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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국어 실력/문소영 논설위원

    당나라에서 관리를 등용할 때 인물 평가의 기준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다. 이 신언서판의 기준은 21세기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특히 타인과의 소통과 공감을 중요시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시대에는 말과 글이 중요하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유머를 섞어 감각적으로 문장을 쓰는 사람들이 인기다. 몇 줄의 글들도 쌓이면 그럭저럭 한 인간의 총체적 실체에 접근하게 한다. ‘보그 병신체’가 있다. 세계적인 패션 잡지인 ‘보그’에 비속어인 ‘병신’을 붙인 신조어다. 한글로 썼지만, 사실은 영어랑 다를 바가 없는 국적 불명의 문장으로 문해력이 떨어진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사이드 쉐입을 고려해서 플랜을 플렉서블하게 레벨을 풍성하게~” 하는 식의 대사들이 그것이다. 한글로 고쳐 표현할 수가 없다. “아티스틱한 감성을 바탕으로 꾸띄르적인 디테일을 넣어 페미닌함을 세력되고 아트적인 느낌으로 표현한다”는 문구는 또 어떤가. 이를 “작가의 감성으로 맞춤복 같은 섬세한 장식으로 여성성을 세련되고 예술적으로 표현했다”라고 우리말로 고쳐도 어색하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패션·미용 잡지들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 잡지를 모방했던 만큼 ‘보그 병신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언어 사대주의’가 아닌가 싶은데, 무분별한 영어 조기교육이나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 부재를 탓하기도 한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은 섬뜩하거나 살벌한 표현으로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규제개혁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는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 처리하겠다”거나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 암 덩어리”, “한 번 물면 살점이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 진돗개 정신”과 같은 발언들이다. 올 초부터 대통령의 발언들 중에는 문장이 어색하거나 조리가 맞지 않는 대목들이 두드러진다. “퉁퉁 불은 국수를 먹게 된 경제가 불쌍하다”를 시작으로, 최근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을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 차리고 나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한다”라고 발언한 것이 알려졌다. 즉석 연설은 주어와 종결어미가 잘 맞지 않기는 한다. 하지만 이런 발언이 잦다면 받아 적는 장관들은 어떻게 대통령의 뜻을 파악해 일을 할까 걱정이 됐다. 지난 남미 순방 중에 교포들과의 자리에서도 “도전을 극복하고”라고 표현해 당혹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말실수가 됐구나 싶었다. 리콴유 장례식에 참석한 박 대통령이 조문록에 영어로 ‘his loss’라 표현한 것을 두고 영어 문법 실력이 대단하다는 칭송들이 자자했다. 영어·중국어·프랑스어 등 외국어 연설 능력도 자랑이겠으나, 토론회 등에서 상대를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 만큼 국어 실력도 훌륭해야 하지 않겠나. 말은 소통의 도구이자 의식의 집인데 말이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계란장수 과부댁, 일주일 밤 불태운 남자 알고 보니…

    계란장수 과부댁, 일주일 밤 불태운 남자 알고 보니…

    예전에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인생상담, 고민상담이 많이 이뤄졌던 것 기억나실 겁니다. 선데이서울도 전문가 상담코너들을 여럿 운용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1972년부터 연재했던 ‘人生극장: 법률상담’ 코너였습니다. 선데이서울에 전달됐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인생 고민과 법률가의 해법을 소개합니다. 40여년 전에 제시됐던 전문가 조언들은 현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여덟번째 이야기는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남성에게 계란 판 돈을 모두 날려버린 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60. 계란장수 과부댁을 살살 꼬인 가짜 교사…계란 판 돈 몽땅 먹고 살림까지 팔아먹어 (선데이서울 1972년 10월 8일)    계란장수 여인이 한 알 두 알 팔아 모은 돈 10여만원을 어느 사기꾼에게 깨끗이 날렸다. 게다가 몸도 주고 마음까지 준 그녀는 어찌나 울화통이 터졌는지 자살까지 꿈꾸었으나 실패. 결국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격으로 690일 만에 사기꾼의 목덜미를 잡고 원한을 풀었다..   ●10여만원 날리고 죽으려 투신도 했으나   1970년 11월 2일 오후 5시 30분. 목포발 광주행 완행열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순덕(40·담양군 담양읍 112)여인은 피곤한 몸을 의자에 기대면서 차창 밖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때마침 빈 옆자리를 메우는 한 중년 남자가 강여인의 신경을 자극했다. 뒤에 밝혀진 이름이지만 나종선(36·광주시 농성동 493)이란 사람. 약 20분이 흘렀을까, 문제의 나씨가 말문을 열었다. “어디까지 가시지요?” 강여인은 의아스럽게 생각하면서도 “광주까지 간다”고 대답했다. 이들의 폭소적 탈선 행각은 여기에서부터 비롯됐다. 이런 경우의 공식대로 그들은 고향과 나이를 묻고 여행목적을 서로 얘기하는 등 제법 친숙한 말벗이 됐다. 나씨는 감 2개를 사서 그중 1개를 권함으로써 상대방 여인의 호기심을 끄는 작전으로 나갔다. 홀몸으로 12년간 고독하게 살아온 강여인 역시 옆자리에서 권하는 나씨의 말이 별로 싫지 않았다. 두 사람의 얘기는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나씨는 일찍 결혼한 탓으로 지금은 홀몸이며 현재 목포 U중학교 교사로 근무한다는 등 자신의 사생활을 들려주었다. 그것은 상대방 강여인의 처지를 탐색하기 위한 엉터리 수작에 강여인은 나씨가 기대한 그대로 자신의 사생활의 전부를 털어놓았다. 그녀는 20년 전 김모씨와 결혼, 딸을 낳고 아들을 얻지 못해 시가로부터 쫓겨났다는 것. 현재는 도내 곳곳으로 다니며 계란을 수집, 광주 양동시장 도매상에 넘겨 생활을 이어간다고 말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나씨는 자신을 얻었다. 오랫동안 남자를 멀리한 그녀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온갖 추파를 던지며 나씨는 강여인에게 접근했다. 두 남녀는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차를 내려 광주로 향하는 시내버스에 탔다. 시간은 밤 11시쯤. 시내 북동 어느 중국집에 들러 우동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고 T여인숙 2호실에 들어갔다. 그날 밤 오랜만에 남자의 품에 안겨본 강여인은 ‘이젠 고생 않고 살 날이 왔는가 생각하니 마음속으로 그렇게 나씨가 고마울 수가 없었다’고 조서에서 고백. 이들은 이 여인숙에서 일주일 동안 열정을 불태우며 뒹굴었다. 낮에는 영화를 보고 택시로 유원지 일대를 돌며 지내는 생활들이 강여인에겐 꼭 신혼여행인 것만 같았다. 나씨는 강여인을 마치 자기 아내처럼 여기고 있는 듯 행세했다. “당장 담양의 모든 짐을 꾸려 목포에 있는 근무지로 가자”며 그녀를 바람 태웠다. 강 여인은 계란 한 알 한 알에서 얻은 10전 20전의 이익금으로 모았던 ‘구렁이 알 같은 돈’ 5만 3000원을 유흥비로 날리고도 아까운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새로 맞을 남편 나씨의 명령에 그녀는 곧장 고향으로 돌아가 유일한 재산인 재봉틀과 가구 몇 점을 끌고 광주로 왔다. 나씨가 반가이 맞이했다. 강여인한테 같이 살 것을 굳게 약속한 나씨는 속셈이 따로 있었다. 가구를 점검하고 돈이 될만한 재봉틀을 가리켜 이사하는데 번거로우니 처분하겠다면서 광주시내 금남로 5가 모 전당포에서 2000원에 팔아넘기고는 다시 강여인 앞에 나타나 광주발 목포행 열차를 탔다. 나씨는 여기에서 또 한 계책을 꾸몄다. 당장 목포에 가면 방을 구할 전세금이 필요하니 우선 5만원만 둘러대라고 졸랐다. 이때 그녀는 다소 의심이 갔지만 바로 내려가서 봉급으로 이를 갚겠다는 장담을 듣자 별로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열차가 광주역을 떠나 송정리로 가는 사이 나씨에게 전세금 조로 5만원을 건네준 것이 큰 불행. 그날따라 열차 안은 복잡했다. 좌석 하나를 구하겠다고 나선 나씨가 증발되어 버린 것이다. 저녁 8시 열차는 목포에 도착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튿날 나씨의 말을 따라 그가 근무한다는 중학교로 달려가 나씨의 신원을 알아봤지만 말짱 거짓말이었다. 강여인은 미칠 것만 같았다.   ●뇌 수술로 시력 잃게 되자 약값 구하려고   여관에서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고 곰곰 생각했다. 남편을 생이별한 후 혼자서 푼푼이 모은 일금 10만 3000원을 단번에 날려 버린 여자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했다. 온갖 궁리 끝에 투신자살을 생각했다. 다음날 밤 11시쯤 삼학도 앞 바닷물 속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이것도 운이 없었던지 마침 순찰 근무 중이던 해양경찰대원에게 구조 받아 되살아났다. 서광주 경찰서는 지난 26일 나종선씨를 혼인빙자 간음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조서에 따르면 나씨는 어엿이 처자가 있는 몸. 8년 전 현부인 송모(35)여인과 결혼, 4살짜리 딸과 함께 살고 있음이 밝혀졌다. 경찰에 붙들린 나씨는 해방된 3년 후 일본에서 귀국, 나주 Y중학교를 졸업, 그 후 서울 예술학원에서 2년간 수업하고 간판과 아크릴 주문 초상화 등을 그리면서 제법 단란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5년 전부터 머리가 아프면서 시력을 점점 잃어갔다. 많은 약을 썼지만 신통한 효험을 못 보았다는 것. 약해진 몸으로 더 이상 작업을 꾸려나갈 수 없게 됐다. 강여인과 처음 만나던 1970년 11월 2일 그날도 나씨는 뇌 신경에 좋은 약이 있다는 친지의 말을 듣고 목포에 갔다 오는 길에 우연히 강여인을 만났다는 것. 나씨는 결코 강여인과 살아 보겠다는 마음은 아예 처음부터 전혀 없었다. 약값 마련을 위해 순간적인 사기를 해 본 것뿐이었다. 세상은 넓고도 좁았던 것인지 나씨가 강여인의 눈길에 걸려든 것은 지난 24일 저녁 7시쯤 광주시 중흥동 68의 12 K여객 차고에서 일하는 사촌동생을 만나러 간 것이 쇠고랑을 차게 했다. 뇌 수술로 시력을 거의 잃은 나씨는 맑은 날씨 말고는 가까운 거리의 사람들도 잘 분간 못하게 된 것. 이날 나씨는 마침 차고 직공들을 상대로 강여인이 무허가 술집을 하고 있으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씨줄날줄] 붉은광장의 마오쩌둥/박홍환 논설위원

