용 일체 및 사후관리까지 책임지고 정관 수술을 해주겠다는 계획.  애처가나 공처가(恭妻家)이면 누구나 무료시술한다는 김영목(金英穆) 회장의 말. 희망자는「투 투 클럽」(74-1046)으로 문의하면 전문의 김중림 피부비뇨과, 이승호 피부비뇨과, 장양섭 외과 등으로 친절히 안내, 수술을 받게 한다고. [선데이서울 73년 7월22일 제6권 29호 통권 제249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카다피 3주 안에 망명할 것”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3주 안에 망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또 카다피가 안전상의 이유로 수도를 떠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카다피 정권의 유엔대사 출신으로, 반군에 합류한 압둘하람 샬감은 2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코리에레 TV와의 인터뷰에서 “3주 안에 그가 리비아를 떠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행선지는 벨라루스가 가장 유력하다.”고 밝혔다. 이어 “출국하면서 수도 트리폴리 근교의 유전 수십 곳에 불을 지르라는 명령을 내릴지도 모른다.”면서 “카다피 친위부대가 관리하고 있는 리비아 서부 유전들을 파괴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반군 측 대표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의 마흐무드 샤맘 대변인은 이날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에 “평화적 해결을 전제로 카다피를 국내 유배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의 안보 담당 고위 관료는 “카다피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집중 폭격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수도 트리폴리를 빠져나가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얼굴 못 드는 ‘facebook’

    전 세계 7억명의 인류를 온라인으로 이어주며 ‘또 다른 세상’을 만든 페이스북이 사용자들의 탈퇴 행렬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의 페이스북 창업기를 다룬 영화 ‘소셜네트워크’의 각본자와 주연배우까지 피로감을 호소하며 탈퇴하면서 ‘페이스북의 전성기가 끝나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나리오 작가인 에런 소킨(49)은 22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국제광고제에 참석한 자리에서 페이스북을 탈퇴한 사실을 밝혔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이 전했다. ‘소셜네트워크’로 올해 아카데미상 각색상을 수상한 소킨은 “현관에서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려고) 소리치는 노인처럼 소셜미디어에 할 말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소셜미디어가) 빠른 것은 인정하지만 깊이가 없다. 인생은 단순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소셜 네트워크’의 주인공인 제시 아이젠버그(28) 역시 페이스북 탈퇴 대열에 동참했다. 그는 “영화를 만들 때 가명으로 페이스북에 가입했지만 페이스북이 친구를 맺으라며 권유해 주는 인물 중 내 여동생의 고교 때 친구가 포함된 것을 보고 탈퇴했다.”면서 “어떻게 그녀를 찾아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연출한 데이비드 핀처(49) 감독은 지난 2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 가입을 꺼렸음을 밝히면서 “‘상호 연결된 세상’이라는 개념에 위선이 있음을 느낀다.”고 쓴소리를 했다. 일반 가입자 역시 페이스북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페이스북 전문 통계 사이트인 인사이드페이스북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과 캐나다의 페이스북 탈퇴자 수는 모두 700만명에 이른다. ‘디지털 인맥’을 다지려면 너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고 페이스북의 콘텐츠들도 식상해지면서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 사는 대학생 킵 크리거는 “페이스북의 친구들이 똑같은 내용을 계속 올리는 데 지쳐 간다.”면서 “내가 굳이 다른 사람의 아기 사진이 업데이트되는 것을 지켜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의 연구진은 최근 인터넷, 휴대전화 등을 어려서부터 사용한 ‘디지털 유목민’들이 전자통신 수단을 활용한 소통에는 대단한 재능을 보이지만 정작 실제 대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떨어진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페이스북 측은 “탈퇴 현상은 작은 문제일 뿐이며 오래 가지도 않을 것”이라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6·25전쟁 당시 1사단장 백선엽 장군

    [김문이 만난사람] 6·25전쟁 당시 1사단장 백선엽 장군

