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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랍 19명 전원석방 합의] 석방합의까지 피말리는 41일

    피말리는 41일이었다. 가족들은 ‘석방임박’ ‘인질처형’ 등의 엇갈린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잇단 외신의 오보에 한껏 부풀었던 가족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기도 했다. 결국 28일 남은 한국인 인질 19명이 전격적으로 석방되기까지는 수많은 고비를 넘어야 했다. 김경자씨 등 여자 인질 2명은 앞서 풀려났지만 배형규씨 등 남자 인질 2명은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그동안 탈레반과 직접 대면 접촉은 네차례에 그쳤다. 반면 탈레반의 인질 살해 위협은 외신을 통해 끊임없이 이어져 국민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다. 이 과정에서 현지 부족 원로들, 적신월사는 탈레반과의 접촉에 윤활유 역할을 했다. 고비 때마다 인질석방과 관련한 외신 오보도 잇달아 터져나왔다. 지난 13일 김경자, 김지나씨 등 여성 인질 2명이 26일만에 처음으로 석방되기 전까지 사흘간은 피말리는 반전의 시간이었다. 피랍 23일만인 10일 가즈니주 적신월사 사무실에서 첫 대면 접촉이 시작됐다.AFP, 로이터 등 외신들은 12일 새벽 탈레반지도자 위원회가 선의의 표시로 아픈 여성 2명을 조건없이 석방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곧 오보로 드러나 높아진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결국 인질들은 석방을 준비하다 되돌아가기를 두차례 반복한 끝에 13일 전격 석방됐다. 히잡을 뒤집어 쓴 채 적신월사 관계자에게 인계되는 인질들을 촬영한 외신 화면을 전세계 언론은 앞다퉈 보도했다. 안타까운 순간도 이어졌다. 지난달 31일 심성민씨가 억울하게 희생됐다. 이에 앞선 25일엔 인솔자였던 배형규 목사가 처음으로 살해됐다. 이 와중에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 수감자의 석방을 한국정부에 압박했다. 하루하루 협상 시한을 연기하는 치밀한 전략을 구사했다. 심씨 살해 소식은 전날 협상 시한이 아무런 성과없이 지난 뒤 외신에서 시한 연장 보도가 흘러나온 가운데 전해진 것이어서 슬픔을 더했다. 이에 앞선 지난달 29일 백종천 대통령 특사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을 면담하고 아프간 지역원로들이 탈레반 설득에 동원됐지만 이런 노력이 허탈하게 끝난 순간이었다. 피랍된 인질들의 육성이 외신을 통해 간간이 공개돼 생환에 대한 희망을 높이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CBS방송으로 인질의 육성이 처음 공개됐다. 인터뷰에 ‘유천주’라고 소개된 인질은 임현주씨인 것으로 밝혀져 애타는 가족들에게 잠시나마 위안을 주기도 했다. 결국 28일 한국정부와 탈레반은 네번째 대면접촉을 가졌고, 가족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인질 전원 석방 합의’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피랍 19명 전원석방 합의] 석방 협상 주역들

    지난 40여일간 탈레반측과 벌여온 숨막히는 인질 석방협상에는 우리 정부측에서 파견한 4명의 고위급 관리 등이 현지에서 꾸린 대책본부와 탈레반과의 대면접촉을 위한 현지 협상단의 활약이 유효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우선 피랍사태 발생 직후인 지난달 22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현지 대책본부장으로 파견된 조중표 외교통상부 제1차관은 4주간 머물면서 아프간 정부 및 미국 등 우방국과의 협조를 이끌어내면서 가즈니 현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직·간접 접촉을 진두지휘했다. 조 차관은 특히 대통령 특사로 파견된 백종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과 함께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 등을 면담하는 등 고위층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데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 차관과 함께 파견된 문하영 본부대사(전 우즈베키스탄 대사)도 아프간 정부 등과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가즈니 현지로 이동, 대책반을 맡아 탈레반측과의 교섭을 주도했다. 지난 10일 열린 1차 대면접촉을 성공시켰으며 이어 11일 2차 대면접촉을 지휘한 뒤 결국 김경자·김지나씨 등 2명의 인질 석방을 이끌어냈다. 난 19일 귀국한 조 차관 후임으로 박인국 외교부 다자외교실장이 파견돼 인질들의 조속하고 안전한 석방을 위해 막바지 교섭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외교부에서 국제적 개발협력 정책을 총괄하는 박 실장은 아프간 정부 및 부족원로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공적개발원조(ODA) 제공 등을 제시, 이들의 중재와 설득을 통한 탈레반측의 석방을 이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7일 김경자·김지나씨와 함께 귀국한 문 대사에 이어 정부는 노광일 외교부 정책기획국장을 가즈니로 보내 현지 대면접촉을 맡겼다. 노 국장은 박 실장과 함께 16일 3차 대면접촉을 성사시켰다. 결국 28일 2시간에 걸친 4차 대면접촉에서 남은 19명의 석방을 성공시키는 결실을 낳았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현대시의 알맹이 좀더 친숙하게 접하세요”

    “현대시의 알맹이 좀더 친숙하게 접하세요”

    시인 정지용의 ‘향수’, 임화의 ‘깃발을 내리자’, 신동엽의 ‘진달래 산천’, 천상병의 ‘귀천’…. 한국 현대시들이 도자(陶瓷)의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났다. 현대시 탄생 100년을 맞아 신경림(71) 시인이 시를 고르고, 도예가 김용문(52)씨가 흙을 다져 시를 얹었다. 작품은 9월5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이화’에서 전시된다. 전시회에 맞춰 ‘갈대는 조용히 속으로 울었다’(글로세움 펴냄)란 제목의 시도자집도 나온다. “내가 한 건 시 고른 일밖에 없어요. 고생은 김 선생이 다 했지.” 28일 ‘갤러리이화’에서 만난 신 시인은 언어로만 존재하던 시가 다양한 모양의 외형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도예가의 공이라고 강조했다. 말을 아끼던 시인은 가끔 “시를 도자기로 만들어 놓으니까 장관은 장관이네.”하며 추임새를 놓기도 했다. 김용문씨는 2000년부터 도자에 시를 새기는 실험을 해왔다. 그는 현대시 탄생 100주년에 맞춰 시도자 작업을 기획했다. 신 시인에게 시 선별을 부탁했고, 시인이 골라낸 시인 100명의 시 100편을 6개월의 작업기간을 거쳐 접시며 장승, 토우 등의 도자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유약이 마르기 전 불과 5초 안에 폭발하듯 그려낸 ‘지두문’(指頭紋·손가락으로 그린 문양) 기법은 단순하나 힘이 넘친다. 갈대(신경림의 ‘갈대’) 문양도, 북어(최승호 ‘북어’)와 대꽃(최두석의 ‘대꽃’) 문양도 그렇게 탄생했다. 신 시인은 출간될 시집 서문에 “나는 일단 조형하기에 조금이라도 더 용이한 작품들을 우선적으로 골랐다.”고 선정 기준을 밝혔다. 작고 시인 백석(‘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과 이용악(‘북쪽’)에서 원로시인 고은(‘문의 마을에 가서’)과 민영(‘답십리 하나’)까지, 중견시인 김용택(‘눈’)과 이성복(‘남해 금산’)에서 젊은 시인 김선우(‘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와 문태준(‘가재미’)까지 다양한 세대의 시인과 시가 선택됐다. 신 시인은 “지난 100년간 한국 현대시는 우리 시의 전통을 발전적으로 계승, 수용하면서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하고도 아름다운 시를 창조해 냈다.”면서 “이번 도자 작업이 시가 안 읽히는 시대에 독자들로 하여금 현대시의 알맹이를 좀더 친숙하게 접할 수 있도록 돕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자손86명의 대가족(大家族) 새해잔치