    중국 공산당이 ‘개국’을 선포한 지 두 달여 만인 1949년 12월 6일 중화인민공화국의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장장 10여일간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해 모스크바역에 도착했다. 당시 만 56세였던 마오쩌둥은 생애 첫 해외 방문국으로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을 선택했다. 마오는 이듬해 2월 17일까지 두 달 넘게 소련에 체류하며 각종 지원을 이끌어 냈다. 물론 순탄했던 방문은 아니었던 듯하다. 체류가 길어지자 일각에서는 ‘연금설’까지 흘러나왔다. 실제 이오시프 스탈린의 70세 생일 축하대회에 참석, 박수치는 마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중·소 우호동맹상호원조조약, 차관공여협정 등을 체결하고 당당하게 귀국했다. 스탈린으로서는 사회주의 세력 확대를 위한 마오의 협조가 절실했고, 마오 역시 국가 재건의 재원 마련이 시급해 ‘중·러 동맹’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마오와 스탈린이 30년을 약속한 중·러 동맹은 오래가지 않았다. 스탈린 사후 니키타 흐루쇼프가 집권하면서 두 나라는 ‘동맹’에서 ‘철천지 원수’로 바뀌었다. 마오는 서방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흐루쇼프를 수정주의자로 비난하고, 반대로 흐루쇼프는 마오를 교조주의자라고 몰아붙였다. 양국은 서로를 ‘개’로 지칭하며 헐뜯기 바빴다. 오죽했으면 1957년 11월 2일 생애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한 마오가 하루 만에 일정을 마무리했을 정도였을까. 이후 모스크바에서 마오는 금기어가 됐고, 그의 사진 또한 자취를 감췄다. 급기야 두 나라는 1969년 중국 측 헤이룽장(黑龍江)과 러시아 측 우수리강 일대의 섬 관할권을 놓고 치열한 전쟁까지 불사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서는 러시아의 2차대전 승전 7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열병식이 열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며 미국·영국 등 서방 대부분 국가 정상들이 불참한 가운데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와 함께 참석해 ‘중·러 신(新)동맹’을 과시했다. 중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인민해방군 의장대를 파견해 행진시키기도 했다. 붉은광장에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군복을 입은 마오의 사진까지 등장했다. 양국의 연대는 1990년대 초 옛소련 체제의 몰락과 함께 재개됐지만 상호견제 속에 조심스럽게 유지돼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바짝 붙어 열병식을 지켜보는 모습은 66년 전 마오와 스탈린의 관계보다 훨씬 친밀해 보인다. 미국과 일본 간의 신(新)밀월에 대응하겠다는 의지까지 엿보인다. 붉은광장에 다시 등장한 마오는 ‘외교=유기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국제 관계의 진리다. 그나저나 우리 외교 당국은 충돌하는 두 체제 사이에서 어떤 ‘카드’를 들고 있는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호주 섹스당’ 정당 등록 말소…군소당 탄압 논란

    ‘호주 섹스당’ 정당 등록 말소…군소당 탄압 논란

    호주에는 이름도 '야한' 군소 정당이 있다. 바로 '호주 섹스당'(The Australian Sex party)으로 지난 2009년 성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체의 지원으로 창당됐다. 성매매 종사자들의 권익 보호는 물론 동성애 결혼과 낙태허용의 슬로건을 내건 이 정당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 왔으나 이번에 '간판'을 내릴 처지가 됐다. 최근 호주 선거관리위원회(AEC)가 호주 섹스당의 정당 등록을 말소해 논란이 일고있다. 현지에서 군소정당 탄압이라며 법적 투쟁이 예고된 이번 사건은 정당법과 관련된 조건 미비가 그 사유가 됐다. 호주법에 따르면 정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 1명의 연방 의원이 있거나 500명 이상의 당원이 등록돼 있어야 한다. AEC가 정당 등록 말소라는 철퇴를 내린 이유는 하원 의원 1명 외에 연방 의원은 없으며 당원도 500명이 안된다는 이유. 특히 논란은 당원수 검증에서 불 붙었다. 섹스당 공동 발기인 로빈 스완은 "우리 당은 6000명의 당원이 있다" 면서 "AEC 측이 무작위로 선택한 550명의 당원들에게 전화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단 4명의 직원으로 26통 전화해 당원임을 확인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면서 "우리 당원들 대부분은 젊은이들로 주소도 자주 바뀌며 유선전화도 거의 없다"며 반박했다. 현지언론은 이번 결정이 그간 섹스당을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본 기존 정치권이나 여론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특히 이름만큼이나 파격적인 공약을 내놓는 섹스당의 정책은 해외에서도 재미있는 뉴스거리가 된 바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어린이날 행사하는 곳 살펴보니…이곳에 가 보자!

    어린이날 행사하는 곳 살펴보니…이곳에 가 보자!