    톨스토이가 쓴 명작 ‘전쟁과 평화’를 잠시 기억해본다. 마지막 부분이다. 주인공 안드레이 청년이 죽어가면서 ‘시베리아의 하늘도 파랗구나’라고 읊었다. 평화로운 파란 하늘을 진작 봤으면 전쟁을 할 일도 없을 텐데 죽어갈 때 누워서 하늘을 보니 ‘왜 피 흘리면서 전쟁을 했을까’라는 물음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6·25전쟁은 왜 했을까. 평화를 위해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했고, 세월이 지난 지금도 눈물겹도록 아프게 하는 역사를 왜 만들어야 했을까. 참으로 비통하고 영원히 기억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 민족의 큰 상처이기에 해마다 6월이면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1950년 6월 25일 아침 7시였다. 젊은 장교의 일성은 이랬다. “사단장 각하, 전방에서 적이 전면적으로 침공해 왔습니다. 개성이 대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개성은 벌써 점령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서울과 개성 등 전방을 지키는 보병 제1사단 작전참모 김덕준 소령의 숨가쁜 목소리를 들은 것은 당시 백선엽 1사단장이다. 우리 역사에서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을 알리는 제1보였다. 백선엽 장군은 시흥에 있던 육군보병학교에서 10일 전부터 3개월 과정의 고급간부교육을 받고 있던 중 급거 귀대하여 1사단을 지휘했다. 이후 낙동강까지 후퇴한 1사단은 한국군 부대 중에서 유일하게 미1군단에 배속돼 지원 나온 미군 2개 연대와 함께 경북 칠곡의 다부동 전투를 치렀다. 전투 중 한국군 병력의 후퇴와 무단이탈이 심해지자 함께 다부동을 지키던 미군 27연대장 마이켈리스(Michaelis) 대령이 “전선 좌측의 한국군 부대가 무단 이탈하고 있다.”며 다급하게 전황을 알려왔다. 백선엽 장군은 후퇴하는 국군을 막으며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저 사람들(미군)이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순 없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며 싸울 것을 호소했다. 이후 1사단은 평양 입성을 가장 먼저 했다. 백선엽 장군은 최근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라는 제목으로 6·25 전쟁 당시 1128일의 기억을 책으로 펴냈다. 6·25전쟁 얘기만 나오면 누구보다 또렷이 기억하는 살아 있는 역사로 여긴다. 6·25전쟁 61주년을 앞두고 지난 20일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에서 백선엽 장군을 만났다. 6월이어서 그런지 강의를 해 달라는 손님들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뒤에야 자리에 마주 앉았다. 1920년생이면 우리 나이로 92살. 그런데도 전쟁의 기억은 분명했다.. 차 한 잔을 마시더니 백 장군이 “고향이 어디요.”라고 물었다. 제주도라고 답을 드렸다. 그러자마자 나오는 얘기는 이러했다. “제주도 무척 많이 갔지. 6·25때 모슬포에 보충대가 있었어. 16주 동안 교육을 시키고 전쟁터에 보냈거든, 그래 육군 제1 훈련소야. 20살 전후의 청년들 10만명 정도가 훈련을 받았어, 내 동생(백인엽 장군)이 훈련소장도 했고. 태풍도 많이 왔어. 미군부대에서 지원 받은 천막을 치고 훈련했지. 하루에 상륙함정(LST) 두 척이 오고 가면서 훈련병들을 실어 날랐어. 그 병사들이 전쟁터에 많이 죽었어.” 백 장군의 눈이 잠시 감긴다.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전쟁상황에서 지금의 5~6주 교육보다 더 긴 16주 교육을 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 “미군의 2차대전 방식을 그대로 따랐거든. 미군은 100개 사단이 있었는데 대부분 16주 동안 훈련을 받고 전쟁터에 보내졌어. 2차대전때…. 제주도 훈련소는 일제때 썼던 비행장이야, 그러니까 일본군들이 중국의 난징(南京) 폭격을 위한 중간 기지였지. 훈련소에는 미군 고문관들이 많았어.” 백 장군은 왜 제주에 자주 갔을까. “내가 육군참모총장을 했었거든. 훈련소에 물이 부족했어. 그걸 해결하기 위해 LST나 미군 비행기를 이용해서 여러 번 갔어. 아마 수십 차례 될걸. 또 동생이 1년동안 훈련소장으로 있었거든. 장도영 장군도 훈련소장을 했었지.” 백 장군은 잠시 4·3사건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1948년 4월 3일이야. 내가 부산 3여단 참모장을 했어. 제주 관할이니까 부대 시찰차 갔었지. 그때는 제주읍이야. 4월3일 아침에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데 김익열 연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어. 김달삼(金達三)이 이끄는 폭도들이 제주지역 11군데 지서를 습격했다고 말야.” 잠시 관련 자료을 들여다본다. 김달삼은 사회주의 혁명가로 제주 4·3 사건을 주도한 남조선로동당원이다. 그의 본명은 이승진이며, 고향은 대구. 일본에서 중학교와 대학을 나왔다. 1945년 1월 일본에서 강문석의 딸 강영애와 결혼했으며 김달삼이란 이름은 원래 강문석이 쓰던 가명이다. 1946년 말 제주도 대정중학교 사회과 교사로 재직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르쳤다. 