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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조업 경쟁력 강화”/노 대통령/재계인사 30명 초청,강조

    ◎“노사화합·경제안정 노력” 노태우대통령은 29일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확고한 안정이 이뤄져야한다』고 강조하고 『이를 위해 정부는 물가와 임금,이자율등의 안정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것이며 특히 노사화합의 정착과 부동산 투기근절을 위한 시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할것』이라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이날 낮 이건희삼성그룹회장등 주요기업대표 30명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고 『최근 소련사태등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국내적으로도 민주화와 자율화,그리고 지방화가 급속히 진전되고있는 상황에서 경제인들이 더욱 능동적인 자세를 갖고 이 모든 변화에 대처해줄것』을 당부했다. 노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내실있는 성장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제조업경쟁력강화 시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성장애로 요인을 타개하며 중장기성장기반을 확충하기위해 교육제도개선등을 통한 인력공급체제개편,사회간접자본확충및 과학기술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해나가면서 경제사회 각 부문의 제도와 관행도 오늘의 국제화시대에 상응하도록 개선해 나갈것』이라고 말했다. 참석한 기업대표는 다음과 같다. ▲이건희(삼성) ▲정세영(현대) ▲구자경(럭키금성) ▲최종현(선경) ▲김석원(쌍용) ▲김선홍(기아) ▲김승연(한국화약) ▲조중훈(한진) ▲조석래(효성) ▲정수창(두산) ▲이동찬(코오롱) ▲이임용(태광) ▲이재준(대림) ▲장상태(동국제강) ▲김준기(동부) ▲박성용(금호) ▲김현철(삼미) ▲임창욱(미원) ▲박건배(해태) ▲정인욱(강원산업) ▲정인영(한라) ▲유찬우(풍산) ▲현재현(동양) ▲장치혁(고려합섬) ▲김상홍(삼양사) ▲김중원(한일) ▲백욱기(동국무역) ▲최주호(우성건설) ▲서성환(태평양) ▲김인득(벽산)
  • 대북 쌀수송 콘돌호/어제 인천항에 도착

    【인천=이영희기자】 남북한 직교역의 전령사 콘돌호(3천9백77t·선장 고영용·37)가 임무를 끝내고 14일 하오11시 인천외항인 안도묘박지에 무사히 귀항했다. 지난달27일 우리나라의 통일쌀 5천t을 싣고 목포항을 출항한 세인트 빈센트선적의 벌크선 콘돌호는 지난달29일 북한 원산·흥남·신포·성진 앞바다를 통과해 함경북도 나진항에 안착,5일동안 순조롭게 쌀하역을 끝내고 지난 2일하오 나진항을 출항했었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3

    ◎해저 케이블 극비 절단… 중공군 큰 타격/“중국본토 공격” 맥아더의 도전 실패로/중공군까지 밀리자 소,돌연 휴전제의 내가 도쿄의 극동사령부를 경유,함흥에 도착한 것은 50년 11월30일이었다.각부대에 특공중대의 배치및 활용등에 대해 협의하기 위해서였다.그러나 그 무렵에는 이미 중공군의 대공세가 여기저기서 확인되고 있었다. 서부전선에서는 8군단 소속 2사단과 1기갑사단의 한 연대가 청천강을 따라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세를 받고 있었다.이른바 군우리(편집자주:평안남도 개천)전투로 알려진 청천강변의 전투에서 2사단은 엄청나게 우세한 중공군의 공세에 의해 참패했으며 뿔뿔이 흩어진 병력들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얼어죽거나 포로로 잡혔다.이 때문에 다른 8군병력에게도 중공군 조우와 관계없이 후퇴명령이 내려졌다. ○산동∼대련 통신끊겨 동부전선의 중공군 공세 역시 야만적인 것이었지만 10군단의 대응은 다소 달랐다.압록강을 향해 전진배치돼있던 7사단은 지형관계로 소규모부대 단위로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었다. 10군단사령부는 함흥 교외의 옛 일본비행장 부근 눈덮인 벌판에 여러개의 텐트촌으로 형성돼 있었으며 포위공격을 받을 경우에는 인근의 어항인 흥남에서 철수토록 돼있었다.나는 한국에 있는 미군중에 중국의 전술에 대하여 잘아는 몇안되는 장교중의 하나였다.중공군은 미군이 보다 효율적으로 싸운다면 물리칠수 있을것 같았다.중공군은 한밤중에 소규모 단위로 이동하는데 이는 매복에 약하고 인해전술 공격은 위치선정이 잘된 포병의 공격에 취약했다. 나는 얼마후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함흥을 떠나 몇시간 후에 서울에 도착해보니 서울은 어지러운 상황이었고 남쪽으로 향하는 길은 피란민들로 뒤덮여 있었다.서울은 불과 6개월만에 공산군에 의해 두번째 점령당하게 됐으며 유엔군사령부는 반공시민들에게 남쪽으로 피란할 것을 권장하고 있었다. 나는 그후 6개월동안 노스캐롤라이나의 베닝기지에서 특공중대 훈련에 또다시 열중하고 있었다.한국전쟁은 상호 처절한 시소게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워커 8군사령관은 서울북부에서 교통사고로 죽고 서울은 51년1월4일 공산군에 의해 다시 점령된채 매슈 리지웨이장군이 후임 8군사령관을 맡고 있었다.유엔군의 전선은 서울남쪽에서 불과 60마일 떨어져 형성돼 있었다.유엔군은 1월말부터 다시 공세를 강화,3월달에 서울은 재탈환되었다. 그러나 이해 봄 더 큰 사태진전은 군사적인 것이 아니고 정치적인 것에서 발생했다.4월11일 트루먼대통령이 맥아더원수를 극동군사령관직에서 갑작스레 해임한 것이다.그 후임에는 리지웨이장군이 임명되었으며 8군사령관으로는 제임스 밴 플리트장군이 맡게 됐다.맥아더장군의 해임은 불행하게도 필연적인 것이었다.사실 그의 임무는 중공군의 한국전 개입이 시작됐을때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당시 한국에서의 미국정책의 목표는 군사적 대립상태를 안정시키고 남한을 재건하는데 있었다.군인의 임무는 그가 신병이건 맥아더와 같은 노련한 5성장군이건 본국정부의 명령은 어리석다 생각되더라도 합법적인 것은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맥아더장군은 그같은 명령을 묵살하고 의회와의 연계를 통해 지휘계통도 무시했던 것이다.그의 목표는 중공을 무찌르는 것이었고 그같은 목적 수행을 위해 그는 중국본토에의 공습과 지상공격을 요청했다.그는 또 압록강을 잇는 다리들과 남만주의 중국 비행장들을 모두 폭파할 것을 주장했다.그러나 맥아더장군의 이같은 변칙적 작전주장은 그가 이 전쟁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입지를 높이는데 더 목적이 있는듯이 보였다.그는 결국 도박을 했고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그해 여름부터 리지웨이와 밴 플리트의 지휘를 받는 연합군은 중공군에 대대적인 반격을 가해 그들을 38선 이북으로 다시 몰아내고 있었으며 그렇게 되자 소련은 마침내 유엔에 휴전을 제의하게 됐다.이에따라 38선 근처의 도시인 개성에서 종전을 위한 예비회담이 개최되게 됐다. 워싱턴에 있는 CIA본부로 불려간 것은 51년 12월이었다. ○북 청년 게릴라 자원 나를 만난 빌 디퓨이대령과 리처드 스틸웰대령은 미국정부는 특히 한국전에 참전하고 있는 중공군의 통신망을 교란시키는등 중국본토에서의 게릴라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중국 공산당정권에 압력을 넣기로 결정했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그들은 이 작전은 일본에 신설된 지역본부에서 맡게되며 수송기편대와 연안상륙정부대의 지원을 받게된다고 설명하면서 육군에서는 그같은 임무를 맡아줄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내가 한국에 다시 돌아간 것은 52년 새해였다.한국전은 휴전회담이 진행되는 가운데 교착상태에 빠져있었다.중공군 교란작전의 이름은 JACK(Joint Advisory Commission Korea)이라고 명명됐고 서울에 새본부를 만들었으며 동래에 있는 벤 반더부르트대령의 지휘를 받았다. 우리는 우선 북한 서부해안의 여러개 섬에 비밀 정보망을 구축했으며 원산 앞바다의 여도를 장악,전초기지로 삼았다.이같은 작전에는 중무장된 쾌속함이 동원됐다.우리의 주된 임무는 한국인 정보원들을 공중 또는 해안으로 침투시켜 군사정보를 빼내오는 일이었다.이 일에는 북한으로부터 피란온 많은 젊은이들이 용감하게 자원하고 나서 사람을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미 목표는 남한 재건 우리가 해낸 한국에서의 가장 큰 작전은 황해바다 한가운데를 지나 중국본토산동반도와 만주 대연을 잇는 해군 케이블선을 절단한 것이었다.그 케이블선은 한국에 침공중인 중공군사령부와 북경을 연결하는 라인으로 중공군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되었다.그후 중공군사령부의 북경과의 연락은 무선전화를 이용하게 됐는데 대부분이 우리 측에 도청됨으로써 휴전협상과정에서 우리측은 중공군의 정보에 대해서는 항상 앞설 수 있었다. 우리의 주된 해상공격은 주로 동해의 여도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그곳에서는 육상이나 해상침투는 물론 원산항에 입항하는 모든 선박까지 체크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적의 후방교란과 함께 유엔군측의 전투수행에 큰 도움을 주었다.
  • 외국농산물 국산으로 둔갑… 폭리