    자손86명의 대가족(大家族) 새해잔치

    한국 기독교 80년사상 처음의 경사인 희년(禧年)축복예배가 새해 첫 일요일 전남(全南) 여천(麗川)군 율촌(栗村)교회서 거행된다. 주인공은 전 부통령 함태영(咸台永)씨와 동기동창인 88세의 조의환(曺義煥)목사. 조목사는 50주년째 현직 목사로 있으며, 7남매의 자녀가 모두 생존하여 슬하에는 무려 증손자까지 86명의 가족이 뻗어나 화제가 되고 있다. 60넘는 자녀만 4명이나 손자는 34명 증손자 45명 88세로 50년동안 목사 일을 맡아보고 있는 조의환 목사는 이젠 걷기가 어려운 처지에 있다. 그러나 정신력은 또렷 또렷하여 주일이면 반드시 교회에 나가 축복예배를 드리고 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데모데」서 4장 7절을 즐겨 설교하며 『나의 갈길 다하도록 예수 인도하시니…』하는 찬송가를 즐겨 불렀다. 『저희 아버님은 지금도 매주 한번씩 꼭꼭 저에게 편지를 써보내십니다. 안경도 안쓰시고 필력(筆力)도 좋으십니다』 역시 60세에 목사가 된 장남 조기영(曺基榮)씨(61)의 말이다. 조의환 목사는 전남 여천군 율촌면 마을에서 조병하(曺秉夏)씨의 5남매중 둘째로(세째는 전 외무장관 조정환(曺正煥)씨) 전 부통령 함태영선생과 동창 사이가 된다고. 『무엇보다도 복된 것은 우리 7남매가 모두 살아서 아버지의 50주년 희년예배를 함께 보게 된 것입니다』. 조목사의 슬하에는 장남 기영(목사·서울), 차남 기선(基善·교통센터·서울), 3남 기성(基成·국민교장·여수), 장녀 영관(永寬·70·서울), 차녀 정은(貞恩·66·구례(求禮)), 3녀 안희(安熙·63·서울), 4녀 영은(英恩·서울)씨등이 모두 복된 가정을 가지고 있다. 이러니까 7남매중 60세이상의 아들딸이 4명이며, 그들의 몸에서 난 손자가 34명, 증손자가 45명이나 되어 혈통이 모두 86명. 조목사는 24세때 예수교를 믿기 시작하여 30세때 평양(平壤)신학교에 입학하여 8년만에 졸업, 39세때 비로소 목사가 되었다. 『그동안 아버지는 광양(光陽) 여수(麗水) 제주 교회등에서 일했읍니다. 무엇보다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제주도 모슬포교회에서 6년을 일보시는 동안 두번이나 투옥을 당하신 일입니다』 2차대전때 혹독한 일제의 압박에도 신사참배(神士參拜)를 거부했다. 또 조목사는 당시 순천(順川)지구 노회(老會) 선교사로 있다 미국으로 귀국당했던 「프레스턴」목사와 국내 정세를 연락했다고 해서 투옥, 많은 고초를 겪었다. 모든식구 한자리에 모여 소원대로 산제사 모시게 그런가운데서도 조목사는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서는 인재양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아우 정환씨를 10년동안이나 미국에 유학시켜 공부하게 했다. 『저도 일본경찰서에 몇차례나 끌려갔읍니다. 그놈들은 술만 취하면 한밤중에 날 경찰서로 잡아다 놓고 일본도를 빼어 내 목에 겨누는 등 행패를 부렸지요. 그 굴욕에서 벗어나기 위해 판임관 시험을 치르기도 했읍니다』 장남 조기영 목사의 설명. 조기영목사는 연전(延專) 상과, 숭실전(崇實專) 농과, 명치(明治)학원 영문과 등에서 수학한뒤 호남비료 서무과장, 무역업에 종사해오다가 나이 60세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 목사가 되어 지금은 「망각지대선교회」회장일을 보고 있다. 『7남매 모두 따로 살고 있지만 이번에 전부 모여 아버지 소원대로 산 제사(祭祀)를 지내는 축복예배를 보기로 했읍니다』 조의환목사는 원채 나이가 많으시니까 아들이나 손자들이 찾아오면 『사탕 좀 사오너라』하고 명령을 한다는 것. 그래서 단 것을 장만해서 이번에 행사를 벌이기로 한 것인데, 그 「단 것」선물의 거의 전부가 교회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진다. 이래서 어린이와 할아버지의 사탕잔치가 한꺼번에 벌어진 것인데 88세 할아버지 목사님은 여느날에도 『사탕 먹으니까 맛있죠? 나도 맛있어요!』하고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재미. 노목사는 아들딸을 제외하곤 아무리 어린나이의 증손자에게도 반드시 존칭을 쓰는 버릇이 몸에 배어 있다. 77살에 재혼 아직도 정정 장수의 비결은 절제주의 한가지 섭섭한 것은 57년에 7남매의 어머니 김월봉(金月鳳)여사가 돌아가신 것. 이듬해 김영엽(金永葉·72)씨를 계모로 맞아 아버지와 짝을 지어 드렸다. 그러니까 조의환 목사는 76살때 재취 장가를 간 셈. 조목사는 지금도 기억력이 생생해서 86명속에 끼어 있는 손자와 증손자의 이름까지 모두 외고 있으며, 아무날 어느 손자, 또는 증손녀가 무슨 과자를 사왔다는 내용을 모두 「노트」에 적어놓고 있다고 자녀들이 아버지를 놀리자(?), 아버지는 『야 이놈들, 산 제사를 지내려면 단것 좀 많이 사와라!』하고 농담으로 받아 넘긴다. 조의환목사의 뜻을 받아 60세에 목사가 된 장남 조기영씨는 「예수」 믿고 보이지 않는 천당가는 신앙보다 보이는 이웃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 더 값있는 일이라고 망각지대를 향해 선교를 나섰다. 『망각지대란 것은 글자 그대로 소외당하고 잃어버린 땅을 향해「예수」의 정신을 심자는 것입니다. 난 돈도 명예도 없어요. 푼돈이 생기면 그대로 양로원 고아원 또 사형 확정수들을 찾아다니며 「예수」말씀을 전하고 있읍니다』 조기영목사는 60세에 안수를 받았지만 정열이 대단하다. 국제신학교 강사로 나가면서 어떤때는 하루종일 서울역 남대문 지하도 근처를 헤매면서 서울역에서 내리는 시골손님들의 길을 안내하고 짐을 들어다주곤 하는 생활-. 다만 조의환목사의 3형제중 일제때 만주국(滿洲國) 48(王)중의 하나로 이름을 날렸던 형님 조일환(曺日煥)씨와 아우 정환(正煥)씨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간 것이 슬프다고 88세의 원로목사는 기쁜중에도 섭섭한 눈물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 이처럼 장수하는 비결은? 『절제주의입니다. 나는 술과 담배를 평생 안했거든요. 또 성욕도 많이 절제하면서 산셈이야요. 내가 젊어서는 미남자였거든요. 만약 목사가 안되었다라면 많은 여자와 바람을 피웠을지 알아? 그랬더라면 86명 자손이 아니라 수백명일 뻔했지? 하하하…』 조목사는 이런 농담으로 곧잘 잔치집에 온 하객들을 웃긴다. <여천에서 이용선(李鏞善)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신년특대호 제4권 1호 통권 제 118호]
  • [문화플러스] 서울대 출신 여성작가 한울회전

