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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즈 테일러, 잭슨 잃고 건강악화 ‘입원’

    리즈 테일러, 잭슨 잃고 건강악화 ‘입원’

    원로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77·이하 리즈)가 마이클 잭슨을 잃은 상실감에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다고 미국 신문 뉴욕 포스트가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몇 년 사이 심신이 허약해져 휠체어 신세를 진 리즈는 최근 건강이 더욱 나빠져 어제(14일) 로스엔젤레스 병원에 입원했다. 리즈의 병원행에는 지난 달 25일 잭슨이 사망한 사건이 주요한 원인이 됐다고 측근은 전했다. 친구보다 더 진한 우정을 나눠온 잭슨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리즈는 극심한 상실감을 느꼈고 건강이 더욱 나빠졌다는 것. 다음달로 예정된 영국 공연에 참석할 준비를 하는 중에 비보를 접한 리즈는 충격이 더욱 컸으며 그녀는 “내 몸과 마음이 모두 부숴진 것 같다. 그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면서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리즈는 지난 9일(현지시간) 열린 잭슨의 영결식에서 대표로 추도문을 읽을 예정이었으나, 정신적 충격을 받을 것을 우려한 그녀의 가족들이 만류해 참석하지 못했다. 잭슨과 리즈의 우정은 수십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20세 이상 나이 차이가 나지만 리즈는 잭슨의 순수함에 반해 친구를 자처했다. 특히 몇 년 전 잭슨이 아동성추행 혐의로 기소돼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을 받을 때에도 리즈는 그의 무죄를 주장하며 지지 변론을 하기도 했다. 한편 CNN 등 일부 언론매체는 리즈가 건강이 악화돼 입원한 건 맞지만 잭슨을 잃은 슬픔이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뉴스 다큐 시선]서울 사라지는 골목길 사람들의 애환