    ◎원산지 표시 떼내고 10배까지 더 받아/중간상 농간에 소비자·농민 골탕/폭리사례/중국산 홍삼 1㎏에 웃돈 10여만원/참깨 6배,고사리·땅콩은 2배 받아/미·호산 쇠고기는 36% 비싼 한우로 외국산 농축수산물이 시중에서 국산으로 둔갑,판매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미국·호주산 쇠고기가 일부 정육점에서 한우고기로 버젓이 팔리더니 이제는 중국산과 대만산 인삼·참깨·마늘·고추·더덕·고사리까지 국내산으로 둔갑,비싼값에 판매되고 있다. 땅콩을 비롯,꽃 고추등 일부 품목은 국내산 농산물과 섞어팔기도 한다. 이는 외국농축수산물의 수입개방이 이뤄지면서 상인들이 가격이 국내산보다 보통 10배정도 싼 외국산을 마구 들여오고 있는데다 국내 유통구조마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간상인들만 배를 불리고 농축수산물을 값싸게 먹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소비자들은 물론 국내 생산농가에게는 오히려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다. 8일 농림수산부에 따르면 현재 농축수산물 수입은 참깨·고추·마늘·양곡류등 11개 주요품목이 농수산물유통공사를 통해서 이뤄지고 나머지 품목은 축산물유통사업단등 민간수입업자들에 의해 들어오고 있다. 공매되기까지는 대부분 마대포장으로 겉에 수입원산지표시가 붙어있으나 도·소매상인에게 낙찰된 수입농산물은 여러단계의 유통경로를 거치는 동안 원산지 표시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무포장상태로 거래되는 것이 보통이다. 최근 여행객등을 통해 대량으로 들어오는 인삼은 백삼의 경우 ㎏당 상품이 5만3천3백원이지만 국내산(7만6천원)으로 둔갑돼 2만원이상 웃돈이 붙어 거래되고 있다. 홍삼은 7만원선인 수입중국산이 국산으로 둔갑되면 10만원이상의 차익을 볼수 있기 때문에 백삼보다 둔갑사례가 더 많다. 백두산에서 캐냈다고 선전하는 중국산 더덕은 시중에서 4백g에 4천원정도로 국산더덕(6천원)보다 2천원정도 싼데 이 차익을 노려 일부 상인들이 국산으로 속여 팔고 있는 것이다. 고사리는 중국산이 올들어 지난 5월까지 1천1백37t(3백48만달러)이 수입됐는데 한묶음에 1천원정도로 국산의 절반값이다. 땅콩도 올들어 지난 5월말 현재 중국으로부터 1천2백만달러어치가 들어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배가 늘어났으며 수입가격은 ㎏당 8백73원인데 비해 국산땅콩의 도매가격이 2천2백45원으로 2배이상의 값차이가 나자 상인들은 국산땅콩과 섞어 팔고 있다. 참깨도 5월말 현재 중국으로부터 7백58만달러어치가 수입됐는데 국산참깨와 모양이 거의 비슷해 소비자는 물론 상인들도 구별하기가 어려우며 더구나 참기름·깨소금 등으로 가공됐을 때는 선별이 거의 불가능하다. 외국산수입쇠고기 소비량은 올들어 지난 6월말 현재 6만4천7백98t으로 우리나라 전체 소비량(11만8천21t)의 54%를 차지하는데다 판매가격(소비자가격)도 1㎏에 수입쇠고기가 평균 8천6백원으로 한우·젓소등 국내산 쇠고기의 1만3천5백원에 비해 36%나 싸기때문에 한우고기로 속여파는 예가 많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2

    ◎미군의 원산상륙 소 잠함 방해로 지연/중공군 압록강집결 「단순한 위협」 오판/애치슨,6·25발발 책임 CIA에 전가 1950년 6월26일 월요일,때마침 개회중이던 상원 예산지출승인위원회는 공화당 출신 스타일스 브리지의원의 제의로 중요한 국가외교정책에 관한 비공개청문회를 열어 미국이 왜 북한의 갑작스런 공격에 무방비상태로 당하게 됐는지를 정부책임자들을 불러 따졌다. 이날 아침 일찍부터 열린 회의에서 애치슨국무장관과 존슨국방장관은 야당인 공화당뿐만 아니라 여당인 민주당 의원들로부터도 호되게 질책을 당했다. 이들의 증언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 CIA본부에서는 힐렌쾨터국장과 월터 포르자이머법률고문이 의회에서의 증언을 협의하고 있었다.얼마후 증언을 마친 애치슨국무장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자신이 성난 상원의원들의 원색적인 공격앞에서 정보담당자들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며 또 그날 하오3시 트루먼대통령에게 브리핑하도록 주선을 해놓았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이 브리핑 계획은 오후의 청문회 출석과 시간이 겹치기 때문에 힐렌쾨터는 청문회에 제출키로 했던 모든 자료를 싸갖고 포르자이머와 함께 백악관으로 갔다.만일 대통령에게의 보고가 길어질 경우 국회에는 그를 보낼 생각이었다. 대통령에게의 보고는 매우 진지하고 솔직한 가운데 간략하게 이루어졌으며 의회에 제출하려던 모든 자료들이 제시됐다.대통령은 정보수집에는 잘못이 없었음을 수긍하는 듯했다. 힐렌쾨터와 포르자이머는 백악관을 나와 급히 의회로 가 청문회가 열리고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그곳에 도착했을때 그들은 왜 애치슨장관이 자신들을 백악관에 묶어두려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오전에 있었던 증언에서 애치슨장관은 국무부로 쏟아지는 전쟁발발의 비난을 CIA로 돌리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으며 그것이 바로 언론에 새나가 대서특필된 「정보수집실패」보도들의 주요한 소스가 되었던 것이다. 힐렌쾨터는 화가 치밀었지만 침착을 유지하며 정보평가서와 북한의 침략의도가 명백히 언급된 정보원들의 보고를 읽어내려갔다.잠시후 민주당출신의 매켈러 위원장이 왜그같은 보고들을 국무부와 국방부 책임자들에게 배포하지 않았는가고 물어왔으며 그에 대해 힐렌쾨터는 모든 정보평가가 정부의 핵심부서에 전달되도록 돼있다고 답했다. 이날 청문회가 끝날무렵 여야 대부분의 의원들은 CIA가 임무를 다하고 있었다고 이해하게 됐지만 매켈러위원장만은 생각을 바꾸지 않고 다음날까지 그들 증거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다음날 애치슨장관의 것을 포함,장관들로부터 받은 정보문서 수령증들이 제시됐을때 그는 그것들을 자세히 보지도 않고 『이것들은 전부 위조된 것이야.모두 가지고 나가!』라며 전부 바닥에 팽개쳐버렸다. 포르자이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정중하게 그들 사인이 모두 믿을만한 것임을 설명했으며 매켈러의원은 그들이 다른 서류에 사인한 것과 하나하나 자세히 비교한뒤 점차 이들 수령증이 진실된것임을 깨닫게 되었다.그러나 그는 결코 언론에 그같은 사실을 다시 알리지는 않았다. 나는 그해 7월초 82공수사단 505공정연대 3대대의 행정관(소령)으로 노스 캐롤라이나의 브래그기지에 배속됐다.당시 82공수사단에는 미국내에서 전투경험이 있는 전문 공수요원들이 총집결해 있었다. 개전초기 10일간 어이없는 공격을 당하는 동안 트루먼대통령은 미군이 북한군의 침공을 격퇴할것을 천명했고 유엔은 남한에 파병을 결정했다.그러나 한국으로부터의 전황은 불과 사흘만에 서울이 함락됐다는등 우울한 것이었다. 초기에 미군의 개입은 일본점령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24보병사단의 부분적 투입으로 이루어졌으며 경무장 돼 있었기 때문에 탱크로 무장된 북한군을 당할수 없었다.7월 중순이 되자 24사단은 절반의 병력도 남지 않을 정도로 패퇴했으며 한·미연합군은 한반도의 남쪽끝에서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었다.그러나 점차적으로 미 제1기갑사단의 경장갑차들이 남해안에 당도했고 하와이로부터 25보병사단이 투입됐다. 1950년 8월,8군은 한국전에 참전중인 전투부대내에 장거리정찰능력을 필요로 하게 되어 각사단에 소규모의 특수정찰중대를 편성케 했다.그들은 적진 후방에 투입돼 정찰업무를 수행하고 적의 통신교란을 목적으로 했으며 나는 그 요원들의 교육을맡게 됐다. 특수정찰요원들의 교육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한국전의 상황은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9월 중순 맥아더장군은 육군제7보병사단과 해병제1사단으로 편성된 제10군단을 지휘,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공산군의 저항을 일거에 뚫고 서울을 재탈환했으며 부산에 주둔하고 있던 워커장군 휘하의 8군은 북으로 공격을 개시, 파죽지세로 몰고 올라가 10월 들어서는 연합군이 38선까지 쳐올라갈 정도로 전세는 역전됐다. 워싱턴의 브래들리 합참의장은 맥아더장군에게 소련군이나 중국공산군의 개입을 부를수도 있는 38선 이북으로의 진격을 경고했고 맥아더도 그점에서는 신중했다. 맥아더는 대담한 전략가였다.그는 한반도의 지형을 고려,평이한 산악공격을 피하고 10군단 병력으로 원산에서 다시 상륙작전을 시도하려했다.그러나 이 작전은 소련잠수함들의 기뢰부설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으며 기뢰를 제거하는데만 2주일이 걸려,미제1해병사단이 상륙을 감행했을때는 한국군 제3사단과 수도사단이 이미 수십㎞ 북쪽으로 진격해 있었다. 이 작전에서 유엔사령부는 언밸런스한 두개의 지휘부로 나눠지는 양상이 나타났다.맥아더원수의 참모장인 에드워드 알몬드소장이 지휘하는 10군단이 주력이된 반면에 워커중장이 이끄는 8군은 보조적 역할을 맡게 됐다. 더욱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워커장군이 몇몇 부대들을 압록강을 향해 북으로 진군하도록 한 것이었다.북한인민군으로부터 저항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와 그의 참모들은 전쟁이 거의 끝났다고 판단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된것이다.결국 그의 지상 주력부대인 제2·제25보병사단과 제1기갑사단의 북한 북서해안지방에 대한 공격은 무모한 것이었다. 한편 극동사령부 정보참모 윌로그비소장이 소련과 중공의 개입가능성에 대한 자세한 정보보고를 올린것은 10월14일이었다.그는 소련은 개입의사가 없다고 결론내리고 중공군에 대해서는 만주 주둔 9개 야전군의 38개사단 가운데 24개사단이 압록강을 따라 배치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단순한 「외교적 위협」으로 간과해 버렸다.그러나 그로부터 6주가 채못돼 미군은 중공군의 예기치 못한공세에 허를 찔리게 됐다.
  • “우루과이라운드 협상/내년 2∼3월까진 타결”/이 상공장관 밝혀