    서울대 미대 출신 여성작가들의 모임인 한울회 30년전이 29일∼9월3일 태평로 조선일보사 미술관에서 열린다.‘꽃과 정물의 화가’로 알려진 심죽자를 비롯해 서양화가 전명자, 최아영, 김춘옥 등 한국의 중견 및 원로 작가 74인과 곽연·송수련 등 초대작가 12인의 작품 86점을 선보인다.(02)724-6328.
  • 대선주자 행보 본격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26일 특별한 일정 없이 자택에서 주말을 보냈다. 경선 승리 후 1주일 만의 휴식이다. 대선 행보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을 기준으로 하면 1년 만이라는 게 후보측의 설명이다. 이 후보는 이번 주부터 각종 언론사를 방문하고 정계 원로들을 만나는 등 대선 주자로서의 행보에 박차를 가한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대사도 만날 예정이다. 이 후보는 김대중·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도 잇따라 만나 조언을 들을 계획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지난 21일 이미 만찬 회동을 가졌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건강을 봐가며 나중에 일정을 잡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회창 전 총재, 김종필 전 총리와도 일정을 조율 중이다. 산적한 당내 과제는 나름대로 풀면서 원로들과의 만남을 통해 위상을 확고히 한다는 전략이다. 한반도 주변 4개국 대사 면담은 자신의 ‘경제 전문가’ 이미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외교·안보 정책 비전을 강화하려는 취지가 곁들여져 있다.28일 일본,29일 미국,30일 중국 대사와의 일정이 잡혀 있다. 주한 미국 대사와는 향후 이 후보의 방미 일정을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 이 후보는 올 추석 연휴 전에 미국을 방문, 부시 대통령을 만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 속을 파고드는 행보도 이어진다. 특히 추석 연휴 때는 전국을 돌며 ‘경제대통령 이명박’의 이미지를 착실히 심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다음 달 중순부터 시작될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범여권의 파상적 검증공세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민심만 한 버팀목이 없다고 보고 부지런히 ‘발품’을 팔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조순형 “DJ는 국가원로 체통 지켜라”

    조순형 “DJ는 국가원로 체통 지켜라”

    민주당 대선 주자로 나선 조순형(얼굴) 의원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조 의원은 26일 김 전 대통령이 최근 ‘민주당 일부 지도자들이 남북정상회담에 반대하는 등 평화노선에 어긋난 것은 민주당의 전통과 맞지 않다.’며 사실상 자신을 비판한 것과 관련,“김 전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국가원로로서 체통을 지키고 정치개입 발언을 그만둘 때가 됐다.”며 몰아붙였다. 조 의원은 지난 8일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와 관련,“시기와 형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노선이나 남북화해협력 정책을 적극 지지하지만 남북정상회담에 문제점이 있으면 이를 지적하는 것이 정치인의 본분이자 책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DJ가 지난 23일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열린우리당이 민주당 분당 등에 대해 사과했어야 했다.”고 말한 데 대해선 “분당 당시에는 아무 말 하지 않다가 뒤늦게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측 최경환 비서관은 “2차 남북정상회담을 반대한 일부 지도자에 대해 민주당의 전통과 맞느냐고 언급한 것이지 민주당의 정통성을 거론한 것은 아니다.”며 일부 보도내용을 부인했다. 또 당시 면담에 참석했던 윤호중 전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민주당 부분은 김 전 대통령측에서 비공개를 요청한 것인데 어떤 식으로 나가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곤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사우디 나서면…”

    아프가니스탄 현지 신문인 ‘아바디 위클리’의 무하메드 올린(29) 기자가 26일 보낸 열두번째 편지에는 “현지 소식통들은 한국인 피랍자 전원 석방설에 대해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는 “현지에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탈레반은 죄수교환을 요구하고 아프간 정부는 거절하고 있다.”면서 “오히려 탈레반은 한국정부가 대면협상을 늦추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아프간 전문가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재가 있다면 사태는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고 전해왔다. 정리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탈레반이 19명의 인질을 풀어준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곧바로 탈레반 대변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와 통화를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합의를 위한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석방을 이야기한 적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한국 정부를 비난했는데요. 한국 외교부가 대면 협상을 미루고 있으며 시간을 버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현재는 한국 정부와 단지 전화로만 연락하는 상황이랍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한국 외교부가 바란다면 협상을 할 용의가 있다고도 밝혔습니다. 그러나 아마디는 “19명의 한국인과 탈레반 죄수들의 맞교환 조건은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 죄수들을 오늘 놓아준다 해도 그 즉시 인질들을 석방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 “방법은 이전과 똑같이 지역원로가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가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아프간 정부 대변인은 여전히 그들의 제안을 거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탈레반을 ‘인류의 적’으로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탈레반도 석방 합의에 대한 보도를 부인하지만 현지의 전문가들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두 나라를 중재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아랍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나선다면 다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죠. 아프간의 분석가인 스타나자이는 와하비즘(코란으로 되돌아가자는 이슬람 복고주의)이 전파된 이래 사우디아라비아는 탈레반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나라라고 말합니다. 스타나자이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분명히 이번 피랍사태를 중재할 수 있는 나라이며 한국은 평화적 사태 종결을 위해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와 접촉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결국 한국에 전해진 19명의 피랍자 석방설 보도는 현지에서 모두 부인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등장은 새로운 국면으로 가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 별세… 사회장으로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 별세… 사회장으로

