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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근로자주택 1,620가구 착공/어제 안산서 내년말 완공

    ◎올해 전국에 6만 가구 건립 예정 무주택 근로자들의 보금자리가 될 첫번째 근로자주택 1천6백20가구가 22일 하오 노태우대통령과 권영각건설부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반월공단 주변인 경기도 안산시 군자동에서 착공됐다. 주택공사가 2백85억원을 들여 건설하는 이번 근로자주택은 11평형 1천80가구,13평형 5백40가구로,이 가운데 7백20가구는 공단 근로자들에게 분양되고 9백가구는 사원들에 임대된다. 군자지구 근로자주택은 내년말에 완공될 예정이며 주택단지안에는 노인정ㆍ입주자 회의실ㆍ휴게소ㆍ병의원ㆍ테니스코트 등 각종 복지및 편의시설이 들어선다. 이번에 착공된 군자지구 근로자주택은 정부가 무주택 근로자들의 내집마련을 돕고 산업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올해 짓기로 한 6만가구중 일부로,분양주택에는 가구당 연리 6∼8%,5년거치 20년 상환조건의 주택자금이 1천2백만원씩 융자된다. 또 사원용 임대주택에도 연리 3%의 주택자금이 지원된다. 정부는 이번에 건설되는 근로자주택의 한달 주거비가 융자금상환액과 관리비를 합쳐 월 50만원소득자의 주거비 부담능력인 12만원 수준을 넘지않도록 할 방침이다. 안산시 도심으로부터 서북방 2km지점에 있는 군자지구는 안산전철역으로부터 1km밖에 떨어져 있지않아 대중 교통수단과의 연결이 쉽고 주변엔 1천68개업체가 몰려있다.
  • 「강야」 이미지 구축,“국민정당 심기” 포석

    ◎평민 왜 「장외투쟁」에 나서나/극한투쟁 일변도 탈피,여론환기에 주력/재야ㆍ학생운동권 「강경」동참 요구땐 곤경 평민당이 19일 총재단회의에서 「국정보고대회겸 시국강연회」를 전국 주요도시에서 갖기로 하고 「1천만명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로 하는 등 장외투쟁을 벌이기로 한 것은 평민당 지도부가 임시국회 이전에 발표했던 「4단계 투쟁방향」에 따라 이미 정해졌던 수순의 한 단계이다. 3당통합의 부당성에 맞서기 위해 1단계 여론홍보투쟁,2단계 임시국회에서의 원내투쟁,3단계 1천만명 서명운동,4단계 지자제선거에서의 승리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평민당 내부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임시국회 이전에 비해 크게 고양돼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같은 장외투쟁의 내용과 방법은 당초 의도와는 달리 상당부문 궤도수정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임시국회 이전까지는 장외투쟁 선언자체가 여권을 겨냥한 「선전포고」의 성격이 짙었다고 한다면 현상황에서는 국민적 지지기반 확충을 위한 「대중행사」의 의미가 더욱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해석이다. 따라서 과거와 같은 반독재투쟁 성격의 극단적인 대결보다는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국민여론을 환기시키는데 주력하겠다는 것이 평민당 지도부의 설명이다. 평민당 지도부의 이같은 변화는 임시국회에서 대여원내투쟁을 통해 감지한 자심감에 기인하고 있다. 임시국회 이전까지 평민당 지도부는 정계개편의 충격으로 표류하는 상황에서 강경대응 방식만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그러나 임시국회에서 민자당과의 접전과정을 통해 「유일야당」으로서의 견제기능을 수행했고 그만큼 평민당의 입지를 긍정적으로 부각시키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3당통합의 부당성을 구호적 차원을 넘어 실체적으로 규명했다고 만족해 하고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앞으로의 장외행사는 민자당의 이미지를 훼손시키는 과거의 전략에서 벗어나 평민당이 명실상부한 야권의 중심세력이라는 「강야」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겠다는 것이 당지도부의 기본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도 3∼4월의 학원소요,춘투에 따른 노사분규 등 시국상황을 감안할 때 민자당에 대한 대학생ㆍ근로자들의 저항운동이 전개될 것이니 만큼 평민당 스스로 굳이 공격의 전면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 평민당 지도부의 전략이다. 시국적 혼돈상황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내부정지 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민자당의 이미지 실추에 반비례해 「실질적 이익」을 얻겠다는 속셈이라고 할 수 있다. 평민당이 노리는 「이익」이란 구체적으로 「지역당」의 이미지를 탈피한 「국민정당」으로의 당세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의 「장외투쟁」 행사를 온건하고 합리적으로 꾸려갈 경우 평민당에 대해 고정화된 「저항심리」도 어느 정도 불식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또다시 예상되는 야권통합논의도 평민당측이 그동안 주장해 온 「흡수통합론」쪽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희망적 계산」을 하고 있는 눈치다. 