    이봉서상공부장관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UR협상이 내년 하반기까지 타결되지 못할 경우 EC(유럽공동체)시장통합과 미국 대통령선거 등의 영향을 받아 UR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마저 있기 때문에 늦어도 내년2∼3월까지는 타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장관은 27일 한국공업표준협회가 제주도 서귀포 프린스호텔에서 개최한 최고경영자 하계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히고 특히 최대쟁점사항인 농산물협상에 대해서는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거부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얼마남지 않은 협상기간동안 농산물·서비스 등의 급격한 개방으로 국내 산업에 큰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에 대해서는 『적정한 원산지규정 마련과 반덤핑협정 등을 통해 국내 상품의 수출여건을 개선하는데 협상력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내적으로는 농업발전종합대책과 섬유산업발전대책 등 산업별로 경쟁력제고대책을 추진하고 대외무역법·특허법 등 관련법령의 개정작업을 펴나가는 한편 농업개방·작물전환에 따른 보상및 융자지원과 함께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 및직업훈련대책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 “시작이 반”…남북 경제교류 물꼬 트다/쌀­시멘트 직교역의 의미

    ◎제3국 안거쳐 중개료 부담 덜어/교역 늘면 합작사업도 전망 밝아 남북한의 직교역이 시작됐다. 남한의 쌀 5천t이 27일 목포항에서 북한의 나진항을 향해 떠남으로써 분단이후 첫 남북 직교역이 이루어진 것이다. 남한산 쌀의 북한행에 이어 이의 대가로 북한의 무연탄과 시멘트 4만여t이 곧 우리측에 들어올 예정이어서 남북한간 직교역은 앞으로도 계속돼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남북한간 물자교역은 지난 88년 10월 정부가 북한을 동반자 관계로 규정한 7·7선언의 후속조치로 「남북물자교역 문호개방조치」를 발표,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에따라 88년 분단이후 처음으로 제3국을 통한 간접교역이 이루어졌다. 이어 89년 6월 남북교류협정에 관한 지침제정과 90년 8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시행 등으로 남북물자교역은 꾸준히 늘어났다. 우리측에 반입된 북한산 물자는 88년의 1백3만7천달러에서 89년 57건에 2천2백23만5천달러,90년 75건에 2천35만4천달러,그리고 올들어 6개월동안 1백31건에 7천3백61만6천달러 등 모두 2백67건에 1억1천7백24만2천달러로 해마다 늘어났다. 이에반해 북한으로 반출된 우리측 물자는 89년 1건에 6만9천달러,90년 4건에 4백73만1천달러,올들어 5건에 1천2백57만달러 등 모두 10건에 1천7백37만달러에 이르렀다. 남북한교역비율은 13대88로 북한산 물자의 반입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품목별로는 남한으로부터의 반입품목이 열연코일·아연괴·무연탄·철강재·시멘트·전기동·감자·냉동명태·마른오징어·생사 등이며 북한으로 반출된 품목은 직물·양말직조기·가전제품 등이다. 우리측이 들여온 품목이 철강류와 시멘트 및 농수산물이 대부분인 반면 북한측에 들어간 품목은 주로 공산품과 시설재였다. 이번 직교역을 계기로 앞으로 물물교환방식의 남북한간 직교역이 이루어지면 남북한의 거래상사들은 종전보다 많은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지난 2년9개월동안 남북한교역은 1백%가 홍콩 등 제3국의 중개상사를 통한 간접교역형태로 이루어져 왔다.홍콩에서 남북양측이 제3국의 중개상사를 통해 계약을 한 다음 물품은 외국선박을 이용,공해를 거쳐 수송하는 조건이었다. 대금결제는 북한이 남한을 무역거래상대로 인정치 않았기 때문에 신용장을 개설하지 못하고 반입의 경우 남한수입상들이 홍콩등지에서 선하증권을 받고 현금을 즉석에서 지불하는 방법등의 편법을 써왔다. 홍콩등지의 중개상사들은 일반 무역거래에서 커미션이 통상 3∼5% 수준인 관례보다 2∼3배나 많은 10% 안팎의 높은 커미션을 받았고 결국 남북한물자교역에서 생긴 이익은 거의 이들 중개상사들이 챙겼다는게 무역업계의 얘기다.따라서 앞으로 상당한 이익을 보장받게 된 남북한 무역업체들이 직교역에 보다 적극성을 띨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남북직교역이 활성화될 소지는 이밖에도 많다.북한은 현재 식량난과 각종 생필품난을 겪고 있는 반면 남한은 쌀을 비롯,직물·의류 등 섬유제품과 일부 가전제품은 과잉생산되고 있다. 또 남한에서 당분간 수요부족현상이 예상되는 아연괴,시멘트,철근,무연탄,한약재 등은 북한에서 그런대로 생산량이 많은 편이다.따라서 이들 품목들을 서로 직교역할 경우 남북한의 교역량은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이밖에현재 고위급회담 등을 통해 추진되고 있는 물자수송을 위한 경의선연결,인천·포항과 남포·원산항의 개방 등이 합의되고 지난 89년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이 방북을 통해 합의한 금강산개발 등이 실현되면 가까운 시일안에 예상밖의 교역증대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남북한의 경제협력은 일단 물자교류를 바탕으로 합작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그러나 현재 공식적인 남북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남북경협에 너무 핑크색 환상을 갖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북한 김일성주석이 방북 일본의원단에게 행한 유연성표방발언도 어디까지나 원칙론을 얘기한 것이며 청진에 건설하는 특구에 북한이 한국의 투자를 요청했다는 일부 보도도 정부차원에서는 사실확인이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남북한이 모처럼 쌀 직교역을 통해 본격적인 경제교류의 물꼬를 트긴 했으나 이를 전반적인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한 디딤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않고 착실하게 경협관계를 쌓아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 남북한 직교역 “출범”/북송쌀 첫 수송선 목포 출항/어제