    [뉴스 다큐 시선]서울 사라지는 골목길 사람들의 애환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가슴에 금이 갔다.” 시인 김광섭은 1968년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에서 개발의 열풍 속에 파괴돼 가는 인간성을 비둘기에 빗대 표현했다.여기 오랜 삶의 터전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시가 2007년부터 시작한 ‘디자인 서울거리 조성계획’이 서울 전체를 바꾸고 있다. 이 사업은 2007년 대학로, 이태원로 등 10개 지역에 439억원을 투입해 전면 재단장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것의 이면에는 사라지는 것들이 있고 그 뒤안길에는 사람들의 추억과 삶이 녹아 있다. 철거가 됐거나 이제 곧 철거를 앞두고 있는 서울의 추억을 찾아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애환을 들어 봤다. 글 박건형 오달란 유대근 박성국기자 kitsch@seoul.co.kr 동영상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30년 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일대에는 80여채의 한옥들이 서로 처마를 맞댄 채 줄지어 서 있었다. 집집마다 경쟁하듯 내놓은 화분이 골목을 화사하게 꾸몄다. 대문은 잠겨있는 적이 없었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영이 엄마, 된장이 다 떨어졌네. 한 숟갈만 퍼줘.” “언니, 나 대파 한 단 사올 동안 우리 애 좀 잠깐 봐 줘요.” 하는 정겨운 대화가 오갔다. 이 동네 14칸짜리 한옥에서 35년째 살고 있는 피터 바돌로뮤(61)가 들려준 이야기다. 간간이 비가 흩뿌리는 지난 13일 저녁 바돌로뮤의 집 대청마루에 앉았다. 마당에 심은 대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며 사각거렸다. 그는 “이렇게 조용하고 아름다운 한옥을 불편하고 낡았으니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속이 상한다.”고 푸념했다. 그는 “콘크리트 건물도 수리하지 않으면 30년을 못 간다.”면서 “나도 매년 두 번 지붕에 올라가 깨진 기와를 보수하고 홈통에 쌓인 낙엽을 치우면서 집을 부지런히 가꾼다.”고 말했다. 그의 기와 수리 실력은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로 뛰어나다. 옆집 할머니가 ‘피터씨, 김치 넉넉히 줄 테니 우리집 기와도 손 봐주우.’라며 부탁할 정도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정겹던 동네 인심은 재개발 광풍이 몰아치면서 사나워졌다. 2004년 이 일대가 동선3구역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자 개발을 원하는 주민들과 한옥을 지키려는 주민들이 편을 갈라 싸우기 시작했다. 바돌로뮤는 “쥐꼬리만 한 보상금 몇 푼과 평생 지켜온 유일한 자산인 집을 바꾸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안타깝다.”면서 “재개발되면 이 일대에는 삭막한 아파트 4동이 들어서게 될텐데 그 모습은 절대 못 본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겨웠던 동소문동 한옥마을 정부 중심의 재개발 정책이 일방적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한옥마을의 예술적 가치를 몰라보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멀쩡히 사람이 사는 곳에 테두리를 쳐놓고 건물을 새로 짓겠다고 선포하는 것은 독재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가 생각하는 재개발의 근본 취지는 하꼬방(판잣집)처럼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해 살 만한 곳으로 바꾸어 주는 일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정릉 일대를 재개발하면서 개량 한옥 한 채를 남겨 주민들의 자치공간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는 한옥 마을을 단지 구경하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죽은 공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동소문 일대를 제2의 인사동, 제2의 북촌으로 만드는 것이다. 갤러리와 점집, 골동품 가게, 카페와 한옥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예술마을을 이웃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그는 “그러면 사라질 뻔한 골목에 다시 사람들이 찾아와 북적대지 않겠나.”라고 기대했다. ●삶의 전부인 세운상가는 추억의 공간 같은 날 종로구 장사동 세운1지구 ‘초록띠 공원’. 40여년간 자리를 지켰던 세운 현대상가가 헐리고 대신 들어선 공원 한쪽에는 벼, 옥수수 등을 직접 기를 수 있는 ‘도시농장’(시티-팜·City-Farm)이 조성되고 있다. 모내기 작업 중인 인부들의 모습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웅재(59)씨가 한마디 던진다. “서울시민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데 터를 지켜온 사람들은 왜 슬퍼해야 하나.” 그는 30년째 세운상가의 전체 7동 중 하나인 세운상가 본관에서 TV와 난로 등을 팔아온 ‘터줏대감’이다. 시는 지난해 5월 남산에서 세운상가와 종묘를 가로질러 북악산까지 연결되는 ‘세운 녹지축’ 조성계획을 발표했고, 1단계 사업을 통해 현대상가터에 ‘초록띠공원’을 만들었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5월20일 열린 초록띠공원 준공식에서 “5개월 전 착공 당시 삭막하기만 했던 터가 녹지로 바뀐 걸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며 흐뭇해했다. 시는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청계천~을지로~퇴계로 구간도 오는 2015년까지 3단계에 걸쳐 완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 보는 이씨등 세운상가 상인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70년대 초 세운상가에 처음 발들여 놓은 이씨는 인생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종업원으로 시작해 점포를 얻었고 96년부터 8년간 상인연합회장도 지냈다. 대학생인 아들도 상가에서 장사하며 낳고 길렀으니 “세운상가가 내 삶의 전부”라는 이씨의 말이 과장된 것은 아니다. 그는 “그러나 시가 상인들과 별 상의없이 세운 녹지축계획을 발표하고 지난해부터 공사를 진행하면서 우리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다.”면서 “3개월 영업보상비와 대체상가 등을 마련해 줬지만 몇십년째 이곳에서 일한 상인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할 뿐”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재개발도 좋지만 그동안 터를 지키며 살아온 이들에게 의견을 묻고 배려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모두가 행복하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시가 철거된 현대상가의 상인들을 위해 대체건물로 지어준 인의동 ‘세운스퀘어’의 정인학(54) 상인연합회장도 “일본 도쿄시는 65년된 전자상가 아키하바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오 시장의 눈에 세운상가는 없애야 할 낡은 건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며 서운해했다. 세운상가 터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종로1, 2가 뒤쪽 골목에 이어져 있는 피맛골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여년 간 이곳에서 생선구이집을 해온 대림식당 사장 석송자(67·여)씨는 “자고 나면 가게가 하나씩 없어진다.”면서 “외국인들도 600년 전통의 거리를 왜 없애느냐며 아쉬워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80년대 학생운동이 한창일 당시 경찰을 피해 피맛골에 몸을 숨겼던 대학생들이 어느새 40대 중년이 돼 아이들과 이곳을 찾기도 한다.”면서 “서민들의 추억이 서린 공간은 보존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안타까운 듯 되물었다. 골목 한쪽에서 35년째 ‘원조 감자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강옥희(70·여)씨는 “이곳에서 감자탕을 팔며 죽은 남편 대신 3남매를 키웠다.”면서 “재개발 때문에 곧 건물을 비워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사라져 가는 옛 터전들. 그곳을 지켰던 서민들에게 도시개발 계획은 빛보다 그림자였다. “정치하는 사람들 눈에는 문화는 없고 돈만 보이는 것 같아요. 이렇게 독특한 예술촌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데 왜 보존할 생각은 못하고 없애지 못해 안달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영등포구 문래동 3가. 낡고 녹슨 소규모 철강소들이 거리를 따라 줄지어 이어졌다. 그중 대부분은 문을 닫고 일부 철강소에서만 쇠 깎는 소리가 들려왔다. 폐허같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범상치 않은 그래피티(벽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와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이 곳은 마니아층에게 ‘문래예술공단’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생 함광일(26)씨는 공단 곳곳을 찾아다니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함씨는 “이곳이 없어지기 전에 사진기록이라도 남기고 싶어 찾았다.”면서 “문래예술공단은 한국의 몽마르트 언덕과도 같은 곳인데….”라며 아쉬워했다. ●“문래동 3가 예술촌 보존은 안되나요” 문래동3가는 70~80년대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이었다. 하지만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철공소 상인들은 공단을 떠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예술가들이 찾아와 빈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70여개의 작업실에 160여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시의회가 준공업지역인 이곳에 최대 80%까지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이미 예술촌 주변은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이 에워싸고 있었다. 아파트에 둘러싸인 예술촌은 어색하고 초라해 보였다. 이곳의 예술가들은 문래동 3가의 매력을 세가지로 꼽았다. 우선 임대료가 저렴하다. 그래서 요즘도 홍익대 부근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도 많이 건너온다고 한다. 주변이 빈 공단이거나 철공소라 작업 중에 발생하는 소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래동 3가만의 녹슬고 낡은, 오래된 분위기가 예술적 영감을 자극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소주(33)씨는 “재개발을 하게 되면 건물 주인은 임대료를 올려 입주해 있는 예술가들을 쫓아낼 것”이라면서 “단순히 예술가들의 문제가 아닌 한국 문화계의 위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부고]원로 국어학자 서정범 경희대 명예교수