    대구·경북(TK) 대부(代父)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이 24일 별세했다.87세. 이수그룹은 이날 “김 명예회장이 삼성의료원에서 폐암 치료를 받던 중 오전 10시50분쯤 별세했다.”고 밝혔다. 김 명예회장의 일생은 화려했다. 경제인, 은행가, 공직자로서의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소설집을 내는 등 삶의 폭도 넓혔다. 최근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 고문 겸 원로자문단 자문위원으로 왕성하게 활약해 재계 원로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1920년 대구에서 출생한 김 명예회장은 대구고보(현재 경북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다. 광복 직후부터 대구에서 섬유사업을 벌였다. 그러다 지방은행의 필요성을 느끼고 1967년 대구지역 상공인들과 함께 국내 첫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을 설립, 초대 행장을 맡았다. 이후 제일은행장과 외환은행장, 산업은행 총재,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했다. 전국은행연합회 회장도 지냈다. 김 명예회장은 5공 때인 1982년 11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올랐다. 그는 당시 가장 큰 경제 현안이었던 20%대의 물가상승률을 한 자릿수로 잡아 경제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도 들었다 . 공직에서 물러난 뒤 기업으로 돌아와 1987년 삼성전자 회장,1988년 ㈜대우 회장을 지냈다.1995년에는 이수화학 회장에 취임했다.1999년 물러날 때까지 이수그룹을 화학, 건설, 정보기술(IT)부품, 바이오·의료분야의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김 명예회장은 특히 전경련에 애착을 보였다. 지난 2월 전경련 차기 회장 선출을 위한 임시총회 의장을 맡은 그는 회장단 이견으로 합의추대에 실패하자 “전경련이 이렇게 된 것은 대기업이 안 나오는 데 있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김 명예회장은 ‘비둘기 역설’(2001년),‘청자 깨어지는 소리’(2002년) 등 소설집과 ‘한국경제 무엇이 문제인가’(2006년)라는 경제관련 서적을 냈다. 지난 6월에는 미수연(米壽宴)과 전집출판기념회를 갖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김상철 디엔피코퍼레이션 회장과 김상우 페타시스아메리카 회장,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김은희, 김명민씨 등 3남 2녀와 사위 박인종 흥아상사 사장 등이 있다. 김 명예회장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는 사돈 관계다.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장의위원장은 경북고 후배인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맡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 발인은 28일 오전 6시30분. 장지는 충북 음성 대지공원이다. 연락처는 장례식장 (02)3010-2000, 장지 (043)878-3854.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대선주자 25시] 조순형 의원

    [대선주자 25시] 조순형 의원

    “원내대표 후보는 없고 대선 주자는 있네.” 22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 한나라당 원내대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안상수 위원장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대선 주자인 민주당 조순형 의원은 자리를 지켰다. 흔히 대선주자는 발에 땀이 나도록 움직이거나 지지세력을 끌어모으기 위한 물밑 작업에 ‘올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 의원은 다르다. 국회의원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대선 행보는 언론 인터뷰에 응하는 정도다. 그럼에도 범여권 주자 3,4위를 유지하고 있다. 조 의원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일까. 조 의원은 이날 평화방송에 출연,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에게 예의 ‘쓴소리’를 던졌다.“재산과 관련한 의혹은 아직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본인이 스스로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해명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측이 민주당과의 연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대선 후보가 되니까 만사가 자기 뜻대로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전혀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DJ 현실정치 개입 안돼” 지난달 26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지금까지 조 의원이 방문한 지역은 광주, 목포, 대전뿐이다. 그나마 목포, 대전은 사실상 민주당 전진대회 행사 참석을 위해 내려간 것이다. 대전 방문은 지방 순회를 시작한 지 8일 만에 이뤄졌다. 기자 간담회 내용은 밋밋했다.“자극적인 얘기가 없어 큰일이에요.” 한 측근이 한숨을 쉰다.‘쓴소리’‘미스터 클린’이라는 별명도 있지만 대선주자로서는 속도감 떨어지는 행보, 새로운 메시지 없는 발언이 조 의원의 트레이드마크 같다. 민주당 주자답게 첫 행선지는 광주였다. 국립 5·18 민주묘지도 찾았다. 하지만 당원과의 만남에서도 평소와 다른 특별한 메시지가 없었다. 광주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향해 “최고 국가 원로로서 국가 중요사안에 충고하는 선에 그쳐야지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현실 정치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조 의원에게는 딱히 ‘폭탄 발언’이랄 게 없다. 그동안 전방위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왔기 때문에 새삼 특별한 발언을 준비하는 게 의미 없는 것이다. 오히려 “대통령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국회의원으로 국회를 지키면서 정치 인생을 마감하고자 했다.”는 말이 놀라웠다.‘늘 나라를 위해 봉사할 준비를 해왔다.’고 말하는 다른 대선 주자들과는 뭔가 달랐다. ●“의정활동으로 승부수” “살다 보니 대선 주자가 직업인 사람이 있더라고.” 첫 지방 일정이 늦어진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는 물음에 대한 조 의원의 대답이다. 수년 전부터 ‘대선주자’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얘기다. 그는 “갑자기 출마하게 돼서 막상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이만큼 늦어졌다.”면서 “앞으로는 활동을 좀 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는 직업이 대선주자가 아니라 국회의원”이라면서 “최근 1,2년간의 활동보다는 20년 정치 인생으로 평가 받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조 의원이 이러니 보좌진이라고 다를쏜가. 지금 그들이 가장 열을 올리고 있는 일은 국정감사 준비다. 조 의원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할 뿐 먼저 나서서 얘기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동행한 부인 김금지씨가 대선 주자처럼 보일 정도였다. ●골프장, 스키장 한번 가본 적 없어 밖에서는 대쪽 같은 선비 이미지의 정치인이지만 집에서는 ‘아이 같은 사람’이라는 게 부인 김씨의 얘기다. 그는 “강아지를 좋아하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조 의원을 설명했다. 김씨는 처음에 남편의 대선 출마를 반대했다고 한다. “김한길 의원은 왔다갔다 하고 거기(한나라당) 있다 와서 여기서 왕 노릇 하는 손학규씨도 용납이 안 돼서 출마하는 것을 말리지 않기로 했다.” ‘쓴소리’의 원조는 조 의원이 아니라 부인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 의원은 평생 골프장과 스키장을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대신 17대 총선에서 낙선하면서부터 차고 다니는 ‘만보기’로 건강 관리를 한다. 술자리에서 이뤄지는 ‘밤 정치’도 하지 않는다. 저녁식사는 대부분 집에서 해결한다.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회사원형 국회의원’이다. 조 의원은 당 행사에 참석해서도 자신의 연설만 마치고 바로 서울로 올라간다. 가끔 인터뷰에 응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대선주자 조순형’이 ‘국회의원 조순형’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대선 전략이 있느냐는 질문에 조 의원은 “전략? 그냥 하는 거지.”라고만 했다. 옆에서 누군가 거든다.“세상에 상식적인 사람이 없으니까 조 의원이 빛이 나는 겁니다. 국민들이 누구를 선택할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 겁니다.” 광주·대전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부고]