    ‘어린이날 행사하는 곳’ 어린이날 행사하는 곳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서울 역사박물관에서는 ‘박물관에서 놀자’라는 주제로 역사 문화 등을 다룬 ‘어린이날 큰잔치’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어린이대공원에서는 어린이왕국 퍼레이드, 시립교향악단의 클래식 공연 등 풍성한 프로그램이 가득한 ‘키즈! 슈퍼캐슬’을 준비해 어린이뿐만 아니라 함께 찾은 부모님들에게도 즐거운 시간이 될 전망이다. 옛 공군사관학교 터에 조성한 보라매공원에서는 어린이날을 맞아 대한민국 공군, 입주기관, 사회적기업과 공동 협력을 통해 ‘어린이 놀이 한마당’을 10시부터 17시까지 개최, 공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예정이다. 특히 부천시 무릉도원수목원에서는 부천시 보호수인 은행나무 5000그루를 어린이들에게 무료 분양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어린이날 행사하는 곳 살펴보니…지하철역에서도 다양한 행사

    어린이날 행사하는 곳 살펴보니…지하철역에서도 다양한 행사

    ‘어린이날 행사하는 곳’ 어린이날 행사하는 곳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서울 역사박물관에서는 ‘박물관에서 놀자’라는 주제로 역사 문화 등을 다룬 ‘어린이날 큰잔치’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어린이대공원에서는 어린이왕국 퍼레이드, 시립교향악단의 클래식 공연 등 풍성한 프로그램이 가득한 ‘키즈! 슈퍼캐슬’을 준비해 어린이뿐만 아니라 함께 찾은 부모님들에게도 즐거운 시간이 될 전망이다. 옛 공군사관학교 터에 조성한 보라매공원에서는 어린이날을 맞아 대한민국 공군, 입주기관, 사회적기업과 공동 협력을 통해 ‘어린이 놀이 한마당’을 10시부터 17시까지 개최, 공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예정이다. 특히 부천시 무릉도원수목원에서는 부천시 보호수인 은행나무 5000그루를 어린이들에게 무료 분양한다. 지하철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어린이대공원역 대합실에서 동요, 재즈, 가요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음악회가 열린다. 또한 지하 1층 대합실에서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장난감을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장터가 마련된다. 얼굴에 그림을 그려주는 페이스페인팅 행사도 함께 진행한다. 라바열차로 어린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라바 캐릭터를 이용해 꾸며진 포토존도 지하 2층 대합실에 설치된다. 같은 날 6호선 동묘앞역에서도 선물 증정 이벤트가 열린다. 오후 2시부터 2시간 동안 지하 2층 대합실에서 어린이 다트게임을 열고, 참여자에게 창신동 문구완구거리 상인연합회에서 협찬한 문구류 등 다양한 선물을 준다. 준비된 선물을 모두 나눠주면 행사는 종료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어린이날 행사 하는곳 살펴보니…지하철역도 다양한 행사

    어린이날 행사 하는곳 살펴보니…지하철역도 다양한 행사

    ‘어린이날 행사 하는곳’ 어린이날 행사 하는곳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서울 역사박물관에서는 ‘박물관에서 놀자’라는 주제로 역사 문화 등을 다룬 ‘어린이날 큰잔치’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어린이대공원에서는 어린이왕국 퍼레이드, 시립교향악단의 클래식 공연 등 풍성한 프로그램이 가득한 ‘키즈! 슈퍼캐슬’을 준비해 어린이뿐만 아니라 함께 찾은 부모님들에게도 즐거운 시간이 될 전망이다. 옛 공군사관학교 터에 조성한 보라매공원에서는 어린이날을 맞아 대한민국 공군, 입주기관, 사회적기업과 공동 협력을 통해 ‘어린이 놀이 한마당’을 10시부터 17시까지 개최, 공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예정이다. 특히 부천시 무릉도원수목원에서는 부천시 보호수인 은행나무 5000그루를 어린이들에게 무료 분양한다. 지하철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어린이대공원역 대합실에서 동요, 재즈, 가요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음악회가 열린다. 또한 지하 1층 대합실에서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장난감을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장터가 마련된다. 얼굴에 그림을 그려주는 페이스페인팅 행사도 함께 진행한다. 라바열차로 어린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라바 캐릭터를 이용해 꾸며진 포토존도 지하 2층 대합실에 설치된다. 같은 날 6호선 동묘앞역에서도 선물 증정 이벤트가 열린다. 오후 2시부터 2시간 동안 지하 2층 대합실에서 어린이 다트게임을 열고, 참여자에게 창신동 문구완구거리 상인연합회에서 협찬한 문구류 등 다양한 선물을 준다. 준비된 선물을 모두 나눠주면 행사는 종료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덫 걸린 무스 구해줬더니…‘은혜를 원수로’

    덫 걸린 무스 구해줬더니…‘은혜를 원수로’

    은혜를 원수로 갚는 무스(moose)의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미국 동영상 사이트 브레이크닷컴(break.com)에는 덫에 걸린 무스를 구해준 남성이 도리어 무스에 공격당하는 모습의 담긴 영상이 게재됐다. 영상에는 울타리 철망에 걸린 거대한 무스 한 마리의 모습이 보인다. 이를 발견한 남성이 운전 중인 차량을 멈추고 무스에게 다가간다. 울타리 철망에 몸이 감긴 무스가 꼼짝달싹 못 한다. 남성이 힘겹게 무스 몸에 얽혀있는 철망을 푸는 사이,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남성의 손길이 싫지 않은 듯 가만히 앉아 있다. 잠시 뒤, 남성이 무스 몸의 엉킨 철망을 풀어낸다. 오랫동안 앉아 있던 무스가 발이 저린 듯 쉽게 일어서지 못하지만, 곧 남성의 도움으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덫에서 무사히 구조된 무스가 남성과 마주한다. 하지만 ‘은혜를 원수로’로 갚는 무스. 무스가 자신을 구해 준 남성을 향해 발차기를 시작한다. 남성이 무스를 피해 차량 쪽으로 피신한다. 뒤쫓아온 무스가 또다시 공격하자 남성이 손으로 무스의 머리를 밀쳐내며 차량에 오른다. 한편 무스는 말코손바닥사슴, 엘크, 무스로도 불리며 사슴과에서 가장 큰 동물이다. 사진·영상= ComedyVerified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성완종 리스트 파문] 대통령 만기친람 수사 지침에… 檢 ‘부글’

    [성완종 리스트 파문] 대통령 만기친람 수사 지침에… 檢 ‘부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8일 ‘성완종 특별사면 특혜’ 의혹에 대해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며 사실상 수사를 촉구하자 검찰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수사의 독립성을 저해할 수 있어 발언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검사장은 29일 박 대통령의 메시지와 관련, “대통령이나 법무부 장관이 특정사건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면서 “직접 수사라는 말은 쓰지 않았지만 특별사면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한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통령 발언으로) 검찰 수사가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다른 부장검사도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수사인데…”라며 에둘러 비판했다. 당초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됐을 당시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이 결국 특별사면 의혹도 들여다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상당했다. 특사와 관련해 석연치 않은 구석이 워낙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 수사팀 관계자가 “리스트에서 비롯됐지만 리스트에 국한하지 않고 수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강한 어조로 진실 규명을 강조하는 바람에 검찰은 난처한 입장에 놓이기 됐다. 수사에 착수할 경우 검찰이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하명수사’를 한다는 논란이 불가피해진 탓이다. 이는 수사의 신뢰도 문제와 직결된다. 수사 자체도 ‘성완종 리스트’ 못지않게 난관이 많다. 과거 특별사면 청탁 사건을 보면 모두 알선수재 혐의가 적용됐다. 이 죄가 성립하려면 금품수수가 전제돼야 한다. 또 ‘청탁’과 ‘승낙’ 의사가 명백하게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청탁의 수혜자’격에 해당할 수 있는 성 전 회장 자신이 사망한 상황이다. 알선수재죄의 공소시효가 7년이라 시효 경과 여부도 면밀하게 따져 봐야 한다. 검찰 바깥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박종찬 변호사는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일단락된 시점에 특별사면 문제를 언급했어야 했다”면서 “대통령이 국가원수라는 것을 깜빡하고 한쪽 편만 든 셈”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광철 변호사도 “대통령이 현안에 대한 의견을 밝힐 수는 있지만 이번 메시지 자체는 굉장히 부적절했다. 정치적으로 시비를 가려야 할 문제를 사법적으로 끌고 가서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고 성토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朴대통령 위경련 인두염” 브리핑 놓고 여야 엇갈린 반응