    수필가이자 원로 국어학자인 경희대학교 서정범 명예교수가 14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83세. 서 교수는 1926년 충북 음성에서태어나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문리과대학장, 한국어원학회 초대 회장, 한국수필가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병상기’ ‘미리내’ 등 수필 10여편과 수필집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 ‘무녀의 사랑 이야기’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아들 호석(차병원 정신과 의사)씨와 딸 승현(워드워즈 대표)·승혜(성남시립교향악단 연주자)씨 등 1남2녀가 있다. 빈소는 경희의료원 장례식장 202호, 발인은 17일 오전 8시. (02)958-9548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뉴스 다큐 시선] 서울 사라지는 골목길 사람들의 애환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가슴에 금이 갔다.” 시인 김광섭은 1968년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에서 개발의 열풍 속에 파괴돼 가는 인간성을 비둘기에 빗대 표현했다.여기 오랜 삶의 터전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시가 2007년부터 시작한 ‘디자인 서울거리 조성계획’이 서울 전체를 바꾸고 있다. 이 사업은 2007년 대학로, 이태원로 등 10개 지역에 439억원을 투입해 전면 재단장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것의 이면에는 사라지는 것들이 있고 그 뒤안길에는 사람들의 추억과 삶이 녹아 있다. 철거가 됐거나 이제 곧 철거를 앞두고 있는 서울의 추억을 찾아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애환을 들어 봤다. 글 박건형 오달란 유대근 박성국기자 kitsch@seoul.co.kr 동영상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30년 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일대에는 80여채의 한옥들이 서로 처마를 맞댄 채 줄지어 서 있었다. 집집마다 경쟁하듯 내놓은 화분이 골목을 화사하게 꾸몄다. 대문은 잠겨있는 적이 없었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영이 엄마, 된장이 다 떨어졌네. 한 숟갈만 퍼줘.” “언니, 나 대파 한 단 사올 동안 우리 애 좀 잠깐 봐 줘요.” 하는 정겨운 대화가 오갔다. 이 동네 14칸짜리 한옥에서 35년째 살고 있는 피터 바돌로뮤(61)가 들려준 이야기다. 간간이 비가 흩뿌리는 지난 13일 저녁 바돌로뮤의 집 대청마루에 앉았다. 마당에 심은 대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며 사각거렸다. 그는 “이렇게 조용하고 아름다운 한옥을 불편하고 낡았으니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속이 상한다.”고 푸념했다. 그는 “콘크리트 건물도 수리하지 않으면 30년을 못 간다.”면서 “나도 매년 두 번 지붕에 올라가 깨진 기와를 보수하고 홈통에 쌓인 낙엽을 치우면서 집을 부지런히 가꾼다.”고 말했다. 그의 기와 수리 실력은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로 뛰어나다. 옆집 할머니가 ‘피터씨, 김치 넉넉히 줄 테니 우리집 기와도 손 봐주우.’라며 부탁할 정도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정겹던 동네 인심은 재개발 광풍이 몰아치면서 사나워졌다. 2004년 이 일대가 동선3구역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자 개발을 원하는 주민들과 한옥을 지키려는 주민들이 편을 갈라 싸우기 시작했다. 바돌로뮤는 “쥐꼬리만 한 보상금 몇 푼과 평생 지켜온 유일한 자산인 집을 바꾸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안타깝다.”면서 “재개발되면 이 일대에는 삭막한 아파트 4동이 들어서게 될텐데 그 모습은 절대 못 본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겨웠던 동소문동 한옥마을 정부 중심의 재개발 정책이 일방적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한옥마을의 예술적 가치를 몰라보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멀쩡히 사람이 사는 곳에 테두리를 쳐놓고 건물을 새로 짓겠다고 선포하는 것은 독재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가 생각하는 재개발의 근본 취지는 하꼬방(판잣집)처럼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해 살 만한 곳으로 바꾸어 주는 일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정릉 일대를 재개발하면서 개량 한옥 한 채를 남겨 주민들의 자치공간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는 한옥 마을을 단지 구경하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죽은 공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동소문 일대를 제2의 인사동, 제2의 북촌으로 만드는 것이다. 갤러리와 점집, 골동품 가게, 카페와 한옥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예술마을을 이웃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그는 “그러면 사라질 뻔한 골목에 다시 사람들이 찾아와 북적대지 않겠나.”라고 기대했다. ●삶의 전부인 세운상가는 추억의 공간 같은 날 종로구 장사동 세운1지구 ‘초록띠 공원’. 40여년간 자리를 지켰던 세운 현대상가가 헐리고 대신 들어선 공원 한쪽에는 벼, 옥수수 등을 직접 기를 수 있는 ‘도시농장’(시티-팜·City-Farm)이 조성되고 있다. 모내기 작업 중인 인부들의 모습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웅재(59)씨가 한마디 던진다. “서울시민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데 터를 지켜온 사람들은 왜 슬퍼해야 하나.” 그는 30년째 세운상가의 전체 7동 중 하나인 세운상가 본관에서 TV와 난로 등을 팔아온 ‘터줏대감’이다. 