    ●김언환(문화관광부 사무관)씨 모친상 성정희(국립중앙도서관 사서사무관)씨 시모상 22일 국립의료원, 발인 24일 오전 8시 (02)2262-4811 ●이종배(자영업)종선(미국 거주)종대(자영업)종숙씨 모친상 김진하(현대F&G 대표)씨 빙모상 2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4일 오전 7시 (02)3010-2294 ●한정희(전 민주평통 위원)씨 별세 장준오(한국형사정책연구원 국제협력센터장)은선(장은선갤러리 대표)씨 모친상 이종대(에덴식품 대표)씨 빙모상 2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4일 오전 10시 (02)3410-6912 ●김병로(정신교회 원로목사)씨 별세 최영덕(예안교회 담임목사)박도권(삼우설계 상무)씨 빙부상 2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4일 오전 9시 (02)3410-6917 ●이윤택(성창인터패션)충택(SK네트웍스 서비스)씨 모친상 22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24일 오전 7시30분 010-7559-0514 ●김종열(금융감독원 수석조사역)씨 부친상 양진수(명진교역 대표)씨 빙부상 22일 대구 계산동성당, 발인 24일 오전 7시 (053)256-2046 ●김주일(메카트로닉스 과장)상일(플럭스랩 대표)수이(경희대 교양학부 교수)씨 부친상 21일 충북 제천 제일장례식장, 발인 24일 오전 6시30분 (043)645-4114 ●임영훈(잠실고 교사)주훈(삼성네트웍스)미숙(사업)미화(금옥여고 교사)씨 부친상 이성규(사업)김주상(동일중 교사)김진희(NHN서비스 부사장)소병호(GM대우)씨 빙부상 조자영(돈암초등학교 교사)씨 시부상 2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4일 오전 7시 (02)3010-2237 ●강완수(전 KBS춘천방송총국 편성국장)씨 별세 준화(와이더댄 이사대우)영옥(에스오일)영선(법무법인 율촌)씨 부친상 22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4일 오전 10시 (02)392-3299 ●채홍걸(만영ENG)홍용(삼아인터내셔널 대표)씨 모친상 2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4일 오전 8시30분 (02)3010-2263
  • 공부보다 취업→ 학력 중시

    공부보다 취업→ 학력 중시

    |베이징 이지운특파원|30대 후반의 조선족 교포 M씨는 한국에서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면서도 뒤늦게 공부하고 있는 동생이 안쓰럽다. 총명하고 공부도 잘했지만,“기회가 왔을 때 돈을 벌겠다.”며 대학을 가지 않았다. 한·중 수교가 되고 한국기업이 본격적으로 몰려들던 1990년대 중반.M씨 스스로도 유혹이 많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진학할 무렵, 주변 사람들은 “왜 대학원엘 가느냐. 한국 기업에서 통역만 해도 돈을 훨씬 더 버는데….”라며 만류했다. 고생끝에 박사 과정을 마치는 동안 친구들이 고향 선양(瀋陽)에서 돈을 벌어 가족들을 부양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했던 적도 많았다. 베이징의 주요 대학에서 교수생활 수년째인 지금은 당시 학업을 이어갔던 결정이 옳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31세 여성 Y씨가 98년도 대학을 졸업하고 칭다오(靑島)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 섬유회사에 잠시 취직을 했을 때 교포 300∼400명 가운데 대졸자는 자신을 포함해 딱 2명이었다.“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도 대학 진학을 하기보다는 빨리 취직해 돈을 벌려는 분위기가 확산될 때였다.”고 회고한다. 개혁개방으로 시장경제가 막 확산될 80년대 후반∼90년대 중반 중국에서는 ‘독서 무용론’이 팽배했다. 공무원이 되거나 국유기업에 취직해도 생활이 어렵고 대학교수가 대학 주변의 노점상보다 수입이 적던 시절이었다. 때마침 몰려오는 한국기업들은 조선족 교포에게 상당한 임금 수준을 유지해줬다. 통역·여행가이드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골프연습장에 취직한 중학교 졸업자들이 웬만한 중국인들보다 수입이 많았다. 이 기간은 조선족 교포의 석·박사 배출에도 큰 장애가 됐다. 원로 교수들은 “60년대 후반∼80년생으로 40세 전후의 박사급 인력이 분야별로 크게 부족하다.”면서 “이 공백으로 교포 학계로서는 큰 타격을 입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조선족 교포사회가 ‘학력(學歷)’을 되찾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무렵부터다. 시장경제의 발달로 경쟁이 심화되고, 기업과 사회가 ‘학력’을 중시하면서부터 조선족 교포들도 다시 예전처럼 학력 축적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대학에 입학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례도 크게 늘기 시작했다. 대체적으로 조선족 교포의 대학졸업자 비율은 8.5%로 알려진다. 중국 평균 3.8%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문맹률도 중국의 평균 7.7%보다 크게 낮은 2.7%로 한족을 포함한 중국 56개 민족 가운데 대단히 높은 수준을 유지해왔다. jj@seoul.co.kr
  • “원조로는 아프간 설득 힘들것”