그는 교사로 재직 중에 남로당 대정면 조직부장을 맡았으며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책이자 군사부 책임자가 됐다. 화제를 다시 돌려 6·25 전쟁때 제1보를 보고한 김덕준 소령에 대해 물었다. “그날 아침 7시였어. 지금도 그 목소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 전화를 받는 순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북한이 탱크와 전투기를 갖고 있는거 알았거든.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도 수차례 얘기했고…” 백 장군은 이 대목에서 “이승만 대통령도 미군에게 북한의 남침 예상을 얘기했고 나도 미군 고문단과 만날 때마다 전투기와 탱크, 대포를 달라고 수차례 말했다.”고 술회했다. “우리야 그때 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 미군에게 그렇게 여러번 얘기해도 귀담아 듣지 않았어. 희생을 줄일 수도 있었는데 말야. 북한군은, 나중에 노획문서를 보니 깨소금까지 준비할 정도로 매우 치밀하게 전쟁을 계획했어.” 백 장군이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군이 왜 6월 25일을 택했는지 알 수 있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북한군은 남한에서 먹을 것이 많은 계절인 6월부터 9월까지를 정했지. 3개월이면 부산까지 싹 쓸어버릴 작정이었어. 이 시기는 들판에 가면 먹을 것들이 많거든. 전쟁에서 먹거리는 매우 중요해. 북한은 추수때까지 전쟁을 끝낼 계획을 짰어.” 그렇다면 우리 군사들은 무엇을 먹고 싸웠을까. “낙동강까지 후퇴하면서 농협창고에서 쌀을 얻었고 밭에 가면 파와 배추가 있었지. 그걸 먹었어. 또 우리 선량한 아주머니들, 국민들이 갖다주는 음식도 먹었어. 아주 훌륭한 분들이야. 다부동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주민들이 갖다주는 음식이 있었기 때문이지.”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북진할 때는 어땠을까. “김일성 군대는 낙동강에서 완전히 녹았어. 북진을 하면서는 시장에서 먹을 것을 사 왔고 군에서 나오는 건빵을 먹었지. 고지 전투에서는 배가 고파 이탈하는 군인들도 더러 있었어. 북진할 때는 하복을 입었는데 나중에 동복으로 갈아 입었고…. 북한 주민들이 우리를 보더니 많이 환영했어. 먹을 것도 주고….” 백 장군은 평북 운산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과 맞닥뜨린다. “중공군은 장개석 군대 출신들의 최정예 부대야. 일본군과 10년을 싸운 군사들이었지. 전쟁경험이 아주 많아. 그런 군사 100만명이 압록강을 넘어와 매복을 하고 있었으니 우리 군이 당할 수밖에 없지. 그래도 우리 1사단을 덜 당했어. 운산 일대에 중공군 30만명이 매복하고 있다는 것을 하루 전에 알 수 있었지. 하루 밤새 싸우다가 도저히 안 되더라구. 결국 후퇴하고 말았지만….” 그러면서 백 장군은 북한군의 변화상에 대해 여러 번 강조했다. “남북한은 여전히 휴전 상태이며 두 세대가 지나는 동안 북한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120만명의 지상군과 20만명의 특공대를 갖고 있다.”면서 “지난 61년 동안 북한은 청와대도 습격하고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도를 포격하는 등 별 장난을 다했다.”고 말했다. “우리 젊은이들이 경계를 잘해야 돼. 대부분 고등학교 이상 출신들이 군대를 가잖아. 자원이 아주 훌륭해요” 백 장군은 군사영어학교 출신이다. 전체 110명이었는데 지금 만나는 동기들은 겨우 15명 내외에 불과하다. 건강이 어떠냐고 했다. “아픈 데 없어. 병원도 안 가. 동기들과 만나 옛날 얘기하는 재미로 살고 있어.” 맥아더 장군이 얘기했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 백 장군은 “너무 오래 살았어.”하면서 껄껄 웃는다. 편집위원 km@seoul.co.kr >> 백선엽 그는 누구인가 1920년 평안북도 강서군 덕흥리에서 태어났다. 1940년 3월 평양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사로 재직하다가 만주 봉천(奉天) 군관학교에 진학하면서 군인의 길을 걸었다. 1942년 12월 제9기로 졸업하고 견습군관을 거쳐 1943년 4월 만주군 소위로 임관했다. 해방 직후에는 잠시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45년 2월 월남했다. 이후 1945년 12월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학했고, 1946년 2월에 임관했다. 그해 1월 창설된 국방경비대에서 제5연대장을 맡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방경비대가 정식으로 국군으로 재편되면서 제5연대장과 육본 정보국장을 거쳐 1950년 4월에 개성을 관할하는 국군 1 보병사단 사단장(당시 계급 대령)으로 부임했다. 1951년 겨울에는 지리산의 빨치산 소탕을 위한 ‘백(白) 야전사령부’를 구성했으며 이 사령부를 모태로 이듬해 4월에는 한국군 최초로 근대화된 2군단을 창설했다. 1952년 7월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후 군 훈련체계의 개혁, 보급체계 개편, 상이군인들에 대한 복지 향상 등에 힘썼다. 이때 10개 상비사단 창설(11~20사단), 10개 예비사단 창설 등을 추진했다. 퇴역 후에는 외교관 생활을 한 뒤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대한민국 최초의 원수계급에 해당하는 예우를 받고 있다.