시는 지난해 5월 남산에서 세운상가와 종묘를 가로질러 북악산까지 연결되는 ‘세운 녹지축’ 조성계획을 발표했고, 1단계 사업을 통해 현대상가터에 ‘초록띠공원’을 만들었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5월20일 열린 초록띠공원 준공식에서 “5개월 전 착공 당시 삭막하기만 했던 터가 녹지로 바뀐 걸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며 흐뭇해했다. 시는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청계천~을지로~퇴계로 구간도 오는 2015년까지 3단계에 걸쳐 완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 보는 이씨 등 세운상가 상인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70년대 초 세운상가에 처음 발들여 놓은 이씨는 인생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다. 종업원으로 시작해 점포를 얻었고 96년부터 8년간 상인연합회장도 지냈다. 대학생인 아들도 상가에서 장사하며 낳고 길렀으니 “세운상가가 내 삶의 전부”라는 이씨의 말이 과장된 것은 아니다. 그는 “그러나 시가 상인들과 별 상의없이 세운 녹지축계획을 발표하고 지난해부터 공사를 진행하면서 우리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다.”면서 “3개월 영업보상비와 대체상가 등을 마련해 줬지만 몇십년째 이곳에서 일한 상인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할 뿐”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재개발도 좋지만 그동안 터를 지키며 살아온 이들에게 의견을 묻고 배려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모두가 행복하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시가 철거된 현대상가의 상인들을 위해 대체건물로 지어준 인의동 ‘세운스퀘어’의 정인학(54) 상인연합회장도 “일본 도쿄시는 65년된 전자상가 아키하바라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오 시장의 눈에 세운상가는 없애야 할 낡은 건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며 서운해했다. 세운상가 터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종로1, 2가 뒤쪽 골목에 이어져 있는 피맛골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여년 간 이곳에서 생선구이집을 해온 대림식당 사장 석송자(67·여)씨는 “자고 나면 가게가 하나씩 없어진다.”면서 “외국인들도 600년 전통의 거리를 왜 없애느냐며 아쉬워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80년대 학생운동이 한창일 당시 경찰을 피해 피맛골에 몸을 숨겼던 대학생들이 어느새 40대 중년이 돼 아이들과 이곳을 찾기도 한다.”면서 “서민들의 추억이 서린 공간은 보존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안타까운 듯 되물었다. 골목 한쪽에서 35년째 ‘원조 감자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강옥희(70·여)씨는 “이곳에서 감자탕을 팔며 죽은 남편 대신 3남매를 키웠다.”면서 “재개발 때문에 곧 건물을 비워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사라져 가는 옛 터전들. 그곳을 지켰던 서민들에게 도시개발 계획은 빛보다 그림자였다. “정치하는 사람들 눈에는 문화는 없고 돈만 보이는 것 같아요. 이렇게 독특한 예술촌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데 왜 보존할 생각은 못하고 없애지 못해 안달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영등포구 문래동 3가. 낡고 녹슨 소규모 철강소들이 거리를 따라 줄지어 이어졌다. 그중 대부분은 문을 닫고 일부 철강소에서만 쇠 깎는 소리가 들려왔다. 폐허같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범상치 않은 그래피티(벽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와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이 곳은 마니아층에게 ‘문래예술공단’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생 함광일(26)씨는 공단 곳곳을 찾아다니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함씨는 “이곳이 없어지기 전에 사진기록이라도 남기고 싶어 찾았다.”면서 “문래예술공단은 한국의 몽마르트 언덕과도 같은 곳인데….”라며 아쉬워했다. ●“문래동 3가 예술촌 보존은 안되나요” 문래동3가는 70~80년대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이었다. 하지만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철공소 상인들은 공단을 떠났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예술가들이 찾아와 빈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70여개의 작업실에 160여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시의회가 준공업지역인 이곳에 최대 80%까지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이미 예술촌 주변은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이 에워싸고 있었다. 아파트에 둘러싸인 예술촌은 어색하고 초라해 보였다. 이곳의 예술가들은 문래동 3가의 매력을 세가지로 꼽았다. 우선 임대료가 저렴하다. 그래서 요즘도 홍익대 부근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도 많이 건너온다고 한다. 주변이 빈 공단이거나 철공소라 작업 중에 발생하는 소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래동 3가만의 녹슬고 낡은, 오래된 분위기가 예술적 영감을 자극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소주(33)씨는 “재개발을 하게 되면 건물 주인은 임대료를 올려 입주해 있는 예술가들을 쫓아낼 것”이라면서 “단순히 예술가들의 문제가 아닌 한국 문화계의 위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쟈니 리 알아요? 뜨거운 안녕·사노라면은요?

