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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찰, 현역의원 33명 포함 20대 총선 사범 1430명 기소

    검찰, 현역의원 33명 포함 20대 총선 사범 1430명 기소

    검찰이 현역 국회의원 33명 등 총 1430명을 20대 총선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겼다. 대검찰청 공안부(부장 정점식)는 14일 20대 총선 선거법 위반 사건 공소시효 만료일인 전날까지 총 3176명을 입건해 1430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구속자는 114명이다.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은 총 160명이 입건됐으며 33명이 기소됐다. 18대 36명, 19대 30명과 비교해 큰 차이는 없는 수준이다. 다만 정당별로 보면 더불어민주당 16명, 새누리당 11명, 국민의당 4명, 무소속 의원 2명으로 야당이 많다. 대검은 “이전과 달리 3당 체제로 선거운동이 진행되면서 야당 간 고소·고발이 증가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9대 국회의원 중 고소·고발로 입건된 인원수는 129명이었으나 이번 총선에선 154명으로 크게 늘었다. 기소된 현역의원은 금품선거 혐의 10명, 흑색선전 혐의 16명(2명은 금품선거 중복), 여론조작 혐의 2명, 기타 혐의 7명이다. 또 이들 33명 중 벌금 70만원이 확정된 1명을 제외하고 32명의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대검은 국회의원의 당선에 효력을 미치는 선거사무장, 회계책임자, 배우자 등이 기소된 사례도 8건 있다고 밝혔다. 전체 기소된 선거사범 1430명은 19대 때의 1460명에 비해 소폭 줄어든 수치다. 고흥 대검 공안기획관은 “법원의 온정적인 선고형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항소하는 등 불법에 상응하는 형벌 선고로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불식시키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70년간 왕위 유지 ‘태국 자유의 수호자’

    70년간 왕위 유지 ‘태국 자유의 수호자’

    세계 최장기 집권 국가원수 기록을 세우며 태국 국민의 구심점 역할을 해 온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13일 서거했다. 88세. 태국 왕실 사무국은 이날 성명을 내고 “국왕께서 오늘 오후 3시 52분 시리라즈 병원에서 영면했다”고 밝혔다. 사무국은 “주치의들이 최선을 다해 상태를 면밀히 살피고 치료했지만 국왕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은 채 계속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푸미폰 국왕은 1946년 6월 9일부터 이날까지 70년 126일간 왕좌를 지켜 세계에서 최장기간 집권한 국가원수이자 태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로 기록을 세웠다. 푸미폰 국왕이 서거함에 따라 최장기 집권 기록은 64년간 재위하고 있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돌아갔다. 푸미폰 국왕은 2009년부터 고열과 저혈압, 심장 박동수 증가 등의 증세로 여러 차례 병원 신세를 지면서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다. 푸미폰 국왕은 지난 1월 병원 치료 도중 병원을 잠시 빠져나와 휠체어를 탄 채 왕궁을 둘러보는 모습이 포착된 이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푸미폰 국왕은 입헌군주제의 군주로서 상징적인 국가원수였지만 국민의 절대적 신망을 바탕으로 태국 현대사의 굴곡마다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푸미폰 국왕은 군부 쿠데타나 민주화 시위가 발생할 때 중재자로 나서며 정치적 위기를 해결했다.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1992년 수친다 크라프라윤이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자 정국이 큰 혼란에 빠졌다. 푸미폰 국왕은 수친다 당시 총리와 야권을 대표하는 잠롱 스리무리앙 전 방콕 시장을 왕궁에 불러 무릎을 꿇리고 질책했고, 이후 수친다는 해외 망명길에 올랐다. 국민들은 국왕의 중재 모습을 보며 국왕이 태국의 자유와 번영을 수호하는 구심점이라고 인식하게 됐다. 푸미폰 국왕의 정치 개입이 모두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푸미폰 국왕은 포퓰리즘적 복지 정책으로 빈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탁신 친나왓 총리가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실각했을 당시 군부 정권을 승인한 바 있다. 이후 탁신의 여동생 잉락이 민주 선거로 집권한 지 3년도 안 돼 군부 쿠데타가 다시 발발했지만 푸미폰 국왕은 군부를 지지하면서 국왕의 정치 개입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왕실모독죄가 왕실과 군부정권을 반대하는 세력을 탄압하는 데 오남용되면서 푸미폰 국왕과 왕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푸미폰 국왕이 굳건히 버텨왔기에 70년의 재임 기간에 19차례의 쿠데타와 20회의 개헌 조치가 발생했음에도 태국 정치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에 태국 왕실과 정계는 푸미폰 국왕의 후계를 서둘러 확정해 국민들을 안정시키려는 모습이다.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는 국영 뉴스채널을 통해 이날 밤 열리는 과도의회 격의 국가입법회의(NLA)에 후계자를 통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쁘라윳 총리는 “정부는 왕위 승계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며 국왕께서 지난 1972년 왕세자를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사실을 국가입법회의에 통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미폰 국왕은 1972년 유일한 왕자이자 장손인 와치라롱껀(64)을 왕세자이자 후계자로 공식 지명한 바 있다. 하지만 와치라롱껀 왕세자는 여러 차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고 기행을 일삼으면서 국민의 폭넓은 신임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푸미폰 태국 국왕 서거…존경·사랑받는 ‘태국 국민의 아버지’