그러나 평민당의 이같은 「장외투쟁」 전략에는 적지 않은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재야ㆍ학생운동권에서 3당통합 반대투쟁정국에 대한 범야차원의 강경투쟁을 주창하며 평민당의 동참을 요구할 경우 이를 거부할 만한 마땅한 명분이 없다는 점이다. 또 대중집회에 재야ㆍ학생운동권의 강경세력이 상당수 참석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당지도부의 의도대로 비폭력적으로 진행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오히려 평민당 스스로가 폭력사태에 말려들어 책임을 져야 하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당내부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5ㆍ18 10주년을 맞아 광주문제를 이번 임시국회에서 매듭짓지 못한데 대한 책임추궁도 현지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사실도 평민당에게는 크나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땅투기 외지인 세무조사/개발 예정지역 부동산 거래 추적

    ◎자금 출처등 캐 증여세등 추징/분당ㆍ동ㆍ서해안등 5개지역/투기혐의 1백39명 적발/국세청 신도시주변등 개발예정지역에서 땅을산 외지인에 대해서는 즉시 세무조사를 벌이는등 부동산투기 조사가 강화된다. 서영택 국세청장은 15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최근 일부 개발예정지에서 땅값이 오르고 매물이 회수되는등 투기가 재연될 조짐이 나타나 이들 지역에 대해 투기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서청장은 이를 위해 관할세무서별로 부동산정보 전담지역을 지정,동향을 항상 감시하며 토지거래신고서 및 토지대장ㆍ인감증명 발급상황 등을 수집해 거래자를 파악키로 했다고 말했다. 특히 외지인으로서 부동산을 산 사람은 일단 투기혐의자로 보고 이가운데 연소자등 취득능력이 의심스러운 사람이나 가등기자 등에 대해서는 즉시 세무조사를 벌이겠다고 강조했다. 서청장은 세무조사를 벌일경우 당해 부동산을 취득하면서 실제로 사용된 수표 등의 출처를 추적,증여세 등을 추징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국세청은 5개 지역에서 투기혐의자 1백39명을 적발,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대상지역 및 인원은 ▲분당등 신도시 주변 토지취득자 46명 ▲광양제철 인접지역 10명 ▲서산ㆍ당진일대 부동산 중개업자 9명 ▲강릉ㆍ속초등 동해안지역 42명 등이며 서해안고속도로 주변조사에서는 중개업자 32명의 투기사실이 드러나 관계기관에 통보됐다. 이 가운데 동해안지역 투기혐의자들은 토지거래 허가지역의 땅을 구입하면서 까다로운 허가절차를 피하기 위해 땅주인으로 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위장하는 수법을 썼다. 또 일부지역에서는 자경농지를 구입하면서 8년이상 경작하면 양도소득세가 면제되는 규정을 악용,등기를 원소유자명의로 두고 매입자는 가등기만을 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 아주 원자력기구 제의/이 과기처 도쿄 연설 북한에 핵안전협정 촉구

    【도쿄 연합】 이상희과기처장관은 12일 아시아지역 원자력협력상설공동체 설치를 제의하는 한편 북한의 원자력 전면안전조치협정 체결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장관은 이날 하오 일본 도쿄 동해대학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지역 원자력협력회의에 참석,기조연설을 통해 이같이 제의하고 온실효과,산성비 등 지구환경문제등과 앞으로 닥칠 제3차 석유파동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원자력이용이 중요하다면서 아시아지역 각국이 원자력협력상설공동체를 만들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장관은 북미와 유럽공동체(EC)의 블록화를 앞두고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지역의 기술벨트와 동남아시아의 자원벨트가 한데 손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원자력협력상설공동체안에 원자력안전분과위,원자력발전분과위,국민이해증진분과위,방사선동위원소의 농ㆍ공ㆍ의학적 이용분과위및 기술협력분과위를 둘 것도 제의했다. 한편 그는 북한 영변지역의 핵시설및 핵활동에 깊은 우려를 표명,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고도 5년이 가깝도록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전면안전조치협정 체결을 지연시키고 있는 북한이 조속한 시일안에 서명토록 협조해줄 것을 회의 참석국과 세계 여러나라에 요청했다. 이장관은 이날 회의에 앞서 일본 과학기술청으로 오시마(대도우치)장관을 방문,양 인접국가간의 원자력비상사태 발생시 상호조기통보및 긴급지원을 위한 핫라인 설치에 합의하였다.