    “朴대통령 위경련 인두염” 브리핑 놓고 여야 엇갈린 반응

    ”朴대통령 위경련 인두염” 브리핑 놓고 여야 엇갈린 반응 朴대통령 위경련 인두염 27일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이 위경련 인두염 증세를 보여 하루 이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밝힌 청와대 브리핑을 놓고 여야가 공방을 벌였다. 강희용 새정치민주연합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국가 원수인 박 대통령의 신변 정보가 이번처럼 낱낱이 공개된 사례가 있었는지에 대해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강 부대변인은 그러면서 “대통령의 건강 상태 등 신변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 경호뿐 아니라 국가의 안위, 외국인 투자 등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 사안”이라며 “대통령의 신변 정보를 함부로 공개한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청와대의 신중한 처신을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형진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청와대는) 병명은 물론 구체적인 신변 정보를 언급한 적이 없다”며 “국민들의 관심이 지대하고 걱정이 큰 탓에 증상만 간략히 설명 드린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수석부대변인은 “새정치연합이 대통령의 건강문제마저도 정쟁거리로 삼다니 유감”이라며 “9박12일 간의 ‘링거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대통령에 대해서는 정쟁 아닌 국익 차원에서 접근하는 야당을 기다린다”고 지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부모 가정의 10대, 두통·위통·식욕부진 ↑”

    “한부모 가정의 10대, 두통·위통·식욕부진 ↑”

    높은 이혼율을 보이는 우리나라 부부들도 귀에 담을 만한 연구결과다. 최근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 연구팀이 부모의 이혼 혹은 별거가 10대 자식들에게 심리적인 문제로 인한 질병을 앓을 확률을 높인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간 부모의 이혼이 자식들에게 좋지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꾸준히 증명되어 왔다. 이번 연구는 이혼 자체가 주는 영향보다 이혼 혹은 별거로 인해 한부모 가정(부모 중 한 사람과 18세 미만의 미혼 자녀들로 구성된 가정)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춰 진행됐다. 먼저 연구팀은 12세와 15세 스웨덴 학생 총 15만 명의 데이터를 대상으로 삼아 부모와의 동거 여부와 건강 상태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한부모와 사는 아이들은 두부모와 사는 아이들에 비해 심리적인 문제로 인한 질병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한부모 가정 아이들은 두통, 위통, 식욕부진, 어지럼증을 앓는 비율이 두부모 아이들보다 높았다. 또한 소녀들이 소년들보다 더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참여한 말린 버그스톰 박사는 "연구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이와 출생지역 등을 고려하더라도 한부모에게서 성장한 아이들이 심리적 문제로 인한 질병에 더 취약했다" 면서 "아빠와 엄마 두부모의 보살핌이 아이들의 정신적 건강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은 확실하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미국 인디애나 대학 연구팀은 이혼 후 부모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더라도 아이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원수처럼 지내는 부모와 마찬가지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대중 앞에 다시 모습 드러낸 탄생 145주년 레닌

    대중 앞에 다시 모습 드러낸 탄생 145주년 레닌

    지난 1870년 4월 22일 훗날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이끄는 지도자가 태어났다. 바로 구소련 최초의 국가 원수인 블라드미르 레닌(1870-1924)이다. 최근 레닌 탄생 145주년을 맞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위치한 레닌묘가 다시 대중에 공개됐다. 올해 초 보수작업을 위해 임시 폐쇄됐다가 생일을 맞아 대중 앞에 다시 얼굴을 드러낸 레닌은 마치 어제 사망한 듯 생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레닌이 사망한 것은 그의 나이 53세인 지난 1924년 1월 21일. 사후 91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유해가 영구 보존을 위해 특수 방부처리됐기 때문이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200여명의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팀이 2년에 한번 씩 레닌을 관에서 꺼낸 후 재방부처리해 시신의 부패를 막고있다. 이 때문에 한번 작업시 그 상태가 더 좋아진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레닌이 대중들에게 모습을 이렇게 드러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그 이유는 구소련 붕괴이후 레닌의 묘를 철거하고 시신을 매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이오시프 스탈린이 유족에 반대에도 불구, 권력 장악을 위해 레닌의 시신을 영구 보존한 조치 역시 두고두고 논란거리다.  러시아 현지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체로 레닌의 시신을 매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세계적 종교 전통을 따라 레닌 묘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물샘 그치고 예술 샘솟다

    물샘 그치고 예술 샘솟다

    서울 광진구 광장동에 있는 구의취수장 제1취수장은 높이 15m, 면적 1700㎡의 창고 같은 건물이다. 용도 폐쇄돼 방치된 지 4년이 흐른 지난 23일, 물이 말라버린 취수장에 색색의 빛과 음악소리가 스며들었다. 날렵한 몸의 배우들은 흥겨운 음악에 맞춰 가설 무대 위를 휙휙 뛰어다녔다. 도로 옆 강변에 폐허처럼 놓여 있던 텅 빈 취수장이 화려한 서커스 무대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물이 샘솟던 공간에 거리예술이 샘솟기 시작했다. 1976년 서울시의 원수 정수장 역할을 해오다 2011년 폐쇄된 구의취수장이 거리예술의 샘터로 재단장한 것이다. 서울문화재단은 2012년부터 이곳을 거리예술 창작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방안을 모색해왔다. 지난해 3월과 9월 열린 ‘오픈 스튜디오’ 행사에서는 페인팅 퍼포먼스, 공중 퍼포먼스, 거리극 등이 가능성을 타진했다. 전문가 투어와 리모델링 등을 거친 뒤 구의취수장은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로 옷을 갈아입었다. 공공기관이 거리예술 전문 공간을 마련한 건 국내에서 처음이다. 센터는 제1취수장과 제2취수장, 면적 2600㎡의 야외광장으로 구성됐다. 지하 2층, 지상 2층으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 제1취수장은 대형 작품을 연습하고 세트를 제작하는 곳으로 활용된다. 제2취수장은 지상1, 2층을 연습실과 사무실 등으로, 야외마당은 야외 공연 연습과 주차장으로 활용된다. 지난 23일부터 26일까지 열린 개관행사에서 펼쳐진 공연들은 취수장의 공간 곳곳에 맞춤옷처럼 들어맞았다. 제1취수장에서 공연된 서커스 음악극 ‘사물 이야기’는 4층에 달하는 높이를 십분 활용했다. 한국 전통연희와 현대서커스를 결합한 공연으로 천장에 매달린 줄에 의지해 공중 묘기를 선보이는가 하면, 배우의 어깨 위에 다른 배우가 올라타 시원한 상모돌리기 한판을 벌인다. 제1취수장과 염소투입실 사이의 공터에서 펼쳐지는 ‘시간, 기억의 축적 at 구의취수장’은 모래시계 모양의 구조물을 회전하는 기계장치에 설치하고, 배우들이 줄 하나에 의지한 채 중력을 거스르며 구조물 사이를 오간다. 서울문화재단은 센터를 거리예술 단체들이 작품을 창작하고 연습하며 시연할 수 있는 제작 기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공모를 거쳐 선정된 단체들에는 작품 제작 예산과 공간, 작품 홍보와 배급까지의 체계적인 지원이 주어진다. 2017년에 취수장 관사의 리모델링이 완료되면 센터에서 상주할 수도 있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이곳에서 영글어진 작품들이 일회성 축제를 넘어 안정적으로 공연되도록 배급 구조를 갖추는 게 목표다. 조동희 서울문화재단 축제기획팀장은 “우리나라의 거리예술은 공공지원이 취약한 데다 주로 단기간의 거리극축제를 통해 공연되면서 안정적으로 배급되기 어려웠다”면서 “향후 축제가 아닌 시즌제 공연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거리예술이 공연되도록 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세계 유일 유엔군 묘지… 평화 헌신한 젊은 넋 기리다