    푸미폰 태국 국왕 서거…존경·사랑받는 ‘태국 국민의 아버지’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라마 9세, 88세)이 13일 서거했다. 푸미폰 국왕은 세계에서 가장 긴 재위 기록을 보유한 왕이다. 1946년 6월 즉위해 70년 넘게 태국을 통치했다. 1952년 2월부터 영국을 통치해온 엘리자베스 2세 여왕보다도 재위 기간이 5년 이상 길다. 수코타이(1238∼1351년), 아유타야(1351∼1767년), 톤부리(1768∼1782년), 랏타나코신(1782∼1932년), 시암(1932∼1939년)에 이은 타이 왕국 등 태국 땅에 존재했거나 현존하는 6개 왕국, 10개 왕조를 통틀어서도 그 만큼 오랜기간 왕좌를 유지한 국왕은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푸미폰 국왕이 돋보이는 이유는 오랜 재위기간보다는 국민으로부터 받는 존경과 사랑 때문이다. 푸미폰 국왕은 재위 기간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가난한 국민에게 다가갔다. 입헌 군주로서 상징적인 국가원수였지만 그 영향력은 실권을 쥔 통치자 이상이었다. 재임 기간 무려 19차례의 쿠데타와 20회에 걸친 개헌이 있었을 만큼 태국의 근현대사는 굴곡이 많았지만, 격변과 혼란기에는 어김없이 푸미폰 국왕이 최악의 상황을 막는 구심점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현 짜끄리 왕조의 아홉 왕 가운데 초대왕인 붓다 요드파 출라로케 국왕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푸미폰 국왕에게 ‘대왕’(the Great) 칭호가 붙는 이유다. 푸미폰 국왕은 1927년 12월 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당시 미국에서 의학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친형인 아난다 마히돈(라마 8세) 국왕이 1946년 약관의 나이로 승하한 뒤 즉위했고 대관식은 이듬해 치렀다. 1932년 절대왕정이 폐지되고 입헌군주제가 도입된 이후 추락하던 왕실의 위상은 푸미폰 국왕에 이르러 회복됐다. 푸미폰 국왕은 국교인 불교의 수호자로 한때 출가 생활을 했으며, 막대한 왕실 재산을 수많은 농업 및 지역 개발 사업에 투자했다. 젊었을 때는 직접 산간 벽지의 가난한 농민과 소외된 소수 민족을 찾아가 이들이 처한 문제를 눈으로 확인하고 들었다. 1950년대부터는 한 해에 200일 이상을 시골에서 지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국왕이 카메라를 메고 산간벽지를 찾아다니며 가난의 실상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국민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푸미폰 국왕은 이런 국민의 소리를 바탕으로 ‘로얄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사업을 추진했다. 사업 영역은 농업, 수자원, 환경, 고용, 보건, 복지 등을 망라했으며, 크고 작은 규모의 로열 프로젝트가 자그마치 4000여건에 달했다. 그는 특히 북부의 소수 종족인 고산족의 복지를 개선해 1988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 상을 받았다. 2006년에는 유엔으로부터 제1회 ‘인간개발 평생업적상’도 받았다. 코피 아난 당시 유엔사무총장은 그가 “세계의 개발 왕으로서 신분과 종족, 종교를 초월해 극빈자와 취약 계층을 위해 헌신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태국을 중진국 반열에 올려 놓고 국민과 두터운 신뢰를 쌓은 그는 군부 쿠데타나 대규모 시위 등 격변기에 권위있는 중재자로 나설 수 있게 했다. 1973년에는 군부가 민주화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향해 발포하자 학생들에게 궁전 문을 개방했다. 1992년에는 민주화 시위 와중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수친다 크라프라윤 당시 총리와 야권을 대표하는 잠롱 스리무리앙 전 방콕 시장이 대립하면서 정치적 불안이 극에 달했다. 푸미폰 국왕은 두 사람을 왕궁으로 불러들여 무릎을 꿇어앉히고 준엄하게 질책했다. 이런 국왕의 모습은 국민에게 깊이 각인됐다. 수친다 전 총리는 결국 해외 망명길에 올랐다. 이처럼 불안한 정국 속에서도 태국이 동남아시아에서 비교적 높은 자유와 안정을 누리고 있는 것은 푸미폰 국왕이 사회 구심점으로서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대부분의 국민은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노령기에 접어든 푸미폰 국왕은 지난 2009년 이후 수 없이 방콕 시리라즈 병원에 입원해 생활하자 국민은 그의 안위를 크게 걱정했다.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고, 오랫동안 국가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푸미폰 국왕의 부재가 태국 사회에 큰 변화를 초래하지 않을까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솔리스 코스타리카 대통령 오늘부터 서울시 명예시민

    솔리스 코스타리카 대통령 오늘부터 서울시 명예시민

    루이스 기예르모 솔리스 리베라(58) 코스타리카 대통령이 서울시 명예시민이 된다. 서울시는 12일 솔리스 대통령이 13일 서울시를 방문해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는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서울에서 연속 3년 또는 누적 5년 이상 거주 중인 외국인이나 시를 방문한 주요 외빈에게 ‘외국인 명예시민증’을 준다. 2012년에는 라우라 친치야 미란다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이 명예시민증을 받아 코스타리카는 전직과 현직 대통령 모두 서울시 명예시민이 되는 이색 기록을 남기게 됐다. 현재까지 몽골 대통령, 인도네시아 대통령 등 18명의 국가원수급이 서울시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관공서에 대통령 사진을 걸거나 공공시설에 대통령 이름을 새기는 것을 금지하는 포고령을 내리는 등 탈권위적인 행정을 펼치는 솔리스 대통령은 서울시의 스마트시티, 교통정책에 대한 생각을 박 시장과 나누게 된다. 박 시장은 “코스타리카는 행복지수 1위를 차지한 친환경국가로 서울시가 배우고 교류해야 할 분야가 많다”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루이스 코스타리카 대통령 서울시 명예시민으로

    루이스 코스타리카 대통령 서울시 명예시민으로

    루이스 기예르모 솔리스 리베라(58) 코스타리카 대통령이 서울시 명예시민이 된다. 서울시는 12일 루이스 대통령이 13일 서울시를 방문해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는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서울에서 연속 3년, 또는 누적 5년 이상 거주 중인 외국인이나 시를 방문한 주요 외빈에게 ‘외국인 명예시민증’을 준다. 2012년에는 친치야 미란다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이 명예시민증을 받아 코스타리카는 전직과 현직 대통령 모두 서울시 명예시민이 되는 이색 기록을 남기게 됐다. 현재까지 몽골 대통령, 인도네시아 대통령 등 18명의 국가원수급이 서울시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관공서에 대통령 사진을 걸거나 공공시설에 대통령 이름을 새기는 것을 금지하는 포고령을 내리는 등 탈권위적인 행정을 펼치는 루이스 대통령은 서울시의 스마트시티, 교통정책에 대한 생각을 박 시장과 나누게 된다. 박 시장은 “코스타리카는 행복지수 1위를 차지한 친환경국가로 서울시가 배우고 교류해야 할 분야가 많다”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로켓발사장 도발 징후… “美대선 한 달 전후 시도 가능성”

    CSIS “北도발, 美선거 근접 경향” 10일 북한 노동당 창간일에다 미국 대통령선거 기간과 맞물려 북한의 심상찮은 움직임이 또 감지됐다. 미국의 한 국제문제 연구소는 미 대선일인 다음달 8일을 전후로 한 달 사이에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추가 도발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가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있는 서해 로켓발사장을 지난 1일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발사대 옆의 지지용 철탑 옆에 운반용 상자로 보이는 물체가 나타났고, 연료와 산화제 보관용 건물 옆에서는 차량들이 포착됐다”며 동창리에서의 새로운 활동을 8일(현지시간) 전했다. 로켓엔진 시험장 부근에서는 건물 옆에 궤도를 따라 옮길 수 있는 은폐용 대형 구조물이 시험용 엔진을 설치하는 건물과 붙어 있는 모습이 포착됐으며, 이에 따라 엔진 시험장에서 모종의 활동이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38노스는 설명했다. 로켓 발사대 주변에도 철저하게 은폐가 이뤄져 있고, 이로 인해 발사를 앞둔 장거리로켓이 발사대나 조립용 건물로 옮겨졌는지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38노스는 덧붙였다. 북한 노동신문은 앞서 “10대 우주국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광활한 우주 정복의 활로를 더욱 힘차게 열어나갈 것이라고 확언하였다”고 보도했다.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에 대해 북한이 장거리로켓 발사를 새로운 도발 수단으로 쓸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며 실현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와 관련,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이날 북한전문 웹사이트 ‘분단을 넘어’를 통해 북한 김정은 정권 들어 이뤄진 도발과 미국에서 치러진 각종 선거와의 시차가 평균 4주로, 김정일·김일성 정권보다 미 선거일에 근접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CSIS는 김정은 국방위원장 때에는 북한의 도발과 미 선거와의 시차가 평균 6주였고, 김일성 집권 기간에는 평균 13주였다고 설명하면서, 북한이 도발에 나서는 다른 원인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이런 계산 결과만으로 예상할 때 이달 첫째 주부터 미국에서 대선이 끝나고 정부 인수인계가 본격화되는 오는 12월 첫째 주 사이에 북한이 물리적 도발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CSIS는 특히 이 기간이 북한의 노동당 창건일과 맞물리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최측근인 김원수 유엔 사무차장 겸 고위군축대표는 지난 7일 워싱턴DC에서 열린 동북아평화협력포럼에서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했을 때의 선택지 제공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버려진 가압장은 예술 싹트는 창작놀이터