  • 「교원소청 심사위」 신설/교원단체 단체교섭권 부여는 이견

    ◎민자 교육관계법소위 민자당의 교육관계법소위는 28일 하오 국회에서 교원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 단일안 마련을 위한 모임을 갖고 학교안전사고로부터 교원 및 학생보호를 위한 대책마련및 교원소청심사위원회 설치에 관한 규정을 둔다는 데는 합의했으나 최대쟁점인 교원단체에 사실상의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위원간의 이견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소위는 이날 사립학교 교원의 소청심사를 위해 교원재심위원회를 변호사ㆍ판사 등 법조인과 교육관계자 등 9인으로 설치키로 하고 위원임명은 문교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토록 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날 모임에서 함종한의원은 『교원의 지위향상 등을 위해 교원단체는 교육장 또는 문교부장관에게 건의 협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과 교육장및 문교부장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는 점을 명문화하고 평교사,문교당국자,학부모및 사회저명인사등 9∼15명으로 구성되는 협의기구를 둘 수 있도록 하자는 민정계의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박관용ㆍ김인곤의원은 교원단체에 단체교섭권을 부여하고 교섭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교원단체대표와 문교당국자가 각각 동수로 참여하고 양측이 합의한 제3자가 포함되는 중재조정위원회를 두어야 한다는 민주ㆍ공화계의 주장을 고수했다. 이날 모임에서 함의원과 박ㆍ김의원 양측은 교원보수의 우대조항 설치여부를 놓고 보수액수를 명시하자는 박ㆍ김의원과 상황변화에 효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상징적으로 하자는 함의원의 의견이 맞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소위는 2일 또 한차례의 모임을 갖고 단일안 절충작업을 벌일 예정이나 양측의 기존입장을 고수 방침이 분명해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 도심 32개 군 시설 연내 교외이전/국방부 업무보고 요지

    ◎병적관리 거주지 이관/극빈자 병역 감면 확대 ▷국방예산◁ ▲군수품의 원가절감과 품질향상을 위해 경쟁조달환경을 조성,양질의 군수품생산을 유도 ▲방산업체의 전문ㆍ계열화는 무기체계의 기술분야별로 전문계열화해 국가첨단산업발전에 기여 ▲페인트ㆍ탄약 등 20개 품목을 경쟁계약으로 조달,예산절감과 품질향상 ▲독점방산물자도 점차 복수화 ▷예비전력 강화◁ ▲긴급동원소요의 78% 인원을 대상으로 실시해온 동원훈련을 90년도부터 대상인원과 부대의 1백% 훈련을 실시 ▲부대별 임무와 훈련성격ㆍ성과 등 전시임무 수행능력을 높인다 ▲동원 미참가자를 감소시켜 담당부대의 병력부족을 완화 ▲급식 및 처우 등 훈련자의 편익차원에서 증ㆍ창설부대와 기존부대와의 공정성유지 ▲예비군 간부훈련연한제 도입 ▲훈련면제 인원을 8만명으로 확대 ▷공개국방행정◁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해주고 민원사항의 신속한 해결로 국민편익을 최대한 보장 ▲수해ㆍ설해ㆍ한해와 같은 천재지변 발생시 대민복구작업 ▲도심지역의 32개 군시설 연내 교외이전 ▷병무행정◁ ▲고학력 현역입영범위 확대및 병역특례제도 축소 ▲생계곤란자 병역감면 기준의 완화 ▲징병검사장비 현대화로 오해 불신해소 ▲본적지 병적 관리제도를 거주지 관리제도로 변경 ▲예비군 자원관리,병력동원 소집을 위한 동원지정,징병검사 판정과 징ㆍ소집의무 부과 등 병무행정 전산화 ▲미일등 유학생이 많은 나라의 해외공관에 병무직원 파견 ▲강릉 상설징병검사장 신축 ▷대미 안보협력◁ ▲용산기지이전을 위한 한미간의 기획단 구성 ▲넌ㆍ워너수정안에 대한 미국과의 협의 ▲주한미군 감군에 대비한 전력증강 ▲방위비증액에 대한 한국측 입장정립 ▷군생필품 수준향상◁ ▲70년대 수준인 장병들의 피복ㆍ일용품ㆍ병영생활품 등을 현대사회및 가정평균수준에 맞도록 개선 ▲군장병 급식향상 ▲숙소와 생활시설개선 ▷국방과학기술 향상◁ ▲국방과학연구소의 인원과 예산증가 ▲한국형 무기체계의 본격적인 개발 ▲국방과학활성화 5개년 계획수립 ▲본격적인 한국형 무기체계 확립 ▲통신과 전자망의 현대화 ▲지휘ㆍ통제ㆍ정보체제의 자동화▲전산망현대화로 본부와 예하부대의 지휘체제 일원화 ▲전문요원의 해외연수및 교육파견기회 늘리고 해외고급인력 적극유치 ▲국제공동연구개발 기술도입생산및 절충교역에 의한 선진기술도입 ▷팀스피리트90훈련◁ ▲지난달 26일부터 오는 4월25일까지 90일간 실시하며 병력은 지난해보다 1만7천여명이 감소한 19만명이 참가한다 ▲북한ㆍ중국 및 중립국감시위원단 4개국 대표를 참관토록 초청했다 ▲북한의 상황변화와 전진배치된 병력과 장비의 철수 등으로 주기ㆍ규모를 조절하겠다. ▷대간첩대책◁ ▲대통령주재로 실시하던 대간첩대책중앙회의를 군사분야대책회의 개념에서 탈피,정부차원의 종합적인 안보대책을 논의할 수 있는 범국민적 안보회의 개념으로 발전 ▲북한은 외교ㆍ군사ㆍ사상 및 심리전 분야에서 침투공작을 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군사분야대책만 논의해 왔기 때문에 정부차원의 종합적인 안보대책이 미흡했으므로 올해부터는 범국민적 안보결의를 다지는 계기로 삼아 「대간첩실무회의」와 「중앙안보정세보고회의」로 구분하여 실시 ▲대간첩실무회의는 매년 1월21일 대간첩대책본부장 주관으로,중앙안보정세보고회의는 6ㆍ25 또는 을지연습기간중 대통령 임석하에 안보관련 주요지휘자및 각계인사를 대상으로 개최 ▲신문과 방송ㆍ텔레비전을 통해 대국민안보 홍보를 강화하고 안보환경 변화에 따른 홍보의 획기적인 발전책을 강구 ▲국민들의 평안한 일상생활보장과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위한 도시방어 개념을 발전시킨다 ▲육ㆍ해ㆍ공군 통합전력에 의한 각종 대비태세를 확립하고 북한보다 우세한 방어태세를 구축 ▲대간첩대책을 위해 속도와 기동성ㆍ화력ㆍ야간작전능력을 보강