    아프간 현지 신문인 ‘아바디 위클리’의 무하메드 올린(29) 기자는 21일 열한 번째 편지를 보내 “한국 정부가 아프간 공적원조를 통해 아프간 정부로 하여금 탈레반 죄수를 석방시키는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현지에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한국 인질은 가즈니 주에 분산수용돼 있지만 단식투쟁을 했다는 소식은 없고, 아프간 음식을 그런 대로 먹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정리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탈레반은 20일 한국 대표에게 대면협상을 재개할 것을 요청한 상태랍니다. 탈레반 대변인은 “탈레반 지도자들이 협상을 재개하는 쪽으로 결정했다.”면서 “8명의 탈레반 지도자가 속한 탈레반 죄수와 19명의 인질을 바꾸는 요구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아프간 전문가들은 탈레반이 대화가 진행될수록 그들의 요구를 바꿀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프간 정부의 한 관계자 역시 탈레반이 인질과 맞바꿀 탈레반 죄수 숫자를 더 줄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한국 대사관 역시 가즈니 주의 원로들에게 새로운 협상테이블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가 아프간 공적원조를 통해 아프간 정부로 하여근 탈레반 죄수를 석방시키는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프간 정부는 제 질문에 대답을 안 했지만 대통령의 대변인인 후마윤 하미드자다는 “죄수를 놓아 주면 탈레반의 납치 사업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공적원조가 있어도 정부의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탈레반 대변인과 19명의 인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는데요. 그는 인질이 모두 가즈니 주에 있으며 5개 그룹으로 분리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서로 같이 있기 위해 일부 인질이 단식 투쟁을 벌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현재 한국인 인질은 아프간 음식을 자유롭게 먹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만일 단식투쟁을 한다면 협상을 위해 인질의 건강이 우선이므로 오히려 탈레반이 먹이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한국 외교부나 아프간 정부와의 협상에 결론이 있을 때까지 인질이 죽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21일 아프간 언론들은 한국의 구호사업이 아프간에서 철수하는 것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한국이 아프간 재건에서 워낙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라 구호활동이 멈추면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죠. 전문가들은 한국 사람들이 떠나면 의료·교육 등의 많은 프로젝트가 중단될 것이며 봉사단체에서 일하던 많은 현지인들이 실업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실제 현지인들은 한국 봉사단의 철수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합니다. 행정이나 회계에 선진화 시스템을 만들어 주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어려운 사람들의 의료·교육 등을 도와주었으니까요.
  • [문화플러스] 2일까지 ‘김한용 이서전’

    종로구 소격동 트렁크갤러리는 원로사진가 김한용과 파리에서 활동중인 젊은 비디오 작가 이서의 작업을 함께 전시하는 ‘김한용 이서전’을 9월2일까지 연다.50년 이상 나이차가 나는 두 작가의 이미지 충돌이 새로운 의미를 생산한다.(02)3210-1233.
  • [한나라 대선후보 이명박]朴,선대위장 수락여부가 관건

    [한나라 대선후보 이명박]朴,선대위장 수락여부가 관건

    건곤일척의 경선 전투는 끝났다. 천신만고 끝에 1위를 차지한 이명박 후보는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무대의 주연자리를 차지한 반면 박근혜 후보는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무대 뒤로 쓸쓸히 사라졌다. 남은 것은 오는 12월19일 본선. 한나라당의 기대대로 정권교체를 이루려면 승자와 패자 모두 경선 과정의 앙금을 털고 힘을 모아야 한다는 과제가 놓여 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경선 갈등에 따른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본선 승리를 위한 대장정에 승자와 패자가 보조를 맞출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름다운 동행, 그 가능성은? 한나라호(號)의 대선 항로에 놓인 첫번째 ‘암초’는 내부 분열이다. 한나라호에 승선한 선원들이 범여권의 집중 공세와 남북정상회담 이슈 등 예상되는 ‘대선 파고’를 함께 헤쳐 나가지 않으면 순항을 기약하기 힘들다. 최악에는 ‘딴살림’을 차려야 할지 모른다. 한나라당으로서 다행스러운 것은 패배한 박 후보가 20일 경선 직후 패배를 인정하고 결과에 승복했다는 점이다. 당 화합을 위한 최초의 관문은 선대위원장 인선 문제다.2위에 그쳐 낙선자 신분이 된 박 후보가 다음달 구성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선 선대위원장 자리를 선뜻 맡을지가 주목된다. 이와 별개로 ‘친이(親李)·친박(親朴)’ 두 갈래로 나뉜 국회의원이나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행보도 변수다. 이들은 대체로 12월19일 본선까지는 정권교체를 위한 ‘합창’대열에 한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본선 과정에서 엇박자를 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권과 당권의 분리 주장에 따른 당권 경쟁이 가시화될 수도 있다. 박관용 당 선관위원장이 지난 17일 이·박 후보측 선대위원장들과의 만찬회동에서 후보자, 당원 및 지지자들이 경선 결과에 승복하고, 선출된 후보를 중심으로 정권 창출 대열에 동참하는 데 노력하기로 한다는 합의문을 만든 것도 이같은 내부 분열을 우려해서다. ●당선자, 리더십 발휘가 관건 한나라호가 ‘대권항로’에 놓인 암초들을 피해 ‘청와대’라는 항구에 도착하려면 무엇보다 ‘선장’이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선 과정에서 자신을 공격했던 상대 진영이 당선자를 도울 수 있는 ‘명분’과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년 만의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도와 달라고 모든 당원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나아가 강재섭 대표가 강조했듯이 당선자가 선대위 구성 때 박 후보 진영의 인사를 중용하는 실질적인 탕평 인사를 단행하는 것도 필수조건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박재완 대표 비서실장은 이날 “무엇보다 1위 후보가 잘해야 한다.”면서 “마찬가지로 패자쪽에서도 당선자가 포용, 중용하려는데 ‘흔들기’를 한다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양 진영의 단결을 주문했다. 후보 상임고문으로 위촉될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재 등 당 원로들이 양 진영의 단합을 위해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후보의 최대 난적(難敵)은 향후 재개될 검찰 수사와 범여권의 전방위 검증 공세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후보가 이를 무난하게 넘긴다면 당내 ‘후보 흔들기’의 명분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한나라 대선후보 경선투표] “어떤 불복도 용납못해”

    “100개쯤 되는 참을 인(忍)자를 품고 살았다. 내일부터 온몸에 박아두었던 것을 빼내 50개쯤은 화합의 ‘화(和)’, 나머지 50개쯤은 외부와 힘차게 싸운다는 ‘전(戰)’자를 박아 새 옷으로 갈아입겠다.”. 대선 후보 경선 이후 당내 화합과 정권 탈환을 성사시키겠다는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의지다. 오는 12월19일 대선까지 당 대표직을 그대로 맡을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향후 당 운영 방향을 밝혔다. ●“YS·昌·JP 후보 고문 위촉 추진” 강 대표는 경선 투표일인 19일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한 달 동안 모든 오디오와 비디오를 통해 한나라당이 단합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드리겠다.”면서 “화합의 워크숍을 적어도 1주일 이내 치르겠다. 어떤 형태의 불복도 용납 못하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저쪽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선대위원장을 하는 것 아니냐는 상황인데, 한나라당도 당헌·당규를 바꾸더라도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재,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등 국가 원로들을 후보 상임고문으로 모셔 좌파정권을 물리치는 데 함께 나서주실 것을 호소하겠다.”고 다짐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본선 4강전(1국)] 고려대,일본 와세다대 정기 교류전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본선 4강전(1국)] 고려대,일본 와세다대 정기 교류전