    버려진 가압장은 예술 싹트는 창작놀이터

    수돗물이 넘실댔던 공간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푸른 가을 하늘처럼 환하게 번진다. 물이 가득 고여 있던 물탱크는 이제 한 줄기 빛으로 시인의 영혼을 되살린다. 이름만으로도 서늘한 먹먹함을 안겨 주는 ‘서시’(序詩)의 주인공 윤동주의 부활이다. 24년간 수돗물을 저장하다 2003년 폐쇄된 김포가압장이 8일 ‘서서울 예술교육센터’로 새롭게 문을 연다. 서울 시민들에게 맑은 수돗물을 공급하고자 만들어진 가압장과 취수장이 폐기됐다가 영혼에 압력을 더하는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영혼에 힘주는 공간은 옛 형태를 그대로 살려 작가와 어린이의 상상력을 북돋운다. 문화와 예술이 도시의 버려진 공간을 되살리는 것은 공식 또는 클리셰가 돼 버렸다. 8~9일 개관축제를 여는 서서울 예술교육센터는 13년간 버려진 공간이었다. 원래는 양천구와 강서구에 수도를 공급하던 김포가압장이었다. 하지만 영등포정수장이 역할을 대신하면서 약 5000㎡에 이르는 거대한 야외 물탱크는 아이들의 창작 놀이터이자 미술 공간으로 변신했다. ●아이들 예술 체험공간 서서울 예술교육센터 서서울 예술교육센터가 들어선 양천구 신월동은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목동이 바로 옆이다. 게다가 김포공항을 오가며 항상 낮게 나는 비행기의 거대한 소음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서서울 교육센터였던 김포가압장보다 먼저 1959년 들어섰던 김포정수장은 지난 2009년 서서울 호수공원으로 변신했다. 서서울 호수공원은 지역 주민에게는 지긋지긋할 수도 있는 비행기 소음을 분수의 신호로 이용했다. 비행기 소리가 나면 물이 솟구치는 분수를 설치해 소음에 지친 주민들의 마음에 사이다를 들이켠 듯 청량감을 안겨 준다. “교실에서 그림을 그리다 바깥에 나와서 맘 놓고 미술 활동을 하니깐 더 재미있고 실감나요.” 야외 저수장이었던 곳에서 테이프를 대형 비닐에 붙여 물개 모양을 만들던 최영제(10)군은 씩 웃어 보였다. 서서울 예술교육센터의 예술체험 프로그램 ‘공간과 친해지기’다. 개관축제 가운데 하나인 ‘예술놀이터’ 체험으로 공간에서 느낀 감상을 테이프와 끈으로 투명 비닐에 표현했다. 거대한 물탱크였던 공간에서 바닷속 세상을 연상한 아이들은 물개와 물고기가 함께 노는 그림의 비닐로 벽을 장식했다. 버려진 타일과 깨진 접시를 이어 붙이는 ‘타일 모자이크’, 바닥에 설치된 캔버스에 누워 몸의 선을 따라 그린 뒤 자유롭게 내용을 채우는 ‘내 몸 사용설명서’, 다양한 바닥놀이, 목탄을 사용해서 온몸으로 그림 그리기 등 여러 개관 체험행사가 마련되어 있다. 서울시는 가압장을 예술교육센터로 바꾸면서 인위적인 개조나 허물기는 최소화해 기존의 가압장 형태를 그대로 유지했다. 특히 야외 대형 수조는 빈 공간 그대로 남겨 아이들 스스로 공간을 활용해 나가도록 했다. 센터 운영을 맡은 서울문화재단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진행하는 예술가들이 상주하도록 해 서남권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10년 전부터 어린이를 위한 예술가 교사를 선발해서 운영한 임미혜 서울문화재단 본부장은 “처음에는 보따리장수처럼 교육청을 돌아다니며 예술 교육을 해드리겠다고 했지만, 이제는 교육청이 먼저 우리를 찾는다”고 소개했다. 올해만도 서울시내 600여개 초등학교의 절반에 가까운 307개 학교에서 47명의 예술가 교사들이 예술수업을 진행한다. 예술수업은 국어, 과학, 수학 등 모든 교과목에서 가능하다. 예를 들어 시를 배우는 국어 시간에는 무용을 전공한 예술가 교사가 몸짓으로 언어를 표현해 시를 이해하는 예술수업을 한다. 예술가 교사들의 전공이 미술, 음악, 무용 등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예술 장르를 활용한 수업이 가능하다. ●종로 청운 수도 가압장 윤동주 문학관으로 변신 도심에서 쫓겨난 관광버스가 줄줄이 사탕처럼 늘어선 창의문로를 오르다 보면 인왕산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 후기의 천재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처럼 말 그대로 그림 같은 바위산 아래 ‘영혼의 가압장’이 있다. 버려진 청운 수도 가압장을 그대로 살려서 만든 윤동주문학관은 마치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 걸린 성당과 같은 종교적 체험을 선사한다. 미국 휴스턴에 있는 로스코 성당에 걸린 거대한 단색화 앞에서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윤동주의 생애를 한 편의 영상으로 보여 주는 물탱크 속에서 사람들은 로스코의 추상화보다 더 영혼을 울리는 숭고한 시인의 삶에 눈물을 떨어뜨리게 된다. 2013년 종로구는 아파트를 철거한 자리 옆에 남아 있던 가압장과 물탱크에 윤동주문학관을 세웠다. 1969년 세워진 청운아파트 229가구를 2005년 철거해 청운공원을 조성했다. 90㎡ 규모의 청운동 수도 가압장과 물탱크도 이미 2008년에 쓸모가 없어졌다. 가압장은 인왕산 자락 고지대에 수돗물을 공급하려고 펌프로 압력을 가하던 곳이다. 시인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문과 재학 시절 거의 매일 아침 친구 정병욱과 함께 인왕산을 오르며 시심을 닦았다. 당시 시인은 종로구 누상동 9에 있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했다. 시인의 대표작으로 사랑받는 ‘별 헤는 밤’, ‘자화상’, ‘쉽게 씌어진 詩’ 등이 종로에서 하숙하던 시절에 쓰였다. 윤동주문학관은 시인이 살았던 당시와 그의 시 세계를 세심하게 복원해 냈다. 언덕길에 있는 하얀색 작은 건물인 문학관 안에는 우물이 하나 있다. 시인의 고향이자 무덤이 있는 용정에서 가져온 나무 우물은 시 ‘자화상’을 이미지화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란 시의 한 대목을 그대로 전시실에서 살려 냈다. 가압장 뒤편에서 발견된 깊이 5.9m에 이르는 두 개의 물탱크는 영상 전시실로 바뀌었다. 소학교 어린이들이 썼을 법한 작은 나무의자에 옹색하게 엉덩이를 지탱하면 시인의 생애를 담은 영상이 물탱크 벽면에서 상영된다. 물탱크는 윤동주가 운명했던 후쿠오카 형무소의 감방과 차가운 복도를 연상케 한다. 약해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게 하는 가압장은 영혼에 힘을 주는 곳으로 되살아났다. 주차도 할 수 없고, 버스만이 유일한 교통편인 작은 공간을 개관 4년 만에 42만명이 찾았다. 문학관을 운영하는 종로문화재단 관계자는 “지방에서 수학여행을 오기도 하고 자유학기제가 시행되면서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윤동주문학관과 연계하여 청운공원에 조성된 시인의 언덕에서는 서울 시내에서 흔치 않은 전망을 즐길 수 있다. 