  • “토지 점유 10년 지나면 소유권 인정해야”/대법원

    새로 땅을 산 사람과 땅을 판 사람의 등기기간을 합쳐 10년이 넘으면 원소유주가 따로 있다하더라도 등기상 명의인이 소유권을 취득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새로운 판결이 나왔다. 지금까지는 소유주가 따로 있는 땅을 모르고 샀을 경우 자신의 명의로 등기한 기간이 10년을 넘을 때에만 그 권리를 인정하고 앞등기인의 등기기간은 인정하지 않았었다. 대법원전원합의체(재판장 이일규대법원장,주심 윤금관대법관)은 지난달 31일 원고 국가가 피고 최태근씨(광주시 동구 장동 13의1) 등 19명을 상대로 낸 토지소유권이전등기 말소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최씨 등의 상고를 받아들여 국가승소판결을 내린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 평민 당직개편과 체제개편 시사의 함축

    ◎소야의 「지역당」 탈피,세 확장 포석/새 인사영입 「국민정당」 발돋움 겨냥/김 총재의 2선후퇴 현재론 회의적/집단지도체제 발언은 대외적 “명분찾기” 평민당이 29일 단행한 당3역 개편은 그동안 취약점으로 지적됐던 「지역당」 이미지의 탈피를 위한 1차포석으로 분석된다. 호남출신의원 일색이었던 당의 핵심 세자리 가운데 원내총무와 정책위의장 등 두자리를 서울에 지역구를 가진 의원들로 교체한 것은 이번 당직개편이 지역안배에 가장 역점을 두었다는 점을 나타내주고 있다. 거대여당의 출현에 따른 당내 동요를 조기에 진정시키고 당내 결속을 다지겠다는 계산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이같은 연장선상에서 김대중총재가 당체제를 집단지도체제로 개편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한 것은 3당통합 후 「유일야당」으로 당세를 확장하겠다는 복안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다. 현재 영입작업을 벌이고 있는 외부인사들에게 상층권의 자리를 보장해주고 당운영에 있어 「민주적」 방식을 약속해줌으로써 가능한 많은 「국민적」 인물을 끌어들여 「지역당」이 아닌 「국민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1인독주」라는 김총재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을 명분상으로라도 해소시켜 보겠다는 속셈도 작용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점에서 평민당의 당직개편과 김총재의 당체제 개편 의사표명은 당 이미지 쇄신ㆍ당내 결속ㆍ문호개방으로 요약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앞으로 정국을 「민주대 반민주」의 2분 구도로 몰아붙이려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평민당 지도부는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통합 발표 이후 당의 고립화와 왜소화를 가장 우려해왔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국 구도를 여권측이 의도하는 보ㆍ혁구도가 아닌 민주ㆍ반민주의 구도로 끌고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이는 많은 국민들이 거대여당에 대해 자연 발생적으로 견제하려는 심리를 갖고 있고 이들 국민에게 평민당의 움직임이 반민주 세력에 대한 투쟁으로 비쳐질 경우 당의 위치가 한층 격상될 것이라는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다. 평민당은 시기적으로 보더라도 2월의 임시국회,3ㆍ4월의학원소요및 노사분규,5월의 광주문제 등 예상되는 일련의 큰 움직임들이 평민당을 유일 민주야당으로 부각시켜 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같다. 이같은 바람을 타고 일단 6월로 예상되는 지자제 선거에서 거대여당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해 입지를 분명히 하겠다는 것이 평민당의 중ㆍ단기 전략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같은 전략에 가장 큰 장애물은 평민당이 갖고 있던 「지역당」으로서의 이미지와 김총재에 대한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평민당 내부에서도 이를 깨뜨리지 않고서는 「범민주세력」 규합을 통한 「유일야당」으로서의 성장 또한 기대할 수 없다는 자탄이 공공연히 나왔다. 