    제2보(12∼31) 고려대와 일본의 와세다대가 바둑을 통해 한·일대학간의 우정을 다지는 행사를 마련했다.30일 고려대 교우회관에서 열리는 제1회 바둑정기교류전이 바로 그것. 양교 재학생 및 졸업생중에서 각 15명씩의 대표선수를 선발, 다승으로 승부를 가리게 된다. 고려대는 얼마 전 끝난 대학동문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대학바둑의 강호. 원로기사 심종식 6단을 비롯해 한철균 7단, 김명완 8단, 안달훈 7단, 하호정 3단 등이 고려대 출신 프로기사들이다. 고려대와 와세다대는 앞으로 매년 여름 양국을 번갈아 방문하며 교류전을 이어갈 예정이다. 한·일 대학간의 정기교류전이 성사된 것은 서울대와 도쿄대의 교류전에 이어 두 번째. 서울대와 도쿄대의 교류전은 이미 3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백이 12로 붙이고 난 뒤 17까지는 가장 간명한 진행. 흑으로서는 후수가 되는 것이 약간 불만이지만 나중에 흑19로 육박하는 수가 박력 있다. 백이 26으로 다가선 것은 흑이 <참고도1> 흑1로 달아나기를 강요한 점. 그러나 흑의 입장에서는 백이 2로 급소를 차지하고 난 다음 행마가 어려워진다. 흑27,29는 반대로 백에게 <참고도2> 백1을 주문한 것. 이번에는 백이 흑의 주문을 거스르고 백30의 선공을 펼친다. 이렇게 되면 흑31도 내친걸음. 초반부터 두 기사간의 기세싸움이 볼 만하다. 최준원 comos5452@hotmail.com
  • 원로들, 경선승복 다짐했지만…

    원로들, 경선승복 다짐했지만…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전이 막판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박관용 경선관리위원장과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진영의 원로 등 27명이 한자리에 모여 경선 후 화합과 승복에 합의했다. 이 후보측 김수한 전 국회의장과 박근혜 후보측 최병렬 전 대표 등 원로들은 이날 오후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오찬 회동을 갖고 ▲경선 결과에 승복할 것 ▲투표를 앞두고 지나친 과열, 혼탁상 방지에 앞장설 것 ▲경선 이후 당 단합과 결속에 나서 정권 창출에 앞장설 것 등에 합의했다. 특히 이날 모임에서 양 진영 원로들이 경선 탈락 후보의 ‘승복 연설’에 동의해 오는 20일 전당대회에서의 성사여부가 주목됐다. 전당대회 당일 승리한 후보의 수락연설에 이어 탈락한 세 후보도 승복연설을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후보측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이와 관련,“지난 1월 상임고문회 때 박 후보는 ‘경선에 승복하지 않고도 이 땅에 살 수 있겠냐.’고 다짐했고 이 후보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며 동의의 뜻을 밝혔다. 박 후보측 최병렬 전 대표도 “경선이 끝나면 전부 하나가 될 것이며 지금 감정은 시간이 가면 묻혀질 것”이라고 화답했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부고]

    ●최규화(사업)규홍(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씨 부친상 이윤수(국가정보원)박은효(사업)씨 빙부상 15일 부산보훈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30분 (051)601-6796●김성렬(아현중앙감리교회 원로목사)씨 별세 한중(연세대 의대 교수)낙중(재미 목사)호중(재미 사업)희중(캐나다 거주)혜자(미국 거주)영중(미국 거주)씨 부친상 14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2)392-1099●박균관(한영회계법인 대표)철옥(영풍치킨 대표)씨 모친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7시30분 (02)3410-6917●김경현(삼성전자 상무)씨 모친상 1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7일 오전 9시 (02)3410-6916●나기성(전 서울예대 사무처장)기남(전 현대상선 기관장)씨 모친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6시 (02)3010-2237●김문겸(대구 서구청 주민생활지원국장)만준(자영업)휘겸(회사원)씨 부친상 15일 대구 제일효병원, 발인 17일 오전 8시 (053)523-4893●박명수(EMC코리아 부사장)씨 부친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30분 (02)3010-2293
  • [어떻게 지내십니까] 베트남에 5년 억류 이대용 前 주월공사