    [명인·명물을 찾아서] 세계 유일 유엔군 묘지… 평화 헌신한 젊은 넋 기리다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가 우리나라 부산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남구 대연동에 있는 유엔기념공원은 전체면적 14만 7000㎡에 11개국 총 2300구의 유해가 영면해 있다. 유엔기념공원은 6·25전쟁 당시 참전한 21개국(전투지원국 16개국, 의료지원국 5개국) 전사자의 유해를 모시려고 1951년 1월 유엔군 사령부가 조성했다. 휴전한 뒤 1955년 11월 국회가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고자 유엔기념공원 토지를 유엔에 영구 기증하고 묘지를 성지로 조성할 것을 결의했다. 국회 결의내용을 전달받은 유엔은 이 묘지를 영구 관리하기로 결의함에 따라 유해가 안장된 11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UNMCK)를 유엔 산하에 뒀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인류애의 성지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당초 이곳에는 6·25전쟁에 참전한 21개국 유엔군 가운데 전사한 1만 1000여명의 유해가 안장됐으나 벨기에 등 7개국이 유해를 본국으로 이장하고 지금은 유엔군에 파견됐던 한국군(KATUSA) 전사자 36명을 포함해 11개국 2300명이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 유엔기념공원은 크게 추모관과 기념관, 관리처 사무동, 상징구역, 주 묘역, 녹지지역 등 5개의 시설물로 구성돼 있다. 먼저 정문에 들어서면 묘역 가장 왼쪽에 조성된 추모관이 나타난다. 추모관은 전몰장병의 영령을 추모하고자 유엔이 1964년 8월 건립했다. 건축가 김중업씨가 전사자들의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고려해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모관 양쪽 벽면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평화의 사도·승화·전쟁의 참상·사랑과 평화를 상징하고 건물 내부에는 16개 참전국(전투지원)을 뜻하는 16개의 선이 중앙정면 바닥에서부터 유엔 마크를 통과해 하늘로 승화하는 의미를 담아 천장을 가로지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15분여에 걸쳐 6·25전쟁과 유엔기념공원 역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터키어 등 5개 언어로 감상할 수 있어 참배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추모관 옆에 나란히 들어선 기념관은 1968년 유엔이 관리처 사무실 및 부속건물 등과 함께 지었다. 이곳에는 6·25전쟁 당시의 유엔군 사진자료 및 기념물, 유엔군의 활약상을 담은 사진이 참전국별 알파벳순으로 배열돼 있다. 또 국내에 조성된 6·25전쟁 관련 참전 기념비와 참전국 국가원수들이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한 사진도 함께 전시돼 있다. 유엔기념공원은 직사각형 형태로 위쪽에서 아래까지 약간의 경사지로 조성돼 있는데 가장 위쪽에 자리한 ‘상징구역’에는 6·25전쟁 참전국과 우리나라 국기, 유엔기가 연중 게양된다. 이곳에는 터키·그리스·뉴질랜드·노르웨이·태국·필리핀의 기념비가 조성돼 있다. 이곳은 유엔의 날(11월 24일)을 비롯해 6·25, 현충일(6월 6일), 1차 대전 종전기념일(11월 11일, 부산을 향해 전 세계가 머리를 숙이고 묵념하는 날) 등을 맞아 공식행사를 거행하는 곳으로, 6·25전쟁 당시 경남 창녕군 영산면 지역에서 전사한 카투사 36명의 유해가 잠들어 있다. 상징구역 아래 ‘주 묘역’에는 영연방 위령탑과 영국·프랑스·호주·터키 기념비 및 캐나다 기념 동상, 전몰용사들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공원 맨 아래에는 ‘녹지지역’이 조성돼 있는데 주 묘역과 녹지지대 사이엔 작은 수로가 흐르며 이들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수로는 일명 ‘돈트 수로’(Daunt Waterway)로 불리는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유해 중 최연소자(당시 17세)인 호주병사 J P 돈트의 성을 따서 지었다. 이 수로는 묘역과 녹지지역 사이를 흘러 삶(녹지지역)과 죽음(묘역) 사이의 경계라는 신성함을 함축한다고 한다. 녹지지역에는 유엔군 위령탑과 6·25전쟁 당시 전사한 장병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명비, 국적도 이름도 밝혀지지 않은 무명용사 4명의 묘 및 무명용사의 길, 한·태 우정의 다리, 2개의 연못이 각각 좌우에 1개씩 들어서 있다. 인공연못 중앙에는 전몰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의미의 ‘꺼지지 않는 불’ 조형물이 들어서 있다. 또 11개의 물 계단으로 이루어진 ‘무명용사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고요함 속에 흐르는 물소리가 이름 없이 산화한 무명용사들의 희생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 유엔기념공원의 특징 중 하나는 참전국 중 가장 많은 전사자를 냈던 미군의 유해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미국은 전사자 유해를 모두 본국으로 이송하는 게 원칙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전사자의 배우자와 형제가 사망 후 유엔기념공원에 ‘합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6·25전쟁 당시 결혼 3주 만에 전투병과 간호장교로 각각 참전했던 호주의 허머스톤 부부는 남편이 전사해 먼저 이곳에 안장됐고 휴전 후 재혼하지 않고 홀로 살다 최근 사망한 부인의 유언에 따라 60여년 만에 남편 곁에 합장됐다. 이 밖에도 미국의 마테나, 호주의 셰퍼드, 영국의 헤론, 우리나라의 홍옥봉 등의 부부 합장묘와 캐나다의 허시 형제 합장묘 등 모두 10기의 합장묘가 있다. 유엔기념공원은 전쟁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보금자리로서 전사자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위안이 돼 주고 있다. 이곳은 하루 평균 800여명, 연 30만명의 국내외 관람객이 찾는다. 전몰용사들이 영면할 수 있도록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하는 동시에 학생을 비롯한 후세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인류평화를 위해 헌신한 젊은 넋들이 잠든 지 60여년이 흘러 그들의 마음에 보답하고 가슴 한쪽에 담아 두는 ‘참배의 장’ 역할을 하고 있다. 유엔기념공원 주변에 부산박물관과 부산 평화공원, 유엔평화기념관 등이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다. 부산 평화공원은 2005년 11월 부산에서 개최된 200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의 유엔기념공원 방문을 기념하려고 조성했고 유엔평화기념관은 6·25전쟁의 참상과 참전용사들의 희생정신을 되새기고자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완공했다. 글 사진 부산 오성택 기자 fivestar@seoul.co.kr
  • [나우! 지구촌] ‘사후 91년’ 레닌, 탄생 145주년 맞아 다시 대중 공개

    [나우! 지구촌] ‘사후 91년’ 레닌, 탄생 145주년 맞아 다시 대중 공개

    지난 1870년 4월 22일 훗날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이끄는 지도자가 태어났다. 바로 구소련 최초의 국가 원수인 블라드미르 레닌(1870-1924)이다. 최근 레닌 탄생 145주년을 맞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위치한 레닌묘가 다시 대중에 공개됐다. 올해 초 보수작업을 위해 임시 폐쇄됐다가 생일을 맞아 대중 앞에 다시 얼굴을 드러낸 레닌은 마치 어제 사망한 듯 생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레닌이 사망한 것은 그의 나이 53세인 지난 1924년 1월 21일. 사후 91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유해가 영구 보존을 위해 특수 방부처리됐기 때문이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200여명의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팀이 2년에 한번 씩 레닌을 관에서 꺼낸 후 재방부처리해 시신의 부패를 막고있다. 이 때문에 한번 작업시 그 상태가 더 좋아진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레닌이 대중들에게 모습을 이렇게 드러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그 이유는 구소련 붕괴이후 레닌의 묘를 철거하고 시신을 매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이오시프 스탈린이 유족에 반대에도 불구, 권력 장악을 위해 레닌의 시신을 영구 보존한 조치 역시 두고두고 논란거리다.  러시아 현지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체로 레닌의 시신을 매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세계적 종교 전통을 따라 레닌 묘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독자의 소리] ‘외교관 여권 달라는 의원들’ 기사를 읽고/박준석 고려대 정외과 4학년