일부 의원들은 김총재 퇴진을 전제로 평민당을 해체하고 범민주세력을 끌어들여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 김대중총재는 의원직 총사퇴,총선실시를 요구했고 2월 임시국회에서의 거당적인 투쟁을 선언했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만 가중시킬 뿐 「난국타개」를 위한 뚜렷한 대처 방안으로는 인식되지 않고 있다. 3당통합과 내각제 개헌 반대를 위한 1천만명 서명운동 방안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5일 통합정국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당3역이 사의를 표명한 이후 지도부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당내 일각에서도 노골적으로 표출됐다. 결국 당3역 교체조치와 집단지도체제 시사 발언은 수동적이고 표피적인 대응 방식으로는 자칫하면 당내 분열과 야권 분열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따라 적극적이고 직접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내부 변신의 방안으로 급선회한 것이라는 풀이가 가능하다. 김총재는 당초 당직개편은 2월 임시국회 이후로 잡았지만 김원기총무에 대해 정보판단 실수 등과 관련한 비판론이 워낙 거세 조기 경질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조치에도 불구하고 평민당이 과연 「지역정당」에서 탈피하고 거대여당에 대한 대체세력으로 변신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당3역 교체에 있어 지역안배원칙을 고려했다고 하지만 평민당의원들이 극히 몇명을 제외하고는 서울ㆍ호남지역 의원들로만 구성돼 있고 서울지역구의원들 가운데 다수가 역시 호남출신이기 때문이다. 결국 바꿔봐야 마찬가지라는 외부로부터의 인식은 현재의 평민당이 쉽사리 떨쳐버리기 어려운 고민이며 한계라고 하겠다. 외부인사 영입 문제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적지 않다. 김총재의 발언대로 필요하다면 당체제를 집단지도체제로 바꿔 실질적인 「문호개방」을 통해 이들을 영입하겠다는 것이지만 과연 이 발언이 어느 정도의 호소력을 갖겠느냐는 데 대한 의구심이 적지 않다. 집단지도체제가 되면 김총재가 리더로서의 입장을 포기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김총재는 『당내는 물론 재야에서도 나와 평민당을 구심점으로 필요로 하고 있다』는 말로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특히 영입대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재야인사에 대해서는 『혁신이 아닌 중도성격의 민주인사』로 한계를 분명히 함으로써 영입과정에서 오히려 재야쪽과 적지 않은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다. 재야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김총재의 체제개편 시사발언이 2선 퇴진이라는 자기희생을 전혀 고려치 않고 범민주세력 통합주장을 회피하기 위한 명분 축적용이라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평민당내 통합파의원들도 범민주세력 규합을 위한 당차원의 노력이 신통치 않다고 판단할 경우 적지 않은 반발을 보일 태세여서 평민당은 자칫하면 안팎으로 3중ㆍ4중의 시련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김명서기자〉
  • 전 전대통령 특위제출 서면 답변내용

    ◎“「광주」발포 당시엔 보고 못받았다”/미 정부도 「5ㆍ17」 불가피성 이해했다/사북사태ㆍ학원소요가 계엄확대 원인 ▷다음은 전두환 전대통령이 서면으로 특위에 제출한 답변내용이다.◁ 본인이 당시 도청 앞 상황과 관련한 발포 건의를 받은 적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국회의 청문회에서 증언한 바 있는 이희성계엄사령관,윤흥정 전교사령관 등이 「발포 사실조차도 상황이 진행될 때에는 보고받지 못했다」라는 증언내용에 비추어볼 때 당시 지휘계통에 있지도 않았던 본인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건의를 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도청 앞에서의 이러한 발포사태는 상황이 종료된 이후 통상적인 정보보고를 통해 본인에게 보고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당시 본인은 즉각 이를 최규하대통령에게 보고하려 했으나 이미 계엄사령부를 통해 보고되었다고 하기에 중단한 바 있습니다. ▷미 정부역할◁ 광주사태를 전후하여 주한 미대사관을 포함한 미국 정부관리들은 한국의 제반상황에 대하여 우리측과는 어느 정도의 인식차이가 있었다고 보며 이러한 차이는 북한의 도발가능성에 대해 제3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민해 있는 우리의 현실로 보아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최근에 미국무성이 보내온 광주사태에 대한 석명서를 보면 당시의 한국 안보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으나 이는 당시 미 정부가 광주사태를 계기로 취한 일련의 군사 외교적 조치들과는 모순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해 5월22일 미 국무성은 「불안한 사태가 계속되어 폭력사태가 과열된다면 외부세력이 위험한 오판을 할 위험성이 있다」고 북한의 도발책동을 우려하며 「한국사태를 방위조약에 따라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북한에 대해 경고한 바 있습니다. 