한옥으로 지은 청운문학도서관은 시인의 언덕 바로 아래에 있어 문학관에서 남은 잔상을 도서관에서 이어 가도 좋다. ●구의 취수장은 작년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로 “공을 돌리는 저글링은 어려웠는데 말 대신 몸으로 동작을 표현하는 마임은 재미있었어요.” 지난 여름방학 때 서커스 광대학교에서 배운 마임 동작을 석 달 가까이 지나서도 여전히 기억해 내는 김윤준(9)군이다. 아이들이 어릿광대의 빨간 코를 달고 서커스를 배웠던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는 1976년부터 서울시의 원수(源水) 정수장 역할을 해 온 구의취수장이었다. 물이 가득 찼던 공간은 긴 리본을 매달고 공중곡예를 연습하거나 높이 공을 띄워 올려 저글링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2015년 개관한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는 서커스 전문가 양성과 거리예술 창작을 지원한다. 서울문화재단은 2008년부터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맡아 모두 11곳의 버려진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살려 냈다. 즐거운 일을 찾아 서울문화재단의 새 대표가 된 주철환씨는 즐거움을 사냥했던 예능 프로그램 PD 출신이다. 그는 “버려진 공간을 즐거움으로 채우는 것은 문화예술의 장기(長技)”라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열린세상] 도요쿠니 신사 이야기/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열린세상] 도요쿠니 신사 이야기/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지금으로부터 420여년 전에 조선을 침략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정유재란 와중인 1598년 9월 18일 사망했다. 그러자 조선에 나가 있던 왜군들에게 철군령이 내려졌다.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陳璘)에게 뇌물을 주면서 퇴로를 열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분(李芬·1566~1619)이 쓴 ‘이충무공 행록’에 따르면 진린이 왜군을 보내 주자고 요청하자 이순신은 “이 원수는 결코 놓아 보낼 수 없습니다”라고 거절했다. 진린이 명 황제가 내린 장검을 가지고 위협했지만 이순신은 “한 번 죽는 것은 아까워할 것이 없다”라고 끝까지 거절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 전날 밤 자정 ‘이충무공 행록’은 이순신이 배 위에서 손을 씻고 무릎을 꿇고 “이 적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유감이 없겠습니다”라고 빌었는데, 그때 큰 별이 문득 바닷속으로 떨어졌다고 전한다.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했지만 이 나라 바다를 지키는 해신(海神)이 됐다. 도요토미의 사인은 성병의 일종인 뇌매독, 대장암, 이질 등으로 다양한데 심지어 명나라 심유경(沈惟敬)에 의한 독살설도 있다. 도요토미의 부하들은 1599년 4월 13일 장례식을 거행한 후 그를 교토의 방광사(方廣寺) 뒷산에 안장했다. 그리고 도요쿠니(豊國) 신사를 세우고 도요토미를 도요쿠니대명신(豊國大命神)으로 떠받들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왜군들은 도요토미를 중심으로 한 일본 서부 세력이었다. 반면 동부 세력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군사를 보내지 않았다. 도요토미가 사망하자 도쿠가와는 1600년 세키가하라(關原) 전투에서 도요토미 세력을 꺾고 에도(江戶·도쿄) 막부(幕府)시대를 열었다. 그는 도요토미의 본거지였던 오사카에 두 차례 출진해 도요토미가(家)를 멸망시켰다. 그리고 도요토미를 신으로 섬기는 도요쿠니 신사를 철폐하고 도요쿠니대명신이란 호칭 사용도 금지했다.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몰락한 도요토미 잔존 세력은 하급 무사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 갔다. 일본이 자랑하는 메이지(明治)유신이란 이렇게 몰락한 도요토미의 후예들이 일왕 메이지를 추대한 쿠데타를 뜻한다. 일본 서부 사쓰마(薩摩)와 조슈(長州)번 출신의 무사들이 이른바 ‘삿조(薩長)동맹’(1866)을 맺고 막부의 권력을 일왕에게 넘기라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을 명분으로 일으킨 쿠데타였다. 이렇게 이른바 대정(大政)을 넘겨받은 메이지는 1868년 오사카에 행차해 도요토미에 대해 “황위(皇威)를 해외에 떨쳤음에도 수백 년간 묻혀 있었으니 한심하도다”라면서 신사 재건을 선포했다. ‘황위를 해외에 떨쳤다’는 것은 물론 조선을 침략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방광사 대불전 터에 도요쿠니 신사가 재건됐는데, 때마침 도요토미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가 발견됐다면서 그 자리에 거대한 오륜탑도 축조했다. 그리고 1898년 도요토미 사망 300년을 기리는 거대한 제사를 거행했는데, 여기에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군부 실세 야마가타 아리도모(山縣有朋)가 참석했고, 명성황후를 시해한 극우 낭인조직 현양사(玄洋社)의 도야마 미쓰루(頭山滿)도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도요토미가 완성하지 못했던 조선 정벌 완수를 다짐했고, 불과 22년 만인 1910년 이 다짐은 현실이 돼 대한제국은 일제에 강점됐다. 1945년 8월 15일 이들은 다시 쫓겨 갔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 재점령 기도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푼돈 10억엔으로 위안부 문제를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면서 사과 편지는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아베 신조의 발언에 이들의 속성이 잘 담겨 있다. 여기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조속히 체결돼야 한다”는 해상자위대 다케이 도모히사 막료장의 발언은 ‘군사’라는 이름을 우선 걸어 놓으려는 기도다. 도요토미의 후예들이 300년 이상을 기다려 이 땅을 재점령한 것에 비교하면 지난 71년은 그리 긴 세월이 아니라고 이들은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일본 극우파는 변하지 않았는데, 이 문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혼란에서 보듯이 우리만 변했다. 그래서 이순신의 혼령이 더욱 그리워지는지도 모른다.
  • 건설사업장 10곳 중 2곳 임금체불