    쟈니 리 알아요? 뜨거운 안녕·사노라면은요?

    ‘또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별들이 다정히 손을 잡는 밤. 기어이 가신다면 헤어집시다. 아프게 마음 새긴 그 말 한마디 보내고 밤마다 눈물이 나도 남자답게 말하리라, 안녕이라고. 뜨겁게 뜨겁게 안녕이라고’ 어느 날 노래방에 갔다가 손자 같은 젊은이가 ‘뜨거운 안녕’을 부르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손짓을 했다. “쟈니 리 알아?” “모르는데요.” “‘뜨거운 안녕’은 알아?” “그럼요. 제 십팔번인데….” “내가 이 노래 부른 가순데….” “정말요?” 쟈니 리(본명 이영길·71)는 이 같은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제 이름은 이미 썩어 없어졌어요. ‘뜨거운 안녕’도 그랬을 것 같았는데 아직도 불려지니 얼마나 좋아요. 정말 행복합니다.”라고 말한다. 쟈니 리가 여전히 힘을 잃지 않은 목소리를 과시하며 최근 새 노래 ‘걱정마’를 발표하고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원로 가수들이 옛 노래로 이런저런 공연 무대에 서는 경우는 왕왕 있지만, 일흔 살이 넘어 새 노래를 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쉽게 느낌이 오지 않는다면 요즘 한창 인기있는 빅뱅이나 소녀시대가 2050년에 신곡을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쟈니 리는 빅뱅 등에 못지않게 1960년대를 뜨겁게 달궜던 최고의 인기 가수였다. ●전쟁 고아에서 극장쇼 스타로 1970년대에 남진-나훈아가 있었다면 1960년대에는 ‘뜨거운 안녕’의 쟈니 리와 ‘허무한 마음’의 정원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당시 청춘들의 가슴을 휘저었다. 1938년 만주에서 태어난 쟈니 리의 삶은 소설과 다름없다. 어린 시절을 외갓집이 있던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보내다가 1950년 말 혈혈단신으로 부산까지 내려왔고 고아 신세가 됐다. 쟈니라는 이름은 외국인 양아버지가 붙여준 것. 음악을 알게 해줬던 양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인종 차별을 겪었고, 호적이 없었던 탓에 불법 입국한 사실이 드러나 되돌아온다. 스무 살의 나이에 상경해 어렵사리 쇼극단에 들어가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극장쇼 무대는 정장을 입고, 부동자세로 노래를 불렀던 분위기. 쟈니 리는 정원과 함께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서양에서 유행하던 리듬 앤드 블루스나 로큰롤 번안곡을 부르며 무대를 헤집고 다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윤복희가 미니스커트 열풍을 몰고 왔다면, 앞서 쟈니 리는 청바지 문화를 선도했다. 준수한 외모와 호소력 짙은 가창력, 세련된 스테이지 매너가 인기의 비결. 1966년부터 본격적으로 음반 취입을 한 그는 ‘뜨거운 안녕’, ‘내일은 해가 뜬다’ 등을 발표한다. “생활이 어려워 남대문 시장에서 다 떨어진 청바지를 사서 의상으로 입었던 것뿐인데 선배 가수들이 난리가 났었죠. 허허허. 정원과 제가 무대에 오르면 젊은 여성 팬들이 속옷을 던질 정도로 난리가 났어요. 피카디리, 단성사, 대한극장, 국제극장, 국도극장 등에서 모두 쇼를 했었는데 저와 정원이 섭외 1순위였죠. 그때 인기에 힘입어 ‘청춘대학’, ‘즐거운 청춘’ 등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고….” 1970년대 중반 연예계 생활을 접고 훌쩍 미국으로 떠나버린 것에 대해 쟈니 리는 “화려한 만큼 그 이면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던 연예계 생활의 어두운 면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돌이켰다. ●신곡 ‘걱정마’ 발표, 남은 인생도 노래와 함께 1992년 쟈니 브라더스의 김준과 함께 재즈풍 앨범을, 2005년 반야월 선생과 함께 트로트풍 앨범을 내는 등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간간이 앨범을 발표했으나 빛을 보지 못했다. 그 사이 2000년대 초반에는 식도암 수술로 오랫동안 몸을 추스르기도 했다. 그가 다시 조명받은 것은 들국화가 구전가요라며 불렀고 장필순, 크라잉넛, 신화, 레이지본, 체리필터 등이 리메이크했던 ‘사노라면’이 사실은 ‘내일은 해가 뜬다’였고, 이 노래를 부른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2006년 말 한국에 완전히 정착한 그가 최근 발표한 미니 앨범의 머리곡은 ‘걱정마’다. 록과 재즈 느낌이 동시에 나는 노래로 왕년에 키보이스에서 활동했던 윤항기 목사가 선물했다. 아직도 노래에 대한 열정이 꿈틀댄다고 하는 그는 “우연히 들어봤는데 곡이 밝고 가사도 쉽고 저에게 맞는 것 같아 앨범을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40여년 만에 다시 편곡해 녹음한 ‘뜨거운 안녕’도 반갑다. 사랑과 평화의 기타리스트 최이철이 세션을 맡았다. ‘사노라면’과 프랭크 시내트라의 ‘섀도 오브 유어 스마일’도 함께 담겼다. 열정은 끝이 없다. “누가 곡을 준다면 하드록이나 헤비메탈도 부를 수 있다.”고 하는 그는 그룹 사운드를 만들어 전국 투어를 해보는 게 남은 소원이라고 했다. ‘노익장’ 이야기를 꺼냈더니 “매사에 나이를 생각하면 자꾸 뒤로 처지고 주저앉게 되죠. 어떤 사람들은 주책이라고 하겠지만, 마음을 젊게 하려고 아이들 옷을 입고 나가기도 해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도전합니다. 특히 노래는 저를 건강하게 하는 힘이죠.”라고 힘주어 말한다.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인기가 허무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쟈니 리이지만, 꾸준히 노래 활동을 이어오지 못한 점에 아쉬움은 있다. “돌이켜보면 끝까지 했어야 했는데 왜 그랬을까 후회 많이 하죠. 목소리가 나오는 그날까지 열심히, 무대에서 노래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노무현 전대통령 49재]4대 종교의식 거행속 헌화·분향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일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영면에 들었다.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이날 낮 12시 봉화산 사자바위 아래 조성된 묘역에서 한명숙 장의위원장 등 추모객 3만여명(경찰 추산)이 운집한 가운데 고인의 유골을 묻는 안장식을 엄수했다. 백자합에 담긴 유골은 지난 5월29일 영결식 직후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가 이날 오전 49재(齋)를 마친 뒤 아들 건호씨의 가슴에 안겨 석관에 안치됐다. 안장식은 군 조악대 연주에 이어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의 종교의식으로 치러졌다. 유가족과 전직 국회의장, 국무총리, 각 정당 대표, 시민사회 원로 등이 헌화하고 분향했다. 안장식장 주변에서는 고인의 일대기 등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됐고, 21발의 조총발사와 묵념이 이어졌다. 추모 문화제도 열렸다. 안장식이 끝나자 높이 40㎝, 가로·세로 각각 2m 크기의 비석을 기중기로 묘역 위에 얹으면서 고인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봉하마을에 설치된 분향소는 설치 49일 만에 철거됐다. 한편 이날 서울 등 전국 곳곳에서는 시민분향소가 설치됐다. 또 서울 조계사와 화계사 등 일부 사찰에서는 마지막 재를 상징하는 행사가 열렸다. 조계종 원로의원 무진장 스님은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행사에서 “육신의 기억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좋은 생각과 의지, 업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김해 강원식 박정훈기자 kws@seoul.co.kr
  • 1인의석 조승수 생존법