    [어떻게 지내십니까] 베트남에 5년 억류 이대용 前 주월공사

    한국인 23명을 납치한 탈레반 세력의 인질극이 장기화하고 있다. 이미 2명이 희생된 가운데 여성 피랍자 일부가 가까스로 풀려났으나, 나머지 인질의 석방은 아직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온국민이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낭보가 들려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가운데 이대용(83) 전 주월공사를 만났다. 그는 월남 패망 후 공산 베트남 정권에 만 5년간 억류됐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제3국에서의 ‘최장기 인질’이었다. 그로부터 아프간 인질들을 구해 낼 묘책과 근황을 들어봤다. ●“그들도 탈레반이었다.” 월남이 사실상 패망한 1975년 4월30일. 이 주월 경제공사는 운명처럼 대사관 직원과 교민을 본국으로 안전 귀환시키는 철수 본부장직을 맡게 됐다. 김영관 당시 주베트남 대사 등 대부분의 공관원과 교민들이 이미 사이공을 떠난 뒤였다. 사이공 공항까지 북베트남군의 포격을 받는 위기일발 상황이었다. 한 명이라도 더 안전하게 귀국시키려 안간힘을 쓰다 베트남 정보공작특별경찰조직인 안녕내정국에 체포됐다. 그는 “생각해 보니 그들은 아프간에서 무고한 외국인들을 납치·감금하는 탈레반과 다름 없었다.”고 회상했다. 치화 형무소에 수감된 그에게 외교관의 치외법권을 규정한 빈협정은 한낱 휴지조각이었다.1평도 안되는 독방에서 10개월 동안 햇빛 한번 못 보고 지낼 때도 있었다. 체중이 78㎏에서 42㎏으로 줄어들 정도로 참기 어려운 고통에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대목에서 이 전 공사는 “아프간 한인 인질들이 기습적으로 납치되는 바람에 충격이 클 것”이라면서 “국가가 구출할 것이라고 믿고 침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건 목숨을 담보로 끊임없이 강요하는 사상전향 요구였다. 그는 공산 베트남 측의 ‘가이따우’(인간개조) 공작에 꿋꿋이 버텼다.‘극한 상황에서 강요에 의한 거짓 전향은 무죄’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물론 이를 알았더라도 전향서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납치세력들로부터 이슬람교로 개종 압박을 받고 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한인 피랍자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개종하는 척이라도 하며, 생명을 보전하는 게 우선”이라고. 이 전 공사와 서병호·안희완 두 영사가 억류되자 본국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와 외교 공관망을 총동원해 석방교섭을 펴도록 독려했다. 하지만 베트남과 외교관계가 단절된 데다 냉전하의 남북관계가 큰 걸림돌이 됐다. 북한 김일성 주석이 베트남 통일후 ‘남조선 해방´을 부르짖고 있는 가운데 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휘하는 노동당 제3호 청사가 북송 공작에 뛰어든 것이다. ●석방 교섭, 그때와 지금 78년 인도 뉴델리에서 남북한과 베트남간 비밀 3자회담이 열렸지만, 돌파구는 열리지 않았다. 북한이 이 전 공사 등의 북송을 최대치 목표로, 여의치 않으면 남한내 수감 간첩과의 교환을 추진하려 한 까닭이었다. 이 전 공사는 “탈레반이 피랍자와 탈레반 죄수들을 맞교환하려는 것과 너무 유사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당시 북측은 “중남미 테러세력들도 자국내 미 외교관들을 인질로 잡고 수감중인 도시게릴라들과 맞교환을 요구한다.”고 억지 사례를 들었다.“국제법의 보호를 받는 외교관과 간첩을 바꾸는 건 어불성설”이란 남측 주장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는 금언과 함께 석방의 전기는 왔다. 베트남이 미제 및 소련제 무기 등 막강한 화력을 바탕으로 캄보디아를 침공하자 위협을 느낀 중국이 견제에 나서면서다. 중국과 입장을 같이한 북한도 베트남에 캄보디아 철수를 요구하며 틈이 벌어졌다. 이때 한국정부는 거상 아이젠버그를 활용해 석방교섭을 성공시켰다. 그는 베트남의 외자유치를 도우며 커미션을 챙기던 유대계 미국인이었다. 물론 이는 이 공사가 생지옥 같은 긴 수감생활을 견뎠기에 가능했다. 그 이면에는 끊임없이 비밀 루트를 개척해 억류 외교관들과 접촉선을 유지하려 한 한국정부의 노력도 주효했다. 부패한 베트남 관리들을 구워삶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을 일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는 탈레반과의 공식 접촉 못지않게 다양한 비공식 통로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아프간뿐만 아니라) 파키스탄·사우디 등의 이슬람기구와 단체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요하다면 장사꾼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베트남에도 현지 공장이 있는 한 기업체의 이사로 있다.(주)선진의 장학재단 고문격으로 일선에선 한발 비켜나 있다. 그는 베트남식 개혁·개방 노선인 도이모이 정책과 관련,“86년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웬반린이 서기장으로 취임하면서 반세기 동안 외세 배격을 부르짖던 원로급들을 예우하면서 은퇴시킨 것은 사실상의 쿠데타”라고도 했다. 반면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해선 얼마간 비관적 전망을 했다.“주체사상을 포기, 개혁·개방하면 체제가 무너질 판인데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북한의 웬반린’이 나올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었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그는 누구인가 1925년 황해도 금천에서 태어난 이대용 전 주월 공사는 고향의 인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김구 선생을 비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동으로 몰리자 목숨을 걸고 월남했다. 이후 육사 7기로 임관한 뒤 한국전쟁을 맞아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유엔군 참전으로 북진이 시작된 이후엔 압록강에 맨 먼저 손을 담근 제6사단 7연대 1중대장으로 활약했다. 63년 주베트남 대사관 무관으로 파견되면서 베트남과의 굴곡 많은 인연이 시작된다. 소장으로 예편한 그는 67년 베트남 대선서 미 육군지휘참모대학에서 함께 수학한 웬 반 티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그 이듬해부터 주베트남 대사관 정무공사로 4년간 근무한 것이다.73년 다시 주베트남대사관 부공관장격인 경제공사로 부임해 베트남과의 질긴 인연을 확인했지만,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된 직후 체포돼 사이공의 치화형무소에서 5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 특별경찰과 사이공의 북한대사관 정보원들에 의해 전향과 귀순을 강요받았으나 끝내 거부했다. 이때 나중에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유명해진 박영수 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국장과도 악연을 맺었다. 박 전 부국장은 억류 중인 그에게 투항을 강요했던 북한 대사관의 정보원이었다. 80년 4월12일 베트남서 풀려난 이 전 공사는 화재보험협회 이사장과 생명보험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99∼2003년 육사총동창회장과 명예회장을 역임했다.96년 한·베트남친선협회 회장을 맡아 베트남과 이어진 악연의 고리를 끊었다. ■즈엉 찐 특 前 주한 베트남 대사와의 인연 이대용 전 주월공사가 베트남 억류 후유증을 털어내고 있던 2002년 초 어느 날. 생지옥 같았던 수감생활의 악몽을 되살릴 일이 생겼다. 그를 치화 형무소로 밀어넣은 장본인 중의 한 명이 서울에 온다는 소식이었다. 그것도 주한 베트남 대사로. 즈엉 찐 특 제3대 주한 대사.1975년 월남 패망 당시 베트남의 특별경찰조직인 안녕내정국 요원으로서 이 공사를 신문했던 인물이었다. 이 전 공사는 한국말이 능통하고 얼굴이 유난히 하얀 그를 ‘튀기’라는 별명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 전 공사는 걸핏하면 “총살하겠다.”고 위협하던 그를 떠올리며 몸서리쳤다.“만나면 죽이고 싶다.”는 게 당시의 솔직한 심경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특 대사가 이 전 공사가 회장을 역임했던 서울남서로타리클럽의 조찬특강 연사로 나오면서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27년 만에 만난 이 전 공사에게 특 대사는 “(신문을 받을 때)‘국제관계에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고 하셨는데, 참으로 선견지명이었다.”고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이미 한-베트남 관계가 북한-베트남 관계보다 더 밀접하게 됐으므로 원한을 누그러뜨리려는 공치사만은 아니었다. 이 전 공사도 “양국이 철천지 원수였던 당시 각자 자기 나라를 위해 충성했을 뿐, 개인적 원한은 없었던 게 아닌가.”라고 화답했다. 이후 두 사람은 평생지기처럼 지내며 서로를 돕는 사이가 되었다.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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