  • [지역 일자리 우리 힘으로] (5) 부산 ‘사회적’ 주식회사 ‘갑피두레’

    [지역 일자리 우리 힘으로] (5) 부산 ‘사회적’ 주식회사 ‘갑피두레’

    1980년대 부산시는 노동집약적인 신발공장의 집산지였다. 하지만 1990년대 초 인건비가 싼 중국과 베트남 등지로 신발공장이 옮겨 가자 일자리도 사라져 갔다. 대신 들어선 첨단산업은 일자리 유발효과가 크지 않았고 그마저 취약계층에는 접근할 수 없는 고급 일자리였다. 없어져 가는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부산시와 고용노동부가 사양산업인 신발공장을 되살리는 시도를 하고 있다. 21일 찾은 부산시 사상구 사상공단에 위치한 ㈜갑피두레는 지난 3월 23일에 설립돼 3개월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이미 27명의 고용창출효과를 거뒀다. 올해 말까지 직원수를 5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들은 신발의 ‘갑피’를 만든다. 갑피는 신발에서 밑창을 제외한 윗부분으로 여러개의 안창과 겉창 재료 조각을 재봉틀을 이용해 결합해 만든다. 섬세한 곡선 박음질이 많아 기계로는 할수 없다. 따라서 인건비가 싼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 제작해 들여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들 국가의 인건비도 오르면서 갑피 단가가 3달러 50센트(약 3800원)까지 올랐다. 우리나라 공장의 단가는 4000~4500원으로 운송비 등을 고려하면 국내 제작이 유리한 시점이 된 셈이다. 사금희(53·여) 갑피두레 대표이사는 “국내 갑피의 높은 품질 덕분에 고급 신발 업체들이 부산으로 돌아오고 있으나 기능공들이 다 자취를 감춘 상태라 곤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갑피두레는 부산시에서 공장 임대료 2000만원, 고용부에서 직업훈련 비용 8000만원을 지원받는다. 하지만 대표이사를 포함해 관리직 직원 3명이 주식을 보유한 주식회사다. 사회적 기업들이 책임자가 없어 경쟁에서 뒤쳐지는 부분을 보완하려는 의도다. 반면 높은 고용창출효과와 이익의 30%를 지역공헌기금으로 적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점은 사회적 기업과 마찬가지다. 아직은 직원들의 월급을 충당하기에 바쁘다. 4월에는 3500만원, 5월에는 4000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1인당 일하는 시간과 기능에 따라 80만~150만원의 월급을 주고 있다. 직원중 20명은 퇴직기능인인 갑피기능공협회 회원들이다. 따라서 ‘마을기업’과 비슷하게 가족 같은 분위기가 특징이다. 원하면 나이와 관계없이 일할 수 있다. 하지만 특정 기술을 가진 협회가 기업으로 변모했기 때문에 ‘마을기업’과 달리 전문성이 강하다. 회사 설립과 동시에 일감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도 예전의 거래 관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주로 이주여성을 고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 7명을 고용했고 하반기에 교육시켜 채용할 20여명도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찾고 있다. 2007년 우리나라에 온 김띠엔(35·여)씨는 “이곳에서는 차별이 전혀 없다.”면서 “한달에 90만원의 월급을 받으면서 내 일도 갖고 생활도 나아져 만족한다.”고 말했다. 물론 갑피두레가 장기적으로 정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노동집약적인 다른 산업들도 발굴해야 하는 숙제도 남아 있다. 이 사업을 총괄한 김종한 부산고용촉진지구 사업단장(경성대 교수)은 “틈새일자리사업으로 시작했지만 이미 올해 고용창출 목표인 25명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글 사진 부산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영화프리뷰] ‘정무문: 100대 1의 전설’

    [영화프리뷰] ‘정무문: 100대 1의 전설’

    무림의 고수 곽원갑(1868~1910)은 열강의 침탈이 극심하던 시절, 중국 상하이에 근대적 무술학교 정무체육회를 설립하는 한편, 열강의 격투가들을 거푸 무릎 꿇린 국민 영웅이다. 결핵을 앓아 일본인 의사의 진료를 받았는데, 외려 증상이 악화돼 요절했다. 훗날 시신에서 비소가 검출됐다. 하지만 중국 전통의학에서 비소는 일상적으로 쓰였다. 사인은 미제로 남았다. 여기까지는 실제 이야기다. 스승 곽원갑의 죽음을 되갚고자 수제자 ‘진진’(가상 인물)이 일본 도장에 쳐들어가 100대1의 결투를 벌인다는 영화 ‘정무문’(1972)은 ‘아뵤~’ 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리샤오룽(李小龍·1940~1973)을 전설로 만들었다. 1994년 리롄제(李连杰)를 내세워 다시 만들어졌다. 17년이 흐르고서 현역 배우 중 최고수라는 전쯔단(甄子丹·48)이 진진에 도전했다.  22일 개봉하는 ‘정무문: 100대 1의 전설’은 오리지널 ‘정무문’ 이후 시점에서 출발한다. 진진이 스승의 원수를 갚고서 일본군에 목숨을 잃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정무문’ 원작의 마지막 장면은 일본군을 향한 공중 발차기로 끝난다). 하지만 그는 중국군의 일원으로 제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전선에서 독일군과 맞서 싸운다.  진진과 동료 모두 전사자로 기록된 후 7년이 흐른다. 상하이는 중국 애국인사를 겨냥한 일본의 백색테러로 뒤숭숭하다. 어느날 밤 일본군의 사주를 받은 자객들이 중국 군부 거물을 제거하려던 순간 ‘천산흑협’이 홀연히 나타난다. 진진과 천산흑협의 연결고리를 의심한 일본은 진진의 주변인물들을 무참하게 살해한다.  ‘무간도’ 시리즈를 연출한 류웨이장(劉偉强)이 메가폰을 잡고, 1994년 ‘정무문’의 연출·각본을 맡은 천자상(陳嘉上)이 각본을 맡았다. 이들은 ‘정무문’을 붕어빵 찍듯 만들지 않았다. 어차피 리샤오룽과 원작의 그늘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  대신 진진이 홍구도장 격투 이후 살아남았다는 흥미로운 설정과 함께 슈퍼히어로물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천산흑협 캐릭터를 진진에게 입혔다. 