    1인의석 조승수 생존법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이 주도하는 의원모임인 ‘진보개혁 입법연대’가 10일 국회에 의원 연구단체로 등록된다. 입법연대에는 야권의 개혁성향 의원 26명이 참여하고 있다.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서민의 삶에 맞닿는 정책과 법안을 관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 의원은 진보신당에서 유일하게 배지를 달고 있다. 법안을 발의하려고 해도 의원들에게 서명받을 일이 막막했던 그는 고민 끝에 지난 17대 때부터 교류가 있었던 민주당 의원들과 힘을 모아 모임을 만들었다. 조 의원은 9일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많은 국민이 진보정당은 서민의 일상생활에는 관심이 없고 무겁고 칙칙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한다.”면서 “이제 제대로 된, 시대를 담아 내는 진보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생활에서 겪는 불편을 서민의 눈높이에서 접근해 볼 것”이라며 정책실험의 방향을 제시했다. 원내에서 ‘일당백(一當百)’의 역할을 해야 하는 조 의원에게는 그만큼 과제가 많다. 그는 “매일 혼자서 의원총회를 여는 셈”이라면서 “원내상황에 대해 혼자 판단을 내려야 해 조금 부담스럽다.”고 털어 놓았다. 최근 국회 파행 속에서 조 의원의 고민이 깊다. 비정규직 보호법을 두고 여야가 유예 문제만 갖고 다툴 때는 답답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정부와 정치권이 서로 폭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면서 “기간제·단기간 근로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노동계의 80%를 차지하는 특수고용직 근로자에 대한 차별시정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권 공조와 관련, 조 의원은 “야4당 공조나 진보개혁세력의 연대는 철저하게 ‘내용’ 중심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하게 반(反) 여권 세력으로 갈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기득권의 이해관계에 맞설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공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비정규직법 6개월 유예안을 냈을 때 “유예안을 제시하면 더이상 야권 공조는 없다.”고 엄포를 놓았던 이유다. 민주당이 장외투쟁 등 강경모드에 나서며 진보정당의 존재감이 사라졌다는 비판에 대해 조 의원은 “비정규직법을 만든 원죄가 있는 민주당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는 바람직한 모습”이라면서 “뜨거운 쟁점 속에서 막상 놓치고 있는 근원적 문제들에 대해 기술적인 해결책을 제기하는 게 진보정당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선 입법연대 차원에서 사회 원로들을 모셔 진보개혁 세력이 어떤 방향으로 책임있는 정치활동을 할 것인지 의견을 듣고 함께 고민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영원한 안식’ 들어간 盧 전 대통령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일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영면에 들었다.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이날 낮 12시 봉화산 사자바위 아래 조성된 묘역에서 한명숙 장의위원장 등 추모객 3만여명(경찰 추산)이 운집한 가운데 고인의 유골을 묻는 안장식을 엄수했다. 백자함에 담긴 유골은 지난 5월29일 영결식 직후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가 이날 오전 49재(齋)를 마친 뒤 아들 건호씨의 가슴에 안겨 석관에 안치됐다. 안장식은 군 조악대 연주에 이어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의 종교의식으로 치러졌고, 유가족과 전직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각 정당 대표, 시민사회 원로 등이 헌화하고 분향했다. 안장식장 주변에서는 고인의 일대기 등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됐고, 21발의 조총발사와 묵념이 이어졌다. 추모 문화재도 열렸다. 안장식이 끝나자 높이 40㎝, 가로·세로 각각 2m 크기의 ‘아주 작은 비석’을 기중기로 묘역 위에 얹으면서 고인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봉하마을에 설치된 분향소는 설치 49일만에 철거됐다. 한편 이날 서울 등 전국 곳곳에서는 시민분향소가 설치됐다. 또 서울 조계사와 화계사 등 일부 사찰에서는 마지막 재를 상징하는 행사가 열렸다. 조계종 원로의원 무진장 스님은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행사에서 “육신의 기억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좋은 생각과 의지, 업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글 / 김해 강원식 박정훈기자 kws@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영원한 안식’ 들어간 盧 전 대통령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일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영면에 들었다.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이날 낮 12시 봉화산 사자바위 아래 조성된 묘역에서 한명숙 장의위원장 등 추모객 3만여명(경찰 추산)이 운집한 가운데 고인의 유골을 묻는 안장식을 엄수했다. 백자함에 담긴 유골은 지난 5월29일 영결식 직후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가 이날 오전 49재(齋)를 마친 뒤 아들 건호씨의 가슴에 안겨 석관에 안치됐다. 안장식은 군 조악대 연주에 이어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의 종교의식으로 치러졌고, 유가족과 전직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각 정당 대표, 시민사회 원로 등이 헌화하고 분향했다. 안장식장 주변에서는 고인의 일대기 등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됐고, 21발의 조총발사와 묵념이 이어졌다. 추모 문화재도 열렸다. 안장식이 끝나자 높이 40㎝, 가로·세로 각각 2m 크기의 ‘아주 작은 비석’을 기중기로 묘역 위에 얹으면서 고인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봉하마을에 설치된 분향소는 설치 49일만에 철거됐다. 한편 이날 서울 등 전국 곳곳에서는 시민분향소가 설치됐다. 또 서울 조계사와 화계사 등 일부 사찰에서는 마지막 재를 상징하는 행사가 열렸다. 조계종 원로의원 무진장 스님은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행사에서 “육신의 기억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좋은 생각과 의지, 업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글 / 김해 강원식 박정훈기자 kws@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S 돋보기] 공인 KBO총재의 가벼움

    7일 유영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의 ‘프로야구 제 9구단 창단’과 관련한 발언이 야구계 안팎을 뜨겁게 달궜다. 유 총재는 이날 원로 체육기자들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KT 등 프로야구단 창단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이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자, 인터넷 매체에서 이를 ‘물밑 작업’ 중인 사안으로 보도했고 순식간에 야구판이 벌집 쑤셔놓은 듯 소동이 빚어진 것. KBO 사무실에는 이를 확인하려는 전화가 밤 늦도록 빗발쳤다. KBO는 뒤늦게 “총재의 뜻은 그런 게 아니었다.”며 진화에 나섰다. 유 총재의 발언을 희망 사항, 즉 ‘원론적인 언급’ 이라며 해프닝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제 9구단 창단설’의 사실 여부를 떠나 유 총재의 발언이 한국 프로야구 수장으로서 경솔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자신의 희망을 담은 원론적인 수준의 발언을 하려면 공적인 자리에서 특정 기업의 이름까지 들먹이는 일은 피했어야 옳다. 실명을 거론하며 관심 운운하는 바람에 모임 참석자들은 프로야구 수장임을 감안해 ‘충분한 개연성’에 무게를 둘 수 있다. 게다가 KT는 이전에도 현 히어로즈 인수를 시도하다 무산됐던 기업이다. 더욱 현실성 있는 발언으로 다가왔을 소지가 다분하다. KT의 프로야구단 창단설이 사실이라면 더 문제다. KBO가 ‘사업 파트너’의 동의 없이 이같은 사실을 흘리는 것은 자칫 야구인들의 바람인 제9구단 창단이 무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KT는 “금시초문”이라며 창단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2년 전 현대 유니콘스가 파산하는 과정에서도 인수 기업이 언론에 노출되는 바람에 세 차례나 협상이 무산됐던 전례가 있다. 그 기업이 KT다. 이런 사실을 유 총재가 모르고 발언한 것인지, 그저 자신의 힘을 은근히 과시하려 한 것인지 안타까운 노릇이다. 프로야구 수장은 결코 가벼운 존재가 아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강서구 감자로 사랑나눔