    서울신문은 지난 22일자 신문에서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이 지난 3월 국회의원에게 외교관 여권을 발급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보도했다. 외교관 여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국회의원이 ‘외교 관계에 대한 비엔나협약’에 따라 해외에서 신체 불가침 등의 특권을 누리게 한다는 의미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은 ‘의원 외교’를 위해 외교관 특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삼권분립의 시각에서 ‘의원 외교’의 역할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의원 외교는 주로 일회적 의전 행사나 행정부에 대한 국회외교통상위원회의 감시 및 법안 발의에 제한된다. 이러한 일회적 의전 행사를 위해 외교관 여권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 또한 이 법안을 발의한 의원은 이를 발의하며 자신이 해외 방문 당시 비자 문제로 일정이 하루 연기된 일화를 소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특권 부여의 문제라기보다 보좌진의 문제에 가깝다. 주무 부처인 외교부도 부정적이다. 이러한 입법은 외교부의 효율적 업무 수행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다. 또한 300여명에 달하는 국회의원과 가족으로 대상을 확대할 경우 해외에서 대한민국 이름으로 면책을 누리는 인원수가 늘어남을 뜻한다. 상호주의에 근거해 그만큼 많은 외국 인사가 대한민국에서 면책을 요구하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국회의원에 대한 외교관 여권 부여 법안은 잘못된 것이므로 국회에서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박준석 고려대 정외과 4학년
  • [커버스토리] 萬人之上 오른 총리, 一人之下에서 463일

    [커버스토리] 萬人之上 오른 총리, 一人之下에서 463일

    이완구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뒤 새로운 총리 후보자가 누가 될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총리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한 데서 보듯 혹독한 여론 검증과 인사청문회 절차가 버티고 있어 새 총리를 임명하는 게 만만치 않아 보인다. ‘권한 없는 넘버2’의 한계를 벗어나 도덕적 권위와 통합의 리더십을 가진 책임총리의 위상과 역할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1948년 정부수립 이래 명암과 영욕이 교차한 ‘대한민국 총리’를 되돌아본다. ●첫 후보자 이윤영, 네 번 지명받고도 한번 못해봐 대한민국 국무총리는 첫 시작부터 순탄치 않은 자리였다. 1948년 당시 이윤영 총리 지명자는 이런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평북 영변군 출신 개신교 목사이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고초를 당했던 이윤영은 해방 이후 고당 조만식과 함께 활동하다 월남한 뒤 제헌의회 의원이 됐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첫 총리 지명자로 이윤영을 지명했지만 다수당이던 한국민주당의 반대로 인준표결에서 부결됐다. 결국 이 대통령은 광복군 참모장을 지냈던 이범석을 총리로 지명해 국회인준을 받았다. 당초 대한민국 제헌헌법 초안은 의원내각제를 모델로 했고 이에 따르면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원수에 그쳤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대통령중심제를 고수하면서 결국 의원내각제 기반 위에 대통령중심제를 덧붙이는 식으로 절충이 됐다. 한민당은 이에 협조하는 대신 한민당 지도자인 김성수를 총리로 지명하라고 요구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이윤영은 1950년 4월 다시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지만 국회표결에서 찬성 68표, 반대 83표로 부결됐다. 1952년 4월에도 장면 총리가 사퇴하자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됐지만 이번에도 역시 국회에서 부결됐다. 그해 10월 장택상 총리가 사임하자 이 대통령은 4번째로 이윤영을 총리에 지명하지만 또다시 국회의 벽에 막혔다. 결과적으로 이윤영은 총리에 4번 지명받고도 한번도 국무총리가 되지 못한 유례없는 기록을 갖게 됐다. 제2공화국이 의원내각제를 채택하는 개헌을 하면서 국무총리는 사실상 국가원수가 됐지만 5·16쿠데타 이후 다시 임명직 국무총리가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무총리는 법적으로는 권한이 막중하지만 실제로는 인사권 자체가 전적으로 대통령 소관이어서 실권을 가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책임총리제를 강조하며 이해찬 전 총리에게 상당한 권한을 주려고 노력한 바 있지만, 전반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총리는 ‘방탄총리’, ‘실권 없는 2인자’라는 논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대 이범석 나치 연구자… ‘친일 전력’ 총리 3명 이윤영 총리안의 부결로 대한민국 초대 총리는 한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쳤던 이범석이 맡게 됐다. 15세에 중국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홍범도 장군이 주도한 청산리전투에 참여했고 임시정부 한국광복군 참모장과 제2지대장 등을 지냈다. 그는 나치를 연구하고 히틀러 사망을 안타까워하는 등 나치를 추종했다는 논란에도 휩싸였다. 역대 총리 가운데 3명은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파에 포함돼 있다. 정일권·김정렬 두 총리는 일본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소속 장교로 복무했다. 김정렬 총리는 태평양 전쟁에 조종수로 참전했고, 장면 총리는 종교계 총동원을 논의하는 시국간담회에 천주교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43대 중 재임은 4명… 실제 총리 수 39명 이완구 총리는 43대 총리이지만 이범석 초대 국무총리가 취임한 뒤 현재까지 국무총리로 일했던 사람은 모두 39명이다. 이 가운데 4명이 총리를 두 번 맡았다. 장면은 1950년부터 1952년까지 총리를 지냈지만 이승만 대통령과 갈등 끝에 사임했다. 4·19혁명 뒤에는 내각책임제 정부수반인 총리에 선출됐지만 이번에는 5·16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총리에서 물러났다. 이 밖에 백두진은 이승만·박정희 정부, 김종필은 박정희·김대중 정부, 고건은 김영삼·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로 일했다. 이완구 총리는 63일 만의 사의표명을 기준으로 하면 총리로서 가장 단명한 총리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게 됐다. 이 총리를 포함해 역대 총리의 평균 재임기간은 463.5일로, 1년 3개월 남짓이다. 6대 허정 총리는 외무장관으로 재임하던 도중 4·19혁명이 일어나고 대통령이 사임하는 등의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임시로 맡은 총리였다. 22대 노재봉 총리는 1991년 1월에 취임한 뒤 명지대 1학년이던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경찰에게 구타당해 숨지면서 발생한 대규모 시위를 수습하는 차원에서 4개월 만에 경질됐다. 총리로서 재직일수가 가장 긴 총리는 9대 정일권 총리이며, 김종필 총리가 두 번째다. 정일권 총리는 재임기간이 1964년부터 1970년까지 6년으로 한국의 현실에서는 이례적으로 ‘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다. 김종필 총리는 1971년부터 1975년까지, 이어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총리를 지냈지만 정일권 총리가 세운 기록을 깨지는 못했다. 민주화 이후 가장 오랫동안 재임한 사람은 김황식 총리다. 그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약 2년 5개월간 재직했다. ●역대 총리 평균 연령 61.5세… 최고령은 74세 역대 총리 39명의 취임 당시 평균 연령은 61.5세다. 연령별로 보면 70대에 총리가 된 사람이 7명이다. 취임 당시 가장 고령이었던 총리는 24대 현승종 총리와 32대 박태준 총리로, 두 사람 모두 74세에 총리가 됐다. 19대 김정렬 총리와 39대 한승수 총리는 73세였고 34대 김석수 총리는 71세였다. 8대 최두선 총리와 42대 정홍원 총리는 70세였다. 반면 4대 백두진 총리와 11대 김종필 총리는 취임 당시 46세, 9대 정일권 총리는 47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됐다. 고향으로 살펴보면 이북 출신이 꽤 많다는 점이 눈에 띈다. 황해도 4명, 평남 5명, 평북 2명, 함남 1명으로 모두 12명이다. 노태우 정부 당시에는 강영훈(평북 창성), 정원식(황해 재령), 현승종(평남 개천) 등 총리 5명 중 3명이 이북 출신이었다. 단일 지역으로는 서울이 7명으로 가장 많다. 충남과 경남이 5명씩이고 경기와 전북이 4명을 배출했다. 정일권 총리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태어나 유일한 재외동포 출신 총리로 기록됐다. 이 밖에 37대 한명숙 총리부터 38대 한덕수 총리, 39대 한승수 총리까지 세 번 연속 청주 한(韓)씨에서 총리를 배출한 것도 특이한 기록이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화성시 태안 3지구 한옥주거단지 추진