낮에는 사교클럽 ‘카사블랑카’의 투자자로 한량처럼 지내다가 밤에는 천산흑협으로 일본과 맞선다는 설정은 ‘배트맨’을 떠올리게 한다. 천산흑협의 검정 의상·마스크는 1966년 미국 TV시리즈 ‘그린호넷’에서 리샤오룽이 맡았던 ‘케이토’와 똑같다. 원조 진진에 대한 오마주(헌사)인 셈.  최고의 볼거리는 나이 50이 눈앞이지만, 특수효과가 필요없는 전쯔단의 맨몸 액션이다. 독일군 중화기를 요리조리 뚫고 침투하는 도입부와 일본 가라테 고수들과의 대결에서 선보이는 560도 공중 돌려차기 등은 입을 떡 벌어지게 한다. 압도적인 스피드와 특유의 근접 격투기술은 배우가 아닌 무림의 고수를 알현하는 듯하다.  아쉬운 대목도 있다. 전쯔단의 피아노 연주나 수치(舒淇)와의 멜로 연기는 나쁘지 않다. 어색한 것은 상체 근육을 과하게 부풀린 그의 몸이다. 영화의 장단점과 궤를 같이한다. 블록버스터급으로 스케일을 키운 영화처럼 전쯔단의 액션은 힘이 넘친다. 그런데 예전의 우아함은 잃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나토, 리비아 민간인 오폭 인정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소속 전투기의 폭격으로 지난 주말 트리폴리의 민간인 다수가 희생됐다는 리비아 정부의 주장을 19일(현지시간) 나토가 시인했다. 나토는 리비아 군사작전 사령관인 찰스 부처드 중장 명의의 성명을 통해 ‘무기 체계의 오작동’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을 수 있다고 오폭을 인정했다. 이번 사안은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를 축출하기 위한 지난 4개월간의 리비아 공습에서 나토와 다국적군이 저지른 최대 실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앞서 리비아 정부는 나토의 미사일이 트리폴리의 주거지역 내 민가에 떨어져 어린이 2명을 포함해 적어도 9명의 민간인이 숨졌다고 밝혔다. 부처드 중장은 성명에서 “리비아군의 미사일 군사 지역이 공습의 목표였으나, 미사일 가운데 하나가 의도된 목표를 맞히지 못하고 무기 체계 오작동으로 다수의 민간인 사상자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나토는 현재 오폭의 정확한 진상을 밝히기 위해 전투기 조종사와 전투기에 입력된 폭격 관련 자료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나토 관계자는 “정확한 폭파 지점에 대해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리비아 사태 이후 무장한 반군에 대한 나토의 오폭 사례는 더러 있었지만, 이번 사안은 비무장 민간인이 주거지역에서 나토의 오폭으로 희생당한 것이어서 향후 리비아 내 나토의 군사작전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당장 리비아 정부는 나토의 공습이 리비아 내 불안정과 무질서를 부추기고 있다며 아랍 세계의 ‘성전’을 촉구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시리아 반정부세력 국가위원회 출범

    시리아 반정부 세력이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퇴진 운동을 지휘할 국가위원회를 출범시킨 가운데 알아사드 대통령은 바트당의 집권 종식 등을 포함한 개헌을 논의할 용의가 있다며 ‘대화’를 제안했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그러나 시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어떠한 개혁도 이행할 수 없다며 ‘선(先) 시위중단’을 요구했다. 이에 맞서 반정부 세력은 병력 철수가 우선이라며 평행선을 달렸다. 반정부 세력이 ‘대화’ 대신 ‘투쟁’을 선언한 직후인 20일(현지시간) 알아사드 대통령은 다마스커스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개헌 논의를 위한 대화를 제의했다. 알아사드는 대화 결과에 따라 반정 세력이 요구한 조기 총선 및 집권 바트당의 집권 종식 가능성 등을 시사했지만 이는 시위중단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정부 세력은 알아사드 대통령이 정작 주요 도시들에서의 군병력 철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 현사태에 대한 군사적 해결 여지를 남겨 놓았다고 비판했다. 앞서 19일 자밀 사이브 반정부세력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시리아 안팎의 모든 공동체와 정치세력을 규합해 혁명을 이끌 국가위원회의 창립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국가위원회의 설립 목적은 야당세력을 결집해 혁명을 지원하고 국제사회로부터 호응을 얻어내는 것이다. 사이브 대변인은 “리비아의 경우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유혈진압하자 국제사회가 재빠르게 카다피 퇴진을 촉구했으나 시리아에서는 지금까지 1500여명이 숨지고 수천명이 체포됐지만 국제사회가 침묵하고 있다.”며 세력 응집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한글도시’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세종시에 신설되는 구(區)와 동(洞) 등 행정구역과 도로, 다리, 시설 등의 이름을 세종시의 상징성을 살려 한글로 짓기로 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를 위해 건설청은 전국 공모를 실시하고, 이미 한글로 불리고 있는 지명은 최대한 살려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세종시 내에는 모듬내, 공수마루, 통묏들, 세거리, 수렁배미, 방아다리, 불탄터, 띠울, 머레, 옷시암거리, 지내, 찬물내기, 도깨비탕, 빼리, 호미다리, 참샘골, 선돌, 엄고개, 속골 등의 한글 지명이 있다. 건설청 관계자는 “세종시가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이름을 따서 만든 도시인 점을 감안해 이런 방안을 마련했다.”며 “좋은 이름이 결정될 수 있도록 지역주민과 전문가 등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건설청은 주요 지역과 원수산(해발 254m) 및 전월산(260m) 등 산에 얽힌 전설과 신화 등을 발굴해 책으로 펴내고 관광자원화하는 방안도 추진할 방침이다. 또 세종시를 쾌적한 명품도시로 만들기 위해 담과 전봇대, 쓰레기통, 불법광고물, 노상주차가 없는 ‘5무(無) 도시’로 만들 방침이다. 