    건설사업장 10곳 중 2곳이 근로자에게 임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건설사업장 668곳을 대상으로 근로기준법 위반 여부를 조사한 결과 22.2%(148곳)에서 임금체불을 확인했다고 6일 밝혔다. 지난해 조사와 비교해 임금체불 사업장 비율은 3.0% 포인트 증가했다. 근로자 1인당 평균 체불액은 112만 1000원이었다. 발주자로부터 공사 계약을 따내 관리하는 원수급 사업장 평균체불액은 105만 9000원, 원수급인으로부터 도급을 받은 하수급 사업장은 118만 3000원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에서 서면근로계약서 작성 및 교부 위반 사업장은 32.2%(215곳)였다. 사업주가 고용한 일용직 근로자의 근로일수에 따라 건설근로공제회에 납부해 퇴직금처럼 지급하는 ‘건설근로자 퇴직공제제도’ 신고·납부 위반 사업장 비율은 15.3%(102곳)였다. 이 비율은 지난해와 비교해 6.9% 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1인당 퇴직공제부금 평균 누락 일수는 지난해 22.8일에서 올해 27.5일로 늘었다. 건설근로자 임금체불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고용부는 ‘임금 구분 지급 및 확인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원청업체는 하청업체에 임금을 다른 공사비와 구분해 매월 지급하고, 하청업체는 전월 근로자에게 지급한 임금 사용명세를 확인하도록 하는 제도다. 지금까지는 공사 기성금에 임금이 별도로 구분되지 않아 임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관행이 만연했다. 김경선 고용부 노동시장정책관은 “임금 구분 지급 및 확인 제도 도입으로 취약계층인 건설근로자 임금 체불을 예방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반기문보다 나을까… ´정치인 출신´ 구테헤스 새 유엔총장에 기대감

    반기문보다 나을까… ´정치인 출신´ 구테헤스 새 유엔총장에 기대감

     포르투갈 총리와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 대표를 지낸 안토니우 구테헤스(67)가 내년 1월 임기를 시작하는 새 유엔사무총장으로 확정됨에 따라 국제 사회의 기대가 쏠리고 있다. 특히 유엔 안팎에서는 전임자들에 비해 무기력하다고 평가받는 반기문(72) 현 사무총장을 대신해 강대국의 각축 속에서 시리아 난민 사태를 비롯한 난제를 풀어나갈 정치력을 얼마나 발휘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6차 비공개 예비 투표를 통해 구테헤스를 반기문 사무총장을 이을 제 9대 유엔사무총장 후보로 유엔총회에 추전하기로 합의했다.  구테헤스는 1995년~2002년 의원내각제 국가인 포르투갈 총리를 지냈고 상징적 국가원수인 대통령 후보로도 입에 오르내렸으나 “나는 심판이라기 보다 선수”라며 출마하지 않았다고 AFP는 전했다. 그는 지난 1월 언론 인터뷰에서도 “나는 행동하는 것, 운동장에서 뛰는 것, 나를 개입하도록 움직이는 것들을 좋아한다”며 자신의 행동가 면모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포르투갈 정치권을 떠난 후 국외에서 외교 분야로 무대를 옮겨 2005년∼2015년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로 활동했다. 선진국들이 난민을 돕기 위해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특히 그는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을 탈출한 난민들이 먼저 도착하는 터키와 요르단이 선진국으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지 않는다면 수백만 명의 난민은 결국 유럽으로 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유한 선진국이 이들에게 더 국경을 열고,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2013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탈북자들이 북한에 강제 송환돼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반대하기도 했다. 이들의 경우 정치적 박해보다는 일거리가 없거나, 배고픔 때문에 도망친 경우가 많지만, 북송될 경우 처벌이나 박해를 받을 위험이 크다며 ‘현장 난민’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유엔 안팎에서는 할말은 하는 ‘행동가’ 면모를 보이는 구테헤스의 취임이 지난 10년간 관료형 총장으로 재임해온 반 총장 체제의 유엔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유엔 사무차장을 지낸 마이클 도일 미국 콜롬비아대 교수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한 국가의 총리를 지낼 정도로 정치력을 지닌 인물이 사무총장직을 맡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며 “구테헤스는 중대한 도전의 시기에 UNHCR을 운영한 경력과 대중과 소통할 줄 알고 다자간 협력을 중시하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영국의 유엔 주재 대사인 매튜 라이크로프도 텔레그래프에 “구테헤스가 유엔이 필요로 하는 강력한 사무총장이 될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반 총장 체제의 무기력함을 꼬집었다.  텔레그래프는 “반 총장이 시리아 내전 상황에서 전임자인 코피 아난(1997년~2006년 재임)이나 다그 함마르셸드(1953~1961년 재임)와 같은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해 무능력하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전했다.  앞서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5월 “반 총장은 유엔의 결함 그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로 그가 10년 임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능력이나 자질 덕분이 아니라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 5개국이 특별히 반대할 이유가 없는 무난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혹평한 바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이런 건 우리도 배워야?’…佛 전직 대통령 지원 대폭 삭감키로

    ‘이런 건 우리도 배워야?’…佛 전직 대통령 지원 대폭 삭감키로

     프랑스 정부가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전직 대통령에 대한 지원을 대폭 줄였다.  프랑스 정부는 5일(현지시간) 퇴임 5년이 지난 전직 대통령 지원 삭감 등에 관한 내용이 담긴 대통령령을 관보에 게재했다.  앞으로 프랑스 전직 대통령은 퇴임 후 5년간만 5명의 비서관과 2명의 경호 경찰관 지원을 받고 이후에는 비서관은 3명, 경찰관은 1명으로 줄어든다. 5년 동안 7명의 지원을 받다가 이후 4명으로 감소하는 것이다.  또 그동안 전직 대통령은 2명의 운전사가 딸린 관용차를 받고 항공기와 열차 일등석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이런 예우를 받을 수 없다. 다만 전직 국가원수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데 드는 여행비 등은 국가에서 지원한다.  법률에 따라 매년 전직 대통령에게 제공하는 6만 5000 유로(약 8000만원)의 세비는 손대지 않기로 했다.  이 대통령령은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등 3명의 전직 대통령에게는 앞으로 5년 이후부터 적용되며 프랑수아 올랑드 현 대통령은 퇴임 이후 즉시 적용된다.  현지 탐사보도 전문매체인 메디아파르트는 3명의 전직 대통령을 지원하는 데 매년 1030만 유로(약 130억원)의 세금이 든다고 지난달 보도했다.  프랑스에서는 10%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이 지속하면서 국민의 불만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올랑드 대통령은 실업률을 낮추고자 노동자의 격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노동자에 대한 복지 혜택을 줄이고 해고를 쉽게 하는 방향으로 올해 노동법을 개정했다.  앞서 지난 7월에는 올랑드 대통령이 자신의 머리 손질을 월급 9985유로(약 1260만 원)에 이르는 고임금 전담 이발사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 드러나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김영란법 ‘꼼수’ 아직까진 없다 “초기에 걸릴 위험 감수하고 싶지 않아”