    ◎“교류확대·통일의 징검다리 기대” 【목포=최치봉기자】 분단 42년만에 처음으로 남한의 통일쌀 5천t이 27일 선박편으로 목포항을 출항,북한의 나진항으로 향함으로써 역사적인 남북한 직교역시대를 열었다. 통일쌀 5천t은 이날 그레나다선적의 벌크선 콘돌호(6천3백t급 선장 고영용·37)에 실려 낮12시 목포항을 떠났다. 콘돌호는 원산 앞바다 공해상을 거쳐 29일쯤 북한의 나진항에 입항할 예정이다. 서울의 천지무역상사와 북한의 금강산무역간에 물물교환 방식으로 이뤄진 이번 통일쌀 북송은 분단 42년만에 처음 남북직교역의 물꼬를 튼 쾌거이다. 이날 출항에 앞서 상오11시 목포 삼학도외항부두에서 천지무역상사 유상렬회장,김흥래 목포시장,통일원관계자등 각급 기관장과 종교계인사 시민등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여동안 출항식이 열렸다. 유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오늘은 분단이후 42년만에 이뤄진 남북직교역의 물꼬를 트는 뜻깊은 날』이라며 『이를 계기로 남북한 물자교류와 관계개선에 기폭제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흥래시장은 축사를 통해 『호남산 통일쌀의 직수출은 단순히 남한의 쌀이 북한으로 반출된다는 의미를 뛰어넘어 남과북이 개방의 물꼬를 트는 상징성이 있는 만큼 앞으로 이를 계기로 남과북이 하나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환송식에 참석한 목포시민들은 콘돌호 선장 고씨를 비롯한 19명의 선원들의 목에 꽃다발을 걸어주며 직교역을 축하했다.고선장은 『본격적인 남북한 직교역시대의 개막에 참여한데 대해 가슴뿌듯하게 생각한다』면서 『목포를 출발한 통일쌀이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기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출항식은 목포시립합창단의 「목포의 눈물」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출항을 알리는 기적소리를 길게 낸 콘돌호가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서서히 선수를 북으로 향하면서 끝났다. 천지무역과 금강산무역은 지난 3월 남한쌀 10만t과 이에 해당하는 무연탄등 북한의 물자를 물물교환하기로 합의하고 1차분으로 남한의 통일쌀 5천t,북한의 무연탄등 물자 4만여t을 교환하기로 했었다. 이번에 북한으로 반출된 통일쌀은모두 호남지역산으로 북한측의 요청으로 포장지에는 산지와 회사명이 전혀 기재되지 않았다. 그동안 제3국을 통해 이루어진 남북한사이의 교역은 지난 88년10월 정부의 대북교역문호개방조치이후 올 상반기까지 2년10개월동안 정부승인 기준으로 2백77건에 1억3천4백61만2천달러로 집계됐다.
  • 일본 혼다사/시빅승용차/부품원산지 허위표시 미서 말썽(해외경제)

    ◎양국 통상마찰 격화 “불씨”/“2천만불 추징·조사 확대해야” 미 주장/일선 GM차 수입확대·「기술」이전 약속 미일간의 「경제전쟁」이라고 불리는 통상마찰이 다시금 뜨거워지고 있다. 부시미국대통령과 가이후 일본총리가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런던 서방선진7개국(G­7)정상회담에서 다정히 악수를 나누었지만 쌀시장개방등 통상문제를 둘러싼 마찰은 과거 어느때보다 심해지고 있다. 미일간에는 최근 자동차와 그 부품문제가 뜨거운 통상쟁점으로 부상했다. 일본혼다자동차가 부품의 원산지를 속여 미국에서 부당하게 자동차판매를 늘려왔다는 미관세청의 보고서가 공개돼 지난달 시작된 북미자유무역협정(FTA)추진과 관련,큰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혼다사는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생산된 시빅승용차를 미국에 수출하면서 부품의 50%이상을 미국과 캐나다산으로 쓰도록 한 「원산지규정」을 어기고 20∼25%밖에 쓰지 않고 대부분 일제를 썼다는 것이다. 미관세청은 혼다외에도 캐나다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 일본도요다 및 스즈키와 GM이 합작생산하는 카미승용차에 대해서도 원산지조사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지난해 대일무역적자 4백10억달러 가운데 자동차분야의 적자는 전체의 4분의3인 3백10억달러에 이른다.이가운데 자동차부품은 1백5억달러로 전체의 4분의1에 해당한다. 완성차에 대한 대일적자는 86년의 2백59억달러에서 지난해 2백6억달러로 감소했으나 자동차부품의 적자는 급증,94년에는 2백20억달러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자동차의 원산지허위표시 발표가 미국인들을 격분케 한 것이다.미관세청의 추산으로는 혼다사가 이런 방법으로 89,90년 2년동안 ,2천만달러의 관세를 포탈한 것으로 돼있다. 따라서 미관세청은 혼다사가 미·캐나다간 자유무역협정을 악용,일본자동차를 싼값으로 미국에 수출해 미국의 완성차메이커를 곤경에 빠뜨린 것으로 보고 포탈한 관세를 추징하는 한편 조사를 확대하겠다고 엄포를 놓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일본측은 통산상이 미국을 방문,도요타의 계열사를 통해 GM승용차의 수입판매를 약속하는등 미국차의 일본내 판매확대에협력의사를 밝힌데 이어 미일자동차부품업계회의를 통해 일본차메이커의 신차개발 초기단계부터 미부품메이커들의 참여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확약했다. 그러나 일본측이 이처럼 양보의 기세를 보이고 있는데도 미국측은 태도를 믿게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일본업체들이 미국차를 수입한다고 해도 많이 팔릴 가능성은 거의 없는 반면 미국내에서 일본차의 성가는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 부산∼원산·흥남/인천∼해주·남포/남북 정기항로 개설 추진

    ◎해운협정 체결도 함께 모색/유엔동시가입뒤 교역량 급증 전망 정부는 남북한간의 경제협력이 빠른 시일안에 활성화 될 것으로 보고 물자수송을 지원하기 위한 남북한 정기항로개설 등 장단기계획을 추진중이다. 16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올 가을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이후 남북한관계개선이 추진돼 남북한의 물자교역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제7차 경제사회발전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남북교류협력지원을 위한 항로개설계획」을 수립,남북 직항로 개설과 해운협정체결 등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특히 남북한 물자교류가 확대될 경우 해상수송이 효과적일 것으로 보고 부산·동해와 원산·흥남,그리고 인천·해주·남포 등을 잇는 남북한 정기항로 개설을 추진할 방침이다. 정기항로 개설에는 해운협정체결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북한이 직항로개설을 꺼릴 경우 일본과 중국 등을 거쳐 양측을 연결하는 우회수송로를 개설하는 방법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남북한 교역은 올들어 6월말까지 7천8백만달러로 지난해 같은기간에 비해 무려 19배나 늘어나는 등 최근 들어 급증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이 이루어지면 물자교류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 해외증권 10억불선/1∼7월 4억8천만불 발행/증감원

    올들어 해외증권을 발행,자금을 조달하는 기업들이 크게 늘어나 해외증권의 누적 발행규모가 1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15일 증권감독원에 따르면 금년들어 현재까지 삼성전자의 주식예탁증서(DR) 1억달러를 비롯,새로 발행된 해외증권이 8개사 3억7천8백50만달러에 달하고 있다.여기에 유공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동양나이론의 전환사채(CB) 1억5백만달러가 이달중으로 납입절차를 끝낼 예정이다. 이에따라 이달 납입예정분을 포함하면 7월까지의 해외증권 발행규모는 4억8천3백50만달러를 기록,85년말부터 지난해까지의 발행총액(4억8천만달러)을 웃돌게 된다. 85년이후 이달말까지 발행되는 해외증권은 23개사 9억6천3백50만달러로 1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는데 8월 이후 연말에 걸쳐 7∼8개 상장기업이 3억달러 정도의 신규 해외증권 발행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해외증권 발행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은 자본시장 국제화 방침에 따라 증권당국이 발행요건을 대폭 완화하면서 이를 유도하고 있는데다 국내증시를 통한 직접금융조달이 어려워져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이를 추진하고 있는 탓이다. 현재 해외증권발행을 계획하고 있는 기업은 동양시멘트·쌍용양회·건영·한양화학·강원산업·삼미특수강·동아제약·진로 등이다.
  • 중소유통업체 지원 강화/당정,개방 대응