    강서구가 자투리땅에 감자, 배추, 무 등을 심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는 아름다운 실천을 해 화제다. 가양1동 주민자치위원회는 9일 서남물재생센터에서 ‘2009 가양1동 주말농장 감자캐기 행사’를 갖고 수확한 감자를 지역의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준다고 8일 밝혔다. 행사에는 12개 경로당 회장과 주민자치위원, 통장, 새마을부녀회, 적십자봉사단, 지역 원로 등 80여명이 참여한다. 수확하는 감자는 지난 3월30일 파종했던 것으로 2t 정도를 수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주말농장은 2004년부터 자치회관의 ‘살고 싶은 마을 만들기 사업’의 하나로 마곡동 서남물재생센터 부지 1150㎡에 운영하고 있다. 봄에는 감자를 심어 수확하고, 가을에는 배추를 심어 김장을 해 경로당 등에 나눠주고 있다. . 고건상 가양1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정성껏 재배한 감자로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 더욱 기쁘다.”면서 “작은 부분이라도 함께 나누는 실천을 통해 인정과 사랑이 넘치는 강서를 만드는 데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5일에는 발산1동 새마을지도자협의회에서 발산택지개발지구 유휴공간에 주말농장을 통해 재배한 감자 1.5t을 수확해 지역 8개 경로당과 발음교회, 늘빛교회, 홀몸노인 10여가구 등 어려운 이웃에게 지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도로명에 우리동네 이름 꼭 넣을거야”

    ‘새 도로명 주소사업’ 이후 지자체 곳곳에서 다소 엉뚱한 도로 이름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지방도로명에 자기 동네 이름을 넣으려는 일부 지자체들의 지나친 욕심 때문이다. 2일 충북도에 따르면 도는 당초 ‘청주~청원 미원면~미원 구방삼거리’ 구간의 도로명을 ‘단재로’로 결정할 계획이었다. 이 도로가 지나가는 청원군 낭성면에 단재 신채호 선생의 사당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원면 주민들이 ‘미원로’라고 해달라는 바람에 도는 구간을 두개로 나눠 청주서 미원까지는 ‘단재로’, 미원에서 미원 구방삼거리까지는 ‘미원로’로 부르기로 했다. 옥천군 이원면에서 영동군 양산면까지 이어지는 지방도로 역시 민원 때문에 도로를 양분해 한쪽은 ‘이원로’, 나머지는 ‘양산로’로 부르기로 했다. 충북 영동군은 두 마을의 이름을 넣어 도로 이름을 지었다. 고당리와 심천리를 잇는 길을 ‘고당심천길’로 이름을 붙이는 등 모두 17개 길이 마을 두곳의 이름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주민들이 양보를 하지 않아 길 이름이 두 글자에서 네 글자로 늘어난 것이다. 영동군 관계자는 “당초엔 도로명에 대표적 마을이나 지형지물, 역사적인 이름을 넣으려고 했는데 주민들의 요구로 할 수 없이 계획을 바꿨다.”고 말했다. 충북 진천군은 일률적으로 법정리 명칭을 사용해 423개 구간의 도로명을 결정할 예정이다. 도로가 두개 이상의 자연부락에 걸쳐 있을 경우 대표 마을의 이름을 넣는 방식 등으로 도로명을 지을 계획이었지만 주민들이 각자 동네 이름을 써달라며 물러서지 않아 법정리 명칭을 쓰기로 한 것이다. ‘사당리 1길’, ‘사당리 2길’ 이런 식이다. 진천군 관계자는 “주민들이 도로명에서 자기동네 이름이 빠지면 동네가 없어지는 것으로 알고 군청을 찾아와 민원을 제기하는 것 같다.”며 “공평하게 법정리 명칭 뒤에 숫자를 붙여 도로명을 지었는데 주민들이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천지역의 일부 도로 이름은 지역적 특수성과 역사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생소하고 헷갈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인천 연수구의 함박뫼길, 먼우금길, 미추홀길, 독배길 등은 발음이 어렵고 어감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전국종합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씨줄날줄] 예술원 회원/노주석 논설위원

    예술가의 명칭에는 시인, 소설가, 평론가, 화가, 도예가, 건축가, 조각가, 서예가, 무대미술가, 작곡가, 연주가, 성악가, 국악인, 연출가, 희곡가, 연극인, 영화감독, 무용가 등이 있다. 세분하자면 끝이 없다. 대한민국 예술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가 81명이 모인 예술의 총본산이다. 문학, 미술, 음악, 연극·영화·무용 등 4개 분과로 나눠져 있다.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쟁쟁한 원로들의 집합체이다. 예술원은 모두 100명의 회원을 둘 수 있지만 정원을 다 채우지 않고 결원이 생길 때 충원한다. 회원 자격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예술경력 30년 이상인 자 중에서 예술발전에 공적이 현저한 자’이다. 임기는 4년이지만 대부분 연임된다. 물의를 일으켜 연임에 실패한 인사도 있다. 총회에서 재적회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회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선출된다. 입회자격은 무척 까다롭다. 경력은 화려하지만 추천되지 않거나, 추천을 받더라도 총회에서 고배를 마신 유명인사도 꽤 있다. 예술가들의 행위는 작품활동뿐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다분히 ‘예술적’이다. 종신회원이 3명 있다. 음악분과의 김성태(99)·이혜구(100), 연극분과의 이원경(93) 선생이다. 1988년 대한민국예술원법이 제정되기 전 문화보호법에 의해 추대된 원로회원들이다. 회원들은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에 대해 자문하면서 유관기관이나 단체 회원으로 활동한다. 정부는 회원들의 예술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행사 참석 때 의전예우를 제공한다. 매달 150만원의 수당을 지급받는다. 회원들의 사랑방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예술원. 교통여건이 좋은 대학로 예총회관으로 이전을 추진 중이다. 어제 정기총회에서 회원 7명이 선출됐다. 말이 ‘신입’이지 평균연령 70세다. 소설가 서정인· 한말숙씨, 시인 김후란씨, 피아니스트 신수정·이경숙씨, 무용가 김숙자·김학자씨가 주인공이다. 입회할 만한 분들이다. 또 소설가 이문열씨와 서양화가 고 정점식씨, 작곡가 백병동씨가 예술원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예술원상 수상자가 예술원 회원으로 이어지는 전통을 감안하면 이문열(61)씨의 입회기사를 10년 뒤쯤 볼 수 있을 듯하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사설] 기초선거 정당공천배제 입법 서둘러라