    경기 화성시가 태안3 택지개발지구에 한옥주거단지 조성을 추진한다. 23일 화성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해 말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태안3지구에 전통조경을 갖춘 한옥주거단지 건립을 제안했다. 시 관계자는 “태안3지구에 ‘효체험 테마공원’을 조성할 때 한옥마을이나 한옥호텔을 함께 만들어 평소에는 효체험공간으로 쓰고 국가 행사가 있을 때 국가원수급의 숙소로 사용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LH도 시의 제안을 받고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LH 관계자는 “일단 한옥 단독주택 단지 조성을 생각하고 있으나 한옥호텔 같은 숙박시설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안3 택지개발지구는 LH가 안녕동과 송산동 일대 118만 8000㎡를 개발해 공동주택 3500가구와 단독주택 294가구 등 총 3794가구를 짓는 사업으로, 1998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됐다. 그러나 사업부지에서 정조대왕 초장지(정조의 시신이 처음 묻혔던 곳)의 재실터가 발견되고 인근에 융·건릉, 용주사, 만년제 등 문화재가 있어 불교계 반발에 부딪혀 2009년 이후 공사가 중단됐다가 최근 재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씨줄날줄] 메르켈과 아베의 국가이성/최광숙 논설위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991년 독일 통일 후 첫 조각에서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발탁된 뒤 첫 외국 방문지로 선택한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총리가 된 후 더욱 이스라엘을 챙겼다. 총리 재임 첫 7년 동안 이스라엘을 방문한 횟수만 네 번이다. 이렇듯 메르켈의 외교정치에서 이스라엘은 유럽연합과 미국에 비견할 정도로 중요하다. 이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독일의 역사적 부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도 화답했다. 히브리대학에서 메르켈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2008년 3월 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맞아 이스라엘 의회는 총리로는 처음으로 메르켈에게 연설하도록 기회를 줬다. 국가원수들만 불러 연설을 듣는 관행을 메르켈을 위해 과감히 깬 것이다. 독일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도 ‘레오 백’이라는 상을 수여했다. 이 상은 독일유대교중앙위원회가 독일 유대인을 위해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2007년 9월 메르켈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나 이전의 모든 독일 총리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독일의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의무로 여겼다. 나 역시 이런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명확하게 인정한다. 그것은 독일의 ‘국가이성’에 속한다”고 말했다. 슈테판 코르넬리우스가 쓴 메르켈의 전기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에서 저자는 메르켈의 국가이성은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빼고는 독일을 논할 수 없다’는 역사관에서 출발해 나치에 대한 반성은 물론 나아가 독일에 이스라엘의 안전과 보호를 위한 중요한 정치적 임무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이성은 국가의 임무에 담긴 정치적 합리성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이성’(國家理性)은 프랑스어인 ‘레종 데타’(raison dEtat)를 번역한 말로 이미 로마시대에 사용됐다. 고대에서 국가이성이라는 관념은 위정자 개인의 경험에 입각하는 정치기술로서 인정되었지만 중세는 교회가 사회의 질서와 규범을 지배하던 때라 국가는 독자적인 존재 이유를 갖지 못했다. 그러다가 국가이성이 현실의 정치나 정치학에 도입되어 확립된 것은 마키아벨리 때이다. 르네상스 지식인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 국가는 정치가의 도덕적 규범과 같은 개인 윤리가 아닌 국가이성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훗날 히틀러의 무차별 정복이나 유대인의 학살 등을 정당화하는 데 잘못 활용되기도 했다. 일부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8월 종전 70주년을 맞아 발표할 담화에서 과거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의 표현을 담지 않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점차 히틀러를 닮아가는 듯한 아베는 메르켈의 국가이성이 뭔지나 알고 있는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전문] JTBC·손석희 ‘성완종 녹음파일’ 전격 공개… “반기문 때문에 표적이 됐다?”

    [전문] JTBC·손석희 ‘성완종 녹음파일’ 전격 공개… “반기문 때문에 표적이 됐다?”