    정부와 민자당은 12일 상오 상공분과 당정협의를 갖고 유통산업의 개방확대에 따른 대책을 논의,앞으로 수입선다변화제도의 실효성제고와 원산지표시제의 철저한 시행 등으로 수입증가에 의한 산업피해방지대책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당정은 또 ▲중소유통업체에 대한 지원강화 ▲국내유통산업의 정보화수준제고 ▲물류설비의 확충 ▲중소상업의 조직화등 구조조정대책도 지속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 이봉서상공부장관은 91년도보다 1백71.9%가 증가한 1조2천7백76억원의 92년도 상공부소관 예산요구내용을 보고한 뒤 예산확보를 위한 당측의 협조를 요청했다.
  • 철근·위생도기류도 파동 우려/시멘트 이어

    ◎「과열건설」로 공급량 태부족 시멘트구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가운데 철근과 콘크리트파일,위생도기류 등 건축기자재의 연쇄파동이 우려되고 있다. 11일 상공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신도시건설을 일부 연기했음에도 각종 건설경기의 과열로 말미암아 철근의 실제 국내수요는 당초 정부가 예측한 5백77만t을 넘어 6백만t에 이르는 반면 국내생산량은 4백97만t에 불과,1백만t이상이 모자라는 실정이다. 특히 국내 철근생산의 17%에 해당하는 연간 82만t규모의 철강을 생산하는 강원산업 포항공장이 10일 전면파업에 돌입함으로써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정상적인 철근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콘크리트파일의 경우 정부는 올해 수요를 지난해보다 15% 늘어난 2백5만t으로 잡고 있으나 실제로는 공단조성과 도로·항만 등 각종 사회간접시설 공사가 활발히 진행됨에 따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반면 생산은 설비과잉에도 불구하고 시멘트구득난과 기능인력부족으로 차질을 빚어 수요를 충족치 못하고 있다. 양변기·세면대 등 위생도기류는 수요 1백8만조에 공급은 올해 증설분을 포함,92만조에 그치고 있어 적어도 16만조 이상을 수입해야 하는 형편이다. 레미콘의 경우에는 당초 정부가 올해 수요를 지난해보다 16% 증가한 6천9백4만㎥로 잡았으나 원자재인 시멘트와 골재의 품귀로 태부족인 상태이다. 올 2·4분기중 수요는 2천41만㎥인 반면 공급은 1천5백만㎥에 불과,부족률이 27%에 이른다. 반면 유리·거울·타일·PVC배관자재·가구 등은 업계의 대대적인 신·증설에 힘입어 오히려 공급이 넘치고 있다.
  • 멕시코/대미·가 수출 전진기지로 각광/북미 자유무역협정 체결 대비

    ◎내년 한국전용공단 조성… 낮은 관세등 활용/장기적으론 “중남미 진출 교두보”로도 유용 미국과 캐나다,멕시코간의 북미자유무역협정(FTA)의 추진이 본격화됨에 따라 우리 경제에서 멕시코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될 경우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들 3개국 가운데 조업여건이 가장 유리한 멕시코진출을 통해 미국과 캐나다에 대한 우회수출을 추진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멕시코진출은 장기적으로 중남미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기업들의 새로운 투자대상국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3개국이 EC(유럽공동체)통합 등 지역별 경제블록화와 일본경제로부터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 2월부터 공식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목표대로 내년말까지 체결될 경우 EC시장을 능가하는 세계최대의 경제블록이 탄생한다. 미국과 캐나다는 이미 2년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앞으로 멕시코의 가입만 결정되면 인구 3억6천만명,국민총생산(GNP) 6조2천억달러의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블록이 등장하는 것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은 당사국간의 관세와 비관세장벽의 축소 및 철폐,투자·지적 재산권·서비스교역 자유화등을 협상대상범위로 한다.따라서 협정이 체결될 경우 북미주이외의 국가들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또한 미국과 캐나다는 이 협정을 통해 원산지규정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돼 우리업체의 대미수출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철강,섬유,의류,전자기기등 우리의 대미주종수출상품에 대한 원산지규정이 강화될 경우 캐나다와 멕시코의 현지투자업체를 통한 대미우회수출이 규제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국내업계는 그러나 멕시코가 북미자유무역협정체결을 계기로 신흥공업국으로 떠오를 경우 석유화학·전자·광업·석유·건자재 등에서 수산업에 이르기까지 산업 및 무역에서 광범위한 협력이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이 협정이 멕시코측에 초래할 관세인하효과,외국인투자 자유화조치,서비스시장 개방 등과 멕시코경제발전에 따른 구매력 증가를 한국기업이 잘 활용하면 북미수출시장을 확대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멕시코간 교역은 지난해 한햇동안 대멕시코수출 5억6천만달러,수입 2억6천만달러로 총 8억2천만달러를 기록,아직까지 우리나라 총교역 규모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국내기업중 풍국산업(여행용 가방)·킴스토이(봉제완구)·(주)대우(컬러TV)등 다양한 업종이 진출해 있으며 이밖에 기아자동차·국제모터스·부산파이프·금성전선 등 상당수 기업들이 멕시코시장 개척을 위해 현지진출을 꾀하고 있다. 이와 관련,유득환상공부제1차관보는 『내년 상반기중 멕시코에 한국전용공단을 조성,북미자유무역지대 창설에 대비하고 북미시장확대의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 “수입품 원산지·가격표시제 확대를/소보원「개방과 소비자보호」세미나

    ◎농수산물엔 사용농약·첨가제명 명기/집단소송제 도입등 법령정비도 긴요 우루과이라운드협상 결과의 여파로 종래의 공산품위주의 수입자유화가 농축산물 및 유통서비스산업의 개방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이에 따른 국내 소비자보호대책방안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밀려들어오고 있는 이들 수입상품들은 가격,소비자안전,정보제공,피해구제측면에서 국내소비자들에게 여러가지 폐해 및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한국소비자보호원은 3일 하오 보호원 대강당에서 「개방화와 소비자보호」라는 주제로 개원4주년기념세미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했다. 주제발표를 맡은 김석철박사(소보원정책개발연구실장)는 개방화에 따른 소비자보호는 긍정적 효과를 최대화하고 부정적 효과는 최소화하는데 목표가 있다는 점을 우선 강조했다.부정적 효과로 비교열위산업의 기반약화,부당가격에 의한 경제적 손실,각종 위해의 발생,소비자피해의 증대,비합리적 소비조장 및 국민계층간 위화감조성 등을 들었다. 김박사는 이같은 피해를 극소화하기 위해 ▲수입가격표시제 확대실시 및 수입농산물 공매제도개선▲소비자제품안전법 제정▲제조일자 지정표시 및 유통기한 표시의 2원화▲원산지표시확대▲음식점의 수입육표시 의무화▲수입품피해구제기금제도실시 등이 조속히 실시되어야 한다는 대책 방안을 제시했다. 이와함께 수입농산물의 90%이상이 가락동농수산물시장의 5개 지정공매법인에 의해 국내유통이 독점되고 있는 현 실정을 비판했다.수입상과 지정공매인간의 각종 부당행위로 인해 소비자들이 가격상의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 김박사는 공매제도를 폐지하거나 법정도매시장의 전국적 확대방안 등을 개선책으로 제시했다. 또한 소비자들에게 충분한 정보제공을 통한 선택권신장을 위해 현행 유통일자표시제도를 중심으로 6개월이내에 부패·변질되는 제품을 지정,유통일자와 제조일자를 병행표시토록하고 유통일자의 운영도 2원화,소비자보호와 자원낭비방지를 함께 도모할 것들을 주장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천주 대한주부클럽명예회장은 김박사의 제안내용에 동의하면서 ▲수입농수산물에 사용된 식품첨가제,항생제,농약을 명시할 것▲관과 민이 합동으로 국산품과 수입품에 대한 비교·검사하는 체계를 구축,소비자들에게 신뢰성을 주는 방안등을 추가로 제안했다. 박길준연대교수는 집단소송제도입등 법령정비와 독점규제법의 엄격한 시행,소비자단체의 기능강화등을 통해 개방화에 대응할 것등을 진취적 입장에서 주장하고 나섰다. 이와같은 기업·소비자단체·학계의 주장에 대해 소비자보호주무담당자인 안병우경제기획원물가정책국장은 UR와 관련한 개방화대상요구가 금융·통신·교통·서비스·지적소유권분야까지 확대됨에 따라 소비자보호시책 대상도 보다 광범위하게 확대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정부의 시책방향을 제시했다. 안국장은 이와함게 정부가 계획·추진중인 시장개방과 관련한 주요 소비자문제대책으로 안정성검사내용보완,유해물질투입여부검사,검사인력보충강화,일정규모이상의 수입기업에 대한 소비자피해및 A/S운영지도·감독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 유엔군 평양점령…중공군,압록강 도강(비사 중국의 한국전개입:3)