또한 같은날 국무장관 주재로 한국사태에 대한 고위정책조정회의를 열어 항공모함을 위시한 기동함대와 조기경보기를 한국에 파견키로 하는 등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일련의 군사적 조치를 취했으며 당시 미 정부는 북한이 남침해 올 경우 미국은 즉각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경고를 제3의 외교경로를 통해 북한측에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5월26일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의 여야 정치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글라이스틴대사는 『광주사태가 오래 계속된다면 배고픈 호랑이같은 북한이 이를 이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미국은 5ㆍ17조치의 배경과 불가피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본인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미 정부의 입장과 이번의 미 국무성의 석명서에 나타나 있는 입장은 상황 및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기본 입장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내의 일각에서는 광주사태가 특별한 의도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이는 전적으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누구라도 정권을 위한 치밀한 사전계획을 세웠다면 광주사태와 같은 커다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오히려 바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불행한 사태의 경위가 어떻게 되었든 그 구체적인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귀속되건간에 본인은 당시 정부와 군의요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책임의 일부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통령재임기간중에는 『상처는 아물기 전에 건드리면 다시 커져 치유가 어려워진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 문제가 남긴 상처를 근원적으로 치유,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은 반성과 자책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상계엄 확대조치◁ 79년 10ㆍ26사태의 충격이란 절대권력의 돌연한 붕괴가 가져온 충격이었습니다. 이 충격에서 깨어나는 80년의 봄이 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권력과 권위의 공동현상이 확실히 드러났고 거기에 발호하기 시작한 것이 혼란과 무질서였습니다. 빈발하는 학원소요와 노사분규는 그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4월의 사북사태는 며칠 동안이나마 그 지역에 관한 한 국가기능이 정지된 상태에 도달했고 5월 중순에 학원가두소요는 전국 곳곳에 넘쳐 지역계엄령하인데도 치안 마비상태에 도달하였습니다. 5월13일에서 15일에 걸쳐 절정을 이루었던 서울소요에서는 3일째 되는 15일 서울역에서 시청광장에 이르는 도심에 대학생을 중심으로 10만의 군중이집결되었고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당시로서는 예가 드물게 경찰차가 방화 당하고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1백13명이 부상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같은 혼란을 틈타 각종 범죄가 난무한 것은 물론,외국바이어들이 다투어 철수하고 조업에 지장을 일으키는 등 경제생활 전반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게되자 국민들의 불안심리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한편 10ㆍ26 이후 적화통일의 결정적 기회를 노리고 있던 북한은 이 시점이 되면서 대규모 기동훈련,전쟁물자 점검,전투태세 강화 등 심상치 않은 동향이 첩보사항으로 파악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국가 존망지추를 당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이 일일이 매스컴에 의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그나마 일반 국민의 동요를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같은 위기상황에서는 그 당사자가 누구이든,국가는 국가 스스로의 자위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같은 국가의 자위조치의 당연한 