연기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작가클럽(고정욱 글·최신오 그림·거북이북스 펴냄)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등 각종 뉴미디어가 인기인 시대에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글쓰기 능력. 소설가, 정치가, 작가 등을 꿈꾸는 아이들이 꿈을 향해 가는 과정을 만화와 함께 재미있게 담아냈다. 9000원. ●로타는 기분이 좋아요(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일론 비클란드 그림·김서정 옮김·바람의아이들 펴냄) ‘삐삐’ 시리즈를 만들었으며 스웨덴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동화작가인 린드그렌(1907~2002)이 쓴 명랑하고 유쾌한 여자아이들 이야기. 9000원. ●도둑이 된 잭과 콩나무 (글공작소 글·강영수 그림·아름다운사람들 펴냄) 원작에서 잭은 우연히 얻은 요술 콩의 줄기를 타고 올라가 거인의 성에서 몰래 가져온 보물로 부자가 된다. 원작을 살리면서도 기발한 반전으로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거꾸로 쓰는 세계명작 시리즈. 9800원. ●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세계 문화유산(원의경 글·전경희 꾸밈·김원수 감수·도서출판 아람 펴냄) 외울 것이 많아 까다롭게 느껴지는 사회 과목을 주인공으로 한 ‘똑똑한 사회씨’ 시리즈. 그림책으로 만나 보는 사회 교과서다. 사진과 그래픽도 풍부하다. 9000원.
  • 소셜미디어는 나토 ‘정보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도 리비아 공습에서 트위터,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의 막강한 정보력에 기대고 있다. 나토군이 리비아 공습에 앞서 타격 대상을 정하고 공습의 성과를 평가하는 데 소셜 미디어를 ‘정보 센터’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6일 보도했다. 이집트, 튀니지 등 중동 시위와 결합해 독재자 퇴진이라는 극적인 역사를 일궈낸 소셜 미디어가 다국적군의 군사작전에도 필수 무기가 된 것이다. 리비아 현지인들과 현지 상황을 꿰고 있는 사람들이 올리는 각종 메시지를 분석·종합·가공해서 유용한 정보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비아 군사작전 대변인인 영국공군(RAF)의 마이크 블래큰 사령관은 “트위터는 이곳 상황의 전체 그림을 그려 보는 데 도움이 되는 오픈소스 중 하나”라면서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출처에서 정보를 취합한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특히 극히 소수의 특수부대가 활동하고 있는 지상전에서 어떻게 정밀유도무기를 사용할지 계획하는 데 트위터에서 얻은 정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역효과도 만만치 않다. 우선 리비아에 거주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올리는 메시지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 14일 한 여성 트위터 사용자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친위대가 미스라타에 있다는 메시지를 나토군 페이지에 띄웠다. 하지만 이 사용자가 어디에 살고 있고 어떻게 이 정보를 얻어 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허위 정보가 확산될 위험도 있다. 영국 국방부는 이번 주 당국자들에게 “영국의 적에게 우위를 뺏기지 말라.”면서 “트위터나 페이스북 업데이트를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라.”고 경고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카다피군, 세계유산을 방패로

    카다피군, 세계유산을 방패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고대 로마의 유적지 렙티스 마그나가 포화에 휩싸일 위기에 놓였다.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근거지인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와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미스라타 사이에 끼어 있는 이곳에 최근 짙은 전운이 감돌고 있는 것이다. 리비아의 지중해 연안에 있는 렙티스 마그나는 기원전 200년 절정을 맞은 고대 로마의 해안 도시로, 지중해 일대에서 가장 잘 보존되고 장엄한 유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알렉산드리아와 카르타고에 이어 아프리카 지역에서 세번째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원형극장과 목욕탕, 광장, 수많은 아치형 구조물이 있는 이곳에 카다피군이 최소한 5대의 그래드 로켓 발사체와 수백개의 로켓, 각종 군수품을 숨겨 놓았다고 반군측은 주장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서다. 반군 관계자는 14일(현지시간) “카다피는 나토가 고대 유적만큼은 결코 공습하지 못할 것이라 믿고 각종 군수품을 렙티스 마그나의 건물 곳곳에 숨겨놓았다.”고 말했다. 그래드 로켓 발사체는 사정거리가 30㎞가 넘고, 40발의 로켓을 일시에 발사할 수 있다. 최근 정부군이 미스라타 공격에 주로 사용했다. 또 반군이 일부를 점령한 질탄 지역 등을 공격할 때에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나토군이 이 지역에 대한 공습을 검토하기 시작하면서 고대 로마 도시의 파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외신들은 “고고학적인 유물도 전적으로 안전하게 보존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렙티스 마그나가 그런 위험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은 카다피와 그 가족의 신세가 얼마나 재앙적인 상황에 놓일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전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카다피 런던 오면 어쩌나”