    ◎북경자료 분석 통한 진겸 교수(미 뉴욕 주립대)의 추적/방어진지 갖출 시간 없어 기습공격 감행/국경전투 12일… 전선은 청천강으로 남하/초기 두 차례 전과에 들뜬 모택동,“38선 돌파하라” 명령 소련의 공군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기 때문에 중국은 당초 세운 전쟁목표의 축소조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10월14일 모택동은 주은래 앞으로 전문을 보내 한국전에 개입하되 방어자세를 유지하라는 초기작전 지침을 시달했다. 평양·원산 북부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향후 공격작전에 대비하라는 것이었다. 소련이 공군지원에 대한 약속위반을 함에 따라 중국지도부는 소련과의 동맹관계에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됐고 중·소 분쟁의 씨앗은 결국 이때 뿌려진 것이다. 중국군의 독자참전 결정이 내려지자 팽덕회는 즉시 심양으로 돌아가 10월14일 인민지원군,동북인민해방군,동북지구당의 고위간부들을 불러 모아놓고 이같은 당의 결정을 통보했다. 10월19일 중국군은 마침내 압록강을 넘어 한국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하루 전날인 19일 팽덕회는 미리 북한으로 가 10월20일 아침 김일성·박헌영을 함께 만났다. 팽은 이 자리에서 소련군의 공군지원이 없더라도 반드시 적을 섬멸해 한반도의 혁명을 완결짓겠다는 중국지도부의 의지를 전달했다. 중국군이 압록강을 넘은 바로 그날 유엔군은 평양을 점령했다. 유엔군 선봉대는 각 방면에서 한·중 국경 30∼40마일 전방까지 진격해 들어갔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중국군은 한국진입 즉시 방어진지를 구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유엔군이 너무 빠른 속도로 진격해 들어왔기 때문에 방어진지를 갖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인민지원군 총사령관인 팽덕회는 유엔군 선봉대의 북진작전이 너무 서둘러 진행됐다는 점에 착안,10월21일 이들을 기습공격하겠다는 뜻을 당중앙군사위에 보고했다. 같은날 모는 답신을 보내 『당분간 방어진지 구축을 보류하고 공격준비를 갖춰 수일내 공격을 시작하라』고 팽의 건의를 수락했다. 팽은 적을 깊숙히 유인해 후면·측면을 친다는 전략을 세우고 2개군의 추가병력 파병을 당중앙군사위에 요청했다. 한국내 전중국지원군에게는 명령이 있기 전에 유엔군과의 교전은 피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동부전선에 2개 사단,서부전선에 5개군이 집중배치됐다. 중국군의 이 기습공격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10월25일 중국지원군 제40군 휘하 118사단이 운산지역에 진격한 한국군에게 첫 공격을 개시한 지 12일 만에 한국군은 압록강에서 청천강까지 후퇴했다. 중국측 자료에 따르면 이 첫 공세에서 한국군은 1만5천명의 전사자를 냈다. 맥아더 장군은 이같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중국군의 전력을 여전히 과소평가하고 추가공세를 취했다. 반대로 중국군은 30㎞를 다시 후퇴한 뒤 방어대형을 갖추고 계속 유인작전을 썼다. 11월25,27일 유엔군이 마침내 「덫이 놓인」 지점까지 진격해 들어오자 중국군은 동부·서부전선에서 동시에 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공세에 당황한 유엔군은 치욕스런 패주를 거듭했고 12월5일 평양이 다시 북한군 수중에 넘어갔다. 12월 중순에는 북한영토 거의 대부분이 공산주의자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두 차례의 공세에서 성공을 거두자 모는 적을 완전 궤멸시켜 미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낸다는 당초의 목표가 달성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적의 핵심전력은 건재했고 모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는 두 차례의 패배를 당한 미국이 휴전을 제의해 올 것이라는 계산을 했다. 모는 휴전에 앞서 미군을 38선 이남으로 패퇴시키고 서울을 수중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는 중요한 시기에 사태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았다. 전선총사령관으로서 팽덕회는 보다 신중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 팽은 초기공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중국지원군이 안고 있는 몇 가지 취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첫째 2개월간의 공세결과 중국군의 전력이 크게 약화됐고 둘째 유엔군의 핵심전력이 건재하고 셋째로 미·영이 절대로 한국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그는 생각했다. 팽은 이 시점에서 38선을 넘기보다는 본국으로부터 추가 보급지원을 받고 전략위치를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팽은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모에게 보고하고 조기승리보다는 장기전에 대비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모는 사태를 군사적인 현실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보려고 했다. 그는 38선이 갖는 상징적인 경계선의 의미를 허물어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는 12월21일 팽 앞으로 전문을 보내 『미·영은 38선 앞에서 휴전을 맺자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인위적인 경계선에 현혹되지 말고 끝까지 밀어붙이라』고 말했다. 본토 내전을 수행할 때도 그랬지만 모는 군사적인 고려와 정치적 목적이 서로 상충될 경우 항상 정치적 고려를 우선시키는 사람이었다. 팽덕회는 모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었지만 최고결정권자는 모였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팽은 모의 지시를 따라 3차공세 작전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팽은 38선을 따라 배치된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북한군 3개군과 중국지원군 6개군을 집중 투입시켰다. 임진강 동안에서 북한강 서안에 이르는 지역에 배치된 한국군 제8,6,2사단과 5사단 일부를 궤멸시키는 것을 주작전목표로 설정했다. 작전이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일거에 서울과 그 외곽도시들을 점령하고 다시 힘을 축적해 51년 봄 마지막 공세를 감행,전쟁을 끝낸다는 계산이었다.
  • “공군지원불가”소 표변에도“파병강행”(비사 중국의 한국전개입:2)