    JTBC·손석희 ‘성완종 녹음파일’ 전격 공개… “반기문 때문에 표적이 됐다?” JTBC, 손석희, 성완종 녹음파일, 반기문 JTBC가 15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전격 공개하기로 했다. JTBC 9시 뉴스 손석희 앵커는 이날 “경향신문과는 다른 경로로 입수한 성 전 회장 녹음파일을 거의 대부분 공개한다”면서 “시청자들의 알 권리를 위하여 녹취록의 거의 전량을 공개하기로 했고, 성 전 회장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비쳐지지 않도록 취재진들이 고심해 녹취록을 공개한다”고 전했다. 검찰은 이날 경향신문으로부터 성 전 회장의 마지막 인터뷰 내용이 담긴 녹취록 파일을 확보했다. 녹취록은 50여분 분량이고, 경향신문은 이 가운데 10분 정도의 분량을 보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JTBC가 공개한 성완종 녹취록 전문 #성완종 파일1 - 나를 왜 겨누나  어제 말씀드린대로 우리가 너무 억울해요. 중요한 것은 어느 나라나 정치집단이라는 게 의리와 신뢰 속에서 어떤 때는 목숨까지도 걸고 정권창출을 하잖아요. 신뢰를 지키는 게 정도 아닙니까. 우리나라도 앞으로 그렇게 되어야 하잖아요. 내가 희생됨으로 인해서. 신뢰를 지키는 시장이 되고 정치권이 돼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도 별로 없고 요점만 말씀드리면 사실 우리 박근혜 대통령 우리가 2007년부터 모시고 했고 공소시효가 지나고 안지나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도덕성이 중요한 거잖아. 신뢰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그런 입장이 돼서는 안 되잖아요. 기본적으로. 내가 나 하나가 희생됨으로 앞으로는 그렇게 돼서는 안 되겠다는 의미에서 말하는 것. 사실 첫째는 개혁을 하고 사정을 한다고 하는데 사정 대상이 누군지를 모르겠다. 사정대상이. 사정을 해야 될 사람이 당해야 할 사람이 사정한다고 소리지르고 있는 우리 이완구 총리 같은 사정대상 일호. 일호인 사람이 가서 엉뚱한 사람(사정한다고 하고 있다) 성완종이가 사람 구하고 이완구가 사람구하고 한번 비교를 해보세요. 성완종이랑 이완구 조사 다해서. 이게 말이 되는 거냐. 국민들이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아주 적절치 않다고 보고요. 뭐 제가 볼 때는 이게 당에서도 성완종이 이렇게 하면 아 ㄴ된다는 의견이 대체적으로 지배적이다. 그건 알아보셔도 알텐데. 어쨌든 청와대하고 총리실에서 주도해서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근데 전혀 말발이 안 먹히고 내가 나쁜 짓을 했으면 그렇지 않거든.   (왜 그런 것 같나?) 글쎄 보도보고 아는 내용인데 왜 그런가. 손석희 뉴스에서 봤는데 반기문하고 해서 그렇다, 많이 나오잖아요. 말이 안 되지 않아. 왜 이완구 총리가 사정 한다고 해서 충청도에 있는 회사, 조그마한 회사를 지칭하는지. 도대체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2 - 권력 핵심에 ‘돈’ 일단 우리 허태열 실장 국회의원 당시에 만났잖아요. 공소시효 같은 건 지났지만 2007년 대선 캠프 때 제가 많이 도왔어요. 총선 때니까 잘 알다시피 기업하는 사람들이 권력의 핵심을 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무시할 수 없잖습니까. 그래서 많이 도왔는데, 그 때 내가 현금 7억 주고. (현금으로 주셨어요?) 그럼요. 우리가 리베라 호텔에서 만나서 몇달에 걸쳐서 7억을 주고 그 돈 가지고 경선을 치른 겁니다. 다 압니다. 메인 쪽에서는. 그렇게 해서 내가 경선에서 참여했는데 그리고 떨어지고 나서는 두 번째는 합당을 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김기춘 실장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깨끗한 사람으로 돼 있잖아요. 그 양반도 2006년 9월달에 벨기에하고 독일하고 가셨잖아요. VIP 모시고. 그 때 갈 때, 이 양반 그 때 야인으로 놀고 계셨죠. 그 양반 모시고 가게 돼서 그 양반한테도 십만불 달러로 바꿔서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전달해 드렸고. 수행비서도 따라왔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이게 서로 신뢰관계에서 오는 거잖아요. 서로 서로 돕자는 의미에서. 그렇게 해서 서로 여건이 되는 때까지 십시일반으로 이렇게 해서 이 양반이 모시고 갔다 온 거고요. 대선 때도 우리 홍문종 같은 경우가 본부장을 맡았잖아요. 같이 이렇게 매일 움직이고 뛰고. 그렇게 하는데도 2억 정도 주고. 조직을 관리하니까. 현금으로 줬죠. 사실 이완구도 지난번에 보궐선거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보궐선거는 머리도 크신 분이고 아무한테나 처신할 수도 없고. 다 선거 때는 조금씩은 다 주고받고 하는 거잖아요. 나는 성심성의껏 했어요. 그 양반 공천해야 한다고 서병수 사무총장한테도 많이 말을 하고 많이 거들고. 이 양반은 앞으로 큰 일 하실 분이라 해서. 그렇게 까지 했는데. 선거사무소 가서 내가 한 달정도 있으면서 이 양반한테도 돈 3000만원 주고. 다 인간적으로. 무슨 조건이 있고 그런게 아니고 회사 돈 빌려다가 이렇게 하고. 많이 있습니다. 많이 있는데 이런식으로 이렇게 하면 이게 말이 안 되잖아요.   저는 당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면, 참 내가 선진당으로 돼 있지만 그 이전에 한나라당에 참 내가 열심히 하려고 하는 입장. 그런 사람 중의 하난데. 그렇게 힘들게 하고 있고.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한나라당은 옛날부터 신한국당 때부터 사랑하고 아꼈잖아요.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그런 심정을 서로가 이해하고 해야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분식 부분은 이거는 회계사나 그런 사람들한테 따져보면 압니다. 그내용을 어떻게 된 건지. 그게 검찰이 어떻게 무리하게 수사하는 건지를 다 아실 수 있어요. (왜 회장님을 문제삼고 걸고 넘어간다고 생각하는지?) 대통령한테 밉보일 것도 없고. 대통령이 저를 그렇게 나쁘게 생각 안 할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정치적으로 이렇게 큰 게 배아픈 거죠.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워크아웃 당해서 죽도록 고생만 당하고. 검찰에서 저보고 딜하라고 하는데. 딜을 내놓아라 이런 얘긴데. 딜을 할 게 없죠. 지역 신문이고 언론이고 이완구하고 청와대 작품이다 이렇게들 다 얘기합니다. #3 - 반기문 때문에? (이완구와 사이 나빠진 계기?) 옛날엔 그랬는데 없다. 내가 반기문과 가까운 건 사실이고, 동생이 우리 회사에 있는 것도 사실이고 포럼 창립멤버인 것도 사실이고. 그런 이유가 큰 게 아닌가. (조직이 많나) 많죠. (그럭 조직들이 실체가 있나) 우리 포럼 조직이나 재단 조직이나 등록된 조직으로 돼 있으니까. 그런 거에 대해서 다 알잖습니까. 그런 부분 같은 것이 큰 요인이 있었던 거 아닌가 싶고요. (이완구 총리와 대화나누면서 뼈있게 까칠하게 얘기했나) 그럼요. (이완구가 뭐라그러던가요. 하지 말라던지) 그렇게까진 이야기 않죠. 그냥 뭐, 프로들끼리 자꾸 그거 뭐 뻔히 보면 아는 거 아닙니까. 너무 욕심이 많아요 그 양반은. (자기 욕심이 많죠) 자기 욕심이 남들을 이용을 나쁘게 많이 해요. 사람을 많이 죽이고 그러네요. #4 - 치사한 수사 저는 이번 수사에서 도면식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저희 마누라가 OO컴퍼니 만들어서 후배한테 돈을 18억인가를 그렇게 해줬다고 하는데 그 문제가 있다면 제가 책임을 져야지요. 사실 서민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나라 재벌들이 자회사 만들어서 하는 게 현실 아닙니까. 저는 땅 한평 아파트 한 채 사본일 없거든요. 오직 주식만 갖고. 현금이 없어요. 이렇게 살았는데 그렇게 명암 받으니까 살고 싶은 생각이 없고. 나같은 사람이 하나 희생됨으로 해서 앞으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이런 거고. 정치는 신뢰를 중시하는 거 아닙니까. 가족도 신뢰관계 집단도 신뢰관계인데 그게 이용이라고 그럴까, 완전히 병신 만드는 거죠. 그런데 내가 뭐 무슨 잘못한 게 없는데 이렇게 하니까 말이 안 되는 거죠.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검찰에 소명이 안 받아들여졌나) 안 받아들여지니까 영장 쳤지.   그리고 제가 홍준표가 당 대표로 나갔을 때, 2011년쯤 될 거에요. 나는 홍준표를 잘 알아요. 잘 아는데 얼마나.한나라당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1억을, 동아일보 윤승모 통해서 1억을 전달해줬고. 내가 뭐 공천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아무 조건 없이 그렇게 했는데 그런 식으로 하니까 너무 배신감이 들고. 합당하면서 백의종군 한 사람 아닙니까. 장관을 달라고 했습니까 누구를 사람을 취직을 시켜달라 했습니까. 그런 거 안 했는데 세상에 그럴 수가 있나요. (여권 주요인사들 나가는 사람들에게 성완종이라는 사람이 성의 베푼 게 많나) 그럼요. 저같은 경우 수사한다고 하면 대통령 죄가 없이 할 수 있습니까. 까놓고 이야기해서. 무슨 뭐 조그만 기업인도 아니고 정치인인데. 내가 참여해서 정권 창출한 건 온 시민들이 많이 알잖아요. 내가 이렇게 하는 건 도리가 아니죠. 내가 하나 희생양이 됨으로서 깨끗한 정부, 박근혜 정부가 깨끗한 정부 돼야 하는데 거꾸로 가고 있다. 이번에 검찰조사도 자원에서 없으면 그만 둬야지 마누라 아들, 엄한 형님들 다 뒤지고. 다 뒤집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관리하는 사장 놈도 아주 요즘 뭐 마약이나 폭력범도 그렇게 안 하잖아요. 마약 폭력범보다 더 나쁜 행위를 지금. 이렇게 하고 있고. 그래서 원래는 검찰청도 가로치기 수사 못하게 되어있지 않습니까. 안 한다고 수차례 발표했고. 그런 식으로 하면 되나요.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요런 분야는 충분히 깨끗한 정부를 만들고 박근혜 정부가 성공해야 하는데 대통령이 제대로 하셔야 해요. 억울한 사람 이렇게 하지 말고 정말로 신뢰와 의리를 지키고. 이게 저 하나겠습니까. 이렇게 하면 안 되죠. 포스코는 비자금만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뭐 자원수당 없으니까 가족관계다, 압력이다, 분식이다, 비자금이다, 다 하잖아요. 말이 되나요. 아무것도 없으니까 분식으로 걸어서 신용평가 좋게 해서 대출 받았다 하는데 그렇지도 않아요. 충분히 다 소명이 됩니다. 분식 부분에 대해서. 솔직히 말해서 청와대하고 이완구하고 짝짝꿍해서 하는 거 아닙니까. 1조 분식이라고 나온 거, 그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잘 아시지만 우리가 다 떨어낸 거거든요. 왜 이렇게 하느냐 이거야. 너무 졸렬하고 치사한 거잖아요. 몇년 전부터 이러는데 그건 아니죠. 내가 워크아웃을 현역의원일 때 들어갔는데 현역 의원이 워크아웃 들어간 회사가 대한민국에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말이 안 되는 짓을 하니까 이거 뭐 다른 길이 없지 않습니까. 내가 희생해서 사회를 바로잡아주는 것 밖에 없잖아요. 이건 보도를 하시더라도 보안시켜서 상의하셔서 오늘이랑 하지 말고 뭐 내일자로 해주시던지 그렇게 해주시고요. 이렇게 의리없고 배신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적절치 않다. 여러 사람 많이 있습니다. 많이 있는데.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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