    김영란법 ‘꼼수’ 아직까진 없다 “초기에 걸릴 위험 감수하고 싶지 않아”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이 지난 28일 시행되고 1주일이 지난 현재, 접대문화와 여가생활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깊게 뿌리내린 한국 접대문화의 토양을 고려할 때 법 시행 이후에도 편법과 꼼수가 난무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1인당 3만원으로 제한된 식사 한도액을 맞추기 위해 누군가는 2만 9000원까지만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계산해 법망을 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저녁 약속을 미리 잡아 놓은 뒤 식당 업주와 짜고 식사 총액을 1∼2주 사이에 여러 차례에 나눠 결제하거나 인원수를 실제보다 늘려 1인당 3만원 규정을 맞출 수 있다는 꼼수도 회자됐다. 그러나 법 시행 초기에 이런 편법을 쓰면서까지 접대를 하려는 이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 업계나 관가 쪽 반응이다. 충북의 한 기업 관계자는 “접대를 하는 입장에서는 사업 성공을 위해 편법을 써서라도 접대 자리를 원할 수 있지만, 접대받는 입장에서는 ‘시범 케이스’로 걸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얻어먹을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골프 접대는 식사 접대보다 더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골프장 예약률도 뚝뚝 떨어져 성수기 연휴동안 주요 골프장 예약률은 100%에 못 미쳤다. 골프장 관계자는 “이맘때면 회원제는 부킹이 다 되거나 못해도 160팀은 넘겨야 하고 퍼블릭은 상대적으로 유동적이지만 절반도 예약이 안 돼 확실히 많이 빠졌다”며 “김영란법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 시행을 앞두고 호사가 사이에서는 골프 경기 시작 전에 호스트가 내기에 사용할 현금 20만∼30만원을 먼저 나눠주고, 그린피·카트비 등 제반 비용을 각자 내면 된다는 꼼수가 하나의 대안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수법으로 홍보업계는 보고 있다. 영남권의 한 기업 간부는 “예전에는 홍보비 예산에서 일정 부분의 현금을 ‘실탄’처럼 보유했지만 김영란법 시행 후에는 비자금을 조성하지 않는 이상 현금을 홍보비로 책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린피에 해당하는 비용을 현금으로 몰래 주는 꼼수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부정부패를 걷어내고 청렴 문화를 정착시키려는 시대적 요구 때문인지, 아니면 법 시행 초기 ‘소나기는 피하자’는 셈법의 산물인지는 현재로써는 판별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법 시행 이후에도 단골업소 업주와 친분을 무기로 은밀한 접대를 시도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에서 고급 카페를 운영하는 한 업주는 “단골손님이 사업상 접대를 해야 하는데 1차 식사비가 3만원에 육박할 것 같다며 양주를 포함한 2차 술값은 방문일이 아닌 다른 날짜로 결제해 줄 수 있느냐는 문의를 받았다”며 “예약이 실제로 이뤄지진 않았지만 요즘처럼 영업이 안 될 땐 거부하기 어려운 제안인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디치과, 저소득 아동 재능 지원 캠페인

    유디치과, 저소득 아동 재능 지원 캠페인

    유디치과는 오는 18일까지 국내 저소득층 아동의 재능을 키우기 위한 국내 아동 재능 지원 캠페인 ‘누구에게나 찬란한’을 후원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5일 밝혔다. 유디치과는 굿네이버스와 연계해 이벤트를 후원금을 적립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유디치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를 방문해 ‘좋아요’와 ‘공유’를 누르면 된다. 이벤트에 참여한 인원수에 따라 1000원의 후원금이 적립된다. 유디치과는 SNS 이벤트로 적립된 후원금은 전액 굿네이버스에 기부한다. 이벤트 참여자 중 추첨을 통해 총 30명(각 채널 당 10명)에게 구강 관리 용품도 증정한다. 이벤트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유디치과 페이스북(facebook.com/uddentalgroup)과 인스타그램(Instagram.com/ud_dental), 카카오스토리(story.kakao.com/ud_dental) 등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진세식 유디치과협회장은 “열악한 환경에서 꿈을 향해 도전하는 아이들이 즐겁게 재능을 펼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유디치과는 지난 9월에도 유디케어캠페인 ‘우리동네 이 밝은 세상’과 연계해 굿네이버스 아동 지원 캠페인 대상자에게 구강 검진 및 무상 치료를 제공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中 ‘항모 아버지’ 탄생 100주년 직접 챙긴 시진핑

    中 ‘항모 아버지’ 탄생 100주년 직접 챙긴 시진핑

    중국 인민해방군에는 ‘아버지’라고 불리는 두 영웅이 있다. ‘로켓의 아버지’(火箭之父)로 불리는 첸쉐썬(錢學森·1912~2009)과 ‘항공모함의 아버지’(航母之父)로 불리는 류화칭(劉華淸·1916~2011)이다. 류화칭은 대양해군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1970년대부터 항모 건조를 추진하다 중국 1호 항모인 랴오닝함이 완성되기 1년 전에 사망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지난 28일 류화칭 탄생 100주년 좌담회를 직접 주최했다. 집권 이후 시 주석이 전직 지도자 탄생 기념 좌담회를 주최한 것은 2013년 마오쩌둥(毛澤東) 탄생 120주년 기념일과 2014년 덩샤오핑(鄧小平) 탄생 110주년 기념일, 그리고 지난해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 탄생 100주년 기념일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시 주석의 아버지 시중신(習仲勳) 전 부총리 탄생 100주년 좌담회도 2013년에 열리기는 했으나, 시 주석은 가족 신분으로 참가했을 뿐 좌담회 주최자는 류옌둥(劉延東) 부총리였다. 국가 주석이 당의 전직 최고 지도자나 국가 원수가 아닌 해군 제독의 탄생 기념일에 직접 좌담회를 열어 중요 지침을 발표한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인민일보가 29일 1면과 2면을 털어 발표한 시 주석의 좌담회 강연 내용을 보면 그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시 주석은 “류화칭 동지는 개혁·개방 이후 연안 방어 중심의 해군 역량을 대양해군으로 키웠으며, 무기의 질적 발전을 통해 해군 현대화의 초석을 다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류 동지는 난사(南沙·스프래틀리 군도) 투쟁을 처음으로 건의하고, 난사 융수자오(永暑礁·파이어리크로스 환초)에 해양 관찰대를 설치하는 임무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결국 류화칭의 뜻을 받들어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남중국해, 일본과 다투는 동중국해는 물론 인도양·태평양 등으로 작전 반경을 넓히는 대양해군 육성에 속도를 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인민일보 사이트인 인민망은 이날 다롄에서 건조 중인 중국의 제2항모 모습도 공개했다. 항모의 사령탑인 함교(브리지)와 스키점프대식 갑판이 대부분 완성된 것으로 보였다. 군사전문가 차오웨이둥은 “연말이면 진수가 가능하다”면서 “최신형 위상배열 레이더가 장착되고 40~50대의 전투기를 탑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최초의 항모인 랴오닝함은 우크라이나의 퇴역 항모를 개조한 것이라 현대전에서 활용하기엔 제약이 있다. 따라서 다롄에서 건조 중인 새 항모가 실질적인 1번 항모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에서는 3번 항모도 건조되고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대우조선해양 상장폐지 위기 넘겼다