    ◎북경자료 분석 통한 진겸 교수의 추적/모 “우리 안보·세계공산혁명과 직결”/“미서 핵은 안쓸 것” 재래식 전쟁 예상 모택동이 한국전 참전을 결심한 배경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모가 10월2일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에 함축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는 이 전문에서 『우리가 군대를 파병하기로 결정한 이상 우리는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을 궤멸시키고 그들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모택동은 한반도 전체를 「해방」시킨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모는 그러나 중국군 파병을 결정하면서 한편으로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는 미 공군이 중국의 주요 도시와 산업시설을 공습하고 미 해군은 해안공격을 감행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는 그러나 중국군이 미군 특히 미8군을 패퇴시킨다면 미국의 대중국 선전포고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한반도가 「해방」된 후에는 중국과 미국이 전쟁을 치르더라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며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모택동은 그러나 미국이 선전포고를 하고 한국전쟁은 답보상태에 빠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이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방지하기 위해 소련의 무기지원하에 중국의 풍부한 인력자원을 활용하는 이른바 「인해전술전략」을 쓰기로 결심했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미국이 중국의 한국전 개입에 대한 보복으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까도 크게 걱정했다. 그러나 모는 이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고 믿었다. 그는 9월5일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미국이 원자탄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미국이 핵무기 사용을 고집한다면 아마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택은 그들 손에 달려 있다. 만약 미국이 원자탄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수류탄을 사용하는 「원시적」인 대응을 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의 약점을 간파,마침내 그들을 패배시킬 것이다』 10월초 열린 중국 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도 미국의 핵무기 사용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중요성이 별로 없는 「제2의제」에 불과했다. 모와 중국 지도부는 한국전은 핵전쟁이 아닌 재래식 전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모택동과 중앙군사위가 한국전 개입을 결정한 후 중국 군수뇌부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10월8일 팽덕회는 심양으로 날아갔다. 그는 고강의 지원을 받아 「지원군사령부」를 설치했다. 이날 저녁 팽덕회는 심양에 와 있던 김일성의 특사 박일유와 만나 중국군의 한국 진입문제를 논의했다. 같은 시간 평양에서는 예지량 북한 주재 중국 대사가 김일성의 지하사령부를 방문,중국군 파견결정을 통보했다. 다음날 팽덕회는 급히 압록강변의 국경도시 안동으로 향했다. 팽덕회는 안동에 도착,한국전 상황을 검토한 후 모에게 긴급전문을 보냈다. 『우리는 보병 2개 사단과 포병 2개 사단을 한국전에 우선 참전시킬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초의 계획은 변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군대(4개 보병사단,3개 포병사단 및 3개 대공포연대)를 압록강 남쪽 제방에 집결시켜야겠습니다』 모택동은 현지사령관의 이날은 작전변경을 즉각 승인했다. 중국군은 마침내 한국전에 참전할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그러나 상황이 갑자기 달라졌다. 10월10일경 소련이 당초 약속한 공군지원을 제공할 수 없다고 중국에 통보한 것이다. 소련은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공군지원을 늦출 수밖에 없다고 전해왔다. 소련의 갑작스런 태도변화는 중국 지도부를 당황케 만들었다. 10월11일 모는 팽덕회와 북동지역 주요 지휘관들에게 제13군단의 모든 군사활동을 정지하라는 명령을 타전했다. 팽덕회와 고강은 북경에 돌아와 정치국회에 참석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모택동이 10월8일 중국군의 한국전 참전명령을 내린 직후 주은래는 한반도에서의 구체적인 중소 군사적 협력 사항을 마무리짓기 위해 소련으로 날아갔다. 주은래는 러시아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임표와 왕가상 소련 주재 중국 대사와 함께 흑해연안의 한 별장에서 스탈린을 만났다. 소련이 공군지원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주은래는 스탈린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주의 노력도 모두 허사였다. 중국 공산당 정치국은 10월13일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회의 결과 중국 지도자들은 소련의 공군지원이 없더라도 참전하기로 결정했다. 회의가 끝난 후 모택동은 주은래에게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 『나는 정치국 동지들과 참전문제를 협의했소. 그결과 중국군을 파견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소. 전쟁 초기 우리는 한국군과의 전투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며 승리를 장담할 수 있소. 우리는 원산과 평양을 잇는 거래한 산악지대에 진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오. 우리가 만약 개입 초기 한국군 수개 사단을 패퇴시킨다면 한국의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오. 이같은 적극적인 전략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동구 더 나아가 전세계에도 유익할 것이오. 만약 우리가 파병하지 않는다면 적군은 압록강까지 진출하여 거드름을 떨 것이오. 이같은 상황은 여러 가지 면에서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지역의 안보를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오. 요컨대 우리는 한국전에 참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오. 참전은 그만한 대가가 있을 것이오. 참전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역작용이 있을 것이오』 중국이 소련의 공중지원없이도 한국전 참전을 강행한 것은 상당한 모험이었다. 중국소식통에 의하면 주은래가 중국의 참전을 알리자 스탈린도 놀라며 크게 동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안보와 사회주의혁명에 대한 모택동의 강한 집착을 감안한다면 참전결정은 당연한 것이며 불가피한 것이었다. 모택동은 주은래에게 보낸 전문에서 한국의 운명은 중국의 국가 안보이익뿐만 아니라 동구와 세계의 사회주의혁명과도 직결된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소련의 갑작스런 공중지원 거부에도 불구하고 모택동이 중국의 한국전 참전을 감행한 것은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 당시 중대장 이대용씨의 회고:「내가 겪은 6·25」중

    ◎낙동강서 대반격… 두달 뒤 압록강 진격/“남북통일 축원” 강물 담은 수통 이 대통령에/국경 도착 이틀 만에 “중공군 침입”… 후퇴 명령 1950년 6월28일. 북한 공산군이 남침을 개시한 지 불과 4일 만에 수도 서울은 적군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공산군은 빠른 속도로 남으로 물밀듯이 쳐들어왔다. 무방비상태의 국군은 후퇴를 거듭해야만 했다. 서부전선의 아군 방어선을 조정하기 위해 중부전선의 제6사단을 남으로 철수시키는 육군본부의 작전명령은 계속해서 하달되고 있었다. 내가 지휘하는 제7연대 제1중대는 홍천의 삼마치고개,원주의 신림고개에서 남진하는 북한 공산군을 맞아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적의 장갑차 5대를 파괴하거나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저들의 뛰어난 화력에는 어쩔 수 없었기에 결국 7월4일에는 전국과 멀리 떨어진 충주로 이동해야 했다. 우리가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피란민들의 행렬은 홍수를 이루며 지나갔다. 이를 바라보고 있던 제7연대 제1대대장 김용배 소령은 이렇게 탄식했다. 『군인된 몸으로 송구스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군. 우리 연대 작전과에 있던 여자 타자수가 조금 전에 이 앞을 지나갔어. 춘천에서 여기까지 걸어온 모양이야. 그래도 짐보따리를 짊어지고 있어 정말 피란민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군. 그저 죄송할 따름이야』 그의 얼굴 표정은 군인의 국가에 대한 책임,국민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착잡한 심정으로 충주농업학교 교실에서 하룻밤을 지낸 나는 7월5일 아침 일찍이 제1대대 제1중대장으로 부대를 지휘하여 음성으로 이동했다. 기름고개를 향하여 북쪽으로 전진하던 중 마침 북쪽에서 내려오던 북한 공산군과 조우하게 됐다. 전투가 시작됐다. 아군의 사기는 그런대로 중천하여 그들을 격파했다. 기름고개를 넘어서자 적군이 줄지어 다가왔다. 우리 부대는 지형지물을 최대한 이용해 적 대부대를 깨끗이 섬멸하고 계속 전진했다. 이때 나는 적탄에 맞고 쓰러졌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 몸 아홉군데에 총알이 박혔다. 중상중에 중상을 입은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살아났나는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헐렁한 팬츠 하나만 걸친 채 담요에 둘둘 싸여 야전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워낙 부상이 심해 결국 부산에 있는 제5육군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 4층에 있는 중환자실에 눕혀졌다. 대소변도 받아내는 형편이었다. 의정부가 고향이라는 간호장교 최 소위가 이를 맡아 해냈다. 입원 3일 만에 군의관 이경룡 대위의 집도로 수술이 시작됐다. 내 몸에 박힌 직사 포탄조각을 여러 개 빼냈다. 수술 후의 통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했다. 그때마다 간호장교 최 소위는 지극한 정성으로 나를 돌봤다. 고맙기 그지없었다. 나이팅게일의 정신이 아무리 투철하다 해도 최 소위의 헌신은 참으로 감사했다. 먼훗날 그녀가 수녀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까닭없이 그리고 한없이 가슴에 와닿는 그 무엇이 있었다. 내가 제5육군병원을 떠난 것은 입원한 지 달포가 더 지난 8월24일이었다. 다시 나는 제7연대 제1대대 후방지휘소로 갔다. 8월26일 저녁 제6사단 지휘소에는 적의 박격포탄이 비오듯 날아왔다. 신령역 부근에도 적의 박격포탄이 무수히 떨어졌다. 북한 공산당이 낙동강 교두보의 일각을 뚫고 화산 일대를 점령한 뒤 퍼붓는 포탄들이었다. 제6사단장 김종오 준장은 제7연대 제1대대를 연대에서 빼내 사단직할로 하여 화산의 적을 공격케 했다. 이때 나는 제7연대 제1중대장으로 복귀하여 화산지구 탈환임무를 맡았다. 제1중대장으로 복귀해보니 내가 병원에 있었던 50여 일 동안에 중대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게 됐다. 내가 부상을 당할 때 함께 적군과 싸웠던 소대장들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제1소대장 한도선 중위는 내가 제1중대를 떠나자 나의 후임이 되어 중대를 지휘했으나 문경새재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 후임으로 제2소대장 강구석 중위가 중대장이 되었으나 그는 곧 부상을 입어 후방으로 빠져나갔고 다시 그 후임으로 제3소대장 손종구 소위는 낙동강전투에서 가슴에 적탄을 맞고 후송 도중 숨을 거뒀다고 했다. 그 다음에는 제1중대에 장교가 한 명도 없어서 중대 선임하사관 이한직 상사가 중대장대행이 되어 부대를 지휘,전투를 했으나 또한 낙동강전투에서 전사했다. 다시 그 후임으로 제1중대장에 부임한 도진환소위는 내가 중대장으로 복귀하면서 제1소대장이 되었으나 며칠 후 화산전투에서 전사했다. 2개월도 채 안 되는 기간중에 제7연대 제1중대는 4명의 중대장이 전사하고 1명의 중대장이 중상을 입는 손실을 가져왔다. 세계 전쟁 역사상 불과 2개월 동안에 4명의 중대장이 전사한 예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1개 중대에서 중대장들의 소모가 이렇게 격심했으나 사병들의 소모는 말할 수 없이 대단했다. 이는 또 한국전쟁 기간중 가장 치열했던 격전기간은 1950년 6월부터 그해 9월 중순까지의 기간이었음을 입증해주는 전사자 통계숫자의 일부이기도 하다. 화산 옛 성터 일대에서 숨박히는 격전 끝에 우리는 북진을 시작했다. 문경 원주 홍천 춘천 화천 김화 평강 복계 세포 회양 원산 양덕 성천 순천 개천 희천 회목동 고장 초산을 거쳐 압록강변 신도장마을에 우리 제1중대를 선두로 제7연대 제1대대가 도착한 것은 1950년 10월26일 하오 2시15분이었다. 만주에 연결된 뗏목다리 위에는 수백 명의 피란민들이 가득히 차 있었다. 이미 만주로 건너간 수백 명은 줄지어 중국 마을 통천구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다. 초산읍에 본부를 두고 재편을 시도하던 북한 공산군 제8사단은 사단장 오백룡 지휘하에 주로 위원읍 방향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제7연대 제1대대 장병들은 모두 만주땅을 바라보면서 감개무량해했다. 제1대대장 김용배 중령의 지시로 나는 남북통일을 축원하며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내는 압록강 물을 수통에 떴다. 그리고 제1대대에 배속되어 있는 57㎜ 대전차포 철갑탄으로 만주와 연결되어 있는 뗏목다리를 끊어버렸다. 강물에 군화를 적시고 손도 씻다가 하오 4시경 압록강에 먼저 도착한 제1중대를 제외하고 제1대대 전병력은 약 10리 서남쪽에 있는 초산읍으로 내려갔다. 나는 이장원 소위가 지휘하는 제1소대를 신도장분주소(경찰지서) 일대에 배치하여 위원읍으로 통하는 자동차도로를 차단한 뒤 만주로 건너가는 뗏목다리를 화력으로 엄호케 했다. 김덕출 소위가 지휘하는 제2소대는 제1소대 좌일선에 연결하여 강물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며 강기슭에 길게 배치하고 박상호 상사가 지휘하는 제3소대는 제2소대에 연결되어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며 강 기슭에 배치했다. 중대 선임장교 직책을 겸하고 있는 서근석 소위의 화기소대 본부와 제1중대 본부는 제2소대지역내에 위치시켰다. 결국 제7연대 제1중대는 강건너 중국대륙을 바라보며 약 1천6백m에 달하는 거리에 늘어서서 국경 경비임무에 들어갔다. 1910년 8월29일. 격변하는 세계정세에는 눈을 감은 채 나라 안에서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권력싸움에 눈이 멀던 우리 조상들. 병들고 무력해질 대로 무력해진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이 왜놈들에게 나라를 뺏기고 국경 경비의 권리를 그들에게 넘겨준 35년간,그 후 남북한 화합을 못 하고 이념의 갈등을 겪으면서 국토가 양단되어 5년,통틀어 40년의 세월을 한을 안은 채 고통 속에서 지내야만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우리 민족의 고통의 족쇄가 풀리는 첫날이다. 남북을 통일한 배달의 남아들이 압록강 국경선에서 타국땅을 바라보며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가슴은 감격에 벅찰 수밖에 없었다. 고요한 국경선에서 또 하룻밤을 자고 나니10월28일이 되었다. 이날 하오 5시경 초산읍에 있는 제1대대 본부로부터 제1중대에 다음과 같은 청천벽력과 같은 작전명령이 하달됐다. 『온정일대에서 제2연대가 중국군에게 패하여 후퇴중에 있다. 이를 구출하기 위하여 제1대대는 연대의 일부로서 온정으로 남하한다. 제1중대는 10월28일 하오 7시 초산읍에 집결하라』
  • 재벌의 타회사 출자 규제 강화/정부