    내년 7월 하계 올림픽 준비에 한창인 영국이 ‘뜻밖의 비보’에 술렁이고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1000장 가까운 런던 올림픽 경기 입장권을 손에 쥐었기 때문이다. 카다피가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돌발행동이라도 꾸민다면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리비아올림픽위원회(LOC)가 최근 20 12년 런던올림픽조직위원회로부터 주요 경기의 티켓 수백장을 할당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15일 보도했다. LOC의 위원장은 카다피 국가원수의 장남인 무하마드가 맡고 있다. 런던올림픽조직위원회 측은 “리비아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원국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IOC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표를 나눠줬다.”고 설명했다. 리비아 정부가 올림픽 경기 티켓을 타가자 영국 정부도 적지않게 당황하는 눈치다. 특히 카다피가 2012년까지 권좌에서 버틸 경우 리비아 특사단이 올림픽 경기장에서 세계 언론의 시선을 끌기 위한 ‘계략’을 꾸밀 가능성을 우려한다. 다만,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카다피가 런던을 직접 찾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카다피 차남 반군접촉… 출구모색

    ‘결사항전’의 뜻을 굽히지 않던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한 발 물러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9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연합(UAE) 수도 아부다비에서 열린 리비아 사태 관련 연락그룹 회의에서 “카다피와 가까운 측근들이 다른 교섭 담당자를 통해 권력이양 가능성을 놓고 지속적인 접촉을 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아직 명확하게 진전된 것은 없다.”고 말해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블룸버그TV도 이날 반군 대표기구인 국가위원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이 카다피 퇴진 문제를 협상하기 위해 최근 반군과 접촉했으며,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카다피가 리비아에 남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망명국에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카다피가 퇴로를 찾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반군을 지지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는 이날 회의에서 외교적 지원뿐 아니라 반군에게 11억 달러(약 1조 2000억원)의 금전적 지원도 약속했다. 이탈리아는 긴급 자금으로 6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고 쿠웨이트도 1억 8000만 달러를 즉시 송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프랑스는 동결된 리비아 중앙은행의 자산 4억 2000만 달러를 반군 소유로 인정했고 터키도 지원기금 1억 달러를 조성했다. 나아가 미국과 호주는 이번 회의에서 반군의 국가위원회를 리비아 국민을 대표하는 대화 상대로 인정했다. 압둘라예 와데 세네갈 대통령은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반군의 거점 도시인 벵가지를 방문해 카다피의 조속한 퇴진을 촉구하며 반군 측에 힘을 실어 줬다. 이런 가운데 카다피를 겨냥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군사 공격은 이날도 계속됐다. AP통신은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와 주변 지역에 있는 군사시설, 카다피 관저의 주요 건물 등에 대한 공습이 계속돼 최소 14차례의 폭격음이 들렸다.”고 전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카다피, 女시위자들 진압하려 ‘성폭행’ 명령까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군인들에게 비아그라까지 지급하며 성폭행을 무기로 시위 여성들을 진압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8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국제형사재판소(ICC)의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58) 수석 검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카다피 국가원수가 비아그라와 같은 약물을 친위부대 군인들에게 제공했다는 증거를 확보해 성폭행을 부추겼는지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최근 리비아에서는 카다피군에 의한 성폭행 사례가 늘어나면서 리비아 정부가 군인들에게 비아그라를 제공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카다피가 시위대를 효율적으로 진압하는 동시에 시위대 사이에 공포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성폭행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오캄포 검사는 카다피에 대한 체포 영장이 발부되면 성폭행 혐의를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오캄포 검사는 “처음에는 성폭행이 카다피의 새로운 진압 방식이라는 것에 대해 의심했었지만 곧 증거를 확보했다.”면서 “카다피가 시위대 진압 방법으로 사용한 것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그는 카다피의 이러한 만행에 대해 “매우 극악하며, 한도를 넘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ICC는 앞서 지난달 16일 카다피와 그의 아들 사이프 알 이슬람, 알둘라 알 세누시 정보기관 수장 등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은 지난 2월 15일부터 시작된 리비아의 민주화 봉기를 진압하면서 비무장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공격해 500~700명을 죽인 혐의를 받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보복” 시리아 정부군 ‘학살의 도시’로 진격