    수조원대 혈세 투입 논란과 적자 지속, 전직 임원 횡령 혐의 등으로 총체적 난국에 빠진 대우조선해양이 가까스로 상장 폐지를 피했다. 한국거래소는 28일 대우조선에 대한 기업심사위원회 심사 결과 상장폐지 대신 경영정상화를 위한 개선기간을 2017년 9월 28일까지 1년간 부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상장 적격성 심사는 회계처리 기준 위반과 관련한 검찰 기소와 전직 임원의 횡령·배임 사건에 따른 것이다. 상장폐지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주권의 거래정지는 경영 개선기간 부여 기간 1년간 더 연장되게 됐다. 대우조선 주권은 지난 7월 15일부터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대우조선 소액주주 비율은 37.8%이며 인원수로는 10만 8000여명에 이른다. 개선기간이 종료되면 15일(영업일 기준) 이내에 기업심사위원회를 개최해 개선계획의 이행 및 상장적격성 유지 여부를 심의하고 상장폐지 여부를 다시 결정하게 된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대우조선해양 상장폐지 면했다…1년간 거래정지 지속

     수조원대 혈세 투입 논란과 적자 지속, 전직 임원 횡령 혐의 등으로 총체적 난국에 빠진 대우조선해양이 가까스로 상장폐지를 피했다.  한국거래소는 28일 대우조선에 대한 기업심사위원회 심사 결과 상장폐지 대신 경영정상화를 위한 개선기간을 2017년 9월 28일까지 1년간 부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상장 적격성 심사는 회계처리 기준 위반과 관련한 검찰 기소와 전직 임원의 횡령·배임 사건에 따른 것이다.  상장폐지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주권의 거래정지는 경영개선기간 부여기간 1년간 더 연장되게 됐다. 대우조선 주권은 지난 7월 15일부터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대우조선은 소액주주 비율은 37.8%이며 인원수로는 10만 8000여 명에 이른다.  거래소 관계자는 “투자자 보호 문제와 시장에 미칠 충격 등을 고려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개선기간이 종료되면 15일(영업일 기준) 이내에 기업심사위원회를 개최해 개선계획의 이행 및 상장적격성 유지 여부를 심의하고 상장폐지 여부를 다시 결정하게 된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北 김정은, 홍수 피해 주민들에 ‘물고기’ 전달…“큰 사랑 부어주고 계신다”

    北 김정은, 홍수 피해 주민들에 ‘물고기’ 전달…“큰 사랑 부어주고 계신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함경북도 홍수 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물고기를 전달했다고 조선중앙방송 등이 27일 보도했다. 중앙방송은 “김정은 동지께서는 피해지역 인민들에게 크나큰 사랑을 부어주고 계신다”며 “이번에 함북도 큰물피해지역주민들에게 물고기도 보내주셨다”고 밝혔다. 이어 “큰물피해 지역주민들에게 물고기를 보내주기 위한 열차편성과 수송조직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친어버이 사랑속에 북부지구의 인민들이 은정어린 물고기를 눈물겹게 받아안았다”며 “피해지역주민들은 친어버이의 뜨겁고 다심한 그 사랑에 격정의 눈물을 흘리며 평양 하늘가를 우러러 목청껏 만세를 불렀다”고 선전했다. 한편 북한은 지난 1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명의의 호소문을 발표하며 피해 복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김정은이 홍수 피해 현장을 찾았다는 보도는 현재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전날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김정은이) 지난해 나선시에서 피해가 나고 20일 뒤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직 함경북도 지역의 수해복구가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반응이 없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매체 “50년 전 남한에 홍수 피해 지원했다”… 對北 지원 우회 촉구

    23일 북한의 한 선전 매체가 남한에 50여년 전 홍수피해가 났을 때 대대적인 지원에 나섰다고 주장하면서 우회적으로 대북 지원을 촉구했다. 북한 매체 ‘내나라’는 이날 “주체48(1959)년 9월, 예년에 없던 비바람과 큰물이 온 남녘땅을 휩쓸었다”며 1959년 9월 23일 채택된 대남 홍수피해 지원을 위한 ‘내각 결정 60호’를 상세히 전했다. 이 매체는 “눈비가 조금만 내려도 판자집에서 고생하는 남반부 인민들을 걱정하시고 강물이 조금만 불어도 남반부 인민들이 애써 지은 농사에 피해가 있을까 심려하신 위대한 김일성 대원수님께서는 남반부 이재민들을 한시바삐 구원하시기 위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결정 60호를 채택하도록 하시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선 1차적으로 쌀 3만석, 직물 100만마, 신발 10만컬레, 시멘트 10만포대, 목재 150만재…. 이렇게 결정서 초안에 구호물자의 수량을 한자한자 적어나가시던 어버이 수령님께서는 쓰라린 마음을 억제하시는 듯 잠시 펜을 멈추시였다”고 전했다. 또 “어버이 수령님께서 운명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자기들에게 이처럼 뜨거운 구원의 손길을 펼쳐주시였다는 소식에 접한 남녘땅 인민들은 수령님이시야말로 자기들을 구원해주시는 민족의 태양이시고 생명의 은인이시라고 하면서 어버이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였다”는 황당한 주장도 내놨다. 북한 선전 매체가 느닷없이 반세기 훨씬 전의 일화를 공개한 것은 최근 함경북도에서 발생한 홍수피해에 대한 지원을 우회적으로 요구하면서 ‘지원 불가’ 입장을 밝힌 우리 정부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지난 20일 대북 수해지원을 목적으로 한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의 북한 당국 접촉 신청을 불허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9년 9월 태풍 ‘사라’가 전국을 강타해 모두 849명이 숨지고 2533명이 실종됐으며, 37만 3459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여야 개헌파 180명 개헌특위 요청 합의