    ◎초과액 6천6백억 시한 넘기면 과징금 10%/소유주식 처분명령도 내리기로 재벌그룹들의 기업확장을 억제하기 위한 규제조치에도 불구하고 동원그룹을 비롯한 일부 재벌들이 타회사 출자한도초과액 해소실적이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해소시한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지난 4월1일 현재 출자한도 초과액이 6천6백67억원이나 남아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이에 따라 재벌들이 해소시한을 넘길 경우 출자금의 10% 이내의 높은 과징금을 부과하는 한편 소유주식 처분명령을 내리는 등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24일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최수병)가 발표한 대규모기업집단(재벌)의 타회사출자 및 상호출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87년 출자규제제도가 처음 도입될 당시 지정된 29개 재벌의 출자 총액은 지난 1년 동안 8천5백69억원이 늘었으나 순자산이 2조9천2백14억원이 증가함에 따라 순자산액에 대한 출자 총액의 비율은 지난해 32.1%에서 지난 4월말 현재는 31.8%로 낮아졌다. 또 내년 3월까지 재벌그룹들이 해소해야 할 출자한도 초과액은 61개재벌그룹 가운데 올해 지정된 8개 그룹을 포함,45개 재벌그룹의 6천6백67억원에 이르고 있다. 그룹별로는 동원산업그룹이 1천5백54억원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 현대그룹 9백98억원,진로그룹 8백26억원 순이다. 출자한도란 정부가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 재벌들의 계열회사가 다른 계열회사나 비계열의 다른 회사에 대한 출자한도를 순자산액의 40%를 넘지 못하게 규제하는 것으로,지난 87년부터 계열회사들의 총자산이 4천억을 넘는 재벌들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출자를 억제해왔다. ◎29개 그룹 1년 출자 8천5백억 늘어/소재벌은 내년 3월전 해소 어려울듯(해설) 정부의 기업확장 억제조치에 따라 재벌기업들의 타회사에 대한 출자한도 초과액이 점차 줄고 있으나 재벌기업들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기업확장은 여전한 것으로 밝혀졌다. 개별 재벌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타회사에 대한 출자가 불가피한 경우가 있기도 하겠지만 지난 87년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된 29개 재벌의 경우 지난 1년간 출자총액이 8천5백69억원이나 늘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된 61개 재벌 가운데 타회사 출자한도를 완전히 해소했거나 출자한도를 초과하지 않고 있는 재벌기업은 한진·효성·태광산업·풍산금속·동국무역·한신공영·한국유리·삼환기업·금강·대한유화그룹 등 16개 그룹에 지나지 않는다. 재벌기업들의 타회사 출자초과액 현황을 보면 진로그룹이 7개사로 가장 많고 현대그룹이 5개사,동국제강과 롯데그룹이 각각 4개사,대우·쌍용·해태그룹 등이 각각 3개사에 달하고 있는 등 전체로는 1백7개사에 달하고 있다. 타회사 출자한도액을 초과하고 있는 재벌기업들은 초과액을 내년 3월말까지 출자금액 축소나 자산증가 등을 통해 해소해야 한다. 그러나 한도초과액이 많은 동원·현대·진로·대우·고려통상그룹 가운데 규모가 큰 현대나 대우그룹 등은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규모가 적은 동원이나 진로그룹 등이 제대로 해소할 수 있을지 우려되고 있다. 출자한도 초과액을 없애려면 주식을 처분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인데 증권시장의 침체로 애로가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법정시한인 내년 3월말을 앞두고 출자한도액 해소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재벌기업 사이에 마찰이 예상되고 있다.
  • 동원,외식산업 참여/연내 시범업소 개점

    참치캔의 보급으로 탄탄한 내수기반을 쌓아온 동원산업이 외식산업에 참여한다. 지난달 외식사업부를 발족한 동원산업은 현재 국내시장조사를 진행중인데 일본 등 외식산업의 선진국과 기술합작으로 연내 시범업소를 개점할 계획이다. 동원이 준비하는 외식식당은 손님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서비스를 제공하며 간이식사를 내놓는 스타일이다. 동원산업의 원양선단이 잡은 생선 위주로 수산식품 중심의 식단을 짤 계획이다. 자동 생선초밥 제조기 등 주방자동화시스템도 도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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