    ‘유혈 참극’, ‘민간인 학살’, ‘대재앙’…. 소강 국면에 접어든 듯하던 중동이 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 7일(현지시간) 중동 소식을 다루는 현지 외신들은 암울하고 참혹한 긴급 뉴스를 시시각각 타전했다. 시리아와 예멘, 리비아의 정정 불안을 다룬 소식들로, 하나같이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전망을 담고 있다. 시리아 - “30년전 학살 재연 감행” 시리아 군경 120명이 무장세력에게 몰살당했다는 북부의 국경 도시 지스르 알수구르 지역에서는 정부군의 진격으로 대규모 유혈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외신들은 “이번주 지스르 알수구르 지역의 상황이 시리아 소요 사태의 터닝 포인터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보복을 다짐한 시리아 정부군은 탱크와 헬리콥터, 중화기 등을 앞세워 이 지역으로 향하고 있다고 현지의 인권활동가 위삼 타리프가 전했다. 이 지역은 하페즈 아사드 전 대통령이 1980년 이슬람 폭동 당시 소요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무차별 폭격을 감행한 곳이다. 2년 뒤에는 하마시에서 대학살이 벌어져 3만명이 숨졌다. 아버지에게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바 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30년 전의 무자비한 학살을 재연하려 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터키 국경과 인접한 이 지역에서는 이미 지난 주말 동안 54명의 주민이 정부군에 의해 사살됐다고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밝혔다. ‘군경 120명 몰살’ 사건이 본격적인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부군의 계략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 가운데, 정부군 내부의 분열과 반란에 따른 것일 수 있다는 새로운 주장도 제기됐다. 희생당한 사람들이 주민 학살 명령을 거부한 정부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외신들은 이를 토대로 시리아 사태가 시민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교장관은 “알아사드 대통령은 정통성을 잃고 있으며, 개혁을 하거나 아니면 물러나야 한다.”고 압박했다. 예멘 - “인도주의적 대재앙 우려” 예멘에서는 이날 반정부 부족 소속인 군인 400여명이 남서부 타이즈를 점령한 가운데, 정부군이 타이즈에 재진입하기 위해 재편성을 서두르는 등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군은 타이즈에서 반정부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사살해 국제적인 지탄을 받아왔다. 아비얀에서도 이슬람 무장세력과 정부군의 충돌로 6일 밤부터 7일 사이에 군인과 시민 등 적어도 15명이 숨졌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대통령직 권한대행을 맡은 만수르 하디 부통령 자택 앞에는 시민 수천명이 몰려들어 즉각적인 권력 이양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미국 정부의 한 관리는 “아라비아반도에 근거지를 둔 알카에다 세력이 아비얀 남부 지역에 출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유니세프(UNICEF)는 예멘의 정정 불안이 가중되면서 현지 주민들이 ‘인도주의적 대재앙’에 직면하게 됐다고 밝혔다. 유니세프 예멘 지부의 헤르트 카페레르 대표는 “예멘 전역에서 물과 연료가 부족하다.”면서 “절대적으로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다.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해 남부 지역에서는 이미 콜레라가 발병했고, 현재 1만 5000명에 이르는 난민 수가 최대 4만명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전신 40% 이상의 화상으로 부상 정도가 심해 예멘으로 돌아갈지가 여전히 불투명하다. 리비아 - 카다피 “굴복·포기 안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은 이날 이례적으로 낮 시간에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관저인 밥 알아지지야 요새 등을 30여 차례 공습하며 카다피를 압박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69번째 생일을 맞은 카다피는 국영TV를 통해 방송된 육성 연설에서 “우리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라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을 지킬 것이며, 죽느냐 사느냐 승리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공언했다. 국영TV는 나토군의 공격으로 다수의 시민을 포함해 적어도 31명이 죽고 10여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특히 리비아 정부는 지난 6~7일 사이 국영방송 건물이 나토군의 공습을 받아 2명이 죽고 16명이 부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토군은 “그런 사실이 없으며, 리비아 정부의 주장을 믿을 수도 없다.”고 반박했다. 아부다비·두바이 강국진 순회특파원 betul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