귀결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였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지역비상계엄에서는 국방장관이 계엄업무를 지휘감독하고 전국 비상계엄하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지휘감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국비상계엄확대의 문제는 특정지역에 소요나 문제가 있다 없다의 기준을 넘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위기상황에 처하여 5월15일 신현확총리는 시위사태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자제를 촉구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고 그때에 진행중이던 제2차 석유파동속에서 원유 확보를 위하여 중동을 방문중이던 최규하대통령도 국내 사태의 급보를 받고 일정을 하루 앞당겨 5월16일 귀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최 대통령 귀국 직후 국무총리 내무 국방장관 계엄사령관 그리고 본인 등이 참석한 시국대책회의에서 총리는 국내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하였고 주영복국방장관은 이 자리에서 비상시국에 임한 군의 대책마련을 위해 다음날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0ㆍ26 이후 우리 사회의 각부면의 권력과 권위가 퇴화,공동화되는 속에서 군만은 국가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서 사회와 국민의 막연하고도 암묵적인 기대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5월17일 개최된 전문지휘관회의에 참석한 지휘관들은 당시 사태의 심각성과 이에 대한 획기적 대책의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하고 이를 위해 전국 비상계엄으로의 확대건의를 결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일각에는 학생소요를 옹호하며 전국 주요도시에서 대규모 군중궐기집회를 준비중인 세력도 있었고 5월16일에는 55개 대학 총학생회장단이 모여 5월22일을 시한으로 계엄의 즉각 해제와 정치일정단축 등의 요구를 내걸고 전면 투쟁태세를 굳히는 등 사태는 더욱 악화될 형세였습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전국 비상계엄확대 건의안은 결의되었고 국방장관과 계엄사령관은 이를 신현확총리에게 보고하여 동의를 받고 최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재가받았으며 이날 저녁으로 임시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와서 당시 한국의 안보상황에 대해 미국의 인식이 어떻다고 말이 있습니다만 물론 한국의 안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이 완전한 인식일치가 있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해도 당시 한국의 현존하는 안보위협에 대한 미국측의 인식과 대응의지를 과시하는 일환으로 5월13일과 14일 양일간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된 바 있음을 상기하기 바랍니다. 계엄확대를 전후한 5월14일부터 18일에 걸쳐 전국 주요시설과 방송국들에 경계경비를 위해 인근병력이 배치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국회가 개회중인데도 의원들의 동원이 저지된 것으로 압니다.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5ㆍ17비상계엄확대조치가 12ㆍ12를 주도한 이른바 신 군부세력의 쿠데타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만 쿠데타가 국권을 탈취하기 위해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국가를 치는 거사라 한다면 거기에 합당한 현상이 5ㆍ17시점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해두고자 합니다. 다만,오늘의 시점에서 5ㆍ17을 본다면 신 군부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무인들이 명확하고도 주관적인 의지는 결한 채로 시대적 상황과 국가의 요청에 밀려 덧없는 정치의 수렁으로 말려드는 계기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감회가 있습니다. ▷국보위 설치경위◁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는 전국 비상계엄하에서 대통령의 계엄업무에 대한 지휘감독을 보좌하기 위하여 계엄당국과 행정부간에 긴밀한 업무협조를 가능케 하여 조속하게 사회 안정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대통령 직속하에 한시적인 자문보좌기관으로 설치된 것입니다. 80년 4,5월의 상황이 얼마나 위기상황이 되고 있었는지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한편으로는 혼란과 비례하여 소위 말하는 「정부의 영이 서지 않는」상황이 되어가고 있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무렵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비상한 상황이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극복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뜻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되어 있었고,당시 「정부의 영」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국민들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해했던 것입니다. 