    정치·사회 원로 55명이 그제 기초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 폐지를 촉구하는 선언문을 낸 것은 여러모로 뜻깊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공천제 문제를 더이상 국회의원에게 맡겨선 안 되겠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음을 알려 준다. 특히 고건 전 국무총리, 서영훈 전 적십자사 총재,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원로들이 선언에 동참했다. 이념 갈등으로 조각난 한국사회에서 특정 현안에 대해 보수·진보가 이렇듯 같은 목소리를 낸 것을 평가해야 한다. 기초단위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의 폐해는 직접 당사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전국의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의 73.9%가 정당공천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다. 중앙당 간여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탈당한 기초단체장도 있었다. 올 3월부터는 전국 지방자치단체장과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국민운동 본부’가 결성되어 현재 1000만명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도 정당공천 폐지를 주장하고 있으나 대부분 국회의원들은 아직 오불관언이다. 정당공천을 통한 영향력 확대와 일각의 공천헌금 유혹이 너무 큰 탓이라고 본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오염시키는 작태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들의 자각에만 이 일을 맡겨선 안 된다. 원로들의 이번 선언을 계기로 모든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국회의원들을 압박해야 한다. 올해를 넘겨 지방선거가 임박하면 입법이 어려워진다. 늦어도 올 정기국회에서는 정당공천제가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 최인훈의 첫 희곡 23년만에 다시 무대에

    최인훈의 첫 희곡 23년만에 다시 무대에

    ‘삼국사기’가 전하는 평강공주와 바보온달 설화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표상이다. 아버지의 놀림을 철석같이 믿고 온달을 찾아나선 평강공주가 남편을 훌륭한 장수로 길러내는 성공담과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온달의 관이 공주의 손길이 닿고서야 비로소 움직였다는 낭만적인 결말은 견고한 사랑의 신화를 완성한다. 명동예술극장 재개관 기념 두번째 작품으로 10일부터 26일까지 공연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는 바로 이 설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뻗어나온 가지와 잎은 겹겹의 의미와 은유로 뭉쳐 있다. 신념을 넘어 권력욕에 사로잡힌 강인한 공주와 신분상승으로 낯선 세계에 들어가 권력다툼의 희생물이 되고 마는 온달 등 고대 설화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은 인간 관계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광장’으로 유명한 원로 소설가 최인훈의 첫 희곡으로 1970년 명동예술극장의 전신인 옛 국립극장에서 초연했고, 이어 1973년, 75년 잇따라 공연돼 큰 호응을 얻었던 작품이다. 이번 공연은 86년 문예회관 대극장 공연 이후 23년 만의 무대다. 강렬한 연극성과 독창적인 무대로 각인된 한태숙이 연출을 맡았다. 2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인훈 작가는 “공연을 보려고 극장밖까지 길게 줄서있던 관객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면서 “국립극장의 옛 모습을 살린 명동예술극장에서 다시 공연하게 돼 감회가 무척 깊다.”고 말했다. 20대 초반 이 연극을 보고 단번에 매료됐다는 한태숙 연출은 “일부 지문의 내용을 제외하곤 원작을 최대한 살렸고, 한 인간이 다른 사회에 들어가면서 겪는 고통과 번민 등 지금의 현실에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지점에도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박정자를 비롯해 정동환, 서주희, 김수현 등 관록의 중견 배우와 재능있는 신진 배우의 호흡이 기대를 모은다. 초연 때 20대의 나이로 온달모를 열연했고, 이제 배역만큼의 연륜이 깃든 박정자는 “눈 내리는 무대 한가운데서 온달모가 죽은 아들을 기다리며 독백하는 마지막 대목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욕심나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2만~5만원. 1644-2003.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부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명우 칼 말든 하늘로

    미국의 원로배우 칼 말든이 1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AP통신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97세.‘워터프론트’, ‘패튼 대전차군단’ 등 50여편이 넘는 작품에서 개성있는 연기를 펼쳤던 말든은 할리우드 배우로 1950~60년대를 풍미했다. 1951년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89년부터 4년간 미 영화아카데미 회장직을 맡았으며, 20 04년에는 미국 배우조합으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다. 말든은 연기 외에도 우표 수집가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할리우드의 전설’ 우표 시리즈 기획에 참여하기도 했다.안석기자 ccto@seoul.co.kr
  • 평생학습축제 홍보대사 이순재씨

    교육과학기술부는 1일 원로 탤런트 이순재(75)씨를 ‘제8회 전국평생학습축제’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평생학습축제는 2001년부터 전국 76개 평생학습도시 중 모범적인 도시를 선정해 개최되고 있으며 제8회 축제가 10월9∼12일 경기 구리에서 열린다.
  • 칼 말든, 美 할리우드 원로배우 타계

    칼 말든, 美 할리우드 원로배우 타계

    할리우드 원로배우 칼 말든이 1일(현지시각) 향년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12년 미국에서 태어난 칼 말든은 1951년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다음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칼 말든은 1947년부터 배우로 나서 2007년 다큐멘터리영화 ‘브랜도’에 이르기까지 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바 있다. 한때 철공소 인부로 일하기도 했던 말든은 특유의 큰 코로 인해 ‘주먹코 배우’라고도 불렸다.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조연급 연기자였던 칼 말든은 지난 1989년부터 1993년까지 미국 영화아카데미 회장을 역임했으며, 2004년 제10회 미국배우조합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동국대 36대 이사장 정련스님

    불교계 원로인 정련(67) 스님이 학교법인 동국대의 새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동국대는 30일 이사회를 열어 정련 스님을 제36대 이사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정련 스님은 조계종 포교원장(1999년)과 총무원 총무부장(1998년) 등을 역임하고 2001~2003년까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공동대표를 지냈다.
  • [전국플러스] 상암동 노을공원에 조각작품 설치

    서울시는 마포구 상암동 노을공원에 국내 원로 조각가들의 작품 10점을 설치해 한강과 잔디가 어우러진 조각공원으로 재조성했다고 28일 밝혔다. 이로써 한강의 아름다운 섬에서 쓰레기매립장, 골프장으로 변신을 거듭해온 난지도는 지난해 11월 공원으로 개장한 뒤 잔디밭과 조각작품이 공존하는 지역 명소로 거듭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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