    여야 개헌파 180명 개헌특위 요청 합의

    내년 대선 맞물려 여야 벽 넘어 세력 모여 헌법 개정을 위한 정치권 안팎의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차기 대선을 겨냥한 정계 개편과도 맞닿아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20대 국회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은 23일 첫 조찬 회동을 갖고 다음달 말까지 국회에 개헌특위를 구성할 것을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에게 요청하기로 합의했다. 또 현재 180여명인 모임 참여 의원수를 개헌안 의결정족수(재적의원 3분의2)인 200명 이상으로 늘리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모임에는 새누리당 김무성·이주영·정병국·김성태, 더불어민주당 문희상·원혜영·진영, 국민의당 김동철·김관영 의원 등이 자리했다. 모임의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개헌을 원하는 원내외 모든 세력이 함께 힘을 합치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강조했다. 여야 원외 유력인사 150여명으로 구성된 ‘나라 살리는 헌법 개정 국민주권회의’(이하 국민주권회의)도 이날 오후 창립대회를 열었다. 김원기·임채정·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 유인태·조해진 전 의원, 박형준 전 국회 사무총장, 이석연 전 법제처장 등 정파를 초월한 인사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창립대회에는 남경필 경기지사와 이재오 늘푸른한국당 창당준비위원장 등도 참석했고 더민주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 대표는 “개헌을 통해 국가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과거에도 개헌 모임이 많았지만 이 시점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내년 대선과 맞물려 개헌을 중심축으로 한 세력이 여야의 벽을 뛰어넘어 뭉치는 이른바 ‘제3지대론’이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딸의 밀고로 ‘마오 암살’ 실패한 후계자, 45년 만에 공개된 의문의 추락사 진실은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딸의 밀고로 ‘마오 암살’ 실패한 후계자, 45년 만에 공개된 의문의 추락사 진실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애장(愛將)’ 린뱌오(林彪·1907∼1971)의 추락사는 조종사의 실수였다.” 중국 문화혁명 기간인 1971년 9월 린뱌오의 비행기 추락사 원인은 연료 부족이나 미사일 격추가 아닌 조종사의 실수라는 보고서가 공개됐다. 마오쩌둥 주석의 후계자로 불리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동안 중국 현대사의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SCMP “연료부족·미사일 격추 아닌 조종사 실수”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몽골 정보기관이 당시 소련군의 지원을 받아 사고 원인을 조사·분석한 러시아어 보고서 사본을 입수해 린뱌오 일행이 탄 비행기가 조종사의 실수로 추락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최근 보도했다. 중국 관계당국은 사고가 난 후 3주 정도 지난 뒤에야 “린뱌오가 마오 주석 암살을 기도하다 실패하고 소련으로 도망가다 비행기 연료 부족으로 추락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고 현장에서 수거한 자료를 근거로 내세우며 린뱌오가 마오 암살 계획을 세웠다가 사전에 발각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국군이나 소련군의 미사일 발사로 린뱌오의 비행기가 격추됐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비행기 추락 사고 2개월 후인 1971년 11월 20일 작성된 이 러시아어 보고서는 린뱌오와 그의 부인 예췬(葉群), 아들 린리궈(林立果) 그리고 수행원 6명 등 모두 9명을 태우고 가던 영국제 트라이던트1E가 1971년 9월 13일 새벽 2시 25분쯤 몽골 고비사막 근처에 추락,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이 비행기를 겨냥한 미사일 발사 등 ‘적대적인 공격’은 전혀 없었으며 비행기의 3개 엔진도 추락 당시 별달리 파손되지 않았다. 특히 이 비행기는 시속 500∼600㎞의 속도로 지상에 부딪힌 뒤 상당히 오랜 시간 폭발과 화재가 이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기체 내에 연료가 충분히 있었다는 의미인 만큼 연료부족 때문에 추락했다는 중국 당국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바오푸(鮑樸) 홍콩 신세기출판사 대표가 올해 초 미국 하버드대 페어뱅크센터 문서고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바오푸는 “어떤 학자도 이렇게 중요한 보고서를 그동안 한번도 열람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천재 군사지도자로 마오 오른팔서 견제 대상으로 린뱌오는 중국 공산당의 항일전쟁과 대장정에 참여했던 혁명가로 중국 10대 원수 중 한 명이다. 그는 미국 국방부가 1930년대 중국 내전을 분석하면서 공산당 류보청(劉伯承), 국민당 바이충시(白崇禧)와 함께 3대 천재 군사지도자로 꼽았을 정도로 뛰어난 군사 지략가이다. 6·25전쟁 당시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총사령관)으로 내정됐지만 그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참전을 고사하는 바람에 대신 펑더화이(彭德懷)가 참전했다. 1949년 사회주의 중국이 들어선 이후 공산당중앙위원회 부주석, 당중앙군사위원회 제1부주석과 국방부장, 국방위원회 부주석 등 국방 관련 최고위직을 지내며 마오의 절대적 신임을 얻었다. 이후 마오의 대약진정책과 문화혁명을 지지하고 개인숭배를 주도하면서 중국 공산당 내 2인자로 떠올라 1969년 4월 마오의 공식 후계자로 공산당 당장(黨章)에 등재됐다. 하지만 린뱌오는 마오가 류샤오치(劉少奇) 실각 이후 공백이던 국가주석에 오를 것을 건의했다가 주석직을 폐지하려던 그의 눈 밖에 났다. 이에 따라 마오의 비판과 견제의 대상이 되면서 실각한 린뱌오는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 듯이’ 공군에 복무 중인 아들 린리궈와 함께 마오 암살 계획인 ‘571 공정(工程)’을 세웠다가 딸 린리헝(林立衡)의 고발로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작전명 ‘571’의 발음이 무장 폭동을 뜻하는 ‘우치이’(武起義)와 같다. 이 문건에 대해서는 조작 논란이 제기된 상태다. 마오 암살에 실패한 린뱌오는 결국 가족과 함께 비행기로 중국을 탈출해 소련으로 망명하려다가 의문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마오 신화가 흔들리고 문화혁명이 ‘사망’을 향해 달려갈 즈음 중국 당국에 의해 권력 핵심에 있다가 ‘배신자’로 낙인 찍힌 그의 죽음은 중국 현대사의 최대 수수께끼 중 하나였다. ●린의 죽음은 문화혁명 종결이자 개혁·개방 도화선 린뱌오 사건 이후 마오는 중국 인민해방군 내부의 린뱌오 인맥을 솎아내기 위해 문화혁명 초기 ‘제2호 주자파(走資派)’로 몰아 숙청했던 덩샤오핑(鄧小平)을 등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보면 린뱌오는 중국이 이후 장칭(江靑)·장춘차오(張春橋)·왕훙원(王洪文)·야오원위안(姚文元) ‘4인방’을 제거한 뒤 문화혁명 종결을 선언하고 개혁·개방에 이르는 실마리를 제공해 준 셈이다.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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