나라를 벼랑으로까지 몰고 간 위기상황은 전국비상계엄을 불러왔고 전국비상계엄은 무엇보다도 먼저 위기관리와 난국타개를 위해 정부기능을 보완적으로 강화할 수단을 찾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결과가 국보위설치로써 나타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행정부의 기능을 계엄적으로 강화하는 매개 역할,이것이 국보위 기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만일 군으로 구성된 계엄당국에게만 당시의 문제해결이 맡겨졌다면 국가가 그렇게 단기간에 위기탈출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국보위에는 계엄당국과의 매개역을 위해 군의 전문요원들도 차출되었으나 대부분은 행정부 요원ㆍ학자 및 각계 인사들로 구성되었던 것입니다.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나름대로의 비상대책안이 은연중에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거론되고 있었고 이같은 안들은 합수본부였던 보안사의 정보수렴과정에서 취합되고 있었으며 전국계엄으로 확대되는 것과 동시에 본인은 그동안의 정보보고를 상기하여 대책안의 구체적인 검토를 보안사 참모진에게 지시하였습니다. 그리해서 국보위는 설치되었고 그 책임상 본인이 상임위원장직을 맡았던 것입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용어가 누구의 착상인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분명치 않습니다. 비상기구의 연구검토초기에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발동을 전제하여 기구를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보다 합헌적이고 합법적인 근거를 가져야 제대로 작용될 수 있다는 결론에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는 정부조직법 제5조와 계엄법 제9조 및 제11조 등에 근거를 두고 조직되었으며 그 설치안은 5월27일 최규하대통령께 보고되었습니다. 같은 날 국보위 설치령이 국무회의에 제안되어 의결을 거친 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5월31일 발족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발족됨으로써 군은 관련분야인 국방임무와 치안유지에만 전념하게 되었고 계엄업무의 일환으로서 군이 당연히 맡도록 되어 있는 행정ㆍ사법 사무에 대한 기획조정업무는 국보위가 맡게되어 대통령이 전국계엄을 효과적으로 지도감독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설치의 당위성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광주사태가 조작되고 유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있는 모양입니다만,이같은 역사인식이야말로 날조되고 왜곡된,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역사인식이요 본말전도도 유만부동입니다. 어떤 유능한 신이 있어서 광주사태의 전말을 연출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계엄확대에 의한 업무추진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국보위는 설치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추진한 과외금지조치나 공직사회정화 등 일련의 충격적인 조치는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로서는 국민들의 갈채를 받았고,그 때의 국가사회가 위기상황을 탈출하고 혼란과 무질서의 늪에서 벗어나는 데는 효과가 있었던 것을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국보위가 비상한 상황에서 의욕이 앞선 나머지 때로 무리한 수단을 동원하여 물의를 빚은 점은 아쉽고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1980년 8월 최규하대통령이 하야하게된 진정한 동기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만 본인으로서는 최 대통령께서 하야하시면서 발표하신 성명의 내용에 비추어 헤아려볼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다른 동기가 있었는지에 관해 저의 주관대로 추측해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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